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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두회견 90분” 이모저모

    ◎“입시과열 시정”… 대입개혁 소신있게 피력/“북방정책은 대미·일관계 바탕”… 미와의 우호 강조/수치까지 적시,사회·경제등 전분야 막힘없이 답변 ○…8일 상오9시부터 1시간30분여에 걸쳐 청와대 춘추관 2층에서 열린 노태우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은 그 어느 해보다 차분히 진행된 것이 특징. 전국에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계속된 이날 회견에서 노대통령은 국정 전반에 걸친 출입기자들의 까다로운 질문에 구체적 수치까지 적시하며 막힘없이 답변,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의 문제점을 체득하고 있음을 과시.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와 관련,『노대통령이 취임이후 행한 연설분량만 해도 원고지로 4천페이지』라면서 『이제는 모든 분야에 대해 아실만큼 아신다』고 설명. 노대통령은 이날 취임후 3번째 연두회견에서 여권의 차기 대권후보문제,내각제 개헌문제 등 정치성 짙은 질문에는 원론적인 단답으로 응수했으나 경제나 민생치안문제,북방외교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히 답변해 새해에도 작년에 이어 물가안정·범죄근절등에 국정의 주안점이 두어질 것임을 시사. 특히 근로자 임금인상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관련해서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기 보다는 대국민 설득을 더 염두에 둔 듯한 인상. 이날 회견장에는 노재봉 총리서리 등 전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진들이 배석했으나 지난해처럼 일부 배석자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직접 대답을 시키지 않은채 모든 질문에 대해 노대통령이 답변.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지난해 청와대의 전 언론사 개방이후 처음으로 열린 회견이어서인지 1백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여 회견에 대한 관심도와 함께 한층 개방된 분위기를 반영.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9시 노총리서리·정해창 비서실장과 함께 회견장에 입장,미리 준비한 회견문을 25분여에 걸쳐 차분한 어조로 낭독한 뒤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좌정한채 11명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비교적 상세히 답변. 노대통령은 회견문에서 『지방자치의 성공을 위해서는 유권자인 국민 여러분이 선거혁명을 이루어야 한다』면서 『모두가 금품과 선심을 스스로 거부함은 물론 깨끗한선거를 치르는 감시자가 되어달라』고 올봄 실시되는 지방의회 선거의 공명정대한 관리의지를 피력함과 동시에 국민들의 협조를 당부. 이어 기자들의 첫 질문에서 『대통령께서는 외치에는 강하고 내치에는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노대통령은 『첫 질문부터 상당히 어렵다』고 웃음띤 어조로 응수한 뒤 『겸허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여서 국정에 좋은 참고로 하겠다』고 답변. 노대통령은 또 여권의 차기 대권후보를 언제·어떤 방식으로 결정할 생각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미리 예상했다는 듯 『기자회견을 할때마다 대권후보 얘기가 나왔는데 오늘 또 나왔다』고 말해 회견장에 웃음을 자아낸 뒤 『민자당 당헌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후보가 선출되는 것이 원칙이며 시기는 나의 임기만료 1년 전후가 적합하다』는 원론적 수준의 응답. 노대통령은 『여권의 대권후보가 민자당내 인물에 국한되느냐』는 물음에 『민자당내에는 다음 정부를 이끌어 갈 인물이 많다』고 긍정적으로 답해 눈길. 내각제 개헌과 관련,노대통령은 『다수 국민이 원하지 않는 개헌은 할 수 없는 것』이라며 『너무 간단하지만 분명한 답변』이라고 피력. 노대통령은 회견중 여러차례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언급했는데 『북방정책이 대미·대일 외교와 선택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면서 『북방정책은 대미·대일·대EC(유럽공동체)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 노대통령은 이어 노사관계·과소비문제 및 민생치안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금년에도 이들문제와 함께 물가안정을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천명. 노대통령은 이날 마지막 질문인 대학입시 개혁문제에 대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은 교육』이라고 전제하고 오는 94년부터 대입제도를 전면 개혁하겠다는 방침을 소신있게 피력. 노대통령은 『춘추관이 개방돼서 그전에는 제한된 언론사만이 출입했는데 이제는 20개사가 추가됐고 외신기자들도 자리를 함께 해 기쁘다』면서 『여러 질문이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시간의 제약을 받아 아쉽게 생각한다』는 인사로 회견종료를 선언. 노대통령은 『끝으로 어느 신문의 연두사를 읽었는데 매우 감명이 깊었고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면서 「우리는 다시 뛰어야 한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뛰어야 한다. 눈으로는 세상을 보면서 다리로는 땅을 굳게 딛고서 입을 다물고 하고싶은 말을 한마디씩만 참자」는 연두사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회견을 마무리.
  • 해외공관장 대폭 이동/외교가 인사설로 술렁

    ◎외교강 정비·개각 맞물려 점치기 부산/미니공관 정비,외교관 수급조정/92년까지 10여곳 폐쇄,동구권에 충원/박 주미대사등 총리물망… 연쇄이동 예상 한소 수교,한중 무역대표부 교환설치합의 등 굵직한 사건들로 90년대 원년을 화려하게 수놓은 외교가도 연말을 맞아 외교망 정비와 정례이동에 따른 인사설로 술렁거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박동진 주미 대사,이원경 주일 대사,이상옥 주제네바 대사,오재희 주영 대사 등 거물공관장들이 근무연한(3∼4년)이 꽉찬 데다 내년 1월초로 예상되는 대폭 개각과 묘하게 맞물려 있어 과거 어느 때보다 인사이동의 폭이 크리라는 전망이다. 그렇지만 실전부대격인 현직 외교관의 가장 큰 관심은 지난해부터 이미 추진된 중동·아프리카·중남미 등지의 미니공관 철수 또는 폐쇄방침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한소 수교로 상징되는 북방외교의 대단한 성과에 힘입어 지난해 이미 부르키나파소,중앙아프리카공화국,바베이도스,니제르 등 중남미 및 아프리카지역의 4개 공관을 폐쇄조치했으며 올 상반기에도 아프리카의 르완다 상주공관을 철수시킨 바 있다. 물론 이같은 외교망 정비작업은 그 동안 남북한간 소모적인 대결·경쟁외교 차원에서 이루어진 단순한 「외교공관 숫자늘리기」 노력을 그만두고 지역별로 거점공관을 설치·운영해 기동력있는 외교망을 구축하겠다는 정부방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외교망 정비와 관련,오는 92년말까지 중동·아프리카·중남미 등지의 10여 개 미니공관을 폐쇄할 계획으로 있다. 최호중 외무부 장관도 올해 국정감사에서의 업무보고를 통해 이러한 공관폐쇄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들 공관중 2,3곳을 철수할 예정인데 공관이 철수하더라도 외교관계는 그대로 지속되므로 그곳 대사는 이웃나라 대사가 겸임하게 되며 이 지역에 근무하던 외교관들은 일단 철수,다른 공관으로 옮기게 된다. 이들은 최근 1∼2년 사이에 신설된 공관으로 대부분 배치될 예정. 소련을 비롯,외교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헝가리·체코 등 동구권 6개국 공관은 아직까지 공관유지 필요 인원수에 태부족이기 때문. 지난 11월초 문을 연 초대 주소 대사관은 경제부처 등의 주재관을 제외한 외교관이 10여 명에 지나지 않아 당초 목표로 설정했던 주미·주일 대사관 규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또한 동구권 공관들도 대략 3∼4명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앞으로 2∼3명 정도 추가해야만 하는 실정. 이와 함께 빠르면 내년 상반기중 달성될 것으로 점쳐지는 한중 수교도 필연적으로 외교관 수요를 촉발시킬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형편. ○…외교망 정비와 함께 외교관들을 술렁이게 만드는 것이 미·일 등 주요 공관장들의 향후 거취문제. 박동진 주미,이원경 주일 대사와 이상옥 주제네바,오재희 주영 대사 등은 나름대로 부하직원들의 신망을 받음과 동시에 보스기질이 있는만큼 이들이 어느 「자리」로 옮기느냐에 따라 연쇄이동의 파장이 클 것으로 관측. 우선 이 주일 대사와 박 주미 대사는 비록 특임 공관장이지만 평균적인 근무연한(3년)이 꽉찬데다 두 사람 모두 외무장관을 거치는 등 과거의 화려한 경력으로 인해 차기 국무총리 물망에오르고 있다. 이들이 만약 국무총리에 임명된다면 미·일 등에서 같이 근무했던 외교관들의 승진이나 수평이동이 잇따를 전망. 또한 이 주제네바 대사와 오 주영 대사는 현 최호중 장관이 교체될 경우 후임 외무장관에 선임될 수 있는 선두주자. 이·오 두 대사는 모두 고시 8회 동기로 이미 장관에 임명되기 전의 필수코스인 외무차관을 지낸 데다 중요 보직인 제네바와 영국 공관장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교관들은 총리후보감인 박·이 대사보다는 이들 두 사람의 향후 보직에 오히려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실정. 두 대사 중에는 먼저 외무차관을 지낸 이 대사가 앞으로 우리 외교의 중요부분을 차지하게될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타결과 이에 따른 각국간의 다자간 통상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오 대사보다는 조금 앞선 평점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 대사도 경북고 출신에다 노재봉 대통령비서실장과 처남·매부지간이라는 막강한 후광을 등에 업고 있어 외무장관에 임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 오 대사는 또한 외무장관이 되지 않더라도 이 주일 대사 후임으로 주일 대사에 임명될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주일 대사로는 최광수 전 외무장관이 선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30년 이상의 외교관 경력을 가진 두 대사말고도 이홍구 대통령정치특보가 미·일 등 주요 우방국 인사들과의 안면이 넓은 데다 외무부 직원들로부터도 비 커리어(경력외교관) 출신이지만 상당한 호감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하게 후임 외무장관으로 거명. 그리고 최 장관은 교체될 경우 그 동안의 업적으로 인해 조금 시간적 여유를 가진 뒤 주미 대사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으며 노창희 대통령의전수석은 오 대사 후임으로 주영 대사에 임명될 공산이 크다. 유종하 차관도 본인은 유임을 희망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주영 대사를 강력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민방」내락설등 전면 부인/국감 마지막날/태영 윤회장 참고인 진술

