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국왕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설 선물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환영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2관왕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혐의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270
  • 日王 英 국민에 “깊은 아픔 통감”/공식방문 첫날

    ◎英 참전용사들 거센 항의시위 【런던 AFP DPA 연합】 영국을 방문중인 일본의 아키히토(明仁) 국왕은 26일 2차대전 당시 영국인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 “깊은 슬픔과 아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日王)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이날 버킹엄궁에서 베푼 만찬에서 “(2차대전) 당시 수많은 사람이 겪은 갖가지의 고통을 결코 잊을 수 없으며 전쟁으로 인해 양국 관계가 손상을 입은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아키히토는 또 “전쟁의 상처를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은 깊은 슬픔과 아픔으로 차오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일본군 포로수용소 출신 영국군 참전용사들은 이같은 아키히토의 유감 표명을 충분치 못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헌법상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는 아키히토 왕은 1만명의 영국군 참전용사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직접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편 아키히토의 영국 공식방문은 첫날인 26일부터 거센 항의 시위를 겪는등 수난으로 얼룩졌다.
  • 조선국왕 이야기/임용한 지음(화제의 책)

    ◎태조∼예종 인간적 삶의 모습 조선을 건국한 태조에서부터 8대 예종에 이르는 역대 조선 국왕의 일대기.단순히 일화를 나열하거나 단편적인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 당대의 시대상과 시대적 과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봉건시대를 살아간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복원해냈다. 그런 만큼 독자들은 지금까지 소설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친숙해진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왕들을 만나게 된다.태종은 두뇌회전과 상황판단이 빨랐지만 술수와 계략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인물이었다.목적을 위해서라면 일가친척이나 심복을 희생시키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세종은 장점이 많았지만 그 장점이 지나쳐 단점이 되었던 인물.세종은 후기에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경향조차 보여준다. 문종은 부드럽고 몸이 약한 선비와 같은 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세종 못지않은 뚝심과 야망을 지녔다는 것.단종은 당돌하고 오기가 강한 소년이었으며,세조는 추진력 있는 왕이었지만 거칠고 단선적이며 자기도취가 심했다.예종은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를 풍기지만 실제로는 세조보다결코 덜하지 않았던 전제지향적인 군주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국왕 개인의 성격과 일생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태조부터 예종까지의 시기는 조선을 건국하고 국가와 사회제도 전반을 새로 만들어 가야했던 시기로 개혁의 목소리와 정치세력도 다양했다.여러 개성을 지닌 국왕들은 제각기 독특한 방법과 이상을 품고 조선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 요동정벌론,태종의 쿠데타,태조와 태종의 대립,양녕대군 폐위와 민씨 일가의 숙청,세종의 개혁,문종의 숨겨진 야심,세조의 쿠데타,이시애의 난….이책은 국왕을 정점으로 숨가쁘게 벌어졌던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당대의 정치적·사회적 구조와 연관지어 입체적으로 살핀다.맛깔스런 문체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혜안 9천원.
  • 5·10 제헌국회 총선 50주년­역사적 의의

    ◎봉건사회 종언… 독립정부 토대 구축/사상 첫 민주선거… 王朝국가서 국민국가로/냉전체제속 ‘반쪽선거’ 분단고착화 초래 ‘역사의 등불은 선미(船尾)만을 비추는가’-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전철(前轍)을 밟기 마련이다.특히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시대인들에게 제헌국회 총선 50주년의 의미를 교훈으로 되살리는 작업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국민의 정부’를 맞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새김질하는 차원에서도 더욱 그렇다. ‘5·10 선거’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보통선거다.지리적 이념적으로 ‘반쪽선거’에 그쳐 분단을 고착화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한민국건국을 위한 합법성의 기초가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정치적으로는 통치엘리트의 교체를 공식화한 의미를 갖는다.국왕을 정점으로 양반계급내에서 통치엘리트가 충원되던 봉건적 신분제 사회가 막을 내리고 시민계급이 통치행위의 전면에 부상한 계기가 된 것이다.‘5·10 선거’를 기초로 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7월17일에는대한민국헌법이 공포되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다.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논리도 ‘5·10 선거’의 유효성에 근거한다. ‘5·10 선거’가 남한 단독선거로 치르진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소간의 치열한 패권주의적 신경전 때문이다.일제 패망이후 한반도내 민주적 임시정부의 구성 문제를 논의하던 미·소 공동위원회가 정부 구성에 참여할 정당·사회단체의 범위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미국은 47년 9월17일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한다.미국은 유엔에서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총선거실시안을 추진하지만 소련이 “인구비례에 의한 선거는 남한진영의 승리와 소련에 비우호적인 정부의 수립으로 연결된다”며 반대,결국 남한 단독선거로 귀결된다.국내에서도 단독선거 반대 주장이 제기됐지만 “정부수립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의견이 대세를 탄다.이에 따라 한반도의 공산화를 우려하며좌익소탕 작업을 벌이던 미군정은 48년 3월1일 ‘조선인민대표의 선거에 관한 포고’를 통해 ‘선거실시’를 공식 발표하고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수립운동을 적극 지원한다.당초 선거날짜는 일요일인 5월9일이었지만 기독교계의 변경 요청으로 하루 늦춰진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참여파와 불참파,남북협상파 등으로 나뉘어 치열한 세다툼이 벌어진다.李承晩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한국민주당,민족청년단,대동청년단,서북청년회,대한노총 등 반탁·반공의 우익세력들은 선거를 적극지지한다.특히 朴憲永계의 좌익세력 ‘조선인민공화국’에 맞서 결성된 한민당은 “선거를 반대하는 것은 소련의 앞잡이인 남로당이나 북로당의 모략에빠져 사회혼란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반면 남로당과 민주주의민족전선 등 좌익세력은 파업,시위,방화 등 폭력행사를 통해 선거반대 투쟁을 벌인다. 양쪽의 치열한 대립 속에 金九와 金奎植 등 우익 중간파들은 “남한 단독선거는 민족분단을 영구화한다”며 남북협상을 추진한다.金九 등은 ‘3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성명에서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절박한 심정을 토한다.우여곡절끝에 4월20일 평양을 방문한 이들은 ‘전조선 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단독선거배격운동을 촉구하는 결정서를 채택하지만 취약한 국내 기반과 국제적 냉전체제의 가속화,협상의 전략적 실패 등으로 ‘통일정부 수립’의 꿈을 접고 만다.이처럼 ‘5·10선거’는 독립정부 수립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분단의 고착화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그러나 왕조국가에서 국민주권국가로 발돋움한 토양을 마련,건국의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5·10선거’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
  • 3급수 팔당호의 비명이 들리는가(박갑천 칼럼)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제가 지은 업보는 제가 받게 돼있다는 뜻이다.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이업(二業)·삼업·사업·육업 등 여러가지를 말한다.“죄와 복이 나타남은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는 것과 같으니 선을 행해도 복을 받지않고 악을 행해도 앙(殃)을 받지 않는 것은 없느니라”(전타월국왕경) 석가여래 제자가운데서 신통력 제일이라는 목련존자(目連尊者)의 어머니 청제녀(靑提女)는 죽어서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생전에 베풀줄은 모르면서 여든대며 탐욕스럽기만 했기 때문이다.목련이 신통력으로 찾아갔더니 배는 태산같이 불러있는데 목은 실낱같고 입은 바늘구멍 같았다.더구나 몸속은 불길이고 입으로는 연기를 뿜고 있었다.건네주는 먹을 것은 금방 불꽃으로 된다.슬픔에 젖은 목련이 석가여래에게 어머니의 그고통을 없애줄 수 없겠는가고 탄원했을때 스승은 말한다.“제가 지은 죄를 제가받는 자업자득의 이치는 어떤 사람에게도 예외가 없느니라”.우란분경 등에 적혀있는 설화이다. 이와같은 생각은 유독 불경만 하고 있는 것이아니다.가령(계선편) 첫머리에 나오는 말­“착한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으로써 이를 갚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재앙으로써 이를 갚느니라”도 같은 고갱이의 가닥이다.(說苑:경신편)도 그런뜻으로 사람들을 깨우친다.“존망화복(存亡禍福)은 그원인이 대개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느니라”면서.이는 이승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진리다. 팔당호가 3급수로 떨어지고 있다한다.팔당호가 어떤존재인가.수도권 2천만주민의 생명수가 아닌가.그물이 죽을때 2천만의 목숨인들 온전타 하겠는가.그래서 앞으로 1조원을 들여 물맑히기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말도 나온다.팔당호 주변의 각종 공장하며 화려한 위락시설은 말하자면 스스로 지은 ‘자업’이다.그자업으로 해서 팔당호는 지금 비명을 지른다.숱한경고를 마이동풍으로 흘리면서 지어온 자업이 사람목숨 위협하는 ‘자득’의 차례로까지 이어져 버린것 아닌가.이제 그자득이 두려워 환경기초시설이네 뭐네하며 도스르는 꼴이 스스로도 곰팡스러워 뵌다.과연 1조원으로 1급수의 본디 모습을 되찾을수 있을것인지. 뒤퉁스레 일을 저지르고서 나중에 후회하는건 어리석다.다른 분야에서는 ‘팔당호의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지 두루 살펴봐야겠다.
  • 咸寧殿 화재(秘錄 南柯夢:9)

