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국왕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군복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날씨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투자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합성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241
  • 쿠웨이트 국왕 의회 해산...2006년 이후 8번째

     쿠웨이트의 에미르(군주)인 셰이크 사바흐 알 아흐마드 알 사바흐가 계속되는 정치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각이 총사퇴하는 동시에 의회에도 해산 명령을 내렸다고 알자지라가 쿠웨이트 국영 통신사 KUNA 보도를 인용해 16일(현지시간) 전했다. KUNA는 정부가 이날 비상 각료회의를 가진 뒤 이같이 발표했다면서 “쿠웨이트 헌법에 따라 2달 이내에 새 총선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조치는 전날 국회 의장인 마르주크 알 가님이 “쿠웨이트의 안보 및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13년 총선으로 선출된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고 요구한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단행됐다.  쿠웨이트는 1750년부터 현 왕가가 지배하고 있으며, 아랍 국가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개방된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산유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미국의 강력한 우방 가운데 하나다. 2013년 총선 당시 ‘아랍의 봄’ 등에 대한 반발로 안정을 원하는 친정부 성향 후보들이 다수 선출됐다.  하지만 정통 종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야당은 현 왕가가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해 양측 간 정치 갈등이 빚어져 왔다. 국민들도 최근 유가 폭락으로 인해 정부가 여러가지 혜택을 줄이자 반발하고 있다. 특히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하면서 쿠웨이트에 대한 테러 위협이 늘었지만 정부에 이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민심 이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 의회 해산 명령은 2006년 이후 8번째로 알려졌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태국 차기 국왕 불확실한 즉위식

    ●왕세자 “애도기간 끝난 뒤 왕위 계승” 그의 생일(12월 5일)에는 노란 셔츠를 입었고, 그가 와병 중일 때 핑크색 옷을 입었다. 이번엔 검은 옷을 입은 태국 국민이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서거 3일째인 16일에도 도로를 점거한 채 분향소를 찾는 발걸음이 끝없이 이어졌다. 모든 정부 관료들은 1년간 화려한 색상의 옷을 포기하고, 많은 사기업은 직원들에게 최소 한 달간 엄숙한 옷차림을 요구했다고 AFP가 이날 전했다. 태국의 차기 국왕은 1년 뒤인 내년 10월 중순쯤 즉위할 전망이다. 뿌라윳 찬오차 총리는 15일 밤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와치랄롱꼰(64) 왕세자가 푸미폰 국왕 애도 기간이 끝난 이후에 왕위 계승 절차를 진행하고자 하는 의향을 나타냈다고 공식발표했다. 이에 따라 새 국왕의 즉위식은 내년 10월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 과도의회인 국가입법회의의 피라삭 포르짓 부의장은 헌법에 따라 국왕 자문기구인 추밀원 원장 프렘 틴술라논다(96)를 임시 섭정자로 지정했다. 방콕 포스트에 따르면, 이는 2014년 쿠데타 이후 제정된 임시헌법의 24조에 의거한 것이다. 새 국왕이 즉위하면 섭정자는 추밀원 원장직으로 자동복귀하게 된다. 장례절차가 모두 끝난 다음 의회가 새 국왕을 초청해 소개하는 절차를 마치게 되면 새 국왕이 탄생한다고 전했다. ●‘親공주파’ 추밀원장이 임시 섭정 일각에선 태국의 과도 정부가 얼마나 갈지 불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푸미폰 국왕이 1972년 12월 지명한 후계자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국민과 함께 애도의 기간을 더 갖겠다”며 즉시 즉위를 미뤘다. 또 추밀원장은 국민적 신임을 받는 짜크리 시린톤(61) 공주와 가깝다. 왕세자는 신망을 잃었고 공주는 국민적 신망이 높은 것이 왕위 계승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정쟁과 쿠데타가 잦은 태국에서 국왕은 국민을 한데 모으는 중심추 역할을 하기에 왕위 계승 문제는 중요하다고 AP가 분석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쿠웨이트 국왕 의회 해산…2006년 이후 8번째

