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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야당聯, 왕정 전면부인

    네팔 야당聯, 왕정 전면부인

    ‘신들의 땅’인 히말라야가 유혈사태로 얼룩지고 있다. 강력한 전제 통치에 나선 갸넨드라 네팔 국왕이 민주주의 회복과 하야를 요구하던 시위대에 발포, 사망자가 느는 등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AP통신 등은 9일 네팔 야당 연합체가 왕정 통치를 전면 부인하고 이날 끝내기로 했던 ‘총파업’을 무기한 지속할 것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지난 8일 정부군의 발포로 수도 카트만두에서 200㎞ 떨어진 제2의 도시 포카라에서 시위대 1명이 사망한 데 이어 이날 바네파에서 다시 1명이 숨졌다. 현재 사망자는 3명, 부상자는 최소 5명 이상으로 알려졌다. 카트만두에서 공산반군이 시위대를 연행하던 정부군에 총격을 하는 등 ‘교전 상황’이 수도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네팔 정부는 주간 통행금지 조치를 카트만두 이외 도시로 확대하고 지난 5일 발효된 야간 통행금지(오후 11시∼다음날 오전 3시)에 이어 주간 통행금지(오전 7시∼오후 8시)가 9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공산반군이 남서부 지역에서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네팔 정국은 깊은 혼돈 속으로 빠지고 있다. 6일 전국에서 시작된 총파업은 이날로 나흘째를 맞았다. 네팔 정부는 총파업 이후 야당 지도자와 시민 등 751명을 체포했다. 통금 조치를 무시한 다만 나트 던가나 전 하원의장과 락스만 아리알 전 대법관도 구금되는 등 115명을 공공안전법에 따라 기소없이 수감됐다. 네팔 공산당 지도자 카시나트 아히카리는 “시위대는 카트만두의 6개 지역에서 통행금지를 무시하고 있으며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등 서방은 네팔 정부의 강경진압을 우려하며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는 갸넨드라 국왕의 독재 통치에서 비롯됐다. 갸넨드라는 2001년 6월 왕실 총기난사 사건으로 국왕 일가족 8명이 모두 사망하자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는 왕권 찬탈 의혹에 휩싸인데다 무례한 언행으로 국민의 신망을 얻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2월 공산반군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이유로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뒤 의회를 해산했다. 강력한 친위정권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지난 2월 총선 투표율이 21%에 그치는 등 민심을 사로잡지 못했다. 정치적 탄압에 맞선 야당과 공산반군이 손을 잡고 갸넨드라 국왕의 하야를 촉구했고 이는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공산반군은 1996년 부패와 빈곤 해결을 명분으로 봉기한 뒤 정부군과 교전을 벌여 현재까지 1만 3000여명이 희생되는 등 히말라야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조선 최고의 명저들/신병주 지음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 최근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조선시대 최고의 기록물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일본 도쿄대로 반출된 오대산 사고본에 대한 환수가 추진되고 있고, 의궤는 실록에 이어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된 상태다. 조선사가인 서울대 규장각 신병주 학예연구사가 쓴 ‘조선 최고의 명저들’(휴머니스트 펴냄)은 이들 실록과 의궤를 비롯, 조선의 시대상과 그 시대 사람들의 지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물과 서책 14권을 엄선, 역사학자의 눈으로 쉽게 풀어헤쳤다. 기행문에서 일기, 보고서, 문집, 관찬기록 등 국보급 기록물에서 당대 베스트셀러까지 명저들의 특징과 함께 관점과 맥락, 인물과 사건, 현재적 의미까지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평소 고전을 어렵게 느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조선이 기록과 서책의 문화역량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조선왕조 500년간 이어진 방대한 편찬사업의 산물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문치주의 확산의 촉매제였다. 학자 등 개인들도 문집이나 일기를 통해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기록, 책으로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건국의 주역 정도전과 의녀 장금도 등장한다. 실록 뿐 아니라 승정원일기에 담긴 국왕 비서들의 기록에서는 세종은 육식주의자, 영조는 채식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체계화한 성문헌법인 ‘경국대전’에는 당대 사람들의 합리성이 담겨 있다. 조선왕실의 행사기록을 생생하게 담은 ‘의궤’는 당시의 높은 그림 수준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 시대에도 삶의 모습을 후손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과제로 던져준다. 국가적인 토목공사의 추진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한 ‘준천사실’에서는 왕들의 국가경영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나 최부의 ‘표해록’은 축적된 지적 역량과 해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보여준다.‘난중일기’에는 장군 이순신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으며, 허균의 ‘홍길동전’은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지식인의 궤적을 보여준다. 백과사전인 ‘지봉유설’과 ‘성호사설’을 통해서는 조선시대에 대한 지식을 폭을 넓힐 수 있다.18세기 우리 국토를 답사하면서 산천·풍수·인심을 논한 ‘택리지’는 당대 사대부들이 너도나도 책을 손에 들고 국토를 유람하는 붐을 낳았던 베스트셀러였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궁중생활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며, 박지원의 진취적인 세계주의 사상이 담긴 ‘열하일기’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과제를 안고 있는 오늘날에 필요한 새로운 지혜를 던져준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기록유산들 속에는 삶의 가치와 역사,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대를 이끌어간 고민과 사상의 깊이를 책 한권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1만 5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王의 힘/한종태 논설위원

    태국을 여행하다 보면 중요한 장소에는 언제나 푸미폰 아둔야뎃(78) 국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거나 관련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것을 쉬이 알게 된다. 태국민들은 외국인들에게 통상 두 가지를 자랑한다. 하나는 1900년대 초반 서구열강의 아시아 침략때 태국은 한번도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온 국민의 추앙을 받는 국왕의 존재다. 입헌군주제에 따라 군림은 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국왕에 대한 태국민들의 존경심과 신뢰는 상상을 초월한다. 영향력 측면에선 왕정시대의 전제군주에 버금갈 정도로 푸미폰 국왕의 말 한마디는 법 이상의 효력을 발휘한다.2달여의 퇴진 시위와 정국 불안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던 탁신 치나왓 총리가 지난 4일 항복 선언을 한 것도 푸미폰 국왕을 알현한 직후였다. 그야말로 ‘왕(王)의 힘’이 발현된 것이다. 물론 푸미폰 국왕도 국민들의 무한한 신뢰를 받게끔 행동해왔다. 오는 6월 재위 60주년을 맞는 그이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부정부패나 스캔들과 연관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국왕뿐 아니라 왕실 가족 누구도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하니 푸미폰 국왕의 높은 도덕성과 철저한 자기관리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의 일가가 19억달러어치의 주식을 팔면서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 탁신과는 크게 대비된다 하겠다. 국민을 끔찍이 생각하는 푸미폰 국왕의 ‘위민부모(爲民父母)’ 사례는 숱하게 많다고 한다. 왕궁에서 각계각층 국민들을 두루 만나 어려움을 청취하는 것은 기본이고, 나라에 가뭄이 들면 백성과 고통을 함께한다며 아예 식음까지 전폐한다고 하니, 한 나라의 군주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엄청난 부정부패로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지난날 절대권력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힘깨나 쓴다는 인물치고 ‘내가 그런 도덕성을 가졌소.’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불행히도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브로커와 ‘게이트’가 난무하고 학연·지연과 같은 연줄이면 안 통하는 게 없는 사회….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 스스로 모든 국민의 좌표가 될 만한 ‘큰 어른’을 모시려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王의 힘’

    올해로 즉위 60주년을 맞은 푸미폰 아둔야뎃(78) 태국 국왕은 태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으며 막후의 해결사로 통한다.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권좌에 있는 푸미폰 국왕은 태국 정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총리를 해임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국왕의 역할이 결정적이다.1992년 민중 봉기 때도 총리를 궁궐로 부른 뒤 TV를 통해 유혈 군사정부의 하야를 요구했다. 당시 총리였던 수친다 장군은 민중의 요구와 국왕의 명령에 결국 사임했다.1973년 방콕대학교에서 시위가 발생했을 때도 국왕은 총리와 총리 측근을 불러 나라를 떠날 것을 요구했고, 그들은 복종했다.재임 중 15번의 정권 개혁과 20명의 총리, 수많은 쿠데타를 거치면서 국왕은 정치적으로 엄격한 중립을 유지, 위상을 높였다. 이번 반 탁신 시위대들도 국왕에게 정치 혼란 해결을 위한 ‘간여’를 애걸했을 정도로 그의 의견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푸미폰 국왕은 재즈 색소폰 연주가, 작곡가, 사진가, 요트 조종자로도 뛰어난 실력을 과시하는 현대적 국왕이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탁신 태국총리 “물러나겠다”

