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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권력에 취한 정의/박상숙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권력에 취한 정의/박상숙 국제부장

    스페인을 38년간 통치했던 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이 ‘망명객’이 됐다. 올해 82세. 수구초심(首丘初心)이 더욱 간절해질 나이에 등 떠밀려 타향살이에 나선 건 부패 스캔들 때문이다. 6년 전 아들 필리페 6세에게 왕위를 물려준 그는 재임 시절인 2011년 고속철 사업 유치에 관여해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언론의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고, 스페인은 물론 비자금 은닉처인 스위스에서도 관련 수사가 진행되자 궁지에 몰려 보따리를 싼 것이다. 말년은 험하지만 그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으로 꼽혔던 위인이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상징적 존재지만 대단한 결기로 스페인의 민주화 시대를 연 공로자다. 또한 카탈루냐 분리 독립 움직임을 달래 국민통합을 이뤄낸 업적도 대단하다. 왕으로서의 삶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공화국이 들어서며 쫓겨난 왕가의 후손인 그는 출생 때부터 타국을 떠돌았다. 자신의 사후 군주제를 부활하겠다는 독재자 프랑코의 엉뚱한 결정에 느닷없이 왕위 계승자가 돼 열 살 때 처음 고국 땅을 밟았고, 1975년 대관식을 치렀지만 ‘프랑코의 꼭두각시’라는 냉대를 오랫동안 견뎌야 했다. 그가 신임을 얻게 된 계기는 1981년 군부 쿠데타를 막으면서다. 당시 반란군 일당이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국회 의사당을 점거하고 의원들을 인질로 삼은 일촉즉발의 순간 카를로스 국왕은 군복을 입은 결연한 모습으로 TV에 나왔다. 결사항전을 다짐하며 반란군을 향해 “나를 총살하라”고 외친 그에게 감읍한 100만 시민이 의사당 앞에 몰려나와 쿠데타 세력을 몰아낸 건 유명한 일화다. 그는 첫 민선 총리 아돌포 수아레스를 통해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졌고, 이후에도 역대 총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민주주의 수호자로, 도덕적 군주로 칭송받았던 그는 이후 스스로를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초심을 잃고 권력을 남용해 뒷돈을 챙기는 한편 내연녀까지 두면서 추문을 달고 살았다. 2008년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 온갖 호화사치를 부려 공분을 사기도 했다. 영웅에서 재앙이 된 그에게 분노한 국민의 입에선 이제 군주제 폐지가 오르내린다. 수도 마드리드에선 국왕의 이름을 딴 대학 명칭을 바꾸자는 청원이 시작됐고, 지방도시에 있는 동상이 철거되고 거리에서는 그의 흔적이 지워질 태세다. “그는 더이상 우리 사회의 도덕적, 민주적 가치를 대표하지 못한다.” 독재 체제에 종지부를 찍은 ‘투사’에게 치욕스런 국민의 심판이 떨어진 것이다. 카를로스 국왕의 반전 인생 행로에 우리나라 민주화 ‘일부’ 세력의 현재가 오버랩된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동지들을 대신해서 정치권에 진입한 과거 운동권 인사들은 지금 금융사기, 뇌물·향응, 권력형 성범죄 등의 혐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도덕성과 정의감으로 무장했던 자신들의 과거는 어디에 내다 버렸을까. 예전에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수는 괜찮다는 ‘도덕적 면허권’은 뻔뻔한 자기 정당화로 이어지고, 자신을 돌아보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탈색시켰다. “부끄러움 없는 도덕성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성은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기성찰과 자기비판의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부정에 저항하고 억압에서 해방되려는 운동으로 시작한 권력이 부패하는 것도 결국 자기만의 작은 정의에 취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10년 전에 나온 역사학자 임지현의 책에서 발견한 대목이다. 정의로운 사람조차 권력을 잡으면 필연적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는가 보다. okaao@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딕 양식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딕 양식

    중세 유럽을 ‘암흑시대’라 부르던 시기가 한때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역사학자를 찾아볼 수 없다. 중세를 암흑시대로 부를 수 없게 하는 강력한 증거 중 하나가 고딕 성당이다. 고딕 건축 양식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12세기 이후 급격하게 널리 수용됐다. 12, 13세기를 거치면서 유럽 전역에 걸쳐 로마네스크 양식은 고딕 양식으로 대치됐다. 프랑스 수호성인의 성소이자 역대 프랑스 국왕의 묘지로 유명한 생드니 수도원 교회는 1144년에 전혀 새로운 고딕 양식 교회를 짓기 위해 헐렸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의 고딕 성당 건축 붐을 중세가 우리 시대만큼이나 실험적이고 역동적이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해석한다. 마치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헐고 그 자리에 철근과 유리를 활용한 초현대식 건축물을 세우는 것에 견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파격은 오늘날에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엄청난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12세기에는 그와 같은 일이 실제로 발생했고 또 수월하게 진행됐다. 고딕 성당은 중세의 지적 정수를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수많은 상징을 간직한 성당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돌에 새겨 놓은 일종의 중세 지식 백과사전이었다. 성당의 가장 훌륭한 장식은 외부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고딕 성당 내부는 전혀 칙칙하거나 어둡지 않았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빛을 차단하기보다는 오히려 화려하게 만들고, 태양광을 포착해 풍요롭고 따뜻한 색감으로 채웠다. 자연 상태에서는 최고의 순간에서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고딕 성당은 도시인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었다. 고딕 성당은 예외 없이 당시 성장을 거듭하던 도시에 자리 잡았다. 그것은 공동체 생활의 중심지이자 동시에 그 도시의 위대성을 표현한 것이었다. 많은 고딕 성당은 도시 간 경쟁의 산물이었다. 각 도시는 더 크고 높은 건물로 인근의 도시를 압도하려 했다. 현대 도시가 초고층 랜드마크 건축에 열을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고딕 성당들은 이 시대가 풍요를 구가한 시대임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작년 4월 가톨릭 문화유산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큰 피해를 봤다. 지난달에는 프랑스 북서부 낭트의 대성당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천년 세월을 버틴 문화유산들이 잿더미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한때 가장 위대했던 스페인 前국왕, ‘부패 스캔들’ 얼룩져 불명예 망명길

