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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성진 칼럼] 총리의 자격

    [손성진 칼럼] 총리의 자격

    사표를 던지고 공관에서 칩거한 이완구 국무총리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약관 24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곧바로 고향 마을인 충남 청양군 비봉면 양사리와 지척에 있는 홍성군청 사무관으로 부임해 청운의 꿈을 품었던 때가 떠올랐을 것이다. 31세에 경찰서장을 하고 43세에 지방경찰청장이 된 그의 공직 인생은 ‘승승장구’라는 말 그대로였다. 그가 걸어온 길은 장애물이라고는 없는 탄탄대로였다. 경찰의 선두주자로 늘 승진에서 앞섰으며 정치인 이완구로서 소외감에 젖은 충청도 지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았다. 거침없는 41년의 질주 끝에 임명직 공직자의 최고봉인 총리가 됐을 때 마침내 고향 땅에서 꾸었던 꿈을 이루었다고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은 불행히도 단 64일의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압도하는 능력으로 실패를 몰랐던 이 총리에게 최후의 좌절을 안겨 준 것은 거짓말과 부정이었다. 능력과 자질보다 더 귀중한 덕목인 정직과 겸손, 청렴성의 부족이 결국 인생의 화룡점정을 방해했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사람은 평균 8분에 한 번 거짓말을 한다고 했지만 정치에는 거짓말이 필요충분조건처럼 따른다. 공직에 만족하지 못한 그의 정치 인생 20년 동안 거짓말이 판을 치는 오염된 정치판의 물이 든 셈이다. 경찰 공직자로 평생 봉직했더라면 헛웃음이 나게 하는 그의 ‘거짓말 릴레이’를 들을 일이 물론 없었다. 정치가란 거짓말과 식언(食言)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레 자율학습을 했는지 알 길도 없다. 좌절을 겪지 않은 사람은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늘 ‘갑’인 사람은 ‘을’의 심정을 알지 못하기에 평생 갑 행세만 하는 것이다. 자세를 낮추는 겸손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이 최고라는 교만에 빠지게 된다. 나의 판단과 행동은 모두 옳다는 아집과 그릇된 행동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후안무치의 지경에 이른다. 경우야 다르지만 이 총리에 앞서 낙마한 총리 후보자들 또한 ‘이완구형’이다.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씨는 전후(戰後)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에 가까운 성공을 거둔 인물들이다. 사법시험 수석 합격, 최연소 합격, 최연소 경무관, 명문대 박사 등의 수식어를 달고 막힘 없는 출세 가도를 달렸다. 다만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앞서 말한 정직과 겸손, 청렴으로 대변되는 덕망과 도덕성이었다. 1938년부터 1955년 사이에 태어난 ‘개발독재 세대’인 네 사람의 면면은 우리의 압축성장 과정과도 닮았다. 오로지 경제성장을 위해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무시했듯이 권력과 부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부도덕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장 거짓말을 잘할 때는 전쟁 중일 때와 사냥이 끝난 뒤, 그리고 선거하기 직전이다.” 역대 최고의 거짓말 정치가로 통하는 독일의 비스마르크도 말했듯이 거짓말을 앞세운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때로는 정치가에게 거짓말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단의 정당화는 목적이 정당하다는 조건이 붙는다. 정당한 목적이란 명백히 국민에게 이로운 국익과 같은 것이다. 과거와 같은 우민(愚民) 정책이 통할 만큼 대한민국의 백성은 어리석지 않다. 이 총리의 사퇴는 변명을 위한 거짓과 공약의 식언 따위를 유권자가 더이상 용납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정치는 도덕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낡아빠진 마키아벨리즘은 이제 버려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총리에 걸맞은 존경받을 어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국민의 불행이다. 그러나 덕망 높은 원로가 없다고만 자책할 일은 아니다.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온 강직하고 청렴한 어른은 어딘가에 있다. 단지 찾지 못할 뿐이다. 참된 원로를 찾는 일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할 일이다. 시야를 더 폭넓게 가져야 한다. 앞만 보고 영달을 좇아온 주변 인물들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국정의 2인자로서 총리는 국정수행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저 국민이 우러러볼 인물만으로도 반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sonsj@seoul.co.kr
  • 외교부선 비준 필요 없다지만… 법제처 판단 거쳐야

    22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타결되면서 본협정이 국회 비준 대상인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외교부는 협정이 국회 비준 대상이 아니란 입장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란 점에서 향후 야당의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박노벽 한·미원자력협정개정협상 전담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오후 4시 15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양국 정부를 대표해 협정문에 가서명했다. 이후 법제처 검토→차관회의→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 재가를 받으면 효력이 발생한다. 원칙적으로 협정 또는 조약이 국내 법률 개정을 필요로 하거나 재정 부담이 수반되지 않는 한 국회 비준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외교부에서 그렇게 판단하더라도 외교부가 체결한 이번 협정에 대해 비준 등이 필요한지 법제처가 관련 검토를 진행한다. 이때 법제처가 국회 비준 대상이란 판단을 내리면 해당 협정에 대해 국회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게 된다. 이런 경우 국회는 본협정에 대한 비준 여부를 판단, 동의 또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헌법 60조에서 명시한 국회의 권한으로 ▲상호 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 사항에 대해 비준동의권을 가진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통상 외교부가 체결하는 일반 조약, 협정에 대한 국회의 간섭 권한이 명문화돼 있는 것이 없어 자의대로 판단해 (비준안을) 요구할 수 없다”며 “하지만 야당에서 (국내) 정치적으로 중요한 협정이라면서 국회 비준 대상이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 측에서는 지난 3월 한·미 방위비분담협정 때처럼 ‘추가 협상’, ‘정부 개선 계획서 제출’을 비롯해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협정은 재정을 수반하지 않아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 국익에 따라 대승적으로 접근할 개연성이 크다. 미국은 가서명 이후 국무부와 에너지부 장관의 검토서한→핵확산평가보고서(NPAS)→대통령 앞 메모 송부→대통령 재가 순으로 진행된다. 이후 핵확산평가보고서와 함께 새 협정문을 의회에 제출하게 된다. 미국 상·하원의 비준을 위해서는 ‘연속 회기 90일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는 비준을 위해서는 의회가 열리는 날짜를 기준으로 연속해서 90일간 의회의 반대 결의가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 조건을 충족하는 데 통상 반년 이상이 소요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사설] 후안무치 국회의원들, 외교관 특권까지 요구하나

