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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권 2년의 과제

    집권 2년차를 맞아 집권당도 보다 효율적인 체제구축으로 정책혼선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새롭게 정리되는 상황에서 국민회의도 국정운영의 견인차로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준비된 대통령에,준비안된 집권여당’이라는 평가는 국민회의의 현주소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지난 1년동안 집권 여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정책 혼선이 잇따랐고,정계 개편은 원칙과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진행돼부작용을 양산했다.입만 열면 개혁을 외쳤으나 정치권은 여전히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있고 노사정 등 정치현안 해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金大中 대통령도 안타까워 했듯이 ‘전국민 국민연금 확대 실시’라는 좋은 정책도 당정간 손발이 맞지 않고,홍보 부족으로 불신만 키운 꼴이 됐다. 국민회의 고위 관계자들도 이같은 지적에 동의한다.“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면서도 “내부 역량이 부족했다””고 시인하고 있다.전문가들의 입장도 비슷하다.서울대 朴찬郁교수는 “당이 개혁중심에 있지못하고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당은 수동적 자세를 보였다”고 꼬집었다.당이 앞장서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당의 적극적인 자세가 부족했다는 설명이다.연세대 文正仁교수도 같은 견해다.文교수는 “공동정권으로서 야당과의 협력관계 등 정국을 풀어나가는데 태생적 한계를 지녔지만 능동적으로 정국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혁정책의 프로그램 부재와 홍보전략 부재를 지적한기도 한다.단국대 張錫權부총장은 “집권여당은 개혁의 전체 적인 밑그림을 그리는데 약했다”면서 “정쟁에 휘말려 적절한 홍보를 하지 못하고 국민통합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보완책 마련을 주문했다. 국민회의가 집권당으로서 새로운 다짐을 하고,개혁의 견인차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데 이의가 없는 셈이다.문제는 자민련과 공조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집권2년의 개혁 작업을 어떤식으로 진행하느냐하는 것이다.최근 權魯甲 고문의 정치일선 복귀와 당 중진들의전진 배치를 계기로 당의 구심력은 회복되고 있는 느낌이다.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소수당,지역당의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현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 3·30 재·보선,전국정당의 틀을 갖출 5월 전당대회는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국민회의는 지난 1년동안을 냉정하게 반성하고 국정을 주도하는 집권여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姜東亨 崔光淑 yunbin@
  • [기고]국민의 정부 정책혼선을 보고

    金大中 정부의 집권 1년에 대한 평가는 실로 다양하다.경제부문에서의 치적을 높이 평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치부문에서의 실정을 폄하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그 중에서도 정책혼선에서 오는 정부 여당의 권위실추 문제는金大中 정부가 당면한 가장 기본적인 과제 중의 하나다.국민연금 제도의 졸속 시행,한자 병용제의 느닷없는 제안,실업세를 걷자는 발상의 돌출,그리고한일 어업협상에서의 실수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정책혼선이 집권 초기에 벌어졌다면 만년 야당이 처음 집권한데서 오는 운전 미숙의 결과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지만 임기 개시 전부터 국정운영에 간여해 왔다는 저간의 사정을 고려해보면 金大中 정부는 이에 충분한 학습기간을 거친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운영 과정에서 가장 먼저 확보되었어야 할 부처간 이견 조율이나 당정간의 협조와 사회문제의 종합적 검토능력이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결코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상적인 대의 민주정치 체제에서라면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치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책수용자의 압력과 감시의 통로가 구축되고 그 결과 정책혼선이나 오류가 사전에 방지되기 마련이다.바로 이 점이 자유민주정치 제도의 본질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 정치과정에서는 비록 정책수용자의 참여가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라도 최소한 집권세력의 유기적인 국정관리능력은 과시되어야 마땅한 일이다.더욱이 정권의 학습능력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어서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공동정권이라는 실험적 국정운영 양식으로 인해 국정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길이 처음부터 긴장돼 있는 상황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불안의 승수효과가 발생하면서 권력에 대한 신뢰 철회가 확대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다시는 이런 종류의 정책실패가 재발하지 않도록 그 원인을 진단하고국정운영 체계를 정비하는 일이 金大中정부가 당면한 최우선적 과제다. 이렇게 볼 때 정책화 과정에서 집권당이 정책 중심축 역할을 다하도록 당정간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집권당의 정책관리 능력을 높이는 일은문제해결을위한 관건 중의 하나다. 부처간의 이견조정이나 협조적 관계 구축 그리고 이런 일들의 촉매라고 할수 있는 국민의 정치적 욕구를 행정과정에 투입하는 일은 결국 집권당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집권당이 집권을 책임진 정당이면서도 행정 각 부처의 행정과정을 제대로 관리하고 장악하지 못한다면 일종의 집권 실패라고 할 수있으며 그 결과물이 행정부의 정책실패로 구체화된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으로는 범(汎)정부 차원에서 정책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조정기구가 마련돼 있지 않았던 데에서 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국정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조정하고 조타하는 장치가 정부 내에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 정부의 정책혼선은 아무런 대체 기구도 없이 과거 정권들이 비공식적으로나마 활용하던 장치들을 없애고 정무장관실을 폐지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국정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조타한다는 일은 분업적 질서를 전제로 하는 현대사회의 관료조직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 필수적 과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지금 한창 논의되는 두번째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는 바로 이런 종류의 국무조정기구가 다시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박재창 숙명여대교수·의회행정
  • 세이흐 하마드 바레인 새국왕

    6일 심장마비로 급작스레 사망한 부왕 세이흐 이사를 승계한 세이흐 하마드 바레인 새 국왕(49)은 군사문제에 정통한 보수강경파의 인물.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20여년 동안 국정운영에 깊숙히 관여하면서 사실상 바레인을 통치해왔다. 지난 50년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 교외 리파에서 세이흐 이사 국왕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영국으로 건너가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68년 방위군 총사령관직에 올랐으며,최근 미국 캔사스포트 레빈워스의 육군 참모대학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71년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세이흐 하마드 국왕은 군 통수권 및 국내문제 관할권을 맡고,이사 부왕은 친 서방외교를 표방하며 대외문제를 주로 다뤄왔다.새 국왕은 특히 인구 50만의 60%를 차지하는 시아파 회교도들의 소요사태를 진정시켜 지도력을 인정받았었다. 지난 94년 발생한 시아파들의 소요를 무력 진압한 탓에 강경파로 알려져 있지만,대외문제에서는 부왕 이사의 친서방 정책을 그대로 견지할 것이라고 대부분의 서방 관측통들은 내다보고있다. 수영과 승마,사격,항공기 조종 등 만능 스포츠맨인 하마드 국왕은 68년 사촌과 결혼,슬하에 3남1녀를 두고 있다. 金奎煥 khkim@
  • 삼성경제硏 보고서-한국경제 문제는 지식격차

