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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필라델피아시 인디펜던스 홀(세계 문화유산 순례:55)

    ◎미 합중국 독립선언 산실/1776년 7월4일 토머스 제퍼슨 “인간은 평등과 권리…” 선언/당시의 테이블·의자 등 보존/“모든 인류는 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조물주는 인간에게 몇가지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권리를 주었다” 【필라델피아(미국)〓나윤도 특파원】 “모든 인류는 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조물주는 인간에게 몇가지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권리를 주었다.그 권리 가운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하였으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통치를 받는 국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에는 토머스 제퍼슨의 그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배어있는 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220여년전인 1776년 7월4일 제퍼슨은 이 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그 독립선언서는 지구상에서 처음 인간의 평등과 권리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지금도 이 기념관에는 당시의 테이블과 의자와 펜,심지어는 녹색 테이블보까지 보존돼 있다. ○녹색 테이블보도 그대로 미국판 독립기념관인 인디펜던스 홀은 미 합중국 탄생의 요람인 필라델피아의 중심에 위치했다.자유의 종(Liberty Bell)과 같은 기념유물들과 주변건물을 함께 묶어 미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받은 이 지역은 미국의 독립정신과 넋을 일깨우는 성지이기도 하다. 인디펜던스 홀은 원래 잉글랜드 퀘이커교도들이 세운 펜실베니아 식민지의 정부청사다. 이 건물은 1800년 포토맥강 언덕에 새 수도를 건설할 때까지 연방정부 청사로 사용했다.그 이웃 어셈블리 룸에서는 제2차 대륙회의의 집회장소로 사용되었다.독립선언의 채택과 함께 1787년 연방 헌법도 여기서 통과되는 등 미 합중국 탄생지로서의 역할을 다했던 건물이다. 홀 투어코스의 첫방인 인디펜던스 홀 왼편 부속건물에는 화가 에드워드 새비지가 그린 독립선언 채택 당시의 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벽에 걸려 있다.이 그림에는 제퍼슨과 존 애덤스, 로저 셔만, 로버트 리빙스톤, 벤자민 프랭클린등이 등장한다.5명의 독립선언서 기초위원을 대표한 제퍼슨이 존 행콕 의장에게 초안을 제출하는 동안 각 주 대표들이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이 건물은 1732년 당시 변호사이던 앤드류 해밀턴의 설계로 지었다.18세기 조지안 건축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꼽힌다. 붉은 벽돌건물 가운데 하얀 시계탑이 우뚝 솟아 매우 정갈한 인상을 안겨준다.중앙건물을 중심으로 좌우에회랑을 통하여 연결되는 부속건물 하나씩을 세웠다.1956년까지 24년 동안 공을 들여 지었다. 이들 부속건물과 약간 떨어진 좌측에는 시청,우측에는 법원 건물이 들어섰다.그러다 식민시대 청산과 함께 필라델피아가 신생 미국의 수도가 되자 대법원과 연방의회로 사용되었다.본래부터 입법 사법 행정 3권의 중심지로 설계된 셈이다.연방의회로 사용한 콩그레스 홀은 워싱턴 대통령의 2차 임기와 2대 대통령 애덤스의 취임선서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이후 영국군과의 전쟁에서 내부의 가구 및 장식들은 대부분 소실되었다.그러나 독립선언서와 연방헌법에 서명하기 위하여 대표들이 사용했던 일부집기는 아직 남아있다.의장석의 은제 잉크스탠드와 제헌회의에서 의장 조지워싱턴이 앉았던 태양의 상반부만 조각된 ‘라이징 선’의자 등이 그것이다.미국 역사에서 가장 보배로운 유물이 아닌가 한다. 인디펜던스 홀 앞쪽 몰광장 한가운데는 리버티 벨이 유리전시관에 보존돼 있다.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이 종은 1752년 펜실베이니아 식민지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런던에서 주조된 것이다.“온 나라의 국민에게 자유를 선언하노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이 종은 원래 인디펜던스 홀의 중앙 첨탑에 달려 있었으나 건물의 안전을 고려,독립선언 200주년이 되는 1976년 1월1일 현재의 위치로 내려놓고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1,800년까지 연정청사로 자유의 종 말고도 많은 건축물에도 미국 독립의 역사가 어려 있다.영국왕 조지3세의 부당한 탄압에 대처하기 위해 1774년 첫 대륙회의를 열었던 카펜터스 홀,제퍼슨이 머물며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던 그래프 하우스가 있다. 심지어는 당시 정치인들이 주로 모이던 선술집인 시티태번에서부터 최초의 도서관인 라이브러리 홀,첫 은행인 퍼스트뱅크와 세컨드뱅크, 화폐주조국,교역중심지의 역할을 담당했던 필라델피아 익스체인지까지 모두 유서깊은 건물이다.신생 독립국의 초석이 된 이들 건물은 인디펜던스 홀을 중심으로 잘 보존되고 있다. 조용한 퀘이커들의 도시 필라델피아가 미 합중국 탄생의 요람이자 미 정치사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데에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공이 뒷받침되었다.보스턴 출신이나 일찍 필라델피아로 와서 인쇄공으로 출발한 그는 과학자이자 철학자,언론인으로 또 정치가 외교가로 명성을 떨쳤다.‘필라델피아 가제트’라는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최초의 소방서,보험회사,종합병원을 설립했다.그리고 피뢰침을 발명하고 미 철학회도 그의 손에 의해 창립되었다. 그는 미 합중국 독립 당시 워싱턴,애덤스,제퍼슨 등 지도자들보다 한 세대 앞선 원로였다. 2차 대륙회의에 참가,독립선언서 기초위원을 지냈으며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와의 동맹설립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이같은 그의 활동상은 인디펜던스 홀에서 한블록 떨어진 마켓 스트리트에 위치한 프랭클린코트에 잘 보존돼 있다. 인디펜던스 홀 주위에는 ‘상식’이라는 소책자로 식민지의 독립기운을 부추겼던 인사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토마스 페인을 비롯해 페트릭 헨리,알렉산더 해밀튼 등 그 면면이 모두 당시 미국의 지성들이다.그들의 열띤 토론은 오늘날 지구상에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정착시키는 초석이 됐던 것이다. ◎여행 가이드/펜실베니아주 동쪽 끝에 위치 ‘형제애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필라델피아는 미 대륙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의 동쪽 끝에 위치했다.뉴욕과 워싱턴을 연결하는 95번 고속도로의 중간지점쯤 해당한다.인디펜던스 홀은 필라델피아 시가지의 델라웨어강쪽 마켓스트리트와 월넛 스트리트 사이에 있다.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올경우는 95번 고속도로에서 바로 들어오고 앰트랙 기차를 이용할 경우는 필라델피아 중심역인 30번가 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대중교통 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중,IMF에 40억∼60억불 지원 표명/동남아 금융위기 해소위해