    새누리당 일부 국회의원들이 해외에서도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외교부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여론도 좋지 않아 현재로서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이러한 발상 자체가 뻔뻔스럽다. 여야 모두 입만 열면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하고는 생업에 바쁜 국민의 질타가 줄어들면 여지없이 특권을 찾아 챙기는 모습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이번 여권법 개정안이야말로 현재 차관에 준하는 국회의원의 의전을 ‘국빈’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스스로 나선 꼴이니,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서울신문이 어제 단독 보도한 것에 따르면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3일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하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같은 당 소속 의원 10명과 함께 대표발의했다. 서청원, 한선교 의원 등도 포함돼 있다. 발의안에는 ‘현재 대통령령에 규정된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을 법률로 상향조정하고, 신규 발급 대상으로 국회의원을 추가한다’고 명시했다. 현재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은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4부 요인과 그들의 배우자, 27세 미만 미혼 자녀이다. 국가적 외교 수행과 소지자의 신변 보호가 목적이므로 발급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다. 여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회의원 전원과 그 배우자, 자녀들도 외국 정부로부터 4부 요인과 마찬가지로 ‘극진한’ 대우를 받게 된다. 비자 면제 혜택과 사법상 면책특권을 누린다. 안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의원외교를 활발히 하기 때문에 외교관 여권 발급이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면서 “특권이 아니라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는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된 의원외교의 성과도 거의 없다. 국회의원들은 ‘1인 헌법기관’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헌법 정신에 맞게 입법권을 행사하겠다는 표현이어야지, 헌법 기관으로서의 많은 특권을 챙기겠다는 입법권의 남용이어서는 안 된다. 헌법에서 국회의원의 형·민사상 면책특권을 허용한 이유도 직무와 관련한 발언이나 표결을 두고 징계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 개별 의원의 부정부패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국회의원 수를 100명 줄이자고 했을 때 많은 국민이 환호한 것은 그동안 국회의원에게 많은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특혜와 탐욕을 추구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내년 총선에서 물갈이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 [단독] “외교관 여권 달라” 특권 찾는 의원들

    [단독] “외교관 여권 달라” 특권 찾는 의원들

    새누리당 의원들이 해외에서도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는 내용의 입법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에 부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바람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적지 않은 비판이 일고 있다. 21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3일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발의안에는 “대통령령에 규정된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을 법률에 상향조정하고 신규 발급 대상으로 국회의원을 추가한다”고 명시됐다. 안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냈다. ●전·현직 대통령 등 4부 요인만 발급 대상 여권법 시행령은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을 기존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4부 요인과 그들의 배우자, 27세 미만 미혼 자녀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적 외교 수행과 소지자의 신변 보호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발급은 극히 제한적이다. 안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자를 국가 의전 서열 4위까지인 4부 요인에 국회의원을 포함시켜 법률에 명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안이 통과되면 의원과 그의 가족도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4부 요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게 된다. 외교관 여권 소지자는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경범죄를 비롯해 해외에서 사법상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다. ●외교부 강력 반대에도 “의원외교 국익 차원” 외교부는 의원들이 외교적 지위를 얻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의원이 외교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자기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서 외교관 지위를 누리려고 한다”며 “발의안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뿐 아니라 다른 상임위 의원들도 의원외교를 활발히 하기 때문에 외교관 여권의 발급이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익을 위한 차원이며 의원들이 악용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권을 얻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新 평판 사회] <12> ‘외교관 여권’ 달라는 국회의원의 특권 의식 해외서도 대통령·3부 요인급 ‘국빈 특권’… 선거 이용 ‘꼼수 국회의원이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자신들을 올려 놓으려는 것은 스스로를 ‘외교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의원 외교’라는 명목으로 잦은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니 지역구 대표에서 국가의 대표로 격상되길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방법이 바로 기존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자 가운데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국가 4부 요인과 국회의원을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 그래야 이들이 갖는 외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제출된 법안을 살펴보면 꼼수도 보인다. 개정안은 “여권 발급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여권사무대행기관을 국회와 대법원 등 헌법기관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또 ‘제안이유’에서도 “빈번한 국외출장으로 인한 불편을 해소하고 효율적인 공무수행을 위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본심은 뒤쪽에 있었다. 의원의 특권과 직결되는 ‘관용 여권과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을 법률로 상향 조정하고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추가한다’는 내용은 마치 부수적 내용처럼 담겨 있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외교통일위원장이었을 때 만료 기한이 6개월 남은 외교관 여권을 갖고 있었는데 비자 발급이 되지 않아 인도네시아 대통령 당선인 만나러 가는 일정이 하루 늦춰져 차질이 발생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국회의원을 외교관 여권 발급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원들의 외교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법안이 특권을 더하는 차원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왜 외교관 여권을 발급받으려 하는 것일까. 첫번째로는 ‘격과 지위의 상승’을 꼽을 수 있다. 대통령을 포함하는 4부 요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국빈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해외 출장이 가장 잦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선수 높은 고참 의원의 ‘놀이터’로 여겨진다. 다선 의원일수록 지역구에서 인지도가 높다 보니 초·재선 의원처럼 지역구 관리에 힘쓰지 않아도 돼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정치 반경을 해외로 넓혀 국제적인 평판을 쌓기 위한 목적이 클 수밖에 없다.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의원은 선수가 쌓일수록 해외 출장에서 극진한 대접 받기를 유별나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유에 대해서는 “선진국의 정상이나 고위급 관계자와 만나 함께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놓으면 나중에 선거에서 홍보물에 싣기 좋고 아주 좋은 홍보 수단이 된다”며 “국내외로 평판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국회 관계자는 “해외에서 의원이 아닌 외교관으로 인식된다는 것 자체가 특혜”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사법상 면책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점도 의원들이 외교관 여권 발급을 시도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국내에서의 특권을 해외로 확장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도 뒤따른다. 외교부에 따르면 외교관 여권 소지자는 해외에서 교통법규 위반 등 경범죄 처벌이 면제되고 재판을 받지 않으며 불체포 특권도 누릴 수 있다. 또 공항 등에서 불시 소지품 검사를 따로 받지 않기도 하고 공항에서 VIP 의전을 받으며 일반인의 시선을 피해 공항을 빠져나갈 수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국내 여권법에는 여권의 종류에 따라 특권을 나누진 않지만 국가별로 외교관을 보호하고 외교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특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외교관 여권을 소지했다는 점만으로도 사실상 편의를 누릴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물론 여권법은 관용 여권과 외교관 여권으로 공무나 외교 목적을 벗어난 일반 여행은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반하더라도 마땅한 처벌 조항도 현재 없다. 외교관 여권 소지자가 여행을 하다 적발돼 처벌을 받은 사례는 단 한건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이 회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외유성 출장을 떠날 때 일반 여권이 아닌 관용 여권을 사용한다면 이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카드뉴스]의원님들, 외교관여권 꼭 필요하십니까?