    한때 가장 위대했던 스페인 前국왕, ‘부패 스캔들’ 얼룩져 불명예 망명길

    한때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으로도 꼽혔던 스페인 전 국왕이 거액의 돈세탁 혐의에 휘말려 결국 고국을 떠나기로 했다. BBC 등은 후안 카를로스 1세(82) 상왕(上王)이 6년 전 왕위를 물려준 아들 펠리페 6세 국왕에게 스페인을 떠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실상 ‘불명예 망명길’에 오르게 된 카를로스 1세의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떠났다는 설이 외신을 통해 제기됐다. 카를로스 1세는 2011년 고속철 사업권 협상과 관련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자국 내 컨소시엄과의 막후 중재 역할을 한 뒤 사우디 압둘라 전 국왕으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 돈을 내연 관계인 독일인 여성 사업가 코리나 라르센을 통해 스위스 조세회피처에 은닉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위스의 한 매체는 카를로스 1세가 사우디로부터 받은 뇌물 규모가 1억 달러(약 1194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스위스 검찰은 지난해부터 이 사건을 수사 중이고 스페인 대법원도 지난 6월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결정했다.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그의 재임 시절을 떠올리면 부패와 추문으로 얼룩진 말년은 더욱 참담하다. 카를로스 1세는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사망하고 스페인에서 입헌군주제가 부활하면서 1975년 국왕에 즉위했다. 1981년 우익 세력의 군사 쿠데타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저지하고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움직임 속에서도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등 국민 통합과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2007년 여론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위기 와중이던 2012년 호화 코끼리 사냥을 떠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딸이 공금유용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등 각종 왕실 추문이 잇따르며 그는 2014년 6월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여기에 최근 터진 부패 스캔들이 결국 카를로스 1세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세탁된 자금이 아들 펠리페 6세에게 흘러간 것으로 드러나며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결국 펠리페 6세는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지 않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연 22만 8000달러의 연금도 취소해 버렸다. BBC는 “스페인의 민주화를 이루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듯했던 전직 국왕의 굴욕적인 말로”라고 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선택은 ‘사대’ 아닌 자강·선린우호

    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선택은 ‘사대’ 아닌 자강·선린우호

    한반도는 동북아의 세력교체기 때마다 선택을 요구받으며 격동에 휘말렸다. 17세기 초 명청 교체기 조선은 양대 호란으로 국토와 민생이 쑥대밭이 됐다. 19세기 후반엔 청과 일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조선을 삼키려 각축하는 전쟁이 조선 땅에서 벌어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조선은 나름 타개책 마련을 위해 고민했다.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사대’였다. ‘큰 나라를 더 열심히 섬기고 의지해야 한다.’ 자강을 위한 대책이나 교린(선린우호 관계)을 위한 노력은 없었다. 그런 조선에 열강은 군사기지, 병력, 전함, 군량, 무기는 물론 전쟁 가담까지 요구했다.요즘 한반도 안팎에선 그런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 중국 봉쇄를 추진해 온 미국은 7월 초 2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동원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위력 시위를 벌였다.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13일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을 ‘완전한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22일 국교 수교 이래 처음으로 미국 정부는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명령했고, 이에 맞서 중국도 청두 미국 영사관을 폐쇄했다. 두 나라의 거세지는 군사적 대치에 비례해 한국에 택일을 요구하는 ‘전통적 우방’ 미국의 압박도 커졌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7~9일 방한 때 한국의 적극적인 ‘반중’ 노력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실상 공개적으로 주문했다. 여기엔 주한미군 주둔비 ‘폭탄 증액’도 포함돼 있었다. 과거 명이 조선에 했던 것과 다름없지만, 명의 사신 황손무 감군(지금의 국방차관)의 품격은 달랐다. ●대책 없이 ‘반청’ 외치다 나라는 ‘쑥대밭’ 후금(후에 청)이 부상하던 17세기 초 조선 인조는 대책 없이 ‘무찌르자 오랑캐’만 외쳤다. 1627년 1월 중순 후금의 정예 3만여명이 압록강을 넘어왔다. 조선 조정은 불과 10여일 만인 1월 25일 강화도로 줄행랑을 쳤다. 그로부터 9년 뒤 조선 조정은 또 대책 없이 ‘반청’을 외쳤다. 1636년 2월 24일 한양에 온 용골대, 마부대 등 청의 사신을 서대문 밖 숙소에 사실상 감금했다. 청의 사신은 29일 말을 훔쳐 도망쳤다. 인조는 이튿날 유시문을 발표했다. “오랑캐와 모든 관계를 끊는다.” “8도 관찰사들은 죽기를 맹서하고 싸워 원수를 갚자.” 4월 11일 청의 홍타이지는 전쟁이냐 화친이냐 택일을 통첩하는 국서를 보냈다. 6월 17일 인조는 이런 내용의 답서를 보냈다.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말로를 볼 것이며 조선과 우호를 유지하는 도쿠가와의 태평성대를 보라.” 조선을 침략하면 도요토미처럼 망할 것이라는 대꾸였다. 9월 1일 명의 황손무가 황제의 칙서를 들고 한양에 왔다. 조선은 청을 배후 공격해 요동 진출을 막으라는 내용이었다. “(조선) 국왕은 더욱 충직하고 양순한 마음을 돈독히 하고 무략을 드날리어 함께 협력하여 큰 공을 세워 요해의 파도를 맑게 하여 훌륭한 포상이 내려지기를 기다리라.” 그러나 황손무가 살펴본 조선의 대비태세는 참담했다. 자칫 조선이 먼저 망해, 배후에서 청을 견제할 장치가 사라질까 걱정이 됐다. 그는 10월 24일 귀로에 이런 편지를 인조에게 전했다. “경학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이용(利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귀국의 학사와 대부들이 읽는 것이 무슨 책이며, 경제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다. 뜻도 모른 채 웅얼거리고 의관이나 갖추고 영화를 누리고 있으니….” “귀국의 인심과 군비를 볼 때 저 강한 도적들을 감당하기란 결단코 어렵다. 일시적인 감정에 이끌려 그들과의 화친을 끊지 마라.” 인조는 겁이 났다. 역관을 보내 청의 의중을 탐색했다. 용골대는 ‘왕자와 대신 그리고 척화론자를 압송하라’고 요구했다. 조선 조정은 다시 들끓었다. 항전의 결의를 보여 주자며 주화파 숙청을 주장했다. 인조는 11월 6일 이조판서 최명길을 파직했다. 12월 2일 청 태종 홍타이지의 12만 대군은 심양을 출발했다. 본대는 10일 압록강을 건넜다. 선발대는 그즈음 안주를 지나 개성으로 내달려 13일 오후 홍제원에 이르렀다. 강화도로 내빼려던 인조는 발길을 돌려 14일 새벽 남한산성으로 도피했다. ●19세기엔 日 무력에 굴복 ‘불평등 조약’ 맺어 19세기 동북아시아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함포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었다. 1839년 영국이 막무가내 도발한 아편전쟁에 중국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홍콩까지 내줘야 했다. 1850년대 일본은 미국의 무력에 굴복, 개항했다. 1860년대 조선은 미국과 프랑스 함대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1876년엔 일본의 무력에 굴복, 불평등 조약을 맺었다. 1879년 일본은 중국의 속국이던 류큐 왕국을 병합했다. 조선은 비로소 국제정세에 눈을 돌렸다. 1880년 김홍집을 대표로 2차 수신사를 일본에 보냈다. 김홍집은 주로 하여장 등 일본 주재 청국 외교관들로부터 정보와 판단을 구했다. 이들과 나눈 6차례의 필담을 정리하고 청국의 의견을 담은 것이 황준헌의 ‘조선책략’이었다. 