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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드로 읽는책] 공포의 계절/월레 소잉카 지음

    21세기는 글로벌시대라고 한다. 경제적·문화적 국경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세계는 하나’라는 지향점에 가까워지는 듯도 하다. 하지만 실상 그 이면은 폭력과 테러로 얼룩져 있다. 지난 8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제3세계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윌레 소잉카는 그래서 오늘날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적 키워드로 ‘공포’를 제시한다. ‘공포의 계절’(월레 소잉카 지음, 이완기 옮김, 루비박스 펴냄)은 오늘날 일상에 스며드는 공포의 정체를 정치와 종교라는 틀을 통해 자세히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지난 2004년 BBC라디오에 초빙된 윌레 소잉카의 강연내용을 묶은 것이다. 저자는 우선 공포의 근원과 그 영향을 추적하면서 국제정세가 강요하는 국가간 갈등, 국가와 테러조직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그는 오늘날의 테러조직을 유사국가로 상정한다. 소잉카가 보기에 오늘날 심화된 공포를 유포시키는 근원은 바로 이 유사국가다. 하지만 국가 역시 현실 혹은 가상의 반역세력을 낙인찍는 방식을 통해 유사국가가 득세하는 데 모종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즐기고 있다. 저자는 유사국가의 뿌리에 예속과 맹종을 강제하는 광기의 종교적 수사학이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우리는 진정 종교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소잉카의 절규는 본질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세속에 대한 권력 의지로 광기의 온상을 제공하고 있는 종교의 잘못에 대한 따가운 질책이다. 유사국가 도발은 9·11테러에서 정점을 이룬다. 하지만 소잉카는 9·11에 대해 “수십년에 걸쳐 사하라 사막 위에 무참하게 피의 글씨로 덧칠해져 왔던 전조의 귀결이었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9·11은 세계 정치학 속에 내재되었던 정치와 종교를 둘러싼 갈등의 파국적 확인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제1세계 밖에서 증식하고 있던 갈등의 전조를 무시하며 다른 한편에서 이를 부추기던 서방세계를 강력 비판한다. 소잉카가 오늘날의 인간 존재 조건을 고찰하며 내놓은 처방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추구’로 나타난다. 그가 보기에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격은 공포가 노리는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이며 정신의 예속과 권력의 승리를 알리는 서곡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시급히 조명되고 복원되어야 할 게 바로 존엄성에 대한 가치라는 것이다. 존엄성은 오늘날 국가와 유사국가의 폭력, 그리고 종교의 수사학적 광기가 강제하는 ‘굴욕’에 맞설 수 있는 반(反)테제이며, 따라서 존엄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고 소잉카는 거듭 강조한다.1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기고] 수출 이대로 좋은가/이석영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올해 우리 경제의 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다. 민간소비 회복과 설비투자 반등으로 5% 성장을 예측한다. 수출이 올해에도 지난 2,3년간과 같은 두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한다면 이런 예측은 적중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지난 1월 수출은 작년 1월에 비해 4.3% 증가한 234억달러에 그쳤다. 설 연휴 탓도 있지만 일평균 수출액도 수개월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의 수출도 지금보다 크게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 환율불안, 유가와 국제 원자재 가격 앙등이라는 구조적 악재 탓이다. 원·달러 환율은 불과 두 달만에 70원이나 떨어졌으며, 원·엔 환율도 2004년 평균 1059원에서 최근에는 810원대까지 수직 하락했다.60달러 내외까지 치솟은 유가는 국제정세 불안으로 더 오르지 않을까 걱정이며, 동, 알루미늄 등 기초 원자재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상황이 이처럼 급박한데도 아직도 수출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낙관론이 여전하다. 수출의 대기업 중심화, 주력 상품의 경쟁력 향상으로 환율, 유가 등 대외 변수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을 만한 내성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는 달러화 결제 비율이 80%에 이르고 해외 경쟁심화로 수출 이익률이 낮은 우리 기업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9월중 주요 대기업을 망라한 전체 수출 기업들의 매출액대비 경상이익률은 7.2%에 불과하며, 중견·중소기업들은 이보다 크게 낮은 수준으로 추정된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2005년 평균환율에 비해 5% 이상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우리 기업들이 단지 환율요인만으로도 적자수출에 직면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대표 대기업들조차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어느 대기업 CEO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수출목표의 대폭적 수정은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중소기업들이 ‘초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음은 불보듯 뻔하다. 지난주 무역협회가 실시한 무역업체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는 정말 수출이 이대로 괜찮겠는가라는 강한 불안을 갖게 한다. 응답기업의 약 90%가 현 환율 수준에서는 수출에서 이익을 남길 수 없다고 하소연했으며, 올해 10% 이상의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우울한 대답이 절반이상이었다. 이제는 수출보다는 내수중심의 성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수출과 내수의 균형 있는 성장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내수를 살리기 위한 단기적인 처방은 득보다 실이 많다. 지난 2001년 수출 둔화와 경기 하락이 예상되면서 민간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신용카드 가입기준 완화, 길거리 회원모집 허용 등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렸으나, 곧이어 가계부채 급증과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최근까지 극심한 내수침체가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지금까지 우리경제의 성장을 이끌어 온 수출의 동력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내수 활성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수출 증가로 기업이 성장하고 근로자의 소득이 증가해 자연스럽게 내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최선이다. 올해 우리 경제 회복의 열쇠는 두자릿수 수출증가다. 지난해 수출이 호조세를 보였다고 해서 올해도 저절로 잘될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막연한 기대나 섣부른 낙관론보다는 환율 안정과 중소 수출업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석영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 [서울광장] 차라리 ‘北風’이 불었으면/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차라리 ‘北風’이 불었으면/이목희 논설위원