    쿠웨이트의 에미르(군주)인 셰이크 사바흐 알 아흐마드 알 사바흐가 계속되는 정치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각이 총사퇴하는 동시에 의회에도 해산 명령을 내렸다고 알자지라가 쿠웨이트 국영 통신사 KUNA 보도를 인용해 16일(현지시간) 전했다.   KUNA는 정부가 이날 비상 각료회의를 가진 뒤 이같이 발표했다면서 “쿠웨이트 헌법에 따라 2달 이내에 새 총선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조치는 전날 국회 의장인 마르주크 알 가님이 “쿠웨이트의 안보 및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13년 총선으로 선출된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고 요구한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단행됐다.   쿠웨이트는 1750년부터 현 왕가가 지배하고 있으며, 아랍 국가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개방된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산유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미국의 강력한 우방 가운데 하나다. 2013년 총선 당시 ‘아랍의 봄’ 등에 대한 반발로 안정을 원하는 친정부 성향 후보들이 다수 선출됐다.   하지만 정통 종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된 야당은 현 왕가가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해 양측 간 정치 갈등이 빚어져 왔다. 국민들도 최근 유가 폭락으로 인해 정부가 여러가지 혜택을 줄이자 반발하고 있다. 특히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등장하면서 쿠웨이트에 대한 테러 위협이 늘었지만 정부에 이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민심 이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 의회 해산 명령은 2006년 이후 8번째로 알려졌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국왕 서거 와중 왕세자 욕한 태국여성 ‘왕실모독’ 기소

    국왕 서거 와중 왕세자 욕한 태국여성 ‘왕실모독’ 기소

     태국 전역이 지난 13일 서거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을 애도하는 가운데 왕세자 등을 비판한 여성이 왕실모독 혐의로 기소됐다고 현지 언론이 16일 보도했다.  태국 경찰은 남부 꼬사무이 섬 보풋 지역에 사는 여성을 왕실모독 혐의로 이날 기소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지난 14일 푸미폰 국왕의 후계자인 와치랄롱꼰(64) 왕세자와 임시 섭정자로 임명된 프렘 티술라논다(96) 추밀원장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 여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왕세자 등을 비판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현지 주민들은 왕세자 등을 비판한 글을 올린 이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면서 집단행동에 나섰으며,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은 SNS 등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태국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왕실모독법이 존재한다. 1908년부터 존재한 태국의 왕실모독법은 왕과 왕비, 왕세자와 섭정자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는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왕실모독 행위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는 가운데 실제로 법 적용은 아주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왕실 친위대’를 자처하는 군부가 지난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후에는 왕실 모독범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됐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쿠바·이란은 주고 러는 안 줬다…美 정부 리스트로 본 ‘선물의 정치’

    쿠바·이란은 주고 러는 안 줬다…美 정부 리스트로 본 ‘선물의 정치’

     쿠바 시가 7박스, 이란 양탄자,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말 조각상…….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고위 관료들이 외국 정상이나 정부로부터 받은 선물들이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12일(현지시간) 공개한 2015년 선물 목록에는 최근 미국을 둘러싼 국제 관계의 변화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은 반세기 만에 국교를 정상화한 쿠바로부터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양국이 국교 정상화를 전격 발표한 지 1년 뒤인 지난해 12월 쿠바는 오바마 대통령에 최고급 시가 7상자를 보냈다. 미국 정부는 이 시가 가격을 4158달러(471만원)으로 추정했다.  이후 쿠바음악 CD와 쿠바 스타일의 셔츠, 술 4병, 향수 4병 등 총 1193달러(135만원) 상당의 선물도 오바마 대통령 내외에게 건네졌다.  지난해 역사적인 핵합의가 성사되며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이란에서도 오바마 정부 들어 처음 선물이 당도했다.  지난해 1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협상 상대방인 존 케리 미 국무장관에게 이란 예술가의 작품집을 선물했다. 또다른 핵협상 당사자였던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도 이란 관리들로부터 양탄자를 선물받았다.  미국과 해빙 분위기를 보인 쿠바, 이란과 달리 관계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선물이 오지 않았다.  야후뉴스에 따르면 2013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 도자기 에스프레소 잔 세트와 발레 DVD 등을 보냈고, 2014년에는 셔먼 차관 등 일부 미국 관리들이 러시아로부터 선물을 받았으나 지난해 목록에는 러시아 선물이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WSJ는 지난해 케리 장관이 러시아 소치를 방문했을 때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으로부터 승전일 기념 셔츠와 토마토·감자를 선물 받았으나 정부 목록 작성 기준인 375달러(42만원)에 못 미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가장 값비싼 선물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왔다.  지난해 9월 살만 사우디 국왕은 오바마 대통령에 도금한 은과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등으로 장식된 말 조각상을 선물했다.함께 보낸 골프채 세트 등까지 포함해 무려 52만 3000달러(6억원) 상당이다. 사우디는 오바마 대통령에 8만 7900달러(1억원) 상당의 검도 선물했으며, 조 바이든 부통령,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도 시계와 금장식 조각상 등 값비싼 선물을 사우디로부터 받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비싼 선물이라고 해도 받는 사람이 크게 좋을 것은 없다.  이 선물들은 모두 미국 정부의 소유가 되며, 선물 받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갖고 싶으면 정부가 책정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태국 1년 국상… 관광객 ‘불경죄’ 조심

