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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일투쟁 본거지(연변 조선족 1백년:12)

    ◎독립군 사기 높인 봉오동­청산리 전투/삼둔자 첫교전 대승… 독립운동 본격화 계기로 연변이라는 곳이 독립운동의 산실이었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이중에 한국독립군전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세곳 있는데 삼둔자전투,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가 그것이다.이 3개지역은 우리의 피를 말리던 당시의 일본측으로 보면 몹시도 상처 받은 아픈 상흔으로 남을 것이고,우리 입장으로서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고 울부짖음이었다. ○한인이 개척한 신천지 당시 한국이주정착민들의 거주지역은 크게 서간도와 북간도로 나누는데 서간도는 백두산서남과 압록강대안의 남만주를 일컬으며 북간도는 서간도를 제외한 나머지지역을 말한다.이밖에 두만강 하류에서 우수리강 동쪽의 러시아땅에도 이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이곳을 연해주라고 불렀다.해도간이란 연해주의 「해」와 간도의 「도」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이를테면 한국이주민들이 구한말 이래 새로 개척한 신천지를 총칭하는 말이다. 삼둔자는 현재 연변 제2의 도시인 도문시 월청향 간평이란 마을이다.이지역 일대가 산악이며 일본수비대의 눈을 피해 국내로 잠입할 중요거점으로 알려진 곳이다.삼둔자사건의 전말은 이렇다.1920년6월4일 새벽이었다.30여명의 독립군이 국내로 진입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종성 북방 2㎞지점의 강양동으로 진격하여 일본헌병 후쿠가와 조장이 인솔하는 헌병순찰소대를 격파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귀환하는 임무였다.이날도 여느 때처럼 성공리에 무사 귀환했다. 그러나 왜군은 참패의 복수를 위해 니이미중위로 하여금 남양수비대 병력 1개중대와 헌병경찰중대를 인솔하게 하여 독립군을 추격하게 하였다.낌새를 챈 독립군은 요소에 잠복하고 있었다.삼둔자에 이르러 뜻을 이루지 못한 일본군은 억울한 양민만 대량 학살하고 퇴각하는 길이었다.이 때 놓칠세라 독립군이 일시에 습격하여 섬멸시켰다.소수의 병력으로 왜군을 섬멸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곳 지형에 익숙한 독립군이 협곡으로 왜군을 몰아 일시에 포위하여 공격한 탓이었다.이 사건은 일본군이 강을 건너 중국땅에서 독립군과 싸운 처음 기록이 되었으며다음 봉오동승첩의 서전이 되었다. 1920년 6월7일 봉오동승첩의 전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두만강 국경수비대는 국내 진입작전의 독립군 본영이 있는 봉오동을 일격에 섬멸하여 그 기능을 봉쇄하려고 공격부대를 편성했다.결국 야스카와 소좌는 보병2개중대,기관총소대,헌병경찰대를 합친 혼성대대로 편성했다.그리고 며칠전 삼둔자에서 패전한 니이미 중대가 가세하여 신예무기로 무장한 전투대대병력으로 공격이 시작되었다.새벽3시가 지나 해란강이 두만강과 합류하는 온성 하탄동 부근에서 두만강을 건너 봉오동을 향해 진격해 온 것이다. 봉오동은 사면이 야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길쭉한 삿갓을 뒤집어 놓은 지형의 요새라 할 수 있다.남쪽 입구로부터 북쪽까지는 25리가 넘는 골짜기로 되어 있고 두 세곳의 한국인 이주민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한편 봉오동 독립군을 지휘하던 사령관은 홍범도였으며 왜군을 대치한 아군작전은 치밀했다.마을 주민들은 모두 대피시켰고 사령관이 직접 지휘하는 2개중대는 서산남단에 자리잡고 그밖의 중대들은 사방으로 매복시켰다. ○홍범도장군 맹활약 아침8시가 지나 일본군은 봉오동 초입에 당도했다.마을을 습격하면서 미처 피하지 못한 노약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점차 깊이 수색해 들어온 일본군은 독립군이 매복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도주한 줄만 알았다.때가 왔을 때 홍범도사령관의 신호로 삼면으로부터 일제히 공격이 시작되었다.일본군은 결사 반격을 했으나 워낙 갑자기 당한 습격이라 수습할 길이 없었다.결국 패퇴하고 말았다.이 전투의 개선은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조금은 위로해 주었다.그리고 중국조선족의 정신적 힘이 되어 주었다. ○위군 1천2백명 궤멸 청산리대첩은 1920년10월 김좌진·나중소·이범석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합세한 독립군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로 진격한 일본군을 맞아 청산리일대에서 싸워 일본군을 대파시킨 것을 말한다.청산리 계곡은 동서로 약25㎞나 되며 교통이 거의 불가능한 지세였다.10월21일 상오9시경 야스카와가 이끄는 추격대가 이곳에 당도했을 때 이범석의 지휘로 매복해 있던 독립군이 일제히 엄습하여 전멸시켰다. 이어 야마타가 이끄는 본대가 당도했지만 아군에게 유리한 지형과 매복작전에 속수무책,2백여명의 일본군이 사살되고 패퇴했다.한편 홍범도부대는 완루구에서 일본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끝에 4백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피해를 입혔다.22일에는 김좌진부대가 마을주민의 제보를 받아 어랑촌에 주둔하고 있던 기병대를 습격했다.청산리전투는 10월21일부터 시작되어 26일까지 약10여회 전투를 한 끝에 일본군 1천2백여명을 사살한데 비해 독립군은 1백여명이 전사했을 뿐이었다. 삼둔자전투는 일본군이 중국땅에서 독립군과 최초로 싸운 기록이 되었으며 봉오동전투는 독립군의 주력부대를 파멸시키려는 일본군의 복수전이었으나 결국 패퇴했고 청산리전투는 규모면에서는 가장 큰 전투였다.군인의 수나 무기의 수등 병력이 약세임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것은 유리한 지형과 치밀한 전략 때문이라는 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조국 독립을 위한 정신력 때문이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 김 대통령 67회 생일/축하행사·선물 사절… 평상 집무

    김영삼대통령은 4일 67회 생일을 맞아 평상시와 다름 없는 하루를 보냈다.축하의 뜻이 담긴 난이나 선물은 모두 사절됐다.전래의 풍속인 아침 미역국조차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준비되지 않았으며 평소 식사하던 대로 간단하게 인절미와 된장국,그리고 과일만 들었다. 다만 부인 손명순여사와 누이,아들 내외및 손자손녀등 가족들과 조촐하게 생일케이크를 잘랐다는 점이 달랐다.이어 청와대 본관에서 한승수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들로부터 간단한 생일축하인사를 받았던 점도 달랐다면 다른 점이다.이날 낮 3부요인등이 참석한 청와대오찬은 신년맞이 공식행사일 뿐 생일과는 무관한 일정이었다. 김대통령은 음력으로 27년 12월 4일생.김홍조옹과 박부연여사(작고)사이의 1남5녀 가운데 외아들로 태어났다.호적과 인명록에는 27년 12월 20일생으로 기록돼 있어 외국원수들이 생일축하 전문을 이날 보내오는 일이 더러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도 새벽 5시에 기상해 한실장과 김광석경호실장및 평소의 조깅멤버들과 함께 1시간가량 청와대 경내를 뛰었다. 청와대쪽에서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일체의 하례나 선물을 사양함에 따라 이기택민주당대표나 전직대통령등은 난 대신 축하메시지만 보내왔다.김홍조옹도 평상시대로 아침일찍 대통령의 문안전화를 받고는 전화로만 생일을 축하했다.
  • 조폐공사사장 오세민

    정부는 30일 한국조폐공사 사장에 오세민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즐겨 부른 노래(연변 조선족 1백년:11)

    ◎구성진 민요가락에 고달픈 삶 절절이/1914년께 찬송가 보급… 항일가사 붙여 불러/해방이후 대중가요 첫선… 지금은 노래방서 모국가요 판쳐 중국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말을 해왔다.「조선사람 사는 마을엔 논밭이 있고,벼농사 하는 곳엔 조선사람이 있다」고….조선사람은 황무지도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다.밭을 논으로 바꿔 벼농사를 지으니 중국인이 보기에는 영농엔 도가 튼 조선인이라고 감탄하여 마지 않았을 것이다.19세기초,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에 살던 우리 민족은 봄만 되면 강을 건너 중국땅에서 황무지를 일궈 가꾸었다.그리고 가을이 되면 알곡을 잔뜩 지고 다시 강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이 무렵 중국땅에서 피땀 흘려가며 개간하던 우리 농민들 사이에선 이런 민요가 불려졌다. 「월편이 나붓기는 갈잎대 가지는/애타는 내가슴을 불러야 보건만/이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이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신세타령 농요 많아 이름하여 「월강곡」이다.아마도 현행법으로는 월강이 불법인 줄은 알면서도 그곳에 가서 농사를 지어오는 농민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것 같다.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주민들은 국경 의식이 적었던 모양이다.그도 그럴것이 예로부터 강 북쪽이 어디 외국영토였던가.한때는 우리의 삶터였기도 했고,선조들이 묻힌 땅이었다.현실이 어찌 그들의 의식을 제재할 수 있었겠는가. 이 무렵 중국땅으로 건너가 개간하던 빈농들이 부른 민요는 거의 삶의 몸부림이었다.노동을 할 때 일의 능률을 위한 민요도 있고 신세타령도 있다. 농사꾼이 있는 곳엔 대장장이가 없을 수 없다.대장장이는 농사꾼을 따라다니며 농기구를 고치거나 만들어주며 목숨을 유지한다.그러나 이것도 만만치는 않다.천하디 천한 직업으로 대장장이에게 시집올 처녀가 없다. 「대장일 십년에/망치깨만 남겼네/후렴 어깨넘어 실포장도/네 날 살려주렴아/후렴 누덕저고리 진자지고름/나를 살려주렴아/후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난한 농민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월강하여 그곳에 정착을 했다.그리하여 조선족 마을을 형성했다.뒤따라 자리 잡은 것이 천주교와 기독교였다. ○우리말 찬송가 나와 중국조선족이 민요 다음으로 맞이한 노래가 신식학교 창가과에서 부른 찬송가였다.1914년이래 기독교,천주교 계통에서 간도일대에 많은 학교를 세웠다.용정에 「명신여자학교」와 「은진중학교」 「해성학교」등이 생겼다.그러나 조선인 신식학교로는 1906년에 이상설선생이 세운 서전의숙이 처음이다.1892년 한글로 번역된 찬송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한자발음으로 불렀다.예를들면 「예수 사랑하심」을 「주 예수 아이워」와 같은 경우다. 이렇게 창가는 찬송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보급되면서 찬송가 곡조에 새 가사를 바꾸어 넣어 부르는 일이 많았다.그리고 나서 찬송가와 비슷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특히 지적할 것은 중국조선족이 세운 사립학교 창가과에서의 반일사상을 담은 새창가 개발이었다.예컨대 당시 집안현의 광성학교에서 사용한 창가교재에는 「모험맹진가」 「운동가」등이 있었고 통화현의 배달학교 창가교재에는 「학도가」 「세계이주가」 「부모의 은덕」등이 있었다.전체적으로봐서 두 주류의 의도가 있었으니 하나는 반일사상을 고취시키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지식을 고취시키자는 것이었다. 용정은 나라 잃은 민족의 항일구국독립운동의 산실이자 중국조선족의 교육의 중심지였다.그러다보니 일본도 이곳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용정에 일본영사관을 세우고 겉으로는 중국조선인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탄압했다.1930년대로 접어들자 독립군의 조직과 활동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이 무렵 이정호가 만든 조선의용군행진곡이 불려졌다. ○작곡 정율성씨 유명 중국조선족 사회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중에 정율성(1918∼1976)이 있다.그는 40년 동안에 3백60여곡을 남겼으며 장르도 다양하여 가요·행진곡·아동요·합창곡 등으로 분류된다.1936년 중국의 남경에서 개최된 「5월문예사」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처녀작 「5월의 노래」로 데뷔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연변에도 「우리의 향토」「여성행진곡」「아침은 빛나라」등 해방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대중가요가 나왔다.이어서 「토지 얻은 기쁨」「농민의 노래」「새아리랑」등 토지개혁으로 농민들이 소작생활을 청산하는 기쁨을 노래하는 가요들이 나왔다.그리고는 한국동란으로 인해 북한에 동조하여 한국으로 진격하자는 내용의 가요들도 나왔다.그러나 1966년부터의 10년간은 문화혁명시기로 대수난기를 맞는다.대비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음악부분이 당하는 과녁은 민족전통예술분야였다.중국조선족의 예술활동이 비판을 받으면서 고난의 10년이 흘렀다.그리고 다시 원상을 회복했다. 연변을 처음 찾은 것은 1990년 7월이었는데 이 무렵은 이미 한국의 관광객이 붐비던 시기였다.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대중가요 테이프를 틀어가며 감상하고 있었다.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내게 「사랑의 종말」을 부르라고 강요받아서 모두 합창한 경험이 있다.지금은 노래방이 성시를 이루어 그 시절은 벌써 옛날이 되었다.
  • 서울강남 등 6곳 세무 국조/내년 1월11일∼25일 실시

