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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비정책」안보전략 차원서 강구/국방부 「통제위」설치 추진의 배경

    ◎군사력 운용등 포괄,범국가적 기구로/상호신뢰 구축할 정책개발에 주안점 이상훈국방부장관이 11일 임시국무회의에서 「군비통제조정위원회」의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동안 국방부ㆍ외무부ㆍ통일원 등 정부 각 부처에서 연구해오던 군비통제문제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다룰 때가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방부는 지난 89년 1월16일 장성급장교 2명을 포함한 실무자 20여명으로 군비통제실을 구성,운영해오고 있으며 외무부와 통일원ㆍ국방부의 실무자들이 참석하는 「안보실무대책반」을 중심으로 안보여건 변화에 따른 우리의 대처방안을 나름대로 연구해왔으나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거나 정책을 입안한 적은 없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학술대회나 국제회의에서 한반도의 군비통제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북한의 선전용 군축제안을 연상,남북한이 병력과 장비를 감축하는 시기가 임박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한국이 구상하고 있는 「군비통제」와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군축」은 입장과 단어의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다.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군비통제(ARMS CONTROL)의 개념은 군사력의 건설ㆍ배치ㆍ운용ㆍ사용을 확인ㆍ제한ㆍ금지ㆍ축소하고 합의사항 위반을 제재함으로써 전쟁위험과 피해를 감소시켜 안보를 유지,증진하는 군사전략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군비축소」(ARMS REDUCTION)는 장비와 병력의 수량적인 감축과 함께 군비제한(ARMSLIMITATION),군사력 건설 수준의 질적ㆍ수량적 제한까지 포함한 개념이며 따라서 상호간에 약속이 지켜질 만한 아무런 사전조치가 없는 북의 제안은 다분히 정치선전이며 평화공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북한은 한소 정상회담 개최사실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달 31일 남북한 상호병력규모를 10만명으로 축소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북한측의 10만 군축제안은 지난 88년 11월의 포괄적 평화제안인 ▲주한미군의 핵무기철수 ▲주한미군 병력철수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군고위당국자간 직통전화 가설 ▲남북고위급 정치군사 회담진행 ▲대규모 군사연습 중지와 90년 5월30일 제안한 한반도 평화안과 비교해 볼때 별 진전이 없는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군축안의 핵심은 ▲한반도 비핵지대화 ▲주한미군 철수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등 다분히 선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와 핵무기 철거를 남북한 군축회담의 전제로 하고 있어 군축의 당사자도 한국보다는 미국을 먼저 겨냥하고 있어 우리 정부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북한은 정규군만도 우리보다 40만이 많은 1백5만을 유지하고 있으며 70%이상을 휴전선에 전진배치하고 있어 전선에서 불과 40km 남쪽에 수도를 두고 있는 정부와 국민은 제2의 남침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탱크와 자주포ㆍ방공포로 무장한 비정규군의 병력도 4백만이나 되어 이를 단시일안에 10만명으로 감축하자는 제안은 현재로서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실정이다. 북한과의 전력지수면에서 70%밖에 되지 않는 약세의 국군은 93년부터 시작될 주한미군의 제2단계 철수에 대비,국군전력의 통합을 꾀해 강한 전투력을 유지하려는 합동군제인 합동참모본부 발족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국방부 합참에 군비통제실을 설치한 뒤 팀스피리트90 훈련도 축소하고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도 차관급으로 낮추어 격년제로 개최하는등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는 신축적인 정책을 펴 오고 있다. 합참의 군비통제실 한 관계자는 『국군은 지난 85년부터 이른바 배달계획이라는 이름하에 군비통제에 관한 연구를 해왔으나 상대가 있는 계획인 만큼 확정된 정책은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새로 발족될 범정부차원의 「군비통제조정위원회」도 외무부ㆍ통일원ㆍ학자 등이 주체가 된 민간정부기관의 성격으로 본격적인 군축문제를 다룬다기 보다는 한반도 주변여건 변화에 따른 우리의 대응책을 협의하는 정도의 활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 한반도의 「2+4」(사설)

    노태우대통령이 한소및 한미간의 연쇄적인 정상회담을 마치고 8일 귀국했다. 한반도의 평화기반 구축을 위해 최선을 다한 노대통령의 노고와 그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의 진행과 결과를 냉철하게 다시 점검하고 후속대응조치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여건을 성숙시키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 방향은 당연히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국민적 염원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의 외교적 성과는 밭에 씨를 뿌린것에 불과하다. 이를 싹틔우고 잘 자라게 하는 일이야말로 이제 맡겨진 과제이다. 이같은 과제를 제대로 풀어나가야 열매를 딸 수 있다는 점에서 분발을 요청하는 것이다. 외교는 외교대로,내정역시 내정대로 하나하나씩 난제를 풀어나감으로써 보다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최근의 연쇄 정상회담이 가져온 가장 큰 성과는 주변여건과 분위기의 조성이다. 동서해빙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간의 긴장이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시도한 정부의 북방정책과 정상외교는 국제정세의 흐름을 바로 보고 여기에 순응한 결과로써 주변정세를 우리 힘으로 상당부분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해 주었다. 노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에서 설명 한 바와같이 북한이 문을 꼭꼭 닫고 있기에 그 우회로로서 소련을 거치기로 한 것은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주변 여건이 아직 무르익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되기 까지에는 아직 많은 시일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구도는 한소 정상회담이후 전문가들 사이에 급격히 제기되고 있는 「2+4」가 될 수밖에 없다. 「2+4」는 독일의 통일과 관련하여 이미 제기된 방식으로 아주 생소하지는 않다. 2개의 분단 당자자와 영향력있는 주변 4개국의 협의와 협력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방식이다. 우리도 남북한과 주변 4강,즉 미ㆍ소ㆍ일ㆍ중의 6자 협의로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을 이루는 과정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독일이 걸어온 길을 잘 살펴서 우리의 문제에 원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형편과는 전혀 다르게 독일은이미 통일을 눈앞에 두고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2+4」라지만 당사자인 동서독의 관계가 긴밀하고 통일의 의지가 높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 4강을 설득하며 끌고간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문제는 이와 반대로 남북 당사자간에 긴장과 불신의 벽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의 경우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남북간의 관계개선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남북간의 대화 교류 협력을 위한 실마리부터 잡아 풀어나가야 한다. 북한도 이제 폐쇄만을 고집할 수 없도록 주변여건이 변하고 있다. 이 변화를 주도한 것이 북방정책이고 그 중요한 성과가 이번 정상외교에서 나타난 것이지만 이제는 한걸음 더나가야 한다. 최근 북한이 군축을 제의하고 대화의 당위성을 제시해온 바 있다. 아직은 선전적 차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봄직하다. 우선 통일의 주역은 남북 당사자라는 인식 속에서 주변 4강과의 관계개선과 협조를 얻는 노력을 병행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 북한,금명 중대입장 표명/조총련간부 남북 정상회담 수락할지도

    【도쿄 연합】 북한은 한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종래와는 다른 새로운 제안을 곧 내놓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재일조총련의 한 간부가 8일 밝혔다. 일본에서 북한의 입장을 사실상 대변해온 조총련산하 조선문제연구소의 신희구소장은 이날 도쿄의 프레스센터에서 개막된 제6회 한반도 통일에 관한 국제학술 심포지엄에 북한학자 대신 참석,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주제발표가 끝난 뒤 『심포지엄에서의 발언이 남북 정상회담 수락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으냐』는 기자질문에 『정치는 현실이 아니냐』면서 『남북한이 한개 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하자는 김일성주석의 지난달 최고인민회의의 시정연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이러한 말은 북한의 남북 정상회담 수락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크게 주목되고 있다. 신소장은 이어 한소 정상회담이후 다시 부각되는 교차승인 문제에 관해 『이것도 새로운 국제정세 속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교차승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김주석의 시정연설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현실에 적응하는 대담한 응전 또는 대응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해 남북한 관계와 관련,과거와 다른 중대 입장표명이 있을 것임을 강력히 비췄다.
  • 한ㆍ소 한ㆍ미 정상대좌 무엇을 남겼나

