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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니스 비엔날레/베니스 영화제(유럽 문화산업 현장:중)

    ◎관광진층·경제활성화 동시 추구/현대미술·영화흐름 주도… 세계적인 축제로/권위에 안주 않고 끊임없는 개혁정신 발휘/비엔날레 한국관 기공계기,기업의 현지 투자 요청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기공식이 열렸던 지난 8일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은 베니스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한국은 5천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국이며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자적인 문화가 있으나 이를 세계에 선전하지 못해왔다.이런 기회를 베니스 시민들이 갖게 해주어 감사한다』 이에 대해 베니스의 시장인 마치모 카치아리씨는 『한국이 상설 전시관만 지을 것이 아니라 공단에 기업이 투자하고 현지인을 고용하며 많은 관광객을 보내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화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세계적 권위와 그 권위를 단순한 문화행사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관광진흥과 경제활성화에까지 연결시키는 이탈리아의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와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의 수많은 미술제전과 영화제중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관이 개관했을 때에는 히틀러가 참석했으며 일본관이 개관할 때는 국왕이 참석,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1895년 이탈리아왕국과 베니스시는 베니스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미래에도 예술을 주도하기 위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창설했다.그해는 국왕인 움베르토1세와 사보이왕가의 마그리타왕비의 결혼 25주년 기념식이 있는 해였다. 베니스는 당시 세계최고의 예술도시로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영국·미국등의 젊은 화가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오던 곳이었다. 제1회 대회는 주로 라틴국가들의 화가 4백71명이 참가했으며 그후 1백년동안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2년에 한번씩 6월에 시작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 각국의 화가·조각가·건축가·평론가·저널리스트·화상등 1만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세계의 미술 올림픽.미술인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르디니 공원에 상설전시관을가진 24개국,주로 선진유럽국가들의 국제잔치로 치러져 왔다.따라서 이곳에 상설전시관,즉 국가관을 갖지 못한 나라들은 이탈리아관의 한쪽을 비좁게 빌려 쓰면서 국가관을 마련하기 위해 치열한 국제 로비전을 펼쳐 왔다. 선진국의 문화패권주의가 날카롭게 대결하는 이곳의 한정된 공간에서 마지막 국가관을 지을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고 건물 기공식을 올린 우리 정부는 「문민정부 최대의 문화외교 성과」로 이를 자부하고 있다.한국관이 들어서는 부지는 지난 20여년동안 중국과 아르헨티나 등이 상설전시관을 짓기 위해 탐내왔던 곳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권위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자 박물관인 베니스의 미술전통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귀족적 권위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개혁의 정신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명성을 지켜왔다. 이탈리아의 전위미술가였던 필리포 마리네티는 베니스를 20세기 미술운동의 하나인 미래파의 발상지로 만들었고 그의 미래파선언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위적인 성격을 가미했다.그는 19 07년 『박물관과미술관은 수백년 전에 죽은 화가와 조각가들의 공동묘지이기 때문에 때려 부셔야 한다.운하의 물길을 터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물에 잠기게 하라.오!영광에 가득찼던 캔버스들이 물위에 떠내려 가며 색이 바래고 갈갈이 찢겨지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즐겁겠는가』라는 미래파 선언을 했다.그는 더 나아가 『엔진의 뚜껑을 커다란 파이프로 장식한 경주용 자동차가 「사모트라체의 승리」라는 낡은 그림보다 아름답다』고까지 말했다. 1968년에는 학생들의 데모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수상제도가 바뀌기도 했다.베니스대학 학생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의 그랑프리 제도가 상업주의에 이용된다며 데모를 벌여 대상제도가 사라지고 「올해의 화가상」과 가장 훌륭한 작품을 출품한 국가관에 주는 상이 새로 만들어졌다. 한편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19 32년 만들어 졌다.당시의 통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첨단과학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영화제를 창설했다.독재자의 광기와 과욕이 이탈리아의 영화 산업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고 독재자가 역사의 인물로 사라진 뒤에도 전세계 영화인들의 최고 영예가 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칸영화제가 생긴 것은 이보다 7년 뒤인 39년이며 베를린영화제는 50년에야 창설됐다. 베니스 영화제는 32년 제1회대회때부터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하고 34년에는 국내영화·국제영화 두분야로 나누고 36년에는 최고상인 무솔리니배가 추가되고 47년부터는 베니스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황금사자상이 주어진다. 38년도 베니스 영화제의 무솔리니배는 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기록영화를 만든 독일의 여류감독 레니 레펜슈탈에게 돌아가고 51년도에는 영화 후진국인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라생문」으로 작품상을 받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구로사와의 부친은 일본 육사를 나와 평생동안 학교의 체육선생을 지낸 사람으로 구로사와는 그의 영향을 받아 일본 사무라이의 비정한 생활을 영화한 것이 일본문화 수출의 첨병이 되었다.일본의 영화산업은 베니스영화제의 수상을 계기로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7년에는 우리나라의 강수연양이 「씨받이」라는 영화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베니스 영화제는 해마다 여름철에 리알토섬(베니스의 주요 섬)의 남쪽 방파제 구실을 하는 리도섬에서 열린다.리도 섬에는 11㎞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과 경마장 골프코스 비행장 축구경기장 등이 있는 곳으로 영화제가 시작되면 세계적인 축제가 벌어진다. 이기주 주이탈리아대사는 『우리나라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우리 문화를 선전하고 알리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상품은 비싼 것이라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신뢰를 하면서 물건을 사는데 비해 한국 상품은 1만달러가 넘는 것은 보증서가 있는가,잘못되었을때 환불을 받을 수 있는가를 질문받게 된다』고 밝혔다.이대사는 상품을 팔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알리는 대규모 문화 행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문화행사와 관광진흥을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베니스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 스웨덴국왕 내한

    카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이 스웨덴 과학기술 사절단의 후견인 자격으로 우리나라를 비공식 방문하기 위해 13일 상오 김포공항을 통해 내한했다.
  • 조부 발굴 「서봉총」 방문나들이/구스타프 스웨덴국왕 방한 안팎