    [카드뉴스]의원님들, 외교관여권 꼭 필요하십니까?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여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외교관여권’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개정하겠다는 겁니다. 외교관여권은 기본적으로 해외에 파견되는 외교관과 동반 가족들에게 발급됩니다. 그 외에 외교관여권 발급 대상은 전·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4부 요인과 그들의 배우자, 27세 미만 미혼 자녀로 규정돼 있습니다. 안홍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발급 대상을 법률에 상향 조정하고 신규 발급 대상에 국회의원을 추가하겠다는 겁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회의원과 그 가족도 국가 4부 요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게 됩니다. 외교관여권 소지자에겐 여러 가지 특권이 주어집니다. 일단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전에 비자 발급이 필요한 국가를 방문하더라도 외교관여권 하나면 바로 통과되는 겁니다. 또 공항 등에서 불시 소지품 검사를 따로 받지 않기도 하고 공항에서 VIP 의전을 받으며 일반인의 시선을 피해 공항을 빠져나갈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강력한 특권은 사법상 면책 특권입니다. 해외에서 교통법규 위반 등 경범죄 처벌이 면제되고, 재판을 받지 않으며 불체포 특권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권법은 관용 여권과 외교관 여권으로 공무나 외교 목적을 벗어난 일반 여행은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반하더라도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습니다. 외교관 여권 소지자가 여행을 하다 적발돼 처벌을 받은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고 합니다. 의원이 회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외유성 출장을 떠날 때 일반 여권이 아닌 외교관여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안홍준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뿐 아니라 다른 상임위 의원들도 의원외교를 활발히 하기 때문에 외교관 여권 발급이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국익을 위한 차원이며 의원들이 악용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권을 얻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국회는 그 동안 의원들의 각종 특권을 줄여나가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습니다. 국회의원에 대한 외교관여권 발급, 꼭 필요한 건지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카드뉴스 제작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日집단자위권 행사 때 ‘한국 주권 존중’ 재확인

    한국과 미국, 일본 3국은 일본이 집단자위권 행사 등 방위안보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조만간 발표될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에 이 같은 내용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길지 주목된다. 3국 국방당국은 17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청사에서 국방부 차관보급 ‘3자 안보토의’(DTT)를 개최한 뒤 공동 언론 보도문을 통해 “미·일 방위협력지침은 미·일 동맹의 틀 내에서 개정될 것”이라며 “이 같은 노력이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며 제3국 주권의 존중을 포함한 국제법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제3국’은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이 주권과 국익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 온 한국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양자 방위협력지침에서는 통상 제3국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미·일이 공개한 방위지침 초안에는 제3국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측이 지속적으로 ‘일본이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한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미·일 측에 전달해 왔기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 제3국의 주권 존중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미·일 방위 지침 개정 韓 사전동의 포함되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이 한·미·일 협력 강화를 연일 강조하며 한·일 간 갈등 봉합을 위한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미·일과의 잇따른 당국자 간 협의에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에 한국의 ‘사전 동의’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어 미국의 역할이 주목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은 14일(현지시간) 국무부 청사에서 ‘미·일 관계 70주년’을 주제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과 일본 간 관계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블링컨 부장관은 서울에서 이날 5년 만에 처음 열린 한·일 안보정책협의회를 거론하며 “한·일 두 나라 사이의 매우 생산적인 만남이었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부장관은 그러나 “한·일 관계가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가 되고 긴장이 존재한다면 북한 핵문제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 우리(한·미·일 3국)의 공통 의제를 흐트러뜨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은 한·일 관계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고, 그 관계는 문자 그대로 전략적 문제”라며 “미국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이자 동맹, 친구인 나라 두 곳(한·일)의 관계를 최대한 호전시키도록 하는 일은 미국의 이해에 강력하게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부장관은 16일 국무부 청사에서 조태용 외교부 1차관,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함께 처음으로 한·미·일 외교차관 회의를 열어 과거사 문제와 3국 안보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한·미는 앞서 14~15일 제7차 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를 열었고, 한·미·일은 16~17일 제7차 안보토의(DTT)를 각각 개최한다. 14일 워싱턴에서 만난 국방부 당국자는 “KIDD 회의에서 미 측에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에 한국의 ‘사전 동의’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요청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DTT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6일 아베 총리의 방미에 맞춰 미·일 방위협력지침 최종 개정안이 나오기 전 일본이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한국의 주권이나 국익을 침해할 수 있는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한국으로부터 반드시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내용이 반영되도록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계속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일본이 이를 얼마나 수용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최종안이 나오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요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사설] 거짓말, 기강해이… 외교부를 믿을 수 없다

    해외 공관이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주재국 대사의 행방조차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 12일 리비아 트리폴리 주재 한국대사관이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았을 당시 외교부는 리비아 주재 이종국 대사가 인접국인 튀니지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대사는 인사 발령에 따라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외교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 브리핑’을 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무 책임자가 귀국한 지 10일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소재 파악을 못 한 점이나 중대한 외교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최근까지 대사직을 수행한 인물과 대책 협의도 이뤄지지 않은 점 등 외교부의 운용 시스템 전반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외교부의 첫 브리핑을 들은 기자들과 국민들은 이 대사가 당시에는 튀니지에서 사태 수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외교부도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 대사는 인사 발령에 따라 지난 1일 이미 귀국한 상태였다. 심지어 사고 수습을 책임졌던 중동 지역 담당 당국자는 이 대사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13일 오후에야 파악했다. 그것도 이 대사가 트리폴리 주재 대사관이 피습받은 것을 보고 “공관에 대한 공격에 놀라서 전화했다”며 담당 지역국장과 귀국 후 첫 통화를 한 뒤에야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외교부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이 대사와 제대로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외교부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한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런 외교관들이 외국에 있는 국민들의 안전을 제대로 챙길 리 만무하다. 큰일이 터졌는데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않은 외교관들이 국익은 지킬 수 있겠나. 외교부는 그동안 정직을 최우선해야 하는 브리핑에서 이미 여러 차례 낙제점을 받았다. 과거 고(故) 김선일씨 사건이나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사태 등에서도 사실과 다른 정보로 국민을 오도했던 사례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허둥지둥 변명과 해명을 일삼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매번 구두선으로 그쳤다. 외교부는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처이고 한 국가의 신뢰를 가늠하는 얼굴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민심과 동떨어진 자화자찬이나 하지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외교부는 더이상 신뢰가 실추되지 않도록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 朴대통령 세월호 1주년 행사 뒤 출국