    부패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야당과 국민들의 거센 사임 압력에 시달려온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가 4일 사실상 사의를 표명했다. 탁신 총리는 이날 밤 8시30분(현지시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총선 결과가 실망스럽게 나옴에 따라 다음 정부에서는 총리직을 맡지 않기로 했다.”면서 “총리직을 수용하지 못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의회가 후임자를 뽑을 때까지 정부의 임시수반으로 남아 있겠다.”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그는 후임 총리가 의회가 다시 열리는 30일 이내에 뽑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우리는 싸울 시간이 없다.”면서 “태국 국민들이 지난 일들을 잊고 단결된 모습을 보이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탁신 총리의 이날 발표는 남부 후아힌의 해변궁전에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과의 면담을 가진 직후 나왔다.AP통신은 3일 밤 국영 텔레비전에 나와 “당이 1600만표나 얻은 상황에서 사퇴할 이유를 못찾겠다.”며 야당의 사임압력을 일축했던 그가 불과 하루만에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외신들은 정부여당의 수습노력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시위 재개를 선언하는 등 정국이 위기로 치닫자 푸미폰 국왕이 명예로운 사퇴를 권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탁신 총리는 지난 2월24일에도 푸미폰 국왕을 면담한 직후 의회해산 및 조기총선 계획을 발표했었다. 탁신 총리가 이끄는 집권 타이락타이당은 지난 2일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57%의 지지를 얻었지만 주요 야당이 선거참여를 거부한 데다 수도 방콕 등에선 ‘반쪽 총선’에 항의하는 무더기 기권표가 나와 궁지에 몰렸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만우절 단상/이동익 신부 가톨릭대 교수

    만우절이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또 신나게 속일까를 궁리하며 만우절을 기다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롭다. 상대방에게 듣기 좋은 거짓말을 하고, 또 속아 넘어가면서 모두가 유쾌하게 한바탕 웃을 수 있는 날이 오늘인 것이다. 만우절은 프랑스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1564년경 프랑스의 국왕 샤를르 9세가 그때까지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오늘날 모든 나라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을 도입하면서 새해 첫날이 오늘날처럼 1월1일로 바뀐다. 그러나 그 변화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런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는 것이다.4월1일에는 가짜 새해선물을 보냈고, 또 집으로 초대해서 헛걸음질을 시키는 등 이전처럼 4월1일을 새해 첫날로 여겼던 사람들을 속이거나 가볍게 장난치던 프랑스 사람들의 풍습을 오늘날 전 세계가 즐기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을 즐긴다는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거짓말인 줄 알면서 잠깐 웃을 수 있고 분위기까지 전환시킬 수 있다면 만우절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해마다 오늘만 되면 거짓말 전화 때문에 잔뜩 긴장하면서 아주 힘든 하루를 보내야만 하는 소방근무원들이나 경찰근무원들에게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거짓말이다. 어느 정도의 유쾌한 거짓말이 하루쯤은 사회가 용인하는 오늘이라지만 궁극에는 서로 신뢰하는 시민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작은 거짓말이라도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백록으로 잘 알려진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의 말은 서로 속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생각을 이웃에게 알리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곧 말은 그 본성상 마음의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생겨났고, 이로써 사람들 간의 사회성과 성실성이 생겨나게 되는데, 거짓말은 말의 이러한 근본 목적에서 벗어나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결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내 치마를 잘라 만든 하피첩이 200년 만에 발견됐다. 각별한 가족 사랑으로 멀리 떨어져 살던 두 아들에게 보낸 가르침 중에 이런 말이 있다.“전체적으로 완전해도 구멍 하나만 새면 깨진 항아리이듯이 모든 말을 다 미덥게 하다가도 한마디만 거짓말을 해도 도깨비처럼 되니 늘 말을 조심하라.”그렇다. 결국 거짓된 말과 진실하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은 사회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는 동물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 예컨대 지빠귀 새를 비롯한 몇몇 동물들은 자기들의 경계신호를 통해 위험을 알리곤 하는데, 그 소리를 남용하여 동료들을 놀라게 하고 속였을 때 한두 번은 속일 수 있지만 그것이 반복된 거짓일 때에는 실제 위험 경고에도 피하지 않아 매우 위험하다는 것도 관찰되었다고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거짓은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파멸로 이르는 지름길인 것이다. 성경은 인간을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자로 묘사한다.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을 닮았기에 인간은 진실을 추구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는 존재인 것이다. 곧 진실을 추구하고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삶이다. 그런데 이를 역행하여 거짓을 일삼을 때 인간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며, 나아가 이웃을 살해하고 역사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아예 인류의 삶에서 진리이신 하느님까지도 추방하는 범죄에 노출되고 말 것이다. 거짓이 만우절의 거짓말처럼 유쾌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이동익 신부 가톨릭대 교수
  • “28일 전국파업” 佛 개혁 진통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 정부의 청년실업 해소정책을 놓고 정부와 학생·노동계가 한치의 양보 없는 정면 대결을 펼치고 있다. 정부가 20일(현지시간) 논란 대상인 최초고용계약(CPE) 시행 의지를 재확인하자 학생과 노동계는 오는 28일 전국에서 파업과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28일 파업에는 공공부문 근로자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무기한 진행되는 ‘총파업’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는 28일 파업을 ‘시위·파업·업무 중지의 날’로 부르며 사실상 ‘총파업’은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18일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과정에서 한 노조원이 크게 다쳐 의식불명인 것으로 알려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이날 압둘라 요르단 국왕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CPE 고수 입장을 밝히는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빌팽 총리도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민주적으로 표결된 공화국 법률들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면서 “노동시장 자유화와 기회 균등을 위해 CPE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 학생 및 노동계 단체는 자신들이 정한 최후통첩 시한이 왔는데도 CPE 철회 조짐이 없자 이날 회의를 열어 28일 파업과 가두 시위를 결정했다.21일엔 학생 시위,23일엔 대규모 가두 시위가 예정돼 있다. 시위의 여파로 현재 16개 대학이 휴업 중이다. 다른 수십개 대학과 고교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일간 리베라시옹에 보도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5%가 CPE 철회를,38%가 수정을 원했다. 한편 빌팽 총리를 만난 재계 지도자들은 이날 빌팽 총리가 CPE 시행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보완을 위한 대화 의지를 보였다고 전했다. lotus@seoul.co.kr
  • [세계는 ‘실탄’ 없는 에너지전쟁중] 한국 유전투자 日의 15분의 1… 공공투자는 28배差

