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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단없는 개혁속 국민 대화합 이룩”/김 대통령 기자간담 속기록

    ◎모두 발언/일류국 만들어 차세대에 넘기는게 소망/여론수렴미흡… 개혁 시행착오 아쉬움도/“시간 지나면 개혁혜택 실감할것”/“중기 살리기” 여러 방안 준비중/곧 안보리 진출… 국가위상 격상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후반이 시작되는 25일 낮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지난 2년반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국정구상 등을 꾸밈없이 털어놓았다.다음은 모두발언및 일문일답 요지. 오늘은 국민도 그렇겠지만 나 자신도 대단히 의미있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이런 날에 국무위원·당직자들을 만나는 자리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보다는 국민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기자간담회를 갖게 됐습니다.그동안 광복절,민자당 전국위원회,원로모임 등 몇차례 공식적인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주로 그동안 느낀 솔직한 심정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2년6개월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그동안 나 나름대로 사심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국가보위의 책임,그리고 국민의 생명과재산을 지키는 책임에 대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취임후 9개 안가를 모두 철거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 스스로 재산을 공개했습니다. 또한 군을 개혁하고 금융실명제와 토지실명제를 실시했으며 정치개혁과 함께 공직자의 재산을 공개토록 했으며 혁명적 교육개혁도 단행했습니다. 여러 일을 치르면서 솔직히 얘기해 시행착오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또 어떤 의미에선 아쉬움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금융실명제와 같이 때로는 시행전까지 전적으로 비밀에 부치지 않으면 안되는 조치도 있어 철저한 보안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여론수렴에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그런 점에서 시행착오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광복절에 대규모 사면복권을 단행했습니다.앞으로 헌법 제79조에 의한 일반사면도 정기국회에서 동의를 얻어 단행할 것입니다.1천만명이 넘는 대상을 놓고 법무부에서 연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내가 2년반 임기의 새로운 대통령에 취임하는기분으로,지나온 경험을 되살려 사심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국가와 민족과 겨레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자꾸 무슨 시대가 도래한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지금부터 2년6개월이 지나면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 조용히 일개 시민으로 돌아갈 것입니다.시끄러운 일도 없을 것이고 조용히 돌아갈 것입니다.2년6개월후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누구와도 경쟁할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모든 경쟁은 끝났고 어느 누구와도 경쟁할 이유가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2년6개월동안 새로 취임하는 각오로 혼신의 노력을 다할 뿐입니다. 나에게 지난 2년6개월은 참으로 길고 힘들고 고독한 기간이었습니다.2년6개월이 마치 26년이 지난 것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중요한 결단과 결정을 할 때면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몇번이고 심사숙고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자리였습니다.청와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독한 장소입니다.훗날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는 몰라도 저는 대통령으로서 영예만 누릴 생각은 해본 일이없습니다.제가 뼈저리게 느낀 소회입니다.비록 부덕하지만 저의 열정과 성심을 남은 임기에 모두 다 바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도 남은 임기동안 사심없이 조국과 겨레에 봉사하고자 하는 저를 도와주시고 신한국 창조에 동행자가 되어줄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제게 소망이 있다면 일류국가를 만들고 차세대에게 훌륭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넘겨주는 것입니다.그것은 또 제 소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속에 대단히 중요한 나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6·25때 우리가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도움을 받았지만 오는 10월 또는 11월이면 우리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됩니다.냉전시대와는 달리 90년대들어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비토권 행사기회는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상임·비상임의 역할이 비슷해지고 있습니다.또 실질적으로 유엔이 하는 일의 80%를 안보리가 하고 있습니다.유엔기구에 한국인 참여도 늘고 있습니다.한국의 위상이 대단히 높아졌다는 점을 국민이 실감해줬으면 합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걱정입니다.한발이 들어 물이 꼭 필요한 경북 일부에만 오고 태풍도 피해 갔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9.7%의 고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며 물가는 3.6% 상승에 머물 것입니다.고도성장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우리 경제의 미래는 밝습니다.다만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과제입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가지 대책을 준비하고 있고 실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지원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다.시간이 가면 모두 해결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받던 문제가 몇개 있습니다.남북분단·물가고·입시지옥 등입니다.이제 물가는 어느 나라보다 안정되었습니다.입시지옥도 교육개혁을 통해 금년부터 완화될 것입니다. 하나하나 정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34년동안 하지 못하던 지방자치도 실시,문민정부가 민주주의를 완결시키는 데 중요한 일을 해냈습니다.공명선거를 통해 관권·금권시비가 없어진 것도 문민정부가 한 일입니다. 우리 국민은 마음이 상당히 급한 것 같습니다.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고 기대하지 말고 때로는기다리고 같이 걱정하면서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와 개혁,그리고 부정부패척결은 취임때와 마찬가지로 중단없이 추진해나갈 것입니다.이번에 대사면을 단행했지만 국민통합·대화합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그런 방향으로 나갈 것입니다. 오늘 정말 임기 절반을 보내는 심정을 솔직히 얘기했으니 그대로 받아주기 바랍니다. ◎일문일답/북 NPT복귀 유도 가장 어려웠다/국민은 성급함 버리고 개혁 협력을 ­강삼재 민자당총장 기용으로 상징되는 세대교체구상과 내각 및 청와대 개편구상을 밝혀주십시오. ▲김대통령=앞서 얘기했지만 오늘은 나의 심경을 얘기하는 것으로 자리를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직이 결코 영예만 있을 수 없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의미는. ▲김대통령=그것은 한마디로 고뇌와 고독뿐이었다는 얘기입니다.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한시도 고뇌하고 고민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얘기입니다. ­시행착오와 아쉬움도 있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입니까. ▲김대통령=굳이 여기서 밝히지 않겠습니다.아무튼 2년반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더 열심히,더 성실히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년반동안 제일 어려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김대통령=93년2월25일 취임했는데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해 핵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대통령의 임무중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의 생명과 국토,그리고 평화를 지키는 것인데 이것이 잘못되면 기가 막힐 일 아니겠습니까.그러나 국민에게 엄청난 불안을 안겨주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당시의 상황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는 거의 잠을 못잘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심각한 사태까지 간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그러나 마지막까지 나 자신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미국에 대해서도 자제하도록 강력히 요청,경수로를 가지고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우리 뜻대로 경수로지원에서의 한국의 중심역할이 결정되었습니다.이과정에서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네번이나 했고 공개되지 않은 것을 포함,전화통화를 수없이 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김대통령=북한의 상황에 대해 다 알고 있지만 여기서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경제적으로 식량사정이 어렵고 비 피해도 엄청난데 구체적으로는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솔직히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대통령께서 좀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는 지적이 없지 않습니다. ▲김대통령=청와대에 들어와 생활을 간소화하고 경비를 절약해왔으며 앞으로도 그것은 계속할 것입니다.클린턴대통령이 3주간 휴가를 떠났는데 자신이 보낸 특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바로 휴양지로 갔습니다.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합니다. ­집권 후반기를 시작하면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대통령=너무 급하게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우리는 문민정부를 이룩하고 경제력을 세계 11위에 올려놓는등 엄청난 일을 했는데 이 두가지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개혁 가운데도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이 있고 토지실명제처럼 시간이 가면서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는 것이 있다고 봅니다.이대로 가면 2000년에는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를 맞고 수출도 몇천억달러에 이르는등 큰 규모의 경제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언론도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위해 어떤 보도가 도움이 되겠는가를 좀더 거시적으로 생각해주길 바랍니다.경쟁을 통해 외부는 이겨내야겠지만 내부적으로도 그것을 1위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큰 차원에서 국가이익이 무엇인지를 우리 모두 생각해봅시다.
  • 김영삼 대통령 임기후반의 시작(사설)

    ◎일류국가 건설에의 강한 의지와 정성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임기의 절반을 넘기고 오늘로 후반기를 시작한다.지난 2년반 동안의 변화와 개혁은 국가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린 역사적인 성취임을 부인할 수 없다.광복 50주년이기도 한 지금 그동안의 성과를 도약의 발판으로 민족의 목표인 통일된 세계 중심국가로 만들 헌신의 각오를 다질 시점이다. ○과감한 변화와 개혁의 2년반 김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시동을 건 개혁드라이브는 한마디로 일류국가건설을 위한 굳건한 기초를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대통령으로서 정치자금은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대통령의 식단을 칼국수로 바꾼 솔선수범의 부패척결의지는 사정개혁과 윗물맑기운동,그리고 제도개혁으로 구체화되었다.신한국건설의 국정목표를 위해 역사의 그림자를 지우는 한국병 치유의 과감한 변화와 개혁이었다.직선으로 확립된 정부의 정당성과 민주성의 기틀 위에 군 사조직을 척결하고 그동안 연기되어온 지방단체장선거를 실시하여 전면적인 자치시대를 연 것은 민주정치의 튼튼한 궤도를 깔아놓은 것으로 그뜻이 매우 크다. 금융실명제의 전격적인 실시와 공직자재산공개,정치개혁입법과 아울러 금권·관권선거의 청산을 통한 돈 안쓰고 깨끗한 선거의 실현등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가 우리역사에 혁명적인 효과와 의미를 남겼다.이런 엄청난 변화는 불과 2년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일어난 것이다.거기에 행정의 효율화와 규제완화를 위한 정부조직개편및 행정개혁등 일찍이 유례를 찾을 수없는 개혁의 연속이었다. ○훗날높은 역사적 평가 받을것 이러한 국정전반과 사회각분야에 걸친 개혁은 무한경쟁의 국제질서에 대응하여 선진국으로 도약시키려는 김대통령의 세계화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체제정비이기도 하다.개혁의 시대정신이 만든 문민정부 전반기의 성과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여당의 패배로 나타난 지방선거결과를 들어 개혁에 대한 문제점과 불만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국가운영과 현실관리에는 반작용과 반동이 따르는 만큼 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적인 전진을 가속화하는 일이다.김대통령이 국민통합과 세계화개혁의 지속을후반국정운영의 기조로 설정한 것도 국민동참과 협력으로 개혁의 내실을 기하려는 뜻이다.사회안정과 국민화합을 다지는 초당적협력의 확보야말로 국가발전을 위한 후반기 국정운영의 절실한 과제다. ○중요한것 국가적 전진의 계속 이를 위해 시급한 것은 국민참여를 확대시키는 주체세력의 성의있는 설득노력이다.대통령을 정점으로하는 집권당과 행정부가 그 견인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조직이기주의를 버리고 대통령과 국민들의 역사창조의지를 구현토록 뒷받침하기 위해 일체감과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춘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이같은 노력이 국가발전을 위한 각계의 고통분담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여론과 역량을 결집하기 보다 지역주의를 중심으로 국민분열의 패싸움을 선동하는 사색당쟁형의 사생결단식 정치행태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민주발전과 일류국가건설의 전제다.민주시대에 들어와 국민과 국가에대한 봉사와 희생이라는 정치의 공적인 목적이 실종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않는 권력투쟁으로 지새는 정치로는국민갈등과 사회혼란 뿐 국가경영정책과 국민통합의 생산성은 기대할 수 없다. ○국민적 인내와 협력의 자각을 바람직한 정치는 국민,좁게는 지도층이 만든다.그런 점에서 언론과 지식인등 여론주도세력이 스스로 지역성이나 당파성을 극복하고 부정과 저항에 편향된 체질을 긍정과 통합쪽으로 균형을 잡는 성숙한 자기변화가 요청된다. 정치가 국민의 고통을 설득하도록 채찍질하여 일류정치를 유도하는 책임을 해야할 것이다.각계의 이기주의를 조정하고 국가관리와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협력할 줄 아는 선진국 수준의 통합노력이 있어야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일류국가 건설을 향한 인내와 협력의 국민적 자각이 있어야 한다.
  • 민자 새대표 김윤환씨/전국위서 선출/주요당직 오늘 개편