    박근혜 대통령이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오는 16일 오후 출국한다고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10일 밝혔다. 주 수석은 “이 4개국은 한·중남미 및 환태평양 파트너십의 핵심 국가로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각국 정상과 회담을 갖고 우리의 전통적 우방이자 미래 협력의 동반자인 이 국가들과의 오랜 협력 기반을 새롭게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16일 순방 출국과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당초 이번 남미 순방은 페루와 칠레, 브라질 등 3개국을 대상으로 오는 18일에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뒤에 콜롬비아 대통령이 우리 측에 직접 서한을 보내 방문을 적극 요청해 4개국으로 늘었고 콜롬비아와의 일정 협상 결과 출국 일자가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면서 “국익도 고려해야 하고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기에 참사 1주년 당일 추모 일정을 소화한 후 출국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16일에는 단원고, 진도 팽목항 등에서 추도식이 거행될 예정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1주년 추모 행사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유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의 뜻을 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비판했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참사 1주년 바로 그날 굳이 해외 순방을 떠나겠다는 박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철회와 세월호 인양 지시를 촉구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세월호 참사 1주기, 朴대통령 남미 4개국 순방 위해 출국

    세월호 참사 1주기, 朴대통령 남미 4개국 순방 위해 출국

    세월호 참사 1주기 세월호 참사 1주기, 朴대통령 남미 4개국 순방 위해 출국 박근혜 대통령은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등 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16일 오후 출국한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인 당일 출국에 앞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일정을 가질 예정이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10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4개국 방문을 위해 16일 오후 출발해서 27일까지 중남미 순방 일정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 수석은 “이들 4개국은 한·중남미 및 환태평양 파트너십의 핵심국가로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각국 정상과 회담을 갖고 실질 협력 제고 방안을 포함해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우리의 전통적 우방이자 미래 협력의 동반자인 이들 국가와의 오랜 협력 기반을 새롭게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의 세월호 1주기 추모 일정과 관련, “이번 순방 출국일은 세월호 1주기와 겹쳐 있다”면서 “박 대통령은 1주기 행사와 관련된 일정을 고려하고 있고, 그 일정은 확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다양한 형태의 추모 일정들을 고려하고 있으며, 16일 남미 순방 출국에 앞서 추모 행사에 참석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콜롬비아 대통령이 직접 친서를 보내와 오는 15∼17일 사이에 박 대통령이 방문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해왔다”며 “국익도 고려해야 하고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기에 참사 1주기 당일 추모 일정을 소화한 후 출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출국하는 것을 놓고 유가족과 야당에서는 문제제기를 해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에 진정성 있는 추모 행보를 보여줌으로써 국민과 함께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 보듬기’의 메시지도 전달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균형외교인가 눈치보기인가/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균형외교인가 눈치보기인가/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장편소설 ‘지리산’으로 유명한 고(故) 이병주 선생이 1970년대 초반에 쓴 짧은 단편 중에 ‘변명’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문제의 인물은 한국이 경험한 질곡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남게 되는데, 주인공 ‘나’는 그 인물의 장황한 설명과 주장을 들으면서 무엇이 진리이고 또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소설은 끝이 난다. 현실 속에서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매우 복잡한 관계와 얽매임 속에서 특정 논리와 근거가 진실의 목소리인지 혹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말머리를 잠시 돌려 보자. “올 한 해를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가 뭐냐”고 20대에게 묻는다면 “청년실업” 혹은 “열정페이”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같은 질문을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묻는다면 십중팔구 “갑질문화”라고 응답할 것이다. 만약 이 질문을 외교를 전공한 필자에게 묻는다면 주저 없이 “양강(兩强) 외교의 딜레마”라고 대답할 것이다. 즉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떻게 우리의 외교 좌표를 찍느냐의 문제는 우리 외교 현실이 직면한 가장 어렵고 험난한 고차방정식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국력이 커지면서 또 주요 2개국(G2)으로 대변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력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우리 앞에 주어지는 외교 과제는 해법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의도하지 않게 우리가 아무리 심사숙고해 입장을 표명한다고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변명’으로 들리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어느 국가이건 미국과 중국 모두와 잘 지내고 싶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미국의 해양 파워와 중국의 대륙 파워가 첨예하게 맞서는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 미·중 모두로부터의 지지와 협력이 절실한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는 국가 사활(死活)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유일한 동맹 파트너로서 최후의 안전판과 같은 상대이고,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서 경제 우방으로 우뚝 서게 됐다. 그런데 외교 현실에서 안보와 경제는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에 놓이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국가 정책 영역이 서로 얽히고설킨 채 우리 정부의 특징 전략적 선택이 미·중 어느 한 나라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처럼 비쳐지곤 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AIIB의 경우 가입이 결정됐으니 우리의 경제적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향후에도 이와 유사한 문제들은 더욱 빈번히 속출할 것이 자명하다. 사드의 경우 미국 정부로부터 ‘후보지 선정’과 관련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이 우리 정부 관계자에게 정보를 제공했다고 언급한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요청이 없었으니 아직 입장을 밝힐 때가 아니라는 정부의 일관된 설명은 자칫 ‘진실의 목소리’가 아닌 ‘변명’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만약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라면 타이밍이 이미 지났다. 전략적 모호성은 특정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전제돼야 하지만 지금의 여론은 정반대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기획된 바도 없는데,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양강 외교를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 한·미 관계의 경우 ‘정부 주도적인’ 특징을 보이면서 안보 등 우리가 직면한 국가 핵심 과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중 관계 역시 ‘시장 주도적인’ 특징을 보이면서 지난 20여년 동안 수혜자 입장에서 중국의 성장을 적극 활용해 온 측면이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미국과 중국이 그리는 동북아 정치 지형에 우리를 맞추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이 지역 정치 지형을 직접 그려 보고, 그것을 전제로 미국과 중국의 정책을 취사선택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우리의 외교적 입장 표명이 행여라도 변명으로 들리는 일이 없이 모두 금언(金言)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되기를 고대해 본다.
  • ‘핵 협상 내부 진통’…오바마·로하니 설득 총력전

