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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국의 공휴일/일본 종교휴일없고 춘분·추분 논다(세계의 사회면)

    ◎미 기념일 요일로… 연휴 많도록 지정/영 복싱데이 집배원·고용원에 선물/유럽­기독교 동서남아­회교 관련 휴일 많아 세계각국의 공휴일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종교관과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이 깔려있다. 또 같은 문화권이면서도 서로 다른 독특한 휴일을 보내기도 한다. ○국왕탄생일도 휴무 가까운 일본은 연간 모두 14일(일요일 제외)을 법정공휴일로 정하고 있다.1월1일 원단을 포함,1월15일 성인의 날,2월11일 건국기념일,4월29일 녹색의 날,9월15일 노인의 날,10월10일 체육의 날,11월3일 문화의 날,11월23일 근로감사의 날등을 매년 경축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는 석가탄신일·크리스마스등 종교와 관련된 휴일이 일체 없는 반면 춘분(3월21일)추분(9월23일)등 계절과 연관된 휴일이 있는 점이 특색이다. 헌법기념일인 5월3일,국민의 날인 5월4일,어린이날인 5월5일은 항상 3일간 연휴여서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적으로 여행객들이 크게 붐비고 있다.국왕생일(12월23일)도 휴일로 정해놓고 있는데 이는 여왕탄생일인 6월13일을 휴일로 정한 홍콩·호주등과 비견할 만하다. 종교와 관련해서는 미주·유럽대륙에서는 기독교와 관련된 휴일이,동·서남아시아에서는 회교와 관련된 기념일이 많은 것이 당연. ○성인 제삿날도 있어 기독교권인 유럽등지에는 11월1일 핼로매스라는 휴일이 있다.「모든 성인의 날」이라는 뜻의 이 날은 기독교성인과 고유의 기념일을 갖지 못한 이들을 제사지내기 위한 날로 「만성절」이라고도 한다. 이 전날(10월31일)은 영국 켈트족의 고유의식인 핼로인데이로 온갖 기괴한 모양의 가면을 쓴 가장무도회가 열리며 선물을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 12월26일에 복싱데이(Bonk Hohday)라는 휴일이 있는데 이날은 은행이 문을 닫는 날이다. 미국의 경우는 모든 공휴일을 날짜가 아닌 요일로 지정해두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가능한한 월요일을 휴일로 지정,연휴가 되도록 배려하고 있는데 워싱턴 탄생기념일은 2월 셋째 월요일,노동절은 9월 첫째 월요일 등으로 정해놓는 식이다. ○일­월 연휴 연4회 물론 7월4일 독립기념일처럼 날짜로 정해놓을 수밖에없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그밖에 미국에는 1월 넷째 일요일인 마틴 루터 킹목사의 탄생기념일,5월 마지막 월요일인 현충일,10월 둘째월요일인 콜럼버스기념일,11월11일의 재향군인의 날등이 휴일로 돼있다. 회교국가에서는 성지순례가 끝나는 12월10일(이슬람력)의 대희생제,단식이 끝난후 3일간 계속되는 라마단,이슬람력 정월에 해당하는 무하르람이 가장 대표적인 명절이다. 태국에서는 불탄일을 전후한 4월초와 4월8일이후 두번째 수요일인 「송크란절」이 최대의 명절로 올해에는 4월14일이 송크란절이다. 대만에서는 11월1일 장개석 전총통생일,9월28일 공자탄생일및 교사의 날등이 중요한 휴일이며 파라과이에서는 우리의 광복절인 8월15일이 「아순시온시 설립기념일」로 휴일로 지정돼있다.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는 3월8일 국제여성의 날,5월1·2일 국제연합의 날도 휴일로 보내고 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1월10일을 마호메트 승천일,8월20일을 마호메트 탄신일로 정해놓았는데 크리스마스도 휴일로 정해놓은 점이 이채롭다.
  • 아라파트,곧 사우디 방문/걸프전후 처음

    【암만 로이터 연합】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지난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초래한 걸프위기로 PLO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처음으로 이번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파드국왕과 회담할 것 같다고 PLO의 한 고위간부가 18일 말했다. 이 PLO간부는 『아라파트 의장이 메카를 순례하겠다는 자신의 요청에 대해 이를 수락하는 사우디아라비아측의 공식서신을 17일 받은뒤 이번주내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파드왕과 회담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 남북국시대(온가족이 함께 읽는 우리역사:26·끝)

    ◎발해는 만주지배한 「한민족국가」/「고구려계승」 주변국인 신라·일본서도 인정/무덤의 양식·숱한 유물 등 고고학서도 입증 신라는 676년 3국을 통일한 뒤 935년 신흥국가인 고려에 항복했다.또 발해는 698년 건국돼 926년 거란에게 망했다. 「남북국시대」는 통일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기간즉 698∼926년의 2백28년 동안을 뜻한다. 우리역사를 파악하는데 있어 이 시기를 「남북국시대」로 규정한 것은 최근 몇년사이의 일이다.이는 발해가 한민족의 국가로 받아들여진 결과이다. 그렇다면 발해가 최근에야 한민족의 국가로 받아들여진 까닭은 무엇인가. 발해가 건국 초부터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으며 신라·일본등 주변국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음은 분명하다. 일본의 역사서인「속일본기」759년 기사에는『고려국왕 대흠무가 국서를 보냈다』는 부분이 나온다.이 때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918년)하기 전으로 고려국왕은 고구려왕을 의미한다. 또 대흠무는 발해의 제3대 문왕(737∼793년)의 이름이다.따라서「속일본기」의 기사는 발해의 문왕이 고구려(고려)의 왕을 자처해 일본에 국서를 보냈고 일본측도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일본 조정이 발해사신을 고구려사신이라고 불렀다든지 발해의 음악을「고려락」으로 표현하는등 일본이 발해를 고구려의 후계자로 본 사실은 여러 사서에서 인정된다. 한편 고고학적으로 보아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 대표적인 예가 1949년 길림성 돈화현 육정산고분군에서 발굴된 정혜공주(문왕의 둘째딸)의 무덤이다. 정혜공주묘는 돌방무덤(석실묘)인데다 무덤의 천장이 말각천장의 구조로 돼 있는등 전형적인 고구려 무덤양식을 그대로 실현했다.이밖에도 현재 발굴된 숱한 발해의 유물들이 문화면에서 고구려를 뒤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발해가 고구려를 뒤이은 한민족의 국가임이 확실한데도 이를 인정받지 못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통일신라이후 고려·조선등 역대 왕조가 스스로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3국의 항쟁­신라에 의한 통일­고려의 계승­조선의 역성혁명」을 한국사의 주요흐름으로 강조해 온 점을 들 수 있다.이같은 입장에서는 신라와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발해가 한국사의 곁가지로 치부되거나 아예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발해 멸망후 그 본거지인 만주의 동북부일대가 민족의 주활동무대에서 벗어난 점도 발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줄인 요인이다. 신라가 3국을 통일해 민족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다.이와함께 당의 야욕을 무력으로 물리쳤다는 사실은 인*정받을만 하다. 그러나 외세를 끌여들여 통일을 추구했다든가 그 결과 국토통일이 대동강이남에 국한됐다는 점에서 그 한계성도 분명하다. 만주는 발해가 멸망한 뒤로 지금까지의 1천여년동안 한민족의 역사무대에서 사라졌다.그러나 고조선에서 고구려를 거쳐 발해에 이르기까지 그곳은 수천년간 우리의 땅이었다. 발해의 역사를 되찾는 것은 잃어버린 민주사의 일부를 회복하는 작업이랄 수 있다.
  • 갑오경장 1백주년… 그 개혁운동 재평가와 역사적 교훈