    ◎전기·가스료 인상률 협의중/사정반 존폐여부 연말 결정/정부 답변 국회는 3일 외무통일위를 제외한 16개 상임위별로 국방·재무부·공보처·보안사 등 정부 각 부처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된 9일간의 국감활동을 모두 마쳤다. 이날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보안사의 민간인사찰 방지대책과 기구축소 방안,우루과이라운드 대책,금융산업 구조개편 등을 따졌으며 문공위는 공보처 감사에서 민방 지배주주로 선정된 태영의 윤세영 회장을 참고인으로 출석시켜 주주선정 배경을 집중 신문했다. 윤 회장의 참고인 진술에 앞서 평민당측은 민방의혹 해소를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과 국회청문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문공위는 야당측의 청문회개최 동의안을 표결에 붙여 가4 부11,기권1 등으로 부결시켰다. 태영 윤 회장은 이날 진술에서 항간에 유포되고 있는 ▲특정 정치세력과의 유착설 및 각종 배후설 ▲특혜금융 의혹 ▲관급공사 특혜의혹 ▲사전주가 폭등 등 사전내락설 ▲자금출처 등이 사실이 아니라고 모두 부인했다. 윤 회장은 『현재 태영이 진행중인 공사는 총 50건에 2천8백11억원 규모이나 이중 관급공사 비율은 54.7%인 1천5백38억원으로 건설업 평균 관급공사 비율 55%를 밑돈다』고 주장했다. 윤 회장은 『지난달 14일 (주)서울방송 설립시 보유 유가증권 처분,운영자금 여유분 및 일부 차입을 통해 1차분 출자금액 1백50억원을 이미 납부하였으며 잔여 납입금 1백50억원도 12월중 4백20억원의 공사수금이 있을 예정이므로 방송출자 자금조달에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출자 자금조달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부인했다. 윤 회장은 『새 민방참여를 권유한 사람은 처남인 대구 MBC 상무 변건씨 외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로비를 한 상대도 없었다』고 말하고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국민 앞에 책임을 지겠다』고 답변했다. 국방위의 보안사에 대한 감사에서 유준상 의원(평민)은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은 내각제 반대세력에 대한 사찰과 반정부운동을 탄압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73년 이후 민방 지배주주로 선정된 태영이 72억원어치의 군 공사를 시공했는데 이에 대한 보안조사를 했느냐』고 따졌다. 구창회 보안사령관은 『문제가 됐던 보안사 유출자료는 대군방첩업무를 수행키 위해 신상내용을 발췌,순수한 업무참고용으로 정리한 것이므로 대민사찰과 관계없다』고 밝혔다. 구 사령관은 보안사 조직개편 방향과 관련,『현행 부대의무 중에서 사찰 등 월권행위 의혹과 국민적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삭제하고 방첩·보안·쿠데타 방지 등 기본기능을 중점적으로 수행토록 조정하겠다』고 말하고 『앞으로 군관련 대민업무 영역의 한계를 명확하게 설정,군 정보수사기관으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답변했다. 자정 넘게 계속된 운영위의 대통령비서실에 대한 감사에서 노재봉 비서실장은 최근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조직폭력배와 현직 검사·판사의 주석동석 사건과 관련,『검찰 스스로가 명예를 걸고 비리척결의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주시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노 실장은 또 특명사정반의 존치시한에 대해 『금년말경 그 동안의 활동실적을 분석,계속 존치시키거나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문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무위의 재무부 감사에서 정영의 재무부 장관은 자본시장이 개방될 경우 외국자본의 대기업 편중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상장기업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한도를 설정함으로써 특정 종목에 외국인투자가 편중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동자위의 동력자원부 감사에서 이희일 동자부 장관은 『전기요금은 원가상승 요인과 투자재원 조달소요 등으로 인상요인이 있어 경제기획원과 인상을 협의중에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연내 인상가능성도 있다』고 밝히고 『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등의 소비자가격도 인상률을 놓고 관계부처와 협의중』이라고 말해 연내 인상가능성을 비췄다.
  • 「골프장금지지역고시제」도입/정부,국감답변

    ◎상수도요금 내년 9% 인상/군의료진 페만파견 검토/“태영주식 변칙증여 의혹” 국회는 국정감사 4일째인 29일 운영위를 제외한 16개 상임위별로 소관 중앙부처 및 산하기관들에 대한 감사활동을 계속했다. 이날 경과위는 과기처 감사에서 안면도 폭력시위사태와 관련한 핵폐기물 처리시설 문제,보사위는 환경처 감사에서 환경오염 문제,재무위는 국세청 감사에서 민방 지배주주 태영의 증여세 부과문제 등을 따졌다. 서영택 국세청장은 재무위의 국세청 감사에서 민방 지배주주 태영에 대한 세무조사를 촉구한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규정상 구체적인 탈세혐의가 있는 경우에 착수할 수 있으며 단순히 민방출자자금을 낼 수 있느냐 또는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는 정도의 의문점만으로 실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서 청장은 그러나 태영 회장 윤세영씨의 아들 윤석민씨(26)가 지난 8월과 9월 사이에 4억6천만원어치의 태영주식을 산 데는 변칙증여의 의혹이 있다는 여야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증여세 신고시한이 내년 2월말까지로 돼 있는만큼 신고 내용을 보고 의심이 가면 조사해 보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서 청장은 『태영이 지난 8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 재개발지구에 법인명의로 1천1백35평의 땅을 96억원에 매입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법인명의로 산만큼 별도의 자금추적은 필요없다고 본다』고 답변했으나 『구입토지가 업무용인지 비업무용인지 여부는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 청장은 이어 『국세청차원에서 분석된 태영의 재무구조와 납세실적은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날 국세청 감사에서 김덕룡(민자),유인학·이경재·김봉욱 의원(이상 평민) 등은 『태영의 현재 재무구조상태로 미루어 수천억 원의 소요자금이 드는 민방설립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여부가 의심스럽다』면서 『태영이 최근 5년간 부동산투기조사는 물론 단 한차례의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특별세무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방위의 공군본부 감사에서 한주석 공군참모총장은 차세대전투기사업과 관련,『F18전투기의 도입 지연으로 공군전력상 차질이 올 경우에 대비,F4팬텀기의 성능 개량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고 『최근 국방부 차세대전투기사업단장과 공군 항공사업부장을 교체,차세대전투기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무통일위의 외무부 감사에서 황병태 의원(민자)은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등과 관련,국제감각을 갖춘 외무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용의는 없느냐』면서 『한소 정부간 회담의 우리측 수석대표에 외무부관계자가 아닌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이 임명된 것은 외무부가 업무를 방기한 한 징표가 아닌가』라고 추궁했다. 최호중 외무장관은 답변에서 『대소 교섭에서 지금까지는 경협에 치중했으나 앞으로는 소련의 대북 정책변화 및 북한에 대한 개방유도를 주요과제로 삼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페르시아만사태와 관련,의료지원 필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기동력·조직력 등을 감안해 군대의 이동외과병원을 파견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추진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공위의 KBS에 대한 감사에서 서기원 KBS 사장은 『TV수신료를 인상할 계획이 아직은 없으나 앞으로 광고의존도를 낮춘다는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수신료 인상을 검토해나가겠다』고 답변했다. 서 사장은 자신의 거취문제와 관련,『사내 노사문제 등이 해결되면 약속한 대로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서 사장은 또 『KBS사태와 관련해 14명의 사원이 구속된 뒤 관대한 처벌을 바란다는 탄원서를 두 차례에 걸쳐 관계당국에 보냈으며 석방된 뒤 휴직중인 사원에 대해서는 사규의 범위 안에서 최대한 관용을 베풀 방침』이라고 말했다. 건설위의 한국수산자원공사 감사에서 이태교 사장은 내년에 전국 상수도료를 9% 가량 인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이날 『지난 88년 대청댐 광역상수도를 비롯한 남강 광역상수도,거제공업용수도 등 지난 3년 동안 모두 6개의 신규시설을 정부로부터 인수받아 관리하는 과정에서 자금압박요인이 발생하는 등 48%의 인상요인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보사위 답변에서 허남훈 환경처 장관은 『앞으로 생태계 보호가 필요한 산림은 특별보전지역으로 설정,골프장 건설 남발로 인한 산림훼손을 막겠다』고 말하고 『특히 올 연말까지 산림생태계 조사가 끝나는 대로 보전지역을 정해 산림훼손방지를 미리 예고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허 장관은 또 『전국 주요수역의 오염을 막기 위해 앞으로 가두리양식장의 신규허가는 불허할 방침』이라고 답변했다. 경과위의 과기처 감사에서 김진현 과기처 장관은 안면도 제2연구소 설립계획에 대해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건설은 처음부터 없었고,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 및 연구소 설립계획이었다』고 말하고 『안면도 제2연구소 설립문제는 제2백27차 원자력위원회에 정식으로 올려 백지화를 확정짓겠다』고 밝혔다.
  • 「10ㆍ13 범죄추방 선포」 왜 나왔나