    북한 땅은 자연부터 달랐다. 버스로 군사분계선을 지나니 돌연 황량한 곳이 나타났다. 이곳저곳의 민둥산들. 미국 서부에서 멕시코 국경을 넘어가면서 놀랐던 적이 있다.“몇㎞ 상관에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나.” 남북한 경계의 느낌은 그보다 더 했다. 페루 등 중남미 빈국을 방문했을 때의 황당한 이질감에 가까웠다. 얼마전 개성공단을 다녀왔다. 개성시내 관광도 했다. 북한 주민들이 못산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실제 눈으로 보니 참담했다. 낯선 자연환경에, 남루한 주민들. 김정일 정권을 향한 분노가 새삼 끓어올랐다.“국제정세가 아무리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지, 주민과 자연을 이렇게 만들다니….” 다른 경로로 북한을 다녀온 대학교수가 비슷한 한탄을 했다.“북한 주민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그런데 군 고위층은 외제차를 몰고 다니더라고요.” 북한땅을 비교적 자유롭게 다닌 남측 사람들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관계자들이다. 그중 한 인사는 “평양이나 개성은 나은 편이고, 시골로 가면 주민 생활수준이 말이 아니다.”고 전했다. 그는 “곳곳에서 힘있는 계층의 도덕적 타락이 심각하더라.”고 덧붙였다. 문득 양극화를 떠올렸다. 남한에서 지금 양극화가 최대 이슈로 등장했다. 북한의 양극화는 독재권력까지 연관되어 고난도 방정식이다. 연착륙을 시켜야 할 텐데 얼마나 많은 비용과 정치적 대가가 필요할까. 그 비용을 남측이 부담하자는 주장에 동감하는 우리 국민 숫자는 점점 줄고 있는데….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북풍(北風)’의 정치적 파괴력은 이제 없다. 북핵위기, 남북정상회담,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겪을 건 모두 겪어서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다. 집권여당이 북한에 강공을 취하건, 시혜를 베풀건 득표에 도움이 될 듯싶지 않다. 시혜 부분은 특히 그렇다. 한국전쟁을 겪은 50대 이상 노·장년층은 김일성·김정일이 밉다.20대 젊은층은 “우리가 잘 살면 되지 북한을 왜 돕느냐.”는 식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4명은 통일이 안 돼도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북한방문을 연기하라는 한나라당 요구는 타성에 젖은 것이다.DJ 방북이 성사되고, 남북정상회담 등 성과가 있으려면 무언가 ‘대북 선물’이 있어야 한다. 유권자들이 그것을 좋아할 리 없다. 일각에서는 현 정권내 일부 세력들이 5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완벽한 패배를 위해 DJ 조기방북을 추진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인들의 얄팍한 표계산은 접어두자. 역사의 긴 호흡에서 북한과 따로 살 수는 없다. 독일이 통일비용을 치르고 있다면 그 역시 민족의 운명이다. 통일이 안 된 상태보다는 낫다고 본다. 북한 주민을 돕자는 ‘북풍’이 선거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일었으면 좋겠다. 지도부와 주민을 따로 떼기가 힘든 게 통일론자의 딜레마다. 때문에 북한 지도부가 독재권력 유지보다 주민복지를 우선하는 생각을 가지도록 이끄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DJ 방북과 남북 정상회담은 그런 차원에서 추진되고, 여야가 힘을 모았으면 한다. 김정일을 열차에 태워 남한이나 도라산역으로 억지로 데려오면 뭐하겠는가. 정지작업 없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 전시성 합의에만 매달려서도 안 된다.“김정일이 연명하도록 무슨 선물을 줬기에 저러나.”는 식의 냉소가 퍼지면 상황이 도리어 꼬일 우려가 있다.DJ 방북은 김정일이 정신차리고 내부 양극화 해소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한국, 中에 떨어지는 사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한국은 중국의 수중으로 떨어지길 기다리는, 작은 가지에 걸려 있는 잘익은 사과와 같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한·중간 유대 강화와 한·미동맹 이상기류 조성 등 동북아 국제정세 변화에 대해 보수강경파로 통하는 한반도 전문가 데니스 핼핀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전문위원이 압축한 표현이다. 그는 6일 헤리티지재단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미관계는 상호 이해부족으로 흔들리는 반면 중국의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는 미국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핼핀은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대 한반도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고, 이것이 바로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대한 위험”이라고 말했다.dawn@seoul.co.kr
  • ‘비장감’ 넘치는 CEO신년사

    병술년 새해 첫 업무일인 2일 주요 그룹과 업체들은 시무식을 갖고 힘찬 출발을 다짐했다. 그룹 총수들과 최고경영자(CEO)들의 신년사에는 유난히 변화와 경각심을 촉구하는 ‘비장감’이 넘쳐났다.환율 급변과 원자재 가격 상승, 해외 경쟁업체들의 견제 등 국내외 경영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신년사에서 “이제 우리는 앞선 자를 뒤따르던 쉬운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두에 서서 험난한 여정을 걸어야 한다.”며 ‘일등기업’으로서 자부심 못지않게 위기의식을 잃지 말 것을 주문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올해 환율, 유가, 원자재가 등 외부요인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으며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조금 더 잘하는 것만으로는 더 나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국제정세의 불안정과 세계경제의 성장 둔화, 고유가, 고환율, 고임금 등 올해 경영환경은 어느것 하나 쉽게 볼 것이 없다.”면서 “해외언론의 호평 등 성과에 대한 자긍심은 갖되 절대 자만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이제 우리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불황의 골짜기로 들어가고 있다.”면서 “특히 중국은 예상보다 빨리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다가왔다.”고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허창수 GS회장은 “지난날에는 경쟁에서 한번 뒤지더라도 회복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도 “최근 몇년간 해운업계가 초호황 장세를 누렸지만 올해는 그동안 호조를 보여준 시장 상황과는 다를 것이기에 안일하게 대응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하나로텔레콤은 올 한 해를 사실상의 ‘영업전쟁’으로 규정하고 빼앗긴 고객 재획득, 신규 고객 확보, 확보한 고객 유지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영업 슬로건도 ‘우리는 전사’로 정했다.산업부 ukelvin@seoul.co.kr
  • 68혁명의 살아있는 투영

    “그림은 작은 정치철학입니다.” 프랑스 신구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제라르 프로망제(66). 사회 비판적 성격을 띤 작품으로 신구상주의 시대의 서막을 연 그는 1960년대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추상 미술의 독주에 제동을 건 인물이다. 신구상은 회화와 여러 요소들 즉 거리, 일상생활, 사진, 정치적 사건, 영화를 접합시켜 놓은 예술이다. 그의 작품만 봐도 사진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래픽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 두가지를 합성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한 이후 2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한적한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사회문제, 국제정세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성미 넘치는 모습.“군부 독재시대에 한국을 방문, 한국 예술가들과 우정을 쌓았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는 자신의 예술작업에 대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작품 안으로는 언어와 여러 요소들을 변화시키고, 작품 외적으로는 사회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1968년 기성의 모든 권위에 도전한 프랑스 문화혁명의 정신을 작품에 투영시키며 새로운 미술사조를 창조해낸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카페에서 앉아 있는 장 폴 사르트르’‘담배를 피우는 자크 프레베르’등의 작품을 남길 정도로 그는 좌파 철학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철학사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는 이처럼 당대의 사회·정치적인 면을 작품의 주제로 다룬다. 방송기자들의 열띤 취재 경쟁 모습과 가판대에서 심각하게 신문을 읽는 시민들을 작품으로 남겨 매스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작업들도 마찬가지로 마피아 문제를 거론, 세계경제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작품 ‘서로 몸을 맞대고, 오렌지’를 통해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냈다. 그는 “현재 미국이 막강한 경제력과 정치력을 배경으로 미술시장을 지배하지만 역시 논리적, 창조적인 프랑스 미술과는 비교할 수 없다.”며 미술세계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파워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06년 1월5일까지(02)2188-6063.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9·19 공동성명 이후] 핵폐기·경수로 일정 11월회담 구체논의

