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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월드컵, 한일관계, 동아시아 공동체

    월드컵 대회 덕분에 일본의 궂은 장마철을 잊게 한 열광의 한 달을 보냈다.그러나 잔치가 끝나면 뒤치다꺼리도 해야 하고 복잡한 현실이 성큼 다가온다.축제의 막판에 터진 서해교전 사건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북·미 대화의 재개 가능성이 후퇴하는 가운데 ‘악의 축’인 이라크에 대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반도를 중심한 동북아시아 정세도 긴장격화를 피할 수 없다.한국과 미국이 선거의 계절을 맞고 있고,중국도 지도자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일본도 정치적 리더십 결여로 인한 국내정치의 혼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외교의 국정화(國政化)’,즉 국내정치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대중여론이 외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외교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기 쉬운 구도가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냉전 종결 이후 명확한 대립관계가 소멸하고,국경을 초월한 정보혁명이 확산되는 현재의 글로벌화 시대에는 외교의 성패도 상대방 국가의 정부가 아니라 일반 시민의 마음을 어떻게사로잡는가가 관건이 된다.월드컵 대회에서 보여준 한·일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서,우리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한 과제인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을 향해 지혜와 노력을 모을 때다. 이번 월드컵 대회는 동아시아의 가능성과 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한·일 양국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공동의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이미지에도 커다란 공헌을 했다.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의 거리가 부쩍 좁혀진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일본 체류 20년 가까이 되지만 일본 사회에 이처럼 한국이 깊숙이 파고들고 또 크게 부각된 예를 기억하지 못한다.개막 이전에는 공동 개최국이라는 형식적 동기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보도들이 눈에 띄었다.그러나 대회 기간 중에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역동성이 생생하게 전달됐다.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외국 관련 뉴스는 정치나 경제면에 집중된다.한국에 대해서도 국내정치의 파당대립과 지역주의,남북긴장이 되풀이되는 이미지였다.간헐적인 소개는 있었지만,이번 대회가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로 크게 변모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일본 대중에게 각인시켰다는 의미는 매우 크다. 물론 매스컴의 보도대로 ‘4강’이라는 한국 선수단의 위업에 대해 일본 국민 대다수가 박수를 보내고 같이 환희하며,‘붉은악마’ 현상에 감동한 것은 아니다.몇몇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에 오히려 반감을 표현하는 비율도 절반 가까이 존재한다.젊은 세대와의 솔직한 접촉에서 얻는 체험적 비율은 이보다 높고,또 감정적이기도 하다.필자도 협력을 요청받은 ‘뉴스위크 일본판’(7월10일자) 특집기사 ‘혐한(嫌韓)무드가 비치는 공동개최의 모습’이 일본의 속마음에 오히려 가깝다.경쟁심과 질시는 자연적 반응이기도 하며,오히려 다수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진심에 가깝게 한국을 응원하고 감동한 현상이 주목해야 할 변화다.이같은 변화가 지난 10여년간진행된 한·일교류와 접촉의 성과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이제 한·일관계의 개선은 국가나 정부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량이 중심이 돼야 할 단계다.또 그 길이 보다 효율적이기도 하다.과거사의 틀에서만 한·일관계를 접근하는 것은 한국의 입장을 ‘피해자’로 왜소화하고 특수화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역사문제의 원칙을 국가적 차원에서 확고히 견지함과 동시에,일본보다도 개방적이고 선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좁은 일본을 바꾸는 첩경이다.일본을 한국내에 끌어들이고 또 일본 사회 안에 뛰어들어서 일본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금의 한국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작년우경화된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이 0.4%에 머무른 것이 그간의 한·일 민간교류의 성과라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한·일관계의 심화는 양국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의 디딤돌로서의 의미가 보다 크다.중국의 대두 등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위협의식 속에서 일본은 동아시아라는 틀에의 거부감을 증폭시키며 미·일 안보 강화로 크게 기울고 있다.일본 정부와 사회의 대북한 강경화도 이같은 전략구도와 무관하지 않다.방황하는 일본을 끌어들여 동아시아의 지역협력 틀을형성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다. 이종원/ 日 릿쿄대 교수
  • “GMO수입증명제 철회 반대”시민·환경단체 공동성명

    농산물 가공식품의 수입통관시 유전자변형식품(GMO)이 섞이지 않았음을 미국측으로부터 보증받는 수입증명제를 철회키로 정부와 미 무역대표부(USTR)가 합의했다는 대한매일 18일자 1면 보도와 관련,환경·시민단체들은 18일 공동 성명을 내고 정부의 조치를 강력 규탄했다. 성명에는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한국여성민우회,한살림,한국생협연대,한국여성환경운동본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이번 합의는 수입업자 및 생산업자들로부터 농산물 유전자조작 여부에 관한 입증 책임을 덜어주는 것”이라면서 “미국의 국익과 행정편의를 위해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 보장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이들은 “유전자조작 표시제가 미국의 입김에 밀려 연이어 무너질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정부는 이에 대비해 유전자조작식품 표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연합 김타균 정책실장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환경과 생명 분야를 규제완화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태도는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은 19일 오전 11시쯤 서울 명동 한빛은행 앞에서 집회를 갖고,GMO 표시제 확대와 강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갖는다. 이창구 오석영기자 window2@
  • 박근혜 “盧후보와는 안맞아”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최근의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우선 민주당이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다시 실시할 경우 참여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정당을 같이한다면 정책과 이념 등이 맞는 게 전제돼야 하는데,노무현(盧武鉉) 후보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너무 달라 생각할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또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반(反) 이회창,비(非) 노무현’단일 세력화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도 없다.”면서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좋은 정치를 해보려는 분들과 같이하고 싶다는 입장”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의원과의 연대 여부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는 만큼 가능성은 있다.”면서 “정몽준(鄭夢準) 의원에게도 정치를 같이하자고 제의했으니 뭔가 답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제3세력 연대를 통한 신당의 대선후보 선출 가능성에 대해 “모두 비전이 있고 꿈도 있지만 국민 지지를 못 받으면 그만 둬야 하는 것”이라면서 국민 지지를 최우선 기준으로 제시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오늘의 눈] 히딩크와 차세대 구축함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에 대한 우리 국민의 사랑은 참으로 순수하게 느껴진다. 히딩크 감독의 고국 네덜란드가 가보고 싶은 나라로 우선 손꼽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네덜란드에서도 한국 붐이 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 국방부는 그 네덜란드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2012년까지 2조 9608억원을 들여 7000t급 차세대 구축함(KDXⅢ) 3척을 구비하는 국가방위 사업에서 미국과 각축을 벌이는 나라가 네덜란드이기 때문이다.무기산업의 ‘골리앗’미국을 ‘다윗’네덜란드가 당당히 누른다면 월드컵에서 선전한 한국 축구처럼 보기 좋은 일일테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차세대 구축함은 곤충의 눈과 같은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를 갖춰 최대 472㎞ 안의 목표물 900개를 동시에 포착할 수 있다.최대사정 240㎞에 이르는 미사일 ‘SM-2블록4A’를 64개나 장착할 수 있다. 국방부는 국산 함정에 장착할 통합전투체계를 놓고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동안 미국의 이지스(AEGIS) 체계와 네덜란드의 아파르(APAR) 체계를 비교·시험평가했다.그 결과 아파르는 이지스에 비해 가격과 레이더 성능은 비슷했으나 미사일 부문에서 처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지난 5월 예정대로 평가결과를 발표하려다 갑자기 ‘더 나은 협상조건’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발표를 6월 중으로 미루더니 또다시 무기한 연기했다.덜컥 미국의 손을 들어주자니 국민의 반미 감정을 자극해 ‘제2의 차기전투기(FX)사업’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고,월드컵 후에는 국민적 영웅 히딩크의 모국에 몹쓸 짓을 한다는 시선을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엄청난 세금이 드는 일이라 국민 감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하는 데서 국방부의 고민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간단하다.과거 율곡비리처럼 양심에 걸릴 것이 없다면 솔직하게 일을 처리하면 될 것이다.오히려 엄청난 세금이 들기 때문에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국익을 위하는 선택을 한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김경운 정치팀 기자 kkwoon@
  • 총리실 “왜 또 흔드나”행자부·검찰도 “불쾌”

    총리실과 행정자치부는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총리 및 행자부장관 교체 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이한동(李漢東) 총리를 비롯,이근식(李根植) 행자부장관 등 당적을 가진 장관들이 이미 탈당한 상황인데 무슨 거국중립내각 구성 운운하느냐는 반응이다. ◇총리실= 이 총리의 한 측근은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결집된 국민들의 애국심을 경제발전,국가이미지 제고 등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내각이‘포스트월드컵’ 대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 개각 요구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총리실 관계자도 “레임덕 등으로 가뜩이나 흔들리는 공직사회를 왜 자꾸 흔드는지 모르겠다.”면서 “민주당이 밀리니까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서해교전으로 인한 국방장관의 거취 문제로 부분 개각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면서 총리 교체와 관련,노후보와 청와대간 교감이 있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행자부= 한 관계자는 “선거관련 부처의 중립성을 이유로 행자부 장관을 거론했는데 90년대 초에도 같은 이유로 변호사 출신 장관을 임명했다가 오히려 혼선만 빚었었다.”며 행자부장관 교체 주장을 일축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노 후보가 어려운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청와대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행자부를 걸고 넘어진 것”이라면서 “행자부가 지방자치단체를 총괄하는 대단한 곳인 줄 아는데 이는 정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법무부·검찰= 성영훈(成永薰) 법무무 공보관은 “임명권 문제에 대해선 노코멘트”라고 말했다.그러나 검찰 간부들 사이에서는 불쾌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한 간부는 “검찰의 중립성을 못 믿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말했다.선거사범 수사를 맡게 될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는 “선거사범처리에 대한 불공정 시비가 야당측의 단골 메뉴였던 만큼 노 후보의 제안을 이해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치바람에 더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광숙 최여경 조태성기자 bori@
  • [공직자 에세이]열린 마음으로/외교적 현실과 현실적 외교