    [세계는 ‘실탄’ 없는 에너지전쟁중] 한국 유전투자 日의 15분의 1… 공공투자는 28배差

    한국의 지난 1월 원유 도입액은 지난해 같은달(23억 8100만달러)보다 무려 74.5%나 증가한 41억 9600만달러였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9월의 41억 6500만달러를 뛰어 넘었다.2월 역시 44억 8100만달러로 최고치 경신을 이어갔다. 이같은 고유가 여파로 1∼2월 무역수지 흑자는 8억 8000만달러로 지난해 1∼2월 50억 800만달러의 5분의1에도 미치지 못했다. 말 그대로 한국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지난 16∼17일 3년 만에 개최된 해외 주재 상무관 회의에서도 에너지·자원 확보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서울신문은 러시아·캐나다·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인도네시아 등 자원부국 상무관과 중국·일본·인도 등 자원 확보에 여념이 없는 국가 상무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좌담회’를 갖고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계 각국의 에너지 전쟁 현황과 우리의 대응 방안을 모색해 봤다. ●오영호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 최근 주요국의 에너지 자원 확보 경쟁은 수요-공급이 불균형을 이룬데다 에너지 자원이 중동, 러시아 등 지역적으로 편재되고, 이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것이 주된 요인이다. 특히 미국의 대 중동 영향력 확대와 중국의 사활을 건 에너지 확보 노력이 최근의 고유가와 맞물려 자원전쟁으로 격화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강대국간의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군사력도 하나의 수단으로 동원될 소지가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원유 확보와 중국 견제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중국-일본간에도 시베리아 송유관 노선결정 문제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분쟁 등 자원확보 경쟁이 뜨겁다. ●김동선 주 중국 상무관 2000∼2005년 중국경제는 연평균 9% 성장했고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11%에 이르렀다. 중국도 석유 생산국이지만 워낙 수요가 많기 때문에 지난해 수입의존도가 42.9%나 된다. 때문에 외교력과 경제력을 총동원해 에너지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매년 초 외교부장이 아프리카를 순방하고 있고 원자바오 총리와 후진타오 주석도 이미 아프리카를 순방한데 이어 올해도 후진타오 주석이 아프리카 10개국을 돌아볼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미국의 정유사 유노칼을 인수하려 했지만 미 정부의 제재로 실패한 이후 반미 성향인 아프리카 수단, 남미 베네수엘라, 이라크·이란, 인도·카자흐스탄 등과 활발한 에너지 외교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8100억달러에서 올해 1조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외환보유고를 활용한 해외 자원 투자도 무섭다. 중국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차이나(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의 유전 투자(2004년)는 72억달러로 한국석유공사(6억 6000만달러)의 11배나 된다. 확보한 매장량도 109억배럴로 석유공사(7억배럴)의 15배가 넘는다. ●서석숭 주 일본 상무관 일본은 세계 2위 석유수입국으로 수입의존도가 높고 특히 중동 의존도가 88%나 되는 등 우리와 유사한 구조다. 다만 석유비축량이 153일치나 되고 에너지소비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최근 국제유가 인상 등에 대한 절박함이 우리보다는 덜한 편이다. 배럴당 80달러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석유의 중동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사할린 석유·가스개발 프로젝트, 카자흐스탄·카스피해 유전 지분매입 등 해외 유전 탐사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 아자데간 유전 투자를 감행했는데 고이즈미 정부의 친미성향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군사안보는 미국의 힘으로 해결되지만 에너지자원은 직접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2000년까지 일본이 해외 유전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501억달러로 한국(32억달러)의 15배가 넘었다. 이 가운데 공공부문의 투자는 200억달러로 한국(7억 2000만달러)의 28배나 됐다. ●이병철 주 인도 상무관 인도는 이제 완전한 고도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연간 8% 이상 경제성장이 확실시된다. 당연히 에너지 소비도 늘어 인도의 석유 수입의존도는 2004년 70%에서 2030년이면 94%로 늘어날 전망이다. 때문에 자국내 미개발 유전을 적극 탐사하기 위해 72개 광구를 국내외 업체에 분양했다. 해외 투자도 활발한데 국영 석유회사인 ONGC는 이란·이라크·러시아·수단 등 10개국의 탐사·생산 사업에 참여했다. 또 다른 석유회사인 IOC는 LNG구매와 유전 투자를 더해 25년간 300억달러를 투자하는 계약을 이란과 체결했다. 원자력에 대한 관심도 대단한데 9개의 원전을 건설중이다. ●오영호 실장 자원 확보에 목을 맨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 등 자원 부국들은 에너지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등 에너지 자원을 국익 극대화를 위한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유종주 주 러시아 상무관 중동의 불안으로 자원부국인 러시아의 위상이 굉장히 높아졌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26%), 석유 매장량 6위(6.1%)다. 정부가 세계 최대 가스회사인 가즈프롬 지분 10.74%를 추가 매입해 지분을 50% 이상으로 늘리는 등 에너지 자원을 국유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핵무기로 세계를 지배했다면 이제 에너지 자원이 무기가 되는 셈이다. 올초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우크라이나 가스 공급 중단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 정부는 유럽쪽에 편중돼 있던 에너지 공급과 송유·가스관을 아·태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인데 2020년까지 약 1300억달러가 투입된다. 사할린 개발사업에는 일본에서도 자금을 대고 있다. ●염동관 주 브라질 상무관 국제 원자재난으로 외국기업의 남미 자원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12개국 가운데 8개국에 좌파정부가 출현 또는 수립될 예정이어서 에너지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볼리비아에서는 비록 실행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외국기업을 국유화하겠다는 ‘섬뜩한’ 발언까지 나왔다. 반미성향이 강한데다 서방기업들이 자신들의 자원을 착취했다는 의식도 강하다. 중국이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김동용 주 사우디아라비아 상무관 세계 원유 매장량의 60%, 가스매장량의 37%가 중동에 묻혀 있다. 중동국가들은 러시아나 남미와 달리 에너지를 무기화하기보다는 적정가격을 유지하면서 석유로 인한 국가 재정수입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즘 들어 달라진 부분이라면 대표적인 친미국가인 사우디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도, 중국과 손잡고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우디 초대 국왕이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유언으로 남길 정도이기 때문에 대미 관계가 크게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동 국가들은 경제의 석유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IT산업 투자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좋은 기회다. ●신동학 주 인도네시아 상무관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석유의 1.8%를 생산하는 17대 산유국이자 아시아 유일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지만 기존 유전의 노후화와 신규 유전 개발 부진으로 2004년 석유 순수입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눈에 띄는 에너지 정책은 지난해 10월 석유 소비자 가격을 2100루피아에서 4500루피아로 2배 이상 올려 버린 것이다. 그동안 정부 보조금으로 석유 소비가격을 낮게 유지해 왔는데 이로 인해 재정이 악화되자 이같은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앞으로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천연가스로 에너지원을 다변화할 방침이다. 원자력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2016년 가동을 목표로 우리와 물밑에서 협상중이다. ●문승욱 주 캐나다 상무관 우리는 잘 모르지만 캐나다는 세계 9위 석유 생산국이자 사우디에 이어 2위 부존국이다. 천연가스 생산도 3위다. 다만 해외고객이 미국밖에 없기 때문에 ‘소문’이 안났을 뿐이다. 캐나다산 원유·가스가 미국 전체 소비의 15%를 차지한다. 캐나다 원유는 중동과 달리 오일샌드(아스팔트라 불리는 역청이 모래 등과 결합된 형태)로 존재하는데 분리 비용이 배럴당 25달러나 돼 그동안 외면받았지만 고유가로 ‘몸값’이 크게 뛰었다. 내년쯤이면 캐나다 원유 생산의 절반을 오일샌드가 차지할 것이다. 캐나다가 에너지 수출의 100%를 미국에 의존하기 있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중국이 나타났다. 지난해 후진타오 주석이 방문해 오일샌드 개발을 합의했다. 캐나다 정부도 미국 방향으로만 뻗어 있던 송유관을 태평양 연안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오영호 실장 에너지 확보와 함께 수요관리도 중요한데 각국의 에너지 절약 시책을 소개해 달라. ●김동선 상무관 중국은 현재 68%에 이르는 석탄화력 의존도를 줄이고 천연가스,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각 성에서 남발되던 화력발전소 건립을 중단시키는 등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대신 원전 31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2010년까지 단위 GDP당 에너지 소모량을 지난해 말 대비 20% 줄인다는 목표다. ●서석숭 상무관 일본은 승용차의 에너지 소비를 2010년까지 95년 대비 22.8% 낮춘다는 방침이다. 하이브리드카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세제우대는 물론 보조금까지 주고 있다.2010년까지 태양광주택 100만가구를 보급하고 대체에너지 비율을 7%까지 높일 방침이다. ●오영호 실장 일본은 전기요금이 워낙 비싸서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 개발 욕구가 우리보다 강할 것이다. 한국은 1982년 한전이 공사로 전환한 이후 지난해까지 전기요금을 8차례 올렸고 11차례나 내려 요금 인상이 0.5%에 그쳤다. 대체에너지는 발전단가가 높기 때문에 막대한 정부 보조금이 필요한데 산업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유지했던 각종 에너지요금 지원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 에너지 질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에너지 안보전략을 모색해야 한다.20년 이상을 계획기간으로 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올해 말까지 수립해 내년 상반기중 확정할 계획이다. 최근의 에너지 위기는 역으로 우리에게 기회일 수도 있다. 산유국들이 석유 가채 매장량이 고갈될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져 산업 발전 욕구가 강하다. 조선, 디스플레이,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우리의 강점을 적절히 활용하면 과거처럼 에너지를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 자원 부국들이 주로 구미 열강 식민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 같은 강대국과의 자원 확보 경쟁에서 유리한 측면도 있다. 물론 메이저급의 자원 개발 전문기업·전문인력 육성이나 막대한 규모의 자원개발 재원 마련 등은 시급한 과제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정경유착으로 사퇴 압박 ‘태국 CEO’ 탁신 미래는?

    정경유착으로 사퇴 압박 ‘태국 CEO’ 탁신 미래는?

    스스로 ‘CEO 총리’라고 일컬었던 탁신 친나왓(56) 태국 총리가 자신을 총리직에 오르게 했던 비즈니스와 정치의 결합 때문에 도중하차할 위기에 몰리고 있다. 수만명이 참여하는 사임 요구 시위가 연일 그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선거관리위원회는 그가 제안한 다음달 2일 조기 총선을 연기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선관위는 야 3당이 보이콧을 선언한 상황에서 실시되는 총선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15일(현지시간) 밝힌 바 있다. 선관위는 언제 총선 연기를 논의할 것이냐는 질문에 “오늘이나 내일쯤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억만장자인 탁신 총리는 ‘탁시노믹스’로 알려진 것처럼 국가를 기업 경영하듯이 했다. 경제 성장을 위해 거액을 쏟아부어 태국의 수입과 외채 의존도를 낮췄다. 하지만 2001년부터 그의 권좌 주변에서 정경유착의 썩은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탁신은 자신의 회사 주식을 친척, 운전사, 하녀 등에게 나눠줘 재산을 은닉했다. 그의 하인 중 2명이나 태국 주식 시장의 10대 주주에 들었다. 지난 5년간 정경유착은 더욱 곪을 대로 곪아터져 국민들은 탁신에게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만명의 반정부 집회 참가자들은 “총리의 정경유착이 나라를 망쳤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하지만 아직 많은 태국 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탁신의 ‘캔 두’ 스타일과 강력한 범죄와의 전쟁,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관대한 정책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다. 출아롱콘 대학 경제학과의 솜폽 마나랑산 교수는 “탁신은 납세자 돈을 빈곤층에 나눠줬다. 빈곤층이 누구에게 표를 던지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전날 임시 사임 의사를 표명했던 탁신은 16일에는 또다시 달라졌다. 나콘라차시마시의 5만명 지지자 앞에서 “폭도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임 발언의 진위를 묻는 기자 질문에 “나는 지쳤다. 몇 개월 뒤면 57살이 된다.”며 나라를 위해 좀더 일한 뒤 정치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태국에서 정파간 충돌이 있을 때마다 길잡이 역할을 한 푸미폰 아둔야뎃(78) 국왕의 발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직 공식 의견 표명은 없었지만 측근들은 “슬퍼하고 있다.”고 전했다. 팔라나군 클라한 중장은 “국왕은 평화적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돼 통합의 길을 걸으면 기뻐할 것”이라고 밝혔다. 탁신 문제를 놓고 시사주간 타임과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을 우려하면서도 그의 사퇴만이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탁신 총리 “일시 사임 고려”