    |베이징 김상연특파원|19일 타결된 북핵 6자회담 공동성명은 원칙적인 수준의 합의내용을 담고 있어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궁금증을 문답식으로 알아본다. ▶공동성명은 언제부터 이행되나. -이번 합의는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인 이행계획 수립과 이행은 11월에 열리는 5차회담에서 논의하게 된다. 따라서 북한이 지금 당장 핵을 폐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 미국은 성명 타결 직후 북한이 영변 원자로의 가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우리 정부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 가동 중단을 강요하긴 힘들다고 보고 있다. 다만 신뢰회복 차원에서 북한 스스로 가동을 중단하길 바라는 눈치다. ▶과거의 사례에 비춰 공동성명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상황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나. -물론 어느 한쪽이 합의 파기를 선언하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공동성명 안에 나름대로 ‘안전장치’가 있는 만큼 어느 일방이 큰 흐름을 되돌리긴 힘들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북한의 핵 폐기와 경수로 제공의 순서는 어떤 게 먼저인가. -공동성명은 이것을 명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성명 타결 후 각자의 해석을 들어보면, 한·미는 북한의 핵 폐기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고 북한은 핵 폐기와 경수로 제공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대북송전과 경수로 가동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나. -공동성명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우리 정부의 해석은, 상식적으로 대북 송전과 경수로 가동이 겹칠 수는 없다고 본다. 송전은 지금 가동이 중단돼 있는 신포 경수로의 대체개념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경수로가 제공된다면 대북송전은 중단된다는 논리다. ▶공동성명에 명시된 ‘평화체제’는 어떤 방식으로 언제 논의되나. -6자회담의 틀에서 논의되는 것은 아니다. 별도의 장소에서 한다. 논의 시기는 다른 한반도 현안과 맞물려 갈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에는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고 돼 있는데, 결과적으로 논의만 하고 안줄 수도 있는 건가. -각도에 따라서는 모호한 해석도 나올 수 있지만, 우리 정부는 제공을 전제로 한 논의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강조한다. ▶공동성명이 나온 이상, 앞으로는 6자회담의 하위기구가 주로 실무적인 현안을 다루게 되나. -그렇지 않다. 당분간은 현재의 수석대표를 중심으로 한 6자회담의 틀에서 논의하게 된다. ▶이번에 미국이 북한에 많은 양보를 했다고 볼 수 있나. -미국이 극구 거부했던 ‘경수로 제공’이 공동성명에 포함됐고 여러 다양한 대북 지원들이 명시됐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에 비해 많이 양보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한이 핵 폐기를 약속한 것 자체도 큰 양보이며, 결국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를 했다고 판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해석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의 1차 공동성명과 이번 공동성명 중 어떤 것이 더 진일보한 것인가. -그때 상황과 단순 비교하긴 힘들다. 당시 국제정세와 북·미관계, 핵의 심각성 등이 지금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는 ‘동결’이 합의사항이었고 지금은 ‘폐기’를 합의했다는 점에서 보면, 이번이 더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carlos@seoul.co.kr
  • [독자의 소리] 원자력 발전이 세계적 대세다/홍순성

    최근 유가가 배럴당 60달러에 이르렀다. 에너지 소비량의 약 97%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이기에 앞으로 산업에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 이런 국제정세 속에서 새삼스럽게 원자력 발전이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원자력발전소 건립에 나선 결과 지금은 국가에너지 자립도가 50% 이상에 이르고 전체 전기 생산량에서도 80% 이상을 담당한다. 미국도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은 이후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을 둘러싼 국내 상황은 악전고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둘러싼 갈등,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과의 계속되는 마찰, 환경단체들의 지속적인 반대운동 등은 원자력 산업의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 초고속 경제성장의 숨은 견인차도 따지고 보면 바로 원자력이다. 최근 10여년 동안 물가상승률에 견줘 전기요금 상승률이 낮았던 것 역시 원자력발전 덕택이다. 이젠 원자력의 숨은 공로를 인정하고 방폐장 사업 또한 원활히 추진해 원자력 확대라는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할 때다. 홍순성 <경북 경주시 양남면>
  • 일간·영자지로 시사·영어 ‘두토끼’ 동시에