    ◎내무위 확정/회계사등 포함 3개팀 구성 국회 내무위는 22일 새해 1월10일부터 보름동안 실시하기로 한 지방세비리에 대한 국정조사대상지역으로 서울 강남·송파구청,인천 남동구청,성남시 분당구청,군포시청,용인군청등 6개 행정기관을 정했다. 내무위의 민자당 간사인 황윤기의원과 민주당 간사인 정균환의원은 이날 접촉에서 이같이 합의하고 증인및 참고인은 조사대상기관의 기관장과 세금담당 직원,감사관등에 국한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주당측은 인천 북구청과 부천시에서 세금비리사건으로 구속된 공무원과 법무사등 26명을 증인·참고인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논란을 벌였다. 내무위는 조사팀을 3개반으로 구성하고 각반에 회계사및 세무사를 1∼2명씩 지원받기로 했다. 여야는 이날 이같은 내용의 국정조사계획서를 확정했으나 민주당은 본격적인 조사단계에서 기간연장과 대상확대를 요구하겠다는 뜻을 내비춰 적지 않은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 유해 송환·영공 개방/북 「마음의 문」도 열까

    ◎유해송환 하던 날/「자유의집」에 돌아온 차가운 목관/시신인수 15분만에 끝… 미8군 이송/리처드슨의원,생존자 “곧 송환” 강조 22일 상오 판문점에서 있은 사망한 미군헬기의 조종사 데이비드 하일먼준위의 유해송환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15분여만에 완료. ○…하일먼준위의 유해는 계획에 따라 이날 상오 10시쯤 판문점 군사정전위 회담장 건물 사이에 시멘트로 설치된 군사분계선을 넘어 주한미군측에 인도. 이날 상오 9시40분쯤 모습을 드러낸 북한측은 하일먼준위의 유해가 안치된 관과 유류품이 담긴 비닐가방 1개를 흰색 승합차에 실어 분계선 바로 앞 북측지역까지 옮겨놓고 대기. 한미연합사측은 15분쯤 지난 상오 9시55분쯤 정전위 일직장교와 중립국 감독위 관계자들을 분계선 바로 앞에 양쪽으로 나란히 도열토록 해 유해송환에 따른 의전을 준비. 이어 평양방문을 마치고 판문점 북측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미 하원 리처드슨의원은 북측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눈뒤 곧바로 분계선을 넘어 남측지역으로 걸어와 유엔사 정전위 비서장 슈메이커대령과 악수. 슈메이커대령은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측 인민군판문점대표부 부대표 박임수대좌(대령)와 송환절차를 최종 협의. ○…유엔사측은 상오 10시 리처드슨의원과 슈메이커대령등 유엔관계자를 북측으로 보내 북한군 2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신을 확인. 슈메이커대령등 관계자들은 3분여동안 관뚜껑을 열고 시신을 사진으로 촬영. 시신확인 절차가 끝나자 북한측은 상오 10시5분쯤 북한군 사병 6명에게 길이 2m의 갈색관을 들려 분계선 앞까지 걸어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유엔측 운구의장대에 전달. 운구의장대는 관을 들고 도열해 있던 정전위대표등의 경례 속에서 10여m쯤 걸어 「자유의 집」팔각정 앞에 도착. 북한측은 뒤이어 유류품을 인도했으며 유엔군측은 관과 유류품위에 유엔기를 덮고 3분여동안 목사의 집례에 따라 하일먼준위의 명복을 기원. 하일먼준위의 관은 간단한 의전절차가 마무리되자 차에 실려 서울 미8군본부로 이동. ○…송환절차가 끝난뒤 팔각정 옆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한 리처드슨의원은 상오 10시25분쯤 팔각정 앞계단으로 나와 내외신보도진을 위해 3분여동안 방북기간중의 활동에 대해 발표. 리처드슨의원은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어렵고 힘든 협상이었다』면서 『오늘 유해를 인도받는 것은 협상의 최선의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 리처드슨의원은 이어 『홀준위도 곧(very soon)송환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곧」이라는 표현을 거듭해 주내 송환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 리처드슨의원은 통역없이 영어로 일방적으로 말하고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탑승. ○…이날 송환식에는 내외신기자 50여명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으나 북측에서는 기자완장을 단 4∼5명만이 나타나 대조. 유엔군측은 취재경쟁을 의식한듯 『엄숙한 자리이니 뛰거나 부딪치는등 행동을 자제해달라』면서 『이를 어길 경우 강제 퇴장시킬 것』이라고 엄포. ○…북한은 22일 판문점에서 지난 17일 북한지역에 추락,사망한 미군 헬기조종사의 시신을 미군측에 인도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이날 보도. 미군측은 판문점 북측지역에 들어가 사망한 조종사 하일먼준위의 시신과유품을 확인,확인서에 서명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하늘의 문」 왜 여나/개방의지 과시… 실제취항 “산넘어 산”/“서울∼북경 항로개설 대응 차원”분석도 22일 북한이 영공을 전면 개방하기로 한 것은 북한핵문제 타결 이후 급속도로 진행되는 한반도의 탈냉전기류 속에서 고립감을 탈피,개방의지를 내비침으로써 그들의 경제회생을 도모하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특히 국제사회에서의 영공개방은 국가간 국교정상화의 전단계로 간주되고 있는데 북한이 이를 계기로 대외개방의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우리의 경우 구소련과 수교직전 양국간의 「양해각서」에 따라 상호간의 여객기가 먼저 취항한 전례가 있다. 이러한 평가와는 달리 일각에서는 이날부터 서울∼북경간 항로가 개설,북경∼서울∼도쿄노선이 뚫린데 대한 북한측의 단순한 대응조치의 하나라고 보고 있다.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지난 80년부터 일본과 중국간 직항로문제를 협의하면서 북경∼서울∼도쿄,북경∼평양∼도쿄항로의 동시개설을 추진해왔으나 북한측이 북한상공통과 만을 주장,일­중간 한반도통과비행이 이뤄지지 못해왔다.그러나 이날 서울∼북경간이 먼저 개설되자 북한은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됐고 이러한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공개방을 천명한 것이 아니냐 하는 분석이다. 북한측의 영공 개방은 구체적으로 국제항로통과협정(IASTA)에 가입한다는 것을 말한다.협정가입국은 민간여객기에 대해 무착륙 영공횡단비행을 보장하거나 보장받을 수 있으며 운수목적이 아닌 급유,정비등 기술적인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이 협정은 다른 체약국에 대해 영공을 개방한다는 선언적인 의미여서 실제로 북한측 영공을 통과하거나 「기술착륙」을 하려면 북한과 별도로 쌍무적인 항공협정을 체결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북한측이 IASTA에 가입하더라도 실제로 북한영공을 통과하거나 항공협정을 맺어 북한에 취항하려는 국제항공사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현재 북한 고려항공의 국제선은 북경·모스크바·하바로프스크·소피아노선이 전부이며 동유럽 일부 국가와 중동,아프리카지역은 부정기항로로 거의 운항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더욱이 북한의 국제공항시설및 규모,관제능력등을 감안하면 북한이 영공을 개방하더라도 다수 국가들은 북경∼평양∼도쿄항로 보다는 북경∼서울∼도쿄노선을 선호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지난 92년부터 항공노선개설 관심을 집중시켜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지난 92년 1월 북한은 일본과의 항공협정에서 평양과 나고야,니가타와 평양간 연80회까지의 전세기노선을 취항시키는 데 합의했으며 이어 8월에는 태국의 방콕과 정기항로개설을 성사시켰다.올해에는 독일,네덜란드등 유럽지역에 관심을 기울이며 관계정상화문제와 함께 항공협정을 추진중에 있다. 이러한 추세에서 본다면 북한도 개방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고육지책에서 영공개방노선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북한측이 영공개방에 실천적 의지를 가졌다면 지난 92년 북한과 합의한 통행교류협정에 따라 김포∼순안간 직항로개설,북한영공을 이용한 우리 여객기의 하바로프스크등 극동진출도 본격 논의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한편 북한은 현재 유일한 민항인 고려항공이 주기종 29대와 보조기종 35대등 모두 64대의 민항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입장/생존자 송환·「연락소」연계/“유해 송환 환영·헬기 격추는 부당” 북한이 미군 헬기조종사의 유해를 22일 송환한데 대해 미국은 「인도적 조치」로 환영하면서 생존 조종사의 송환도 성탄절 이전에 이뤼지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같은 입장 표시는 디 디 마이어스 백악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북한에 대해 비교적 유화적 분위기를 깔고 있다.그러나 미국의 또하나의 분명한 입장은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의 『북한의 헬기격추는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 속에서 찾을 수 있다.페리 장관은 또 생존 조종사의 송환은 곧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무부의 마이크 매커리 대변인은 생존 조종사의 송환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유익한」 논의를 해왔다고 밝히고 북한측은 보비 홀 준위에 대한 북한군의 조사가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나 국무부의 공식입장은 하루전인 20일에 비해 상당히 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크리스토퍼 국무장관만 해도 조종사의 송환이 곧바로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의 북­미 관계증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었다.이는 이번 헬기조종사의 조속한 송환과 내년 봄 북­미간의 연락사무소 개설 등과 연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비록 유해만의 송환이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매커리대변인은 이번 비극적인 헬기사건과 북­미 핵합의 이행과는 어떤 연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해 조종사 송환 문제가 곧 해결될 수 있는 마당에 굳이 북한의 감정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북한문제에 관한 한 클린턴 행정부내 매파에 해당하는 페리 장관은 『조종사가 실수를 했을 것으로 믿으며 또한 여러가지 이유에서 그같은 실수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그러나 그같은 사실이 격추를 정당화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이같은 견해 표명은생존한 홀 준위가 송환되면 미국 나름대로 조사를 편뒤 북한이 정말 격추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는가를 정밀 분석할 방침임을 보여준다.북한이 사과를 요구한다 해도 우선 이같은 확인·분석작업이 있은 뒤 그때 가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북 속셈/선유해·후생존자 「송환 카드」 구사/대미관계개선 가속 노려 『현재 북한에 억류중인 미헬기 생존 조종사 홀준위는 극진한 환대를 받고 있을 것이다』 북측이 22일 리처드슨 미하원의원을 통해 사망한 하일먼준위의 사체를 미군측에 인도한 직후 한 정부관계자의 단정적 추측이었다.이같은 언급은 북측이 적절한 시점을 골라 생존 승무원을 미군측에 되돌려 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부측이 북한이 어번 미군헬기 북한영역내 불시창 사건을 대미 관계개선 촉진용으로 최대한 이용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대목이다. 이는 북한과 미국이 21일 하오 전격적으로 열린 「장성급회담」에서 「선사체인도,후생존자송환협상」에 합의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북한의 입장에선 이같은 「카드 세분화」전략으로 북­미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지렛대를 확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북한으로선 일단 세체부터 인도함으로써 미국조야의 대북여론 악화를 막을 수 있게 됐다.동시에 생존자 송환카드로 미국과 줄다리기를 계속할 수 있게 되어 북한으로선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형국인 셈이다. 당장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각종 경제규제 완화조치를 절실히 바라고 있으며 대체에너지 1차분도 받아야 할 형편이다.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자들은 50억달러 이상을 목표로 하는 대일 배상금도 대미 관계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때문에 북한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적절한 시점에서 스스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우연히 영공내에 날아든 미군헬기야말로 북한으로선 처음부터 대미 관계개선 촉진을 위한 더 없는 호재였을 뿐이라는 게 통일원등 정부당국의 기본시각인 셈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북한은 그들이 인질로 잡고 있는 홀준위의 입을 활용해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과시할 여지도 크다.북한이 지난 68년 납치한 미항공모함 푸에블로호 승무원과는 달리 홀준위를 적절히 예우하고 있다는 첩보에 근거한 분석이다. 북한측이 홀준위를 빠르면 오는 25일 성탄절 이전에 미군측에 되돌려 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두가지 대내외적인 부수적인 효과까지 겨냥했다.우선 대내적으로는 미군헬기의 불시착을 굳이 영공침입에 대한 「격추」라고 주장한 대목이다.고의적인 긴장고조를 통해 주민결속을 도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답습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둘째,이번 사건을 유엔사와 정전위 무력화에 철저히 활용했다는 점도 음미할 만하다.북측은 한국군이 참여하는 비서장회의 등을 철저히 배제한 채 「장성급회담」이라는 대미 직거래 채널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같은 전후사정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은 체제결속 및 대미 관계개선이라는 다소 상충되는 목표가 접점을 이루는 시점에서 헬기사건을 둘러싼 미국과으 줄다리기를 끝낼 것으로 보인다.
  • 백두산의 전설(연변 조선족 1백년:10)