    ◎「2+4구도」의 통일외교시대 열다/“한반도 긴장완화” 새 역학기류 형성/북한이 「신사고」 적응할 여건 조성 긴요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한소,한미 연쇄정상회담은 동북아에서의 평화구축의 시작과 한소 관계발전의 시작,그리고 통일시대의 시작이라는 「3가지의 시작」을 선언하고 있다. 이번 연쇄회담을 부시ㆍ고르바초프의 미소 정상회담,2주전 노ㆍ가이후의 한일 정상회담과 연계시켜 보면 이같은 시작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일본과는 역사를 정리했다면 소련과는 역사를 시작했고 미국과는 역사의 계속성을 다졌다. 우선 동북아 평화정착의 시작은 노ㆍ고르비회담이 국제정치적으로 갖는 의미때문이다. 전후 냉전체제의 상징이 되어온 분단 한반도의 배후장본인인 소련의 정상과 고통의 당사자인 한국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 냉전체제의 얼음이 깨져 녹기 시작했다』고 선언한 것이 이를 입증해 준다. 「신사고」에 의한 소련의 개방ㆍ개혁,동구의 변혁,미소의 화해 등 세계적 변화의 물결이 아시아로,한반도로 넘어오는 결정적 돌파구를 노ㆍ고르비회담이 마련한 것이다. 또 한소 정상회담에서 제기된 동북아의 탈냉전,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미국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밝혔듯이 적극 지지키로 했고 일본이 우리와의 협력을 긴밀히 해나가기로 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서서히 가속력이 붙게될 것이다. 한반도주변 4강가운데 중국은 아직도 변화에 멈칫거리고 있지만 이번 가을 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우리와의 관계변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없지않다. 따라서 한반도주변 4강은 한국과의 관계를 축으로 해서 동북아에서의 평화구도를 점차 형성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한소관계의 시작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으로 구한말 러시아와의 관계단절이후 계속된 86년간의 공백과 분단 45년간의 적대관계,동족상잔 전쟁의 배후로서의 불행했던 과거를 일순간에 뛰어넘고 역사의 새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소관계의 시작은 「실질적인」 의미와 「법률적인」 의미로 일단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정상회담이 일반적으로 의사결정의 신속ㆍ명료성ㆍ포괄적인 타결성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미수교국가간인 한소의 정상이 만나 서로의 문제를 논의한 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양국은 수교상태와 다름이 없다는 해석이다. 반면 정상회담은 치밀성ㆍ절차성 측면에서 취약한 것이 사실이라면 법률적인 면에서의 한소수교는 앞으로 몇가지의 변수에 따라 그 시기가 결정될 것이다. 노대통령이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서둘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수교시기가 일반의 관측처럼 7∼8월에 당장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며 북한의 반발,한소경협의 속도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셋째 통일시대의 시작은 서울­평양의 직선통행로가 북한의 폐쇄노선으로 막힌 상황에서 서울­모스크바­평양이라는 우회로가 가동됐기 때문인 것이다. 더욱이 동북아 평화정착의 기류가 미ㆍ일ㆍ소로부터 뿜어지고 있어 지금까지 통일의 장애요소,분단교착구조로 작용해온 한ㆍ미ㆍ일 대 북한ㆍ중ㆍ소의 대결도식이 붕괴하고 있다. 북한을 지금까지 에워싼 기류가 변하면 그 자신도 이제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그들의 폐쇄ㆍ경직노선은 한계의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한소ㆍ한미ㆍ미소ㆍ한일 등 일련의 연쇄정상회담으로 앞으로 한반도주변의 국제정세는 상당한 속도로 변화할 것이다. 한소간의 법률적인 수교는 다소 시차가 있을지 모르나 실질적으로는 관계가 긴밀해지고 이에따라 북한은 단기적으로 소련과 불편한 관계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대소관계의 보완책으로 중국쪽에 정치적인 경사가 기울어지겠지만 군사적ㆍ경제적 대소의존성을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변화압력을 서서히 수용해 가면서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같은 한반도 주변제국의 관계변화는 「2(남북한)+4(미ㆍ일ㆍ중ㆍ소)의 상호관계속에서 변화를 이뤄나갈 것이며 경우에 따라 4강의 남북한 교차승인이라는 평화공존의 국제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없지않다. 또 이러한 가운데 집단안보체제와 세력균형이 매우 정교하게 이뤄져 한반도에서의 군축문제가 본격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소경협은 양국의 지리적 근접성,상호 보완적 요소때문에 몇년안에 1백억달러규모의 교역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소비재뿐 아니라 선박ㆍ자동차ㆍ기계수출ㆍ생필품공장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소련의 원자재ㆍ자원수입ㆍ기초과학ㆍ첨단기술의 도입도 수출ㆍ투자와 상응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국이 미소와의 연쇄정상회담을 통해 이뤄놓은 동북아 평화정착의 기수로서 국제적 위상을 드높여 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의 확보와 함께 이같은 한반도주변 기류변화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또 북한이 지금 급변하고 있는 국제조류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조성도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북한이 고립감과 소외감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그들이 미일 등과 관계개선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줄 때 통일시대는 훨씬 앞당겨질 것이다.
  • 북한,한ㆍ소 급속접근에 “불쾌감”/손성필 주소대사 왜 소환했을까

    ◎외교관계 격하등 감정적 대응 어려워/알맹이 없는 대남 선전공세 강화 예상 북한이 지난달 25일 손성필주소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한소정상회담과 관련,급변하는 한반도정세에 대응해 북한이 어떤 정책을 내세우게 될지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손성필은 귀국에 앞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과 만난 것으로 알려져 북한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소정상회담 개최 사실에 대해 소련측으로부터 미리 통보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남북대화 및 외교통인 손성필의 소환은 북한이 앞으로 전개할 대소ㆍ대남정책 등 대외정책노선과 관련지워져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 ▲한소정상회담에 충격을 받고 있는 북한이 모스크바 주재대사의 격을 낮추고 재소유학생들을 소환하는 등 감정적인 대응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며 손성필의 급거귀국은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는 분석과 ▲지난달 하순 북태평양에서 몰래 연어와 송어를 잡다 소련당국에 붙잡힌 북한선적의 어선 12척 나포사건을 본국과협의했을 것이라는 분석 ▲한소정상회담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 등이 일부 외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소련으로부터 정치ㆍ경제ㆍ군사적으로 절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북한이 외교관계의 격을 낮추는 것과 같은 노골적인 반소투쟁을 벌이리라고는 예측되지 않는다』면서 손성필의 귀국은 한소정상회담에 따른 충격을 줄이는 한편 이후 전개될 급격한 국제정세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책모색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2월 손성필(63)을 주소대사에 임명한 것은 서울과 모스크바에 영사처가 개설되는등 한소의 급격한 밀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양정고보출신으로 지난 85년 북한의 적십자회담 및 고향방문단대표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하는등 남북대화의 창구역을 맡았으며 최고인민대회의 부의장 자격으로 각종 국제회의에 북한대표로 참여했던 경력을 지닌 그의 소환은 북한이 보다 적극적인 대남제의 등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윤병익교수(통일연수원)는 『북한은 지난해 한국과 헝가리가 수교했을때 김평일 주헝가리대사를 소환,북한과 헝가리의 외교관계를 대리대사급으로 낮추는등 강력히 반발했으나 이후 한국과 동구권국가들의 수교가 계속 이어지자 현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었다』고 지적하면서 한소정상회담의 충격이 매우 크고 이에 따른 북한의 불쾌감도 대단하겠지만 결국은 이를 현실로 인정하는 선에서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할 수 밖에 없으며 손성필의 소환도 이같은 정책전환에 따른 문제점을 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획기적인 대남제의를 내놓으리라는 징후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소련의 개방압력을 수용하는 데는 좀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게 윤교수의 설명이다. 김창순씨(북한연구소 이사장)도 『모택동과 연계해 벌였던 60년대초의 반흐루시초프투쟁과는 달리 실익도 없고 후원자도 없는 김일성의 감정적 반소투쟁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북한은 손성필대사의 소환을 통해 한소정상회담에 대해 일단 불쾌감을 표시하는 동시에 국제적인 고립화를 모면하기 위해 「형식적이고 선전적인」차원에서 각종 대화제의를 「보다 자주 보다 강도있게」제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씨는 또 북한의 대남정책은 「전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한다고 못박은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의 김일성시정연설에서 이미 정리된 것으로 해석된다며 한소 정상회담이 가변적인 요소이기는 하지만 획기적인 모종의 대남제의를 내놓는 등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즉 북한은 남북고위급 예비회담등 4개로 정리된 정부당국간 회담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남북노동자연합대회,남북농민연합대회 등 갖가지 대화 채널을 통해 한국의 범야ㆍ운동권세력과의 연계를 도모,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하겠다는 것이 기본 대남 정책인 만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각종 제의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인 결실을 가져올 정도의 제안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 한반도에 어떤 영향 미칠까(한ㆍ소 새 시대:4)

    ◎궁지의 평양,결국엔 「유화카드」내밀 듯/소의 개방압력에 외교 가닥잡기 안간힘/잇단 대남협상 제의는 긴장완화 청신호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한소 정상회담은 양국관계뿐만 아니라 남북한관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소련의 실질적인 대한승인을 의미하는 이번 정상회담은 40년 넘게 소련과 동맹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회담에서 한소수교및 한국의 유엔가입등 남북간 초미의 현안에 대해 소련이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낼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북한은 극도의 초조감에 싸이게 됐다. 외신들도 한소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국외교의 승리이자 북한 김일성에 대한 외교적 일격』이라고 타전하면서 북한체제의 변화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소련은 한국과 정상회담까지 가진 마당에 앞으로 북한의 입장만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측의 이같은 태도는 외교적 관행을 무시하고 한소 정상회담 개최를 북한에 사전통보하지 않은 데서도 잘 드러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전후맥락을 살펴볼때 단기적으로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유발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체제의 개방화에 커다란 도움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즉,북한이 더이상 과거와 같은 폐쇄정책을 지속할 수 없게 되도록 이번 정상회담이 유ㆍ무형의 압력을 가할 것이란 지적이다. 그러나 북한은 당분간 이번 회담을 한반도분단 고착화 음모의 일환이라고 한소양국을 비난하는등 대남 정치선전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또 외교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직까지 정치적 노선을 같이하고 있는 중국과 보다 긴밀한 관계정립을 꾀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외교부대변인은 지난달 31일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소련측으로부터 아무런 공식통보도 받지 못했으나 이 회담이 실현된다면 분단된 한반도의 미래에 심각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혀 북한지도층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북한은 한소 정상회담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 1일에도 돌연 한반도의 비핵지대화,상호 대규모군사훈련금지,병력감축 등을 내용으로 하는 단계적 군축안을 평양방송을 통해 공개제의,대남 정치선전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대소관계도 단기적으로는 이같은 북측 태도와 맞물려 경화될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최광,김철만 등 혁명1세대를 요직에 재기용하는등 김일성체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전개했는데 소련은 이에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련이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김일성체제를 격하시키는등 비판을 자주 해온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한다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것 말고도 소ㆍ북한간의 심상치 않은 조짐은 여러군데서 발견된다. 북한이 김일성의 78회 생일행사에 소련측 인사를 초청하지 않은 사실과 김일성 비판기사를 자주 써온 평양주재 타스통신기자를 최근 추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소측이 주소대사로 모스크바에 부임한 손성필의 신임장 제정을 5개월이나 늦춘 것도 이러한 분위기 때문이다. 북한은 결국 김일성이 장기적인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개방압력을 최대한 피해가면서 내부적으로는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사상교육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이와함께 한소 관계정상화에 대응해 미 일 등 서방진영과의 관계개선 노력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미국과 중국 북경에서 정무참사관급 접촉을 10차례나 가졌고 일본과도 후지산호 선원의 석방을 미끼로 관계개선을 꾀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에서 국회격인 최고인민회의내에 상설기구로 외교위원회(위원장 허담)를 설치한 것도 이같은 점을 충분히 인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가까운 장래에 미 일 등과 당국간 대화를 시작할 것으로 짐작되며 이는 한반도 긴장완화에 청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한반도 주변환경의 변화에 따라 북한체제의 개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정치ㆍ경제ㆍ군사적 측면에서 소련측에 엄청난 의존을 하고 있는 북한이 계속되는 소련의 개방압력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중국도 9월 북경아시안게임에 한국측의 지원을 바라는 속마음과 함께 개방화물결에내심 신경을 쓰고 있는 만큼 북한의 폐쇄노선이 고립을 자초하는 옳지 못한 행동이란 점을 설득시킬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도 이번 정상회담이 발표된 이후 예상과는 달리 비난강도가 약하고 잇따라 대남 유화책을 제시하는등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개방화 수용자세를 어느정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상회담발표 몇시간만에 평양방송을 통해 『중단상태에 있는 각종 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성의를 다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미소 정상회담과 한소 정상회담에서 남북당국간 직접대화를 촉구할 것에 사전 대비,외형상이라도 개방화노력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군축제안 역시 「남북한ㆍ미국 등 3자간의 회담이 선행돼야 한다」는 기존입장에서 후퇴,「3자회담이전에라도 남북이 협상을 하자」는 쪽으로 기운 것도 북한이 외부적인 개방압력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한소 정상회담에 의해 남북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큰 가닥을 잡아나갈 것으로 짐작된다. 이럴경우 남북간 인적ㆍ물적 교류의 활성화,남북유엔가입,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등이 어우러져 한반도의 긴장완화및 평화정착이라는 소망스러운 「현실」이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이제부터는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순전히 우리 힘으로 대화테이블로 북한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련측과의 정상회담을 갖는 가장 큰 이유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 천안문사건 1주년 계기로 본 오늘의 위상(뉴스 추적)

