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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정은경’ 허준과 혜민서, 400년前 역병 어떻게 이겨냈나

    ‘조선의 정은경’ 허준과 혜민서, 400년前 역병 어떻게 이겨냈나

    ‘환자를 상대하여 앉거나 설 때 반드시 등지도록 한다’, ‘집안에 시역(時疫)이 유행하면 처음 병이 걸린 사람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한 후 밥 시루에 넣어 찐다’….조선시대 명의 허준(1539~1615)은 1613년 광해군의 명으로 온역(溫疫·티푸스성 감염병)에 대응하는 의서 ‘신찬벽온방’(보물 1087호)을 편찬했다. 격리 상태의 온역 환자와 불가피하게 접촉해야 하는 의원이나 가족을 위한 주의 사항을 자세히 소개했다. 부득이하게 고가의 약물을 사용하는 처방을 할 땐 감당할 만한 사족(士族)들이 나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도 했다. “국가에서 활인서와 혜민서를 설치한 것은 죽어 가는 사람을 의약으로 구하려는 뜻에서이다. 이처럼 백성이 질병이 있어도 오히려 관원을 두어 구제하는데, 하물며 병든 자보다도 더 다급한 버려져 구걸하는 아이들이야 어떻겠는가.” ●역병 대응 의서 편찬… 긴급구호 명령 1783년 정조는 흉년과 전염병으로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긴급구호 명령인 ‘자휼전칙’을 제정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무엇보다 약자 보호에 힘쓴 군주의 자세가 지금 시대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에 마련된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는 지금보다 훨씬 가혹했던 전염병의 참상과 더불어 공포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선조들의 분투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역사가 전하는 전염병 극복의 지혜와 교훈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전시다.●두창 자국 선명… 정조의 아들도 역병 조선시대 대표적인 전염병은 두창이었다. 마마, 천연두로도 불리는 두창은 종두법 실시 이전까지 무수한 인명을 앗아갔다. 조선 중기 예학자 정경세가 두창으로 죽은 아들을 기리며 쓴 제문에는 애끓는 슬픔이 오롯이 담겨 있다. 1774년 특별시험인 등준시 무과 합격자의 초상화첩 ‘등준시무과도상첩’에 실린 18명 중 김상옥 등 3명의 얼굴에는 ‘얽은 자국’이 남아 있다. 국왕도 자식을 전염병으로 잃었다. 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자 문효세자(1782~1786)의 장례 기록인 ‘문효세자예장도감의궤’에는 홍역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역병을 극복하려는 조정과 민간 의료진의 노력은 의서 편찬으로 이어졌다. 정조와 어의 강명길의 합작품인 표준의서 ‘제중신편’, 정약용이 지은 홍역 전문 의서 ‘마과회통’, 두창 예방법인 종두법을 소개한 이종인의 ‘시종통편’, 지석영의 ‘우두신설’ 등이 전시에 나왔다. 호구마마, 호구별성 등 무속신을 그린 민화와 석조약사불은 전염병의 공포를 신앙으로 이겨 내고자 한 백성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 준다. 6월 21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언관 타락이 언권 혁파 불러… 총선서 ‘시민, 권력이 된 언론 외면’ 확인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언관 타락이 언권 혁파 불러… 총선서 ‘시민, 권력이 된 언론 외면’ 확인

    “대체로 사대부가 사는 곳은 인심이 나쁘지 않은 곳이 없다. 붕당을 만들어 할 일 없는 사람들을 모으고 권세를 부려 가난한 백성들을 괴롭힌다. … 신축년(1721년)과 임인년(1722년) 옥사 이래 조정에는 노론, 소론, 남인 세 색목의 원한이 날로 깊어져 서로 역적의 누명을 뒤집어씌우더니, 그 영향이 시골에까지 미쳐 싸움터가 아닌 곳이 없다.” ‘택리지’의 저자 청담 이중환이 3장 ‘복거총론’ 중 ‘인심’ 편에서 그린 18세기 초중반 조선의 사회상이다. “천지가 개벽한 이래 인심이 일그러지고 무너져 본성을 잃은 나라가 있었다 해도 오늘날 붕당으로 인한 환난보다 더한 적은 없었다. … 백만 백성이 장차 인간의 본성을 모두 잃어 구할 수 없을 터이니 이 또한 슬픈 일이다.” 인문지리서가 당쟁의 폐해를 장황하게 전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살 곳을 선택할 때 가려야 할 것이 인심의 좋고 나쁨, 기후의 건습 따위지만, 당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색목이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중환은 이렇게 충고한다. “사대부가 살지 않는 곳을 선택해서 두문불출하며 홀로 착하게 살라.”그러나 이 책을 쓰던 1751년 즈음 조정의 풍경은 판이하다. “근래에 와서는 사색이 조정에 함께 나가서 오로지 벼슬만 할 뿐이고, … 옳고 그름과 충신 역적에 대한 논란도 사라졌다. 그리하여 피 터지게 싸우던 습관은 전에 비해 적어졌지만, 나약하고 게으른 새 병폐가 생겼다.” 영조의 탕평책이 나름 뿌리를 내리던 시절이었다. 이중환은 이런 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경신년(1741년) 전랑권 혁파를 꼽았다. “경연에 참석한 신하들이 붕당의 분열은 전랑(이조 정랑과 좌랑)에서 시작됐으니 전랑의 권한을 없애기를 청하자 임금이 허락했다.” 다음은 영조 17년 4월 19일치 영조실록. “임금이 늘 조정의 붕당을 근심하였는데, 이조 낭청과 한림을 선발할 때면 두 당에서 서로 싸우기를 그치지 않으니 임금이 그들의 하는 짓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경장하려 했다. 마침 송인명, 조현명, 원경하, 정우량 등이 극력 찬성하니 임금이 혁파를 명했다.” 전랑의 3사 당하관 인사권(통청권)과 한림(예문관 검열, 사관)이 한림을 추천(한림회천제)하는 관행을 없애라고 한 것이다. 혁파의 이유는 이렇다. “붕당의 행태가 신하들을 함몰시키고 기강을 문란시키고 있으니 신하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편당 만드는 것뿐이다. 폐단을 바꾸려고 한다면 마땅히 그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 낭청(정5품 이하 관리)의 통청(청요직의 추천 혹은 비준)과 야료의 온상이 된 한림의 자천제도 혁파해야 한다.” 조선은 언론을 중시했다.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民本) 백성을 위한 정치(爲民)를 하려면 꼭 필요한 게 백성의 입장에서 권력자를 성역 없는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언권이었다. 조선은 개국 초 심지어 풍문만으로 관리를 탄핵할 수 있는 풍문탄핵까지도 허용했다. 요체는 언론 활동의 독립성이었고, 이를 위한 인사의 독립성 확보였다.조선의 언론은 사간원(간쟁), 사헌부(관리에 대한 검증 및 감찰), 홍문관(학문) 등 3사의 당하관과 사초를 기록하는 예문관 사관이 맡았다. 이들 기관 언관의 독립성을 위해 도입한 것이 낭청권(이조 전랑이 3사 언관을 추천하는 통청권, 전랑이 자신의 후임자를 추천하는 자대권)이다. 전랑은 이 밖에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 공론을 수렴하는 처치권도 행사했다. 낭청권은 중종 11년 조광조 등의 요구로 제도화됐다. 중종은 사림을 청요직에 적극 기용해 언권으로 공신과 훈구세력을 견제했다. ‘공론재하’(공론은 아래에 있다)의 원칙, 즉 공론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으로 공론정치의 철학적 토대였다. 물론 언관이 대변한 것은 백성의 여론이 아니라 사림의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여론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훈구 및 외척세력의 전횡에 사림이 맞서던 시절 사림의 공론은 백성의 여론과 다르지 않았다. 선조 때 사림이 조정을 주도하면서 언관의 행태가 변질됐다. 붕당이 생기고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1575년 동서 분당은 바로 그 이조 전랑 자리를 둘러싼 각축에서 비롯됐다. 이때부터 언관은 공론이 아니라 붕당의 당론을 대변하고, 상대 당을 탄핵하는 데 치중하기 시작했다. 선조 때 기축옥사를 시작으로 광해군대의 잇따른 고변과 무고, 문묘종사 논란과 회퇴변척 논쟁, 현종대의 을해예송 및 갑인예송 등은 대부분 언관에 의해 주도됐다. 숙종대로 넘어오면서 공론정치는 당쟁으로, 당쟁은 아예 살육전으로 치달았다. 당시 붕당의 행태가 얼마나 타락했으면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오로지 ‘남인 박멸’을 위해 사림이 지켜 온 의리(척신 타파)를 버리고 김석주 등 척신의 정탐정치와 고변을 옹호하고 지원(경신환국)했을까. 이는 서인이 노론, 소론으로 분당하는 원인이 됐다. 숙종은 붕당의 이런 행태를 이용해 신권을 강력히 통제하며 왕권을 강화했다. 국왕 주도로 이루어진 급격한 정권교체, 곧 ‘환국정치’다. 숙종은 갑인예송이 촉발한 갑인환국(1674년) 이후 특정 붕당이 비대해져 왕권을 흔든다 싶으면 집권당을 교체했다. 1727년 정미환국까지 50여년 동안 무려 아홉 번의 환국이 있었고 그때마다 숙청과 살육이 벌어졌다. 그것이 ‘택리지’가 전하는 시대상이었고, 영조가 추진한 탕평책의 시대적 배경이었다. 탕평은 사색당파에서 인사를 고루 기용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다. 당쟁의 총구인 언관의 횡포를 막아야 했다. 그리하여 영조는 낭청권 등을 혁파했지만, 말년에 혼미해진 영조는 노론의 등쌀에 밀려 부활시켰다. 최종적으로 혁파한 이가 정조다. 정조 8년(1784)년 청요직에서 노론의 입으로 잔뼈가 굵은 김하재 옥사가 발생했다. ‘사도세자가 죄인이므로 정조도 죄인인다’, ‘정조가 사림을 주살하려 한다’ 등의 흉언을 담은 쪽지를 돌린 게 문제였다. 정조는 조정 신료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하재 한 사람만 처형하고 증거물인 쪽지는 불에 태우도록 했다. 쪽지가 공개될 경우 대규모 당쟁과 살상극이 재연될 게 분명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정조는 결단한다. 판중추부사 채제공이 나섰다. “전랑에 대한 옛 제도를 다시 설치한 뒤에는 단지 다투는 단서가 나날이 심해지고 사의(私意)가 날로 자라는 것만 볼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비로소 조종조에 누차 설치하였다가 누차 혁파한 것이 폐단의 근원을 환하게 살핀 데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서유린, 정창순, 심이지 등이 혁파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정조가 말했다.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까지 혁파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신중치 못하다는 이론에 어찌 구애되겠는가. 이조의 낭관에 대한 규정을 혁파하도록 하라.”(정조 13년 12월 8일) 언관의 타락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이용해 특정 정파의 총구 노릇을 하고, 나아가 스스로 권력화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왕에게 전권을 내맡기는 환국정치를 초래했고, 결국 언권 자체가 혁파당하기에 이르렀다. 언관의 권력화가 자초한 것이다. 2020년 4·15총선 결과에 대해 대한민국의 주류가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가 하품할 소리다. 훈구세력은 여전히 강력한 언론(사간원, 족벌 매체)을 운용하고, 감찰과 탄핵기관(사헌부, 수사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과 유착해 있으며, 주류 학계(홍문관, 대학교수)의 지원을 받고 있다. 자본주의 최고권력인 재계와 한 몸이다. 공론은 훈구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총선은 시민이 더이상 주류 언론에 속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거대한 감염병 재난 속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이들은 기상천외한 왜곡과 거짓을 유포했지만, 시민은 외면했다. 호주의 싱크탱크인 로위 국제정책연구소가 운영하는 사이트 ‘디 인터프리터’(The Interpreter)는 최근 이런 글을 올렸다. “북한 주민들은 정권이 통제하는 선전(언론)의 노예가 되고 있지만, 한국은 언론의 위기에 처해 있다. … 가장 큰 언론사들은 언론의 자세를 망각한 게으름, 권위주의 시대부터 내려온 부패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족벌언론을 북한의 선전 매체와 나란히 세운 것이 이채롭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특파원 칼럼] 지난 100일 동안 아베 총리가 보여 준 것/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지난 100일 동안 아베 총리가 보여 준 것/김태균 도쿄 특파원