    “정보혁명에 이어 21세기에는 지식혁명이 시작된다.” 지식국가가 21세기 국가경영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지식의 창조나 활용,학습,공유,축적 등에서 우리는 선진국 수준에 턱없이 모자란다.삼성경제연구소는 3일 ‘지식국가로 가는 길’이라는 보고서(金政鎬 수석연구원)에서“지식산업 육성은 분위기 확산에 그쳐서는 안되며 치밀한 전략을 세워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국민연금 등 일련의 개혁정책들이 난항을 겪었던 것도 지식 부재(不在)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열악한 지식기반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전인 97년 부즈앨런보고서가 한국경제의 근본문제를 지식격차로 진단한 일이 있다.동아시아 경제위기 요인이생산성 향상이 결여된 양적팽창 때문이라는 분석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인구 1만명당 특허출원 건수는 선진국들이 33∼39건인데 비해 우리는 16.3건,논문발표도 대만(4.1건) 홍콩(6.6건) 싱가포르(7.4건)에 못미치는 2.2건에 불과하다.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5개국의 논문발표 건수는 만명당 6∼14건이다. 경제에서 기술과 지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선진 5개국은 11∼16%인 반면 우리는 8.2%다.국책연구기관의 연구실적이 특허 등으로 상업화되는 정도도 저조해 지난해 100건 이상 특허를 얻은 기관은 3개 뿐이었고 대부분 연구기관은 연간 10건 미만이었다. 연구·개발(R&D)투자 중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미국과 독일은 각각 15.2%와 18.9%이나 우리는 8.2%에 머물고 있다.한국의 정보화수준을 1로 했을때 미국은 7.2,유럽 4.9,유럽 4.9,일본 2.6이다.최근 국민연금 등 정책추진에서 오류가 일어난 것도 데이터 수집과 대안설계,공론화와 같은 정책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연구소는 지적했다. ■선진국 사례 90년대 중반부터 국제적으로 지식경영과 지식기반 경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식기반 경제’,세계은행의 ‘지식경제’보고서가 발표된 뒤 논의가 본격화됐다. 미국경제가 지식의 힘으로 80년대의 어려움을 딛고서 부활했다는 게 정설이다.미국은 교육·정부·공공부문을 연결해 국가적 지식활용시스템을 구축했다.네덜란드는 95년부터 연구개발투자에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기업과 교육기관,연구기관들간에 정보교류를 활성화했다.스웨덴도 95년 ‘성장 및 경쟁력향상을 위한 3개년 계획’을 마련,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지식집약형 기업을 키워나가고 있다.캐나다도 2000년대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네트워크화된 나라로 만든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지식국가로 가는 길 정부 학계 언론 기업 등에 지식신드롬이 확산되고 있지만 분위기 확산에 그쳐서는 안된다.로마의 번영은 폭넓은 지식층과 정교한 제도,고도로 발달한 전쟁지식,그리고 외부지식의 적극적인 활용에서 비롯됐다. 미래기업의 경쟁력은 다른 기업에 비해 얼마나 차별화된 지식을 보유하느냐에 달려있다.특유의 지식을 창조·축적·활용해 제품개발과 생산,서비스,유통을 차별화해야 한다는 얘기다.전문적 지식과 노하우를 축적·활용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지식인이 21세기의 골드칼라로 부상할 것이다. 지식과 관련된 평가 및 보상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기존산업을 지식집약화하고 새로운 지식산업들을 키워야 한다.창의적인 인재 육성과 국정운영시스템의 개혁,지식 인프라구축 등 지식관련 정책과제를 최우선시하고 역량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의식전환과 풍토개혁도 필요하다. 상아탑식 연구나 개념적 논쟁을 지양하고 산업과 정책에 도움이 되는 지식창조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싱크탱크와 정책현장간에 인적교류 역시 긴밀히이뤄져야 한다.연구·개발에서 건전한 실패를 인정(Free To Fail)해주어야하며 외부지식을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 權赫燦 khc@
  • 기대되는 대화정국

    지난 연말 이후 두 달여에 걸친 경색정국이 드디어 대화국면으로 전환될 것 같다.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여야총재회담 수용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다.金大中대통령이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인위적 정계개편포기를 포함,정국안정을 위한 여야동반자 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한 데 대해李총재가 이같이 화답한 것이다. 李총재의 이번 회견내용은 세가지 점에서 주목해 볼 수 있다.첫째는 경제와 나라를 살리는 ‘상생(相生)의 정치’를 제안한 것이다.李총재는 대선에서패배한 뒤 지난 1년간 “오직 살아 남기 위한 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다”고토로했다. 반면 여당의 인식은 야당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고 도와주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이같은 인식의 괴리는 결국 여야간의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단독국회·장외투쟁으로 서로 대결해 봤자 남는 것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끝없는 당 역량의 소모뿐인 것이다.이제 여야는 불신을 씻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둘째는 야당으로서 정책대안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구조조정의 속도를일자리 창출과 연계해 조정해야 한다든가,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을 인정하지만 ‘당근’과 함께 ‘채찍’의 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정책입장을밝혔다. 이는 정부의 정책추진 방향에 대한 야당의 중요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이같은 야당의 정책대안을 가장 효과적으로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은 바로국회의 의정단상이다.그런 점에서 항상 국회를 정상적으로 가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국정운영이 법과 제도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정부·여당에 대한충고다.이는 최근 국민연금제 도입 문제 등에서 드러났듯이 여권 정책결정의 혼란스러운 대목을 지적한 것이다. 이제 여야는 조속한 시일안에 총재회담을 열어야 한다.더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李총재는 총재회담 수용의 뜻을 밝히면서 ‘야당와해 포기와 야당존중’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 문제는 金대통령이 이미 명쾌하게 밝힌 대로 문제가 될 수 없다.자질구레한 각론에 묶여 대화정국의 큰 물길을 막아서는 안된다.멀리 보고 호흡이 긴 ‘큰 정치’를 할 때가 됐다. 이번 회견을 통해여야는 생산적인 쌍방정치를 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李총재가 金대통령의 외환위기 극복 노력을 높이 평가한 점 등은 새로운 여야관계의 접점을 보인 것이다.여야도 상대방을 비판할 때는 비판하고 칭찬할 때는 칭찬하는 정치풍토를 조성해야 한다.쌍방정치가 돼야 국민에대한 설득력도 커지게 된다.
  • 金重權비서실장“직원들 동요말라”당부

    - “신·구주류 갈등설 있을 수 없는 추측” 金重權 청와대비서실장을 둘러싸고 갖가지 정치적 관측이 나돌고 있다.李康來 전청와대정무수석의 구로을 낙마,朴淙烈 민정비서관 임명 등을 놓고 그의 입지에 대한 억측 또한 구구하다.金大中대통령이 지적했듯 사실상 국민의정부 ‘2인자’인데다,그의 정치적·지역적 색채가 현 역학구도에선 나름의‘상품성’을 갖고 있어 정치적 관심권에서 벗어나기 힘든 처지인 것같다. 그런 그가 2일 청와대비서실 정기 월례조회에서 생각의 일단을 피력했다.그는 최근 국민회의 구로을 보선 후보교체와 관련해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있는 ‘신·구주류 갈등설’에 대해 ‘추측’이라고 규정지은 뒤 이런 추측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당에 있건,정부에 있건 대통령을중심으로 일치단결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같은 편가르기는 있을수 없는 일인 만큼 이에 동조하거나 동요하지 말고 업무수행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강조했다.특히 청와대는 국정 최고기관이므로 여기에서 근무하는직원들의 말한마디가 몰고올 파장이 매우 크다며 입조심을 당부했다. 金실장은 또 정부의 정책결정 혼선에대한 일반의 비판도 가감없이 열거했다.“국민연금 확대 실시와 한·일 어업협정에서 ‘쌍끌이 조업’이 누락된 것을 보고 준비소홀과 정책결정에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으며,한자병기·의약분업·장기수 북송문제 등도 관계기관간 충분히 토의해야 할 문제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국정운영 시스템’이나 ‘정책 컨트롤 타워’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그는 “따라서 크게 경계하고 스스로 돌이켜봐야 한다”고 주문한뒤 국민을 직접 찾는 서비스행정과 경쟁 및 경영마인드로의 무장을 당부하는 것으로말을 맺었다. 梁承賢
  • 與圈, 정책난맥상 해법찾기 골몰