    ◎“전환기적 병리 청산” 결연한 의지/폭력ㆍ퇴폐 만연… 공동체 존립위협 판단/“불법추방에 모든 수단ㆍ제도 강구” 천명/일과성 아닌 지속적 지원으로 민관협조체제 이뤄야 노태우 대통령의 「10ㆍ13 새질서 새생활 실천」 특별선언은 한마디로 전환기적 현상의 종식을 위한 통치차원의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5년 임기의 집권후반기에 접어든 국정최고책임자로서 민주화시대를 여는 과정에서 터져나온 폭력,무질서,불법,과소비 등 모든 전환기적 요소들을 과감히 단절시켜야겠다는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또 이같은 전환기적 현상의 근저에는 청소년교육ㆍ선도,건전한 시민정신의 결여,사치ㆍ퇴폐향락풍조의 만연,불로소득,투기심리,근검절약정신의 결핍 등이 깔려 있다고 보고 이같은 사회내부의 도전은 정부의 공권력만으로 치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범국민운동을 전개하여 이를 극복해야겠다는 대통령의 간절한 대국민호소라고도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새질서 새생활 실천」 특별선언을 한 것은 결국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문제들을 다시한번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재진단하여 보완대책을 정부가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민간사회단체와 각계각층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건전사회캠페인을 집중체계화하고 지원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차원높은 국민운동으로 승화,발전시켜 「더불어 함께 사는 새로운 민주공동체」 건설을 구현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이번 특별선언에서 3가지의 과제와 이에 따른 정부대응 및 대국민 동참을 역설하고 있다. 첫째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선포다. 굳이 「전쟁」이란 표현을 쓴 것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조직폭력배와 강력범,마약 조직을 단기간내 소탕하고 가정파괴범,인신매매범,유괴범도 완전히 추방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대범죄 선전포고와 관련,▲전외근 경찰관의 무장화 ▲경찰관의 계속 증원 및 장비보강 ▲흉악범ㆍ누범자에 대한 온정주의적 형사정책의 전환 ▲행형제도 개선 ▲청소년 선도 ▲범죄자를 잡다가 피해를 보는 시민에 대한 보상조치 등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전외근 경찰 가운데 65% 정도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1백% 지급하여 범죄자의 체포,검거에 총기를 적절히 사용토록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개정,경찰이 범죄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방침이다. 경찰관은 이미 89년 9천6백57명을 증원한 데 이어 금년말까지는 4천2백95명을 늘리고 내년에도 4천4백명 수준으로 증원시킬 계획이다. 현재 선진국들이 주민 3백50명당 경찰 1인인 데 비해 우리는 6백50명당 1인으로 아직도 경찰인력면에서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흉악범ㆍ누범자의 형벌은 그들의 기본권 보호도 필요하지만 피해자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들에 대한 사회격리를 더욱 가혹하게 한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또한 범죄자들이 형무소에서 다시 모의를 하고 범죄기술을 익히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강력범죄의 절반 이상이 누범자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는 통계에비추어 악질누범에 대해서는 사회보호법을 다시 손질해서라도 이들을 사회와 완전히 격리시키겠다는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강도를 잡다가 부상한 시민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예우와 보상을 해주도록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불의를 보고 참지 않는 시민정신」의 함양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겠다는 뜻이다. 범죄추방을 위한 이같은 정부의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에는 「특단의 대책」도 강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특단의 대책에 대해 『기존법률도 한계가 있으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범죄를 소탕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지만 다른 관계자는 검찰ㆍ경찰력을 총동원해서도 미흡할 경우 군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범죄를 소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어 주목된다. 둘째 불법과 무질서의 추방이다. 교통질서문란에서부터 전국토의 쓰레기장화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는 무질서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셋째 일하는 사회,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자는 것이다. 과소비와 투기,퇴페와 향락,사치풍조가 번지고 있는 한 근로가 존중되는 일하는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인식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퇴폐ㆍ향락을 조장하는 서비스산업의 팽창을 막고 제조업의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강력히 강구할 방침이다. 가령 주택가나 신축건물에는 유흥업소나 고급사우나가 들어서는 것을 일체 불허하고 제조업에 대한 금융ㆍ세제상의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첫째 과제인 범죄소탕은 정부가 책임지고 실천할테니 둘째,셋째 과제인 무질서추방,일하는 풍토조성은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현재 일부 사회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건전사회운동을 더욱 확산시켜 전국민이 동참하는 범국민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자는 것이 이날 노 대통령의 10ㆍ13특별선언 핵심이다. 앞으로 이 특별선언이 국민들의 공감을 사 명실상부한 국민운동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직자ㆍ지도층이 얼마나 진실되게 솔선수범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공직사회가 앞장서 행동에옮기지 않는다면 국민에 대한 설득력을 잃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특별선언도 한갖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또 노 대통령은 이미 연말까지 정치ㆍ경제ㆍ사회를 안정시키겠다는 5ㆍ7특별담화를 발표한 데 이어 「10ㆍ13특별선언」을 했기 때문에 범죄소탕 등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국민의 대정부신뢰는 크게 실추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특별선언은 오히려 정부불신을 증폭시킬 것이며 노 대통령 정부는 구두선만 외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비록 특별선언이 새질서 새생활 범국민운동에 점화작용을 했다하더라도 국민운동은 스스로 동력을 자가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는 이들 운동에 일과성이 아닌 지속적인 지원활동을 벌여야 하며 국민운동을 주도하는 핵심단체들도 개별단체의 홍보차원이 아닌 건전한 시민사회 건설이라는 큰 시각에서 상호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 대통령의 인내와 결단/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5년의 꼭 절반을 보내고 집권 후반기에 들어섰다. 대통령은 88년 2월25일 취임하면서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보통사람의 이미지를 강조함은 권위주의의 타파를 겨냥한 것이고 실제로 많은 부문에서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자유와 자율이 눈에 띄게 신장됐다. 대외적으로 동구권국가들과의 수교와 적극적인 대북정책도 큰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집권 전반기의 이같은 부분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현실은 정부ㆍ여당 스스로 표현한바 있듯이 총체적 난국으로 진단되고 있다. 국내외 상황이 한창 어지러울 무렵인 지난 5월이었다. 집권계층이 과연 어떤 기준을 근거로 총체적 난국임을 인식했는지 확실치 않다. 무언가 위기의식을 느꼈을 터이고 국면대응의 절실한 각오를 갖기도 했을 것이다. 노대통령 자신도 당시 어느때보다 예리한 현실인식과 자기비판,그리고 난국수습을 위한 일련의 정책을 담은 특별담화를 발표하기까지 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대통령의 특별담화는 위기극복책의 효과보장이라는시각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6공화국 출범이래 경제적부침을 증폭시켜온 부동산 투기ㆍ증시불안ㆍ노사분규ㆍ수출부진과 치안불안 등에 정부 여당은 항상 너무 안일하게 대응해왔다는 국민의 인식을 불식시키지 못했다. 그것은 위기관리와 관련한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정운영 노하우의 능력까지도 회의케하는데로 확산됐던게 사실이었다. 공통체집단의 경제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임계량이론이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한 인간중심의 경제학자 슈마허가 그의 경제학 이론에서 제시한 명제이다. 즉 어떤 인간이나 조직사회는 일정한 크기의 용량이 있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면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 또는 조직사회의 의도와는 달리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갈 수 있다는 논리이다. 경제사회 또는 정치적 국면의 한계상황을 지적하는 경고도 될 것이고 정확한 진단과 처방없이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위기국면이 초래될 수 있다는 난국극복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지적도 될 것이다. 노대통령 절반임기가 그런 상황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대통령은 그 자신이 자평하듯 결단하고 행동하기보다 먼저 정관하고 인내하는 사람이다. 89년 연두기자회견때 기자들이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과 관련,「인내」의 성격과 한계가 무엇이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대통령은 지체없이 『여러분 내가 약하게 보이느냐』고 반문하고는 세간의 평가를 의식한 듯 『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도,장면도 아닌 노태우 일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얘기한다. 나는 천천히 착실하게 가되 앞으로 나가지 절대로 뒤로 후퇴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강권을 휘두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무질서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 참으로 많이 인내한다. 그러나 인내하되 나와 이 나라에 주어진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민주적인 리더십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노대통령의 리더십 성향과 관련하여 「물대통령론」도 있다. 그 자신 이런 표현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스스로 물 예찬론도 전개한다. 『나보고 물태우라고 한다는데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소크라테스의 지도자론을 보면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상은 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너그러운가하면 인색도 하고 소름끼치도록 무서우면서도 부드럽고 고정된 형태가 없는 사람이 지도자로서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당당하고 꾸밈이 없는 물 예찬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득 노자 도덕경에 이르게 된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가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길(도)에 가깝다』(상선약수ㆍ수선리만물이부쟁ㆍ처중인지소오ㆍ고기어도) 임기 3년을 지내고 2년여 남겨놓은 노대통령이다. 인내도 많이 했고 정관도 해보았다. 이제 인내의 한계와 정관의 이치를 알아 행동할때에 이른 것이다. 그의 경륜과 개성과 품성과 리더십과 통치력을 어떤 형태로든 극대화하여 위기국면을 돌파해내는 실천력을 보일법도 한 시점에 이르렀다. 그가 구사하는 물 예찬론처럼 뭇사람(국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고 다투게도 하지 않으며 낮은 곳에 위치해서도 민을 위할 수만 있다면 지도자로서 도통하는 것이다. 최고 정치지도자는 아울러 격과 신뢰를 가져야 한다. 한번 잃으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덕목이다. 생명과 같은 것이다. 지난날 전두환씨가 지도자로서 갖지 못했던 것은 정통성과 정체성뿐이 아니었다. 이 격과 신뢰를 그는 결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가질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이 그는 대권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다르다. 그가 인내와 정관을 앞세우고 저돌적이고 돌파적 행동력이 아닌 우회적 방법론을 구사하는 대통령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위험부담을 될수록 피하고 확실하게 가는 쪽을 택할지 모른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지가 않은 것이다. 대통령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고 누가 얘기했다. 끝내 행동없는 인내는 인내로만 그칠 뿐이다. 어느것 하나 해결하고 남겨놓는 일 없이 「인내한 대통령」으로만 그친다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안쓰러운 일일 것이다. 위험부담도 시행착오도 각오하고 난국에 당해 「나를 따르라」며 정면 돌파력을 보여야 한다. 요컨대 인내뒤의 결단과 실천력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최악의 위기위에 더 이상의 위기는 없고 위기는 극복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국민을 설득하고 납득시키며 참으로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지도자라면 더욱 좋다.
  • 동북아 새 질서 태동 진단(서울신문 광복45주년 특집)

    ◎한반도에도 데탕트 기류 가속화/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교수/「4강 역학」 어떻게 변화될까/평화공존 10여년 거쳐 통일정부 수립 가능성/GNP 1만불 육박땐 「5극체제」 출현 예상 지금 세계는 동·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를 지양,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이행하려 하고 있다. 런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의 선언과 미 휴스턴의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의 선언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및 그것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공산주의의 좌절선언에 지나지 않았다(프랜시스후쿠야마 「세계를 말한다」 산경신문 7월31일). 38도선의 북쪽에 「아웃 사이더 국가」 즉 북한이 존재하고 있는 한반도도 그같은 세계변화의 큰 격랑속에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웃 사이더 국가를 포기한다는 것은,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룰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되는 것이며,대내적으로는 「남반부 해방에 의한 통일」이라는 혁명노선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이상 세계정치의 본류를 우선 확인한 연후에 10년후 21세기초의 동북아시아 정세를 전망할 경우,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시점에서의 남북 분단의 극복 상황이다. 거기에는 3가지 케이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제1은 북한이 언젠가는 닥쳐올 김일성주석의 죽음을 계기로 분단의 현상을 받아들여 평양정권의 존속을 꾀하기 위해 남북한 교차승인과 공존체제를 인정하고 그 결과로써 「1민족 2정부」의 상태가 도입되어 꽤 장기에 걸쳐 지속하는 케이스이다. 제2는 노태우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통일안」에 따라 과도적으로는 남북 국가연합의 단계를 거쳐 통일국가의 형성을 지향하는 경우이다. 제3은 과도적 단계를 생략,동·서독일처럼 통일총선거를 선행시켜 일거에 통일정부를 발족시키려 하는 경우이다. 제1의 케이스는 72년 12월 국가간의 기본조약을 맺고 「1민족 2국가」의 체제를 작년 11월의 베를린장벽 붕괴로 연결시킨 동·서독일형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동서독일형은 3월 실시된 동독의 총선거에서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동독시민이 과도적인 국가연합단계를 생략,「독일의 재통일」을 희구하는 중도우파연합을 압도적으로 지지한결과였다. 다시 한번 3가지 경우를 앞으로 예상되는 10년간의 한반도의 내외 정세추이에 맞춰볼 때 남북한도 다시 동서독 같이 남북공존체제의 제1의 케이스를 거친 뒤 점차 실현성을 갖게 되는 통일에 대한 남북시민의 실현의지의 강도가 동서독같이 「국가연합」의 단계를 생략시켜 제3의 케이스를 지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진다. 남북 공존체제를 통해 북한의 주민·민중들이 곧 알게되는 것은 남북 양체제의 우열이다. 그 우열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가속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합치하는 것으로써 북한민중들도 동독시민들이 베를린의 벽을 「시대의 흐름」으로 붕괴시켰던 것처럼 군사분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추세일 것이다. 여기서 좀더 대담한 예측을 해 본다면 앞으로 10년을 거쳐 21세기의 초장을 맞는 한반도에는 수도를 서울로 하는 통일국가,통일정부를 수립해 문자 그대로 선진국에 들어서려는 국가가 출현할 것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인구 7천만,국민 1인당 GNP 1만달러에 육박하는 국가의 출현이다. 인구 7천만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재통일을 이루려는 90년대 초의 동서독인구 7천7백만명에 필적하는 것이며 인구 규모로서는 선진 7개국중의 프랑스 이탈리아(양쪽 5천만명대)를 능가한다. 90년 현재 한국의 국민 1인당 GNP는 5천달러,북한은 1천달러(추정)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연간 7.2%의 성장률을 10년간 계속 확보한다면 1만달러 수준의 달성은 가능하다. 남북 공존체제는 북한경제의 개방체제를 더욱 촉진시켜 한국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남북 경제교류기금 2천∼3천억원의 운용과 북한합영법에 의한 남북 경제교류의 신장과 확대로 결국 남북통일에 앞서 북한경제의 한국형 경제에로의 수렴을 불가피하게 한다. 남북통일의 상징은 한국의 현대그룹이 계획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천연가스 수송을 위한 파이프 라인이다. 야크츠크로부터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나아가 평양을 거쳐 서울·부산까지 이어지는 4천㎞의 에너지 동맥이야말로 남북을 직결시키는 원동력이다. 파이프 라인 부설이 가져오는 주변의 경제개발이라는 파급효과도 시베리아·남북한을 통해 막대하다. 세계적 명산 금강산의 본격적인 관광개발사업도 남북 공동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며,그 공동사업이 초래하는 남북일체감 조성의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나아가 한국·일본·소련 사이에 최근들어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일본해=동해신시대」(조일신문 7월6∼14일 연재)는 남북공존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북한이 참가하고 북한경유 「일본해=동해」를 연결하는 중국 동북부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21세기와 함께 동북아시아에 성립하게 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경제적 측면을 대표하는 신경제권으로 될 것은 확실하다. 인구 7천만,국민 1인당소득 1만달러국가의 출현은 경제적으로는 중·소를 압도하는 경제국가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기존의 미·소·중·일의 주변 4대국에 남북통일 한국을 첨가시켜 동북아시아에 5대국에 의한 오극구조시대가 대두한다는 것과 직결된다. 오극구조를 갖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세력균형의 이상적 체제와 위치를 부여한 것은 키신저박사(전미국무장관)의 연구성과였다. 물론 21세기 초엽 동북아시아지역에 통일한국을 축으로 오극구조가 성립된다는 것은 현단계에서 거대한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오극체제의 성립을 보증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극의 한귀퉁이를 중·소가 각각 맡기 위해서는 중·소 자신이 더욱 개방체제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가적 안정과 발전을 꾀해야 한다. 이 지역에 역사적으로도 가장 활발한 이해관계를 갖는 중·소 양국의 안정적 발전없이는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는 그림의 떡이다. 이것은 남북 통일국가의 출현없이는 있을 수 없는 신국제질서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남북을 통한 한민족의 역량이며 영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 45년,세계 격변의 시점에서 정말로 타의에 의하지 않는 민족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통일국가 실현의 지평을 여는 것이야말로 주변 4대국의 전면적인 협조와 협력체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에 의한 안정적 신질서의 도래는 모든 것이 그 한가지 사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윤병익 통일연수원 교수/「통일시나리오」를 엮어보면…/체제공존→동질성 회복→총선이 합리적 수순/「4강 지렛대」로 북녘 개방 적극 유도 바람직 해방 45돌을 맞았다. 우리의 민족해방은 국제정치적 희생물로서 강요된 45년의 민족분단사로 이어져 우리 민족은 남북한체제의 갈등 속에서 끝없는 고통과 국가발전의 제약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은 국제적으로는 동·서 체제간의 긴장완화 추세,공산권전반의 개혁·개방정책,목전에 이른 독일통일,그리고 민족 내부적으로는 변화된 국제정세의 파장을 한반도에로 끌어들이려는 양국및 국민의 노력이 상승작용을 하여 통일을 앞당기려는 민족의 열망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또 「국제정세와 남북한 체제발전추세의 맥락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예상모형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민족통일운동의 방향모색을 위해서도,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올바른 통일실현을 위해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분단국문제의 해결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분단쌍방체제간의 평화공존,교류·협력관계의 정착화를 통한 민족동질성의 회복 그리고 총선거를 통하여 국민이 선택하는 통일국가의 수립만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북한당국이 체제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한사코 거부함으로써 한반도 통일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 북한당국은 통일로 가는 불가피한 과정인 남북한체제의 상호개방을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란 북한통치명분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른바 「조선노동당시대의 기념비적 건조물」로 꾸며진 평양은 개방할 수는 있으나 「미제의 식민지」아니면 「거지소굴」로 선전되어 온 「남조선」을 북한주민에게 개방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당국은 서독체제로 흡수·통합되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남북한 체제개방의 결과를 예견하고 전율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내세우면서 『남북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연방제로 최종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고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간의 연방구성안이 아니며,「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이란 「선남조선혁명,후통일」전략의 일환이다. 따라서 진정한 통일방안이라기보다 전 한반도의 공산화 방안임이 분명하다. 남북한 체제공존을 북한체제 전복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북한당국으로서는 「연방제 통일」의 주장과 함께 대남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체제수렴론」이 한반도의 통일방안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현상황하에서는 결국 국민에 의한 「체제선택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을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인간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등으로 위장을 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적 한계성을 자인한 것임에 틀림없으며,따라서 우리는 아집이 아닌 인류문명사적 시각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북한체제의 변화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유와 안정과 행복을 보장하는 통일국가의 수립을 표방하고 있으며 우리는 비록 마지막이 될지언정 공산권의 개혁·개방의 물결이 북한에도 와 닿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숙청으로 점철된 북한정치사 속에서 반김일성·김정일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이른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투쟁사」와 「주체사상」으로 세뇌된 신정체제하에서 조직적인 저항세력도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인민봉기에 의한 체제변화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위로부터의 변화」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북한당국은 남북한 경제발전의 격차를 의식한 나머지 1984년 합영법을 제정하여 대외개방경제정책을 제한적으로 시도하고,「경공업혁명」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비록 대남전략적 의도가 강할망정 종교활동을 선전하는등 제한적인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내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표방,체제수호를 위하여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통일을 위한 당면과업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의 물결을 어떻게 북한체제에 불어넣느냐의 문제로 압축된다. 우선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미소등 한반도 주변강대국은 동·서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남북대화를 강력히 종용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북경 등지에서의 접촉과정을 통해 미국과 북한만의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하는 북한에 분명히 거부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의 경제교류·협력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소련은 남북한 평화공존관계를 위한 「두개의 한국정책」 추진을 위해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의 허구성과 김일성·스탈린의 「한국전쟁」 유발책임을 폭로하고,한소수교를 가시화시킴으로써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하나의 조선정책」을 고집하는 김일성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소수교는 궁색한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에도 정책선택의진폭을 넓혀주고 있다. 이런 배경때문에라도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등 남북대화의 마당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공존을 지향하는 남북대화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의 자리에 나온다 하더라도 대남전략적 발상의 주한미군 철수,군축,한반도의 비핵·중립화 등 상투적인 군사문제 선결입장을 계속 제기하면서 당국,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한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관철을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남북한의 체제공존을 지향하면서 민족통일로 접근하려는 우리의 통일정책과 「남조선」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북한통일정책의 막판 승부의 장으로 급히 줄달음치고 있는 형국이다. 긴장완화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으로 기울어진 인류문명사의 대세와 신정체제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북한체제간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또 북한체제가 고립화되면 될수록 북한당국은 더욱더 「남조선」 민중과의 「통일전선」 형성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은 「남조선 혁명」 전략에 따른 북한의 대남 제의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오히려 북한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가까워질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대소 수출여력 소비재 12개뿐/모두 40개중

