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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공동어로수역 기준선은 NLL이어야

    남북간 미묘한 현안에 대해서 정부 당국자의 언급은 신중해야 한다. 북한을 오도함으로써 추후 협상에 차질을 빚을 수 있고, 공연히 남남(南南)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주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라고 말해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청와대가 “NLL은 실질적인 해상 경계선”이라고 해명해 시비가 봉합되는 듯했으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연이은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는 상황은 정말 걱정스럽다. 이 장관은 그제 국정감사에서 서해 공동어로수역과 관련,NLL을 기준으로 등거리·등면적 원칙을 고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제까지 정부가 지켜온 원칙을 깨는 언급이었다. 북한은 그동안 장성급회담을 통해 NLL 한참 밑에 공동어로수역을 만들자고 주장해왔다. 공동어로를 넘어 군사경계선으로서 NLL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북측의 의도를 알고 있는 이 장관이 미묘한 사안을 쉽게 거론한 점은 경솔했다. 같은 날 국감에서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NLL이 해상 불가침경계선이라는 원칙 아래 공동어로수역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 각료가 다른 얘기를 하니까 국민들은 혼란스럽고, 정부를 신뢰하기 어렵게 된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서는 NLL을 무시하면 안 된다. 공동어로수역을 NLL을 기준으로 지정하되 백령도와 연평도 사이 해역별 특성에 따라 융통성을 둘 수 있다고 본다. 해상교통이 빈번하고 수도권에 인접한 연평·강화 구간은 해양생태계 보존사업이나 바다목장사업을 공동수행하는 평화수역이 어울릴 것이다.NLL을 재조정하는 문제는 남북한과 미국 등 한반도 관련국간 군사신뢰가 구축되어 새로운 평화체제가 확립될 때 논의하면 된다. 새달 열릴 예정인 남북 총리회담, 국방장관회담에서 북측이 이런 방안을 수용하도록 적극 설득하기 바란다.
  • [열린세상] 국민경선 이대로는 안된다/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열린세상] 국민경선 이대로는 안된다/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파행과 혼란을 거듭하던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박스떼기’와 ‘명의도용’을 거쳐 경찰 압수수색에 이르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내일 후보경선이 마감되면 그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범여권의 또 다른 축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도 동원·금권선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후보사퇴의 파행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한 달여 전에 끝난 한나라당 후보경선에서도 후보검증을 앞세워 온갖 추태를 다 보여 주었다. 신문기사를 보면 자유당 시절의 선거인지 민주화 20주년을 맞는 오늘의 모습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들 중 누군가에게 다음 5년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 신세가 참으로 암담하다. 당내 규칙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 대선후보 경선을 시작하였으니 사실 파행과 혼란은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었다. 경선규칙도 합의하지 않고 그저 다 잘될 것이라는 요행만 믿고 후보선출을 덜렁 시작한 정당들의 인식이 한심할 뿐이다. 거대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동네 애들 축구판만도 못하다는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5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대선후보 경선에 관한 제도와 절차를 미리 정비하여야 한다. 먼저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경선에 계속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 반영비율과 방식을 둘러싸고 모든 정당이 파행을 겪었다. 당내 지지도와 일반 국민의 선호도가 다른 까닭에 여론조사 반영비율에 따라 유불리가 갈라지니 각 후보들은 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명박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박근혜후보에게 뒤졌으나 여론조사에 앞서 승리하였다. 여론조사는 오차범위가 있기 마련이고 설문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투표방법의 하나로 대체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는 여론조사를 굳이 계속 사용할 것이면, 각 정당들은 그 절차와 방법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일찌감치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경선 도중에 규칙을 바꾸는 혼란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실시하는 모바일투표 역시 많은 문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개인적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없고 매표의 가능성도 있다. 옆 사람이 투표하는 내용을 지켜볼 수도 있을뿐더러 돈을 주면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강요하고 감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모바일투표를 수차례 실시한 영국도 한동안 중단하였다. 이번 대선후보 경선에서 조직·동원 선거 논란이 그치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대선 몇 달 후 있을 국회의원 선거 공천과 무관하지 않다. 거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대선 후보캠프에 줄서기를 하는 것은 다음 총선에서 공천권을 보장받겠다는 계산에서이다. 실제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양 캠프간의 갈등이 도를 넘으면서 공천살생부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고, 대통합민주신당 역시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고자 하는 인사들이 캠프에 들어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불법·탈법 운동을 저질렀다. 결국 공정하고 투명한 국회의원 공천이 보장되어야만 대선후보 경선도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다. 똑같은 국민경선을 하면서도 미국과 비교하여 우리의 대선 후보경선이 더욱 혼탁한 것은 소수 실력자들이 국회의원 공천권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 총선에서는 지금 국회의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방의회 출마자들이 각 후보 캠프에서 조직·동원선거에 앞장설 것이다. 5년 후에는 ‘국민경선’이 뜻하는 대로 국민의 손으로 후보를 결정하기 위해서 경선제도와 절차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공천방식을 고치고 다듬는 작업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 [서울광장] 2007년 한국의 ‘신다르크’/ 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2007년 한국의 ‘신다르크’/ 함혜리 논설위원

    신정아씨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 여성이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학력 위조에서 시작된 사건이 권력형 비리로 번지면서 정·관계는 물론 예술계, 학계, 종교계까지 안 걸린 분야가 없기 때문이다. 변양균씨의 신정아 비호가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더니 이번에는 한 일간지가 신씨의 누드사진까지 게재하며 성(性)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신씨가 사용했다는 이메일 아이디 ‘신다르크’에 대해 생각해 봤다. 신다르크는 신정아와 잔다르크를 합성한 단어다. 신씨는 자신을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때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구하고도 결국에는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한 잔다르크에 비유해 가며 한국 미술계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자신있게 말했었다. 하지만 신씨는 다양한 인맥과 능란한 로비력, 그리고 가짜 예일대 박사학위를 무기로 미술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그것도 모자라 동국대 교수와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직까지 거머쥔 것으로 드러났다. 프랑스인들로부터 성녀로 추앙받는 잔 다르크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자신을 같은 반열에 올린다는 것은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씨가 선택한 이 아이디가 매우 적절했다는 생각도 든다. 역설일 수도 있지만 신정아씨의 가짜학위 파문과 거센 후폭풍이 우리 사회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신씨의 학력위조 사실이 밝혀지기 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추해 보자. 우리는 거짓말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했다. 사람의 본성이나 실력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학력이나 집안, 경제력에 현혹되기 일쑤였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 약했다. 동숭아트센터 대표 김옥랑씨를 비롯해 연극인 윤석화, 영화배우 장미희, 방송인 최화정 등 수많은 사람들이 허위학력을 가지고도 진짜 실력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먹고 잘 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가짜 박사학위로 버젓이 대학교수나 유명인사가 된 사람도 많았다. 고위직 공무원들은 자신의 직권을 이용해 지인들의 금전적 지원을 얻어내고, 인사청탁을 하는 것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걸면 걸리는 데도 아무도 그것이 죄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몇달 사이에 이런 분위기는 몰라보게 사라지고 있다. 신정아 학습효과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신정아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우리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거대한 불신의 그림자도 여전하다. 해결해야 할 국가적 이슈들이 산적했는 데도 이번 사건에 휘둘려 국정이 갈피를 잃은 모습이다. 과거 여러가지 사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사건도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그야말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이 혼란스러움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이번 사건을 흥미위주로 접근하는 것은 그만 접고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한국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디딤돌이 된다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훗날 역사가들이 2007년의 한국을 이렇게 기록하기를 바란다면 무리일까.‘그해 대한민국은 윤리사회로 거듭났다. 신다르크라는 아이디를 사용했던 신정아씨의 학력위조 사건이 계기가 됐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아베 日총리 전격 퇴진