    정치 지도자가 역사적 인물이나 동화 속 캐릭터에 빗대 희화화되는 건 당사자 입장에서 대개 반길 만한 일이 아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주변 인물들이 요즘 비유의 풍년을 만났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줄곧 보여 온 무능과 무책임이 씨앗이다. 우선 18세기 대혁명 당시의 프랑스 국왕 루이16세. “당신은 루이16세인가라고 묻고 싶어진다. 총리도 주변의 관저관료도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정말로 벼랑 끝에 몰려 목을 매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대책을 세우고 있다니.”(경제 저널리스트 오기와라 히로코) 다음은 동화 속 주인공. “현실이 안 보이고 뭐가 옳은지 판단도 못 하게 된 것 아닌가. 지금 아베 총리는 벌거숭이 임금님 그 자체다. 정권의 위기관리를 해 온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멀리하고 측근 관저관료의 말밖에는 안 듣고 있다.”(정치 저널리스트 가쿠타니 고이치)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선긋기가 이뤄진다. 아베 총리가 루이16세여서 그 왕비가 자동으로 연결된 거라면 그나마 낫겠는데, 성향이나 행동이 250년 전 인물과 동류라는 인상이 남편 못지않다. 얼마전에는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를 농락했던 요승 라스푸틴이 100년 후 세상으로 소환됐다. 한때 아베 내각에서 각료를 지냈던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도지사는 “지혜가 작동하지 않는 총리관저의 라스푸틴(아베의 측근)이 아베 정권을 붕괴시킨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가 세상 목소리에 담을 쌓고 자기만의 궁성에서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극소수 측근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얘기로 종합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아베 총리가 진짜로 그런지 어떤지는 구중심처를 확인할 길이 없으니 모르겠지만, 태평양전쟁 패망 이후 최악의 위기라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보여 주는 모습만 보면 그저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늘 있는 냉소로만 치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실제로 지금 아베 정권의 코로나19 대응을 보면 국민의 생명 수호라는 절대적 가치를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승선자 무대책 방치 등 사태 초기의 잘못들은 준비부족쯤으로 애써 봐 넘긴다 해도 1월 16일 첫 감염자 발생 이후 100여일 동안 일관되게 보여 온 행태는 무능이나 실책 정도로 이해하기에는 납득 불가인 대목이 너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현 국면을 바라보는 아베 총리의 마음가짐이다. 8년 반이나 자신에게 나라를 맡겨 줬는데도 국민들에 대한 열정이나 책임의식 따위는 읽을 수가 없다. 가슴은 식었고 머리에선 정치공학만 돌아가니 진정성 있는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어쩌다 한번씩 하는 기자회견에서는 밑에서 써 준 원고로 프롬프터를 따라가기도 벅차다. 열은 펄펄 끓고 숨조차 쉴 수 없는데도 바이러스 검사 한번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세계 3위 경제대국의 국민들. 자신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선진 의료시스템이 정권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 지도자에 의해 어떻게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일본 국민들은 불행히도 하필 지금 경험하고 있다. 환자들이 몰려들어 야기될 의료체계 붕괴가 정권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자신의 (혹은 ‘라스푸틴’들의) 믿음에 집착하고 있는 그에게 고개 들어 다른 나라들을 마주할 것을 권하고 싶다. 시신도 고이 안치하지 못할 만큼 참담한 의료붕괴가 나타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정권 지지율이 역대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 사망자는 그들의 수십분의1도 안 되는데 30%대 지지율로 추락한 자신과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반추해 봐야 아베 총리도 일본도 난국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헤어날 수 있을 것이다. windsea@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우울, 술과 평생 싸운 ‘정복자 펠레’ 엔퀴스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우울, 술과 평생 싸운 ‘정복자 펠레’ 엔퀴스트