    ◎무공사장 등 기업인 20여명 동행 “눈길”/대덕단지·삼성·포철·현대·대우 시찰 카를 구스타프 스웨덴국왕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지난 87년,88년,91년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이다.머나먼 북구 나라의 왕이 네번이나,그것도 모두 비공식으로 한국을 방문한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구스타프 국왕의 조부인 구스타프 아돌프 6세는 1926년 세자 시절 조선을 방문,탐사하다 우연히 경주 서봉총 발굴에 참여하게 됐으며 그곳에서 금관을 발견한 바 있다. 구스타프 국왕은 오는 17일 하오 할아버지가 발굴한 서봉총을 방문할 예정이다.그는 또 13일 경복궁에 들러 국립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을 돌아보며 한국의 문화유산을 살펴보기도 했다. 구스타프 국왕의 이번 방한 일정에는 한국에 대한 개인적인 인연,관심과 함께 매우 실질적인 측면도 포함돼 있다.스티그 핵스트롬 이사장등 왕립공업과학원 관계자와 고란 홈퀴스트 스웨덴 무역공사 사장,볼보 자동차사의 레나르트 젠슨 부사장,사브(SAAB)의 피터 몰러 기술이사등 20여명의 기업인이 수행원 명단에 포함돼있다.국왕 일행은 대덕의 과학단지와 삼성,현대,대우등 우리의 산업시설도 시찰할 예정이다.
  • “한·인니 경제는 보완적… 협력 증대” 역설(김 대통령 순방여로)

    ◎아·태평화­번영에 가교역 강조/김 대통령/한반도의 긴장완화 노력 환영/수하르토 2박3일동안의 필리핀 공식방문을 마친 김영삼 대통령 내외는 12일 마닐라를 떠나 두번째 방문국인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안착,인도네시아 공식방문및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석 일정을 시작했다. ▷환영만찬◁ ○…인도네시아 공식방문 첫날인 이날 김대통령은 숙소인 영빈관에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내외 예방과 트리 부통령 접견을 마친 뒤 승용차편으로 이스타나 메르데카 대통령궁으로 가 대통령내외가 주최한 국빈환영 만찬에 참석. 수하르토대통령은 만찬사에서 『한국경제의 성공은 개발도상국들도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평가하고 『우리의 개발계획은 다른 국가들의 지원과 협조를 필요로 하며 한국이 인도네시아의 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고 피력. 수하르토대통령은 남북한문제에 대해 『우리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통일노력을 환영한다』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동북아시아와 세계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만찬연설에서 『두나라 경제는 상호 보완적이어서 협력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히고 『우리 두나라는 아·태지역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가교역할은 물론 이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두나라의 협력 필요성을 역설. 1시간30분남짓 진행된 만찬이 끝난 뒤 김대통령은 별실로 옮겨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만찬장 맞은편에 있는 민속공연장으로 건너가 20분동안 민속공연을 관람. 김대통령내외는 민속공연이 끝나자 수하르토 대통령내외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걸어서 숙소인 영빈관으로 이동. ▷수하르토대통령 예방◁ ○…김대통령내외는 공식환영식을 마친뒤 수하르토대통령내외와함께 대통령궁 접견실로 이동,환담. 김대통령은 『APEC회의 준비때문에 바쁠텐데 이렇게 맞아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했으며 수하르토대통령은 『바쁘긴 하지만 우방국원수를 맞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라면서 『APEC회의에 참석할 정상들은대부분 월요일에 도착하며 현재까지 김대통령과 브루나이국왕등 두분이 왔다』고 설명. 김대통령은 이어 『2억 인구를 이끌고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언급. 수하르토대통령내외는 환담이 끝난 뒤 김대통령 내외를 대통령궁 뒤쪽의 영빈관까지 안내. ▷공식환영식◁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자카르타에 도착한 뒤 대통령궁 이스타나 메르데카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 김대통령은 바슈니 대통령의전장의 안내로 수하르토대통령과함께 사열대에 등단,예포 21발이 발사되는 가운데 애국가와 인도네시아 국가를 듣고는 베란다로 걸어가 기다리고 있던 인도네시아 정부 고위인사및 외교단을 접견. ○…공식환영식에 앞서 이날 하오 1시40분 자카르타의 할림국제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내외는 50여명의 교민 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특별기에서 내려 사트리오 부디하르죠 유도노 무역장관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김대통령은 이어 수르자디 소에디르쟈 자카르타주지사내외와 한승주외무·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등 우리쪽 APEC 각료회의참석 공식수행원등과 차례로 인사. ▷마닐라 출발◁ ○…마닐라공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상오 숙소인 마닐라호텔에서 라모스 대통령내외의 작별예방을 받고 2박3일동안의 아쉬운 일정을 작별. 라모스대통령은 필리핀 방문기간동안 필리핀 신문에 보도된 김대통령내외의 기사스크랩을 보여주면서 『조깅하는 사진을 포함해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소개. 이어 라모스대통령은 조깅녹화테이프와 필리핀 경제개발계획인 「필리핀 2000」 마크가 들어있는 골프공 한상자를 선물로 전달. ○…마닐라공항에서의 환송행사에 참석한 김대통령내외는 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두나라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엔릴레 필리핀군총사령관의 안내로 군의장대를 사열한뒤 이창수 주필리핀대사와 베네딕토 주한필리핀대사의 환송을 받으며 비행기에 탑승. 공식환영행사와 맞먹는 격식을 갖춘 환송행사는 의전절차상 그 예가 매우 드문일로 이날 김대통령내외를 위한 환송행사는 라모스 필리핀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의전관계자가설명. ▷골프 해프닝◁ ○…김대통령이 필리핀 방문도중 라모스대통령과 골프를 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아 한국의 고위공직자 가운데 골프애호가들에게 「낭보」가 날아들뻔했다는 후문. 필리핀측은 사전에 우리측에 『김대통령은 조깅을 하지만 라모스대통령은 골프를 잘치니 코스를 전부 돌지는 않더라도 티업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는 것.이에 대해 우리측은 『정부 방침이 공직자의 골프는 곤란하다는 것이니 양해해달라』고 완곡하게 거절. 하지만 김대통령이 11일 상오 골프를 즐기는 라모스대통령과 아침운동을 하다 자칫 티업을 하러 가는 듯한 광경이 연출되어 수행관계자들을 긴장시켰으나 두 대통령이 들어간 건물은 골프용 시설이 아니라 실내체육관이어서 그런 걱정은 「기우」로 판명됐다고 관계자들이 전언. ◎김 대통령 만찬연설 요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놀라운 발전상과 활력이 넘치는 거리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이것은 수하르토 대통령각하의 강력한 지도력과귀국 국민의 우수성의 결과로서 나와 우리국민은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귀국은 이러한 성숙된 역량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귀국은 아세안(ASEAN) 협력뿐만 아니라 비동맹회의 의장국으로서 중심적 역할을 해왔습니다.또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지도자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아·태협력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귀국은 이미 우리의 6대교역국이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귀국의 4대교역국이 되었습니다.귀국은 세번째로 큰 우리의 투자대상국으로서 3백50여개의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습니다.양국 경제는 상호보완성으로 인하여 협력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두 나라는 아·태지역에서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가교역할은 물론 이 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정세는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지난 7월에 개최된 아세안지역 안보대화는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고무적인 출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우리는 북한핵문제의 조기해결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아울러 아·태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귀국과 더욱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끝으로 본인 내외를 초청해주신 각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가까운 장래에 각하의 한국방문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바입니다.
  • 스웨덴국왕 13일 내한