    ◎“섣달 그믐 궁내 火變” 정환덕 御前예언 적중/한달전 아뢴내용 맞아떨어지자 高宗이 1주일뒤 至密로 불러 “정해진 운수 알았나,우연인가.나라·황실 지탱할 방안도 아는가” 민선시대의 정치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선거의 결과가 궁금하다.그래서 과거 3공시대에는 세검정의 점쟁이 집에 정계의 거물들이 몰려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점쟁이 가운데는 1천금의 복채를 놓아야 보아준다는 대무(大巫)가 있고,단 몇푼으로 쉽게 점쳐주는 소무(小巫)들이 있다.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장래에 대한 불안이 심하고 그럴수록 대무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20세기의 문이 열리던 1900년처럼 불안한 때도 없었다.그래서 그런지 고종은 적지 않은 대무들을 궁궐안에 들여 몰래 점을 쳤다.고종에게 불려갔던 대무는 한둘이 아니었는데,그중의 하나가 충주 사는 성강호(成康鎬)였다.성강호가 돌아가신 명성황후의 귀신을 불러들일 수 있다 하여 고종이 끌어들인 것이다. ○高宗,몰래 무당 불러 점쳐 어전에 불려나온 성강호는 갑자기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땅에 내려앉았다.그런 다음 “지금 죽은 명성황후의 혼령이 이 의자에 와 앉으셨습니다”라고 하니 고종은 의자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다.성강호는 한술 더 떠서 “그렇게 요란을 떠시면 귀신이 놀라 떠나버리실 것입니다.조용히 하십시요”라고 했다.그래서 고종은 울지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는 것이다.강원도 통천(通川)에 사는 또 하나의 사기꾼 김원동(金元同)이란 자는 요술병 하나를 갖고 서울에 왔다.그리고는 고종에게 불려가서 어린 영친왕(엄비의 소생)의 병이 언제 나을 것인가를 정확히 알아맞히었다.그래서 고종의총애를 받았다가 강원도 금화(金化)군수로 발령받고 앞의 성강호도 벼슬이협판(協判·차관급)에 이르렀다고 하니 대한제국의 인사행정이 얼마나 엉터리였는가를 알 수 있다. 정환덕은 정통 역술가로서 성강호나 김원동 같은 사기꾼과는 달랐다.그래서 조선왕조의 운명을 알아맞혔을 뿐 아니라 덕수궁 함녕전에 불이 난다는것도 알아맞혀 고종을 놀라게 했다. “11월 28일 하오 3시 금마문(金馬門=함녕전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밖에서 등대(等待=대령)하고 있었는데,성상께서 옥체가 편안하지 않으시다 하여 물러났다.이튿날 궁내부에서 입궐하라는 어명이 계시다 하여 즉시 입대(入對)하였는데 물러나오면서 아뢰기를 ‘근자에 궁안에 불이 날 화변(火變)의 염려가 있사오니 각별히 조심하셔서 예방하셔야 될 줄로 압니다’고 하였다.성상께서는 깜짝 놀라는 빛을 지으면서 ‘어느날 어느 시각에 불이 날 것같은가’고 물으셨다.‘다음달 12월에 일어날 것입니다’고 하자 다시 ‘12월 며칠인가’고 하셨다.‘그믐쯤에 날 것입니다’고 아뢰자 ‘그러면 어느 방위에서 일어날것인가’하고 또 물으셨다.‘함녕전 바로 남문(南門)입니다’고하자‘이 불이 정전까지 침범하겠는가’ 재차 물으셨다.대답하기를 ‘거의 침범할 것입니다.그러나 군졸로 하여금 잘 지키게 하시면 불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압니다’고하자 이번엔 ‘어떻게 하면 잘 지킬 수 있는가’고 물으셨다.‘군졸 수 백명으로 하여금 매일밤 궁중과 궁 밖을 돌게 하여 근처의 인가를 조심시키시면 됩니다’하고 아뢰었다.” 도대체 국왕이라는 사람이 이토록 낯낯이 역술가에게 묻고 일을 처리하였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하겠는데,아무튼 정환덕의 예언은 적중하여 이해 12월 그믐날에 덕수궁 가까운 민가에서 불이 나고 말았다.불은 청국인이 경영하던 석물공장에서 일어나 수십채로 옮겨붙었다. “12월 그믐날이 되자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싸락눈까지 부슬부슬 내렸다.하늘과 땅이 어두컴컴하여 마치 암흑 속에 있는 것 같았다.초저녁이 지난 후에 갑자기 한바탕 광풍이 불더니 나무가 부러지고 집이 쓰러졌다.얼마후 함녕전의 정문 밖 청국인이 경영하는 석물공장에서 불이 나 수십채에 연소하더니 불길이 맹렬한 기세로 함녕전 정문을 범하였다.성 안팎의 백성들이 힘을 다하여 불길을 잡으려 했으나 날씨는 춥고 바람이 매서워 진화할수가 없었다.화염은 점점 정전(正殿)으로 육박하였다.이때 진고개(泥峴·충무로 입구)의 일본 소방대가 달려와서 소방기계 수십대로 근근이 불을 꺼 함녕전은 우뚝하게 홀로 남았다.불행중 다행이었다.” 정환덕이 한달 전 함녕전에 불이 날 것이라 예언한바 있었는데 고종은 까맣게 이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앞날 미리 맞히는 귀신” “이날 밤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와서 함녕전의 안전을 축하하였고,머리털이 그을리고 이마에 화상을 입은 군졸이 셀 수 없이 많았다.이 때를 당하여 전화과장 이규찬이 엎드려 ‘정환덕이 앞날을 미리 알아맞히는 것은 귀신과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고 아뢰었다.상께서 ‘정환덕이 누군가’ 말씀하시자 이규찬은 ‘지난 11월 29일 현릉참봉에 임명하신 그 정환덕입니다.당시 12월 그믐날 반드시 화변이 있을 것이라 아뢴 일이 있는데 폐하께서 잊어버리셨습니까’하고 옛일을 떠올렸다.상께서 다시 ‘짐(朕)이 근래에 골치아픈 일이 많다 보니 벌써 잊어버렸다.그러나 이 사람은 어찌해서 들어와 나를대하지 않는가’ 하심에 ‘소명이 없으셔서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고 아뢰었다.” 신하가 입궐하여 임금을 만나뵙고 자문에 응하는 것을 입대(入對)라 했다.임금의 부르심을 받고 입대하는 것을 소대(召對),문무관이 차례로 입대하는것을 윤대(輪對),중신이나 대신이단독 입대하는 것을 독대(獨對)라 했다.요즘 김대통령은 아무하고도 독대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원래 독대란 이처럼 궁궐에서 쓰던 말이다. “이규찬이 와서 정월 초이렛날 입대하라는 명을 전하는지라 이날 함께 대궐에 나아가 함녕전 뒤뜰에서 대령하였다.이윽고 내시 강석호가 칙령을 받들고 나와 급히 대령하라 하여 따라 들어가니 이곳이 곧 함녕전의 지밀(至密)인 침소였다.지밀은 상감 3부자께서 취침하시는 방이다.엄비 이외에는 비록상궁과 나인이라도 마음대로 무상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밀’이라고 한다.이날은 눈이 한시간동안 내려 장안천지가 배꽃이 만발한 듯한 이화세계(梨花世界)로 변하였다.이윽고 황상폐하가 서쪽 온돌방에서 용상(龍床)으로 내려와 좌정하신 뒤 ‘너는 앞날을 아는 똑똑함이 있으니 그 계산에 정한 수가 있어서 그런가.아니면 우연히 맞아서 그런것인가.만약 정한 수가 있다면 오늘날 천시(天時)가 불리하고 이웃나라와의 외교도 잘 안되고 사람들이 모두 종묘사직의 안위와 나라의 존망을 알지 못하고 있다.임금이 된나도 아득하게 알지 못하고 앉아있으니,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그 방안을 물어보고 싶다’고 하교하셨다.엎드려 아뢰기를 ‘무릇 수는 성의(誠意)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천하만사가 한갓‘성(誠)’이라는 한 글자 뿐입니다.그래서 이르기를 ‘성심이면 금석도 뚫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조용히 시변(時變)을 살피시고 천심(天心)을 추측하시면 국운이 장차 밝은 태양처럼 될 것이니,소신의 구구한 좁은 견해는 반드시 준거하여 믿으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간절히 말씀드립니다’라고 하였다.”
  • 내일 이스라엘 건국 50돌/약속의 땅 머나먼 평화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 크고 작은 분쟁 계속/사막서 경제기적… 1인 GNP 1만3천달러 이스라엘이 30일로 건국 50주년을 맞는다.1948년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고 초대총리 벤 구리온이 세계 각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을 불러모아 독립을 선포한지 반세기가 흐른 것이다.유대달력으로 8월5일인 기념일이 올해는 양력 4월30일에 해당한다.숱한 수난을 이겨내고,자원이 전혀 없으면서도 사막 한가운데 키브츠와 모샤브를 설립,단위경작지당 최고 수확량을 자랑하면서 1인당 GNP 1만3천600달러로 끌어올려 인근지역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를 만든 이스라엘인들의 지혜와 용기·근면함 등은 세계사의 보기 드문 선례로 우뚝 서있다. 그러나 건국 50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에 사는 것이 초기 시절 꿈꾸던 이상형에 부합하는 것인가를 되물을 때 대부분의 이스라엘국민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최대의 문제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정착 문제.건국 50주년 국민토론회에서는 “아침 출근이 저녁 퇴근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불안전한 생활”이 주류를 이룰 정도였다.94년7월미 백악관에서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46년간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공동선언을 발표하고,1년 뒤오슬로에서 폭력종식과 평화체제의 순조로운 이행을 다짐하는 선언문을 채택했지만 라빈은 저격당하고,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취임 이후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설립하겠다는 시책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생존권을 자극,크고작은 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내부적인 문제도 이스라엘의 전망에 어둠을 드리운다.국가를 부정하고 군입대를 거부하는 정통유대교파가 있는가 하면 기독교·회교도가 뒤섞여 살면서 극단적인 대립양상과 빈부갈등을 보이기도 한다.건국초 많은 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문화의 유대인들이 모여 용광로를 만들 것이라던 기대는 흐려지고 대신 떨어지기 쉬운 모자이크 만이 남았다는 평가인 것이다.
  • 단원 김홍도/오주석 지음(화제의 책)

