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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삼웅 칼럼] 김대중·장면정부의 멍에

    김대중정부와 장면정부는 38년의 시차를 두고 있다.한국현대사에서 두 정권은 출범과정과 성격 그리고 시대상황에 있어서 공통점이 매우 많다. 우선 정통성에서 일치한다.장면정부는 이승만 독재를 붕괴시킨 4월혁명의결과로 태어났으며 김대중정부는 32년 군사정권과 여기에 뿌리를 둔 문민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명예혁명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장면정부가 4·19혁명의 결과라면 김대중정부는 광주항쟁과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시민혁명의 산물이랄 수 있다.‘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지도자를중심으로 정통성과 합법성의 강고한 기반 위에서 출범한 두 정권이 쉽게 반대세력의 도전에 취약성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혁명 또는 명예혁명적 과정을 거쳐 합법적으로 집권했지만 상층부 일부만 바뀌었을 뿐 구정권의 인물과 관행이 그대로인 앙시앵 레짐의 ‘허리부문’을 개편하지 못했다. 둘째,독재를 부정하는 안티에서 출발한 새정부는 구체제의 억압구조와 규제를 풀게 되고 따라서 ‘당근과 채찍’을 놓아버린,일종의 무장해제한 권력체이다.여기에 국민은 무한대의 자유를 요구하고 정부에는 청교도적 순결성을바라면서 국민과 정부 사이에 단층현상을 드러낸다. 셋째,‘단군 이래의 자유’가 허용된 상황에서 야당과 사회단체 그리고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사람들까지 자신들의 정체성회복의 심리에서 정부공격에앞장서고 일반시민들의 무책임한 시위와 권리의 남용이 나타난다.또한 정권의 시혜로 주어진 자유가 정권을 옭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다. 넷째,내각제의 권력분산구조에서 효과적으로 시국에 대처하지 못하고(장면정부)내각제에 발목이 잡혀(김대중정부)권력누수의 조짐을 보인다. 다섯째,독재와 부패를 청산하고 새국정모델을 제시하는 개혁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희생도 따른다. 그런데 총론적 개혁은 지지하면서 각론의 피해 당사자들은 저항하게 되고다수 국민은 조급하게 개혁의 과실을 요구한다. 여섯째,장면정부는 3·15부정선거원흉·부정축재원흉의 처단이라는 ‘혁명과업’의 해결이 당면과제로 주어졌고,김대중정부는 IMF체제의 국난극복 과제에 매달렸다.그러다보니 국민대중이 요구하는 개혁과 구체제청산작업이 더디게 되었다. 기득층의 저항 소외층의 비판 일곱째,기득층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서 개혁을 거부하거나 외면하고 소외층은 기대심리에서 개혁이 지지부진하다고 비판한다.이렇게 하여 개혁과 기대치에 대한 괴리가 증폭되면서 민심이반현상이 나타난다. 여덟째,‘동지적 적대세력’과의 동거를 들 수 있다.장면정부는 같은 뿌리에서 분당한 신민당의 극심한 도전에 시달리고 김대중정부는 다른 뿌리의 공동정권인 자민련의 ‘우호적 적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개혁세력이 결집되지 못한 것이다. 아홉째,진보·보수 지식인의 협공이다.기회주의적인 언론·지식인그룹은 그렇다치지만 진보·정론지를 자처하는 언론과 지식인들까지 ‘정권때리기’에 앞장선다.이승만 정권에서 심한 탄압을 받아온 혁신계와 진보언론이 장면정부공간에서 가장 심한 반정부 비판세력이 되었다.김대중정부를 보수·진보지식인과 언론이 피아 구분없이 비판하는 것도 장면시대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현정부에 의해 합법성을 인정받게 된 전교조나 민주노총 등이 정부에더욱 과격하다거나 이념적·생태적으로 우호적이어야할 언론과 지식인이 더공격적인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지식인 그룹의 역사의식 결론적으로 기득세력과 개혁세력으로부터 동시다발의 공격을 받으면서 ‘민주주의와 경제개발’(장면정부)이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김대중정부)를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기득세력의 두터운 장벽과 저항 그리고 분별잃은 혁신세력의 협공으로 장면정부는 쿠데타세력에 빌미를 주게 되고 김대중정부는 개혁정책이 흔들린다. 5·16 이후 지식인과 언론인,진보진영이 당한 시련과 고통을 생각하고 국가발전의 퇴영을 돌이키면서 비판활동의 본질을 되새겨봐야 하겠다.비판은 지식인의 본령이고 존재가치다.그러나 사사로움과 선정성과 하이에나식의 교활함이 겹칠 때 ‘이론적으로 수술은 성공했는데 환자는 죽게 되는’현상을 초래한다.언론인·지식인과 진보 그룹의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주필 kimsu@
  • 여야 단독총재회담 추진…정국현안 일괄타결 모색