    스웨덴을 대표하는 작가 페르 올로프 엔퀴스트가 86세를 일기로 25일(이하 현지시간) 세상과 작별했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1989년 빌 어거스트 감독이 연출해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정복자 펠레’의 원작자이며 각본 작업에도 힘을 보탰다. 반세기 넘게 작가로 활약하며 희곡과 20편이 넘는 소설, 에세이 등을내놓아 고국은 물론 프랑스와 독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비관적인 세계관을 드러낸다는 비평을 들었지만 진실을 향한 탐구, 사실과 허구의 간극을 흐릿하게 다룬다는 말도 들었다. 1934년 스웨덴 최북단 요그빌레에서 태어난 고인은 종교 교리를 엄격히 따지는 집안에서 자라 반항심이 대단했다. 결국 가출해 고교를 몇 차례 월반한 뒤 웁살라 대학에 들어갔다. 열여덟 살 때부터 작가 스티그 다거르만을 존경해 그를 본받아 작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는데 2년 뒤 다거르만이 극단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는 2011년 AFP 통신 인터뷰를 통해 “난 평생에 걸쳐 작가가 되길 원했으며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대부분의 시간 살아남기도 쉽지 않았지만”이라고 털어놓았다. 스톡홀름의 커다란 아파트에서 인터뷰를 했던 기자는 서가에 꽂힌 엄청난 장서와 그가 혼잣말처럼 뇌까린 이야기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스웨덴어 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판본이 망라돼 있었다. 그는 웃으며 “완전 자아중심주의 서가”라며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 것으로 여겨 우울감에 빠져들면 난 서가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그래, (서가의 높이가) 7m는 족히 되겠네. 그럼 난 조금은 해낸 거야. 해서 죽을 수 있어’”라고 말했다. 육상 선수와 기자,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 좌파로 몰린 전력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높이뛰기 대표로 출전하려 했으나 기준기록을 통과하지 못해 좌절했다. 기자로 일하다 1972년 뮌헨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납치해 살해한 사건을 취재한 일로도 유명하다. 1960년대 기자 생활을 하면서부터 사회비평가로도 활약했다. 첫 소설 ‘수정 같은 눈동자‘(1961년)와 ‘찻길’(1963년)은 소설 형식에 대한 미학적 관심과 프랑스 신소설의 영향을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적 풍토가 변함에 발맞춰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주의 관점으로 옮겨갔고, 소설과 드라마에서 기록을 중시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런 반(半)학구적 기법이 ‘헤스‘(1966년)에서 두드러졌고, ‘군단’(1968년)에서 완성됐다는 평을 들었다. 군단은 2차 세계대전 말 발트해 연안 국가의 망명자들을 스웨덴으로 송환하는 문제를 다룬 것으로 이듬해 북유럽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8년에 쓴 소설 ‘악사들의 출발’은 일찍이 고향에서 일어난 조합 결속의 노력을 다룬 작품이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희곡 ‘트리바덴의 밤‘(1975년)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부부 관계를 예리하게 분석한 연극이다. 1999년에 발표한 ‘왕실 의사의 방문’은 스웨덴 최고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을 처음 안겨 국제적으로도 그의 명성을 날리게 했다. 덴마크의 미친 국왕 크리스티안 7세의 의사와 왕비 사이의 로맨스를 다뤘는데 왕비는 잉글랜드 국왕 조지 3세의 막내 여동생이었다. 2008년에 자전 소설 ‘다른 삶(A Different Life)’으로 두 번째 아우구스트상을 거머쥐었는데 이 책 제목은 현대 스웨덴 문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스트린드베리의 자전 소설 ‘삶(A Life)’를 오마주한 것이었다. 스웨덴의 문학평론가 페르 스벤손은 고인에 대해 “세상 어디에 있던지 처형자와 희생자, 배신자를 역사와 문학에서 찾아내 자신의 마을에 데려온 사람이었다. 그 결과는 대단했다”고 돌아봤다. 고인은 여러 해를 알코올 중독과 싸웠다. 두 차례 실패했고, 13년 동안 집필을 중단한 뒤에야 세 번째 시도 만에 술을 끊었다. 돌보미가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게 허락했는데 글을 쓰면서 “아직도 작가“란 사실을 깨닫고 기뻐한 일이 계기가 됐다. 그는 “작가가 되는 일의 가장 끔찍한 점은 쓰는 일이 아니라 안 쓰는 일”이란 말을 남겼다. 이제 펜을 놓고 영원한 안식을 누렸으면 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코로나19 의료진의 도우미 된 스웨덴 공주…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

    코로나19 의료진의 도우미 된 스웨덴 공주…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확산하는 상황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스웨덴 공주의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피플지 등 해외언론은 스웨덴의 소피아 공주(35)가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의료진을 돕기위한 도우미 업무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 소피아 공주는 스톡홀름에 위치한 간호전문대학 소피아햄메트 칼리지에서 3일 간의 속성 의료과정을 밟았다. 이후 소피아헴메트 병원에 투입돼 그가 수행하는 업무는 의료장비를 소독하고 주방 일, 청소 등을 하는 것이다. 곧 코로나19에 맞서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들을 돕는 비의료적인 일을 하는 셈. 스웨덴 왕실 측은 "우리가 처한 코로나19 펜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소피아 공주는 의료진들의 많은 업무 중 일부라도 덜어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언론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소피아 공주는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다른 직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피아 공주는 평범한 스웨덴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모델로 활동해왔다. 이후 스웨덴 국왕의 외아들이자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칼 필립(40)를 만나 교제해오다 지난 2015년 결혼해 '북유럽판 신데렐라'로도 불렸다.   한편 스웨덴은 코로나19로 유럽이 초토화되는 상황에서 독특한 대처방식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국민의 이동권을 제한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른바 ‘집단 면역‘(herd immunity)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 그러나 인구 100만 명당 코로나19 사망자가 북유럽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나자 최근에는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 실시간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17일 기준 스웨덴의 코로나19 총 확진자는 1만2540명이며 사망자는 1333명에 이른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역병과 정치에 염증난 조선 선비의 자가격리