    집권 2년째를 맞는 국민회의 앞엔 간단치 않은 미래가 놓여있다.‘밀월시대’를 마감하듯 여론은 앞다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숨죽이던 각종 이해단체들도 서서히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지난 1년 국민회의가 도출한 성과도 적지 않지만 ‘초보 집권당’이란 일각의 우려가 말끔히 씻겼다고 보기는 어렵다.대표적인 것이 정책의 혼선이다.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국민연금 실시가 유보됐고 1년전부터 공언했던 인권위 설립도 무한정 표류 상태다.여론 수렴없이 발표한 한자병용 실시 방침도 곳곳에서 마찰이 일고있다.IMF 한파로 찌든 국민들의 걱정을 오히려 가중시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여권은 봇물 터지듯 불거지는 정책 난맥상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심기일전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26일 朴智元청와대 대변인은 “일부 부처나 당정간 사전 정책조율이 안되고 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시정 의사를 분명히 했다.朴대변인은 이어 “앞으로 각 부처가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관계부처와 여당의 조율을 거쳐야 한다”며 정책혼선 방지에 주력할 뜻을 밝혔다. 여권도 최근의 정책혼선이 사전 예방이 가능했던 ‘인재(人災)’로 판단,구체적인 대책마련에 나섰다.청와대와 당의 핵심간부가 참여하는 ‘국정운영전략회의(가칭)’와 같은 비공식 협의기구를 운영하는 방안이다.청와대 각 수석비석관과 각 부처 차관,당의 정조위원장이 참여하는 ‘국정운영조정회의’의 신설도 검토 중이다. 여권의 이러한 ‘다짐’이 현실로 이어지려면 적어도 몇가지 구조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않다.우선 ‘대행체제’라는 지도부의 취약성을극복하고 ‘책임경영’이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권한도 책임도 없는 현 지도부의 무기력이 당의 침체로 이어지고 무책임한 정책이 남발된다는 진단이다. 당의 구심력을 회복해 강력하고 활기찬 조직으로 재건돼야 한다는 처방전도 많다.權魯甲전부총재의 당무복귀에 대해 당 안팎의 기대가 쏠리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민단체에서는 ‘정체성 회복’과 ‘원칙있는 정치’를 주문했다.개혁의주체와 대상이 혼재된 상황에서자칫 ‘개혁정치’의 실패로 이어질수 있다는 우려다.
  • 지역여론 동향파악 시비 가능성

    행자부 추진에 행정간섭등 우려 중앙·지자체 공무원 “오해 소지”지적 행정자치부가 추진중인 지역여론동향 파악업무 강화가 논란을 빚고 있다(본지 22일자 보도). ‘행정 간섭’이라는 측면과 함께 내년 총선을 앞둔 사전 정지작업의 하나라는 오해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행자부측은 물론 이를 강력 부인한다.있는 그대로 봐 달라는 것이다. 金杞載행자부장관은 22일 “장관 취임이후 행자부가 지자체의 입장을 대변해 달라는 요구를 많이 받았다”면서 “최우수 공무원을 배치하는 등 여론파악 업무를 강화하려는 것은 이를 통해 지자체의 우수시책 등을 널리 알리고지역의 애로사항을 신속하게 해결해 나가자는 뜻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역갈등문제 등 지역민심 동향을 제때 파악하지 못해 원활한 국정운영을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행자부 입장은 중앙 및 지방의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서 오해의 소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3일 “金장관이 80년대식 보고를 원하는 듯하다”면서 민선시대 이전의 행정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과거 여론계 업무라는 게 쉽게 말해 정보경찰과 같은측면이 있었다”면서 “과거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관내 후보자들의 당선 가능성 여부,정치적 성향 등을 분석했다가 문제가 됐던 사례도 있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본래의 취지가 순수하더라도 일하는 과정에서 자칫 엉뚱한시비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여론계 조직을 부활시킬 경우,정책이나 시책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좋은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여론전담 조직이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철저한 감시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朴賢甲 eagl
  • “金대통령 국정현안 견해에 공감”87%/국민과의 대화 여론조사

    金大中대통령의 21일 ‘국민과의 TV대화’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응답자의90%가 국민과의 대화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고 답했고 87%가 金대통령의국정현안에 대한 견해에 공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청와대비서실이 여론조사전문기관인 갤럽에 의뢰,전국의 20세 이상 남녀 1,2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국정운영방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金대통령의 국정전반 업무파악과 관련,82%가 ‘매우 잘 파악하고 있다’‘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응답했다.‘金대통령이 국민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77%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金대통령의 답변 가운데 인상적인 내용으로는 ‘무인도에 갈때 실업,부정부패,지역감정 3가지를 가져가겠다’는 대목이 18.4%로 가장 높았으며,다음이경제회생 전망(7%),국민연금 보완실시(6.4%),실업대책과 지역감정 해소(각각 5.5%),왕따 해결방안(2.5%)순이었다. 그러나 실업대책에 대해서는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전망이 48%로 긍정적 전망(36%)보다 많았다. 梁承賢 yangbak@
  • [제2공화국 張勉](1) 국토건설사업(上)