    외교라고 하면 의전이나 영사업무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그 또한 주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으나,실상 외교업무는 그보다 훨씬 더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외교업무는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국익을 신장하기 위한 제반 활동을 통칭한다.구체적으로는 다른 나라들과의 호혜적 관계 발전,유엔·세계무역기구(WTO)를 포함한 다자포럼과 국제규범 정립과정에서 우리의 정당한 역할 확보,양자 및 다자 차원의 분쟁 예방과 해결,외교망을 가동하여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의 수집과 분석·활용 활동이 포함된다.여기에 전세계에 나가 있는 재외국민의 권익 보호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총체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활동 등을 모두 망라한다. 이러한 외교업무의 대부분은 화려하거나 빛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또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나서는 안되는 성격의 일들도 많다.그러나 그것은 화려한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국력,아니 외교력의 우열이 실제로 판가름나는 기본인 것이다.외교부가 이른바 특수지(特殊地),생활환경이 열악하고 치안이 불안하여 외교관의 신변에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 지역까지 망라하여 세계의 요소요소에 재외공관망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국익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현장이며 아무리 가까운 우방국 사이에도 이해가 충돌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개인 사이에서도 그렇지만 잘잘못을 가려줄 판관(判官)이 없는 국제사회에서는 국가간의 이해충돌이 쉽게 해소되지 못하고 때때로 밖으로 불거지곤 하는데 이는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에서는 어떤 한 분야나 하나의 이슈를 둘러싸고 마찰과 갈등이 있다고 해도 다른 많은 분야에서는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과 교류가 평상시와 같이 진행되곤 한다.따라서 하나의 이슈에서 갈등이 생겼다고 해서 다른 모든 이슈에서의 우리 이익을 희생시킴으로써 ‘모든 달걀들을 한 바구니에 넣는’흑백논리식의 대응을 하기보다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교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원칙과 논리에 입각하여 국가의 위신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실리확보도 항시 염두에 두는 균형잡힌 자세를 지켜나가는 것이 긴요하다.그런데 국민적 관심이 높은 외교사안을 다룰 때에는 이러한 자세를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외교정책 결정과정은 엄숙한 고뇌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국민정서와 바람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나,여론의 기대에 지나치게 맞추려 하다 보면 국제사회 현실상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설정해 헛힘만 쓰게 되거나,결과적으로 소탐대실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외무장관이었던 파머스턴 경이 1848년 의회연설에서 국가간에는 영원한 친구도,영원한 적도 없으며 오직 영원한 국익이 있을 뿐이라고 갈파했듯이,외교는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핵심 국익을 확보하는 엄중한 국가기능으로서 조금의 태만도 용납되지 않는다.연초 대통령께서도 외교에서는 실수가 결코 허용되지 않으며,우리나라처럼 강대국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중간급 국가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우리 외교관들은 이 말씀을 유념하면서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국민 여러분들께서 외교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는 가운데 계속 높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기를 부탁드리고자 한다. 최성홍/외교통상부장관
  • 부시 행정부 강·온 내분 심각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내분은 없다.다양한 의견 제시만 있을 뿐이다.”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마찰이 불거질 때마다 미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이렇게 말했다.그러나 갈등은 의견 대립의 차원을 넘어 현재 정책수립에 혼란을 야기하는 위험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특히 9·11 공격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선언되면서 부시 행정부의 ‘무게 추’가 군사적 대응에 쏠리자 외교적 노력을 앞세운 실용적 온건파의 노선은 설 땅을 잃고 있다.전시내각을 앞세운 백악관 역시 모든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행정부의 분란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15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중동정책 등과 관련한 백악관의 음해에 실망,11월 이후 사임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국무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추측성 보도라고 일축했지만 부시 행정부의 내분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동정책= 부시 행정부는 외견상 아랍국가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균형감각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을과시한다.미 역대 정권들이 그랬듯이 부시 행정부도 유대인의 정치·경제적 영향권에 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지난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기 앞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회동,아랍권의 견해를 들은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언제나 친 이스라엘 성향을 띤다.외교정책의 수장인 파월 장관은 늘 백악관의 뒷전에 있다.그는 중동평화 정착의 유일한 해법이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이라는 아랍권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다.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를 반대한다고 밝힌 샤론 총리의 편에 섰다.당초 알려진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위한 일정을 제시하기보다 갑자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백악관은 브리핑을 통해 샤론 총리의 대(對) 팔레스타인 강경책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간주하고 지지한 반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폄하,아랍권의 반발을 샀다.이스라엘과 아랍권 등의 각료회담을 통해 문제를 풀려던 파월 장관의 노력에 백악관이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대테러 전쟁= 강경파들은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론을 거침없이 말한다.폴 윌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 존 볼턴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이 대표적인 매파들이다.이들은 ‘부시 독트린’의 절대적 지지자들로서 테러세력과 연관됐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에 군사적 행동의 필요성까지 강조한다.북한의 위협에도 단호한 대처를 요구한다. 그러나 파월 장관 등 온건파들은 “적을 늘리는 것은 상책이 못된다.”고 주장한다.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에는 동맹국마저 반발하고 있어 자칫 국제적인 대테러연대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시각이다.외교·정치적 노력에 앞서 군사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익에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지난 1월 부시 대통령의 ‘악의축’ 발언에 이은 최근 테러세력과 악의 축 국가의 연계성 주장은 온건파의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북정책= 온건파들은 대북정책 검증이 불가피하더라도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는 최상책은 ‘협상’이라고 본다.미사일 개발이나 재래식 무기 등의 위협을 자주 거론,북한을 자극하기보다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당근책 제시가 낫다는 주장이다.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등은 김정일 정권의 실체를 받아들이고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이란이나 이라크와는 분명한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클린턴 행정부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으나 최소한의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를 유지하는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강경파들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믿지 않는다.핵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미사일을 개발하고 수출한 돈으로 재래식 무기를 다시 증강하는 등 위협을 키우고 있다고 본다.따라서 북한과의 대화는 북·미 관계개선이 아니라 북한이 약속을 제대로 지킬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심지어 백악관과 국방부 내부에서는 김정일 정권의 교체 필요성까지 거론,국무부의 반발을 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내에서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의 위협을 줄이지 않거나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할 의사가 없다면 강경한 대응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매파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이 때문에 텔레그래프가 보도한 것처럼 파월 장관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지만 미국의 외교정책을 성안하지 못한다면 장관직을 고수할지 의문이라는 국무부 관리들의 말은 전혀 신빙성이 없는 게 아니다. mip@
  • [데스크칼럼] 外資 유치의 함정

    몇년 전만 해도 국내 굴지의 상장회사 오너 겸 대표이사였던 K씨의 요즘 일과는‘빼앗긴’ 회사를 찾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는 일이다.소송을 진행 중인 것만 30여건에 이른다. K씨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소송을 하게 된 사연은 대충 이렇다.부채보다 자산이 많은 회사를 일시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채권단에서 오너의 주식을 감자,경영권을 빼앗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K씨의 더 큰 울분은 다른 데 있다.외화유치라는 명분 속에 숨겨진 ‘진실’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데 대한 섭섭함이다. 외국계 회사가 투자한다면 채권단이나 정부에서 그렇게 고분고분하면서 자신이 부탁을 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든가,정부의 방침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오히려 실무자가 하소연한다는 것이다. K씨가 경영했던 회사는 최근 일본 굴지의 회사에서 경영권을 인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채권단에서 환영한다는 문구도 들어 있었다. K씨로선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물론 원인은 그 자신에게 있다.유동성 확보실패 등 위기에 대한예측경영을 하지 못한 잘못은 누구를 탓할 입장이 못된다. 그러나 그는 외국계 회사에 주어지는 혜택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일시적인 자금난을 경영실패로 몰아세워 경영권을 빼앗은 일은 해도 너무했다는 것이 K씨의 주장이다. IMF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국내 4대 재벌이던 회사가 공중분해됐는가 하면 한때 재계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던 기업들이 소리없이 쓰러졌다.그중에는 대표의 경영능력에 문제가 있는 기업도 분명히 있다.차입경영으로 몸집 부풀리기에 나섰다가 직격탄을 맞은 기업인들도 한둘이 아니다. 여기서 K씨를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외국자본에 대한 검증 작업이다.한때 우리 사회에선 외자를 유치하는 사람은 무조건 애국자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정부 당국자들도 외자라면 사족을 못썼다.당시의 절박한 심정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1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자랑하고 있고,무역수지도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채권단이나 정부당국의 인식은 IMF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워크아웃 중인 기업을 매입할 때도 내국인 단독보다 외국계 회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게 작용한다. 외국계 자본들은 이러한 국내 현실을 너무 잘 꿰뚫고 있다.계약금만 들여놓고 나머지는 국내 은행에서 차입을 일으켜 충당하거나,아니면 이름만 빌려주고 실리를 챙기는 외국계 회사들이 그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최근 일본 기업에 넘어간 K화학 역시 명의만 빌려줬을 뿐 실제 전주는 내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이나 정부당국은 지금부터라도 외자에 대한 검증 작업을 벌여야 한다.IMF의 절박한 시절에 취했던 조급한 정책들을 추스르고,무엇이 진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볼 시점이다. 홍성추/ 기획취재팀장
  • [사설] 정치권, 하이닉스에서 손 떼라

    하이닉스 반도체 처리문제가 춤추고 있다.정부와 채권단,하이닉스 노사는 물론 학계와 정치권까지 가세해 서로 국익을 앞세우며 혼선을 부채질하고 있다.정부와 채권단은 ‘매각’에,나머지는 ‘독자생존’에 무게를 싣고 있다.하지만 하이닉스의 생사는 애국심이 아닌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같은 혼란의 와중에 민주당 박병윤 정책위의장의 ‘하이닉스 독자생존 합의’발언은 문제가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박 의장은 “정부,채권단,하이닉스 노사,삼성전자가 연말까지 하이닉스의 독자생존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또 하이닉스 독자생존 환경 조성을 위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감산(減産)에 노력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박 의장의 주장은 당사자들이 즉각 부인하고 반발하는 바람에 시장에 혼란만 부채질했다.설익은 희망사항을 합의된 것처럼 과장한 결과였다. 하이닉스가 독자생존하려면 128D램의 가격이 개당 5∼6달러 이상을 유지해야 하고,채권단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추가로 지원해야 한다.박 의장은 반도체 가격을 올리는 방안으로 삼성전자의 감산을 제안했으나 이는 전 세계 반도체시장의 수급문제와 직결된 것으로,삼성전자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128D램은 올초 한때 4달러선까지 치솟았으나 지금은 다시 2달러 초반으로 주저앉았다.두 가지 요건이 충족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데 하이닉스의 ‘비극’이 있다. 하이닉스 처리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아무나 거들고 나서선 안된다.특히 유권자의 표를 우선시하는 정치권은 하이닉스 문제에 관한 한 훈수를 자제해야 한다.5년 전 정치권의 무차별적인 개입으로 표류한 끝에 외환위기를 몰고온 기아차의 망령을 잊어선 안된다.채권단이 구조조정의 일정에 따라 처리할 수 있게 모두가 도와야 한다.