    역병과 정치에 염증난 조선 선비의 자가격리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감염을 극복할 근본 해법은 아직 없다. 물리적 거리두기로 전염 속도를 줄이는 것이 유일하다. 300년 전 더 참혹한 역병 속에서 한 지식인은 반생의 노력으로 안전하고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치사율 30% 넘는 역병에 정중기가 택한 방역법 경북 영천시 임고면 선원동은 무릉도원으로 불릴 정도로 이상적인 영일 정씨들의 씨족마을이었다. 1719년 이 지상 낙원을 전염병 두창이 휩쓸었다. 두창은 천연두의 옛 이름으로 전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30%를 넘으며, 회복되더라도 피부가 얽어 곰보가 되는 무서운 역병이었다.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니 두창 여신을 ‘별성마마’라고 극존칭으로 대접하는 수밖에 없었다. 신라의 선덕왕도 앓았으니 역사가 오래됐고, 청나라 황제 강희제도 앓았다니 국제적인 역병이었다. 조선의 숙종도 감염돼 한때 혼수상태로 위중했다니 귀천도 가리지 않았다. 선원마을의 유지, 35세의 선비 정중기(1685~1757)는 이때의 두창으로 부친을 잃었고, 그 전해에 모친도 잃었다. 부모 봉양을 위해 과거시험도 거부했던 정중기는 절망에 빠졌다. 이제 선원동은 부모를 앗아간 상실의 땅이며, 언제 역병에 걸릴지 모르는 위험 지역이었다. 그래서 찾아낸 ‘피두지’가 지금의 삼매리, 매곡이었다. 이곳에 간소(艮巢)라는 서재를 짓고 틈틈이 머물며 공부했다. ‘간’이란 주역 팔괘 중 하나이며, ‘소’란 나무에 얼기설기 지은 둥지를 뜻한다. 소박한 초가였지만 철학적 의미를 지닌 만만찮은 집이었다. 43세에 과거에 응시해 장원급제, 수석으로 합격했다. 곧바로 등용돼 고향을 떠나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세속은 꽃길이 아니었다. 그는 워낙 출세와 성공 따위에 초연한 성품이었다. 기뻐해야 할 출발 길부터 “원래 얻고 잃음은 모두가 운명이기에/ 어느덧 마음속에 생각이 아득해지네” 하며 마땅찮아 했다. 당시 정계는 노론의 세상이었고, 그가 속한 영남 남인들은 소외된 재야 세력이었다. 나이 많고 꼿꼿한 신참 비주류 선비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계에서 버티려니 험한 자갈길에 아득할 수밖에 없었다. 46세에 관직을 사양하고 잠시 낙향했다. 이듬해 선원동을 비롯한 경상도 일대에 천연두가 더 심각하게 창궐해 정중기의 사촌과 친아우들이 목숨을 잃었다. 실의 속에서 다시 벼슬길로 떠났다가 결성현감을 끝으로 은퇴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56세 때 고향인 선원동을 아우 중보에게 넘겨주고 아예 매곡으로 이주하게 된다. 장자로서 말년에 고향을 떠나 오지로 가는 파격적인 모험을 감행했다. 친척은커녕 인적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 첩첩산골에 그만의 세계를 꾸준히 만들어 나갔다. 64세에 오록서당을 건립해 후학을 길러내고, 68세에 멋진 산수정을 지었다. 간소 자리에 살림집을 새로 짓다가 세상을 떴고, 아들 일찬이 완공한 집이 바로 지금의 매산고택이다. 참혹한 전염병과 지저분한 세속을 피하기 위한 정중기식 거리두기는 멀리 떠나서 새로운 낙원을 만드는 일이었다.●정중기와 후손이 120년 4대에 걸쳐 이룩한 매화골 매곡, 매화의 골짜기는 선원동으로 이어지는 선원천의 상류에 자리한다. 도가나 선가에서 상류란 미지의 근원을 뜻한다. 마치 시냇물에 흘러 내려온 복숭아 잎을 보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신선들의 도원을 발견했듯이. 영천의 주산인 보현산이 흘러 기룡산에 이르고 그 지맥이 매곡에 이른다. 정중기는 이곳을 겹겹이 싸인 산과 돌아 흐르는 시냇물 사이에 우묵하게 들어간 곳이라 했다. 풍수가들은 ‘매화낙지형’이라 하여 뒷산이 매화나무이며 그 가지가 늘어진 곳이 마을 자리라 한다. 둥글한 앞산 봉우리들은 매화를 향해 날아드는 나비 형상이다. 매화가지 끝에 간소를 짓고, 나중에 매산고택을 증축해 꽃을 피웠다. 앞산에 정중기는 산수정을, 후손들은 산천정을 지어 한 쌍의 나비를 완성했다. 후대에 다른 매화가지에 향양정을 지어 매화골을 완성하게 된다. 120년 4대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다. 정중기는 자신의 호를 매산으로 지을 정도로 매화를 사랑했다. 매화는 사군자 중 으뜸으로 강인한 기품과 고결한 향기를 상징한다. “매화는 은둔하고 낙향하는 선비를 위한 나무다. 도시보다는 시골의 나무이며, 젊은이보다는 명상의 맛을 아는 중년에 어울린다.” 마치 정중기에 맞춘 것 같은 이 비평은 그보다 350년 전 정도전이 쓴 글이다. 매곡이야말로 매화 마니아를 위해 준비해 둔 땅이었다. 그리고 그와 후손들은 매화 동산을 훌륭하게 가꾸었다. (실물 매화는 드물고 풍수적 상징이다.) 정중기가 태어나고 자란 선원마을에 조카 일룡이 건립한 연정고택이 있다. 연정고택은 4동의 독립건물이 모여 마당을 감싸는 ‘튼ㅁ자집’이다. 별당인 연정도 본채와 떨어져 있다. 또한 건물들은 나지막하게 땅에 붙어 있다. 전체적으로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다.반면 매산고택은 건물이 모두 하나로 이어진 ‘막힌ㅁ자집’이다. 높은 축대 위에 누마루 사랑채와 2층 안채를 세웠다. 전체적으로 수직적이며 폐쇄적이다. 사촌 간인 두 집은 8㎞ 남짓 거리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매산고택의 폐쇄성은 격리와 보호를 위함이고, 수직성은 펼쳐진 자연을 음미하기 위함이다. 정중기의 건축관과 자연관이 강하게 반영된 집이다. 균형 잡힌 형태와 날렵한 누각형 사랑채 등, 가장 아름다운 살림집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맞은편 절벽에 지은 산수정의 의미는 더욱 명확하다. “우뚝 솟은 청산은 천년의 빛이요/ 길게 달리는 벽간은 만리를 흐르는 소리다/ 자연의 물상을 관찰해 인과 지의 묘한 이치를 깨닫는다.” 산과 물이란 인(仁)과 지(智)의 상징이다. 논어에 “인자한 이는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즐긴다”고 했다. 3칸 정자는 절벽에 반쯤 걸려 뒷면에서 출입한다. 1층 집인 줄 알고 들어오면 툭 터진 산수의 경관이 펼쳐진다. 대청 양옆의 방 이름은 인수재와 지급재다. 산수정이란 인과 지의 집으로, 자연과 인문학이 하나가 된 철학적 정자다.●그때도 지금도 거리두기와 희망만이 치료제 1347~1350년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해 인구의 3분의1 정도가 죽었다. 페스트의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었다. 단지 온몸이 시커멓게 굳으며 죽는다고 흑사병이라는 이름만 붙였다. 믿었던 교회가 알려준 치료법이란 비둘기 피 바르기, 담배 피우기, 피 뽑기 등으로 흑사병마를 몰아내는 정도였다. 인문주의자 보카치오가 발견한 최상의 방법은 격리와 피신, 그리고 이상향의 희망이었다. 그의 소설 데카메론은 피렌체 교외 피에솔레의 고립된 별장에 남녀 10명이 피신해 10일 동안 풀어놓은 100개의 이야기다. 데카메론 에피소드 중에 이상적인 정원들이 종종 등장한다. 둘째 날 이야기 무대인 빌라 팔미에리의 레몬 정원을 지상 천국으로 묘사했다. 사방이 담으로 막히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그리고 향초와 약초가 있는 치유의 장소다. 생지옥 같은 도시를 탈출한 피난자들이 갈구하는 이상적인 빌라와 정원이었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천연두의 원인과 치료법을 몰랐다. 기껏 치료법이란 제사와 성생활을 금지해 별성마마를 공손히 모시는 수준이었다. 1721년 전국적인 천연두 감염 앞에서 국왕 영조는 “전염은 거센 불길 같아 치료할 방법이 없다. 예전의 처방이 전혀 없고 의원조차 어떤 증상인지 모른다”고 한탄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맑은 정신을 가진 정중기는 안전한 골짜기로 떠나는 것만이 근본적인 대책임을 알았다. 일시적 피난이 아니라, 아예 마을을 새로 만들고 정착해 후손들까지 보호하려 했다. 집안의 아우 정윤문 역시 역병을 피해 남쪽으로 잠시 대피하려 하자 이렇게 조언했다. “임시로 피하는 것보다 인근 길지를 찾아 한 마을을 만들고 굳건히 대대로 사는 것이 낫다.” 뚜렷한 봉우리가 없는 매곡 같은 지형은 재복이 머물지 않고 흘러나간다고 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겹겹이 싸여 외부로부터 보호받는 천혜의 격리지이다. 임진왜란 때 여기에 성곽을 쌓고 영천고을의 피란처로 운영한 적도 있었다. 정중기는 이러한 지리적 장점 때문에 매곡을 택했다. 풍수적 단점이란 다분히 심리적인 것이어서, 지속적인 건축과 조경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건축과 철학적 의미 부여를 통해 매화가지로 나비가 날아드는 치유의 낙원을 만들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던 암울한 시대에 가능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격리와 거리두기, 그리고 새로운 희망만이 백신이자 치료제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OPEC+, 970만 배럴 감산하기로…트럼프 “대단한 합의”

    OPEC+, 970만 배럴 감산하기로…트럼프 “대단한 합의”

    5~6월 두 달 간…유가전쟁 일단락 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가 12일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5월 1일부터 6월 말까지 두 달 동안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가스콘덴세이트 제외)를 감산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OPEC+는 지난 9일 화상회의에서 하루 100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멕시코의 반대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멕시코는 자국에 할당된 감산량인 하루 40만 배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10만 배럴만 감산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멕시코의 요구를 반대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12일 회의에서 결국 이를 수용하면서 합의가 타결됐다. 이날 합의된 감산량은 그간 OPEC+가 결정한 감산·증산량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지난 9일 발표된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감산 기준은 2018년 12월이며, 하루 250만 배럴씩을 감산해야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산유량을 각각 하루 850만 배럴로 줄여야 한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가 4월부터 산유량을 올린 터라 합의된 감산량인 하루 970만 배럴을 4월 기준으로 계산하면 하루 1200만~1300만 배럴 정도를 감산하는 효과다. 이란 석유장관은 이들 3개 산유국이 OPEC+의 감산량 이외에 하루 200만 배럴을 자발적으로 감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미국 에너지 일자리 수십만개 구해” 오는 6월 이후 감산 계획과 관련해 나이지리아 석유부는 성명을 통해 지난 9일 합의된 대로 7월부터 올해 말까지는 하루 800만 배럴, 내년 1월부터 2022년 4월까지는 하루 600만 배럴 감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합의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OPEC+가 크게 합의했다. 이 합의가 미국의 에너지 분야 일자리 수십만개를 구할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살만 사우디 국왕에게 감사하고 축하한다. 그들에게 방금 그렇게 말했다. 모두에게 대단한 합의다”라고 썼다. 이로써 지난달 6일 OPEC+ 회의에서 감산 합의가 결렬된 뒤 사우디의 증산 선언으로 촉발한 ‘유가 전쟁’도 일단락될 전망이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올해 디 오픈 안열린다, 그린재킷도 11월에나

    올해 디 오픈 안열린다, 그린재킷도 11월에나

    4월 마스터스, 11월로···4월 개최 안하는 건 86년 만에 처음5월 PGA챔피언십은 8월, 6월 US오픈은 9월로 각각 옮겨져LPGA 5대 메이저 대회도 3개 대회가 일정 조정코로나19가 4대 골프 메이저 대회에도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해마다 4월 둘째 주에 열리던 마스터스는 11월로 옮겨졌다.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은 아예 취소됐다. 마스터스 대회를 여는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미국골프협회(USGA), R&A(영국왕립골프협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유러피언투어 등은 7일 코로나19로 변경된 올해 대회 일정을 공동 발표했다. 먼저 9일부터 12일까지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릴 예정이던 마스터스는 11월 12일 같은 장소에서 개막하기로 했다. 마스터스 대회가 4월에 열리지 않는 것은 1회 대회가 1934년 3월 열린 이후 86년 만이다. 우승자가 그린재킷을 입는 모습을 11월에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1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디 오픈은 대회 자체가 취소됐다. 올해 로열 세인트조지스에서 열려던 149회 대회를 내년으로, 2021년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려던 150회 대회는 2022년으로 미뤄서 치른다. 디 오픈은 열리지 않는 것은 세계 2차 대전 막바지였던 1945년 이후 75년 만이다. 디 오픈은 1차 세계 대전 시기 등에도 열리지 않았다. 디 오픈을 주최하는 R&A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소식이 되겠지만 코로나 19 사티에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5월 PGA챔피언십은 8월 6~9일로, 6월 US오픈은 9월 17~20일로 개최 시기가 조정됐다. 미국과 유럽의 남자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은 예정대로 9월 25일부터 사흘간 펼쳐진다. LPGA 투어의 5대 메이저 대회에도 일부 변동이 생겼다. 원래 3월 말 계획됐던 ANA 인스피레이션은 9월 10~13일로 밀렸다. 6월 US여자오픈은 12월 10~13일로 옮겨졌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에비앙 챔피언십은 7월 23~26일에서 8월 6~9일로 조정됐다. 나머지 위민스 PGA챔피언십(6월 25~28일) 브리티시 여자 오픈(8월 20~23일) 일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현재 PGA 투어는 5월 21일 개막하는 찰스 슈와브 챌린지, LPGA 투어는 6월 19일 개막하는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으로 시즌을 재개할 예정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추이에 따라 변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나치에 맞선 ‘킹스 스피치’처럼… 코로나 맞선 ‘퀸스 스피치’