    올해는 갑오경장 1백주년을 맞는 해다.갑오경장은 1894년7월부터 1896년2월까지 약 1년반동안 지속된 제도개혁운동이었다.이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구시대의 질서에서 신시대의 질서로 편입되는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지난해 새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또다른 개혁의 시대를 숨가쁘게 달려왔다.1백년만에 다시 변혁의 기회를 맞이한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갑오경장이 제도의 변혁이었다면 지금은 당시의 엄청난 변화에 비견될 의식의 개혁이다.올해는 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성패를 가늠할수 있는 중요한 시점.「외세에 의존한 정권탈취 및 유지책」이라는 시각에서 「기반이 확보될 때까지 시한부로 일본의 후원을 기대한 자율적인 개혁운동」으로 재정립된 갑오경장을 재조명하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역사적 교훈을 찾아본다. ◎재평가 작업/민중지지 못얻은 미완의 제도개혁/농민 염원 수용… 국정에 새바람/민주·자립 등 근대적 이념 표명/“일제 등에 업고 권위주의적 추진으로 실패” 갑오경장은 조선조를거치며 쌓인 민중들의 원성이 1894년 동학농민봉기로 나타나자 새로 들어선 정권이 그 불만을 아우르기 위해 시도한 제도개혁운동이었다.그로부터 1백년뒤,제3공화국 이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문민정부의 등장을 가져오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과 크게 다를바 없다. 다만 갑오개혁의 주체들은 일본이라는 외세의 무력의 도움을 받아 집권했고 「잠정적」이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그들의 지원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여기에 갑오경장 주역들의 「개혁은 곧 서구화 내지 일본화」라는 소신은 그것이 비록 역사적 관점에서 옳은 판단이었다 할지라도 구성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갑오경장이 미완의 개혁으로 끝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또 갑오경장이 그동안 그 역사적 비중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지 못해왔던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혁명적 이상추구 그러나 갑오경장이 재평가되고 있는 시점에서 되돌아 본 갑오개혁파의 개혁정책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 이상의 변혁을 추구했음을 알수있게 해준다. 갑오경장을 주도한 개화파 관료들은 집권하자마자 외무아문을 신설해 근대적 자주외교를 펼칠 준비를 갖추었다.이어 국호를 대조선제국으로,국왕을 대조선황제로 부르고 1896년부터 건양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채택해 국가적 자주 독립을 내세웠다. 이들은 민주주의적 발상에 입각한 몇가지 참신한 정치제도개혁도 실시했다.개혁추진의 핵심인 군국기무처를 입법·자문기관인 「의사부」로 만들어 행정부에 대치시키는 의회설립안을 만들었던 것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또 조선협회라는 일종의 정당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지방제도 일원화 이들은 8도·5유수부로 대표되는 종래의 지방행정체제도 23부·3백37군으로 개편했다.지방제도를 일원화함으로써 행정의 합리화를 기함과 동시에 지방관으로부터 사법권과 군사권을 박탈해 근대관료적 색채가 농후해졌다.또 「향회조규」와 「향약변무규정」을 발포해 초보적인 지방자치제를 실시코자 했다. 경제분야에도 힘을 기울였다.개혁파는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재정정리와 민간산업 진흥을 도모하고 근대적 자립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경제개발 계획을 세웠다.이 계획은 경인철도 건설을 통해 수입을 늘리는 외에 왕실재정을 정리해 정부수입을 늘리는 한편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고 세수의 결손을 줄이며 민간상공업을 진흥한다는 내용까지를 포함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능력본위의 평등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개화파의 사회개혁 의지도 중요한 대목이다.이들은 집권하자마자 「사민동등지법」을 확립해 전통적 신분제도의 철폐에 착수했다.양반과 상민을 구별하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고 같은 양반에서도 문반과 무반의 차별을 없앴다.공사노비를 풀어주고 인신매매를 금했으며 역정 광대 백정도 모두 면천케 했다.이밖에 죄인에 대한 고문이나 연좌법을 폐지하고 너무 이른 결혼과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는등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해외유학 적극적 개화파는 과거제도 중심의 교육제도가 조선을 쇠퇴케 한 근본원인이라 생각해 합리성과 실용 위주로 교육제도를 개선코자 했다.이에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본국문,즉 한글의 사용을 장려해 정부의 공문과 관보도 국한문 혼용체나 순한글로 쓰도록 했다.또 적극적인 유학정책을 펴 1895년에는 약2백명을 국비로 도쿄에 유학시켰고 미국인 선교사가 경영하는 배재학당에 2백명의 관비장학생을 입학시켜 신학문을 배우게 할 계획도 마련했었다. 갑오개화파의 이 모든 정책 대부분은 물론 일본과 관련한 부정적인 해석이 있어왔다.또 대부분이 민중의 의사를 도외시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동안 권위주의 시대에 대항해 온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시각의 존재가 필요해졌다.권위주의 시대에 역사에서 필요한 교훈이 한방향으로 귀결되었다면 문민시대에 필요한 역사적 교훈은 다양하기 때문이다.갑오경장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개혁의 교훈을 찾으려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또 갑오경장을 일방적인 예속의 역사로 해석하는 것은 자존심을 위해서도 이제는 벗어나야 할 대목이다. ◎발단·경과/대원군추대,친일내각 수립/20개월간 전반적 혁신 단행 민씨정권은 1884년 갑신정변을 수습하고 나름대로 서구의 기술을 도입하는등 근대적 개혁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열강의 침투에 속수무책이었다.또 지배층 위주의 개혁이었기에 농민층과의 충돌은 불기피했다.1894년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자력진압이 불가능한 민씨정권은 청에 응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농민군의 요구를 일정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협상을 시도했다.그러나 민씨정권의 요청에 따라 청군이 아산만에 들어오자 일본은 천진조약을 빌미로 곧 이어 군대를 인천에 상륙시켰다. 민씨정권은 청·일양군공동철병론을 주장했으나 일본은 조선의 개혁에 대한 청·일공동지도론을 제의했다.이에 청이 내정간섭이라며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침략을 위한 독자적인 개혁의 원칙을 제시했다. 민씨정권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농민군의 폐정개혁요구를 반영하는 선에서 정권의 위기를 넘기려 했으나 일본은 7월23일 경복궁을 기습하여 민씨정권을 무너뜨리고 대원군을 추대했다.이어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친일계와 중립계로 정부를 개편했다. 1894년7월에서 1896년2월에 이르는 갑오경장기간 정계에서 부침하던 정파는 다섯 그룹으로 대별된다.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유길준등 갑오경장파와 박영효 서광범등 갑신정변파,박정양 이완용 윤치호등 미국·러시아등 외국공관을 배경으로 하던 정동파,대원군 이준용 이태용등 대원군파,그리고 고종과 명성황후를 둘러싼 홍계훈 이도철 이학균등 궁정파등이었다. 이 가운데 갑오경장 전기간에 걸쳐 가장 오래 정권을 장악하고,따라서 개혁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세력은 갑오경장파였다. 이들은 처음에 대원군파와의 제휴로 집권해 제1개혁기(1894년7월27일∼12월17일)에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개혁을 주도했다.이어 제2개혁기(12월17일∼1895년5월21일)에는 갑신정변파와 연립내각을 구성해 공동으로 개혁을 추진했다.제3개혁기(5월31일∼7월6일)에 갑오파는 갑신파와의 알력으로 김홍집과 조희연이 내각에서 사퇴했지만 다른 멤버는 남아 박영효가 주도하는 개혁에 동참했다.갑오파는 제4개혁기(7월6일∼8월28일)와 제5개혁기에는 정동파와 궁정파의 합세로거세될 위기를 맞았으나 제6개혁기(10월8일∼1896년2월11일)에 궁정파가 실권하자 다시 득세,집권하여 개혁운동을 재개했다. 갑오경장은 그러나 과격한 개혁조치에 불만을 품어오던 고종이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대일감정이 극도로 악화된 사이 1896년2월에 러시아공사관으로의 망명(아관파천)으로 개혁정권이 붕괴되고 친러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교훈/“민의따른 개력이 최상의 통치”/폭넓은 지지속 군사·재정 뒷받침 필수/“외세의존땐 성공 못한다” 역사의 명제 갑오경장이란 지금으로부터 1백년전 1894년에 동학농민봉기와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추진되었던 획기적인 근대화운동을 뜻한다.이 개혁운동을 통해 종래의 중국적인 우리나라 통치·행정구조 및 외교·재정·군사·경찰·사법제도 등이 일본 내지 서구식으로 크게 바뀌었다. 갑오경장때 추진된 일련의 「혁명적」개혁조치는 그후 많은 수정을 거치면서도 보존되어 오늘날 한국 사회 및 문화의 일각을 이루고 있다. 갑오경장은 1894년 봄의 제1차동학농민봉기를 계기로 서울에 불법적으로 침략해온 일본군이 7월23일 경복궁을 강점한 상황하에서 개시되었다.이때 (흥선)대원군을 받든 일군의 친일개혁관료들이 신정부를 구성하고 군국기무처라는 초정부적 입법기구를 만들어 그 곳에서 2백여개의 개혁안을 심의,채택함으로써 역사적인 「대경장」의 막을 올렸던 것이다. 이 개혁운동에는 처음부터 일본의 입김이 작용하였다.즉,갑오경장에는 「타율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갑오경장을 전적으로 일본의 지도와 후원에 힘입은 개혁운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개혁운동 초반에 개혁을 주도했던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박정양 유길준등 20여명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1880년대 초반에 외교사절단원 혹은 유학생으로서 일본·청국·미국 등에 건너가 세계정세를 파악하고,특히 명치일본의 「문명개화」운동과 청국의 양무운동 등을 조사,연구한 끝에 조선의 자주독립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개화,자강의 방안을 고안하여 이를 실천에 옮겼던,나름대로 애국심이 강한 개명관료들이었다.그들은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을 거치면서 청국이 종주권을 내세워 대한간섭을 강화하자 정치적으로 실세하여 국내외에서 망명내지 유배생활을 강요당하가나 정부요직에서 소외당하였다.따라서 그들은 반청·독립사상이 강한 반면에 친일적 성향을 띠었으며 또 친청보수세력인 민씨척주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대원군에게 호의적인 세력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개화·자강정책을 연구·실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도개혁을 스스로 추진할 능력과 의욕이 있었다.과연 초기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대원군의 지도하에 동학농민군이 요구한 폐정개혁안을 수렴하면서 제도개혁을 거의 완전히 자율적으로 추진했다.갑오경장 중반에 내각 대신 혹은 협판으로서 개혁운동에 참여하였던 박영효·서광범·윤치호 등은 갑신정변(1884)때 자신들이 겪은 일본정부의 배신을 귀감으로 삼되 미국·일본에서의 망명생활,유학에서 스스로 터득한 개혁사상을 기초로 자율적 개혁추진을 도모했다.이러한 점에서 갑오경장은 조선인 개화파 관료들의 「자율적」 개혁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조선의 개혁관료들은 우선 국민 상하의 존경과 지지를 얻는데 필요한 위신이 부족한 데다,자기들의 권력을 뒷받침해 줄 독자적인 군사력과 개혁의 실현에 필요한 자긍력이 없었다.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기반을 확보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일본의 후원 내지 지원을 받으려 하였다.결국 이러한 그들의 대일본 의존정략이 갑오경장을 중도반계의 실패작으로 만든 요인이 되었다. 갑오경장은 왕조의 유신과 중흥을 도모했던 조선왕조 최후의 개혁운동이었다.이 운동에서 원래 기대되었던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조선왕조는 중흥되었을 것이고,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민족적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근원적으로 따져 볼 때,갑오경장은 오랫동안 축적된 조선민중들의 불만이 동학농민봉기라는 과격한 형태로 표출된 다음 정부가 서둘러서 개시한 개혁운동이다.만약 조선정부가 민중들의 불만요인을 미리 파악하여 적시에 필요한 개혁을 축적해 나갔더라면 외세의 간섭도 면하고 또 갑오경장 같은진통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집권자가 국민들의 요망을 미리 미리 알아차려 시의적절하게 작은 규모의 개혁들을 하나 하나 펼쳐나가는 것이 최상의 국가경영 철학임을 깨닫게 된다.이것이 갑오경장에서 우리가 얻는 최대의 역사적 교훈이다.아울러서 우리는 개혁사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을 뒷받침해 줄 튼튼한 군사력과 재정이 필수라는 사실을 확인하며,나아가 민중을 도외시한 외세의존적인 개혁운동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 떠오른 별/격동의 93년… 지구촌 인물의 부심