    여야는 검찰의 파업유도 의혹 등을 조속히 해소하고 서해안 교전사태에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등 정국안정을 위해 빠르면 내주초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단독 총재회담을 추진중인 것으로 17일알려졌다.여야는 특히 파업유도 사건과 관련한 국회 국정조사와 제한적 특검제 도입 등 정국현안에 대한 일괄타결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이날 여야 3당 총무회담후 기자들과 만나“여야가 빠른 시일안에 단독 총재회담을 추진키로 하고 실무 준비를 하고있는 것으로 안다”며 “멀지 않아 회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여야 총무들은 이날 회담에서 18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서해안 교전사태와 관련,17일 국회국방위가 마련한 대북 경고 결의안을 채택한뒤 긴급현안질문을 갖기로 합의했다. 박찬구 박준석기자 ckpark@
  • 대전을 첨단 科技 중심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7일 대전 지방행정개혁보고회의과 지역인사 오찬,지역언론 기자회견에서 지역현안보다는 정국현안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서해안 교전사태와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에 관해 스스로의 생각을 털어놨다.정상적인 국정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역시 정국현안에 관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책임과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김대통령이 이날 지역현안에 대해 언급한 것은 대덕 과학기술단지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대전발전에 관한 구상이 전부였다.김대통령은 “대전시가 첨단과학기술도시로 발전해야 한다”며 “대전이 과학기술의 중심이 되고 역동적인 근거지로 태어나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대학의 대전 이전을 제안했다.미국 실리콘밸리가 인근 대학과의협동을 통해 이뤄졌다는 염두에 둔 언급이었다.김대통령은 “대학분교가 대전지역에 많은데,이제 대전을 본교로,서울을 분교로 하는 대학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 뒤 “정부와 대전시가 인센티브를 줘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물론 이같은 이전은 대학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난 71년 대전을 행정수도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현되지 못한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이번 서해 사태에서도 보듯이 모든 인구가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라면서 “그 때 행정수도를 옮겼다면 인구의 45%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양승현기자
  • [굄돌] 과거를 사랑하는 학교

    사람들은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지 않고 시계에 맞춰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시계가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과거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변화한 19세기부터였다.그 즈음 널리 퍼진 것이 오늘날의 학교였고,사람들은여기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 이 학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교육입국조서’가 반포되던 1895년이었다.그후 1945년 해방까지 학교는 전반기 50년간 일제의 영향권에서 ‘황민화교육’의 현장이었으며,후반기 50여년간은 이른바 냉전 이데올로기의생산 체제가 되어야 했다.이와같이 지난 100여년간 학교의 발자취는 굴절된한국현대사처럼 신성한 교육공간을 져버리는 길을 걸어왔던게 사실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학교 교육은 인류가 치른 두 차례의 세계전쟁과 정치적이념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다소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학교교육의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교과서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등장한 선전 영화나 대중강연과 함께 집단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도구의 하나였다.당시 선을보였던기관총처럼 그것은 인간의 의식을 겨냥한 심리적 무기였던 것이다.게다가 최근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 시절의 관행들,예컨대 잘 알려진 주번제도를 비롯하여 애국조회,관외출타 허가제,연수제도,폐품수집이나 새마을청소의 날,1교시 40분 수업 등 상당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일본 군부의 파시즘 교육체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쓰레기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거의 제대로 검토조차 된 적이 없었다.오히려 이제는 학교 문화를 지배하는 보수적 풍토의 한 요소로 뿌리를 내리고 말았다.까닭은 대부분 그 과거를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만큼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학교 사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따라서 학교의 과거를 모르는 한,그 과거의 학교 성격은 지속될 것이다.그런데도 근본적인 개혁에는 눈을 감고 학교 울타리 안에서나 밖에선 툭하면 학교는 변해야 한다는 공허한 소리가 반복되고 있는 것같다.마치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일제시대의 시계소리처럼. [이치석 서울용두초등교 교사]
  • 박찬호 7게임 출장정지

    박찬호(LA 다저스)가 7게임 출장정지와 3,000달러 벌금의 중징계를 받았다. 박찬호의 미국현지 대리인 스티브 김은 지난 6일 애너하임과의 홈경기 도중 상대팀 투수 팀 벨처를 폭행한 박찬호의 행위에 대해 내셔널리그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9일 알려 왔다.레너드 콜맨 주니어 내셔널리그 회장은“박찬호가 난투극을 벌였고 양팀 선수들이 모두 구장으로 몰려나오게 하는등 물의를 일으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박찬호는 “징계가 너무무거운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의신청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번 징계결정으로 박찬호는 오는 12일 선발등판할 예정이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경기에는 나가지 못하고 17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홈경기부터 출장할수 있다.
  • 이정숙교수 ‘한국현대소설연구’‘혼불’ 비판 연구

    “최명희의 ‘혼불’은 10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이지만 다루는 내용은 그만큼 방대하지 않다.그것은 ‘혼불’이 가족사 소설이기 때문이 아니라,등장인물도 작가도 모두 신격화된 청암부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성대 이정숙교수(49·국문과)는 최근 펴낸 저서 ‘한국현대소설연구’(깊은샘)에서 ‘혼불’을 신랄하게 비판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수용미학의 측면에서 ‘혼불’을 고찰하는 이교수는 이 작품이 작가의 수구적이고 교훈적인 문학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그에 따르면 ‘혼불’은 3권 중반 이후부터는 틈만 나면 ‘우리 것’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특히 백제의 아들로서 자신의 시각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심진학을 통해 작가는 신라중심의 역사를 혹독하게 비판한다.이것은 기존의 승자 중심의 역사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그러나 백제와 후백제 혹은 그 중심지인 전주에 대한 편애 혐의가 짙은,현재적 역사인식의 발로라는 점에서비판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현대 문학비평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가 ‘어떻게 읽느냐’하는 것이다.독자의 독서행위는 ‘제2의 창작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이교수는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혼불’은 독자를 독서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있다고강조한다.시간의 배열이 혼란스럽고 너무 자의적으로 자료를 제시해 소설의흐름을 끊어놓는다는 것.나아가 푸코식의 ‘근원에의 탐구’를 연상케 하는‘연원 거슬러 올라가기’가 되풀이돼 작품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있다고주장한다.요컨대 소설이 지나치게 곁가지로 흘러 풍속사적인 지식의 나열에그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김종면기자
  • 오세영시인…인간실존의 문제 서정적 詩語로 형상화