    국민들의 거센 사임압력에 직면한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가 15일 ‘일시적 사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탁신 총리는 이날 부리암주(州) 유세 도중 정국타개 방안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시적 사임은 좋은 제안이며 그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고려가 “(총리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위 군중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언제 사임할 것이며 사임기간이 얼마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다만 수개월 앞으로 다가온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60회 생일 준비회의를 위해 16일 방콕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혀 당분간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캄보디아국왕 부친 모시러 5월께 방북”

    노로돔 시아모니 캄보디아 국왕이 오는 5월 북한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이 사실은 국왕의 아버지로 현재 평양에 머물고 있는 시아누크(84) 전 국왕이 9일 본인의 홈페이지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발표됐다. 시아누크 전 국왕은 “자신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개인적 약속인 캄보디아 국왕의 북한 방문이 이뤄지기 전에는 캄보디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시아누크 전 국왕은 지난 2004년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줬다. 최근 중국에서 암치료를 받은 그는 지난달 28일부터 북한에 머물고 있다. 캄보디아 국민들로부터 여전히 존경받고 있는 시아누크 전 국왕은 지난 4일 웹사이트에 올린 서한에서 “일련의 정치적 문제로 자신이 다시 출국을 강요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귀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훈센 총리와 야당 지도자 등이 정치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귀국을 촉구하자 마음을 되돌렸다. 프놈펜의 외교 소식통은 “시아모니 국왕의 북한 방문은 무슨 현안이 있거나 획기적인 관계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 머물면서 귀국을 두려워하고 있는 전 국왕을 모시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아모니 국왕의 5월 방북은 70년대 부친의 망명시절 함께 따라가서 공부를 했던 평양을 다시 방문하는 의미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지 외교 소식통은 시아누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밝힌 ‘국빈방문’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시아누크 전 국왕은 망명시절 자신을 보호해준 김일성 전 북한 주석에 대한 호감으로 아들인 시아모니 역시 북한과 친선관계를 유지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시아모니는 맹방관계가 아닌 일반적인 관계를 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프놈펜 연합뉴스
  • ‘암살 위험성’ 각국 지도자 7인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대니얼 바이만 교수가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 인터넷판에 암살 위험성이 높은 각국 지도자 7인을 선정해 게재했다. 누가, 어떻게, 어떤 이유로 암살할지까지 상세히 분석해 암살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체첸에 대한 강경 정책으로 체첸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의 암살 표적이 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오지를 여행할 때 자살폭탄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바이만 교수는 지적했다. 미국의 알 카에다 토벌에 적극 협조해온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벌써 7차례 이슬람 지하드(성전) 요원의 암살 시도를 겪었다. 차량폭탄이나 자살폭탄, 또는 무샤라프 자신의 경호 측근에 암살될 위험이 지적됐다. 미국과 동맹을 맺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도 탈레반 잔당과 숙적 군벌들의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카르자이가 탄 차량이 저격당했다.2004년에는 헬리콥터가 탈레반이 쏜 로켓에 추락할 뻔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군부내 반대파나 구(舊)체제 인사에 암살될 가능성이 있다. 군중 속에서 갑자기 탄환이 날아오거나 등 뒤에서 누군가 방아쇠를 당길지 모른다. 어떤 경우든 반미 선봉장인 그가 암살되면 부시 행정부의 배후설이 제기될 게 뻔하다. 차베스가 암살되면 그는 영웅이 되고 더 급진적 성향의 좌파가 집권할 공산이 크다. 이라크의 시아파 성직자 아야툴라 알리 시스타니도 알 카에다나 수니파의 암살 명단 맨 앞자리에 있다. 실용주의 노선에 반대하고 내전을 획책하는 저항세력들은 그의 동조자 여러 명을 이미 살해했다. 다른 시아파 분파의 손에 암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하드 소탕에 앞장서고 왕정을 현대화한 친미주의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 역시 알 카에다와 수니 극단주의자의 타깃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사마 빈 라덴.9·11 테러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그는 서구사회 ‘공공의 적’이다. 미국의 대전차 미사일 ‘헬파이어(지옥불)’를 맞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의 죽음은 전세계 추종자들을 더 거칠게 만들 것이라고 바이만 교수는 경고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올해로 건설 외길 60주년을 맞는 삼환기업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1세대 건설기업이다. 대림산업·삼환기업·삼부토건 3개사만 명맥을 잇고 있지만 창업주가 살아 있는 곳은 삼환뿐이다. 대부분의 건설기업은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전후에 부도가 나 좌초됐다. 삼환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70∼80년대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빌딩을 지은 주인공이자 중동에 처음 진출해 중동 붐을 일으킨 기업이지만, 최근엔 80년대에 비해 해외 수주액이 급감하는 등 예전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하며 ‘환갑’의 값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삼환은 올해 창업 60년을 맞아 국내외로 외형을 확장, 건설 명가로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창업 60년 맞아 제2의 르네상스 꿈꾸는 삼환 삼환기업은 올해를 제2 해외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 확장공사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계약을 협의 중이다. 건축비가 지난해 삼환기업 해외 매출(600억원)의 4배 규모인 2500억원이다. 해외유전 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연 100억원대 수익을 올린 마리브 유전 투자에 이어, 지분투자(4.9%)로 참여한 베트남 가스전 개발사업이 올해 하반기부터 수익을 낸다. 이밖에 지분투자(1.6%)를 한 예멘 마리브 LNG 개발사업도 오는 2009년부터 수익을 낼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3조원대 규모의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참여, 건설기업 전통 명맥을 잇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창립자인 최종환(82) 삼환그룹 명예회장은 1924년 12월29일 최상림씨와 김림자씨의 5남2녀 중 4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종로의 종(鍾)자에 돌림자인 환(煥)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양반이 광화문 중심에서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 사는 것을 몰락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사대부 출신인 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면서 광화문 중심에서 다동으로, 이어 효자동, 종로4·5가 등으로 밀려났고 그는 종로 4가에서 태어났다.‘종환’이란 이름에는 사대문 안은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의 뜻이 담겨 있다는 회고다. 훗날(1980년)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종로구 운니동에 20층 규모의 삼환사옥을 세운 것을 두고 그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 점령기에 초등학교(어의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 졸업할 때까지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지만 학업에 뜻을 두진 못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궁핍한 살림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형들과의 연관이 깊다. 큰 형인 고 명환씨와 둘째 형인 고 영환씨가 졸업 이후 수도·난방공사 자재를 생산·시공하는 스기야마 제작소에 들어갔는 데 회사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파이프를 집에 가져와 가공, 다시 납품하는 식으로 돈을 벌면서 1933년 경동기계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어의보통학교에 이어 2년제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18세가 되던 1940년 형들의 회사인 경동에 합류했다. ●약관의 나이에 창업…미군 공사로 국내 기반 삼환은 설립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줄곧 주한미군에서 수주한 공사에 전념했다.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공병대에서 크고 작은 공사를 발주했는데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주지 않고 한 업체에 모든 공사를 맡기는 식이었다. 그는 경동기계제작소안에 공사부를 설립해 영업부장으로 뛰며 미군 공사를 수주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하청업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물 한 살이던 1946년 3월15일 오늘의 삼환그룹 효시인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했다. 큰 형과 둘째 형, 그리고 최 명예회장 삼형제가 합심해 만든 회사란 뜻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나 최고경영자는 최 명예회장이다. 회사 설립후 8개월 동안 이룬 공사실적만 총 26건 130만원이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1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1948년 가을 을지로 2가 119번지 53호를 매입해 신사옥도 마련했다. 1949년에 착공한 강원도 영월 등 7개 광산지역의 미국인 광산기술자용 주택공사는 당시 업계의 부러움을 산 초대형 공사였다.1950년 6·25로 공사는 중단됐고 건물은 불에 타버렸지만 이 공사는 훗날 새옹지마격으로 그에게 전쟁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서울 수복후 미군 공사 관계자는 그를 반도호텔(현 롯데호텔)로 불러내 큰 궤짝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 속에는 당시 2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불에 타버려 흔적조차 사라진 건물의 공사비를 뒤늦게 받은 것이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것은 전란 이후 1952년 9월의 일이다. 서울 수복후 전후 복구공사에 힙입어 사세를 키워나가던 중 삼환은 당시 주주 10명이 총 주식 2만주를 발행하면서 주식회사가 됐다. 그 중 최 회장이 1만주, 둘째 형 영환씨가 5000주, 큰 형 명환씨가 500주를 가졌다. ●국내 ‘중동 붐’ 조성…횃불신화로 국제 명성 쌓아 1961년 ‘5·16’은 새 전기를 가져왔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던 관급공사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신문에 종종 입찰공고가 나는 일이 생겼고 삼환은 국내 주요 공사를 맡는 ‘건설 명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5·16 이후 삼환이 따낸 최초의 관급 공사는 1962년 발주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이다. 이어 경부·호남·영동·남해·동해고속도로 등 각종 토목 공사에 참여했고, 국립극장, 삼일빌딩, 조선·프라자·신라 호텔, 지금은 사라진 남산외인아파트, 여의도 전경련 회관, 국립묘지 현충탑, 포항제철(현 포스코) 공장 등을 지으며 주택·오피스빌딩·토목·플랜트 등 각 분야에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삼환은 국내사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진출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던 최 명예회장은 1963년 월남 사이공(호찌민)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첫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정국 혼란으로 4개월 만에 철수했지만 이후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73년 국내 업계 최초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했다. 삼환은 사우디에서 네번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 다섯번째 카이바∼알울라고속도로(175㎞) 입찰에서 24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따내며 국내 중동 진출 1호 기업이 됐다. 완공 때까지 3년간 자재 공급난, 종교 문제 등 시행 착오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어 사우디 최대 규모인 제다시(市) 전체를 뜯어고치는 미화사업을 맡으면서 행운을 잡았다. 