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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우뉴스] ‘이런 모습 처음’...모나코 왕비의 파격 스타일 화제

    [나우뉴스] ‘이런 모습 처음’...모나코 왕비의 파격 스타일 화제

    모나코 왕비가 최근 아프리카 멸종위기 동물 보호 활동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가운데, 파격적인 스타일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공개된 사진은 지난 3월 중순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며, 솟커트에 가까운 짧은 기장과 반삭발의 투블럭 스타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결혼 초반 선호했던 기품있는 메이크업이 아닌 눈을 강조한 짙은 메이크업으로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알베르2세 모나코 군주의 부인인 샤를린 왕비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여 왕실 팬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석한 샤를린 왕비는 화려한 패턴의 의상과 짙은 메이크업, 역시 반삭발의 투블럭 스타일을 처음 공개했었다. 당시 현지에서는 대담하고 새로운 모습을 공개한 여왕이 남편 알베르 2세 국왕과 왕실에 대한 반항이자, 동시에 로열패밀리만의 외로움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평을 내놓았었다. 샤를린 왕비는 결혼 전 남편인 알베르 2세의 이성관계가 복잡하고 혼외 자녀가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결혼을 취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무려 3번의 ‘탈출’ 시도가 모두 무산됐고, 결국 2011년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장에서 줄곧 눈물을 훔치기 바빴던 샤를린 왕비는 2014년 쌍둥이를 출산했고, 왕실에 적응하며 잘 지내는 듯 보였지만 2년 전부터 다시 심경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2019년에 샤를린 왕비는 지난해 “삶이 고통스럽다”면서 “내게는 (왕실의) 삶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지만 고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어 슬프다”고 고백했었다. 모나코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이 언제나 화젯거리가 되어 온 만큼, 샤를린 왕비와 알베르 2세 군주가 1월 말 이후 공개적으로 함께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도 세간의 관심거리가 됐다. 샤를린 왕비는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대신, 파격적인 스타일과 자신만의 행보로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공개된 사진 속 활동은 자신의 고향인 남아공에서 밀렵꾼으로부터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한 보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알려졌다. 샤를린 왕비는 “코뿔소와 환경을 보호하는데 엄청난 열정을 가진 지역 관계자들 및 밀렵 방지 단체와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아프리카 사람들과 다시 연결돼 매우 기쁨을 느꼈으며, 이 지역의 역사화 문화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며 기쁨을 표했다. 이어 나는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한 기금 마련을 포함해,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은 미국 유명 영화배우 출신인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아들이다. 알베르 2세 국왕은 혼외정사로 낳은 딸과 아들을 두고 있으나, 이들은 전통과 법에 따라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모나코 왕비의 파격 스타일 또 화제…남아공서 동물보호 활동

    모나코 왕비의 파격 스타일 또 화제…남아공서 동물보호 활동

    샤를린 그리말디 모나코 왕비가 최근 아프리카 멸종위기 동물 보호 활동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가운데, 파격적인 스타일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공개된 사진은 지난 3월 중순 남아공을 방문했을 때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며, 솟커트에 가까운 짧은 기장과 반삭발의 투블럭 스타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 결혼 초반 선호했던 기품있는 메이크업이 아닌 눈을 강조한 짙은 메이크업으로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알베르2세 모나코 군주의 부인인 샤를린 왕비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여 왕실 팬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석한 샤를린 왕비는 화려한 패턴의 의상과 짙은 메이크업, 역시 반삭발의 투블럭 스타일을 처음 공개했었다. 당시 현지에서는 대담하고 새로운 모습을 공개한 여왕이 남편 알베르 2세 국왕과 왕실에 대한 반항이자, 동시에 로열패밀리만의 외로움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평을 내놓았었다. 샤를린 왕비는 결혼 전 남편인 알베르 2세의 이성관계가 복잡하고 혼외 자녀가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결혼을 취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무려 3번의 ‘탈출’ 시도가 모두 무산됐고, 결국 2011년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장에서 줄곧 눈물을 훔치기 바빴던 샤를린 왕비는 2014년 쌍둥이를 출산했고, 왕실에 적응하며 잘 지내는 듯 보였지만 2년 전부터 다시 심경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2019년에 샤를린 왕비는 지난해 “삶이 고통스럽다”면서 “내게는 (왕실의) 삶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지만 고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어 슬프다”고 고백했었다. 모나코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이 언제나 화젯거리가 되어 온 만큼, 샤를린 왕비와 알베르 2세 군주가 1월 말 이후 공개적으로 함께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도 세간의 관심거리가 됐다. 샤를린 왕비는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대신, 파격적인 스타일과 자신만의 행보로 새로운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공개된 사진 속 활동은 자신의 고향인 남아공에서 밀렵꾼으로부터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한 보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알려졌다. 샤를린 왕비는 “코뿔소와 환경을 보호하는데 엄청난 열정을 가진 지역 관계자들 및 밀렵 방지 단체와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아프리카 사람들과 다시 연결돼 매우 기쁨을 느꼈으며, 이 지역의 역사화 문화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며 기쁨을 표했다. 이어 나는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한 기금 마련을 포함해,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알베르 2세 모나코 국왕은 미국 유명 영화배우 출신인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아들이다. 알베르 2세 국왕은 혼외정사로 낳은 딸과 아들을 두고 있으나, 이들은 전통과 법에 따라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시골마을에 왜 도서관 열었냐고? 여기서 머스크 나올 수도 있잖아”

    “시골마을에 왜 도서관 열었냐고? 여기서 머스크 나올 수도 있잖아”