    스웨덴국왕 카를 구스타프 16세가 한·스웨덴 과학기술협력 증진을 위한 스웨덴 과학기술 사절단 후견인 자격으로 13일부터 19일까지 방한한다고 외무부가 10일 밝혔다.
  • 중동­북아 경제회의/내일부터 3일간

    【라바트(모로코) AFP AP 연합】 중동과 북아프리카지역의 경제협력·개발을 통한 평화정착을 위해 관련 50여개국의 정치·경제지도자와 전문가 등 1천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경제회의가 오는 30일(현지시간)부터 모로코의 항구도시 카사블랑카에서 3일간 열린다. 모로코의 모하메드 뮬레이 하산 2세 국왕이 주재하게 될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이 지역의 용수사용문제와 관광·환경·신정보기술·자본금 1백억달러규모의 개발은행 설립 등 광범위한 문제를 논의하게 된다. 회의 관계자들은 이번 회의가 정치·군사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의제를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 이­요르단 평화협정 조인/46년 적대관계 종식

    ◎양국총리 서명/각국정상·고위관리 5천명 참석 【아라바(이스라엘 요르단국경) 외신 종합】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26일 홍해북부의 아라바 접경검문소에서 46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평화협정에 정식 서명했다. 협정 서명은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압델 살람 마잘리 요르단총리간에 이루어졌다. 협정 서명식은 이날 하오1시(한국시간 하오 8시)부터 추도 묵념,이슬람 성직자 코란 낭송,유태교 라비의 시편 낭독,협정 서명등의 순으로 약 한시간 동안 진행됐다. 양국 대표간의 협정 서명에 이어 클린턴 미대통령,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증인자격으로 협정에 서명했다. 후세인 국왕은 요르단 외국귀빈을 비롯,5천여명의 군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서명식 기념 연설을 통해 평화 협정 서명을 환영하면서 『평화가 우리 삶의 변화를 예고할 것』이라면서 『협정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평화를 실현케 될것』이라고 강조했다. 후세인 국왕은 이어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양국이 이제 더이상의 죽음과 불행이 없도록 보장하기 위해 이자리에 모였다』면서 『우리가 서있는 이 계곡은 이제 평화의 계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클린턴 미대통령이 양국간의 평화절차를 진척시켜준데 사의를 표하면서 『클린턴 대통령은 우리의 파트너이자 친구』라고 말했다.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서명식 장소가 양국간의 오랜 적대관계를 보여주는 황무지의 지뢰밭에 둘러싸여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시킬 시점에 왔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찾아온 이 평화는 우리에게 새로 태어난 어린이들이 다시는 양국간의 전쟁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어머니도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한뒤 평화를 기원하며 연설을 끝냈다. 클린턴 대통령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평화는 더이상 기적이 아니라 현실』이며 『양국민들은 평화를 진정으로 실현시켜 아무도 살지않는 황무지를 모든 사람이살수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잠롱 전방콕시장 부총리에/태 각료14명 경질

    ◎외무에 기업가 탁신 발탁 【방콕 연합】 잠롱 스리무앙 전방콕시장이 26일 태국 부총리로 입각했다. 추안 리크파이 총리의 태국 연립정부는 이날 푸미폰 국왕의 재가를 얻어 부분개각을 단행,부총리에 각각 연정파트너인 잠롱 팔랑탐당 당수와 수카위치랑싯폰 전고속도로청장(신여망당)을 기용하고 외무장관에 태국 최대 컴퓨터·전자통신기업인 시나와트라그룹회장 탁신 시나와트라를 임명하는 등 14명의 각료(정무차관8명 포함)를 새로 임명,발표했다. 이번 개각 과정에서는 그러나 팔랑탐당 몫으로 외무장관과 교통통신장관에 각각 기용된 탁신과 위치트씨가 현역의원이 아닌 기업인출신으로 태국의 고질적인 정경유착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이유로 팔랑탐은 물론 연정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치분석가들은 잠롱당수의 이번 입각은 차기 총리를 겨냥한 하나의 포석으로 보고 있으나 잠롱당수 자신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 “요르단안보 PLO가 저해”/후세인왕,경고 연설