    아베 日총리 전격 퇴진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2일 전격적으로 사임을 표명했다. 지난해 9월26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전후세대 첫 총리’,‘최연소 총리’라는 각광 속에 취임한 지 만 1년이 채 안 됐다. 아베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혼란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아베 총리는 후임이 선출될 때까지 총리직을 수행한다. 자민당은 14일 총재 선거를 고시,19일 총재 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다. 새 총재가 선출되면 국회에서 총리지명을 받은 뒤 곧바로 중의원을 해산, 총선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국민적 지지가 낮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후임 총재이자 총리로는 아소 다로 자민당 간사장을 비롯, 다니가키 사다카즈 전 재무상,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 요사노 가오루 관방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전격적인 결단 배경에 대해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과 관련, 솔직한 대화를 위해 여·야 당수회담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하는 등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하고 ‘국면 전환을 위해’라는 말을 7차례나 되풀이했을 뿐 충분히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건강이상에 따른 사임설 등 억측이 나돌고 있다. 요사노 관방장관은 아베 총리의 사임에 대해 “병명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건강과 업무를 같이하는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밝혔다. 민주당 등 야당은 아베 총리의 사퇴표명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참의원선거 참패 직후 사임 요구를 무시하다 임시국회가 개막된 직후 기습 사퇴,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주장이다. 오자와 민주당 대표는 아베 총리의 사퇴에도 불구, 테러특별법에 대한 반대 입장에는 변함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측은 자민당에 조기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실시를 강하게 요구했다. hkpark@seoul.co.kr
  • [靑 ‘이명박 고소’ 파장] 靑 ‘친노 결집’ 대선 흔들기

    [靑 ‘이명박 고소’ 파장] 靑 ‘친노 결집’ 대선 흔들기

    노무현 대통령이 또다시 기록을 남기게 됐다. 청와대가 공당(公黨)의 대선후보를 고소한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의 대선 개입이라는 논란과 함께 이제 대선 정국은 극한 대치의 혼란 속으로 치닫게 됐다. 임기말 국정에 주름이 질 것은 불문가지다. 뽑아든 칼 끝이 어디로 향할지도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과 함께 비판의 화살이 노 대통령에게 쏠릴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부담을 감수했다. 왜일까. 우선 레임덕 방지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도덕성과 정책성과를 유일한 자산으로 여겨왔다. 한나라당의 공세가 바로 ‘노무현 자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은 불만과 위기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강경 대응은 대선구도용 포석일 수도 있다. 핵심은 ‘친노(親盧)세력 결집’으로 보인다. 대선구도를 ‘이명박 후보 대 친노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거부감을 내보인 손학규·정동영 후보가 ‘이(李) 대 친노’의 대결 구도에서 밀려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의 이 후보 고소는 친노 계승을 위해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라고 풀이했다. 손 후보가 지난 2일 노 대통령에게 “대선판에서 비켜서 달라.”고 발언한 것을 감안하면, 이날 청와대의 발표는 이 후보뿐 아니라 손 후보와의 관계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노 대통령의 포석은 대선 국면에 다양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경선 이후 당내 갈등을 어느 정도 봉합하고 박근혜 전 대표와의 앙금을 잠복시키는 효과를 얻을 듯하다. 노 대통령과의 대립 전선이 당내 단합과 ‘후보 보호’의 명분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실(失) 못지않게 득(得)도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추가 고소 고발전이 뒤엉키면서 대선 정국이 ‘이명박 검증 국면’으로 흐르고, 이 와중에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청와대의 강공은 대선 이후 노 대통령이나 친노 세력의 행보와도 연결지을 수 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친노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의 본경선에서 탈락한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이슈 제기를 통해 대선 이후 정치행보를 위한 동력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사설] ‘취재지원선진화 방안’ 백지화해야

    정부의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둘러싼 혼란이 끝이 없다. 원인은 자명하다. 정부가 애초에 언론 등과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합브리핑룸을 만들고, 졸속 총리훈령(취재지원 기준안)을 내놓은 게 화근이다. 총리훈령에는 부처별 정책홍보실 경유취재 의무화(11조), 공무원 대면취재 장소제한(12조), 기자등록 의무화(20조), 보도유예(엠바고) 위반시 정부 제재(35조) 등 곳곳에 취재를 봉쇄하는 독소 조항을 심어 놓았다. 절차를 무시하고 통합브리핑룸부터 만들어 놓고 일선 기자들에게 기존의 방을 비우라고 하니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외교부 등이 있는 정부종합청사 통합브리핑룸은 기자들의 반대로 보름 넘게 텅텅 비어 있다. 그제 환경부 브리핑에는 공무원을 동원해서 통합브리핑룸 기자석의 절반을 채우는 해괴한 광경이 목격됐다. 우리는 과거의 폐쇄형 기자실 체제가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따라서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기자들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언론계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개선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했다. 정부가 그런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새로운 방안을 밀어붙인 것은 매우 유감이다. 총리훈령도 그렇다. 정부는 기자들의 반대와 여론에 떠밀려 정부의 엠바고 제재권을 삭제하고, 기자등록도 자율화하기로 했다. 총리훈령 11조와 12조의 취재봉쇄 및 대면취재 제한 조항도 의견수렴을 거쳐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기가 불순하고 악용소지가 다분한 제도를 움켜쥐고 여론이 좋지 않으니 찔끔찔끔 물러서는 행태는 언론의 감정만 돋우는 소모전이 될 것이다. 한덕수 총리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언론과 직·간접 대화를 주문했다. 국정홍보처도 뒤늦게 의견수렴과 문제 조항의 개선을 약속한 만큼, 원인 제공자인 정부는 조만간 사태의 근원적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독재정권식 통제… 홍보처 폐지를”

    “독재정권식 통제… 홍보처 폐지를”

    “모든 언론에 재갈을 물려 통조림 기사를 만들려고 한다.”(한나라당 정병국 의원) “국정홍보처가 아닌 국정혼란처고, 취재지원 선진화가 아닌 취재지원 후진화다.”(민주신당 전병헌 의원) 24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놓고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을 향해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지난 2∼3일 청풍리조트에서 정부기관의 정책홍보관리실장 44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합숙 워크숍에서 왜곡된 언론교육이 이뤄졌다고 지적하면서 공방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독재정권식 언론통제’로 규정하며 이의 백지화와 국정홍보처 폐지를 요구했다. 민주신당 의원들도 동조했지만 김 처장의 해임과 국정홍보처 폐지에는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정책홍보실장 44명 왜곡된 언론교육” 한나라당에선 기자 출신 의원들이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다. 전여옥 의원은 “공무원과 기자의 접촉을 차단하고 실효성 없는 브리핑을 내세우는 정책은 정부의 언론 죽이기”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심재철 의원은 “국가청렴위가 ‘언론이 국가기관의 비리를 취재하면 대외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언론의 취재에 협조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홍보처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정책홍보관리실장 합숙 워크숍에서 국정홍보처에서 만든 교육자료에서 정부당국의 천박하고 왜곡된 언론 의식을 강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성토했다. 그는 “기자의 ‘인적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촌지처리’와 ‘접대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입시키는 등 언론 이해를 위해서는 촌지·접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교육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처장은 “국정홍보처가 교육하는 게 아니라 대행사가 우리에게 한 것”이라며 “사실 관계와 의견을 구분해 달라.”고 반박했다. ●범여권도 비판 수위 높여 민주신당 우상호 의원은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친노’(親盧)로 분류되는 이광철 의원도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부족했던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재윤 의원은 “상식적인 정보접근 시스템과 취재관행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라면서도 “취재 사각지대가 생기거나 취재를 비효율화하는 문제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중립적 입장을 취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취재 접근권 흥정… 졸속행정 표본”