    ◎사망연도 등 단원에 관한 새로운 사실 ‘조선적인,너무나 조선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1745∼1806년경).그는 키가 훤칠한 미남자로 성품이 매인 데 없이 시원시원했으며 대단한 애주가였다고 한다.그는 또한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글씨·시조·한시·음악 등에도 두루 능했던 만능 교양인이었다.이 책에서는 단원의 예술가로서의 삶,특히 ‘인간 김홍도’의 초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지은이는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그는 이 책에서 단원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 눈길을 끈다. 그 중의 하나가 단원의 사망년도다. 단원이 사망한 해는 통설대로 1812년에서 1818년사이의 어느 해가 아니라 1806년경이라는 게 그의 주장.따라서 1805년에 제작한 ‘추성부도(秋聲賦圖)’가 그의 절필작(絶筆作)이라는 것이다.또 단원은 가난한 풍류화가가 아니라 국왕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국왕 직속의 특급화원으로 근무했으며,당시 한양 최고의 갑부였던 김한태도 그의 예술생활을 전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점도 밝힌다.그동안 단원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간주됐던 용주사 대웅보전의 불화가 그가 주관이 돼 이명기·김득신과 합작한 작품이라는 견해도 시선을 끄는 대목. 단원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말년에는 진실한 종교인만이 경험할수 있는 삼매경을 선미(禪美) 그윽한 수묵화로 형상화했다는 사실도 소개한다. 고(故) 문일평 선생은 단원을 일러 ‘그림 신선’ 곧 화선이라고 했다.이는 단원 예술의 드높은 경지를 말한 것이지만 그의 생김새나 인품,초탈한 생활의 모습이 신선 같았다는 조희룡의 전기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한편으론 그가 국왕 정조를 가까이서 모시는 벼슬아치였던 까닭에 선(仙)자를 붙였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조선왕조에서는 서리(胥吏)조차 승문원에 근무하면 자랑스레 선리(仙吏)라 자처했다.열화당 2만2천원.
  • 金 대통령 ASEM 여로/이모저모