    ◎냉장고ㆍTV등만 요구에 충족/나머지는 국내생산도 달려 전면경협 어려워 소련이 우리나라와의 경제협력을 희망하고 있는 냉장고 세탁기 경운기및 경공업 기계장비등 40개 소비재 가운데 국내 업계가 소련요구량의 50%이상 공급여력이 있는 품목은 12개 품목에 불과,전체목록의 30%선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가 1백%이상 소련요구량을 충족시킬 수 있는 품목은 8∼9개 품목에 지나지 않아 당초 소련측이 희망한 대로 전면 경협이 이루어지기에는 난관이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9일 상공부가 잠정조사한 「대소소비재 수출여력현황」에 따르면 소련측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한국정부대표단에 전달한 경제협력명세서의 40개 소비재품목 가운데 냉장고와 TV 녹음기 라디오 비디오 전기다리미등 전자제품과 원형스타킹자동기계,1회용 주사기등 10여개 품목은 국산제품이 가격과 품질면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다 공급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가전제품 10여개 품목은 소련의 연간부족량 가운데 80%정도를 우리업계가 충족시켜 줄수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소시지 포장라인과 동력톱,살균용 광선투과장치,경운기등 나머지 품목은 국내생산능력이 모자라거나 수출여력이 없어 소련측과의 경협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분석됐다.
  • “탈냉전”… 변화하는 미 안보전략:상

    ◎「소 팽창 봉쇄」서 「지역안정 확보」로 전환/테러등 저강도전 대비,세계 경찰역은 계속/핵의존 탈피,기동력 갖춘 항모ㆍ경보병 역점 미국은 탈냉전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들의 군사전략은 새로운 평화시대를 맞아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서울신문 국제부 최두삼기자는 미국정부 초청으로 지난 6월중순부터 1개월간에 걸쳐 미국내 정부관리ㆍ학자ㆍ군부 및 의회지도자들을 두루 만나 변모하는 미국의 안보전략을 취재할 기회를 가졌다. 「변화하는 미국의 대외군사전략 목표」와 「동북아주둔 미국의 역할변화」로 나누어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소련의 의식전환과 갑작스런 동구공산블록의 몰락이란 역사적 대변혁기를 맞아 미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것이라는게 미국땅을 밟기 전까지 가졌던 기자의 선입견이었다. 워싱턴DC에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의회는 국방비 삭감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일부 학자들은 군비축소로 생겨난 여유자금을 평화기부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궁리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탈냉전시대를 맞으면서 이제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은 막을 내렸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미국의 군부지도자 학자 관리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지난 40여년간 미국의 군사전략 목표는 「소련세의 팽창을 봉쇄하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제3세계국가들을 중심으로 도처에서 일하고 있는 불안정 요인을 제어하는 「지역안정 확보」로 바뀌어야 하고 또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여전히 맡아야할 군사적 역할이 남아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제3세계가 주목표 이같은 군사전략 목표의 변화에 대해서는 미국내에서도 대표적인 진보주의 성향을 보여온 마이클 클레어교수(매사추세츠주 햄프셔대평화 및 세계안보연구소장)까지도 미국의 군사적 역할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클레어교수는 『냉전으로 인한 위기위식이 지난 40년간이나 지속됐으며 불과 몇달전에야 그같은 공포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증강되기 시작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력은 그 자체가 비정상적이었음에도 오래 가다보니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미국이 상당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군부의 주장에 동조한다고 밝혔다. 매사추세츠대에서 항공우주학을 강의하고 있는 로드 밀레교수(현역공군장교)를 비롯한 국방부 관리들은 지금까지 소련이나 바르샤바조약국들이 주요 위협상대였으나 앞으로는 게릴라 테러 국경분쟁내전 마약전쟁 등 저강도의 분쟁이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미소군의 갑작스런 축소는 지역헤게모니쟁탈전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며 대폭적인 군축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점에서 클레어교수는 미국의 군사전략목표가 소련권으로부터 제3세계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군부지도자들은 앞으로 전개될 전쟁양상으로 ▲미군의 파나마침공에서 보여준바와 같이 사상자도 많지 않고 단기간에 끝나는 저급강도의 전쟁과 ▲이란­이라크전과 같은 중급강도의 전쟁을 들고 이들 저ㆍ중급전투를 위한 준비태세를 갖춰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전투태세는 기동력을 수반하는 항공모함이나 경보병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재래무기 소폭 감축 이렇게 되면 현재의 유럽주둔 미군 유지비에 비해 규모가 축소되긴 하겠지만 역시 적잖은 비용이 들게 분명하다. 아마도 전략핵전력의 경우 급격한 감축이 예상되지만 재래식 병력은 크게 줄어들지는 않다는 얘기다. 탈냉전시대에 들어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핵전력의 감축이라는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는듯 했다. 이제 핵무기를 통한 헤게모니장악은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이용한 위협은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군수품의 지원ㆍ수출 등을 통한 헤게모니장악도 옛날얘기가 되고 있는듯 했다. 지금까지는 미소가 각기 자기네 블록내의 종속관계에 있는 국가들에게 무기를 공여,수출했으나 앞으로는 종속관계에서 동등한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을 배경으로 어느 정도 조정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역시 미소가 공동으로 중급국가들을 상대로 헤게모니장악을 노린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나 어느 한쪽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게 바뀌고 있다. ○중급국가 역할 커져 탈냉전시대의 또다른 특징은 과거 미소로부터 무기를 수입해오던 일부 중급국가들이 앞으로는 종전처럼 미소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3세계국가들에게 다른 무기들을 수출한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국가들로는 남북한이 꼽히고 있다. 이란­이라크전때 보여줬듯이 미소뿐 아니라 많은 중급국가들의 무기가 전쟁지역으로 흘러들어갔음을 이곳 군사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들 중급국가들의 역할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쨋든 미국은 탈냉전시대를 맞아 의회를 중심으로 군비축소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그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의회나 행정부는 장기적으로 미군의 25% 감축을 논의하고 있지만 제대로 실현될지는 의심스러워 보인다. 소련의 위협은 사라졌으나 국지적인 분쟁은 지속되거나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릴지도 모르며 이를 적절히 제어하는게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된다고 믿는 학자나 관리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주리대(세인트루이스)의 국제정치학자 조웰 글라스만박사는 『물론 소련은 변했지만 미국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그는 『과거에 미국은 한국이나 베트남에서 소련과 그 동맹국들의 팽창정책을 막기 위해 싸웠으나 이제는 달라졌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니카라과 이라크 등 아직도 국지적인 불안요인이 많아서 미대외정책의 가장 큰 관심사가 지역안정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중동으로부터의 석유수송로 보호작전개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중동수송로 비중 커 미국은 세계 석유부존자원의 77%를 차지하고 세계 석유부존자원의 30%를 공급하는 페르시아만일대 산유국들의 석유수송이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의 방해로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가정을 해왔다. 특히 연간 2만1천대의 선박이 지나는 수에즈운하와 그에 못지않은 바브엘만데브해협,그리고 호르무즈해협 등에 친소정권이 많이 등장함에 따라 보다 큰 경계를 해온게 사실이었다. ○평화배당금 적을듯 이제 이들 수송로에 더 이상 공산세력의 위협은 사라지게 됐다. 그렇다고 서방세계의 젖줄이라 할수 있는 이곳 해상수송로 보호작전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게 미국정부의 분명한 입장인듯 했다. 중동의해상수송로 작전을 맡고 있는 플로리다주 탐파의 미중앙사령부는 휘하에 40만대군을 동원할 수 있으며 연간 15억달러를 들여 수송로 보호작전을 펴고 있다. 냉전이후시대(POST Cold War Era)에도 이곳의 지역적 불안정때문에 미군의 역할이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미국조야의 대응태세로 보아 군축에 따른 평화배당금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거나 아예 기대하기조차 어렵겠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 제과업계,중국진출 추진

    동양제과ㆍ해태제과등 제과업계가 대중국투자진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2∼3년전부터 대중국제과류 수출이 증가한 점을 감안,일부 제과업체들이 대중국투자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국과자류 수출은 지금껏 홍콩을 경유한 우회방식으로 이뤄져 왔는데 현지에 합작공장을 설립할 경우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고 외국기업을 유치키 위해 중국정부가 부여하는 세제등 각종 특혜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합작공장 건설문제는 토지비용이나 건설비용을 제외하고도 5백만달러 이상의 자금이 기본적으로 필요해 업계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 한ㆍ소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역학」진단(전문가 좌담)