    레스토랑·바 출입 제한… 주류 판매 금지 “어두운 옷 입고 국왕 언급 삼가라” 권고 왕실 모독·위협 땐 최대 징역 15년 중형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아뎃의 서거로 추모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 등은 13일(현지시간) 태국 특유의 ‘왕실 모독법’을 의식해 자국 관광객들에게 애도 분위기를 존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국가 차원의 애도 기간을 1년으로 선포하고 국민들에게 오락과 여흥의 강도를 낮출 것을 권고했다. 14일부터 한 달 동안 태국 전역 관공서 등 주요 건물에는 조기가 게양되고 공무원들은 검은색 옷만 입게 된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오는 17일로 예정된 태국의 대표적 관광 명소 코팡안의 ‘풀 문 파티’가 취소되는 것은 물론 당분간 레스토랑, 바 등 주요 오락시설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지고 주류 판매도 금지될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외무부는 태국 내 자국 관광객들에게 “공공장소에서 공손히 행동해야 한다”면서 “가능한 한 어깨를 가리는 상의와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어두운 색 계열의 옷을 입고 현지 언론을 확인하라”고 권고했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네덜란드 외무부도 “애도 기간에 공공장소에서 제한사항들을 지키고 정부 관리들의 지시사항을 따르는 것은 물론 왕족에 관한 토론에 참가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는 태국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왕실 모독법’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왕과 왕비 등 왕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사람은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왕실 모독’의 개념 자체도 불분명하고 포괄적이라 사실상 인권을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태국 정치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푸미폰 국왕 사후 정국은 혼돈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독재 권력이 강화되고 민정 이양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푸미폰 국왕의 자녀 중 유일한 왕자로 1972년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마하 와치랄롱꼰(64) 왕세자는 세 번의 이혼 경력에 낭비벽, 자기중심적인 성격 등 사생활 문제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 한편 국제사회의 애도가 줄을 이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보편적 가치에 전념하고 인권을 존중했던 푸미폰 국왕의 유산을 태국이 이어 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그가 보였던 태국 국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비심은 물론 품위와 온화함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윤병세, 대사관 방문해 태국 국왕 서거 조문

    윤병세, 대사관 방문해 태국 국왕 서거 조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서거를 맞아 14일 주한 태국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 윤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의 태국대사관을 방문해 조문하고 싸란 짜른쑤완 태국 대사에게 조의를 표했다. 앞서 왕실 사무국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13일(현지시간) 향년 88세로 서거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태국 푸미폰 국왕 서거 소식에 거리로 나온 국민들 ‘깊은 애도’

    [포토] 태국 푸미폰 국왕 서거 소식에 거리로 나온 국민들 ‘깊은 애도’

    푸미폰 태국 국왕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14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의 씨리랏 국립병원 앞에 모인 국민들이 국왕의 사진을 품에 안고 슬퍼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국 국왕 서거…‘사생활 시끌’ 왕세자, 왕위 이어 받을 수 있을까

    태국 국왕 서거…‘사생활 시끌’ 왕세자, 왕위 이어 받을 수 있을까

    70년간 태국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서거하면서 왕위 승계 향방에 관심이 집중 되고 있다. 현재로선 와치랄롱꼰(64) 왕세자의 왕위 승계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이를 두고 국내외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쁘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는 국왕 서거 당일인 13일 국영TV 채널을 통해 “정부는 왕위 승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국왕께서 지난 1972년 왕세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을 국가입법회의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푸미폰 국왕이 지난 1972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한 와치랄롱꼰(64) 왕세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2007년 개정된 태국 헌법은 왕위 계승에 있어 왕실법을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입헌군주제가 도입되기 이전인 1924년에 제정된 태국의 왕실법에는 국왕만이 왕자 가운데서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1974년 개헌 당시 추가된 왕위 계승 관련 규정에는 공주도 국왕의 정치 자문단인 추밀원의 추천과 의회 승인 절차를 거쳐 왕위 승계자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왕세자 또는 명백한 후계자가 없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한 와치랄롱꼰 왕세자는 태국 왕실의 적통을 이어받는 차기 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생활 등 문제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왕세자보다는 짜크리 시린톤(61) 공주를 선호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시린톤 공주는 푸미폰 국왕의 곁을 지키며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국민의 신임을 받아왔다. 물론 시린톤 공주가 왕위를 물려받으려면 왕세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왕위 승계 규정을 뒤집을만한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국왕의 친위대’를 자처해온 군부, 왕실 및 보수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추밀원,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 등이 왕위승계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와치랄롱꼰 왕세자와 시린톤 공주를 축으로 군부와 탁신 전 총리, 미국과 중국 등을 세대결 구도로 이분화하고 양측간에 치열한 다툼이 있을 것으로 보은 시각도 있다. 이런 세대결이 현실화할 경우 태국 정국은 극심한 혼돈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으며, 내년 연말 총선을 통한 민정이양 일정도 늦춰질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태국인들 “아버지 잃었다” 병원 앞에 모여 눈물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태국인들 “아버지 잃었다” 병원 앞에 모여 눈물

