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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포상공인 지원 강화/정착돕게 본국과 경제교류 지속추진

    ◎황총리,93세계한인상공인대회서 강조 황인성국무총리는 19일 상오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열린 「93세계한인상공인대회에 참석,『문민정부는 세계각지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해외교포들이 자조와 자립의 정신으로 거주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교민정책의 기본목표로 삼고있다』고 말했다. 황총리는 이날 치사를 통해 『정부는 특히 우리 교포사회가 경제력의 축적을 통해 거주국에서 견고한 사회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교포상공인들과 본국과의 경제교류를 촉진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총리는 이어 『오늘의 국제사회는 이념을 축으로 한 기존의 국제관계가 퇴색하고 경제우선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면서 경제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경제전쟁을 슬기롭게 이겨나갈 때 우리나라는 경제의 재도약을 이루고 대망의 선진국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을 본받자” 각국 거듭나기 안간힘

    ◎서울,동아시아 「개혁의 메카」로 “우뚝”/“청정정치·경제도약 최적의 모델” 평가/신국제질서와 맞물려 몽골까지 영향 「동아시아에 부는 개혁바람」­그 메카는 서울인가. 지난 4월 중국의 북경일보와 인민일보는 김영삼대통령의 개혁을 이례적으로 보도했다.특히 광명일보는 「국수 한그릇과 1만5천달러」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의 개혁과 검약정신을 우리 중국도 본받자고 역설했다.잡지들도 새정부 출범후 한국내에서 취해지고 있는 군개혁,공직자 재산공개,부패척결등 일련의 개혁작업을 주된 화제기사로 다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신문 이례적 보도 전기침외교부장은 지난 5월말 우리나라를 방문,김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국무위원들과 칼국수로 오찬을 함께 한 것이 중국신문에 보도됐고 일반인에게도 화제』라고 말해 이를 확인한 바 있다.우리의 개혁이 선진사회 진입을 위해 청정정치를 추진중인 중국에 구감이 되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태국의 사이암 라스지도 「과거 청산」이라는 사설을 통해 『김대통령의 개혁은 모든 나라가 본받아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이 신문은 아시아제국중 군부의 영향력이 막강한 대만·중국·미얀마·태국등이 비슷한 문제에 당면해 있다고 덧붙임으로써 개혁수출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다.아세안(ASEAN)회원국인 두 나라 모두 2천년대의 비전을 위해 힘차게 뛰고있다.라모스대통령의 「필리핀 2000년 계획」,마하티르수상의 「비전 2020」이 그것이다.두 나라의 정책목표는 『지금 도약하지 않으면 영원히 3류국가로 전락한다』는 위기의식에 기초하고 있다.『지금이 신한국 건설의 최적기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역사의 죄인』이라는 우리의 판단및 현실인식과 그 궤를 같이 한다.도약을 가로막는 내부의 장애요인과 신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에 있어 서로 동일한 것이다. 한때 아시아 최대 선진국이었던 필리핀은 낙후의 원인을 관료사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로 꼽는다.우리의 「위로부터의 개혁」과 비슷한 처지이다.필리핀은 현재 이에대한 매서운 숙정을 진행중이다.라모스대통령은 먼저 부패의 온상인 경찰과 군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하고 있다.경찰지도부 63명을 해직하고,경찰청장을 면직조치했다.5월말 김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개혁정책을 교훈으로 삼겠다』는 각오를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는 셈이다. 아세안에서 말레이시아 마하티르수상의 발언권은 상당히 센 편이다.말레이시아는 지난 7월말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확대외무장관회담에서 아·태경제협력체(APEC)지도자회의 개최에 반대 입장을 보인 유일한 국가이다.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아세안국가 중심의 경제공동체(EAEC) 구성이 반대 이유이다.마하티르수상은 기회있을 때마다 『오는 2002년이면 태평양지역의 경제규모가 서구경제의 2·5배에 이를 것』이라며 역내 개방적 자유무역을 주창한다.이의 지향목표는 결국 경제도약을 통한 말레이시아의 선진사회 실현이다.그래서 그들은 아직까지는 버거운 경쟁국인 우리의 개혁추진 방향과 경제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재산공개 도입추진 몽골은 우리의 공직자재산공개를 도입키 위해 기초조사를 추진 중이다.최근 우르진 주한대사는 본국의 지시에 따라 총무처를 방문,공직자윤리법의 시행방안·공개방법등 자료를 수집해 갔다.우르진대사는 『세계가 개혁시대를 맞고있어 우리도 예외일 수 없지 않느냐』고 도입 추진이유를 댔다. 일본과 대만의 경우도 정권교체가 이뤄지고,집권당이 분당되는등 격변을 겪고있다.일본은 자민당 집권 38년만에 비자민연립 정권이 탄생했고 대만은 국민당 집권 44년만에 분당사태를 맞았다.두 나라 개혁의 공통점은 정치행태및 정책결정의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총론은 우리의 정치개혁 방향과 비슷하나 우리 개혁의 출발점이 구태의 척결이라는 점에서 각론은 그 궤를 약간 달리한다. 다만 공직자재산공개등 청정정치의 정착을 위한 김대통령의 개혁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있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대만은 지난 7월 공직자재산법을 통과시켜 시행을 눈앞에 두고있다.지난 7월 집권 국민당에서 탈당,신당을 결성한 소장파의원들의 주장은 어찌보면 우리와 유사한 대목이 많다. 지난 5월 통과된 일본의 의원재산공개법도 새정부 출범후 김대통령의 재산공개로 시작된 우리의 공직자 재산공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정설이다.그러나 일본의 개혁속도는 우리처럼 빠르진 않을 것이다.그것은 일본의 정치개혁이 자민당 1당 독주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에서 시작돼 경제력에 맞는 국제적 지위 향상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선거제도·정당법·정치자금법의 개정으로 압축되는 일본의 개혁은 따라서 신국제질서와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게 옳다.그러나 인적및 물적교류 상황과 국제적 유대라는 측면에서 볼때 한·일간의 정치개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수 밖에 없다. ○부패척결등 모범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에 강한 개혁바람이 불고 그들에게 우리의 개혁이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이유는 뭘까.한마디로 탈냉전에 따른 국제질서의 재편이다.미국이나 소련의 우산이 더 이상 필요없게 돼 국민 지지의 동인이던 군사적 이유가 감소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이에 대처할 자구책을 찾는 작업이 개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군사적 이유,즉 냉전의 첨병이 한반도였고 그것은 한국의 역대 군사정권을 어느 정도정당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그런데 그 한국에서 문민정부가 탄생,군개혁을 서두르고 오랜 군사문화가 쌓아온 부패를 척결,경제재도약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과거 「한강의 기적」처럼 모범이 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인 총리 새달 방한/청와대 공식발표

    나라시마 라오인도총리가 오는 9월 9일부터 11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공식방문한다고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이 20일 발표했다. 라오총리는 방한중 김영삼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신국제질서,북한핵문제등 한반도 주변정세,양국간 통상및 경제협력증진·문화교류등 상호 관심사에 관해 협의할 예정이다. 이번 라오총리의 방한은 인도총리로서는 처음이며 양국간 기존우호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양국간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한·일관계 대전환 지금이 적기다/한승주 외무부장관(특별기고)