    “취재 접근권 흥정… 졸속행정 표본”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에 대한 기자들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국정홍보처가 기자들의 ‘취재 접근권’을 원칙없이 적용하고 있어 취재 기자들과 또다른 갈등을 빚고 있다. 또 취재지원시 홍보부서와 협의해야 한다는 총리훈령 제11조의 적용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 홍보처는 외교부 출입기자들이 취재 접근권 보장을 요구하며 3주째 브리핑실로 옮겨 가기를 거부하자 최근 ‘취재 접근권 문제를 외교부에 일임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외교부는 ‘취재접근권을 현 수준으로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기자들의 경찰서 출입을 제한하는 경찰청의 ‘취재봉쇄 방안’에 대한 일선 기자들의 반발이 확산되자, 경찰청은 “형사계와 교통사고조사계, 민원실 등 3곳은 출입을 허용하겠다.”는 새로운 방침을 밝혔다. 이런 움직임 속에 다른 부처 출입기자들도 속속 모임을 갖고 정부 방안에 대한 거부 성명과 함께 취재 접근권 보장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경찰서 취재 봉쇄방안’ 문제에 대해 안영배 국정홍보처 차장은 23일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다. 경찰청 출입기자들과 협의하고 있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또 ‘취재 접근권을 외교부에 일임한다.’는 방침을 다른 부처에도 적용하느냐는 질문에 안 차장은 “외교부 기자들의 요구가 정부 방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교부 기자들에 대한 특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초점을 흐렸다. 이와 관련,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정부가 본질적인 것은 외면한 채 반발의 수위에 따라 흥정하듯 우왕좌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졸속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총리훈령)안’ 제11조 ‘공무원의 언론취재 활동지원은 신뢰성과 책임확보를 위해 정책홍보담당부서와 협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의 핵심조항이다. 그러나 ‘취재활동 지원’이 어떤 행위까지 포함하는지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놓지 않아 적용 과정에서 큰 혼란은 물론, 자의적 해석이 남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공무원들이 기자와의 개별적 만남에 대해 일일이 보고하는 데 따른 고충도 예상된다. ‘취재 지원’ 범위에 대해 홍보처 관계자는 “훈령엔 없지만 브리핑센터나 정부 청사내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인 브리핑과 백브리핑, 설명회, 간담회는 물론, 공무원의 개별적 취재 응대도 모두 포함된다.”고 방침을 밝혔다. 청사 외부에서의 기자와의 만남에 대해선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란 입장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외부에선 공무원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며, 책임질 수 없는 사안이라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취재지원 범위에 대한 구체적 범위를 제시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부가 유·불리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단해 공무원을 징계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100년 정당’ 4년도 안돼 역사속으로

    ‘100년 정당’ 4년도 안돼 역사속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 3년9개월 만에 문을 내린다. 전국정당·정책정당·참여정당을 내걸고 ‘백년’을 약속했지만 18일 전당대회를 끝으로 굴곡 많은 역사를 접는다. 17일 정세균 의장은 마지막 당 공식회의에서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지난 4년여간 국민에게 신뢰를 드리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은 ‘정치실험’이라는 말과 동의어를 이뤘다. 기간당원제, 상향식 공천제, 당정분리가 대표적이다. 열린우리당의 실험 자체는 귀중한 자산이 됐지만 결국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기간당원제는 ‘열성 당원제’? 열린우리당은 ‘당비를 직접 내는 당원에게 당의 운영을 맡기는’ 방안을 도입했다. 열린우리당이 개혁정당의 최우선 목표로 내걸었던 제도다. 그러나 기간당원제는 당내 분란의 불씨였다. 크고 작은 선거를 거칠수록 ‘실용’과 ‘개혁’을 가르는 단초가 됐다. 심지어 급진 개혁파가 당을 장악하는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도입 취지는 옳았지만 열성 당원들의 의사를 강경파 의원들이 대변하는 과정에서 분열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기간당원제를 소화할 만한 정당의 지도력이나 민주적인 질서 등 기반이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들린다. 그러나 제도 취지를 당권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도 엄존한다. 전 노사모 대표였던 노혜경씨는 “우리 정치가 자발적 당원과 정치를 함께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당의 정책에 동의하고 활동하려는 당원을 여전히 단순 지지자로 치부하려는 일부 당 지도부가 문제”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상향식 공천제도도 상관관계가 있다. 열린우리당은 대다수 선거에서 전략공천을 택했다. ●당·정분리,‘당청갈등’으로 확산 열린우리당은 당정분리라는 초유의 실험을 택했다.1인 보스체제를 극복하고 당이 대통령 거수기가 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비쳤다. 하지만 이 역시 당의 지도력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못하면서 혼선을 가져왔다. 당청 갈등이 그것이다.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당정분리가 여권의 소통을 단절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규정했다. 자율성을 주자는 취지가 서로 간섭하지 말라는 요구로 오도됐다는 해석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집권여당으로서 당정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책임정치를 구현해야 하는데 취약한 리더십 탓에 실패한 분권이 됐다.”고 말했다. 이는 현직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집권여당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화석화된 ‘정책정당’의 꿈 열린우리당이 표방한 개혁정당의 요체는 정책정당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정강정책을 중심으로 당을 이끌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4년여 내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은 쉽게 규정짓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4대 개혁입법 처리과정이 대표적이다. 물론 우선순위의 문제는 있다. 이 이사는 “여당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우선”이라며 개혁정책에 대한 강한 압박감이 앞서 갔다는 문제점을 들었다. 고 선임연구원은 “정당의 본 모습은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결속해 다른 정파와 경쟁하는 것”이라면서 “열린우리당은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진 데다 이를 통일시킬 리더십이 없었다.”며 정체성 혼란의 요인을 꼽았다. 구혜영 박창규기자 koohy@seoul.co.kr
  • 제재규정 해석 논란