    ◎외교고립속 경제난… 내우외환의 중국/서방국가들,차관동결ㆍ기술이전 중단/1천6백만 기업 도산… 실업자 1천만/공업생산 연증가율 21%서 8%로… GNPㆍ수출도 줄어 민주화 요구의 함성을 총칼로 잠재우고 드넓은 광장 곳곳을 붉은 피로 물들게 했던 「6ㆍ4천안문사건」. 중국당국은 1년전 세계를 경악케 만든 미증유의 이 대사건이 국내외에 준 충격과 상처를 될 수 있는 한 작게 줄이려는 노력과 함께 무력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등 갖가지 처방을 다하고 있으나 사건이 남긴 깊은 흉터는 좀처럼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중국은 6ㆍ4사건으로 말미암아 외교적 고립과 개방ㆍ개혁의 후퇴를 겪어야 했고 서방세계는 민주화 요구시위를 무차별 진압한 폭거에 항의,대중국 경제제재의 고삐를 좀처럼 풀려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또 중국권력구조의 강성화와 사회주의 재무장의 계기가 됐으나 권력투쟁과 새로운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한중교류에도 적잖은 마이너스 영향을 주었다. 이밖에도 비록 중국안에서는 민주화의 싹을 무참히 밟아버린 사건이었지만 동구 소련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민주개혁에는 촉매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6ㆍ4사건이 지난 1년동안 중국 안팎의 정세에 미친 충격파와 이에 따른 변화 및 전망 등을 부문별로 살펴본다. ▷국제정세와 6ㆍ4◁ 중국은 천안문사건이란 큰 희생을 동구변혁의 밑거름으로 제공했다.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서는 지난 78년부터 가장 먼저 개방ㆍ개혁을 추진했지만 시위군중을 무력진압한 유혈사태 이후 사회주의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동구각국 지도자들은 6ㆍ4사건으로 중국의 이미지가 크게 악화됐을뿐 아니라 외교적으로 따돌림을 받고 경제가 파탄국면에 놓이는등 최악의 결과가 파생됐음을 깊이 인식,자국내의 민주개혁요구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게 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중국당국의 무력진압에 찬성의 뜻을 나타냈고 지난 연말 교석당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일행을 맞아 강경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하는 다짐을 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국민의 손에 처형당한 사실은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공산당 일당독재포기의 계기로 작용했을 것 같다. 6ㆍ4사건은 무력으로 민의를 짓밟는데 대한 대가가 엄청난 국익손실이란 점을 세계에 알렸으며 전반적인 민주화추세를 가속화한 것으로 지적된다. 이는 또 사회주의국가들이 더이상 마르크스주의만으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준 것이기도 하다. 한편 중국지도층은 지난 2월 소련의 공산당 일당독재포기선언 이후 외교적 고립감이 가중되자 동병상련의 입장인 북한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제3세계국가 순방에 나서는 등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정립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북한을 크게 의식하는 북경당국의 태도는 한국의 대중국진출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등 서방국가들이 중국과 크게 거리를 두고 있는 한 중국의 순방외교도 실효를 거두기 힘들며 대만의 탄성외교가 오히려 빛을 보고있는 실정이다. 대만은 6ㆍ4사건 때문에 중국의 대외적 이미지가 손상되자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외교관계에 있는 국가들과도 수교를 추진,적잖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중국경제제재◁ 6ㆍ4사건으로 중국이 받는 가장 큰 고통은 서방세계의 경제제재조치이다. 중국은 세계은행(IBRD)및 서방국가들이 종전에 제공했던 각종 공공차관을 동결하고 기술이전을 중지하는 등 갖가지 경제제재를 가함에 따라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게다가 조자양(전당총서기)등 개혁파가 실각함에 따라 중앙통제식 경제운용이 강화된 터여서 주름살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의 경제성장률은 88년 11.2%의 절반이하 수준인 3.9%에 머물렀고 1인당 국민소득은 인민폐의 평가절하와 인구증가 등의 요인이 겹쳐 오히려 40달러 줄어든 3백달러선에 그쳤다. 긴축시책으로 무려 1천6백만개의 개인기업이 도산했고 국영기업도 2만개나 조업을 중단했다. 전국적으로 1천만명이 넘는 완전실업자들이 북경 상해 광주 심수 등지로 몰려 다니며 일자리를 구하는 맹류현상이 두드러져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공업생산증가율은 21%에서 8%선으로 급격히 둔화됐다. 중국이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 그들에 대한최혜국대우(MFNㆍMost Favoured­Nation Status)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MFN은 한마디로 어떤 특정국가에 대해 제3국보다 불리한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이지만 보통 제3국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 제시된다. 종전에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MFN을 적용해 왔지만 이를 폐지할 경우 미에 수출되는 중국상품의 관세는 하루 아침에 10∼20%에서 60∼1백10%로 껑충 뛰게 된다. 그 결과 연간 1백20억달러의 대미수출은 30억∼50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해 60억 달러,올해 90억달러에 이를 중국의 대미무역수지 흑자를 감안하면 MFN의 폐기는 중국경제의 숨통을 죄는 것과 같다. 지난달 24일 부시 미대통령은 오는 3일 만료되는 중국에 대한 이같은 최혜국대우를 1년 연장한다고 밝혔다. 비록 중국의 인권탄압이 심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상호교류를 안 할 수 없는 데다 홍콩ㆍ한국ㆍ일본 등 주변 국가들도 피해를 본다는 이유에서 였다. 특히 홍콩은 중국의 대미수출 물량가운데 70%를 중개하기 때문에 가장 큰 선의의 피해자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밖의 주변국들도 중국경제의 구매력이 낮아짐에 따라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의회는 중국의 민주화 및 인권문제가 개선된다는 보장이 없는 한 부시대통령의 결정을 번복시키거나 1년의 적용기간을 6개월 혹은 9개월로 줄이는 등 조건부의 대우조치를 취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중국의 미소작전과 향후전망◁ 6ㆍ4사건 1주년을 맞이하면서 북경당국은 대내외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많이 쓰는 것 같다. 지난달 1일엔 북경과 티베트라사에 대한 계엄령을 해제한데이어 10일에는 비록 주동자를 제외시키긴 했지만 천안문시위관련자 2백11명을 전격 석방했다. 또 얼마전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실권자 등소평은 서독전총리 슈미트에게 『지난해 사건발생의 책임을 학생들에게만 돌릴 수 없다. 중국의 지도층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강택민총서기도 미ABC­TV 앵커 바버라 월터스와의 회견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달 23일 과거에는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했던 천안문시위를 「정치 풍파」로 표현하고 그동안 탄압대상이 됐던 지식인들의 사회활동참여를 촉구했다. 6ㆍ4사건은 자산계급 자유화를 추종하는 반혁명 분자들이 사회주의 중국을 전복시키려 했기 때문에 충성스런 인민해방군이 이에 맞서 싸워 당과 조국을 구한 것이라던 종전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북경당국의 이러한 미소작전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같다. 인권탄압을 비난해온 서방국가들을 무마시켜 경제제재가 완전히 풀리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최혜국대우 문제 외에도 중국은 세계은행 차관을 계속 얻어야 하며 일본으로부터 50억달러의 장기저리차관을 들여와야만 90년이후 5개년개발 계획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 세계은행은 29일 이사회에서 대중국제재문제를 논의했으나 겨우 3억달러의 조림용 차관공여를 허용했을뿐 나머지 차관은 계속 동결시키기로 했다. 차관외에도 과학기술도입ㆍ군사협력 등 중국이 서방세계의 신세를 져야 할 사항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미소작전은 치열한 권력투쟁의 잠재성을 가진것 같다. 지난달 27일 주해경제특구를 시찰한 중공당정치국상임위원 이서환은 『6ㆍ4사건책임이 지도층에게도 있다는 등소평과 강택민동지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 시위학생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이붕총리의 태도는 틀린 것이다』라고 공언,현지도층의 내분을 가시화시켰다. 한편 이붕과 함께 강경보수파로 알려진 양상곤국가주석은 『천안문 시위무력진압은 중국사회주의를 구하기 위해 취해진 정당한 행위』라고 남미순방길에서 밝혔다. 결국 겉으로 드러난 대로라면 등소평ㆍ강택민ㆍ이서환등 비교적 개방지향의 인사들이 같은 편이고 이붕ㆍ양상곤과 이들 보수세력의 대부격인 진운 당중앙위고문이 등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등은 오랜 라이벌인 진이 지난 4월말쯤 자신에게 천안문사건 최종 책임의 화살을 겨누자 이를 피하는 것은 물론 서방세계의 제재도 종식시키고 대내적으로도 불만이 큰 지식계층을 무마하는 등 다목적의 전략을 택한 것 같다. 그러나 『고위층에도 책임이 있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강경보수파를 지목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중국의 권력투쟁은 가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 한편 모두 80대 중반을 넘어선 등이나 진이 사망할 경우 앞으로 중국의 정국은 예측하기 힘든 변화의 길을 걸을 것이며 만약 지난해 천안문시위에 동조했다가 실각,현재 심장병을 앓고 있는 조자양이 죽게 되는 날이면 제2의 6ㆍ4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을 것 같다. 민주개혁을 주장했던 조에게 지식인ㆍ학생 등 중국인들이 거는 기대가 매우 큰데다 지난해 천안문시위도 조와 같은 노선을 취했던 호요방(전당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점화됐던 것이다.
  • 노대통령,오늘 방미 등정