  • 매경 TV·YTN ‘월드컵경제’ 조망

    한국팀의 첫 승리로 월드컵의 열기가 더해지면서 2002 한·일 월드컵을 경제적으로 분석,조망하는 프로그램이 케이블 TV에서 잇따라 방송된다. 매일경제TV(MBN)는 6일 오전 11시 ‘월드컵 이후의 전망과 과제- 월드컵 마케팅현장리포트’를 현충일 특집으로 방영한다. FIFA의 수입구조 및 한·일 월드컵 수익배분 현황,월드컵 후원업체의 종류별 현황과 권리,국내 스폰서 기업(현대,KT)의 참여동기와 기대효과,공식후원업체로 선정되지 못한 기업이 벌이는 마케팅 사례 등 경제 효과에 대해 알아본다. 공식 후원업체 자리를 따낸 아디다스,코카콜라,KTF,현대자동차,포스코 등과 공식후원사 자리를 놓친 삼성,SK텔레콤,다음 커뮤니케이션 등이 펼치는 불꽃튀는 마케팅 현장도 소개한다. YTN도 6일 밤 11시15분 방영되는 ‘집중조명’에 전문가를 초청,뜨겁게 달아오른 월드컵 열기를 국익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9)고종-니콜라이2세 특별한 관계

    ■두帝國 ‘마지막 황제' 친서외교 10여년 고종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침탈외교사에서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종(1852∼1919)은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강제로 대한제국의 황제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양위했지만 조선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니콜라이 2세(1868∼1918) 또한 1917년 2월 혁명에 의해 퇴위당한 뒤 유배지에서 처형당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두 사람이 조선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정서가 통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황제 대 황제의 동격 관계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꺼져가는 국운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고종이 일본을 밀어내기 위해 러시아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면 니콜라이 2세는 만주에서의 이익 등 국익에 반하지 않는 수준에서 ‘외교적’으로 고종을 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밀월관계의 출발은 아관파천(1896년 2월11일∼1897년 2월25일)이었다.초대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 넘게 서울에 주재하면서 고종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베베르가다리를 놓았다.대(大) 러시아제국의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에게는 저 멀리 극동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이 자국 공사관에 1년이상 몸을 의탁한 채 도움을 요청하자 애처로움과 동시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같은 관계의 성립은 니콜라이 2세의 자상한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니콜라이 2세는 전제군주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잔정이 많았다.해외 각국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들의 상주서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체크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중에는 고종과 니콜라이 2세가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30차례 가까이 등장한다.대부분은 고종이 보내고 니콜라이 2세가 받는 형식이었지만 니콜라이 2세도 여러 통의 친서를 보냈다.비공식 친서로는 1895년 7월 고종이 조선군 병참관 권동수(權東壽)를 연해주 지사 운테르베르게르 장군에게 보내 러시아 황제의 후원을 요청한 것이 있다.그러나 고종은 이후 문제가 야기되자 파견사실을 부인했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첫 공식친서는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민영환(閔泳煥) 특사를 통해 전한 다음 친서이다. 짐의 나라는 관습은 물론 언어와 문자도 고유해 외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불행하게도 짐 나라의 동쪽 이웃나라가 일본이다.일본은 섬나라이며 관습은 짐의 나라에서 유래됐고 문자와 제도도 짐의 나라에서 가르쳐주었다.…그 때문에 일본은 짐의 나라를 자기의 조상과 주인의 나라로서 섬겼다.…최근에 일본이 서양의 제도를 흉내내고 배워 동양의 맹주가 되려한다.…짐은 폐하가 짐의 나라의 실정을 동정하고 정의를 토대로 세계 열강제국이 짐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인 행위를 꾸짖고 나라의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모든 조약규정 위반을 즉시 중지하도록 권고하여 주시길 바라고 바란다.끝으로 짐은 눈물로 폐하께 호소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고종의 ‘눈물의 편지’를 읽은 니콜라이 2세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러시아는 1896년 10월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을 파견했다.그리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의 국호변경과 황제 즉위 등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자 열강 중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하고 축하전문을 보내왔다.눈치를 보던 일본,미국,프랑스,영국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고종은 혹시 러시아가 거부할 지 몰라 노심초사했으며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대군주 폐하)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연막을 쳤던 터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간의 밀착관계는 1898년 조선이 러시아 군사교관단 및 재정고문 알렉세예프의 본국소환을 요청하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종은 “재정고문과 군사교관단의 소환으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베푼 황제의 호의에 아무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러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에게 변함없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안심하도록 진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일단 무마됐다. 니콜라이 2세는 내심 불쾌했지만 복심(腹心)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이나 대한제국 정부가 앞으로도 러시아의 지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문의하라.”는 칙령을 내리는 등 고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하지만 고종을 공사관으로 피신시키겠다는 제2,제3의 아관파천 공작을 서울주재 공사관에서 보고하자 “그런 일은 현재의 정치여건 아래서는 지극히 위험한 사태를 몰고올 수도 있다.”면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니콜라이 2세가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키로 하면서 절정에 올랐다.니콜라이는 고종에게 축하친서와 함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성 안드레이 사도 1급훈장 등 러시아 최고 훈장을 선물로 보냈다.이에 앞서 고종은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바있다.안드레이 1급훈장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 최고의 훈장으로 명예는 물론 당시 가격으로 5000루블을 호가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그러나 기념식이 콜레라 창궐로 연기되는 바람에 수여되지 않았다. 고종이 “기념식은 연기됐지만 베베르를 서울에 체류토록 해달라.”고 요청하자니 콜라이 2세는 “폐하의 요청을 받고 짐은 만약 뜻밖의 어려움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폐하의 재위 경축식이 다시 열리는 내년 4월17일까지 베베르의 서울체류에 동의한다.”는 친서를 보내는 등 서로의 돈독함을 공개적으로 내비췄다. 이후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두 사람은 명헌태후 서거애도 친서,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 득남축하 친서 등을 주고 받았다.고종은 “황제께서 황태자를 생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자 한다.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축전을 치는 것이 도리였으나 외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제 서한으로 축하를 드리게 됐다.”고 기술했다.니콜라이 2세는 “감사함을 전하라.”고 공사관에 지시했다.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고종은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기를 바란다.”는 친서를 띄웠고 “러·일전쟁 발발시 중립준수를 요청한다.”는 니콜라이 2세의 친서를 전달받자 곧바로 중립선언문을 작성,일본을 비롯한 열강에 보내 화답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일본은 보란 듯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이로써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던 고종의 전략은 한계에 부딪힌다. 러시아는 모든 열강이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무력으로 독립과 불가침권을 침탈한 데 대해 견해를 밝힌 바 있다.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정부가 고종을 일본으로 이송,미리 준비한 비밀장소에 연금시킨다는 계획을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러시아는 천인공노할 일본의 계획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1905년 5월10일 외무부가 해외 러시아 공관에 보낸 회람전문) 니콜라이 2세도 이 전문상단에 “일본의 그런 행위는 어떻게든 예방돼야 한다.”고 지시하는 등 고종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덕분에 고종의 일본강제 이송 및 연금계획은 무산됐다. 고종 개인에 대해서는 우정을 유지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는 니콜라이 2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을사늑약체결 직후 고종이 “일본은 미리 작성해 온 조약문에 국새를 강탈해 날인하고 짐의 서명을 강요하였으나 단호히 거절했다.황제께서는 유럽 문명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려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시길 거듭 앙망한다.”고호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국내문제로 더 이상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후 헤이그밀사파견(1907) 등 고종의 거듭되는 친서와 러시아에로의 정치망명 요청 등에 대해 러시아는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준수와 극동질서를 강조하는 등 계속 딴전을 피웠다.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러시아혁명이라는 폭풍앞에 선 니콜라이 2세로서도 동방의 소국에 더이상의 잔정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종황제는 병이 들어 나약하고 병력이 없는 군부대신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고 다른 각부 대신은 일본인에 복종하고 있다.노쇠한 황제는 고통스러운 감금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대궐안팎은 일본인의 감시와 경비가 삼엄하다. 알현이 제한된 것은 물론 제3자를 통한 연락도 제한을 받고 있다.”