    ◎「20세기 최대과제」 중동평화 새 장 열어/라빈/아라파트/7년 줄다리기 「UR」 매듭… 국제화 선도/서덜랜드 올해 국제질서의 특징은 국제화와 평화정착으로 요약된다.개별국가들은 이 질서위에서 각각 변화와 개혁의 시대에 불을 댕겼다. 국제화를 이끈 주역으로는 우루과이 라운드를 주물렀던 피터 서덜랜드 가트(GATT)사무총장,리언 브리튼 유럽공동체(EC)집행위원,미키 캔터 미무역대표가 손꼽힌다.세계평화를 선도한 쪽에서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의장,데 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총리와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검사는 국내개혁의 기수로 떠올랐다.개혁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러시아 자민당당수,베니지르 부토,모하메드 아이디드 소말리아 군벌지도자도 각각 국민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국제질서의 한 흐름을 형성했다. 브리튼 EC집행위원은 최대 무역파트너인 캔터 미협상대표와 함께 밤을 세워가며 이견을 조정,국가간 무역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21세기 「선진국 중심」신경제질서를 창출했다.이들 사이에서 서덜랜드 가트사무총장은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자유무역이론을 들어『협상이 실패하면 지구촌의 모두가 공멸할 것』이라며 협상을 독려했다. 협상과정에서 발라뒤르 프랑스총리는 자국의 음향·영상부문을 지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국내경제를 걱정하는 제3세계권에 「경제외교」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기도 했다.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PLO의 아라파트의장은 「20세기 최대과제」로 불리던 중동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반세기간 지속된 증오와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는데 청신호를 보냈다.이 파장은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등에 「평화도미노」현상을 일으키면서 이스라엘의 대아랍권 관계개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국경문제등 몇몇 「작은문제」를 놓고 계속 포격이 그치지 않는등 실질적 중동평화는 해를 넘기는 과제가 됐다. 국제평화와 관련,데 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과 만델라ANC의장도 뺄 수 없는 인물.3백여년간 지속돼 온 흑·백 인종차별의 벽을 깨뜨렸다는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새로 참정권을 얻은 흑인의 수가 6배나 많아 만델라의장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민당의 「정권독식」을 종식시킨 호소카와 일본총리는 일본의 오랜 정경유착의 사슬을 끊고 새정치에의 활로를 열어가며 신세대정치의 선봉장으로 떠올랐다.「칠인칠색」의 연립7당을 이끌면서도 38년의 긴 세월동안 자민당도 해내지 못한 정치개혁법안을 최근 중의원에서 통과시켰다. 정치지도자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의 피에트로검사 역시 지구촌의 개혁시대를 연 인물로 세계적인 시선을 모았다.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운동의 주창자 피에트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뒤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한 입지전적인 인물.지난해 2월 밀라노의 한 사회당간부가 건설업자로 부터 병원신축을 미끼로 7백만리라(3백5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포착,기소한것을 시발로 지금까지 각계인사 수십명의 비리를 캐내 응징했다.그의 초상화를 넣은 티셔츠와 크리스마스카드,자서전등이 전국적으로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을 정도로 국민적인 추앙을 받고 있다. 러시아 「12·12」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지리노프스키 자민당당수는 과거의 러시아제국,소비에트연방에 지대한 관심을 두며 국민을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다.이른바 러시아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그는 이번 총선에서 친옐친의 「러시아의 선택」에 이어 일약 제2당을 창출,옐친의 최대정적으로 떠올랐다. 벌써부터 유럽을 돌며 각국의 사회당과 관계를 강화하는 등 그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88년 회교권의 첫 여성총리에 올랐다 3년만에 축출된 부토가 지난 10월 총선을 통해 재집권한 것도 올해의 뉴스.당시 칸대통령과 나와즈 샤리프총리의 권력투쟁과정을 이용,결국 두사람 모두를 역사속으로 보낸 그녀는 아메드 레가리전외무장관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면서 권력기반을 강화했다. 그녀의 파키스탄인민당(PPP)이 과반수의 의석확보에 실패한데다 정부의 재정악화등으로 정정불안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더욱이 인도와 카슈미르주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계속되고 있고 핵무기개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질시 역시 그녀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소말리아의 군벌지도자 아이디드장군은 미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에 맞서 싸우다 결국 미군의 철수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국내적인「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지는 별/일 자민당 38년 독주 막내려 정계떠나/미야자와/러시아의 보·혁대결서 저항하다 수감/루츠코이 하스블라토프 영욕의 부침은 언제든 있게 마련.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각국의 집권자들이 개혁과 변화의 거센 바람에 내몰려 사라졌다.개인적 비리뿐 아니라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는 시대의 조류 때문이다. 이들이 화려했던 무대를 떠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정권교체에 따른 퇴진 ▲시대의 조류를 거부하고 끝까지 버티다 쫓겨난 경우 ▲부패와 관련된 권력형비리등으로 분류된다. 「변화」의 태풍과 함께 들이닥친 정권교체로 자리를 내준 대표적 인물은 미야자와 기이치 전일본총리(74).미야자와는 지난 6월 내각불신임안이 중의원에서 통과된데 이어 7월총선에서 자민당이 원내과반수 확보에 실패,38년간의 자민당 1당체제를 연립내각에 넘겨주고 담담히 정계를 떠난 비운의 정치가가 됐다. 이와 달리 지난 10월 보·혁대결에서 총부리로 맞서다 백기를 들고 항복을 선언한 러시아 보수파 「3인방」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전최고회의의장(50),알렉산드로 루츠코이 전부통령(46),발레리 조르킨 전헌법재판소장(50)은 권좌대신 감옥살이를 그 대가로 받은 케이스. 이들 가운데 루츠코이와 하스블라토프는 「집단소요 선동죄」로 모스크바 근교 레포르토보 교도소에 수감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조르킨은 재판소장자리에서 쫓겨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이들에 비해 이탈리아 전총리이자 종신상원의원인 줄리오 안드레오티(74)와 전사회당 당수인 베티노 크락시하원의원(59)은 이탈리아 사법당국의 부패척결을 위한 이른바 「미니 폴리테」에 걸려들어 늘그막에 수모를 당했다.안드레오티는 마피아와의 결탁으로 면책특권이 박탈됐는가 하면 크락시는 정치자금법위반혐의로 당수직을사임했다. 게다가 비외른 엥홀름 독일 사민당 전당수(53)는 지난 4월 6년전 주의회선거에서 흑색선전을 선거전략으로 악용한 사건이 밝혀져 은퇴,12년만의 재집권 꿈이 물거품이 됐고 프랑스출신의 자크 아탈리 전유럽부흥개발총재(49)도 공직생활의 비리로 철퇴를 맞고 쫓겨났다. 하지만 「사라진 올해의 인물」로 가장 주목을 끄는 집권자는 역시 캐나다의 첫 여성총리였던 킴 캠벨전총리(46).기라성같은 남성정치인들을 제치고 혜성처럼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던 캠벨은 전임자 브라이언 멀로니 전총리가 물려준 달갑잖은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수완을 발휘하지 못한채 지난 10월 총선에서 고배를 들고 4개월만에 도중 하차,최단명 총리가 됐다. 특히 대처 영국 전총리에 이어 대담한 여성으로 한껏 기대를 모았던 그의 퇴장은 세계여성지도자의 국제무대 활약에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밖에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등장,군개혁에 앞장섰던 레스 애스핀 전미국방장관(55)은 지난 15일 그 개혁의 도마위에 스스로 희생당한 불운의 인물이 됐다.하원 군사위원장 출신으로 군사전문가인 애스핀은 그동안 냉전종식에 따른 국방예산의 대대적인 삭감을 주장하다 군부의 반발로 물러남으로써 클린턴 행정부에서 이탈한 첫 각료라는 오명을 남겼다. 팝뮤직의 황제 마이클 잭슨(35)도 어린이 성추행 스캔들로 미사법당국으로부터 알몸수색을 당하는등 물의를 빚었다. ◎사라진 별/세계최대 마약왕… 경찰에 피살/에스코바르/아동자선 활동 편 은막의 여왕/오드리 햅번 올해도 지구상의 수많은 큰 별들이 사라졌다. 정치인으로는 일본 금권·파벌정치의 대명사였던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총리가 75세를 일기로 12월 세상을 떴다.도쿄대 출신이 판치는 일본정계에서 국교졸업 학력으로 풍운아처럼 일세를 풍미했으며 록히드 스캔들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당하기도 했다. 피에르 베레고부아 전프랑스총리(67)는 지난 3월 사회당의 총선참패로 총리직에서 물러난뒤 한 기업인으로부터 1백만프랑을 무이자 대부받은 것이 언론에 보도되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5월 자살했다.라나싱헤 프레마다사 스리랑카대통령이 민족분규의 희생양으로 타밀반군에 의해 암살된 것도 같은 달이었다. 투루구트 오잘 터키대통령(66)과,보두앵1세 벨기에국왕(62)은 4월과 7월 각각 서거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대법관으로 24년간 재임한 민권운동의 거목 서굿 마샬과,닉슨전미대통령의 부인 패트리샤 라이언 닉슨여사도 올해 생을 마감했다. 콜롬비아 최대의 마약조직인 메데인 카르텔의 두목이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44)는 12월 정부군에 사살됐다.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현대판 「로빈 후드」로 알려진 파란만장의 일생을 끝내 비참하게 마감한 것이다. 문화계에선 「로마의 휴일」에서의 깜찍한 연기로 전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던 오드리 헵번(63)이 오랜 투병생활끝에 스위스 로잔에서 1월 유명을 달리했다.그는 말년엔 국제아동기금 순회대사로 소말리아등 지구촌 곳곳의 불우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20세기 영화계 거장으로 「길」등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페데리코 펠리니(73)감독과,홍콩의 스타였던 이소용의 아들이며 역시 액션스타였던 브랜든 리(28)도 촬영중 권총사고로 올해 타계했다. 러시아 태생의 금세기 최고 남자 발레 댄서인 루돌프 누레예프(54)는 1월 파리의 한 병원에서 에이즈로 숨졌다.61년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원으로 유럽순회공연도중 파리에서 망명했었다.「파리대왕」의 작가인 대문호 윌리엄 골딩과 미국이 낳은 불멸의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도 고인이 됐다.
  • 일 아키히로왕 내년 6월 방미