미화공사를 메카순례기간 전까지 끝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강행하던 것을 파이잘 국왕이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환은 6000만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를 수의계약하게 됐고 ‘횃불신화’라는 말을 남기며 국내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붐을 조성하는 등 명성을 널리 알리는 개가를 올렸다. ●해외 프론티어의 꿈…정체된 90년대 80년대 들어서는 해외시장에 더 집중했다.1978년 미수교국이던 예맨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1984년 북예맨 마리브 유전개발에 참여하면서 원유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요르단, 파푸아 뉴기니아, 알래스카, 방글라데시, 사할린 등 시장을 개척했다. 국내 기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제 모임에 적극 참여,1982년 아시아 서태평양 건설연합회인 아이포카(IFAWPCA) 5대 회장에 추대됐고 재임시절 세계건설인대회도 제창했다.1990년대 들어서는 회사 일 보다 민간 외교에 시간을 쏟았다.1992년 한·소 경제협력회 2대 회장으로 선임됐고 재차 연임됐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성과를 이루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있다. 이런 탓에 90년대 들어 삼환의 해외 실적은 급감했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삼환의 해외공사 수주액은 1982년 당시 5억 8834만 8000달러(한화 6000억원)였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10분의1 수준인 624만 4000달러에 그쳤다. 국내 건설 업계의 주요 테마인 아파트 실적도 많지 않다.90년대 후반부터 업계가 경쟁적으로 환상을 담은 아파트 브랜드와 광고에 집중하며 수주전에 열을 올릴 때에도 삼환은 아파트 광고를 하지 않았다. 최 명예회장은 오히려 당시 시류에 대해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를 통해 “안쓰럽다.”는 평을 내놓았을 뿐이다. 한 때 9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현재 6개로 정리됐다. 키친아트로 유명한 양식기 제조업체 경동산업(60년)과 코카콜라 등 청량음료 제조업체인 우성식품(69년)은 모두 1990년대 말 정리됐다. 태양관광(관광·77년)은 삼환엔지니어링(기술용역·76년)에 통합돼 삼환기술개발이 됐지만 설계 업무는 거의 하지 않고 관광업도 계열사 직원 출장을 위한 발권 업무 정도만 한다. 이밖에 우성개발(67년), 삼환까뮤(78년), 삼환종합기계(79년), 신민상호신용금고(78년), 회현상사(78년) 등은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건설 명가로서의 국내 입지와 안정적인 매출은 줄곧 유지하고 있다. 건설 계열사를 가진 한화그룹의 1000억원대 대한생명 리모델링 공사를 지난해 수주했고,2007년 준공되는 건축비 595억원 규모의 팬택계열 서울 상암동 R&D센터도 짓고 있다. 삼환기업은 2005년 기준 매출 6612억원, 당기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종합 수주액은 1조 5000억원 규모다. 삼환그릅 기준 2005년 매출은 1조 1000억원, 당기순익은 650억원이다. ●교사 부인과 1남1녀의 단촐한 가정 1947년 봄. 삼환기업공사의 30대 청년 사장으로 뛰면서 당시 숙명여학교 교사이던 고 채광영 여사와 2년여 열애 끝에 1949년 4월 결혼했다. 최 명예회장은 부인을 만났을 당시 “‘아!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퍼뜩 들어 프러포즈를 했다.”고 언론을 통해 회고한 바 있다. 부인 채씨는 그를 홀로 남겨둔 채 1999년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가업을 승계한 외아들 최용권(56) 회장은 동갑내기로 고 한정대 전 대한페인트잉크(DPI) 회장의 3녀인 봉주(56)씨와 1974년 결혼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 보스턴대를 나온 용권씨는 미 유학중 같은 유학생 신분이던 봉주씨를 만나 결혼했다.1975년 삼환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입사해 8년 만인 1982년 32세 나이에 삼환기업 사장에 취임했다. 이어 삼환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1996년 9월 회장으로 등극,2세 경영 체제를 굳혔다. 선친인 최종환 명예회장은 ‘바늘로 찌를 구멍’은 있어 보였던 데 비해 최용권 회장은 ‘찌를 구멍’조차 없는 사람이란 평이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최용권 회장의 장녀 영윤(31)씨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의 며느리가 됐다. 이 회장의 3남 해창(35)씨와 1999년 3월 결혼하면서 국내 두 전통 건설기업은 사돈관계를 맺게 된 것. 대림의 창업주인 고 이재준 선대 회장과 최 명예회장은 건설 1세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창씨는 현재 대림산업 계열사인 종합물류회사 대림H&L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나 2년여 교제끝에 결혼했다. 다른 손녀·손자들은 아직 모두 학생이다. 장손주 최제욱(29)씨는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고, 최지연(26)씨는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RSID에서 공부 중이다. 막내 최동욱(22)씨도 콜롬비아대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있다. ●형제들과의 인연…삼환에 친인척 1명도 남아 있지 않아 삼환은 인척들의 경영 참여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친·인척이 맡았던 경동산업과 우성식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친·인척 중 단 한 명도 삼환에 적을 두는 이가 없다. 맏형 고 최명환씨는 6·25 당시 자신이 설립한 삼환기업의 모체인 경동기계가 잿더미로 변하자 동생 최 회장과 함께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한 뒤 주주와 이사로 활동했다. 그의 아들인 동국대 출신의 용근(67)씨는 계열사인 우성식품 이사, 삼환기업 사장 등을 맡다가 1996년 삼환까뮤 사장직을 끝으로 삼환을 떠났다. 둘째 형인 고 최영환씨는 국내 최초 강관회사인 한국강관의 3인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삼환을 떠났는데 한국강관의 부회장까지 맡은 바 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의 차녀 계자(64)씨는 18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권숙일씨와 결혼했다. 장남 용재(56)씨는 1993년 삼환의 계열사로 지금은 사라진 키친아트 등 양식기를 제조했던 경동산업의 사장을 맡은 바 있다. 차남 용진(53)씨는 ㈜유창 사장으로 삼환과는 무관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형 고 최경환씨는 1958년 삼환의 관계사로 설립된 양식기 제조업체인 경동산업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이 회사가 정리되기 직전인 1999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아들 최용철(60)씨도 이 회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경동산업은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로 자금난을 겪다 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다시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정리됐다. 그의 장녀 최형인(57)씨는 한양대 인문과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 최경환씨의 사위이자 최형인씨의 남편이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온 이윤우(60) 삼성전자 기술총괄부회장이다. 막내 동생인 최정환(73)씨는 삼환이 코카콜라 부산·경남지역 판매권을 가진 우성식품을 1969년 창립하면서 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연간 매출 1300억원대로 한 때 부산지역 대표 식품회사로 명성이 높았지만 방만경영과 과다 부채를 이유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최정환씨는 형인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1997년 4월 경질됐다. 이 회사는 1997년 코카콜라 부문을 매각한 뒤 같은해 말 부도처리됐다. 최정환 전 회장은 서울대 상대, 산업은행을 거쳐 1968년 삼환에 입사했다. 이 회사 사장을 지낸 최정환 회장의 장남 최용석(47)씨는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활동하는 등 한 때 정치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리하고 지성산업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장녀 영혜(45)씨는 건설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고 장예준씨의 차남 동욱(48)씨와 결혼했다. jhj@seoul.co.kr ■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형님-아우’ “아, 이리도 황망히 가셨습니까? 아직도 회장님이 하셔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무얼 그리 급히 가셨습니까? 여든 여섯의 춘추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영원한 등불로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리 가시니 이별의 안타까움과 아픔이 너무도 시리게 느껴집니다. 정주영 회장님.” 최종환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 당시 서울신문을 통해 이같은 조사를 남긴 바 있다. 두 사람은 생시에 형님-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며 경쟁보다는 조언을 구하고, 돕고 의지하는 형님과 아우로서의 정이 돈독했다. 그는 건설 1세대 중에서도 특히 고 정 명예회장, 고 이재준 대림산업 명예회장, 그리고 조정구 삼부토건 명예회장을 존경하면서도 가깝게 지낸 인물로 꼽았다.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에서 고 정 명예회장에 대해 “타고난 능력과 자질 이외에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저돌적인 돌파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최 명예회장에게 부회장을 역임토록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 명예회장에게 처음 소개시켜준 사람도 고 정 명예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고 조정구 삼부토건 회장에 대해서는 “나는 상대방의 잘못이 보이면 즉석에서 쏘아대는 성격이지만 그 분은 어떤 경우에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조용한 목소리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설명해 주는 등 깊은 인내의 미덕을 갖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 조 회장이 건설협회 회장을 맡을 때 최 명예회장은 이사로 그를 도왔다. 최 명예회장은 이들과 함께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서 건설업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남은 건설 1세대로 원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 수십년간 매일 30분씩 해온 ‘대나무 밟기’를 건강 비결로 소개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1996년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물려주고도 일주일에 최소한 사흘은 회사에 나왔지만 올들어선 일주일에 병원가는 날 하루 정도만 오전에 회사에 들른다. 평상시처럼 직원들과 지하 구내 식당을 찾는 등 검소한 모습은 그대로라는 평이다. ■ ’60년전통’ 삼환을 만든 사람들 삼환이 60년 건설 명가의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최종환 명예회장이 꼽는 최고의 CEO는 경성공업학교(현 경기공고) 출신의 고 이창호 사장이다. 부사장직으로 순직한 뒤 사장으로 추서됐고,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고락을 함께한 벗’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회사장으로 치러진 고 이 사장의 영결식 조사에서 “지금 내 오른팔이 떨어져 피가 흐르고 여며드는 것만 같은 아픔이 밀어 닥치는군요. 그러나 당신의 유지를 받들어 나는 기어코 우리 삼환을 세계 속의 삼환으로 만들고야 말겠습니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격무로 일관하다 신병을 갖게 되어 휴양을 하다가도 중동 현장으로 달려가는 등 투철한 사명감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에는 ‘회사를 위해 노력한 사원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꼭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연금제도와 사원주택단지조성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전동진(74) 사장도 삼환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CEO중 한 사람이다.1975년 월남이 패망할 당시 월남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하청업자 공사대금 지불 등 잔무 처리를 위해 남아 있다 8개월간 공산 치하에 억류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8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삼환기업 중기부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1996년까지 삼환기업·삼환엔지니어링·삼환까뮤 등 계열사 사장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은 삼환의 육영재단인 우성문화재단에서 이사로 재직중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최석원(75) 고문은 내무부 치안본부장, 노동청장, 부산시장, 건설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삼환의 해외사업이 꽃을 피우던 1982년 사장대우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지금도 우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노년까지 삼환과의 인연을 지키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탁신 泰총리의 ‘승부수’