    일간·영자지로 시사·영어 ‘두토끼’ 동시에

    올해 외무고시에서는 장혜정(23·서울대 영어교육과)씨와 정경화(22·서울대 외교학과)씨가 각각 전체수석과 최연소 합격의 영광을 차지했다. 장씨는 한·일 우호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이 외시 도전의 계기가 됐으며, 정씨는 베트남에서 3년간 체류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공통적으로 2년이라는 짧은 수험기간 만에 합격한 이들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휴학도 계획에 따라 고려 장혜정(수석합격) 수험준비는 2003년부터 시작했다.2년 정도 걸린 셈이다.2003년 2학기 때부터 휴학을 하고 신림동에서 고시준비를 했다.1년 후인 지난해 1차에 합격했는데 2차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 정경화(최연소합격) 사이클이 상당히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2003년부터 시험준비를 시작했다. 지난해 2차에서 떨어지고 나서 휴학을 하고 집중적으로 2차 준비에 매달렸다. 장 휴학을 한 이유는 학교수업과 병행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전공과 시험과목이 크게 관련이 없다 보니 신림동에서 준비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었다. 정 전공이 외교학과인 덕에 학교수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1차는 학교수업과 병행하면서 준비가 가능했다. 그런데 2차는 보다 심도있는 공부가 필요해 학교수업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무래도 고시공부와 학교공부는 다르니까.1년간 휴학했는데 특히 전공이 다르다면 휴학하는 방법도 추천하고 싶다. ●일간신문 국제면 꼼꼼히 살펴야 정 외시는 다른 고시에 비해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다행히 주위에 외시를 준비하는 선배들이 많아서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처음 시작하는 경우 외시관련 사이트와 신림동 주변에서 정보를 먼저 얻는 게 중요하다. 신림동은 아무래도 수험생들이 한 데 모여있다 보니 정보 또한 집중돼 있다. 바이블처럼 많이 보는 기본서가 정해져 있고 검증된 공부방법들이 있으니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보는 게 좋다. 장 스터디도 추천한다. 외시생들은 스터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서로 정보도 교환할 수 있고 심적인 부담감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는 스터디를 통해 공부했다. 영어과목은 교재랄 게 따로 없어 보통 영자신문을 많이 활용했다. 영어와 시사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 맞다. 영어는 비중도 크고 정해진 수험교재가 없다 보니 수험생들이 부담을 많이 느끼는 과목이다. 영자신문을 활용하는 게 좋은데 이 역시 자신의 영어실력을 고려해야 한다. 영어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무조건 영자신문을 보기보다는 문법이나 독해 등 영역별 교재를 통해 먼저 기본을 쌓는 것이 효율적이다. 장 시사흐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외시에서는 특히 사회이슈를 기본적으로 챙겨야 한다. 기출문제만 봐도 시사관련 문제가 대부분이다. 정 일간신문을 챙겨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국제면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어떤 이슈가 대두됐는지,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갖는 게 좋다. 장 시험과목 중에서는 국제정치학이 가장 어려웠다. 경제학이나 국제법은 많이들 보는 교재가 있기 때문에 한 권만 제대로 공부하면 됐지만 국제정치학은 그렇지 않다. 두루두루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감을 잡기 힘들었다. ●과목별·수준별 학습전략 필요 정 개인적으로는 국제법이 쉽지 않았다. 국제정치학은 오히려 쉽게 접근했는데 국제법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국제법은 이해만으로는 안 되는 과목이다. 이번 시험에서 출제된 북한핵문제를 예로 들면, 국제정치학의 경우 국제정세에 미치는 악영향이나 안보문제 등을 거론하며 관점을 논리적으로 쓰면 된다. 하지만 국제법에서는 북한이 국제법상으로 어떤 법적의무를 지고 있고 어떤 조약을 위반했는지 정확하게 기술해야 하는 차이점이 있다. 때문에 조문을 눈으로 반드시 확인하고 가능한 한 많이 외워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조문을 적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정의 역시 꼭 외워둘 것을 권한다. 장 경제법도 수험생들이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과목이다. 그런데 외시에서는 그렇게 높은 수준의 문제가 안 나온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장수생들을 보면 심화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기본문제만 확실히 익히면 충분하다. 국제경제학 역시 행정고시만큼 어렵게 안 나온다. 무엇보다 화제가 되는 경제이슈를 중심으로 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정 경제학을 공부할 때는 또한 그래프 등을 직접 그려보면서 익힐 것을 권한다. 국제정치학의 경우는 매크로한 학문이기 때문에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선 개론 강의를 듣고 개념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검증된 기본서 한권으로 충분 정 PSAT는 정말 개인차가 심하다. 쉽게 적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힘들어하는 수험생도 많다. 단기간에 실력을 올리기 힘든 것 같다. 평소에 준비해야 하는 과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자료해석영역에서 애를 먹었다. 시간배분이 관건인데 시간 안에 푸는 실전연습이 중요하다. 장 올해부터 유예제가 없어지고 1,2차를 동시에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수험계획을 세우는 데도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1차시험이 끝나고 2차시험까지 준비기간이 2개월 남짓이다.2차는 특히 시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수험준비를 시작할 때는 1차가 아닌 2차 공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1차 대비는 시험 직전 3개월 정도로도 충분하다. 정 마찬가지로 2차부터 준비했다. 우선 2차 과목의 기본강의부터 들었다.PSAT는 연휴기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추석 같은 연휴기간에 학원가에서 PSAT특강을 많이 하는데, 그 강의를 이용해 문제 푸는 스킬 등을 익혔다. 장 고시생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이책 저책 여러 권을 본다는 점이다. 심층적으로 공부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개념적으로 혼돈이 올 수 있다.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기본서를 택해 한 권만 확실히 정리해도 충분하다. 정 정말 여러 책을 보는 것은 피해야 한다. 또 주위에서 보면 실력은 있는데 합격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취미생활까지 하면서 수험준비를 하기도 하는데 고시공부는 집중이 핵심이다. 수험공부 외에 다른 것은 포기한다는 과감한 태도가 수험기간을 단축시킨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전문가 진단, 南 核중재력 확보… 北 변심땐 ‘無力’

    전문가 진단, 南 核중재력 확보… 北 변심땐 ‘無力’

    제15차 장관급회담에서 남북은 정치·외교·군사·역사·경제 등 12개 항목의 합의를 도출해냈다. 전문가들은 24일 이번 회담에서 기존의 분야별 협의체가 복원됨에 따라 남북관계 정상화의 계기가 마련된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가운데 북핵을 둘러싼 대북압박이 잔존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남북 당사자 원칙´을 회복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실리·실적·실용적인 회담을 기조로 내걸었던 이번 회담의 성과로 이해된다. (1) 정치·군사 남측이 주력했던 분야이고,12개 합의항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향후 6자회담에서 남측의 발언력과 중재역할에 대해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김근식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비핵화와 실질적 조치라는 진전된 개념을 공동보도문에 포함해 남측의 주도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부여했다. 그러나 지난달 차관급회담에서 남측이 제시했던 ‘중대한 제안’에 대해 북측이 시원한 답변을 주지 않았고,6자회담 복귀시점 또한 명시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차기 장관급 회담을 갖기로 하고 장성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것은 남북관계 정상화를 뛰어 넘는 부분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정동영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 이후 확인된 전면적 회복 의지가 구체적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질적으로 한반도 군축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장성급회담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한다. 남북 회담이 다양해지면서 좀더 높은 수준을 지향하게 되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좋은 성과가 도출된다면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리라는 기대감도 형성되고 있다. 반면 대다수 합의사항은 실무협의에서 다뤄지게 돼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이행여부도 변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합의와 이행과의 간극을 줄여야 하는 부분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합의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강제조항이 명시돼 있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2) 사회·문화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진전이 없었다는 분석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관계를 발전적으로 본다면 이번 회담을 계기로 사회문화 분야 협력이 제도화되는 단계”라고 말했다. 측면 지원하는 성격이 강했다는 분석이다. 조 연구위원은 “본격적인 사회문화교류를 확인했다기보다 남북관계가 안정되는 가운데 실무적 차원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회담이었다.”고 지적했다. 을사보호조약 무효화와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북관대첩비 반환 등에 합의한 것은 과거사 해결 차원의 노력이다. 조 위원은 “북핵위기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민족공조를 부각시키고 한편으로는 대북압박 분위기를 중화시키기 위한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한국전 당시의 생사 미확인자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는 등 인도적인 부분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3) 경제분야 전문가들은 장관급회담 산하에 농업협력위원회를 운영키로 한 것을 회담의 주목받는 성과라고 손꼽았다. 정영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선임연구원은 “북측은 올해 농업전선에 치중하겠다고 한 만큼 실리를 얻었고 남측도 지원의사를 못받았기 때문에 향후 경제협력회담이 확대되는 의미있는 합의”라고 평가했다. 김근식 교수는 “협력 아이템이 다양해지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북측의 농업생산을 지원하는 동시에 남측이 원하는 방식으로 북측의 농업개혁을 유도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농업협력위원회를 경추위 산하에 두지않고 장관급회담 산하기구로 두기로 한 것은 농업에서부터 정치·경제적 사안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될 경우 ‘농업지원’을 약화시키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수산회담은 남북 모두 경제적 실익을 취하는 결과를 가져와 서해상 긴장 완화를 촉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첨예한 긴장지역에서 협력하는 모습을 취하게 된 점도 긍정적인 결과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평양 6·15축전 개막