조선의 최대위협은 러시아이며 ‘방러’를 위해선 ‘친중’, ‘결일’, ‘연미’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뼈대다. 당시 중국은 러시아와 충돌하고 있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밀리고, 흑룡강 동쪽과 두만강 입구까지 러시아에 내준 상태였다. 일본은 러시아에 사할린을 넘긴 터였다. 중국에 러시아는 최대위협이었다. 황준헌이 내놓은 대책, 즉 ‘친중, 결일, 연미’는 중국의 ‘반러전선’에 조선을 동원하려는 것이었다. 첫째는 중국을 더욱 힘써 섬기라는 것. “중국이 사랑하는 나라로는 조선만 한 나라가 없다. 중국은 조선을 은혜로써 품어 줄 뿐, 한 번도 그 토지와 인민을 탐낸 적이 없었다.” 일본과는 동맹 수준의 관계를 맺으라고 타일렀다. “그들은 대대로 맡은 바 일에 충실하였다. 조선과 일본은 수레의 바퀴와 축처럼 서로 의지해야 할 형세이니, 작은 거리낌을 없애고 큰 계획을 도모하라.” 미국과는 빨리 수교하라고 재촉했다. “(미국은) 예의로써 나라를 세우고 토지와 남의 인민을 탐내지 않고, …항상 약소한 자를 부조하고 공의를 유지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은 중국을 더욱더 열심히 섬기고, 일본 군대의 진주를 허용하고, 미국과 수교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조선책략’은 엉터리였다. 일본은 조선을 삼키려 불과 14년 뒤 청을 공격해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20여년 뒤 조선에 대한 일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조선책략은 ‘대러 봉쇄’의 일환이었으니, 조선의 생존은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조선 500년 변함 없이 표방한 외교정책은 사대교린이었다. 그러나 교린은 없이 ‘사대’에 ‘몰빵’했다.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친중’(親中)이 ‘친미’(親美)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서 ‘친’(親)이란 ‘아버지’(가친 家親)를 뜻한다. 북한과는 열전이고, 중국과 러시아와는 냉전이었으며, 일본은 원수였으니 교린할 대상도 없었다. 옛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은 ‘사대’의 틀 안에서 ‘교린’을 추진했다. 미국이 앞장서 탈냉전을 주도했으니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수교하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그러나 불과 30여년 만에 ‘사대’가 다시 ‘교린’을 뒤틀고 있다. ‘반중 봉쇄’ 압박이 그것이다. ●불과 30여년 만에 ‘사대’가 ‘교린’ 흔들어 중국과의 교역량은 전체의 25%이고 홍콩을 통한 간접무역까지 합치면 40%에 이른다. ‘반중’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국가 경제는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의 보수세력은 ‘숭미반중’에 막무가내다. 과거 나라를 파국으로 이끈 것은 ‘숭명반청’과 ‘숭청반외세’의 위정척사론자들이었다. 대한민국의 ‘사대’는 남북 군사적 대치 때문이다. 전시작전권까지 넘길 정도로 미국에 의지했다. 중국은 대북 영향력으로 한반도 정치에 개입하고, 일본은 군비 증강에 열중하고 있다. 군사적 대치를 끝내지 않고는 피하기 힘들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6월 3일 “대한민국은 이제 선택을 강요받는 나라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이례적으로 강하게 경고했다. “한국은 이미 동맹을 선택했다!” 7월 23일 국방연구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 손으로 이뤄야 한다. 반드시 이루겠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지금까지는 뭐했을까, 의문도 든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할리우드 황금기 마지막 생존자 ‘바람과 함께…‘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할리우드 황금기 마지막 생존자 ‘바람과 함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해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이자 할리우드 황금기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간) 10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오스카상 수상자 가운데 최고령 생존자였으며 할리우드 거대 제작사를 상대로도 반기를 들어 배우의 계약 조건을 더 낫게 만든 역사적 기여를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홍보 담당자인 리사 골드버그는 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조용히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드 하빌랜드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 시민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1950년대 초반 이후 파리에서 거주해 왔다. 드 하빌랜드는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드 하빌랜드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1935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눈에 띄어 그가 제작한 영화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4년 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드 하빌랜드는 비비언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와 대비되는 성격의 멜라니 역을 차분하게 소화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 영화 출연 배우 중에서도 마지막 생존자였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흑인 하녀 매미 역할을 한 해티 맥다니엘에게 수상을 양보했다.1935년 ‘캡틴 블러드’에서 에롤 플린과 환상의 호흡을 선보였고, 1938년 ‘로빈 후드의 모험’ 등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드 하빌랜드는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To Each His Own)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로 1946년과 1949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고인은 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비비언 리가 오스카를 수상한 블랑셰 두보아 출연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 말까지 영화에 계속 얼굴을 내밀어 1986년 ‘아나스타샤’(Anastasia: The Mystery of Anna)로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2008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 훈장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각각 받았다. 101회 생일을 몇 주 앞둔 2017년 국왕 탄신일 서작 및 서훈 목록에 이름을 올려 백작부인 칭호를 받았다.드 하빌랜드는 1943년 워너 브라더스가 계약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자신을 계속 묶어두려 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출연 제의를 거부한 기간을 계약 기간에서 빼버리는 방법으로 제작사들은 배우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당시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은 어떤 제작사도 배우의 동의 없이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며 드 하빌랜드의 손을 들어줬고, 이 판결은 ‘드 하빌랜드의 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드 하빌랜드의 여동생은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서스픽션’에 출연했으며 2013년 먼저 세상을 떠난 고(故) 조앤 폰테인이다. 둘은 자매가 모두 아카데미상을 받은 기록을 세웠지만 사이가 나빠 의절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릴 적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1942년 나란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동생이 수상하면서 더 벌어졌다. 특히 1946년 드 하빌랜드가 결혼한 마커스 굿리치에 대해 폰테인이 이러쿵저러쿵한 것이 화를 돋웠으며 자매는 1975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치료를 놓고도 아웅다웅했다. 물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말도 섞지 않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네덜란드 공주 표지모델로 쓴 잡지에 비난 쏟아진 이유