    ◎5일(한국시간) 대소·6일 대미 정상회담/한­소수교·한반도평화 논의 노태우대통령은 오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츠프 소련대통령과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갖고 이어 6일 워싱턴에서 부시 미국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5박6일간의 일정으로 3일 하오 특별기편으로 방미길에 오른다. 미소회담에 이어 한소,한미등 3개국간에 연쇄적으로 이뤄지는 이번 노대통령의 개별정상회담은 한소 관계정상화는 물론 남북한관계등 한반도안보정세와 동북아평화구도구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문제들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돼 그 결과가 매우 주목된다. 노대통령은 4일 하오(한국시간 5일 상오)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동북아국제정세및 한반도에서의 군축및 평화정착문제 ▲한소수교문제 ▲양국간 경제,문화및 인적교류문제 등을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5일 워싱턴을 방문,6일 상오10시(한국시간 하오11시) 백악관에서 부시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한소,한일 정상회담및 미소 정상회담결과를 중심으로 양국의공동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노·부시 회담에서는 안보,경제등 한미 쌍무문제와 북한의 핵문제도 거론될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회담후 이날 하오 귀국길에 올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1박한 후 오는 8일 하오 서울공항착 귀국할 예정이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한소 정상회담과 관련,『노대통령은 세계에 넘치는 개방과 협력의 물결을 한반도에 미치게 하는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하고 『한소 수교문제는 물론 한반도평화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북한이 지난달 31일 한소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한반도 비핵지대화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등을 내용으로 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축안」을 제의한 사실을 중시,고르바초프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와 유사한 군축안을 거론할 것에 대비,소련의 대북최신예전투기및 미사일공급중단,핵개발저지 등의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동북아에도 「신데탕트 바람」분다/한ㆍ소 정상회담의 파장

    ◎모스크바­북경­평양은 어떻게 보나/북한에 개혁압력 부수효과 기대 모스크바/신중한 반응속 새 기류 관망자세 북경/대소 의존 고려,대항조치 없을 듯 평양 오는 4일 하오 4시(한국시간 5일 상오 8시)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사상 최초의 한소정상회담이 냉전후의 세계재편을 가속화 시키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아직 국교조차 없는 한소양국의 정상이 이처럼 전격회담을 갖는 것은 냉전후 재편성되는 국제정세의 급전개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아시아 태평양의 장래에 새로운 개혁의 물결을 초래하리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한다. 노태우­고르바초프 회담은 동북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본의 언론과 외교소식통들이 분석한 동북아시아 관련국가의 표정을 정리해본다. ▷모스크바◁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소련의 한 관계자는 31일 워싱턴에서 『이것은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말하고 국교정상화를 중심으로 경제협력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협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회담에 관해 『소련과 북한간의 사전협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이 관계자는 한소 정상회담이 소련과 북한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논평을 회피했으나 소련측에는 한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일방적으로 진척시킴으로써 북한에 개혁을 촉구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또 『이니셔티브는 한국측에 귀속한다』고 밝혀 이번 정상회담이 한국측의 적극외교에 의해 성사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아사히(조일)신문은 1일자 모스크바 특파원발신 기사에서 『한소정상회담이 갑자기 실현되는 배경에는 양국의 국교정상화를 이룩함으로써 한반도정세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의 외교공세를 본격화 하겠다는 소련측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또 소련이 지금까지 대한 관계개선에 신중한 방식을 취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할때 이번 일거에 수뇌회담으로 비약한 것은 그동안 「장애」가되어온 북한의 대응에 하나의 단호한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유럽을 무대로 진행되고 있는 서방측과의 협력관계에 있어서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의 규제완화문제등 생각대로 본격화 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황타개를 노린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소련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도 미소 수뇌회담에 맞춰 노태우­고르바초프회담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소련에 있어서는 아시아에 대한 외교정책의 흐름의 일환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되었기 때문에 「다음은 한국」이 라는 논리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르바초프 정권의 대아시아정책은 86년 7월 아시아의 안전보장체제 확립을 호소한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에서 시작됐으며,88년 9월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행한 연설에서 직접적으로 대한관계에 언급,한소접근의 흐름이 본격화 했다. 그를 위해서는 남북분단ㆍ대립이 계속되는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불가결하며 대공산권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북방정책을 표방한 노대통령과생각의 일치를 보았다고 아사히신문은 지적했다. 모스크바의 동양학연구소 한반도문제 전문가나 프라우다지의 저명한 정치평론가도 노­고르바초프 회담소식에 『전혀 들은 바 없다,정말인가』라고 되물었으며 외무성 정보국도 묵묵부답이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이번 회담은 전격적이며 고도의 「정치적」인 것이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북경◁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중국측은 일응 「무관심」을 가장하고 있다. 31일 이 문제에 관해 논평을 요청받은 중국 외무부대변인은 『그것은 그들 양쪽(한국과 소련)의 일이다』라고만 답변,중국과는 관계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중국공산당의 강택민총서기도 이날 일본 창가학회 이케다(지전) 명예회장과의 회담에서 한소 정상회담의 평가에 대해 『중국은 남한과 경제ㆍ무역을 중심으로 민간 왕래를 계속하고 있다. 한소 정상회담은 미묘한 문제이나 우리는 북한과의 관계에 유의하고 있다. 역사적인 관계가 있고 통일이 중요하다. 남북통일을 바란다』며 직접적인 논평을 피하고 중국의 원칙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그러나 중국이 내심으로는 한소접근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일본언론들은 분석한다. 정경분리라는 명목하에 실질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파이프는 굵어지기만 한다. 그러나 소련처럼 한국을 정치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중국의 약점이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외에 지난해 천안문사건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돼버린 중국에 있어서 북한은 일당독재를 견지하는 극소수의 맹우이다. 한국을 인정하는 쪽이 경제적으로는 유리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외교ㆍ국방ㆍ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볼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중국의 일반대중이 북한을 보는 눈은 따뜻하지 않다. 중소논쟁이 벌어지면 북한은 중국편에서 서지 않고 『배반했다』라고 대중은 보고 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말하지 않고 있으나 북한정권의 「세습」을 강력히 비판한다. 중국국민의 기분은 북한보다는 남한쪽에 기울어 있다. 소련의 한국접근이 어디까지 이루어질 것인가. 그 결과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중국지도부는 그것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중국의 앞으로의 한반도정책에 영향이 나올 것이라고 일본에서는 보고 있다. ▷평양◁ 한소 정상회담의 실현은 한국외교의 승리이며,북한에 있어서는 믿었던 한쪽 기둥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일본언론들은 지적한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경제적ㆍ군사적 원조를 받고 있는 이상 소ㆍ북한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대항조치를 취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북한은 중국에 더 한층 기울어져 소련을 견제함과 동시에 대미ㆍ대일정책에서는 점차 융화적인 자세를 보이며 한국에 대해서는 남북대화에 관한 제안공세 등으로 쫓기고 있는 국면의 타개를 꾀할 것이라고 일본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 가이후 일 총리 만찬사

    일 행위로 인한 견디기 어려운 고통 겸허히 반성,솔직히 사과드립니다 일본과 한반도가 일의대수를 사이에 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는 관계는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화할지라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같은 양국간에 밀접한 우호와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양국 국민의 행복과 이 지역 평화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하겠습니다. 본인은 대통령각하를 맞이한 이 자리를 빌려 과거의 한 시기에 한반도의 국민들이 일본의 행위로 인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겪으신 데 대하여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하게 사과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본은 전후 엄숙히 반성하는 입장에서 평화국가의 길을 선택하였으며 그후 한결같이 한국을 비롯하여 널리 국제사회 전체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만 본인은 앞으로도 일본은 이런 자세를 바꾸지 말고 더 노력을 강화해 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한 양국의 유구한 선린우호 관계도 먼저 일본의 이러한 노력이 한국국민 여러분께 납득되고서야 비로소 확고부동한 것이 될 것입니다.논어에 「언필신,행필과」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본인은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도덕의 제일보는 국가가 신뢰를 얻는데 있어서도 불가결한 요건이라고 생각하며 내정ㆍ외교에 걸친 정치운영을 추진해 갈 결심입니다. 일한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지도 어언 4반세기가 지났습니다. 한국은 최근 눈부신 성장을 이룩함으로써 널리 국제사회에서 그에 이바지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일본도 또한 세계로부터 큰 역할의 수행을 요청받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양국은 비단 이웃나라일 뿐만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양국은 그 협력관계의 차원을 더욱 높임으로써 세계의 요청에 부응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 변혁 거부… 대남강경노선 전개조짐/북한 최고인민회의 결과 분석