    ‘제24조(정기 출입증 반납 및 회수 )2항=국정홍보처장은 출입증을 타인에게 양도 또는 대여한 경우, 브리핑에 주 1회 이상(6개월 평균) 참석하지 않는 경우에는 정기 출입증을 회수할 수 있다.’ ‘24조 2항’의 규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1,‘주1회 이상 참석’하지 않는 경우 출입증을 회수할 수 있다. #2, 주1회 이상 ‘참석하지 않는’ 경우 출입증을 회수할 수 있다. #1,2는 동일한 문장이다. 따옴표의 위치만 다를 뿐이다. 문제는 따옴표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참석’을 강조하느냐,‘참석하지 않는’을 강조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6개월 기준으로 일주일 평균 브리핑 횟수가 10회라고 가정하자.#1은 ‘1회이상 참석’하지 않는 경우다. 다시 말해 1회부터 10회 참석자는 제재(출입증 회수)대상이 아니다.1회 미만자만 제재 대상이다. 이는 홍보처의 해석이기도 하다. 그러나 #2의 1회이상 ‘참석하지 않은’경우는 9회이상 참석한 경우만 제재대상에서 제외된다. 다시 말해 1회부터 8회 참여자(1∼8회 불참자)도 ‘1회 이상 불참자’가 돼 제재 대상이다. 이같은 해석상의 문제는 나랏말이 ‘아’다르고 ‘어’다를 만큼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해 한편으론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홍보처가 총리 훈령을 얼렁뚱땅 만들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문제로 서울신문이 단독 보도한 총리훈령을 타 언론사들이 후속 보도하면서 ‘주 1회 미만 참가자’,‘주 1회 이상 참가’ 안한 자,‘주1회 이상 참가하지 않은 자’ 등으로 제목이 제각각이어서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시론] 대선 후보들,이념과 정책 분명히 밝혀야/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대선 후보들,이념과 정책 분명히 밝혀야/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 선거를 불과 4개월여 앞둔 현 시점 한국의 정국은 장마철 날씨만큼이나 궂고 을씨년스럽다. 자천타천으로 양산된 대통령 후보군은 늘어만 가는데 정작 유권자의 최종 심판을 받을 본선 후보에 대한 전망은 오리무중이다. 지지율에서 가장 앞서는 두 한나라당 경선후보는 치열한 예선전을 치르고 있다. 당선 확률이 현재 가장 높은 두 후보간의 대결은 용쟁호투라기보다 이전투구에 가까워 안타깝고 실망스럽다. 범여권의 혼란은 더욱 안쓰럽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차가운 여론은 바뀔 줄 모르는 가운데 새 인물 발굴에 대한 기대 역시 이젠 접은 듯하다. 지리멸렬 상태인 세력을 정비하는 데 팔순 전직 대통령의 지역성 짙은 훈수와 독려를 받아야 하는 지경에 와 있다. 민주노동당 역시 후보군을 세 사람으로 압축시켰으나 아직 대표 주자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5년 전 이맘때와 지극히 대조적이다. 당시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권영길 네 후보의 대결 구도는 일찌감치 확정되었고 이들 간의 검증 및 정책대결 역시 일찍 본격화하였다. 그 결과 많은 언론사와 시민단체들이 각 후보의 정책을 충분히 비교 분석하고 또 평가할 수 있었고, 그 결과를 유권자들에게 제시해 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본선 후보들의 정책 제안과 국정 운영방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평가할 시간적 여유를 갖기는 힘들 듯하다. 선거를 불과 3개월 정도 남겨 두고 확정될 대선 구도에서 각 후보들은 정책적 차별성을 통한 득표 전략보다는 단기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네거티브 공세, 이미지 정치, 그리고 고질적인 지역주의정서 자극 등 퇴영적 캠페인 수단에 더 의존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전이 이렇게 치러진다면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제도적·절차적 민주화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이제 그 제도적 기틀 위에 사회를 조정하고 경제를 운용하는 민주적 원칙과 내용을 확립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고 이를 둘러싼 경쟁과 대결 양상이 정치권과 시민사회 전반에 걸쳐 뚜렷해지고 있다.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둘러싼 최근의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마찰,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비정규직 문제, 사학법을 둘러싼 사회갈등과 교육정책을 둘러싼 마찰 등 소위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이념정책 균열이 확연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이념정책 균열의 이와 같은 심화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과도한 이념 대립은 물론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그러나 이념적 획일성보다는 다양한 이념정책 노선이 건전하게 경쟁할 때 그 민주국가는 보다 활기차게 발전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정당과 그 후보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이념정책 이슈들에 대한 소신과 정책 방향을 뚜렷이 밝혀서 그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와 심판을 받을 태세를 취해야 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네거티브 공세, 이를 모면하려는 변명과 역공격, 진부한 지역주의 정서 자극 등에 유권자들은 이미 식상해 있다. 자신의 이념 정책적 소신을 명확히 하고 이를 통해 지지를 동원하고 설득하려는 진취적 건설적 리더십을 유권자들은 대망하고 있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경찰, 92년까지 선거 개입”

    “경찰, 92년까지 선거 개입”

    경찰이 정부 수립 이후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2년까지 선거운동 방해와 금품매수, 후보자 비방, 공안사건 조작 등으로 각종 선거에 불법 개입을 했거나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종수 한성대 교수)는 1일 ‘불법 선거개입 의혹’과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용공조작 의혹’ 등 3개 분야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올 연말로 시한이 끝나는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는 의혹을 일부 확인하는 차원에 머물렀을 뿐, 부끄러운 과거를 낱낱이 드러내는 데는 미흡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고문·용공조작 반성을” 이종수 위원장은 이날 “관련 재판기록과 전직 경찰간부들의 증언 및 비망록 등을 확인한 결과 경찰이 54년 제3대 민의원선거부터 87년 대선까지 광범위하게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87년 대선까지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광범위한 불법 개입이 판을 쳤지만,88∼92년에는 민주화의 점진적 진행에 따라 노골적인 개입보다는 치안정보 불법 이용 등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87년 강원도 모 지역의 경찰서장을 지낸 이모씨로부터 “정부·여당이 도지사를 통해 활동비를 내려보낸 기억이 있다. 이 돈을 정보과장에게 줘 활동비로 사용하게 했다.”는 증언을 처음으로 확보해 80년대 말까지 경찰이 정부 지원금으로 선거에 불법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과거사위는 또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보안경찰의 사찰 활동인 ‘요시찰(要視察) 카드’가 적어도 94년말까지 공식적으로 존재했으며, 이 지침을 승계한 대공관리지침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인 2004년 1월까지 존속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물존안자료는 99년초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용공조작 의혹과 관련, 과거사위는 부정선거 시비 등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경찰이 공안사건을 발표해 무더기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잡아들인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67년 6·8선거 부정 규탄 시위로 정국이 불안해지자 그해 316건에 그쳤던 국보법 위반 송치 건수가 68년과 69년에는 각각 950건,801건으로 급증했고, 유신이 선포된 72년과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에 달한 86∼90년에도 송치 건수가 급증했다는 것이 과거사위의 판단이다. 과거사위는 “과거 정치 권력이 정권 연장의 목적을 위해 경찰을 이용했고, 권력으로부터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경찰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고문과 용공조작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을 반성하고 중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고된 미완의 진상 규명 이날 발표된 결과는 대부분 그동안의 의혹을 정리한 뒤,“정황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수준에 머물러 과거사 규명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2005년 3월 출범한 과거사위에는 14명의 위원 가운데 경찰청 치안감 이상 간부가 5명이나 포함돼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이종수 위원장은 “선거에 경찰이 개입했다는 관련 자료가 공식적으로 남아 있기 힘들다. 관련 증언들을 폭넓게 청취해 진상을 밝히려 노력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박병섭 위원도 “3대 분야에 대한 포괄 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위원회의 목적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경찰이 이를 침해했던 과거를 밝히고 신뢰받는 계기로 삼자는 의도였다.”고 해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미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선 일정을 감안해 11월 말까지 활동을 마무리짓는 것으로 국방부, 국정원 등 과거사위를 둔 기관들과 조율이 끝난 상태”라면서 “이의 제기가 들어온 청주대 자주대오 및 나주부대 민간인 학살사건을 보완 조사하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조사는 끝났으며 백서를 준비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日 참의원선거 후폭풍] 오자와의 ‘아베 침몰작전’