    한·일 양국은 다른 어느 두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다.그것은 갈등의 역사와 함께 숙명적으로 협력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관계를 흔히 프랑스­독일 관계나 폴란드­러시아 관계와 비교하기도 한다.그러나 우리 민족과 역사가 입은 상처와 피해가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한·일 관계의 특수성이 있다.비록 역사가 그러하지만 이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를 지향할 때가 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강조되어야 할 것이 있다.미래 지향적 자세가 결코 과거사를 잊는다는 것이 아니다.반대로 일본이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평가할 때 비로소 과거사가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며,그 기초 위에 양국관계가 미래 지향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올바른 인식과 평가라는 문제가 한두 가지 사건의 해결이나 정책의 선언으로 매듭지어질 사안은 아니다.그러나 일본측이 이를 위해서 기울이고 있는 노력이 있다면 이를 평가하고 고무해야 할 것이다.최근 정신대의 강제성 인정이라든가 호소카와 신임 총리의 침략전쟁 자인같은 것이 그것이다.우리는 일본의 노력이 지속되어 일본 국민이 역사에 대해 올바른 인식과 평가를 할 것을 기대한다. 과거사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나 이것이 한·일 관계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한·일 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며,경제면에서 또 국제 정치면에서 숙명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고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갖고 있다.실제로 양국간에는 경제통상,한반도,지역문제,국제무대 등 제분야에서 기본적으로 호혜적인 협력 관계가 구축되어 가고 있다.우리 자신의 국익을 위하여도 한·일 관계를 합리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있다.여기에 한·일 관계가 과거사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양국간의 관계에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점이다.한국과 일본이 바뀌고 있고 또 주변상황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30여년 만에 마침내 문민시대가 도래하여 내정과 외교에 일대 혁신을 기하고 있다.일본도 40년에 가까운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끝나고 전후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새로운 정치인들이 나서서 개혁을 모색하고 있다.그뿐 아니라 한·일 양국의 주변질서도 본질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화해와 협력의 국제 조류와 함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국가간 상호 의존성이 증대되고 있다. 변화는 기회를 내포하고 있다.우리가 모색하여야 할 바람직한 한·일 관계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유럽국가들의 관계처럼 상호 대응하고,지역 및 국제문제에 있어서 협력해 나가는 관계로 되는 것이다.물론 일본의 경제력이 우리보다 몇배나 크고 또 풀기 어려운 무역역조 문제가 있기는 하다.그러나 우리도 GNP 세계 15위,아·태지역의 중견국가로 성장했다.우리는 이제 사회 응집력 강화와 국내 경제력 배양을 통하여 당당한 위치를 확보함으로써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설정해 나가야 한다. 한·일 양자관계를 넘어 그밖의 세계로 눈을 돌려 볼때 국제공조 차원에서 양국간에는 서로 돕고,서로에게 이득을 주는 관계가 설정되고 있다.현재 한반도문제나 북한 핵문제 뿐만 아니라 UN,G­7,UR,APEC 등 지역적,국제적 차원에서 양국간의 협력은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한·일 양국간의 국제 공조체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상정해 볼때 일본의 정치군사적 역할증대가 문제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그러나 우리는 막연히 걱정하는 차원을 넘어 현실속에서 대처해야 한다. 일본이 강력한 경제력을 유지 발전시키는 한 우리의 선호에 상관없이 앞으로 일본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그러나 이는 동시에 일본이 국제질서에 깊이 연루되어 국제질서로 부터 그만큼 크게 제어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우리로서는 증대될 일본의 정치외교적 역할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수세적인 자세만을 취할 것이 아니라 이를 우리에게 이롭게 하겠다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한·일 양국이 바뀌고 세계가 변화함으로써 한·일 관계는 피해를 주고 받는 영합(zero­sum)의 관계라기 보다 호혜적인 협력의 관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의 힘이 커질 것이나 우리의 힘도 또한 커질 것이다.우리로서는 호혜적인 국제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한·일 양국은 모두 한세대에 해당하는 기간동안 지속되었던 정치체제가 전환되는 역사적 시점에 도달해 있다.두나라 사회는 모두 빠른 속도로 국제화되고 있다.양국에 모두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양국관계도 바뀌어 가고 있다.한·일 양국민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우리가 일본을 동등한 상대로 생각하고 또 일본도 우리를 동등한 상대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외교·방위 전략(호소카와 새 일본:6·끝)

    ◎미 예속 벗어나 「독자적 대국」 노려/「침략 사죄」 새 동아패권정책 예고/연정취약성 감안 당분간 현 정책 고수 『일본은 냉전이후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 총리가 지난 7월에 발표한 일본신당의 정책이념이다.일본의 이같은 국제적 역할강화는 단지 호소카와총리의 정책이념만은 아니다.이는 곧 일본의 뉴리더들이 공통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21세기 일본의 국가상이기도 하다. 일본의 외교정책은 물론 당분간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비자민세력은 지난달 29일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한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헌법의 이념과 정신을 존중하고 외교·방위정책은 지금까지의 정부정책을 계승」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타 쓰토무 신임 외상도 9일 취임기자회견에서 『자민당 외교정책의 계승』을 천명했다.호소카와정부가 이같이 자민당정권 외교정책의 계승을 천명한 이면에는 연립정부에 참가하고 있는 각당의 정책차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깔려 있다.연립정부는 각 당의 서로 다른 외교·안보정책을 일체화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계승」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정책과 이념의 차이를 일단 묻어두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과도적 성격의 호소카와내각은 사실 통일된 외교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할 여유와 역량도 없으며 또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문제는 일본외교가 정계변화의 과도기를 거쳐 장기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연립정부의 가장 큰 외교정책 과제는 호헌과 자위대의 해외파견등에 반대하는 사회당과 다른 당과의 기본정책 차이의 조율이다.그러나 사회당은 이번 총선에서의 역사적 참패로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다.더욱이 연립정권에 참여함으로써 사회당 고유의 정책은 그 빛을 잃고 국제공헌을 강조하는 보수화물결에 용해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외교가 가는 방향은 결국 신보수화와 함께 강력한 정치대국화쪽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뉴리더들이 제2차대전의 「전쟁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호소카와총리와 하타외상 등은 일본의 아시아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말한다.이들의 적극적인 과거청산 발언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그러나 역사적 경험으로 볼때 일본의 아시아패권정책의 「불길한 예고」라고도 할 수 있다.신세대 지도자들은 「과거사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있다.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같은 뉴리더들은 『일본은 아시아에서 분쟁해결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신세대 지도자들의 등장으로 일본은 미국의 세계전략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 보다 독자적인 외교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도쿄대의 이노구치 다카시교수(국제정치학)는 『뉴리더들은 미국의 종속적외교로 부터 독자적인 외교로의 전향을 추구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일본연구서의 「고전」으로 불리는 「일본권력의 수수께끼」의 저자 카렐 반 월페런도 아사히(조일)신문과의 대담에서 『해외에 거대한 자산을 가진 국가가 군사력으로 이를 보호하지 않는 시대가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라며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일본의 적극적인 국제역할의 가능성을 짚고 있다.일본정치구조의 역사적 대전환은 결국 냉전후 새로운 세계질서 창출에서 일본의 국제적 역할 강화를 겨냥한 거시적 변화의 시작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 연립정부 출범을 보는 서울의 시각(호소카와 새일본:4)

    ◎일의 대북정책 “당분간 불변”/오자와 그룹의 「일본개조계획」 주시/과도기정권 규정… 「생명력」 낙관유보 정부는 일본 호소카와(세천)정부가 공식 출범하자 성명을 통해 곧바로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그리고 기존의 긴밀한 우호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아가길 기대했다.떠나는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가 이끈 자민당 정부에 대한 사의 표명도 빠뜨리지 않고 적시했다.비록 세 문장의 짧은 성명이지만 이 속엔 호소카와정부의 출범을 보는 정부의 기본 시각이 함축되어 있다. 한일관계가 더욱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듯이 정부는 대한정책등 일본의 외교정책이 당분간은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그 근거로 비자민 「8정파 정권」의 최대 목표가 38년만의 비자민정권 탄생에 있었다는 점을 들고있다.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8개 정파는 정파간 상이한 정책들에 대한 조정을 새 정부 출범이후로 미뤄놓은 상태이다.그래서 아직까지 연립정권의 국정운영 노선및 방향,즉 통일된 정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무엇이 담길지 불투명하다.그러나 8개 정파의 성격상 통일된 정책을 내놓기란 연립정권의 출범작업보다 더 어려워 자칫 연립의 붕괴까지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호소카와새총리는 일본신당을 이끌때만 해도 잡지 문예공론을 통해 「5조엔의 관세수입」등을 주장했으나 연립정권의 총재로 선출되자 타정파의 반발을 우려,즉각 취소했다.통합된 정책 마련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여기에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의 반격이다.5일로 예정된 중의원 구성과 호소카와총리 선출이 늦어진 것도 결국 자민당이 주장한 호소카와의 정책연설 요구때문이다.아직 통일된 정책이 없다는 점을 역이용,일본국민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려는 것이 자민당의 전략이다.자민당은 앞으로도 계속 연립정권의 이 점을 건드릴게 분명하다. 따라서 연립정권은 외교정책등 주요정책에 대해 당분간 손대지않고 입장천명도 회피하는 자세를 견지할게 확실하다.외교전문가들은 『일본정국의 새 리더들이 역량을 발휘하긴 시기상조』라고 지적하며 안보문제,외교기본정책등은 당분간 관리들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새 리더,특히 신생당의 실질적 「소유자」인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그룹의 등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은 복잡하다.오자와는 최근 우리 정부관계자들 사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인물이다.정부의 한 당국자는 『6개월뒤 자민당이 다시 집권하든 비자민연립 정권이 계속되든 미야자와총리같은 전전세대의 인물을 우리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이는 일본의 새 리더들이 한일관계에 있어 미안함과 일종의 죄책감을 가진 세대들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특히 오자와그룹은 「총체적 대국으로서의 일본」을 지향하는 어찌보면 과거에 대해 「향수」비슷한 것을 갖고있는 세대들이다.오자와가 신일본 구상으로 내놓은 「일본개조 계획」에는 그들의 지향점이 잘 드러나 있다.헌법을 개정하고 군사적 대미의존도에서 벗어나 자주역량을 갖추는등 기존 한·미·일 3각 동맹관계는 물론 국제질서 변화를 초래할 내용들이 태반이다. 그들의 성격은 새로 선출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자민당총재의 총재경선때 행한 연설에 잘 나타나있다.고노는 당시 『군국주의의 색채가 짙은 정치운영을 기도하는 세력』에 비유했다. 이 그룹의 등장에 대해 정부의 뾰족한 대응책이 있는 것같지는 않다.정부도 당분간은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자세이다.정책노선이 다른 연립정권의 생명은 결국 막후 정치력에 달려있다.호소카와 중심의 막전과 오자와그룹의 막후라는 운영의 이중성이 어떻게 돌아가느냐가 그 집권시기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따라서 연립정권은 과도기적 성격의 정권이며 신당사키가케의 다케무라를 관방장관에 기용하고 사회당의 도이(토정)전위원장을 중의원의장으로 임명한 것등을 보면 연정의 장래가 꼭 밝지만은 않다는 것이다.그래서 떠나는 미야자와정부에 대한 사의표명을 빠뜨리지 않은 것이다. ◎거대야당 자민의 진로/내부개혁 부진땐 제2분열 가능성/소선거구 후보조정 난제… 재집권 비관론 우세 「자민당 신화」는 과연 되살아날 수 있을까.자민당이 38년간의 장기독점지배라는 정치신화와 함께 일본을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업적을 이룩한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그러나 그 자민당은 부패와 자기개혁 실패로 내부로부터 무너졌다. 자민당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신당대표가 6일 비자민연립정부의 총리로 선출됨에 따라 아뭇소리 못하고 야당으로 전락했다. 자민당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신임 총재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당의 재생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자민당의 최대 당면과제는 다음 선거에서 승리,정권탈환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강한 결의를 천명했다. 자민당이 고노 전관방장관을 새 총재로 선출한 가장 큰 이유는 다음 선거에 대한 준비라 할 수 있다.고노는 정조회장으로 임명된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전대장상과 함께 자민당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은 정치 지도자이다.자민당은 인기가 높은 이들을 당의 얼굴로 내세워 다음 선거를 치르겠다는 계산이다. 고노총재의 지상명제는 다음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회복,정권을 탈환하는 것이다.자민당은 이를 위해 연립정권에 대한 강도 높은 공세를 구상중이다.자민당은 국회질의에서 장관을 지낸 중진 의원을 질의자로 내세워 날카로운 질문과 정책논쟁으로 많은 정책 차이를 보이고 있는 연립정권의 기반을 흔들어 놓는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연립정권은 자민당의 이같은 공세에 정책의 불협화음을 내며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더욱이 자민당은 2백27석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일뿐만 아니라 풍부한 행정경험과 관료조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연립정권에는 무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민당은 반복되는 정치자금 스캔들 등의 구조적 부패와 파벌중심의 당운영체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정치평론가들은 말한다.그래서 자민당은 국민의식의 다양화와 시대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스스로의 개혁이 필요하다. 고노총재는 「참신한 자민당」을 구상하며 개혁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미 당3역 인사에서 파벌안배라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도력의 한계를 보였다.그의 더 큰 과제는 소선거구제로 바뀔 다음 선거에서의 후보자 조정문제다.현역의원이 많은 자민당의후보자 조정은 매우 어려운 과제로 고노가 어느 정도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자민당내에는 후보자 조정이 제대로 안될 경우 파괴적 참패를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다.비자민세력은 연립정권을 탄생시킨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대표간사에 의해 후보자 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제2핵분열의 위험성도 안고 있다.자민당이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개혁파들이 당을 떠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는 자민당이 다시 분열될경우 이들과의 제휴를 계산하고 있다. 자민당의 최대의 구심력은 집권당이라는 메리트였다.그러나 야당으로 밀려나면서 그 구심력이 사라지고 있다.자민당은 재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한동안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 호소카와 지도력「일 새정치」변수/변화 내세워 등장… 클린턴과 비슷