    “공초(空超) 오상순은 허무의 끝까지 나아감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려 했던의지의 시인입니다.운명에 맞서 절대허무의 경지를 개척한 공초의 시세계와내 시의 공분모를 굳이 찾는다면 그것은 탈속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있지요” 올해 제7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세영 시인(58)은 “공초선생과특별한 인연도 없는 나를 작품성만을 보고 편견없이 수상자로 뽑아준 데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지난 65∼68년 박목월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이래 지금까지 10권의 시집과 11권의 학술저서를 낸 부지런한 시인이요 학자다.그러나 우리 문단에서 오세영은 자신의 표현대로 ‘왕따’로 통한다.이른바 ‘문지’니 ‘창비’니 하는 거대 ‘문단권력집단’과는 애초부터 인연이없기 때문이다. “이들 두 그룹이 우리 문학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인정할 만합니다.그러나 이들이 끼친 폐해는 그 공(功)을 상쇄하고도 남아요.30년 가까이 배타적인 블록을 형성,문단정치의 본산노릇을 해왔으니까요”이런 패거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 문학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그는 특히 ‘문지’의 경우 그 폐쇄성과 엘리티즘은 4세대에 걸쳐 이어져오고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오 시인은 이같은 문단의 진구렁 속에서도 자신만의 연꽃같은 시심을 피워내기 위해 분투해왔다.그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정신은 사랑.오세영 시에 있어서 사랑이란 진리를 향한 에로스적인 충동 혹은 미혹한 상태로부터 진리를찾아가는 구법(求法)의 과정이다. 그는 ‘찻잔’이란 시에서 사랑을 “비움으로써 가득 차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그 자신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그의시에서는 뭔가 그윽한 선미(禪味)가 느껴진다. 이번 공초문학상 수상작 ‘집만이 집이 아니고’가 실린 ‘벼랑의 꿈’(시와시학사)은 시인의 동양적 사유의 정점에 놓이는 시집이다. “멀리 헤르만 헤세나 T.S.엘리엇에서부터 가까이는 옥타비오 파스나 파블로 네루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들이 동양사상으로부터 문학적 영감을 얻었습니다.맑은 바람이나 밝은 달을 읊조리는 정도라면 모를까,인간존재의 근원을 다루는데 어떻게 동양사상에 기대지 않을 수있어요” 오시인은 불교와 노장(老莊)철학은 물론,우리의 무속세계까지도 자신의 시적 영토로 아우른다.문제는 심오한 인생론과 우주론적인 성찰을 어떻게 서정의 그릇에 담아내느냐 하는 것.이를 위해 그는 “모더니즘적인 언어감각과 시어를 꾸준히 가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으로 자리매김돼 있는 그는 사실 모더니즘 시인으로 출발했다.70년대 초까지는 과격한 실험시를 쓰기도 했다.처녀시집 ‘반란하는 빛’이 대표적인 예.그가 서정성의 세계로 돌아온 것은 70년대 후반들어서다.“전통적인 정서에 충실하다보니 이따금 고답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하지만 시의 본령은 서정성에 있는 것 아니겠어요” 서정주·박목월·유치환을 그가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꼽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 시인 오세영은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5년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68년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추천작 ‘잠깨는 추상(抽象)’ ▲1970년 처녀시집 ‘반란하는 빛’출간 ▲1983년 시집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로 제15회 시인협회상 수상.시론집 ‘서정적 진실’,평론집 ‘현대시와 실천비평’ 출간 ▲1985년 서울대 국문과 교수 부임.선시집 ‘모순의 흙’ 출간 ▲1986년 ‘그릇’ 연작시로 제1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1992년 ‘구룡사시편 겨울노래’로 제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한국현대문학 강의 ▲1999년 제10시집 ‘벼랑의 꿈’ 출간 ▲현 서울대 국문과 교수김종면기자 jmkim@
  • “기능중심 통합으로 큰 손해”