    1961년 2월27일 오후 2시.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앞 광장은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기로 가득찼다.국토건설에 앞장설 이 땅의 젊은이 2,000여명이 교육을 마치고 수료식을 갖는 자리였다.녹회색 모자와 작업복 차림의 건장한 청년들이 도열한 주위를 가족·친지 그리고 ‘형들이 가는 길 우리도 따르리’라고 쓴 플래카드를 든 남녀 중고생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단상에 앉은 尹潽善대통령 張勉총리 등 3부요인도 기대와 흥분에 찬 모습들이었다.尹대통령이 “국토건설사업은 모든 산업건설의 기간이 되는 것인 만큼 여러분이 이 사업의 중심인물이 되리라고 크게 기대한다”고 치하한 데이어 張총리도 “이 사업에 여러분이 가진 젊은 의기와 예지를 송두리째 투입한다면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굳게 믿는다”고 격려했다. 수료식을 마친 국토건설사업 요원들은 삽 한자루씩을 멘 채 서울시가를 행진했다.咸錫憲·張俊河 등 당대의 지성인들과 장면내각의 金永善재무장관 鄭憲柱국무원사무처장 등 각료들이 대열을 이끌었고 국회의원도 여러명 가담했다.장면정부에 사사건건 트집을 일삼던 민주당과 신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합세한 것은 이변이었다. 이날의 시가행진은 장면정부가 내건 ‘경제제일주의’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또 그 대열에 지식인들과 여야 정치인들이 한마음으로 참여함으로써국토건설사업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쌀 한가마에 1만4,000∼1만7,000환(현시세 17만4,400원) 하던 시절에 장면정부는 61년 한해에만 400억환을 투입하고 연인원 4,500만명을 동원하는 대규모 국토개발 사업을 벌이겠다고 공표했다.‘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군사혁명을 스스로 불러들였다’고 알려진 제2공화국의 장면정부,그 나약하고정쟁만 일삼았다는 정부가 정말 이처럼 원대한 포부를 가졌을까.계획을 세웠더라도 실제로 집행할 능력은 있었을까. 그러나 국토건설사업은 민주당이 추진한 경제정책 가운데 한 부분일 뿐이었다.1960년 4월혁명의 결과로 그해 8월 출범한 장면정부는 국정의 중점을 경제발전에 두었다.장면은 60년 8월27일 총리 취임후 민의원(民議院)에 나가취임인사 겸 시정연설을 하면서 “당면한 민족적 과제인 경제적 건설을 수행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마지 않는다”고 말했다.그가 훗날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경제 안정을 기한 후에야 정국안정을 바랄 수 있고 참된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장면정부는 경제발전 방안으로 두 가지 큰 틀을 구상했다.하나는 장기목표인 ‘경제개발5개년계획’이고 다른 하나가 국내경기를 단시일에 활성화하는 국토건설사업이었다. 국토건설사업이 국민 앞에 실체를 드러낸 때는 60년 11월28일이었다.정부는 이날 ‘국토건설사업’이라 이름붙인 대규모 공공사업계획을 발표하고 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그 규모는 단군이래 첫 국토종합개발답게 가히 ‘혁명적’이었다.소양강댐·춘천댐·남강댐 건설을 비롯해 발전소 및 도로 건설,농지개간,수자원개발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다목적인 계획이었다.장면정부는 60년 12월 경제4부장관회의를 열어 61년분 제1차 추가경정예산에 사업비 280억환을 계상하기로 결정했고 이어 61년 1월에는 국토개발특별회계법을 제정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6·25가 휴전으로 끝맺은 지 10년이 채 안돼 전쟁의 상흔이 국토 곳곳에 남았고,이승만정권 말기의 폭정(暴政)탓에 국력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에서장면정부는 무슨 힘이 있어 이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을까. 그 무렵 국가재정은 절반 가까이를 미국 원조에 의존했다.장면정부는 국토개발을 꼭 이루어야 한다는 굳은 의지와 함께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기에 자신있게 청사진을 마련할 수 있었다.미국 정부가 국토건설사업을장면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꼽고 이를 적극 지원하였음은,대한매일이 이번에처음 공개하는 일련의 미 국무부 문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장면정부는 출범후 곧바로 국토건설사업 준비에 들어갔다.먼저 국토건설사업본부를 설치하기로 하고 책임자를 물색했다.장면정부가 지목한 적임자는‘사상계’ 사장인 장준하였다.올곧은 지식인의 표상이자 반독재 민주투쟁의 상징인 그가 한때 국토개발에 앞장선 사실을 지금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4월혁명후 장준하는 사상계의 편집위원과 필진을 주축으로 학계·언론계·문화계·경제계의 주요인사 30여명을 모아 ‘국제연구소’를 운영했다.‘국제연구’를 내걸었지만 새 시대에 걸맞은 국정운영을 연구하는 데 주력했다. 이렇다 할 정책연구기관이 없던 시절이라 국제연구소는 정책의 산실로 떠올랐고,연구위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국토개발이었다.정책 수립에 골몰하던 장면정부가 장준하와 그를 뒷받침하는 국제연구소 멤버들에게‘구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사상계에서 일하다 장준하를 따라 국토건설사업에 참여한 朴敬洙씨(69·작가)는 “장면정부가 출범 직후인 60년 8월말 장준하선생에게 국토건설사업을 맡아줄 것을 제의했다”고 기억했다.장준하는 거듭 사양하다가 결국 ‘국토개발은 시대적 의무’라는 명분에 져 수락하게 된다. 국토건설사업본부는 총리 직속이었지만 실제로는 관민이 함께 운영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성격의 독립기구였다.본부장은 장면총리가 겸임했고 장준하는 수석부장으로서 본부장 대리 구실을하는 기획부장을 맡았다.또 사상계편집위원인 申應均과 李萬甲이 관리부장·조사연구부장으로,일제때 한강철교를 설계한 崔景烈이 기술부장으로 들어왔다.박경수씨는 간사로 임명됐다. 장준하를 비롯한 사상계 팀이 사업본부 지휘부를 형성함으로써 장면정부는국토개발에 필요한 두뇌와 함께 지식인층의 지지를 얻었고 그 기반 위에서자신있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국무부문서에 나타난 ‘국토건설’ 펑가 ‘제2공화국과 張勉’연재에 정치학 박사 전상숙 씨(이화여대 강사)가 동참합니다.田박사는 지난 97년 8월부터 1년동안 미국에 머무르면서 1960∼63년에작성된 미 국무부 한국관련 문서 1만여점을 조사·연구했습니다.그 축적을토대로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새 사료를 통해 당시 미국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어떻게 평가했는지,이에 따른 대한(對韓)정책은 무엇이었는지를깊이 있게 분석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장면정부가 물려받은 경제상태는 매우 불안한 것이었다.빈약한 자원에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산업시설의 대량파괴,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방비,그리고 부패하고 허약한 관료집단이 주원인이었다.장면정부는 뉴딜정책과 같은공공사업을 통해 이같은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곧 1960년 11월발표된 ‘국토건설사업’이다. 장면정부는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미국에 요청했고,미국도경제원조가 장면정권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나섰다.이같은 사실은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이 소장한 미 국무부문서(RG59)중 여러건에서 확인된다. 매카나기 주한미대사가 61년 3월11일 미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A)에는 국토건설사업에 대한 미국측 평가가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장면정부하의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식량부족과춘궁기(보릿고개)·대졸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토건설사업이 큰 도움이될 것이라고 평가했다.아울러 경제발전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머지않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시위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믿었다.이 때문에 미국은 장면정부의 시책 가운데 국토건설사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이보다 열흘 앞선 보고서(B)에서는 매카나기와 한국 金永善재무장관의 대담내용이 자세히 들어 있다.김장관은 국토건설사업이 시작됐음을 알린 뒤 미국이 이미 제공한 지원금 2,000만달러를 유용하게 사용할 것임을 약속했다.이어 경제개발을 위해서도 한·일간의 전면적인 외교관계 수립은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미국측도 양국의 국교정상화가 민감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빨리 이루어지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이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이뤄 일본이한국에 경제원조를 하도록 함으로써 동북아 안보이익을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보여준 것이다. 국토건설사업에 대한 미국측 지원이 변함 없음은 매카나기의 후임인 마셜그린 대리대사가 4월18일 장면총리와 대화한 내용을 담은 전문(C)에도 그대로 나타난다.그린은 국토건설사업에 1,500만달러를 추가 원조하기로 결정했음을 통보하면서 지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도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한·미간의 국토개발 노력은 그러나 5·16으로 중단돼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됐다.
  • DJ‘대화-경쟁’철학