    도서관은 시골 마을 산 중턱에 있었다. 지난달 5일 어린이날 이 조그만 도서관을 문 연 사람은 ‘한국 원자력의 대부’로 불리는 장인순(81)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다. 사람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오지 마을에 장 전 원장은 왜 도서관을 만들었을까. 문 연 지 20일이 지난 25일 1호선 국도를 타다 좁은 시골길과 산길을 거쳐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전의 마을 도서관’에 도착해 장 전 원장을 서울신문이 만났다. “시골에 도서관을 왜 만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대뜸 “여기서 일론 머스크나 빌 게이츠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느냐”며 “신도시에만 도서관이 많고 여기에는 없어 ‘아이들하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마침 10년 전부터 대전 자택 이웃으로 인연을 맺어 수양딸이 된 라연희 ㈜고려전통기술 사장이 회사 2층 150㎡ 정도의 공간을 내줬다. 도검을 만드는 회사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칼도 이곳 것이라고 장 전 원장은 홍보했다. 장 전 원장은 지난해 팔순을 맞아 쓴 책 ‘여든의 서재’에 적은 ‘책은 세상이며 삶이며 우주이다’, ‘이 하루는 왜 이렇게 소중한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와 소크라테스 등이 말한 세 문장을 들면서 “젊었을 때는 못 느꼈던 것들인데 나이 80이 되니까 소중하게 다가온 말들”이라며 “도서관을 만든 것도 아이들에게 이런 생각을 일찍 깨닫도록 해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여든의 서재’ 인세 5000만원으로 도서관 책을 구입하고 인테리어 비용을 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어릴 적엔 학교에도 도서관이 없었고, 몽당연필에 침 묻혀 가며 글씨를 쓸 정도로 어렵게 공부했기 때문에 이곳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면서 “내 고향 마을이 아니어도 노년에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날마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갓김치’로 유명한 전남 여수 돌산 섬마을이 고향이다. ●“책·필기도구 든 가방이 진짜 명품이지” 아치형 도서관 출입구 두 기둥에 ‘2021 왜?’, ‘2121 WHY?’라고 적혀 있다. 장 전 원장은 “‘왜’라는 질문이 인류 역사를 끌어왔다”며 “이 근원적 질문이 바탕인 교육이 백년(2021~2121년)대계여서 그리 썼다”고 설명했다. 벽에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야’라는 글도 있다. 그는 “박경리 선생이 소설 ‘토지’ 20권을 쓰는 데도 얼마나 책상에 앉아 있었겠나”라고 웃었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5~6칸 나란히 세워진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그 앞에 모양이 제각각인 책상이 놓여 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태극 모형, 초승달 모형 등 모양이 다 다르다. 모두 30여명이 앉을 수 있다. 장 전 원장은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보여 주고 심어 주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다양성이 부족하고 존중하지도 않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의자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언제든 와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연중 내내 24시간 개방한다. 장 전 원장은 “맘대로 책을 가져가고 낙서해도 된다. 그래서 대여기록도 하지 않는다”며 “정직성과 자율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책 분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점처럼 책장 넘기며 책을 찾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시골 마을에 도서관이 생기자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 270여명이 다니는 인근 전의초·중학생이 주요 고객(?)이다. 다만 버스정류장이 1㎞도 넘게 있어 찾아오는 길이 편하지는 않다. 장 전 원장은 “버스정류장에서 택시 타고 오면 돌아가는 택시비까지 내가 다 대준다”며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고 소문이 덜 나서인지 지불한 택시비는 아직 10만원이 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조만간 도서관에서 수학과 물리도 가르치겠다는 장 전원장은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네 다리 달린 책상보다 세 개짜리 책상이 비탈이든 어디든 세울 수 있는지 등 과학 및 수학의 원리를 알려주면 무척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시대에도 학생이 부모 손잡고 오면 그렇게 예쁘고 반가울 수가 없다”고 했다. 한번은 자녀와 함께 도서관을 찾아온 어머니에게 “명품 가방이 뭔지 아느냐. 안에 책과 필기도구가 들어 있으면 그게 진짜 명품 가방이다”고 얘기하자 어머니는 “어머, 그런 말은 원장님한테서 처음 들었다”며 웃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 전 원장은 “우리 어머니는 내가 우라늄 농축과 관련된 불소학을 배우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가방에 태극기를 넣어줘 외국 생활 내내 힘이 됐다”면서 “그 어머니를 평생 한번 안아 드린 기억이 없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도서관에는 책 9000권이 있다. 인세 5000만원을 초등 필독서 2000권과 중고생 1000권 등 3000권을 구입하는 데 털어넣었다. 국립도서관에서 추천받은 것으로 소설, 수필, 위인전, 만화 등 다양하다. 2005년 원자력연구원장으로 퇴임한 뒤 구입해 읽은 책 4500권을 보탰다. 장 전 원장은 “그 기간이 가장 독서량이 많았을 때로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프로스트 등 시집 1000여권도 있지만 인문학, 원자력 등 주로 어른 책”이라고 했다. 동네 한 아주머니가 200권을 기증했고, 교수들 여럿도 보내 줬다. 장 전 원장은 2004년 1월 자신이 원자력연구원장(당시는 연구소)으로 있을 때 만든 1호 연구소기업 한국콜마 공장이 전의면에도 있다고 인연을 강조하며 이곳에 도서관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원자력 개척 연구진답게 이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는 “요즘 문맹은 공부하지 않는 권력자와 공무원”이라며 “산유국도 원전을 만드는데 우리 정치인은 공부를 안 하니까 세상을 못 읽는다”고 꼬집었다. 장 전 원장은 “태양광은 하루의 절반은 빛이 없는 밤이고, 사막 모래바람 불으면 망가지기 때문에 중동 국왕이 ‘할아버지는 낙타 타고, 아버지는 자동차 타고, 나는 비행기 탔으니 아들은 우주선을 타야 하는데 다시 낙타 타게 생겼다’며 원전을 수입한다”고 했다. 장 전 원장은 “도대체 자기 나라는 탈원전하면서 수출이라니, 그 나라 원전을 사려는 국가가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원전은 수명이 60년이어서 그동안 핵연료를 팔고, 거액 받고 수리해 주고, 기술자 1000명이 일자리를 얻는 등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다”면서 “그런데 탈원전하면 우수 학생이 원자력공학과를 가지 않아 원전 기술이 퇴보한다”고 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처음 20조원짜리 대용량 원자력을 수출한 뒤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스마트원자로 등 세 가지 원자로를 수출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고 장 전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과학은 퇴보하는 법이 없고 더 안전해진다. 탈원전은 미스터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서관 옆에 화랑·劍박물관 열어 명소로” 장 전 원장은 매일 대전 집에서 직접 차를 몰아 오전 7시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왕복 100㎞ 거리다. 장 전 원장은 “아침 일찍 도서관에 오면 동네 등 하루 6㎞를 천천히 달리고 집에서 아령도 하며 건강을 관리해 먼 거리 차를 모는 것도 크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 도서관에 머물면서 회사 기술연구에 기술 조언도 한다. 도서관보다 더 넓은 옆 공간 벽에는 자신이 소장하던 것과 기증받은 미술품 30여점이 걸려 있다. 장 전 원장은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 주인처럼 어린 학생들을 기다리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다만 식당 손님과 반대로 여기에 더 오래 머물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 갔으면 좋겠다”며 “도서관 옆에 구상화·추상화가 섞였다고 이름 붙일 ‘비빔밥 화랑’과 전통 검 제작 회사의 특성을 살린 ‘검박물관’도 추가로 열어 명소로 만들자고 사장과 의기투합했다”고 웃었다. 글 사진 세종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네타냐후 “하마스 평온 깨면 응징”… 美, 불안한 이·팔 평화 중재

    네타냐후 “하마스 평온 깨면 응징”… 美, 불안한 이·팔 평화 중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군사적 충돌이 지난 21일(현지시간)을 기해 10여일 만에 가까스로 멈춰 선 가운데 그동안 분쟁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평화 중재 노력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곳곳에 불씨가 남아 있어 휴전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5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집트, 요르단 등을 순방하는 3일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분쟁 당사자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 이번에 휴전을 중재한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등을 연달아 만나 휴전 이후 평화 유지 방안을 모색한다. 블링컨 장관은 특히 이번 충돌로 가자지구에서 250명 이상이 사망하고 광범위한 지역이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측에 다양한 당근책을 제시했다. 그는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서 아바스 수반을 만난 자리에서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격상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영사관을 다시 개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루살렘 영사관은 과거 미국과 팔레스타인의 외교 통로였으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기능을 축소, 대사 관할로 격하시키면서 팔레스타인 측의 분노를 샀다. 그는 아바스 수반에게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의 국가로 공존한다는 개념)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7500만 달러(약 837억원) 규모의 가자지구 재건 원조 등 총 1억 달러 이상의 경제 지원과 150만회 분량의 코로나19 백신 기부 추진도 약속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관리는 로이터통신에 “우리가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양측의 휴전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측이 상대방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바꾸지 않은 채 언제든 무력 충돌을 재개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추가 분쟁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는 블링컨 장관에게 “하마스가 평온을 깨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우리는 아주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또 ‘법질서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무력 충돌 기간 중 반이스라엘 시위와 소요사태에 가담했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이고 있다. 하마스도 이스라엘이 언제든 긴장 수위를 높이면 무력으로 대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마스 군사 조직인 카삼여단의 이즈 알딘 대변인은 “우리의 행동은 말보다 앞서고 우리의 미사일은 준비된 채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균 선임기자 windsea@seoul.co.kr
  • [씨줄날줄] BBC의 추락/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BBC의 추락/이종락 논설위원

    영국 공영방송인 BBC는 1922년 영국방송유한회사(British Broadcasting Company Ltd)로 출발했으나, 1927년 영국 국왕의 칙령을 받으면서 공영방송사가 됐다. 세계적 공영방송의 모델이 돼 독일의 ARDㆍZDF, 일본의 NHK, 우리나라의 KBS가 출범하는 데도 기여했다. BBC의 설립 목적은 영국 내 공정한 공영 서비스 방송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국의 모든 국민이 가구당 159파운드(약 25만 5000원)의 수신료를 군말 없이 내며 BBC가 공정성을 지키는 데 버팀목이 돼 주고 있다. BBC의 한 해 수신료 수입은 무려 32억 파운드(약 5조 1300억원)다. ‘공정과 신뢰’의 상징인 BBC가 최근 추락하고 있다. BBC가 26년 전 다이애나 왕세자비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위조 서류를 동원하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1995년 11월 BBC는 ‘파노라마’ 프로그램에서 다이애나비 인터뷰를 내보냈다. 다이애나비는 찰스 왕세자와 그의 오랜 연인 커밀라 파커 볼스(현 부인)의 관계를 처음 털어놨다. 당시 2280만명이 시청했다. 문제는 이 인터뷰를 성사시키려고 BBC 기자였던 마틴 바시르가 부정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대법관을 지낸 존 다이슨경의 조사로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4년차 기자였던 바시르는 다이애나비의 남동생 스펜서 백작을 만나 “왕실 직원들이 돈을 받고 다이애나비의 개인정보를 흘렸다”며 위조한 은행 명세서를 내밀었다. 다이애나비의 개인 전화 또한 도청되고 있다며 이런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자신과의 인터뷰를 하자고 강요했다. 인터뷰의 성사 배경에 여러 번 의혹이 제기됐으나 1996년 BBC는 내부 조사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며 덮었다. 그 인터뷰로 왕실과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 다이애나는 이듬해인 1996년 찰스와 이혼했다. 다이애나는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를 피해 고속질주하다가 차가 터널 안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로 숨졌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만약 BBC와의 인터뷰가 없었다면?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이혼도 하지 않고 지금껏 아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 두 며느리, 손자·손녀들과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있지 않았을까? BBC의 인터뷰는 다이애나비 죽음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번 사례는 언론의 공정성과 기자 개인의 정직, 취재 윤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때로는 칼과 총보다 더 무서운 펜의 힘은 사람을, 가정을, 사회를 파멸로 몰 수도 있다. 24년이 지났지만 다이애나비의 죽음을 애도한다. jrlee@seoul.co.kr
  • 아룬델 성 재개방 나흘째에 스코틀랜드 메리의 염주 목걸이 등 도난