    ◎설화·민담 2백가지 지금도 구전/“천지는 하늘이 내린 장사가 팠다” 유래담 이채 중국조선족이 구전하는 백두산 설화만도 2백여편이 넘는다.내용도 다양할 뿐 아니라 분류도 가능한 설화들이 남아 있다.우선 신화적 성격이 강한 설화,자연과 조형물의 유래를 설명하는 기원전설,흥미를 중심으로 하는 민담 등이 고루 분포되었다.예로부터 이 지역에 살던 우리민족에 의해 구전되기 시작한 설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백두산설화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천지」는 하늘의 호수라 일컫는 천지의 유래담으로 신들의 세계와 갈등을 묘사한 일대 서사신화다.내용이 장엄하고 웅장하여 희랍의 인문신화가 손색할 정도다. 「하늘에서 발 붙일 곳을 잃은 흑룡은 지상으로 내려와 백성을 못살게 굴었다.백성들이 죽을 힘을 다해 물을 찾았으나 흑룡의 방해는 더 해 갔다.백장수가 백성들을 위해 사투를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이때 신선의 현몽함을 받은 공주가 백장수를 찾아 왔다.공주는 신선이 말한대로 백장수를 데리고 비밀의 옥장천을 찾는다.이 물을 석달열흘동안 마셔야 흑룡을 대결할 힘이 솟는다.과연 힘이 솟아 백장수는 삽을 들고 백두산 정상에 올라 땅을 파기 시작했다.16삽을 떠서 동서남북으로 버렸더니 16기봉이 생겼다.파인 웅덩이에서는 물이 솟기 시작한다.흑룡이 이것을 방관할 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백장수와 흑룡간에는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불칼을 휘두르는 흑룡은 불덩이 같았고,만근도를 휘두르는 백장수는 은덩어리 같았다.둘의 싸움이 승부가 나지 않자 공주는 흑룡을 향해 단검을 퍼부어 백장수에게 가세했다.끝내 당하지 못할 것 같자 흑룡은 동해바다쪽으로 줄행랑을 쳤다.백장수와 공주가 승리의 기쁨을 맛볼 때는 이미 백두산 정상의 웅덩이에는 물이 가득 고였다.둘이는 흑룡이 다시 나타나 방해하지 못하도록 천지 아래에 수정궁을 짓고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백두산 전설). 이 천지기원신화는 우리 설화의 괴도퇴치나 고전소설 「김원전」을 방불케 하는 것으로 지하국의 「구두괴도 퇴치설화」와 비교해 볼 때 나라의 위기가 닥칠 때 젊은 영웅이 출현,천우신조로 적진에 투입하여 정체를 밝힌다.그리고 여인의 도움으로 괴수를 당해낼 힘이 생겨 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여인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두는 등의 구성요소가 일치한다.우리는 이미 신화소가 사라져 민담으로 변이구전되고 있는데 비해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신격시하는 이곳 천지유래담은 원형대로 신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식물유래담의 장생초 전설은 효심이 지극한 모자,악질지주의 횡포,기로에 선 가족을 지켜준 백두산신령에 관한 이야기다. 「백두산기슭에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어느해 처음으로 풍성한 수확을 하게 되었다.아직 햇곡식으로 첫밥을 먹어보기도 전에 악질지주가 몽땅 빼앗아 갔다.설상가상 노모는 병으로 눕게 되었다.효자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서 병약한 노모를 봉양했다.그러나 병은 더 깊어만 갔다.아들은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장생초를 손에 넣기 위해 목숨을 걸기로 하고 백두산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깊은 산 속에서 한 노파를 만나게 되고 노파의 도움을 받는다.어렵게 장생초를 손에 넣은 아들은 끝내 뜻을 이루었다.이리하여 백두산에는 훌륭한 약재 장생초가 번식하기 시작했다」(조선족민간고사선). ○삶의 역사가 전설로 백두산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조선족으로 묘사된다.이 「장생초」도 먹고 살기 위해 백두산기슭까지 찾아간 조선족을 대변한다.땅을 개간하여 목숨은 겨우 부지하지만 지주의 횡포는 날로 더해 간다는 내용은 거짓이 아닌 이주민들의 초기 생활상이었다.설화에서는 천우신조,이를 테면 천신만고 끝에 신선같은 노인,산신같은 노파를 만나게 되어 명줄을 잇게 하는 설화의 내용은 전설이 아니라 삶의 역사였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고난을 자포자기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면 하늘도 돕는다는 삶의 철학이 구전설화에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인생관은 비통을 낭만으로 승화할 기질을 타고 났다.낭만적 민족성은 슬픈 이야기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다.백두산설화중에는 신화 전설만이 아니라 오락중심의 민담도 포함되어 있다.신화적 성격이 강한 내용을 민담으로 변이되어 구전하는 것으로 「술이 나오는 그림」이 있다. ○민담엔 교훈성 내포 「옛날 백두산에 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가난해서 장가도 들지 못했다.추운 겨울 나무하러 숲으로 들어갔다.신음소리를 들었다.그는 움막속에서 곧 목숨이 걷힐 병약한 노인을 찾았다.그는 애써 마련한 자신의 나무로 방을 덥게하고 죽을 끓여 노인을 간병했다.그는 노인에게 바싹 붙어 사흘동안 간병을 했다.덕택으로 노인은 회복이 되었다.노인은 붓으로 송학도를 한폭 그려 주었다.다음날 그 움막을 찾았을 때는 움막도 노인도 흔적이 없었다.나무꾼은 어이없이 앉아 그림을 펴봤다.그림에는 샘물이 있었는데 나무꾼이 『이 샘물이 술이었음 좋겠다』고 말하는 순간 술이 되었다.나무꾼은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신선주를 팔아 부자가 되었다.한 구두쇠 영감이 이 그림을 탐내어 그림을 사려고 했다.강제로 빼앗아 갔다.그리고 많은 군중을 모으고 그림을 펴 기적이 일어날 것을 예고했지만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군중은 이 구두쇠 영감을 욕하고 돌아갔다.구두쇠는 관청에 고발했다.막대한 돈을 받고 엉터리 그림을 준 사기꾼을고발한 것이다.나무꾼이 옥에 갇히려는 순간 백발노인이 나타났다.관리와 구두쇠를 나무라고 나서 그림을 들자 그림속의 학이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나무꾼과 신선을 태우고 멀리 날아갔다.이때 청천벽력이 나더니 산이 무너져 사또와 구두쇠를 덮어버리고 말았다」. 교훈성이 내포된 설화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그림에 대한 설화는 우리 주변에 많이 구전되고 있다.「그림속의 여인」「술이 나오는 표주박」등이 공통 모티브라고 할 수 있겠다.백두산설화가 백두산을 지키며 사는 우리 중국조선족들에게 항상 생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 수 없다.
  • 일/술 자판기 철거여부 논란