    ◎각계 의견 정책반영은 「케네디형」/중앙무대의 경험적은 불안요인도 일본의 다음 총리가 될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신당대표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전환기를 시대배경으로 등장한 신세대 지도자들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호소카와 차기총리(55)와 클린턴대통령(46)은 모두 전후세대 지도자들이다.이들은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의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는 전환기에 「변화」를 앞세우며 최고 지도자로 나서고 있다. 이들이 최고 지도자로 등장한 사회적 배경에도 유사점이 많다.클린턴대통령이 등장할 때의 미국정세는 높은 실업률 등 경기불황에 대한 불만과 하원의원의 「수표부정」사건 등 일련의 스캔들로 국민들이 워싱턴정치에 회의를 나타내고 있었으며 일본에서도 정치자금스캔들이 반복돼 정치불신이 극에 달했다. 호소카와대표와 클린턴대통령은 모두 지사를 지낸 공통점도 갖고 있으며 기성체제를 비판하며 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루었다.호소카와대표는 일본 남부의 구마모토현지사를 지냈으며 클린턴대통령은미국 남부 아칸소주지사를 역임했다.호소카와는 지사시절 중앙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등 「지방의 반란」을 주도했다.그는 자민당중심의 이익유도형정치를 비판하며 「기성정치체제」의 해체를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인 중앙정치의 경험부족은 국정운영의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변화를 바라는 미국인들의 지지로 대통령이 됐지만 정책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등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호소카와대표도 총리가 됐을 경우 국정운영의 미숙함이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사고 있으며 정책결정 과정에서 클린턴대통령처럼 우유부단할 불안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호소카와대표는 매우 건전한 정치의식을 갖고 있는 면도 있다.그는 『권력은 10년이 지나면 부패한다』고 지적하며 지사3선 불출마를 선언,지방정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 더욱이 다음 정권은 정치개혁을 위한 잠정정권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정치개혁뿐만아니라 국제공헌,경기대책,지방분권 등 중요정책과제를 다루는 「본격정권」을 지향하고 있다. 연립정권의 이같은 장기집권 구상은 ▲국민들의 신뢰도를 높이고 ▲연정에 참가하는 각당의 정권담당을 통해 관계를 긴밀히 하며 ▲자민당의 정권탈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호소카와 내각」이 어느 정도 오래 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연립정부내에는 정책차이 등 많은 불안 요인이 있으며 호소카와대표의 정치지도력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호소카와대표의 정치스타일도 아직은 불확실하다.그러나 많은 학자·지식인 등과의 연계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 점은 케네디 전미국대통령과 비슷하다. 일본정치변화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는 호소카와대표는 과연 「일본의 케네디」가 될것인가 아니면 「일본의 클린턴」으로 머물 것인가.호소카와대표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고 있는 전환기의 일본정치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 일 정국 변화 예각 조명/윤정석 중앙대교수·정치학(특별기고)

    ◎“새국제질서 대응” 일정계 개편 현해탄을 가운데 두고 동서의 연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개혁은 그 방향과 의미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한국의 정치개혁은 권력구조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진게 아니라 과거의 구조적 부패를 정상화하는 「Sane Society(정신적으로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엄격히 말해 사회적 변화,국가의 국제적 역할변화와는 무관한 것이다.그러나 일본이 추구하는 정치개혁은 돈과 권력은 단절시켜 새로운 지도세력(leadership)을 구성하는 정치권력구조의 변화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혁신계 인사가 대거 탈락하게 되는 선거결과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정치적으로 이념적 대결은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일본국민들이 새로운 일본의 국제적 역할증대를 부축해주기 위해 국내 정치세력의 재편을 이끌어준 것이다. 7·18선거결과로 나타난 보수정당의 약진이 곧 일본정계의 분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향후 기존의 자민당과 그밖의 7∼8개 정당들이 대결하는 보수정치의 새로운 구도가 잡힐 것이며정치제도개혁을 주도하는 탈당그룹과 대중적 지지를 받고있는 일본신당 등 3개정도의 보수당이 연립형태의 정치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1·5정당체계로 자민당이 40년 가까이 독주해온 체제를 서구의 학자들은 오히려 비민주적인 「일본적 민주체제」라고 비판해왔다.한국정계는 정치권력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여당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권력집중에 관심을 갖고 일본식의 여당장기집권을 노렸으며 이를 위한 정당의 이합집산이 심했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국제적 상황은 여당인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같은 사실을 일본국민들은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보·혁대결의 과거 정치과정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결정적 역할증대를 저해했고 자위대의 새로운 역할과 보수적인 헌법의 필요성을 기존의 권력구조로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본국민들은 인식하고 있으며 적어도 보수세력간의 견제를 통한 국정운영을 추구하도록 새로운 리더십을 구성케 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엘리트중심 정치는 점차 대중적 인기가 있는 정치지도자로 교체되는 추세에 있다.젊고 확신과 지역적 기반이 분명한 정치인들이 새로운 당의 이미지를 내걸고 등장한 것이 바로 그 좋은 예다.일본신당의 호소카와(세천),개혁파인 신생당의 하타(우전),탈당파인 신당 사키가케의 다케무라(무촌),자민당의 와타나베(도변)나 고노(하야)같은 정치 지도자는 과거의 지도자들보다 젊고 대중적 이미지가 신선한 의원들이다.때로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들이라서 전문가들의 판단까지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일본정치의 저류를 보면 일찍부터 이들의 부상이 자민당의 여러 정파속에서 예견돼 온게 사실이다.이들은 대체로 30년대 출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경험은 없으나 젊어서부터 전후의 새로운 교육과 사회생활을 해온 사람들이다.동시에 국제화의 인식이 강하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이들은 또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구태의연한 정치 지도자들도 아니다. 그렇다고 보면 한·일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기 쉬우나 변화가 있다면 일·북한관계의 급진전과 우리의 대중국 접근의 견제가강하게 드러나는 정도가 될 것이다.소련에 대한 공포감은 과거의 정치 지도자들보다도 크게 줄어들 것이고 미국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이미 경제대국이 됐을 때 성인으로 생활해온 자존심이 강한 합리적 일본지도자들이다.한·일간의 특수관계는 인정하지도 않고 그러한 이해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아시아의 여러나라가 요구하는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해서 떳떳하게 밝힐 것이지만 그 이상은 없을 것이다. 일본정치를 들여다보는 전문가들에게는 근간의 정계개편이 예정된 시나리오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이다.7·18총선 결과가 일본국민들에게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마치 정치 지도자들이 지리멸렬하며 방향을 잃은 것같은 「우리식 판단」에서 나온 분석이 언론에 많이 보도됐다.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굳은 국가목표를 앞세우고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질서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국내정치의 구조적 조정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1∼2년후가 되면 새로운 구도를 갖춘 일본정치는 강한 의지로 패전 50년을 맞는 1995년을 기점으로 삼아 21세기를 이끌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며 큰 발걸음으로 우리의 앞을 걸어갈 것이다.
  • 남사군도 영유권분쟁 가열/중국,「서도」에 활주로 건설 확인