    이번 직제개편이 외형적 통합보다는 기능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손해본 부처가 적지 않다. 해당부처에서는 기능이 축소되면서 역할과 인력이 줄어든 데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특히 일부 부처는 ‘힘있는 부처’에 밀렸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외교통상부 해외공관 5곳과 특1급 4개,특2급 6개,1급 4개 등 모두 14개의고위 직급을 내년까지 없애기로 해 최대피해 부처중 하나. 그러나 당초안인 9개공관 폐지보다는 축소폭이 줄어들어 ‘외교의 중요성’을 호소한 효력이 있었다는 분위기.폐쇄 대상공관에 대해서는 해당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을 방침. 행정자치부 1차 정부조직개편 이후 8월에 독자적으로 2국5과 51명을 줄인행자부의 직원들은 드러내놓고 말은 않지만 “지난해 金正吉장관이 괜한 일을 해 피해를 더 보게 됐다”는 반응.직원들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 개편으로 국장자리는 사실상 4개나 줄어든다”면서 “솔선수범차원에서 줄일만큼줄였는데…”라며 “행자부가 사실상 최대의 피해자”라는 분위기. 한편 조직정책과 직원 16명은 지난해 11월 경영진단때부터 특근을 해오다직제개편 과정에서는 매일 밤샘작업을 강행.특히 김국현(金國鉉)과장은 1·2차 두차례의 조직개편을 담당한 과장으로 기록을 세우기도. 교육부 전체 인원 6%가 감축되자 교육개혁을 추진하느라 업무가 폭증했는데도 오히려 인원이 줄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감축되는 28명중 교원출신인소위 전문직이 18명에 달해 감축폭이 일반 행정직에 비해 비교적 큰 것으로나타나자 전문직출신 관료들은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농림부 1국4과를 ‘마지노선’으로 조직축소를 밀어붙였으나 2과가 더 줄어들자 침울.농림부 관계자는 “선진국은 농림부처의 기능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우리는 농림정책에 관한 행정수요가 늘어나는데도 조직을 오히려 축소해 걱정”이라고 한마디. 문화부 일부 국정공보 기능을 넘겨주는데다 본부 27명을 포함해 산하기관까지 전체인원의 10.6%인 171명이 줄어들자 “너무 많은 인원이 감축됐다”며 불만.하지만 당초 폐지대상이었던 종무실이 살아나자 “지옥문턱에 다녀왔다”며 반색. 해양수산부 항만정책국과 항만건설국이 항만국으로 합쳐지는 등 1국8과가줄어든 해양수산부의 직원들은 ‘혹시나’가 ‘역시나’로 이루어졌다며 허탈해 하는 모습. 부처종합
  • 정부조직개편 산실 1106호/행자부 조직정책과

    정부 세종로 종합청사 1106호.행정자치부 행정관리국 조직정책과 사무실이다.이곳은 최근 모든 공무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부 조직개편 작업의 산실로 말 그대로 조직개편 정책을 펴내는 곳이다. 김국현(金國鉉)과장과 2명의 여직원 등 모두 16명의 직원들이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했다.지난 7일 오후 각 부처 기획관리실장 회의에서 전달한 조직개편의 기준과 원칙에 따라 각 부처 직제 개정안을 13일까지 확정해야 하는 등 할 일이 산적해서다. 이들의 강행군은 사실상 지난해 11월 각 부처 경영진단 때부터 시작돼 6개월 동안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특히 가정의 달인 이달 들어서는 부쩍 특별근무가 많아졌다.어린이날인 지난 5일에는 오후에 출근,조직개편의 기준과 원칙 등을 검토하느라 6일 아침7시까지 꼬박 밤샘작업을 하고 곧바로 정상근무에 들어갔다.최석충(崔錫忠)행정관리국장도 12층 국장실과 이곳을 오가며 현장지휘를 하느라 밤을 꼬박새웠다.어버이날에 이어 일요일인 9일에도 다른 사무실과 달리 오후 늦게까지 특근을 해야 했다. 야근이 많다보니 저녁식사 비용도 적지 않다.급량비로 충당해야 하나 부족해 인근 식당에 외상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김과장은 “지난 3월부터 이번 어버이날엔 부모님이 계신 안동에 내려가려고 했으나 조직개편 작업이 늦어지면서 약속을 못지키게 돼 꽃과 카드를 대신 보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김과장은 문민정부 시절 조직관리과장으로서 중소기업청과 해양수산부 발족에 관여하고 지난해 정부조직개편 작업 때도 주무과장으로 일하는 등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실무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조직 메이커’다. 행자부는 11일 정부조직법이 국회에서 이송되는 대로 18일 국무회의를 거쳐21일쯤 각 부처 직제안과 함께 공포·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대전지역 중견작가 6인,갤러리 우리서 유화 전시회

    대전에 있는 갤러리 우리(대표 최영희)가 5월을 맞아 지역 중견작가들의 유화작품 12점을 선보이고 있다.지난 4월의 수채화와 판화전에 이은 것으로 대전 시민들의 예술적 정서를 담아주기 위한 시도로 마련했다. 가국현 배결주 서재흥 예병욱 정재성 한인수씨 등 대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6명의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30일까지.(042)472-1255,9505
  • 세계청소년 무용축제…러·日등 9개팀 참가

    지구촌 청소년이 각 나라의 민속춤을 교류하며 평화를 기원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99 세계 청소년 무용축제’가 5월3일부터 나흘 동안 펼쳐진다. 한국현대무용진흥회와 국립중앙극장이 주최하는 이 잔치에는 러시아 ‘자바바무용단’,일본 ‘단다바하무용단’,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댄스시어터’,중국 ‘장쑤성(江蘇省)청소년무용단’,이탈리아 ‘센트로 스투디 단차 모비멘토무용단’ 등 해외5개팀과 예원학교 발레부·한국무용부,홍익초등학교 무용반,서울 송파구 청소년 발레단 등 국내 4개팀이 참가한다. 육완순 현대무용진흥회이사장은 “1,2회때보다 민속춤이 더 늘어난 게 특징”이라며 “청소년만이 아니라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신선한 무대”라고밝힌다. 특히 5월5일엔 서울교육문화회관 우정의 광장에서 야외공연과 함께 ‘민속춤 배우기’코너를 곁들여 관객도 함께 참가할 수 있다. 청소년환자 위문공연,소년소녀가장,장애아,실직자자녀 초청 공연도 마련한다. 5월3∼5일 서울교육문화회관,6일 국립중앙극장 대극장.(02) 325-5702. 이종수기자
  • “너도 나도”여야 강연정치 봇물