    ◎「김정일세습체제」 정지작업에 주력/유엔관련 변칙제안,“한국 단독가입견제” 속셈/주민자유왕래문제도 방안 미비… 선전용 입증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를 계기로 김일성이 주석으로 재추대되는 등 부분적인 권력구조개편이 이뤄진데 이어 김일성이 시정연설을 통해 대내외정책의 기본원칙을 밝힘으로써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한 북한의 대처방안이 어느정도 드러났다. 지난해부터 거세게 불기 시작한 동구권국가들의 대변혁에 맞서 북한이 어떤 변화를 모색할 것인가 하는점 때문에 크게 주목을 끌었던 이번 회의에서 북한은 김부자의 세습체제를 더욱 공고히하는 한편 변혁을 거부함으로써 앞으로도 북한의 유화적인 대남정책 및 대내외정책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번 회의의 주요내용은 ▲김정일의 국방위 제1부위원장 선임 ▲허담의 당비서탈락 ▲통일정책심의위원회 신설 및 윤기복위원장선임 등의 일부 권력구조 개편과 김일성의 시정연설에 담긴 ▲남북한공동의석 유엔가입 ▲남북통일을 위한 5개원칙 ▲남북한주민의 자유왕래실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 관련,북한문제전문가들은 『북한은 동구권식의 급격한 변화를 꾀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평가를 내린 것 같다』고 진단하고 조급하고 섣부른 개혁이나 개방보다는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사회주의노선을 고수하면서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체제정비에 초점을 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흥렬교수(충북대)는 『김일성의 지배체제강화라든지 김정일의 세습체제가속화 등이 바로 북한식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정비작업』이라고 분석하고 북한은 소련등 동구사회주의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환기적 혼란을 피하면서 당분간 국제정세를 좀더 관망하겠다는 결론을 내린것 같다고 말했다. 윤병익교수(통일연수원)는 이번 회의에서 북한의 변화를 예견할 수 있는 바람직한 요소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지적하고 김일성의 시정연설에 담긴 남북한유엔가입을 위한 변칙제안 역시 이제까지 되풀이 해온 「고려연방공화국 단일 국호에 의한 유엔가입」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한국의유엔단독가입을 견제하기 위한 편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즉 한소관계의 급진전,북방정책의 성과 등으로 한국의 유엔단독가입 움직임이 구체화되는 것으로 보고 이를 견제하는 한편 자신들도 유엔가입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에 있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남북한주민들의 자유왕래제의나 5개항의 통일원칙 등도 언젠가 이룩해야할 당위적인 목표를 재확인한 것일뿐 「언제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전차원의 허구에 불과하다는게 도흥렬교수의 지적이다. 남북대화발전문제와 관련해 『중단상태에 있는 남북대화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여러가지 형태로 더욱 발전ㆍ확대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는 김일성의 다짐도 그의 올 신년사 내용에서 조금도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병철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변칙적이나마 유엔공동가입을 시사했다는 점은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이는 한국이 단독으로 가입하게 될때 북한도 가입하겠다는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서방과의 협력을 위해서는 유엔가입이 유리하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산하에 통일정책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에 당비서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인 윤기복을 기용함으로써 이제까지 당내 대남관계총책이었던 허담의 당비서탈락과 함께 대남정책의 변화가 점쳐지고 있다. 윤병익교수는 『허담이 지난해 최고인민회의에 설치된 외교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대미,대일,대서방외교에 전담하고 윤기복이 대남정책을 총괄하게 될지는 아직 확실치 않으나 경기고출신으로 출신으로 한국사정을 잘 알고 있는 윤기복이 통일정책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북한이 앞으로 대남선전공세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서병철교수도 『한국사정을 잘알고 남북회담의 경험이 있는 윤기복의 부상과 새로운 통일기구의 신설은 북한이 앞으로 대남교섭 및 접촉을 능동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정일의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선임은 권력세습을 위한 미해결의 문제를 해소,이를 위한 정지작업을 마무리했다는 분석에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으나 서병철교수는 『이것은 바로 군부가 북한에 있어 권력세습의 가장 큰 잠재적인 저항세력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한인 1ㆍ2세 지문등 폐지를”/노대통령 촉구

    ◎일선 피폭한인지원기금 약속/1차정상회담 노태우대통령은 24일 하오 숙소인 영빈관에서 가이후 총리와 1차 정상회담을 갖고 동아시아및 국제정세 전반,재일한국인 법적지위문제등 양국간의 현안과 공동관심사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문날인 배제,외국인등록증 대체수단 강구,재입국기간 연장,강제퇴거사유 한정등 재일한국인 3세문제와 관련한 양국간의 합의가 재일한국인 1,2세는 물론 조총련계를 비롯한 모든 교포들에게 확대적용될 수 있도록 일본정부가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가이후 총리는 이에대해 『재일한국인 1,2세에 대한 한국정부와 노대통령의 깊은 관심을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재일한국인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채용,국공립교원 채용및 교육문제도 한국측의 높은 관심을 감안,양국이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이후 총리는 또 『한국에 있는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해 40억엔(약 2백억원)규모의 기금을 만들겠다』며 그 구체적 방법과 절차는 양국 실무진이 협의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노대통령과 기이후 총리는 사할린거주 한국인의 모국방문도 보다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협조해 나가기로 했다.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한일 두 나라가 냉철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21세기를 내다보는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양국정상은 또 세계적인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동북아지역에는 현실적으로 고무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된 인식아래 아시아에도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함께노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 낮 도쿄 하네다(우전)국제공항에 도착,방문일정을 시작한 노대통령은 숙소인 영빈관에서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곧바로 궁성으로 일왕 내외를 예방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ㆍ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총리ㆍ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사회당위원장등 일본정계 주요인사들을 차례로 접견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서울공항을 떠나기 앞서 출국인사를 통해 『한일 양국이 20세기의 마지막연대를 맞고 있는 이제 상호존중과 이해에 바탕한 진정한 우호협력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일본을 방문한다』면서 한일간의 우호협력관계는 양국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장래를 위해서도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방일 이틀째인 25일 상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중ㆍ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 세계지도자초청 「새시대의 도전」 대토론 내용

    ◎“통독은 한반도통일에 큰영향 미칠 것”/한국과 독일분단 「상호교류」측면서 큰 차이/경제개혁 실패한 고르바초프… 서방 자원엔 한계/한­일은 갈등극복,동ㆍ서구 변화에 대처해야 「새 시대의 도전­동아시아정세와 관련하여」를 주제로 한 세계지도자초청 대토론회가 23일 서울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총리,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전 일본총리,신현확 전 총리 등 4명의 전직국가수반들은 한승주교수(고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소련과 동구의 개혁,미소관계 및 군축문제,아시아ㆍ태평양협력체제 구성문제,아시아와 한국의 역할 등 국제정세 전반에 걸쳐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독일통일이 한국통일의 교훈이 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독일통일이 남북한관계개선에 미칠 영향과 남북통일을 위한 과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토론내용을 요약해본다. ▲한승주교수(사회)=세계 정세가 최근 급변하고 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등장이후 소련과 동구의 개혁도 본격화되고있다. 소련의 당면과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견해는.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총리=소련은 글라스노스트(개방)와 언론의 자유면에서는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경제적인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서는 실패했다. 현재 소련의 경제상태는 브레즈네프시대보다 오히려 악화돼 있다. 고르바초프는 용기가 있는 뛰어난 정치인이지만 경제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개방정책은 성공적 고르바초프는 이밖에도 소연방을 하나로 유지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고르바초프 앞에는 당내 보수ㆍ개혁파간의 권력투쟁,개혁에 대한 관료층의 저항,군비축소 등에 따른 군의 반발 등이 해결과제로 놓여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련내의 지원뿐 아니라 주변국가들의 원조가 필요하다. ▲사회=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이처럼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데 서방세계는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는가.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서구는 고르바초프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성공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스럽다. 그렇지만 서구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을뿐 아니라 서구의 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소련 내부의 경제 사회문제가 고르바초프 정책의 성공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사회=소련의 개혁정책 및 문제점들과 관련해서 일본은 어떤 시각을 갖고 있으며 내년쯤으로 예상되고 있는 고르바초프의 방일이 일ㆍ소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리라고 보는가. ▲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전 일본총리=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성공시킬수 있느냐에 따라 그의 장래가 결정될 것이다. 일본과 소련과의 관계는 서구ㆍ소련과의 관계와는 다를 것이다. 양국간에는 북방도서 반환문제 등이 놓여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풀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소련정부가 발트3국에 대해 강경정책을 취하고 있듯이 북방도서 문제도 이와 비슷한 선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회=일소관계와는 대조적으로 한소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것은 소련의 정책 및 체제의 변화와 함께한국이 북방정책을 표방한 결과일 것이다. 현재 한소관계는 어떠하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견해는. ▲신현호 전 국무총리=그동안 한국은 정부수립이래 같은 유라시아에 있는 소련을 단지 「위협」의 의미로만 여겨왔으며 미국과의 관계만 유지해 왔다. 그런데 그동안 역사적인 조건이 누적된 것도 있지만 고르바초프가 등장한후 과감한 정책변경과 민주화ㆍ자유화 노선으로 한국에는 닫혀 있던 지평선이 완전히 열리게 되었다. 북방정책이 시기적절하게 주효하여 한국은 동구 대부분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소련과도 가까운 시일내에 국교를 수립할 전망이다. 한국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련 및 동구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려움을 극복,신사고가 성공하기를 다른 나라들보다 더 바라고 있다. ○군사력 중요성 감소 ▲사회=통독은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안이지만 분단국인 한국국민들은 더욱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통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주변 유럽국가들이 독일통일을 보는 입장은 어떤가. ▲지스카르 데스탱=유럽의회에서는 정기적으로 통독에 대한 현황을 논의하고 있다. 통독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으로 91년까지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며 7월2일 시작되는 경제금융통합이 잘되느냐에 따라 통독의 전망이 밝혀질 것이다. 지난해 10월 헬무트 콜서독총리가 장기적인 것으로 통독의 10개항을 발표한 것과는 달리 통독은 훨씬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물론 동서독인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도 있지만 통독을 도와주는 주위의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독이 쉬운것만은 아니다. 서독정부는 생산성이 떨어져 있는 동독기업들의 육성과 동독인들의 생활수준향상을 위해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마련하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한편 통독에 호의적인 유럽인들의 수가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점차 줄어들고 있다. 유럽은 20여년전부터 영국ㆍ서독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4개국의 중요성이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그런데 독일이 통일될 경우 인구도 늘어나게 될 뿐아니라 GDP(국내총생산)가 40%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하나의 유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쨌든 독일의 통일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사회=독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속히 통일을 하게 되었는가. ▲헬무트 슈미트=한국과 독일의 분단은 차이가 더 많다. 서독은 항상 밀접한 관계를 지속해왔으며 서독정부는 동독정부로부터 교통,왕래허용 등 적지않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다. 나는 호네커 전 동독국가평의회의장과 공식적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신을 자주 교환했으며 유선으로도 통화할 수 있었다. 콜총리와 호네커는 상호 방문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서로의 노력으로 쉽게 관계가 개선될 수 있었다. 이것은 한반도가 분단이후 남북이 접촉을 거의 하지않은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독은 지난 60년대말 브란트 전총리가 주창한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구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도 노력했으며 프랑스와의 협력을 위해서도 힘으로 기울였다. 90년대는 군사력보다는 경제ㆍ재정적인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사회=강대국뿐아니라 주변국가들이 통독을 경이적으로 보고 있다. 독일은 2차대전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에게 그동안 어떻게 했는가. ○한국,저자세 바꿔야 ▲헬무트 슈미트=동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서독은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많은 배상을 했다. 프랑스와 협력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드골 전 프랑스대통령은 독ㆍ불관계증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서독은 유태인학살로 피해를 당한 이스라엘에 배상금을 지급하고 방문단을 파견하기도 했으며 폴란드 헝가리 등에도 재정지원을 했다. 서독정부는 이들 국가들에 수백억달러를 배상했으며 동구국가들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왔다. 소련은 서독의 이러한 움직임에 의심스런 태도를 보여왔다. 서독내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잔류 등이 더욱 소련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다. ▲사회=독일과 일본은 주변국가들과의 관계가 상이한것 같은데 24일 시작하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맞아 어떻게 생각하는지. ▲후쿠다 다케오=한­일 양국은 문제가 있을수도 있지만 이를 극복함으로써 언젠가 닥칠지도 모르는 동ㆍ서구의 움직임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며 두나라는 가장 가까운 선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일본은 환영하며 한일양국관계가 돈독해지고 좀더 전진적인 관계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말뿐이 아닌 명실상부한 이해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양국은 협력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에 영향을 미칠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한국에서 바라는 것을 해왔으며 계속 노력해 왔다. 남북한이 현실을 직시한다면 미래에는 실수가 없도록 현명히 대처해야하고 일본은 미래의 우호적인 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구ㆍ환경 주요이슈로 ▲헬무트 슈미트=30년전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발전했다. 한국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었으므로 너무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 자세를 바꿔야 하며 이것은 대소ㆍ중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상대방이 거절하겠지만 주변국들은 한국의 신뢰를 얻어야 할때라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성공을바라서는 안된다. 한국은 이제 중간급 호랑이로 성장했으며 한­일은 동아시아의 유대를 위해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앞으로 10년 남은 21세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지스카르 데스탱=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정권은 존립할 수 없으며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국가는 타국의 주의력을 이끌게 될 것이다. 2000년 이후에는 인구와 환경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경제산업발전이 있었지만 환경은 이로 인해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군사력 대립은 줄어들게 될 것이지만 우발적인 사고가 야기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지적인 면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며 지역문제는 그 지역기구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제1부주석직 신설,김정일 입지강화