    ◎“대화합 새출발… 큰 정치 펴자”/김 대통령 치사 민자당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은 21일 하오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김윤환 사무총장을 새 대표위원으로 지명하고 21세기와 통일에 대비한 「대화합의 새정치 출발」을 선언했다. 신임 김대표위원은 이날 김대통령의 지명을 받고 1천4백여명의 전국위원들이 만장일치 박수로 동의하는 형식을 통해 공식 선임됐다. 김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이제 세계 중심국가,일류국가가 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면서 『우리 모두가 대화합으로 새 출발해서 진실로 큰 정치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대화합조치와 관련,『8·15대화합조치에 이어 정기국회의 동의를 받아 10월에 1천만명 이상의 일반사면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조치는 문민정부들어 부정부패에 대한 사면이 없었듯이 대화합으로 새출발,큰 정치로 나아가자는 뜻이지 부정부패를 용서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어 『변화와 개혁을 통해 혼란 없는 안정을 가져올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서 『민자당은 변화와 개혁을 통해 국민과 함께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국민과 함께하는 개혁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세대교체 문제와 관련,『세계일류국가를 만들어 사랑하는 자손과 차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천하의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야 한다』면서 『선후배가 함께 어울리는 위대한 당을 만들어 역사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창조하는 당이 되자』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지난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선거에 승리하지 못한 것을 다같이 반성하고 새 출발해야 한다』면서 『참된 반성이야 말로 미래를 개척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민자당 운영과 관련,『국민에게 희망과 미래를 보장하는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면서 『총재인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강조해 당에 대한 장악을 한층 강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 『우리는 지난 2년동안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비롯된 핵위협을 막는데 최선을 다해 왔다』면서 『북한이 개방과 대화로 나오기를 바라며 우리는 예기치 못한 모든 사태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신임대표는 대표위원수락연설을 통해 『김대통령이 광복 50주년을 맞아 내린 국민 대화합의 정치를 실천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면서 『지역 패권주의에 바탕을 둔 분열과 반목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미래지향의 새 정치를 창출해 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표는 『민자당은 국민이 안심하고 참여하는 개혁을 제도적으로 완성해 가야 하며 우리당은 그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언로가 활짝 열린,당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수 있는 민주정당으로 탈바꿈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자당은 이날 전국위에서 지역을 볼모로 하는 분열의 정치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파당의 정치를 청산하고 미래와 차세대를 위한 새로운 정치의 실현을 다짐하는 「21세기를 향한 우리의 다짐」이라는 대국민선언문을 채택했다.또 원내총무경선제 폐지및 차기대통령후보의 선출시기를 명기하는 내용의 당헌개정안을 의결했다. ◇김윤환 신임대표위원 약력 ▲경북 선산(63) ▲경북대 졸 ▲조선일보 주일·주미특파원,편집국장대리 ▲10·11·13·14대 의원 ▲문공부 차관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비서실장 ▲정무제1장관(3번) ▲민정당 사무총장·원내총무 ▲민자당 원내총무·사무총장·경북도지부 위원장 ▲한·일의원연맹 회장 ◎중·하위직 23일에 민자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은 21일 민자당 전국위원회에서 김윤환사무총장을 새 대표위원으로 지명한데 이어 22일에는 김대표의 제청을 받아 당3역과 대변인 등 주요당직자들을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또 23일에는 중·하위 당직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전국위원회 소집에 앞서 이승윤정책위의장,현경대원내총무는 김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으며 나머지 당직자들도 22일 상오 일괄사표를 제출할 예정이다. 사무총장에는 민정계의 기용이 유력시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출신의 김기배 의원과 인천출신의 서정화 의원,충북출신의 김종호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원내총무에는 민주계의 김정수·서청원 의원이 대상에 올라 있다. 정책위의장에는 경제통인 강경식 의원과 김중위 환경부장관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변인에는 강용식 대표비서실장과 김기도 정조위원장이 거명되고 있다. 한편 내각개편과 관련,김대통령은 24일쯤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속에 한국은행 폐기지폐 유출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 다음주로 연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주목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25일 내각과 민자당의 주요당직자들이 참석하는 당정간담회를 통해 집권후반기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 군사력 압도적 우세… 점령은 “무리”/중국,대만공격 능력 있나

    ◎대만 첨단장비 무장… 충돌땐 중도 큰 타격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이와 때를 맞춰 인민해방군의 대만침공준비설도 그럴듯하게 퍼져가고 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침공은 가능한가.군사적인 측면에서 볼때 중국군사력은 대만의 7.4배인 3백11만명.42만여명의 대만군에 비해 무려 2백69만명이 많다.대만은 북경까지 닿는 장거리 미사일이 없지만 수도 타이베이를 비롯,대만의 모든 도시는 중국 미사일의 사정거리안에 있다.대만은 핵도 없다.지난달에 이어 15일부터 재개된 대만해협부근 공해상에서의 미사일발사 훈련은 이점에서 대만인들의 안보불안을 부채질한다. 전투기도 4천2백여대 대 3백90여대,함정도 9백24척 대 96척,잠수함 1백20척 대 4척등 수치상 전력면에서 대만은 중국의 적수는 아니다.그러나 대만장비들이 최첨단의 현대무기이고 중국의 장비 노후화를 고려할 때 단순비교엔 무리가 따른다.북경의 외국군사연락관사이에도 항공모함 한척없는 중국의 대만점령은 용이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무력공격 전단계로 실시가능한 해상통로봉쇄도 약간의 경제적 타격을 제외하고는 군사·전략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들 지적이다. 국내외적 정세를 고려할 때 중국의 대만침공 가능성은 당분간 실현성이 적다.이념이 퇴색하고 대신 경제발전성과가 정권의 정통성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최소한 몇년간은 중국경제의 뒷걸음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냉전붕괴이후 중국의 급성장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에서 군사적인 충돌을 야기,고립의 길을 자초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중국국내정치가 혼란,군부가 득세하고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일 경우 침공시나리오도 전혀 배제할순 없다. 대만에 대한 실제적인 침공여부완 관계없이 당분간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시위와 대만 침공설은 강도를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중국정부는 대만을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했다는 북경외교가의 주장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잇따른무력시위와 침공가능성에 대한 강조를 통해 대만내부의 민심을 흔들어 흡수통일을 위한 정치적,심리적 발판을 닦아보자는 것이 중국의 의도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올해말 총선및 내년초 총통 직접선거를 앞두고 대만내부에서 일고 있는 독립열기와 국제연합(UN)발족 50주년을 앞두고 대만당국이 벌이고있는 UN재가입등 국제무대복귀외교를 좌시할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확고한 자세이다. 뿐만아니라 중국의 무력시위는 대만뿐 아니라 대만 뒤의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나칠 수 없다.이등휘총통의 미국초청과 같이 대만을 인정하는듯한 태도를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과시하자는 것이다.
  • 일본에선…/유출 한국 문화재(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1)

    ◎약탈·밀반입 문화재 10만점 추산/고려 대장경 등 10점 「일 국보」 지정/알려지지 않은 개인 소장품 훨씬 더 많아/고려청자·회화 희귀품 많아… 반환이 과제 고려청자의 걸작품 청자투각당초문상자. 화려한 투각문양과 청록색의 이 명품은 수백년이 지난 오늘도 맑은 에메랄드처럼 빛나고 있다.그것을 만든 장인은 가고 없지만 고려청자의 예술은 오늘도 찬란하다.그러나 그 걸작품은 지금 한국에 없다.굴절된 한국의 현대사를 증언하듯 그 작품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국립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도쿄 국립박물관의 안내책자는 8만8천여점의 소장품 가운데 엄선한 26개 작품중에 청자투각당초문상자를 소개하고 있다.일본도 걸작품의 예술성을 아는 것일까.고려청자의 전성기였던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4점밖에 남지 않은 상자형 청자중의 하나이다. ○3만여점은 공개 도쿄 국립 박물관에는 청자투각당초문상자 외에도 많은 한국문화재가 있다.문화재 수집가 오쿠라 다케노스케(소창무지조)가 기증한 「오쿠라 컬렉션」을 포함,2천여점의한국 예술품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그러나 도쿄박물관에 있는 문화재는 일본에 의해 약탈됐거나 불법유출된 한국문화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정부에 의해 파악된 해외유출 문화재는 세계 17개국에 6만4천여점이며 그중 가장 많은 3만여점이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공개된 것일 뿐 실제로는 10만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일본의 경우는 도쿄국립박물관,오사카(대판) 시립동양자기미술관,야마토(대화)문화관,도쿄에 있는 민예관 등 박물관에 있는 한국문화재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알려지지 않은 개인소장 문화재가 더 많다고 주일 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역사연구에 중요 한국국제교류 재단은 해외에 있는 문화유산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일본 민예관에 있는 한국문화재의 도록을 「한국문화재」라는 제목으로 93년 12월에 발간한데 이어 95년1월에는 도쿄국립박물관,오사카 시립동양자기미술관,야마토문화관에 있는 한국문화재의 도록을 만들었다. 한국의 문화재들은 멀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일본의 식민통치 기간과 그 이후의 사회적 혼란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4백여년에 걸쳐 일본인들에 의해 약탈됐거나 일본으로 밀반출됐다.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재중에는 국보급의 걸작품들도 적지 않다.일본정부는 고려판 「대장경」을 비롯,10점을 국보로 지정하는 등 1천2백70여점을 중요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도쿄국립박물관에는 일제시대 때 대구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재를 전문수집했던 오쿠라씨가 죽은 후 지난 81년 기증된 「오쿠라 컬렉션」의 1천여점의 한국문화재가 전시돼 있다.오쿠라 컬렉션을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서부터 통일신라에 이르는 고고(고고)자료가 많으며 고려·조선시대의 미술작품,청자 등도 적지 않다. 오쿠라가 모았던 문화재들은 양이 많을 뿐만아니라 예술성에서도 뛰어난 작품이 많다고 민속학자 김광언교수(인하대)는 지적한다.그중에는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이정의 「니금죽도」,정선의 「산수도」,장승업의 「묘도」등이 있다.도자기도 신라·가야의 마형도기,수레형도기 등 50여점과 고려·조선시대 도기 1백30여점이 있다.명품이 많은 고려청자는 38점이며 조선백자도 많다. 오사카시립 동양미술관에도 1백여점의 도자기들이 있는데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명품들도 많다고 윤용이교수(원광대)는 말한다.오사카미술관은 지난 92년11월 고려청자,조선분청사기 등을 포함한 일부유물을 보여주는 명품전을 열어 세계 도자기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기도 했다. 나라현 나라시에 있는 야마토(대화)문예관에도 많은 한국문화재들이 소장돼 있으며 도쿄에 있는 민예관에는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가 제창한 민예이론에 따라 수집된 1천5백여점의 문화재들이 있다.일본의 유명사찰 등에도 한국문화재들이 소장돼 있으며 예술적 가치가 높은 조선초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덴리(천이)대학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민간기업도 참여 한국은 일본에 있는 이러한 많은 문화재들을 되돌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성과는 별로 없다.지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한·일간 문화재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그동안 돌아온 문화재는 2천7백77점에 지나지 않는다.지난해에는 일본의 하치우다 다다스씨(68·부동산업)로부터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 등 3백82점을 기증받은 경우도 있으나 문화재를 돌려받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한국정부는 문화재 반환을 위해 일본정부와 접촉하기도 하지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일 문화원 관계자는 말한다.일본내 우익세력들이 개인소장가들의 문화재 반환을 막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문화재 반환은 세계적으로 어렵고 미묘한 문제이다.유네스코를 중심으로 문화재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강대국들이 대부분 유출 문화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실효성이 별로 없다.이때문에 민간기업들이 문화재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해외 경매시장에서 사들이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하는 문화재 전문가들도 많다.
  • 백두산 호랑이·판다 “멸종위기”