    지난 70년 동안 재위했던 푸미폰 아둔야뎃(88) 국왕의 서거 소식이 13일(현지시간) 전해지자 태국 국민들은 “아버지를 잃었다”며 슬픔에 휩싸였다. 그동안 푸미폰 국왕이 신병치료를 해온 방콕 시내 시리라즈 병원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국왕을 추모하려고 몰려든 시민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국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셔츠 차림의 사람들과 하얀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줄지어 병원 앞에 모였다. 가슴에는 국왕의 생전 사진을 품고 손에는 삼색 태국 국기를 든 1000여 명의 시민들은 병원 5번 출구를 막아선 경찰관들이 야속한 듯, 국왕이 영면해 있을 병원 건물만 말없이 응시했다. 당국이 병원 인근 도로의 차량 진입을 차단하면서 사람들은 몇 ㎞를 꼬박 걸어야만 병원 근처로 갈 수 있었다. 또 당국이 야간에 외부인들의 병원 진입을 막으면서 먼 길을 걸어온 시민들은 병원 출입문을 막아선 경찰관과 군인들에게 막혀 도로 한복판에서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만 달래야 했다. 왕실 측은 14일 오후 국왕의 시신을 병원에서 왕궁사원(에메랄드 사원)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쁘라윳 찬-차 태국 총리는 앞으로 1년간을 애도 기간으로 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왕의 서거 소식에 이날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방콕 시내 번화가에서도 다소간의 변화가 감지됐다. 외국인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흥청거리는 수쿰윗 지역 거리는 여전히 밤문화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사라지면서 한층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70년간 왕위 유지 ‘태국 자유의 수호자’

    70년간 왕위 유지 ‘태국 자유의 수호자’