는 1908년 12월8일자 소모프 총영사의 고종 및 대한제국에 대한 근황보고서는 두 마지막 황제의 관계가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종극(終劇)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주석기자 joo@ ■러시아가 본 조선王家 서울에 주재한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들은 대한제국의 왕가(王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번에 새로 발굴된 제정 러시아시대의 외교문서를 보면 러시아 외교관들은 고종과 주위의 대신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순종을 비롯해 엄비와 대원군,다음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오래전에 자주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고종은 측근에게조차 권위가 없다.또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대한제국 지배계급의 어느 한 집단이나 혹은 끊임없이 교체되는 명칭만 요란한 독립협회,황국협회,만민공동회,친러파,친일파,친미파,친영파 그리고 친독파로 구성되는 대신들에 의지하고 있다.(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 고종황제 자신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물이나 많이 쇠약해져 있다.황실에서는 고위직과 하위직을 막론하고 음모,뇌물수수,매수가 만연돼 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서 임용이 결정된다.(1903년 베베르 초대 대리공사) 명성황후의 시해이후 10여년동안 사실상 왕비의 역할을 한 엄비(嚴妃)가 서거하자 “엄비는 평민출신으로 양반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당의 굿에 의존했다.(1903년 베베르).”고 힐난한 대목도 나온다. 대원군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부정적이다.틈만 나면 고종 암살기도설 등을 정보보고하고 있다.1896년 베베르는 “고종은 부친 대원군을 숙청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러시아가 대원군을 아무르주 혹은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주기를 바라는 고종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라고 적고 있다.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황제의 친모인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민씨가 80세를 일기로 서거하자 “고종은 모친을 몹시 사랑했다.고종은 성품이 선량하고 동정심이 많고 나약한 점이 모친을 닮았다.(1898년 쉬테인)”고 애도하기도 했다. 1898년 대원군이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그로데코프에게 보낸 편지도 흥미롭다.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대원군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모와 자식간에는 화목하게 산다.그런데 수십년전 4명의 신하가 고종 임금앞에서 늙은 아비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하늘에 맹세코 말하지만 우둔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 부자지간을 이간시켜 놓음으로써 나는 지금도 아비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종은 천성은 선량하나 나쁜 신하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러시아에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차가운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순종의 즉위식이 8월27일 거행됐으나 고종과 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순종은 카키색의 군복을 입고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렸다.황제의 인상은 침울하고 창백하며 놀란 듯한 두 눈에 얼굴은 병으로 부어 환자처럼 보였다.(1908년 소모프 총영사). 고종황제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 대해 주목하면서 일일이 인물평을 늘어놓았다. 의화군 이강(李堈·후의 의친왕)을 유럽파견 공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정부가 통보해왔다.이강은 왕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궁인(귀인 장씨)에게서 얻은 왕자로 젊고 유능하며 쾌할한 성격이다.일부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세자로 책봉될 것이며 좀 우둔한 세자(순종)보다는 덕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고종은 세자를 더 사랑한다.(1895년 베베르) 또 1906년 1월1일 고종황제와 황실가족과의 신년 경축 알현식에 참석한 플란손 총영사는 “장자인 황태자는 30세로 명성황후의 적자이며 법통 후계자다.의친왕(李堈))은 17세이며 명성황후 생존시 상궁소생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삼자 영친왕(李垠)은 9세이며 엄비 소생으로 영특하고 야심만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노주석기자
  • [帝政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5)시베리아철도의 한반도 연결

    지난 7월15일자 고종의 칙령으로 미국과 프랑스회사가 서울∼제물포,서울∼의주간 철도를 각각 부설키로 하면서 철도의 궤도(레일)폭을 유럽형인 4.5피트(약 133㎝)로 결정했다는 정보를 받았다.러시아는 동청철도(만주횡단철도)건설시 러시아철도와 같은 5피트(약 150㎝) 궤도폭을 시설하기로 확정했고 조선은 아직 철도건설을 시작하지 않았으므로 고종의 칙령을 변경하여 러시아의 만주노선과 동일한궤도폭으로 건설하도록 조선정부에 강력히 요청하라.(1896년 11월10일 재무장관 비테가 외무부 총관리관 쉬이쉬킨에게 보낸 공문서) 이 문서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만주횡단철도(TMR)를 한반도와 연결하는 작업이 100년 전 제정러시아시대에 이미 추진됐던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러시아가 눈독을 들인 노선은 경의선(서울∼의주)과 경원선(서울∼원산),그리고 경인선(서울∼제물포)이었다.경의선은 만주횡단철도와,경원선은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을 꾀했던 것이다.동일한 궤도폭을 유지한다는 것은 언제라도 철로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때문이다. ***경의선 日서 부설권 사들여 경의선은 프랑스가 경인선은 미국이 1896년에 부설권을따냈으나 일본이 부설권을 재매입해 1901년과 1906년에 각각 완공시켰다.러시아는 경의선의 경우 프랑스를 대리국으로 내세워 실질적인 관리권을 유지하면서 시베리아철도와의 연계를 꿈꾸었지만 러·일전쟁(1904∼1905)의 패배로눈물을 머금고 일본에 권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러시아는 미국측으로부터 경인선,독일로부터는 경원선(서울∼원산) 부설권을 각각 재매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기도 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장장 9334km를 운행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직통열차로 1891년 총공사비 10억루블을 들여 착공,1901년에 만주횡단노선이,1904년에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노선이 각각 개통됐다. 미국 모르스회사(경인선철도부설권 소유회사)의 대표가 찾아와 일본인과 어떤 약속도 없었으므로 경인선철도회사를러시아에 판매하는 것에 대해 협의할 준비가 돼있으며 철도궤도폭을 비롯, 러시아의 주문에 따라 공사를 끝내는 원칙적인 합의를 하자고 했다.(1897년 12월9일 서울주재 대리공사 스페이예르가 외무부에 보낸 전문). 비테 재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스페이예르는 조선정부에압력을 행사하는 한편 모르스사와의 협의를 구체적으로 진행시켰다.1898년 1월31일자 비밀전문에서 스페이예르는 “모르스사의 대리인은 주식을 비밀리에 매입하든지 아니면일본은행에서 빌린 채무액의 일부라도 상환해주면 일본의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모르스사는 이미 설치가 끝난 노면은 150만 달러에 러시아에 양보할 수있으며 선로폭 조정은 최소한 주식을 매입한 뒤에 가능하다고 한다.”고 보고했다. 시베리아횡단철도의 한반도연결에 관한 문서중 남아있는가장 오래된 문서는 서울주재 초대대리공사였던 베베르가1896년 6월22일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이다.베베르는 이 전문에서 “조선의 철도궤도폭을 러시아와 같은 5피트로 하도록 조언하려고 한다.”고 보고했다. 베베르가 보고한 당시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한 아관파천(1896년 2월11일∼1897년2월20일)의 와중이었기 때문에 베베르의 입김은 조선정부의 정책수립 및 추진에 있어 절대적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비테 재무장관은 “러시아는지금 시베리아철도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자금여력이 없다.”고 회답했다.이 때문에 당초 5피트로 설계됐던 모든 철도의 궤도폭은 유럽식을 따르게 됐다. 독일인 외교 및 세관업무 고문 묄렌도르프의 ‘조선철도에 관한 수기’는 이 문제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의견을피력하고 있다.묄렌도르프는 1882년 이홍장(李鴻章)의 추천으로 통리아문의 참의와 협판을 역임했다.외무협판으로재직중이던 1885년 친러파로 몰려 쫓겨났다. 조선철도건설문제는 1882년에 제기되었다.조선정부에 철도부설이권을 여러나라가 요청했으며 그중에는 영국과 일본이 들어있었다.조선정부는 철도건설자금이 없어 연기할 수 밖에 없었으나 철도문제와 더불어 광산 및 탄광이권이 또다시 1885년과 1895년에 제기되었다.따라서 한 미국인 회사와 철도건설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을 다음과 같이 수립하였다.▲서울∼제물포 ▲서울∼평양∼의주 ▲서울∼부산▲평양∼두만강 ▲서울∼부산∼남·서해안철도 ▲서울∼부산∼동부해안철도 ▲서울∼원산선 등이다. 묄렌도르프는 수기에서 미국회사는 이 노선 전체를 순차적으로 건설하며 15년동안의 운영권 소유를 제의했다고 밝혔다.또 조선정부에 투자금에 대한 연간 순이익 5%의 보장을 요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묄렌도르프는 이 문제를 일본,청,영국,미국,러시아 등 열강의 이해관계 및 역량 등을 감안,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일본이 경부선철도이권을 획득하려는 의도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장이다.청국은 조선에서의 역할이 끝났으므로청국에 이권을 제공해 영향력을 행사하게 해서는 안된다.영국은 조선과 통상관계가 없으므로 이권을 주면 조선에영향력을 행사할 빌미만 제공하게된다.미국은 조선에 정치적인 위험이 적으며 자본을 쉽게 유치할 수 있다.러시아는 조선철도건설에 관심이 없으나 조선항구는 부동항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조선철도에 러시아철도를 연결하면 조선 남부의 항구중 하나는 시베리아철도의 종착역으로일본과 청국의 화물 및 여객을 수송할 수 있어 동부아시아 해안에서 가장 번창한 항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1896년 묄렌도르프의 조선철도부설에 관한 수기중에서) ***러, 경원선 부설권 부정적 묄렌도르프는 시베리아철도연결에 대한 러시아측의 이해관계를 쪽집게처럼 짚어냈다.당시 러시아의 주관심은 경의선부설권이었다.경의선부설권은 1896년 프랑스회사에 주어졌지만 러시아는 실질적인 관리권을 쥐고 있었다.러시아는 경의선을 시베리아철도의 지선으로 만주를 횡단하는 동청철도(지금의 중국 장춘철도·TMR)와 연결하려고 계획하였던 것이다.하지만 러시아의 문제는 자금부족에 있었다. 러시아에서 서울까지 철도를 건설하는 계획은 자금이 부족해 불가능하다.서울∼의주간의 전신선 가설사업은 지난 여름에 착공되었으며 최근에는 서울∼원산간 전신선 가설이완료되었다.원산에서 러시아 국경까지 전신선 연결은 한국인 가설기사와 시설자금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1897년 5월22일 군사교관단장 푸차타 대령의 보고서) 경원선부설권 획득방안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도 등장한다.“서울∼원산간 경원선철도부설권을 가진 독일 마이어사의 직원이 부설권을 러시아가 매입하기를 제안했다.”는파블로프의 1900년 4월13일 보고에 대해 외무부는 “러시아가 원했으면 철도부설이권을 받을 수 있었다.현재 러시아에는 그런 이권이 필요치 않다.더 이상 협의치 말라.”는 회신을 보냈다. 