    ‘핵 협상 내부 진통’…오바마·로하니 설득 총력전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오른쪽) 이란 대통령의 행보가 분주하다. 이번 이란핵 합의안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반대파들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AFP통신 등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유대인 그룹 등 이란핵 합의안 반대세력들을 다독이기 위해 조 바이든 부통령과 데니스 맥도너 비서실장,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 백악관 고위 관리들을 총출동시켜 ‘전화 공세’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도 두 팔을 걷었다. 그는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 상·하원 지도부 4명과 잇따라 통화를 하며 핵 합의안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 “백악관이 당초 제시했던 목표에서 걱정스러울 정도로 크게 벗어났다”며 강한 비판적 입장을 보이는 공화당이 오는 6월 말 최종 합의 전까지 핵 합의안의 무력화를 시도하거나 새로운 이란 제재 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함께 4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이란핵 합의를 “역사적 합의”라며 “이번 합의안이 완전히 이행되면 우리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고 전 세계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면 우리가 바로 사찰을 한다”면서 “이번 협상은 막연한 ‘신뢰’가 아니라 전례 없는 ‘검증’을 토대로 합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하니 대통령도 핵 합의안에 부정적인 의회 보수파와 군부를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벌이느라 바쁘다. 군부와 가까운 이란 보수언론 파르스통신은 핵협상 타결 뒤인 3일 의회 국가안보·외교위원회 소속 에스마일 코사리 의원이 “협상안은 이란의 국익에 기여하지 못했다. 이란 협상팀은 아무 성과를 이루지 못했으며 협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핵 합의안 잠정 타결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집중 보도했다. 이들 보수세력은 핵협상 도중에도 이란에 대한 모든 제재를 일괄적으로 즉시 해제하지 않으면 협상을 결렬시켜야 한다고 물고 늘어지기도 했다. 이에 협상대표인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핵합의안 타결 직후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금융·경제 제재를 ‘모두 끝낼 것이다’. 이래도 점진적인 것인가? 유럽연합(EU)도 ‘모든’ 제재를 ‘끝장내기로 했다.’ 이것은 또 어떤가”라는 글을 올리며 적극 해명했다. 로하니 대통령도 거들었다. 그는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지지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반대파들을 설득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내각 회의에서 “핵 협상에 대한 최고 지도자의 조언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올해를 ‘화합과 단결의 해’로 명명한 최고 지도자의 뜻과 이번 성취(합의안 도출)는 부합한다”고 말했다고 이란 국영 IRNA통신이 보도했다. 하메네이가 이란의 모든 정책에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핵 합의안 잠정 타결 결과에 대한 그의 입장에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하메네이가 핵 협상 과정에서 이란 협상팀을 신뢰한다고 수차례 밝힌 데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물밑 ’서신외교’가 협상 타결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핵협상 타결’ 이란, 의회 보수파와 군부 반대 장벽 부딪쳐

    ‘이란 핵협상 타결’ ‘핵협상 타결’을 이룬 이란이 또 하나의 장벽을 만났다. 핵협상에 부정적인 의회 보수파와 군부 때문이다. 이란 군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이란 보수언론 파르스통신은 핵협상 타결 뒤인 3일 의회 국가안보·외교위원회 소속 에스마일 코사리 의원이 “협상안은 이란의 국익에 기여하지 못했다”며 “이란 협상팀은 아무 성과를 이루지 못했으며 협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이란 보수세력은 핵협상 도중에도 모든 대(對)이란 제재를 일괄적으로 즉시 해제하지 않으면 협상을 결렬시켜야 한다고 물고 늘어졌다. 이를 의식한 듯 이란 협상 대표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은 협상 타결 직후 트위터에 “미국은 금융·경제 제재를 ‘모두’ 끝낼 것이다. 이게 점진적인가? 유럽연합(EU)도 ‘모든’ 제재를 ‘끝장내기로’했다. 이건 또 어떤가”라는 글을 올렸다. 이란 의회는 2012년 총선에서 선거의 공정성을 문제 삼아 개혁진영이 대거 불참하면서 보수 일변도로 구성됐다. 의회는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지명한 과학기술장관 후보자가 친서방·반보수 성향이라며 4번 연속 낙마시켰을 정도로 이란 정부를 견제해 왔다. 올해 들어 핵협상이 타결 조짐을 보이자 이란 의회는 로하니 대통령이 핵협상에서 미국에 이용당해 핵주권을 포기하려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일부 강경파는 로하니 정부가 주요 6개국과 핵협상을 타결해도 최종 합의안이 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유효하다고 맞서고 있다. 보수파 권력의 핵심인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한 군부 역시 핵협상에 못마땅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군부는 서방·이스라엘과 군사적 긴장의 이득을 보는 세력인 탓에 핵협상으로 예상되는 ‘친서방 해빙무드’에 부정적이다. 경제 회생에 승부수를 거는 로하니 대통령도 강공으로 맞서는 모양새다. 로하니 대통령은 1월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는 의회의 의결 대신 국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게 이란 헌법인데 그동안 무시됐다”며 “의회가 입법적인 최고 의결기관이지만 국가 중대사와 국민의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는 국민투표로 직접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반기문 총장 정치에 관심 없어…남북관계 개선 땐 방북 가능성”

    “반기문 총장 정치에 관심 없어…남북관계 개선 땐 방북 가능성”

    오준 주유엔대표부 대사는 오는 4일까지 열리는 외교부 2015 재외공관장회의의 최고 스타 중 한명이다. 지난해 12월 그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상황을 의제로 채택할 당시 했던 감동적인 연설은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실상을 알리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연설 동영상은 200만건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며 ‘오준 신드롬’을 일으켰다. 지난달 24일에는 외교일선에서 국익과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한 정부, 민간인사에게 수여되는 영산외교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2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오 대사의 간담회에는 20여명이 넘는 기자들이 모여 오 대사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안보리 상임이사국 구성을 봤을 때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형사재판소로 회부되는 조치가 있을 것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면서도 “유엔 총회나 인권이사회 차원의 논의만으로도 국제적 압박 효과가 있으며 북한의 최근 반응이 그것을 방증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임기가 끝나면서 유엔에서는 안보리 개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오 대사는 이와 관련,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가 상임이사국이 더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장기 연임이 가능한 이사국을 새로 만드는 게 좋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며 “그런 방향으로 논의가 정리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년 말로 임기가 끝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2017년 대통령 선거 출마설과 관련해 오 대사는 “제가 함께 일하면서 겪어 본 반 총장님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언급이 반 총장의 업적에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의 북한 방문 가능성에 대해서 오 대사는 “남북관계가 더 진전된다면 유엔 사무총장이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면서 “반 총장 자신도 상황이 허용한다면 북한 방문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어 사무총장으로서 역할에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원유빈 인턴기자 jwyb12@seoul.co.kr
  • 윤병세 “사드·AIIB 문제는 딜레마 아닌 축복”

    윤병세 “사드·AIIB 문제는 딜레마 아닌 축복”