    네덜란드 공주 표지모델로 쓴 잡지에 비난 쏟아진 이유

    네덜란드 로열패밀리를 표지모델로 섭외한 아르헨티나의 한 잡지사가 쏟아지는 비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현지 잡지 '카라스'는 최근 최신호를 발간하면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네덜란드의 왕비 막시마와 장녀 아말리아(16)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을 표지에 올렸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네덜란드 왕비가 된 막시마는 프란치스코 교황, 리오넬 메시와 함께 아르헨티나 국민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3대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런 인물과 딸을 표지모델로 소개했는데 잡지에 비난이 쇄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사진 옆에 잡지가 단 제목이었다. 잡지 '카라스'는 사진 옆에 큼지막한 고딕체로 "막시마 왕비의 장녀가 자신 있게 자신의 '플러스 사이즈' 외모를 보여줬다"는 제목을 달았다. 평균 사이즈보다 더 큰 사이즈를 의미하는 '플러스 사이즈'라는 표현에는 특별히 강조하듯 따옴표를 달기도 했다. 표지가 공개되자 아르헨티나 네티즌들은 발끈했다. 특히 잔뜩 화가 난 건 여성들이었다. 한 여성 네티즌은 "여성의 신체사이즈를 잡지표지에 공개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반문하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여성 네티즌은 "사진을 보니 막시마 딸은 절대 플러스 사이즈까지는 아니다. 혹 플러스 사이즈라고 해도 그의 신체 사이즈가 중요한 사안일 수는 없다"고 했다. 잡지가 신체 사이즈를 강조한 건 외모를 이유로 한 집단 괴롭힘을 부추긴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하는 여성들도 많다. 아르헨티나 언론에 따르면 장녀 아말리아는 왕위계승 1순위 공주 신분이지만 외모 때문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겪은 아픔이 있다. 이번 표지사진과 제목을 보고 잡지를 끊기로 했다한 한 여성은 "제목이 악의적이고 차별적"이라면서 "결국은 괴롭힘을 부추기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잡지는 부끄러운 줄 알고 당장 막시마의 장녀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아나라는 이름의 또 다른 여성은 "잡지가 (여자아이의 신체 사이즈를 이용해) 빅사이즈 폭력을 자행했다"고 꼬집었다. 비난이 쇄도하고 있지만 잡지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한편 아르헨티나 출신 네덜란드 왕비 막시마는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동화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다. '평민' 출신인 막시마는 해외유학 중 파티에서 만난 지금의 네덜란드 국왕 빌럼 알렉산더르와 결혼해 왕비 자리에 올랐다. 사진=카라스 표지 캡쳐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전쟁 같은 결혼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전쟁 같은 결혼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에서 왕위를 동생에 물려준 윈저공과 심프슨 부인의 사랑을 세기의 로맨스라 하지만, 서강대 설립자로 초대 학장인 길로연과 이 대학 졸업생 조안 리의 결혼만큼 대단할까 싶다. 길로연은 가톨릭 신부로 본래 이름은 케네스 에드워드 킬로렌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귀화인’인 그에게 길로연(吉路連)이란 한국 이름을 지어 준 이는 국어학자 이희승이었다. 조안 리는 대학생 시절 그를 만났고, 둘은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대학 졸업 후 결혼하려 했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길로연은 사제의 길을 포기해야 했고, 조안 리는 부모의 반대가 극심했다. 교단의 압력으로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지난한 과정 끝에 길로연은 미국으로 추방됐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로마 교황청의 승인을 얻어 평신도로서 1968년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26살 차이를 극복하고 가정을 이룬 것이다. ‘전쟁 같은 결혼’이었다. 조안 리는 딸 둘을 낳은 후 귀국해 국제 홍보를 전문으로 하는 프로 비즈니스우먼으로 활약했다. 조안 리의 자기 고백록인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1994)은 19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조안 리의 고백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첫아이 출산을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자연분만으로 하겠다’고 결심하는 대목이다. 연구 결과를 검토해 본 결과 ‘인간 역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력에 의한 출산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은 그녀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 주신 축복을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감당해 보리라 작정했고 남편도 마지못해 동의한다. 그러나 출산이 임박해 진통이 심해지자 겁에 질린 남편은 의사를 부르러 달려간다. 홀로 남은 그녀는 진통 사이사이 정신이 가물거리는 상황에서 기도한다. “오, 하느님, 이보다 더한 고통을 주신다고 해도 달게 받겠나이다. 다만 제게 새 생명의 탄생을 낱낱이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우리 사랑의 결실을 제 손으로 받아 드는 벅찬 희열의 순간을 맛볼 수만 있게 하옵소서.” 진통 4시간 만에 딸이 태어났다. 의사와 간호사가 온 것은 출산 20분 전이었다. 산모도 태아도 모두 건강했다. “그 짜릿했던 감동은 지금도 내 세포 하나하나 속에 생생하게 살아남아 나를 흥분에 떨도록 만든다”고 조안 리는 술회한다. 생명 탄생의 ‘짜릿한 감동’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의무는 국가에 있는 것 아닐까.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광화문 앞 ‘의정부’ 터 사적 된다

    옛 육조거리(현재 광화문광장~세종대로)에 있던 관청 중 유일하게 흔적이 남아 있는 ‘의정부’의 터(의정부지)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된다. 서울시는 일제강점기부터 훼손돼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던 의정부터가 2013년 발굴조사를 시작한 이후 7년 만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20일 밝혔다. 서울시 발굴조사 결과 그동안 추정만 했던 의정부 주요 건물 3채의 위치와 규모를 실제 유구를 통해 확인했다. 의정부는 1400년(정종 2년)에 처음 설치된 이후 1907년 내각 신설로 폐지될 때까지 영의정·좌의정·우의정 등이 국왕을 보좌하며 국가 정사를 총괄하던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구였다. 조선시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나서면 바로 왼쪽에 의정부가 있었다. 현 광화문광장~세종대로는 의정부와 함께 양쪽에 이·호·예·병·형·공의 육조와 여러 관청이 자리해 육조거리라 불렸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시속 90만㎞로 우리 은하 이동하는 별, 원인 찾았다

    시속 90만㎞로 우리 은하 이동하는 별, 원인 찾았다

    별들은 모두 고유 방향으로 이동하지만, 그중에는 시속 몇만㎞에서 몇십만㎞에 달하는 고속으로 이동하는 것도 있다. 5년 전인 2015년 발견된 한 백색왜성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완전 새로운 유형의 초신성 폭발 때문에 고속으로 이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론이 제시됐다. 지구에서 용자리 방향으로 약 1430광년 거리에 있는 이 백색왜성은 질량이 태양의 약 40% 수준으로 우리 은하를 시속 90만여㎞(초속 250여㎞)의 고속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영국 워릭대의 보리스 겐지케 물리학과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진은 이른바 ‘독스’(Dox)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백색왜성이 부분적인 초신성 폭발을 일으켜 쌍성계에서 튕겨나와 고속으로 이동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 태양과 같은 항성이 적색거성을 거쳐 진화한 모습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백색왜성은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진 대기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독스의 대기에는 수소와 헬륨은 보이지 않고 산소(99%)가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네온과 마그네슘 그리고 실리콘이 섞인 대기라는 것이 이전 연구로 알려졌었다. 이에 따라 이번 연구에서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관측 자료를 기초로 독스의 대기 화학 조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앞서 나온 원소들 외에도 탄소와 나트륨 그리고 알루미늄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철과 니켈, 크롬 그리고 망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들 연구자는 독스가 원래 쌍성계를 이루고 있었고 Ia형 초신성으로 대표되는 핵연소형 초신성 폭발을 일으켰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 폭발은 부분적인 것(규소 연소 과정까지 진행되지 않았다)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핵연소에 따라 질량의 대부분이 급격하게 없어짐으로써 쌍성계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 독스가 고속으로 튕겨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겐지케 박사는 “이는 아마 지금까지 관측된 적이 없는 유형의 초신성 폭발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Ia형 초신성의 잔광은 니켈의 방사성 동위원소(니켈56)의 방사성 붕괴가 근원이지만, 독스가 일으킨 폭발에서는 니켈56이 소량밖에 생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 같은 폭발은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겐지케 박사는 “우리 은하에서 초신성 폭발로 살아남은 천체를 관측하는 것은 다른 은하에서 관측되는 수많은 초신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영국왕립천문학회 월간보고’(MNRAS) 최신호(7월 20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英 기상레이더에 잡힌 거대 그림자, 알고보니 개미떼?!(영상)

    英 기상레이더에 잡힌 거대 그림자, 알고보니 개미떼?!(영상)