    ◎블레어 “위기타개 분투 亞洲 도울것”/日 등 4국정상 경제난 구실 보호주의 대두 경계/“韓·英 교류에 큰도움” 李 여사,한국학 학저 격려 【런던=粱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은 3일 하오(이하 한국시간) 열린 제2차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개막식에 25개회원국 정상,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함께 참석,ASEM 정상외교를 시작했다. ▷ASEM 개막식◁ ○…런던 엘리자베스 2세 회의센터에서 개막된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는 블레어 영국총리를 선두로 행사장인 처칠강당에 일렬로 입장했으며 金大中 대통령은 3번째로 입장,무대 맞은편 오른쪽 하사날 브루나이국왕에 이어 2번째 자리에 착석. 블레어 총리는 개막사에서 “상부상조하는 요즘의 세계에서 유럽이 아시아에 대해 등을 돌릴 수 없다”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을 돕겠다”고 밝힌뒤 이번 정상회의에서 ‘아시아·유럽 신탁기금’ 발족을 약속. 이어 10분씩 연설한 영국,태국,EU집행위,일본 등 4개국 정상들은 한국어를 포함,6개국어로 동시통역되는 가운데 모두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아시아와 유럽의 공동노력을 역설하고 아시아의 경제난을 구실로 한 보호주의 대두를 경계.한편 주최국인 영국은 회의센터 인접 도로에 대해서만 교통통제를 했으나북아일랜드 문제로 인한 테러 가능성에 대비,경찰이 삼엄한 경비. ▷영국총리 주최 만찬◁ ○…이에 앞서 金대통령은 상오 영국총리 관저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가 ASEM 참석 25개국 정상들을 위해 주최한 비공식 만찬에 참석,하시모토 일본총리,시라크 프랑스대통령,안토니오 구테히스 포르투갈총리,추안 릭파이 태국총리 등과 대화를 하며 친교. 블레어 총리는 “내일 진지한 회의가 예정돼 있으니 오늘 저녁은 마음을 열고 푸근한 마음으로 재미있는 분위기에서 만찬을 갖자”고 인사했으며 각국 정상들은 ASEM 개막일과 생일이 겹친 콜 독일총리에게 축하인사, 블레어 총리는 바로 왼쪽 자리에 앉은 金대통령에게 “내 선거구에 한국의 삼성전자가 투자한 공장이 있는데 활발히 가동되고 있다”며 “해외투자유치야 말로 경제활성화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언급. ▷李여사 한국학관계자 초청 간담◁ ○…앞서 李姬鎬 여사는 2일 밤 숙소인 힐튼 파크레인호텔 2층 허트포드룸에서 영국의 한국학 관계자 7명을 면담하고“영국에서 한국학 연구가 활발해질 경우 한·영간 교류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국학연구활동에 전념하는 학자들에게 감사를 표시.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영국인 교수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제임스 그레이슨 쉐필드대 교수가 “70년대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중 여사님을 뵌 적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자 李여사는 반가움을 표시.
  • 21세기 기산점 뒤늦은 논란/英 “2001년부터” 95년 공식화

    ◎중 “2000년이 타당” 최근 반론/국제기구도 이견… 통일 시급 【베이징=鄭鍾錫 특파원】 “2000년인가,2001년인가”. 눈앞에 닥친 21세기를 앞두고 그 기산점(起算點)을 언제로 할 것인가를 따지는 논란이 벌어졌다.2001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진 21세기의 기산점을 2000년으로 해야 한다고 중국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온 까닭이다. 신·구세기 교체는 세계적인 관심사이다.2000년대 진입은 더욱이 1천년(millenium) 만에 한번 오는 것으로 국제사회 여러 부문의 활동과 직접 관련돼 있다.세기 구분에 관해서는 1995년 영국왕실의 그리니치천문대가 이미 21세기의 기산점이 2001년이라고 밝힌 바 있다.인류가 통용하는 연대기 가운데기원 0년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에 대해 중국천문학명사심사결정위원회는 최근 국제천문학연합회에 공식으로 서한을 보내 21세기를 2000년 1월1일부터 계산하는 한편 세기구분과 2000년 귀속에 관한 통일규범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건의했다.1900년대가 끝나는 2000년부터 마땅히 21세기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중국의 주장이다. 중국은 지난달 베이징 교외의 파다링(八達嶺) 만리장성 기슭에 대형 ‘역산(逆算) 날짜시계’를 설치,매일매일 2000년까지 남은 날짜를 고시하고 있다.누가 뭐라든 중국은 2000년부터 21세기를 계산한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현재 21세기의 기산점이 국제적으로 완전히 통일된 것 같지는 않다.그리니치천문대의 기산점 발표 직후 영국시민들 가운데서도 일부가 이 결정에 반대했으며,많은 국제기구과 국제적 인사들 사이에서도 언제부터 21세기가 시작되는지를 둘러싸고 일부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결국 세기말 계산에서 1년이라는 차이가 나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이것이 통일돼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을 중심으로 강력히 일고 있다.
  • 民權단체 등장과 반작용(秘錄 南柯夢:6)