    ◎내일 최고인민회의… 무엇이 달라질까/경제활성화 겨냥,중국식개혁 추진 확률 높아/고향방문단 교환등 대남평화공세 전개할 듯 북한의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의 제9기 제1차 대의원회의가 내일(24일)개막된다. 이번 제1차회의는 향후 4년간의 국가정책의 기본노선을 결정,대내외에 공표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1개월전에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4월22일)를 앞두고 촉발됐던 「김정일의 국가주석직 승계」 여부가 판가름날 뿐아니라 소련 및 동구의 대변혁,한국의 북방정책에 맞서는 북한의 정책적 대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여 첫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지도기관선거 결과 및 다음날의 김일성시정연설 내용이 주목된다. 국가권력구조의 개편과 관련,북한문제전문가들은 김정일의 국가주석직승계설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고 이에 따라 김일성의 국가주석 재추대에 이은 제9기 정무원구성이 이뤄질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서철(83ㆍ당검열위원장)과 허정숙(82ㆍ당비서)의 대의원탈락,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손성필의 주소대사부임,부주석 임춘추의 사망(88년)등의 요인으로 인해 권력서열의 조정 및 핵심권력층의 보직교체등은 있을 수 있으나 체제적 측면에서의 새로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지난해 11월 김일성의 비밀 중국방문시 북한은 김정일의 후계계승 문제를 중국측에 통보,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고 이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6개월여 앞당기는 등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의 가능성이 높았으나 중국공산당총서기 강택민의 북한방문에서 강택민이 시기가 적절치 않다며 이의 유보를 주장했고 북한측도 이를 받아들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교수는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제1부주석직을 신설하거나 임춘추의 사망으로 비어 있는 부주석직을 김정일이 맡도록 함으로써 유사시 국가주석직을 승계토록 대비할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전인영교수(서울대)도 『김정일이 당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고 실제 거의 모든 국정을 전횡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주석 자리를 맡느냐 하는 문제는 별 의미가 없지만 형식상이나마 그 직을 차지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경제활성화를 주도할 수있는 테크노크라트출신 관료의 기용폭을 넓히는 동시에 올해들어 강조해온 관료주의의 폐단을 없애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일부 권력층의 자리바꿈 정도는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김일성의 시정연설을 통해 발표될 북한의 기본정책과 관련,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근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주체노선의 고수를 거듭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외견상 큰 변화는 없겠지만 대외정책에서 보다 유연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인영교수는 『노령과 병고로 인해 자연도태된 서철과 허정숙을 제외하고 북한의 중심권력층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기존정책 역시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전제하면서 북한의 현재 1차적 관심은 대미ㆍ대일관계개선이나 대남교류가 아닌 한­소수교의 지연에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획기적인 대외정책이나 대남정책 등이 발표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정현교수(경희대)는 『북한이 현재 제3차 7개년경제계획(87∼93년)을 오는 92년까지 마무리한다는 방침과 경제활성화라는 당면과제를 위해서라도 중국식 모델의 경제개혁이나 대외개방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회의에서 비록 헌법상ㆍ문구상 그 내용을 명문화하지 않는다 해도 경제특구의 설치방안이나 대외합작의 활성화 방안,부분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도입등의 정책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소련ㆍ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남북간의 직접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국제정세로 인해 최근의 경직화된 대남정책에서 벗어나 평화공세를 적극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유석렬교수는 『전병호ㆍ홍성남ㆍ강성산 등 경제관료들의 부상은 실리를 앞세운 대외경제교류의 추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현재의 대남강경방침도 오래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오는 8월15일 광복 45주년을 계기로 한 예술단이나 고향방문단교환 등 평화공세적 측면의 제의들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안개정국속 「이등휘호」출범/대만총통 취임과 「항해기상도」

    ◎국민의 민주화 욕구 수렴등 과제 산적/당내 파벌싸움도 심각… 전도 불투명 장경국총통의 사망으로 지난 88년 이후 그의 잔여임기를 물려받았던 이등휘총통이 대만 안팎의 정세가 그 어느때보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20일 정식으로 임기 6년의 제8대 총통에 취임한다. 이총통은 최근들어 부쩍 고조되고 있는 대만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와 집권당인 국민당 내부의 파벌싸움,야당의 강력한 도전 등으로 그의 정치여정이 매우 순탄치 않을 것이란 평을 받고 있다. 또 사회ㆍ경제적인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압력도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대만의 안정과 번영을 꾀하기 위해 그가 풀어야 할 난제는 너무 많은 것 같다. 그가 당면하고 있는 시련가운데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집안 싸움을 종식시키는 일로 지적되고 있다. 대만 국민당 내부의 권력투쟁은 지난 3월 8대 정ㆍ부총통선거를 둘러싸고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현재 3개 계파로 나뉘어 첨예한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이총통이 러닝메이트로 그의 비서실장 이원족을 지명한데대해 이환 행정원장을 대표로 하는 원로보수인사들이 기득권 상실을 우려해 크게 반발,비주류파를 만들어 별도의 후보를 내세우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총통의 설득으로 당시 소동은 가라앉았으나 최근엔 군부실력자 학백촌 국방장관(4성장군출신)이 차기 행정원장으로 지명됨에 따라 대만주민들은 『군의 정치개입이 민주화에 역행한다』며 날마다 거센 항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이총통에 대항했던 이환이 행정원장직에서 해임되는 것은 명백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 비주류파측에선 이러한 주민시위에 편승,이총통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류ㆍ비주류 외에 얼마전 국민당의 젊은 혁신파인사들은 별도로 신국민당련선을 결정했으며 대북시 출신 입법위원으로 최다득표당선 경력을 자랑하는 조소강(41)이 이 단체를 이끌며 이총통에 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40년 동안 일사불란했던 국민당이 이처럼 분열된 모습을 보이는데 대해 관측통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치러야 할 진통으로 보기도 하지만 농학박사로 학자출신인 이총통의정국운용능력이 충분치 못한 것 같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ㆍ경제적 측면에서도 대만은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지난 87년 계엄령해제 이후 범죄발생건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TV에선 권총등 불법무기류 신고에 관한 프로를 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치인ㆍ기업인에 대한 범죄단체의 협박ㆍ폭행사건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 불안과 치안문제이외에 임금을 비롯한 원가상승 등으로 경제가 받고 있는 타격도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된다. 한편 이총통은 이러한 상황들에 대처하기 위해 오는 6월중 국정회의(비상시국대책회의)를 소집,각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종신직 대륙원로들을 3년이내에 모두 퇴진시키는 등 정치민주화를 가속화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각계각층 보수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빠른 시일안에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얼마전 이총통은 중국에 대해 정부대정부의 대화를 제시했다. 다시 말해 북경당국은 대만을중국의 일부로 보거나 지방정부로 취급하려 하지말고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측은 이러한 「1국2정부」제의는 대만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두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라며 즉각 거절했다. 대만의 대 중국투자는 통일문제와 큰 관계가 있다. 대만측은 7백억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대륙안에 경제력을 과시,앞으로의 통일논의를 그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속셈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중국은 언젠가는 대만이 본토에 귀속될 것이므로 투자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에 맞서 대만의 대륙정책도 장기적인 것 같다. 국제정세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민주화는 필연적이며 제2의 천안문사건이 발생,강경보수적인 현 중국 지도층이 물러나고 대륙전체가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인식하게 될 때 통일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대북=우홍제특파원〉
  • 미ㆍ북한 “유해외교”… 접근속도에 관심