    6ㆍ15공동선언 5주년 민족통일대축전 개막식이 14일 저녁 평양의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렸다. 개막식에는 남북 당국 대표단 단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기남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의 백낙청 남측 위원장과 안경호 북측 위원장, 곽동의ㆍ문동환 해외측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공동행사 북측 준비위원회 명예위원장인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과 김영대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 유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등도 참가했다. 백낙청 남측 위원장은 개막식 연설에서 “이 땅에서 전쟁위협과 군사적 대결을 걷어내고 올해를 평화와 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여는 해로 만들자.”고 말했다. 양형섭 북측 명예위원장은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민족끼리 힘을 합쳐 역사의 활로를 훌륭히 찾아내자.”고 강조했다. 남측 대표단은 밤 11시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박봉주 내각총리가 주최하는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앞서 남측 민간대표단은 북측과 함께 천리마동상∼김일성경기장 구간에서 민족통일대행진을 벌였으며, 빗속에서도 6만여 평양시민들이 환호했다. 평양공동취재단·서울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日 역대총리 8명 “고이즈미 신사참배 자제를”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중국 등의 반발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가운데 참배를 저지하기 위한 압박 강도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 고노 요헤이 일본 중의원 의장은 1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 등 역대 총리 5명을 의장 공관으로 초청, 환담한 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중·일, 한·일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고노 의장은 회담에 참석하지 못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호소가와 모리히로, 하타 쓰토무 전 총리 등 3명과 미리 전화로 양해를 구한 결과 같은 뜻임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담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하시모토 류타로, 모리 요시로,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가 참석했다. 고노 의장은 이날의 합의 내용을 조만간 고이즈미 총리에게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들은 역대 총리가 한꺼번에 현직 총리에게 이런 식의 의사를 전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 간자키 타케노리 대표도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총리가 참배를 단행하면 “연립(정권)의 기반에 나쁜 영향이 있다.”고 경고해 귀추가 주목된다. 앞서 이날 요미우리 신문은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달 27일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와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국제정세에 따라 일본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면서 “그러니 (야스쿠니 문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어 “내가 미국 일변도라는 말을 듣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좋기 때문에 (그나마)중국과의 관계(악화)가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아베 간사장대리는 “중국은 역사인식 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한 놓치지 않는다.”고 맞장구친 데 이어 다음날 삿포로 강연에서 “야스쿠니 참배는 총리의 책무”라고 한발 더 나아갔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taein@seoul.co.kr
  • 서울 주재 유럽 외교관이 본 ‘북핵 안풀리는 5가지 이유’

    북핵 6자회담이 1년 가까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어 그 돌파구 마련이 초미의 관심사다. 기자는 24일 서울에 3년째 주재하고 있는 한 유럽 국가 외교관을 만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그 외교관은 자신이 나름대로 분석한 ‘북핵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5가지 이유’를 제시, 귀를 쫑긋하게 했다. 그의 진단에 전적으로 동조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6자회담 당사국이 아닌 제3자적 시각이라는 점에서 경청할 만한 대목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외교관은 먼저 북핵문제가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관련, 북한 책임론을 거론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소에는 러시아·중국 등 우방들에 친밀감을 표시하면서도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들의 충고에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만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한국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노무현 정부 들어 대북 협상의 투명화 원칙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결정적인 패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라는 사회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비정상적인 국가이므로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뒷거래를 동원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데 그 길을 스스로 막아버렸으니 잘 될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다음으로 “미국의 비타협적 태도도 북핵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주도권을 쥐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한치도 양보를 안 하고 북한이 완전히 두 손 들고 굴복하기만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진전이 안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한 지적도 뒤따랐다. 그는 “중국은 북한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북간 갈등을 적당히 유지시키는 게 동북아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끝으로 “북한의 우방인 러시아는 북핵문제에 별 관심도 없고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도 없이 사실상 구경만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 “납득 안되지만 FIFA결정 따를것”