    【홍콩 연합】 중국은 동남아의 금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40억-60억달러를 지원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홍콩의 명보가 16일 보도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비공식 정상회담에 참석중인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1월 밴쿠버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만나 중국이 IMF의 동남아 금융지원 패키지에 참여,40억-60억달러를 지원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 강 주석은 15일 자파르 말레이시아 국왕을 만나 “이 지역의 경제발전에 대해 낙관적이며 최근의 위기는 일시적인 것”이라고 말해 중국이 동남아 위기 해소를 위한 지원에 적극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 정몽준 축구협회장 고대 언론대학원 강연 요지

    ◎2002월드컵 한국경제 효자될 것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26일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고려대 언론대학원 주최 조찬세미나에서 ‘월드컵과 한국경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정회장은 이날 모임에서 “지금의 한국경제 위기는 곧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2002년 월드컵은 20억달러의 대회수입을 비롯 관광 수입,신규고용 확대 등 수 조원의 거시경제적 효과를 창출,한국경제에 엄청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회장의 강연 내용을 요약한다. 2002년 월드컵대회는 무엇보다 한국축구 발전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지난 50년간 한국은 축구전용구장 건설이 전무한 상태였지만 월드컵 유치를 계기로 향후 5년간 5개 정도의 전용구장과 많은 잔디구장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2002년 월드컵은 또 21세기를 여는 첫번째 행사이며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회라는 의미와 최초로 두나라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대회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2002년 월드컵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사회통합에도기여할 것이다.즉 국민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2002년이라는 일정한 시점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앞으로 21세기를 열어가는데 좋은 시발점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여 이와 함께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우리는 유치과정에서부터 남북관계 개선과 나아가 통일의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했으며 이러한 가능성은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되면서 높아졌다.월드컵 경기의 북한개최를 위해서는 국제축구연맹과 일본의 양해가 필요하지만 가장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다.북한은 평양에 세계에서 가장 큰 15만~20만명 수용이 가능한 능라도경기장을 보유하고 있어 여기서 경기가 열린다면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게 될 것인데 북한의 자세와 준비에 달려 있다고 본다.앞으로 2002년까지 남은 5년동안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우나 88년 올림픽처럼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북한의 태도를 보아가며 신중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월드컵 대회 개최에 따른 기대 효과는 엄청나다.지난해 6월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제발전 ▲국제적 지위향상 ▲국민의식 개선 ▲스포츠의 활성화 ▲한일 관계개선 ▲관광산업 발전 ▲한반도 긴장완화 등 여러가지 면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조직위의 예상수입만 해도입장료,TV방영권,광고료 등을 합해 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 국가적인 총생산 유발 효과와 부가가치 및 신규고용 창출,관광수입 증대 등이 추가될 것이다. 82년 월드컵 개최국인 스페인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당시 스페인은 월드컵을 계기로 국가 이미지 제고와 국민통합으로 경제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1인당 국민소득은 82년 5천300달러에서 92년 1만4천달러로 급증했으며 국가 이미지 증대에 따른 관광수익도 83년 63억달러에서 93년 2백4억달러로 늘어났다.정치·사회적으로도 스페인은 언어가 다른 각 지방간의 민족갈등으로 우리의 지역감정보다 훨씬 더 심각했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후앙 카를로스 국왕이 대회조직위원장을 맡고 연방정부와 주정부간에 긴밀한 협력체제가 이루어지면서 민족대립이 없어졌다고 한다. ○조직위 수입만 20억달러 앞으로 남은 과제는 개최도시 선정과 엠블렘 및 마스코트 제작 등이다.개최 도시는 현재 서울 부산 대구 등 15개 후보도시를 대상으로 6∼10개를 선정할 방침으로 각분야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가 작업중이다.엠블렘은 한일이 공동제작키로 했으나 마스코트는 각자 제작하기로 결정,한국적 이미지와 색상을 살릴 방침이다.
  • 걸프사태 일단 진정