    나치에 맞선 ‘킹스 스피치’처럼… 코로나 맞선 ‘퀸스 스피치’

    “조지6세 2차대전 연설 연상” 찬사 자가 격리하던 존슨 총리는 입원“우린 이겨 낼 것입니다. 가족, 친구들과 다시 함께할 날이 올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관련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위로와 승리의 메시지를 전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 맞선 이날 연설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영화 ‘킹스 스피치’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아버지 조지 6세의 1939년 라디오 연설이 완벽하게 재연됐다고 평가했다. 팬데믹 사태에 맞서자는 여왕의 이번 연설이 나치의 침략을 앞두고 있던 국왕 조지 6세의 역사적인 연설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로, NYT는 “80여년 전 아버지처럼 여왕도 지금을 전시와 연결 지으며 극기심과 연대가 영국인들의 국민성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TV와 라디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개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연설은 앞서 윈저궁의 화이트 드로잉룸에서 사전 녹화됐다. 엘리자베스 2세는 연설에서 “국민보건서비스(NHS)와 간병인들,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고 말했다. 연설 화면에는 코로나19 최전선의 의료진과 이들을 응원하는 국민들의 모습도 함께 소개됐다. 여왕의 대국민 담화는 성탄 연례 메시지를 제외하면 68년 재임 기간 단 4차례에 불과했다. 1991년 걸프전 개시와 1997년 며느리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장례식 직전, 2002년 모친 왕대비 별세, 2012년 즉위 60주년 등에서의 연설이었다. 하지만 영국 내 사망자가 5000명에 육박한 현 상황은 과거 4차례 연설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 같은 상황 때문인지 여왕은 이번 연설이 2차 세계대전 초기였던 1940년 여동생과 함께했던 첫 방송을 떠올리게 한다고도 말했다. 여왕은 “당시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이것은 옳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연설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코로나19 감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날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았다. 실질적 행정수반까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 전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영국의 상징적 수반인 여왕이 국민 앞에 선 셈이었다. 이번 ‘퀸스 스피치’에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찬사를 보냈다. 보수당 출신인 윈스턴 처칠의 외손자 니컬러스 솜스 경은 트위터에 “정말 감동적이고, 국민들을 안심시켜 주는 연설이었다”고 썼고, 키어 스타머 노동당 신임 대표는 “여왕은 코로나19와 맞서 이기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대변했다”고 호평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80년만에 재연된 ‘킹스 스피치’...英여왕의 코로나 연설

    80년만에 재연된 ‘킹스 스피치’...英여왕의 코로나 연설

    대국민 담화서 위로와 승리 메시지 전해NYT, “80년전 나치 침략 맞선 조지6세 연설 보는듯”행정수반 존슨 총리, 코로나19 감염으로 병원행 “우린 이겨낼 것입니다. 가족, 친구들과 다시 함께할 날이 올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5일(현지시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관련 대국민 담화를 전하며 국민들에게 위로와 승리의 메시지를 전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 맞선 이날 연설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영화 ‘킹스 스피치‘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아버지 조지 6세의 1939년 라디오 연설이 완벽하게 재연됐다고 비유했다. 팬데믹 사태에 맞서자는 여왕의 이번 연설이 나치의 침략을 앞두고 있었던 국왕 조지 6세의 역사적인 연설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미로, NYT는 “80여년 전 아버지처럼 여왕도 지금을 전시와 연결 지으며 극기심과 연대가 영국인들의 국민성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TV와 라디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개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연설은 앞서 윈저궁의 화이트 드로잉룸에서 사전 녹화됐다. 엘리자베스 2세는 연설에서 “국민보건서비스(NHS)와 간병인들,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고 말했다. 연설 화면에는 코로나19 최전선의 의료진과 이들을 응원하는 국민들의 모습도 함께 소개됐다. 여왕의 대국민 담화는 성탄 연례 메시지를 제외하면 68년 재임 기간 단 4차례에 불과했다. 1997년 며느리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장례식 직전과 2001년 걸프전 개시, 2002년 모친 왕대비 별세, 2012년 즉위 60주년 등에서의 연설이었다. 하지만 영국 내 사망자가 5000명에 육박한 현 상황은 과거 4차례 연설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 같은 상황 때문인지 여왕은 이번 연설이 2차 세계대전 초기였던 1940년 여동생과 함께했던 첫 방송을 떠올리게 한다고도 말했다. 여왕은 “당시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이것은 옳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연설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코로나19 감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날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았다. 실질적 행정수반까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 전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영국의 상징적 수반인 여왕이 국민 앞에 선 셈이었다. 이번 ‘퀸스 스피치’에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찬사를 보냈다. 윈스턴 처칠의 외손자 니컬러스 솜스 경은 트위터에 “정말 감동적이고, 국민들을 안심시켜 주는 연설이었다”라고 썼고, 키어 스타머 노동당 신임 대표는 “여왕은 코로나19와 맞서 이기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대변했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靑 “아세안+3 특별화상정상회의 추진 중” 코로나 국제공조

    2일까지 총 21개국 정상과 전화,서한 외교 콜롬비아 대통령 “한국산 의료물품 구입, 챙겨봐달라” 청와대는 2일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국제 공조 강화를 위해 ‘아세안+3(한·중·일) 특별화상정상회의’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국과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한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지난 20일 특별화상정상회의에서 ‘코로나19라는 공동 위협에 대항해 연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문을 채택한 바 있다. G20에 이어 아세안+3 정상의 특별화상정상회의까지 이뤄지면, 로나19 대응을 위한 국제 연대 및 협력이 한층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G20 특별화상정상회의에서 의견이 모인 여러 사안에 대한 공감대가 더 폭넓게 형성될 것”이라며 “우리나라와 많은 교류를 하고 있는 아세안 국가와의 공감대 형성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화상회의 방식의 다자 정상외교는 물론 양자 정상외교도 확발히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를 시작으로, 이날 오전 이반 두케 마르케스 콜롬비아 대통령까지 총 14번의 정상통화를 했다. 이날 오후 예정된 또 다른 정상통화까지 포함하면 총 15차례의 코로나19 관련 상통화를 하는 셈이다. 윤 부대변인은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 기준 31일 동안 15차례, 평균 이틀에 한 번꼴로 정상통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전세계적인 연대가 중요하다는 점, 한국의 방역체계 경험 공유, 국내산 진단키트와 의료기기 지원 요청 등이 이어진 점이 정상통화가 빈번히 이뤄진 요인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정상통화 외에도 문 대통령은 최근 한 달 새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분냥 보라칫 라오스 대통령,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 알라산 와타라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으로부터 서한을 받았다. 윤 부대변인은 “한국이 보건 위기에 대처하는데 모델이 되고 있으며, 전염병 예방 및 통제 분야에서의 전문성 공유를 희망하고, 국 국민이 문 대통령의 리더십 아래 전염병을 이겨내고 시련을 극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내용의 서한”이라고 전했다. 정상통화와 서한까지 포함하면 문 대통령은 G20 특별화상정상회의를 제외하고 코로나19 대응 관련해 총 21개 국가 정상과 소통한 셈이다. 청와대는 정상통화를 타진해 오는 국가의 요청은 여건이 되는대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각국 정상과의 소통이 잦아지며 국내산 진단키트 등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도 늘어나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외교 경로로 진단키트 등 의료기기 수출이나 인도적 지원을 요청한 나라는 총 90개국이다. 민간 경로를 통한 요청까지 포함하면 총 121개 국가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두케 마르케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약 25분 간 전화통화에서 코로나19 대응 국제 공조 방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두케 대통령은 “올해가 한국전 참전 70주년이라는 점에서 양국 간 형제애를 더욱 실감한다”면서 “70년 전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참전해 싸운데 이어, 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코로나19의 대응 경험을 공유해 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두케 대통령은 “한국의 사기업을 통해 산소호흡기 등 의료물품을 구입하려고 하는데, 대통령이 관심을 갖 챙겨봐 달라”고 부탁했다. 문 대통령은 “콜롬비아는 한국전 당시 전투병을 파견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함께 싸웠던 우방국”이라며 “인도적 지원 요청과 별개로 구매의사를 밝힌 한국산 진단키트와 산소호흡기 등 의료물품은 형편이 허용되는 대로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스페인 공주, 코로나19로 사망…평생 독신이었던 ‘붉은 공주’