    ◎“한반도 긴장완화의 「지렛대」본격 작동”/크렘린,「두개의 코리아」사실상 인정한 셈/중국도 장기적으로 북한개방 유도할 듯/평양,대소의존 높아 「단절」어려울 듯/미군철수 겨냥… 전략차원서 대미접근 가능성/한ㆍ소발전은 서울ㆍ북경 개선의 촉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통해 수교원칙이 합의됨에 따라 양국관계는 급격히 개선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도 큰 변화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특히 한소정상회담을 격렬히 비난해온 북한이 이같은 사태변화에 어떻게 대처해 갈지,과연 북한도 개혁ㆍ개방정책을 추진해 갈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으며 북한­중국­소련의 북방3각관계가 어떻게 변모해갈지도 궁금하다. 이같은 문제들을 풀어보기 위해 신승권(한양대ㆍ소련정치) 박두복(외교안보연구원ㆍ중국정치) 윤병익교수(통일연수원ㆍ북한정치)의 좌담을 마련했다. □참석자 신승권교수 박두복교수 윤병익교수 ▲신승권교수=한소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관계의 급진전과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한국과의 수교원칙에 합의한 소련측의 결정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금년 3월 이전까지는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한미군사동맹 관계를 인정하면서 한반도에서의 1코리아(1Korea) 정책을 고수한다는 것이 소련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소간의 정치ㆍ경제ㆍ문화교류를 발전시킬 뿐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대남관계를 개선토록 하고 개방과 개혁의 방향으로 압력을 가하는 2코리아(2Korea) 정책을 펴나갈 것이다. 한국과 관계개선은 하되 국교정상화까지는 가지 않겠다고 북한측에 다짐했던 소련이 금년들어 학자와 언론인 등을 통해 김일성체제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근본적인 정책변화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박두복교수=한소관계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한중관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중소분쟁 완화이후 한소ㆍ한중관계는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 상승적인 작용을 해왔다.우리 정부의 북방정책도 이런 대전제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체제유지에 한계성 ▲윤병익교수=북한도 소련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입장을 표시할 수는 있지만 구조적으로 군사ㆍ경제면에서 대소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소련의 정책을 인정 내지 묵인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북한과 소련관계가 단절되면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무기공급이나 수리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고 한소수교와 국제화해 및 한반도 정세변화 상황을 나름대로 대남정책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2코리아 정책으로 입장을 바꾼다면 북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조선정권과 대한민국자체를 부인하는 등의 대남전략 기본속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한반도의 평화정착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등의 군사문제 타개책을 내세울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군축과 신뢰회복,외국군의 단계적 철수를 들고 나온 것은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여러면에서 체제유지에 한계가 있다. ▲박교수=중국은 대북한관계에 있어서 소련보다는 많은 제한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련은 분단극복과제를 안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정책을 펴나가는데 있어서 자유롭고 고르바초프 등 지도자들이 2차대전 당시 징집연령에 이르지 않았던 혁명 3세대로 실용주의적 가치체계를 갖고 있으며 군사ㆍ경제적으로 북한에 대해 확고한 제재수단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대만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중국」 (1 China)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에 한반도정책에 있어서도 행동반경이 좁고 등소평을 비롯한 실세지도층이 혁명 1세대들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한국을 인정하게 되면 결국 2코리아 정책을 받아들이는 꼴이 돼 1차이나원칙과 배치되는 모순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의 북방정책방향도 중국보다 행동반경이 넓은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함으로써 한중 관계발전의 자극요인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교수=소련은 정치개혁면에서는 중국에 앞서 있지만 경제개혁면에서는 훨씬 뒤져있다. 중국은 실용주의 경제노선에 착수한지 오래고 소련은 이제서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소간의 경제발전 경쟁과 협력이 이뤄져 북한에 개혁개방압력을 가하면 북한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73년이란 가장 오래된 공산주의국가 소련에서 경제가 엉망이 됐고 동구권이 붕괴한 것을 보고도 북한이 계속 통제경제를 추진하는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선택놓고 고심예상 ▲윤교수=올가을 북경 아시안게임에 노대통령이 방문하는등 중국과 접촉할 경우 한중 관계개선을 통해 중국의 1코리아정책에 중대한 변화합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도 결국 남북한 평화공존모델로 갈 수 밖에 없는데 1코리아정책에서 2코리아정책으로 전환해야 하는 정책선택의 어려운 단계에 와 있다. ▲박교수=천안문사태와 동구민주개혁이후 중국의 정치상황은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다. 이같은 급진적 변화가 중국공산당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정책결정과정에서 이데올로기요인이 부각되고 현실주의적 목소리가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체제에 대한 인식도 이데올로기 요인에포함된다. 그러나 이는 외적변화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다. 중국도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체제변화와 개혁을 유도하는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한소관계가 한중관계발전으로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리한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 중국사람들을 만나보면 한중관계는 한소관계진전보다 반발짝 늦게 따라간다고 얘기한다. ▲신교수=중국과 소련이 라이벌입장이긴 하지만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한반도긴장완화와 군축문제에 있어서 한소관계가 정상화돼야 한중관계도 이를 구실삼아 북한의 비판을 받지않고 부드럽게 정상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견해를 같이 할 것이다. 중소관계도 냉각관계를 뛰어넘어 뭔가 진전을 봐야할 것이며 작년 중소정상회담에서 뭔가 합의를 보지 않았겠는가. ▲윤교수=중국은 천안문사태이전까지는 정경분리원칙에 입각,2코리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위에서나마 한국과 상당한 경제접근이 있었다. 그러나 천안문사태 이후 상황이 달라져 북한과 밀착되는 징후를 보였다. 그에 비해 소련은 86년 블라디보스토크선언을 통해 아시아국의 일원임을 자처한 이래 88올림픽직전 글라스노야르스크선언에서 남북한을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는 등 사실상 2코리아정책으로 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소련매스컴이 김일성을 소련군대위출신으로 소규모 빨치산을 이끈데 지나지 않으며 6ㆍ25가 남침전쟁이라고 폭로한 것은 김일성위상격하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소국교수립상태까지 가면 평화공존은 「2개의 조선」을 조작하려는 책동이라는 입장의 북한의 1코리아정책은 수정될 수 밖에 없고 이같은 기본논리의 와해는 북한체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박교수=북한의 1코리아정책은 유한성을 띤 시간문제다. 1코리아정책은 국제사회의 대결논리시대의 산물로서 이제 국제적인 데탕트의 물결이 한반도에까지 투영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남북교류가 불가피하고 서로 정치실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은 진실성을 갖고 군축문제에 임해야 하며 1코리아 정책으로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대남강경노선을 평화공존노선으로 전환하기 위해 체제변화가 불가피하다. 북한이 단기적으로는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은 동구의 변혁이 김일성체제를 위협,오히려 더욱 경직화되고 이념을 강조하겠지만 이는 외부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일 뿐이다. 김일성이 거의 80세가 다된 만큼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정치ㆍ경제개방을 촉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교수=김일성 사망이후 획기적인 계기가 있을 수 있고 김정일집권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경제개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낙관할 수 있다. 북한이 석유ㆍ원자력 등 자원면에서 소련에 의존하고 있고 전력ㆍ식량난 등 경제사정이 워낙 어렵다. 소련은 지난 84년 체르넨코서기장시절 김일성의 소련방문 당시 원자력발전소 설치를 약속했지만 체르노빌 사건이후 소극적으로 변해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건립자체를 주저하고 있다. ○소련ㆍ북한 갈등 예상 ▲박교수=소련이 탈스탈린화 하는데 북한이 스탈린주의를 고수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소련과 북한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겠지만 북한의 경제ㆍ군사 구조상 지탱하는데 한계가 있다. 중국도 소련보다 먼저 탈스탈린화에 나섰기 때문에 중소가 동시에 변혁을 추진하고 이 변혁이 상호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도 천안문사태 이전에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중국이 현재는 위축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의 개방정책으로 인한 빈부계층과 지역갈등의 해결을 통한 국민일치감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합리화보다 정치개혁이 더 쉬운 방법이다. 중국이 난국을 슬기롭게 해결,개혁과 개방정책으로 회귀하지 못한다면 한소관계발전은 오히려 중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교수=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중국에서 배운 것이다. 만일 페레스트로이카가 없었다면 중소분쟁이 심화됐을 것이나 양국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소관계도 진전될 것이다. 박교수는 중국이 사회혼란 극복문제때문에 잠정적으로 위축돼 있다고 했는데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중단할 수 없는 단계에와있다. ▲박교수=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중국의 개혁ㆍ개방정책이 2단계로 접어든다면 중소 관계발전은 북한체제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교수=현재 소련만이 북한에 개방압력을 가해도 시간문제인데 중국까지 압력에 가세한다면 북한은 그야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중국과 소련처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부개혁 서둘러야 ▲윤교수=모든 문제는 결국 북한의 변화가능성문제로 귀착된다. 대외개방정책면에서 북한은 중국처럼 대외개방경제를 추진하되 주체사상논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조총련계기업을 받아들이는 등 변명을 추진하려할 것이다. 김일성이 지난 84년 소련과 동구를 돌아보고 이들의 경제발전상에 쇼크를 받은뒤 중국을 본받아 합영법을 실시했으나 서방자본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 중국이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시장경제를 부분 도입한데 반해 북한은 시장경제도입을 꺼리기 때문에 국내경제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은 대내적개방의 바탕위에서 대외개방을 추진,조화를 이룰 수 있으나 북한은 국내변화는 도외시한 채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라는 식의 교조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박교수=유물변증론에서 봐도 외적요인은 내적요인과 연관지어서만 움직일 뿐이다. 북한에서도 국가최우선 목표를 계급투쟁에서 생산력발전으로 전환시키는 내적변화가 있어야 진정한 군축과 평화공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사상과 현대화개념이 대립됐었으나 모사망후 현대화론 노선화가 이뤄졌다. 북한에도 김일성사망후 주체사상수정을 통해 78년이후의 중국이 치른 과정이 있어야 한다. ▲윤교수=현재로서는 북한의 대외경제개혁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개혁은 물론 정치개혁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원민주체제가 일반적 추세인데도 북한은 김부자세습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1당독재체제의 변형인 주체사상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대내개혁이 안되기 때문에 대남정책의 변혁도 어려운 것이다.최근까지 몇차례 남북대화를 했지만 북한의 남조선해방인민민주주의 통일전선전략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기 때문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신교수=소련이 지금까지는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을 주저해 왔다. 북한이 내부개혁을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국과 함께 설득하는 색다른 방법을 들고 나올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철두철미한 통제사회라 해도 차우셰스쿠정권처럼 밑으로 부터 붕괴되지 않으려면 정권유지차원에서라도 지금같은 스탈린체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소련이 김일성사망후 차기정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겠지만 소련이 루마니아처럼 북한에도 개입할지는 알 수 없다. 소련이 전세계 천연가스생산량의 40%,석유 20%,목재 40% 등 엄청난 자원을 갖고 있는데도 미일학자들이 고르바초프가 곧 쓰러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는 공산주의가 망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85년에 비해 요즘은 모든 물건이 비싸며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일을 잘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의욕고취요인이 없기 때문에 서방세계에서 1시간이면 할 일을 3∼4시간 동안 하고 시설마저 낙후돼 있어 근본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은 프로레타리아 룸펜기질이 몸에 배 있는 것이다. 소련도 그런 상황인데 석유한방울 안나는 북한에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폐쇄경제」날로 악화 ▲윤교수=북한은 주체적방식에 의해 자립적 사회주의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물질대신 정신적인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있다. 요즘은 잘 안되니까 물질인센티브를 병행하고 있지만. 북한이 자립경제를 한다고 나서는데 대해 소련의 타스통신은 북한기간산업 70여개가 소련에 의해 건설됐고 기술자도 소련에서 배워간 것 아니냐고 폭로하기도 했다. 북한경제의 특징은 군인력을 포함한 노동력동원을 통한 경제건설이다. 경제가 어려운데도 정치선전목적을 위한 전시효과를 노려 1백5층짜리 유경호텔까지 짓고 경영능력이 없어 싱가포르인에게 운영을 맡기기도 했다. 북한에서 4년간 농업지도를 하다 얼마전 일본으로 돌아온 조총련계농업전문가에 따르면 심각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일성의 발상으로 경사도45도까지의 산을 소위 다락밭으로 만들어 옥수수를 심도록 했는데 산을 전부 깎고나니 여름에 홍수가 지고 산사태가 나 논에까지 토사가 쌓이는 바람에 대부분의 논까지 버렸다고 한다. 세계농업기술 수준에서 인정받지 못할 비과학적인 방법을 주체적발상이란 미명아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비능률성에다 주체적발상까지 겹쳐 북한경제의 한계를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박교수=한소관계 발전이 북한을 고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리더십의 특성상 중국과 북한이 관계를 강화할 수 밖에 없으며 고립화 방향이 아닐 경우 북한이 미일등 서방과 관계개선하는 방향으로 진전돼 한소관계 발전이 한중관계,나아가서는 남북한관계에 유리한 여건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윤교수=한소수교때문에 북한이 미일과 접근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 북한이 미군유해송환등 화해제스처를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의 목표는 미국과 수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ㆍ미국간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대남전략차원에서의 대미접근일 뿐이다. 한소수교원칙합의를 계기로 대남전략에 변화를 보인다면 한국정부를 승인하고 대화하며 동서독식 평화공존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통일을 원하는 대내외적 갈망분위기를 활용,군사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선전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인 전망이고 장기적으로는 여러가지 변화요인에 의해 압박을 받게돼 결국 우리의 정책노선에 응해올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된다.
  • 한­소,조기수교 합의 확실/노대통령ㆍ고르바초프 첫 회담