    【암만 로이터 연합】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자들에게 요르단의 안보를 동요시키려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후세인 국왕은 이날 국영 TV에 출연,극히 이례적으로 지난 70년대 PLO와의 무력충돌 상황을 상기시키면서 『70년대로 돌아가보자.우리는 이같은 기도에 맞서 싸울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후세인 국왕은 3차 중동전쟁 후인 지난 70년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요르단을 발진기지로 만들자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였으며 내전상태까지 가는 위기를 겪은 끝에 결국 71년7월 이들을 국외로 추방했었다. 중동의 오랜 라이벌인 요르단과 PLO의 관계는 요르단이 PLO를 앞질러 26일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됨으로써 더욱 악화됐으며 특히 동예루살렘 회교성지 관할 문제로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 찰스/카밀라/밀애­결별­재회 숨바꼭질

    ◎영 선데이타임스 연재 「웨일스공」/찰스/“갈구해온 애정·이해심 얻었다”/카밀라/런던교외의 집 보도진에 포위 곧 출간될 찰스의 전기 「웨일스공」(영국 왕세자는 전통적으로 웨일스공으로 봉해짐)의 내용을 요약연재중인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찰스가 해군장교로 복무하던 지난 72년(당시 23세) 카밀라라는 처녀를 처음 만나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들었다』고 23일자로 보도했다. 찰스는 그때 한살 위인 카밀라를 만나 반년쯤 교제했으나 그가 8개월간 함상근무를 하는동안 카밀라가 옛날 청혼자였던 앤드루 파커 볼즈(54·현 육군준장)와 결혼하자 둘의 관계는 멀어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70년대말 재회,찰스가 81년 다이애나와 결혼하기 직전까지 관계를 가졌으며 찰스가 다이애너와 별거에 들어간 86년말 또는 87년초이후 또다시 「옛사랑」을 불태웠다. 저자인 조나단 딤블비(방송인)는 『그들이 서로 사랑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왕자는 늘 갈구해왔던 애정과 이해심,지속적인 사랑을 카밀라에게서 찾아냈다』고 말했다. 딤블비가 찰스와의 장시간 인터뷰및 그의 일기와 수천장의 편지 등을 토대로 6백쪽분량으로 쓴 공식 전기인 이 책의 내용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런던 남서쪽방향으로 자동차거리로 40분 떨어진 피크위크마을의 카밀라집은 보도진들로 완전 포위됐다. 일이 이쯤되자 카밀라가 집에서 마구간까지 가는 동안에도 남편 앤드루와 아들 톰이 보도진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호위에 나서는 지경이 됐다. 그녀 역시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가십 칼럼니스트 니겔 뎀프스터에 의하면 카밀라는 찰스에게 둘사이의 일을 발설하지말도록 부탁했었다고 한다.사랑의 비밀은 이번에도 남자가 깼다. 왕실의 사생활을 추적해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번의 전기는 다이애나가 지난92년 여름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작가 앤드루 모튼으로 하여금 책으로 펴냈던 데 대한 복수인 것으로 생각하고있다. 모튼의 책때문에 둘의 관계가 심상치않자 엘리자베드2세 여왕은 두사람의 한국방문을 적극 주선했으나 공식석상에 나타난 그들의 관계는 무척 불행해 보였다. 92년12월 별거에 들어가면서 다이애나가 두아들 윌리엄과 해리를 만나지도 못하도록 하자 찰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신적 고통이 엄청나다.지금까지 배워온대로 의무를 다하겠다.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고 말했다. 영국왕실의 사생활문제가 계속 도마위에 올려지면서 일부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당의원의 44%가 장래에 왕정이 공화정으로 대체돼야한다고 응답했으며 성공회신부들은 38%가 이혼을 해야한다,31%가 형식상부부로 남아있어야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영국인들사이에서 군주제를 유지해야한다는 의견이 우세해 노동당은 왕정이 지속돼야 한다는 성명을 서둘러 발표하기도했다.
  • 예루살렘 회교성지 관할권/요르단,“포기못해”/팔 「수도간주」 반발

    【암만 AP AFP 연합】 후세인 요르단국왕은 22일 예루살렘내에 있는 회교성지에 대한 자국의 종교적 관할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후세인국왕은 이날 연설에서 다음주 조인될 대이스라엘 평화조약에서도 요르단의 관할권을 규정해 놓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후세인국왕의 이같은 언명은 최근 야세르 아라파트의장이 이끄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가 예루살렘을 향후 수도로 간주하면서 이들 회교성지에 대한 요르단의 관할권을 부정한데 따른 대응이다.
  • 이­요르단/46년 적대관계 청산/정상회담

    ◎평화협정안 가조인… 27일 공식서명/수자원·국경문제 합의/클린턴 환영… 중동평화무드 고조 【암만(요르단) AP AFP 연합】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압둘 살람 마잘리 요르단총리는 지난 7월25일의 워싱턴 평화선언 이후 3개월간 끌어온 평화협정에 17일 가조인했다.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마잘리총리는 이날 요르단 수도 암만 서쪽 16㎞의 하세미에궁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그동안 평화협정체결의 양대걸림돌이던 수자원및 국경문제에 합의,협정안초안에 서명했다. 요르단의 후세인국왕은 평화협정서명과 관련,『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출발』이라고 논평했으며 라빈총리는 『이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드문 계기』라면서 『이번 협정체결이 양국관계의 새로운 이정표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평화협정체결합의에 따라 요르단은 이집트에 이어 중동국가로는 두번째로 이스라엘과 평화관계를 수립한 국가가 됐다. 한편 클린턴 미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평화협정가조인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으며 레언 파네타 대통령비서실장은 클린턴대통령이 오는 27일로 예정된 이스라엘·요르단의 평화협정조인식에 참석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 “찰스 부모강요로 다이애나와 결혼”/영기자가 쓴 「왕세자」곧 출간