또 독일이 경원선부설이권 획득을 꾀하고 있다는 서울주재 군사무관 스트렐비스키 대령이 참모본부에 보낸 1898년 8월18일자 보고에 대해 육군장관 쿠로파트킨은 “독일의경원선 철도건설은 러시아 군부의 이해와 무관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이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는 한 기업이 서울∼의주간 철도부설공사를 시행할 수 있게 한다는방침을 정했다.따라서 이 철도이권의 소유자인 프랑스인라페이에르와 대한제국정부간에 체결한 경의선부설계약서를 확인하는 즉시 이 철도부설권을 담보로 1200만프랑을대한제국정부에 대출하며 그 대가로 러시아는 철도회사의관할권을 보장받는 것이 골자이다.서울주재 프랑스공사는지원을 약속했다.(1903년 7월23일 서울에서 파블로프 대리공사가 외무부에 보낸 전문) ***경부선 개통땐 韓·日 무역증진 실제 대한제국정부와 프랑스인 라페이에르는 경의선부설소요자금과 관련,1903년 8월4일 시설자금 1250만프랑을 프랑스은행에서 차관을 받도록 알선하고 차관의 담보물은 경의선노선에 속하는 재산,토지,수입금 그리고 평양지방의모든 탄광으로 했다.하지만 러시아의 골칫거리는 철도의보호였다.러시아 정부는 1903년 7월28일 파블로프에게 보낸 비밀전문에서 “대한제국 북부에서의 철도건설은 러시아의 국익에 부응하지만 이 철도의 보호가 어려울 뿐 아니라 일본인의 수중에 넘어가는 상황에 빠지지 않겠는가.”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일본은 3319만엔이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 1905년1월 경부선(서울∼부산)을 개통시켰다.경부선의 의미에 대한 러시아측 분석도 흥미롭다. 경부선철도는 세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앞으로 언제가는 동청철도및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1900년 9월2일 군사무관 스트렐비스키가 참모본부에 보낸 보고서). 경부선이 개통되면 한·일간 무역이 증진될 것이다.현재시모노세키(下關)에서 서울까지 화물을 운송하려면 2∼5일이 걸리지만 경부선철도를 이용하면 20시간이면 가능하게되며 또 경부선을 연장하여 시베리아철도나 동청철도와 연결하면 경부선은 동서의 수송로가 될 것이다.일본에서 유럽까지 28∼45일 걸리는 운송기간이 17∼22일로 단축될 것이다.(1901년 1월29일 육군장관 쿠로파트킨이 황제에게 보낸 상주서) 러시아측 비밀문서들은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한반도의철도부설이권을 놓고 러시아,일본,미국,영국,프랑스,독일등 열강이 벌인 부설권 쟁탈전의 전모를 소상하게 밝혀주고 있다.자체 건설자금 없이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철도를건설하려 했기에 벌어진 사단이었다.마치 경부고속철의 건설을 놓고 프랑스의 테제베,독일의 이체,일본의 신칸센이벌였던 경쟁의 원판(原版)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한반도를 시베리아,만주와 철도로 연결하는 방안이 당시 구체적으로 논의된 사실은 흥미롭기에 앞서 섬뜩하기조차 하다.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불과 2년전인 지난 2000년 9월18일 경의선복원공사의 착공과 함께 였다. 노주석기자 joo@ ■고종의 稱帝建元의 속뜻은 고종은 왜 506년동안 이어온 조선(朝鮮)이라는 유서깊은 국호를 버리고 대한제국(大韓帝國·1897∼1910년)으로 국호를 바꿨을까. 국호변경의 배경에는 새 국호를 통해 자주독립국을 천명하고 풍전등화격인 나라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복심이 있었다.하지만 사실은 ‘제국(帝國)’이라는 명칭에 집착했던것 같다.‘황제등극’을 원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황제칭호를 바란 데에는 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일본 ‘천왕'과의 비교우위와 러시아,청나라와의 동격대우를 노린 대외용이라는 분석도 가능하지만 실은 국내에서의 위상제고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고종의 칭제건원(稱帝建元)문제에 대한 러시아측의 비밀전문 한장은 이같은 궁금증을 풀어준다.고종은 대원군이나 대비보다 자신이 더 높은 위치에있음을 만방에 알리고싶었던 것이다. 고종이 황제의 존호를 쓰기로 단호한 결심을 하였다.나는 세계 어느 나라도 고종을 황제로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고종에게 칭제건원을 하지 않도록 백방으로 권고했다.그러나 고종은 열강이 황제존호사용을 승인해줄 것으로 기대하진 않지만 대원군과 대비의 음모때문에 황제즉위식을 갖는 것이 부득이하며 영국에 체류하고 있는 대원군의 손자(李埈鎔)를 왕으로 옹립시켜 자신을 퇴위시키려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다고 했다.특히 황제에 즉위하면 백성들의 눈에 자신이 대원군이나 대비보다 상좌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고종은 무엇보다 러시아가 황제존호를 거부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때문에 니콜라이2세 황제가 자신을 황제로 승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인 ‘대군주(大君主)폐하’로 불러주기를 바란다고 했다.(1897년 10월28일 스페이예르 대리공사가 외무부에 띄운 비밀전문) 스페이예르는 또 1897년 10월 20일 무라비요프 외무장관에게 “고종황제의 즉위식이 있은 다음날 정부에서는 앞으로 우리의 국호는 조선이 아니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이며여기서 대한(大韓)이란 고대의 3국인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을 상기하는 큰 왕국을 뜻한다고 밝혔다.국호의 변경목적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대신들도 만족할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한제국 국호의 기원에 대해 다소 비아냥거리는 보고서를 올렸다. 노주석기자
  • [굄돌] 몰염치한 한국외교

    얼마 전 한 국제NGO 활동가에게 “경제력에 비해 저급한 외교력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제 대접을 못받는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과 한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그중에서도 일본은 외교력이 경제력과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다.매년 100억달러 이상을 해외원조로 사용하는 최대의 원조수여국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은 왜소하기 그지없다.이번엔 주중 일본영사관에서 탈북자들을 쫓아내 달라고 요청하고,공안의 모자를 털어 건네주는 모습이 생생히 전해지면서 한심한 외교수준을 변명하려야 할 수도 없게 됐다. 한국외교는 ‘실용’만을 좇는다는 점에서 일본과 닮은꼴이면서 기초는 더 부실한 처지다.최근에만 벌써 10차례 이상 탈북자들의 중국내 공관 진입이 있었지만,이를 어떻게처리할지 아직 기본적인 내부방침도 없다는 씁쓸한 보도를 접한 바 있다.엊그제는 또 주중 대사관을 찾아온 탈북자에게 업무시간이 아니니 다음에 오라며 기본 인적사항조차 파악하지 않고 돌려보냈다고 한다.그 미숙함과 무능함이혀를 내두를 정도다.한국인 사형통보를 받은 일이 없다고대통령까지 나서 중국정부에 대해 우겼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한 일은 까맣게 잊은 것일까. 얼마 전에는 대만 천수이볜 총통 부인의 한국 휴가방문을 우리 정부가 연기 요청했다는 보도를 접했다.그랬더니 대만은 한국 직항노선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비슷한 시간, 중국은 타이완의 해갈을 위해 식수를 지원하고,경제교류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다.우리만 알아서 기고,통사정을 하는 아이러니다.다 국익 때문이란다. 그런 외교부가 이번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국제재판에 “한·일 협약으로 이미 끝난 일”이라는 의견을 미국 사법부에 회신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다.외교부는 원칙대로였다고 강변했지만 미국 언론조차 “한국정부가 할머니들의 뒤통수를 쳤다.”고 제목을 뽑았다.그러면서 또 이번엔 미국대사관이 아파트를 덕수궁 자리에 짓겠다고 요청하자 법을 고쳐서라도 허용해주겠단다.아무리 외교가 사회 전반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지만,요즘 뉴스를 보면 너무한다 싶다.언제까지 철학의 빈곤과 저급한 역량으로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몰염치한 외교를 지켜보아야 하는가. “한국과 이야기하기보다 미국과 중국에 로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고 생각하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젠 외교관도 선거로 뽑아야 하는 건지 답답하다. ◆정웅기 참여불교재가연대 국제협력국장
  • 이회창 후보 관훈토론/ ‘비전·정책 갖춘 후보’ 집중 부각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가 당의 공식후보 지명을 받은 뒤 처음으로 22일 언론의 집중검증을 받았다.서울 프레스센터에서 3시간 남짓 진행된 관훈토론에서 그는 최근의 권력비리문제에서부터 대북정책,경제·노사관계,주변신상 등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의견을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나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에 대한 직접 공격은 최대한 자제했다.대신각 분야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설명함으로써 ‘안정된 대선후보’의 모습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뒀다.환경미화원의 월급을 언급하며 서민에 다가서는 모습도 강조했다.현 정권에 대한 공세는 당과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주도하고,이 후보는 바닥을 훑고 다니며 지지기반을 넓혀 나간다는 대선전략을 철저히 준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조연설에서 이 후보는 최근의 권력비리와 실정(失政)을조목조목 들어가며 “권력의 사유화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지적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 아래 개인이존중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그는 특히“나는 정치적 빚도,가신도 없는 사람”이라며 “불안하고 미숙하고 위험한 민주당의 리더십보다 안정되고 성숙하고 신뢰할수 있는 한나라당의 리더십을 국민들이 선택할 것”이라고김 대통령과 노 후보를 겨냥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권력비리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장황한 논리로 굳은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특히 6·15남북공동선언 2항과 관련,“북한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수용한 것으로 주장한다면 이 조항은 폐기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그러나 파장을 의식한 듯 토론 후반부에 “폐기해야한다는 발언은 취소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경제일반과 재벌·노동정책 분야에서는 다소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 향후 과제로 남았다. ‘20년간 연 6% 성장’이라는 경제비전에 대해 ‘장밋빛공약’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국가가 명운을 거는 식의정책을 투입하면 가능하다.”고 다소 옹색한 답변을 내놓았다.“성장우선정책을 펴면 빈부격차가 심해지는데 어떻게조화할 수 있다는 말이냐.”는 지적에는 “경제전문가가 아니어서 완전한 답변은못한다.”며 “상식적으로 성장이 일자리를 만들고 따뜻한 복지를 가능케 하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진경호기자 jade@ ◆ 분야별 내용/ 경제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성장과 분배를 함께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일부에서 한나라당을 재벌을 비호하는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오히려)빈부격차가 심화된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서민을 위한정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는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전제한뒤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선(先)성장,후(後) 분배가 아니라 성장을 하면서 분배를 함께 끌고나가겠다는 의미다.