    ◎경협ㆍ「평양개방」등에 실질협력/남ㆍ북한 정상회담 실현 지원 논의/양국정상 상호교환방문도 협의/오늘 상오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특별취재반】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사상 첫 한소 정상회담이 4일 하오 4시(한국시간 5일 상오 8시)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노대통령의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다.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약 1시간 정도로 예상되는 이날 회담에서 ▲양국의 조속한 국교정상화 ▲양국정상의 상호교환방문 ▲한반도 정세안정을 위한 대북한 개방 공동노력 ▲경제ㆍ과학 기술협력및 교류확대등에 원칙적인 합의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노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동북아및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남북한간의 관계개선이 긴요하다는 점을 지적,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남북한 상호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소련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소 조기수교 원칙을 토대로 양국 외무장관회담등 실무접촉을 거쳐 빠른 시일내에 수교절차를 매듭짓고 이어 한소 양국정상의 교환방문 문제도 조속히 실현시킨다는 방침을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은 또 한소 경제협력을 가속화하기 위해 기존의 한소 민간경제협의회를 확대,정부부처 차관급이상을 위원장으로 하는 양국정부차원의 「한소 경제협력위원회」를 설치,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서울이나 모스크바에서 1차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의키로 하는 한편 유연탄ㆍ석유ㆍLNGㆍ목재 등 시베리아의 자원공동개발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의 자원조사단파견 용의를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은 양국간 경제협력 상징사업으로 소련은 토지와 노동력을,한국은 자금ㆍ기술및 건설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모스크바시내 20층 건물을 50대50으로 합작투자하여 건설,호텔 사무실 백화점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의키로 했다. 노대통령은 한소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인 4일 하오 6시(한국시간 5일 상오 10시) 페어몬트호텔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회담결과와 한소 양국관계의 전망등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5백여명의내외신기자가 참석하며 국내TV로 생중계된다. 노대통령은 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4일 상오(한국시간 5일 상오) 페어몬트호텔에서 솔로몬 미국무부동아태차관보의 방문을 받고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계속된 미소 정상회담 내용을 설명들었다. ◎레이건 예방받아 이에앞서 노대통령은 3일 하오(한국시간 4일 상오)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레이건 전 미대통령을 면담하고 다음날 열리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유럽과 전세계에서 냉전체제가 변화하고 있는데 비해 동북아와 한반도지역에서는 화해ㆍ협력의 기류가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만나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레이건 전 미대통령에게 방한토록 초청했다. 레이건 전대통령은 『노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세계변화의 역사적 상징으로 평가된다』고 말하고 『이번 회담을 계기로 동북아와 한반도에서냉전체제가 사라지고 협력체제가 이뤄지도록 성공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또 슐츠 전 미국무장관을 접견했다.
  • 정상회담 성사배경과 전망(한ㆍ소 새 시대:1)

    ◎한반도 냉전종식의 역사적 전기/북방ㆍ개혁정책 일치… 양국수교 “초읽기”/통일여건 조성에 큰 파급효과 예상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6월4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은 한소 수교임박이라는 양국관계에 뿐 아니라 냉전체제의 종식이라는 세계사적 시각에서 그 의의가 엄청나게 크다. 노ㆍ고르비회담은 우선 한소 수교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양국간에는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가 교환설치된 이래 1년도 채 못돼 금년 2월과 4월에 주모스크바 한국영사처,주서울 소련영사처가 설치되었으며 이번에 한소 정상회담이 예상을 뒤엎고 전격적으로 성사됨으로써 양국수교는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ㆍ고르비회담에서는 한소 관계정상화가 핵심적인 의제로 등장될 것이 틀림없으며 미수교국간의 정상이 회담을 갖는 사실 자체가 이미 수교에 대한 기분적인 인식이 일치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조속한 시일내에 한소 관계를 정상화 한다」는 수교원칙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수교원칙을 토대로 양국 수교교섭단이나 양국 외무장관이 빠르면 7월중에 1∼2차에 서울과 모스크바 및 유엔본부 등을 오가며 수교에 따른 구체적인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소 수교는 9월이전에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한소간의 관계긴밀화 발전속도에 따라서는 노대통령의 연말 방소,2차 한소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않다. 한소 정상회담의 전격 성사배경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장래를 경제적 번영으로 귀결시키려는 소련측의 실질적 욕구와 남북관계개선 방법을 「서울­모스크바­평양」이라는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구사해야겠다는 우리의 입장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련으로서는 신흥공업국인 한국의 건설ㆍ제조업분야 등을 유치,자국의 시베리아개발,일반국민들의 생필품수급확대 등 경제번영의 촉매가 되게하고 또한 한국경제의 소련진입이 경제대국 일본으로 하여금 소련경제부흥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듯하다. 한국으로서는 남북관계진전,나아가 민족공동체로서 남북 통일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해야하나 북한이 한사코 폐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을 개방쪽으로 움직이게할 필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방외교의 관건인 「모스크바」를 평양으로 가는 우회징검다리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 바로 이번 노ㆍ고르비회담 추진의 결정적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소 정상회담의 또 하나의 의의는 남북한 관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소련의 개혁ㆍ개방물결이 베를린장벽을 허물고 동구에 자유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킴으로써 2차대전후 지속되어온 냉전체제의 급속한 붕괴가 이뤄진 최근의 세계적 화해 무드가 「분단 한반도」에 까지 불어닥친 것이다. 냉전체제의 최후의 산물인 남북한 분단의 해소없이는 진정한 데탕트가 이뤄질 수 없다는 인식이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차 있었다면 소련과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방북외교의 완결을 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노대통령에게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노ㆍ고르비회담은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남북통일 여건조성이란 면에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을 절대 고립시키지 않으며 그들의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노대통령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메시지를 확인한 뒤 이를 북한측에 전달하면서 남북대화재개 등을 종용하고 북한도 개방의 길을 걷도록 권고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산이 소련의 충고를 끝내 거부할 경우에 구사할 수 있는 대북압력카드는 매우 다양할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폐쇄노선을 고수하면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핵 개발관련 기술지원의 중단을 들 수 있다. 이미 소련은 북한의 핵개발을 공식비판한데 이어 소련핵기술팀을 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북한의 고도무기체계가 소련무기체계로 이뤄져있는 점을 감안할때 군사적 압력이 용이하고 석유공급도 압력수단으로 구사할 수 있으며 북한외채의 80%가 소련채무인점도 충분한 영향력 행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비록 사회주의가 어렵더라도 자본주의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포기는 물론 사회주의가 얻은 전리품도 포기하는 것』(5ㆍ24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이라는 폐쇄노선을 다짐했지만 결국은 소련의 압력을 점진적으로 수용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단된 남북대화나 인적ㆍ물적교류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으로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남북 관계진전은 통일시대 개막의 여건을 성숙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소 관계발전이 가속화될 경우 시베리아개발에 한국의 자본ㆍ기술이 지금도 현지에 나가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때 그같은 「결합」은 남북한 관계진전에 새 전기를 제공할 것이다. 한편 한소 정상회담→양국 관계정상화로 이어질 북방외교성취는 집권후반기를 맞고 있는 노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위상제고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되며 내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외치로 보상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은 분단시대를 열게 했던 주역과 관계정상화를 통해 분단을 해소하고 청산해간다는 의미에서 북방외교의 완결이자 분단시대의 종식을 앞당기는 결정적 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한ㆍ소 최근 접촉 일지 ▲78년 4월=KAL기 소 무르만스크 남쪽 2백마일 빙판에 강제착륙 ▲〃 9월=한국각료로는 처음으로 신현확보사장관 세게보건기구총회참석자 소련입국 ▲79년 4월=한소 국제전화 개설 ▲83년 9월=KAL기 사할린부근 상공서 소전투기에 피격 ▲88년 1월=소련,서울올림픽참가 공식발표 ▲〃 8월=박철언대통령정책보좌관 극비방소,수교교섭 개시 ▲89년 3월=최호중외무부장관,방콕에서 아태 경제사회위원회 총회에 참석한 리가초프 소 외무차관과 접촉 ▲〃 4월=소 연방상공회의소 서울사무소 개설,대한무역진흥공사 모스크바사무소 개설 ▲〃 6월=김영삼민주당총재 방소 ▲〃 11월=한소 영사처 상호교환 개설 합의 ▲90년 2월=주모스크바영사처 개설 최호중외무장관 한소 외무장관회담제의 ▲〃 3월=공로명 초대 주소 영사처장부임,주한 소련영사처 개설,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일행 방한 ◎한ㆍ소관계 7백50년 약사/1884년한ㆍ노 수교조약… 공식외교 개시/무역사무소 작년 개설,양국관계 급진전 한국과 소련 양국은 서기 1246년 당시 고려 왕자인 왕준ㆍ왕전형제가 몽고 수도 카라코룸에서 몽고왕 정종즉위식을 계기로 러시아 수스달 공국의 제로슬라브대공과 솔란게스왕자와 첫 접촉을 가진 이래 이번 노태우대통령ㆍ고르바초프 소대통령간 정상회담성사까지 7백50여년간 공식ㆍ비공식관계를 유지해왔다. 한소 양국이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861년 중로 북경조약체결로 연해주땅이 러시아영토가 됨에 따라 한로 국경이 두만강을 경계로 접하면서부터. 이후 부동함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으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1884년에는 한보 수교통상조약이 체결돼 양국간 공식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한국전쟁이후 한소 양국간 적대관계가 지속됐으나 70년대 들어 한국정부는 6ㆍ23선언등을 통해 소련을 포함한 비적성 공산국가와의 교류및 관계개선용의를 표명했다. 6공들어 한국정부의 적극적 북방정책추진과 함께 한소간 인적 교류가 증대되었으며 88년 8월 박철언 당시 대통령정책보좌관이 극비 방소,양국 수교교섭을 시작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에 소련선수단이 참가함으로써 양국관계진전에 결정적 전기가 됐으며 한소 양국은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를 교환개설했다. 이어 11월 공식관계의 시초라고 할 영사처교환설치에 합의,양국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에따라 지난 2월 주소 영사처가 개설되고 공노명대사가 초대 주소 영사처장으로 부임했으며 소련측도 3월 중순 시로추크를 영사처장대리로 임명,영사처업무를 정식개시했다. 이에앞서 지난해 6월 당시 김영삼민주당총재가 소련과학원산하 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했으며 3월에는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과 박철언 당시 정무1장관 등 당정고위인사들이 소련을 또다시 방문,고르바초프등 소련측 고위인사들과 만나 한소 관계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어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간에 이를 뒷바침하는 친서가 교환됨으로써 양국은 1904년 국교단절이래 86년만에 다시 공식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평을 열었다.
  • “한국경제는 난국… 새 치국수단 긴요”/홍콩 대공보,칼럼서 지적