    ◎“1만여통 편지·읽기 써… 찰스도 인정”/다이애나의 「사랑에…」 뒤이어 나와 “화제”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지난 81년 부모의 강요에 의해 어쩔수 없이 다이애나와 결혼했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끌고 있다.이같은 충격적인 주장은 최근 찰스부부의 일련의 불화와 다이애나왕세자비의 염문설을 실은 「사랑에 빠진 왕세자비」란 책의 출판에 뒤이어 나온 것이라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조나단 딤블비란 영국 방송기자가 쓴 「왕세자」(Thr Prince of Wales)란 찰스왕세자의 인물평전에 실려 있다.이 책은 오는 11월3일 출간될 예정인데 딤블비는 『이 책이 찰스가 결혼을 전후해 친구들과 나눈 1만여통의 편지와 일기장을 읽은 뒤 쓴 것으로 공인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히고 있다.찰스왕세자도 이 책을 읽은 뒤 어느 한 곳도 고치지 않았다고 말해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어 보이며 영국왕실의 공인을 얻어 펴낸 최초의 인물평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따르면 찰스는 다이애나와 만나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기도 전에 아버지 필립공에 의해 결혼을 강요받았으며 이처럼 강요된 결혼이었기 때문에 다이애나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도 없었다는 것. 더욱이 필립공은 어린 시절부터 찰스를 아주 고압적으로 대했으며 종종 그에게 창피를 주기도 했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뿐만 아니라 어머니 엘리자베스여왕도 찰스와는 거리를 두고 대했으며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 결혼한 찰스는 결혼 5년뒤인 86년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결혼생활은) 모두가 그리스의 비극적 요소이다』라고 말하고 『이렇게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잘못됐을까』라고 적고 있다고. 이같은 내용을 종합해 보면 찰스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인 엘리자베스여왕과 필립공으로부터 별반 애정을 받지 못한 채 자랐으며 결혼마저도 그의 의도가 아닌 부모의 의도대로 됐기 때문에 지금같은 부부의 결별과 다른 사람과의 애정 행각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왕세자비」의 출간 이후 오히려 곤경에 빠진 사람이 찰스 왕세자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이 출간될 것이란 발표는 즉각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비판을 받고 있다.집권보수당의 당수인 제임스 힐경은 『왕세자가 자기의 심경을 밝히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 쪽은 윈저가문이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책 발간을 자제할 것을 경고했다.반면 선데이지에 기고한 영국정부의 한 관리는 『이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책의 출간은 산소를 공급하는 것과 같다』고 말해 상반된 입장을 보이기도. 한편 센데이 익스프레스지가 최근 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1%는 『찰스가 그의 잘못된 결혼생활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또 응답자의 3분의 1은 『그가 어린시절 부모에 관한 비화를 밝힘으로써 부모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같은 책의 발간이 얼마나 영국왕실에 해를 끼칠지는 좀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은 앞으로 선데이 익스프레스지가 연재를 마친 뒤 출간될 예정이어서 11월초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있는 엘리자베스여왕이 어떤 심정으로 떠날지도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아무튼 찰스왕세자의 내용을 다룬 「왕세자」의 출간으로 다이애나비의 염문논쟁은 제2라운드를 맞이하고 있다.
  • 올 노벨문학상 오에 일 문화훈장 거부

    ◎“전후민주주의자에겐 안어울린다” 사양/「천왕제」 반대 간접시사… 각계서 적극 지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59)씨가 14일 일본정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의 수상을 거부,일본 문화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오에씨는 이날 언론사 등에 「노벨상을 받고서 문화훈장을 받지 않는 이유」라는 서한을 보내 『문화훈장을 수여하겠다는 의사타진이 있었으나 이를 사양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오에씨는 또 『나는 「전후 민주주의자」로 그러한 사람에게는 문화훈장이 어울리지 않는다.문화훈장은 「국민적 영예」로 국가와 결부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거부이유를 들었다.그리고는 15일부터는 두문불출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37년 일왕의 칙령으로 공포된 문화훈장령은 「문화의 발달에 관해 뛰어난 공적을 세운 자에게 이를 수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오에씨보다 앞서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 7명 가운데 사토총리를 제외한 6명이 모두 받았기 때문에 오에씨의 거부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 거부이유와 관련,이런 저런추정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도쿄신문은 오에씨가 전후 50년을 회고하는 기고문에서 『전쟁전의 천황제,지배구조,지역과 가족의 종적인 인간관계 등 수직적 올가미가 현재도 그대로다』라고 말한 사실을 들어 거부이유가 「천황제 국가」에 있음을 간접 시사. 일본 문화계는 오에씨의 수상거부소식에 『오에씨답다』『거부소식을 듣고 기쁘게 생각했다』면서 지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작가 나카노씨는 『공감이 간다』고 이해. 작가 하시야씨는 「영국왕실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지만 21세기 일본의 천황제의 의미도 변화할 것이다.오에씨의 수상거부는 이러한 논의에 선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적극 두둔.재일교포 작가인 이회성씨도 『문단전체가 권위에 약한 분위기여서 훈장 거부는 쉽지 않다.멋진 일이다』고 박수. 한편 오에씨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벨문학상에 관해서는 『스웨덴 시민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 이라크 철군중단… 전투태세/쿠웨이트 접경 재이동 가능성

    ◎미국,“새 「아동금지구역」 추진… 강경대응” 【워싱턴·유엔본부·제다·바그다드 외신 종합】 쿠웨이트접경으로부터 철수하던 이라크군이 국경 북서쪽 약 1백60㎞ 지점에서 철수를 중단,전투대형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수시간내에 다시 국경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새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미국관리들이 14일 밝혔다. 크리스틴 셸리 미국무부 대변인은 이라크군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며 계산적으로만 볼 때 수시간내에 다시 쿠웨이트 국경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셸리대변인은 『쿠웨이트에 대한 위협은 상존하고 있다』며 『위협이 다시 제기되지 않는 방향으로 사태가 처리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셸리대변인은 또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제재와 관련,제재가 철회되기 전에 이라크는 모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유엔제재의 조기철회문제에 대한 논의 가능성을 배제했다. 한편 미국은 이라크군의 중화기와 공화국수비대가 남부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새「이동금지구역」을 선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을 수행하는 고위 국방관리가 14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페리장관과 파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간의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이라크측이 이동금지구역을 위반할 경우 공습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금지구역의 설치와 관련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협상할 의사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이동금지구역의 설치에 관한 일정을 밝히지 않은 채 유엔이 이런 계획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미국은 독자적으로 혹은 서방의 도움을 받아 이 계획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나루터:하(서울 6백년 만상:64)