    ◎석유·가스 많은 자원 보고/베트남·대만 등 서로 “눈독” 일시 휴면상태에 빠져 있던 남·서사군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다시 증폭될 조짐이다. 아세안 확대회무장관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중국외교부 대변인이 26일 중국은 이미 남중국해상의 남사군도 북방 서사군도에 비행 활주로 건설을 완료했다고 확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남·서사군도는 기왕에도 석유,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의 보고로서 주변국간 경제적 이해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곳.그런데 이번에 유사시 중국 본토로부터 남사군도까지의 비행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서사군도의 활주로 건설사실이 확인됨으로써 군사적 이해까지 걸려 영유권 분쟁이 더욱 가열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중국과 벌어지고 있는 이곳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베트남을 필두로 대만,아세안제국 등이 이해당사자로 얽혀 있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중국이 특히 지리적으로 베트남에 가까운 남사군도에까지 영유권을 주장하는 명분은 이 섬들이 명나라의 영토였다는데 기인한다.이런 이유로 중국은 1947년당시 베트남 영토였던 서사군도를 침공한데 이어 지난 88년엔 남사군도의 6개섬도 점령하고 말았다. 현재 남사군도에는 중국과 베트남이 각각 자국의 영토임을 내세워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고 주변국들은 공동관리를 주장하는 등 해결의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또한 베트남 등이 국제적 차원에서의 해결을,중국이 쌍무적 차원에서의 해결을 각각 주장하고 있어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남·서사군도의 영유권 분쟁은 언제고 분쟁 당사자 차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그것은 새로운 국제질서하에서 중국이 추진중인 「중국에 의한 평화」라는 이름의 신패권주의가 몰고 올 파장일 것이다.
  • 「아태안보포럼」 구성 확실시/아세안 확대외무회담 안팎

    ◎미온적 자세 탈피… 미·일 공식참여 선언/“탈냉전시대 새 기구 필요성” 집중 논의 아세안 6개 회원국과 이들의 대화상대국인 한국·미국·일본·호주·캐나다·뉴질랜드·EC등 7개국이 함께 참가하는 아세안확대외무장관회담(ASEAN­PMC)이 26일 부터 이틀동안 싱가포르에서 개막됐다. 이번 확대회담의 주요 의제는 냉전종식후 아시아·태평양지역 안보를 위한 「아시아지역 포럼」(ARF)및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구성이다.여기에 11월 미 시애틀에서 열릴 APEC지도자회의 참가와 캄보디아지원문제,우르과이라운드협상등이 중점 토의될 전망이나 핵심은 뭐니해도 역시 정치·안보와 경제문제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의 의미는 탈냉전후 새로운 안보틀을 형성할 지역안보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다는 점을 들수 있다.그동안 중국의 군사력 증대,일본의 캄보디아 파병등 물밑에서의 개편 움직임을 보다 현실화해 대처방안을 본격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24일 끝난 아세안 각료회의(AMM)가 아·태지역의 안보협의를 위한 ARF 안을 채택,내년 방콕회의에서 창설회의를 가질 것을 공식 제의하면서 가시화 됐다.이번에 참석한 18개국이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 성격의 대화기구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는 냉전종식후 국제질서 재편에 따라 미국이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감축할 경우 그 공백에 중국이나 일본이 채워진다면 기존의 판도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경계심리의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말레이시아·대만·베트남등 여러국가들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남사군도문제는 이 지역내 화약고다.언제든 지역 또는 민족간 분쟁의 소지를 안고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세안국가들은 이 문제에 대한 무력이 아닌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고,나아가 대화상대국과 초청국·옵서버국을 포괄하는 ARF의 구성을 제의한 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아세안국가들은 제의만했을 뿐 구체적 방법이나 시기를 밝히지 않아 어떤 모습을 갖출지는 아직 예측이 어렵다.다만 그동안 다소 미온적이던 미국과 일본이 공식 참여를 선언해 ARF의 구성은 거의 확실시 된다.미국의 참여는 아세안국가들이 ARF를 이 지역내미 군사력의 대체차원이 아닌 보완적 측면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이같은 변화는 이 지역내에 소유럽안보협의회(MINI­CSCE)와 같은 다자간협의체의 설치를 촉진시킬 전망이다.우리도 미·일·중국·러시아가 참여하는 다자안보대화를 구상중이다. 문제는 전략상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미국은 클린턴대통령의 신태평양공동체구상에서 처럼 APEC를 중심으로 안보와 경제공동체문제를 해결하려 하고있다.그러나 아세안은 안보는 미국과의 양자관계와 ARF를 통해,경제는 APEC에서 라는 역할분담을 꾀하고 있다.즉 지역 안보문제는 아세안이 주도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이번 각료회담에서 EAEC를 APEC 산하의 지역기구로의 활동을 결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어쨌든 다소의 이견에도 불구,이번 회담에서는 대화상대국·초청국·옵서버국등 아·태지역을 거의 망라한 18개국의 ARF와 EAEC에의 참여선언이 있을 전망이다.
  • 아태안보기구 「지도자 포럼」 토의/아세안외무 오늘 싱가포르서 회동

    ◎러시아·중국·베트남 등 신규 참여/기존회담 확대… 안봉·정치 등 논의/클린턴 「APEC정상회담」 제의엔 부정적 올 아세안(ASEAN)각료회의(AMM)와 확대외무장관회담(PMC)이 오는 23일부터 28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다.26일 부터 시작되는 확대외무장관회담(PMC)은 아세안 6개 회원국만이 참가하는 각료회의와 달리 이들의 대화상대국인 한국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EC등 7개국이 함께 참여하는 회의다. 각료회의의 토의내용은 아시아지역 안보를 위한 기구인 「지도자포럼」구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여기에 캄보디아지원문제가 중점 토의될 전망이다. ○라오스도 참가 이러한 결정들이 우리의 대아시아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긴하나 역시 우리의 관심사는 우리가 직접 대화국으로 참가,발언권을 갖는 확대외무장관 회담이다.이 회담의 올 특징은 초대국가인 중국 러시아와 옵서버국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외무장관등이 초청돼 25일 비공식만찬 행사를 시작으로 다자간 또는 양자간 회담을 갖는다는 점이다.모두 18개국으로 아·태지역의 외무장관들이 거의 망라된 셈이다.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사실상 최초의 아·태지역 외무장관 회동』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적 특성상 PMC의 논의 주제는 크게 두가지 정도로 압축되고있다.하나는 아·태지역의 새로운 안보협력체 모색이며,다른 하나는 지역경제활성화다.과거에는 경제문제가 주된 의제였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정치·안보문제가 여러 의제중 하나로 채택,논의됐고 올해는 주 의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이는 냉전종식후 국제질서 재편에 따른 아·태지역의 불확실성및 유동성 증대,안보 개념의 확대등으로 인해 지역내 국가들이 여느때 보다 지역안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내년 방콕서 출범 이에대해 한승주장관은 『우리 정부는 광역차원에서 아세안 PMC를 통한 안보대화를 추구할수 있다』고 강조,논의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있다.더욱이 우리는 동북아라는 소지역 차원에서도 소구주안보협력회의(MINI­CSCE)와 같은 다자간협의체 설치를 추진중이다.보완이라는 의미에서도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실현성 여부다.미국과 아세안국가간에 신평양공동체구성과 다자안보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AMM에 앞서 열린 아세안 고위실무회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공동대처 방안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다.말레이시아가 반대 입장을 취했고,인도네시아 태국등이 유보 내지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이들은 클린턴대통령의 신태평양공동체 제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오히려 아세안국가들이 주축이 된 역내 협력및 대화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경제 부분으로도 연결되고 있다.아세안국가 정상들은 지난해 말 말레이시아가 제안한 동아시아경제협력체(EAEC)창설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따지고 보면 이것도 클린턴대통령의 신태평양공동체 구성 제의와 상충되는 대목이어서 조정이 쉽지않다. ○적극 지지 예상 양자간 대화는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다를수 밖에 없다.우리의 주된 의제는 미·북한 2단계회담이 끝난만큼 역시 북한핵문제다.한장관은 이번 회의 도중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등 10개국 외무장관과 개별회담을 가질 예정이다.특히 한미,한중외무장관회담에 관심이 쏠려있다.미국과는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문제를 위한 공조체제 강화를,중국과는 유엔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방안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 대외정책 변화(일본은 변하는가:4·끝)