    부패와 권력남용 의혹으로 퇴진 압력을 받아온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24일 의회(하원)를 해산하고 오는 4월2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4월2일 조기총선 실시 탁신 총리는 이날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을 알현하고 나와 기자들과 만나 “국왕에게 의회 해산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태국 헌법에는 국왕이 총리의 요청을 받아 의회를 해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왕실은 이어 국영 TV를 통해 총선 날짜가 4월2일로 잡혔다고 발표했다. 탁신 총리는 퇴진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권좌에 오른 지 꼭 1년 만이다.2001년 취임한 그는 지난해 2월 총선 압승을 통해 재선됐다. 탁신 총리는 전날에는 푸미폰 국왕의 수석 고문격인 프렘 틴술라논 왕실 추밀원장과 면담했다. 프렘 추밀원장은 “여론에 더욱 귀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탁신은 그의 가족들이 소유한 이동통신 재벌 ‘친 코퍼레이션’의 주식을 싱가포르 회사에 19억달러(약 1조 9000억원)에 팔아 엄청난 차익을 챙기고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는 잠롱 스리무엉 전 방콕시장도 퇴진을 요구해 왔다.●내일 대규모 反정부집회 탁신 총리는 또 비현실적인 의료보험과 주택정책으로 비판을 받아 왔다. 지난해 태국의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에 이르는 등 경제가 좋지 않은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마약과의 전쟁과 남부 이슬람 3개주의 분리독립 운동에 강경 대응해 최근 수년간 수천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조기 총선이 실시되면 탁신의 지지 기반인 저소득층과 농촌 지역의 표를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현재 하원 500석 중 124석을 갖고 있는 반대파가 이번 총선을 통해 총리 불신임안을 상정하는 데 필요한 200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한편 일요일인 26일 방콕의 왕궁 사원 옆 ‘사남 루엉’ 공원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학생과 교사, 노동자, 중산층 등 1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실전논술] 바람직한 법을 만드려면…

    ● 다음은 ‘한비자´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에 나타난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과 시행에서의 문제점을 밝히고, 이와 관련하여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법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했다. 화씨는 두 발이 잘려 왕궁으로 갈 수 없었으므로 돌모양으로 된 옥덩어리(璞玉)를 가슴에 품고 매일같이 초산의 기슭에서 엎드려 울었다. 사흘 낮 사흘 밤을 계속 울고 나자, 눈물은 마르고 눈에서 피가 흘렀다. 이 때 문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까닭을 묻게 했다. “이 세상에는 죄를 범하여 발을 잘리는 형을 받은 자가 많은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슬프게 울고 있는가?” 화씨는 대답했다. “나는 다리가 잘린 것이 원통해서 우는 것은 아닙니다. 이 보석이 그저 돌덩이 취급을 당하고,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므로 그것이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문왕은 즉시 옥인에게 그 박옥을 갈아서 감정을 하게 하니 과연 그것은 희귀한 보옥(寶玉)이었다. 이로부터 그 보석은 그의 이름을 따서 화씨의 옥, 즉 ‘화씨(和氏)의 벽(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옥은 당시의 진나라 왕이,“바라건대 열다섯 성으로 그것과 바꾸고 싶다.”고 제안했을 정도로 유명한 옥이 되었다. 원래 보옥이란 것은 목구멍에서 손이 내밀어질 정도로 임금이 탐내는 것이다. 또한 화씨가 헌상한 박옥(璞玉)이 설사 보석이 아니었더라도, 임금으로서는 아무런 손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씨가 두 발을 잘리운 다음에야 그 구슬돌이 보석이란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임금이 탐내는 보석조차도 그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임금에게 있어 법술(法術)의 경우를 살펴보면 화씨의 벽처럼 시급히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임금은 법술을 펴는 것을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릇되어도 금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술을 주창하는 신하나 사람이 아직 임금에게 주지 않은 것은 다만 그가 법술이라는 구슬들(보옥)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임금이 법술을 쓰게 되면 대신은 국정을 제 마음대로 못하고, 측근은 임금의 위엄을 빌릴 수 없게 된다. 법이 나라에 행해지면 떠돌이 백성 따위는 모습을 감추어 마침내는 모든 백성들이 농사일로 돌아가게 되며, 전쟁이 있을 때면 싸움터에 나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법술은 신하에게는 세력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둘 다에게 재난이 되기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임금이 대신들의 반대와 백성들의 비난을 물리치면서까지 법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법을 주창하는 어떤 신하가 설사 목숨을 걸고 의견을 말해 보았자 그 법술이 임금에게 채택될 희망은 없다. 다음과 같은 사례가 그와 같은 경우를 잘 말해 준다. 옛날 오기(吳起)는 초의 도왕(悼王)에게 초나라의 풍속을 혁신할 것을 건의했다. “대신은 지나치게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영지를 가진 신하는 너무 많습니다. 이대로 가면 그들이 위로는 국왕의 권력을 침범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나라는 가난해지고 군사는 약해질 뿐입니다. 영지를 가진 신하에게는 손자 삼대만으로 그 작록을 반환시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모든 관리들의 봉급을 깎고, 불필요한 벼슬을 폐지시키고 그 녹을 선발되어 훈련받은 사병들에게 돌려야 되옵니다.” 도왕은 이 말을 실천하였으나 불과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도왕이 죽자 평소에 오기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지만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꼼짝 않고 있던 구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오기를 손과 발을 잘라 피살하였다. 오기의 법을 시행하였을 때는 국력이 튼튼하고 나라도 안정되었으나, 오기가 죽자 초나라의 토지는 줄어 버리고 나라는 어지럽게 되었다. 상앙은 진의 효공(孝公)에게 정치의 요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섯 집과 열 집을 한 조로 만들어,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여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문학이니 역사니 하는 책들을 불살라 버리고 법령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대신들의 청원을 듣지 말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백성이 집을 떠나 벼슬을 찾아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변이 있을 때 병역(兵役)에 종사하는 농민을 표창해야 합니다.” 효공이 상앙의 말을 듣고 이를 실행하자, 얼마 안 가서 임금의 지위는 매우 높아져 안정되었고, 나라는 풍족하여 군사가 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효공이 팔 년 뒤에 죽자 너무나 가혹한 법령에 숨이 막히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상앙은 곧바로 거열형(車裂刑)을 받고 죽었다. 다시 말하면 초나라 오기가 말한 정책을 폐지한 것만으로도 외환에 위협당하고 내란에 시달렸다. 진나라는 상앙이 말한 법을 실행하였으므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한 말은 모두 정당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나라에서는 오기를 죽여 손발을 끊고, 진나라에서는 상앙을 수레로 찢어 죽이고 만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오늘날 세상은 당시의 진나라, 초나라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신은 세력을 뻗고 있고, 백성들은 전쟁과 난에 익숙해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임금은 초의 도왕이나 진의 효공과는 달리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는 오기나 상앙의 재판(再版)이 되고 말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 법을 말할 사람이 나올 리 없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할 패왕(覇王)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문의 분석 한비는 중국 전국 시대 말기의 사상가이자 한의 왕족으로 젊어서 순자에게서 배워서 뒷날 법가(法家)의 사상을 대성하였다.‘한비자´에서 발췌한 주어진 제시문은 지배층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의 제정과 지나치게 강한 법과 불필요한 법의 제정은 실패하게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한비자´는 공자의 덕치주의를 비판하고 법치주의를 내세운다. 그는 도덕보다 법률을 중시했기 때문에 법 제정 역시 엄격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 제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 글은 법 제정이 실패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를 보여 주고 있다. 첫째, 오기의 경우는 어느 한 쪽(지배층)에게 불리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실패를 하였으며 둘째, 상앙의 경우는 일반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법을 적용하였고, 또 왕권 강화만을 위해 백성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필요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실패하였다. 법을 시행하게 되면 비록 나라가 부강하게 되고 국민이 잘 살게 될 수는 있지만 저항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이 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실패한 원인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주어진 제시문은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을 밝히고 있다. 먼저 오기가 법을 제정한 것이 실패한 원인은 신하들의 권력가로서의 위치를 약화시켰고, 모든 관리들의 봉급을 깎았고, 벼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였고, 영지를 가진 신하의 기득권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기득권 계층인 특권 계층에 불리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그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상앙이 법을 제정한 것이 실패한 원인은 백성들에게 생명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여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여 백성들을 지나치게 감시하였고, 백성들의 지적 욕구를 막았고, 신하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백성들의 참정권을 제한하여 일반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거나 빈틈이 없어 그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또 특정 법규가 정의에 반하는 법을 제정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저항을 받게 됨으로써 실패하게 되었다. 단순히 두 사례에 나타난 특수한 경우를 밝히는 것은 자칫 다른 길로 논술을 이끌 수 있다. 분석을 한 뒤에 분석한 것을 문제점으로 삼아 자기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법 제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여야 한다. 바람직한 법 제정에 대해서는 앞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의 구체적인 해결책이 되어도 되고, 더 크게 일반화시켜 논의를 전개해도 된다. 어쨌든 앞에서 분석한 내용과 자기의 견해를 펴는 것이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문제는 먼저 주어진 제시문에 나타나 있는 사례를 분석하여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찾아내야만 다음 단계의 논의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석을 할 때에는 발문에서 전제하고 있는 법과 관련지어 언급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평소 사회, 정치, 경제 등에 대해서 배울 때 나름대로 정리해 두어야 하는 문제이다. 또 이와 관련된 문제로는 자유와 정의, 평등 등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어떻게 쓸까 주어진 논제인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법의 제정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제시문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논술문의 주제를 국민들의 저항을 받지 않는 법 제정을 위한 노력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법을 제정할 때는 그것이 다수의 행복이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논지를 펼치되 지나치게 피상적인 내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먼저 서론은 법의 제정과 그에 관한 국민의 저항에 관해서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면 자연스럽다. 올바른 사회 질서와 정의를 위해 법은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법을 준수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음을 밝히는 내용 정도가 적당하다. 본론의 첫 번째 단락에서는 주어진 제시문에 나타난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을 들면 좋다. 그 둘이 제정했던 법은 모두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옳았다고 할 수 있으나, 지나치게 특정한 계층에 불리한 법을 제정하거나, 일반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제정했기에 백성들의 저항을 받았다는 내용을 제시문의 요약과 분석으로 얻어낼 수 있다. 이어서 본론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앞서 제시한 실패의 원인을 근거로 법을 제정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주면 된다. 국민 전체의 이익에 반하거나 필요 없는 법은 제정해선 안 되며, 법이 비록 몇몇 특권층에 불리하게 제정되어 저항을 받더라도 이의 시행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를 펼치면 좋다. 법을 제정할 때에는 법의 본래 취지를 살려 어느 단체의 이익이나 저항에 급급해하지 말고 국민 전체의 이익에 합당하는가를 염두에 두고 제정해야 함을 제시해주면 좋다. 본론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다수의 행복과 질서 유지를 위한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본론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법을 제정할 때 따져 보아야 할 것들, 즉 그것이 다수의 행복이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이지, 운용할 때에는 현실에 맞는지 등에 대한 사항을 언급하면 더 좋은 논술문이 될 수 있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법 제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국민적 감시 기능을 강조하면 나름대로 훌륭한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은 피상적인 내용에 그치기 쉬우므로 공청회나 시민 법률 감시단과 같은 제도적 장치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더욱 훌륭한 논술문이 될 것이다. 이석록 서울 메가스터디 원장
  • [피플 인 포커스] 네팔 반군지도자 프라찬다