    ◎삼전도/경강3진중 하나… 송파나루 전신/도성·남한산성 잇는 길목… 상업 요충지/병자호란때 인조의 「삼전도 굴욕」 현장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있었던 삼전도는 한강나루·노들나루와 함께 경강 3진중의 하나로 많은 상인들과 행인들이 드나드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뽕밭나루로 불렸던 삼전도는 세종 21년(1439년) 광주부가 남한산성에 설치되면서 도성과 남한산성을 바로 잇기위해 개설된 것으로 전해진다.당시 도성에서는 삼전도가 도성으로부터 30리나 되는 먼곳에 있었지만 한강도 소속 나룻배 1척등 3척의 나룻배를 옮겨 비치했고 진부를 10명이나 두었다.당시 삼전도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알수 있다. 삼전도는 나루앞의 물살이 워낙 거세 나룻배가 소용돌이에 전복하는등 인명사고가 잦아 한때 인근의 연파곤으로 이설하자는 의견에 휩싸였다.그러나 서쪽 대모산 기슭에 태종과 세종의 능침이 이루어지면서 능행로의 길목으로 자리잡으면서 이같은 이전의 시비는 곧 사그러들었다. 삼전도의 기능이 점차 커지면서 삼전도승은 광진등의 나루까지 관장하였으며 노들나루등과 마찬가지로 중종 31년(1536년)에는 국왕이 헌릉·영릉·선릉에 가기위해 이곳에 부교가 가설됐다. 특히 인조는 1636년 병자호란때 삼전도를 건너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어둑어둑할 무렵 나루는 꽁꽁 얼어붙었으며 이때 시중을 든 신하가 겨우 5∼6명에 불과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인조의 피난이 얼마나 급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짐작할수 있다. 곧바로 추격해 온 청나라 태종은 이곳 나루터에 진을 치고 40여일동안 산성을 포위한채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부녀자들을 겁탈하는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추위와 굶주림속의 인조는 이같은 소식을 전해듣자 왕세자와 함께 삼전도 나루에 설치된 수항단으로 나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인 삼배구고두의 예를 행하였다.그후 청나라가 1639년 삼전도에 청 태종의 공덕을 청나라 문자와 한자로 굴욕적인 비석을 세운 것이 현재 송파구 석촌동 42 송파대로 왼쪽에 있는 「대청황제공덕비」이다.치욕적인 이 비석은 이후 땅속에 파묻히고 한강에 수장시켰다가 지난 63년 정부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사적 제101호로 지정됐다. 삼전도는 이후 사람들이 이용을 기피하면서 인근의 송파구 송파동에 송파진을 새로 개설했다.이때부터 송파진은 땔나무와 담배등을 서울에 공급하는 동쪽방면의 주요 나루로 자리를 잡았다.특히 송파진은 나루터보다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더 커 조선시대 이곳에는 2백70여호의 객주가 있는등 전국의 10대 상설시장 가운데 하나로 번성했다.이는 서울 주변의 일반상인들이 시전상인들의 금란전권을 피하기 위해 삼남지방이나 관동지방에서 들어오는 물품을 이곳에서 미리 사들여 도매상업의 근거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시전상인의 항의가 있었으나 광주유수가 이를 막아 송파시장은 계속 유지되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와 교통의 발달로 시장기능이 점차 쇠퇴하기에 이르렀다. 송파나루는 강남지역의 개발로 72년 이곳에 폭 25m 길이 1천2백80m의 잠실대교가 세워지면서 나루의 기능을 마감한채 현재 석촌호수의 일부로 남아있을 뿐이다.
  • 해외여행/무심코 한 행동이 화 부른다

    ◎여행국 문화 모르면 봉변… 주의할 제스처 알아보면/회교국/어린이 머리 쓰다듬는것은 금기 사항/프랑스/엄지·검지로 동그라미 그리면 “상대모욕” 올해들어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급증하면서 최근 한국인을 상대로 한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각별한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특히 이들 사고가 각국별 문화와 관습·제도등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 여행지에 관한 사전지식을 갖고 떠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각국의 문화등의 차이에 의해 발생할 소지가 있는 사건·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의 도움말로 유의사항을 점검해 본다. 중국은 동양계가 그렇듯이 보수적 사회이며 몇안되는 사회주의국가이다.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에서는 절대 촬영을 하지 말고 술에 취해 저지르는 실수도 용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특히 여자를 희롱하면 큰 봉변을 당하므로 언행을 조심해야한다.대만도 이와 비슷하나 중국본토와 대치관계에 있어 공산주의서적을 소지하거나 포르노잡지등 음란서적등은 모두 압수당한다.또 우리와 마찬가지로 간통죄를 인정하고 있어 행동에 유의해야 한다. 동남아국가중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다.왼손은 부정한 손으로 인정돼 악수를 하거나 물건을 건네줄 때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해야한다.특히 어린이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사람의 머리를 신성시해 함부로 손을 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은 왕실에 대한 국민의 존경심이 대단하다.따라서 외국인이라도 국왕에 대한 경의를 그들이 하는대로 표하는 것이 상례이다.불교국가이기 때문에 가사를 걸친 승려들을 어디서나 자주 보게 되는데 승려의 몸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특히 여성의 손이 승려의 몸에 닿는다는 것은 파계와 같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주의한다.사원에 들어갈 때에도 미니스커트등의 옷차림은 피해야한다. 싱가포르는 철저한 벌금의 나라다.웬만한 범죄는 모두 벌금으로 다스리는데 차안은 물론 모든 관공서와 레스토랑·도서관·병원·엘리베이터등에서도 금연이므로 애연자들은 유의해야한다.인도에서는 카스트라는 사회적 신분제도가 있다.인도여행중 이 제도에 관한 얘기는 가능한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남태평양상 뉴질랜드의 경우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지금도 추장제가 지켜지고 있는데 전통적인 제사를 지낼때 외부로부터 여인이 나타나는 것을 가장 부정스럽게 생각하므로 주의해야한다. 이와함께 만국공용어인 제스처(몸짓)도 나라에 따라서는 선의의 제스처가 욕을 의미하기도 해 주의가 요망된다.상대에게 손등을 보이며 승리의 V자를 보이는 행위는 영국이나 호주,아랍문화권사람들은 미국사람들이 가운데 손가락만을 세우는 행위와 같은 욕에 해당한다.엄지와 검지를 모아 동그라미를 만드는 행위,흔히 「OK」로 통하는 제스처도 프랑스에서는 「가치없다」,그리스는 성적모욕을 상징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 IMF·IBRD 총회 개막/마드리드서/국제통화질서 개혁 논의