그는 “현 정부들어 빈부격차가 심화됐다.”면서 “한나라당은 빈부격차를 줄이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예고했다.그는 “인적구성으로 보면 민주당(구성원들)이 한나라당보다 돈이 적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그렇다고 해서 서민계층이나 소외계층을 대변한다고 할수는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후보는 “대규모기업집단과 출자총액제한 제도 폐지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친 재벌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러한 정책에 대한 선호를 놓고 보수니,진보니 하면서 구분할 일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이어 “기업경영이 불투명한 것은 당연히 고치고,(잘못한)경영에 대한 책임은 묻겠지만 기업이 뛰도록 해야한다.”며 “이렇게 하면 일자리가 늘어 결국 근로자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또 한나라당이 앞으로 20년간 연 6%의 경제성장률을 올리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장미빛 청사진’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그는 “잠재성장률은 4∼5%로 추정되지만,과학기술과 교육에 대해 돈을 쏟아부을 정도로 투자를늘리면 가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추곡수매가 인하 등 예민한 질문에 대해선 직접적 언급을 피하고,원론적 답변을 하는데 그쳤다. 곽태헌기자 ◆ 분야별 내용/ 권력비리 이회창 후보는 현 정권의 권력비리에 대해서 ‘대통령 책임론’을 폈으나 당 일각에서 제기한 ‘대통령 연루설’은모호한 표현으로 비켜갔다.그는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대표가 게이트의 몸통으로 대통령을 지목한 것과 관련,“대통령과 관련,직접 근거가 있다고 한 적 없다.대통령의 자제가 모두 게이트의 중심 인물로 떠오르고 있으니 아버지가해명하고 본인 의사를 밝히라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도 “여러 상황을 봐서 대통령이 마땅히 책임이 있다는 뜻”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최규선씨의 말을 얼마나 믿나,’라는 질문에는 “녹음테이프에 폭발력이 있다.”면서도,자신의 20만달러 수수설에대해선 “앞으로 어떤 진술이 나오든 진실이 아니다.”라고 단언하는 등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다만,“일부 검찰이 과거와 같이 입맛에 따라 (수사내용을) 흘리곤 한다.”면서 불만을 표시했다.이때문인지 특검제에 대해서는 “실제 검찰 내부서 국민이 바라는 것만큼 엄정하고 좋은 수사가 되겠는가에 대해 걱정하기 때문에 특검을 요구했다.”면서 당론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일련의 권력비리와 한나라당과의 연계설을 극력 부인했다.‘최규선씨와의 관련 의혹이 드러나면 정치적 책임지겠느냐.’는 질문에 “그간 숱하게 많은 모략중 어느 하나 진실로 밝혀진 것이 없으며,그랬다면 이미 정치를 떠났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나아가 장남 정연씨와최씨와의 e메일 통신의혹 등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엄정 수사를 통해 허위 조작임을 밝혀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집권후 (대통령 아들들에 대한) 사면 계획이 있나.’라는 질문엔 “조사단계에서 말하기 이르다.”고 답했다. 이지운기자 jj@ ◆ 분야별 내용/ 남북 이회창 후보는 “(집권할 경우) 6·15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남북대화를 계속하겠지만,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에 관해서는 분명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연방제를 계속 고집하면 남북공동선언 중이 내용이 들어있는 제2항은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토론이 끝날 무렵에는 “잘못하면 (국민들에게)오만한 자세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폐기주장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쪽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김대중 정부는 말로는 남북간의 상호주의지만 실제로는 우선 비위를 건드리지 말자는 식이었다.”면서“(통일부)장관까지 갈아치웠다.”고 대북정책을 비난했다. 그는 “올해 초 미국을 방문해 ‘공짜 점심은 없다.’는등 친미적 발언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공짜 점심 얘기는 상호주의로 북한을 끌어내 뭔가를 만들어내자는것”이라며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후보는 “노근리나 매향리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에 앞서서 미국에 대한 반대감정을 불러일으켜 사건의 본질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에게도 좋은 게 아니다.”라고 일부의 감정적인 반미(反美)정서를 비판했다. 그는 “북측도 합의한 관광특구 지정과 육로관광이 이뤄지면 금강산 관광에 대한 정부지원을 계속해도 좋지만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혈세를 퍼부어 엉뚱한 데 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탈북 난민들이 원하면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공격한다면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어떤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나가야 한다.”면서 반대입장을 명백히 밝혔다. 이 후보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평화 공존을 하도록 할 것”이라며 “한·미간에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곽태헌기자 tiger@ ◆ 분야별 내용/ 가족문제 이회창 후보의 신상과 주변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질문이쏟아졌다.특히 가회동 빌라와 손녀의 원정 출산 의혹이 이날 역시 주된 화제였다. 하지만 대부분 예상한 질문이었다는 듯이 이 후보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우선 가회동 빌라와 관련해 빨리 ‘이사’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을 왜 지금까지 사돈에게 신세를 졌느냐고 하자“야당 총재가 산다고 하니까 계약했다가 깨진 적도 있었는데 다행히 융자에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해결이 됐다.”고답했다.또 빌라의 실소유자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원정출산 의혹을 받고있는 외손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얼굴을 못봤으며 무척보고 싶다.하지만 지금 들어오면 얼마나 말이 많겠느냐.”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사람이 어떻게 손녀에게 미국 국적을 취득시키겠느냐며 항간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또 외손녀가 만일 18살이 되어서 국적을 선택할 때 미국국적을 갖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자 “제가살아있으면 당연히 한국 국적을 갖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주위 사람들이 이 후보에 대해 인간미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집에서는 어떻냐.”고 묻자 “집에 가면 특별히 다른 거 안하고 TV를 보거나 편하게 지낸다.”면서 “나를 두고 바늘로 찔러도 피 안나온다 얘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해 장내에 폭소가 일기도 했다. 이밖에 이 후보의 언론관과 관련해 한 질문자가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험악한 말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자‘술자리에서 한 농담’이라고 가볍게 넘겼다.하지만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의원의 술자리 발언을 거론하며 ‘술자리에서라면어떠한 말도 괜찮다는 얘기냐.’고 계속 따지자 ‘그 부분은 내가 잘못했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이총리 3당 협력요청 안팎/ 한나라 ‘월드컵 정쟁 중단’ 거부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가 20일 3당 연쇄 방문에 나섰다.월드컵 성공개최를 위해 정치권에 정쟁 중단을 요청하기위해서였지만 이 요청은 또 다른 정쟁(政爭)거리가 됐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이 총리의 요청에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극히 상식적인 것”이라며 전폭적 협력 의사를 밝혔다.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도 “월드컵은 국가이미지 개선과 국익증대에 직결된 만큼 정치권이 무책임한 정쟁으로 분위기를 흐릴 수 없다.”면서 적극 환영했다.반면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정쟁’이라는 단어 자체를 수용하지 않았다.그는 “최근 로열 패밀리의 부패사건이 계속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권력비리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정쟁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총리는 이에 대해 “정쟁이냐 아니냐의 구분은 모호하다.다만 국민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이게 정쟁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서 대표는 특히 “(권력비리로 인한 논란의)원인은 우리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제공한 것이다.대통령을 만나모든 비리를 빨리 수사하고 매스컴을 통해 월드컵 이전에 사과하도록 진언해달라.”고 당부했다.3당은 이후에도 말싸움을 계속했다.김종필 총재는 한나라당을 겨냥,“말꼬리나잡고 정쟁을 일삼는 정당에 대해 우려되는 점이 있다.”고 했고,민주당 정범구(鄭範九) 대변인은 “정쟁 중단을 바라는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나라당과 서민 흉내내기에만 급급한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도 즉각 반격에 나서 “대통령이 탈당했지만 민주당 하는 걸 보면 지금도 자기들이 여당인 줄 안다.”면서 “국정조사를 받아주면 우리도 더 이상 공격 안 한다.”고 되받았다. 한편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21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정쟁 중단을 촉구하고,3당 대표회담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운기자 jj@
  • 김대통령 “월드컵때 정쟁 중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4일 “월드컵 대회 기간 중 과거 88 서울올림픽 때와 같이 정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치권에 정쟁중단을 촉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김 대통령은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월드컵은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고양시키고 국익을 증진할 수있는 다시 없는 기회”라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박선숙(朴仙淑)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통령은 “서울 올림픽때 나는 야당의 총재였지만 자발적으로 정쟁중단을 주장하고 일치합의해 올림픽을 여야의 구별없이 지원했다.”면서 “이번에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정계가 도와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거듭 주문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2)오락가락하는 대 한반도 정책