    스페인 공주, 코로나19로 사망…평생 독신이었던 ‘붉은 공주’

    스페인 펠리페 6세 국왕 사촌 누나인 마리아 테레사 부르봉 파르파 공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향년 86세. 30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주간지 파리마치 등 프랑스와 스페인 언론들에 따르면 올해 86세인 마리아 테레사 공주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프랑스 파리에서 투병하던 중 지난 26일 오후 숨을 거뒀다. 전 세계 왕실 인사 가운데 코로나19로 숨진 첫 사례다.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 사망 열흘 전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했다. 그를 돌보던 간호사가 그에게 코로나19를 전염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 한때 스페인 카를로스파의 후계자로서 스페인의 왕위 계승에 도전했던 부친 프랑수아 자비에르 드 브루봉 파르마 공작과 어머니 마들렌 드 부르봉 뷔셋 공작부인의 딸로, 현 펠리페 6세 국왕과는 먼 사촌지간이다.1933년 파리에서 태어난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 프랑스에서 줄곧 교육을 받아 파리 소르본대를 졸업했으며, 소르본대와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스 대학에서 두 개의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콤플루텐스 대학에서는 헌법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는 이슬람·아랍문화와 여권 신장에 관심이 컸고, 평소 자신을 기독교 좌파이자 자율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하고 사회문제에 대해 소신 발언을 자주 해 스페인 왕가에서 ‘붉은 공주’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한편 30일 스페인 보건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8만 5195명이라고 밝혔다. 전날보다 5085명 증가한 수치다. 사망자는 전날보다 812명 증가한 7340명으로 집계됐다. 스페인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위 미국, 2위 이탈리아에 이어 3위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伊 10만·스페인 중국 넘었지만 코로나19 확산세 “꺾였다”

    伊 10만·스페인 중국 넘었지만 코로나19 확산세 “꺾였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확산세는 수그러들고 있다. 스페인 역시 확산 속도가 떨어졌다. 이탈리아 보건당국은 30일 오후 6시(이하 현지시간) 기준 전국의 누적 확진자가 10만 1739명으로 전날보다 4050명, 4.1%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하루 확진자 수로는 지난 17일 이후 13일 만에 최저치다. 일일 확진자 증가율이 4%대로 내려온 것도 지난달 말 바이러스 확산세가 본격화한 이후 처음이다. 최근 며칠의 신규 확진자 수를 보면 26일 6203명, 27일 5909명, 28일 5974명, 29일 5217명 등이다. 누적 사망자는 812명, 7.5%가 늘어 1만 1591명으로 파악됐다. 전날 집계된 756명보다 조금 늘었다. 누적 확진자 대비 누적 사망자를 나타내는 치명률은 11.39%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누적 완치자는 1만 4620명으로 1590명 늘었고, 누적 완치자와 누적 사망자를 뺀 실질 확진자는 7만 5528명으로 집계됐다. 신규 확진 규모만 보면 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이는 모습이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방심을 경계하고 있다. 바이러스 분야 최고 전문 기관인 국립 고등보건연구소(ISS)의 실비오 브루사페로 소장은 현지 일간 라 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러스 확산 속도가 둔화하는 고무적인 징후가 있지만 섣불리 얘기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3일까지인 전 국민 이동제한령 시한을 다음달 둘째 주인 부활절 기간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주세페 콘테 총리도 이날 스페인 유력 일간 ‘엘파이스’ 인터뷰를 통해 이동제한령 완화를 논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면서 완화한다고 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비필수 사업장 중심으로 발효 중인 생산활동 중단은 지나치게 장기화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일일 확진자 곡선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완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탈리아 의사협동조합(FNOMCEO)에 따르면 이날 현재까지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한 의료진은 63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주말을 거치며 10명 넘게 늘었다. 의료진 확진자는 8538명으로 국가 전체의 8.4%에 이른다. 한편 스페인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확진자는 8만 5195명으로 하루 전보다 5085명 늘어 중국(8만 1470명)을 넘어섰다. 확진자 규모로는 스페인이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세 번째가 됐다. 매일 코로나19 확산현황에 대해 브리핑하던 페르난도 시몬 질병통제국장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시몬 국장의 뒤를 이어 브리핑에 나선 마리아 호세 질병통제국 대변인은 시몬 국장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열이 오르는 증상을 호소해 자택에서 격리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고 EFE통신이 전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하루 전보다 812명 증가한 7340명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약간 꺾인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 결과를 내놓았다. 시에라 대변인은 “이동제한령이 시행된 뒤 지난 15~25일의 평균 확진자 증가율이 20% 수준이었는데 25일 이후 12%로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신중하게 데이터에 접근해야 한다면서도 “중요한 조처들을 시행하면서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펠리페 6세 국왕과 먼 사촌인 마리아 테레사 드 부르봉 파르마(86) 공주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프랑스 파리에서 투병하던 중 지난 26일 오후 숨을 거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전 세계 왕실 인사 가운데 코로나19로 숨진 첫 사례다. 1933년 파리에서 태어난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 프랑스에서 줄곧 교육을 받아 파리 소르본대를 졸업했으며, 소르본대와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스 대학에서 두 개의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콤플루텐스 대학에서는 헌법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는 이슬람·아랍문화와 여권 신장에 관심이 많았고, 평소 자신을 기독교 좌파이자 자율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하고 사회문제에 대해 소신 발언을 자주 해 왕실에서 ‘붉은 공주’로 통했다. 유럽에서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모나코의 군주인 알베르 2세 대공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찰스 왕세자는 자가 격리에서 해제됐다고 BBC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日 국민 코미디언’ 시무라 겐, 코로나로 사망

    1974년부터 코미디 밴드·배우 등 활약 스페인 공주도 사망… 왕실 인사 최초 이달 중순 코로나19에 감염돼 치료를 받아오던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 시무라 겐이 지난 29일 발병 10여일 만에 사망했다. 70세. 일본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유명인사가 숨진 것은 처음이다. 최근 감염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수도 도쿄의 ‘도시봉쇄’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판국에 ‘국민 코미디언’으로 불려 온 원로 연예인까지 희생되자 일본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시무라는 지난 17일 갑자기 극심한 무기력증을 호소했으며 19일부터는 발열과 호흡장애가 나타났다. 20일 도쿄의 한 병원으로 이송된 뒤 중증폐렴 진단을 받았고 23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에크모(인공심폐장치) 부착 등 집중치료를 받아 왔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1950년 도쿄에서 태어난 시무라는 1974년부터 인기 코미디 밴드 ‘더 드리프터스’의 멤버로 활약했다. 이후 TV, 영화, 공연무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코미디언, 배우, 쇼프로 사회자 등으로 명성을 떨쳐 왔다. 2011년 TBS ‘비교하는 비교여행’을 진행하던 때에는 KBS ‘개그콘서트’의 ‘달인’ 코너팀을 방송에 초청하기도 했다. 몸개그에 심혈을 기울여 온 그가 김병만 등 달인 팀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 데 따른 것이었다. 다음달부터 방영되는 NHK 아침드라마 ‘옐’에 음악가 배역으로 캐스팅된 데 이어 올 연말 개봉 예정인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기네마의 가미사마’에서는 생애 첫 주연 역할을 따내기도 했다. 원래 올 7월 열릴 예정이었던 도쿄올림픽에서는 성화 주자로도 선정돼 있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매우 유감이며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고 시무라의 사망을 애도했다. 또 30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스페인 펠리페 6세 국왕과 먼 사촌지간인 마리아 테레사 드 부르봉 파르마 공주가 지난 26일 코로나19로 프랑스 파리에서 숨졌다. 86세. 유럽에서 영국 찰스 왕세자와 모나코 군주인 알베르 2세 대공이 확진 판정을 받은 바 있지만 사망자가 나온 건 전 세계 왕실 인사 가운데 처음이다.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 한때 스페인 왕위 계승에 도전했던 프랑수아 자비에르 드 브루봉 파르마 공작의 딸로 현 국왕인 펠리페 6세와는 먼 사촌지간이다. 그는 1933년 파리에서 태어나 이곳 소르본대를 졸업했고, 소르본대와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스 대학에서 모두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공주는 이슬람·아랍문화 및 여권 신장에 관심이 컸고, 콤플루텐스 대학에서 헌법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평소 자신을 기독교 좌파이자 자율적 사회주의자로 규정하고 사회문제와 관련해 소신 발언을 자주 해 스페인 왕가에서 ‘붉은 공주’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최대의 ‘스위트 스폿’ 면적 실현 ‘V550’