    ◎미 그늘 벗어나 독자외교 펼듯/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총력/경제대국 걸맞는 정치·군사대국화 겨냥/오자와등 “새 국제질서에 적극 참여” 표방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분쟁해결 역할을 담당하고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위해 상설 유엔대기군을 창설하는 등 자위대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일본의 차세대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는 최근 발간한 그의 정책집 「일본개조계획」에서 냉전종식후 일본의 새로운 국제질서에의 적극참여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오자와를 중심으로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등 신세대지도자들은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역할증대를 주장하며 강력한 일본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 일본은 7·18 총선을 계기로 한동안 정치적 혼돈을 경험할지 모르지만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더라도 멀지않아 신세대지도자시대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일본에서는 이미 「95년 신체제」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1995년은 세계사와 일본에 매우 중요한 의미있는 해가 될것으로 보인다. 1995년은 제2차대전의 종결과 유엔창립 50주년이 되는 해인 동시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일단 발효만료되는 해다.현재 일본은 95년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기까지에는 적지않은 걸림돌이 남아있지만 미국 등은 이미 지지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은 세계전략에서 자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제대국인 일본과 독일을 상임이사국에 진입시킨 다음 경제만이 아닌 정치적 책임도 맡게 하려는 외교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유엔의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일본은 세계무대에서의 군사적 역할의 급속한 확대와 더불어 국제정치의 결정자가 되는 것이다. 일본이 경제력에 이어 군사력도 갖출 경우 미국의 세계전략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이는 오자와의 외교목표이기도 하다.일본은 물론 미일동맹을 안보·외교정책의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외무성 일각에서는 미일동맹이 완만한 해체과정에 들어갔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키신저 전미국무장관도 『일본은 앞으로 미국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 외교정책의 변화가 대한외교에 영향을 미칠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한국은 기왕에 일본의 침략사를 지적하며 경제지원 등 여러가지 요구를 해왔다.그러나 한국침략에 죄책감을 느끼는 정치세대는 미야자와총리가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이며 신세대지도자들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 종래와 같은 양국외교는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신세대지도자들은 전임자들과 달리 한국에 요구할 것은 보다 당당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외교및 정치경제정책은 국제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일본이 엔화관리와 무역정책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세계경제가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일본국회가 해산된 지난달 18일 세계시장에서 엔화가치가 폭락한 것은 일본정치가 국제화됐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드골 전프랑스대통령은 『거대 경제력은 그 자체가 정치적 영향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그는 독일의 경제성장을 경계하며 이같이 말했으나 그의 말은 바로 지금 일본에적용되고 있다.영국외교관은 『패전국의 외교는 50년간 침묵한다』는 말을 잘 인용한다고 한다.1995년은 일본이 패전 50주년을 맞는 해다.일본은 지금 오랜 침묵을 깨고 있다.
  • 연정시대의 개막(일본은 변하는가:2)

    ◎자민,독자적 정국운영 불가능/“새 국제질서 대응위한 선택” 긍정 평가 일본의 정치시스템이 자민당 1당지배에서 「연립정부」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일본에는 전후 잠시 연립정부시대가 있었다.그러나 지난 1955년 자민당 1당지배가 시작된 이후 본격적인 연립정권은 없었다.일본인들은 자민당 지배의 안정된 정치에 길들여져 왔다.그러나 7·18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수의석 확보에 실패함에 따라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요소가 많은 연립정부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자민당은 무소속을 영입,소수 단독정권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자민당계 무소속을 합해도 과반수에 미달,단독으로는 정국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연립정권이 불가피하게 됐다. 자민당 1당지배의 종언은 일본정치의 구조적 대전환을 의미한다.미국이 불안하지만 정권교체의 변화를 선택했듯이 일본도 장래에 대한 불안은 있지만 변화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세계는 최근 수년간 격동하고 있다.냉전의 종언과 함께 독일이 통일되고 미국에는 민주당정권이 탄생했다.세계정세의 이같은 변화의 물결이 마침내 일본 열도에도 밀려온 것이다.일본도 세계의 조류에는 초연할 수 없음을 이번 선거는 보여주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회당의 역사적 참패다.사회당은 창당이래 최대의 참패를 당했다.사회당의 참패는 사회주의가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데올로기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대변화에 따른 자기개혁을 게을리한데 그 원인이 있다.따라서 사회당의 참패는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사회당은 창조적 정책제안은 제시하지 않은채 자민당 비판표에 의존하며 제1야당으로 존재해왔다.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자민당 비판표가 사회당으로 가지 않고 신당그룹으로 흘러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사회당의 참패는 결과적으로 신당의 대약진을 가져왔다. 신생당,일본신당,신당 사키가케(선구)등 「신당트리오」는 1백3석을 차지하며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이들의 대약진은 부패한 기존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과 함께 변화에 대한 기대로 풀이되고 있다. 오타게 히데오 교토대교수는 『신당의 약진은 일본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도시중산층의 지지에 힘입은 것』이라고 지적한다.신당들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도시중산층은 그동안 일본의 전형적인 이익유도형 정치로부터 「소외」돼온게 사실이다.자민당정치는 지역구의 발전과 다양한 편의제공을 통해 표를 모으는 이익유도형 정치였다.그러나 이익분배구조가 생산자와 농촌에 편중돼 도시중산층은 상대적으로 혜택이 적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익정치 보다 매스컴의 영향을 받기 쉬워 정치스캔들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도시형정당의 색채가 강한 신당들은 보수정치를 지향하고 있다.이번 선거에서 제3당으로 부상한 신생당은 특히 「신보수주의」정당임을 강조하고 있다.자민당을 포함,보수지향정당은 중의원 전체의 3분의 2에 가까운 3백26석이나 차지했다.보수세력의 다당화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보수세력의 다당화로 「보수연립」의 가능성이 한껏 높아졌다.연립정권이 흔들릴 경우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다양한 국제환경의새로운 질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본도 경직된 1당지배체제에서 탈피,새로운 정치체제를 가져야 한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지적한다.그런 의미에서 이번 7·18총선은 일본의 정치변화를 향한 중요한 제1보라고 할 수 있다.
  • 정치체제의 대전환(일본은 변하는가:1)

    ◎「보수+보수」에 의한 「견제와 균형」추구/탈냉전의 새국제질서 대응준비/금권·파벌의 근본개혁은 미지수 「7·18총선」이 일본 정치구조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자민당 다수 단독정권시대의 종언과 사회당의 퇴조,신당그룹의 중요 정치세력으로의 부상이 필경 변화를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총선을 계기로 그 폭과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이는 일본의 변화를 4회에 걸쳐 짚어보기로 한다. 『일본정치의 자민당 1당지배는 전후 미국주도의 국제정치에서 바람직한 냉전대응형 정치구조였다.그러나 냉전의 종언이라는 국제환경의 변화와 함께 일본정치에도 변혁의 필요성이 나타났다』 일본의 국제정치학자 이노구치 구니코 상지대교수는 일본정치의 변화를 이같이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당연한 역사적 흐름으로 진단한다.전후 일본정치는 「냉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지난 1955년 보수우익연합에 의한 자민당의 탄생과 사회당 출범으로 구축된 이른바 「55년체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지난 38년간 일본정치를 지배해온 「55년체제」는 이번 선거를 통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냉전형 일본정치의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있다.자민당이 과반수의석 획득에 실패하고 사회당이 참패했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물론 제1당을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상황은 크게 바뀌고 있다.자민당의 분열과 함께 자민당의 다수단독정권의 시대가 막을 내림으로써 과거와 같은 「마음대로의 정치」를 할 수 없게 되고 정국운영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민당 정치는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막후협상을 통해 총리를 선출함하는등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난을 받아왔다.이같은 폐쇄성에 의한 정치의 다이너미즘 상실과 금권정치의 구조적 부패는 국제정세 변화와 함께 자민당의 분열을 부른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민당의 분열과 사회당의 퇴조,신당그룹의 대약진은 일본정치구조의 큰 변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그중에서도 기성정당을 비난하며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신생당,일본신당,신당 사키가케(선구)등 「신당 트리오」의 대약진은 일본정치가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말해준다. 신생당의 실질적 지도자인 오자와 이치로 대표간사는 신생당을 중심으로 한 제2의 보수정당을 만들어 「2대 정당제」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그의 시나리오가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지만 많은 국민들과 경제인들은 부패한 자민당 1당지배가 끝나고 2대정당제에 의한 「견제와 균형」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는 밝히고 있다.일본사회에는 강한 안정지향적 성향이 남아있지만 일본인들의 정치의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일본전문가인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교수는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파벌정치가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당정치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그러나 그는 『파벌싸움이 단지 당과 당의 대립으로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 일본정치의 기본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정치지도가 어떻게 다시 그려질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과반수의석을 획득한 정당이 없어 일본정치는 당분간 「혼돈의 시대」를 경험할지 모른다.그러나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조교수는 『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치에도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민당의 다수단독정권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일본정치에도 의회정치 본래의 긴장감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물론 폐쇄적 금권정치라는 「일본형 정치」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국제정치의 거시적 구조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자신에 맞는 새로운 정치시스템의 모색을 통해 냉전후 새로운 국제질서에의 대응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일본의 정치변화와 개혁은 일본의 국내문제에 속한다.그러나 일본의 정치적 결정은 세계경제는 물론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일본의 존재가 크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 총체안보와 경제/김동성 중앙대교수(정경문화포럼)