    네팔의 산악 지대에 25년째 살면서 정부군과 10년 동안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 반군의 최고지도자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의 BBC는 반군 창설 10주년을 맞은 13일 그동안 서구 언론인을 좀체 만나지 않았던 프라찬다(52)와의 최초 인터뷰를 내보냈다. 지금까지 그의 얼굴이 알려진 것은 지난 2001년 찍힌 사진 한 장이 고작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을 추종하는 프라찬다는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 내에 갸넨드라 국왕은 추방당하거나 인민재판에 처해질 것”이라며 공화제의 승리를 장담했다. 그는 그러나 “국민이 원하면 왕정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종전보다는 다소 유연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실용주의적 변모는 정부와의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데서도 드러난다. 그는 “수도 카트만두를 점령할 능력이 있으나 전투에 따르는 국민의 희생을 감안해 정치적 타협을 원한다.”고 밝혔다. 외국(영국, 미국, 인도 등)이 네팔 정부를 지원하고 있어서 사실상 무력투쟁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반군은 히말라야 지역에서 독자적인 조세·교육·의료 정책을 펴고 있다. 그는 그동안 정부군과 반군의 무력충돌로 1만 3000명의 사망자가 난 점에 유감을 표시했다. 프라찬다는 여느 혁명지도자와 같은 외적인 카리스마보다는 부드럽고 수줍음이 많은데다 농담도 잘하는 ‘옆집 아저씨’ 같았다고 BBC는 전했다. 지난해엔 “권력에 굶주렸다.”며 자신을 비판한 부인 사리타와 2인자 바부람 바타라이 박사를 축출했으나 몇 달 뒤 복권시켰다. 그는 네팔의 목가(牧歌)적인 지방 안나푸르나에서 태어나 농학을 공부했다. 본명은 ‘푸스파 카말 다할’. 상당수 네팔인들은 그를 힌두신 비슈누의 현신으로 여기고 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美-이란 ‘만평 파문’ 대리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방언론의 마호메트 만평 게재로 촉발된 무슬림들의 분노가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사태의 배후에 이란과 시리아가 있다며 강도높게 비난했고, 뉴욕타임스 등 언론은 ‘이란 배후설’등을 뒷받침하는 기사를 잇달아 내보냈다.●“반미시위로 번질라”백악관 긴장 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카라트에서 시위대가 미군기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총격을 가해 최소한 4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이날 시위에 참가했다 부상을 입은 40대 농민은 “미국은 유럽의 리더이자 이슬람의 적”이라면서 “더구나 우리를 점령했으니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이 주둔중인 이슬람 국가에서 사태가 반미시위로 확산될 기미가 보이자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미국 정부도 입을 열었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압둘라 요르단 국왕과 만난 자리에서 “자유로운 언론 매체가 표현한 내용에 폭력을 사용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압둘라 국왕이 “언론 자유는 존중해야하지만 마호메트를 비방하거나 이슬람 교도들의 감성을 공격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응수, 긴장감이 감돌자 부시 대통령은 “언론 자유에도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며 서둘러 분위기를 수습했다.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아예 작정한 듯 이란과 시리아를 지목했다. 그는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시리아가 불순한 목적을 위해 무슬림들의 반서방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이란측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실”이라고 일축했다. 이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이 이란 부통령은 9일 유숩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을 만난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것은(미국의 주장은) 100% 거짓”이라면서 “그 발언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NYT “이슬람 정상회의 이후 파문확산” 하지만 미국 언론은 ‘배후론’을 제기하며 정부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열린 이슬람 57개국 정상들의 회의가 만평파문 확산의 분수령이 됐다.”며 사실상의 ‘기획설’을 제기했다. 신문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등 정상들이 공식의제도 아닌 덴마크 언론의 마호메트 풍자만평에 대한 토론에 열을 올렸다.”면서 “북유럽의 작은 무슬림공동체에 국한됐던 분노가 이 회의 직후 정부 차원에서 공론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됐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아프가니스탄 시위대 가운데 탈레반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있었고 그가 경찰을 향해 총을 발사하면서 경찰의 대응사격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말레이시아 신문은 무기한 정간 한편 말레이시아에서는 만평을 게재한 지방신문이 정부로부터 무기한 정간조치를 받았다. 일부 무슬림국가에서 만평 게재를 주도한 언론인이 해고된 적은 있지만 신문사가 문을 닫기는 처음이다.국영 베르나마 통신은 이날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총리가 지난 4일 만평을 실어 물의를 빚은 사라와크 트리뷴지의 발행허가를 무기한 정지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만평을 게재한 유력언론사가 빅토로 유시첸코 대통령의 비난과 독자들의 거센 항의에 공개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앞서 파키스탄 AIP통신은 무장세력 탈레반이 마호메트를 모독한 덴마크 만화가들을 살해하는 자에게 금 100㎏의 현상금을 내걸었다고 보도했다.dawn@seoul.co.kr
  • 피로 얼룩진 선거