    |도쿄 박홍기특파원|‘7·29 참의원 선거’에서 가장 뜬 인물은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이다. 선거를 ‘아베 정권의 심판’으로 규정한 데다 스스로 ‘과반수를 못 얻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며 정치생명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 정치판에서 38년 동안 잔뼈가 굵은 오자와는 ‘정치 9단’으로 불릴 만큼 노련하다.13선이다. 본류는 보수에 속한다. 중의원을 지낸 부친 사에키가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측근이었던 영향을 받았다. 오자와 본인도 자민당에서 사상 최연소 간사장을 지냈다. 오자와는 완승함에 따라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아베 내각은 물론 자민당도 참의원에서 109석을 가진 민주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자민당 쪽에서 보면 국정의 혼란이다.오자와의 다음 목표는 아베 정권이 선거를 통해 사실상 불신임을 받은 만큼 아베 총리의 사퇴에 맞춰질 것 같다. 아베 총리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면서 중의원 해산, 총선거, 정권교체의 수순을 밟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으로 오자와는 자민당내 ‘반 아베’ 세력과 손잡고 정계 개편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사퇴뿐만 아니라 정치지형의 탈바꿈도 짧은 기간에 가시화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오자와가 29일 개표 당시 탈진한 것과 관련,‘건강 이상설’이 나돌았지만 건강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고 민주당 측이 30일 밝혔다.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 대행은 “유세에 따른 피로가 겹쳐 의사로부터 요양을 취하는 것이 좋다는 권고가 있어서 하루나 이틀 요양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hkpark@seoul.co.kr
  • [정책선거 원년으로] 4개 정부 공약입안·집행 핵심 4인 대담

    [정책선거 원년으로] 4개 정부 공약입안·집행 핵심 4인 대담

    서울신문 취재팀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 마련의 핵심역할을 했던 13명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핵심브레인 역할을 했으며, 집권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나 청와대·여당·내각 등에서 요직을 거쳐 공약 입안과 실행 과정을 꿰뚫고 있는 인물들이다. 13명 가운데 노태우 정부의 김종인(현 통합민주당 의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영삼 정부의 이원종(현 우리누리재단 이사장)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대중 정부의 김원길(현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 전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의장, 노무현 정부의 김병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등 4명의 발언을 지상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다른 이들의 증언은 괄호에 담았다. 김종인 의원은 1987년 대선에서 민정당의 태스크포스팀(TFT)이었던 국책연구소에서 최병렬(전 한나라당 대표) 정세분석실장, 현홍주 의원 등과 함께 공약을 개발했다. 지금의 인수위격인 제13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경제 담당 위원을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이원종 이사장은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공보특보와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쳤다. 김원길 총재는 국민의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김병준 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 설계에 참여했고, 집권 후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를 지낸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공약 입안 당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나. ●김종인 민주화 요구가 뜨거웠던 1987년에는 당연히 중산층 이하를 대상으로 한 공약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위헌 요소가 짙었던 토지공개념 확대와 상호출자금지, 출자총액제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조치와 같은 재벌개혁들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원종 1992년 대선의 화두는 문민화와 부패 척결, 개혁이었다.(지역감정 해소도 큰 비중을 뒀으나 대선을 거치면서 골이 더 깊어졌다.-황인성 전 국무총리, 대선 당시 민자당 정책위의장) ●김원길 1997년 대선은 당연히 외환위기 극복이 가장 큰 변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집 제목이 ‘국난 극복과 내일의 번영을 위한 당신과 나의 약속’이었고, 외환위기 체제를 1년 반 내에 극복하겠다는 것이 제1공약이었다. ●김병준 2002년 노무현 후보는 ‘국가-시장-공동체’의 상생구조를 다시 짜는 게 목표였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라는 3대 국정목표도 이 틀 속에서 나왔다.(애초에는 서민 대통령과 북유럽형 사회대타협이 핵심이었지만 당과 정부 관료들이 가세하면서 퇴색했다.-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선거 당시 경제공약 브레인) ▶공약에 후보의 철학과 비전이 얼마나 반영됐나. ●김종인 역대 대통령 가운데 솔직히 대단한 철학과 공약으로 당선된 사람은 없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성격이 꼼꼼해서 그런지 당선 후 공약진척도를 일일이 체크했다. ●이원종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에서도 군정종식을 주장했고,1992년에도 군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언제 어떤 개혁을 한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개혁은 다 했다.(‘변화와 개혁’이라는 표어만 내걸었고, 실제 개혁 프로그램은 철저히 감췄다.-전병민 한국정책연구원 고문,1992년 대선 당시 선거 공약 기획) ●김원길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대선 출마 이후 옥중에서도, 해외 망명 중에서도 대통령을 준비해 왔다.1997년에도 모든 세부 공약을 대학노트에 빼곡하게 기록하며, 공약 입안 과정을 주도했다. 공약이 지역주의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수십년간 발전시킨 정책 때문에 믿음을 살 수 있었다. ●김병준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시절부터 대통령과 함께했는데 지방분권, 분배를 통한 성장 등의 신념에 변함이 없었다. 공약의 이행여부를 계속 체크해 왔으며,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전시작전권 환수는 공약에 없었는데, 인수위에서 전작권 환수문제가 느닷없이 나왔다.-한 외교안보전문가) ▶공약 작성시 예산 등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뒀나. ●김종인 예나 지금이나 실현가능성을 생각하고 내놓는 공약은 별로 없다고 본다. 백화점식 나열이 많았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핵심 공약 1∼2개로 승부 거는 선거문화가 돼야 한다. 공약 자체가 급조된 측면이 많기 때문에 대통령이 너무 공약에 집착하다가는 나라가 거덜날 수 있다. ●이원종 핵심적인 공약 몇 개를 빼면 어차피 다 짜깁기한 것이다. 표가 된다 싶으면 공약집에 다 끌어 모은다. 정권별, 후보별 공약에 큰 차이가 없는 게 이 때문이다.(세금은 줄이면서 돈은 많이 쓰겠다는 게 제대로된 공약인가.-황인성 전 총리) ●김원길 공적연금 통합, 의약분업 등과 같은 공약은 사실 준비가 부족했다. 예산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행과정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공약은 선거 초기에나 관심을 갖는다. 선거 국면이 깊어지면 이슈 파이팅만 남는다. 유권자도 공약보고 투표하지 않는다.-이강래 의원, 대선 당시 DJ 정무담당특보) ●김병준 예산을 고민하지 않은 공약은 없었다. 연구개발 투자 공약을 늘리기 위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대폭 축소하기도 했다.7% 성장 공약은 정치적인 판단이 강했다. 이회창 후보 측이 먼저 6% 성장을 내놓아 그보다 더 올려 논쟁해 보자는 측면이 컸다. ▶아쉽거나 실패한 공약은? ●김종인 ‘중간평가’ 공약을 끝까지 반대했는데, 후보가 초조함을 못 이기고 마지막 여의도 집회 때 덜컥 내놓았다. 그게 계속 발목을 잡았다. 의약분업과 전작권 이양, 재벌의 소유·경영 분리 등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할 뜻은 없었다. ●이원종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 구제금융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쌀은 한 톨도 수입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지만 결국 개방했고, 성급하게 세계화를 추진한 면이 아쉽다. 취임사에서 ‘민족에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고까지 했는데 남북관계가 위기로 치달은 것도 문제였다. ●김원길 외환위기 사태로 경제 운용의 제약이 컸다. 파국을 면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내다 팔아야 했다. 오죽하면 금융실명제 유보 공약까지 했겠는가. 정권 막판에 신용카드 부양책을 써 경제가 망가진 것도 문제다. ●김병준 분권정책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못했다. 지방분권, 균형발전, 수도권 규제 완화, 서비스산업 육성이 한 패키지로 돌아가야 했는데 걸림돌이 많았다.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판결을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가장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인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노무현 정부의 사민주의적 공약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정태인 전 비서관) ▶성공한 공약은? ●김종인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으로 6공화국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부고속철도, 인천신공항, 서해안고속도로 등 최근 완공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이 대부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약에서 나왔다. 당시에는 선심성 공약이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개발정책이었다. 투자효과가 기대되지 않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중, 한·소 외교수립과 같은 북방외교정책도 평가돼야 한다. ●이원종 하나회 척결과 같은 군 개혁,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금융실명제 실시 등 한국의 부패구조를 전면 개혁한 것은 엄청난 성과다. 이 공약들은 예전부터 나온 것이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금융실명제 실시는 청와대 경제수석도 몰랐을 정도로 기습적이었다. ●김원길 대선 1년여 전부터 공약을 준비하다 보니 우리나라에 곧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 느껴졌다. 당시 정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위기가 오면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계획을 짜게 됐다. 이런 준비 때문에 집권 후 외환위기 체제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병준 현 정부 들어 정경유착과 부패구조가 사라졌다. 선거도 과거에 비해 몰라볼 정도로 투명해졌다. 국가 균형발전과 종합부동산세, 포괄적 상속증여세 등은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되돌릴 수 없도록 할 것이다.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 [최태환칼럼] DJ, 민주당, 소통합…