    【도쿄 로이터 연합】 일본의 아키히토(명인)국왕이 내년 6월을 전후해 미치코왕비와 함께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8일 보도했다.
  • 이동휘선생 글 등 자료 7점 공개/초기 활동 연구에 도움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성재 이동휘선생이 을사조약 체결 직후 국왕에게 을사오적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겠다고 올린 상소문과 하야시(임권조)당시 주한일본공사등에 조약의 부당성을 성토한 글등 7점의 자료가 새로 발견됐다. 건국대 박사과정에서 이동휘선생을 연구하고 있는 김방씨는 이달초 정부문서보관소에서 이들 자료를 발견,국사편찬위원회 박영석위원장을 통해 최근 공개했다. 새로 발견된 자료는 「유소」,「참매국공적성죄문」,「유고이천만동포형제서」,「유고법관제공각하서」,「유고진신소청서」,「유고림공사서」,「유고장곡천대장서」등 모두 7건이다. 자료를 검토한 박영석위원장은 『사회주의 활동때문에 국내에서는 연구가 빈약했던 그의 초기활동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 호주:하/“수출역군 되라” 외교관 특별교육(세계의 개혁현장:35)

    ◎외무­통상부 통합,교역 총괄 지휘 지난 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을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태평양」바람이 일고 있다.바람도 지역 나름일테지만 호주에서 맞부딪힌 아·태 바람은 한달전에 불현듯 일기 시작한 유행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태평양을 머리에 인 호주에 불고 있는 「아시아」바람은 달포 정도가 아니라 여러해 묵어 예사롭지 않다.폴 키팅 총리는 호주의 미래,특히 호주경제의 활로는 오로지 아시아와의 「통합」이라고 공언하고 있다.수출에서 호주의 아시아 바람이 일목요연하게 잡힌다. 본래 자급 자족성이 강한 호주 경제는 수출형이 아니었다.호주 1차산업 원자재상품의 주된 고객이었던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해버리는 바람에 기존 경제의 틀이 깨진지 10년 뒤인 81년 당시 국민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1%였었다.호주와 여러모로 대비되는 싱가포르의 경우 이 비중치가 2백%에 달했다.그런데 호주에서도 어느새 수출 등 통상활동을 국운과 연관된 「성스러운 기도」로서 떠받들면서 일로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92년도 호주수출의 국민총생산 비중은 21%로 10년새 배 가까이 뛰었으며 그 절대 규모도 똑같이 갑절로 늘었다.동아시아는 이같은 성장이 이루어지는 큰 시장터가 됐다.70년대에 호주수출의 52%를 차지하던 유럽공동체(EC)비중이 13%로 급감한 대신 동아시아 시장은 22%에서 61%로 급증한 것이다. 호주는 산업구조 개편과 관련해 제조업상품의 수출신장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는데 북아시아와 동남아 시장에 대한 호주 정밀제조업 상품수출은 10년새 각각 8배,3배씩 늘어 여기에서도 큰 공헌을 했다. 통상·무역의 중요성을 절감한 호주는 지난 88년 「고답적인」 외무부와 「세일즈맨 스타일의」통상부를 통합,외교관들에게 수출전선의 역군 노릇을 하도록 독려해 왔다.외무통상부의 신참 관리들은 통상외교 훈련을 위한 파트타임 대학 위탁수업을 2년동안 의무적으로 받도록 되어있다. 이 외무통상부가 이달초 아시아와 제일 가까운 북부 특별주의 수도 다윈에다 첫 지부를 설치했다.이 지부설치 계획을 의회에 발표한 도킨스재무장관의 말 그대로 「호주가 동아시아로 도약하기 위한 발구름판」역할을 떠맡기 위해서다.그리고 이 도약대가 탄력을 모아 뛰어 오르려고 하는 지점은 인도네시아다. 호주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각별하다.2개월전 키팅총리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을 예방,APEC정상회담에 관해 의견을 나누면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두고두고 감사해하는 옹호 발언을 자청해서 했다.시애틀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동티모르 학살사건과 관련한 인권상황과 노동운동 억압 등을 들먹여 인도네시아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호주 언론들은 이달초까지 시애틀 정상회동에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던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막판 태도를 바꿔 참석쪽으로 돌아선 것을 은근히 호주의 공으로 돌리고 있다. ◎“무역있는 곳에 가자” 친아주정책/GNP수출비중 10년새 2배로 호주의 이같은 호의를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맨 동쪽 땅과 호주하고는 단 80㎞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금방 눈에 띈다.키팅 총리는 취임 직후인 지난해 초와 지난달말 두번에 걸쳐 수하르토 대통령을 예방했고 올해만 7명의 호주 장관들이 인도네시아를 넘나들었다.호주에게는 인도네시아가 아시아로의 관문인 탓이다. 호주는 뿌리깊은 유럽적 성격을 털어내고 아시아적이 되고자 무진 애쓰고 있다.어느모로 보나 유럽보다는 아시아에 가깝다는 점을 아시아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최근 APEC 정상회담에 관한 호주정부와 키팅 총리의 열정에서도 잘 드러나는 호주의 대아시아 접근은 자연 지난 70년대 말의 「백호주의 포기」선언과 맥이 닿는다.그러나 그때보다 훨씬 저자세이고 가끔 절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난해부터 세계가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키팅 총리의 「영국왕세습의 군주제」 파기운동도 실은 지리적으로 자명한 「친아시아」사실을 대내외에 확고히 인식시키기 위한 정신적 뿌리 자르기라고 할 수 있다. 키팅 총리의 공화국 운동은 호주가 결코 오세아니아주에서 홀로 우뚝서기 위해서가 아니다.아시아에 가깝다는 선언으로받아들여야 한다.왜 이렇게 아시아에 경도되는가. 『지난날 영국 국기가 세계지도를 뒤덮을 때,세계의 무역은 이 국기를 따라 갔다.지금은 당연히 무역이 있는 곳으로 국기가 따라가야 한다』키팅 총리의 말이다. 호주 내부에서 현 노동당정부의 아시아편향 정책을 비난하는 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그러나 통상을 중시하면서 유럽이 아닌 아시아쪽에 호주 미래의 닻을 던진 역사적 전환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보인다.
  • 김정일 각국서 받은 선물/10여년간 2만7천여점