    ◎군사방어 아닌 「국가발전의 틀」 인식을/산업현장이 전선… 고통분담 되새길때 최근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정상화의 노력에 역행하는 「불안과 불신심이」가 고개를 들고 있다.아마도 기득권 수구세력과 대기업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경제회생」관련 불안감 조성과 이에 따른 각종 집단 이기주의 발생이 그 원인인 것 같다. 이러한 부정적 사조가 등장하고 있음은 아직도 지난 날의 권위주의체제의 유산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독재체제 하에서 대기업들은 정경유착이라는 「효률적 방법」을 통해 부를 축척하기가 쉬웠다.그리고 군사정권은 정권유지를 위해서 특정 사회부분에만 특혜를 주고 돌보곤 했다.따라서 새로운 정부의 개혁정책이 경제정의를 중시하게 되니 기업들로서는 「과거의 좋았던 시절」이 정말 그리울 것이다.그리고 「투자기피」를 무기로 삼고 버티면서 오히려 「사정한파」를 탓한다.자립경험이 일천하고 자립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중소기업들도 신정부의 엄청난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기업의 동향에 눈치보면서 그냥 따른다.그 결과는 「투자심리위축」현상을 낳고 있다. 더욱 문제를 가중시키는 것은 신 경제계획을 맡고 있는 고위참모와 많은 사람이 정부와 기업간의 타협(?)만이 「경제회복」의 지름길이라고 믿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경제지표와 성장수치의 단기적 상승만이 현 정부의 인기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국가경제의 중·장기적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정치·경제철학적 신념부족이 눈앞의 실적을 위해 미래를 저버리는 결과를 낳는다면 이는 분명 국가안위와 관련된 문제이다. 사회의 각 부문과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노동계의 입장 또한 문제이다.「생산력」보다는 「정치력」을 신장시켜 놓고 보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자본·기술·투자,그리고 국제적 비교우위 상품개발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우리의 경제상황에서 사회 각 부문이 눈앞의 사익에 집착하고 국가전체의 공익을 저버린다면 이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가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개혁이 성공하고 신 한국이 건설되려면 우리 경제정책이 단순한 「경제회복」에 달린 문제라기 보다는 「국가안보」의 한 부문이 되어야 한다.즉,이제 안보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군사방어 개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발전의 틀」속에서 총체적으로 인식되고,경제는 그 한 부문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80년대 초부터 「총합안보」개념을 내놓고 군사력 중심에서 경제와 과학기술영역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미국에서는 대통령직속으로 「경제안보위원회」를 신설한 것도 확대된 안보개념 즉 「방위와 발전」의 개념으로 국가 안보를 이해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특히 탈냉전의 신 국제질서는 주변국가들의 이기주의경향을 낳고 있다.그리고 우리처럼 이데올로기적 균열과 가치관의 혼돈이 지속되어온 상황하에서 국민통합과 자발적 동원을 가능케 하려면 「종합적」안보개념의 확립과 그 설파가 필요하다.안보영역이 다원화되고 있는 만큼 군만이 안보의 주체일 수 없고,오히려 산업현장이 보이지 않는 경제안보의 전선인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산업전선의 건실화를 위해서는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대기업들과 기득권세력의 계속적인 고통분담과 새로운 국가안보관의 주입이 요구된다.그리고 그러한 의식의 개혁은 일정부문의 제도적·사정적 작업을 병행시켜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대상일지 모른다. 군부독재시절 안보의식의 과잉이 문제였다면 오늘의 문제는 안보의식의 결핍과 방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최근 북한의 핵개발 문제와 「노동1호」의 발사성공 보도에 접하면서도 국민들이 강건너 불구경 하고 있는듯 한다면 이는 정말 문제이다. 과거 정권에서의 「안보논리」가 「통일논리」를 억눌러 왔다고,지금도 「민족」과 「국가안보」를 대립적 개념으로 인식 혹은 활용한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민족적 가치란 곧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의 이상과 건실한 자본주의 가치를 실현하고 보존시킬 수 있을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보수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간에 「민족」개념의 오용과 남용은 궁극적인 통일이상과 국가목표에 역행할 뿐이다. 현실 당면과제는 신 한국 건설과 그 속에 내포된보편적 가치에 대한 「발전관」과 「안보관」의 확립이며,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새 시대에 맞는 종합적 국가 안보정책이 정치지도자에 의해 천명·설파되어야 한다.그리고 눈앞의 경제문제는 이러한 종합안보의 틀속에서 접근되어져야 만하는 복잡한 복선을 깔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때이다.
  • “오늘의 한국민주화 「제2한강기적」”/한미정상회담 첫날 이모저모

    ◎황영조우승 들어 강인성 찬사/클린턴/“대한 안보협력 매우 값진 투자”/김 대통령 ▷청와대 도착◁ ○…클린턴대통령 내외는 서울공항에서 검정색 리무진을 타고 하오 2시42분 청와대본관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김영삼대통령 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클린턴대통령은 김대통령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면서 김대통령과 악수했고 김대통령은 영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대답.클린턴대통령은 손명순여사에게도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 힐러리여사도 김대통령과 손여사에게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 김대통령 내외와 클린턴대통령 내외는 이어 나란히 현관 로비에 들어섰고 클린턴대통령은 로비 오른쪽편에 마련된 방명록에 「빌 클린턴」이라고 서명. 이어 두나라 대통령 내외는 1층 계단에 서서 기념촬영. ○…이어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본관2층 접견실에서 단독정상회담을 시작. 두 대통령은 먼저 사진기자들을 위해 다시한번 선채로 악수를 한뒤 상대측 배석자들과도 악수를 나누고 좌정. 김대통령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다리를 포개고 앉았고 클린턴대통령은 혈색좋은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띤채 두다리를 가지런히 하고 바로앉은 자세.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도쿄에서 열린 G­7 회담에 대해 잠시 언급했는데 클린턴대통령이 회담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전하자 김대통령은 회담에서 클린턴대통령의 역할이 성공적이었다며 축하인사. 이어 클린턴대통령은 작년에 김대통령과 함께 선거운동기간을 보낸 점을 지적하면서 당시 김후보의 활동에 무척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인사. ○…클린턴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하오 2시 부인 힐러리여사와 함께 미공군 1호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영접나온 한승주외무장관과 반갑게 악수. ▷정상회담◁ ○…두사람의 단독회담시간은 당초 예정보다 배정도 늘어난 55분간 진행. 이어 두대통령은 접견실옆의 집현실로 자리를 옮겨 외무·국방장관등 배석자들을 참석시킨 확대회담을 시작. 두대통령은 여기서도 먼저 카메라를 위해 다시 악수를 나눈뒤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의 차례로 각기 배석자들을 소개. 김대통령은 『단독회담에서대단히 유익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처음 만났지만 옛 친구를 만난듯 시간이 길어졌고 모든 문제에 걸쳐 의견을 교환했다』고 좌중에게 설명. 김대통령은 이어 『올해는 마침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4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우리 두사람은 지금껏 한미동맹관계가 매우 효율적으로 지속되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상호이익을 위해 유지·강화되기를 희망하며 미국의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언급. ▷국회연설◁ ○…하오 4시45분 여의도 국회에 도착한 클린턴대통령은 의장접견실에서 이만섭국회의장,김종필 민자·이기택 민주당대표,황락주·허경만 국회부의장등과 20여분간 환담. 클린턴대통령은 이어 이광로국회사무총장의 안내로 본회의장에 입장,이국회의장의 환영사를 경청한뒤 30여분동안 연설.클린턴대통령은 이날 예전의 미대통령들과는 달리 프롬프터(영상자막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특유의 힘차고 자신감있는 어조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기조를피력. 클린턴대통령은 특히 김영삼대통령의 출범을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민의 업적』이라며 거듭 축하한뒤 『언젠가는 한국의 인위적인 분단이 끝날 것으로 믿는다』고 자신에 찬 어조로 언급. 클린턴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은 서구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라 대내정신에서 생기는 것이며 보편적 열망』이라고 역설하며 공개된 선거,노조,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뒤 「아시아민주주의방송」창설을 제안. 클린턴대통령은 『바르셀로나올림픽때 한국의 황영조선수가 최후의 언덕을 넘어 우승할 수 있었던 에너지·지구력은 한국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그런 정신을 존경한다』는 말로 연설을 마감. 이날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클린턴대통령은 모두 7차례에 걸쳐 의원들의 박수를 받았으며 연설을 마친뒤 앞쪽과 중앙통로에 앉은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힐러리여사와 함께 퇴장. 한편 이날 연설도중에 김영진의원등 민주당 소속 의원 10여명은 『쌀은 우리 민족의 혼』이라고 한문과 영문으로 쓴 종이 피켓을 자신들이 앉은 의석에서 들고 있으며 미국의 쌀 수입개방 압력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달. ▷청와대 만찬◁ ○…김영삼대통령이 클린턴대통령 내외를 위해 이날 저녁 청와대 본관에서 베푼 공식만찬은 저녁 8시쯤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시작돼 10시까지 진행. 김대통령은 만찬사에서 클린턴대통령 내외의 방한에 환영의 뜻을 거듭 표한뒤 『각하의 이번 한국방문은 민주주의와 개방경제 그리고 지역평화를 함께 추구하는 우리 두나라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 클린턴대통령은 답사에서 우리나라의 민주발전을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하고 『대통령각하께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기 쉽지 않을때 용기있는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외쳤다』며 김대통령의 민주화공적을 치하. 이날 양국대통령의 만찬사와 답사는 당초 통역없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클린턴대통령이 즉석에서 통역을 요청,순차통역으로 진행됐으며 클린턴대통령은 통역으로 인한 답사시간이 길어지자 당초 배포했던 답사내용중 상당부분을 생략. 만찬을 마친뒤 김대통령 내외는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숙소로 향해 출발하는 클린턴대통령 내외를 본관 현관에서 전송. 이날 만찬 참석자들은 새정부 출범후 간소해진 의전절차에 따라 연미복 대신 평복정장을 입었고 부인들은 한복차림이었으며 식사메뉴는 순수한 한국식에따라 신선로에 곁들인 국과 밥이 주식으로,구절판 호박죽 잣죽 전등을 후식으로 제공. 한편 김대통령은 11일 클린턴대통령과 함께 조깅을 한 직후 「대도무문」이라는 친필휘호를 선물할 예정. □클린턴대통령 수행원 명단 ◇백악관 ▲로이 닐 대통령비서실차장 ▲브루스 린지 백악관인사국장 ▲데이비스 거겐 대통령자문관 ▲조지 스테파노폴리스 대통령정책담당선임보좌관 ▲마크 기어렌 대통령홍보실장 ▲마샤 헤일 대통령일정담당보좌관▲디 마이어스 대통령공보비서관 ▲낸시 헌라이시 대통령일정담당부보좌관 ◇국가안보회의 ▲앤터니 레이크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 ▲윌리엄 이토 국가안보회의 행정보좌관 ▲제레미 라스너 대통령특별보좌관(의회담당) ▲샌드라 크리스토프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보좌관 ▲짐 리드 국가안보보좌관비서관 ◇국무부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 ▲토머스 도닐른 홍보담당차관보 ▲윈스턴 로드 동아태차관보 ▲레이몬드 버가트 주한미대사대리 ◇국방부 ▲레스 애스핀 국방장관 ▲짐 클래퍼 국방정보본부장 ▲로버트 앨리스국제안보담당부차관보 ◇재무부 ▲래리 서머스 재무부국제담당차관 ▷클린턴대통령 답사◁ 대통령각하내외분,그리고 귀빈여러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쉽지 않은 때에 각하께서는 민주주의의 대변자였습니다.각하께서 보여준 용기는 한국민이 보다 새로운 차원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왔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각하의 지도력은 한국민들을 보다 강력하게 발전시키고 싶어하는 위민적 충정의 발로인 것으로 믿어집니다. 한국의 발전은 군인·근로자·기업가·교사·학생등 이 아름다운 나라를 정치경제적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해온 수많은 한국민들의 몫입니다. 서정주씨는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도록 천둥과 번개가 울었나보다고 썼습니다.그러나 아침이 되었을 때 한송이 국화는 활짝 피어납니다. 한국국민들은 이제 자랑스럽게 활짝 피어났습니다.축의를 드립니다. 나는 모든 한국민들이 백두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북한사람들이 서울의 위용을 목격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합니다.그리고 반드시 그날이 오리라고 확신합니다.통일되는 날 미국은 한국의 곁에 나란히 서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조국을 성취하려는 한국민들의 친구가 되고 동맹국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김영삼대통령 만찬사◁ 존경하는 클린턴대통령각하 내외분,그리고 내외귀빈여러분! 우리 두나라 국민은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전환기에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켜 새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한안보협력이 매우 값진 투자였음은 오늘의 발전된 한국이 실증해 주고 있습니다.한미안보협력을 바탕으로 확보된 평화속에서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의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북한은 모험주의적 대결정책을 고집하고 있으며 핵무기개발의혹으로 한반도와 전세계의 평화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체제는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노력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나는 각하께서 「신태평양공동체」를 주창하신 것을 유념하고 있습니다.우리 두나라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속적인 번영에 기여하기 위해 동반자관계를 확대해야 합니다. 나는 앞으로 두나라의 경제관계가 단순한 교역파트너로부터 과학·기술·산업·문화·예술등 모든분야에서 협력하는 명실상부한 포괄적 동반자관계로 발전되기를 기대합니다.
  • 공동의 적 잃은 서방 “제몫 챙기기”급급/도쿄G7 정상회담 결산