    세계 최장기 집권 국가원수 기록을 세우며 태국 국민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13일 서거했다. 88세. 태국 왕실 사무국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국왕께서 오늘 오후 3시 52분 시리라즈 병원에서 영면했다”고 밝혔다. 사무국은 “주치의들이 최선을 다해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치료했지만 국왕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은 채 계속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 9일부터 이날까지 70년 126일간 왕좌를 지켜 세계에서 최장기간 집권한 국가원수이자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로 기록을 세웠다. 푸미폰 국왕이 서거함에 따라 최장기 집권 기록은 64년간 재위하고 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돌아갔다. 푸미폰 국왕은 2009년부터 고열과 저혈압, 심장 박동수 증가 등의 증세로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지면서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푸미폰 국왕은 지난 1월 병원 치료 도중 병원을 잠시 빠져나와 휠체어를 탄 채 왕궁을 둘러보는 모습이 포착된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푸미폰 국왕은 입헌군주제의 군주로서 상징적인 국가원수였지만 국민의 절대적 신망을 바탕으로 태국 현대사의 굴곡마다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푸미폰 국왕은 군부 쿠데타나 민주화 시위가 발생할 때 중재자로 나서며 정치적 위기를 해결했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92년 수친다 크라프라윤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자 정국이 큰 혼란에 빠졌다. 푸미폰 국왕은 수친다 당시 총리와 야권을 대표하는 잠롱 스리무리앙 전 방콕 시장을 왕궁에 불러 무릎을 꿇리고 질책했고, 이후 수친다는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국민들은 국왕의 중재 모습을 보며 국왕이 태국의 자유와 번영을 수호하는 구심점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푸미폰 국왕의 정치 개입이 모두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푸미폰 국왕은 포퓰리즘적 복지 정책으로 빈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탁신 친나왓 총리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을 당시 군부 정권을 승인한 바 있다. 이후 탁신의 여동생 잉락이 민주 선거로 집권한 지 3년도 안 돼 군부 쿠데타가 다시 발발했지만 푸미폰 국왕은 군부를 지지하면서 국왕의 정치 개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왕실모독죄가 왕실과 군부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데 오남용되면서 푸미폰 국왕과 왕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푸미폰 국왕이 굳건히 버텨왔기에 70년의 재임 기간에 19차례의 쿠데타와 20회의 개헌 조치가 발생했음에도 태국 정치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에 태국 왕실과 정계는 푸미폰 국왕의 후계를 서둘러 확정해 국민들을 안정시키려는 모습이다.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국영 뉴스채널을 통해 이날 밤 열리는 과도의회 격의 국가입법회의(NLA)에 후계자를 통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쁘라윳 총리는 “정부는 왕위 승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국왕께서 지난 1972년 왕세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을 국가입법회의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미폰 국왕은 1972년 유일한 왕자이자 장손인 와치라롱껀(64)을 왕세자이자 후계자로 공식 지명한 바 있다. 하지만 와치라롱껀 왕세자는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기행을 일삼으면서 국민의 폭넓은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후계자는 와치라롱껀 왕세자(종합)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후계자는 와치라롱껀 왕세자(종합)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13일(현지시간) 서거했다. 향년 88세. 왕실 사무국은 이날 성명을 통해 “폐하께서 오늘 오후 3시 52분 시리라즈 병원에서 영면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주치의들이 최선을 다해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치료했지만, 국왕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은 채 계속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후계구도와 관련, 쁘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는 국영 뉴스채널을 통해 이날 밤 열리는 과도의회 격의 국가입법회의(NLA)에 후계자를 통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쁘라윳 총리는 “정부는 왕위 승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국왕께서 지난 1972년 왕세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을 국가입법회의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미폰 국왕은 지난 1972년 유일한 왕자이자 장손인 와치라롱껀(64)을 왕세자이자 후계자로 공식 지명한 바 있다. 쁘라윳 총리는 또 앞으로 1년간 애도 기간을 두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태국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아버지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며 “앞으로 30일간은 축제를 열지 말라”고 말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 9일부터 이날까지 70년 126일간 왕위를 유지해오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2009년부터 고열과 저혈압, 심장 박동수 증가 등 증세로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지면서 건강 이상설을 낳았다. 푸미폰 국왕은 지난 1월 병원에서 치료 도중 휠체어를 탄 채 왕궁을 둘러보는 모습이 포착된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왕실 사무국은 지난 9일 혈액투석 및 과도하게 분비되는 척수액을 빼내기 위한 삽관 교체 후 국왕의 건강상태가 ‘불안정’하다고 밝혀 우려를 낳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존경·사랑받는 ‘태국 국민의 아버지’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존경·사랑받는 ‘태국 국민의 아버지’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라마 9세, 88세)이 13일 서거했다. 푸미폰 국왕은 세계에서 가장 긴 재위 기록을 보유한 왕이다. 1946년 6월 즉위해 70년 넘게 태국을 통치했다. 1952년 2월부터 영국을 통치해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도 재위 기간이 5년 이상 길다. 수코타이(1238∼1351년), 아유타야(1351∼1767년), 톤부리(1768∼1782년), 랏타나코신(1782∼1932년), 시암(1932∼1939년)에 이은 타이 왕국 등 태국 땅에 존재했거나 현존하는 6개 왕국, 10개 왕조를 통틀어서도 그 만큼 오랜기간 왕좌를 유지한 국왕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푸미폰 국왕이 돋보이는 이유는 오랜 재위기간보다는 국민으로부터 받는 존경과 사랑 때문이다. 푸미폰 국왕은 재위 기간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난한 국민에게 다가갔다. 입헌 군주로서 상징적인 국가원수였지만 그 영향력은 실권을 쥔 통치자 이상이었다. 재임 기간 무려 19차례의 쿠데타와 20회에 걸친 개헌이 있었을 만큼 태국의 근현대사는 굴곡이 많았지만, 격변과 혼란기에는 어김없이 푸미폰 국왕이 최악의 상황을 막는 구심점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현 짜끄리 왕조의 아홉 왕 가운데 초대왕인 붓다 요드파 출라로케 국왕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푸미폰 국왕에게 ‘대왕’(the Great) 칭호가 붙는 이유다. 푸미폰 국왕은 1927년 1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당시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친형인 아난다 마히돈(라마 8세) 국왕이 1946년 약관의 나이로 승하한 뒤 즉위했고 대관식은 이듬해 치렀다. 1932년 절대왕정이 폐지되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추락하던 왕실의 위상은 푸미폰 국왕에 이르러 회복됐다. 푸미폰 국왕은 국교인 불교의 수호자로 한때 출가 생활을 했으며, 막대한 왕실 재산을 수많은 농업 및 지역 개발 사업에 투자했다. 젊었을 때는 직접 산간 벽지의 가난한 농민과 소외된 소수 민족을 찾아가 이들이 처한 문제를 눈으로 확인하고 들었다. 1950년대부터는 한 해에 200일 이상을 시골에서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왕이 카메라를 메고 산간벽지를 찾아다니며 가난의 실상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푸미폰 국왕은 이런 국민의 소리를 바탕으로 ‘로얄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 영역은 농업, 수자원, 환경, 고용, 보건, 복지 등을 망라했으며, 크고 작은 규모의 로열 프로젝트가 자그마치 4000여건에 달했다. 그는 특히 북부의 소수 종족인 고산족의 복지를 개선해 1988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 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유엔으로부터 제1회 ‘인간개발 평생업적상’도 받았다.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은 그가 “세계의 개발 왕으로서 신분과 종족, 종교를 초월해 극빈자와 취약 계층을 위해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태국을 중진국 반열에 올려 놓고 국민과 두터운 신뢰를 쌓은 그는 군부 쿠데타나 대규모 시위 등 격변기에 권위있는 중재자로 나설 수 있게 했다. 1973년에는 군부가 민주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향해 발포하자 학생들에게 궁전 문을 개방했다. 1992년에는 민주화 시위 와중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친다 크라프라윤 당시 총리와 야권을 대표하는 잠롱 스리무리앙 전 방콕 시장이 대립하면서 정치적 불안이 극에 달했다. 푸미폰 국왕은 두 사람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무릎을 꿇어앉히고 준엄하게 질책했다. 이런 국왕의 모습은 국민에게 깊이 각인됐다. 수친다 전 총리는 결국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이처럼 불안한 정국 속에서도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비교적 높은 자유와 안정을 누리고 있는 것은 푸미폰 국왕이 사회 구심점으로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국민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노령기에 접어든 푸미폰 국왕은 지난 2009년 이후 수 없이 방콕 시리라즈 병원에 입원해 생활하자 국민은 그의 안위를 크게 걱정했다.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오랫동안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푸미폰 국왕의 부재가 태국 사회에 큰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70년 126일간 왕좌 ‘세계 최장 재위’(2보)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70년 126일간 왕좌 ‘세계 최장 재위’(2보)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13일(현지시간) 서거했다. 향년 88세. 왕실 사무국은 이날 성명을 통해 “폐하께서 오늘 오후 3시 52분 시리라즈 병원에서 영면했다”고 밝혔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 9일부터 이날까지 70년 126일간 왕위를 유지해오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2009년부터 고열과 저혈압, 심장 박동수 증가 등 증세로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지면서 건강 이상설을 낳았다. 푸미폰 국왕은 지난 1월 병원에서 치료 도중 휠체어를 탄 채 왕궁을 둘러보는 모습이 포착된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왕실 사무국은 지난 9일 혈액투석 및 과도하게 분비되는 척수액을 빼내기 위한 삽관 교체 후 국왕의 건강상태가 ‘불안정’(unstable)하다고 밝혀 우려를 낳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70년 왕좌 ‘세계 최장 재위’(속보)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13일(현지시간) 서거했다고 왕실 사무국이 밝혔다. 향년 88세. 푸미폰 국왕은 세계 최장 재위 기록을 가졌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 9일부터 이날까지 70년 126일간 왕위를 유지해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입을 세 겹으로 꿰맨 것처럼 하라는 하교…” 정조 비밀 어찰에 보낸 최측근 신하의 답장