    【내외】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노동당 제6차대회(80년10월)이후 지난 10여년간 김정일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2만7천여점에 이른다고 평양방송이 16일 보도했다. 평야앙송은 김정일에게 선물을 보낸 사람들 가운데는 세계 1백40여개국 대통령·국왕·정부수반·국회의장 등이 망라되어 있으며 정당·사회단체·군부·경제계·문화계·출판보도계의 저명한 인사들과 수십개의 국제기구 간부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 현지언론 김 대통령 행보에 “관심집중”(APEC 이모저모)

    ◎정상들 국명 알파벳순 하선예정/나프타 진통에 미국무 꼴찌 도착 역사적인 아·태경제협의체(APEC)정상회의가 열리는 16일(이하 현지시간)의 시애틀.아침엔 가랑비가 내렸으나 하오엔 엷은 회색구름이 낮게 깔린 초겨울 날씨였다.바람도 무척 차가웠다.아·태지역 11개 정상과 4개국 각료들이 참석하는 정상회의 개최까지는 아직 3일이나 남았으나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다.김영삼대통령은 이틀뒤인 18일 낮 이곳에 도착한다.벌써 그의 행보에 현지 언론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고 있다. ○아침엔 가랑비 내려 ○…정상회의가 열리는 블레이크섬은 이미 15일부터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됐다.회담장은 테이블 없이 정상들이 앉을 고색의 의자만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정상들은 시애틀에서 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게 되는데,배에서 내리는 순서는 국가의 알파벳순이라고 한관계자는 전했다.이에따라 김대통령은 7번째로 배에서 내려 회담장에 들어가게 된다.기념촬영시 각 정상들의 위치도 이미 정해져 있다. 세계 최대 부자로 알려진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국왕의 동정은 여전히 화제.이번 회의에도 시간당 9백30달러를 주고 현지 가이드를 72시간 고용했다는데 팁까지 합치면 총 지불액수는 15만달러를 상회할 거라는게 현지의 소문.볼키아국왕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누가 고용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가이드는 APEC 정상회의 때문에 갑자기 「떼돈」을 벌게되는 셈이다. 정상들중 강택민중국국가주석,수하르토인도네시아대통령,라모스필리핀대통령,키딩호주총리는 18∼20일 특별일정으로 보잉항공사를 방문할 계획.이는 보잉사가 이번 행사의 지원회사로 경비·인원등을 지원한데 대한 배려로 현지관계자들은 풀이했다. ○회견 등 워밍엄 돌입 ○…각료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이날 하오 각국 정상들은 아직 현지에 도착하지 않았으나 각료들은 모두 도착해 양자회담을 갖거나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등 「워밍업」에 돌입했다.각료들중에는 주최국인 크리스토퍼미국무장관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회처리 때문에 현지에 가장 늦게 도착.컨벤션센터 6층에서 이날 「관세무역에 관한 심포지엄」 세미나에 초청 연사로 참석하려던 미키 캔더미통상위원회위원장도 연설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워싱턴으로 떠나기도.이처럼 17일 NAFTA 의회 표결 때문에 아직은 APEC에 대한 미언론보도가 뜨겁게 달구어지지는 않은 상태이다. 시애틀에는 10여개 호텔이 있으나 APEC와 겹쳐 열리는 도박대회와 워싱턴대와 서워싱턴대간의 럭비시합 때문에 호텔얻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그래서인지 각국 보도진들은 시외곽에 위치한 여관으로 몰리고 있다. 시애틀이 위치해있는 워싱턴주의 경우 5개 일자리중 하나꼴로 국제무역과 연관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시애틀 언론들은 APEC의 성공에 큰 기대를 걸면서 『APEC회의를 통해 지역경제에 특수효과가 일어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시애틀이 널리 알려지는 기회』라고 평가. ○…정상회의와 이에앞서 열리는 각료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현지에 도착한 15개국 기자들이 총 집결,열띤 취재경쟁을 벌일 곳은 시애틀시 중심부에 위치한 컨벤션센터.컨벤션센터는 3년간의 공사 끝에 지난 88년 완공된 최첨단식 6층 건물로1·3층은 편의시설,2층은 각국 정부에서 설치한 공보지원실(중국은 설치하지 않음),4층은 프레스센터,5·6층은 세미나실이 들어서 있다. 4층 프레스센터는 총 1천여평의 크기로 5백여평은 각국에서 온 방송기자들을 위한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나머지 면적은 국별로 나눠진 신문기자들과 시애틀시에서 파견된 보도지원반이 자리.ABC,NBC,CBS,CNN등 미국의 4대 주요 방송이 20일부터의 현장 생방송을 위해 벌써부터 준비에 분주한 모습.현지 관계자들은 약 2천여명의 각국 보도진들이 운집,취재경쟁을 벌이게 될 것으로 전망. ○5명의 외교관 배치 ○…2층에 설치된 한국 공보지원반에는 14일부터 5명의 외교관들이 배치돼 우리기자와 APEC에서 한국의 입장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온 외국기자들을 상대로 홍보에 분주.이들은 시애틀총영사관 관계자들이 대부분 회의에 참석,인원이 부족한 탓인지 홍콩·베를린·토론토등에서 지원 나온 외교관들.이곳에는 「APEC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비롯,「김영삼의 생과 시간」「한국의 미」등 5∼6종의 책자가 비치돼 원하는 기자들에게 배포. ○…미주와 워싱턴주 한인상공인단체연합회는 16일 하오6시부터 우리대표단 숙소인 쉐라톤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APEC전야 한국의 밤」행사를 개최. 이 자리에는 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과 워싱턴주 시애틀시 관계자를 비롯,7백여명이 참석해 성황. ◎한·아세안 역학관계/“신경제 듣고싶다” 중·호등 「발제」 지지/외교역량 높아져 선·후진국 고리역 김영삼대통령이 시애틀 블레이크 섬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첫 발제자로 선정된 것은 어쩌면 APEC 내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한·아세안의 상대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첫 발제를 할 정상 선정을 놓고 협의할 때 일부 나라에서 경쟁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결국 김대통령에게 낙착됐다.많은 나라들이 한국의 개혁과 「국제화」와 「전문화」를 축으로 하는 한국의 신경제에 대한 김대통령의 포부를 듣고싶다는 요청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물론 이 점도 크게 작용했음이 틀림없다.하지만 그이면을 들여다보면 복합적인 APEC내의 역학관계도 무시할수 없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한 관계자는 『일부 회원국들이 아세안이 추진하고 있는 동아시아경제협의회(EAEC)를 경계하는 것은 「인종적 기구」라는 성격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국의 역할은 「링크」로서의 성격이 짙다.외부 세계로 나가야만 한다는 경제현실에서 싱가포르와 가깝고,인도네시아와는 액화천연가스(LNG) 도입선,유전·산림 공동개발,천연목재 수입등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16일(현지시간) 한승주외무장관과 알리타스인도네시아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도 이러한 점에 대해 양국의 인식이 일치했다.아세안과 같은 「동양권」이면서 그들로부터 별로 거부감이 없는 나라가 바로 우리인 셈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 캐나다 호주등과 방향을 크게 달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가능한한 APEC 틀내에 묶으려 하는등 「개방적 지역주의」의 노선을 변함없이 추구하고 있다.따라서 김대통령의 첫 발제는 회원국들의 한국개혁,신경제에 대한 관심,그리고 아세안으로 부터 덜 견제받는 나라라는 점이 묘하게 맞아 떨어진 「작품」이라 할수 있다. 아세안이 역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아세안 없는 APEC는 생각할수 없다.그것은 잠재적 시장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최근 정상회의에 불참한 말레이시아가 탈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회원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다.그러나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우리의 역할은 더 커져갈 수밖에 없다.선진국과 후진구간 막후조정에서 우리의 외교적 역량은 APEC 내에선 단연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그만큼 아세안과 미국 일본등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얽혀있고 우리의 외교적 「롤」에 대한 비중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출국인사 요지/“우리의 변화된 모습 세계에 알릴터” 저는 오늘 APEC 지도자 경제회의 참석과 미국 공식방문을 위한 여정에 오릅니다.저의 이번 미국 방문은 세계로,미래로 나아가는 저와 우리 국민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먼저 변화와 개혁이라는 세계사적인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 국민의 헌신적인 노력과 긍지를 세계의 이웃들과 우리의 동포들에게 자랑스럽게 전하겠습니다. 저는 시애틀에서 개최되는 APEC 지도자 경제회의에 참석하여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향한 저와 우리 국민의 비전을 제시하고 우리의 개혁정책에 대하여 설명할 것입니다.또한 시애틀 체류기간중 이 회의에 참석한 주요국가 정상들과의 개별회담을 통하여 국가간의 협력문제를 진지하게 협의하고자 합니다.이번 회의는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개막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어서 저는 11월21일부터 24일까지 워싱턴을 방문합니다.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두번째 정상회담을 갖습니다.여기서 저는 클린턴대통령과 북한의 핵문제,한미안보협력문제,경제·통상증진방안,APEC의 발전문제,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열어 나가는데 있어 양국의 역할등에 대해서 폭넓은 협의를 가질 예정입니다. 저는 이번 미국 공식방문을 통하여 한미관계를 더욱 긴밀하고 공고하게 할 뿐 아니라 21세기를 앞두고 새로운 전진적 동반관계를 형성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고립해서 살 수 없습니다.우리는 눈을 세계로 돌려야 합니다.우리는 우리의 삶을 세계속에서 찾아야 합니다.서로 협력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세계는 지금 한국의 변화를,우리의 개혁을 주시하고 있습니다.한국의 새로운 문민정부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경제도약에 성공하여 아·태시대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을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격려를 바탕으로 떳떳하게 한국의 변화된 모습을 세계속에 심고 돌아오겠습니다. ◎EC서 본 APEC/“미­호 입지강화·일 야심의 합작품/순수 아주블록 아닐땐 오래못가” 인터내셔녈 헤럴드 트리뷴지는 16일자 「의견」페이지에서 17일부터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시애틀회의와 관련,여러 문제점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한다는 그레고리 클라크 기자의 글을 실어 관심을 끌었다.다음은 그 요지다. 유럽공동체(EC)구상은 그 자체에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하나로 묶고 과거의 민족적불화를 종식시키려는 이상적인 시도로서 출범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그 꿈을 빌려 북아메리카에서 부유한 북이 남의 극빈 극복을 도우려는 것이다.그러나 APEC는 그 비슷한 것이지만 훨씬 가치가 떨어지는 기원을 갖고 있다.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야 할 잘못된 구상이다. APEC구상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때 일본 보수주의자들은 일본이 서방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강하게 기대야 한다고 믿었다.그들은 생명이 짧았던 태평양자유무역지역(PAFTA)개념에 도달했다.여기에는 일본·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가 포함된다.한마디로 비현실적인 제안이었다. APEC는 이러한 책략의 부스러기에서 나왔다.원래의 PAFTA 개념에 관여했던 일본과 호주 경제인들의 로비에 주로 힘입었다.APEC 개념은 이제 대부분의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여전히 PAFTA의 야심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 어느 것도 면면한 일본­앵글로색슨 클럽의 냄새를 없애는데 도움이 안됐다.말레이시아의 APEC에 대한 깊은 혐오감과 아시아 도처에깔린 의혹은 이를 말해준다. 다음은 미국의 역할 문제다.일본과 호주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미국이 아시아에 강하게 개입하기를 원한다.그러나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회원국들은 중국과 러시아 몫의 목소리가 필요함을 분명히 했다. 자유무역지향의 APEC에 대한 미국의 회원자격과 NAFTA에 대한 미국의 열성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 것인가.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NAFTA의 주요 목적은 미국과 캐나다가 무역역조를 보이고 있는 저임의 아시아를 상대로 해오던 수입루트를 라틴 아메리카쪽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시애틀 정상회담의 정치적 의미는,말레이시아가 보이코트하고 다른 세계적 정상회담이 즐비해서 밑둥부터 잘렸다. APEC가 EC나 NAFTA의 보호주의에 맞서는 역할을 한다면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이 경우에도 좀더 순수한 아시아 블록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워싱턴과 캔버라의 격심한 반대 로비로 말레이시아의 구상은 멈춰버렸다.두 나라는 아시아에서 제외되는 것을 우려했다.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들은 궁극적으로 일본­앵글로색슨 작당의 본래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APEC는 그러한 기초위에서 잔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 「이」,가자지구 주둔군 감축/PLO와 합의/팔 자치협상 중대 진전