    여야간 ‘강연대결’이 치열하다.여론전(戰)에서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속내다.여당쪽이 정치·경제개혁의 당위성과 국민화합에 초점을 맞추는반면 야당은 현 정권의 실정(失政)과 개혁의 오류를 부각시키고 있다. 국민회의는 조세형(趙世衡)상임고문,김근태(金槿泰)부총재,한화갑(韓和甲)총재특보단장,김원길(金元吉)총재특보 등이 개혁의 전도사로 나섰다.‘국민속으로’ 뛰어들어 개혁의 실상을 제대로 알린다는 취지다. 한특보단장은 주로 영남권에서 ‘국민화합’을 화두로 강연회를 갖는다.30일 대구 효성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학부생을 상대로 ‘정치개혁의 방향과과제’를 주제로 강연한다.내달 4일에는 ‘국민화합,무엇이 문제인가’라는제목으로 부산외국어대 경영대학원이 마련한 강연회에 참석한다. 조고문은 지난 27일 고려대 정책대학원에서 ‘국민의 정부와 4대 개혁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다. 김부총재는 한양대,전남대에 이어 30일 아주대 경영대학 학부생을 상대로“DJ개혁이 성공해야 21세기 새 패러다임을 마련할 수 있다”고강연할 계획이다.김특보는 내달 11일 제주대 행정대학원 주최 강연회를 통해 경제개혁의 성과와 방향을 진단한다.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지난 14일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초청 강연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로 현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5월에는 충북대등 1∼2곳에서 강연을 검토중이다. 이부영(李富榮)총무도 지난 27일 한양대에 이어 내달 18일 국민대 정치대학원에서 정국현안을 둘러싼 야당의 견해를 피력한다.특히 여야 3당 총무는 30일 제주에서 열리는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세미나에 참석,정치개혁을 주제로 설전(舌戰)을 벌인다. 박찬구기자 ckpark@
  • [대한광장] 동물의 왕국

    지구 곳곳에서 인종분쟁,종교분쟁이 일어나더니 살육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이제는 최첨단 무기까지 동원하여 대량 살상을 일삼는다.나름대로 핑계가있고 과학이 있어서 동물의 싸움과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동물의 약육강식의 모습과 그 성질이 다르지 않다.오히려 동물은 본능적 질서가 있지만 사람의 싸움에는 질서와 한계가 없으므로 동물보다 더 잔인하다.본능만으로 이야기하면 가장 하등동물이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작금에 회자되고 있는 코소보사태라는 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우리의 3·1운동을 본체만체하던 1918∼19년의 파리 강화회의에서 열강들이 유고슬라비아를 만들 때 잘못한 것이 지금의 저 모양이 되고 만 것이다.그때 민족자결주의에 따른다고 했지만 민족자결이 아니라 강대국 계산으로 아무렇게나 처리했던 것이다.인종과 종교와 역사가 각기 다른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세르비아·헤르체고비나·몬테네그로·코소보·마케도니아 등을 두루뭉수리 하나로 묶어 유고슬라비아라고 했다.주민의 의사는 무시되었다.티토정권 같은 강력통치기간에는 각자의 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 놓고 발칸반도는 화약고라고 했다. 지금의 사태도 주민의 사정은 외면한 결과였다.1990년 무렵인가? 보스니아사태가 터졌을 때 지금의 사태는 예상해야 했다.티토정권 같은 전체주의 속에서는,스탈린의 명분상 세계주의 강요하의 소련처럼 민족주의가 탈색되는반면,원시적 종족주의의 공속감정은 은연중에 강화되어 언젠가는 티토정권의 종말이나 소련 해체와 같은 시기를 맞으면 종족주의가 분출되게 마련인 것이다.그러한 속성을 예상해야 했다.그러한 속성을 유엔도,나토국가들도,유고슬라비아의 밀로셰비치 정권도 무시하거나 아니면 외면하였다.보스니아사태때 유엔평화군을 파견하고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혹은세계주의와 민족주의와 종족주의의 관계를 몰랐던 탓인지도 모른다.원시적종족과 역사적 생산물인 민족과는 다른 것이다. 이번 코소보사태나 나토연합군의 군사행동의 경우도 그렇다.밀로셰비치의세르비아가 코소보에대해 저지른 인종(종족)청소라는 것이 잘못된 것은 말할 여지가 없지만,종족주의가 극도에 오른 상태를 예상해야 했는데,또 사후라고 해도 나토의 공습이 종족주의적 비극을 확대할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무시하고 말았다.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80년전 유고슬라비아를 만들 때처럼 안이하게 생각한 나머지 오늘의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도 인도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거기에 나토 유럽국과 미국간에 지상군 파견을 둘러싸고 주도권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니 한심한 인도주의의 가면이 아니던가? 늦기는 했지만 코소보 난민들의 이주계획이 섰다고 하는 것은 다행이다.마케도니아 북쪽 국경선의 ‘검은 산’ 참극을 상상해 보라.난민들이 모여들고 있는 몬테네그로·알바니아·마케도니아에서는 인간이 무엇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은 기회가 됐을 것으로 안다. 사람들에게는 인도주의를 생각할 문도 열려 있지만,생물진화론을 생각할 문도 열려 있다.진화론에 빠지면 힘을 우상으로 섬기게 된다.그리하여 19세기중반이래 제국주의론이염치없이 판을 쳤다.진화론자들은 지구상에서 열등한 흑인은 멸종하고 결국에는 우등한 백인만 남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못난 사람은 죽는 것이,죽어야 하는 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그래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정복하는 것도,진화를 위하여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그러한 이치는 ‘동물의 왕국’에서는 맞는 이치이다.그 원리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병신은 죽어야 하고 또 죽여야 한다.인도주의는 없고 복지국가나 세계평화란 바보의 논리에 불과하다.진화론적 법칙에 따라 살아가면 그만이다.지금 코소보사태가 바로 그것을 말한다. 한국현대사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가? 남의 민족을 식민통치하고,6·25전쟁을 일으키고,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하던 사람이 바로 무자비한 진화론에 도취했던 사람들이다.부정선거를 통해서라도 이기고 보자는 국회의원이 바로 동물진화론자이다.그들에게 어떻게 인도주의적 복지국가의 입법을 기대할 것인가? ‘동물의 왕국’을 사칭하더라도 부디 인간적 반성을생각하는 인간이 되기를빈다.어떤 정치인은 ‘동물의 왕국’에 취한다는 말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사학
  • [김삼웅 칼럼] 대한민국 임시정부 80돌