    집권 2년을 맞는 여권이 ‘정치안정’에 당력을 집결할 기세다.집권 1년 동안 공을 들인 개혁과 경제회생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치안정의 토대가 절실하다는 판단이다. 金大中대통령도 21일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정치안정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했다.金대통령은 “인위적 정계개편은 하지 않는다”는 점과 “야당을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두 가지 사항을 약속했다.그동안 야당의 끈질긴 요구사항을 포괄적인 틀에서 수용,국정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의지 표명이다.내년 총선까지 대화정국을 토대로 선의의 경쟁체제를 복원,산적한 정치개혁을 완성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에따라 여권도 金대통령이 제시한 청사진에 맞춰 분위기 조성에 진력할방침이다.최우선 과제는 정국정상화를 위한 여야 총재회담 성사다.대치정국을 종식하고 대화정국으로 전환하는 ‘매듭’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朴智元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여야간 대화가 원만히 이뤄져 중진회담과 총재회담이 성사되기 바라며 당에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계개편 문제와 관련,여권은 외부 인사 영입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적어도 표면적인 걸림돌은 제거된 셈이다.그러나 한나라당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의구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한나라당 李會昌총재의 위상 정립과도 직결된다.薛勳 기조위원장도 “李총재가 명실상부한 야권의 리더로서 자리잡는 것이 국정운영에 도움이 된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총풍,세풍 등 李총재를 억누르는 정치적 걸림돌이 어떤 수순으로 제거되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 행자부, 지방 여론동향 파악업무 대폭 강화

    정부가 지역민심 동향관리 조직을 복원하는 등 지방여론 동향파악 업무를대폭 강화한다. 그러나 이같은 방침은 자치권 행사에 대한 간섭 등으로 이해될 소지가 있어 16개 시·도 지방자치단체의 반응이 주목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21일 국정운영의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방여론 동향파악 업무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행자부는 이를 위해 자치행정과 내 여론지원계 직원을 3명에서 5명으로 늘린다. 행자부는 또 지난해 8월 지방자치단체 구조조정때 폐지했던 여론계를 부활시켜 줄 것을 각 시·도에 강력히 권고키로 했다.이와 함께 5급 1명,6급 2명 등 모두 3명이 업무를 전담토록 하되 최우수 인력으로 충원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그 동안의 일일보고 체제를 주간보고 체제로 바꾼다.형식적인 일일보고 대신 주간 단위로 충실하게 보고토록 함으로써 자료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이 경우 행자부에서 주간보고 항목을 미리 알려주고 각 시·도는 이에 따라 자료를 취합,보고하게 된다.행자부 관계자는 “국민연금확대시행 및 그린벨트해제 지연에 대한 지역주민 여론,한·일어업협정에 대한 여론 등 전국적인 관심사항이 주간보고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힌다. 한편 분쟁이나 집단민원 등 현안이 있을 경우에는 수시 보고도 받는다. 또 지역행정 수행에 도움을 주는 정보·자료 등을 적극적으로 지자체에 제공하는 등 지자체와 쌍방향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청와대 및 경찰청 등과도정보교환체제를 확립키로 했다. 행자부는 이같은 내용을 오는 24일 전국 16개 시·도 부단체장회의때 시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행자부 방침에 대해서 ‘자치권 간섭’ 등을 이유로 자치단체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개혁성과 가시화 내년 5%성장 자신

    金大中대통령은 21일 “올해도 금융·기업·공공부문·노동시장 유연성 등4대 개혁을 국민과 함께 추진하고 개혁을 서두른다면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있을 것”이라면서 “올해 2%,2000년에는 5%대의 플러스 성장을 하고 경기도그만큼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이날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SBS KBS MBC 등 TV방송 3사와 YTN이 전국에 생중계한 제3차 ‘국민과의 TV 대화’에서 “국제 신용평가기관에서 투자적격 판정을 내렸지만,아직은 60점이며 80점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대화에서 외환위기 극복과 4대 개혁의 추진에 있어 지난 1년 동안 국민들이 보여준 협조와 동참에 고마움을 표시한 뒤 경제회생과 실업대책을 포함한 정치,민생,대북정책 등 국정 주요 현안에 대해 국민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올 국정운영방향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기업구조조정과 관련,金대통령은 “재벌들이 국민과 은행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국민과 정부에 약속한 빅딜 등 기업구조조정을철저히 이행해야 한다”면서 “정리해고는 필요한 경우 할 수 있어야 기업도 튼튼해지고 100% 실업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빅딜을 하는 경우 인수기업이 종업원의 생존과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기업의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면서 “실업자들도 이른바 3D업종에 취업하는 등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중소기업 육성에 대해서도 언급,“대기업에 지난해 9월 이전에 1조7,000억원이 대출됐으나 11월에 중소기업에 1조1,000억원이 융자됐다”고 전하고“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성적과 꺾기 등을 한국은행과 중소기업청을 통해 감시하고 신용대출에 대한 연구조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올해 공공요금을 인상하더라도 연말 물가 억제목표 3%를지킬 것임을 약속했다. 지역화합 방안에 대해 金대통령은 “분열주의자들은 선거때는 물론 지금도유언비어를 만들고 있지만,대다수 영남지역 인사들도 분개하고 있다”면서“영호남만이 아닌 전국적 화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金대통령은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관련,“이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력으로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라면서 “올해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을 것이나 신중하고 착실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내각제 개헌 여부에 대해 “金鍾泌국무총리와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국민의 정부 국난극복 1년 2] 金대통령 국정운영 스타일

    취임초 국민의 정부의 일부 정책결정 과정을 놓고 ‘혼선’이니,‘갈팡질팡’이니 하는 지적이 있었다.국무회의에서 종군위안부 정부지원금 지급문제를 둘러싸고 국무위원간에 격돌,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회의로 연기하는 일이 벌어졌다.철저한 구조조정과 동시에 실직자 최소화 대책을 거론하는 등얼핏보면 이율배반적으로 비치는 일들도 있었다. 이들 현상은 대부분 金大中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긴 오해들이다.金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은 자로 잰 듯 엄격하다.처음부터 끝까지 논리가 완벽하다.허점이 보이면 끝없이 고치고 다듬는 것이 이른바 ‘DJ 리더십’의 핵이다. 여기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섬세함,획일주의가 아닌 토론문화와 다양성의 선호,노사정협약과 구조조정 5원칙과 같은 사회협약과 약속의 중시….오랜 야당생활과 수많은 독서를 통해 형성된 金대통령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이러한 국정 운영스타일을 반영하듯 金대통령은 국정방향과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먼저 많은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나눈다. 청와대 수석이건,비서관이건 직위를 크게 따지지 않고 야당때부터 도움이 됐던 인사들을 불러 1차 논리적인 검증절차를 거친다.문제점이 발견되면 ‘숙제’를 주고 다시 가다듬는다.YS(金泳三전대통령)와 달리 ‘화끈한’ 것은없어도,좀처럼 큰 실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5대 기업 빅딜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고,대북 3원칙이 국제적 지지 속에서 변화의 싹이 움트고,국무회의와 청와대 오·만찬 간담회에서 비교적 자유스럽게 대화가 오고가는 것도 ‘민주적 토론’과 원칙을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독재에 맞선 민주투사로,공정경쟁을 존중하는 정치인으로 당연한 시스템의변화라는 것이다.간혹 논의 과정에서 정책 초안이 공개됨으로써 혼선을 초래하는 일이 있지만,金대통령이 일관성을 중시하는 지도자임이 분명하다. 창조적 지식기반 국가 건설과 신지식인 운동을 제시한 부분은 미래지향적이고 비전있는 지도자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21세기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앞서 제시함으로써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도 아직은 과제가 남아있다.지난 1년 동안 지역차별의 최대 피해자로서 화합의 정치를 시도하고 있으나 정쟁에 휘말리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총풍·세풍수사와 정치개혁 작업에서 보듯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개혁작업도 곳곳에서 암초에 직면해있다.그의 화합의 리더십을 ‘유약함’으로 보고 도전하는 수구 저항세력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게 엄연한현실이다. 개혁의 길로 여러 집단을 아우르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통합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金대통령 스스로도 그런 리더십을 꾸준히 추구하고 있다. 梁承賢 yangbak@
  • 金元基노사정위원장 문답