    ◎요르단,「이」와 평화협정 체결 결정 【카이로·예루살렘 외신 종합】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유태인 정착촌에 주둔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수를 감축키로 합의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자치협상 5주만에 중대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소식통들이 10일 밝혔다. 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시와 가자지구 주둔 이스라엘군을 오는 12월13일까지 철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이같은 진전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이틀간에 걸쳐 열린 비밀회담에서 이루어졌다. 소식통들은 또 암논 샤하크 장군을 대표로 하는 이스라엘 협상단은 가자지구 주둔 이스라엘군의 철수문제에 관한 수정안을 내놓았다면서 이스라엘측은 이번 수정안을 재배치가 아닌 사실상 철수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키로 이미 결정한 상태라고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10일 밝혔다.
  • 고대 한·일 관계:중(온가족이 함께 읽는 우리역사:20)

    ◎“일 응신왕은 비류백제의 마지막 왕”/나라 망하자 일 기내지방 건너가 위왕에 올라/김성호씨등 주장… 고분서 백제마제유물 출토 「백제인이 일본을 세웠다」는 학설이 80년대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를 정립한 공은 80년대에 이 분야를 집중 연구한 재야사학자 김성호씨와 최재석 고려대명예교수에게로 돌아가야 할 듯하다. 먼저 김씨가 82년에 발표한 책「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에서 주장한 일본왕조의 설립과정을 알아본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396년 비류백제를 기습공격하자 왕은 왕족·신하들과 함께 위열도의 구주로 달아난다.그곳은 서기 1백년 무렵 비류백제의 혈주에 의해 개척된「담로」,즉 구주위가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구주왜는 원주민들의 반발로 이미 유명무실해져 비류백제의 왕은 기내(나양지방)로 가 다시 위왕으로 즉위했다.그가 일본의 15대째 왕인「응신」이다.이후 비류백제의 유신·유민들이 대거 망명해와 응신의 기내위 왕조는 국가의 기틀을 세운다. 660년(온조)백제가 신라·당의 연합군에게 멸망하고 668년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자 기내위는 670년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일본서기」등의 사서를 편찬했다.비로소 비류백제땅의 회복을 포기하고 독립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김씨는 이같은 학설을 입증하기 위해 일본측 사서인 「일본서기」 「고사기」등을 정밀해부,드문드문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추려내 한국의 「삼국사기」,중국의「삼국지 위지 동이전」등과 비교·분석했다. 그는 우선 응신의 즉위 직후 「일본서기」에 여러차례 등장하는 백제인의 집단망명 기사를 주목했다.응신 14년(403년)과 20년(409년)의 기록에는 백제의 1백20현,17현의 주민들이 대거 왜로 건너왔다는 기사가 나온다.김씨는 이처럼 대규모의 주민이동 사실을 하나의 국가가 자리를 옮긴 것으로 보았다. 이와 함께 응신이후 일본 국왕의 성씨가 비류백제의 왕성인 「진」씨를 이었음도 일본 상류측의 족보인 「신찬성씨록」을 통해 밝혀냈다. 이같은 김씨의 학설은 고고학 측면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지난 50년대 후반 기내지방의 우예야시에서는 응신왕의 고분이 발견됐다.일본의 고고학계는 응신의 묘를 발굴하는 대신 배총,즉 부속되는 묘를 발굴했는데 백제의 전형적인 마제유물들이 대량 출토됐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는 「일본서기」속에 숨어 있다.(온조)백제가 망한뒤 주유성에서 벌인 부흥운동이 실패로 끝났을때 기내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백제 주유성이 함락되었구나.이 일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겼으니 선조의 묘소를 어찌 왕복할 수 있단 말인가』 (온조)백제가 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통곡한 당시의 일본인들.그들을 백제인이 아니라고 강변할 사람이 있을까.
  • 인구확보에 비상(평화 싹트는 중동:8)