    아룬델 성 재개방 나흘째에 스코틀랜드 메리의 염주 목걸이 등 도난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서식스주의 아룬델 성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오랫동안 폐쇄됐다가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다시 일반에 개방됐는데 21일 밤 대체 불가능한 보물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가장 값어치 있는 유물은 1587년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때 걸고 있던 금빛 염주 목걸이다. 얼 제독이 여왕에게 선물한 대관식 컵 세트도 사라졌다. 다른 금과 은 보물들도 자취를 감췄다. 누군가 전시실 캐비넷을 강제로 뜯고 훔쳐간 것이 분명했다. 성 대변인은 이들 보물이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다며 안타까워했다. BBC는 100만 파운드란 값을 매겼는데 정말로 그 값어치를 따지긴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이날 밤 10시 30분쯤 침입자가 있음을 감지한 경보가 울렸는데 몇분 뒤 경찰이 도착했으나 이들 품목이 사라진 뒤였다고 서식스 경찰 대변인이 전했다. 경찰은 가로 4m, 세로 4m 크기의 방안을 샅샅이 뒤져 도둑들이 떨어뜨린 실마리가 없는지 찾고 있다고 했다. 수사 관계자는 범행 몇 시간 전에 아룬델 궁에 있으면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이들이 있다면 경찰에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문제의 품목들을 처분하려는 제안을 받는다면 즉각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메리 여왕은 비운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었다. 1542년 린리스고 궁전에서 태어난 지 엿새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왕위를 계승했다. 6년 뒤 프랑스로 건너갔고 스코틀랜드는 여러 섭정들이 통치했다. 1558년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동맹을 위해 프랑수아와 정략 결혼해 프랑스 왕비가 되었으나 일년 만에 프랑수아가 세상을 떠나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1561년 스코틀랜드를 직접 다스리기 시작했지만 6년의 격변기를 거쳐야 했다. 신교와 구교의 대립이 격렬했는데 귀족들은 국왕을 보좌하기 보다 개인 세력의 확대에 더 골몰했다. 1565년 단리 백작과의 결혼, 1567년 보스월과의 결혼에 모두 실패해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한 스코틀랜드 귀족들로부터도 외면 당했다. 24세 나이에 여왕 자리에서 쫓겨났다. 왕좌에 복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실패한 뒤 잉글랜드로 달아나 사촌인 엘리자베스 1세의 보호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한때 엘리자베스의 적통임을 주장했고, 영국 가톨릭도 합당한 주장이라고 받아들였다. 스코틀랜드는 신교와 구교의 대립이 격렬했으며, 귀족들은 국왕을 보좌하기 보다 개인 세력의 확대에 더 골몰했다. 1565년 단리 백작과의 결혼, 1567년 보스월과의 결혼에 모두 실패해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한 스코틀랜드 귀족들로부터도 외면 당했다. 날씬한 몸매, 금발에 호박색 눈을 가진 뛰어난 미모에다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러나 현명하지 못한 결혼과 정치적 조치로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반란을 유발했으며, 잉글랜드의 왕권을 위협하는 로마가톨릭교도라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1578년 퇴위하고 작은 섬에 유폐됐다. 메리는 부당한 감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1587년 포더링헤이 성에서 처형당하며 한 많은 44년 삶을 접었다. 아들 제임스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에 올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7년 전과는 다르다… 분리독립 목소리 커진 스코틀랜드

    7년 전과는 다르다… 분리독립 목소리 커진 스코틀랜드

    선거 이긴 스터전, 존슨 총리와 통화“분리독립 주민투표 이제 시기의 문제” 7년 전엔 찬성 45%·반대 55%로 부결 브렉시트 이후 스코틀랜드 경제 타격 분리독립 후 독자적인 EU 가입 추진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2014년 9월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투표가 찬성 44.7%, 반대 55.3%로 부결된 지 7년 만이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최우선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우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지난 6일(현지시간) 치른 스코틀랜드 지방선거에서 총 129석 중 과반에 한 석 모자란 64석을 확보했다.●영국 사법부, 분리독립 투표 여부 결정할 듯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의 논쟁 구도는 7년 전과 닮았다. SNP는 요구하고, 영국 정부는 난색을 표하는 중이다. SNP 대표이자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니컬라 스터전은 9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의 통화에서 “스코틀랜드의 두 번째 분리독립 주민투표의 쟁점은 이제 실시할지 여부가 아니라 언제 실시할지 시기의 문제”라며 독립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2년 뒤인 2023년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게 스터전의 공약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독립 관련 논의에 질색했던 7년 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처럼 존슨 총리는 이날 통화에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존슨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314년 연합이 유지되는 현재 상황이 양쪽에 모두 좋은 일”이라면서 “코로나19 백신 수급 국면에서도 대규모 백신을 조달할 수 있는 영국 정부의 역량 덕분에 스코틀랜드가 혜택을 입지 않았느냐”고 설득했다. 존슨은 영토 문제에 관한 투표는 최소 한 세대(30년)가 지난 뒤 하는 게 혼란이 덜하다는 입장 또한 밝혀 왔다. 존슨 총리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실시를 반대한다면 사안은 영국 사법부에서 다루게 된다. 그런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병합이 ‘피 흘림 없이’ 합의로 이뤄진 역사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국민투표 청원을 영국 사법부가 수용하지 않을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코틀랜드 왕국은 834년에 성립됐다. 1296년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침공했지만, 두 나라의 전쟁은 1328년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보장하는 조약을 체결하며 마무리됐다. 그러나 1603년 스코틀랜드 국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면서 두 나라 왕실이 통합됐고, 이후 1707년 스코틀랜드 의회가 영국 의회에 흡수되는 역사를 겪었다. 문화와 기질이 다른 두 왕국이 합의와 조약을 통해 합쳐진 뒤 스코틀랜드 독립 논의는 영국이 패권을 쥔 시기엔 잠잠하다가도 영국 경제가 불황을 겪으면 곧 다시 제기돼 왔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에 비해 인구가 적고 산업 발달이 더딘 곳으로 분류되던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위상은 1970년대 북해유전구가 발견되면서 달라졌다. 만일 독립한다면 영국이 통제하는 북해유전은 스코틀랜드의 몫이 된다. 분리독립 뒤 스코틀랜드 몫의 ‘당근’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올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정식 발효되면서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스코틀랜드 독자적인 EU 가입’이란 다른 수준의 이야기로 비화되게 됐다.●EU 선택할까, 영국 선택할까 스코틀랜드 주민들의 분리독립 지지율은 SNP의 의석수 추이에 따라 가늠해 볼 수 있다. 1934년 스코틀랜드민족연맹(SNL)과 스코틀랜드민족정당(NPS)이 통합해 탄생한 SNP는 EU 탄생 전까지 영국과 EU 양쪽으로부터의 독립, 즉 이중독립을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 내 EU 가입 찬성이 우세해진 1980년대 후반부터 EU에 일단 가입해 유럽 통합의 혜택을 입는 동시에 이를 지렛대 삼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자는 ‘EU 내 독립’ 기조가 SNP의 주요 목표가 됐다. 결국 1997년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설치를 계기로 성장하기 시작해 2011년 자치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SNP는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를 관철시켰고, 이 투표를 기회로 SNP 지지자 규합에 본격 나설 수 있었다. 2015년 영국 총선에서 SNP는 5.3%를 득표해 사상 최다석인 59석을 확보했다. SNP의 의석수는 2017년 39석으로 줄었지만, 지난 6일 지방선거에서 다시 자치의회를 장악하며 스코틀랜드 지역에서의 건재함을 알렸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와 브렉시트 투표는 2010년대 중반 영국의 모든 이슈를 삼킨 ‘블랙홀’과 같은 정치 이벤트였다. 정치·외교·사회·경제 체계 전반을 아우르는 내용의 투표였고, 브렉시트의 경우 찬성 투표 이후에도 수년간의 후속 협상이 필요했다. 지금은 두 투표 중 브렉시트는 실현됐고,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EU 내 독립’을 줄곧 주장해 온 SNP 관점에서 보자면 얻은 게 없는 상황이다. EU에는 잔류하지 못했고, 영국에는 소속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투표 당시 스코틀랜드 지역에서의 찬성 비중은 38.0%, 반대 비중은 62.0%로 브렉시트는 스코틀랜드가 원하지 않은 길이었다. ●스코틀랜드 독립 논의, 영국 경제 악영향 브렉시트 직후 비명이 먼저 터져 나온 곳 중 한 곳 역시 스코틀랜드였다. 물론 브렉시트 직후 EU로의 통관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직격탄을 입은 지역은 유럽으로의 물류 관문인 도버항이다. 최근엔 도버해협에 위치한 저지섬 주변에서 영국과 프랑스 간 조업권 분쟁이 발생, 영국 해군 함정 2척이 파견되는 대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 지역들에 가렸지만 스코틀랜드의 수산·낙동 사업도 타격을 입었다. 서류 검토 시간이 길어져 통관이 걸핏하면 지연됨에 따라 상품 가치가 떨어져 수산물·어패류·낙농제품 수출 기업들의 피해가 막대했다. 브렉시트 직후인 지난 1월 영국에서 EU로 수출하던 해산 물량은 1년 전에 비해 83%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었다. 금융·공업이 발달한 잉글랜드 지역이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되는 지역인 반면 스코틀랜드는 주변 아일랜드 등지로 젊은 노동력이 유출이 활발한 지역이라는 점도 두 지역 간 이해관계가 갈리는 지점이다. 2년여 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이 성사될지 여부를 벌써 점쳐 보기엔 너무 이르다고 해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둘러싼 논쟁이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점화된 점은 분명하다. 투자금융업계는 논의가 시작된 것 자체가 영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악재가 된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인 지난 4일 기사에서 “불확실성과 혼란이 커진다는 점에서 스코틀랜드 독립 논의는 브렉시트 이상으로 영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여지가 크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 이후 혹시나 영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편다면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인 에든버러에 본점을 둔 은행도 지원 대상이 될지,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면 새로 탄생할 독립 스코틀랜드가 영국 국채의 얼마를 책임지게 될지,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면 이 나라는 유로화 또는 새로운 화폐를 쓸지 등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고민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일단 지방선거로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논의는 촉발됐고, 의회정치의 종주국인 영국은 과거처럼 ‘피 흘림 없이’ 합의와 사법부 결정과 투표로 문제를 풀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브렉시트에 이어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논쟁까지 민주적인 절차를 갖췄다고 파국적 결론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영국 정치가 또다시 보여 줄 전망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무게만 10㎏ 역대급 英 금화 공개…가치 10억원 이상