    ◎이라크 “사찰단 재입국 허용”… 미도 외교해결 노력 이라크가 16일 미국과의 대결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사찰단의 재입국 허용 의사를 표명했다. 미국도 독자적인 군사행동보다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바탕으로 한 사태해결을 피력하고 있어 일촉즉발의 사태에까지 돌입했던 이번 사태는 일단 전쟁은 피한채 외교적 해결을 위한 당사국들의 노력이 활발히 전개될 전망이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이날 각료회의에서 미국과의 대결을 바라지않고 유엔에서 대화를 통해 이번 사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피력했다.또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는 모로코의 라바트에서 회견을 갖고 미국이 유엔사찰단에서 타국과 동등한 자격 및 인원 등 균형을 기할 경우 유엔사찰단의 재입국을 언제든지 수용할 태세가 되어있다고 밝혔다. 그는 17일 하산 2세 모로코 국왕을 만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뒤 이집트,튀니지,리비아,알제리 등을 돌며 이번 사태와 관련한 이라크측의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 한편 클린턴대통령은 지난15일 자크 시락 프랑스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라크의 설득을 부탁했다.또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이날 중동·북아프리카 경제회담이 개막된 카타르에 이어 바레인·쿠웨이트·사우디이라크 등 3개국을 급거 방문,이라크 행동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미국입장 지지를 요청함으로써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빌 리처드슨 유엔주재 미대사도 이날 CBS 회견에서 지난 6년간 유엔에서 채택된 대이라크 결의를 토대로 미국이 독자적 군사행동에 나설수도 있으나 국제사회와의 조화속에서의 사태 해결을 강조했다. 이같은 평화적 해결의 기운이 도는 가운데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이날 ABC 회견에서 이라크가 수백만명을 죽일수 있는 화학 및 생물무기를 갖고 있으며 사찰팀 거부의 와중에서 시간을 벌고 있다면서 사찰팀의 빠른 복귀를 촉구했다.
  • 전 노르웨이 총리 접견/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3일 하오 청와대에서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 전 노르웨이 총리의 예방을 받고 한·노르웨이 양국간 협력증진 등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하랄드 5세 노르웨이 국왕 내외를 비롯한 주요 인사의 연이은 방한으로 양국간 우호관계가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무역과 투자분야 등에서 양국간 협력을 더욱 확대하기를 기대했다.
  • 노르웨이국왕 어제 내한

    노르웨이 하랄드5세 국왕부처가 20일 방한했다. 하랄드 국왕은 23일까지 서울에 머물며 김영삼 대통령과 오찬을 갖고 양국 관계 강화방안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다. 노르웨이 국왕의 이번 방한은 지난 59년 양국간 수교이래 최초의 방문이다.
  • 노르웨이 총리 사임/야당 중도연정 구성

    【오슬로 AFP 연합】 토르비외른 야글란트 노르웨이 총리가 13일 국왕 하랄드 5세에게 사임서를 제출했다. 하랄드 국왕은 야글란트 총리의 사임을 수락하고 기민당,중도당,진보당 등 야당으로 구성된 중도 연합의 지도자인 헬 마뉴 본데비크에게 새로운 정부 구성을 요청했다.
  • 이­요르단 죄수 교환 석방/평화협상 재개 청신호

    ◎하마스지도자 야신 가자귀향 【암만·가자시티 외신 종합 연합】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최근 이스라엘에서 풀려난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아흐메드 야신의 가자지구 귀향을 허용키로 합의한데 이어 6일 모사드 요원과 요르단,팔레스타인 수감자 등 서로 억류하고 있던 상대측 수감자들을 교환석방했다. 요르단은 이날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요원 2명을 석방,이스라엘로 돌려보냈으며 이스라엘도 수감중이던 요르단인과 팔레스타인 죄수 22명을 풀어줬다. 하마스 지도자 야신은 이날 요르단군 헬기의 호위 아래 후세인 국왕의 전용 헬기편으로 암만을 출발,고향인 가자지구에 도착했다. 이번 조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요르단에서 발생한 모사드의 하마스 지도자 할리드 마스할 암살 미수 사건에 개입했음을 우회적으로 시인,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 이,하마스 지도자 석방

    【예루살렘 AFP 연합】 이스라엘은 지난 9년간 수감생활을 해온 급진적 회교저항운동(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61)을 1일 석방한 뒤 요르단으로 추방했다고 이스라엘군이 밝혔다. 군 대변인은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무산위기에 처해 있는 중동평화협상의 재개를 위해 “긍정적인 조치”를 취해달라는 호소에 따라 “쇠약해진” 야신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석방했다고 말했다.셰이크 야신은 현재 앞을 못보고 몸이 마비돼 있는 상태이다.
  • 빌 게이츠 세계최고 갑부에/미 포브스지 선정

    ◎총398억불 소유… 브루나이 국왕 제쳐/10위권 절반 정보통신분야 ‘황금알’ 입증 세계 컴퓨터업계의 ‘황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41)이 마침내 세계 최대의 재산가 자리에 등극했다.지난해 1주일에 평균 4억달러(약 3천6백억원)정도를 벌어들이며 재산을 3백98억달러(약 35조8천2백억원)로 불린 빌 게이츠는 4년째 미국 최고의 자산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물론,석유 및 천연가스 판매로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3백80억달러)을 2위로 끌어내리고 세계 제일의 부호가 된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 최신호에 따르면 지난 18일 유엔에 10억달러를 쾌척,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CNN 창업자인 테드 터너 타임 워너사 부회장은 35억달러를 기록,미국내 28번째 부자에 랭크됐다.재산이 5억5천만달러인 방송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작년보다 51계단이나 뛰어오른 349위를 기록,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미국의 400대 부자 반열에 올랐다.마이클 델(32) 델 컴퓨터 회장은 빌 게이츠의 32살때의 재산보다 더많은 55억달러의 재산을 끌어모아 눈길을 끌었다. 동남아국가의 통화위기를 배후 조종했다는 구설수에 오른 ‘신의 손’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과 미국의 극우진영을 대표,대통령선거에 두차례 도전했다가 낙선한 로스 페로 부동산 사업가는 각각 35억달러,33억달러를 기록함으로써 상위 50위권에 포함됐다. 특히 미국의 상위 10대 부자그룹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1·3·6위),오라클(4위),인텔(5위) 등 정보통신분야 소속의 사업가가 5명이나 끼여 있어 정보통신산업이 다시 한번 ‘황금알을 낳는 거위’임이 입증됐다.
  • 중국 최북단 막하현 사람들(흑룡강 7천리:4)