    카리브해의 소국 아이티 대선 투표가 4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치는 유혈 사태 속에 7일(현지시간) 종료됐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투표소에선 유권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2명이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북부 그로스 모르네 지역에서는 한 유권자가 경찰관과 시비를 벌이다 총에 맞아 사망하자 군중들이 이 경찰관을 폭행, 숨지게 했다. 유권자들끼리 난투극을 벌여 수십명이 다치기도 했다. 군부 쿠데타로 반미 성향의 장 메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축출된 지 2년 만에 실시된 이날 선거는 유엔 평화유지군 9400명과 경찰 6000명의 삼엄한 경계 속에 치러졌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는 남아공에 망명해 있는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 추종세력의 재기 여부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지킨 르네 프레발(63) 전 대통령은 아리스티드의 충실한 계승자를 자부하고 있다. 군부세력을 결집, 아리스티드 축출 쿠데타를 주도했던 귀 필립(37)이 얼마나 프레발을 추격할지가 관심거리다. 무려 33명이 출마한 이번 선거는 당선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다음달 19일 결선투표를 통해 당선자를 확정한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반발해 대규모 소요가 벌어질 개연성은 여전하다.8일 치러진 네팔 지방선거도 결국 피로 얼룩졌다. 정부군과 공산반군의 충돌 속에 투표율마저 저조해 정정은 끝모를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반군은 선거사무소 등 12곳의 관공서에 폭탄 공격을 가했으며, 정부도 30여명의 시위 정치인을 체포했다. 사흘 동안 여당 후보 2명 등 모두 9명이 반군에 살해됐다. 로이터 통신은 반군의 공격을 두려워한 후보자들의 출마 기피로 4000여개 의석 가운데 2200개 이상에서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나머지 선거구도 삼엄한 경계 속에 투표가 진행됐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유권자를 찾기는 힘들었다.7개 야당연합과 마오이즘을 추종하는 반군은 이번 선거가 지난해 2월 친위쿠데타로 집권한 기아넨드라 국왕의 철권 통치를 강화할 것이라며 투표 불참과 총파업을 선언했다. 또 투표하는 유권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해 왔다. 심지어 여당 소속 후보조차 선거운동 기간에 출마를 포기했으며, 남은 후보들도 군부가 제공한 안전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이세영 박정경기자 sylee@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 샷] 골프경기 용품 규제와 상술

    [이종현의 나이스 샷] 골프경기 용품 규제와 상술

    보다 신선하고 알찬 지면을 위해 골프와 축구 칼럼 필자를 이번주부터 교체했습니다. 골프는 현재 레저신문 편집국장인 이종현씨가, 축구는 평론가 정윤수씨가 맡아 유려하고 깔끔한 필체와 재미있는 소재로 기사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올해부터 국내 골프경기에는 용품과 관련된 규정 두 가지가 바뀐다. 하나는 GPS 거리측정기 허용, 또 하나는 드라이버 반발계수(COR)가 0.830을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규제다. 당초 드라이버의 반발계수는 2008년부터 제한할 예정이었지만 일본과 유럽,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어 앞당겨 적용하게 됐다는 게 대한골프협회(KGA)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허용과 규제’의 내막을 살펴보면 미국골프협회(USGA)의 상술이 그대로 드러난다. 드라이버는 고반발을 규제함에 따라 반발이 적은 드라이버로 바꿔야 한다. 거리측정기기 역시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골프용품 판매에 대단한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10년 전 국내의 한 골프장은 쇠징이 달린 골프화를 신고 코스에 나서는 것을 금지했다. 이는 급속히 전국 골프장으로 퍼져나갔다. 쇠징이 그린 훼손은 물론 그린 전염병까지 옮긴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국내 골퍼들은 쇠징 골프화를 창고에 박아두고 고무징이 달린 골프화를 하나 더 구입해야 했다. 골퍼 1명씩 새 골프화를 샀다고 가정할 때 한 켤레당 10만원씩 100만명만 잡아도 1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쓰여졌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 골프장들은 고무징 골프화의 효과를 보았을까? 오히려 골프장 관계자들은 “고무징이 그린 훼손 정도와 답압률에서 쇠징보다 더 나쁘다.”고 고백한다. 다만 고무징이 쇠징에 견줘 코스와 클럽하우스 시설물을 보호하고 딱딱한 바닥에서 소음이 적어 계속 사용을 권장하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골프의 양대산맥 가운데 하나인 영국왕실골프협회(R&A)는 지나칠 정도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보수적 입장을 보여왔다. 반면 USGA는 시대와 상술을 녹여내는 규정을 발빠르게 개정시켜왔다. 딱히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먼 훗날 또 다시 고반발 드라이버가 허용되고 거리측정기가 규제되는 대신 또 다른 골프용품에 대한 구매 압박이 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프로선수와 공식대회에 출전하는 골퍼들은 이 때문에 늘 규정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기플레이에 안도하는 주말골퍼들은 걱정을 붙들어 맬 것. 이미 쇠징을 고무징으로 바꿔 신어 나름대로의 본분(?)은 다한 셈이다. 아무리 반발력이 큰 드라이버를 써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또 거리측정기 대신 또박또박 거리를 계산해주는 친절한 캐디가 옆에 있지 않은가. 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07)潛行(잠행)

    儒林(517)에는 ‘潛行’(잠길 잠/갈 행)이 나오는데, 남몰래 숨어서 오고 가거나 남모르게 비밀리에 행함을 말한다. ‘潛’자는 ‘水’와 ‘ ’(일찍이 참)이 組合(조합)된 形聲字(형성자)이다.‘說文解字(설문해자)’에서는 본래의 뜻을 ‘물을 건넌다’로 보고, 일설에는 ‘감춘다’라는 뜻도 있다는 主張(주장)을 收容(수용)하고 있다.‘가라앉다’‘숨다’‘몰래’‘깊다’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用例(용례)에는 ‘潛伏(잠복:드러나지 않게 숨음),潛水(잠수:물속으로 잠겨 들어감),沈潛(침잠: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물속 깊숙이 가라앉거나 숨음)’등이 있다.‘行’은 정돈된 ‘네거리’의 象形(상형)으로 ‘길’‘가다’의 뜻을 나타냈다. 후대로 오면서 ‘거리, 걷다, 움직이다’의 뜻이 派生(파생)하였다. 본래의 音(음)은 ‘행’이나 ‘行列’(항렬)같은 단어에서는 ‘항’으로도 읽는다.‘行樂(행락:재미있게 놀고 즐겁게 지냄),行方不明(행방불명:간 곳이나 방향을 모름),行狀(행장: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橫行(횡행:아무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행동함)’ 등에 쓰인다. 나라의 指導者(지도자)가 민생 현장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한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임금이 대궐 밖으로 擧動(거동)하는 것을 行幸(행행)이라고 한다.巡幸(순행)은 공식적인 行次(행차)요 潛幸(잠행)은 일종의 비밀 나들이다. 微服潛行(미복잠행)하여 민정 시찰에 나선 요임금이 외진 시골에서 鼓腹擊壤(고복격양:중국 요임금 때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요 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태평성대를 즐겼다는 데서 유래)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無爲之治(무위지치)의 이상이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逸話(일화)는 지금도 인구에 膾炙(회자)되고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에는 허름한 복장을 하고 민생 투어에 나선 父王(부왕)을 따라나섰다가 襤褸(남루)한 차림의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옛 文獻(문헌)에도 임금이 民生(민생) 點檢(점검)을 위해 庶民(서민)의 服裝(복장)으로 저자를 돌아다녔다는 記錄(기록)이 많다. 민심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微服潛行(미복잠행)은 임금의 전유물은 아니다. 조선 초에는 국왕과 신하 사이의 의를 깨치는 행위라 하여 금기시하였으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지방 首領(수령)들의 비리문제가 속출하자 暗行御史(암행어사)를 제도화하였다. 암행어사는 감찰효과의 極大化(극대화)를 위해 극비리에 임명 절차를 마치고, 임무 수행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 유지에 힘썼다. 암행어사는 보통 堂下官(당하관)으로, 왕이 직접 임명하거나 議政府(의정부)의 薦擧(천거) 인사 가운데 落點(낙점)하였다.秘密(비밀) 維持(유지)가 생명이기 때문에 왕이 직접 불러 任務(임무)와 目的地(목적지)를 알려주고 封書(봉서:어사 임명장),事目(사목:수행 임무 사령장),馬牌(마패:역마 사용권),鍮尺(유척:각 고을의 도량형과 形具의 규격 검사용 잣대)을 주었다. 직접 면담이 여의치 않을 때는 承旨(승지)를 통해 봉서와 마패 등을 전달했다. 해당 고을을 돌면서 首領(수령)이나 武將(무장)의 업무수행 상황,鄕吏(향리)와 土豪(토호)의 不法行爲(불법행위) 등을 糾察(규찰)하여 보고하였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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