    무게만 10㎏ 역대급 英 금화 공개…가치 10억원 이상

    영국왕립조폐국 ‘더 로열 민트’가 1135년 조폐 역사상 최대 크기의 금화를 선보였다. 29일 데일리메일은 영국 조폐국이 지름 20㎝, 무게 10㎏짜리 거대 금화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10㎏이면 일반 50펜스 동전 무게의 1250배 수준이다. 1만 파운드(약 1544만 원)짜리 금화는 순도 99.9%를 자랑하는 프루프(Proof)급이다. 프루프급 주화란 먼지가 없는 특별한 작업공간에서 낱장 단위로 압인되고(일반주화의 경우 자동화기기로 대량 압인), 엄격한 개별 검수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무결점 최고급 주화를 말한다.해당 금화는 전 세계 동전수집가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은 ‘퀸스 비스트’ 시리즈의 완결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국왕립조폐국은 2016년 잉글랜드의 사자를 시작으로 올해 리치먼드의 화이트 그레이하운드까지 ‘퀸스 비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기념주화 10개를 차례로 선보였다. ‘퀸스 비스트’는 영국 여왕의 수호 동물을 뜻한다. 잉글랜드의 사자, 에드워드 3세의 그리핀, 클라렌스의 검은 황소, 웨일스의 붉은 용, 스코틀랜드의 유니콘 등 왕실 계보와 연관있는 유력 가문의 상징 동물 10마리로 구성되어 있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이 열렸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입구에도 퀸스 비스트를 본떠 만든 수호동물 동상이 설치된 바 있다.앞선 10개의 주화와 달리 이번에 공개된 금화는 퀸스 비스트 전체를 아우른다. 지름 20㎝짜리 금화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중심으로 퀸즈 비스트 10마리가 모두 새겨져 있다. 그 가치는 70만 파운드, 한화 약 10억 800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 시간만 400시간이 소요됐다. 영국왕립조폐국 관계자는 이번 금화가 조폐국에서 만든 주화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조폐국의 전문성과 장인 정신, 기술력을 입증한다고 자랑했다. 이어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기술과 현대 최신 기술을 결합해 만든 독특한 예술 작품이다. 새로운 기준을 설정했다”고 평가했다.한편 영국왕립조폐국의 2019~2020년 귀금속 부문 매출은 직전 기간 대비 46% 증가한 3억5690만 파운드(약 5524억 8000만 원)를 기록했다. 특히 코로나19 함께 귀금속 수요가 전례 없이 증가했다. 금에 굶주린 투자자와 수집가에 힘입어 팬데믹 내내 귀금속 인기가 지속됐다는 게 조폐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동전 무게가 무려 10㎏…英 조폐 역사상 최대 금화 공개

    동전 무게가 무려 10㎏…英 조폐 역사상 최대 금화 공개

    영국왕립조폐국 ‘더 로열 민트’가 1135년 조폐 역사상 최대 크기의 금화를 선보였다. 29일 데일리메일은 영국 조폐국이 지름 20㎝, 무게 10㎏짜리 거대 금화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10㎏이면 일반 50펜스 동전 무게의 1250배 수준이다. 1만 파운드(약 1544만 원)짜리 금화는 순도 99.9%를 자랑하는 프루프(Proof)급이다. 프루프급 주화란 먼지가 없는 특별한 작업공간에서 낱장 단위로 압인되고(일반주화의 경우 자동화기기로 대량 압인), 엄격한 개별 검수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무결점 최고급 주화를 말한다.해당 금화는 또 전 세계 동전수집가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은 ‘퀸스 비스트’ 시리즈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영국왕립조폐국은 2016년 잉글랜드의 사자를 시작으로 올해 리치먼드의 화이트 그레이하운드까지 ‘퀸스 비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기념주화 10개를 차례로 선보였다. ‘퀸스 비스트’는 영국 여왕의 수호 동물을 뜻한다. 잉글랜드의 사자, 에드워드 3세의 그리핀, 클라렌스의 검은 황소, 웨일스의 붉은 용, 스코틀랜드의 유니콘 등 왕실 계보와 연관있는 유력 가문의 상징 동물 10마리로 구성되어 있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이 열렸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입구에도 퀸스 비스트를 본떠 만든 수호동물 동상이 설치된 바 있다.앞선 10개의 주화와 달리 이번에 공개된 금화는 퀸스 비스트 전체를 아우른다. 지름 20㎝짜리 금화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중심으로 퀸즈 비스트 10마리가 모두 새겨져 있다. 그 가치는 70만 파운드, 한화 약 10억 800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왕립조폐국 관계자는 이번 금화가 조폐국에서 만든 주화 가운데 최대 규모이며, 조폐국의 전문성과 장인 정신, 기술력을 입증한다고 자랑했다. 이어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기술과 현대 최신 기술을 결합해 만든 독특한 예술 작품이다. 새로운 기준을 설정했다”고 평가했다.한편 영국왕립조폐국의 2019~2020년 귀금속 부문 매출은 직전 기간 대비 46% 증가한 3억5690만 파운드(약 5524억 8000만 원)를 기록했다. 특히 코로나19 함께 귀금속 수요가 전례 없이 증가했다. 금에 굶주린 투자자와 수집가에 힘입어 팬데믹 내내 귀금속 인기가 지속됐다는 게 조폐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물거품처럼 비누향 걷고 조각들로 그려낸 조각