    ◎조선·만주·몽골족 등 어우러져 ‘공생’/여름 짧고 지루한 겨울 길어/하지전후 백야때 되면 광장 모여 노천무도회 즐겨 대흥안령 북쪽 자락의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흑룡강성 막하현은 중국 최북단의 현이자 중국에서 가장 작은 현이기도 하다.인구 6만2천명에 넓이라야 1만8천233㎡에 지나지 않았다.그리고 해발 1천129m의 고한지대라서 여름은 시원했다.7월 평균기온이 18.4도고 보면 말이 여름이지 가을 날씨였다.겨울은 지독하게 추워 1월 평균기온 영하 30.6도를 기록하고 있다. 막하현은 1917년에 생겼난 현이다.그러다 1947년에는 호마현에 편입되었다가 1981년에 다시 막하현으로 홀로 섰다.그리고 나서 대흥안령에 큰 불이 일어나 일대의 산은 물론 현정부 소재지 막하시까지 쓸어버렸다.오늘의 막하시는 화재뒤 새로 건설한 도시인 것이다.막하시 시가지는 마치 비행장 활주로처럼 곧고 넓은 도로를 갖추었다.양쪽에는 2층 이상의 집들이 즐비했다.사람들이 늘 붐비는 영화관앞 광장은 제법 넓었다. ○1월 평균기온 영하 30도 흥안령 대화재때 민둥산이 되었던 도시 주변 산에도 지금은 잣나무가 무성하게 자랐다.막하시는 아담하고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그 도시에도 조선족이 운영하는 한국맛식당(한국풍미식당)이 있다.수소문 해서 찾아간 식당에는 예상했던 대로 막하에 사는 조선족들이 자주 모이는 만남의 장소였다.주인은 윤용왕씨(48),자신의 말마따나 젊어서는 꽤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을 법 해보였다.아직도 곱살한 그녀는 조선족 미인이 분명했다. 그립던 친정식구를 오랜만에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갑게 맞아주었다.그녀는 흑룡강성 상지 태생으로 목단강시에서 학교를 나왔다.지난 1971년 의사인 남편 최상진씨(50)를 따라 막하로 이사했는데,남편은 현립병원 의사다.낮시간만 현립병원에 근무하고 퇴근후에는 식당 건너쪽 아파트에 차린 자신의 개인병원에서 일하고 있다.2층 창문에 ‘성병·피부병 진료소’라는 글씨가 보였다.이 한적한 도시에도 성병환자가 많으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동안 저녁때가 되었다.조선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현의 기술감독국 박청천 국장과 앞서 국경지대로 들어갈 때 소개장을 써주었던 국경경비대 김광일 중위도 찾아왔다.일행중에 어떤 이는 식당주인 윤용왕씨에게 고모라고 했고,어떤 나이 어린 처녀는 이모라고도 했다.친척 사이로 착각하기 딱 좋았다.그러나 알고 보면 남남이다.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먼 북쪽 변방에 사는 이들은 남남을 떠나 이웃사촌 이상의 정을 나누고 사는 것이 분명했다. ○조선족식당 사랑방 구실 “조선족이 워낙 적다보니 서로 혈육이나 다름없이 살디요.봄이 오면 모여서 들놀이도 하고 애경사가 있으면 다가 모임네다.막하시내에 있는 세군데 조선족식당은 조선족 집합소고,또 연락처가 되고 기래요.한족들은 저녁이 되면 광장에 가서 사교춤들을 추지만,우리 조선족들은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낮 같은 여름밤을 보낸다 이겁네다.” 한족들의 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한족은 어울리기만 하면 춤을 추었다.하지를 앞뒤로 백야가 시작하면,도시인들은 영화관앞 광장으로 몰려들었다.그들은 긴 겨울을 집안에 틀어박혀 살것을 미리 염두에 두어 여름을 한껏 즐기려는듯 춤을 즐겼다.작가 방장국 선생은 막하의 여름밤을 이렇게 묘사했다. ‘노천무도회는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녘이면 으레 광장에서 열렸다.지팽이를 잡은 노인에서 현 당위원회서기,현장은 물론 노동자도 나오고 부녀자들도 춤판에 끼어들었다.영화관 지붕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대로 탱고를 추고 디스코도 추었다. 이 시각이면 도시 언저리의 붓나무며 낙엽송이 푸른 치마를 흔들며 광장으로 뛰어오는듯 싶다.수림속의 빨간 여우며 꼬리 긴 다람쥐,오소리도 광장으로 달려드는 환각에 사로잡혔다.사람들 얼굴에는 미소가 담기고 눈에는 아름다운 마음이 어렸다.’ ○“이지역 첫사람은 동명” 이 북변의 막하현 사람들 가운데 조선족만이 소수민족은 아니다.오늘날 한족속에 섞여 살기는 몽골족,만주족,후이족이라는 회족,다우르족(Daur·달간이족),오로촌족,에빈키족,허저족,러시아인들도 마찬가지다.흑룡강유역 원주민은 허저족과 에빈키족,오로촌족,다우르족이고 나머지는 이주민들이다.몽골족은 징기스칸 시대에 들어왔다.징기스칸이 일어난 땅은 막하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흑룡강 발원지인 내몽골 어얼구나하가 바로 징기스칸의 발흥지다.그리고 러시아인은 제정러시아 황제 차르1세때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들 소수민족은 러시아인을 빼고 모두가 우랄알타이 어계민족이다.토템 역시 공통점을 지닌 부분이 많다.더구나 흑룡강유역은 ‘한단고기’에 나오는 최초의 고조선 강역이 아니던가.우리민족 고대사 내용을 담은 ‘한단고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동남동녀 팔백이 흑수·백산땅에 내려왔다.뒤에 환웅씨가 일어나서 천신의 뜻을 받들어 흑수·백산 사이에 자리잡았다.또 신시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배달이라 했다.’ ‘한단고기’는 물론 신화요소가 강한 기록임에는 틀림이 없다.그래서 ‘한단고기’는 덮어 두더라도 흑룡강유역과 그 이남이 북부여판도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오늘날 흑룡강성이 내놓은 ‘흑룡강성정’에도 그렇게 기록했다. ‘이 지역의 첫 사람은 동명이다.전국 혹은 서한초의 사람으로 부여 건국자며 부여의 첫 국왕이다.활쏘기에 능한 그는 부족 수령들의 질투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그는 화를 피해 눈강을 건너 맥지로 갔다.거기서 예맥 사람들을 모아 부여국을 세웠다.’
  • 유해안치 성당앞 빗속 추도행렬/캘커타·워싱턴 표정