    1884년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1910년 한일합병전후까지 러시아의 대(對)한반도정책은 현상 유지(독립국가 유지)와 무력점령,38선을 중심으로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 등 3개안을 기본으로 변화해 왔다. 그런가하면 국내외의 정치 상황과 역학관계에 따라 중립국안,완충지대안,만주 및 몽고와의 거래에 의한 양보안까지 오락가락하기도 했다.특히 일본이 1896년 처음 제기한뒤 러시아도 솔깃해진 일본과의 남북 분할점령안은 광복및 6·25전쟁과 함께 남북 분단으로 현실화됨으로써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서울에서 체결한 조·러 수호통상조약문을 동봉한다.외무성은 조선과의 수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정치적 상황이 여의치 못해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독일과 영국이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황제 폐하(니콜라이2세)의 윤허를 얻어 서울에베베르(전권위원,초대 대리공사)를 보내 조약을 체결했다.이 조약은 독일과 영국이 체결하지 못한 영사관 설치문제가 제2조에 명문화돼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청국 영사관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 그곳에 조선영사관을 허용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1884년 10월8일 기르스 외무상이 톨스토이 내무상에게 보낸 조·러 수호통상조약 13조 전문 등23쪽에 달하는 극비문서) 이 문서는 제정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찾아낸 방대한 분량의 한국 관련 문서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문서 중 하나로 한국과 러시아의 최초 공식 외교협정인 조·러 수호통상조약의 체결배경에 대한 러시아측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문서를 통해 러시아의 1차적인 관심은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데 있다는 사실을알 수 있다.물론 수교불가피론의 근저에는 영국과 독일 등 열강에 뒤지지 않으려는 몸부림과 함께 남하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부동항의 획득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을 점령하는 것이 러시아에 바람직한가.점령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1888년 4월26일 아무르 총독과 외무부 아시아국장의 특별회의록).러·일간 우호확립에 유일한 방해요인은 대한제국 문제이다.일본 천왕의 총애를 받는 야마가타(山縣有朋) 원수는 대한제국 분할에 관한 러·일간의 협정체결이 양국간의 우호증진을 위한 바람직한 해결책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그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수도를 포함한 남부를 차지하고 동해안과 서해안의 항구와 대부분의 대한제국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할 준비가돼 있다고 한다.그러나 이는 대한제국의 완전독립과 모순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1899년 2월9일 외상이 황제에 상주한 문서). 이들 문서로 미루어 볼 때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 외무상과 야마가타 특사 사이에 체결된 모스크바의정서는 물론,1898년 로젠-니시협정으로도 대한제국의 독립을 일본측으로부터 완전히 담보받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으며,남북분할점령안을 거부했지만 여전히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당시 일본이 주도한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과 이로 인해 촉발된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아관파천·1896년)으로 곤경에 빠진 일본 대신 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조야를 주무르던 때였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의 대한제국 독립국가 유지정책은 조금씩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여기에는 100만명에 달하는러시아군의 대부분이 유럽지역에 주둔하고 있어 극동지역에서의 군사력 약세를 인정하는 측면도 있었다.병력을 신속히 이동시킬 수 있는 시베리아철도가 완성되기 전까지외교적으로만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원,현상유지시키겠다는 속셈도 작용했다. 만주와 극동에서 러시아가 굳건한 기반을 확립하고 만주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키는데 25∼30년이 걸릴 것이다.만주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러시아가 일본의 민족적 자존심에 손상을 주지 않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는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1902년 12월 뷔테 재무상이 람즈돌프 외무상에게 보낸 러·일 협상관련 비밀문서).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아 철도 및 은행 등을 장악하는것은 무의미하다.문제는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장악해야 하는데 대한제국 남부의 점령은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므로 대한제국 전역을 지배할 수 있는 기회를 엿봐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먼저 만주를 지배하지않으면 안된다(1902년 10월8일 도쿄(東京)주재 러시아 공사인 로젠 남작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보고서).황제(니콜라이2세)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북쪽으로는 두만강,서쪽으로는 압록강까지점령해도 좋다는 결심을 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황제는대한제국을 일본에 양보하면 군사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생각한다.(1903년 6월11일 해군제독 아바자가 베조브라조프에게 보낸 전문). 로젠 공사의 보고서에 대해 파블로프 공사도 의견서를 통해 “러시아는 실제적으로 국익에 손상을 입지 않고 대한제국 문제 해결을 명분삼아 일본정부에 대한제국의 행정감독은 물론 철도,우편,전신 등에 유리한 권한을 인정하면서 재정과 군사부문까지 참여를 허용해야 하며 러시아는 만주문제에 대한 일본의 불간섭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니콜라이2세는 문서 상단에 ‘파블로프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친필로 남겼다. 니콜라이2세는 1904년 1월26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친필서명이 든 전문을 보내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는것보다는 일본이 먼저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일본이 먼저 개전하지 않으면 일본군이 대한제국의 남해안 혹은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만약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병과 함대가 북진해오면 적군의 첫발포를 기다리지 말고 공격하라.”고 긴급지시했다. 러시아의 정책이 대한제국의 양보쪽으로 서서히 방향을틀고 있는 가운데 일본군이 38선 이북 서해안으로 상륙하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마지노선’을 암시하고 있다.1902년 1월 런던에서 체결된 영·일동맹은 러시아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이 시기를 전후해 대한제국의 중립화안이고개를 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러시아 군부는 대한제국 전역 혹은 북부지역의 무력 점령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에서 러시아는 일본뿐 아니라 어떤 국가에게도영향력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을 점령해러시아에 합병시켜야 한다(1900년 두바소프 태평양함대사령관이 니콜라이2세에게 상주한 극동의 정치상황).일본은전 병력을 만주전선에 투입했다.러시아는 대한제국으로 진격해야 한다.현재의 16개 부대로는 병력이 부족하다.진격계획은 8월로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904년 6월 아무르 군관구 참모부에서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에게 보낸 전문). 일본군이 만주전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틈을 이용해대한제국 영토에서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겠다는 국지전(局地戰) 계획이긴 하지만 점령안을 지지하는 군부의 의사를엿볼 수 있다.무력점령안에 따른 진격계획은 보다 구체성을 띠고 있었다.이들 부대는 러·일전쟁 당시 한반도로 진출했으며 평양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쟁불사’를 외치는 군부 및 일부 외교라인의 강경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1903년 6월 여순에서 베조그라조프 등 극동정책수립에 전권을 위임받은 수뇌부가 참석한가운데 특별회의를 갖고 한반도정책의 기조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 회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러시아가 대한제국의 전역혹은 북부 일부지역을 점령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점령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일본이 점령하면항의는 할 수 있으나 자국군대를 투입해서는 안된다.▲일본의 점령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만주와 대한제국은 별개의 문제임을 선언하고 독립을 지원해야 한다(1903년 7월4일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이 로젠 주일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 대한제국 러·일 분할점령안에 따른 중립지대(완충지대)설정에 대한 극비메모도 흥미롭다. 중립지대 설정에 대한 자료는 외무성에 없으며,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니콜라이 1세의 손자) 대공의 1899년 3월6일자 극비메모에는 아무르강 하구에서 원산만까지,그리고 서울과 제물포를 포함하고 있다(1903년 3월11일 외무상이황제에게 보낸 상주서). 다소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뒤 러시아는 대한제국의 독립국 유지를사실상 포기한 채 이권 챙기기에 주력했음을 다음의 외무성 훈령은 보여준다. 러시아의 이해관계나 대한제국의 심각한 하소연이 없는한 일본 통감부의 지시에 가급적 관여하지 말 것.일본 당국에 대한 한인의 불만에 개입하지 말고 열강의 최혜국 국민으로서 법적인 권리를 사수하라.열강이 영사관을 개설하는 지역에 러시아영사관 개설의 필요성 여부의 의견을 상신하라.특히 러시아제국 정부에 전폭적인 충성심과 믿음을 보인 고종이 실현불가능한 기대를 갖고 러시아에 요구를해올 때 일본과의 사이가 악화되지 않도록 어떠한 약속도자중하라(1906년 외무상이 대한제국에 부임하는 플란손 총영사에게 내린 훈령). 러·일전쟁에서 패배,일본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음으로써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러시아의 비탄과 몸조심은 더욱 두드러졌다.플란손은 1905년 12월 작성한 비망록에서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대한제국에서 이룩한 외교적 성공을 잃어버렸다.”고 자탄했다.니콜라이2세는 같은해 11월 고종의 계속되는 독립유지 지원 호소에 대해 “고종 황제에게 ‘패전 이후 혁명세력의 확장으로 더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전문을 보내라.”는 칙령을 외무성에 내렸다. 제정 러시아는 신흥 일본제국주의에 패배해 눈물을 흘리며 물러갔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로젠 당시 미국대사는 1906년 외무성에 보낸 문서에서 “러시아가 남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국토를 확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 영향이 이제 대한제국에까지 미쳤으나 러·일전쟁의 패배로 30∼40년 후퇴했을 뿐이다.”라고 기록했다. 