    金元基노사정위원장은 19일 여의도 노사정위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노사정위의 법적·정치적 위상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노동계의노사정위 참여를 호소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3·1절 특사에서 노동운동 관련자들이 얼마나 사면·복권되나. 양대노총은 800여명의 사면복권을 요구하고 있다.그 명단을 그대로 정부쪽에 전달했다.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관용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노사정위 특별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당정간 협의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새로 만들어질 노사정위원회법은 앞으로 노·사·정 3자가 상설 정책협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규정될 것이다. ▒실직자 노조의 가입 대상은 제한되나. 노사정위가 당초 합의한 대로 관련법이 시행될 것이다.직장을 가졌다가 잃은 실직자가 가입 대상이 될 것이다. 다만 시행시기는 6개월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오는 10월 중에는 관련법이 시행될 것이다. ▒민주노총이 만약 노사정위 탈퇴를 강행하면 노사정위 운영 계획은. 노사정위는 한시적인 기구가 아니다.힘으로 밀어붙이는 방법보다는 사회적 협의체를 통한 합의도출 과정을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 의해 운영될 것이다.노동계가 일시적으로 불참하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사정위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는 사회적 협의체로 자리를 잡아가도록 하겠다. ▒노사정위에서 구조조정을 협의키로 했는데 기존의 구조조정 계획이 늦춰지거나 수정될 수도 있나. 노동계의 생각과 정부의 생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노동계는 협의가 아닌 합의를 원하고 있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게 사실이다. 金名承
  • 국민회의 지도체제 어떻게 바뀔까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회의 지도체제 개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金大中대통령의 전국정당화 구상이 어떻게 구현되느냐와 함께 내년 총선체제의향배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은 지도부 인선이다.현행대로 단일 지도체제로 가닥 잡힐 가능성이 높다.반면 과도기 성격이 짙은 ‘총재권한 대행체제’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趙世衡대행도 17일 “현행 당헌 당규가 단일지도체제를 중심으로하고 있는만큼 지도부 인선을 제외하곤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일고있는 ‘변화의 목소리’는 상당히 거세다.내년 총선은 물론 집권당으로서의 위상정립을 위해서는 당의 면모를 대폭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전국정당화 구도와 맞물려 ‘비호남 대표설’과 ‘호남 사무총장설’이 설득력을 얻고있다.아직 뚜렷한 인물이 부각되지 않지만 TK(대구·경북)출신인 李壽成전총리와 金重權청와대비서실장 등이 간간이 거론되는 상황이다.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사무총장의 경우 동교동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韓和甲총무 등이 강력하게 거론된다. ‘공동대표설’도 비슷한 맥락이다.당내 뿌리가 취약한 비호남대표를 보완하면서 당내 목소리를 수렴,국정운영에 탄력을 줄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李仁濟변수’도 만만치 않다.미국에 유학중인 李고문에게 전국정당화에걸맞은 역할이 주어질 것이란 추측이다.그의 ‘3월 조기 귀국설’도 같은 맥락이다. 權魯甲전부총재의 복귀 여부도 관심사항이다.지난 연말 귀국 이후 활발한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당 일선에 포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취약한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金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접목하는 역할이 기대된다. 내각제 문제도 불씨다.99년 내각제 개헌이 연기될 경우 자민련은 5월 전당대회에서 국민회의 당헌당규를 개정,내각제 개헌 시기와 방법 등을 못박는‘명문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吳一萬 oilman@
  • 국민의 정부 국난극복 1년-金대통령의 시련과 도전(1회)

    金大中대통령의 취임 1년은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그 어려움은 국내외에 걸쳐 광범위했고,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무엇보다도 6·25이후 최대국난으로 일컬어지는 환란(換亂)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민주주의의 숙원이었던 50년만의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인데도,당선축하연 하나 열지 못하고 선거 다음날부터 위기극복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했던것도 이 때문이다.그 결과,39억달러에 불과하던 가용 외환보유고가 지난 15일 현재 522억달러를 넘어섰다.金대통령이 “이제 제2의 외환위기는 없다”고 국민앞에 자신있게 밝힐 정도이며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고있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방에서 보듯 金대통령의지난 1년은 한마디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정책기조 위에 서있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국정운영 철학을 기초로 숨가쁘게 내달렸던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공공부문의 개혁,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등 4대 개혁이 그것이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金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진두지휘했다.외자유치와 ‘세일즈외교’를 위해 지난해 4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를 시작으로 미국·일본·중국·아태경제협력체(APEC)·베트남 방문 등 최일선에 섰다. 튼튼한 안보를 기본 축으로 한 대북 3대 독트린과 포용정책의 일관성은 한반도의 기존 구도를 변화시키고 있다.숱한 국내의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북한의 태도에 우리가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는 金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이렇다할 구체적 성과는 아직 없지만,판문점 장성급회담에서 Y2K(컴퓨터 2000년 인식)공동대처 방안 논의가 제의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듯 金대통령의 지난 1년은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이라는 태생적 한계속에서도 경제,외교·통일,사회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사상초유의 노사정 합의를 기초로 추진되어온 경제개혁 조치는 벌써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대외신인도가 제고되기 시작했고,내수경기도 서서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아직 샴페인을 터트릴 생각을 하지않아야 한다”는 金대통령의 우려가 있지만,이렇듯 개혁의 성과는 그의 리더십에 기인한 바 크다.원칙이 서면 일관되게 추진하고,민주주의와 공정경쟁질서를 존중하는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과 깊은 연관이 있다.여권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金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하기 어려운 일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취임 후 “1년만 도와달라”는 야당을 향한 호소는 끝내 무위로 끝나 숱한 정치적 굴곡을 경험해야했고,과거를 매듭지으려는 총풍과 세풍은 정치공방으로 비화했다.이 과정에서 대기업 빅딜과 새정부의 인사정책이 교묘히 얽히면서 지역감정으로 본질이 왜곡되는 기현상을 초래했다.검찰의 항명사태에서 보듯 50년 동안 계속된 수구·기득권층의 저항 또한 내각제라는 정국변수와 맞물려 만만치 않다.이러한 숱한 난제를 극복하면서 어떻게 개혁을 과감히 몰아붙이고 새로운 2000년을 여느냐에 국민의 정부의 장래가 걸려있다. 梁承賢 yangbak@
  • 양승현의 취재수첩-金대통령의 설 연휴