    ◎중국,무차별 포획… 동남아 등에 밀수출 중국의 희귀동물과 맹수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50마리밖에 남지 않은 백두산 호랑이도 거의 멸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판다곰·황금원숭이·표범·코뿔소 등 중국에밖에 없는 희귀동물이 무자비하게 살육되거나 밀렵되어 대만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밀수출되고 있어 멸종위기에 있다. 중국은 뒤늦게 야생동물보호를 위해 관계법령 등을 고치고 밀렵을 단속하고 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은 중국의 맹수밀렵현장과 밀매거래를 답사한 보고서를 작성,국제적인 주의를 촉구했다. 희귀동물 밀렵은 호랑이와 표범·코뿔소 등이 많고 생포대상에는 판다곰이 단연코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대나무숲의 귀공자로 전세계 어린이의 귀여움을 받고 있는 판다곰은 현재 5백∼1천마리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2000년대초에는 멸종될 것으로 세계의 환경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63년 판다곰이 서식하고 있는 전국의 14개 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이 지역의 개발을 제한하는 등 적극적인 보호정책을 펴왔다.그러나 문화혁명을 지나면서 혼란해진 틈을 타 산지가 개발되고 밀렵과 생포가 늘어나 판다곰의 수난이 시작됐다. 미국의 과학위성이 찍은 판다곰의 서식지는 60년대와 비교하면 절반이상이 농경지로 개간돼 있어 그만큼 생활공간이 줄어들었다.특히 몇백마리씩의 대규모서식지는 요즈음에는 찾아볼 수 없고 50여마리가 관찰되고 있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이 2만원정도인데 야생 판다곰 한마리의 가격은 8천만원에 외국으로 밀수출되고 있기 때문에 생포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중국정부는 판다곰의 밀수출을 막기 위해 생포하는 사람은 극형에 처하고 있다. 국의 동물원에 분양된 판다곰도 인공수정으로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 “미­대만 밀착 불용” 경고 사격/대만겨냥 중 미사일 시험

    ◎이총통 입지 흔들어 분리운동 차단 포석/“워싱턴의 대만보호 정책에 쐐기” 속셈도 중국이 21일 대만 북부 해상으로 M급미사일 2기를 발사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최근 실험배치되기 시작한 사정거리 8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실험의 일환으로 4기를 추가로 대만 북부에 발사하고 대만해협봉쇄를 계획하는 등 「대만 목조르기」를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미국은 이번 사태가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초청 등으로 발단됐으면서도 파장이 커질 것을 우려해 일체의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이번 미사일시위는 중국의 치밀한 외교적 계산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대만과 대만을 두둔하려는 미국에 강한 경고성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는 분석이다.우선 대만내부의 정치·경제적 혼란을 야기,이총통의 정치·경제적 입지에 손상을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중국은 내년 3월 예정된 총통선거에서 이총통이 재선될 경우 대만의 분리독립운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을 우려해왔다. 중국이 목표로 삼은 대만 북부 70∼1백50㎞ 앞바다는 연안수역중 어획고가 높은 지역이라는 것도 대만정부를 당황케 하고 있다.바로 이 지역의 어선들이 지난 20일부터 중국측의 「위험경고」에 따라 대부분 항구로 돌아오고 있다.대만 수산관계자들은 중국측의 미사일 실험으로 6백20여만달러를 손해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또 대만의 주식시장 역시 연일 2%안팎의 폭락사태가 계속돼 내부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그러나 대만의 일부 보도는 주민들이 중국의 미사일 발사실험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보도하고 있다. 이번 무력시위는 동시에 미국측에「경고사격」을 가해 미국의 대만보호정책에 쐐기를 박아놓자는 의도로도 보여진다.최근 일기 시작한 미국정부·의회의 대중국 정책변화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시라는 지적이다.사실 이총통의 미국방문은 대만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시켜주었고 사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대만의 독립행보가 강화될 것이라는 중국정부 판단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분석이다. 이번「중국­대만」위기는 오는 8월1일이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브루나이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외무장관이 회동,양국의 정치·경제 현안이 광범위하게 논의될 예정이다.바로 여기서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경우 이번 위기는 상당히 지속되리라는 전망이다. ◎중 미사일 성능/단거리용 M급 추정… 명중률 높아/소련 「스커드」와 비슷… 사정거리 3백∼6백㎞ 중국 인민해방군이 21일 새벽 대만 북부 공해상에 발사한 2기의 미사일은 이동식 M11 또는 M9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M11의 사정거리는 3백㎞,M9는 6백㎞로 단거리미사일에 속하며 중국이 자체 개발해 89년부터 본격배치했다. M급 미사일은 옛 소련의 스커드 미사일과 비슷한 이동식으로 컴퓨터에 의한 유도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명중률이 높다. 대만의 유화겸군참모총장은 지난 2월 중국이 이 M11,M9 미사일 기지를 강서성에서 대만에 가장 가까운 복건성으로 이동,대만 전역이 중국미사일 사정거리에 들어설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또 오는 2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중국의 미사일실험발사기간동안 신강성기지에서 발사할 것으로 알려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신형 「동풍31」로 사정거리가 최장 8천㎞에 달한다.
  • 민자당 심기일전 필요하다(사설)

    민자당이 지방선거 패배와 야권개편 등 정치변화에 당의 대개혁으로 대응한다는 방향을 세웠다.당연하고 올바른 선택이다.지도체제나 당직의 개편이 어떻게 되든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집권의 안정이 걸린 내년 총선을 앞둔 마지막 선택이므로 실효있는 변화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김영삼대통령의 미국방문과 광복 50주년행사가 있는 이상 시간이 걸리더라도 졸속을 피해 국정쇄신과 민심수습에 기여할 개혁안이 나오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지방선거 이후 민자당의 움직임을 보면 민심이반에 대한 충격과 위기감이 너무나 큰 나머지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당차원의 방안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접근이 미흡한 느낌이다.계파별로 패인분석과 개혁노선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당정간에도 개혁정책에 대한 사전조율이 없이 분열과 갈등의 모습으로 비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반성은 외치지만 스스로의 다짐보다는 위의 처분이나 행정부만 바라보는 인상을 준다. 집권여당은 국정수행을 주도할 책임과 아울러 국가적 안정과 발전의 견인역할을 갖고 있다.지방선거결과 심화된 지역분할의 정치와 김대중신당움직임으로 가속화된 정치권의 분열이 사회적 혼란과 국가적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여당이 통합의 단단한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여권이 내부분열로 지리멸렬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그런 책임을 다할 수가 없다.의지와 힘을 결집하여 국민에게 희망과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자당이 당지도체제를 바꾸고 당직을 개편한다면 당력을 모을 수 있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그에 앞서 각자가 계파의식과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단합과 협력의 투철한 결의와 용기있는 실천을 보일 것을 당부한다.개혁성과를 몰라주고 지역감정에 현혹된 듯하지만 민심이란 겸허하게 설득해 나가면 다시 돌릴 수가 있다. 돈과 관권의 여당프리미엄을 버린 거대한 변화와 개혁의 시대에는 이미 과거식 여당정치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새로운 국민정당으로 새롭게 출발할 필요가 거기에 있다.
  • 한­미 새출발 할때다(지구촌 칼럼)