이같은 지적은 40년 뒤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러시아)의 38선 이북 점령으로 현실화됐다. 노주석기자 joo@ ■러 당시 외교라인 대한제국 말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이 오락가락한 이유는무엇일까? 가능하면 일본이나 청과의 전쟁을 피하되 대한제국에서의 정치적·경제적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실리 위주의 외교정책에 1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당시 매파와 온건파로 양분됐던 외교라인의 분열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한반도정책의 최고 결정자는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였다.이번에 발굴된 러시아 극비문서에 따르면 그는 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가 “서울에서 개에 물려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으러 도쿄에 왔다.”고 보고하자 “휴가를 줘 충분한 치료를 받게 하라.”는 시시콜콜한 것부터 “일본군이 서해 38선을 월선해 상륙하면 즉각 발포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정도로 모든 사안을 직접 챙겼다. 니콜라이2세가 극동관련 문제에 대해 보고를 받는 공식외교라인은 외무상의 직접 보고,극동총독의 상주서,일본·청·조선주재 공사들이 황제 또는 외무상에게 올리는 보고서 등 크게 세 가지 경로였다.이밖에 황실근위연대 기병장교출신으로 상서(명예 무임소장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던측근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황족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뷔테 재무상 등 비선(秘線)보고도 영향을 끼쳤다. 니콜라이2세는 모든 보고서를 빼놓지 않고 탐독한 뒤 자신의 의견을 보고서에 남겨 정책에 반영토록 했다.하지만대한제국의 독립국가 유지,일본과의 분할점령안,전역 점령안 등 상황에 따라 바뀌는 외교정책의 큰 틀에 대해서는개인적인 판단은 갔다.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훈령을 통해 각국주재 공사를 통제하고 황제에게 의견을 올린 외무상이었다.기르스,로바노프,람즈돌프 등 역대 외무상들이 대체로 온건파여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자는 주장이 득세한 것으로 드러났다.여기에 뷔테 재무상과 쿠르파트킨 육군상 등이가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과의 일전불사,한반도 무력점령을 주장한 매파로는베조그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과 아바자 극동특별위원회 사무총장,플라베 내무상,알렉세이예프 극동총독,두바소프 태평양함대 사령관 등이 대표적이다. 알렉세예프 극동총독은 극동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1903년 여순에 설치된 극동총독부는 외교권을포함,극동관련 사무의 1차적인 처리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러·일전쟁 발발 직전까지 러시아의 극동정책은 외무성과 극동총독부가 공동으로 관여하는 2중구조로 돼 있었다.극동총독부의 설치와 권한부여는 당시 러시아의 신(新)극동정책을 주도한 베조브라조프 극동특별위원장의 작품이었다. 로젠 주일공사도 일본에서 한반도정책을 원격 조정하는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로젠 남작은 세 차례에 걸쳐 일본주재 공사를 역임했으며 1904년 러·일전쟁 당시에도 일본공사였다.이후 미국대사로 승진,1905년 포츠머스 러·일강화조약 당시 러측 협상부대표를 맡았다. 노주석기자
  • 정부기록 보존은 ‘역사보존’

    ■트러디 피터슨-전 美 국립기록관리청장 대리 정부기록보존소(소장 이재충) 초청으로 방한한 트러디 허스캠프 피터슨 박사가 1일 중앙공무원교육원 고위관리자과정에서 ‘정부가 기록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특강했다.다음은 특강요지. 동티모르 대통령 선거를 주관한 한 UN의 관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기록이 하나도 없어 신정부를 수립하기 매우 힘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군대가 동티모르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기록을 다 파기했던 것이다. 이같은 사례는 정부가 기록보존소를 유지해야 하는 기본적인 이유를 말해준다. 첫째,법령에 의해 업무를 수행하면 기록이 생산된다.민주정부에서 공무원은 수행하는 업무를 기록으로 증거할 책임이있다.고위층이 될수록 책임은 더 커진다.고위층이 참가하는회의의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으면 부실한 역사가 서술될 수밖에 없다. 둘째,존재하고 있는 기록과 정부의 효율적인 운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기록은 고유의 행정사무 수행,재정의 집행과회계 감사,법률적 근거나 증거의 목적으로 사용된다.이 목적을 위해 기록은 보존되고,알아볼 수 있어야 하며,기록의 관리 소재가 증명돼야 한다. 한국 정부의 공공기록 가운데 80%가 전자기록으로 생산된다는데,이 기록들도 관리돼야 한다.선택의 문제가 아니다.한예로 전자우편도 이를 통해 업무를 수행한다면 그것은 기록일 수밖에 없으며 관리돼야 한다. 특히 전자기록은 관리하지 않으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축적하기만 하면 용량만 확대돼 필요한 문건의 검색이 어려워진다.전자기록은 실수로 혹은 무단으로 삭제될 수 있다.개개인이 임의로 저장 혹은 삭제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훈련의문제가 대두된다.무엇보다도 정부의 전자거래에 대한 책임성과 신뢰성이 상실된다.정부 업무의 증거가 사라질 위험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셋째,기록은 정부와 국민의 관계 및 증가하는 책임행정과투명행정에 대한 요구와 관련이 있다.책임소재의 규명 및 정부업무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기록이 보존돼야 하고접근,이용이 쉬워야 한다.모든 기록을 전부 보존하라는 의미가 아니다.아키비스트의 현명한선별이 중요하다. 정부의 책임 증명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입법·사법·행정부 기록의 수평적 연결은 물론 정부 각 계층에서 생산되는 기록이 보존 이용돼야 한다.이를 위해 민주적인 정부는정보자유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했다.정부의 국익을위한 공개제한이나 개인 정보의 보호가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정부기록은 국민과도 관련이 있다.국민의 신분,재산권,사회보장,연금,군복무나 공무원 경력을 증명하고 그에 따른 혜택을 국민에게 부여한다.때로는 정부의 기록을 통해 피해를 본 국민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이 제공된다. 다섯째,정부의 역사를 이해해야만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기록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됐는지 이해하게 해준다.기록 없이는 서로 상관없다는 의식이 지배하게 된다.서로 연결된 세계에서 한 나라의 기록은 다른 나라의 활동에 빛을 비추어 준다.어느 기록도 고립돼 있는 섬이 아닌 것이다. 정리 김영중기자 jeunesse@
  • 돛 올리는 ‘박근혜 신당’

    ‘박근혜(朴槿惠) 신당’이 26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나선다. ‘한국미래연합’(약칭 미래연합)으로 이름지어진 이 신당은 창당준비위 발족과 함께 곧바로 법정 창당요건인 23개지구당 창당에 나서 다음달 초까지 창당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6월 지방선거에도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박 의원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국익우선 정당,정책 정당”이라고 미래연합의 성격을 설명했다.나아가 “기존 정당은 중앙당이 너무 비대해 정치 비효율의원인이 되고 있다.”며 “중앙당을 대폭 슬림화하고 원내중심 정당이 될 것”이라며 ‘미니벤처정당’을 표방했다. 24일 발표된 발기인 38명의 면면도 당의 이런 성격을 대변한다.김한규(金漢圭) 전 총무처 장관을 빼고는 정치인들이배제됐다.대신 학계 경제계 문화계 인사들이 주축이다.다만연령별로 30대가 2명에 불과한 반면 50대 13명, 60대 12명등 발기인 대부분이 장년층이어서 신선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이수성(李壽成) 전 총리가 제외된 배경도 궁금증을낳고 있다.박 의원의 측근은 그러나 “비정치인 중심의 발기인 구성 취지에 맞춰 제외된 것”이라며 “창당 이후 세를 불려가는 과정에서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의 지방선거 전 창당은 지방선거 이후 예상되는 정계개편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박의원도 “현재 여러 시나리오들이 얘기되는 것으로 안다.”며 “국민이 원하는 정치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라면 당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진경호기자
  • “김대통령 內治중단”공방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연루 의혹과 미래도시환경대표 최규선(崔圭善)씨와 관련해 청와대 정보유출설 등이 불거진 가운데 한나라당이 내각 총사퇴 및 중립내각 구성,김 대통령의 국정일선 퇴진 등을 요구하고 나서 여야간 대치가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 총재권한대행은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김대중 정권이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김 대통령의 국정 일선 퇴진 등을 촉구했다.이에 청와대와 민주당은 ‘헌법과 법체계를 부정하는무책임한 정치공세’로 규정한 뒤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 대행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퇴진이 김 대통령의 하야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먼저 중립내각을 구성해 권력 비리를 조사하게 하고,중립적 입장에서 공명정대하게양대선거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음 단계로 탄핵소추와 정권퇴진 운동 등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나라당은 박 대행의 기자회견과 의총 결의문을 통해 대통령 일가 진상조사를 위해 특검제 도입과 국정조사및 TV청문회를 거듭 요구했다.아울러 이회창(李會昌) 전총재의 2억 5000만원 수수설을 제기한 민주당 설훈(薛勳)의원에게 윤여준(尹汝雋) 의원과 함께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한 뒤 진상규명에 들어갈 것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또 “최성규(崔成奎) 전 총경 해외 도피에 국가기관 개입 등의 의혹이 있다.”면서 “비리은폐 책임을물어 청와대 비서실장,경찰총장,행자부장관을 해임해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한나라당은 또 조웅규(曺雄奎)·엄호성(嚴虎聲) 의원을 뉴욕으로 파견,최 전 총경이 뉴욕공항에서 증발한 경위와 대통령 3남 홍걸씨의 ‘호화생활’ 의혹에 대해 조사키로 했다. 이에 청와대 박선숙(朴仙淑) 대변인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국정 일선 퇴진 등의 주장’과 관련,“헌법에도 어긋나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의 정치공세가 헌법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면서 “검찰 수사를 지켜볼 것”을 주문했다. 이어 금품수수 의혹을 제기한 설훈 의원의 녹음테이프 공개와 관련,“설 의원이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다는 증인을설득하고 있다고 하니 기다려보는 게 좋겠다.”며 역공을폈다. 한편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대통령 탄핵소추 추진과 관련,“우리는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김 총재는 이어 “검찰이 중대 증인의 해외 도피를 막지 못하고,미국에서 정식 절차를 밟고 들어가는 상상도 못할 일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의혹이 있으면 사직당국이 파헤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강동형 김상연기자 yun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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