    “입을 세 겹으로 꿰맨 것처럼 하라는 하교…” 정조 비밀 어찰에 보낸 최측근 신하의 답장

    정치 현안·천주교 실상 등 언급 “미천한 신이…” 극도의 예 갖춰 정조의 최측근 신하가 국왕의 비밀 어찰(御札)에 보낸 답장 105통을 번역해 엮은 ‘수기(隨記)-정조의 물음에 답하는 박종악의 서신’이 12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나왔다. 정조가 노론 벽파의 수장이었던 심환지 등 신료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그동안 공개된 것만 1200여통에 이르지만 신하가 정조에게 보낸 답장은 2014년 발굴된 박종악의 서신뿐이다. 편지들은 박종악이 충청도 관찰사와 우의정을 거치며 정조의 최측근으로 승승장구한 1791년부터 사신으로 청에 다녀오다 타계한 1795년 사이에 쓰였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정조와 최측근 신하 간의 편지인 만큼 당대의 정치 현안이 두루 언급돼 있다. 박종악은 편지에서 자신은 노론 벽파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다고 밝혀 정조와 정치적 입장을 같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서신에 “입을 세 겹으로 꿰맨 것처럼 하라는 성상의 하교”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조가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또 “상소는 어제 하교하신 대로 내일 올리겠습니다”라고 써 정조와 박종악이 조정 안에서 사건을 공론화하는 방법과 시기도 조율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기에는 당시 ‘사학’(邪學)으로 불렸던 천주교의 실상에 대한 내용도 생생하게 기록돼 사료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박종악은 정조의 명령에 따라 충청도 일대의 천주교도들을 탐문하고 그들의 동향을 보고했다. 18세기 말 충청도에서는 양인 층에서도 천주교가 성행했다는 점과 천주교를 전파시킨 주요 인물, 천주교도의 생활상, 서적 등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이 밖에 노비제 개혁을 비롯한 정조대 조정의 주요 정책, 시파와 벽파의 극심한 당파 대립, 중국 연경(燕京·베이징)에 두 차례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보고한 청나라 황제와 조정의 동향을 다룬 편지 내용도 실렸다. 박종악의 편지는 거의 전편이 ‘삼가 아룁니다’로 시작하고, “개나 말처럼 미천한 신이 외람되게 해와 달 같은 성상의 광채를 입었습니다. 신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서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더라도 큰 은혜에 보답하기 부족합니다”라는 식의 극도의 예의를 갖춘 표현이 적지 않다. 국왕과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기쁨과 자부심, 감사의 마음도 있겠지만,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하는 부담과 피로감 또한 컸을 것으로 보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70년 세계 최장수 재위’ 푸미폰 태국 국왕 위독