    “납득하긴 어렵지만 수용하겠다.” 북한축구협회가 국제축구연맹(FIFA)이 결정한 6월 8일 일본전의 ‘무관중-제3국 개최’ 처분에 대해 첫 공식반응을 보였다. 북한축구협회 이강홍(42) 부서기장은 16일 일본 스포츠신문 ‘스포츠닛폰’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납득되지 않는 조치지만 FIFA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조·일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축구를 통해 상호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부서기장은 “지난달 FIFA 규율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접하고 무관중이라면 평양에서 그대로 개최하고 제3국 개최라면 베이징을 희망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지난 3일 보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FIFA가 문서도착을 확인한 게 9일이라며 마감시한인 5일이 지났다고 통보해와 결국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예상 외의 중징계에 분개했지만 국제정세를 감안해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이 부서기장은 제3국 개최에 대해서는 “FIFA가 이렇게 간단하게 홈개최권을 박탈할 수 있는가.”라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낸 뒤 “평양개최는 재일조선인과 양국의 민간교류의 장소가 될 수 있었는데 애석하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패한 프랑스가 물러간 다음 베트남 북쪽에서는 총성이 멈췄다. 호찌민은 즉시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모든 정책과 사업은 현장에서 결정됐다. 호찌민 노선이 대중의 감정과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자신이 언제나 대중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찌민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까오방 사람들은 호찌민이 주석이 된 다음 다시 찾아왔을 때를 잊지 못한다. 까오방의 당 서기장은 성대한 음식으로 호찌민을 대접했다. 그러나 호찌민은 화를 내며 “당신이 다 먹으라.”고 자기 앞의 음식 접시를 모두 당서기장에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지금 까오방성의 인민들이 어떻게 먹고 있느냐.” 밖에서는 기근으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 뒤 호찌민은 지방시찰 때마다 도시락을 싸갔다. 예정된 코스를 불쑥불쑥 벗어나서 방문에 대비한 어떤 준비도 헛수고로 만들어버렸다. 가뭄이 든 남딘성 이옌마을을 예고없이 찾은 호찌민은 갈라터진 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몇 바가지의 물이라도 대려고 바닥이 보이는 개울을 바가지로 긁고 있는 아낙네를 비키게 한 호찌민은 직접 물을 펐다. 그러나 갈라진 논의 틈새조차 채울 수 없었다. 이 때 호찌민은 관개수로사업을 구상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에 걸친 ‘박흥하이 관개수로사업’이 시작된 것. 삽과 들것, 수레에 의존한 이 건설운동은 디엔비엔푸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이 공사과정에서 수동식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수많은 운반도구들이 발명됐다. 호찌민은 전쟁에서 발휘되었던 베트남인의 창의성과 애국심을 생산운동으로 이끌어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을 가뭄에서 해방시킨 이 공사과정이 담긴 기록영화 ‘박흥하이에 물이 들다’에 1959년 모스크바영화제는 다큐부문 최고상을 안겼다. 이 영화의 감독 부이딘학은 현장을 방문한 호찌민을 네 차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물이 들어오는 것을 찍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니까 호 아저씨가 오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돌려서 아저씨를 찍으려는데 갑자기 난리가 났어요. 일하던 사람들이 아저씨를 알아보고 마구 몰려드는 거예요. 곡괭이, 삽을 든 채로 말입니다. 당황한 경호원들이 놀라서, 연장을 들고 달려들면 아저씨는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어요. 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달려오는데, 가까이 올수록 더 빨라지는 거예요.” 하노이의 한국식당 춘하추동에서 만난 부이딘학은 마치 어제 일처럼 말했다. “이때 호 아저씨가 재빨리 옆에 있던 나무에 올라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손을 흔들면서 이렇게 소리쳤어요. 호 아저씨 여기 있다. 다들 봤지. 봤으면 이제 자기 자리로 가서 일하자.” 그러나 호찌민의 인민생활 향상정책은 10년이 지난 1964년이 되면서 중대한 도전에 처했다. 미국은 이미 국민들조차 등을 돌린 사이공정권의 응오딘지엠을 제거한 뒤 직접 베트남에 개입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미국과의 전면전이 불러올 ‘재앙’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호찌민은 이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1964년 8월, 통킹만을 항해하던 미국항모가 공격당했다는 이유로 미국은 북폭을 감행했다. 이 때 국제정세도 좋지 않았다.‘수정주의’ 논쟁으로 등을 돌린 소련과 중국은 베트남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호찌민은 국제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을 호소하며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당시 반소파였던 서기장 레주언을 비롯한 당의 실세 그룹은 의견이 달랐다. 호찌민의 오른팔 보응우옌잡은 대중적 지지와 호찌민의 적극적인 변론으로 무사했지만 그외 측근들은 레주언 그룹에 밀렸다. 그의 뜻과 달랐음에도 ‘항미전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인민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일은 여전히 호찌민의 몫이었다. 호찌민이 처음 유서를 쓴 것은 1965년 5월19일,75회 생일 때였다. 자신의 건강이 미국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견뎌낼 수 없다고 예감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우리의 투쟁, 민족 해방을 위한 우리의 투쟁에 많은 역경과 희생이 따른다 해도 우리가 승리할 것임은 분명하다. 만약 그날이 온다면 나는 우리의 동지들, 전사들과 함께 남쪽에서 북쪽까지 순회하며 노인들과 젊은 청년들을 만나려던 참이었다. 국민을 대표해서 우리의 우호국을 방문하여 미국과의 전쟁에서 우리를 지지해준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할 작정이었다.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다. 올해 나는 일흔다섯이다. 나는 그 얼마 되지 않는 ‘자고로 드문’ 사람에 속한다. 마음은 아직도 거뜬하지만 육체는 갈수록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다. 그러니 그 누가 혁명을 위해 더 오래 살라고 내게 말할 수 있겠는가.” 호찌민은 죽음을 예감한 뒤 남부지방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미국과 전쟁이 한창이던 남부에 꼭 가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남부전선 방문은 제지당했다. 그러자 1968년 레주언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레주언 동지! 동지들은 내 건강을 생각해서 나를 멀리 보내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꾸어 바닷바람을 마시고 투쟁하는 인민들 속에서 생활한다면 오히려 내 건강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입니다.10일간 준비해 6일 동안 해로를 통해 남부에 닿은 다음 육로로 3일을 가면 남부전선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언제쯤 출발할 수 있는지 내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B(Bac/아저씨)로부터- 호찌민이 레주언에게 애걸에 가까운 편지를 쓰면서까지 남부에 가려 했던 이유는 남부 민중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물러가면서 제네바협정이 체결되자 남부혁명가들은 호찌민이 있는 북을 선택했다. 사이공 정권은 남부에 남은 이들의 가족을 줄줄이 처형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터진 뒤 북부 청년들은 그 유명한 ‘호찌민 루트’를 타고 남부전선으로 내달렸다. 수많은 북부청년들은 호찌민루트에서, 남부전선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가 ‘호찌민’이라는 이름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때에 일흔이 넘은 나이를 이유로 후방에서 자연사한다는 것은 호찌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레주언은 끝내 호찌민의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1969년 호찌민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79회 생일을 며칠 앞둔 5월10일, 호찌민은 해마다 손을 보아온 유서를 다시 꺼내 마지막으로 가필했다. 그 내용은 세금감면을 비롯한, 전쟁이 끝났을 때 농민·노동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민생대책들이었다. 전선에서 싸운 전사들에 대한 예우도 매우 구체적으로 썼다.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자신이 그 때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호찌민의 유서 최종본에는 2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을 견디고 있는 인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무거운 책임감이 담겨 있다. 베트남 인민들은 수십년 동안 프랑스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와 미국 폭격기의 굉음, 이웃과 친척 중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인민들은 단 하루도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항전을 이끌어온 호찌민은, 미안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한 항전은 참으로 위대했으나 위대함을 감당하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베트남 인민들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혹한 것이었다. 그 희생은 베트남 인민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희생해서 싸우자고 호소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찌민이었다. 그해 8월12일 호찌민의 건강은 더 악화됐다. 당과 정부, 군대의 핵심부는 이미 호찌민의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다. 남부의 전선사령부가 파견한 대표단은 호찌민루트를 타고 하노이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8월18일 호찌민은 비서 부끼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주석관저,10평짜리 목조주택의 계단을 올라갔다. 마지막 걸음이었다.8월24일, 호찌민의 방은 병실로 변했다. 당의 정치위원들과 군사지도자들이 병문안을 왔다.5평도 채 안 되는 호찌민의 방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장 무더운 8월이었고 에어컨은 없었다. 비서 부끼는 호찌민의 머리맡에 앉아 계속 부채질을 했다. 호찌민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먹고 마시려 했다. 간호사 오안이 시중드는 것도 사양했다. 대신 다른 것을 부탁했다. “노래나 하나 불러줘.” 호찌민이라고 외롭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단 한 점의 혈육도 없었다. 라디오 소리만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호찌민은 라디오를 계속 켜두라고 했다. 최후의 순간은 다가오고, 호찌민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호찌민이 겨우 잠깐 잠이 든 것을 보고 비서 부끼는 라디오를 끈 다음 그도 잠깐 눈을 붙일 요량으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뒤에서 힘겹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끼 어이.(부끼야)” 놀라 몸을 돌렸을 때 호찌민은 라디오를 다시 켜라고 손짓했다. “아저씨, 왜요? 오랜만에 눈을 붙이시기에 쉬시라고 껐는데요.” 호찌민은 손을 저었다. “그래도 사람소리가 들려야지…….” 9월2일 오전 9시45분, 호찌민은 숨을 거뒀다.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던 비서 부끼와 보응우옌잡 장군이 그 곁에서 울고 있었다. 호찌민은 이미 임종과정을 찍지 말고 화장하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창밖에서 몰래 호찌민의 최후를 찍고 있었던 군대영화사 팜꾸옥빈의 촬영팀은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에야 방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소령으로 예편한 팜꾸옥빈은 호찌민이 자리에 누운 순간부터 임종하는 때까지 전 과정을 비밀리에 촬영했다는 사실을 집으로 찾아간 필자에게 밝혔다. 호찌민의 시신은 영구 보존처리되었고 그 장면도 모두 기록됐다. 장례절차까지 담은 이 필름은 최고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편집하지 않은 원본 그대로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 공개된 부분도 있지만 원본 가운데 20분 분량도 채 안 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베트남의 당과 정부는 호찌민 서거일도 9월2일에서 하루 늦춘 3일이라 발표하고, 이 사실을 오랫동안 비밀에 붙여왔다. 팜꾸옥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9월2일은 1945년 호 아저씨가 베트남독립정부를 수립한 날이었어요. 호 아저씨가 돌아가신 것만도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인데 거기다 날짜가 9월2일이라고 하면 9월2일에 호 아저씨가 세운 나라도 뒤따라 망한다는 적의 심리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 베트남에는 사흘 밤낮으로 비가 내렸다. 베트남 전역에서 울음소리와 눈물이 이어졌다. 남부 정권의 수도 사이공에서도 모든 상가가 철시했다. 장례기간 동안 베트남 전역에서 절도사건을 비롯한 불미스러운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남부의 대통령 우옌반티우조차 정중한 조의를 표해야 했다. 그토록 호찌민을 헐뜯었던 미국 언론들도 애도를 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호찌민을 표지인물로 세우고 장문의 조사를 내보냈다.‘지금 살아있는 민족주의자 가운데 그만큼 불굴의 정신으로 오랫동안 적의 총구 앞에 버티고 서 있었던 사람은 없다.’고. 그런 호찌민이 죽어서 남긴 것은 10평 남짓한 목조주택 한 채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다가 무엇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주이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룰라 브라질대통령 23일 訪韓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으로 오는 23∼26일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6일 발표했다. 룰라 대통령의 방한에는 브라질 기업인 150여명이 동행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룰라 대통령은 25일 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에너지·자원 분야 등의 실질협력 증진방안을 협의하고 한반도와 국제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룰라 대통령은 특히 정부혁신포럼 개막식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할 계획이다. 룰라 대통령의 방한은 지난해 11월 노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에 대한 답방형식이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20일 TV 하이라이트]