    [최태환칼럼] DJ, 민주당, 소통합…

    지난주는 ‘동교동 정치주간’이었다.DJ자택이 문전성시였다.‘한 말씀 들으려는’ 범여권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DJ가 정치 전면에 다시 나선 듯한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동교동 문지방이 반질반질해졌다는 조크가 나올 만했다.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보다 낫다 했던가. 새삼 케케묵은 고사가 떠오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하나다. 범여권 대통합이다.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을 독려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뒷전이었다. 대통합 추진 훈수에서 완전히 배제됐다.5·18이 분수령이 됐다. 형식은 노대통령이 DJ 뜻을 용인하는 모양새였다.‘대의’에 따른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노·DJ연합론이 성급하게 나왔다. 사실상 노의 후퇴다. 현직 대통령과의 파워게임에서 한물간 전직이 제갈량의 위세를 보였다. 김 전 대통령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훈수’를 뒀다고 했다. 그러나 실속이 별로 없다. 오히려 상처를 입었다. 속으로 골병이 들었다는 표현이 적합한지 모른다. 우선 민주당의 반응이 예전과 사뭇 달랐다. 시큰둥했다. 그가 만든 새천년민주당의 후신이다. 호남지역 적자를 자처한다. 동교동을 찾은 박상천 대표는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정실패 인사 배제론을 거듭 강조했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 간여를 공개적으로 반대해왔던 그다. 김 전 대통령으로선 또박또박 설득하려 드는 박 대표가 달가웠을 리 없다. 면담 내용을 두고서도 민주당과 동교동측 얘기가 달랐다. 신경전이었다. 과거 같았으면 상상조차 어려운 장면이다. 격세지감이다. 민주당 조순형의원도 DJ의 문지방 정치 비판에 가세했다. 평생 정치를 했는데 싫증날 때도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민주당 어느 인사는 “김 전 대통령은 통합에 대해 할말 다했으니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얘기까지 했다. 일련의 흐름은 더 이상 현 정국에 대해 콩 놔라 팥 놔라 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지난 월요일 민주당·중도통합신당 두 정파가 통합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소통합이다.DJ 뜻과는 관계없다. 그의 그림과는 다른 모습이다. 통합 합의 때 민주당은 국정실패 인사 배제론 명문화를 철회했다. 하지만 실리는 챙겼다. 민주당 의지가 충분히 전달됐다. 어차피 열린우리당 내 노무현 핵심그룹은 참여하기 어렵게 된 현실이 더 중요하다. 단계적 대통합 논의과정에서 기선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할 만하다. DJ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자신의 영향력이 예상보다 못한 것도 그렇고, 카리스마가 훼손된 부분도 그렇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더 이상의 지렛대가 없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그의 문지방 정치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로서는 반한나라당 정권 재창출이 절박한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와서 더 욕심 부릴 일이 아니다. 그의 의지 여부와 관계없이 지역주의 부활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정권의 창출은 DJ정권 승계를 원하는 민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노 대통령과의 연대 목소리를 높일수록 민망하게 보인다. 그러잖아도 정국은 지난 주말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을 계기로 벌집 쑤씬 듯하다. 대통합 갈등 역시 새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전·현직 대통령이 언제 또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될까. 국민들은 혼란스럽고, 착잡하다. 집착은 또다른 갈등과 분열을 낳을 뿐이다. 호남도 DJ의 그늘로부터 자유로울 때가 됐다. 이제 그가 호남을 놓아줄 차례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언론말살 규탄할 것” “국회서 선거 선전 안돼”

    “언론말살 규탄할 것” “국회서 선거 선전 안돼”