    【마드리드=염주영특파원】 21세기에 대비한 국제통화 질서의 개혁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는 가운데 IMF(국제통화기금)·IBRD(세계은행)의 제 49차 총회가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4일(현지시간) 개막됐다.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마드리드 시의회 궁전에서 열린 개막연설을 통해 『개도국의 경제성장과 체제전환국의 경제안정 및 구조조정을 위해 IMF의 융자한도를 확대하고,지난 81년 이후 중단된 SDR(특별인출권)의 추가배분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회 의장을 맡은 라만 방글라데시 재무장관은 개막사에서 『선진국간 경제정책의 비협조로 세계 경제가 불안정하다』며 『선진국 경제정책에 대한 IMF의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총회는 지난 44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튼우즈시에서 출범한 브레튼우즈 기구(IMF와 IBRD)가 목표로 내걸었던 환율 안정과 교역의 균형적 확대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브레튼우즈 체제 출범 50주년을 맞아 국제통화 질서의 전면적인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열렸다. 개막식에는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과 펠리페 곤살레스 총리를 비롯,캉드쉬 IMF총재,루이스 프레스턴 IBRD총재 및 1백70여개 회원국에서 재무장관 또는 중앙은행 총재가 이끄는 정부 대표단이 참석했다.우리나라는 김명호 한은총재 등 정부대표단과 금융계 지도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 “요르단 영토서 철수”/이스라엘,곧 공식발표

    ◎평화협정 중대진전 평가 【암만 AFP 연합】 이스라엘은 지난 68년 이후 점령해온 요르단 영토에서 철수할 것임을 다음주 워싱턴에서 열리는 이스라엘­요르단 양국 회담에서 공식선언할 것이라고 현지 서방외교관들이 28일 말했다. 외교관들은 요르단의 하산 왕자가 워싱턴회담을 위한 이스라엘 관리들과의 준비협상에 직접 관여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3일 백악관에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요르단령 철수를 공식선언할 경우 이는 양국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중대한 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 요르단 국왕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7월 25일 워싱턴에서 평화협정체결을 위해 상호 노력한다는 공동선언에 서명한 바 있다. 외교관들은 하산 왕자가 지난 26일 이스라엘 고위관리들과 요르단의 홍해 휴양지인 아쿠바항에서 회동했다고 말했는데 요르단 관리들은 이같은 회동에 대해 사실여부의 확인을 거부했다.
  • 멸망의 원인(백제를 다시본다:30·끝)