    태평양 전쟁이 끝난지 50주년을 맞는 해에 한 중요한 행사가 며칠뒤 워싱턴에서 거행된다.한국의 김영삼대통령이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함께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용감한 병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는 참전비를 봉헌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뒤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한국전참전비는 미국과 한국 간의 보다 새롭고 성숙된 관계설정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보다 성숙한 관계로 1950년 6월25일부터 53년 7월27일까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지금까지 두나라 사이의 관계에 있어 가장 괄목할만한 사건이다.평양의 독재정권으로부터 계속되는 위협은 소련과 미국 사이의 대립의 결과로 초래된 냉전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양국관계를 확장시켜 왔다. 그러나 옛 정책들의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이미 실패한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대대적인 선동 노력에 의해,또 바깥세계로부터의 뉴스 차단과 거대한 보안군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평양정부는 오래 지탱할수가 없다.결국 우리가 과거의 희생들을 명예롭게 할때 현재보다는미래를 위한 계획을 시작하기에 좋은 시간이 되고 있다. 장차 상황은 두단계로 나뉘어지게 될것이 분명하다.첫단계는 한국이 다시 통일국가가 되는 통합의 시기다.분명히 이는 남북간 경제적 불균형을 감소시키고,방위병력을 7천6백만 국민을 지키는데 적당한 규모로 조정케하고,동북아의 새로운 환경변화에 따른 외교정책및 통상정책의 조정등 다소간 혼란의 시기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모든 이러한 과정에서 지도적인 역할은 서울의 새로운 통일정부에 맡겨지게 되고 미국은 이에 대한 중요한 지원 역할을 하게될 것이다. ○한 미 기업 혁력 필수 경제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새로운 투자가 이전의 북한지역에 필요하게 될것이다.서울측에서 취하고 있는 대북투자를 더욱 보강시키는 기반 위에서 미국기업들의 북한진출이 촉진될 것이다. 방위협력도 급격하게 변화된 안보환경에 따라 재조정될 필요가 생길 것이다.정치적 압력이 급속한 변화를 위해 강화될 것이다.적당한 준비와 적절한 설명 없이는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대외관계들은 보다 강력해진 위치에서 중국의 재등장과 일본과의 조화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려움이 있는 반면에 통일에 수반되는 중간 정책들은 두개의 한국과 미국 사이의 협력을 위한,가능하고 이로운 장기적인 정책들이 직면하게 될 문제들과 비교해 볼 때 단순해질 것이다.그것은 두나라의 장기적 이익을 지속시키고 그들의 관계를 확대시키는 방향에서 광범위하게 채택될 것이다.그러나 그 이행은 결국엔 환상으로 판명될는지 모른다. 현재 미국기업들은 한국에 있어서 가장 큰 투자자들이다.그러나 미국내의 한 평가보고는 한국정부가 외국인 투자의 수용을 꺼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만일 한국이 첨단기술시대에 빠른 성장을 계속하고 싶다면 미국기업과 한국기업간의 상호협력은 필수적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얘기하자면 한국은 아시아의 일반적 국가들이나 특히 중국·러시아·일본과의 관계를 두고 볼 때 보다 다각적인 고려속에 미국과의 관계를 보게 될 것이다.안보적 측면에서 서울측의 견해는 일단 국경이 압록강으로 올라가면 매우 달라질 것이다.워싱턴의 견해도 마찬가지라할수 있다.상황은 매우 빠르게 변해가고 빠른 결정이 필요하게 된다. ○미래 함께 준비해야 양국의 시민들은 변화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그러한 변화는 면밀한 연구와 계획의 결과로 이뤄질 것이다. 우리가 태평양전쟁 종식 50주년을 기념하고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싸운 사람들을 추모하는 이 시점은 바로 미래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는 시점이다.변화의 시기에 우호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미국과 한국은 그들 관계의 첫시발부터 밀접한 우호를 보여왔다.다행하게도 이 우호를 위해 그들의 이익은 앞으로도 계속 일치될 것이다. 김대통령의 방미 시점은 바로 두나라가 강력한 과거의 기반위에서 굳건한 구조를 세울수 있도록 새로운 계획을 시작하려는 때인 것이다.
  • 김대중씨,대권재도전 시사/어제 회견/“정계복귀·신당창당” 공식선언

    ◎총선결과 따라 내각제도 모색/민주당 3년 10개월만에 분당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18일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이에 따라 김이사장은 지난 92년 대선패배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한지 2년7개월만에 정치권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지난 91년 9월 옛 신민당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출범한 민주당은 3년10개월만에 분당을 맞았다. 김이사장은 이날 상오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92년 12월19일 정계은퇴 선언 뒤 2년반이 지난 오늘 국가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 민주당은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왔을 뿐만 아니라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대화의 상대로도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복귀의 변을 밝혔다. 이어 『국민 여러분에게 드린 정계은퇴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이사장은 차기 대권도전 가능성과 관련,『아직 결정된 바 없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한 바도 없다』면서도 『대통령은 하늘의 뜻이 있어야 한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또 『자민련과는 공동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연합하는 것이 옳다』며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연대를 적극 모색하고 있음을 밝힌 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제를 지지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겸허히 수용,필요하면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김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정을 위해 필요하면 만나서 협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김이사장은 『지금의 민주당은 당대표의 지도력 부재,나눠먹기식 당운영,파벌과 자금력을 동원한 당권경쟁으로 당은 절망적인 혼란과 기능마비를 보여주고 있다』고 신당창당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뒤 『그러나 민주당이 당체질개선과 개혁을 수용한다면 대화의 문호는 언제든지 열어놓겠다』고 말했다. 김이사장의 신당창당 선언으로 민주당내 신당파들의 집단 탈당사태가 곧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야권은 신당과 민주당,자민련등 3개 정파로 나눠진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계개편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김이사장의 정계은퇴선언 번복은 여권의 세대교체 주장과 맞물려 상당기간 정치권의 첨예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김이사장은 또 신당의 정치적 목표와 관련,▲지자제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당 ▲젊은층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당 ▲중산층에 안정과 희망을 되찾게 하는 정당 ▲통일에 대비하는 정당 ▲21세기를 준비하는 정당등 다섯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김이사장은 이어 이날 낮 서울 힐튼호텔에서 「17인 중진회의」를 열고 창당기획단과 사무국·연락국·홍보국·정책국·대변인실로 구성된 창당주비위 규정을 마련,19일 회의를 다시 열어 인선을 매듭짓기로 했다. 한편 김이사장은 이종찬·김상현·정대철고문과 권로갑·한광옥 부총재등 민주당 지도부를 창당주비위 지도위원에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 6·27 선거결과가 말하는것/이성복 건국대교수·행정학(기고)

    ◎「지역 할거」 정치현실 그대로 표출/지방정부 관리경험 축적한 「정치 엘리트」 충원 길 트고 6·27 선거결과에 대한 평가가 분석되기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신당의 출현 등이 발생,국민들을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선거는 여당인 민자당에게 국정운영에 대한 반성과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으며 야당인 민주당과 자민련에게는 집권에의 기대를 가져다 주었다.이는 지역분열주의와 여당의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나타난 결과다. 이번 선거는 정계은퇴 및 지방자치를 중단시킨 정치인이 재기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이들은 지방선거와 관련이 없는 정부형태까지 거론하며 국민들에게 지역기반 확인을 강요했다.또한 선거결과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면서 지방선거 이후 정당의 창당 등을 통해 정계의 지각변동을 가져다 주고 있어 35년만에 시작된 지방분권체계의 진행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혼돈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신당의 출현에 대하여 반대여론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절대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계층이 있으며 정확한 지지분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신당의 창당이 옳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판정은 국민들이 내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와 내후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판정을 유보하려 한다. 6·27선거는 지역주의의 심화를 가져다 주고 일부 정치인들이 지역분열을 선동하는 발언으로 국민에게 투표를 요구하였으며 실제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선거 결과가 나타났다.따라서 합리적인 가치의 판단이 요구되는 발전된 정치형태하고는 거리가 먼 결과가 발생되었지만 한국정치의 현재 수준이라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정치지도자들은 스스로 국가적인 지도자에서 지역의 지도자로 격하되는 형태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7선거가 갖고 있는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다.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지방자치를 통하여 행정관료의 행태가 봉사행정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국민주권 국가의 성립과정이 선진국가와는 상이하게 전개돼 행정관료가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의미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되고 있다.절대왕권,식민통치 및 군부통치시대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행정관료집단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행태가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가치로서 제도화 되는 것이 존재하지 못했다.따라서 어떤 정부형태가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행정관료집단의 존재여부가 정치발전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또 다른 의미는 다양한 학연을 배경으로 하는 정치엘리트 집단이 이번 선거를 통하여 충원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중앙보다 적은 지방정부의 관리경험을 축적하게 됨으로써 국가경영을 담당할 수 있는 세력을 학습시키는 기반을 조성하였다. 지방분권의 이러한 측면을 정치인들은 인식해야만 한다.국민들의 기대를 정치집단이 저버리게 될 때 국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투표를 통하여 정치인들을 심판하려고 할 것이다. 지난 91년 걸프전쟁으로 인기가 올라갔던 부시 전미국대통령이 그다음해 선거에서 패배하였고 93년의 개혁정치로 인기가 올라갔던 김영삼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배를맛본 것은 국민들이 정치집단의 행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27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를 진솔하게 수긍해 대처하지 못하는 정치집단은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맞을 것인가는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지역에 의존하는 정파가 있으면 있을수록 그에 반하는 다른 정파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만에 빠진 세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국민의 심판은 정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정치집단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정부의 형태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정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이를 명심하고 있는 정치집단이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국민이 기대하는 정치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4당 체제속 구 양김구도 복원노려/김대중씨 복귀와 정국전망

    ◎세대교체 맞불 확산땐 정치권 긴장 지속/신당의 지역당 이미지 극복 노력이 변수 ○대권도전 의심 안해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정계은퇴 선언을 2년7개월만에 번복하게 된 이유로 두가지를 들었다.하나는 지금이 국가적 위기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주당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주당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신당창당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정계복귀 선언이 그의 네번째 대권도전을 위한 것이라면 신당은 그의 목표달성을 위한 확실한 발판인 것이다.물론 그는 이날 대권도전에 관해서는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점을 의심치 않는다. 무엇보다 지방선거 승리가 그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했고 『이번만은 상황이 다르다』며 대권도전의 야망에 불을 지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 총선에 승부수 김이사장은 이제 더이상 장막뒤의 지도자가 아니다.그가 만들 신당은 민주당 의원들의 대거 합류로 원내 제2당이 확실하다.그는 신당의 총재를 맡을게분명하다. 그의 복귀로 정치권은 민자·민주·자민련과 신당 등 4당체제로 재편된다.그러나 민주당은 남은 식구들간의 당권경쟁으로 한동안 자기위치를 찾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3당구도로 봐야할 것 같다.이는 곧 「신 3김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당분간은 DJ(김이사장)와 JP(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연대한 가운데 김영삼대통령에게 맞서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김이사장은 이날 회견에서도 『향후 자민련과의 연대를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또 『개인적으로 대통령제를 지지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나타날 민의를 겸허히 수용,필요하면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고 내각제 개헌문제에 관해 한자락을 깐 것도 자민련을 의식했기 때문이다.실제로 지역적 기반에 의존해 온 김이사장으로서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할 때 내각제가 보다 현실성이 있다. ○내각제 무력화 시도 그러나 권력구조에 대한 김이사장의 선택은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자신의 목표대로 내년 총선에서 민자당을 제치고 신당이 원내 제1당이 된다면 야권의 대표주자로 김대통령과 정국주도권을 양분하는 양김시대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자연스레 권력구조에 대한 선택권도 김이사장의 수중에 떨어질 공산이 커지게 된다.이에 이르기까지 DJ와 JP 두사람은 줄기차게 자신들의 실체 인정을 요구하며 내각제 개헌문제를 적절히 활용할 것 같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이들의 요구에 응할 조짐은 아직 없다.오히려 대대적인 세대교체 공세로 두사람의 무력화를 꾀할 전망이다.좋든 싫든 세대교체와 내각제 개헌은 이제 정치권의 핫이슈가 돼 버린 셈이다.당연한 결과로 정국은 긴장의 연속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신당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우선 지역당의 한계극복이 문제다.사당의 부정적 이미지도 강하다.까닭에 「전국정당」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다.8월말로 창당일정을 늦추면서 잔류 민주당과의 통합을 내심 바라고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70%에 가까운 비난여론도 신당의 행동반경을 제약할 요소로 꼽힌다. 마지막 대장정의 길을 떠난 DJ가 과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김대중씨 회견문 요지 오늘 저는 참으로 고뇌에 찬 마음과 죄송한 심정으로 저의 정계복귀에 대한 의사를 국민 여러분께 밝히는 바입니다.1992년12월19일 국민 여러분께 드린 정계은퇴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정계은퇴시 김영삼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고 그 분의 국정운영을 편안하게해 드리고자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2년반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입니다.이 점은 구구히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준엄한 국민적 심판으로 명백해졌습니다. 민주당이 걸어온 상황을 보면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 왔을 뿐 아니라 김대통령으로부터 대화의 상대로 조차 취급받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민주당이 견제와 비판의 기능을 제대로 했던들 오늘처럼 현정권이 오만에 빠져서 국정을 이토록 그르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민주당내 사정을 보면 당은 「한지붕밑 아홉가족」 같은 파벌양상을 보여왔습니다.당은 없고 파벌만 있습니다.당대표의 지도력부재,나눠먹기식 당운영,파벌과 금력을 동원한 당권경쟁으로 당은 절망적인 혼란과 기능마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은퇴 당시 기대했던 대로 정부와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었다면 제가 다시 정계에 복귀할 엄두도 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저는 오랜 시간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습니다.그 결과 비록 지금은 비판을 받더라도 당과 국정을 바로잡는데 저의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는 것이 「행동하는 양심」을 평생의 신조로 살아온 제가 택할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많은 국민들과 당원들이 왜 당내에서 개혁을 하지 않고 신당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의아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현재 민주당으로서는 당내개혁이 전혀 불가능합니다. 첫째,현 민주당지도부는 당을 잘못 이끌고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둘째,지금 상태로 전당대회를 치른다면 또다시 6천여명의 대의원을 상대로 파벌이기주의와 금력에 의한 매수가 판을 칠 것은 분명합니다.셋째,참신하고 역량 있는 인재를 영입하여당의 체질을 개선하고 정책을 발전시켜야 하지만 지금의 나눠먹기식 정당의 현실로서는 이것이 전혀 가망이 없습니다. 저는 지난 40년동안 많은 시련을 무릅쓰고 민주화와 평화통일에 노력해 왔습니다.이제 그 노력의 완성을 신당을 통해서 이룩하여 국민 여러분께 마지막 봉사를 하고자 합니다.
  • 국민과의 약속 안지킨 정치인(사설)