    물거품처럼 비누향 걷고 조각들로 그려낸 조각

    “오랫동안 비누 조각을 하다 보니 비누가 아닌 다른 재료 그리고 조각적이지 않은 작업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컸어요. 한 번도 안 해 본 것에 대한 새로운 실험의 결과물을 펼쳐 보일 수 있어 기쁩니다.”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신미경 작가는 비누로 서양 고전 조각상이나 불상, 도자기 등 박물관 유물을 똑같이 모방하는 ‘비누 조각’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단단히 구축한 예술가다. 대리석이나 세라믹 등 원본 재료의 질감을 완벽히 재현하지만 물에 닿으면 녹아 없어지는 비누의 속성을 통해 유물의 권위와 가치를 재해석하는 그의 ‘번역’ 프로젝트는 영국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 네덜란드 프린세스호프 미술관,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등 유럽 미술관에 선보여 각광받았다. 서울 마포구 씨알콜렉티브에서 열리는 개인전 ‘앱스트랙트 매터스’(Abstract Matters)에선 비누 향이 사라졌다. 신작 50여점은 전시장 바닥에 놓이는 대신 회화처럼 전부 벽에 걸렸다. ‘신미경 작가의 전시회 맞나’ 싶을 정도로 확연한 변화다. 그도 이런 상황이 흥미로운지 “비누 향이 안 나는 첫 전시”라며 호탕하게 웃었다.비누 대신 택한 재료는 제스모나이트. 인체에 유해한 기존 레진 제품의 대안으로 개발된 수성 아크릴 레진으로 돌, 금속, 플라스틱 같은 다양한 질감과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신소재다. 제스모나이트에 돌가루, 철가루, 금박 등을 섞어 거푸집 역할을 하는 폐고무판, 스티로폼, 유리판 안쪽을 채운 뒤 재료가 굳으면 떼어 내는 방식이다. 판화처럼 울퉁불퉁한 표면이 고스란히 담기고, 예상치 못했던 무늬와 형상이 드러난다. 작가는 “비누 조각은 이미 만들어진 대상을 앞에 두고 의도에 따라 작업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지만 이번 작업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우연성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면서 “즉흥적이고 추상적인 회화의 방식으로 평면 조각이라는 새로운 조형예술을 실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에 ‘추상’(앱스트랙트)이 들어간 이유다. 유물과 동시대적인 문화를 아우르는 주제 의식은 여전하다. ‘번역’ 프로젝트가 박물관의 박제화된 권위를 해체하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신소재를 활용해 오랜 시간이 응축된 것 같은 유물의 느낌을 내려고 한 점이 흥미롭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물보다는 과거에 생성돼 오랜 역사가 담긴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애썼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우주 행성이나 고구려 고분벽화 같은 분위기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서울대 조소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8년 런던 슬레이드스쿨에서 조소를 공부한 작가는 비누 외에도 세라믹, 유리 조각에 관심을 기울이다 2017년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세라믹&유리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비누가 아닌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여서 의미가 더 크다”는 그는 “계속 도전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작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시는 5월 29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비누 향 안 나는 첫 전시”…‘비누 조각가’ 신미경의 새로운 도전

    “비누 향 안 나는 첫 전시”…‘비누 조각가’ 신미경의 새로운 도전

    “오랫동안 비누 조각을 하다 보니 비누가 아닌 다른 재료 그리고 조각적이지 않은 작업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컸어요. 한 번도 안 해 본 것에 대한 새로운 실험의 결과물을 펼쳐 보일 수 있어 기쁩니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신미경 작가는 비누로 서양 고전 조각상이나 불상, 도자기 등 박물관 유물을 똑같이 모방하는 ‘비누 조각’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단단히 구축한 예술가다. 대리석이나 세라믹 등 원본 재료의 질감을 완벽히 재현하지만 물에 닿으면 녹아 없어지는 비누의 속성을 통해 유물의 권위와 가치를 재해석하는 그의 ‘번역’ 프로젝트는 영국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 네덜란드 프린세스호프 미술관,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등 유럽 미술관에 선보여 각광받았다. 서울 마포구 씨알콜렉티브에서 열리는 개인전 ‘앱스트랙트 매터스’(Abstract Matters)에선 비누 향이 사라졌다. 신작 50여점은 전시장 바닥에 놓이는 대신 회화처럼 전부 벽에 걸렸다. ‘신미경 작가의 전시회 맞나’ 싶을 정도로 확연한 변화다. 그도 이런 상황이 흥미로운지 “비누 향이 안 나는 첫 전시”라며 호탕하게 웃었다.비누 대신 택한 재료는 제스모나이트. 인체에 유해한 기존 레진 제품의 대안으로 개발된 수성 아크릴 레진으로 돌, 금속, 플라스틱 같은 다양한 질감과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신소재다. 제스모나이트에 돌가루, 철가루, 금박 등을 섞어 거푸집 역할을 하는 폐고무판, 스티로폼, 유리판 안쪽을 채운 뒤 재료가 굳으면 떼어 내는 방식이다. 판화처럼 울퉁불퉁한 표면이 고스란히 담기고, 예상치 못했던 무늬와 형상이 드러난다. 작가는 “비누 조각은 이미 만들어진 대상을 앞에 두고 의도에 따라 작업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지만 이번 작업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우연성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면서 “즉흥적이고 추상적인 회화의 방식으로 평면 조각이라는 새로운 조형예술을 실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에 ‘추상’(앱스트랙트)이 들어간 이유다.유물과 동시대적인 문화를 아우르는 주제 의식은 여전하다. ‘번역’ 프로젝트가 박물관의 박제화된 권위를 해체하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신소재를 활용해 오랜 시간이 응축된 것 같은 유물의 느낌을 내려고 한 점이 흥미롭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물보다는 과거에 생성돼 오랜 역사가 담긴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애썼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우주 행성이나 고구려 고분벽화 같은 분위기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서울대 조소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8년 런던 슬레이드스쿨에서 조소를 공부한 작가는 비누 외에도 세라믹, 유리 조각에 관심을 기울이다 2017년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세라믹&유리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비누가 아닌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여서 의미가 더 크다”는 그는 “계속 도전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작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시는 5월 29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필립공의 피 한 방울, 러시아 마지막 차르 일가의 최후 규명에 도움