    오늘(13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上海)에서 출범하면서 독립전쟁을 선포한지 80주년이다. “백산(白山)에 이는 바람 천지도 시름짓고 푸른파도 구비치는 곳 구룡(龜龍)이 일어나 춤을 추는구나. 어두운 이밤은 언제나 새이려나.모진 비바람만 휘몰아치는 것을….”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내고 임정에 내분이 생기자 25일간 단식끝에 목숨을 끊은 申圭植선생이 망명지에서 쓴 ‘한국혼’의 서두다. ‘모진 비바람만 휘몰아친’절망의 시대에 애국지사들이 이국땅 상하이에모여 임정을 세우고 나라찾기 전쟁을 벌인지 80성상이 흘렀다. 상하이에 임정이 세워졌다는 소식에 고국의 동포들은 노래불렀다. 자유민아 소리쳐서 만세불러라 임시정부 만세불러라 대통령 국무총리 각부처 장관 국제연맹 여러 특사 만세불러라 우리 이미 이민족의 노예 아니오 또한 전제정치하의 백성 아니라 독립국 민주정치 자유민이니 동포여 소리쳐서 만세불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세. 망국 9년만에 3·1항쟁의 뜻을 담아 임정을 세우니 ‘일제 36년’은 국권상실의 측면에서 임정이전의 9년일 뿐이다. 임정은 물론 국제법상 통치권이 미치는 국토와 국민이 있어야 하는 일반 정부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렇다고 대한제국과는 시간적 연속성이 없고 주체세력과 이념이 달라 ‘망명정부’일수는 없다. 임정은 한민족의 정신적 구심체가 되면서 향후 27년 동안 줄기차게 독립전쟁을 벌였다. 무장·의열·외교등 모든 방법을 동원한 전쟁이었다. 식민지역사상 우리 임정처럼 일체의 타협을 배격하면서 완전독립을 추구한 사례는없다. 자치론이나 위임통치론 따위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완전독립’만을추구했다. 임정의 지도자들이 왕조시대 인물들인데도 복벽(復 )을 거부하고 민주공화체제를 지향한 것은 대단히 선각적이다. 임시헌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제1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빈부 및 계급없이 일체평등으로 함”(제3조) 등 ‘헌법’정신과 조항이 민주공화제를 지향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국내외 독립운동단체 460개 중 민주공화제 국가의 건설을추구하는 민주지향형이 244개(53%)인데 비해 계급투쟁형은156개(34%), 왕정복고형은 37개(8%), 군정추구형은 23개(5%)로 나타났다. 한민족의 민주지향성을 살피게 한다. 임정은 욱일승천하는 일제로부터 탄압과 회유, 국제열강의 외면과 냉대, 극심한 생활고와 재정난, 그치지 않는 노선 시비와 사상갈등 속에서도 민주공화제의 정통성을 지키면서 항일투쟁의 구심체 역할을 맡았다.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다. 예컨대 李東輝중심의 좌파계열과 金元鳳중심의 의열단세력까지 포용, 거국적 항일투쟁 전선을 형성한 것은 임정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뒷받침한다. ‘한국독립’의 계기가 된 카이로선언이 가능한 것은 임정의 존재때문이다. 尹奉吉·李奉昌의사의 의열투쟁과 항일전선에 몸을 사른 지사들의 희생이중국을 움직이고 중국정부가 미·영 수뇌를 움직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한 것이다. 임정의 최대 성과라 할 것이다. 해방후 국민사이에 이런 노래가 불려졌다. “따따따 따따따 나팔소리 들린다/쿵 쿵 쿵 북소리 들린다/남대문을 열어라 동대문을 열어라/임시정부 들어온다 광복군이 들어온다.” 그러나 임정은 귀환하지 못했다. 임정의 귀국이 거부되면서 한국현대사는이념대결과 친일파가 득세하는 분단과 왜곡의 시대가 되었다. 임정수립 80주년, 해방 54년이 되는 20세기 마지막 임정 기념일에 독립지사들의 순결한 애국정신이 그립다. 남북이 갈리고 지역을 토막쳐서 이념과 이해로 대립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애국지사들의 영령앞에 부끄러워하면서, 임정정신이 국민통합과 환난극복, 남북화해의 바탕이 되었으면 한다.
  • 한나라 李총재 예산 先塋 방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휴일인 11일 충남 예산군 상구마을에 있는선영을 찾았다.지난 1월 10일 이후 3개월 만이다. 이총재는 먼저 조부모 산소에서 간단하게 차례를 지낸 뒤 선영을 둘러보았다.이총재는 최근 쇠말뚝이 발견된 5,7대조 할아버지 산소에 각별한 관심을보였다.이총재는 쇠말뚝을 파낸 흔적이 흉물스럽게 남아있자 친지들에게 “여기를 팠느냐” “얼마나 팠느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친지 한명이 지난 7일 뽑아낸 쇠말뚝을 보여주자 “주술을 믿는 건 아니지만 후손 때문에 선조께 폐를 끼쳐 죄송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이총재는또 “선영 앞으로 길이 난다고 하던데 언제 결정된 것이냐”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이총재는 한참동안 쇠말뚝을 뽑아낸 자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다독거렸다. 성묘를 마친 이총재는 인근 한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친지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이총재는 이 자리에서 “청명에 성묘를 못해 한 주 늦춰 오늘왔다”고 설명했다.쇠말뚝과 관련해서는 “후손이 부덕(不德)해 생긴 일이라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는데 어쨌든 친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 송구한 생각이 든다”고 머리를 숙였다. 선영 입구에는 ‘이회창총재님의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100여명의 친지들이 이총재를 맞았다.이번 방문에는 양정규(梁正圭)부총재,이부영(李富榮)총무,하순봉(河舜鳳)비서실장,맹형규(孟亨奎) 조진형(趙鎭衡)의원 등이 동행했다. 앞서 이총재는 10일 오후 서울 근교 I골프장에서 미국 보스워스대사,유흥수(柳興洙) 조웅규(曺雄奎)의원과 골프를 치며 대북정책 등 정국현안을 논의했다. 예산 박준석기자 pjs@
  • 전북 원로화백 하반영씨, 80여점 2억 상당 선뜻