    ◎전국 20만대… 1년매상 2조8천억원 규모/“청소년 음주 부추긴다”… 여론 드세/산매업·제조사 반발… 내년봄 결론 「오늘 이 한잔은 내일의 활력」.귀가길에 이자카야(한국의 선술집 정도에 해당)에 들러 한잔 걸치고 가는 일본 샐러리맨들이 즐겨 하는 말이다. 경제발전의 이면에서 「회사인간」인 일본의 가장들은 쌓이는 숱한 스트레스를 한잔 술에 실어 보냈다.폭음은 하지 않지만 술소비량은 적지 않다.또 귀가가 늦은 가장들을 위해 눈에 띌 만한 곳에는 음료수 자판기와 함께 술 자판기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술 가게로서도 전기료는 더 들지만 인건비가 덜 든다.게다가 종교적 이유 또는 치안상 이유로 자판기의 옥외 설치가 어려운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자판기의 천국.술 자판기는 전국적으로 20여만대,1년 매상고는 3천6백억엔(2조8천8백억원 상당)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청소년들의 음주가 사회문제화하면서 술 자판기의 철폐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91년),후생성(93년),국세청(11월)의 자판기 철폐 권고에 이어 지난 8일술 산매업자의 전국조직인 전국소매주판매조합 중앙회는 알코올옥외자판기를 철폐해 나가기로 결정했다.구체적 시기는 내년 봄에 다시 결정키로 했지만 자판기 수명으로 볼 때 5년 후면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이에 호응,삿포로맥주는 이미 자판기 알선판매를 중단했고 기린·아사히맥주 등도 곧 중단할 방침. 하지만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우선 산매업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술 산매업자들의 매상 가운데 자판기 매상은 30∼40%를 점한다.이들은 『부모 심부름이라고 하면 술을 팔지 않을 수 없다』,『사활이 걸린 문제』라면서 적지 않게 반발.또 자판기업자들도 『불량청소년 때문에 영세업자들이 희생돼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규제완화에 역행한다는 말도 나온다.게다가 청소년 상대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술 구입 경로 가운데 자판기 구입은 3위 내지는 6위 이하에 불과하다. 여하튼 술 자판기의 운명이 결정되는 내년 봄까지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 백두산(연변 조선족1백년:9)

    ◎민족의 영산… “조국 그리우면 오릅니다”/산자락에 조선족 마을 여러개… “고향으로 생각” 조선족들은 중국영토에 얹혀 살지만 정신만은 아직도 부여·고구려·발해 땅에 살고 있다.이러한 의식으로 사는 것은 백두산 때문이다.그리고 백두산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의식은 지워지지 않는다.언젠가 단신으로 백두산등정을 했을 때의 일이다.연변조선족부녀회 임원 몇명과 만났다.『한국서 오셨구만요.참으로 멀리서 오셨군요.통일만 되면 바루 올라오실걸…』그렇다.중국대륙을 횡단해 우회하며 올라온 필자를 측은히 여겨 준 것이다.『우린 만주땅에 살지만 백두산이 있는한 외롭지 않아요.조국이 그리우면 백두산엘 오르는걸요』이토록 정신적 지주가 된 백두산은 진실로 물질적 정신적 모신의 요람이었다. 문득 가곡원류에 실린 이름 없는 이의 시조 한수가 떠오른다. 「백두산에 높이 앉아 앞뒤뜰 굽어보니/남북만리에 옛 생각 새로웨라/간 님의 정령 계시면 눈물질가 하노라」 이 시조작가도 넓은 만주벌을 잃은 설움에 한숨 지은 것이다.백두산은 신령의 산이다.한민족의 젖줄이며 정기가 담긴 영봉이다.최고봉이라는 것 뿐 아니라 한반도와 만주벌의 중앙에 우뚝 서서 그 옛날 한민족이 활약했던 넓은 대지를 굽어보며 흥망성쇠를 지켜본 영산이다. ○천지는 하늘의 호반 왜정 때는 잔혹한 일본인의 탄압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가냘픈 목숨을 지탱한 곳이고,일본군의 총칼과 맞서 조국을 위해 싸운 독립군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백두산은 마치 모신의 가슴처럼 굶주린 고아들을 먹였고,외로운 고아들을 따스하게 안아준 어머니 가슴이었다. 백두산 정상에 오르면 누구나 『아아,백두산』하고 절규하지만 순간 자연의 외포와 엄숙함에 할말을 잃고 침묵이 있을 뿐이다.병풍처럼 둘러싸인 기암절벽안에 검푸른 물결로 덮인 잔잔한 천지는 거짓없는 하늘의 호반이었다.마치 금세라도 해룡이 용틀임하며 승천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그래서 천지를 용왕담이라고 하나부다.예로부터 백두산신령은 나라의 평화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민간신앙의 표상이었다. 백두산 정상에서 얼마 안되는 곳에 중국에서 명소로 꼽는 장백폭포가 있다.달문을 통해 흐르는 천지의 물줄기가 폭포로 힘을 얻어 벌을 적시면서 송화강에 합류한다.천지의 물줄기는 분명 조선족의 젖줄이 된다.폭포로부터 얼마 안되는 곳에 작은 담수호가 숲속에 슬며시 모습을 나타낸다.사람들은 이곳을 소천지라 부른다.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작은 호수가 그토록 유명한 「선녀와 나무꾼」의 무대라는 것이다. ○중국선 장백산으로 나무꾼이 사냥꾼으로부터 쫓기는 사슴을 도운 덕택에 이 호수에서 멱을 감던 선녀를 아내로 맞는다.그러나 보여서는 안될 선녀의 옷을 보인 탓으로 아내는 그 옷을 입고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간다.이 슬픈 설화가 본토에서는 금강산이 무대로 되어 있지만 이곳 조선족은 자신들이 처해 있는 현재의 공간에다 설정하고 있다.이리하여 백두산을 업고 사는 만주벌을 삶의 터전으로 하면서 고향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발현이 강하게 나타난다. 폭포를 따라 내려오면서 처음 만나는 도시가 이도백하진이다.도시라기보다는 백두산의 풍요로운 임업·광산·동식물을 관리하는 관청이 있는 농촌마을이다.『안녕하십니까?』로 통하는 마을,이곳도 조선족이 개발한 지역이다.인근에 옹기종기 작은 마을을 형성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싸리울타리에 싸릿문,호박덩굴이 지붕을 덮은 모습,닭들이 마당에서 모이를 쪼는 모습이 전날 한국 농촌의 풍경을 옮겨 놓은듯 하다.모두 조선족 마을이다.삼도진을 거쳐 매음마늘을 지나면 평지에 이른다.여기부터 평강벌이다. 백두산 자락이 펼친 면적은 8천㎦로서 전라북도의 면적과 비슷하다.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경계를 하고 있으니까 자연히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부른다.중국문헌을 뒤져보면 옛날에는 「넓은 황야 가운데 있으니 불함이라 이름한다.숙신땅에 속한다(산해경)」고 되어 있다.한나라 때는 「단단대령」이라 불렀고,남북조의 위시대는 「개마대산」또는 「태백산」이라했다.「장백산」이라는 이름은 당나라 때 비로소 나온다.한편 백두산을 배경으로 살아온 민족을 보면 숙신족·읍루족·물길족·말갈족·여진족·만주족 등 여러 민족을 들 수 있으나 우리 민족도 부여·고구려·발해 등 여러왕조가 백두산에 발상을 두고 있다. ○「밝달」이란 의미 유래 이와같이 백두산을 배경으로 여러 민족들이 발붙여 살아왔으나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오직 우리 민족만이 뿌리를 내리고 민족의 성산으로 숭상하면서 우리의 정신적 지주로 여겨 오래오래 살 것을 표상하고 있다.단군신화에서 환웅이 천상에서 하강한 곳도 태백산 아래 신단수로서 이곳에 신시를 만들었다.발해 대조영이 건국의 기틀을 만든 곳도 태백산이며,부여 금와왕이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만났다는 곳도 태백산으로 다름 아닌 백두산이다. 백두산의 명명유래는 성해응의 「동국명산기」에 나타난다.즉 흰독을 엎어놓은 듯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란다.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네계절 산마루에 흰 눈이 덮여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한편 최남선은 우리의 명산들에 백자가 많이 들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광명한 산악,해가 돋는 신성한 고지 등을 의미하는 「밝뫼」나 「밝달」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한다. 어떻든 이 백두산을 우러러 보며 지키고 있는사람들은 다름 아닌 중국조선족들이다.『우리 조국땅에 살아요』라는 말은 백두산에 사는 한 그게 남이든 북이든 조국이라는 의식에서다.그리고 백두산에 얽힌 수많은 전설들이 우리 동포들에 의해 생성되고 있음은 의식의 연장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탐조여행/“겨울철새 보고” 민통선 인기

    ◎조류보호협/어린이 180명 모집에 3천여명 몰려/김포·임진강·한강하류 새 명소로 부각/내년 1∼3월 걸쳐 5차례 무료여행 계획 겨울철새가 떼를 지어 찾아들고 있다.해마다 겨울로 접어들 때면 우리나라의 주요 철새도래지에는 수천여 겨울새들의 현란한 날개짓과 먹이를 구하기 위한 바쁜 몸놀림등이 한데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출해 내고 있다. 이에따라 이들 철새를 관찰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른바 「탐조여행」이 제철을 맞아 각광을 받고 있다.한국조류보호협회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오는 18일 강원도 철원군 민통선지역에서 처음 실시하는 탐조여행에는 1백80명 모집에 3천여명이나 몰려 성황을 이뤘다.특히 겨울방학을 맞아 가족단위의 탐조여행이 더욱 인기를 끌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겨울철새는 천연기념물 201호 고니와 202호 두루미,325호 기러기류등 모두 1백16종 10여만마리로 알려져 있다. 주요 겨울철새 도래지로는 강원도 철원군(두루미),강릉 경포호수(고니.오리),부산 낙동강하구 을숙도(고니.오리.기러기.도요새.가마우지),경남 창원 주남저수지(고니.기러기.오리),충남 서산군 태안면 대호방조제(고니.기러기),전북 익산군 금강하구(고니.기러기.오리),전남 진도군 수유리해안(고니),제주도 북제주군 성산포 해안 및 양어장(오리.가마구지),거제도 동부면 학동리 앞바다(아비류)등이다. 한국조류보호협회 김성만회장(50)은 『특히 올해 탐조여행지로는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인 경기도 김포군 임진강과 한강하류가 접하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앞이 새로운 철새도래지로 부각되고 있다』면서『이곳들이 자유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진데다 천연기념물 325호인 기러기류인「개리」도 30여마리나 관찰돼 탐조객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서울의 마포대교와 여의도사이 4만평규모의 밤섬에도 청둥오리.원앙새.흰죽지.비오리등 3천여마리의 철새들이 겨울터전을 마련,63빌딩과 순복음교회앞 전망대등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탐조여행을 떠날 때는 희귀한 새를 찾아나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우선 공원의 녹지등에서 새의 습성을 익힌 뒤 점차 강가나 바닷가등지에서새의 동작,무리생활,색·부리·날개등을 세심히 관찰하며 깊이 들어가야 한다.최소 5백m까지 근접,관찰이 가능하다.이를 위해 조류도감과 쌍안경.망원경.방한복.지도.카메라.나침반등의 장비가 갖춰져야 한다. 탐조의 역사는 19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됐으며 일본은 50여년전 시작됐다.우리나라는 60년대 후반 주한 외국인들에 의해 처음 시작,현재 5만여명이 탐조여행을 즐기고 있다. 김회장은 『무엇보다도 소리를 삼가야하며 끈기있게 새를 주시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면서『단순히 새를 관찰하는데 그치지 말고 담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며 옥수수·밀등 먹이도 준비해 자연보호운동에도 탐조객들이 한몫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오는 18일에 이어 내년 1월 15일부터 3월 1일까지 5차례에 걸쳐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탐조여행을 갖는다.참가희망자는 한국조류보호협회 02­797­4765∼6,749­4747로 문의하면 된다.
  • 외환자유화 시대의 과제/조윤제 한국조세연구원 연구1부장(기고)