    金大中대통령은 이번 설연휴에도 무척 바쁠 것 같다.당장 21일 ‘국민과의TV대화’와 24일 내외신 기자회견,그리고 3월말로 예정된 서울 구로을 재선거와 안양시장 선거와 관련된 구상을 해야 한다.그래서 청와대에 머물지 않고 외부와의 접촉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떠난다.벌써부터 국정현안에 대한많은 자료를 챙기고 있다. 金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와 기자회견을 통해 올 국정의 기본틀과 향후 개혁방향,경제상황,그리고 사회통합 구상에 관해 소상히 밝힐 예정이다.국회연두교서 발표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두 행사를 통해 국민에게 직접 알린다는 복안이다.그러나 내각제문제와 개각 여부와 같은 미묘한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金鍾泌총리와 협의한뒤 공개하겠다’는 선에서 비켜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설연휴 구상’은 집권 2차연도를 어떻게 끌고갈 것인가가 핵심일수밖에 없다.金대통령은 이미 ‘올해는 4대개혁을 마무리짓고 정치개혁과 대북문제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을 밝혀온 터이다. 金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로 볼 때 두 사안에 대한 세부적인 실행계획을정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5월로 예정된 국민회의 전당대회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윤곽을 잡을것 같다.정치권은 국민회의 전당대회를 필두로 서서히 16대 총선을 향한 기지개를 켤 판이다.당정개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총선에 영향을 미치고,이는 곧바로 金대통령의 후반기 국정운영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내각제에 못지않은 화급한 현안인 셈이다. ‘수욕정이 풍부지(樹欲靜而 風不止;나무는 가만히 있고 싶어하나 바람이멈춰주지 않는다)’. 金대통령 스스로 언젠가 ‘타고난 팔자’라고 했듯이그를 둘러싼 주변상황이 꼭 그렇다.
  • 국회환란특위 국정조사결과 보고서(요지)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 특위’ 보고서작성 소위는 12일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초안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였다.다음은 초안 요지.▒경제위기 발생과정 97년 1월 한보그룹이 부도를 낸 데 이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등 대기업 연쇄부도가 발생,금융기관의 자본회수가 시작돼 자금난이 가중됐다.많은 기업들이 흑자도산에 직면하고 중소하청기업의 연쇄부도를 야기하는 등 ‘기업위기’가 발생했다.대기업 연쇄도산으로 금융기관 부실채권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일부 금융기관은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는 등 금융불안이 가중됐다. 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에 이은 동남아 위기가 확산되면서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대외지불능력을 믿지 못하게 됐다.97년 하반기부터 대출회수가 본격화돼 외화부도 사태에 직면했다.기아사태 처리가 지연돼 정부의 위기 대처능력에 대한 대외신뢰가 떨어졌다.▒경제위기의 원인▩관치경제와 정경유착=민간경제주체의 정부 의존이 심화되고 기업 및 금융기관의 경영혁신 노력이 미흡한데다 공기업 등 정부부문의비효율성이 심화돼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가 고착됐다.정치권의 개입이 빈번해지면서 정경유착과 책임소재 불분명에 따른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가 만연,종금사 감독부재 등 정부의 역할이 소홀해졌다.▩기업의 부실화=대기업들은 외형 위주의 차입경영과 선단식 경영을 지속해비효율적인 자본투자와 금융비용 부담으로 재무구조가 불건전해지고 계열기업간 상호지급보증이 크게 늘어 계열기업 전체의 부도위험이 증가했다.▩금융기관의 부실화=관치금융으로 특정기업에 대한 대출이 급격히 증가,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이 나빠졌고 외부압력의 작용으로 기업의 중복과잉투자및 지나친 차입의존을 사전에 견제하지 못했다.▩국제수지의 적자증대=정부의 수출진흥책 부재와 맞물려 경상수지 적자가지속됐다.특히 93년 이후 일본 중국 대만 등에 비해 원화가치만 높은 수준을 유지해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경상수지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외채증대와 외채관리 부실=金泳三정부 출범 당시 428억달러였던 외채규모가 97년 11월 말 1,569억달러로 증가했고,기업들의해외 현지금융을 포함한총외채는 2,100억달러를 넘었다.이 중 63%가 만기 1년 이내의 단기외채여서외채구조도 나빴다.▩외부적 원인의 작용=97년 10월의 홍콩 주가 폭락 이후 한국의 외환위기 발생 우려가 확산돼 신용등급이 하락되고 외국의 투자비중 축소,달러화 환수등이 환란을 재촉했다.▒정책의 실패▩원화의 고평가=96년 경상수지 적자가 237억달러에 이르렀으나 자본시장 개방을 추진,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환율상승(원화가치 하락)을 억제하는 등 환율관리에 실패했다.97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 기회를 놓쳐 외환위기를 방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외환보유고의 소진=97년 1월 한보사태 이후 외환수급 불균형이 심화됐으나 환율방어를 위해 달러를 쓰면서 외환보유고가 97년 1∼3월 46억달러가 줄었다.환율변동폭 확대 및 시장개입 자제 등을 통해 환율상승 압력을 수용할 필요가 있는데도 정부는 무리하게 환율을 방어하려고 달러를 소모했다.97년 12월 18일에는 가용(可用) 외환보유고가 39억달러로 급감했다.▩금융감독의 소홀=국제결제은행(BIS)기준자기자본비율 등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평가기준을 국제기준보다 완화하거나 유가증권 등 고위험 자산에대한 투자제한 등 건전성 감독기준이 없었다.종합금융사 등 제2금융권의 경우 건전성 감독기준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종금사 인허가 남발 및 감독소홀=30개의 종금사가 난립,부실 및 파산의 원인이 됐다.정부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투자금융사(단자사)들이 종금사로전환하는 것을 변칙적으로 허용했다.불법 로비 없이는 전환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재정경제원(현 재경부) 감독책임자들이 종금사에 대한 감사를 허술히 했다.▩조급한 대외개방 정책=96년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성급히 추진했다.해외여행 및 해외유학 급증,사치성 소비재 수입의 증가,과소비 조장 등으로 외환위기 발생의 요인이 됐다.OECD 가입조건으로 추진된 자본자유화 확대와 외환거래 자유화로 금융기관 및 기업의 해외차입이 급격히 늘었지만 외환보유고를 충분한 수준으로 확보하는 노력이 미흡했다.▩뒤늦은 위기인식과 정책 실기=97년들어 대기업 연쇄도산과 금융기관 부실화에 따른 금융위기를 정부가 인식하지 못했고 근거없는 낙관론에 집착,기아사태 처리가 장기화되는 등 위기대처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다.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의 주요 원인은 ▦정책담당자의 시장상황 인식 등 전문성부족 ▦姜慶植전경제부총리,金仁浩전청와대경제수석,李經植전한국은행총재 등경제정책 책임자들의 실력부족과 안이한 판단 ▦金泳三전대통령의 국정파악능력 부족 ▦金전대통령에게 국가부도 위기의 위험성에 대한 늑장 보고 및사후대책의 혼선 등 국가 위기관리 체제의 미비 등을 꼽을 수 있다. IMF행 한달 정도 전에 위험성을 느꼈으나 金전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金전대통령이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97년 11월 10일이었다.