    영국기상청의 기상레이더에 수상한 무언가가 포착됐다. 비 예보는 없었고 실제로 해당 지역은 비교적 맑았다. 기상레이더에 잡힌 수상한 그림자는 다름 아닌 개미 떼였다. 스코티시 선 등 현지 언론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17일, 런던과 켄트주, 서식스 주 등 일부 지역을 나타내는 기상레이더에 비구름이 몰려든 듯한 푸른 그림자가 등장했다. 해당 지역이 예보와 마찬가지로 덥고 건조하며 맑은 날씨인 것을 확인한 기상 전문가들은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고, 확인 결과 그림자의 정체가 비구름이 아닌 개미 떼라는 것을 알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 동남부 지역을 뒤덮은 개미 떼는 거대한 무리를 이룬 채 81㎞ 정도 띠를 이뤄 움직였고, 무리가 거대했던 탓에 기상레이더에는 비구름으로 인식돼 혼란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시간 현지 SNS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개미떼를 찍은 영상과 사진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늘뿐만 아니라 풀밭과 숲, 길거리까지 개미 떼가 점령해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이번 현상은 일명 혼인비행(Flying Ant Day)으로 불리는 ‘연례행사’다. 영국은 매년 이맘때 비행하는 개미 떼의 습격을 받는다. 공주개미와 수컷 개미가 짝짓기를 위해 서식지를 이동하는 현상이어서 ‘혼인비행’으로 불린다. 공주개미는 수개미들과 혼인비행을 거친 뒤 비로소 여왕개미가 되고 자신의 왕국을 만들 수 있다. 개미뿐만 아니라 꿀벌 등 사회성 곤충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행동이며, 수개미가 먼저 날아오르고 뒤이어 공주개미가 날아오른다. 공주개미는 일생동안 단 한 번의 혼인비행을 하며, 이를 통해 죽기 전까지 자신의 왕국에서 알을 낳는다. 개미의 혼인비행은 따뜻하고 건조하며 바람이 없는 날에 이뤄진다. 실제로 기상레이더에 잡힐 정도로 거대한 개미 떼가 등장했던 지난 주말은 혼인비행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었다. CNN은 “지난해에는 개미의 혼인비행 시기에 지상으로 떨어지는 개미가 너무 많아서, 기상레이더가 개미 떼를 소나기로 인식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일부 시민들은 이러한 개미 떼의 ‘습격’에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영국왕립생물학회(RSB)는 “생태계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개미들이 이동하며 내뿜는 물질들이 다른 생물의 번식에도 도움을 준다”며 시민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최초의 여성 미국 부통령/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최초의 여성 미국 부통령/김상연 논설위원

    미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애정 표현을 하는 커플을 우리나라만큼 자주 발견하기 쉽지 않다. 팔짱을 끼거나 어깨를 감싸고 걷는 연인은 거의 전무하고, 손을 잡고 다니는 커플도 많지 않다. 연인이 서로 껴안고 키스를 하는 광경도 흔치 않다. 우리 머릿속엔 막연히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사회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미국은 보수적인 나라다. 미국 사회가 개방적이라는 편견은 폭력, 섹스, 마약이 난무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이 크다. 영화는 비현실을 추구하는 법이다. 신대륙인 미국은 구대륙인 유럽보다 보수적이다. 동성 결혼을 세계 최초로 합법화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네덜란드(2000년)다.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때는 2015년 연방 대법원판결 이후였다. 국왕이 있는 벨기에(2003년), 스페인(2005년), 영국(2013년)보다도 늦은 시점이었다. 200년이 넘는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아직까지 여성이 대통령은커녕 부통령 자리에도 오르지 못한 것도 미국 사회의 보수성을 보여 준다. 대통령도 아니고 대통령 후보로 여성이 뽑힌 것도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처음이었다. 앞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당원(코커스)과 국민(프라이머리)들은 여성인 힐러리 대신 흑인인 버락 오바마를 후보로 선출했다. 누구를 후보로 찍더라도 ‘사상 최초’였지만 결과적으로 ‘사상 첫 여성’ 대신 ‘사상 첫 흑인’을 택했다. 여성 부통령도 1984년 제럴딘 페라로(민주당), 2008년 세라 페일린(공화당)이 후보로 지명됐지만 선거 패배로 1호가 되지 못했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뽑힌 조 바이든은 일찌감치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여러 명의 여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태미 더크워스(52) 연방 상원의원이 급부상했다고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더크워스는 이민자 출신의 중국계 태국인 어머니를 뒀다는 점과 2004년 이라크전에서 두 다리를 잃고 의족을 사용하는 군 출신이라는 이력으로 진보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두루 파고들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더크워스는 최근 친(親)도널드 트럼프 인사이자 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이 “건국의 영웅들의 동상 철거 문제에 대해 더크워스가 분명한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하자 “내 다리로 1마일만 걸어 보면 내가 조국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게 될 것”이라고 응수해 민주당 지지자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만약 더크워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은 비(非)백인이란 기록도 세운다. carlos@seoul.co.kr
  • ‘23년 대우맨’ 이경훈 전 ㈜대우회장 별세

    ‘23년 대우맨’ 이경훈 전 ㈜대우회장 별세

    23년간 ‘대우맨’으로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이경훈 전 ㈜대우 회장이 13일 별세했다. 85세. 이 전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1958년 KDB산업은행에 입사해 17년간 근무했으며 1975년 고 김우중 회장의 제안을 받고 대우그룹으로 옮겼다. ㈜대우 사장, 대우중공업 사장, ㈜대우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1995년 ㈜대우 회장으로 취임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이후에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8년간 재직했다. 전 세계 90여 개국을 누비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 산업평화상, 한국경영자대상,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 벨기에 국왕공로훈장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나의 발자취 그리고 증조부 이도재 이야기’가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0호실이다. 발인은 15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광주시 오포읍 가족묘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김효주, ‘2017년 톰슨법’의 첫 한국인 수혜자?

    김효주, ‘2017년 톰슨법’의 첫 한국인 수혜자?