    ◎최근 양측의 활발한 접촉 안팎/비공식적 창구 활용… 대화채널 다변화 예고/미,「선 남북한 관계개선」 전제조건 고수 할 듯 미ㆍ북한 관계가 오랜 적대적 정체 상태를 벗어나 개선ㆍ진전 국면으로 접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미군유해 송환과 미학자 입국 허용 등의 대미 화해 제스처를 보이자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채널 격상을 검토중이고 한때 허담의 방미 허용문제까지 거론하는 등 화답할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ㆍ북한간의 이같은 난류는 88년12월 개시된 미ㆍ북한 북경 접촉 이후 최초의 청신호이며,특히 오는 30일의 미소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개된다는 점에서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와 관련하여 주목되고 있다. 또 미ㆍ북한의 이번 움직임은 미ㆍ북한간 공식 접촉 창구인 북경대화의 소산이라기 보다도 북한의 주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허종을 상대로 한 미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 개스턴 시거(전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와 하원원호위원장 GV 몽고메리 의원(민주)등의 거중 조정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미ㆍ북한 대화의 다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북한이 6ㆍ25때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판문점을 통해 송환키로 미측과 합의한 것은 그들의 종전 입장을 후퇴시킨 것이었다. 그동안 북한은 미군유해 송환을 미끼로 대미 접촉을 다각화하기 위해 정부간 협상을 갖자고 제의하는가 하면 미의회 의원들을 평양으로 초청,이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미 정부는 『유해 송환은 판문점의 군사정전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개선 전제 조건을 ①남북대화 진전 ②비무장지대에서의 신뢰구축 ③북한의 테러포기 입증 및 ④핵 안정협정 가입 ⑤미군유해 송환 ⑥대미 비난방송 중지등을 내세우면서 이중 가장 간단한 미군유해 송환만이라도 이루어지면 북한측의 호의적인 조치로 간주,미ㆍ북한 접촉을 진전시키겠다는 의사를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전달해왔다. 북한은 또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의 실시를 구실로 봉쇄했던 미학자들의 북한방문을 지난주에 다시 허용했다. 북한의 이같은 조치에 화답하기 위해 미국은 북한의 고위인사인 허담의 워싱턴 방문을 허용하는 방안을 한때 적극 검토했다. 현재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허는 작년 가을 평양을 방문했던 시거 전차관보로부터 조지 워싱턴대 학술회의(5월17∼19일) 참석 초청을 받고 이를 수락했었다. 김일성의 인척으로서 부총리ㆍ외교부장 등을 역임한 허는 북한의 외교 및 통일문제에 관한 최고 실무책임자이다. 따라서 그의 방미가 실현될 경우 이는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에 대해 허용해온 「학술교류」의 차원을 넘어서는 「정치적 교류」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허도 자신의 방미 교섭 과정에서 워싱턴 체재중 미행정부 고위관리와의 회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측이 이같은 정치활동에 난색을 표시하자 허는 조지 워싱턴대에 학술회의 불참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대북한 관계 진전 조치로서 허의 방미허용 보다 용이하게 취할 수 있는 것은 미­북한 대화 채널의 격상이다. 미국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접촉 수준을 공사급이나 대사급으로 올리고 접촉장소도 북경에서 뉴욕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국교가 없는 미ㆍ북한간 접촉이 뉴욕에서 이루어질 경우 북한은 대미 접촉 창구인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를 사실상 「주미 대표부」로 인식시키는 부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대화수준의 격상 조치도 ▲학술교류 대상범위의 확대 ▲유엔주재 북한외교관의 미국여행 허가등의 단계를 밟은 다음에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조지 워싱턴대 학술회의에 참가하는 북한측 대표단 가운데 한 사람은 북한 외교부의 국장급 관리로 알려졌으나 미국은 그에게 입국 허가를 내주었다. 지난해 봄 미 정부가 조지 워싱턴대 학술회의에 참석하려던 북한인 3명 가운데 2명에 대해 학자가 아니라 정부관리라는 이유를 들어 입국을 불허했던 조치와 비교해 보면 학술회의 참석자에 대한 심사기준이 완화됐음을 알 수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 3월 북한의 미 학자입국 봉쇄에 대한 보복조치로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 차석대사 허종의 워싱턴 여행 허가신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제 허가 다시 여행 허가를 신청하면 미측의 답변은 다를 것이다. 한반도 주변의 역학관계상 한소 관계의 급진전에 비례하여 미ㆍ북한 관계 개선 노력의 행보도 빨라지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빠른 행보가 단계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외교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미국은 상호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대북한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남북대화의 진전등 6개항의 실현을 꾸준히 추구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워싱턴ㆍ평양 “변화”를 보는 「서울시각」/“접촉대상 격상등 관계개선 가시화엔 시간필요”/“대미 유화 제스처는 북의 전술”… 회의적 반응 미국과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실종미군(MIA)의 유해를 판문점을 통해 송환키로 합의하고 미측이 이를 14일 공식발표함에 따라 정부는 앞으로의 미ㆍ북한 관계 개선 정도 및 이에 따른 한반도 긴장완화 등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두고 외무부ㆍ통일원ㆍ주미대사관 등 관계부처간 긴밀한 협의하에 사태발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물론 이번에 송환키로 합의된 미군유해는 5구로 현제 전체 실종 미군의 유해로 추정되는 8천2백여구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측이 대북한 관계 개선의 초보적인 전제조건으로 미군유해 송환 문제를 들고나온 만큼 북한이 이같은 미측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사실은 외교적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일부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이를 테면 8차까지 이어진 중국 북경에서의 양측간 외교관 접촉 수준이 지금의 정무참사관급에서 최소한 공사급 이상으로 격상된다든지,접촉장소도 북경이 아닌 유엔본부 등으로 다원화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분석에 일면 긍정을 표시하면서도 상당부분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한마디로 북측이 미군유해를 당초 미측 요구대로 판문점을 통해 소환함으로써 대미유화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이는 수시로 바뀌는 북측의 전술적 변화의 일환일뿐 근본적인 태도변화가 아니라는 게 정부측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북측이 기본적인 전략 변경없이 전술차원의 변화로만 대미ㆍ대남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로 남북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자세,방어적인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한 북측의 맹목적인 거부 반응 등을 꼽고 있다. 정부는 또 유해송환이 미ㆍ북한 관계의 향후 발전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도 『미측이 과연 「대북 관계개선 카드」로 얻을 정치ㆍ경제적 실익이 있겠는가』라는 인식아래 이같은 분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한미관계,북한의 태도변화,그리고 국제정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때 미측이 일종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북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부측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아직까지 북한을 국제적인 테러리스트 국가로 지목하고 있는 미측이 북한과 동류인 쿠바ㆍ베트남ㆍ리비아 등에는 어떠한 개선조치도 없이 유독 북한에게만 유화조치를 취할 경우 대국민 설득력이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미측이 북측에 요구한 관계 개선의 보다 중요한 전제조건인 ▲남북대화의 진전 ▲비무장 지대에서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안정협정 가입 등에 대한 북측의 성의있는 자세변화가 보이지 않을 경우 미ㆍ북한관계 개선은 현재로서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고 정부측은 보고 있다. 물론 북측은 지금까지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 비협조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특히 미측이 올들어 두차례 가진 미소 외무장관 회담에서 양국 공동으로 촉구한 북한의 핵 안정협정 가입문제가 미ㆍ북한 관계 개선의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이와 관련,『핵 안정협정 가입에 대한 북측의 전향적인 자세가 취해지지 않는 한 미ㆍ북한간의 실질적인 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밝혔는데 바로 이점은 북측의 기본적인 태도변화 없이는 북측이 바라고 있는 대미관계 개선의 앞날은 멀고도 험할 수 밖에 없다는 냉엄한 국제 현실을 시사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유해송환 합의는 결과적으로 오는 24일 개최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9기 1차 전체회의와도 깊은 연관을 가질 것으로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바꿔말하면 국제적인 개혁ㆍ개방화 압력을 받고 있는 북측이 이번 회의를 통해 어떠한 형태로든 대남 및 대미 정책에 대한 포괄적인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는 지적이다. 여하튼 미ㆍ북한 외교관접촉에서도 나타나듯이 북측이 대미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다 미측도 지난 88년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일부 완화,학술문화교류 목적의 북한인사 방문을 장려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어 앞으로 미ㆍ북한 간에는 민간차원의 비공식 접촉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그렇더라고 접촉대상 격상등 미ㆍ북한의 실질적인 관계 개선이 가시화되기 까지에는 향후 상당기간이 필요하다는게 정부측의 결론이다.〈한종태기자〉
  • 서방의 경제보복 회피 포석/중국,티베트 계엄해제의 배경

    ◎미의 「GSP대우」 철폐 조짐에 긴장/북경 아시안 게임 앞두고 안정 과시 중국 당국이 1일을 기해 갑작스레 티베트(서장)자치구 수도인 라사에 대한 계엄령을 해제한 것은 일단 예상외의 관용적인 조치인 것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중국 당국은 티베트를 비롯,신강위구르 자치구 등지의 소수민족 분리독립 움직임에 가차없이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위압적인 태도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티베트는 전통적으로 독립의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중국은 이 지역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 왔고 지난달 3일엔 티베트자치구 의장 도제세링의 입을 빌려 『국제정세의 변화에 편승,분리주의자들의 음모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므로 계엄령해제를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물론 중국은 『계엄의 필요성이 없을 정도로 티베트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공식적인 코멘트를 하고는 있지만 한달만에 현지 상황이 급격히 호전됐다고 보긴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중국은 나름대로 이번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속사정을 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며 이는 크게 세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요인인 것 같다. 중국은 지난해 민주화운동 탄압이후 서방세계로부터의 각종 제재조치와 외국기술 및 자본도입의 부진으로 심각한 경제적 곤경에 빠져 있는 실정이다. 특히 미국의회가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철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중국으로선 가장 급히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인 셈이다. 미측은 지난해 중국과의 교역에서 61억8천만달러의 적자를 보았고 올해엔 적자폭이 9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임을 들어 이같은 대중조치를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게다가 미의회는 최혜국대우철회 여부의 결정시한을 「6ㆍ4천안문사건」1주년을 하루 앞둔 6월3일로 잡고 있어서 단순히 경제만이 아닌 정치성보복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이러한 제재조치를 시행하게 될 경우 중국의 가장 큰 외화획득원인 대미수출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될 것이다. 한 예로 미에 수출되는 중국산 의류에 대한 수입관세가 현재 6%에서 60%로 10배나 뛰게 된다. 때문에 중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에 자국의 인권을 개선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우호적인 제스처가 절실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이밖에도 지난해 3월8일 이후 14개월 동안 지속된 계엄으로 라사를 포함한 티베트의 관광수입이 크게 줄어듬으로써 이 지역 재정난을 심화시키고 또다른 불만의 싹을 키우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된다. 티베트의 외국관광객수는 지난해 4천여명으로 그 이전의 4만명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다. 두번째로 꼽을 수 있는 중국 이붕총리에 대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권고가 주효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이의 지난 방소기간동안(4월23∼26일) 고르바초프는 『우리 처지에서 소수민족문제를 푸는데 될 수 있는한 무력사용은 않는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따라서 중국 당국은 앞으로 티베트에 대한 선심정책과 함께 인도에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 당국은 오는 9월 북경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러 발전의 전환점을 찾는다는 의도에 따라 국내안정을 과시하기 위해 지난 1월 북경에 이어 이번 라사에 대한 계엄을 철폐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동구변혁과 북한의 딜레마/서병철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세평)