    ◎사안마다 대립… 합의사항도 실현 의문/“회담방식 개혁” 정식 거론… 변화 불가피 도쿄 선진7개국 (G7)정상회담은 냉전후 불안한 국제정세에 대한 선진국들의 고뇌와 함께 세계적 과제 해결에 대한 한계성과 무력감을 나타냈다. G7회담의 이같은 문제점과 지나치게 관료적·형식적이라는 지적을 배경으로 이번 회담에서 개혁론이 정식 논의되어 G7회담형식의 변화도 예상된다. G7정상들은 이번 회담을 결산하는「정치선언」과「경제선언」을 채택했다.그러나 정치선언은 냉전후 심각한 국제문제로 등장한 보스니아민족분쟁과 핵확산방지를 위한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정치선언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냉전후 불안한 국제정세의 위기감만을 나타냈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선언도 거시경제정책 협조에는 합의했으나 미시경제분야에서는 많은 대립을 보였으며 합의사항의 실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G7정상들은 세계증시불황의 타개를 위해 경제정책 협조체제의 회복을 목표로 했으나 자국의 경제이익을 우선하는 경향을 보여많은 분야에서 심각한 견해차이를 드러냈다. 경제선언은 세계경제활성화를 위한 일본·미국·유럽의 역할분담을 명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그밖에 우루과이 라운드(UR)의 연내타결,실업문제해결을 위한 구조개혁추진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일본은 내수확대를 위한 재정·금융정책의 실시와 무역흑자삭감을 약속했다.G7중에서 유일하게 무역흑자국인 일본은 미국등 각국으로부터 무역흑자감축의 강한 압력을 받았으며 세계경제활성화를 위한「기관차」역을 맡아야 한다고 지적됐다. G7정상들은 이번 회담에서도 UR의 연내타결을 결의했으나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UR는 이미 지난 90년 회담때부터 매년 「연내타결」이 결의돼왔으나 아직도 타결되지 않고 있으며 쌀시장개방문제등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분야가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있다. G7회담의 이같은 「실효성 의문」과 함께 이번 회담에서는 개혁론이 정식으로 논의됐다.가장 적극적인 개혁론자는 영국의 메이저총리였다.그는 ▲회담일정은 3일에서 2일로 단축하고 ▲외무장관과 재무장관은 참석시키지 말며 ▲선언도 폐지한다는 등의 G7회담간소화방안을 제안했다. 메이저총리는 G7정상회담이 실질적인 정책협의의 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다른 지도자들도 공감을 나타냈다.G7회담은 정치·경제선언등 실질적 준비는 대부분 각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정상들은 그저 사진만 찍는 「정치쇼」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메이저총리의 개혁론은 G7정상회담이 세계경제를 리드하는 본래의 역할로 되돌아가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G7회담은 지난 75년 석유위기타개등 세계경제문제협의를 위해 처음 시작됐다.그러나 80년대부터 공산주의진영에 대항하는 정치적 역할이 강화돼 왔다. G7회담은 그러나 냉전이 끝난후 이미 변화하기 시작했다.서방세계단결의 구심력이었던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진후 G7정상들은 세계과제보다는 자국이기주의 경향을 나타냈다.더욱이 이번 회담에서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은 모두 국내정치기반이 약해 자국이익을 우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쿄회담은 세계적 불황의 장기화·지역분쟁의 격화등 심각한 국제문제 해결을 위해 선진국들이 어떤 정책협조의 틀을 만들수 있을 것인가로 주목을 받았었다.그러나 의장국인 일본의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의 국회해산에 따른 정치적 권위의 상실은 냉전후 G7의 구심력과 권위의 약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 한미 정상/북핵·아태안보체제 집중 논의/