    ◎독립협회 결성에 ‘魚頭鬼面의 무리’ 비난/高宗의 해산령에도 활동 계속하자/徐載弼 등 주동자 17명 투옥/李承晩은 탈옥미수로 사형선고/하야시日公使 上奏로 특사 석방 ‘남가몽’의 저자 정환덕(鄭煥悳)이 경북 영천(永川)에서 처음 상경한 것은 1897년 가을,나이 40때였다.이 때는 갑신정변이 일어난지도 13년이 지나 세상은 온통 개화사상으로 들떠 있었다.1894년 일제는 동학란을 구실로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김홍집 등 개화파를 시켜 갑오개혁을 단행했다.그리고 이듬해는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바로 그 다음해가 정환덕이 상경한 때였다. 정환덕은 상경하기 두달 전 길몽(남가몽)을 꾸었다.황학사의 한 암자에서 수도하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더니 “공부 더 할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1896년 徐載弼이 결성 “광무 원년(1897년) 7월 16일 밤 황학사(黃鶴寺) 동편 운수암(雲樹庵)의 동대(東臺)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흰 도포를 입은 산신령이 청려장(靑藜杖·명아주 대로 만든 지팡이)을 짚고 내려와 마루에좌정한뒤 말하기를 ‘자네가 수학(象數學-易學)에 마음을 쏟은지 벌써 7년이나 되었으나 글의 요령(참뜻)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글만 줄줄 읽어온 것으로 안다.그러니 글의 행간에 숨겨진 뜻을 해득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더니 산신령이 청려장을 짚고 돌연 “나라가 망했다”고 개탄하는 것이 아닌가. “슬프게도 금수강산이 벌써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애석하도다! 이런 때를 당하여 비록 주(周)나라 800년을 일으킨 강태공(姜太公)이 나타나도 안되고,한(漢)나라 4백년을 보좌한 장자방(張子房)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아무 쓸데가 없다.하물며 자네가 약간의 역학을 배웠다 하여 큰 운수(大數)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겠는가.헛되이 정력을 대수에만 집착하지 말고비록 작은 운수(小數)에 지나지 않다 하더라도 잡는 것이 좋을 것같다.너의 신상에는 앞으로 십년간 통운(通運)이 있으니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라.시국의 변화를 따라 잘 대처하면 자신과 처자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꿈을 꾸고 선뜻 서울에 올라와 보니독립협회 회원들이 아우성을 치며 거리를 누벼 장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사람같지 아니한 무리(匪類),즉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무리들이 작당을 하여 단체를 만들고 이름을 독립협회라 하고 광화문 앞에 모여서 밤낮으로 선동하고 있었다.이 때문에 소란상태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문안이나 성밖을 막론하고 온 서울의 인심이 점점 물끓듯 하여 장차 군자는 설땅이 없을 것같은 조짐이 보였다.” 독립협회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미국으로 망명한 서재필이 11년만에 귀국,1896년 7월 2일 결성한 단체였다.우리나라 최초의 민권당(民權黨)이요,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지금 많은 역사가들이 독립협회를 찬양하고 있으나 당대의 절대 다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예컨대 정성우(鄭惺憂)라는 선비는 상소하기를 “갑신정변때 망명했던 역당들이 갑오 6월의 난을 일으켰으며,다시 을미 8월의 대역(大逆)을 양성한 것이다.소위 개화의 무리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환국,둔갑해서 말을 바꾸기를 부국강병이라 하고 외국인을 불러들여 대변(大變)을 일으켰다.흉도(兇徒) 서재필이 외신(外臣)이라 자칭하며 국권에 간여하고 있는 것은 무슨장난이며 독립신문이라는 것은 정부를 훼방하는 글 뿐이요,의리를 저버린 것이다.이것은 다만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다”고 통렬히 비난하였다.그러니 ‘남가몽’이 독립협회 회원을 ‘비도’라 했다해서 상식에 어긋나는 말은 아니었다. “이때에 황상폐하(고종)께서는 특별히 교서를 내리시어 ‘지금 너희들이 이같은 어려운 시대를 당하여 죄망에 걸리어 스스로 알지 못하는 곳에 빠져들고 부득이하게 핍박되어 평시와 다르게 되었으나 내가 마땅히 용서해주고 놓아줄 것이다.각자 돌아가 농사짓는 자는 농사짓고 장사하는 자는 장사에 부지런히 힘써 생업에 안착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고 경고하여 깨우쳤다.” ○영은문 헐고 독립문 건립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은 해산하지 않고 한결같이 사단을 야기하였다.이에 고종과 순종이 크게 진노,직접 광화문루 위에 올라가 교시를 내려 말하기를 “짐(朕)이 너희 무리들의 범죄를 풀어서 놓아주고 각자 돌아가 생업에 안착할 의사를 누차 깨우쳐 주었으나 듣지 않으니 너희 무리들은 도무지 정치 밖에 있는 백성으로 국민이 아니다.사세가 부득이하니 너희들을 차별없이 소멸시키고 말겠다” 하고 대포를 성루에 높이 달아매고 위력을 보이니 독립협회 회원들은 해산하고 말았다. “내가 서울에 갔을 때는 차차 평온해지고 시골도 점점 진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그러나 남은 재앙이 이어져 수해와 기근이 겹치게 되고 도적이 날뛰어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해마다 일어나지 않는 때가 없었다.겉으로는 조금 안정을 되찾는 듯했으나 안으로는 점점 비상시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재필은 먼저 사대주의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다.이어 모화관의 편액을 독립관으로 바꿔 달았다.봄부터 독립관에서는 치열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모두가 전직 판서·참판·승지 등 고위층들로 가마를 타고 나타나 앞마당은 거마로 꽉 찼다.또한 토론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라 발언권을 얻어도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연단에 서있다 내려가는 사람도 많았다. 하루는 토론 주제가 “길에 가로등을 달아 도적을 없앱시다.”였다.한 사람이 일어서서 “가로등이 비치면 도적이 은신할 데가 없으니 매우 유용합니다”고 주장했는데 반대론도 만만치 않았다.어떤 사람은 “도적이 어디 길에서 도적질 합디까.남의 집 캄캄한 다락이나 곳간에서 도적질하기 때문에 가로등을 세워봐야 소용없습니다”고 하였고,다른 사람은 “가로등으로 밤도둑은 막을 수 있으나 밤에 등불을 켜고 남의 집에 들어가는 명화적(明火賊)에게는 가로등이 소용없고 또 청천백일하에 선량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낮도둑(부정부패 관리)에게는 백촉,천촉,억만촉의 등불을 켜도 막을 수 없습니다.여러분!”이라고 소리쳤다. ○법무대신 韓圭卨이 감형 때마침 회장에 몰래 숨어들어와 있던 내부협판(內部協判·내무부 차관) 김중환(金重煥)이 이를 듣고 곧장 고종에게 달려가 “독립협회에서는 국왕을 비롯한 모든 정부요인들을 절국대도(竊國大盜)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라고 과장했다.고종은 대로하여 해산령을 내렸고 그래도 해산하지 않고 이듬해 여름까지 세번이나 직소를 올리자 어용단체 황국협회(皇國協會)로 하여금 몽둥이로 독립협회원을 두들겨 패고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이때 독립협회 주동자는 18명이었는데 윤치호를 뺀 17명 모두가 서소문 감옥에 갇혔다.그중에서도 이승만(李承晩)은 가장 과격한 분자라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며 한번 탈옥하다가 붙잡혀 들어왔으므로 꼭 죽어야 될 신세였다.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한규설(韓圭卨)이 법무대신이 되더니 그를 감형하였고,1904년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가 고종에게 상주(上奏)하여 특사로 풀려났다.하야시는 훗날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살려내리라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 파드 사우디국왕 입원/담낭염증 악화

    【리야드 AFP 연합】 파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76)이 9일 담낭염증으로 리야드의 파이살국왕병원에 입원했다고 사우디 관영 SPA통신이 보도했다.
  • 신예 강대석씨 바이올린 독주

    미국,유럽을 무대로 연주해온 30대 바이올리니스트 강대식씨가 12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갖는다. 국내 대중에겐 무명에 가깝지만 그의 서구에서의 경력은 녹록치않다.커티스 음대 이반 갈라미안,영국왕립음대 나탄 밀스타인에게서 배웠고 10대때 벌써 시카고 시빅 콩쿠르에서 1등하면서 기린아로 떠올랐다.이어 명문 프랑스툴루즈 캐피톨 국립 교향악단 최연소 악장을 지냈고 영국 님부스,핀란드 핀랜디아 등 각국 유명 레이블을 통해 음반도 냈다.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헬싱키 필하모닉,상해 교향악단 등과 협연했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를 지냈다. 탄탄대로를 차근차근 밟아온 그에게 미국 언론은 ‘악기에 대한 무서운 육감,깊은 음악성,하이페츠를 연상케 한다’는 평을 붙이기도.이번엔 1755년산 과다니니로 타르티니 소나타 5번,브람스 소나타 1번,프로코피에프 솔로 소나타,바찌니 ‘요정의 춤’,하이페츠가 편곡한 다니쿠의 ‘호라 스타카토’ 등을 들려준다.한국 피아노계의 간판스타 이경숙씨가 반주를맡아 더욱 구미를 돋운다.598­8277.
  • ‘캄’ 훈센­라나리드 휴전 합의/일등 중재국의 평화안 수용