    매년 말 골프규칙 개정판을 펴내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지난 2017년 골프 룰을 일부 개정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TV 시청자나 갤러리의 위반 제보를 받지않겠다는 것, 또 하나는 해당 위반 상황에 벌타가 따른다는 것을 몰랐다면 잘못된 스코어카드에 사인을 해서 제출했더라도 실격 조치 없이 원래 벌타만 매긴다는 것이다.2017년 4월 미여자프로골프(PGA) 투어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선두를 달리다 ‘오소 플레이’와 스코어 오기로 무려 4벌타를 받고 유소연에게 우승컵을 넘겨준 렉시 톰슨(미국) 때문에 이 ‘예외 조항’이 생겼다. 당시 톰슨은 공을 드롭하면서 5㎝ 가량 옮겼다가 시청자 제보로 발각됐다. 펑펑 눈물을 흘린 톰슨에 대한 동정론에 힘입어 전격적으로 보완 룰이 발표된 것이다. 그러나 ‘선수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실수에 대한 처벌은 실격없이 벌타로 족하다’는 이 규정은 이후로도 논란에 휘말렸다. 잘못이 드러나도 “정당한 플레이로 알았다. 위반인 줄 몰랐다”고 우기면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골프는 규칙 준수를 플레이를 하는 선수 자신에게 맡기는 유일한 스포츠다. 그러나 맡기되 처벌은 가혹하다. 2005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팜데저트에서 열린 LPGA 투어 삼성월드챌린지에서 데뷔전을 치른 미셸 위(미국)도 공을 드롭하는 과정에서 ‘오소 플레이’를 한 것이 뒤늦게 밝혀져 다음날인 최종 라운드 직전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고 가차없이 실격됐다.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아이에스동서 부산오픈 2라운드가 열린 부산 기장군의 스톤게이트 골프장. 느닷없이 최진하 경기위원장이 기자실에 들어와 브리핑을 시작했다. 전날 1라운드에서 김효주가 5번홀 벙커에 볼이 박힌 바람에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고 공을 드롭한 과정에서 벌타 처리가 잘못 됐다고 한 시청자가 제보한 것에 대한 조치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청자는 ‘드롭(벌타를 받거나 면제받은 뒤 공을 손으로 집어 안전한 위치에 떨구는 행위)’은 골프채로 한 개 길이 이내의 거리에서 해야 하는데, 김효주는 두 클럽 거리에서 했다며 이는 ‘오소 플레이’에 해당하고, 이에 대한 2벌타를 적어내지 않았기 때문에 스코어카드 ‘오기’로 실격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KLPGA는 김효주에게 벌타는 매기되 실격시키진 않았다. 최 경기위원장은 “김효주는 물론 동반자였던 이소영, 김민선도 위반 행위인 줄 몰랐다고 했다”고 전하면서 “김효주에게 실격 대신 오소플레이에 대한 벌타인 2타를 오늘 친 타수에서 빼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7년 이전이었다면 실격이었지만 지금은 ‘톰슨법’이 시행된 지 3년이나 흘렀다. 김효주는 톰슨법의 혜택을 본 첫 한국인 선수가 됐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계명대 제12대 총장, 신일희 박사 취임

    계명대 제12대 총장, 신일희 박사 취임

    신일희 박사가 계명대 제12대 총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2024년 7월까지 4년간이다. 7일 오전 11시30분 계명대 성서캠퍼스 아담스채플에서 정순모 학교법인 계명대학교 이사장을 비롯한 법인임원 및 보직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가졌다. 코로나19로 인해 행사장 참석인원은 최소화하고,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한 인사들을 위해 SNS로 실시간 생중계 됐다. 신일희 총장은 취임사에서 “코로나19와 공존할 것 같은 미래 시대는 교육의 대개혁을 요구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며, “근본적으로 프로젝트 중심의 수업내용에 대면-비대면 차이가 없는 수업 방식을 고안해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계명교육은 인간적 윤리성의 배양이 인류의 존립 자체와 산업적 생산성의 초석이라는 가치를 확인하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신 총장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독일문학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Kiel 대학교 객원조교수,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부교수, 계명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독일 Regensburg 대학교 Humboldt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또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아세아 기독교대학연맹(ACUCA) 회장, 학교법인 계성학원 이사장, 스웨덴 명예영사, 한국기독교대학협의회 회장, 2003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선수촌장, 이탈리아 명예영사,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선수촌장 등을 역임했으며,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100주년 기념‘동문 100인’선정, 5.16 민족상 교육부문 수상을 비롯해 스웨덴 국왕 공로훈장, 미육군성 시민봉사 훈장, 폴란드 금십자 훈장, 독일연방공화국 대십자 공로훈장, 베트남 공훈 훈장 등을 수훈한 바 있다. 신 총장은 현재 동산장학재단 이사장, 폴란드 명예영사, 미육군성 문화대사, (사)대구?경북 국제교류협의회 공동의장, 대구광역시 문화시민운동협의회 회장,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공동의장, 중국 공자아카데미 총부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벨기에 국왕 “식민통치 유감” 민주콩고에 서한… 화해 첫발

    벨기에 국왕 “식민통치 유감” 민주콩고에 서한… 화해 첫발

    벨기에 국왕이 30일(현지시간) 과거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식민 통치 시기 자행된 폭력과 피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민주콩고도 환영의 뜻을 전하며 양측은 화해의 첫발을 내디뎠다. 필리프 국왕은 이날 민주콩고 독립 60주년을 맞아 펠릭스 치세케디 민주콩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는 과거의 상처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자 한다. 그 고통은 오늘날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로 인해 되살아났다”며 “모든 형태의 차별에 대해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다. 필리프 국왕의 선조인 레오폴드 2세는 개인 영지로 삼은 콩고에서 1885~1908년 사이 100만명에서 많게는 1500만명에 이르는 콩고인을 착취하면서 희생시킨 것으로 추산된다. ‘콩고의 백정’, ‘콩고의 도살자’라는 악명이 붙은 그는 이후 콩고 지배권을 벨기에 정부에 넘겼다. 민주콩고는 1960년 6월 30일 독립했다. 쟝 오마솜보 킨샤사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벨기에 정부는 식민지 잔학성에 대해 한 번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필리프 국왕의 서한은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AP통신은 벨기에 도시 겐트에서 레오폴드 2세의 흉상이 철거됐다고 1일 보도했다. 민주콩고의 마리 툼바 외무장관은 30일 성명에서 “민주콩고 역사상 벨기에로부터 받은 가장 훌륭한 서한”이라며 깊은 고마움을 나타냈다고 dpa통신이 보도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필리프 벨기에 국왕, 콩고 식민 통치에 “강한 유감” 그뿐인가?

    필리프 벨기에 국왕, 콩고 식민 통치에 “강한 유감” 그뿐인가?

    벨기에 역사에 처음으로 현 국왕이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DRC)을 식민 통치하며 저지른 패악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 해서 눈길을 끌고 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은 DRC 독립 60주년 기념일인 30일 펠릭스 치세케디 민주콩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과거의 상처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싶다. 그 고통은 오늘날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로 인해 되살아났다”라고 밝혔다. 필리프 국왕은 ‘콩고의 학살자’란 별명으로 악명 높았던 레오폴드 2세를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그의 개인적인 통치 시기(1885~1908년)에 “폭력과 잔학 행위가 저질러졌고, 이는 우리의 집단기억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 그 뒤 벨기에 왕정의 식민지 통치 시기(1908-60년)에도 고통과 굴욕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필리프 국왕은 이어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과 싸울 것”이라면서 이 문제에 대한 숙고를 격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겐트에서는 지역 당국의 결정에 따라 레오폴드 2세의 흉상이 철거될 예정이다. 필리프 국왕의 유감 표명은 최근 벨기에의 식민 통치에 대한 재평가 요구가 커진 가운데 나왔다.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유럽 각국으로 확산하면서 벨기에에서는 과거 DRC에서 잔혹한 식민 통치를 했던 옛 국왕 레오폴드 2세의 동상 훼손이 잇따르고 철거 요구가 제기됐다. 레오폴드 2세는 1885년부터 베를린회의에서 지금의 DRC 땅 200만㎢를 개인 소유지로 할양 받아 강제로 숲을 불태우고 고무와 상아, 광물을 약탈했다. 신체포기 각서를 쓰게 하고 고무 채취 할당량을 못 채우면 손발을 차례로 잘랐다. 어린 아이들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테르부렌 궁전 마당에 아프리카 박물관을 짓고 콩고인 267명이 살게 하는 모습을 백인들이 구경하게 ‘인간 동물원’으로 꾸몄다. 그가 통치한 23년 동안 100만명에서 많게는 1500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기아와 학살, 질병 등으로 숨졌다. 선교사 등이 폭로하고 유럽 각국의 비난과 질타가 쏟아지자 레오폴드 2세는 지배권을 벨기에 왕정에 넘겼지만 콩고에 대한 지배권을 놓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1909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벨기에 국민들조차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야유를 퍼부을 정도였다.필리프 국왕의 남동생 로랑 왕자는 지난 12일 레오폴드 2세가 “콩고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잔학 행위에 책임이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2010년 전직 외무장관 루이 미셸과 나중에 총리가 되는 그의 아버지 샤를 미셸은 레오폴드 2세가 “벨기에처럼 작은 나라에 나타난 야심만만한 영웅”이었다고 치켜세웠다. 또 브뤼셀 개방대학의 헤르베 하스퀸 전 학장은 보건체계와 인프라, 초등교육 등이 벨기에가 식민지에 선사한 긍정적 측면이라고 강변했다. 이렇듯 벨기에 지도층의 인식에는 하등에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 필리프 국왕의 유감 표명이 나왔다. 이것으로 1000만명 가깝거나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의 애꿎은 희생과 막대하게 수탈된 부가 제대로 보상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한없이 모자라 보인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입안에 동전이…폴란드서 17세기 아이 유골 대거 발견