    ◎분규확산으로 수출력 크게 저하/정국불안 지속땐 민심동요 우려 홍콩의 중국계 일간지인 대공보는 3일 「한국의 노사분규와 정치경제정세」란 제목의 칼럼기사를 통해 난마처럼 얽힌 한국의 최근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태우대통령은 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대공보는 현재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외국 언론입장에서 볼때에도 매우 보기 좋지 않으며 현대중공업 등의 노사분규 확산은 한국경제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정부가 노사분규에 공권력을 투입,최근에는 보기 드물게 주모자들을 대거 연행,구금한 것은 더이상 이러한 소요가 경제 및 정치불안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취한 행동인 것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한국경제의 경우 지금까지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이란 기관차의 동력부족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기 시작,올들어 4개월간 무역수지가 계속해서 적자를 나타냈으며 앞으로도 쉽사리 흑자로 돌아설 가망성은 희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대공보는 노사분규와 주가 폭락 등에 따른 민심동요와 정치적인 집안 싸움이 경제력 회복을 어렵게 하는 복합적인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원화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일본 엔화의 절하가 일본과 경쟁상태에 있는 한국수출상품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 한국정부가 올해 무역수지 적자를 20억달러로 예상했으나 이미 4개월동안 예상치를 넘게 됐고 당연한 결과로 증권시장이 침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정부가 심야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부동산 투기근절 등 증시부양대책을 실시키로 함에 따라 주가가 반등하기는 했으나 종전에 취했던 각종 조치들의 성과가 그리 크지 않았음에 비춰 볼 때 주가오름세도 단기성일 것으로 내다 보았다. 대공보는 한국증시침체가 부동산투기만연 등의 요인 이외에 통화팽창에서도 비롯되고 있으며 현재 같은 상황에선 금리를 내려 증시를 부추기려 해도 인플레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한편 노대통령이 근로자들의 파업에 강경자세를보이고 있는 것은 경제파국을 막기 위한 목적이외에도 집권 민자당의 강력한 국가관리의지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라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민자당은 계파간싸움이 그치질 않고 있고 차기 대통령선거를 의식,암암리에 대권경쟁을 벌이는 등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국면을 놓고 볼 때 노대통령에겐 기존의 조치들보다 한걸음 앞선 새로운 치국수단이 필요할 것 같다는 논평을 하고 있다. 대공보이외에도 최근 홍콩에서는 명보ㆍ성도일보ㆍ사우스 차이나모닝포스트ㆍ홍콩TV 등 모든 언론 매체들이 한국사태를 연일 주요뉴스로 보도하면서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 농민위하는 민주농협으로(사설)

    민주화에의 열기 속에서 88년 개정된 농수축협법에 따라 각 단협 조합장 선거가 있었고 그들에 의해 중앙회회장 선거가 치러졌다. 13일에는 축협 회장이 선출되었고 18일에는 농협 회장이 선출된 데 이어 19일에는 수협 회장이 선출되었다. 지난날의 관선 회장에서 벗어나 첫 민선 회장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 또한 민주발전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위조합장 선출 때부터 일부지역에서는 금품 공세등 타락상을 보인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농협회장 선거의 경우 상경하는 조합장들을 위해 특급 호텔을 예약하는등 선심공세를 펴다가 여론의 화살에 부딪쳐 취소하는 촌극까지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원만하게 치러진 선거에 의해 당선의 영예를 안은 세 회장들에게 축하를 드린다. 그러면서 민선 회장으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줄 것도 아울러 당부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서도 농협회장의 임무는 실로 막중하다. 앞으로 4년동안 2백만 농민 조합원과 1천4백여개에 이르는 단협을 이끌어 나가는 것뿐 아니라 더 넓게는 8백만 농민들의권익옹호와 신장이라는 책무가 지워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의 농촌은 여러가지로 복합된 난제를 안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지켜보고자 한다. 비대해진 농협에 대해서는 그동안 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관선 회장이었을 때는 「정부의 시녀」라는 말을 흔히 들어왔고 과연 농민을 위해 존재하는 농협이냐 하는 비난을 들어왔음도 부인할 수가 없다. 농민들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경제사업은 등한히 한 채 신용사업쪽에 치중해 왔음은 지난해의 국정감사 때도 지적된 사항이었다. 이때까지의 「정부 대리인」같은 역할로 해서 농민들은 불신의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불신을 불식하여 진실로 농민의 농협,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되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의 우리 농촌은 노동력이 부족하다.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곧 일삯이 비싸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심각한 것은 지어 놓은 농작물이 제 값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점점 더 심화되게 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방화의 물결 따라 농산물 수입개방의 폭은 더욱 더 넓어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새 민선회장도 자체 무역회사의 설립,수입 개방 압력국에 대한 로비 활동,생산비 절감을 위한 노력 등으로 대처해 나갈 뜻을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대체작물의 지도등 수입개방에 따르는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안목으로 접근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오늘의 우리 농민들은 무엇을 심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심을 때는 전망이 좋았는데 거두고 나니 품삯도 못 건지는 경우를 번번이 당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농협의 농민의식조사 결과도 말해주고 있다. 고민의 으뜸이 『작목 선택이 어렵다』로 54.6%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심은 보람이 있게 하는 지도 노력은 그래서 더욱 더 절실히 요청된다. 어느 부문이고간에 민주화란 높은 책임성을 요구한다. 민주화한 농수축협이 과연 관치시대보다 낫구나 하는 말이 나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도로 최선을 다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 「반민족적 폭력사」로 얼룩진 35년(흔들리는 조총련:하)

    ◎“인도주의”앞세워 교포 9만여명 북송/대한 침투 전진기지 삼아 문세광사건등 테러 자행/「세습 반대세력」늘어 노선전개에 타격 조총련의 35년 행적은 「반민족적 폭력사」바로 그것이다. 당초 정치적 색채가 없이 재일 한인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결성됐던 조총련의 전신 조련도 집행부가 공산계열의 장악하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일본 공산당의 외인부대로 전락했다. 조련은 그후 북한에 김일성을 중심으로한 소위 인민공화국이 들어서게 되자 남로당계에서 북노당계로 기울어 더욱 전투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때의 좌익활동은 일본 공산당의 혁명노선에 의거,질서와 경제를 교란시킴으로써 일본 공산화 여건을 앞장서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자행하는 폭력과 파괴활동으로 인한 일본내의 사회적 비난과 여론의 화살은 재일 한인사회전체와 산하 단체가 뒤집어 쓰게 되었다. 한편 북한은 한덕수에게 지령을 내려 대남침투를 위한 주일특무부대인 조총련을 결성하도록 조종했다. 이에 따라 조총련은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조종을 받는다 ▲대남적화정책에 추종하는 일본주둔 특무부대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재일 한국인의 포섭과 좌익을 대표하는 단체로서의 역할을 맡는다 ▲한일,한미간의 외교적ㆍ경제적ㆍ문화적 교류를 저지한다는 기본노선에 맞춰 모든 활동을 전개했다. 조총련의 제1차 사업은 재일 한인의 북송사업이었다. 북한당국이 이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안 조총련은 1958년 8월15일 해방 13주년 기념대회에서 북송을 제의했다. 이와 함께 조총련은 「중앙귀국 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직을 총동원했으며 일본내의 언론기관에 호소,북한의 모습과 귀국의 필요성을 선전했다. 이와 때를 맞춰 북한의 김일성은 그해 9월8일 건국10주년 기념대회에서 귀환동포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당시 북한은 전후복구사업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일본에서 기술을 익힌 노동자의 귀환을 기대했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인도주의를 내세워 조국에 귀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선전공세를 폈다. 북한의 당시 속셈은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발전상을 일본에 선전하고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던 것이었다. 재일 한인들에 대해서는 북한은 세금을 내지않는 지상낙원이라고 꾀었다. 북한에 귀환하는 사람에게는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것은 물론 직장을 제공하고 아동들은 즉시 취학시키며 정착금으로 성인은 1인당 2만원,14세 이하의 아동에게는 1만원씩을 지급한다고 했다. 당시 북한이 선전과 일본인 협력자 매수 등에 들인 비용은 2조원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계략에 속아 북한에 송환된 북송자 숫자는 59년부터 82년사이 9만3천3백44명에 이른다. 북송사업은 한때 성공한듯 보였다. 59년 2천9백42명을 시발로,60년 4만9천36명,61년 2만2천8백1명으로 피크에 올랐었으나 이후 숫자가 격감했다. 68년부터 70년 사이에는 일시 중단된 적도 있었으며 그 이후는 몇백명ㆍ몇십명 단위였다. 니가타(신석)항에서 눈물을 뿌리고 떠난 북송자들은 그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에 남은 가족들에게 『헌것이라도 좋으니 의복이나 재봉틀,또는 라면을…』이라며 궁핍한 생활상을 편지속에 전해 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북한이 이들 북송자들을 인질로 잡고 조총련계 사업가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거둬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총련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인 테러사건은 문세광 사건이었다. 1974년 8월15일 재일 한인 문세광(23)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국립극장에서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대통령은 위기를 모면했으나 부인 육영수여사가 피격,절명했다.일본경찰 조사에 따르면 문은 오사카(대판) 스미요시(주길)구에서 상고를 중퇴하고 한때 한청 이쿠노(생야)구 지부맹원으로 활약하던 자였다. 문은 민단자주수호위원회 사무국에서 일하던중 조총련 이쿠노 서지부 정치부장 김호룡에게 포섭되어 특별훈련을 받고 국내로 잠입,범행을 저질렀다.민단에서는 문의 거주지인 이쿠노 북지부에 「박대통령 저격사건 긴급대책분실」을 마련하고 「살인귀 김일성 집단타도」 「비인도적 조총련분쇄」등 입간판을 이쿠노구안에 수백개 설치했다. 그러나 이 입간판은 설치한지 3시간도 안돼 60여개가 조총련계 청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를 전후해 민단계와 조총련 청년들사이에는 난투극이 빈발했다. 한국정부가 민단에 대해 장기적인 지원정책을 실시하고 조총련계 인사들에게까지 모국방문ㆍ추석성묘등 획기적인 포섭정책을 편 것은 바로 이때부터 였다. 조총련이 북한의 대남침투를 위한 전진기지가 되어 그동안 저질러 온 각종 악랄한 공작은 일일이 그 예를 들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 3월 문익환목사 일행의 방북사건도 전민련­범민족대회­한통련으로 이어지는 조총련과 지하수맥이 닿는 선에서 주선되었다는 사실을 도쿄의 공안관계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지난 55년 결성된 조총련은 하부조직의 정비를 서둘러 지금은 49개 지방본부,4백19개 지부,2천7백여개의 분회,2백46개의 단을 둔 방대한 조직이 됐다. 산하단체로는 「재일본조선인 청년동맹」을 비롯한 15개의 단체와 「조선보사」등 18개의 주관 사업체를 갖고 있다. 조총련은 형식상 북한의 소위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의 산하단체로 철저하게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조총련 조직을 뛰쳐나와 「김일성 독재체제타도 및 김정일 세습반대」를 부르짖고 있는 하수도씨등 반김일성세력은 조총련이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노선전개에 하나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도쿄 각계에서는 주시하고 있다.
  • 변환기… 새 한미 군사관계의 정립 총점검