    【프놈펜 AFP DPA 연합】 캄보디아 훈센총리와 지난해 7월 그가 무력축출한 공동총리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가 27일 수개월 간에 걸친 휘하 병력간의 교전을 중단한다고 각각 발표했다.양측의 휴전발표는 오는 7월26일로 예정된 캄보디아 총선의 공정한 실시를 목적으로 일본을 비롯한 중재국가들이 제시한4개항의 평화안 중 하나를 충족시키는 것이다.훈센과 라나리드 양측이 이미 수용한 평화안은 라나리드에게 ▲휘하병력에휴전명령 ▲불법화된 공산반군 크메르 루주와 군사관계 단절 ▲정부군에 휘하병력 편입등을 권고하고 있다. 평화안은 또한 훈센에게 ▲오는 3월로 예정된 라나리드에 대한 불법 무기반입 및 크메르루주와 결탁 혐의에 대한 군사 궐석재판들을 신속히 진행해 라나리드가 부친인 시아누크 국왕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총선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김 대통령,취임식 참석 12국 외빈 접견

    ◎“위안부 문제 인권 차원 처리”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이틀째인 26일 청와대에서 취임식 참석차 방한중인 폰 바이츠체커 전 독일 대통령 등 12개국 79명의 전직 국가원수급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 우리의 IMF체제 극복 노력에 적극 협력해 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한·일,한·중 관계 개선 등 해당 국가들과의 우호 증진방안을 논의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다케시다·나카소네 일본 전 총리들과의 면담에서 일본측의 어업협정 파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군대위안부 보상문제는 여러나라가 납득할 수 있는 인권문제 차원에서 다뤄 줄 것을 요청했다. 김대통령은 또 “오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개최에 앞서 일본의 아키히토 국왕 등 양국 국가수반의 상호 방문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중국 강택민 국가주석과 러시아 옐친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았다.
  • 영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미 전기작가 키티 켈리의‘로열스’

    ◎1917년부터 80년간의 다큐멘터리 왕실사/찰스­다이애나의 파경 등 가감없이 기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가정교사에게 하루 한시간씩 영국사와 문장학을 배웠을 뿐이다.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에 약했고 자연계에 관해서는 개와 말밖에 몰랐다.그녀는 러드야드 키플링과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제외한 그밖의 모든 시들을 싫어했다.어느날 그녀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에 대해 ‘단테란 말(마)의 이름?’이라고 물었다” 영국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로열스’(전2권,키티 켈리 지음·이종인 옮김)가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에서 나왔다. 키티 켈리는 ‘낸시 레이건:비공식 전기’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베스트셀러 전기작가.켈리는 금세기 들어 윈저 왕가는 비영웅적일 뿐아니라 결손가정화해 ‘미디어를 위한 인형극’으로 전락했다고 꼬집는다. 이 책은 1917년에서 1997년에 이르기까지 80년의 영국왕실사를 다룬다.1917년,독일을 미워하는 영국의 국민정서를 잘 알고 있던 영국왕 조지 5세는 자신의 독일 뿌리를 감추기 위해 왕가의 이름을 하노버에서 윈저로 바꿨다.그는 하룻밤 사이에 바텐베르크,메클렌베르크­스트렐리츠,헤세,베틴 등 독일계 가문의 이름을 왕가의 계통에서 박탈해버리고 영국 이름과 타이틀을 만들어 넣었다. 켈리는 이 책에서 훗날 윈저 공작이 된 에드워드 8세의 느닷없는 양위와 그 뒤를 이어 동생 앨버트 왕자가 조지 6세로 등극하는 과정을 그린다.그리고 영국 왕실에 커다란 안정을 가져온 엘리자베스 왕비를 묘사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곧 현재의 ‘퀸 마더(Queen Mother)’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의 하나다.켈리는 우아한 미소에 강철같은 성품을 지닌 퀸 마더의 생생한 초상을 제시한다. 퀸 마더는 비록 평민 출신이지만 2차대전 당시의 런던 공습때 대피하지 않고 런던에 그대로 체류,왕가의 체통을 지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켈리는 퀸 마더의 출생을 둘러싼 신비를 밝히고 인공수정으로 두 딸을 낳게된 내막도 폭로해 눈길을 끈다. 켈리는 또 조지 6세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2세의 외로운 유년시절과에든버러공 필립과의 결혼,1952년 아버지의 급서로 인한 갑작스런 등극 등을 상세히 다룬다.켈리가 엘리자베스 2세의 생활에 대해 밝힌 구체적인 사항들 중에는 여왕이 냉정하고 무심한 어머니였다는 내용도 있어 자못 충격적이다.그에 의하면 윈저 왕가의 파탄은 여왕이 기능부전한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상당부분 그 원인이 있다. 여왕의 네 자녀 중 셋은 이혼했고 나머지 한명인 막내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바람둥이 남편인 필립 공,속만 썩이는 동생 마거릿 공주, 우유부단한 아들 찰스 왕세자,뻣세기가 남자 못지않은 앤 공주,왕족이 아닌 평민계급에서 데려온 두 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와 사라 퍼거슨….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모든 풍상을 헤치고 이제 2002년 대망의 즉위 50주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여왕의 부군으로 여왕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왕궁내의 실세’ 필립 공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묘사한다.켈리는 필립공이 아직도 가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이 책의 후반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파경,둘째 며느리인 요크 공작부인 사라 퍼거슨의 이해할 수 없는 음란한 행동 등을 가감없이 다룬다.이 책은 영국 왕실도 이혼과 결손가정의 증가라는 영국적 사회현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윈저 왕가는 또다시 위기의 시대를 맞았다.왕가를 ‘재창건’해야하는 과업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엘리자베스 여왕­찰스 왕세자­윌리엄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영국 왕실 상황은 빅토리아 여왕­에드워드 왕자­조지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1900년의 빅토리아 말기와 비슷하다.모후인 빅토리아 여왕 사후 에드워드 7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그는 이미 59세의 나이로 평생 여자들의 품에 안겨 샴페인이나 마시며 인생을 탕진한 사람이었다.그가 즉위한지 10년도 못돼 죽자 조지왕자는 조지 5세로 등극,윈저 왕가를 창건했다.영국 왕실은 이제 100년 세월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영국 왕실은 과연 ‘스캔들의 궁전’인가. 그러나 영국 왕실은 그 많은 스캔들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역경과 비난을 견뎌내는놀라운 능력을 보여왔다.켈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1천200년 역사의 영국 군주제는 이제 신과 같은 광휘가 부식되었고 또 위축될대로 위축돼 수모를 겪고 있다.그렇지만 장엄함에 대한 매혹과 새로워진 왕권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영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 출병의 현장 의란(흑룡강 7천리:21)