    ‘70년 세계 최장수 재위’ 푸미폰 태국 국왕 위독

    세계 최장수 즉위 기록을 보유한 푸미폰 아둔야뎃(88) 태국 국왕이 건강 악화로 혈액 투석 및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는 등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고 네이션 등 현지 언론이 10일 보도했다. 태국 왕실 사무국은 의료진이 혈액 투석 및 과도하게 분비되는 척수액을 빼내기 위한 삽관 교체 후 푸미폰 국왕의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밝혔다. 1946년 즉위해 70년간 태국을 통치해 온 푸미폰 국왕은 세계 최장수 재위 기록을 갖고 있다. 특히 사무국이 그동안 푸미폰 국왕의 근황에 대해 상태가 호전됐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알렸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발표는 매우 이례적이다. 때문에 국왕의 안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 절대적인 존경과 신망을 받는 푸미폰 국왕의 건강 상태는 큰 관심사다. 의료진은 푸미폰 국왕의 혈압이 간헐적으로 떨어지자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푸미폰 국왕은 2009년부터 고열과 저혈압, 심장 박동수 증가 등의 증세로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해 건강이상설이 제기됐다. 지난 1일에는 심각한 혈액감염과 폐에 물이 차는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 국왕의 건강 악화 소식에 태국 증시 SET지수는 개장 후 한때 3.6%가량 폭락했다. 외환시장에서도 태국 바트화 가치가 장중 2개월 만에 최저인 달러당 35.08까지 내려갔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최장수 재위’ 푸미폰 태국 국왕 상태 불안정…“인공 호흡기 부착”

    ‘최장수 재위’ 푸미폰 태국 국왕 상태 불안정…“인공 호흡기 부착”

    세계 최장수 재위 기록을 보유한 푸미폰 아둔야뎃(88) 태국 국왕의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왕실 사무국은 9일 밤 성명을 통해 의료진이 혈액투석 및 과도하게 분비되는 척수액을 빼내기 위한 삽관 교체후 국왕의 건강상태가 불안정해졌다고 밝혔다. 의료진은 혈압이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현상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또 심장 초음파 검사 결과 폐의 혈압이 높아 좌심실로 유입되는 혈류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진은 폐혈관을 확장하기 위한 약물 투입 후 맥박과 혈압이 다소 개선됐지만, 전반적인 증세가 불안정해 상태를 주시하고 있다고 사무국은 덧붙였다. 푸미폰 국왕은 앞서 지난 1일에도 심각한 혈액감염과 폐에 물이 차는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 70년간 태국을 통치해온 푸미폰 국왕은 세계 최장수 재위 기록을 가졌다. 그러나 지난 2009년부터 고열과 저혈압, 심장 박동수 증가 등 증세로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지면서 건강 이상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 결혼했어요’… 알바니아 왕자와 여배우의 결합