    ◎“규제위주의 거시경제 틀 바꿔야”/통화 안정관리 새정책 개발 필요 내년부터 외환거래가 대폭 자유화될 예정이다.이는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 강화뿐 아니라 내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OECD 가입,그리고 급속히 통합되어 가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 환경등을 고려해 볼때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외환거래를 그동안 쉽게 자유화하지 못한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고,그렇다면 이제 자유화에 즈음하여 과연 자유화조치가 우리에게 어떤 정책과제를 던져 주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첫째,외환자유화는 우리에게 거시경제 정책의 틀을 바꾸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외환거래가 자유화된다는 것은 나라 안팎으로 돈이 보다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통화및 물가 관리등이 전보다 훨씬 더 만만치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정부는 보다 많은 정책수단을 개발해야 하고 정책효과에 대한 예측능력도 키워나가야 한다.다시 말해서 우리의 거시경제 정책도 종전의 금리규제,환율규제,통화량의 직접규제 등에서 벗어나서 외환이 이미 자유화되어 있는 많은 선진국에서 해 오듯,보다 시장기능에 바탕을 두고 거시경제 변수들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수단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외환자유화는 국내경제와 세계경제의 물꼬를 트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수압을 조절·규제하면 금방 그 효과가 물의 이동으로 상쇄되어 버려 종래의 규제방식은 유효하지도 않으면서 불필요한 거래비용만 수반하게 된다. 또한 국내 거시경제 환경이 조금만 불안정해지면 금방 자본의 유출이 확대되어 그만큼 국내투자가 위축되고 경기하강이 가속화될 것이다.반면 국내경제변수가 호전되면 급격한 자본유입을 초래하여 안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그만큼 거시경제 운용이 어려워진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정부는 종래의 통화관리 방식등을 서둘러 전환하지 않으면 안될뿐 아니라,통화정책이 지니는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통화와 재정정책을 적절히 혼합 구사할 수 있도록 개방화시대의 거시경제 정책 틀을 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이러한 측면에서 볼때 지난 주말 발표된 경제기획원·재무부의 통합은 재정·금융정책,그리고 세입과 세출기능의 긴밀한 연계를 가능케 하여 효율적인 거식경제 정책을 구사하기 위한 중요한 걸림돌을 제거하였다고 볼수 있다. 둘째,정책운용 방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현재와 같이 금리가 조금 오르면 여기저기서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압력때문에 통화·금융당국이 금리를 자유화한다고 해 놓고서도 금융기관에 압력을 넣어 금리를 낮추도록 한다든가,또는 단기적 통화량 목표치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은행의 자산운용에 대한 직접규제로 통화량을 맞추는 방식등으로는 개방화시대의 효율적인 경제운용이 불가능하다.필자의 생각에 우리 경제관료들에게 꼭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때때로 중요한 이슈에 대하여 직접 정책논문을 작성하고,정부 내에서 이에 대한 토론을 거쳐 정책에 대한 당국의 입장을 확고히 키워나가는 것이라고 하겠다.담당 과장이나 국장,혹은 장관이 바뀌면 그 과에서 해오던 정책이 금방 바뀐다든가,아니면 똑같은 과장·국장이 있더라도 청와대나 정당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금방 어제까지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한다든가 해서는 개방화시대의 높은 파고를 안정적으로 헤쳐나가기 어려울 것이다.정책토론 등을 통해서 이해 관계가 다른 각 부문에서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일관성있는 정책추진이 가능하게 되리라 본다.필자는 경제부처의 통합·조정이 이러한 면을 활성화시킬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셋째,우리 경제의 각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정책은 하나의 선택이며 어떤 정책에도 정의 효과와 부의 효과가 있게 마련이다.또한 새로운 변화나 개편은 항상 비용을 수반한다.인내와 고통의 분담없이 새로운 시대로의 적응은 불가능하다.기업들이 그동안 금융을 자유화하면 자기들이 훨씬 더 생산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으면서도 금리가 조금 오르기만 하면 정부에 금리를 내려달라고 한다든가,외환을 자유화 하라고 해 놓고는 환율만은 절상시키지 말아야 된다고 우겨서는 올바른 정책전환이 되기 힘들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통화량이 잠시 목표치를 넘었다고 당장 물가및 경제안정이 크게 흔들릴 것 같이 보도한다든가,통화관리 때문에 금리가 단기적으로 다소 오른다고 하여 기업부도와 국제경쟁력 약화를 대서특필해서는 정책의 전환이 어렵다.정부와 관료주의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선 자리에서 이러한 이해와 인내를 가질 때 개방화·자유화시대의 진정한 경제정책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 아동문학/최인학(연변조선족 1백년:8)

    ◎“어린이가 희망” 일제때 창작 활발/탄압 피해 최서해·윤동주·윤극영 등 간도서 활약/해방후 「어린이신문」 발간… 80년대 중편 소년소설 등장 창작활동이 한반도보다 비교적 자유스러웠던 1930년대의 간도는 작가들의 활동무대였고 은신처였다.아동문학도 예외는 아니다.암흑기를 방불케 하는 그 시대를 살았던 아동문학가들은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러한 절박한 심정으로 동화 동시를 써 왔다.30년대 초창기 문학가중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작가들이 간도에서 아동문학으로 활동해 온 사실을 알 수 있다. ○농사짓다 문학생활 최서해는 1915년에 북간도 백하지구에 건너와서 농사를 짓다가 쪼들린 생활을 이기지 못해 7년간이나 유랑생활을 했다.그러다 1924년에 서울로 향했다.윤극영은 1926년 용정에 와서 동흥중학교 음악교사로 있었다.그 후 일본,하얼빈 등지로 다니며 음악을 전공하며 가무단을 이끌기도 하다가 용정에서 광복을 맞이했다.김예삼은 1935년 흑룡강성 목릉현 흥원에 이주하여 교편을 잡았으며,채택룡은 1938년연길현 명륜학교로 와서 교편을 잡다가 광복을 맞았다.그리고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에서 출생하여 평양숭실학교를 다니다가 36년에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에 편입했다. 이 밖에도 간도에서 이 무렵 활동하던 아동문학가로서 윤해영 안수길 함형수 이호남 천청송 염호열 김연호 박화목 한해수 등을 꼽을 수 있다.중국 조선족의 아동문학은 이들 작가군에 의해 형성되었고 1936년 창간된 「가톨릭 소년」은 작품의 발표원이 되었다.당시의 상황은 조국을 빼앗긴 설움은 문학적 공감대를 형성했다.그리고 항일운동과 독립전쟁을 몸소 경험하는 현장이었기에 아동문학의 저변도 이러한 경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의 생활상 표현 그러나 일제의 탄압은 이곳까지 물밀듯 엄습했다.작가들은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이 무렵 윤동주는 참혹한 당시의 생활상을 동시로 표현했다.그의 초기 작품중 한편을 감상해보자.「굴뚝」이라는 동시다.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몽기몽기 웨인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게지 총각애들이/깜박깜박 검은눈이 모여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옛이야기 한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1940년대에 와서는 윤동주에 이어 이호남 천청송 함형수 등이 계속 동요와 동시를 썼다.그러나 검열제도가 심해지자 전처럼 노골적인 항일의지 표현의 길은 막혀버렸다.다만 상징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써가며 새경지를 개척해 갈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와중에서도 항일유격대 안에서는 전투성이 강하고 선동성이 짙은 아동문학이 생성되었다.항일가요로는 「혁명군이 왔고나」「아동단가」「어디까지 왔나」등이 있으며 아동극으로는 「유언을 받들고」「아버지는 이겼다」등이 있다.이들 선동성이 강한 작품을 통해서 미래의 혁명투사를 만들고자 했던 의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일제의 탄압이 끈질겼으나 작가들이 붓을 꺾지 아니한 보람이 있어서 중국조선족 아동문학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1945년 광복을 맞아 아동문학은 활기를 찾게 된다.연변에서는 주로 채택룡 염호열 이호남 김순기 최형동 등이 활동을 했으며 「연변일보」「길동일보」「동북조선족인민보」「불꽃」등 신문과 잡지에 발표를 했다.목단강 일대에서는 주로 김예산이 발표를 많이 했는데 1949년에는 「건설」이라는 잡지를 편집하여 작품을 게재도 했다.하얼빈일대에서는 김태희 임효원 등이 「인민신보」를 내면서 작품을 게재했다.특히 임효원은 1947년 「어린이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70년대 30여명 활동 그 후 문화대혁명의 혼란기를 거쳐 1970년대부터는 새로운 국가건설이라는 목표아래 중국조선족도 새로운 문단조직으로 가다듬었다.그 결과 아동 문학작가는 거의 30여명에 달했다.발표지도 늘어나 「소년아동」「중국조선족소년보」「별나라」「꽃동산」등이 속속 발행하기에 이른다.그러나 이처럼 많은 작가와 발표지를 가지면서도 아동문학의 문학성 부진을 면치 못했으니 이는 자아확립의 기틀이 잡히지 않았던 까닭이다.그러므로 1980년대는 모두가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아동문학의 나아갈 길이 무엇인가 깊이 반성하기에 이른다.즉 과거처럼 틀에 박힌 작품활동,교시적이고 피상적인 주제보다는현실적이고 자아개발이라는 나를 발견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하여 재고해 가는 과정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난날의 계급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인위적인 갈등을 설정하여 정치적 교훈을 주는 목적으로 하던 창작정신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이러한 반성문학운동을 업고 궤도수정을 한 것이 다름아닌 중편 소년소설의 등장이다.과거 동시나 동요 위주였던 아동문학이 중편소설의 등장으로 새국면을 맞는다.이처럼 중편소년소설이 등장하자 최소한 아이들의 성격 묘사가 가능해졌다.진정한 의미의 문학성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국제화대상 한국음식」 12종 선정