    ◎운구 연도에 종파초월 수천여명 몰려 통곡/백악관 1분간 묵년 올려 다이애나와는 대조/성당바닥에 꽃으로 새긴 ‘죽음의 심판’ 글귀 【캘커타·워싱턴 외신 종합】 ○…테레사 수녀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성토머스 성당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랑과 봉사의 사도’를 잃은 슬픔으로 가득하다.장송곡이 울러퍼지고 있는 가운데 힌두교,이슬람교,기독교도 등 종파를 초월한 수많은 사람들이 합장하고 그녀의 관옆을 지나며 애도했다.80여명의 수녀들도 관옆에 앉아 기도하고 있다. ○…테레사 수녀의 관은 성토머스 성당 한가운데 평소 그녀가 입고 있던 옷과 비슷한 푸른 띠의 하얀 천으로 덮힌 단위에 놓여 있다.관 앞에는 2m 높이의 촛불이 켜져 있다.관은 유리 뚜껑으로 덮혀 있으며 뚜껑에 있는 클로버 모양의 은장식에는 ‘우리들의 가장 존경하는 테레사,87살 R.I.P’라고 쓰여 있다. 테레사 수녀가 안치된 성당 바닥에는 ‘죽음의 심판(Death Judgement)’이라는 단어가 꽃으로 새겨져 있다. 성당 밖의 추도객들이 들고 있는 포스터 중에는 ‘빈자중의빈자를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한 천사가 내려왔으며 사람들은 그를 테레사 수녀라고 불렀다’는 글귀가 추도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테레사 수녀가 운영해온 ‘사랑의 선교회’측이 6일 본부내에서 일반인의 조문을 허용하자 6천여명의 시민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며 조문을 했다고 목격자들이 전언. 이들은 대부분이 그녀에게 ‘은혜’를 입은 고아나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며 테레사 수녀의 최근 모습이 담긴 포스터와 꽃을 들고 차례로 줄을 서 그녀와 마지막 작별을 했다. ○…성토머스 성당 주변에는 수천명이 몰려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노동자라고 밝힌 프라비르 다르(45)씨는 “나는 부인과 함께 켈커타에서 250㎞ 떨어진 번푸르 지역에서 왔으며 테레사 수녀를 조문하기 위해 이틀동안 길에서 잤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테레사 수녀의 별세를 애도하기 위해 6일 1분간 추모묵념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와는 미국의 공식적인 반응이 아주 대조적. 테레사 수녀를 위한 백악관의 이날 추모묵념은 클린턴 대통령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 올려졌는데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사망한 후에 백악관에서 공식적인 애도절차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이 이같이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테레사 수녀가 작년에 명예 미국시민이 됐으며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와 이혼,공식적으로는 영국왕실과 완전한 남이 됐다는 점도 있지만 특히 다이애나의 행동을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인 듯.
  • 아랍3국,평화회담 재개 촉구/애·요르단·팔 정상 회담

    ◎폭력·테러근절 노력 합의 【카이로 AFP 연합】 이집트,요르단 및 팔레스타인 3국은 7일 카이로에서 소집된 긴급 정상회담에서 중동 평화회담의 즉각적인 재개를 촉구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및 후세인 요르단국왕은 정상회담을 마친후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대화가 “가능한한 빨리” 재개돼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들 정상은 또 어떤 형태로든 폭력과 테러는 근절돼야 한다는 점에도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 낮은곳에 펼친 천상의 사랑/영면한 성녀 테레사 수녀 일대기