    필립공의 피 한 방울, 러시아 마지막 차르 일가의 최후 규명에 도움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영국 에딘버러 공작인 필립공의 DNA가 러시아 혁명 와중에 잔인하게 처형된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최후를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로마노프 왕조의 비극적인 최후는 많은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였는데 1991년 7월 시베리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주인 없는 무덤들이 발견되면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니콜라이 2세의 부인 차리나와 그녀의 자녀들, 수행원들의 무덤인 것으로 의심했다. 그런데 1918년 7월 17일 볼세비키 군에 의해 처형됐다고 알려진 인물은 모두 11명이었는데 이곳에 묻힌 유해는 아홉 구 뿐이어서 이상한 일이었다. 차르 니콜라이 2세와 황후인 차리나 알렉산드라, 황태자 알렉세이, 올가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타샤 등 네 공주, 주치의, 간호사, 두 시종이었다. 나머지 두 구의 유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라진 두 구의 유해는 누구일지 규명해야 했다. 필립공은 1921년 6월 10일 그리스 고르푸 섬에서 태어났다. 그리스 왕자이자 덴마크 왕자였던 안드레아스와 바텐베르크 가문의 앨리스 공주를 부모로 태어났다. 그리스 왕위계승 서열 6위.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는 그리스 게오르기오스 1세의 4남이었고, 게오르기오스 암살 후 필립공의 큰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가 왕위를 계승한 상태였다. 할머니는 러시아 혁명 때 처형된 차리나 알렉산드라의 맏언니 빅토리아 마운트배튼이었다. 할아버지는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9세다. 콘스탄티노스가 전권을 장악하자 필리포스(필립공의 그리스 이름) 가족은 망명해야 했다. 어머니 앨리스 왕자비는 자신의 어머니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의 외가인 영국 국왕 조지 5세에게 도움을 청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인 조지 5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자 자신의 고종사촌 여동생 알릭스의 시가인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영국으로 망명 의사를 타진한 것을 의회 눈치를 보느라 미적거리다 그들을 죽게 만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리스에서 철수하는 영국 군함에 필립공 가족을 피신할 수 있게 했다. 생후 18개월의 필립 공은 상자에 들어간 채로 탈출했다.필립공은 1993년 5㎤의 혈액 샘플을 제공해 차리나와 네 공주의 미토콘트리아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줬다. 미토콘트리아 DNA는 모계 혈통으로 유전되는데 할머니 친척 가운데 필립공이 가장 가까운 생존 친척이었다. ‘포렌식 사이언스 서비스’를 이끌던 피터 길 박사가 혈액 샘플을 제공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평소 소탈하고 격식 없는 발언으로 유명한 공은 러시아를 한 번쯤 가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러시아에 엄청 가보고 싶다. 그 개XX들이 우리 가족의 절반을 도륙했지만”이라고 답한 것으로 보도됐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결혼했을 때도 신랑 측 가족이 거의 없었던 그는 가족들의 사연을 무척 알고 싶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사라진 두 구의 주인이 알렉세이 황태자와 아나스타샤 공주임을 밝혀내는 데도 그의 혈액 샘플은 큰 도움이 됐다.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볼세비키 군인들의 기록에 두 사람의 주검은 곧바로 화장해 유골로 흩뿌렸다는 것과도 일치했다. 1998년 러시아 정교회는 로마노프 왕실 가족의 최후에 관한 과학적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장례식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에서 성대하게 치렀고, 보리스 옐친 대통령 등이 추모했다. 그리고 20년 뒤인 2018년 영국 과학미술관은 처형 100주기를 맞아 이런 내용을 소개하는 전시회 ‘마지막 차르-피와 혁명’를 열었다. 그 전까지 과학자들끼리만 알고 있던 내용을 처음으로 일반 대중에 상세하게 소개했는데 처형 당시 주치의의 틀니, 황후 차리나의 다이아몬드 귀걸이 한쪽, 총탄 구멍이 난 인형, 왕가 자녀들의 영국인 가정교사 사진 앨범, 왕가의 개인 일기들, 차르가 황후에게 선물한 ‘파브레제의 달걀’ 보석 등이 함께 전시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기사 작성에 도움이 된 블로그 글 https://blog.naver.com/ayasofya/130002066556
  • 여왕 곁을 74년 지킨 필립공 별세에 “꽃 바치러 오지 말아달라”

    여왕 곁을 74년 지킨 필립공 별세에 “꽃 바치러 오지 말아달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이 100세 생일을 두 달 정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버킹엄궁에 몰려들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여왕의 곁을 73년 넘게 지킨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한 헌화 물결을 마다하지 않을텐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이라 버킹엄궁은 특별히 헌화를 사양하며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발표했다. 에든버러 공작인 필립 공이 9일(현지시간) 오전 사망했다는 소식이 정오쯤 알려지자 BBC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국가를 틀었다. ITV도 오후 방송 일정을 모두 변경했다. 곧 버킹엄궁 밖에는 공식 발표문을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짓기 시작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영국 왕실은 전통에 따라 버킹엄궁 문에 발표문을 붙여놓는다. 버킹엄궁에는 조기가 내걸렸고 사람들이 헌화하며 슬픔을 표했다. 왕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지켜지지 않을까봐 발표문을 떼어내야 했다. 정부는 모이지 말라고 공식 권고문을 발표했고 말을 탄 경찰들은 버킹엄궁과 고인이 영면한 윈저궁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지 않도록 경계했다. 런던 핌리코에서 자전거를 타고 꽃과 “편히 쉬세요”라고 적힌 메모를 두러 왔다는 리아 바르마는 BBC에 “우리나라에 큰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 필립 공 없이는 여왕이 더 다스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참고로 왕위 계승 서열은 부부의 맏아들 찰스(73) 왕세자가 1순위, 그의 맏아들 윌리엄(39) 왕자가 2순위, 그의 맏아들 조지(8) 왕자 순이다. 장례식도 예년에 견줘 아주 작은 규모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소탈한 성품이었던 필립 공은 조문객을 800명 정도로 추려놓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방역 수칙은 30명 이상 모이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왕실의 권위를 따질 때 수칙대로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800명을 고수하긴 어려워 왕실의 고민이 상당할 것 같다. 지난해 왕실과 결별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손자인 해리(37) 왕자가 귀국 채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아내 메간 마클은 출산을 앞둬 동행 여부가 불확실하다. 왕실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해리 왕자는 할아버지와 아주 가까워 다른 이들과 서먹한 모습이 연출되더라도 장례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관측이다. 영국 정치권은 여야 구분 없이 한 목소리로 애도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여왕의 곁을 지킨 필립 공을 치하하면서 “비범한 삶을 살았다”고 밝혔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영국은 비범한 공복을 잃었다”며 “그는 2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 해군으로서, 이후엔 에든버러 공작으로서 나라에 일생을 헌신했다”고 말했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수반도 “여왕과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고 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필립공이 여왕을 오랜 세월 놀랍고 꾸준하게 지지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선견지명과 의지와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서도 기억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도 필립 공을 만날 때면 인생을 즐기는 모습과 모든 배경과 계층의 사람들과도 소통하는 능력에 늘 놀랐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호주, 인도, 몰타 등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주축을 이룬 영연방 회원국과 한때 한지붕 아래 살았던 유럽연합(EU)에서 애도의 메시지가 잇달았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우리가 다시는 볼 수 없을 세대를 구현”한 필립 공의 업적을 치켜세우며 “영연방 가족은 필립공을 잃은 슬픔과 그의 삶에 감사를 함께한다”고 말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뛰어난 군 복무 경력을 갖고 있으며 지역사회를 위해 선봉에 섰던 공의 영혼이 “평화롭게 잠들길 바란다”고 밝혔다. 로버트 아벨라 몰타 총리는 해군으로 복무했던 몰타를 고향으로 여기며 자주 찾았던 필립 공의 별세를 안타까워하며 “우리 국민은 항상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매우 슬픈 날”이라며 “여왕 폐하와 왕실, 영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고 싶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부 장관은 “조국을 위해 오래 봉사한” 필립 공의 빈 자리를 슬퍼하며 “왕실과 영연방 국민, 그리고 그를 끔찍이 사랑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적었다.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은 필립 공을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훌륭한 친구였다”고 기억하며 “조국을 향한 그의 봉사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이 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필립 공은 영국을 위엄있게 대표하며 군주에게 무한한 힘과 지지를 가져다줬다”며 “놀라운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공에게 경의를 표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요르단 ‘왕자의 난’ 이틀 만에 봉합, 사우디 어떤 역할 했길래