    김대중씨가 민주당소속 자파모임에서 무조건적 정계복귀를 기정사실로 공식화했다.정치재개 여부는 자신이 판단해서 할 일이지만 어제 김씨의 발언내용을 보면 국민을 납득시킬만한 명분과 이유를 발견하기가 어렵다.오히려 국민과의 약속위반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사고방식을 발견하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김씨는 약속위배를 변명하지 않겠다면서도 국정의 혼란과,민주당의 마비된 정당기능을 그대로 바라만 볼 수 없어 일시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겠다고 밝혔다.그의 말대로 민주당이 나눠먹기식 정당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정당이라면 지금까지 당운영의 중심이었던 대리체제나 최대계보의 실질적 수장으로서 책임을 느낄 일이지 그것 때문에 정계은퇴약속을 뒤집을 구실로 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지금의 국정은 평가하기 나름이지만 어느 누구도 헌정의 위기상황이나 민주주의 자체가 심각한 파괴위협에 직면해 있다든지 하는 위급한 국면이라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의 말대로 국정의 마비라고 인정한다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정최고책임자로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책임하에 해결할 일이지 선거에서 신임을 받지 못해 정계은퇴를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김씨에게 위탁된 일은 아니다. 김씨는 86년 11월 직선제개헌이 되면 사면복권이 되더라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것을 파기하고 그후 두번이나 대선출마를 한 바가 있다.92년의 은퇴약속은 세번의 출마에서 그 자신도 승복한 패배로 나타난 국민의사를 받아들인것으로서 정치적으로 준수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지방선거가 복귀의 검증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그자신이 심판대상이 된 대선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 정치의 기본은 믿음이며 정치인의 자격은 도덕성이다.스스로 인정하듯이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한 김씨의 번복선언은 정상적인 의미의 「정치파괴」행위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정치의 바탕인 국민과의 약속과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어떤 정치를 재개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한번 더 심사숙고하기를 권고한다.
  • 뜨거운 설전/DJ­“구당의 결단”/KT­“사리의 표출”

    ◎김대중씨 내외연모임 발언/나눠먹기식 당 운영 더이상 안돼 지난 92년12월19일 정계은퇴시에는 정치를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사실 (신당 창당으로) 정치를 재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못지키는 것이 된다.그러나 이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 민족의 운명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고 여야가 자기 몫을 다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 겠다고 생각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역감정과 용공음해로 당선됐지만 축복해 주었고 영국으로 떠나면서도 잘하기를 바랐다.영국에서 이기택총재에 대해서도 아낌 없는 지원과 성원을 했다.그러나 현실은 배신감마저 느끼게 했고 이는 나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한다. 국정현실은 큰 혼란에 빠져있고 개혁 마무리도 실패했으며 권력은 보복차원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제 우리당은 당권만 생각하고 당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나눠먹기식 정당으로 당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정당이 됐다.이러한 모습의 정당 총재를 과거에 보지 못했고 지도부도 이를 묵인한 책임이 있다. 우리당은 지방자치 단체장을 책임지고 관리,지원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전유권자의 57%인 20·30대의 지지를 정착시키는 노력도 시급하다.안정 희구 보수세력들이 이번 선거에서 지지해 주었는데 차제에 중산층을 끌어안는 모습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많은 여성유권자들의 지지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개발도 시급하다.특히 통일문제는 우리당이 그간 각고의 노력으로 추진해왔다.경제와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인 21세기에 대처하는 당개혁도 필요하다. 비록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건을 버리고 일시적으로 비난을 받더라도 국정의 혼란과 마비된 제1야당의 정당기능을 그대로 바라만 볼 수 없다. 정기국회부터 당이 일대 개혁,잘하는 모습으로 심기일전하면 서울과 경기 호남을 축으로 다음 총선에서 제1당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6개항의 개혁결의가 당에서 수용되고 나눠먹기 체제의 지양이 보장되고 당개혁의 걸림돌인 이총재의 사퇴가 확보되면 당내 개혁으로 갈 수 있다. ◎이기택 총재기자회견 내용/당 깨라고 국민이 표 준것 아니다 6·27지방선거는 민주당에 지역감정 극복과 수권정당 건설,정권교체신화의 목표를 향한 새출발을 요구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은 신당창당을 통해 당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으며 나는 이에 한없는 비애를 느끼고 있다. 총재인 내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8월 전당대회를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순수집단 지도체제를 요구한 인사들이 지금에 와서 신당의 명분으로 당운영을 문제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총재직 사퇴요구는 정치적 음모다.나는 이런 음모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총재사퇴요구는 먼저 김이사장이 정계복귀 의도를 포기하고 신당창당을 백지화할 때 당의 개혁을 위한 분위기 조성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다. 나는 김이사장의 정계복귀에 반대한다.그의 은퇴선언은 정치적·역사적 의미와 무게가 실린 것이다.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김이사장 스스로가 정권교체를 위해 내린 결정이며 국민들은 이를 양 김씨의 은원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의 물꼬를 여는 계기로 인식했다.김이사장이 국민적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다시 뛰겠다면 정도를 걸어야 한다.형체도 없는 신당논리를 내세워 자신이 만든 당을 때려 부수려 해서는 안된다.국민들이 당을 깨라고 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국민들은 신당창당을 「정통야당의 송가」라고 일컫고 있다. 내각제 개헌론은 국민의 바람과 동떨어진 소모적 정치논쟁에 불과하며 국론분열의 상처만 안길 뿐이다.일개 정치인의 이해 때문에 국민들이 피흘려 얻은 대통령직선제를 바꿀 수는 없다.아울러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역할도 바뀌어야 한다.신진대사가 막히면 사회는 정체되고 퇴행할 뿐이다.지역등권론 역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으로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서는 안된다. 나는 한평생 야당의 길을 걸어오면서 이 순간까지 국민앞에 떳떳하다.앞으로 성패를 떠나 원칙과 합리를 바탕으로 정치의 정도를 걷겠다. ◎김대중씨의 “정치재개” 선언을 보고/「삼풍」처럼 무너진 정치신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김대중씨의 신당창당 및 정계복귀에 관한 기사가 연일 언론의 지면을 덮고 있다. 하나는 사회적 사건이고 또하나는 정치적 사건이다.그러나 두 사건 모두 국민에게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슬픔과 비통속에 온 국민이 잠겨 있는 동안 여의도 정치무대에서는 삼풍백화점의 붕괴 못지않게 「신뢰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다. 김대중씨의 정계복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정계은퇴도 개인의 자유다.지난 92년12월19일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요,법적으로 규제한 것도 아니다.그렇듯이 개인의 자유는 존중을 받아야 한다.그러나 정치인의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뒤따른다.그분이 언급한 「장사하는 사람이나 글쓰는 사람」과는 다르다.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 진지하게 정계은퇴선언을 하던 그 모습을 TV로 지켜본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그 분위기는 장엄하기까지 했다.눈시울을 붉힌 사람도 있다고 한다.많은 국민은 명예의 선택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그분의 정치적 약속과 시중의 장사하는 사람의 약속은 그분이 장사꾼이 아니라는 차이만큼 클 수밖에 없다. 먼저 국민은 궁금하게 생각한다.왜 박수를 받았던 정계은퇴선언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일까.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을 차버리고 왜 신당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명약관화한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본인의 설명을 듣고 싶어한다.아태재단이 이 나라 21세기를 위해,그리고 통일한국을 위해 진정 준비하는 세계적 연구기관이 될 것이라는 그분의 말에 대한 믿음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리라.우리사회에도 한 분쯤은 정계의 대원로로서 존경과 신망을 한몸에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가 가슴에 묻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그분의 언행에 대한 내용과 과정이 어떠했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주위사람의 말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김대중씨의 정계복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당원으로서 당을 지원할 뿐」이라는 그분의 말씀과 민주당 대변인의 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차라리 지방선거를 그분의 정계복귀에 대한 평가라고 미리 규정했더라면 궁색한 변명이나 여론의 날카로운 질책을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고 또한 매우 떳떳했을 것이다. 이제는 어쩌랴.지방선거를 문민정부의 중간평가라고 몰고가서 압승한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체질을 정비하기는커녕 한사람의 「야당」을 추스리지 못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는 「과감한 결단」을 함으로써 『국민쯤이야』하는 대접을 국민에게 주고 있다. 그분이 대정객으로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쟁취한 만큼 아직도 그러한 열의가 살아 있다면 8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원의 결정을 묻는 절차적 민주주의에도 모범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언제까지 이 나라에서 줄서기정치를 강요하고 지역할거주의를 볼모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할 것인가. 분단된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 앞장섰던 그분이 지역등권주의라는 신조어로 동서를 또 쪼개려는 참뜻은 무엇인가.상황과 여건에 따라 정치철학과 주장이 뒤바뀐다면 이 나라에 비전 있는 정치는 언제나 이루어질까. 민주주의 지도자로서 명예롭게 남길 원했던 뜻있는 국민은 삼풍백화점 붕괴만큼이나 신뢰가 무너지고 있음을 가슴쓰리게 생각하고 있다. 몇 푼 더 벌어보겠다고 백화점 문을 못닫게 한 삼풍백화점 경영진이나 지방선거 승리를 여세로 멀쩡한 당을 버리고 새살림을 차리겠다는 것이나 과거시대가 남긴 일방통행적 오만과 독선의 끈질긴 유산인가.
  • 분당 임박 민주당 각파 움직임