    ◎1910년 마케도니아 출생… 28년 인도로/신의 부름 받고 ‘빈민의 어머니’ 되기로/50년 ‘사랑의 선교회’ 설립… 본격 구호/79년 노벨평화상… 89년 첫 심장마비 동화속의 신데렐라와 같았던 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비의 비극적 죽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세계인들은 다시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고 있다.‘살아있는 성녀’로 추앙받던 테레사 수녀(87)가 타계한 것이다.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그녀는 금세기 최고의 ‘사랑과 봉사의 사도’였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영원한 촛불’로 스스로를 불태워온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 선교회’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헌신했다.그녀는 보통사람들이 꺼려하는 빈민굴이나 나환자촌 등 고통의 현장을 찾아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로 봉사했다.그녀는 자신의 자선활동은 “신의 부름”이라고 말했다. 테레사 수녀는 그녀의 헌신적 봉사로 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녀에게 “세계의 진정한 시민”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피에(당시 알바니아 영토)에서 태어났다.비교적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테레사 수녀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됐다.청소년기의 가난한 삶은 그녀를 ‘주님 곁으로’ 인도,카톨릭 청소년단체에 가입했고 이때부터 선교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29년 인도의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로레타 수도원의 예비 수녀로 들어갔다.인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목격한 그녀는 그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새로운 인생목표를 설정하고 캘커타의 슬럼가에 ‘사랑의 선교회’를 만든후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교회 수녀로 사랑의 교회 원장직을 맡아왔던 그녀는 89년 심장마비를 처음 겪은후 91년과 93년에는 동맥 이상으로 두차례의 수술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심장박동기를 달고 세계를 돌며 각국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 고통받는자들에 대한 구호와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했다.그러나 그녀의 건강은 더욱 악화돼 지난해 말에는 심장병에 말라리아와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2분동안이나 심장활동이 정지하기도 했다.지난 3월 그녀는 죽음을 예감한듯 원장직을 니르말라 수녀에게 넘겨 주었다. 테레사 수녀는 체제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사랑과 구호를 실천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비판도 없지않다.최근 영국의 한 방송은 사랑의 선교회측이 출처가 의심스러운 기금도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여권신장론자들은 그녀가 현대적인 모든 피임에 반대한데 반발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도 그녀의 위대한 사랑속으로 용해되어 왔다.하얀 천에 푸른띠가 있는 옷을 입고 사랑을 실천하던 조그만 체구의 테레사 수녀는 이제 우리곁을 떠났다.그러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봐왔던 그녀의 위대한 사랑과 희생정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김규환 기자〉
  • 두 죽음과 상업방송의 관심/나윤도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비의 세기의 장례식을 하루 앞두고 세계의 이목은 런던 켄싱턴궁 앞의 꽃더미에 쏠려 있었다.바로 그때 전해진 캘커타 빈민가에서 최후를 맞은 테레사 수녀의 사망 소식은 “‘다이애나 신화’는 상업 매스컴이 만들었다”는 그동안의 비아냥을 실제로 확인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장례식 생중계를 위해 하루전인 5일 아침부터 간판급 앵커들을 비롯,스튜디오 전체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사원 앞으로 옮겨 방송을 진행하던 미국의 주요 TV방송들에게 이날 하오 테레사 수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귀찮은 일’이라는 인상이 역력했다. 다이애나비가 적십자 구호단의 일원으로 고아·난민·장애인 구호에 나선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방영,그녀를 인류박애정신의 구현자로 만든 것은 물론 그녀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하루 수시간씩 지칠줄 모르고 방영했다.그러면서 일주일 내내 엄청난 광고료 수입을 즐겨왔고 장례식 생중계로 대미를 장식하려던 이들 방송들에게 테레사 수녀의 죽음은 ‘돈 안되는 일’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이날 하오 3시쯤 테레사 수녀의 사망소식을 라디오에서 듣고는 그녀의 성스러운 삶에 대한 자세한 TV보도를 기대했던 사람들은,저녁 7시 종합뉴스와 밤11시 뉴스에까지 단신에 약간의 코멘트만을 덧붙인 무성의한 보도에 분통을 터트려야 했다. 이는 지난주말 다이애나비가 죽은 직후부터 온통 그녀의 스토리로 도배를 했던 것과는 너무도 판이한 태도였다.물론 다이애나의 어처구니없는 갑작스런 죽음은 이혼당한 불운의 왕세자비로써,또 흡인력있는 아름다움으로 세계인으로부터 연민의 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영리를 추구하는 방송이 그같은 분위기를 100% 이용하려 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의 죽음이 주는 인류애적인 의미와 교훈에서 비롯되는 그녀의 영원성이,어떻게보면 죽음 자체의 의미 이상은 찾을수 없는 다이애나비 장례식의 상업성에 가려져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세계정보흐름의 80%를 점유하고 있다는 서구언론이 그같은 자세를 보이는 한 다이애나비의 죽음은 가진 자들의 슬픔에,테레사 수녀의 죽음은 굶주린 자들의 슬픔에만 머무를수 밖에 없을 것이다.
  • 고향 인공호수 섬에 안장/다이애나 장례식 이모저모