    ◎관광공사,인간문화재 황혜성씨 등 자문받아/신선로·3첩반상·한정식·전골정식 포함/해외주재공관 통해 각국에 요리법 등 홍보 한국음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국제화 대상 한국음식」 12종이 선정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28일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지난 4월 조선왕조 궁중음식 인간문화재 황혜성여사를 비롯,대학교수·식당경영인·외교관부인등 8명으로 발족한 「한국음식 국제화 자문위원회」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12종의 국제화 대상 한국음식을 선정했다. 자문위원 황혜성씨는 『국제화 대상 한국음식 선정은 외국인들의 한국음식 선호도에 중점을 두어 뽑았다.특히 반찬을 간소화해 외국인들의 식습관에 맞게 개인용 세트메뉴의 상차림으로 꾸몄다』며 이들 음식이 한국과 한국문화를 소개하는데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공사는 30일 국립극장내 한식당에서 스페인대사 부처와 서울 외국인학교장,자문위원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식회를 갖는다.또 선정된 음식 12종의 표준조리법을 바탕으로 보사부·외무부등 관련부처,한국음식업협회및 한국조리사협회등 관련업계,공사 해외지사및 해외주재공관등을 통해 한국음식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기로 했다.국제화대상 음식및 표준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①잡채정식=쇠고기 오이 당근 버섯을 재료로한 잡채와 밥,두부조림 두부회 또는 두부를 튀겨 간장에 졸인 두부장아찌중 1가지,배추김치 맑은국. ②냉면=냉면국수는 질기지 않아야 하며 동치미국과 편육,무 오이등 냉면김치,삶은 계란을 준비한다. ③죽상=흰죽 야채죽 인삼을 넣은 닭죽 옥수수죽중 1가지와 다시마 잣등 매듭자반,북어포 물김치. ④신선로정식=국수와 작은 만두,쇠고기 두부 흰살생선 버섯 미나리 무 당근 사태 호두 은행 실백 계란등을 넣은 신선로,배추김치. ⑤3첩반상=밥과 닭국물을 이용한 맑은국 갈비찜 김치 2종,더덕구이 적 조림 전중 2가지,나물 생채중 1가지등 반찬 3가지. ⑥한정식=A코스는 냉채 빈대떡 생선구이 불고기 맑은탕 기본찬 5종,김치 2종,과일 식혜이며 B는 육포등 마른안주,잣죽 냉채 구절판 수삼중 1가지,대하찜 전유어중1가지,신선로 불고기 기본찬 5종,김치 2종,궁중병과 과일 화채또는 차. ⑦만두·국수=쇠고기 두부 숙주 김치 계란을 넣은 만두국 또는 국수와 배추김치나 동치미중 1가지. ⑧생선구이정식=밥 무국 생선구이,도라지 시금치 버섯등 삼색나물,배추및 물김치. ⑨비빔밥=흰밥 참기름 쇠고기볶음,오이 고사리 도라지 콩등 나물,다시마튀김 계란지단 볶은 고추장을 사용하고 콩나물국 물김치가 오른다. ⑩불고기정식=밥 완자탕 갈비 또는 불고기,겨자채 무생채 상치절이지중 1가지,배추및 물김치. ⑪전골정식=밥과 쇠고기 무 당근 양파 버섯 숙주 미나리 계란을 재료로 김치가 함께한다. ⑫후식=잣가루 밤고물등 단자류의 떡,약과 밤초등 과자,식혜 오미자화채등 찬음료,인삼차,과일등이다.
  • 전통민속놀이/최인학(연변 조선족 1백년:7)

    ◎씨름·그네·널뛰기/단결­항일 의식화 놀이로 발전/전국운동대회 인기 종목… 과학적 연구도 병행 만주벌에 사는 중국의 조선족은 전통민속놀이를 계승 발전시킨 주역들이다.그러나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연변에서는 민속놀이를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촉매로서 활용할 뿐 아니라 민족운동이라는 차원으로 육성 발전시켰다는 점이다.예컨대 씨름은 원래 단오놀이였고 생산증식의 주술적 의례로서 출발한 민속놀이였지만 이곳 연변에서는 씨름판이 항일의 의분을 폭발케 해 주는 장소가 되기도 했으며 씨름판에 모인 민중을 항일대열로 참여시키는 의식화 운동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씨름의 주역이 남자이면 그네의 주역은 여자였다.그네도 단오놀이이긴 하지만 이곳에서는 수시로 개최되었는데 그때 마다 모인 민중들의 단결과 항일의식으로 연대가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이와 비슷한 놀이로서 널뛰기가 있다.널뛰기는 정초에 여성들의 전통놀이였다.그러나 연변 여성들은 널뛰기의 단순한 의미를 벗어나 일본의 압제로부터 일탈하여 항일로 무장한다는 의식화 놀이로 발전했다.그러므로 씨름·그네·널뛰기는 명절 뿐 아니라 수시 개최되었으며 개최될 때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집단의식으로 무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오히려 전통놀이라기 보다는 사회운동이라는 인상이 짙다. ○민속운동으로 승화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항일의 기능은 사라졌다.그렇지만 고국이 아닌 이국 땅에 사는 조선족은 단결은 필요했고 연대의식의 강조는 아무리 부르짖어도 무리가 아니었다.따라서 씨름·그네·널뛰기는 조선족을 대표하는 「민속운동」으로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이러한 민속놀이의 사회화는 씨름을 비롯한 민속놀이의 과학적 연구를 가져왔다.그리고 운동으로서 체계화 하게 되었다.조선족의 씨름연구는 지대한 것으로 그 일부만을 조감해 보면 우선 크게 공격과 방어로 나눌 수 있다. 공격기술은 물론 메치기를 말한다.그래서 엉덩이지기 등의 들어치기 기술과 호미걸이와 같은 다리기술,무릎 덜미 등을 후려치는 손기술이 뒤따르게 마련이다.조선족 씨름을 연구자들은 들어치기,다리기술,손기술 등의 3가지 기본기술을 다시 13가지나 되는 잔 기술로 나누었다.방어기술은 되치기인데 여기에는 배지기,안다리걸기,모두걸이,맞배지기가 포함되었다. 씨름을 민속운동으로서 발전시키려면 씨름이 인체에 미치는 특징을 추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이 점에 대해서 씨름이 인체에 주는 장점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첫째 전체 근육 운동이므로 신체를 조화롭게 발전시키며,둘째 여러 기술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운동기능을 발전시키며,셋째 민첩하게 움직이는 기능,넷째 힘과 정신운동으로서 전투적인 기질과 투지를 키운다.다섯째 관절과 신체의 유연성,심장과 폐의 기능을 높이는 것 등이다. ○널뛰기 민요 이어져 한편 중국의 전국 운동대회에서 조선족여성을 대표하는 그네타기와 널뛰기는 중요하고도 유명한 종목이 되었다.이 종목을 통해 조선족 여성들의 명랑하고 씩씩하며 근면한 성품을 충분하게 과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많은 관중의 열렬한 찬사와 박수갈채를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소수민족들의 운동대회에서도 그네타기와널뛰기는 인기 있는 종목이 되었다. 지금도 연변에서는 불려지고 있는 널뛰기 민요가 한국에서는 이미 단절된지 오래다.연변에서 아직도 불려지고 있다. 「묵은 해는 지나가고/새해 신원을 맞이했네 (후렴)널뛰자 널뛰자/새해맞이 널 뛰자/ 앞집의 수캐야 너 왔느냐/뒷집의 순희야 너도 왔니 (후렴)/서제도령 공치기가/널뛰기만 못하리라 (후렴)/규중생장 우리 몸은/설놀음이 널뛰기라 (후렴)/널뛰기를 마친 후에/떡국노래를 가자세라」 고국에 대한 향수의 응어리임에 틀림이 없다.다른 어느 나라 한민족 사회보다도 전통문화를 가장 유지 발전시킨 지역은 중국조선족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그것은 연변이 항일운동의 씨밭이었고 독립운동가들의 피신처였기에 모든 전통문화를 항일의식으로 미화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변 노인절이 명절 단지 광복후 중국과 북한의 공산화 영향을 받은 점은 인정이 된다. 이를테면 놀이의 의미부여에 있어서 지나치게 집체성과 전투성을 강조한다거나 이데올로기적 의미부여를 하는 것 등이다.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명절속애 「자치주 창건 기념일」(9월3일),「연변노인절」(8월15일),「아동절」(6월1일)과 같은 새로운 명절이 포함된 것은 박수를 보낼만하다.특히 연변노인절은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는 볼 수 없는 특유의 명절로서 차세대들에게 「효」를 잇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의미 있는 명절이다.아동절은 정신적으로 해이해 가는 젊은 세대들에 바른 길을 보이는 미래지향적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노인문제와 갈수록 늘어가는 범죄 집단을 사전에 예방하는 사회적 문화적 장치로서 노인절이나 아동절은 크게 기능하리라 믿는다.우리를 되돌아 볼 과제의 열쇠가 연변조선족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 정치적혼란기…신중하게 접근/일·북관계/고바야시 가즈히로

    ◎내외전문가 한반도 정세 조망/“실리외교” 여론 비등… 「전후보상」 걸림돌 「냉전의 화석」이라고 불려온 한반도에도 미·북한의 제네바합의로 「화해」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북풍의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던 북한에 「경수로 지원」 「미국과의 연락사무소 상호설치」라는 「태양」이 비치며 「핵무기 개발」이라는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고 할까.낙관적으로 보면 동북아시아에 이제 겨우 대립구도를 벗어나 평화와 번영을 향한 새로운 질서구축이 시작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북방외교」로 중국과 러시아와 외교관계를 맺고 미국과 북한도 제네바합의로 외교관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나머지는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와 한반도의 주역인 남북관계뿐이다. 이때문에 일본정부도 기본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다.그러나 아직은 구체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정부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매우 신중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북한과의 국교정상화교섭은 지난 1991년 1월에 시작됐다.그러나 일본측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의 해소를 요구하고 북한은 2차대전 전뿐만이 아니라 전후의 보상까지 요구,회담은 평행선을 걸어왔다.더욱이 92년 11월 제8차 교섭에서 일본측이 제기한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인 교사 「이은혜」 문제에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며 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국과 함께 미·북한제네바합의에 따라 40억달러의 경수로 건설지원과 경수로 완성까지의 대체에너지인 중유 공급비 20억달러의 대부분을 부담할 것 같다.일본정부는 이를 「안전보장 비용」으로 보고 응분의 부담을 지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 사이에는 국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을 일본을 향해 시험발사하고 일본인처의 고향방문도 허용하지않는 북한에 거액의 세금을 사용,지원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 강하다.그런 가운데 사회당은 미·북한합의후 북한과의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찾기위해 같이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과 신당사키가케에 북한방문을 요청했다.그러나 신중론이 강해 전망은 불투명하다. 신중론은 지난 90년 평양에서 발표된 자민·사회당 대표단과 조선노동당의 3당공동선언에 포함된 「2차대전 전뿐만 아니라 전후 45년간의 보상도 한다」는 내용을 이번 방문에서 확인해주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유 때문이다.또하나는 김정일의 최고 지도자 취임이 정식 결정되기전에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본내에서는 또 북한에 경수로지원등을 하려면 핵의혹의 불식만이 아니라 군비증강·인권문제등에 대해서도 북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일본은 더욱이 지금 정치적 혼란기에 있어 강력한 리더십의 발휘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북한은 또 일본이 외교채널를 통한 관계개선을 추구할 경우 반발할지 모른다.이러한 복합적 요인으로 일·북관계는 진전과 후퇴를 반복하며 조금씩 진전될 것 같다.극적인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일본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남북관계다.김영삼 대통령은 남북경협에 대해 「신중히 검토발전시킬 때가 됐다」고 발언하고 있으며 한국정부도 경제인의 상호방문등을 용인할 방침을 정했다.지금까지 「선통일·후교류」를 주장해온 북한이 이번 한국조치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의 시금석이 된다. 북한의 부자세습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 같다.북한은 권력기반을 강화하기위해 김정일에 대해서도 김일성과 유사한 신격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체제는 외부로부터의 정보유입에 무너지기 쉬운 결정적인 취약점을 갖고 있다.이때문에 북한의 개혁·개방에는 스스로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중에는 「남북이 통일되면 경제·군사면에서 일본의 위협이 되기때문에 일본인들은 통일을 바라지않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물론 일본인중에 그러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극히 일부 있다.그러나 여론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되어 안정되는 것이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도 가장 바람직하다.그러한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좋아지고 개방체제로 바뀔 필요가 있다.그러나 현실은 북한의붕괴라는 시나리오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그 경우 한국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줄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불안정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북한의 이러한 붕괴를 막기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중국도 그러한 사실를 잘알고 있어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 유지를 중시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정부는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할 의사도 없고 개입해서도 안된다.다만 중국에 대해 북한의 개혁·개방 노선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도록 요청하는 정도일 것이다. 일본은 현실적으로 국내 정치적 혼란때문에 한반도및 동북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질서구축의 청사진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이다.한국도 북한이라는 불안정 요인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다.그러나 완벽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렵다.이때문에 북한의 핵문제 대응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일·미·한 3국이 연대를 유지하며 대화해 나가는 수밖에 없지않을까.
  • 웃음을 아는 민족(연변 조선족 1백년:5)