    ◎요르단,“팔인 썰물출국” 전전긍긍/국민의 절반… 상권 장악해 이탈땐 타격/새달 총선참가자 자국민 인정 등 회유 아이러니하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정 체결로 이제까지 없던 걱정을 하게 된 나라가 있다.바로 요르단이다.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창설해 모두 돌아가 버릴 경우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될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요르단은 한반도와 비슷한 9만6천㎦의 국토에 현재 3백7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물론 2백만 가까운 팔레스타인인들의 숫자를 포함해서다.그런데다 팔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물론 사회중간층 직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팔인없는 요르단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때문에 요르단은 현재 인구확보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중이다.이번 평화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귀환자격이 부여된 「67년 난민」들에게 「안정과 번영의 요르단」과 「불확실성의 팔레스타인」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줄 것을 계몽하고 있는 것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다.그 선택의시기는 오는 11월의 총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요르단정부는 총선투표에 참가하는 팔인은 요르단 국민으로 인정해주겠다고 밝히고 있다. ○67년난미만 80만명 현재 요르단에 살고 있는 팔인은 연도별로 「48년난민」「67년난민」「91년난민」 세 부류로 구분된다.「91년난민」은 걸프전때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을 피해 피란온 4만∼5만명을 말한다.이들은 상당한 재산가들이기 때문에 실제로 난민이라 불리지도 않고 다른 난민들과는 전연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1백만에 달하는 「48년난민」은 상당수가 요르단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대부분 생활기반을 갖고 있다.그러나 80만의 「67년난민」만은 아직 문제로 남아 있다. 요르단은 자국영토였던 요르단강서안(웨스트뱅크)을 이스라엘에 점령당하는 등 지금까지 아랍권의 대이스라엘전선국가로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다.팔난민 수용뿐 아니라 대이스라엘 투쟁에 나선 팔인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웨스트뱅크에 대해 74년 주권포기,87년에는 법적·행정적 관계단절을 선언했다.○국제사회보상 제기 평화협정으로 팔레스타인에 엄청난 국제원조가 있으리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요르단인들은 요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이같은 분위기를 반영,마잘리총리는 최근 한 국제회의에서 팔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보상론을 강력히 제기했다.그는 아랍국중 몇안되는 비산유국인 요르단의 경제가 악화된 것은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할 팔 난민문제를 요르단이 혼자 떠맡아 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팔측의 입장은 달랐다.암만시내에서 무역상을 하고 있는 하산 알라얀씨(42)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곳에 거져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올때는 빈손으로 왔지만 팔인들의 우수성과 근면성으로 오늘의 요르단을 건설했고 또 수많은 해외거주 팔레스타인의 송금도 요르단 경제개발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재작년에 쿠웨이트에서 온 팔인들은 거부도 많아 절대 요르단이 팔레스타인 때문에 손해본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경제개발에 큰 도움 요르단은 자국의 홍해연안 아카바항이 이라크의 유일한 대외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지지,유엔의 대이라크경제제재조치를 받는 등 많은 불이익을 당했다.그러나 걸프지역에서 귀환한 팔인을 포함한 요르단인들의 신규투자에 힘입어 92년에는 평상시의 두배가 넘는 11.3%의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했다.92년에 실질경제성장위주로 전환된 7개년경제계획과 정치 민주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후세인국왕으로선 이스라엘·팔간의 평화협정으로 즉위 40년에 가장 큰 격동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 “을사조약은 무효” 고종친서 발견

    ◎“내각에 체결 위임 안해… 강압에 의해 맺어”/“국제재판소 제소” 미 등 9국에 협조 요청/서울대 김기석교수,컬럼비아대 도서관서 찾아 【뉴욕 연합】 지난 1905년 대한제국과 일본간에 체결된 을사보호조약이 국제법상으로 무효임을 선언한 고종황제의 친서가 90여년만에 발굴됐다. 고종은 미·영·불·독등 9개 열강국 원수들을 대상으로 을사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천명하기 위해 조약체결 다음해인 1906년 6월22일 친서를 작성,미국인 호머 헐버트를 친서전달 특사로 임명했으나 고종의 강제퇴위로 각국 원수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고종의 친서는 헐버트 특사가 소장하고 있다가 재미통일운동가 김용중씨에게 이관했으며 그의 사망후 뉴욕 컬럼비아대학 희귀본 도서관에 보관되어 오던중 하버드대학에 파견된 서울대 김기석 교수에 의해 지난 6월 우연히 발견됐다. 상반부는 한문으로,하반부는 영문으로 작성된 친서에서 고종은 비준권자인 국왕으로서 조정대신들에게 조약체결을 위임한바 없을뿐 아니라 당시 일본이 대신들을 감금한채 강제로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는 조약이 아니라 늑약이며 아무런 법적 효력을 가질수 없다고 밝혔다. 고종은 또 이 친서에서 조약의 무효를 밝히기 위해 국제재판소에 일본을 제소하겠으니 미국대통령과 러시아황제등은 재판과정에서 대한제국을 잘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고종은 친서임을 입증하기 위해 국내문서와는 달리 외교문서에만 쓰는 이희라는 본명을 사용하고 옥새를 압인했다. 이번에 발굴된 친서는 당시 대한제국의 주권자인 고종황제 자신이 직접 을사조약이 국제법적 무효임을 선언한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문서보다 가장 확실하게 을사조약이 불법,무효임을 밝혀주는 역사적 자료로 평가된다.친서를 발견한 김교수는 『을사조약이 무효이면 그후에 성립된 정미조약(1907),합방조약(1010)등은 모두 무효이며 을사조약으로 강탈당한 대한제국의 정치·경제·외교적 권리가 복원돼야한다』고 말하고 『정부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일본측의 인정과 사과및 배상과 같은 구체적 조치를 요청해야하며 예컨대 일본과 청국간에 체결된 간도협정으로빼앗긴 국토를 회복할 조치도 뒤따라야한다』고 주장했다.
  • 퇴역 미 전 합참의장 콜린 파월(뉴스 인물)

    ◎“강력한 이미지”… 정치할지 관심 미국 군인으로서 최근 십여년래 최고의 국민적 신뢰와 인기를 누렸던 콜린 파월 미합참의장(56)이 지난달 30일 퇴역,4년간의 합참의장직을 포함한 35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했다. 군문을 떠난 파월의장은 당분간 6백만달러에 계약한 것으로 알려진 회고록 출판준비와 강연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으로 보이나 워싱턴 정가에서는 파월의 정계입신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돌고 있다. 자메이카출신의 부모아래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난 흑인이자 ROTC출신임에도 불구,흑인출신 최초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군최고위직인 합참의장을 역임한 파월은 재임중 걸프전,소련의 붕괴등 역사적 사건을 맞아 전황과 군사력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많은 미국민들에게 단순한 군인이 아닌 강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폭넓게 심어주었다. 한편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은 같은 날 파월장군에게 명예기사 작위를 수여했는데 미국 흑인인사가 영국왕실로부터 작위를 받기는 그가 처음이다. 이에 앞서 가진 고별회견에서 파월의장은 『북한의 핵무기개발 노선은 마땅히 저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강진 3차례… 순식간에 아비규환/“새벽 날벼락” 인 지진 참사현장

    ◎대부분 흙벽돌 오두막… 피해 커/화장못한 시체 즐비… 악취 진동 ○…지진 피해현장의 구호관계자들은 30일 3차례에 걸친 강진이 마하라슈트라주의 농촌지역을 엄습,순식간에 주민들이 생매장되는 비극이 벌어졌다면서 폐허가 된 마을에는 부녀자들과 이미 숨진 부모들을 찾는 어린이들의 울음소리로 아비규환을 이뤘다고 현지상황을 설명. 이날 지진은 진앙지로부터 6백40㎞ 떨어진 곳에서도 진동이 감지됐으며 봄베이와 방갈로르등에서도 시민들이 놀라 대피하는 상황이 속출. 이와 함께 피해지역에서는 대부분 전화선과 전기 급수 등이 끊기고 콜레라 등 수인성 전염병에 식량난까지 겹쳐 극심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전언. ○…사고발생 하루가 지난 현장에는 사체들이 화장되지 못하고 방치된채 놓여있어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고.한 현지 의료센터의 야외공간에는 일손부족으로 팔·다리 등이 잘려나간 남녀·어린이등 1백여구의 사체가 즐비하게 놓여있는 실정이라고. ○팔 다리 잘리기도 ○…60년래 최악의 피해를 불러온 인도의 대지진으로 마하라슈트라주 등 지진피해지역에서는 전통적인 힌두교 종교의식에 따라 곳곳에서 사체를 화장하는 바람에 인도 중앙의 오스마나바드와 라투르 지역일대가 거대한 화장터로 변했다고. 장작마저 부족해 사망자 2∼3명씩 한꺼번에 화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 목격되기도. 킬라리 지방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인도 서부 라투르 지방당국도 사망자들을 화장하기 위해 등유탱크를 피해현장에 전달하고 있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사체들이 썩게 될 것이라고 설명.라투르 당국은 이와함께 수많은 희생자들을 덮기 위한 총2천3백m의 흰색 리넨을 긴급 청구하는 한편,황폐화된 관할내 25개마을에 각각 화장용 장작을 실은 트럭을 급파하기도. ○원인 규명에 착수 ○…이번 대지진 피해지역의 가옥은 대부분 튼튼한 지반공사를 하지 않은데다 진흙벽돌집이거나 대나무 오두막집이어서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관계전문가들은 지적. 인도는 이같은 자연재해외에도 사고 위험이 있는 원자력발전소와 산사태가 염려되는 댐을 건설해 재해유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지진피해 구호팀들은 1일 폐허더미속에 갇힌 수천명의 희생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으나 인도 정부의 요청이 없어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유엔측이 발표. 유엔의 한 구조담당 관리는 인도가 아직 외부에 구조요청을 할 경황이 없는 상태이나 1일 현재 이미 영국등에서 온 35마리의 탐색견과 함께 유엔소속 구조전문가 3명이 현지에 파견돼 있다고 설명. 한편 크레인과 불도저 등 중장비를 동원,무너진 건물더미 속에 묻힌 사체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는 인도군은 이날 수천구의 사체를 추가로 인양하는 한편 3명의 어린이를 비롯,30여명의 생존자도 무사히 구출. ○…일단의 인도 과학자들은 지진피해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됐던 지역에서 2만1천명 가량의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에 대한 원인규명 작업에 착수. 하리시 굽타 인도 지진연구소장은 지질적 잘못이 이번 사고의 원인인지에 대해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 한편 2명의 현지 점성술가들은 별들이 이번 사고를 사전에 예견해 줬다고 주장. ○…이번 인도대지진의 진도에 대해 인도와 미국의 지질관측소가 각각 6.0,6.4로 다르게 발표함으로써 다소 혼선이 빚어지기도. 이에 대해 인도국립 지구물리학 연구소의 하리시 굽타 소장은 관측소가 진앙지에서 너무 가까워 정확한 측정이 어려웠다고 설명. ○유엔,구호 등 약속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은 1일 이번 지진은 『몸서리칠 정도의 인명피해를 냈다』며 유엔의 원조 및 구호를 적극제공할 것을 약속하는 전문을 현지에 급송. 이와 함께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이날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깊은 애도의 뜻을 나라시마 라오 인도 총리에 전달한데 이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존 메이저 영국 총리,에두아르 발라뒤르 프랑스 총리,무엔 쿠레시 파키스탄 과도정부 총리,네팔의 비렌드라 국왕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도 이번 사태에 위로의 뜻을 표명.
  • 라빈­요르단국왕 전격회담설