    ◎런던 애도인파 600만… 앨튼 존 추모곡 불러/힐러리 등 퍼스트레이디·유럽 왕족 잇단 조문 【런던 외신 종합】 전세계로 중계됐던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던 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비의 ‘세기의 장례식’이 6백만명의 애도 인파가 런던거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6일 상오 11시(한국시간 하오7시)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졌다. 1백만여명의 조문객들은 다이애나비의 생전 거처였던 켄싱턴궁 주변에 운집,9마리의 말이 이끄는 포차에 실려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떠나는 다이애나비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왕실 기장이 덮여진 다이애나의 관은 켄싱턴궁을 출발하기에 앞서 진홍색 상의를 입은 6명의 웨일스 근위병에 의해 포차위로 옮겨져 12명의 근위병들이 포차의 좌우로 대열을 이룬뒤 웨스터 민스터 사원을 위해 서서히 출발했다. ○…운구행렬이 켄싱턴 하이 스트리트를 통과하는 순간 군중들 속에서 “우리는 다이애나 당신을 사랑한다”는 외침이 터져 나오기도 했으며 운구행렬에 꽃을 던지며 오열하는 군중도 많았다. 다이애나의 관위에는 왕실기장이 덮였으며 그 위로 3개의 백합 화환이 놓여 있었다. ○1분마다 조종 울려 웨스터 민스트 사원은 운구 행렬이 이어지는 동안 계속해서 1분마다 종을 울려 다이애나비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렸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앤드류,에드워드 왕자,마거릿 공주 등 왕실 인사들은 버킹엄궁 앞에 나와 운구행렬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은 운구행렬이 앞을 지나는 순간,머리를 숙여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었다. 찰스 왕세자,윌리엄과 해리 두 왕자와 필립공,스펜서 백작은 성제임스궁 앞에서 대기하다 운구행렬이 도착하자 자선단체 인사들과 함께 행렬 뒤를 따랐다. ○…50분으로 예정된 웨스터 민스터사원에서의 장례미사가 끝난뒤 다이애나비 운구행렬은 런던시내를 돌아 시민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그녀의 고향이자 스펜스가의 영지가 있는 잉글랜드 중부 노샘프턴셔로 향발. 장례식은 성가와 베르디의 레퀴엠(장송곡)이 연주되는 한편 생전에 다이애너와 친분을 가졌던 팝 가수 엘튼 존이 추모곡 「바람결의 촛불」을 불러 전통과그녀의 자유정신을 복합적으로 가미시키는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6일 장례식이 엄수된 다이애나비의 운구 행렬이 장지인 스펜서가의 영지에 도착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자신의 고향 앨토프에 조성된 인공호수 위에 떠있는 인공 섬에 안장됐다. ○애인 파예드 헌시 합장 ○…다이애나와 함께 숨진 도디 알 파예드는 그녀에게 바치는 헌시를 써 은판에 새겨 파리의 아파트내 침대 머리맡에 간직하고 있었다고.스펜서가에 전해진 이 은판은 다이애나의 관에 넣어져 함께 안장됐다. ○…유럽을 비롯한 외국 왕족들은 주로 생전에 고인과 교분이 있었던 인사들만 초청장을 받았는데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의 동생인 마르그리트 공주,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의 여동생인 필라 보르본 공주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외 힐러리 클린턴 여사,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부인인 베르나데트 여사,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부인인 수잔 여사 등도 조문객 명단에 포함.
  • 버킹엄궁 하루 반기게양/다애이나 오늘 장례식

    ◎전세계 2천명 참석… 187국에 생중계 【런던 외신 종합】 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비의 장례식이 전세계로부터 2천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6일 상오(한국시간 6일하오)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다. 버킹엄궁의 한 관계자는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은 전통과 전례에 그녀의 자유정신을 복합적으로 가미시키는 형태가 될 것이며 베르디의 레퀴엠(장송곡)중 일부가 연주된다고 말했다. 장례식에서는 또 그녀의 자매가 시를 낭송하고 오빠인 스펜서가 헌사를 낭독할 예정이지만 왕족들은 다이애나가 이혼상태인 점을 감안,공식적인 순서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 영국의 BBC 방송은 1백여대의 TV 카메라와 3백여명의 기술진을 동원해 다이애나비의 장례식 장면을 1백87개국에 생중계할 예정이다. 버킹엄궁의 한 관계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명령에 따라 장례식이 열리는 6일 하룻동안 애도의 뜻으로 버킹엄궁에 반기를 게양키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장례일정(한국시간). ▲6일 하오5시08분:장례행렬 켄싱턴궁 출발 ▲하오5시30분:조문객위해 웨스트민스터 사원 개방 ▲하오6시15분:주요 참석인사 웨스트민스터 사원 도착 ▲하오6시26분:101개의 자선단체 대표 장례행렬 참가 ▲하오6시35분:스펜서가 웨스트민스터 도착 ▲하오6시40분:영국왕족 웨스터민스터 도착 ▲하오6시55분:다이애나비 관 웨스터민스터 도착 ▲하오7시정각:장례미사 시작 ▲하오7시50분:장례미사 종료 □힐러리 여사 추도문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 클린턴 여사는 4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지난달 31일 사망한 영국의 다이애나비를 추모했다.다음은 기고문 요약. 얼마 안있어 다이애나는 전설이 될 것이다.그러나 내가 아는 그는 우상도,왕세자비도 아닌,우리 모두처럼 자식을 키우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고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통해 이 세상을 바꿔 놓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다.지난94년10월 처음으로 가진 둘만의 사적인 만남에서 다이애나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세상의 관심을 끌려는 자신의 계획과 희망을 얘기했다.그때 그는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확신하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으나,나는 그가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남을 돕겠다는 의지와 활력이 가득함을 느꼈다. 우리는 지난6월 그가 대인지뢰 금지 캠페인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을때 다시 만나 그가 최근 방문했던 앙골라와 앞으로 있을 보스니아 방문 계획,에이즈 퇴치와 태국의 강제매춘 근절을 위한 노력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그리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삶으로부터 내팽개쳐질 때마다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용기와 끈기에 감명을 받았고,그가 전보다 더 행복하고 자신에 대해 평정을 찾은 것에 기쁨을 느꼈다. 나는 다이애나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병’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그가 뜻하던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나는 다이애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든 사람들이,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위안을 줌으로써 그를 기리기 희망한다.
  • 내일 다이애나 장례식 누가 참석하나

    ◎정치인 등 각계각층 2천여명 공식초청/조가요청 받은 파바로티 “울것 같다” 거절 6일 거행되는 다이애나의 장례식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석할까.화려한 생활을 하면서도 주위의 ‘그늘’을 함께 보살펴온 그녀의 삶을 반영하듯,웨스트민스트사원 장례식에는 세계적인 유명인사로부터 자선단체의 평범한 수혜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왕실이 공식 초청한 사람은 모두 2천명이다. 영국 국내인사로는 토니 블레어 현 총리를 비롯,존 메이저·마거릿 대처 등 전현직 총리들과 윌리엄 헤이그 보수당수 등 각 당대표들이 참석한다. 해외인사로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부부,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부부가 참석한다.클린턴 미 대통령은 의전상 국장이 아니면 참석하지 못하도록 돼있어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힐러리 여사가 미 정부의 공식 대표 자격으로 조문한다. 이밖에 다이애나의 절친한 친구였던 가수 엘튼 존,에이즈 퇴치운동을 함께 벌인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발렌티노 등도 참석한다.왕실측으로부터 조가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은 이탈리아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심한 슬픔에 싸여 “계속 울기만 할것”이라며 요청을 거절했다.
  • 결혼식 올렸던 성당서 수천명 추모/다이애나 사망 이모저모