    ◎망향의 설움 해학­낭만으로 극복/한글신문엔 배꼽 쥐는 이야깃거리가득 한국인 정서의 근성을 낭만과 해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혹독한 만주벌에 가 살아도 한국인의 근성은 버리지 않았다.이러한 낭만과 해학이 어떤 경로로 정형화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인의 운명관·영혼관이 체념이라는 고리를 항상 달고 다니면서 괴로움과 비통함을 극복하는 장치가 되어주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체념의 장치는 해학과 낭만으로 미화되었다.임진왜란때 강제로 일본에 잡혀간 도공들이 기아와 망향의 슬픔을 딛고 삶의 뿌리를 규슈에 내린 것도 이러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고,스탈린에 의해 한국인이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들판에 내던짐을 받았을지라도 그곳에 한국인의 얼을 심어 오늘 꽃 피게 한 것도 근성의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동시에 만주벌의 동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들에게 낭만과 해학이 없었던들 어찌 오늘의 중국조선민족이 가능했을까.한국인의 유머는 낭만과 해학의 산물이다.미움이나 증오도 비아냥대며 웃고 넘겨버리는대담성이 한국인에게는 있다. 지난 여름 구비문학학술회의에 참가하려 연변에 들렀을 때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비통한 역사,굶주림의 역사를 웃음으로 대치하면서 오늘의 탄탄한 위상을 확립한 것도 생활사의 승리다.회의가 끝날 무렵,순한글의 타블로이드판 「이야기천지」란 신문 몇부를 받았다.주로 이야깃거리를 담은 이 신문에는 유머 고정란이 있었다.연재물도 재미있었다.신문의 의도는 독서를 통해서 낭만과 해학으로 세파를 이겨가자는 뜻일게다.유머 몇편을 읽어보니 부조리를 웃음으로,사회고발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과정이 조명되었다. 한 공상관리원이 돼지고기 장사꾼에게 세금을 내라고 했다. 『매일 와서 공돈만 떼 먹으니 너네 공상관리소 놈들은 모두 돼지야』 하면서 욕지거리를 했다.이때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 법관이 『인신침해로 벌금 30원을 내야 한다』 하고 명했다.그러자 돼지고기 장사꾼이 『전번에도 「돼지」라고 욕했다가 벌금 10원밖에 내지 않았소』 하며 투덜거렸다.그러자 법관이 말했다. 『이번 벌금은 새로운법률적 근거에 의한 것이오.돼지고기값이 두배나 뛰지 않았소』 ○유머로 물가고 꼬집어 유머속에는 물가고의 폭등을 꼬집고 있다.자유화의 물결로 개인상업이 보장되면서 상점세 또는 잡세를 거두는 수금원간에 말다툼이 잦다.그리고 물가고가 천장 모르듯 오르고 인플레가 지속되는 현실을 유머로 잘 소화시키고 있다. 까치배처럼 흰소리 잘하고 행실이 우락부락하고 언사가 오뉴월 사복개천같이 더러운 사람이 한 여관을 찾아 들어왔다.여관방을 뚜리뚜리 살피던 그는 『이게 무슨 여관이야! 돼지굴이지.그래 이 돼지굴 같은 여관의 숙박료는 얼마요?』 하고 희떱게 물었다.무례한 손님 말에 여관집 주인은 예절스럽고 공손하게 답변해주었다. 『돼지 한마리 하룻밤 재우는데 5원입니다』 「까치배처럼 흰소리」는 흰소리를 까치의 배가 흰 데 비유한 말로 북한이나 연변에서는 말이나 행동이 거드럭거리며 건방지고 거만한 사람을 비하하여 일컫는 말이다.북한이나 연변에서도 서민들이 보는 일부 기관원이나 당간부들은 희떠운(건방지고 거만한) 존재로 부각되기 일쑤다.이토록 희떠운 존재를 비아냥거리며 유머로 소화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니 반갑기만 하다. 약방의 한 판매원이 경리에게 회보(보고)하였다. 『새로 온 그 출납원 처녀는 자꾸 졸기만 합니다』 경리는 듣고 나서 대답을 했다. 『별문제 없네.내일부터 그 처녀에게 수면제 약을 파는 매대를 맡기오.약 사러 오는 고객들이 그 처녀가 졸고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우리 약방의 수면제가 아주 효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엄마,엄마,큰일났네요』 『이 애가 왜 이래? 무슨 큰일이 났다고 그러냐?』 『글쎄 큰누나가 밤에는 앞을 보지 못하나봐요』 『그게 무슨 말이냐?』 『장님이 아니면 왜 밤에는 어떤 남자가 그냥 누나 손목을 쥐고 다녀요?』 ○경제와 관련 가장많아 시골 지주네집에 삼촌이 놀러왔다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지주는 삼촌의 병치료에 쓸 돈이 아까웠다.삼촌의 병이 점점 심해지자 하는 수 없이 밤에 의사를 데리러 떠났다.그는 절반쯤 가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내 말을 기억하세요.숨이 넘어갈 것이 느껴지거든,필요없이 기름이 타지 않게 꼭 등잔불을 꺼주세요』 한국의 어느 한 거리에서 손님:버스차장! 읍까지 가자면 얼만가요? 차장:1천1백10원입니다. 손님:그럼 짐은 얼만가요? 차장:짐값은 없습니다. 손님:그럼 이 짐을 읍까지 실어다주오.나는 걸어가겠으니. 선생:동문 어째서 다른 동무의 숙제를 해줘요? 학생:왜냐하면 그는 나에게 노임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선생:그럼 돈을 받기 위해 숙제를 해준단 말인가? 학생:예,지금은 모두 제2직업을 찾아 돈을 벌고 있지 뭐예요? 그러니 나도… 형세의 발전을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 비서:국장님,통신대학에서 당신한테로 졸업장을 보내왔습니다. 국장:졸업장? 내가 언제 통신대학에 입학했던가? 비서:2년전에 나더러 입학신청을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까? 교재를 부쳐오면 나더러 건사해두라고 하셨지요.몇차례 시험이 있었는데 내가 시험답안을 만들어 보내지 않았습니까? 국장:그래 그래,생각나오.그런 일이 있었지.잘됐소.당신은 그러느라고지식이 늘어났고,나는 졸업장을 받게 되었으니,우리는 다 같이 소득이 있구먼! 무작위로 게재한 9개의 유머를 살펴볼 때 경제와 관련된 것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관료지탄,일반 우문답(우문답) 순이다.경제분야가 많은 것은 그만치 담화의 중심이 경제이며 일반의 관심사가 경제임을 알 수 있다.지금 연변은 새 경제질서에의 탈바꿈을 하고 있다.
  • 철새낙원 「한강밤섬」/원앙 등 3천마리 찾아와

    ◎겨울진객 8종 열흘정도 빨리 방문/망원경·사진기 든 시민도 크게 늘어 「철새의 낙원」한강 밤섬에 예년보다 일찍 철새들이 찾아와 강물위를 날며 유연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늦가을정취를 더하고 있다. 서울 마포와 여의도 사이에 있는 4만평규모의 밤섬에는 최근 겨울철새인 청둥오리·흰죽지·댕기흰죽지·검은머리흰죽지·비오리 등이 예년보다 열흘정도 빠른 지난 10월20일쯤부터 눈에 띄기 시작,지금은 3천여마리가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이 때문에 밤섬부근 여의도와 난지도·마포대교주위에는 이 겨울철새들을 구경하려고 망원경과 사진기를 들고 찾아오는 시민들이 크게 늘어났다. 한국조류보호협회(회장 김성만)가 지난달 26일부터 밤섬부근에서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천연기념물인 원앙(327호)·쇠부엉이(324호)와 청둥오리·고방오리등 대표적인 한강 겨울철새 8종이 무리지어 터전을 잡고 있다.또 마포대교∼행주대교 사이의 물이 얕은 수중보에는 가마우지 12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밤섬처럼 대도시 한복판에 철새가 찾아드는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며 그 종류도 우리나라의 텃새인 흰뺨검둥오리를 비롯,30여종이나 된다. 조류애호가들은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인공풀밭을 만들고 먹이를 뿌려주는 등 다양한 「밤섬보호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한강종합개발이후 생태계가 급속히 파괴돼 수년전만해도 대량서식하던 일부조류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밤섬을 가로질러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마포구 신정동을 잇는 서강대교가 96년 완공되면 그나마 마지막 남은 밤섬조차도 철새들이 더 이상 둥지를 틀 수 없게 된다.
  • EU에 반덤핑규제 완화 촉구/한 외무/한­EU 각료회담