    입안에 동전이…폴란드서 17세기 아이 유골 대거 발견

    최근 폴란드 남동부 마을 근처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공사 현장에서 주로 17세기에 생존한 것으로 보이는 어린이 유골이 100구 넘게 발견됐다. 퍼스트뉴스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지난 23일(현지시간) 포드카르파츠키에주(州)에 있는 예조베라는 이름의 마을 근처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사람 뼈를 발견한 뒤 현장에 투입된 고고학 발굴팀이 유골 115구를 찾아냈다.이 중에서도 특히 100구가 넘는 유골은 어린아이의 것으로 추정돼 오랜 세월 이 지역에서 어딘가에 아이들을 묻던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전해져온 전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현지 발굴팀은 지금까지 발견한 유골 중 대다수의 머리가 서쪽을 향하도록 눕혀져 있고 간격을 두고 개별적으로 매장돼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반면 또 다른 유골 4구는 한곳에 나란히 묻혀 있고 그중 한 유골은 나머지 유골보다도 훨씬 더 어린 것으로 추정돼 이들이 혈연 관계에 있었다고 추정한다.특히 이들 유골을 좀 더 자세히 조사한 결과, 공통으로 입안에 동전 한 닢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취한 동전을 살펴보면 이 중 상당수는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3세 바자의 통치 시절(1587~1632) 주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보다 좀 더 훗날 폴란드를 통치한 얀 2세 카지미에슈 바자(1648~1668년) 동전들도 확인됐다. 이에 따라 유골 매장 연대가 주로 17세임을 알 수 있었다고 고고학자들은 설명했다.또 역사문서에 따르면 1604년 이곳을 방문한 크라쿠프의 주교단이 “예조베에는 큰 교회와 정원, 목사관, 학교 그리고 묘지가 세워져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공동묘지의 기원은 16세기 후반인 15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입안의 동전을 조사한 현지 고고학자 카타지나 올레셰크 연구원은 “카론의 은화 한 닢(Charon‘s obol)으로 불리는 기독교 이전의 매장 전통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카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뱃사공으로, 저승을 감고 흐르는 강인 아케론에서 배를 저으며, 아케론에 도달한 망자를 저승으로 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뱃삯으로 동전 한 푼을 받지 않으면 절대 망자를 실어 주지 않기에 그리스에서는 죽은 자를 장사지낼 때 입안에 동전 한 푼을 넣어줬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전이 주조되기 시작한 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죽은 사람의 입에 은화를 넣은 뒤 매장하는 습관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 후 카론의 은화 한 닢은 로마 제국과 이베리아반도에 이어 영국과 폴란드 등으로 전파됐다. 이번에 발견된 동전도 그 습관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반면 묘지에서는 유골과 동전 외에는 아무것도 출토되지 않았다. 부장품은 말할 것도 없고 관의 흔적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올레셰크 연구원은 “당시 예조베는 매우 가난한 지역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다. 한편 이번에 발견된 유골들은 온전하게 발굴된 뒤 조사를 거친 뒤 지역 교구 교회를 통해 지역 묘지에 다시 매장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Gminne Centrum Kultury w Jeżowem, Arkadia Firma Archeologiczna/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파리 예배당 벽 틈에서 프랑스 혁명 유해, 로베스피에르도?

    파리 예배당 벽 틈에서 프랑스 혁명 유해, 로베스피에르도?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이들의 유해 500여구가 통설과 달리 ‘속죄의 예배당’ 벽 안에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속죄의 예배당은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왕정 복귀가 이뤄져 루이 18세가 형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신을 1815년 공동묘지에서 역대 왕족의 묘지인 생드니 대성당으로 옮기고 난 뒤 그 터 위에 짓기 시작해 1826년 완공한 건축물이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은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숨진 이들의 유해는 루이 18세의 명에 따라 발굴돼 파리 지하묘지(카타콤)로 이장됐다고 믿어 왔는데 이 통설을 뒤집을 증거가 이번에 발견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과 텔레그래프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예배당을 관리하는 에므리크 프니구에 드 스투츠는 예배당 벽들에서 발견된 특이한 틈새와 루이 18세가 쓴 편지에서 얻은 힌트를 바탕으로 고고학자에게 조사를 의뢰했고, 고고학자들은 벽들의 틈새에 카메라를 넣어 사람의 뼈로 채워진 나무상자 4개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의 일이었지만 파리 등 프랑스 전역에서 반정부 ‘노란 조끼’ 시위가 확산할 때여서 알려지면 귀족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돌아 공격 당할까봐 함구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추가 조사가 내년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프랑스 혁명을 논할 때면 빠지지 않는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유해도 이곳에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집권 후 정의 구현을 내세워 공포정치를 펼치다 이듬해 단두대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처형당하면서 지금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이 16세와 앙투아네트의 목을 참수하고 이곳에 묻어버리면서 시작된 공포 통치도 막을 내렸다. 스투츠는 현지 일간 르 파리지앵 인터뷰를 통해 “고고학자들이 건넨 사진 속에 팔다리 유해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너무 감격해 눈물을 터뜨릴 뻔했다”며 “지금까지는 이 예배당이 루이 16세 부부만을 기리는 공간으로 여겨졌는데 이번 발견으로 이곳이 (귀족들과 혁명 참가자들 모두 잠든) 혁명의 공동묘지였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곳에 묻혀 있을 수 있는 다른 유명한 인물로는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뒤 바리, 극작가이며 초기 여성 인권활동가였던 올림프 드 고쥬, 오를레앙 공작이며 프랑스의 마지막 국왕인 루이 필리페 1세의 아버지인 루이 필리페 등이 거론된다. 일부에서는 국왕의 엄명에도 부르봉 왕정의 복귀에 불만을 품은 작업 인부들이 반발해 벽 틈에 유해들 일부를 숨긴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영어의 가장 흔한 욕 F***의 유래 얼마나 알고 계세요