    ●TV소설 바람꽃(KBS1 오전 8시5분) 늦은 밤 사무실로 향한 재규는 금고 앞에서 낑낑대는 은경을 발견하고 놀란다. 돈이 필요해서 그랬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은경에게 화가 난 재규는 은경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다. 한편 출근하는 영실 앞에 철호의 사주를 받은 날치가 또다시 나타나는데..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연정훈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배우 한가인과의 결혼을 불과 6일 남겨놓고 그가 다른 여자와 깜짝 결혼식을 가졌다. 그를 먼저 차지한 여자는 바로 유쾌한 배우 박진희. 그들의 비밀 결혼식 속에 숨겨진 진실은? 미리 만나보는 예비신랑 연정훈의 결혼식을 공개한다. ●박주현의 시사 업클로스(YTN 오후 3시5분) 중국의 반일시위를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통쾌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렇지만 시위가 계속되고 과격화되면서 중·일관계 악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과 함께 반일을 둘러싼 동북아 국제정세를 진단해 본다. ●생방송60분-부모(EBS 오전 10시)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이희아씨의 어머니 우갑선씨와 함께한다. 대학생이 된 이희아씨가 사춘기를 거치며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고난 극복 과정을 이야기한다. 장애를 갖고 있는 이희아씨를 피아니스트로 키워낸 어머니 우갑선씨의 교육과 사랑에 대해서도 들어본다. ●신입사원(MBC 오후 9시55분) 짐을 싸들고 집으로 온 미옥은 지난 다이어리를 보다 봉삼과의 추억을 발견한다. 다음 날, 높은 하이힐에 타이트한 원피스를 빼입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미옥이 회사로 들어선다. 미옥은 평소와 다른 당당한 모습으로 문과장에게 계약기간 만료될 때까지만 있겠다고 말한다. ●인간극장(KBS2 오후 8시55분) 소근육이 잘 발달되지 않은 형진을 위해 엄마는 형진에게 컴퓨터 마우스 사용법을 교육한다. 또래의 아이들에겐 컴퓨터를 다루는 게 일상적인 일이지만, 형진에게는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벅찬 일과가 무리였던지 형진은 급기야 경기를 일으키고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인다.
  • [열린세상] 독도가 북핵을 만났을 때/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핵문제는 북한의 회담불참 선언과 미국의 회담복귀 요구가 평행선을 그은 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계기로 외교전쟁이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축소 의사를 밝히자 주한미군은 한국인 근로자의 대량해고 방침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 발언은 한·미동맹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불편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래저래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일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최근 몇주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연일 수많은 시위 군중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일본대사 추방과 독도 사수를 외치며 데모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일본총리 화형식과 함께 시위대가 손가락을 자르는 모습에서는 독도가 우리땅임을 확인하는 확고한 결의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독도 관련 시위현장을 보면서 하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 사회의 좌우, 진보와 보수가 모두 동일한 목소리를 내면서 하나가 되어 결의를 다진다는 점이다. 대북정책을 포함하여 한·미관계와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 등 거의 대부분의 외교안보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는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접근법과 해법은 놀라울 정도로 상이했고 양극단을 달리곤 했다. 그런데 독도문제가 터져 나오자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심지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 똑같은 분노와 결의를 표출하는 것이다. 일본대사관 앞에 반핵반김 단체 회원과 한총련 및 통일연대 회원들이 같은 목소리로 일본 규탄을 하는 모습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독도문제에 관한 한 남남갈등이 무색할 정도로 한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북핵문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보진영은 미국의 대북 무시 정책과 협상의지 결여를 비판하면서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요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반면 보수진영은 북한의 핵카드가 협상용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인식하에 북한의 강경노선이 사태를 악화시키므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독도 문제에서는 보수 진보의 구분 없이 일본을 비판하는 똑같은 입장을 보이지만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반미와 반북이 강조되면서 서로 다른 인식과 해법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독도 문제만을 따로 떼어 이야기할 때는 소리 높여 반일을 외치던 보수진영이, 독도와 북핵문제가 섞여서 다뤄지면 일부이긴 하지만 딜레마에 빠져 내심 반일의 정도가 약해지곤 한다. 독도와 북핵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한 것이고 따라서 일본과 북한 중 어느 편이 더 적대적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가 토론자로 참석한 북핵관련 세미나에서는 독도문제보다 북핵문제가 보다 사활적인 안보 이슈라면서 독도 문제를 이유로 북핵을 해결하기 위한 한·일공조가 약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보수진영의 입장에선 독도로 인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일공조가 흔들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고민이 존재하는 것이다. 독도문제를 따로 고민하면 일본의 책임을 묻고 비판할 수 있지만 독도와 북핵문제가 같이 고민되면 일부 보수진영은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더 큰 나머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 밉긴 하지만 그것이 자칫 북핵전선에서 한·일간 공조를 해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특히나 독도문제를 놓고 남북공조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은 더더욱 보수진영에 용납하기 힘든 것이 된다. 북한 때리기를 위해 한·일공조가 더 필요한 마당에 독도 때문에 남북공조로 일본규탄을 한다면 이는 우리 보수진영에 매우 난처한 지경이 될 것이다. 민족보다 반공이 더 중요했고 반공을 위해서라면 친일파 등용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광복 후 역사가 오버랩되면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 “발해인 스스로 고구려 계승국 인정”