    박근혜 대통령은 30일 “우리 재외공관은 해외 창조경제혁신센터이고 해외 거점 통일준비위원회”라며 “경제외교에 최선을 다하고 한반도 평화통일 시대를 열어가는 노력을 펼쳐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재외공관장 15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재외공관 하나하나가 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청년의 글로벌 일자리를 찾는 해외 창조경제혁신센터 역할을 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공관 모두가 해외 거점 통준위라는 각오로 노력을 펼쳐야 하며 경제 재도약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으로 경제외교에 최선을 다해달라”며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과 세계의 전략적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국익수호를 위한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외교를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관장을 대표해 인사에 나선 김장수 신임 주중국 대사는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널리 전파하고 관련국의 공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며 “경제 활로를 찾고 기회의 땅을 발굴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앞서 이날 오전 개막한 재외공관장 회의에서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라고 평가하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판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지난주 정부가 참여를 결정한 AIIB에 대해 “최적의 절묘한 시점에 가입 결정을 했다”고 자평했다. 윤 장관은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국익을 극대화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국내 일각에서 19세기 또는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우리나라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샌드위치 신세 같은 식으로 표현하고 심지어 다른 나라의 논리와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는 경향도 있다”면서 “패배주의적, 자기비하적 시각에서 우리 역량과 잠재력을 외면하는 데 대해 당당하게 입장을 설명해 달라”고 당부했다. 윤 장관은 또 미·중 양국이 대립하는 AIIB와 사드 문제를 놓고 우리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에 대해 “고차방정식을 1, 2차원적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태도”라면서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이라는 등 공세적인 방어에 나섰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열린세상] 新대항해시대 사이버 공간의 국제정치/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新대항해시대 사이버 공간의 국제정치/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 새로운 시대는 모험과 탐험 정신에 가득 차 바다를 항해하며 신대륙을 발견하고 글로벌 무역을 일으킨 유럽인들의 대항해 시대에 필적할 만하다.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지속된 대항해 시대가 범선을 타고 미지의 바다로 나아간 것이라면, 21세기 신대항해 시대는 인터넷을 타고 사이버 공간으로 항해가 이루어진다. 기존의 공간 개념을 초월하는 사이버 공간은 다양한 배경과 정보를 보유한 개인들이 국경을 초월해 만나고, 친분을 쌓고,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는 네트워크의 바다다. 이미 세계의 많은 기업들은 스스로를 사이버 네트워크에 연결시킴으로써 특정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사이버 공간에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 유럽인들이 미지의 무역 루트를 개척하고 상업 디아스포라를 통해 부를 축적하며 역동적인 팽창을 이룩했다면, 21세기 세계인들은 사이버 바다를 탐험하며 벤처 기업을 꿈꾸고 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전락시키고 폭력과 약탈이 자행된 어두운 시대이기도 했다. 대항해 시대 동안 유럽은 노예무역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노예들은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두고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유럽 국가들은 19세기를 제국주의적 팽창과 위협의 시대로 전락시켰다. 모험 정신과 열정으로 시작된 새로운 항해 기술이 세계사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21세기 신대항해 시대 역시 팽창과 폭력의 동인들을 축적하고 있다. 인류가 사이버 신공간에 건설하려던 유토피아는 사라지고 패권적 갈등과 폭력의 세계화가 출현하는 것이다. 먼저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 간 강대국의 치열한 패권 경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글아키’라는 말처럼 구글의 개방형 링크에 기반을 둔 검색 방식이 하나의 글로벌 질서가 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내세운 미국은 세계 표준의 지위를 선점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을 뒤늦게 쫓는 중국은 알리바바·바이두 등을 세계 무대에 등장시켜 대항의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사이버 스파이 행위와 그 행위를 폭로한 스노든 사태, 미국의 기간 시설에 대한 중국 인민해방군 사이버부대의 해킹은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다. 둘째, 대항해 시대에 유럽인들이 퍼뜨린 천연두와 매독처럼 바이러스를 내세운 사이버 테러와 해킹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번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북한 정찰국이 주도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도면 해킹 사태, 2009년 디도스 공격 등은 이러한 위협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들이었다. 원전 반대그룹을 자칭한 해커 조직은 한수원 측에 원전 가동을 중단하지 않으면 원전 설계 도면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무장 과격단체의 형성과 확산도 문제인데, 인터넷으로 새로운 조직원을 포섭하고 참수 영상을 공개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항해 시대에 출몰했던 해적들처럼 해커들이 글로벌 사이버 공간에서 교란 행위를 일삼고 있지만 무정부주의적 네트워크의 바다에서 세계인들은 자신의 안녕과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형국이다. 사이버 테러와 해킹의 난무, 강대국들의 사이버 패권 경쟁은 신대항해 시대에 우리나라가 직면한 새로운 국제정치 현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네트워크화된 국가 가운데 하나인 한국은 안타깝게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있는 패권 경쟁과 사이버 전쟁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에 비유럽 대륙의 주민들은 익숙하지 않은 유럽식 전쟁 방식과 무기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이들과의 접촉 이후 식민지로 전락했다. 확고한 문명을 바탕으로 체계적 사회 질서를 유지했던 아시아 일부 국가들만이 제국주의의 침탈에서 자주권을 보전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다가오는 사이버 패권주의와 사이버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안전과 국익을 수호할 방법은 건강하고 체계적인 사이버 문명을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정부와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국민이 곱씹어 생각하고 참여와 실천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열어 갈 때다.
  • [한국 美中 줄타기 외교] 중국 지분율 30%… 한국 6%

    정부는 27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지분 확보와 관련해 “국내총생산(GDP) 외에 (외환보유액, 무역수지 등) 여러 경제적 요소를 고려해 국익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AIIB는 지금까지 GDP를 주요 변수로 하되 국가별 납입 의사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지분율을 산정한다고만 규정했다. 최희남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이날 미주개발은행(IDB) 연차총회가 열리는 부산 벡스코에서 “앞으로 AIIB 설립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다만 그는 “경제력을 기준으로 지분을 배분한다고 하지만 아시아 역내국과 역외국의 지분율 배정과 GDP를 명목 또는 실질 기준으로 하느냐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야 한다”며 “역내 기준으로는 한국이 중국과 인도에 이어 GDP 규모가 3위지만, 지분율이 세 번째로 높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호주가 AIIB에 참여한다면 우리나라의 GDP 순위는 호주에 이어 네 번째가 된다. 다른 국제기구의 지분율 산정 방식을 보면 세계은행(WB)의 경우 ▲경제력 75% ▲재원기여도 20% ▲개발기여도 5%로 이뤄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GDP와 국가별 개방도, 변동성,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지분율을 산출한다. 송인창 기재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중국의 지분율이 5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은 AIIB 참가국이 적을 때의 얘기”라며 “현재 36개국인데 추가적으로 늘어나면 중국의 지분율은 50%보다 한참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외교부 측은 중국의 지분율을 30%대 중반으로 예측했다. 우리나라는 6%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사설] AIIB 참여 결정, 앞으로는 ‘뒷북 외교’ 말아야