    【예루살렘 AFP 연합】 후세인 요르단국왕은 26일 하오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이츠하크 라빈총리와 회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스라엘의 라디오방송이 27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라빈총리가 당초 26일 예정돼있던 일련의 회의를 갑자기 취소했다고 전하면서 양국 지도자의 회담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총리실은 즉각 이같은 보도내용을 부인하면서 지난 13일 워싱턴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간의 역사적인 평화협정이 서명된후 이러한 보도는 『부질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 외국원수 간소 접대 “정착”

    ◎1인 평균 6,100만원… 6공의 절반으로/정부행사도 책정예산의 35% 절감/현판·꽃탑·불꽃놀이 등 생략/민간행사 지원도 7억 절약 정부의 각종 행사비용이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총무처는 26일 새정부출범후 지금까지 각종 정부행사에 1백2억3천만원이 소요돼 당초 책정된 1백56억6천만원의 예산중 35%인 54억3천만원이 절감됐다고 밝혔다. 정부행사비용의 이같은 감소는 지난 4월이후 근검절약하는 사회기풍을 조성한다는 방침아래 각종 정부행사를 간소화한데 따른 것이다. 특히 모두 4차례 있었던 외국원수의 방한행사에는 2천5백여만원이 소요돼 지난해 7차례의 국빈방한과 2차례의 해외순방을 통해 2억1천여만원이 소요된 것에 비해 8분의1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특히 새정부 출범이후 외국정상의 방한에 소요되는 정부 경비지출액이 과거정권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외무부가 26일 국회외무통일위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김영삼대통령 취임후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정상을 위해 정부가 사용한 1인당평균경비는 6천1백여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이에 반해 노태우전대통령 재임기간인 지난 92년 정부가 외국정상을 위한 1인당 평균 예산집행액은 1억1천4백여만원에 달해 5천여만원 정도가 더 소요된 것으로 드러났다. 방한 인사별 예산집행내역을 보면 노전대통령은 하벨 체코대통령(9천1백80만원),카리모프 우즈베크공화국대통령(9천1백40만원),옐친러시아대통령(9천46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 정상에 대해서는 모두 1억원을 넘는 비용을 사용했으며 지난해 10월12일부터 19일까지 내한했던 보두앵 벨기에 국왕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1억8천3백83만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이에 반해 김영삼정부출범후에는 첫 외국손님인 콜 독일총리의 방한에 가장 많은 9천8백65만1천원이 들었을 뿐 나머지 외국정상 8명에 대해서는 6천만원이하의 경비가 지출됐다. 광복절등 지금까지 3차례 치른 국경일 경축행사도 행사장시설을 축소하고 광화문 현판등을 없애 지난해에 비해 21%가 절감된 2억원이 소요됐다.지난해에는 2억5천7백만원의 경비가 소요됐다. 이와함께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에 대한 정부지원도 축소해 「새마을지도자대회」와 「저축의 날」등 16개 행사에 대한 지원예산 26억6천만원가운데 11%인 7억7천만원을 절감했다.
  • 고대 희랍극 「리시스트라타」 서울·런던 동시공연

    ◎산울림소극장의 「여성반란」·영국왕립극단 「리시스트라타」화제/여성들이 「성파업」통해 평화요구 관철/반전주제 코믹물… 표현상 차이 큰 재미 반전을 주제로 한 고대 그리스 희극 「리시스트라타」가 화제속에 서울과 런던에서 동시에 공연중이다.극단 산울림이 「오늘의 한국연극­새작품 새무대」 두번째 작품으로 지난14일 개막,오는 10월10일까지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아리스토파네스 원작의 「여성반란」과 영국왕립극단(RSC)이 웨스트 앤드에서 연장공연에 들어간 「리시스트라타」가 바로 화제의 무대들. 작품의 줄거리는 전쟁에 지친 여인들이 남자들이 싸움을 포기하고 평화협정에 서명할때까지 잠자리를 거부하기로 결의,여성들의 평화요구가 관철된다는 것이다.재미있는 점은 한국과 영국의 두무대를 놓고 원작의 의미를 살리면서 현대적으로 각색됐다는 공통점과는 달리 확연하게 구분되는 표현상의 차이점과 문제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여성반란」은 「사랑을 찾아서」의 작가 김광림씨와 신예연출가 이성열씨가 손을 잡고 만든 무대.아리스토파네스의 기상천외한 코미디를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익살맞은 대사와 우스꽝스런 상황들로 시종 폭소를 자아낸다.TV 토론프로중 가상의 상황으로 안내돼 극중극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수년째 교전중인 남북한을 배경으로 한다.전쟁「놀이」에 몰두해있는 남성들을 더 이상 놔둘수 없다며 남북한 여성지도자들은 비밀회의를 열고 남성들이 평화협정에 서명할때까지 무기한 잠자리를 거부하기로 결의한다.「성파업」이라는 선전포고와 함께 비밀무기연구소와 방송국등을 점거한 여성들은 남성들 못지않게 「본능적 욕구」에 견디기 어렵자 갖가지 해프닝을 연출한다.그러나 여성들이 살포한 신개발품인 「강력정력제」로 남성들의 성기는 터질듯 부풀어오르고 결국 남북의 남성지도자들은 평화협정에 서명,해피앤딩으로 막이 내린다. 연출가를 포함해 13명의 젊은 연극인들의 열성으로 숨돌림 여유조차 주지않는 이번 무대는 활력이 넘친다.그러나 출연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데서 오는 어색함이 극의 흐름을 끊고 춤·음악등 지나치게 다양한 볼거리가 오히려 산만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남북한이라는 구체적인 상황보다는 시공을 아예 가상으로 설정,괴이하기까지한 여성 반란속에 평화에의 염원이라는 메시지를 보다 명쾌하게 담아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거대한 여체 조각상이 무대 한쪽에 세워져있고 다른쪽 모서리에는 미사일이 매달려있다.기능적으로 작동하는 무대가 인상적이다. 한편 저명한 연출가 피터 홀이 연출한 RSC의 영국무대는 원작의 묘미를 살리면서 내전중인 보스니아의 상황을 연상시킨다고 외신들은 전한다.남성들의 성기가 과장되게 묘사된 한국무대와는 달리 피터 홀은 여성연기자들에게 가면을 씌우고 가슴과 엉덩이를 과장되게 부풀려 놓아 좋은 대비를 이룬다.원작처럼 음란함과 외설스런 부분들이 도처에 깔려있고 줄곧 웃음을 자아내지만 여성들의 반란과 승리를 악에 대한 청교도적 선의 승리가 아니라 이기심에 대한 의지의 승리로 끌어올린다.또 여자출연자들이 승리의 기쁨속에서도 「평화는 순간이고 전쟁에 대한 강한 충동은 영원하다」고 인정하는 대목에 이르면 웃음속에 숨어있는 섬뜻한 메시지가 「위험한」 평화시대를 살고있는 현대인들을 전율케 만든다고 한다.
  • 캄보디아 국왕즉위/노로돔 시아누크(뉴스인물)

    ◎왕→망명자→주석→대통령→왕 캄보디아 제헌의회가 마련한 입헌군주제헌법에 따라 24일 캄보디아 국왕으로 즉위한 노로돔 시아누크공(70).70년 이후 반복된 쿠데타와 내전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도 망명생활을 빼놓고는 왕과 국가주석,대통령직을 오갔던 캄보디아의 정신적지주이다. 지난 41년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던 그는 70년 론놀의 우익 쿠데타로 쫓겨났으며 축출된지 23년만에 「왕정복고」를 이룬 셈이다. 캄보디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 크메르 루주파의 키우 삼판,크메르인민민족해방전선의 손산 등과 함께 82년 말레이시아에서 캄보디아련정을 주도했으며 이를 발판으로 90년 캄보디아 정부가 참여한 최고민족회의(SNC)의 의장을 맡으면서 실권자로 복귀. 즉위식은 경비절약을 이유로 생략하고 취임선서로 대체됐으며 왕정을 수행하면서 정부로부터 어떤 급료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지구촌 개혁시대에 동참하는 기민성을 보였다. 망명생활동안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매년 조건없이 각각 30만달러(한화 2억4천만원)와 8만달러(한화 6천4백만원)를 지원받아왔고 북한 전용여객기도 무료로 사용할 정도로 북한,중국,일본의 정계지도자와 가깝게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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