    공산권의 공동번영을 위하여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강력히 촉구 하는 개혁정책의 바람이 아직까지 북한과 알바니아에만 눈에 보이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으나 공산권의 최근 정세는 이 두나라로 하여금 나무의 뿌리가 뽑히기 전에 가지를 휘어 순응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인식을 갖게할 것이다. ○국내외서 개혁 압력 나라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천지개벽에 비유될 만한 근본적인 변혁이 보도관제로 봉쇄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소련이 북한에 신예무기를 제공하면서 고성능기계를 착오없이 다루도록 기술지도를 하기 위하여 군사고문단을 파견하면 이들은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소식을 북한 군부에 전달하는 매체가 될 것이다. 외부로 부터 들어오는 소식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완전무결할 수는 없으며 단편적으로 입수되는 정보는 오히려 실제보다도 부풀리어 확산된다. 따라서 국민들의 요구가 표면화되기 전에 개혁추세에 동조하려 할 것이다. 낙후된 경제도 개혁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국가가 국민을 잘 살게 해 주어야 한다는기본적인 존립 목적 조차 저버릴때 국민들은 집권층에 등을 돌리고 축적되는 불만을 기회만 있으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위험을 인식한 알바니아의 예를 들어보자. 사회주의체제를 채택하고도 소련 및 중국과 국교를 단절하고 미국과는 수교조차 하지 않은 이 나라는 1976년 개정된 헌법에서 외국으로 부터의 차관도입까지 금지하였다. 이 알바니아에서 최근에 우선 헌법에 저촉 안되는 무상원조를 서방으로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경제 상황이 비슷한 북한이 알바니아의 예를 따를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북한의 변화는 국내상황에서도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 주석직을 맡는 등 후계자로서 권력기반을 굳히는 것이 세습통례상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는 정치적 카리스마도 없고 혼자의 힘으로 거센 바람을 막아내기도 어려워 부친의 후광을 최대로 이용하기 위하여 수렴청정을 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이때 그는 혼자서도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대세에 동조하는과감한 개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수렴청정 바랄지도 다당제를 채택하여 민주주의적 선거를 실시하면 공산주의 정당은 비공산세력과 경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정권을 상실한다는 사실이 폴란드ㆍ동독 및 헝가리에서 확인되었다. 작년 6월 공산주의 국가에서 처음 실시된 폴란드의 제한된 자유총선거에서 자유노조가 허용된 하원 35%의석을 석권하였으며 그 결과 비공산정권이 창출된 이변이 발생하였다. 금년 3월18일 동독 총선거에서도 「사회주의」라는 명칭을 당의 이름에 붙이고 있는 모든 정당이 보수세력에 의하여 밀려나는 결과가 나타났다. 헝가리에서도 지난 4월8일 실시된 선거에서 공산주의 통치원칙을 포기하고 새롭게 변모한 사회당이 불과 8%의 득표에 그쳤으며 마르크스 주의를 고집한 공산당은 완전 탈락하였다. 동유럽 국가들의 잇단 선거에서 예외없이 나타난 국민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은 현 집권당으로 하여금 탈바꿈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를 고수하려고 버티는 북한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며 동시에 북한이 늦기전에변화하도록 자극을 주는 요인이다. 공산권의 수많은 변화중에서도 북한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동독의 정권교체와 루마니아 「피의 혁명」이었을 것이다. 동독의 호네커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채택하도록 강력히 권유하였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독자노선을 고집하는 오만을 보이다가 정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공산권 최대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코메콘(공산권 상호경제원조회의)내에서 발언권을 강화하여 왔으며 17년에 걸친 장기집권중 카리스마까지 구축하여 북한으로부터 가장 성공적인 사회주의 성취자로 평가받았었다. 김일성은 「주체사상」과 호네커의 독립노선을 기꺼이 비유하면서 동독모형을 표준으로 삼았었다. 결코 개혁하지 않겠다는 호네커의 옹고집이 결국에 가서는 정권을 교체시켰고 이제는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형태의 통일로까지 연결되었다. 다음으로 공산권에서 발생하는 심상치 않은 사태에 관한 소식이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집안단속을 철저히 하는데 뜻을 같이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밑으로부터의 혁명에 의하여 무너지고 처형된 사실도 북한을 초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양국은 공산권 개혁은 사회주의를 욕되게 하는 일이므로 공동으로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선언하였으며 소련에 대한 독자성을 바탕으로 이념적 동맹관계를 굳혀왔다. 차우셰스쿠도 족벌정치와 정권세습을 시도하여 사회주의의 이단자로 빈축을 사오기도 했다. 루마니아 혁명당국이 차우셰스쿠를 실각시키고 군법재판에 회부하여 신속히 처형함으로써 추종자들의 반발을 봉쇄해버린 기민성을 보인 것은 소련 KGB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보도된 바도 있다. 이와같이 개혁에 소극적인 정책을 추구하다 불행을 자초한 나라들의 예는 비록 동유럽국가들과 북한과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국민들의 정치문화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적합한 개혁방도를 찾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북한의 변화가능성을 열거하면서 한국은 이에 대비한 조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더구나 70년대초의 독일의 여건이 90년대초 한국의 상황과 흡사하기 때문에 20년전 서독이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기선을 잡아 오늘날 통일에까지 이르게 된 것과 같이 한국이 노력하면 결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한국이 작년 헝가리ㆍ폴란드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와 수교한 이래 금년에 체코슬로바키아ㆍ불가리아 및 루마니아와도 국교를 수립하여 북방정책에 결실을 가져온 것은 1970년 8월 서독이 소련과 무력행사포기조약을 체결하고 이어 12월에 폴란드와 관계를 정상화한 동방정책의 결실과 비유된다. 또한 국제정세면에서도 1970년은 동서진영간의 데탕트가 이루어진 해였으며 두번째로 미소간의 대화와 타협에 의한 긴장완화가 1990년에 되풀이되고 있다. ○독일 본받을 필요성 1971년 동독에서는 울브리히트에서 호네커로 정권교체가 있었으며 1991년안으로 북한에서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정권이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와같이 20년의 시차를 두고 동ㆍ서양에서 전개되고 있는 분단국간 상황의 유사점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따라서 국력을 바탕으로 동독을 대화에 유도하여 통일을 달성하는 서독의방법을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 중소의 「개혁이견」좁히기 여로/이붕의 모스크바행 안팎

    ◎공산권의 민주화ㆍ소수민족문제 주요의제로 부각/“사회주의노선 지속”이념적결속에 총력 기울일듯 중국 이붕총리가 오는 23일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26일까지 머물면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양국 현안 및 국제정세 등에 관해 논의하게 된다. 이총리의 이번 방소는 지난해 5월 중소정상회담때 고르바초프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그의 양부이기도 한 주은래전총리의 지난 64년 방문이후 중국고위층 인사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의 이번 모스크바행이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미소간 냉전시대 복귀가능성이 엿보이는 등 최근의 국제정세가 짙은 불확실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다 중소 모두 개방ㆍ개혁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6ㆍ4천안문사건」이후의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개혁의 부작용에 대해 소측과 공동처방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이의 나들이에 많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도 이번 기회에 중국과의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5월말 워싱턴에서열리는 미소정상회담이나 다른 서방국가들과의 협상테이블에서 자신의 입지를 보다 유리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중소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소련ㆍ동구 등 공산국가의 민주화와 소수민족 독립 및 종교분쟁에 관한 것들이 될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 중소 두나라에 모두 해당되는 난제이기도 한 것이다. 중소가 점차 동병상련의 입장이 돼가고 있는 상황은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생각키 힘든 것이었다. 6ㆍ4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던 중국은 동구에 개혁물결이 거세게 일고 소련도 공산당 일당통치를 포기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나서자 이같은 변화가 고르바초프의 섣부른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기인한 것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때문에 지난해 5월 등소평ㆍ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화의 첫발을 내딛기시작 했던 중소관계를 적잖은 긴장상태로 몰아가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탈소독립선언에 의외의 강력한 수단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미의 개입에 내정간섭이란 이유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밖에도 소련공산당은 당내 급진개혁파를 공격하고 나섰고 군부는 그들대로 리투아니아사태 강경진압을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관측통들은 요즘 고르바초프가 보여주고 있는 단호한 태도와 관련,『그는 공산당독재를 포기한다고만 했을 뿐 결코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없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면서 그의 개혁도 소의 공산당을 위기에서 건져낸 뒤 더욱 강화시키려는 전략이란 점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견해를 모으고 있다. 이붕도 지난달 29일 북경에서 소련관영 타스통신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데에 완전무결한 유일의 방법은 없다. 소련은 그들 나름대로,우리는 우리 현실에 맞는 방법으로 사회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소의 개혁이 사회주의를 버리는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볼때 이는 고르바초프와 갖게 될 회담때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다른 공화국들의 소연방탈퇴 움직임에대해 현재 모스크바 당국이 취하고 있는 강경책을 적극 지지할 것으로 보이며 중소 두나라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사회주의노선을 견지키 위해 내밀한 결속을 다짐하는 등 새로운 이념적인 공동전선을 구축하게 될것 같다. 중국은 또 미의 리투아니아 사태 개입으로 미소간에 틈이 벌어질 경우 미의 적극적인 대중접근이 예상되므로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이붕의 모스크바 방문기간중 중소 두나라는 국경선 철군및 경제협력,과학기술교류 방안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협의를 하게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경협문제의 경우 두나라 모두 정책실패로 인한 곤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한일 경제위회의/어제 고베서 개막

    【고베(신호)=강수웅특파원】 격동하는 국제정세하에서의 한일양국의 역할과 경제협력의 자세를 논의하게 될 제22차 한일민간합동경제위원회 정기회의가 16일 고베(신호)국제회의장에서 개막됐다. 오는 18일까지 3일간 일정으로 개최되는 이번 회의에서 한일양국 경제인들은 무역증진,투자ㆍ기술협력,경제협력 등 세분야에 걸쳐 논의를 벌인다. 지난 69년 제1회 가졌던 한일민간합동경제위원회 회의는 매년 한일 주요도시에서 번갈아가며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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