    80대 원로 화가가 결식아동과 생활이 어려운 국가유공자들을 위해 수억원대의 미술작품을 잇따라 내놓아 화제다. 전북 화단의 원로 하반영(河畔影·82·익산시 동산동 세경아파트)화백은 최근 상이군경회원 등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의 그림 80여점을 상이군경회 등 익산지역 보훈단체에 내놓았다.그의 작품은 호당 평균 50만원씩 유통돼 기증작품은 시가 2억원대에 이른다. 그가 이번에 그림을 기증한 이유는 이 지역 보훈단체들이 시로부터 옛 신동사무소 청사를 보훈회관으로 사용하도록 허락받고도 건물 내부 보수작업을할 돈이 없어 입주조차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상이군경회 익산시지회(회장 卓敬律) 등 이 지역 3개 보훈단체들은 이에 따라 보훈회관 입주에 맞춰 오는 29일부터 한달 동안 보훈회관 건물에서 ‘국가유공자 돕기 하반영 화백 작품전시회’를 열 계획이다.국가유공자도 돕고미술 애호가들에게 값싸게 그림도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시중보다 60∼70% 싼 값에 그림을 판다. 그는 지난해 말에도 결식 어린이를 돕기 위해 작품 50점을 기증한 바 있다. 하화백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북미술대전과 한국현대미술대상전 심사위원을 맡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 YS, 6일 부산·마산 방문

    金泳三전대통령이 오는 6일 부인 孫命順여사와 함께 고향인 거제군 장목면외포리 선영을 찾아 성묘한 뒤 마산과 부산을 잇따라 방문할 계획이다.金전대통령의 부산·경남지역 방문은 퇴임 이후 처음이다. 金전대통령의 측근인 한나라당 朴鍾雄의원은 1일 “주로 동창과 친지를 만날 계획이며 정치적 행사는 갖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金전대통령은 이날 상도동 자택으로 金光一·金瑢泰전비서실장과 趙洪來전정무·文鐘洙전민정·李永來전행정·金正男전정책·愼右宰전공보·劉度在전총무수석 등 재임시절 수석비서진을 초청,만찬을 함께하며 정국현안 등을 논의했다. 박찬구
  • ‘제2공화국과 張勉’ 연재

    대한매일이 현대사 조명작업의 하나로 2월23일부터 ‘제2공화국과 張勉’을연재하고 있습니다.“제2공화국은 ‘어둠의 한국현대사’ 속에서 빛나는 작은 보석이다”라고 어느 정치학자가 표현한 것처럼 장면정부는 민주주의의이상을 실현하고자 애썼습니다.당시 국민은 역사상 가장 많은 자유를 누렸고 의회·언론도 어느 때보다 활발했습니다.그러나 이 정부를 8개월여 만에 무력으로 넘어뜨린 군사정권과 이를 뒤이은 권위주의정권은 제2공화국을 ‘무능하고도 부패한 정권’이라고 폄하했습니다. 대한매일은 이제 제2공화국의 실상은 어떠했으며 우리 민주주의 발전사에어떤 공과를 남겼는지,현 시점에서 되새겨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집중적인탐구에 나섰습니다.오늘은 2회분을 6면에 게재합니다.관련 자료를 제공하거나 증언해주실 분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전화(02)721-5252,팩스 (02)721-5266.
  • [화제의 책] 백범 김구 연구I