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 등에 의해 보고받은 것이 아니라 洪在馨전경제부총리의 전화를 받고 처음 알게 됐다.특히 재경원은 문서로 金전대통령에게 국가 부도위기의 위험성을 보고하지도 않았다.외채상환능력을 상실했지만 외환보유고가 어느정도 있었던 10월 중에 정부가 IMF와 협상을 시작했더라면 협상조건에서 유리한 입장 확보가 가능했을 것이다.▒국정운영시스템의 결함▩국가위기관리체제의 결함=정부내에 위기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감지하는 조기 경보체제가 없었다.金전대통령이 비공식적인 조언을 통해 국가 경제위기를 처음으로 감지한 뒤에야 경제부총리가 보고(97년 11월 14일)했다.▩정부조직구조의 문제=金泳三정부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재경원을출범시켜 일사불란한 정책의 수립을 꾀했으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봉쇄,재경원장관 등 소수 정책책임자들이 독주했다.특히 국제금융에 대한 정부의 관리와 대응이 필요했지만 재경원 국제금융 담당국을 축소하는 등 정부조직 개편이 불합리했다.금융감독 권한이 재경원,한은,은감원,증감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으로 분산돼 체계적 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정책담당인력의 전문성 취약=경제위기를 위기 발생 1개월 전에야 겨우 알았다는 姜전부총리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당시 그를 보좌하던 전문 공무원의전문성과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볼수 있다.▒경제위기의 책임▩정부 책임=정부는 정책의 투명성 및 일관성의 부재,만성적 경상수지적자방치 및 환율정책의 실패,단기외채 누적 방치 등 외채관리의 실패,관치금융의 지속,금융감독의 소홀,기업의 중복·과잉투자 방치 등의 정책적 잘못을범했다.▩기업의 책임=국내외적 경쟁 심화에도 전문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보다는 차입에 의존한 사세확장 등 외형확대 위주의 차입경영을 지속한 것을 비롯,중복 과잉투자,경영투명성의 미흡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금융기관의 책임=편중대출에 따른 위험 증가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데다수익성을 무시한 무분별한 외형성장을 추구하는 등 책임경영체제를 이루지못했다.▩정치권의 책임=정치권이 은행장 및 정부 고위관리의 선임 등에 관여해 정경유착을 초래했다.정치권의 필요에 따른 특정지역 대형산업 투자 등 지역이기주의를 조장했다.기아사태 처리지연 조장,경직적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노동법 개정의 당리당략적 추진,금융개혁입법의 무산 등 대외신인도 추락의 계기를 제공했다.▩국민의 책임=90∼96년 무분별한 임금인상을 요구,일본의 6배,대만의 2배에 달하는 급속한 임금상승으로 이어졌다.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의 한 원인이다.사치성 과소비 등으로 외화를 낭비해 경상수지 적자 및 외채누적의 원인을 제공했다.▒부도발생 원인▩외부차입에 의존한 무리한 기업확장=기아특수강 기산 등 자동차 외 업종에서 무리한 차입투자를 강행했다.97년 5월 기준 그룹의 총차입금 9조4,000억원 중 47.8%인 4조5,000억원이 제2금융권으로부터 빌린 것이다.▒자금조달의 어려움 97년 대기업 연쇄부도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이 가중됐다.▦李信行전기산사장이 94년 9월부터 97년 7월까지 총 24억9,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됐다.정치권 로비 등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91년부터 97년까지 기아의 총 분식결산 규모는 4조5,736억원에 이르며 金善弘전회장은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金전대통령은 97년 9월 4일 한 행사장에서 카폰으로 姜전부총리에게 기아를 부도내지 말도록 지시,대통령의뜻에 따라 기아처리가 지연됐음이 확인됐다.▒정치권 로비 종금사 인허가 과정에서 정치자금이 제공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洪在馨전부총리는 “대선 등 정치적 문제와는 관계가 없었고 청탁이나 압력도 없었다”고 증언했다.94년 전환된 9개 종금사중 4개사가 부산·경남지역에 편중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무더기 전환의 문제점 시장규모를 감안하지 않은 채 2차에 걸쳐 24개 종금사를 무더기 전환해줘외화차입 등 과당경쟁을 유발했다.▒만기불일치에 대한 대처 미흡 단기외채를 빌려 장기 설비투자 자금으로 운용하는 등 만기불일치의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의 적절한 대응조치가 없었다.▒주요관련사항 당진제철소 투자비 중 노무비로 과다 계상된 7,332억원이 최소 비자금 규모로 판단되나 鄭泰守전한보그룹총회장은 ‘비자금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증빙처리할 수 없는 부분을 노임으로 처리한 것뿐’이라고 답변했다.그러나 이자금은 음성적인 비자금 등을 위한 은닉자금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판단된다.92년 대선을 전후해 鄭전총회장은 92년 12월 12일 하얏트호텔에서 당시 金泳三후보에게 100억원을 수표로 직접 전달하는 등 모두 150억원을 전달했다고시인했다.▒PCS사업 인허가에서 나타난 문제점▩심사기준의 변경에 따른 공정성 문제=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당초 심사기준이 변경되면서 LG텔레콤과 한솔PCS가 사업자로 선정되는 혜택을 받아 엄격하고 공정해야 할 심사기준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과잉중복 투자로 인한 낭비=이동전화시장 규모에 비해 PCS사업자를 과다선정,전국단위의 5개 사업자가 과당경쟁했다.기지국의 공용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기지국 설치 등에 있어 과잉투자를 초래했다.▒‘사직동팀’의 불법 계좌추적 金相宇 전 은행감독원 검사6국장과 朴在穆 전 경찰청 조사과장에 대한 증인신문과정에서 사직동팀이 계좌추적을 불법적으로 행한 사실이 확인됐다.국민회의가 창당된 95년 10월쯤부터 대선이 임박한 97년 8월까지 당시 金大中국민회의총재의 친인척계좌(소위 ‘DJ비자금계좌’)를 추적했다.이 계좌추적은 법원의 영장 없이 은감원과 증권감독원의 직원을 활용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裵在昱사정비서관이 사직동팀을 지휘했다.97년 10월 7일 당시 신한국당 姜三載사무총장이 발표한 ‘DJ비자금계좌’와 관련,朴在穆전과장은 ‘발표내용이 우리가 팀을 동원해 조사한 내용과는 상당히 달랐다’고 증언했다. [정당팀]
  • 金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21일 갖기로

    金大中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계기로 오는 21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국민과의 TV대화’를 갖고 올 국정운영 방향과 4대 개혁 마무리를 통한 경제재건 비전,실업대책,정치개혁과 지역갈등 해소책 등을 밝힐 예정이다. 또 24일에는 내·외신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집권 2차연도 국정 구상과 주요 정국현안 대처방안을 설명한다. 金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해 1월과 취임 후인 지난해 5월 ‘국민과의TV대화’를 가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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