    최대의 ‘스위트 스폿’ 면적 실현 ‘V550’

    고반발 기술의 혁신을 주도하는 비욘드골프에서 새 드라이버 V550을 출시했다. 3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탄생된 V550 드라이버의 특징은 0.92의 극초고반발력을 보유하면서도 세계 최대의 헤드 체적인 550㏄를 동시에 실현해 아마추어가 낼 수 있는 비거리의 한계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킨 것이다. 최대의 헤드 체적에서 비롯된 최대의 페이스 면적으로 관용성을 최대로 높였다. 낮고 깊은 후방 중심 설계도 골프클럽 역사상 최대의 ‘스위트 스폿’ 면적을 실현시켜 아마추어 골퍼의 약점인 슬라이스와 훅의 발생을 대폭 줄였다. 반발계수와 헤드 부피 경쟁이 과열되던 2000년대 초반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헤드의 반발계수를 0.83 이상, 헤드의 체적도 460㏄를 넘지 못하게 제한을 걸었지만 이 규정은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비욘드 V550은 크기가 커질수록 페이스의 두께가 얇아져 일찍 깨지고 마는 고반발 드라이버의 내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적용한 특수 열처리 기술과 첨단 소재를 활용, 0.92의 극초고반발과 550㏄라는 세계 최대의 헤드 체적을 동시에 실현해 냈다. 최대의 체적과 반발계수를 동시에 구현한 드라이버는 비욘드 V550이 처음이다.
  • 세계 최고령 남성 웨이턴, 112세까지 생일날 있었던 일들

    세계 최고령 남성 웨이턴, 112세까지 생일날 있었던 일들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남성 밥 웨이턴이 29일(현지시간) 112세 생일을 맞았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성대한 파티는 생략한다. 대신 영국 BBC는 햄프셔 알턴에 있는 그의 집에서 혼자 지내는 웨이턴이 태어나 지금까지 생일 날 일어났던 일들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엄청 쓸데없는, 자잘한 지식과 정보들이니 바쁜 분들은 이쯤에서 그만 보시라. 햄프셔 알턴은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이 평생 집필에 몰두한 곳이기도 하다. 먼저 112세 나이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인터 밀란, 잔다르크가 시복(諡福, beatification)된 것과 같은 나이다. 그가 첫 울음을 세상에 토해낸 1908년 3월 29일은 허버트 애스퀴스가 영국 총리에 취임하기 일주일 전이었으며 에드워드 7세 국왕의 살날이 2년이나 남은 때였다. 그 해 로버트란 이름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15번째로 흔한 사내아이 이름이었다. 윌리엄, 존, 조지가 가장 사랑받는 이름이었는데 다만 로버트는 프랭크와 해롤드보다 윗 순위였다. 딸 이름은 매리, 엘리자베스, 플로렌스, 애니 등이 인기 있었다. 놀라운 우연의 일치로 영국 최고령 여성이자 웨이턴과 나란히 영국 최고령인 조앤 호콰드 할머니도 이날 생일이다. 그녀의 이름 조앤은 당시 161위였다. 영국의 남극 탐험가 로버트 팰콘 스코트 선장은 그의 네 번째 생일에 세상을 떴다. 스코트는 그날 일기장에 “창피한 것 같지만 더 이상 일지를 적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적고는 텐트 안에서 굶어 숨졌다. 시신은 8개월 뒤 발견됐는데 다음 식량 보급 지점에서 18㎞ 떨어져 있었다. 그의 열 번째 생일에는 영국군이 오스만제국 군대와 지금의 요르단 암만에서 첫 전투를 벌였다. 악천후까지 겹쳐 영국군은 며칠 뒤 참담하게 패퇴하고 말았다. 열아홉 살이 된 1927년 생일 날 그는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해변에서 육상 및 해상 최고 속도를 경신한 특수제작 차량 선빔 1000hp 소식에 관심을 가졌을지 모른다. 헨리 세그레이브 경(卿)이 두 차례나 차량을 몰아 각각 200.668mph(시간당 마일)과 207.015mph를 기록해 평균 203.792mph 공인을 받았다. 이 차는 90년 뒤, 그가 109세가 되던 해 복원됐는데 지금도 햄프셔 뷸리우의 국립자동차박물관에 전시돼 있다.서른다섯 번째 그의 생일에 존 메이저 전 총리가 태어났다. 마흔셋이 된 1951년에는 게트루드 로런스와 율 브리너가 호흡을 맞춘 연극 ‘왕과 나’가 처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진 날이었다. 로런스는 간암과 복강암에 걸린 줄 몰라 무대 뒤에서 마티니 한잔 홀짝거리다 쓰러져 입원했고, 15개월 뒤 숨을 거뒀다. 1955년 마흔일곱 번째 생일에는 프랑스 철도회사 SNCF 열차가 트랙을 망칠 정도의 시속 331㎞로 세계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61세이던 1969년 생일에는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에서 제각각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모두 끝났다. 네 나라 모두 자기네 우승자가 진정한 우승자라고 우기는 바람에 얼마 뒤 다시 대회를 열어 우승자를 가렸다. 1974년 66세 생일에는 중국 시안에서 진시황 병마용이 농민들 눈에 띄었다. 20세기를 통틀어 최고의 인류학적 발굴로 나중에 평가 받았다. 72번째인 1980년 생일에는 134회 그랜드 내셔널 경마대회에서 네 마리만 완주해 미국인이 소유한 말 벤 네비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말이 우승을 차지할 확률은 40분의 1로 낮았기 때문에 돈을 건 사람들은 대박을 터뜨렸다. 벤 네비스는 1995년에야 죽었고 2009년 경마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82세가 된 1990년 생일에는 사람들이 일어난 줄도 잘 모르는 ‘하이폰 전쟁’이란 것이 터졌다. 전쟁처럼 치열했다는 얘기다. 공산 정권이 붕괴한 뒤 슬로바키아 정치인들은 ‘체코-슬로박 공화국’으로 하이폰 하나만 넣자고 요구했는데 체코 정치인들이 한사코 거부해 옥신각신했고, 결국 두 나라는 1993년 1월 1일 아예 분리를 선포했다. 그가 101세가 된 2009년 생일은 자키 스미스 내무부 장관에게 최악의 날이었다. 여성 장관이 의회 예산으로 포르노 유료영화를 구입해 시청한 것이 언론 보도로 들통 났다. 결국 그녀는 사퇴했고, 이듬해 의원 직도 버렸다. 2011년 그녀는 포르노 영화에 대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포른 어게인’에 초빙됐다. 106번째 생일이었던 2014년에는 북런던에서 17년을 함께 한 피터 맥그레이스와 데이비드 카브레사가 잉글랜드와 웨일즈 최초로 0시 1분 동성 결혼식이 열렸다. 그리고 대망의 112번째 29일이다. 코로나19 탓에 떠들썩한 축하 파티도 건너뛰지만 다섯 군주, 22명의 총리(임기로는 27번), 미국 대통령 21명과 함께 살아온 그에게 손뼉이라도 마주쳐 줘야 할 것 같다. 그는 세 차례 런던올림픽, 두 차례 세계대전, 악명높은 스페인 독감, 콜레라, 천연두, 코로나19를 모두 겪었다. 새삼스레 장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그의 명답이 떠오른다. “죽는 일을 피하는 것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펠리페 스페인 국왕, 부친에 주어지던 年 배당금 2억 7000만원 박탈

    펠리페 스페인 국왕, 부친에 주어지던 年 배당금 2억 7000만원 박탈

    펠리페 6세(52) 스페인 국왕이 지난 2014년 스캔들에 연루돼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안 카를로스(83) 전 국왕에게 주어지던 왕실 배당금 혜택을 박탈했다. 왕실은 15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발표해 매년 전 국왕에게 지급하던 19만 4000 유로(약 2억 6340만원)의 왕실 배당금을 더 이상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전 국왕이 고령에도 여전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한다는 지적이 잇따른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39년 왕좌에 앉았던 카를로스 전 국왕은 상당한 재산을 은닉한 혐의로 스위스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현지 언론들은 전 국왕이 사우디아라비아의 페이퍼 컴퍼니 계좌를 통해 1억 달러의 뇌물을 챙긴 것으로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물론 왕실은 이런 의혹 제기에 가타부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스페인 왕실 사정에 정통한 이들은 아들이 국왕이 아버지의 불미스러운 일들에 얽히고 싶지 않아 ‘거리 두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은 스페인 내전을 승리한 뒤 파시스트 독재자로 36년을 군림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1975년 숨지자 이틀 만에 왕위에 올랐다. 프랑코 지지자들은 그가 절대군주제를 지켜줄 것을 바랐지만 입헌 군주제를 받아들여 의회에 권력과 권한을 상당 부분 넘겨주고 자신은 상징적 존재로 물러섰다. 카탈루냐와 바스크 같은 독립하려는 민족들을 다독여 진정시켰고, 1981년 군부 쿠데타를 사전에 와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몇년 전까지 국민들에게 많은 신망을 얻었으나 2012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코끼리 사냥을 즐기는 등 사치를 누렸고, 막내딸 크리스티나 공주와 남편 이나키 우르단가린 부부의 부패 혐의에 연루돼 존경을 잃어 결국 선위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플라스틱만 먹고 생존하는 애벌레…쓰레기 문제 해결 할까