    4일부터 시작된 6월 임시국회는 대선을 앞두고 정당간 치열한 기싸움이 예상되는 ‘마지막 정치국회’가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말살로 세력을 결집시키려 하는데 우리는 언론수호로 국민을 결집할 것이다. 언론말살을 규탄하기 위해 의지를 보이는 날”이라고 공세에 나섰다. 이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6월국회의 중점은 기자실 통폐합 저지와 언론관계법 제·개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국회마비 책동과 국정혼란을 부추겨서 우리당에 뒤집어씌우려는 못된 행동들을 자행할 때는 단호히 분쇄한다는 각오를 꼭 다져달라. 국회를 선거 선전장화하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국정홍보처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 법안은 정종복 의원이 2005년 11월 발의해 행자위에 계류돼 있다. 이외에도 신문법을 비롯해 방송법, 언론중재법, 정보공개법 등도 처리할 태세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해당 상임위에서 도출된 합리적인 개선안은 수용할 수 있지만 정치공세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정치관계법도 정당별 입장이 천양지차다. 한나라당은 과거 두번의 대선패배 경험으로 인해 ▲허위사실에 영향받은 대선의 무효화 ▲정부지원 시민단체의 선거운동 금지 등을 담은 정치관계법안을 곧바로 표결에 부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이들 법안이 법적규제 대상과 국민심판 대상을 혼동하고 있다며 부정적 입장이다. 대신 범여권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통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월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사학법 재개정안과 국민연금법 개정안, 로스쿨법 등 3대 법안의 처리도 양측간 힘겨루기가 불가피하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대통령과 대통합/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열린세상] 대통령과 대통합/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대선을 앞두고 온통 난리다.‘잘되는 집’ 한나라당은 잘돼서 싸우지만,‘안되는 집’이라고 조용한 것도 아니다. 대통령과 측근들은 ‘원칙없는 지역주의 회귀는 안 된다.’며 일갈하고, 구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들은 ‘뽑아준 국민을 모욕하지 말고 대선판에서 빠지라.’며 맞받아치고 있다. 얼핏 보면 난투극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통합’이라는 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갈등이기도 하다. 대통합을 추진하는 이들의 주장이 만만치 않다. 탈당한 현직 대통령의 임기 말 정치개입은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옛날이든 외국이든 최고지도자가 임기 말에 목소리를 낮추는 것은 자신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사람에게 새로운 정치를 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최소한의 예의로 여겨진다. 게다가 책임정치라는 차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가능케 한 지지기반, 즉 호남과 충청의 유권자를 무시하지 말라는 논리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또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실제 여론조사(KSOI,5월8일 조사)에서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높게 나타나고,‘열린우리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응답도 수개월 전보다 높아지고 있어 차기 대선주자들이 주장하는 대통합의 당위성에 수긍하는 여론이 나타난다. 그러나 대통령이 저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정치인 노무현’의 삶 자체가 망국병이라던 지역주의 타파였기 때문이다. 그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0년에 감행한 3당 합당에 반대해 외톨이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2000년 16대 총선에서 지역구인 종로를 버리고 민주당 후보로 부산에 출마해 떨어진 것 역시 지역주의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소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지금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비(非)한나라당 진영에서 추진하는 대통합이라는 것은 노무현만 배제한 호남신당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노무현’의 한국 정치에 대한 피끓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최근 행보에 대한 여론은 별로 좋지 않다.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지난 5월8일 대통령 지지도 조사에서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이후 의미있는 회복세를 보이던 지지도가 다시 내리막으로 반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굳이 이유를 분석하자면 복잡할 것 같지 않다.‘국정운영 안 하고 왜 또 저러냐.’는 것이다. 그동안 ‘싸우면 이긴다.’며 불패신화를 자랑하던 노 대통령이지만 지금까지의 여론흐름만을 보자면 판정패인 셈이다. 다만 국민 입장에서는 범여권이든 구여권이든 그들이 추진하는 대통합이라는 것이 어정쩡한 것만은 분명하다.‘우리가 이기려면 통합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들만의 명분일 뿐이다. 또 기껏 모을 수 있는 세력도 예전에 뿌리치고 나온 민주당뿐이어서 ‘서부연합 정당’ 복원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총선 때도 민주당 없이 과반을 얻어 풍성한 의석수를 자랑하던 열린우리당이 이제 와서 ‘호남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논리 역시 감동을 주지 못하는 소리이다. 지난 3년 동안 열린우리당이 보여주었던 무능과 혼란의 ‘잡탕’ 이미지는 정당정치의 근간인 노선과 정책의 모호함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차기 대선주자들은 새로 만드는 대통합 신당이 ‘이기기 위해 노무현을 배제하는 것’ 말고 어떤 원칙, 어떤 노선, 어떤 비전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먼저 밝힐 필요가 있다. 만일 서로 견주어 봐서 노선과 이념이 다르다면 일단 각자의 길을 가는 것도 정상의 정치이다. 원칙 없이 합쳐 놓고, 안 뜨면 또 싸워서 갈라서는 모습만은 더 이상 안 봤으면 좋겠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 [프렌치 리포트] (27) 나폴레옹·드골 그리고 사르코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이 나폴레옹과 드골이다. 프랑스 어디를 가나 이들 두 사람의 거대한 그림자를 피할 길이 없다. 그만큼 나폴레옹과 드골은 프랑스 근·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랑스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기에 두 인물의 지도력은 더욱 빛을 발했을지 모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대혁명 이후 혼란의 와중에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제도 전반에서 근대국가로서 프랑스의 기틀을 다졌다. 샤를르 드골(1890∼1970)은 2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일으키고 프랑스를 독일과 맞먹는 공업대국으로 만들었으며 유럽통합의 주역이 됐다. 지나치게 강한 자아(自我),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 탓에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투철한 국가관과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강력하고 위대한’ 프랑스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됐다.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1840년 12월15일 아침,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나폴레옹의 유해가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와 콩코드 광장을 거쳐 앵발리드(상이군인병원이라는 뜻) 앞 마당에 도착했다.10만명의 파리 시민들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은 지 19년 만에 파리에 돌아온 영웅 나폴레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나폴레옹의 유해는 그의 유언대로 센강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앵발리드 지하에 안치됐다. 나폴레옹처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뛰어난 재략과 강력한 의지로 정상에 오른 전쟁영웅이지만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 몬 침략자이자 독재군주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찌됐건 그는 52년의 짧은 생애 동안 프랑스 역사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200년 전 나폴레옹이 만든 많은 제도들이 아직까지 프랑스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그는 전국을 현(縣)이라고 불리는 98개의 행정단위로 나누었다.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이 행정단위는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시켰으며 행정능률을 배가시켰다. 그는 또 수백년간 이어져온 방대하고 모순된 구법전과 법률을 재정비해 간결명료한 최초의 근대적 민법인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했다. 세습 귀족제의 폐지, 상속권의 평등, 인종차별 철폐, 결혼과 이혼의 자유 등을 규정한 이 법전은 나폴레옹 원정군에 의해 전 유럽에 퍼져 근대 유럽국가들의 법전편찬에 본보기가 됐다. 그는 국립 프랑스 은행을 설치하고, 전국에 세무소를 설치해 국가 재정을 확보했다. 근대적인 교육제도를 만든 것도 나폴레옹이었다. 프랑스 역사상 그만큼 프랑스를 변화시킨 인물은 없었다. 파리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그는 파리를 통치의 중심지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범 도시로 만들기로 작정하고 새로운 거리, 웅장한 건물, 분수대 등을 짓도록 했다. 그 중 하나가 파리의 상징물이 된 개선문이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4년 위대한 프랑스 군대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명령을 내려 세워진 것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외관의 마들렌 성당도 프랑스군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콩코드 광장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고, 그 뒤편의 방돔광장에 있는 청동제 원기둥은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노획한 1200대의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다. 루브르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들을 갖춘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것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및 이집트 원정 덕분이다. 프랑스에서 파리를 빼놓을 수 없듯이 나폴레옹 없이 프랑스 근대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 ●‘프랑스의 마지막 거인’ 드골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프랑스는 자유를 되찾았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다. 전쟁 중 영국에서 반(反)나치 항전을 지휘한 드골은 국민의 열렬한 환영 속에 귀국해 임시정부의 수반이 됐다.1946년 제 4공화국이 들어서고 전후 산업화가 시작됐으나 정쟁(政爭)이 그치지 않았다. 보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자신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골은 스스럼없이 물러났다. 제 4공화국이 붕괴되기 직전 드골은 ‘조국의 구원자’로서 당당하게 복귀했다. 강력한 대통령제에 입각한 제 5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1958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한 드골은 알제리를 비롯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평화적으로 독립시킴으로써 식민지 문제를 해결했다. 프랑스의 정신을 진작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지 않는 프랑스는 일찍이 한번도 참된 프랑스였던 적이 없다.”며 국민들에게 ‘앞으로!’를 외쳤다. 강력한 중앙집권제와 효과적인 경제·사회 모델, 독자적인 외교정책이 어우러지면서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는 급속하게 안정됐다. 드골은 아데나워 독일 수상과 함께 독·불협력 시대를 정착시키고, 반미 자주외교를 펼치면서 핵무기 개발과 군수산업 개발에 전력했다.“우리의 운명은 기계가 결정한다.”는 평소의 신념대로 첨단 항공우주기술, 초고속열차(TGV), 컴퓨터산업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1967년 영국을 제치고 세계 5대 산업국이 됐다. 그러나 학생과 노동자들이 합세해 일으킨 68혁명 여파로 1969년 4월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1970년 11월 드골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프랑스는 아직까지 제 5공화국 헌법으로 통치되고 있으며 시라크를 비롯해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파출신들이 집권층을 장악하고 있다. 국가관이 투철하고 능력이 있는 직업공무원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드골이 설립한 국립행정학교(ENA) 출신 엘리트들이 국정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샤를 드골 국제공항, 파리 중심가의 샤를 드골 에트왈 광장, 핵잠수함 샤를드골 호 등 그의 이름을 붙여 ‘마지막 거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역사는 흐른다. 최근 프랑스 전체를 뜨겁게 달궜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중도우파정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5공화국 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세계화, 유럽연합의 확장, 이민 2·3세들의 통합문제 등으로 프랑스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사르코지가 과연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서울광장]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 /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 /진경호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님. 청와대 홈페이지에 띄운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을 겸허하게 읽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탈당행렬과 정계개편 움직임을 언급하면서 “정치인 노무현이 절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 통합을 기치로 한 열린우리당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지난 20년간 매진해 온 정치인 노무현의 가치가 좌절될 위기라고 했습니다. 당을 등진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말하는 통합신당이 무슨 당이냐, 지역당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정당의 가치에 공감합니다.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 통합은 비단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만의 과업이 아닐 것입니다. 이 나라 모든 정당과 국민이 이뤄내야 할 책무입니다. 열린우리당을 떠난 정치인들이 또 다시 지역주의의 망령에 영혼을 맡기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밝힌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과 울분에는 떨칠 수 없는 몇가지 의문이 듭니다. 먼저 정당의 소명입니다.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 통합은 분명 소중히 해야 할 가치입니다만 정당은 이를 넘어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분명한 이념노선과 일관된 정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이 내세운 좌파적 신자유주의라는, 형용모순의 불분명한 정책 노선의 희생자입니다. 당을 등진 인사들의 이념노선을 따지기에 앞서 지난 3년여 당의 정책노선부터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의 진보 논쟁에서도 지적됐듯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반부패·탈권위의 민주주의에는 성공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했습니다. 이념에 바탕을 둔 정책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데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권위주의 정부의 성장주의를 우선시했고, 그 결과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노대통령이 견지해 온 당·정 분리 원칙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라크 파병, 한·미 FTA와 같은 어젠다 앞에서 열린우리당은 줄곧 무기력했고, 한나라당에 대한 대연정 제의는 당을 뿌리부터 흔들었습니다. 김근태·정동영·천정배·이해찬·한명숙·유시민·김두관씨 등 여당의 중진과 유력인사들을 모조리 입각시킨 것도 대통령으로선 당·정 협력이고, 본인들은 국정경험을 쌓는 기회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으로선 구심력의 상실이었습니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대통령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의 차이입니다. 먼저 노 대통령은 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대통령의 과도한 정치개입이라는 비판을 비켜가려는 방편이라면 체면을 구길 일입니다. 진정성도 의심 받을 뿐입니다. 대통령과 정치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 대통령의 현란한 행보에 열린우리당은 그저 주저앉아 있을 뿐입니다. 한 탈당파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노 대통령에게 감금돼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인 노무현’에게 포박돼 있는지 모릅니다. 당을 박차고 나간 창당 동지들도 지역주의를 향해 몸을 던지는 것보다 노무현으로부터의 탈출이 더 다급했다고 봅니다. 정치인 노무현이 여권의 붕괴에 좌절하는 지금, 국민들은 대통령 노무현의 실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연말 대선 너머로 정치인 노무현은 어떤 정치를 그리고 있습니까. 국민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맡긴 것은 2008년 2월24일 자정까지의 대한민국 국정입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개헌불씨’ 대선본선서 재점화될 듯