    ◎한강유역 뺏긴뒤 서남부에 고립/의자왕,초기 전승에 자만 실정 거듭/대당외교 실패… 많은 충신 귀향보내/18만 나당연합군 침공때 동원가능 병력은 5천명 부소산성에 올라 금강을 굽어보노라면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 마냥 평화롭게만 느껴진다.1천3백년 전 이곳에서 망국의 통한을 품은 3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서기 660년 당의 침략군이 신라와의 사전협약에 따라 서해로부터 금강 하구에 소리없이 진입하여 상륙작전을 개시한 뒤 사비도성을 유린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백제는 왜 멸망했는가.이 수수께끼를 속시원히 풀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란 없다.백제 멸망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역사적 인과관계에서 볼 때 우리들은 많은 멸망원인을 열거할 수 있으나 이를 대내적인 것과 대외적인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삼국항쟁이 격화된 6세기 후반 이래 백제는 경쟁국가인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그 입지랄까 행동반경이랄까가 매우 좁았다.즉 한강유역을 송두리째 신라에 빼앗긴 뒤로부터 백제는 줄곧 한반도 서남부지역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백제가 기대를 건 잠재적인 동맹세력은 고구려였으나,양국은 다만 해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을 뿐 이었다.그런 까닭으로 백제는 자신을 ㄱ자 모양으로 포위하고 있는 신라와의 군사경계선을 돌파하기 위해 몸부림쳤다.그것은 한 때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하지만 백제는 결코 신라의 포위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처럼 백제가 신라와의 국경전쟁에서 헛되이 국력을 소모하는 동안 내부사정은 차츰 악화되어 갔다.의자왕이 641년 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을 때만 해도,희망은 아직 남아 있었다.그는 인간적으로 나무랄데 없는 성품이었고,국가중흥의 열망에 불타 있었다.왕태자 시절 지극한 효성으로 해동의 증자라는 평까지 듣던 의자왕이었다. ○신라 포위 못벗어 그가 왕위에 오른 직후에 결행한 신라 침공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마침 642년 평양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군국의 대권을 장악했는데,의자왕은 그와 손잡고 신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개시했다.백제군은 중국으로 통하는 신라의 서해 관문인 당항성(경기도 화성군)의 목을 죄는 한편 신라의 낙동간 방면 전선사령부가 위치한 대야성(경북 합천군)을 함락하여 경주를 가까이서 위협했다.이같은 전과는 의자왕의 경탄할 만한 기민성과 결단력에 힙입은 바 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의자왕의 인간적인 약점이 노출되었다.전투에 잇따라 승리한 의자왕은 어느 덧 자만심에 빠져 만기를 독재하는 통치스타일로 기울어졌다.사태를 더욱 악화시긴 것은 왕비 은고의 지나친 권력욕이었다.백제를 멸망시킨 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부여 정림사탑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도록 했는데,거기에는 멸망 당시 백제의 정치상황을 설명하여 『의자왕이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아낙네(왕비)를 너무 믿어 형벌이 오로지 충양한 사람에게 미쳤다』고 했다.양심적인 재상인 성충이 옥사하고 흥수가 귀양을 간 것도 이같은 난정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또한 해방 직후 부여에서 우연히 탑비가 발견됨으로 해서 그 실재가 확인된 대좌평 사택지적의 정계은퇴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충신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신라의 간첩망에 포섭된 임자 같은 인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왕비 권력욕 지나쳐 무엇보다도 의자왕이 범한 큰 과오는 백제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다.당은 신라측의 끈질긴 한반도 개입 요청을 받아들여 백제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와 화평관계를 꾀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의자왕은 이같은 권고를 거듭 묵살했다.652년 이후 백제는 더 이상 사신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당과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했다.백제를 치기로 한 신라와 당 양국간의 비밀협상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절박한 때에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외교적 실책이었다.바야흐로 백제 상공에는 잔뜩 먹구름이 닥쳐오고 있었으나,의자왕은 전혀 그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서기 660년 여름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공은 백제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백일하의 날벼락이었다.김유신이 이끄는 신라의 5만 대군이 국경선 깊숙이 나타났을 때 백제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결사대 5천명이 고작이었다.이 결사대는 사흘동안 황산벌(충남 연산)에서 신라군과 처절하게 싸운 끝에 전원 옥쇄했다.한편 13만명에 달하는 당나라 군대는 금강 동쪽 기슭에 상륙,7월 11일 신라군과 합세했다. 드디어 12일에는 나당연합군이 사비도성 공격에 나섰다.연합군은 도성 동쪽 20여리쯤 떨어진 곳에서 백제군의 소규모 저항을 받았으나 이를 단숨에 격파하고 염창리에서 능산리로 이어지는 나성을 통과,순식간에 도성 안으로 진입했다.적군의 강습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북쪽 웅진성(공주)으로 달아났다.이에 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권을 대행했으나 혼란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윽고 연합군이 시가지를 가로질러 부소산성을 포위하자 절망에 빠진 지배층과 백성들이 떼지어 성에서 내려와 항복했다.그리하여 부소산성 정상에는 나당 연합군 깃발이 나부끼게 되었다. ○부흥운동 무위로 그러나 백제는 그 뒤 3년간 더 살아 꿈틀거렸다.국왕의 항복결정을 거부한 지방주둔 병력이 왕족 복신의 지휘 아래 총집결하여 조직적인 부흥운동을 벌인 것이다.이들은 한때 사비도성을 포위한 일까지 있었다.주류성(서천 한산 혹은 부안으로 짐작됨)과 임존성(예산 대흥)이 당시 부흥운동군의 일대 거점이었다. 663년 가을 백제와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있던 일본이 부흥운동군을 돕기 위해 3만대군을 보냈다.그러나 왜군은 백강하구에서 신라·당 연합군에 포착되어 네차례의 접전 끝에 섬멸되고 말았다.당시 불에 탄 왜선 4백척에서 뿜어대는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붉게 하고 바닷물도 빨갛게 물들었다고 한·중 양국 사서는 기록하고 있다.왜군 격파로 사기가 오른 연합군의 일제 공격으로 주류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백제부흥운동은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처럼 백제는 가고 말았으나 그들이 창조한 문화의 가지는 신라와 일본 등지에 이식되어 그뒤 오랜 세월 생명력을 유지했다.지난해말 세상에 공개된 금동향로는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정화로,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망국의 군주/의자왕 중국 북망산에 묻힌듯/패망후 당나라에 끌려가 병사 우리가 고대사에서 만날 수 있는 큰 비극을 꼽자면백제패망을 다룬 AD660년의 기사가 그 하나일 것이다.궁녀들이 꽃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 옛 이야기와 더불어 아련히 들려오는 사비도성의 황급스러운 말발굽소리는 백제사가 간직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때에 웅진성(공주)으로 피신했던 의자왕도 결국 나·당연합군에 붙잡혀 2만여 백제유민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그러나 이 망국의 군주는 생몰연대도 전해지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당에서 병사한 것으로만 되어있다.이는 의자왕과 휩쓸려 포로가 된 왕자 부여릉(AD615∼682년)이 당에서 남긴 비교적 소상한 활동기록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자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이 물음에 해답을 던져줄 가능성은 있다.의자왕의 신하로,또 왕자 부여릉과 백제부흥운동을 통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흑치상지(AD630∼689년)와 그의 아들 흑치준의 묘지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중국 하남성 낙양의 북망산에서 1929년에 발굴된 이 묘지명은 현재 남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흑치상지의 묘지명은 왕자 부여융이 주군으로 받들어지고 있음을 표현했다.또 묘지명은 AD677년 부여융이 당으로부터 「웅진도독 대방왕」에 임명되었을 때 흑치상지는 속관의 직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다만 41줄 1천6백4글자나 되는 묘지명 새김글씨에 의자왕 기록이 전혀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사학계는 당나라 왕후장상들의 묘역 북망산을 계속 주시하는 입장이다.북망산에서는 백제유민 흑치상지 부자의 묘지명 말고도 연개소문의 아들이자 고구려유민인 천생의 묘지명이 출토되었다.이로 미루어 의자왕의 무덤도 북망산 묘역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백제 최후의 군주 의자왕의 무덤을 찾는 일은 한·중학계의 협력에 따라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래서 학계는 북망산 한쪽에 묻혀있을 의자왕 묘지명을 찾아야할 큰 역사숙제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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