    ◎청­러전 참전 조선군 함성 들리는듯/효종,청 지원요청 따라 포수부대 262명 파견/1658년 ‘송화강 전투’서 러시아군 270명 섬멸 지난해 12월 2일 나는 하얼빈에서 가목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96년 여름 송화강 답사차 가목사로 갈 때는 장장 9시간을 밤기차를 탔고 1년 전 가목사에서 하얼빈으로 갈 때만 해도 택시로 근 10시간을 달려야 했던길이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 1급 도로가 완공돼 화장실까지 갖춰진 독일제 호화버스로 345㎞를 4시간만에 닿았다. 신나는 여행이었다.하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조선족역사 연구’(고영일 저)에서 인용했던 ‘이조실록’의 한 토막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면서 역사의 귀곡성이 가슴을 울렸던 것이다. 효종 5년(1654년) 2월 이상진이 국왕에게 상소했다. “지금 나선(러시아를 가리킴)의 정형은 걱정거리로 되었나이다.만일 강변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또 어떤 군대로써 이를 방어하겠나이까. 신하의 소견은 문신중에서 덕재를 겸비한 자에게 북노병마사의 직책을 지우고 그 지방의 백성으로 하여금 조정의염려의 덕택을 알도록 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군정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보나이다” ○영고탑서 청군과 합류 효종은 찬동을 표시했다. 1643년 외흥안령 야크츠크의 보야코브가 흑룡강을 넘어 살륙을 시작하면서부터 침략이 빈번해지자 청 정부는 경차도위 명안달례를 파견,‘송화강전투’를 발동하게 하면서 조선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청군 주력이 모두 관내에 진출한 불리한 조건이라 청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의 지원군은 150명.그들의 행군노선을 보면 함북 회령에서 두만강을 넘어 오늘의 연변지역을 경과하여 8일만에 영고탑(오늘의 흑룡강성 영안시)에 도착,거기서 청군과 합류하여 목단강 뱃길로 닷새만에 회통강(송화강)에 이르렀다고 한다. 목단강이 송화강과 합수하는 곳이면 바로 오늘의 흑룡강성 의란현의 소재지 의란이다.하얼빈에서 235㎞,가목사로 가는 길옆에 있는 현성인데 36만 인구중 조선족은 겨우 4천592명이 살고 있다.서쪽은 소흥안령,동과 북은 완달산,남쪽은 장광재령에 둘러싸인 분지다.만족의 조상이 거주했던곳이라 청실의 ‘조종발상중지’라고도 한다.의란을 만족어로는 ‘의란허라’라 부른다.의란은 셋,허라는 성이라는 뜻으로 의란의 원이름은 삼성이다.지금도 도시 안에는 ‘삼성전화공사’ ‘삼성관상대’ ‘삼성상점’ 등 간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삼성이란 갈,노,호씨인데 청나라 천명원년(1616년)에 태조 고황제의 초무를 받아 기적에 든 허저족 커이거러(갈의극륵),누예러(노업륵),허리(합리)씨족을 지칭한다.이들은 만주 팔기에 들어 누르하치,황태극,순치 등을 따라 명나라를 정벌하는데 전공을 세웠다.그 공으로 천명 5년에 의란땅을 세습지로 하사받았던 바 영고탑,훈춘과 나란히 길림삼변으로 유명했다. ○오국성유적 그대로 12월 3일 의란현성에 이르자 나는 당시 청군과 조선 지원군이 러시아군과 혈전을 벌였으리라 짐작되는 목단강과 송화강의 합수목으로 달려갔다.얼어붙은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봄이 오고 강이 녹으면 배들은 짐을 싣고 송화강을 거슬러 하얼빈으로 가기도 하고 또 물결을 따라 흑룡강으로 가기도 한다.그런데 애석하게도 송화강 물결을 따라 의란과 가목사로가는 항로에는 암초가 많아서 큰 배는 통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하지만작은 배는 무난히 오갈 수 있다고 했다. 조선 지원군이 적선에 불벼락을 안겼던 곳인 목단강과 송화강의 합수지점엔 오국성 유적이 남아 있다.의란진 북쪽 변두리에 ‘오국성옛터’라고 쓴 커다란 시멘트판이 서 있다.그 뒤로 세월의 흐름속에 겨우 흔적을 알아볼 수 있는 흙으로 쌓은 성벽이 낙엽진 버드나무의 쓸쓸한 형상을 띠고 언 대지위에 누워 있었다.역사의 기록에 보면 오국성 성벽의 둘레는 2천210m,높이 4m,기관 8m,정관은 1.5m였다고 한다. 오국성이 유명해진 것은 중국 역사상 ‘정강지란’이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의란진에 있는 자운사의 용왕묘 옆에 세워진 시멘트 푯말에는 ‘휘흠이제유금지지’라고 적혀 있다.바로 여기서 송조 말기의 두 황제가 연금생활 끝에 1133년 한많은 생을 마쳤다. 자운사가 선 때가 1928년,바로 용왕묘 자리는 의란 부도통의 포병진지였다고 한다.1900년 러시아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포격으로 이곳을 초토화시켰다고 한다.17세기 중반 조선 지원군의 포화에 쫓겨갔던 러시아는 20세기 초입에 다시 포화로 진격해왔다.역사는 톱질과 같이 밀고 당기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런 와중에 인간은 애향심에 울며 세상을 떠나갔다. ○아군 8명 전사 25명 부상 1658년 6월 조선정부는 신류를 대장으로 소관 2명,포수 200명,고수와 화정 60명의 군사들에게 군량 3개월분을 휴대시켜 두만강을 넘어 영고탑으로 진군시켰다.이들은 6월 5일에 출발,10일 흑룡강에 이르렀다.전투는 도착날인 6월 10일(양력 7월 11일) 흑룡강과 송화강의 합수지점(오늘의 흑룡강성 동강시)에서 벌어졌다.싸움은 저녁까지 계속됐는데 쓰제바노브의 러시아군은 270명이 섬멸되고 47명이 겨우 도망했다.아군은 8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했다. 그들이 이름 석자도 남기지 못하고 거친 북만주에서 시신으로 쓰러진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던 순간 나는 분명 애끓는 귀곡성을 들었다.
  • 투자유치 고관들이 앞장서라(경제평론)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정부와 국제채권단간에 단기외채연장협상이 원만히 이뤄져 일단 국가부도는 모면했지만 앞으로 갚아야할 빚이 무려 1천5백억달러 이상이나 되고 올해 갚아야할 이자만 1백40억달러에 달해 걱정이다.정부는 빚을 갚기 위해 수출을 늘리고 외국인투자를 적극 유치할 방침이나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인투자유치를 위해 정부는 지난 94년 외국인투자 유치기획단을 설치,외국인 투자인가 승인과 동시에 기업설립 및 공장설립에 관한 각종 인허가신청을 일괄 처리해주는 원스톱체제를 도입한 바 있으나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투자유치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일반적으로는 개도국이 선진국의 기업을 유치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개도국들만이 투자유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개도국은 물론이고 미국같은 선진국정부도 직접나서 외국인 투자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시장경제를 신봉하고 있는 나라여서 정부당국이 사기업의 활동에 별로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기 쉬우나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어떤점에서 개도국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지원을 하고 있다.지난 85년 상무성산하에 설치된 FCS(FOREIGN COMMERCIAL SERVICE)는 미국이 민간기업의 수출지원을 위해서 만든 대표적인 기구이다.이 기구는 해외 70개국에 해외사무소를 설치하고 미국기업의 수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정보제공에 그치지 않고 수출을 할 수 있는 대상지도 찾아주고 있다. FCS는 해외사무소에 민간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샘플을 보내 현지 반응이 「수출가능」으로 판단되면 해당업체의 현지방문을 독려하면서 바이어와 면담일정을 잡아주고 통역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이른바 ‘골든키 서비스’를 하고 있다.미국정부의 수출드라이브정책은 클린턴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층더 강화되고 있다. 클린턴은 실제로 막대한 규모의 비행기와 통신기계 판매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게 직접 전화를 걸 정도다.대통령이 미국기업의 세일즈에 직접나서자 해외공관장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바레인 주재 미국대사관은 바레인 걸프 항공사가 20억달러 규모의 미국 보잉사 항공기를 구입하는 데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벨기에 주재 대사관은 미국의 퍼시픽 텔레스그룹이 벨기에 기업과 연간 3억달러 규모의 판매계약을 체결토록 주선한 바 있다. ○클린턴 사우디에 판촉 전화 미국과 같은 선진국만이 아니고 우리의 경쟁상대국인 싱가포르 정부의 행정서비스체제도 놀라울 정도이다.싱가포르는 ‘국가전체가 종합상사이고 주식회사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오작동총리는 싱가포르에 반도체공장을 유치하기위해 선진국 순방에 나서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휴렛패커드,일본의 캐논사 등을 방문,유치작전을 편 일이 있다. 총리가 직접 나서서 “진출사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하는 바람에 유차작전이 쉽게 성공했다.반도체공장에 대한 금융기관대출은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이 모두 지급보증을 하고 기능인력에 대한 교육경비의 60%를 경제개발청이 부담하며 공장도 고속도로 인근의 요지에 입주하게 해주었다. 대만정부는 지난 93년 7월 아태중심프로젝트라는 중단기 경제활성화조치를 발표하면서 외국기업 유치를 첫번째 과제로 삼았다.중소기업중심의 경제발전을 해온 이 나라는 다국적 외국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재도약의 발판을 다진 결과 지금은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동남아 나라에 금융지원을 하겠다고 나설 정도다. ○발로 뛰는 국가 지도자를 대만은 이등휘총통이하 전 국무위원은 물론이고 모든 공직자가 다국적 기업유치에 나서고 있다.총통이 외국기업 총수를 만나 투자권유를 하고 교통부장관은 고속철도 수주를 조건으로 독일 벤츠사 유치에 성공했으며 외교부장관은 미국의 페더럴 익스프레스사 등 물류회사를 유치했다.보건장관은 선진국의 유명제약회사를 유치하고 국장급을 중심으로한 투자유치팀은 필립스사를 유치했다. 대만은 5년전부터 국제화를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자체내 경쟁력강화를 위해 기술개발투자를 대폭 늘리는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또한 국제화에 맞게 각종 법령과 규정을 과감하게 완화 내지는 철폐했다.각종 행정혁신과 공기업 민영화를 과감하게 추진했다. 선진국 국가원수가 발로 뛰는 경제전쟁 속에서 우리나라 고위층과 장관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우리도 뒤늦기는 했지만 투자유치 등 경제협력문제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고위공직자가 뛰어야 할 것이다.얼만전까지 각 부처장관과 고위공직자들은 투자를 위해 한국을 찾아온 외국기업인마저 선별해서 만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외국기업 투자유치는 재정경제원이나 통상산업부에 국한된 업무로 여기고 있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자세이다. ○고위층이 세일즈맨 되라 새 정부부처 장관들은 누가 지시하고 명령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살길인 수출증대와 첨단산업유치에 나서야 할 것이다.비경제 부처장관도 미국이나 대만장관들의 자세와 행동을 배워야 한다.장관뿐이 아니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고위직 공무원 모두 세일즈맨이 되어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통상업무가 통상산업부에서 외무부로 넘어간다.외무부는 지금까지 수출신장과 외국기업 유치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한번 성찰할 필요가 있다.외교통상부가 진정으로 환골탈태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고위공직자 모두가 세일즈맨화되어야 할 것이다.
  • 1883년 제작 태극기 채색그림 발견/청색으로 4괘 그려