    세계적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동서화해(신데탕트)와 미국의 국방비 삭감,게다가 최근 한국 일각에서 일고있는 반미운동 등도 전통적인 한미 군사관계 변화의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이양,방위비 분담 증액요구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한미군사 관계의 변화는 양국이 의도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른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15일의 리처드 체니 미 국방장관 내한을 계기로 더욱 구체화된 군사관계의 변화를 총정리 해본다. ◎서울의 입장/미군 감축 행정병력 우선… 전력 차질 없어/북한 위협 줄어들 경우 역할 축소 불가피/「일본의 예」 적용,방위비 2배 증액은 무리 ○한미 방위조약은 불변 ▷주한미군 철수◁ 주한미군의 병력 철수는 지난 1월30일 발표된 주한미공군 3개 기지의 폐쇄와 비전투 행정요원 2천여명 철수에 그치지 않고 오는 93년까지 5천여명의 미 지상군 철수까지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4일 국방부에서 열린 리처드 체니 장관과 이상훈 장관간의 회담에서 체니 장관은 부분철군에 관한 언급이나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기자회견 석상에서는 주한미군의 병력 수준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수천명의 병력이 감군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우리 정부나 미 행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철군은 불원간 구체화될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점진적인 철군이 구체화 되더라도 한미 양국은 방위조약으로 묶여져 있는데다 양국의 국익과 직결돼 있는 제2사단과 7공군의 주력전투력에 대해서는 상당기간 감축대상에서 제외해야 된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갖고 있는 한 철군을 하더라도 전력에는 영향이 없는 후방 행정지원 병력을 우선 감군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4만3천여명 가운데 2사단 병력 1만5천명과 제7공군 1만명 등 실전투병력 2만5천명만 주둔할 경우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과 연합전력 등 미군의 대한 방위공약 수행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일부 철수한다고 해도 그들이 사용하던 기지나 장비 등은 한국군이 이양을 받게 되어전투력에는 손실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계산이다. 병력이 5천여명 철수한다고 해도 화력과 기동력을 보강한다면 병력 감축부분의 전투력 손실은 쉽게 커버할 수 있다는 속셈이다. ○정전위대표 “동의” 필요 ▷작전권 이양◁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6ㆍ25 발발 직후인 50년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 사이에 맺은 대전협약으로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됐다. 전쟁중에 작전권을 위임한 것은 유엔회원국이 아닌 한국이 유엔군 산하에 들어가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에도 전쟁상태의 종결이 아닌 작전상태라는 해석 때문에 한국군의 작전권은 반환되지 않았다. 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CFC)의 창설로 국군의 지휘권이 부분적으로 한미공동으로 실시할수 있게 됐다. 그러나 79년 12ㆍ12사태와 80년 5ㆍ17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던 미군 사령관이 한국군의 부대 이전을 통제하지 못해 한국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자 미국에서도 평화시의작전통제권을 미군이 행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독립국가의 국군 60여만명을 4만여명 밖에 되지 않는 주한미군의 사령관이 지휘하는 것은 주권의 유린이라며 자주국가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작전 통제권의 한국군 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정부가 국군조직법을 개정,국방 참모본부를 설치하려는 것도 장차 주한미군 철수에 대비,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있는 작전통제권을 이양받아 강력한 지휘체제를 갖추기 위한 사전준비로 설명할 수 있다. 작전권 이양은 한미연합사령부의 구성을 전면 개편하게되어 현재 지상군ㆍ해군ㆍ공군 등 3명의 구성군사령관중 지상군사령관을 한국측이 맡고 주한미군 사령관은 휴전업무만 전담하고 유엔군만 지휘하는 직책으로 남게 된다. 군사정전위원회의 유엔군측 수석대표를 한국군으로 교체하는 문제는,한국이 휴전당사국이 아니며 유엔군의 일원도 아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 등 휴전 당사국의 동의와 유엔의 인준이 있어야 가능하다. ○연 6∼7% 증액 고려 ▷방위비 분담◁지난 15일의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체니 미 국방장관은 현재 한국이 부담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직접경비 3억달러를 2배 이상인 6억8천만 달러로 증액하라고 요구해왔다. 체니장관이 요구한 6억8천만달러의 직접비는 현재 미국정부가 지불하고 있는 주한미군기지에서 일하는 1만8천6백여명에 달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의 연간 급료와 의료보험비ㆍ퇴직금등 인건비를 한국정부가 지불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대해 이상훈 국방장관은 주한미군내 한국인 근로자의 의료보험료 5백만달러와 퇴직금 3백만달러 등 8백만달러만 부담하겠다고 제시,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앞으로 4인 위원회를 통해 계속 논의키로 했다. 미국측이 갑자기 한국인 근로자들의 임금을 한국정부에게 지불할 것을 요구해 온것은 일본이 주일미군의 일본인 근로자의 임금을 전액 부담하고 있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주둔한 것은 2차대전의 승전국으로 항복 문서조인을 받은뒤 점령군의 성격으로 진주했으나 주한미군은 6ㆍ25동란의 발발로 독립국가인 한국을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한 민주주의 수호국으로서의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일미군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 현재의 상황도 일본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경제규모가 우리보다 4∼5배나 크고 평화헌법에 의한 자위대의 규모도 20여만명 밖에 되지 않아 70만 대군을 유지하며 국가예산의 3분의1을 국방예산으로 쓰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이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이다. 한국은 국방예산 6조8천억원 중 35% 이상인 2조5천억원을 차세대전투기 계획(KFP)ㆍ잠수함 건조등 전력증강사업에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므로 주한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노무자들의 임금까지 지불하기란 무리라는 설명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주한미군의 철군을 앞두고 대체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력증강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할 형편인데 투자를 줄이고 인건비로 지불할 수 없는데다 양국 정상회담의 합의대로 한국의 경제성장과 능력 범위안에서 증액 부담하기로한 원칙에 따라 연간 6∼7%정도의 직접비증액은 고려할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시말해 이 부담능력을 초과하는 무리한 요구를 미국이 강요할 경우에는 방위비 분담증액을 택하기보다는 차라리 미군의 부분 철수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워싱턴 시각/「감축 동의」한국측의 태도변화는 “의외”/본격적인 철군협상은 93년 이후나 가능 딕 체니 미 국방장관의 서울 방문을 보도한 미 언론들의 표제는 한결같이 『한국이 주한미군 감축에 동의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년 가을 댄 퀘일 미 부통령의 서울 방문시 한국정부는 물론 야당 지도자들까지도 미군 감축에 반대했던 일을 되돌아보면,6개월도 안돼 반전된 한국측의 태도가 미 언론의 눈에는 「의외」로 비쳐진것 같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주한미군 5천명 감축 동의는 한미군사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큰 태도변화의 일부』라고 풀이하며 이번에 한국측이 요구한 「평시 작전권 이양 및 정전위 수석대표 교체」를 가리켜 『한국이 자체 방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떠맡겠다는 가장 강력한 성명』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요구에 한국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타임스는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내용은 뉘앙스가 좀 다르다. 포스트는 『한국은 일선 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신중한 미군감축에 마지못해 동의하고 있다』며 『이같은 동의는 서울이 미군감축을 미리 봉쇄할 영향력을 미 의회에 갖고 있지 않으며 미군 4만3천7백명 전원에 대한 주둔 유지비를 감당할만한 돈도 충분히 갖고있지 않다는 서울의 현실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펜터건은 주한미군을 비롯한 동아시아ㆍ태평양 주둔 미군에 대해 ▲1단계=90∼92년 ▲2단계=93∼95년 ▲3단계=96년 이후의 단계적 장기 조정계획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펜터건이 발표한 한국내 미 공군기지 3개소 폐쇄와 공군지원병력 2천명 감축 계획이나 체니 장관의 이번 동북아 순방과 추가 감군 협의는 1단계 조정계획과 관련된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주둔군 감축안은 동서 긴장완화를 반영한 유럽에서의 미소주둔군 감축 합의와는 달리 지역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체니 장관이 서울에서 언급했듯이 한반도에서 북한의 남침위협은 여전히 감소되지 않고 있으며 소련은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유럽주둔군 감축과 유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미 정부의 기본인식이다. 또 미국이 지금까지 주한미군 철수의 선행조건으로 내세운 평양측의 신뢰구축 조치,즉 ▲비무장 지대에 전진배치된 군사력의 후퇴 ▲테러리즘 종식 ▲핵 비확산 조약 이행 등이 전혀 충족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미국이 동북아 주둔군을 감축하려는 것은 미국의 재정ㆍ무역적자 등과 관련한 국방예산의 축소 때문이다. 부시 미 행정부가 지난 1월 미의회에 제출한 91회계연도(90년10월1일∼91년 9월30일) 국방예산안은 총규모 2천9백21억달러로서 물가상승률을 고려할때 전년대비 2%가 줄어든 것이다. 체니 장관은 한일 양국에 대해 각각 종전보다 갑절이 늘어난 6억달러 및 40억달러의 방위비 부담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거에 방위비 분담의 배증을 요구한 체니의 제의가 미국의 어려운 국방예산 사정을 나타낸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1단계 협상의 초점이 어디까지나 방위비 분담 증액문제에 있다는 미 정부 의도를 솔직이 드러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워싱턴의 소식통들은 『1단계 기간중의 한미간 협상은 주한미군을 80년 수준(3만8천명)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벌일 방위비 분담 줄다리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본격 감축이나 본질적 변화에 관한 협상은 93년 이후 제2단계의 과제라고 이들은 인식하고 있다. 93년은 몇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한국이 군사력면에서 북한과 동등해지거나 북한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시점이 93년이라는 것이 미 군사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이 독자방어 능력을 갖추게 되면 전쟁억지력으로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그때쯤 되면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셋째,미국의 경우 차기 대통령 임기 개시와 더불어 그동안 매달렸던 유럽문제에서 눈을 돌려 한반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문제 해결에 본격 대처할수 있는 시기라는 점이다. 이같은 상황에서의주한미군 감축 논의는 지금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지금의 주한미군 감축논의가 한미 양국간에 진행되는 것이라면 그때의 논의는 남북한ㆍ미 3자간에 진행되거나 중ㆍ소ㆍ일도 관계되는 다자협상의 의제가 될지 모른다. 이번에 체니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정부가 공식 요구한 정전위 수석대표의 한국군 장성으로의 교체라든가,최근 한미 양국에서 다같이 제기하고 있는 남북한 군축과 주한미군 철수의 연계론은 어떻게 보면 남북한ㆍ미 3자협상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북한의 침공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동아ㆍ태 지역 안정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점차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미 관리들이 주한미군의 또다른 유용한 역할 두가지를 개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주한미군은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우려하는 일본의 재무장 필요성을 감소ㆍ억제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한미군의 이같은 역할에 대한 인식이 국제적으로 확산될 경우 제2단계에도 미군의 대폭감축은 없을지 모른다. 주한미군이야말로 동북아에서 가장 싼 비용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킬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한 루이스 메네트리 주한미군 사령관의 최근 미상원증언은 주한미군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전망/2천년대 초반까지 전면철수 없을듯/90년대 후반엔 2만명선으로 줄수도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국방위의 주도적 역할에서 지원적 역할로 변경을 꾀하고 있는 만큼 주한미군의 철수는 불가피 하겠지만 최소한 2000년대초까지 전면 철군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군사문제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미국은 장기적으로도 동북아시아의 지역 안보를 위해 대륙국가인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한국에 지상군의 일부를 주둔시켜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임무는 대소 봉쇄 및 세계전략의 전초감시기능은 물론,북한에 의한 전쟁 억지역할이다. 따라서 북한의 위협이 감소될 경우 구조개편과 함께 임무와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은 현재 세계 최강의 중무장을 한 제2사단을 경보병사단으로 바꿀수도 있고 주한기지 축소 및 행정요원 감축 등 여러가지가 고려될 수 있다. 현재의 미국 국내사정,한국군 전투력 증강 속도 등을 감안할때 90년대 후반에는 현재 병력의 절반수준인 2만명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카터 행정부 당시 거론됐던 주한미군 철군계획과 같이 공군ㆍ정보ㆍ지휘ㆍ통제ㆍ통신ㆍ군수 지원부대만을 주둔시키고 기타 병력은 철수시킨다는 프로그램이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도 크다. 한국이 오늘 이만한 전력을 갖추기까지는 미국의 기술과 자본지원이 적지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서울올림픽의 성공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이 과대하게 선전되고 국민의식도 선진화되기 시작하자 미국에서도 한국의 발전 속도에 맞는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게 됐고 우리측에서는 작전통제권 이양이 군사현안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는 주한미군의 추가철수 규모ㆍ방위비 부담액수ㆍ작전통제권 이양 스케줄에 대한 윤곽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방위의 궁극적인책임은 우리 스스로에 있으므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역할조정이 궁극적으로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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