    요르단 ‘왕자의 난’ 이틀 만에 봉합, 사우디 어떤 역할 했길래

    중동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로 손꼽히는 요르단의 정정 불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웃 나라들과 멀리 미국의 막후 중재가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의 이복동생 함자 왕자가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쿠데타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가택연금에 처해졌는데 이틀 만에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봉합되고 있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일단 요르단 왕실의 내홍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지만 곧이 들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압둘라 2세 국왕은 7일 성명을 내 “함자 왕자는 내 보호 아래 있으며 이번 사태로 상당한 충격을 받고 가슴이 아팠지만 이제 왕국은 안정되고 안전하다”고 밝혔다. 왕실이 5일 공개한 함자 왕자의 서한에는 “나에 대한 처분을 국왕 폐하에게 맡긴다”며 “난 사랑하는 요르단 헌법에 계속해서 헌신하고 국왕 폐하와 그의 (아들인) 왕세자를 돕겠다”고 했다. 함자 왕자의 변호인도 그가 충성 서약서를 썼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영국 BBC에 동영상 두 편을 보내 “합참의장이 찾아와 집 밖에 나가지 말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말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한 지 이틀 만이다. 요르단 정부는 “함자 왕자가 외세와 결탁해 국가 안정을 저해하는 행동을 했다”며 그의 측근 15명을 체포하고 그를 가택연금에 처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접촉하지 않았느냐는 의심도 제기됐고, 국왕이 공개 비판한 부족들의 회의에 참석한 것이 빌미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1999년 압둘라 2세 즉위 이후 두드러진 권력 다툼이 없었던 왕실에서 불협화음이 노출되자 왕실 어른들이 서둘러 중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압둘라 2세의 삼촌인 하산 왕자의 중재가 결정적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1952년 즉위한 선왕(先王) 후세인 1세는 1965년 동생 하산 왕자를 왕세제로 지명했다. 하지만 후세인 1세가 1999년 암으로 별세하기 3주 전 하산 왕세제의 왕위 승계권을 빼앗아 아들인 압둘라 2세를 왕세자로 책봉했다. 하산 왕자는 34년간 기다린 왕위를 눈앞에서 빼앗겼지만 입을 굳게 다물고 형의 뜻을 따랐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하산 왕자가 조카들인 압둘라 2세와 함자 왕자의 갈등 조율에 나서자 모두 수긍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왕은 네 부인과 결혼해 11명의 자녀를 뒀다. 두 번째 부인인 영국인 무나 왕비와의 사이에 큰 아들이 압둘라 2세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함자 왕세제는 네 번째 미국인 부인인 누르 왕비와의 사이에 낳은 큰아들이다. 이복형은 2004년 이복동생 함자의 왕세제 지위를 박탈했다. 왕실이 공개적으로 천명하지 않았지만 압둘라 2세 국왕이 함자 왕자를 처벌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왕실이 이날 성명을 통해 “함자 왕자는 요르단과 아랍 세계에 기여가 높은 인물로서 기후변화 대응 이슈에 대해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힌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왕실 내부의 조율도 있었지만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우방이 일제히 압둘라 2세 지지를 선언한 것도 함자 왕자 운신의 폭을 좁힌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요르단 왕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고 미국과 동맹의 한 축으로서 중동지역의 갈등을 중재하거나 봉합해 온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3일 체포된 인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요르단 왕실법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제의 경제자문인 바심 아와달라이다. 두 나라 복수 국적자이며 사우디의 고위급 인사가 망라된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포럼’의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사우디 외무장관이 이끈 사절단이 암만까지 달려와 아와달라를 데리고 리야드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요르단을 아예 떠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사우디 관리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아와달라는 사실 국제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빈 살만 왕세제와 막역할 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UAE)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무함마드 빈 자예드 왕세제와도 가깝다. 그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주변의 팔레스타인 토지를 UAE가 사들이는 데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나라 국경은 척박한 사막으로 싸여 있지만 이들은 유목 부족일 때부터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국경 근처 베두인 부족들은 수시로 사우디 영토를 넘나들었다. 아랍의 봄 봉기가 일어났을 때도 수니파의 두 맹주국은 서로를 챙기며 버텨냈다. 이스라엘이 요르단의 정정 불안을 바란다고 보기도 쉽지 않다. 1994년 중동 평화협정도 요르단 왕실의 중재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웃 나라들이 모두 꺼림칙해 하던 이라크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요르단은 천연자원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경제 토대에 충격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쳐 관광산업이 타격을 입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지지율도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하셰미테 왕실이 무너지면 지역 전체가 격랑에 휘말릴 여지가 있다. 어쩌면 알카에다와 이슬람 국가(IS)는 그토록 바라던 일이 벌어질까 잔뜩 기대했다가 입맛을 다시고 있을지 모른다고 BBC는 지적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내달부터 경주시 양북면→ ‘문무대왕면‘으로 명칭 변경

    내달부터 경주시 양북면→ ‘문무대왕면‘으로 명칭 변경

    경북 경주시는 다음 달 1일부터 양북면 이름을 ‘문무대왕면’으로 변경한다고 28일 밝혔다. 따라서 양북면 행정 명칭은 물론 동경주농협, 양북우체국 등도 문무대왕농협, 문무대왕우체국 등으로 이름이 바뀐다. 새 이름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대왕에서 따왔다. 양북면에는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과 문무대왕이 왜병을 막기 위해 지었던 호국사찰 감은사 터(국보 제112호)가 있다. 양북면은 조선 시대까지 감포읍과 양남면을 합친 이름인 동해면으로 불렸지만,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단순한 방위 구분에 따른 이름인 양북면이 됐다. 시가 지난해 2월부터 주민여론 수렴 등을 거쳐 같은 해 10월 주민 설문조사를 한 결과 1288가구 중 1137가구(88.3%)가 명칭 변경에 찬성했다. 새 명칭을 제안한 주민 1008명 가운데 771명(76.5%)이 문무대왕면을 선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 관계자는 “행정 명칭 변경으로 양북면이 지역 고유성과 역사성을 띤 지역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말했다. 신라 30대 국왕인 문무왕은 나당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통일을 완수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여러 신하들이 (왕의)유언에 따라 동해 어귀 큰 바위에 장사 지냈다. 민간에서 전하기를 ‘임금이 화하여 용이 되었다’고 하고, 그 바위를 가리켜 대왕석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 역시 문무왕이 죽어서도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동해 바다에 묻히길 원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6600만 년 전 대멸종서도 악어 생존한 비결은 ‘빠른 진화’

    [핵잼 사이언스] 6600만 년 전 대멸종서도 악어 생존한 비결은 ‘빠른 진화’

    악어는 6600만 년 전 소행성 충돌로 공룡을 멸종하게 한 대멸종 사건 이후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이는 과학계를 오랫동안 곤혹스럽게 한 수수께끼였지만, 해답은 악어 몸에 있으며 모든 것은 결국 ‘재빠른 진화’(snappy evolution)로 이어진다고 과학자들이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 하버드대와 영국 브리스틀대 등 국제연구진은 새로운 연구를 통해 악어는 빠른 진화를 겪어 육지와 바다 모두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고 제안했다. 연구 공동저자인 스테파니 피어스 하버드대 부교수는 “고대 악어는 여러 형태로 출현했다. 육지를 뛰어다니거나 물속을 헤엄쳤고 물고기를 낚아채거나 풀을 뜯는 생활에도 적응했다”면서 “연구는 악어가 빠른 진화를 통해 몇백만 년간 새로운 생태계의 틈새에서 번성하고 먹이사슬 상위권에서 군림할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이 연구에서 이들 연구자는 지난 2억3000만 년간 멸종한 고대 악어 200여 마리와 오늘날 악어들의 두개골과 턱뼈를 자세히 조사했다. 이들의 뼈가 종마다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어 집단이 얼마나 빨리 모습을 바꿨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그 결과, 돌고래처럼 생긴 탈라토수쿠스류와 육지를 뛰어다닌 노토수쿠스류 등 고대 악어 몇 종은 몇백만 년간 매우 빠르게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종은 또 두개골과 턱뼈가 크게 변해 때때로 포유류에 가까운 상태가 되기도 했다.반면 오늘날 크로커다일과 엘리게이터 그리고 가비알 악어의 진화가 더뎠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는 때때로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이들 악어가 지난 8000만 년간 꾸준히 진화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연구 주저자인 토머스 스텁스 브리스틀대 선임연구원은 “오늘날 악어와 멸종 악어는 생물 다양성의 성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집단”이라면서 “현재 존재하는 악어 26종은 대부분 매우 비슷하게 생겼지만 몇백 개의 화석종은 섭식 기관에 놀라운 변화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연구저자인 마이클 벤턴 브리스틀대 교수는 “오늘날 악어가 왜 이렇게 적응하는데 한계가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면서 “만일 우리가 오늘날 악어만 봤다면 악어는 냉혈 동물이거나 해부적인 이유 탓에 삶의 방식에 제한을 받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이런 화석 기록은 악어의 놀라운 적응 능력을 보여준다”면서 “아마 악어는 세계의 기후가 지금보다 더 따뜻했을 때만 빠르게 진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영국왕립학회 생명과학 저널인 ‘영국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 최신호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물대포부터 최루탄까지… ‘민주화 꿈’ 외치는 태국 현재 상황