    백범 김구선생의 정치활동을 집중 연구한 ‘백범 김구 연구Ⅰ-정치활동과정치이념’이 최근 신지서원에서 출간됐다.부산 동의대 정경환(鄭京煥) 교수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수정·보완,신지서원의 기획물 ‘한국인물총서’의 첫 권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 김구’보다는 ‘정치인 김구’에 초점을 맞춰 구한말부터 해방정국까지의 전과정에 걸쳐 백범의 정치역정(歷程)을 분석하고 있다. 백범은 임시정부수립과 한국광복군 창설에 주도적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광복군 조직·활동을 둘러싸고 중국 국민당정부와 외교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중일전쟁 이후 백범은 중국측과 한중동맹군을 조직,일제를 타도해야한다는이른바 ‘한중연합론(韓中聯合論)’을 펴기도 했는데 당시 중국측 자료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방공간과 남북분단 과정에서 ‘정치인 김구’의 역할은 시대적 사명이었다. 친일파 처리·토지개혁·신탁통치·좌우합작운동 등 당시의 시국현안에 대한 백범의 인식·대응전략을 당시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것이 돋보인다. 백범의 정치이념을 ▒민족주의론 ▒민주주의론 ▒경제평등론 ▒문화국가론등 크게 네 갈래로 나누고 있는 저자는 “백범은 소년기부터 조선조 사회의신분계급구조와 인간불평등에 강한 의문을 가졌던 인물”이라며 “정치활동전 과정에서 그는 독재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정치를 신봉한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저자는 6월초 후속작업으로 ‘백범 김구 연구Ⅱ-정치사상의 재조명’을 출간할 계획이다.
  • 金三雄 칼럼-장면박사 출생100년

    “자기의 명성이 자기의 진실보다 더 빛나지 않는 자는 축복이다”―인도시인 타고르의 말을 올해 출생 100주년을 맞는 제2공화국 張勉총리에게 드리는 헌사로 삼으면 어떨까. 격동의 현대사에서 장면박사처럼 잘못 평가된 정치지도자도 흔치 않다. 그가 이끈 야당과 시민 학생에 의해 타도된 독재자나 합법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한 군사독재자가 ‘존경받는 인물’의 상위를 차지하는 반면 인격적이고도덕적인 품성과 자질로써 ‘단군 이래의 자유’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동시적으로 추진하다 좌절한 민주지도자는 망각되고 있다. 이것은 5·16이래 거듭된 군사쿠데타와 그 아류 정권에 의한 ‘승자의 기록’의 결과이지만, 진실을 탐구하고 가르치는 학자·교사·언론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4월 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장면정권은, 프랑스대혁명이 입헌군주주의자와 시민계급, 온건파와 과격파싸움으로 나폴레옹쿠데타를 불러오고,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운’사회를 구현한다면서 극좌·극우싸움의 혼돈끝에 히틀러 나치스를 맞았듯이, 집권8개월만에 박정희쿠데타로 붕괴되었다. [인간 장면의 인품] 역사상 대부분의 시민혁명이나 개혁이 쿠데타나 반동세력에 의해 좌절된 것처럼 장면정권 역시 5·16쿠데타를 겪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그는 무능과부패의 상징으로 낙인찍혔으며, 독재자들이 역사인물로 격상되는 가치전도현상이 나타났다. 우리 현대사나 국민정신면에서 대단히 부끄러운 모습이다. 장면박사는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으로 평가된다. 한없이 온후하고 어진 분으로서 인자하면서도 강직하며 사려깊은 분이었다. 외유내강의 독실한신앙인이고 지식인이었다. 그는 ‘각하’의 호칭보다 ‘장박사’로 불리기를 원했으며 집권 8개월 동안‘단군 이래의 자유’로 불릴만큼 민주주의를 허용했다. 물론 무질서와 정치사회적 혼란이 따르기도 했지만 오랜 억압구조에서 시달리던 국민에게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반민주행위자와 부정축재자의 처단등 4·19혁명과업을 수행하는 데 너무 미온적이었다는 비판도 따른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정권으로서의 시대적 한계와, 민주정치 제도에서 가장 운영이 어렵고 높은 민도와 양식있는 국회의원들을 전제로 하는 의원내각제에 발이 묶여서 과단성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제도적 한계도 따랐다. 여기에 야당의 사사건건 발목잡기와 이상주의적 조급성에 기운 혁신계와 일부 지식인·학생들의 급진적 통일론도 장면정권 좌절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재평가와 교훈찾아야] 장면은 비록 군인들에게 탈권당한 비운의 정치인이지만 그가 한국현대사에남긴 족적은 너무 크다. 무엇보다 제3차 유엔총회 한국수석대표로서 대한민국정부가 한반도 합법정부로 유엔의 승인을 받는데 기여한 일이다. 또 6·25전란 당시 주미대사로서 유엔군 참전을 위해 발휘한 역량도 큰 업적이다. 특히 민주당을 결성하여 이승만정권으로부터 암살 저격까지 받으면서 끝까지 반독재투쟁을 벌인 것이나, 집권기 혼란속에서도 일관되게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경제개발계획을 착실히 마련한 것등은 큰 업적이다. 그러나 교과서적 민주주의나 미온적인 시국 대처는 프랑스혁명기와 독일 바이마르공화정 시기처럼 반동세력에게 기회를 주게 되고 결국 역사를 후퇴시킨 행위로서오늘의 김대중정부에도 교훈으로 남는다. 곧 시작될 대한매일의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는 장면박사의 재평가를 통해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잡고 제2공화국 좌절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자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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