    ◎EU선 조선설비 확장 중단 요구/EU산 차 수입검사 축소 【브뤼셀 연합】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27일(현지시간) 한국산 수입상품에 대한 반덤핑규제조치를 완화하는 한편 섬유류 및 전자제품에의 일반관세특혜(GSP)부여 중단결정을 재고해주도록 유럽연합(EU)측에 강력히 요구했다. 이날 EU집행위원회에서 열린 제10차 한·EU 연례 각료회담의 우리측 수석대표인 한장관은 양측간 통상현안에 언급,EU측의 빈번한 반덤핑제소로 한국상품의 EU시장진출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면서 이같은 수입규제를 완화해주도록 촉구했다. 그는 이어 EU가 95년부터 시행할 차기 GSP 공여계획을 검토한 결과 한국산제품에 대한 졸업조치의 대상규모가 크고 시행시기가 지나치게 촉박하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섬유 및 신발류 등 경쟁력약화품목과 현지투자업체가 필요로 하는 전자 및 전기부품에 대한 GSP 수혜중단결정을 재고해주도록 요청했다. 한편 EU측 수석대표인 레온 브리튼 대외경제담당집행위원은 세계적인 조선산업의 불황재발가능성을 경고하고 삼성·현대·한라중공업등을겨냥,한국조선업계의 시설확장계획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국정부의 협력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는 또 EU산 모직물에 대한 한국의 조정관세 부과조치가 재연장되지 않도록 요구하는 한편 금융시장개방확대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신정부의 출범이후 경제부문의 규제완화를 추진중이며 민간기업의 생산설비투자활동을 제한할 법적 수단이 없음을 설명하는 한편 모직물수입규제와 관련,EU측 요청내용을 감안해 최종방침을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우리측 대표단의 정의용 외무부통상국장은 유럽연합(EU)산 자동차에 대한 규제완화와 관련,총38개 수입검사항목중 지난 7월 19개 항목을 면제한데 이어 또다시 브레이크 등 4개 항목의 검사를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EU모직물에 대한 조정관세를 현행 19%에서 상당폭 인하해줄 계획이다. 이날 회담에서 양측은 한·EU기본협력협정의 체결을 통해 상호경제관계를 지속적으로 확대발전시키기로 합의하는 한편 증대되고 있는 통상마찰가능성에 대비,조기경보체제도구축해나가기로 했다. 기본협력협정건은 지난 24일 EU이사회에 상정됐으며 오는 12월초로 예상되는 승인이 나는대로 본격적 협의에 들어가 내년 상반기에는 협정체결이 가능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EU대표단은 우리측에게 구소련등 동구권국가들의 시장경제이행에 참여한 경험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대북 경협노력에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나타냈으나 『동구권에서의 예들로 미뤄볼 때 대북한 경제진출에 당장 큰 기대를 갖는 것은 금물』이라면서 서방기업들의 「대북러시」도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 구비문학 발달/설화­민요 생생하게 구전(연변 조선족 1백년:3)

    ◎민담집엔 모국서 사라진 옛날 이야기 가득 중국에서는 이야기꾼(말꾼)을 일반적으로 고사강슬자라 한다.좀 더 구체적으로는 혼자서 수십편 정도를 구술하는 사람을 고사능수,1백편 이상을 구술하는 사람은 민간고사가라고 하는데 사회적으로 우대하는 의미가 있다.혼자서 1백편이상을 구술하는 민간고사가를 높이 찬양하면서 상해문예출판사가 단독민담집을 내어 준 일이 있었다.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중국조선족 김덕순 할머니이다. 「김덕순고사집」(김덕순고사집·1983)에는 88편이 수록되었지만 실제 구술수는 1백50여편이 되었다고 하니 팔순의 할머니가 자랑스럽기만 하다.김덕순 할머니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중국조선족 사이에서는 속속 민간고사가가 발굴되기 시작했다.그 중에 차병걸 노인은 혼자서 무려 설화를 4백20여편,민요 3백여수,속담과 수수께끼 1백여개,판소리 10여편을 1년에 걸쳐 구연했다니 인간문화재가 되고도 남을 만큼 놀라운 구전문학의 산증인인 셈이다. ○혼자 4백20개 이야기 중국의 56개 민족중 인구 1백20여만명 밖에안되는 소수민족이건만 조선민족이 가장 구전문학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중국인 학자들사이에서 공인된 사실이다.필자는 그동안 중국에서 출판되는 중국어·한국어 문자로 된 중국조선족의 설화자료집을 닥치는 대로 수집 해 검토했다.놀라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은 이미 한반도에는 끊겨버린 자료가 생생하게도 살아 구전되고 있는 것이다.또 하나 더 놀라운 사실은 한반도에는 없는 설화가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왕 학회에 참가한 김에 훌륭한 구술자를 만나고 싶다는 제의를 했더니 어렵지 않게 올 여든한살의 심윤철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그는 중국어를 모른다.8살에 두만강을 건넜으니까 중국땅에서 73년을 산 셈이다.그런데도 중국말을 모르고 살았다니 믿을 수가 없다.비록 이국땅이지만 한국민족이 집단으로 살아온 탓일까….중국어가 필요 없었을는지도 모른다.어떻든 이 노인은 구술자임에 틀림 없다.이를테면 상대가 대학교수이든 누구이든 신분에 상관 없이 말문을 연다. 『옛날이야기 한마디 들려 주십시오』하고 정중히 부탁하자 빙긋이 웃으며, 『나야 「옛날이야기」같은건 모르오.「거짓말」이라면 한마디 할 수 있지만』『거짓말?』 놀랍다.이곳에선 민담을 거짓말이라고 한다.그래서 맞장구를 쳤다. 『네,좋습니다.거짓말 한마디 해 주시구려』 이렇게 해서 단숨에 10여편을 듣고서는 점심식사 때문에 중단이 되었다.놀라운 구술자다.물론 교육도 받았을 리 없고,8살에 건너 왔으니 고향인 함격도 단청에서 들은 이야기와 연변에 와서 들은 이야기들일 것이다. 이곳에선 구전설화를 기능별로 구분한다.전설은 「역사」로,민담은 오락중심에서 「거짓말」로,교훈이나 아이들에게 들려줄만한 이야기는 「덕담」이다.그리고 민요는 「참말」이다.민요는 과장도,허구도 없는 마음의 노래이기에 진실되다 하여 참말이라고 한다.진실로 개념설정이 확연하다.바람과 눈과 먼지와 싸우며 기나긴 만주벌의 겨울을 상상만 해도 지겹다.구수하고 짭짤한 「거짓말」과 「덕담」이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살벌한 나날이었을 것이다.그러므로 이야기가 보존될 수 있었고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민요는 「참말」로 표현 「옛날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그는 장례식이 끝나자 아버지 묘옆에 초막을 짓고 수묘를 시작했다.산 짐승들도 효자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을 했는지 해치기는 커녕 먹을 것을 갖다 주거나 추위를 이기도록 덮어주기도 했다.이렇게 3년 수묘를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중병에 걸렸다.효자는 용한 의원을 찾아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다.끝내 아들은 유명한 점쟁이를 찾았다. 『자네 어머니는 약으로는 낫지 않네.오직 한가지 천년두골에 쌍룡수(천년두골쌍용수)라면 모를까』아들은 통사정을 했다.점쟁이는 『이 약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 있다네.천년 묵은 해골에 물이 담겨 있고 지렁이 두마리가 있을걸세.그것을 가져다 먹이면 낳을걸세』효자는 마을 사람에게 어머니의 간병을 부탁하고 깊은 산으로 향했다.기진맥진 했으나 참고 참았다.갑자기 큰 호랑이가 나타났다.효자는 뜻도 이루지 못한 채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것을 생각하자 호랑이가 무섭다기 보다는 몹시도 얄미웠다. 『호랑이야,넌 산중의 왕이다.나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고 약을 구하는 중이다.날 꼭 잡아 먹어야 직성이 플리겠거든 어머니 약이나 찾은 다음에 잡아먹거라』하고 통사정을 하자 호랑이는 털썩 꿇어앉았다.효자는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이내 호랑이 등에 올라 탔다.호랑이는 효자를 등에 태우고 날듯이 바람같이 산을 몇겹이나 넘었다.호랑이가 선 곳을 둘러보았다.그곳에 과연 천년 묵은 해골이 있고 속에는 물이 담겨 있는데 지렁이 두마리가 있었다.효자는 그것을 조심스레 들고 다시 호랑이 등에 올라 탔다.눈 깜짝할 새에 마을앞에 닿았다.효자는 약물과 지렁이를 어머니에게 대접했다.그러자 어머니는 자리를 툭툭 털며 일어나더니 배가 고프다고 했다」.예로부터 만물이 효자를 돕는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는가 보다. 『내가 아직 1백살도 안 먹었는데 이게 덕담이란겝니다』 이렇게 한마디 붙이는 구술형식을 보더라도 구전설화가 체계적으로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비록 소수민족이지만 도덕과 덕성을 기르는데 이 구전설화가 얼마나 큰 몫을 했는가 짐작이 간다. 고무적인 것은 12억 중국의 인구중에서도 1백20여만명 밖에 안되는 중국조선족의 정신적·문화적 유산인 구전설화가 보존되고 전승되는 현장이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새들의 종합병원」 새운다/2백평 진료센터 내년5월 개설

    ◎조류보호협회 요청 서울시 적극 수용/전국각지서 신고전화 걸면 현장 출동 서울에 조류보호진료센터가 내년 5월쯤 건립돼 병들거나 부상당한 새들을 입원·치료하는 새들의 종합병원 역할을 맡게 된다.이같은 계획은 서울시가 한국조류보호협회(회장 김성만)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뤄진 것으로 2백평 규모의 진료센터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현재 구체적인 실무작업을 진행 중이다. 협회는 그동안 작은 규모이지만 용산구 한강로 2가 82의2에 새병원을 운영,사고나 환경오염으로 병든 새를 입원치료,건강을 되찾게 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15년동안 해왔다.협회에서 치료를 받고 보금자리로 돌아간 새는 연간 약 2천마리.밤낮을 가리지 않고 각지에서 걸려오는 신고전화를 받고 회원들이 현장으로 출동,부상정도에 따라 2∼3개월의 치료를 하고 있다. 김회장은 『새들의 천국을 만들어 새가 마음놓고 노래할때 우리 자연은 환경이 인간을 더 이상 위협하지 않는 곳이 될 것』이라며 『조류보호센터가 건립되면 더 많은 새들을 체계적으로 보살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이밖에도 어린이들에게 자연현장 교육,새모이 주기 등 자연과 인간의 친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도 벌이고 있다. 협회는 80년 1월 김성만 회장이 사재를 털어 사무실을 마련하고 회원 30여명으로 출발,지금은 전국 10개지회에 4만5천여명의 회원을 갖고있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협회는 인공새집 달아주기를 연중 실시해 현재 4천여개의 새집을 달아주었으며 도심속에서 자연을 느끼도록 도시근교 야산에 박새,진박새 등을 불러들이는 일도 하고 있다.또 서울 근교의 밤섬을 비롯해 철새 도래지인 철원·연천 등지에 옥수수·밀·보리 등 새먹이 5천여㎏을 공급해왔다. 이밖에 기업체들에게 1사 1조보호운동을 벌이도록 유도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몸보신이나 취미삼아 자행되는 밀렵을 막기 위해 전국 조직망을 가동,밀렵감시 활동을 펴고있다. 지난 8월 협회는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 지키기 운동 환경감시위원으로 61명의 임원을 위촉시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부상당하거나 병든 새를 발견한 시민들은 (02)797­4756∼6으로 전화하면 새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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