    ‘개헌불씨’ 대선본선서 재점화될 듯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4일 ‘임기내 개헌안 발의 철회’를 밝힘에 따라 개헌 정국의 난맥상은 일단락된 형국이다. 하지만 개헌안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같다. 정치권 스스로가 ‘18대 국회에서 추진한다.’고 약속한데다, 노 대통령 또한 대선정국 내내 정치권의 자발적 합의를 강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구체적 로드맵 제시해야 혼란없어 100여일간의 개헌정국에서 정치권은 갈짓자 행보를 보였다.1987년 4·13 호헌조치 반대투쟁으로 쟁취했던 직선제 개헌 이후, 정치권은 다시 한번 시대적 요청에 떠밀려 지난 대선공약으로 개헌 추진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같은 소신을 뒤엎고 ‘개헌논의 불가’→‘18대 개헌추진’ 등 혼란상을 보였다. 차제에 개헌안의 구체적 로드맵을 이번 국회에서 제시하지 않을 경우, 이번 합의가 무거운 과제를 18대 국회로 미룬다는 비판을 받을 전망이다. 특히 대선주자들에게는 이같은 정황이 고강도 압박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짙다. 더군다나 18대 국회가 개헌을 추진하게 되면 권력구조 개편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와 토지공개념, 인권, 여성, 평화 문제 등 새로운 시대가치에 대한 ‘포괄적’ 문제제기가 이뤄질 전망이다.‘포괄적’ 개헌안에 담긴 내용은 변화된 시대상의 모든 요구를 반영하고 있어 그 자체가 대선이슈를 다각화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관련, 각당 대선주자들은 노 대통령의 ‘임기내 개헌안 철회’를 환영하면서도 온도차를 보였다. 한나라당 박근혜·이명박 후보는 노 대통령이 민생현안에 진력해야 한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었다. 반면 열린우리당 대선주자들은 ‘18대 개헌약속 준수’에 무게를 뒀다. 양측 모두 실천가능한 개헌안의 실체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노대통령, 국회 본청앞 계단서 연설 검토 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계획을 철회하기까지 청와대와 정치권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12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를 만나 “개헌 발의는 대통령으로서 지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이라면서 “연설문 원고도 다 준비돼있고 한나라당이 끝내 방해한다면 비상한 수단을 동원할 생각까지 갖고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비서실장이 언급한 ‘비상수단’에는 노 대통령이 국회 본청앞 돌계단에서 연설을 강행하는 것도 포함됐다고 한다. 문 실장과의 회동 직후 장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를 찾아가 청와대의 개헌 의지를 전하며 개헌안에 대한 당론확인을 강하게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일단환영, 국정에 올인을” 한편 정치권은 노 대통령의 임기내 개헌안 발의 철회 방침에 대해 일제히 환영했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정치적 문제에서는 손을 떼고 오로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후속대책과 북핵폐기 이행 등 산적한 현안 해결에 올인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도 “노 대통령은 한·미 FTA 마무리와 특히 남북문제 등의 현안이 햇빛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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