    영어의 가장 흔한 욕 F***의 유래 얼마나 알고 계세요

    유월의 마지막 휴일인데 아침부터 상소리를 늘어놓아 송구하다. 애들은 저리 가셨으면 한다. 영국 BBC의 동영상 사이트 릴은 가끔 뜨악한 소재를 늘어놓곤 하는데 이달 초 영어 가운데 가장 상스럽게 쓰이는 단어, 함부로 네 글자 모두를 쓰지도 못하는 ‘F***’의 유래와 용례를 상세히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도 ‘근처에 자녀들이 있으면 다음에 시청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전편찬자(Lexicographer)이며 어원 학자(etymologist) 겸 방송인인 수지 덴트가 동영상을 만들어 우리는 2분 50초로 요약된 시간 여행을 쫓아가면 된다. 언어학자들에게 영어 가운데 가장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단어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이 단어가 으뜸으로 꼽힌다. 문장 가운데 어느 위치에 들어가더라도 어색하지 않다. 명사로도, 형용사로도, 동사로도, 강조어로도, 일상의 이중 꾸밈 말로도(예를 들어 abso-****ing-lutely) 쓰인다. 심지어 현대 들어선 문법에 어긋나게 사용되는 일도 용인된다. 예를 들어 a **** off hat나 **** me shoes 같은 것들이다.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써도 다 말이 되고 이해가 된다. 우리네 전라도 말 ‘거시기’, ‘머시기’와 비슷하다는 얘기다. 부풀려 말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3세기 무렵이었다. 당시만 해도 경멸하거나 모욕적인 표현이라기보다 부적합한 단어로 인식됐다. 그랬는데 종교적 의미가 더해지면서 금기시됐다. 이 단어의 유래에 대해 널리 알려진 속설은 ‘Fornicaton Under Command of the King’의 머릿글자를 조합했다는 것이다. 국왕 명령 아래 저지르는 음행(淫行)이 된다. 전염병 창궐의 책임을 돌리기 위해 마녀사냥을 일삼던 국왕이 모든 이에게 자신의 악행을 앞으로 나서 고백하라고 강요하자 문에 이 머릿글자 조합을 새긴 판을 내걸어 집안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건드리지 말라고 알렸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속설보다 라틴어로 싸우다를 의미하는 푸나레(Fugnare)가 여러 차례 변형됐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또 처음에는 성적인 표현이 아니라 누군가를 친다는 뜻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아주 오랜 옛날에는 사람 성(姓)으로도 쓰였다. 예를 들어 Mr ****beggar라고 불리는 가문도 있었다. 13세기에는 그저 과격한 시민이란 뜻으로 쓰였다. 같은 시기 새 황조롱이가 wynd****er 로도 불렸는데 이때도 날갯짓으로 바람을 친다는 뜻이었다. 그랬던 것이 17세기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식으로 확장됐다. 그러면서 검열 대상이 됐다. 해서 글자 대신 대시, 별 표, 샤프(우물 정) 등 약물기호 등으로 대신했다. 1960년대 DH 로렌스의 책 ‘채털리 부인의 연인(또는 사랑)’을 출간하려는 펭귄 북스를 저지하기 위해 검찰이 기소했으나 무죄가 선고되면서 600년 이상 된 이 단어는 세상의 온갖 경멸적이거나 상스러운 단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됐다. 수지 덴트는 2011년 옥스퍼드 사전이 뽑은 올해의 단어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 이듬해 ‘도처에 난장판(omnishambles)’를 선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브렉시트 기념주화 50펜스 짜리를 발행했을 때 한 영어 문장 가운데 셋 이상의 항목을 열거할 때, 마지막 항목 앞에 붙는 ‘그리고’(and)나 ‘또는’(or) 앞에 쉼표(,)를 붙이는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의 문법 형식을 좇아 주화를 다시 인쇄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법학자들의 주장에 동조했다. 주화에 적힌 문장의 ‘평화, 번영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우정(Peace, Prosperity and Friendship with all nations)’ 가운데 ‘번영’(Prosperity)과 ‘그리고(and)’ 사이에 옥스퍼드 쉼표가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는데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영상 보러 가기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납작한 외모 개 주의…열사병에 가장 취약한 품종은?

    [핵잼 사이언스] 납작한 외모 개 주의…열사병에 가장 취약한 품종은?

    2020년이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진 가운데, 반려견을 키우는 주인들이라면 필독해야 할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영국 노팅엄트렌트대학과 영국왕립수의대학 공동 연구진이 영국 전역의 약 100만 마리에 달하는 반려견의 건강 정보를 분석한 결과, 불도그나 퍼그 등 주둥이가 납작한 외모의 반려견은 주둥이가 진 반려견에 비해 열사병에 걸릴 위험이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열사병에 비교적 강한 래브라도 리트리버(이하 래브라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대형 견에 속하는 래브라도는 주둥이가 긴 편이고 코가 돌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주둥이가 납작한 품종 중에서도 잉글리시불도그는 래브라도에 비해 열사병에 걸릴 확률이 14배 높았다. 프렌치불도그는 6배, 퍼그는 3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래브라도와 비교했을 때 열사병에 유독 약한 견종은 주둥이가 납작한 불도그나 퍼그뿐만이 아니다. 차우차우나 골든 리트리버는 몸에 털이 많은 탓에, 래브라도에 비해 열사병에 걸릴 위험이 각각 17배, 3배 더 높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주 개로도 유명한 그레이하운드는 근육량이 많아 열사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하게 달리거나 놀고 난 뒤 근육에서 많은 열이 발산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비만인 개 역시 열사병 위험이 높다고 연구진은 경고했다. 일반적으로 개는 사람처럼 땀을 흘리지 않기 때문에 체온 조절을 위해 혀를 내밀고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그럼에도 땀을 흘리는 것보다는 체온 조절이 쉽지 않은 까닭에, 기온이 높은 날 창문이 닫힌 차량에 20분만 갇혀 있어도 열사병에 걸릴 수 있으며, 열사병에 걸린 개 7마리 중 1마리는 목숨을 잃는다. 실제로 기온이 높아질 때마다 반려견이 주인에 의해 차량에 갇혀 있다 구출되거나 목숨을 잃는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뜨겁게 달아오른 차에 갇힌 개는 수십 분 안에 사망할 수 있으며, 운 좋게 죽지 않는다고 해도 질식이나 열사병 등으로 뇌 손상 또는 시력손실 등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열사병에 걸린 반려견은 구토나 발열,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와 무기력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러한 증상이 보일 경우 주인은 반드시 반려견을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으로 옮긴 뒤 물을 뿌리거나 물수건 등을 이용해 체온을 낮춰야 한다. 이후 물을 조금씩 마시게 해 안정을 되찾게 한 후 반드시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연구진은 “개는 인간처럼 체온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열사병의 징후를 항상 살펴야 한다”면서 “특히 납작한 주둥이를 가졌거나 과체중인 개는 여름일수록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18일자)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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