    ◎“약속 깬것 변명 않겠다”… 비난 감수 각오­김대중씨/중도파에 잔류 설득… 당 수호대회 준비­이총재/그룹별로 합동회견… 분당 막기에 부심­중도파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13일 정계복귀를 공식 선언하고 이기택총재와의 결별의사를 분명히 한 반면 이총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분당불사 의지를 강조,민주당의 분당이 본격적인 초읽기에 들어갔다.이에 맞서 이총재의 사퇴 촉구와 신당창당에 반대하는 「중도파」들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가고 있다. ▷김대중 이사장◁ ○…김이사장은 이날 상오 범동교동계 의원 모임인 내외문제연구회 원내이사회를 소집,정계복귀를 선언한 데 이어 낮에는 신당에 소극적인 중도파 의원들과 오찬을 갖고 신당참여를 설득했다. 57명의 소속의원중 51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 삼환까뮤빌딩 사무실에서 열린 내외연 이사회에서 김이사장은 『사실 정치를 재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못지키는 것이 되지만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담아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김이사장은 이어 『비록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건을 버리고 일시적으로 비판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국정혼란과 마비된 제1야당의 기능을 그대로 바라만 볼 수 없다』고 피력했다. 김이사장이 정계복귀의 뜻을 밝히자 참석자들은 김인곤의원의 제청에 따라 정계복귀를 박수로 결의했으며 김봉호 최락도의원등은 『창당은 빠를 수록 좋다』며 김이사장에 대한 지지를 거듭 다짐했다.참석자들은 이어 이기택총재의 사퇴 요구서에 전원 서명한 뒤 회의를 마쳤다.김이사장측은 이날 하오 현재 모두 62명의 소속의원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김이사장은 이어 이날 낮에는 중도파의원 12명을 서교호텔로 불러 신당참여를 설득했다.이철 장석화 장기욱 제정부 원혜영 유인태 김충현 문희상 양문희 하근수 조순형 박은대의원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이사장은 『이총재는 이제 자기반성을 하고 당을 나가야 한다』고 결별의 의사를 분명히 했다.참석자들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있지만 지금 상태에서 무사히 마칠 수 있겠느냐』고반문했다. 김이사장은 이어 『이총재가 백의종군한다면 15대 국회 때 전국구를 주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참석자의 다수는 또다른 내분 가능성을 들어 이에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김이사장은 이총재의 사퇴거부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서명작업을 계속하면서 소속의원들과의 접촉을 통해 신당참여를 권유한 뒤 15일 신당추진회의를 통해 창당을 확정한다는 방침. ▷이기택 총재◁ ○…이날 상오 국회 총재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소 비감한 어조로 김이사장의 퇴진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신당창당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이총재는 『총재로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전당대회를 통해 하면 되는 것』이라면서 『신당은 김이사장 자신의 권력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라고 반박했다.이총재는 이어 『정치지도자의 약속은 붓을 꺾은 시인이 다시 시를 쓰는 경우나 은퇴한 가수가 다시 무대에 서는 것과는 다르다』고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비난하고 『정녕 정치를 다시 하려면 국민들에게 정계복귀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지자기가 만든 당을 깨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총재의 기자회견에는 측근인 강창성·장준익 의원만이 배석,초라해진 그의 위상을 드러냈다. 한편 이총재는 기자회견에 이어 하오에는 서울의 한 호텔에 머물면서 측근의원들을 중심으로 중도파를 상대로 한 잔류설득작업과 함께 향후 대응방안을 검토했다.이총재는 김이사장이 창당방침을 선언할 것으로 보이는 15일을 전후해 사조직인 통일산하회 소속 원외지구당위원장들을 소집,「당수호결의대회」를 열어 김이사장에 대한 공세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중도파◁ ○…김이사장과 이총재의 정면충돌로 분당이 가시화하자 이총재의 퇴진과 창당작업의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전날 개혁모임 소속의원 8명과 노무현부총재등이 이총재의 사퇴와 김이사장의 창당작업 중지를 요구한데 이어 13일에는 김원기·조세형·김근태부총재등이 가세했다. 김·조 두 부총재는 이날 아침 국회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이총재는 최근 당의 위기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당을 살리는 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책임있는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이들은 또 김이사장의 창당작업에 대해 『통합야당인 민주당에 분당·분열을 초래할 위험이 있으므로 중지돼야 한다』면서 8월전당대회에서 지도체제와 지도부 구성등 당 개혁문제를 논의할 것을 주장했다. 김근태 부총재도 김희선·방용석 당무위원등 「통일시대 국민회의」출신의 지구당 위원장들과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이총재 퇴진과 창당작업 중지를 요구했다.이밖에 중앙당의 중하위당직자 28명도 성명을 내고 이들의 요구에 동참했다.
  • 워싱턴의 북경정책 저변/전직 미 외교관 레빈 분석

    ◎뿌리깊은 미의 대중 오해 전 미국외교관이자 아시아협회 홍콩지국장인 버튼 레빈은 최근 미국이 중국을 오해한 데서 대중국정책이 잘못돼왔다고 비판하고 중국 인권문제 개선요구도 경제적 관계가 우선돼야 한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서 지적했다.다음은 그의 기고요약. 지난 세월동안 미국은 줄곧 중국에 대해 잘못 이해해왔다. 이같은 오해는 지난 19세기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당시 중국내 미국의 활동은 주로 선교와 관계가 깊었다.이후 미국인은 자신들을 중국에 대한 시혜자로 여겨왔다.미국은 중국에 종교·의료적 도움,교육·경제적 및 기술적 지원 등을 주었을 뿐 아니라 영국·프랑스와는 달리 중국의 영토를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워싱턴은 중국을 구하기 위해 일본과 싸우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은혜의 보답을 바라다가 실망만 갖게 됐다.사실 중국에서 일어난 첫 공식적 시위는 지난 1905년 배타적인 미국의 이민정책을 반대한 반미시위였다. 국민당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이 49년 권력을 장악했을 때 미국의 반응은 일종의 불신이었다.미국에 신세진 국민이 어떻게 공산주의로 돌아설 수 있는가.이에 대해 미국이 생각해낸 정답은 다음과 같다.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국민이 아니라 인민을 속인 반역적인 지도자일당이라는 것. 이 엉터리 같은 생각은 그후 미국의 국내및 국외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이는 매카시즘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미국은 중국의 지도자들을 악마로 만듦으로써 전략이나 외교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중국을 소련의 앞잡이로만 보는 워싱턴의 시각,공산주의정부는 인민의 대표가 아니라는 미국의 불신 등은 현대 중국역사의 역동성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중국은 베트남에서 미국이 겪은 불운의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워싱턴측은 베트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중국 팽창주의의 일환으로,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을 중국의 시녀로 보았다.미국은 베트남을 「민족해방」전쟁을 통해 세계를 제패하려는 중국의 시험장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미정부가 이처럼 무시무시한 혁명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중국은 사실자신의 나라도 제대로 통치하지 못했다.대약진운동·문화혁명을 통해 자국에 생채기만 냈을 뿐이다. 미국사회에 혼란을 일으켰던 베트남은 미국이 중국을 오해함으로써 낳은 비극적 결과를 여실히 보여주었다.이는 미국인이 중국을 판단하거나 대응함에 있어 겸손하고 용의주도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중국의 인권문제를 취급하면서 또 중국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89년 천안문사태의 유혈진압은 끔찍했다.워싱턴이 중국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북경을 비난한 것은 옳았다.반면 곧 조지 부시 대통령이 고위급 비밀특사를 중국에 보내 양국간 관계에는 실질적으로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밀담을 나누게 한 것은 큰 실수였다. 당시 미 정책입안자들은 천안문사태 이후 일어난 일들이 모택동주의자들의 복귀가 아니라 중국정부에 의해 잘못 취급된 불행한 일이었으며 중국내에 개방사회를 향한 움직임과 개혁이 재개됐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냈어야 했다. 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한 뒤 그가 중국외교정책의 초석으로 인권문제를 삼은 것도 현실을 잘못 이해한 본보기다.클린턴 행정부가 인권문제에 집착하고 있을 때 중국인은 지난 50년동안 어느 정도 나아진 자유와 높은 생활수준을 즐기고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무역거래에서 최혜국대우를 해주지 않겠다고 위협하면서 큰 총을 꺼내 중국에 들이대며 경고했다.『인권문제를 개선하라.그렇지 않으면 쏘겠다』그러나 북경은 개선하지 않았고 워싱턴은 총을 내렸다.중국은 이미 이를 알고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인권문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은 미국을 과민하게 만들었으며 이제 미·중관계를 괴롭히는 사안이 됐다.인권문제에서 퇴각한 미국의 굴욕감은 복수심에 불타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의 경제적 관계가 중국의 인권문제를 개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중국을 민주주의로 전환하게 하는 것은 미국 사업가들과의 접촉이 아니다.미·중 경제관계는 중국의 삶에 수천명의 홍콩거주 중국인과 대만인을 끌어들인다.이들은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중국에 살거나 방문할 것이고 무역을 증진시키려 할 것이다. 이들은 힘있는 전보세력이다.이들은 다른 사상·행동·가치 등을 심게 되며 권위를 파괴한다.가라오케·디스코 등 쓸모없는 것을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이는 자유를 넓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의 인권상황은 즉시 개선돼야 한다.죄수에 대한 고문을 비롯해 심각한 학대,즉결사형집행 등이 비일비재하다.그러나 중국은 이제 겨우 자급자족 경제상태다.모든 사람이 살기 위해 동물처럼 일하고 있다.산업혁명 이전에 서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태가 지배했다. 자급자족의 낮은 경제상태에서는 개인의 존엄에 관한 관심은 별로 없다.사회적인 부가 증가해 교육이 확대되고 여유가 생겨야 이런 생각이 싹튼다.그때 가서야 개인이나 국가가 존경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국가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 「남한 쌀」 수용은 북한변화 의미/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칼럼)