    ◎“왕실은 지금 위기에…” 개혁 필요성 부각/찰스 재혼 초미 관심… 여론악화 걸림돌로 ○…다이애나비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 전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애도를 표시하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영국인들은 1일에도 그녀의 공식 주거지인 런던 켄싱턴궁 및 버킹엄궁 앞으로 몰려들어 촛불을 밝히거나 꽃송이를 놓으며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런던 시내 일부 건물에서는 조기가 걸린 모습도 눈에 띄었으며 16년전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던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는 2천여명이 모여 다이애나를 추모하는 예배를 거행. ○회교권,영 음모설 제기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해 이집트를 비롯,회교권 국가들이 영국 정보기관의 음모에 의한 살해설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이집트 관영 메나 통신은 ‘인종주의적 음모설’을 제기한뒤 다이애나가 이집트 출신 회교도와 염문을 뿌린데 대해 영국권력 기구가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보도. ○…영국국민들의 일반적인 감정은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전영국왕세자비를 기리기 위해 기념탑을 건립할 것을 원하고 있다고 더 타임스지가 1일 보도. ○…윈저궁을 일반국민들에게 개방하는 등 영국왕실에선 보기 드물게 국민들과 많은 접촉을 통해 ‘가장 현대적인 왕세자비’로 불렸던 다이애나의 죽음이 영국왕실의 개혁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고. 영국왕실 문제를 연구해온 폴리 토인비씨는 1일 BBC와의 회견에서 “왕실은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파이낸셜 타임스,더 타임스,데일리 텔리그라프 등 영국언론들도 “다이애나가 영국국민들에게 심어준 왕실에 대한 변화 기대심리는 다이애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국민들의 마음속에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세계적인 지뢰금지조약 협상이 타결되면 그 조약 이름은 다이애나의 이름을 따서 지어야 한다고 자크 랑 전프랑스 문화장관이 1일 제안. ○…다이애나는 올연말 자선 등 공식활동을 일체 중단하고 새연인 알 파예드와 함께 개인적인 생활에 충실할 계획이었다고 사망 6시간전 그녀와 전화통화를 가진 영국신문 데일리 메일의 왕실전문기자가 1일 밝혔다. 다이애나비가 가장 선호하던 기자중 하나인 리처드 카이 기자는 이날 다이애나의 결심이 사고자동차에 동승하고 있다 사망한 알 파예드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 ○…다이애나에 대한 지나친 보도경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더 선’ ‘더 미러’ 등 영국의 타블로이트판 신문들은 1일자 지면에 검은 테두리를 둘러 그녀에 대한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 ○“언론이 그녀를 죽였다” ○…다이애나의 죽음과 관련 언론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남아공에 있는 그녀의 동생 찰스 스펜서는 “나는 언론이 결국 그녀를 죽일 것으로 믿어왔다.그러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녀의 죽음을 가져올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언론을 비난. ○…고액의 위자료 등으로 인해 영국에서 재산이 가장 많은 여성중 하나인 다이애나비의 재산 규모는 1천7백만∼4천만 파운드(5백80억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다고. 다이애나비는 찰스 왕세자로부터 위자료를 받고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아 찰스의 재산보다 많은 1천7백만 파운드를 소유,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가 매년발표하는 영국내 최고재산가 명단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여성중 하나로 올라 있다.다이애나비는 또 세자빈이 된 후 엄청나게 값비싼 보석들을 많이 갖게 돼 약혼반지 등을 포함한 보석이 1천7백만 파운드(2백46억5천만원) 상당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산 최고 580억원 추정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사망함에 따라 찰스 영국 왕세자의 앞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목을 끄는 대목은 찰스 왕세자(49)가 오랜 연인관계에 있던 이혼녀 카밀라 파커 볼스(50)와의 결합 여부.지금까지는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이 쉽지 않으리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찰스가 늘 “재혼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해 왔으며,카밀라도 “찰스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카밀라의 경우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찰스와 다이애나의 이혼발표 이후 대부분의 영국민들이 찰스와 카밀라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게 이유로 꼽힌다. ○…다이애나를 태운 승용차가 사고를 낸 직후 반대편 차선에서 사고현장을지났던 미국인 관광객 가족은 5∼6명의 사진사들이 중상을 입고 죽어가는 다이애나의 주위를 “벌떼처럼” 둘러싼 채 다이애나비의 사진을 찍는데만 열중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 고 다이애나비 빈소 설치/오늘부터 조문객 받기로/주한 영 대사관

    주한 영국대사관측은 2일 중구 정동에 위치한 대사관내에 다이애나비 사망을 애도하기 위한 빈소를 설치하고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라고 1일 밝혔다. 영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숨진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을 왕실장으로 할지 또는 가족장으로 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2일부터 대사관내에 빈소를 설치하고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대사관은 현재 조기를 게양하고 전직원이 조복을 입는 등 숨진 다이애나비를 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사관측은 또 언론성명을 통해 “우리는 다이애나비의 사망소식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면서 “로빈 쿡 영국외상이 말한바대로 엄청난 손실을 당한 이때 다이애나비의 자녀들과 가족들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사관측은 “다이애나비는 92년 한국을 방문,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상실감이 한국에서도 폭넓게 공유되리라 확신한다”면서 “김영삼 대통령은 이미 영국왕실에 애도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유종하 외무장관도 개인적으로 주한 영국대사에게애도의 뜻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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