    물대포부터 최루탄까지… ‘민주화 꿈’ 외치는 태국 현재 상황

    미얀마에서는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1개월이 훌쩍 넘도록 이어지는 가운데, 국경을 접한 태국에서는 군주제 개혁을 사이에 둔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전날 오후 방콕 시내 왕궁 인근에서는 1000명 가량의 시위대가 모여 군주제 개혁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세상은 달라졌다. 우리도 서방 국가들과 같은 군주제를 원한다”고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시위대는 국왕 초상화 위에 시위대의 주장을 담은 스티커를 붙이는 등 격렬한 시위를 이어갔다. 왕실 모독죄가 적용될 경우 최장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음에도 공개적으로 군주제 개혁 요구가 터져 나오면서 파장이 거세졌다.이에 현지 경찰은 “거리에 있는 자들은 누구든 체포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자 결국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 등을 발사하며 강경진압에 나섰다. 경찰 측은 “시위대에게 미리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으나 통하지 않았다. 또 새총을 이용해 볼트와 너트 같은 것들을 경찰에게 발사했다”면서 “경찰은 적절한 절차에 따라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가디언에 따르면 총 33명이 고무총과 최루탄, 돌 등으로 부상을 입었으며 이 중에는 기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인권변호사들은 시위 과정에서 최소 32명이 구금됐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군주제는 오랫동안 태국에서 신성한 제도로 받아들여졌으며, 왕실을 향한 민중의 비판인 불법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돼 왔다”면서 “많은 사람이 여전히 군주제를 숭배하고 있으며, 태국 사회의 주요 세력인 군대는 군주제 방어를 주요 우선 순위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태국의 군주제 개혁 시위대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출신의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사임과 왕실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또 와치랄롱꼰 국왕이 코로나19와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국민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독일 등 외국에서 머물며 막대한 부를 쌓아왔다고 비난해 왔다. 한 시위 참가자는 “왕실 모독죄를 개혁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에 한발 더 다가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태국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꿈꾸는 미얀마에서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와의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과 인터넷망을 모두 장악한 군부는 시위대를 향한 무자비한 발포를 넘어 조준 사격과 고문 등으로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다. 현재까지 군부의 강경진압 등으로 사망한 미얀마 시민의 수는 2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영국왕실 ‘왕따’였던 메건 마클, 켄싱턴궁 직원 왕따시켰나

    영국왕실 ‘왕따’였던 메건 마클, 켄싱턴궁 직원 왕따시켰나

    영국 해리 왕자와 결혼한 뒤 왕실의 ‘인종 차별’ 발언을 폭로해 큰 논란을 낳은 메건 마클 왕손빈이 자신이 영국 왕실 직원을 괴롭혔다는 보도에 대해 반격에 나섰다.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은 15일 마클이 왕실 직원 괴롭힘에 대한 조사의 증거를 공유해 달라 했다고 보도했다. 마클은 버킹겅궁 측에 어떤 문서나 이메일, 문자 메시지 등 그녀가 왕실 직원을 괴롭혔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마클의 요청은 시아버지인 찰스 왕세자에게 전달됐고, 현재 문서 조사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는 지난 2일 영국 타임스의 보도에 따른 것으로, 당시 보도 내용은 마클이 켄싱턴궁에 해리 왕자와 함께 사는 동안 왕실 직원을 괴롭혔다는 것이었다. 왕실 측은 성명을 통해 타임스의 괴롭힘 의혹 보도에 대해 전직 직원을 포함해 조사를 벌일 것이며, 직장에서의 어떤 괴롭힘이나 학대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왕실은 마클의 직원 괴롭힘 조사를 위해 법률회사 고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더썬은 전했다. 마클은 의혹에 대해 부인했으며, 자신이 따돌림과 왕따의 피해자였다가 공격 대상이 된 것에 대해 매우 슬프다고 대변인을 통해 말했다. 마클은 앞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자선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 지에 대한 모범을 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마클은 미국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의 토크쇼에 출연해 왕실이 흑인 어머니를 둔 자신의 첫째 아들 아치의 피부색이 얼마나 어두울지 염려했다고 폭로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기며, 영국 왕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나우뉴스] 모두가 잊고 있었던 전복 선박 고양이들, 침몰 직전 구사일생

    [나우뉴스] 모두가 잊고 있었던 전복 선박 고양이들, 침몰 직전 구사일생

    태국 침몰 선박에 남겨진 고양이 4마리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일 태국왕립해군은 안다만해 해안에서 전복된 선박에 고양이들이 고립된 사실을 파악하고 구출 작전을 전개했다. 이날 태국 타루타오해양국립공원 아당섬 앞바다에서 어선 한 척이 전복됐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 8명은 현장에 출동한 태국왕립해군에 의해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문제는 기름 유출이었다. 사고 선박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주변 해역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었다.이에 대해 사뚠주 주지사 에카랏 리셴은 “침몰 선박 탱크에서 기름이 누출되기 쉽다. 이로 인해 산호초가 손상되거나 해수면이 오염될 것”이라면서 “관련 기관과 협력해 선주들과 접촉하는 한편, 침몰 선박 잔해를 인양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군도 사고 수습을 위해 사고 해역을 다시 찾았다. 현장에서 기름 유출 여부를 점검하던 해군은 그러나 미처 구하지 못한 ‘생존 선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국왕립해군 항공해안방위사령부 1급 하사관 위치트 푸크텔론은 “침몰 선박 잔해를 수거하고 기름 유출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사고 해역을 관찰하다가, 고양이 몇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을 봤다”고 설명했다. 선원들은 모두 구조했지만, 배에 남은 고양이들은 모두가 깜빡 잊었던 것이다. 해군은 즉각 구조 작전을 펼쳤다. 항공해안방위사령부 작전부대 소속 장교 탓사폰 사이(23)는 “사고 해역에 도착해보니 선박 구조물에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배 뒤쪽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직전이었다. 곧바로 구명조끼를 걸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전했다.허리에 밧줄을 매고 사고 선박에 접근한 장교는 고양이들을 어깨 위에 매달고 15m 정도를 헤엄쳐 위험 해역을 빠져나왔다. 장교는 “만약 모르고 지나쳤다면 고양이들은 죽었을 것”이라면서 “빠르게 구조해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고양이들은 현재 아당섬 옆 리뻬섬에 있는 해군 지휘소에서 구조대원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모두가 잊고 있었던 전복 선박 고양이들, 침몰 직전 구사일생

    모두가 잊고 있었던 전복 선박 고양이들, 침몰 직전 구사일생

    태국 침몰 선박에 남겨진 고양이 4마리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일 태국왕립해군은 안다만해 해안에서 전복된 선박에 고양이들이 고립된 사실을 파악하고 구출 작전을 전개했다. 이날 태국 타루타오해양국립공원 아당섬 앞바다에서 어선 한 척이 전복됐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 8명은 현장에 출동한 태국왕립해군에 의해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문제는 기름 유출이었다. 사고 선박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주변 해역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었다.이에 대해 사뚠주 주지사 에카랏 리셴은 “침몰 선박 탱크에서 기름이 누출되기 쉽다. 이로 인해 산호초가 손상되거나 해수면이 오염될 것”이라면서 “관련 기관과 협력해 선주들과 접촉하는 한편, 침몰 선박 잔해를 인양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군도 사고 수습을 위해 사고 해역을 다시 찾았다. 현장에서 기름 유출 여부를 점검하던 해군은 그러나 미처 구하지 못한 '생존 선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태국왕립해군 항공해안방위사령부 1급 하사관 위치트 푸크텔론은 “침몰 선박 잔해를 수거하고 기름 유출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사고 해역을 관찰하다가, 고양이 몇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을 봤다”고 설명했다. 선원들은 모두 구조했지만, 배에 남은 고양이들은 모두가 깜빡 잊었던 것이다. 해군은 즉각 구조 작전을 펼쳤다. 항공해안방위사령부 작전부대 소속 장교 탓사폰 사이(23)는 “사고 해역에 도착해보니 선박 구조물에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배 뒤쪽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직전이었다. 곧바로 구명조끼를 걸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전했다.허리에 밧줄을 매고 사고 선박에 접근한 장교는 고양이들을 어깨 위에 매달고 15m 정도를 헤엄쳐 위험 해역을 빠져나왔다. 장교는 “만약 모르고 지나쳤다면 고양이들은 죽었을 것”이라면서 “빠르게 구조해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고양이들은 현재 아당섬 옆 리뻬섬에 있는 해군 지휘소에서 구조대원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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