    김일성 사후 1년동안 북한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정리해보면 4가지의 특기할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첫째는 김정일이 북한의 정치,이념적 최고위직인 주석직을 승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둘째는 북한과 미국의 접근이다.그리고 셋째는 북한이 남한에 쌀원조를 요청한 것.넷째로 북한지도부가 새 경제정책을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많은 관측통들은 그의 아들이 즉각 권력의 공백을 메울 것으로 생각했다.후계문제는 신속히 해결하는 게 좋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의례적인 관행이다.어떤 국가든 분명하고 정통성 있는 지도자를 갖는 게 중요하다.그렇지 않으면 그 국가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갖은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권력이란 잡아야될 사람이 빨리 잡지 못하면 누군가 눈독을 들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국가에서는 권력승계가 법절차에 따라 공개리에 이루어진다.그리고 아주 신속히 처리된다.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후임대통령은 불과 수시간만에 취임했다.반면 전체주의국가에서는 이것이 비밀리에 신비스런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하지만 이 경우에도 시간적으로는 민주국가보다 더 빨리 이루어진다.소련에서 안드로포프 사망 뒤 고르바초프의 당서기장 승계는 1시간 반만에 결정됐다.이런 권력승계과정의 신속성은 역사적으로 중국·폴란드·브라질·모로코등 여러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부모 상중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전통을 이유로 이와 전혀 다른 행동을 취했다.그러나 이 이유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첫째 진정으로 부모 애도를 국사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최고지도자 자질에 문제가 있다.실질적으로 김정일은 부모 애도를 하면서 국가최고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당·정부기구도 그가 장악하고 있다.「이상한 애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김일성 부자는 한국적인 전통가치보다도 권력을 더 중하게 생각한 사람들이다.무소불위의 권력을 확보키 위해 김일성은 모든 정적,심지어 친구까지도 제거했다.더구나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기까지했다.온갖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권력을 겸양하는 사람이 김정일 자신인가.아니면 주위의 어떤 세력이 이를 방해하고 있는가.있다면 그 세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난 1년간 북한에서 일어난 일들 중 김정일의 주석직 미취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미국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이다.최근 필자의 친구 한사람이 북한방문을 위해 모스크바의 북한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했다.그러면서 그는 여권에 미국방문 스템프가 여러번 찍혀있는 게 마음에 걸려 북한대사관의 직원에게 비자발급에 문제가 없겠느냐고 문의를 했다고 한다.그랬더니 그 창구직원은 반대로 미국을 자주 방문한 것은 북한비자를 얻는 데 오히려 도움을 준다고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지금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중요한 외교성과로 생각하고 있다.미국과의 관계개선은 안보면에서도 유익하고 미국의 경제,기술원조를 얻을 수 있게돼 국내정치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소득으로 간주하고 있다.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회생기회를 잡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있다.북·미 두나라가 물밑거래를 통해 한국의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까 우려하는 것이다.러시아에도 북·미거래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정치인들이 많다.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미·북거래 때문에 손상을 입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물론 나는 이런 우려들을 불필요한 기우로 생각한다.미·북 관계개선은 한국·러시아 모두 환영할 일이다.양국의 관계개선은 한반도의 긴장완화 뿐 아니라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고 이들을 보다 개방되고,신뢰할 수 있는 그리고 분권화되고 외국의 사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한국측에 쌀을 원조해달라고 한 일도 이런 조류변화의 한 결과로 보고 싶다.물론 쌀원조 요청은 일차적으로는 북한의 식량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그러나 북한경제가 어려운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그러면서도 그들은 지난 수십년간 남한에 경제원조를 요청한 예가 없었다.오히려 북한정권은 노동자들의 기본 생필품을 공급하는 데 있어 자기들이 남한보다 훨씬 앞서있다고 선전하는 데 급급해왔다. 따라서 북한정권으로서는 남한에 쌀원조 요청을 하는 일이 큰 패배를 인정하는 일일뿐 아니라 수치이고 사회주의 노선을 배신하는 셈이된다.이전 같았으면 북한당국으로서는 인민들을 굶겨죽게 만들지언정 남한에 쌀원조 요청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북한은 남한에 손을 벌렸다.이는 북한 내부의 변화를 뜻하는 것일 뿐 아니라 북한의 외교노선에도 변화를 몰고올 전조로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남한에 대한 쌀원조 요청은 북한의 일반적인 경제개혁 노력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북한정권은 이미 시장경제 개혁을 시작하기로 정책결정을 내린 것같이 보인다.물론 그 과정은 신중하고 천천히 진행될 것이다.이는 이들이 옛소련,동구의 부정적인 예를 잘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개혁과정에서 절대로 국가의 통제력을 늦추지는 않으려고 할 것이다. 북한이 경제개혁을 시도하면 외부세계도 이를 크게 환영하고 지원할 것이다.지금의 북한지도부가 어떤 의도를 진짜 마음속에 품고 있든 일단 개혁이 시작되면이 사회는 보다 개방적이고 보다 정상적인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이는 남북한의 성공적인 통일에 분명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 「6·27」 이후 지방자치 발전의 길/전문가 제언

    ◎“중앙­지방 상호보완관계 정립부터”/주민 적극 참여… 실질 자치권 확립 노력 필요/노융희 서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제 정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치권의 실질적인 확립이다.세계화·지방화시대에서의 지방화는 곧 분권화의 촉진을 의미한다.각종 법률속의 중앙독점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재정·인력·사무기능을 분권화하려면 관련법부터 고치거나 새로 법도 만들어야 한다.청주시 의회가 행정공개조례를 스스로 만들어 적법하다는 판례를 만든 것처럼 지방정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지방자치의 기본 방향은 돈과 사람과 일의 운용을 지방에 맡기고 지역 주민은 감시하는 체제가 돼야 한다.중앙정부와 협조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지역의 저항세력이 많다는 것을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세워서는 안된다.다양성으로 봐야하지 혼란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이해관계를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다양한 의견에서 통합된 의견을 뽑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그러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참여 폭을 넓혀야한다.단체장과 의원들은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줘야한다.사업을 임기중에 성급하게 끝내려 해서는 안된다.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의 장의 소속 정당이 달라서 마찰이 빚어지는 것은 자질이 낮은 때문이다.지방행정가들은 시야를 넓혀야한다.가까운 장래에 세계의 판도가 달라질 것에 대비해 지방자치단체는 환경이나 경제문제 등 모든 행정 분야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지를 생각해야한다.외국지방정부와 직접 교류해야 하고 기업과 주민들도 마찬가지다.이렇게 되면 지방자치가 정착되기까지의 과도기는 1∼2년이면 족할 것이다. ◎홀로서기엔 한계… 정당·정치대결 버려야/김익식 지방행정연 지방행정연구실장 지방선거가 끝나고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한 마디로 인물보다는 정당에 좌우된 선거였고 정책대결 보다는 지역감정이 지배한 선거였다.지방선거라기 보다는 총선 또는 대선의 전초전 같은 선거였다. 지방자치제의 의미를 역설해 온 처지에서 볼 때 이번 선거의 결과가 지자제의 앞날에 그리 긍적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무엇보다도 서울시에서 시장뿐 아니라 대부분의 구청장 또한 특정 정당의 후보자들이 대거 당선 되었다. 중앙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집권 여당과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강력한 서울시의 시정 및 구청을 담당할 정당이 서로 상반됨으로써 앞으로 중앙정부와 서울시 사이의 상당한 알력과 마찰이 있을 수 있다. 뿐만아니라 나머지 14개 시·도에서도 지역주의에 입각한 정당별 지역분할구도가 형성됨으로써 중앙과의 갈등이 예상된다.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특히 광역자치단체)간의 원만하면서도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인가가 지방자치발전의 일차적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자체단체장이 직선되었다 하더라도 현재 자치단체의 재정형편은 그리 썩 좋은 상태가 아니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여전히 중앙의 재정적 지원을 필요를 하고 있다.물론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자구노력이 앞으로 활발해 질 것으로 생각되나 재정 상태가 워낙 불량한 단체들은 홀로서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권한다툼 지양… 국가경쟁력 손상 막도록/조병세 총리정무비서관 이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관계는 이제까지의 「지시」와 「이행」의 관계가 아닌,지장자치단체의 「주체적인 행정」과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며,지역개발에 있어서는 민간의 참여가 더욱 중시되고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형평성이 더욱 강조되며,그 형태도 균형개발 내지는 정주권개발로 변화될 것이다. 또한,선거에 의해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이 행정을 맡게 되어 신선하고 참신한 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과거 관료출신과는 달리 행정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하여 시행착오가 우려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지자체는 지역경제권의 형성을 위해 지역내 자원·자본·인력 등 각종 경제요소를 우선순위에 따라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자체계획을 수립·추진해야 할 것이며,지역주민의 소득원 창출과 고소득화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발맞추어 정부에서는 교통·지역개발기능 등 경제분야와 주민복지·교육기능 등 사회분야의 권한을 단계적으로 이양하고,과거와 다름없이 지방자치단체를 적극 지원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간의 분쟁과 갈등에 대한 조정역할을 계속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우리는 지방자치가 자칫 지역이기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중앙과 지방·지방과 지방·지방단체장과 의회간의 갈등으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관계는 「상호 권한다툼의 관계」가 아닌 「상호 협력·지원관계」로 발전시켜야 하며 서로 「화합」과 「국리민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재정자립 위한 자체 재원확보 노력 긴요/원윤희 서울시립대 교수 이번 선거 결과는 한국정치의 현실적인 세력구도가 확인된 결과라고 생각한다.또한 지금까지의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했던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이 앞으로는 야당의 실질적인 협조를 필요로 하게 됐다. 직선 단체장은 중앙정부와의 관계에 있어 과거의 임명직 단체장들과는 달리 독자성을 추구할 것이다.그 과정에서 마찰을 빚을 때가 있을 것이다.그러나 현실적으로 법령상의 제약이 많고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이 중앙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 자치단체들은 오히려 지역발전을 위해 중앙정부와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각 자치단체들은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는 많은 재원과 자주적인 권한이 뒤따라야 한다.중앙재정의 과감한 지방이양과 국가 전체적인 시각에서의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지방자치란 지역의 일은 지역 주민의 관점에서 해나가는 것이 효율적이고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념에서 출발한다.따라서 지자제를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선호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최소한의 공공서비스 공급에 필요한 재정능력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이를 위해 중앙재정의 지방이양 이외에 각 자치단체의 자체적인 재원확보 노력이 요구된다.
  • 여“국정안정” 야“중간평가” 강조/여야수뇌부 「6·27필승」회견

    ◎혼전지역 돌며 마지막 득표전/16일간 선거운동 마감 여야는 6·27 4대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26일 당수뇌부의 기자회견을 통해 승리를 장담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혼전지역에 대한 수뇌부 지원유세등 마지막 총력전을 전개한 뒤 16일동안의 선거운동을 마감했다. 민자당의 이춘구대표는 이날 상오 여의도당사에서 가진 회견에서 『야당의 지도자들은 명백하게 이번 선거를 정권다툼의 출발점으로 몰고갔다』고 비난하고 『선거과정은 비록 크게 왜곡됐으나 우리는 반드시 지방자치의 기틀을 튼튼하게 다지고 정착시켜 나갈 참된 지역일꾼을 뽑아야 한다』고 민자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대표는 특히 『이번 선거가 중앙정치의 연장이 되거나 정권싸움으로 치달아서 안된다는 것은 온 국민의 한결같은 요구였다』고 지적하고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요구는 실현되지 못했고 야당지도자들에 의해 선거의 참된 의미는 훼손되고 오염됐다』고 개탄했다. 이대표는 『이러한 정당들이 지방행정기관을 장악,대권경쟁에 이용할때 주민생활안정과 지역발전은 물론,정치·경제·행정등 국정 전반에 걸친 혼란을 초래케 될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이기택총재도 기자회견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현정권을 심판하는 중간평가』라고 주장하고 『국민들은 모든 지역에서 고르게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켜 정권교체의 발판을 마련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총재는 『이번 선거결과가 지역분할구도를 낳게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면서 『선거운동기간중 현정권이 부정과 타락,용공음해와 같은 구태를 재현하고 있는데 대해 깊은 분노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자민련의 김종필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선거는 김영삼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므로 2년 4개월동안의 치적에 대해 엄히 평가해 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 본격적인 전쟁준비(6·25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8)