    |뉴욕 연합|중국의 동북공정이 중국사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한 뒤 국내외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고구려 역사에 관한 대규모 국제 학술회의가 5일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열렸다. 한국, 중국, 미국, 일본 등 6개국 16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회의에서는 고구려의 기원과 발전과정, 국제정세, 고구려 고분의 구조와 미술 등 8개 분과로 나눠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첫날 ‘역사와 역사문헌’ 분과에서 ‘고구려의 계승으로서의 발해’라는 주제발표를 한 송기호 서울대 교수는 “발해사의 정체성을 추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발해인의 자의식”이라며 “문헌자료를 볼 때 발해 지배층은 건국 때부터 멸망 후까지도 지속적으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생각해왔다.”고 밝혔다. 송교수는 또 “당시 신라, 당나라, 일본 등 주변국들은 발해가 기본적으로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송교수는 “전체적으로 볼 때 발해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고구려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일부 나타나는 말갈 요소만 강조해 발해를 말갈계 국가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역사·고고학적 관점에서 고구려의 기원’분과에서 ‘한의 현도군과 고구려 국가형성’에 관해 주제발표를 한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마크 바잉턴 박사는 “한사군 가운데 하나인 현도군과 고구려는 (중국의) 한 왕조가 고구려 지도층의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대신 고구려가 공물과 노역을 바친다는 점에서 일종의 조공관계였다.”고 분석했다. 바잉턴 박사는 그러나 “이런 관계는 고구려 사회가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했으며 고구려 자체의 탄생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코리아소사이어티,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아시아센터, 라이샤워 일본학연구소, 페어뱅크 동아시아연구센터가 공동후원하는 이번 회의는 서구에서 열린 최초의 고구려사 관련 국제학술회의다.
  • [열린세상] 대국적,대양적 시야가 필요하다/이덕일 역사평론가

    광해군 15년(1623년) 3월 인조와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켰던 김류, 이귀 등의 서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국가와 백성들에게 객관적인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권 후 서인정권이 광해군의 실리외교 정책을 숭명반청(崇明反淸)정책으로 급격히 전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이 발생해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무릎 꿇고 소현세자 부처를 비롯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인질로 잡혀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포로로 잡혀간 조선백성들이 선양의 서탑거리에서 노예로 팔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오랑캐인 청나라를 적대했을 뿐 그 책임의 상당부분이 자신들에게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인들이 세상을 선악으로 나누어보는 이념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리학 이념으로 세상을 바라본 서인들은 선에 속한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고 이들의 사고와 행위는 국가와 백성 모두에게 객관적으로 해악을 끼친 비역사적 행위였다. 이념에 눈이 먼 서인들에게는 동아시아 국제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현상이 보이지 않았다. 중원의 패권이 명에서 청으로 넘어가는 현실에 굳이 눈을 감았던 조선에 닥친 것은 병자호란의 비극이었다. 이는 외교에서는 이념의 시각이 아니라 상황을 크게 보는 대국적 시야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식민지의 쓰라린 경험이 있는 한국민으로서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을 분출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과 부합하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독도를 한국이 실질적으로 관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커지는 것을 가장 원하는 세력은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일부 우익세력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일부 우익세력들이 노리는 것은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국제 사법재판소나 유엔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독도문제가 국제적 논란거리가 되면 될수록 독도는 국제분쟁지역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지(斷指)나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의 시끄러운 외형적 대응보다 조용한 내면적 대응이 효과적이다.1945년 패전 이후 일본에는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에서 형성된 다수의 민주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과 손잡고 모처럼 형성된 일본 국민들의 한류 열풍 등을 이용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세력을 일본 내에서도 고립되게 하는 것이 최상의 전략일 것이다. 이런 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비단 독도문제만이 아니라 현재 동아시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재편되는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8∼9월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대륙세력은 사상 처음으로 ‘우의(友誼) 2005’ 합동군사훈련을 산둥반도와 서해에서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과 독도분쟁이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미국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거듭 지지하고 나선 것은 대륙세력 못지않게 해양세력도 변화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두 세력의 이런 변화를 대결에서 평화로 유도할 능력이 있으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급격히 높아지겠지만 당장 북핵 문제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모두의 협력이 절실한 우리에게 이는 통일 후에나 가능한 전략일 것이다. 분단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몰라도 정치·군사적으로는 대륙세력의 일원이 될 수 없음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미 명확히 보여준 바다. 반면 현재 미국과 일본의 접근은 한국을 배제한 신 해양세력이 구축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자칫 한국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모두에게 배제된 고아신세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고아는 먹이일 뿐이다. 독도 시야를 넘어서고, 이념도 넘어서는 대국적, 대양적 시야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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