    ‘우리 결혼했어요’… 알바니아 왕자와 여배우의 결합

    알바니아의 폐위된 왕실의 마지막 후계자인 레카 왕자(34)가 8일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알바니아의 유명 여배우와 결혼했다.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레카 왕자는 현재 알바니아 외교부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고, 신부 엘리아 자하리아(33)는 파리에서 연극을 공부한 뒤 귀국해 유명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알바니아 왕실 구성원이 티라나에서 웨딩 마치를 울린 것은 1938년 레카 왕자의 할아버지인 조구 1세가 헝가리의 공주와 결혼한 이래 78년 만이다. 조구 1세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군대가 1939년 알바니아를 침공하자 그리스 등으로 피신했고, 이후 1946년 알바니아가 공산화되며 군주제가 폐지됨에 따라 알바니아 왕족은 1990년 공산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알바니아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날 결혼식에는 스페인 소피아 왕비, 이란의 마지막 국왕 샤 팔레비의 부인인 파라 디바 왕비, 유고슬라비아의 미하일로 카라조르제비치 왕자, 루마니아 마르가리타 공주 등 20여 명의 유럽 왕실 구성원들이 참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유자광과 어떤 출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유자광과 어떤 출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거의 모든 사람은 출세하기를 원한다. 입신양명 같은 표현도 출세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미사여구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죄다 출세를 향해 경주하니 출세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도 잘 타고나야 할뿐더러 정세 판단에 탁월하고 인맥도 잘 타야 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주류에 들지 못한 소수 출신으로서 주류의 벽을 넘고 출세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대개 최고 보스에게 절대 충성을 실천해 보임으로써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각인시켜 출세를 도모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 역사의 예를 보자면 얼자(孼子)라는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권력의 한복판에 들어가 일세를 풍미하다가 끝내 몰락한 유자광(柳子光·1439~1512)의 삶이 한 전형적 예다. 조선에서는 서얼(庶孼)을 혹독하게 차별했다. 서자는 가족의 정식 일원이 아니었기에 족보에도 제대로 오를 수 없었다. 국가마저도 서자를 차별해 서자는 원칙적으로 과거(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고, 설사 요행히 벼슬길에 나가더라도 요직에는 오를 수 없었다. 이런 조선에서 태어났으니 유자광에게 출세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렇지만 문무를 겸비한 유자광은 타고난 감각과 대담한 실천을 통해 출세가도를 달렸다. 1467년에 발생한 이시애의 난은 그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지방의 일개 군인 신분임에도 대담하게 상소를 올려 진압군 장수들의 무능을 질타하고 자신이라면 충정으로 선봉에 서서 이시애의 목을 당장 따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에 세조는 그를 바로 전선으로 보냈고, 유자광은 실제로 선봉에 서서 용감히 싸움으로써 진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때부터 유자광은 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서얼에서 허통(許通)되어 벼슬길에 나섰으며, 급기야 병조정랑에 임명됐다. 인사권을 행사하는 정랑은 전통적으로 문과 급제 출신들에게만 가능한 요직인데,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방의 천출(賤出) 군인이던 자가 그 자리에 떡하니 앉으니 조정이 조용할 리 없었다. 그러자 세조는 특별 과거시험을 통해 유자광을 1등으로 합격시킴으로써 양반 신료들의 반대를 일축했다. 이런 세조의 갑작스런 죽음은 유자광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는 시간문제였다. 그렇지만 그는 새 국왕 예종의 관심을 얻기 위해 또 다른 폭탄 상소를 올려 남이(南怡)를 역모 혐의로 고변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예종의 신임을 받았고, 공신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 예종마저 바로 죽었으니 유자광에게는 운명의 장난이었다. 오히려 역모에 휘말려 옥에 갇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그렇지만 이때도 그는 옥중에서 자기 옷을 찢어 절절한 상소를 올림으로써 살아나 재기했다. 상소의 내용은 국왕 성종이 이제 성인이 됐으므로 당장 친정(親政)에 임해야 하는데도, 한명회(韓明澮) 등 중신들이 대비를 조종해 수렴청정을 연장하려 한다는 폭탄 발언이었다. 이 상소를 계기로 한명회의 권세는 크게 꺾였고, 성종은 친정을 시작했으며, 유자광은 특사를 받아 살아났다. 연산군 때도 유자광의 출세 비결은 국왕의 의도대로 충실히 움직임으로써 국왕이 정국을 확실히 주도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일이었다. 실제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배후에서 긴밀하게 움직인 이가 바로 유자광이었다. 이 두 사화를 통해 국왕의 총애는 날로 깊어 갔으나 주류 양반사회는 그를 공공의 적으로 여겼다. 유자광의 감각은 연산군 말기에 두드러졌다. 역모를 눈치챈 그는 고변하기는커녕 오히려 역모(반정)에 가담함으로써 연산군과 함께 몰락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반정공신으로 우뚝 섰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주류 양반 신료들의 거센 탄핵을 받아 몰락하여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그의 한계였던 것이다. 이렇듯 유자광의 출세 비결은 오로지 국왕의 특별한 총애였다. 여종의 몸에서 태어난 그가 국왕의 신임을 받기 위해서는 사실상 그 길밖에 없었다. 주류에 들지 못한 신분으로 정치 무대에 올라선 그는 시종일관 오직 한 사람 곧 국왕만 바라보며 내달렸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여당 대표의 단식이라는 전대미문의 희한하고도 황당한 뉴스를 접하면서 불현듯 뇌리를 스친 ‘어떤 출세 이야기’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