    플라스틱만 먹고 생존하는 애벌레…쓰레기 문제 해결 할까

    플라스틱을 먹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한 애벌레의 비결을 생물학자들이 밝혀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브랜던대(BU) 연구진이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에틸렌(PE)을 먹어서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애벌레인 왁스웜을 대상으로 1년 이상 자세히 연구해 이들 유충은 장내세균 덕분에 플라스틱만 먹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실험결과 꿀벌부채명나방(학명 Galleria mellonella)의 애벌레인 왁스웜 60마리는 일주일 안에 넓이 30㎠의 비닐을 먹어치울 수 있었다. 게다가 이들 벌레는 플라스틱만 먹어도 1년 넘게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진은 왁스웜의 원래 먹이인 밀랍을 이용해 이 벌레의 장내세균 1종을 분리해내는 데도 성공했다.연구를 이끈 생물학부 조교수 크리스토프 르무안 박사는 “왁스웜의 장내세균이 플라스틱 분해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항생제를 투여해 장내세균을 줄이자 플라스틱 분해 능력은 현저히 줄었다”면서 “따라서 이들 세균은 숙주인 왁스웜과의 사이에서 플라스틱 분해 속도를 높이는 어떤 시너지 효과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왁스웜에게 100% PE만을 먹게 했을 때 밀랍만을 먹이거나 굶겼을 때보다 해당 장내세균이 훨씬 더 많이 증식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이들 미생물이 플라스틱에서 번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이런 이유로 연구진은 이들 박테리아의 식이성에 대해 ‘플라스틱식성’(plastivore)이라고 부른다. 또 연구진은 이들 미생물에 의해 플라스틱이 분해하면서 그 부산물로 알코올의 일종인 글리콜이 생성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다만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전 세계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어 이들 벌레만을 이용해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대해 연구에 참여한 브라이언 카르손 박사(생물학부 부교수)는 “우리가 왁스웜의 소화기관에서 장내세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이런 미생물을 번성하게 하는 데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면 이런 정보는 우리 환경에서 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을 없애기 위한 더 나은 도구를 설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영국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최신호(3월 4일자)에 실렸다. 사진=브랜던대 제공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서열 높은 삼촌까지 숙청 작업… 빈살만의 왕위 계승 굳히기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살만이 자신의 왕위 계승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왕족 3명을 체포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왕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현지시간) 가디언, BBC에 따르면 전날 왕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왕의 동생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 조카 무함마드 빈 나예프와 그의 동생 나와프 빈 나예프로, 무함마드 왕세자에겐 삼촌과 사촌 형제들이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이들이 체포된 혐의는 반역 모의라고 보도했다. 체포된 3명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왕위 계승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인사들이다. 특히 무함마드 빈 나예프는 무함마드 왕세자보다 왕위 계승 서열에서 우위에 있었다. 2015년 집권한 현 국왕은 왕위 계승 서열을 재차 바꿔 2017년엔 형제 계승 원칙을 깨고 자신의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책봉된 2017년에 왕실 유력 인사 수십명을 한꺼번에 비리 혐의로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 연금했다가, 재산 헌납과 충성 서약을 받고 풀어줬다. ‘궁중 쿠데타’로 불리는 당시 사건 이후 많은 유력인사가 힘을 잃고 사실상 숙청됐다. 쿠데타에 앞서 계승 서열 1위와 내무장관직에서 물러났음에도 이 사건 이후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였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가 대표적이다. 그는 왕위에 욕심이 없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밝혔지만 이번에 또 체포됐다. 체포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아버지에게 왕위 계승을 촉구하는 신호라는 분석이 있다. 살만 왕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왕세자가 삼촌과 사촌 형제들의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수를 쳤다는 주장도 있다. 왕세자는 2018년 쿠데타를 집요하게 취재한 자말 카슈끄지 기자 살해를 지시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으며, 관련 정황을 미 중앙정보국(CIA)이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왕세자의 잇따른 폭군적 행동으로 세자 자격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 영국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아흐메드가 왕위 계승자 자격이 있다는 주장이 일자 왕세자는 삼촌을 강제 귀국시켜 감시해 왔다. 살만 왕은 아들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그에게 대규모 국가건설 사업과 이슬람의 구시대적 성차별 제도를 없애는 등의 개혁 작업을 맡기며 힘을 실어 주려 노력해 왔다. 특히 가디언에 따르면 전날 왕세자가 발부한 체포 영장에 직접 서명한 것도 살만 왕이다. 사우디 궁내 음모에 정통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무함마드의 왕위 계승이 임박했다”면서 “이번 숙청은 이에 따른 이견을 제거하기 위한 체계적인 절차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금요칼럼] ‘예송’에서 배운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 교수

    [금요칼럼] ‘예송’에서 배운다/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 교수

    1652년(효종3) 가을, 윤휴는 서울의 백호정에 살았다. 그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인기가 높았다. 민정중은 그를 흠모해 아예 옆집으로 이사했고, 그들의 사귐은 날로 깊어졌다. 서로에게 거는 기대도 그만큼 커 갔다. 민정중은 서인을 대표하는 명문가의 자제로 효종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소북의 후예인 윤휴의 등용을 거듭 주장했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정중은 윤휴를 조정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윤휴의 명망은 더욱 높아졌다(민정중, ‘노봉집’, 제4권). 사람들은 두 사람의 사귐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러나 얼마 후 문제가 생겼다. 1659년(효종 10) 국왕이 붕어하자 조정에서는 ‘예송’(제1차)이 발생했다. 논쟁의 초점은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 조씨가 얼마나 오랫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거였다.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는 예학을 중시했기 때문에 각 당파의 사활이 걸린 중대사안이었다. 송시열이 이끄는 서인은 효종이 인조의 둘째 아들이므로 1년이 옳다고 했다. 반면에 남인은 효종은 국왕이라 적장자에 해당한다며 3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 임금 현종은 서인 편을 들었다. 이 사건은 거센 후폭풍을 동반했다. 예송에서 패배한 남인은 실각했다. 승자인 서인이 조정을 장악하게 됐는데, 윤휴와 민정중의 관계도 위기에 빠졌다. 민정중은 윤휴가 예송에서 남인 편을 들었다며 거듭 비판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윤휴의 처지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서인은 윤휴가 평소의 태도를 버리고 남인의 주장을 따랐다고 비판했다. 설상가상으로 남인들 역시 윤휴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윤휴가 남인의 당론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윤휴는 서인과 남인 양쪽으로부터 한꺼번에 비난을 받은 셈이었다. 예송 사건을 겪으며, 윤휴는 많은 친구를 잃었다. 상당수가 그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한때의 벗들은 제각각의 논리를 앞세우며 윤휴에게 편들기를 요구했다. 뜻대로 되지 않자 그들은 관계를 끊었다. 끝까지 곁에 남은 친구는 극소수 남인들이었다. 정치적 풍파와는 무관하게 윤휴는 친구들과의 우정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다. 이러한 그의 소망은 민정중에게 보낸 편지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친구는 인륜의 하나입니다. 그런 때문에 공자는 원양의 일도 꾹 참고 이해했습니다. 맹자도 광장과 우정을 끝끝내 지켰습니다. 옛날 성현들은 그처럼 후덕하고 도량이 넓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서로 주장이 어긋났다고 하여, 우리가 평생 가꿔 온 우정을 일시에 끊어버리면 그것은 지극한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백호전서’, 제17권) 이 편지에 나오는 원양은 공자의 친구였다. 그는 공자와는 정반대로 예법을 철저히 무시하는 이였다. 아마 도가(道家)풍의 선비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원양은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도 애도하기는커녕 나무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공자는 이런 원양을 꾸짖었다. “어릴 적에는 공손하지 못하더니, 장성해서도 쓸 만한 언행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죽지 않으니 이 사람은 도적이다!” 이렇게 심한 말로 비판했으나 절교는 하지 않았다. 또 윗글에 나오는 광장은 맹자의 제자였다. 그는 부친과 심하게 다투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난했다. 불효자라는 욕설이 쏟아졌는데, 맹자는 제자를 변호했다. 광장은 자신의 아버지가 선행에 관심을 가지도록 ‘책선(責善)’하였다고 주장했다. 애타는 윤휴의 바람과는 달리 민정중과의 우정은 회복되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그들의 적대감은 갈수록 커져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쟁은 인간 세상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악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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