    정부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 회원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하자 중국 정부는 반색하고 나섰다. 반면 미국의 조야는 대체로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피를 함께 흘린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당연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곤혹적인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 선제적으로 ‘예방 외교’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부터 자문해 보기 바란다. 늦은 감은 있지만 한국이 AIIB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경제적 실리뿐만 아니라 총체적 국익 차원에서 그렇다. AIIB는 중국이 미국 중심의 아시아 금융 질서에 대항해 만들려는 은행이다. 근래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의 경제 패권에 도전장을 내민 모양새다. 미국이 애당초 한국 등 동맹국들의 참여에 제동을 건 배경이다. 하지만 동맹국이라고 해서 언제든 우리 경제를 책임져 줄 리 있겠는가.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를 돌아보라. 일본을 필두로 미국과 유럽 우방들이 속속 국내 은행에 빌려줬던 단기차입금을 회수하지 않았나. 우리가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외에 AIIB라는 새로운 옵션을 마다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의 미 동맹국들이 AIIB에 참여키로 한 것도 다 각국의 국익을 고려한 선택일 게다. 문제는 어차피 해야 할 선택을 떠밀리듯 했다는 사실이다. 유럽 주요국들이 먼저 참여 결정을 해 미·중 사이에 낀 우리의 입장 정리가 편해진 측면은 있지만, AIIB 내 주도권 확보에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멈칫거리다 AIIB의 주요 주주 지위를 놓친 꼴이다. 우방국들의 참여를 만류하던 미 정부도 AIIB의 지배 구조나 운영 방식을 투명하게 유도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지 않은가. 진작에 이런 논리로 선제적으로 미국을 설득했어야 했다. 이제라도 AIIB의 지분 확보나 고위직 배분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국내 기업이 아시아 지역 인프라 투자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하려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다. 기왕에 한·미 동맹에 주름이 생길 걸 무릅쓰고 경제적 실리를 택했다면 중국의 과도한 경제 패권을 견제하는 데도 유럽국들과 함께 일역을 맡아 균형을 맞출 필요도 있다. AIIB 가입과 마찬가지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도 국익을 최우선 잣대로 삼아야 할 사안이다. 여권에선 중국의 요구대로 AIIB에 참여하기로 했으니 이제 미국이 바라는 사드를 배치하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도식에 기대 손놓고 있지 말고 한·미·중 삼각 갈등이 곪아 터지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사드 배치를 놓고 “주권국가로 자부하기에 부끄럽다”고 미리 선을 긋고 있지만, 그렇다면 이제 미국보다 중국의 눈치를 보란 뜻인가. 사드 배치 논란에 앞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억지하기 위한 중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주문할 때다. 상황 추수(追隨)형이 아니라 이슈를 선점하는 외교를 펼 때만 우리는 미·중 간 샌드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정부, AIIB 가입 결정] 中 지배구조 투명성 양보… 사드 배치 中 설득 본격화

    정부가 26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참여하기로 전격 발표한 것은 미국 등 서방국가가 우려하는 지배구조의 투명성 문제를 중국이 대폭 양보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여기에 중국이 31일까지 창립 멤버 가입시한을 한정한 상황에서 효과를 극대화해 AIIB 내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작용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그동안 미국이 강조하던 지배구조의 투명성에 대해 중국이 상당한 양보를 하면서 기준을 충족했다”면서 “여기에 한국이 AIIB에 가입해 내부적으로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설명에 미국이 어느 정도 이해를 나타내면서 가입 발표는 사실상 시간문제였다”고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은 한국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자신의 지분과 관계없이 AIIB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당근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서둘러 AIIB 가입을 발표한 것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서방국가의 AIIB 가입 선언이 줄을 잇는 상황에서 같은 아시아권인 호주가 조만간 AIIB 가입을 발표하려는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다. 한국과 호주는 AIIB 가입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등 일정을 조율했다. 특히 오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거행되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국장(國葬)에 참석하는 것도 서둘러 정부가 AIIB 가입을 발표하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AIIB 가입을 선언하면서 이제 관심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모아지게 됐다.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미동맹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중국 설득작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군사전문가인 김장수 주중 대사의 행보도 관심을 모으게 됐다. 중국의 손을 들어준 만큼 이번에는 양보하라는 논리를 편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이 27일 최윤희 합참의장과 만나 사드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음달 초에는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사드 가입 문제를 거론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한·중 관계를 고려해 AIIB 가입을 선언했지만 사드 배치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 외에도 러시아가 반대하는 등 사드를 놓고 동북아 세력균형이 바뀔 수도 있는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정부가 충분한 고려 끝에 마감시한을 앞두고 AIIB 가입을 발표했듯이 사드 문제도 시한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모든 국익을 고려해 사려 있는 판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사우디 왕자의 급이 다른 ‘방산비리 레전드’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사우디 왕자의 급이 다른 ‘방산비리 레전드’