    고종이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반포한 해인 1883년 재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색으로 4괘가 그려진 태극기 채색그림이 서울대 규장각 소장의 청나라 외교문서 (1886년 발행)에 들어 있는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이를 찾아낸 태극기 전문가 김원모 단국대 교수에 따르면 이 외교문서에는 ‘고려국기’라는 이름과 함께 ‘광서 9년 2월(양력 1883년 3월18일) 청의 요청에 따라 조선 국왕이 국기의 채색그림 한 장과 공문서를 보내왔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 임란 관련 유물 첫 공개/도요토미 주인장 등 570점/진주박물관

    【진주=이정규 기자】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이내옥)은 14일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코를 잘라 보낸 사실을 증명하는 왜병장수의 연서장과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주인장 등 임진왜란 관련 유물유적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으로 바꾸는 작업을 벌여온 진주박물관은 15일 재개관에 앞서 일본 오사카(대판)와 나고야(명고옥) 박물관에서 570점의 임진왜란 관련 유물을 임대받아 이날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 가운데는 9장에 달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각종 군사관련 명령서인 주인장과 울산성전투도병풍,조선국왕증풍태합서,회본태합서,이탈리아인 카를레티의 동방여행기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오사카 박물관에서 들여온 단견화천수 등 왜병장수 3명 연서장은 조선인 3천369명의 코를 잘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친 것을 확인하는 인수증으로 임란 당시 왜병의 잔학상을 증명하는 자료다. 이밖에 국내에 2벌 밖에 없고 당시 원수들이 전장에서 입은 전장의 갑옷을 비롯해 일본군 갑옷,두부제작 그림,된장 숯제작 그림 등 모두 570여점의 각종 유적 유물이 공개됐다.
  • 국새/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고려왕조 말기때 무장 조민수의 창왕을 옹립하자는 의견과 이성계의 왕씨일족 중 왕을 세우자는 주장이 엇갈려 공민왕의 정비 안씨에게 옥새를 맡기자 안씨는 창으로 하여금 왕위를 물려받게 했다. 엊그제 방영된 ‘용의눈물’에 보면 태종이 양녕대군에게 양위를 한다면서 옥새를 세자궁에 갖다놓는 대목이 나온다. 태종의 나이 마흔살에 양녕대군은 14살로 전위의 의사나 명분이 없었으나 왕권을 강화하고 반왕세력을 제거하는 계기로 활용한 것이다. 옥새는 바로 왕위를 이어받는 한 절차다. 설문해자는 ‘인은 집정을 하는데 필요한 신’이라고 쓰고 있다. 고려·조선시대에는 새보·어보라고 해서 국왕의 권위와 전통성을 상징하여 왕위계승에서 전국의 징표로 전수되었다. 영조때는 국새 종류가 다양해져서 왕이 서적을 반포·하사할 때는 선사지기, 왕이 지은 글에는 규장지보, 각신의 교지에 쓰는 준철지보가 있었고 명덕지보 광운지보 등등으로 사용되었다. 고종에 이르러 이전의 국새를 모두 폐지하고 대조선국보·칙명지보 등으로 쓰다가 49년 새로운 국새가 마련되면서 대한민국지새를 만들었다. 이 국새는 예술적 측면에서 ‘법도가 엄정한 인장’으로 예술계에서 인정되었다. 이번 대통령직인수위가 공개한 국새는 지난 70년에 만들어진 한글전서체다. 그러나 사방 7㎝ 정방형 인형에 써넣은 ‘대한민국’ 서체는 문외한이 보아도 조잡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이로인해 지난 95년 한글학자·서예가들이 예술적 조형성을 거론하여 ‘금석기와 문자향이 서린 예술적 품격을 갖춘 새 국새’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천명을 이어받은 임금처럼 국새 이양의 삼엄한 절차를 밟지는 않더라도 국새는 여전히 주요 국가문서에 날인되는 국권의 상징이다. 이름없는 인장집에서 막도장처럼 새겨진 것은 ‘집정을 하는데 필요한 믿음’에 어딘지 성의가 없어보일 수도 있겠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