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석] ‘민주정부 위기’ 주제 정기포럼-임혁백 고려대 정외과 교수
중도좌파 지식인 모임을 표방하고 지난 3월에 출범한 좋은정책포럼이 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민주정부의 위기와 진보개혁 세력의 진로’를 주제로 제4차 정기포럼을 개최했다.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인 임혁백 고려대 교수(정외과)가 발표한 ‘지속가능한 진보를 위한 한국 정치의 과제’를 간추린다.
2004년 총선 승리 이래 재·보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의 연이은 참패로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존속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진보개혁세력으로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은 5·31 지방선거에서 단 1개의 광역단체장밖에 당선시키지 못함으로써 집권정당으로서의 위상이 무너졌다.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은 보수 세력의 역사적 패러다임의 대변환에 대한 대응실패로 반사적 이익을 봤다. 한국 보수의 ‘실패의 위기’ 위에 연속으로 집권하게 되었다.‘햇볕정책’을 통한 남북화해 협력,IT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 인터넷을 통한 젊은 세대의 자발적 정치참여 등이 연속집권의 공신이었다.
그러나 집권 이후 한국의 진보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실현가능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했다.
위기의 징후는 여러 분야에서 발견되고 있다. 첫째,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 민주화를 이끌었던 진보개혁세력은 세계화와 대면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둘째, 참여정부는 ‘수권능력´(fit to govern)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근 선거에서 국민들은 깨끗하지만 무능한 진보보다는 부패하지만 유능하다고 믿는 보수를 선택했다. 셋째, 남북문제에 있어 진보개혁세력은 9·11사태 이후 변화된 국제환경하에서 민족공조와 국제공조의 균형을 잡는 데 실패했다. 탈냉전 이후 보수에 대해서 확고한 우위를 보여주었던 분야에서 비교우위를 상실했다.
현재 진보개혁세력이 계속 집권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극히 부정적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자민당 일당 우위의, 일본의 55년 체제를 닮아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다. 진보개혁세력이 다시 일어서서 재집권하기 위해서는 자기혁신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국민적 요구에 빠르게 응답하기 위해 대통령과 정당간의 협치의 거버넌스가 확립돼야 한다. 시민사회와 정부 간의 소통의 통로도 열려 있어야 한다. 민주적 정부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당, 의회, 선거를 통한 전통적인 책임성 확보에 더해 시민사회가 정부를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세계화의 도전에 대한 응답도 있어야 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사회적 통합을 추구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화가 초래할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로 사회통합의 틀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또 민주화가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적 민주화로 확장돼야 한다. 시민들은 정치적 권리를 넘어서 사회적 권리, 환경적 권리, 경제적 시민권을 가지고 있을 때 민주주의는 지속가능해진다.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서 페미니즘, 환경, 인권과 같은 생활세계의 민주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민주정부가 유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추진에 있어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다. 민주정부가 국정수행에 실패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낮은 사회적 지지도 때문이지, 국정운영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높은 대표성과의 불균형 때문이 아니다.
또 이해당사자, 시민단체, 지식사회가 참여하는 민주적 정책공론장을 확대 개방해야 한다. 집단간 첨예한 이익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정책사안의 경우 민주적 코포라티즘의 정책모델을 통해 정책결정의 갈등비용을 이해당사자와 공유하면서 추진할 수 있다. 정책의 수용자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정책사안의 경우 이해당사자들의 참여하에 토의(심의)를 통해 자발적으로 공동결정에 도달하는 심의민주주의 정책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
민주정부가 권위주의의 폐쇄적 결정구조보다 우월한 정책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 즉 높은 대표성과 참여를 활용해야 한다.
정리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