    국제적 규모의 대규모 종교전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예멘 사태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전투기 100대와 15만 명 이상의 지상군을 투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력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최대 우방국이자 풍부한 오일 머니로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의 무기를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한 중동의 부국(富國)이다. 특히 왕족들 가운데 소위 말하는 ‘군사 마니아’가 많아 좋다는 무기는 국적 불문하고 도입하기로 유명하다. 미국제 M60A1과 프랑스제 AMX-30 전차를 쓰다가 걸프전 이후 미국제 M1 전차가 좋다는 평가가 나오자 곧바로 M1A1과 M1A2 전차를 구매했고, 프랑스제 라파예트급 스텔스 호위함이 멋지다고 여기에 오리지널보다 더 강력한 옵션을 장착해서 들여오기도 했다. 전투기는 미국제 F-15부터 유럽제 유로파이터와 토네이도까지 좋다는 전투기는 닥치는 대로 사들였고, 최근에는 중국제 전투기 구매도 추진하고 있다. 국제무기시장에서 워낙 손이 큰 고객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쯤 되면 세계 각국의 방산업체들이 사우디를 잡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할 만도 하지만 사우디는 국제무기시장에서 ‘글로벌 호갱’ 취급을 받고 있다. -같은 무기 다른 가격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전투기를 구매한다고 가정해보자. 공군에서 소요를 제기하면 합동참모본부에서 이를 검토하고 국방부 승인을 거쳐 방위사업청이 입찰공고를 낸다. 여러 나라의 전투기 제조사들이 제안서를 제출하고 입찰 가격을 써내면 방위사업청은 몇 달에 걸쳐 전투기의 성능과 제안서에 나온 절충교역 조건,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기종을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한다. 여러 조건 가운데 가격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전투기를 파려는 업체들은 가급적 마진을 줄이고 최대한 낮은 가격을 써 내야 한다. 경쟁 입찰을 거친 무기 도입 방식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반화되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제왕정 국가이다. 국왕이 군 최고통수권자이며, 국방장관과 각 군 총사령관 등 군 수뇌부는 모두 왕족이 독식한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북한의 구호처럼 국왕이나 왕족이 어떤 무기를 사야겠다고 결심했으면 그것으로 의사결정과정은 끝이다. 지난 2011년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미국으로부터 무려 60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구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294억 달러는 F-15SA 전투기 84대를 신규 구매하고 70대의 F-15S 전투기를 개량하는 비용이었고, 나머지 300억 달러는 AH-64D 아파치 공격헬기 70대와 UH-60M 블랙호크 헬기 72대, AH-6 리틀버드 헬기 36대 등 180여 대의 헬기를 구입하는 비용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 가격은 정상적인 가격이었을까?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입한 F-15SA 전투기 신규생산 기체 가격은 비슷한 시기 같은 기종을 도입한 우리나라나 싱가포르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대당 1억 3천만 달러 정도에 형성되어 있었다. 기존의 전투기 72대를 개량하는 사업 역시 레이더와 전자장비, 엔진을 모두 뜯어내고 새로 교체한다 하더라도 대당 1억 달러를 넘을 수가 없다. 84대 신규 기체 도입에 72대 개량이라면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200억 달러 정도면 충분하지만 사우디는 294억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나머지 94억 달러는 어디 갔을까? 최근 최신형 아파치인 AH-64E를 도입한 우리나라는 대당 약 5,100만 달러 수준에 36대를 도입했다. 예비 엔진과 롱보우 레이더, 무장을 얼마나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풀옵션에 향후 수십 년치 예비 부품까지 도입하더라도 대당 8,000만 달러는 넘는 경우는 없었다. UH-60M 헬기도 최근 대만이 ‘중국 변수’라는 문제 때문에 5,500만 달러라는 바가지를 쓰기는 했지만 대당 1,800~2,500만 달러 수준에 판매되고 있으며, 소형 헬기인 AH-6i는 대당 1,300만 달러 같은 계열인 훈련용 MD530 헬기는 1,000만 달러를 넘지 않기 때문에 이들 헬기 도입 비용은 향후 수십 년치 수리부속 등 풀옵션 가격으로 산정하더라도 150억 달러를 넘을 수가 없다. 사우디가 헬기 구입에 300억 달러를 쏟아 부었으니 나머지 150억 달러는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일까? -권력과 돈으로 비리도 덮는 나라 사우디아라비아가 무기를 도입할 때는 거의 매번 거액의 리베이트 이야기가 오고갔고, 그들이 도입하는 무기의 가격은 비슷한 시기 다른 나라의 동일 무기 구입 가격보다 언제나 비쌌다. 하지만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군의 무기 도입 사업 비리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없었다. 비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무기도입 사업은 언제나 왕실이 개입했고, 전제왕정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감히 왕실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이러한 대규모 무기도입 사업은 재무부를 통해 집행되는 정식 예산이 아니라 석유 판매 대금으로 조성되는 특별 회계 예산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별도의 회계 감사가 없어 얼마나 많은 돈이 어디로 어떻게 쓰이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석유 판매대금을 이용한 정부 회계 외 거래는 일명 ‘야마마 사업(Al-Yamama Project)'라 불리는데, 이 야마마 사업을 통해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챙긴 인물이 있었다. 20년 넘게 주미대사를 지내며 ’아랍의 키신저‘라 불렸던 반다르 빈 술탄(Bandar bin Sultan) 왕자였다. 반다르 왕자는 1985년 당시 영국 최대의 무기업체인 BAE와 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도입 계약을 성사시켰다. 당시로서는 최신형이었던 토네이도(Tornado) 전투기 72대와 호크(Hawk) 훈련기 30대 등 항공기 100여 대 등을 무려 430억 파운드(약 70조 원)에 구매하는 사업이었다. 반다르 왕자는 이 사업을 중개해주는 대가로 BAE로부터 천문학적인 리베이트를 받았다. BAE는 3개월에 한 번씩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대사관 명의로 된 2개의 계좌에 3,000만 파운드를 송금했고, 이러한 분할 송금은 약 10여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BAE가 반다르 왕자에게 지급한 리베이트는 약 10억 파운드, 우리 돈 약 1조 7,000억 원 규모였다. 리베이트가 송금된 계좌는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대사관 명의였지만 반다르 왕자는 이 계좌를 개인 개좌로 이용했고, 리베이트로 받은 돈 일부로 에어버스 A340 전용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었다. 영국 중대비리조사청(SFO : Serious Fraud Office)이 관련 의혹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2004년부터 조사에 착수한 것이었다. 중대비리조사청은 약 2년여 간의 조사에서 BAE와 반다르 왕자 사이의 검은 거래에 대한 증거를 대량으로 확보하고, 추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반다르 왕자와 사우디 왕실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뒤지기 시작했다. 영국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비리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즉각 영국정부에 항의하면서 “수사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현재 협상 중인 유로파이터 전투기 구매 협상을 취소하고 프랑스 전투기를 구매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결국 토니 블레어 총리는 2006년 12월 법무장관을 불러 수사를 중단할 것을 지시했고, 수사팀은 해체됐다. 하지만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중단시킨 정부의 결정에 격분한 검사와 수사관들이 그동안 수집했던 자료들을 런던의 한 식당 앞 쓰레기통에 던져 놓고 이 사실을 유력 일간지인 ‘가디언’지에 제보한 것이었다. 이 자료들은 문서 32,000페이지, 녹음테이프 81개 등 방대한 양이었다. BAE와 반다르 왕자의 지저분한 거래는 대서특필되었고, 사우디 왕실은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 찍혀 전 세계인의 비웃음을 샀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왕실의 명예가 실추됐다”면서 가디언지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을 내놓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디언지 뿐만 아니라 BBC 방송까지 반다르 왕자의 비리를 다룬 특집 보도를 연달아 터트리면서 토니 블레어 총리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야당인 보수당은 외압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고, 2008년 4월 영국 고등법원은 “중대비리조사청이 유럽 최대의 방위산업체인 BAE에 대한 비리 의혹 수사를 중단한 것은 불법이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든 사법권 행사를 방해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국익이냐 정의냐 문제를 놓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이 법정공방은 당시 진행 중이던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도입 사업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이 법정 공방 덕분에 B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극도로 몸을 사렸고, 이 때문에 사우디 공군은 창설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제값주고’ 전투기를 도입할 수 있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입한 유로파이터 전투기의 가격은 대당 약 1억 달러였다. 사우디 공군은 도입계약 사실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이번 거래에서 단 한 푼의 뇌물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물론 해당 거래는 깨끗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기종을 구매했던 다른 나라보다 더 싸게 구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우디 왕실은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도입에서 생긴 ‘손실’을 다른 곳에서 챙길 수 있었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72대를 구매한지 불과 5년도 채 되지 않아 신형 전투기 도입 사업을 또 시작한 것이었다. 이 전투기 도입 사업이 앞서 언급했던 300억 달러 규모의 F-15SA 도입 사업이었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은 F-15 계열 193대와 유로파이터 타이푼 72대, 토네이도 ADV 24대 등 300여 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려 84대나 되는 F-15SA를 추가로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72대의 최신형 전투기를 구매한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아 구매선을 바꿔 정상 가격의 2배 이상의 돈을 주고 전투기를 구매한다는 것은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 고쳐 매는 격’이다. 소신과 패기로 뭉쳤던 영국 중대비리조사청 검사들이 정치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초대형 방산비리 사건을 세상에 알린 것처럼 미국에도 이번 사우디의 ‘이상한 무기 거래’를 파헤칠 검사들이 있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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