    ◎새로 밝혀진 사실들/김,방중전에 “6월말 공격개시” 확정/조작논란 「3단계 작전」 6월 15일 수립 한국전쟁 발발직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번 8회에는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이 포함돼 있다.특히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정부에 넘겨준 문서에는 19 50년6월 상황을 담고 있는 문서가 거의 빠져있는 사실을 감안할때 긴박한 순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번 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중요한 새로운 사실들중의 하나는 김일성이 50년5월중순 모택동을 만나기위해 중국을 방문하기전부터 공격개시일을 6월말로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이는 남침에 임박해서야 전쟁개시일을 7월에서 6월로 앞당겼다는 그동안의 일반적인 주장과 해석을 뒤엎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또하나의 사실은 6월15일에 확정된 3단계작전이다.그동안 오랫동안 조작논쟁을 불러일으켰던 3단계작전이 진실임이 밝혀졌다.일부에서는 전쟁후 한국과 미국에 의해 공개되어 남침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된 3단계작전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있었다.그러나 3단계작전은 지금 워싱턴에 보관중인 러시아어로 된 인민군 작전명령서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이번 회의 내용으로 볼때 위싱턴에 있는 자료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으며 6·25는 남침임이 결정적으로 증명됐다. ◎작전개시직전 국지전서 전면전으로 전환/김일성,50년 5월12일 방중전 공격일 소 통고/북­소 49년 6월4일 무기지원 「특별협정」 체결 전쟁개시에 대한 3자간 합의가 마무리되자 막바지 전쟁준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전쟁준비의 두 축은 소련과 북한이었다.하지만 김일성의 전쟁준비는 이미 1년전부터 본격화됐다.소련에 대한 무기지원요청이 이어졌고 소련역시 이를 충실히 도와주었다.김일성은 49년5월1일자로 추가 무기지원을 요청하는 전문을 스탈린앞으로 띄웠다.그는 49년5월까지 기계화부대 증설을 비롯,공군을 제외한 모든 군의 개편문제를 마무리짓고 9월까지는 공군개편을 끝내고 싶다며 추가무기지원을 요청했다. ○추가 무기지원 요청 슈티코프대사가 보낸 이 전문에 의하면 김일성 ⓛ2개 탱크연대를 거느린 탱크여단 ②독립 탱크연대③각 사단에 박격포부대 추가창설 ④공군사단 ⑤엔지니어링 대대 ⑥박격포 여단의 창설을 건의했다.이와 함께 장문의 필요한 무기목록을 덧붙였다.스탈린은 이 요청을 90%정도 집행해 주었다.이를 위해 북한·소련 양국은 49년6월4일 『소련은 북조선정부의 무기 및 군사기술장비 지원요청을 전부 만족시키는 데 동의한다』는 요지의 특별협정을 체결했다.이 특별협정에는 북한에 제공될 소련무기 목록이 첨부됐다.주요목록은 다음과같다. ▲공군장비:IL­10기(30대) WIL­10기(4대) YAK­9기(30대) PO­2기(4대) YAK­18기(27대) YAK­11기(6대) ▲기갑장비:탱크 T­34(87대)장갑차 BA­64(57대)장갑차 SU-76(1백2대)모터사이클 M­72(1백22대) 이외에도 소련은 각종 포탄·대구경총·자동화기·저격용 소총·전함·상륙정·지뢰·도하장비·무전기·전화선·어뢰정·대잠함을 비롯,북한이 요청한 탄약 일체를 인도키로 약속했다.이들 무기원조에 대해 북한은 쌀을 비롯한 곡물과 광물로 갚기로 동의했다. 김일성은 49년12월말 슈티코프 대사를 통해 50년도분 추가무기지원 1억1천2백만루블어치를 소련정부에 요청했다.상환방법은 보석류 및 비철금속으로 갚는다고 했다.슈티코프 대사가 50년1월1일자로 본국에 보낸 전문에 나타난 추가요청내역은 다음과 같다.1개 모터사이클연대 창설,기존 1개 보병여단을 사단에 편입시키고 무기보강,최근 창설한 해군보강을 위한 전함 2척. 50년3월14일 김일성은 51년분 차관을 50년도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모스크바에 요청했다.전용목적은 무기·탄약 및 군사기술장비 구입이었고 필요한 무기목록을 전문 뒤에 별첨으로 보냈다.육해공군의 각종장비,탄약을 망라,수백종에 이르는 물품이었다.김일성은 전문에다 별도로 『북조선인민공화국정부는 소련정부가 신생국 조선공화국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요청한 물품을 조속한 시일내에 보내줄 것을 기대합니다』라는 서신을 첨부시켰다.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50년4월3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은 남조선에서 빨치산으로 활약하던 김달삼이란 사람이 평양으로 넘어왔다는 전문보고를 본부에 보냈다.이 전문은 『남조선언론들이 정부군의 토벌작전중에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나 그는 지금 평양에 와있으며 방문목적은 남조선내 빨치산활동 계획을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남침개시를 앞두고 남한내부 혼란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북경방문 출발 하루 전인 5월12일 슈티코프 대사를 불러 전쟁개시일을 6월로 잡겠다는 최초의 언질을 주었다.『본인은 이미 남조선에 대한 공격준비 명령을 총참모장에게 내렸음.전쟁계획은 이미 짜여졌음.준비가 예정대로 마쳐질지 모르지만 공격개시일은 6월로 잡겠음』.슈티코프대사는 즉각 이 내용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북경방문을 마치고 온 김일성은 전쟁준비를 예정대로 진행시켜나갔다.5월29일 슈티코프 대사는 스탈린에게 전쟁준비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6월8일 병력이동 『김일성은 공격준비상황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음.모스크바회담에서 지원키로 합의한 무기 대부분이 도착했다고 함.김일성은 새로 창설한 사단을 시찰한뒤 6월말 공격개시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함.김일성의 명령을 따라 인민군총참모장이 공격작전을 수립했음.인민군 총참모장과 소련고문단장 바실리예프 장군이 이 작전계획을 김일성에게 보고,승인을 받았다고 함.군편성은 6월1일까지 완료예정.6월 전투개시에 아무런 차질이 없다고 함.김일성은 작전개시일을 6월말로 잡고있다고 함.더 늦출 경우 첫째 작전계획이 남조선측에 유출될 우려가 있고 둘째 7월이면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음.김일성은 6월8∼10일 사이 병력이동을 시작하겠다고 했음』. 같은날 슈티코프 대사는 소련군사고문단의 바실리예프·포스트니코프 장군과 만나 의견을 듣고 이를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두 장군은 처음에 김일성의 6월말 공격개시에 반대했다.작전준비가 제대로 갖춰지려면 7월이라야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그러나 이 두사람도 결국은 장마 때문에 6월말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는 데 동의했다.슈티코프 자신도 장마철 공격개시는 너무 위험하다며 김일성의 생각이 옳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이렇게 해서 공격개시일은 6월말로 확정됐다. 마침내 운명의 6월이 왔다. 북한은 3단계작전중첫번째인 평화공세를 시작했다.6월10일 북한은 남측에 대해 평화통일방안을 논의키 위해 전조선민주연합전선 중앙위를 개최하자고 제의했다.슈티코프는 이튿날 6월11일 남한의 반응이 나오자 스탈린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남조선이 이 제의를 거부했음.공격계획을 예정대로 진행시켜 나가야겠음.병력을 38도선부근으로 이동시키고 추가 평화통일제의를 하겠음』. 6월12일 슈티코프는 13일부터 38도선 10∼15㎞지역으로 인민군의 병력이동이 시작된다고 스탈린에게 보고했다.총참모장 주재로 사단장을 비롯한 각급 지휘관 회의가 열려 구체적인 임무가 하달됐다.6월15일 3단계로 나누어진 최종작전계획이 확정됐다.슈티코프는 6월15일 이 작전계획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작전개시는 6월25일 이른새벽에 시작됨.1단계작전은 옹진반도에서 국지전형태로 시작한 뒤 주공격선은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해감.2단계 작전은 서울과 한강을 장악함.동시에 동부전선에서 인민군은 춘천과 강릉을 해방.이에 따라 남조선군 주력은 서울일원에서 포위당해 궤멸됨.마지막 3단계작전에서는 여타지역 해방.적의 잔여세력을 소탕하고 주요 인구밀집지역과 항구를 점령함』. 여기서 알수있듯이 김일성이 세운 당초 작전계획은 전전선에 걸친 전면공격이 아니라 옹진반도를 시작으로하는 단계적 공격이었다.이것이 그뒤 작전계시직전에 전면남침으로 바뀐 것이다. ○소련병력 승선거부 이렇게 최종작전계획을 수립해놓은 뒤에도 북한은 평화선전공세를 계획했다.6월16일 북조선인민최고회의가 남한국회앞으로 평화통일 제의를 내놓았다.이 평화제의의 허구를 그대로 드러내는 슈티코프의 전문보고를 인용해본다. (19 50년6월16일.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조선동지들은 이 평화제의와 이에 대해 남조선이 보일 부정적인 반응(반대할 것이 쉽게 예상됨)이 갖는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의주시하고 있음』. 6월20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대사를 통해 상륙작전에 쓸 전함의 추가지원을 소련측에 요청했다.동서해안에서 동시에 상륙작전을 감행,적을 포위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김은 전함을 보내면서 『인민군내에 전함운용 요원이 없기 때문에 상륙선을 운행할 소련해군 요원을 함께 보내줄 것』도 요청했다.스탈린은 21일 답전을 통해 전함추가지원은 받아들이되 적에게 개입명분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소련병력 승선은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6월21일 김일성은 슈티코프대사를 통해 중대한 메시지를 스탈린앞으로 보냈다.작전변경에 관한 건의였다. 『김일성은 남조선 방송청취 및 정보보고에 의거,남측이 인민군의 작전계획내용을 입수한 것같다고 말했음.이에 따라 남측이 전투력 강화,방어선 강화,옹진반도 방향에 병력추가배치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함.이같은 상황변화로 인해 원래의 작전계획변경이 불가피하다고 함.김일성은 전면공세 전 옹진반도를 기점으로한 국지전 시작 대신 6월25일 전전선에서 전면공격을 감행하자고 제의했음』. 스탈린은 이 작전변경 건의를 이의없이 승인했다.6월25일 새벽 전전선에서 공격개시로 최종확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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