    ◎내일 「서울회담」… 무슨얘기 오갈까/NPT유지 일환 북에 단호한 경고/미군역할 「지역방위」 전환도 거론될듯 한미 양국의 새정부 출범후 처음 열리는 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 미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이번 정상회담은 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국제질서 마련이 요청되는 시점에 열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특히 클린턴대통령이 취임후 사실상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택했다는 사실은 한미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의 재확인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클린턴대통령은 7일 일본 와세다대학 연설에서 신태평양공동체 창설을 주창하고 아·태경제협력체(APEC)를 정상급협의체로 격상,이를 공동체 추진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것은 클린턴대통령이 이번 한국과 일본 방문의 첫 목표가 무엇인가를 감지하게 한다.미국은 그동안 「태평양 중심국가」로서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한반도는 미국이 안보와 관련된 자신들의 역할을 내보일수 있는 최적지이다.더욱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오는 14일 제네바에서 북한과 2단계 고위급회담을 가져야 할 판이다.클린턴대통령이 순수한 양자관계의 정상외교를 위해 첫 대상지로 왜 한국을 선택했는지는 여기서 자명해진다.북한핵과 관련된 한반도의 안보정책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가늠할 주요 동인이며,나아가 냉전이후 새로운 리더십을 모색하고 있는 미국의 신국제전략 수립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 두 정상은 신태평양공동체 구성과 한미안보협력관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미국의 안보정책이라는,태평양지역 경제와 안보에 대해 포괄적으로 협의할 것으로 전망된다.클린턴대통령의 신태평양공동체구상은 21세기에 대비,우리 외교가 그동안 꾸준히 지향해온 국가목표와 일치하는 것이다. 클린턴대통령은 일본에서 경제부분을 천명했으나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한반도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안보를 축으로 한 대아시아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김대통령은 APEC 경제정상회담 추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 한미동맹관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이번 서울회담엔 도쿄 G7정상회담에는 수행하지 않은 애스핀국방장관이 나타나 11일 권령해국방장관과 국방회담을 가질 예정이다.크리스토퍼국무장관은 한승주외무장관과 별도회담을 갖는 한편 백악관의 레이크안보보좌관도 클린턴을 수행한다.이들 모두는 클린턴대통령의 핵심 외교·안보 참모들이다. 외무부 고위당국자는 『이번 서울회담의 주의제는 북한핵문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김대통령은 최근 북한핵문제의 최우선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북한핵이 남북한 긴장완화는 물론 북한체제의 개방및 변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정책적 판단이다.클린턴대통령도 최근 북한핵문제에 관해 전례없이 강경한 입장을 천명,주목을 끌고있다.이것은 NPT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일관된 정책이기도 하지만 이문제가 자칫 미국의 향후 대아시아 안보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수 있기 때문이다.두 정상은 북한핵문제에 대해 강경하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점쳐진다.또 동북아와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할을 지원적 위치에서 지역적 방위차원으로 전환하는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통상문제에선 양국간에 특별한 쟁점 현안이 없다.양국은 정상회담에 앞서 이달말 서울에서 한·미경제협의회가 열려 어느정도 현안 조율을 마친 상태이다.다만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양국간 경제동반자대화(DEP)를 공식 발족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상회담에서는 태평양지역의 안보및 경제 협력체계와 북한핵문제,한미 안보협력관계,통상분야의 원칙적 문제등에 대해 개괄적인 의견교환이 이뤄지고 보다 구체적인 협의는 11일의 외무·국방장관회담에서 다뤄질게 확실하다.외무장관회담에서는 북한핵문제와 2단계 미·북한회담에 대한 대응책이,국방장관회담에서는 미국의 2개지역 동시전쟁 수행정책에서 한반도의 비중문제를 집중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 통상·안보·인권 등 새 아주정책 추진/클린턴방한 무엇을 노리나

    ◎북핵 표적삼아 아·태 역내위상 제고/APEC 등 활성화… 경협확대 모색 클린턴미대통령은 이번 선진7개국 도쿄정상회담 참석에 이은 서울방문 여행에서 3가지의 중요한 연설을 할 계획이다.5일 워싱턴을 출발,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면서 연설을 한번 하고 6일 도쿄에 도착한뒤 7일 와세다대학에서 두번째 연설을 하며 10일 한국국회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이들 연설은 각기 서로 다른 미국의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나라 국회연설은 클린턴행정부의 새 아시아정책천명이 그 골간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클린턴대통령은 사실상 해외 첫나들이인 이번 여행에서 한국을 자신의 연설무대로 삼음으로써 여러가지 측면에서 연설의 극적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새로 출범한 한국의 김영삼대통령정부의 민주화·문민정치·일련의 개혁작업에 대한 미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도 포함되어 있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도 중요한 방문의 목적이다. 클린턴대통령의 방한은 이같이 한미양국의 쌍무적 차원과 함께 냉전이후시대의 미국의 국제정치적 역할 재정립,아시아·태평양세력으로서의 미국의 지도력확립차원에서 조망해야 한다. 클린턴행정부의 새 아시아정책은 ▲미국이 아시아세력으로서 남을 것 ▲한국·일본과의 안보조약 재확인 ▲아시아지역에 있어 경제적 유대관계강화 ▲민주주의·인권추구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번 연설이 겨냥하고 있는 표적은 북한과 아시아 각국이라고 할수있다. 첫째,북한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북한핵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클린턴대통령이 확고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그는 냉전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체제가 더욱 공고해져야만 된다는 인식을 분명히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여행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핵개발문제에 대해,『절대로 그대로 용인될 수 없는 사안이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그는 이란 이라크,그리고 북한의 핵무기추구를 동일선상에 놓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일본의 비핵화정책의포기를 초래하게 되고 곧바로 동북아의 무기경쟁을 가져와 이 지역은 극히 불안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런 크리스토퍼국무장관도 오는 14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릴 미·북한 2단계고위회담과 관련,북한이 지연전술로 나와 회담에 진전이 없을 경우 즉각 다른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미국의 북한핵문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은 클린턴대통령이 방한하게 되면 보다 뚜렷한 메시지로 대외에 천명될 예정이다.더욱이 클린턴대통령은 자신의 이번 여행을 앞두고 미국의 핵실험유예기간을 다시 내년 10월까지 15개월간 연장함으로써 핵확산금지체제유지에 대한 명분과 설득력을 강화시켰다. 둘째,아시아각국을 겨냥하여 미국이 이 지역에서 추구하고 있는 구상을 전할 것이다.이 가운데는 경제통상·지역안보협력·민주주의와 인권의 추구 등이 포괄적으로 설명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일본과 중국·대만에 각각 연간 5백억·1백50억·1백1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으나 한국과는 거의 균형상태를 이루고있기 때문에 미국의 아시아국가와의 경제협력관계를 한국에서 얘기하는 것 자체가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의 민주화가 아시아에서 하나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이 적극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신념을 서울에서 강조함으로써 여타 국가들에 변죽을 울려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정책 가운데 중요한 현안의 하나는 지역협력기구의 확대발전이다.특히 장기적으로는 아시아·태평양각료회의(APEC)를 경제협력의 모체로 삼고 나아가서는 어떤 형태로든 지역안보협력기구의 창설을 통해 미국의 세계경찰기능을 이같은 기구에 넘겨 지역자체가 스스로의 분쟁해결능력을 발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클린턴대통령의 새 아시아정책은 냉전이후시대의 미국의 역할을 재정립해 나가는 세계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 미,핵실험 포기로 NPT연장 유도/클린턴,왜 핵실험 무기 유예했나

    ◎북한핵 해결에 돌파구마련 기대/“3세계권 핵개발 억제” 명분 획득 미국이 사실상 핵실험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탈냉전시대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클린턴미대통령은 30일 미국의 핵실험중단여부에 대한 결심을 이미 내렸다고 밝히고 수일내에 이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물론 클린턴대통령이 결심의 내용을 일체 말하지 않고 있지만 백악관주변에서는 현재 시한이 박두한 핵실험유예기간을 무기한 연장하는 것이 될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미국이 핵실험을 일시 중단한 것은 의회가 입법을 통해 작년 10월부터 핵실험을 금년 7월1일까지 유예키로 했기 때문이다.이 핵실험유예법안에 의하면 대통령은 오는 96년 9월30일까지는 전면적인 핵실험중단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의회는 9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부여하면서 유예기간이후 96년말까지 15차례의 핵실험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있다. 그동안 미국내에서는 국방부를 중심으로한 핵실험재개주장과 의회를 거점으로 한 핵실험의 무한정 유예론이 대논쟁을 벌여왔다. 핵실험재개론은 미국의 공중및 해상발사 크루즈미사일에 의해 운반되는 핵탄두에 대한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핵실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핵실험반대론은 만약 미국이 핵실험을 재개한다면 기존 핵보유국가들의 핵실험재개와 제3세계국가들의 핵개발을 막을 수 없게 되고 오는 95년으로 시효가 끝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경신에 대한 미국의 국제적 지원을 얻을 수가 없다고 지적하고있다. 핵보유국인 프랑스와 러시아는 지난해이래로 계속 핵실험을 유예하고 있고 영국은 미국영토에서 실험을 해왔기 때문에 미국과 함께 핵실험을 중단하고 있는 실정이다.중국도 작년 9월부터는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옐친대통령은 미국이 핵실험유예를 걷어올리면 자신은 러시아국내 핵실험의 재개를 주장하는 군부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핵실험중단을 강력히 권고했다. 클린턴대통령이 오는 7일 개막될 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서나 별도의 자리를 통해 조만간 밝힐 「핵실험의 무한유예」는 대량살상무기 등의 범세계적 비확산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은 물론 북한핵문제의 해결에도 중대한 파급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NPT유효기간의 연장이나 여타 핵국가들의 핵확산금지체제가입 등을 촉진함으로써 탈냉전시대의 국제질서를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분석된다.예를 들어 구소련연방의 우크라이나 등을 비롯,인도나 파키스탄의 NPT가입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냉전체제의 붕괴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스스로 핵실험을 포기하는 것은 북한을 포함하여 이라크,이란,시리아 등 제3세계국가들의 핵개발욕구를 억제시키는 실직적이고도 도덕적인 지렛대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오는 7월14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2단계 미·북한간 고위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NPT체제 속에서 핵사찰을 확실히 받을 것을 설득하는데 있어 과거보다는 훨씬 체중을 실을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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