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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신 총리 “일시 사임 고려”

    국민들의 거센 사임압력에 직면한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가 15일 ‘일시적 사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탁신 총리는 이날 부리암주(州) 유세 도중 정국타개 방안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시적 사임은 좋은 제안이며 그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고려가 “(총리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위 군중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언제 사임할 것이며 사임기간이 얼마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다만 수개월 앞으로 다가온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60회 생일 준비회의를 위해 16일 방콕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혀 당분간은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캄보디아국왕 부친 모시러 5월께 방북”

    노로돔 시아모니 캄보디아 국왕이 오는 5월 북한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이 사실은 국왕의 아버지로 현재 평양에 머물고 있는 시아누크(84) 전 국왕이 9일 본인의 홈페이지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발표됐다. 시아누크 전 국왕은 “자신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개인적 약속인 캄보디아 국왕의 북한 방문이 이뤄지기 전에는 캄보디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시아누크 전 국왕은 지난 2004년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줬다. 최근 중국에서 암치료를 받은 그는 지난달 28일부터 북한에 머물고 있다. 캄보디아 국민들로부터 여전히 존경받고 있는 시아누크 전 국왕은 지난 4일 웹사이트에 올린 서한에서 “일련의 정치적 문제로 자신이 다시 출국을 강요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귀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훈센 총리와 야당 지도자 등이 정치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귀국을 촉구하자 마음을 되돌렸다. 프놈펜의 외교 소식통은 “시아모니 국왕의 북한 방문은 무슨 현안이 있거나 획기적인 관계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 머물면서 귀국을 두려워하고 있는 전 국왕을 모시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아모니 국왕의 5월 방북은 70년대 부친의 망명시절 함께 따라가서 공부를 했던 평양을 다시 방문하는 의미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지 외교 소식통은 시아누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밝힌 ‘국빈방문’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시아누크 전 국왕은 망명시절 자신을 보호해준 김일성 전 북한 주석에 대한 호감으로 아들인 시아모니 역시 북한과 친선관계를 유지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시아모니는 맹방관계가 아닌 일반적인 관계를 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프놈펜 연합뉴스
  • ‘암살 위험성’ 각국 지도자 7인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대니얼 바이만 교수가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폴리시’ 인터넷판에 암살 위험성이 높은 각국 지도자 7인을 선정해 게재했다. 누가, 어떻게, 어떤 이유로 암살할지까지 상세히 분석해 암살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체첸에 대한 강경 정책으로 체첸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의 암살 표적이 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오지를 여행할 때 자살폭탄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바이만 교수는 지적했다. 미국의 알 카에다 토벌에 적극 협조해온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벌써 7차례 이슬람 지하드(성전) 요원의 암살 시도를 겪었다. 차량폭탄이나 자살폭탄, 또는 무샤라프 자신의 경호 측근에 암살될 위험이 지적됐다. 미국과 동맹을 맺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도 탈레반 잔당과 숙적 군벌들의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카르자이가 탄 차량이 저격당했다.2004년에는 헬리콥터가 탈레반이 쏜 로켓에 추락할 뻔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군부내 반대파나 구(舊)체제 인사에 암살될 가능성이 있다. 군중 속에서 갑자기 탄환이 날아오거나 등 뒤에서 누군가 방아쇠를 당길지 모른다. 어떤 경우든 반미 선봉장인 그가 암살되면 부시 행정부의 배후설이 제기될 게 뻔하다. 차베스가 암살되면 그는 영웅이 되고 더 급진적 성향의 좌파가 집권할 공산이 크다. 이라크의 시아파 성직자 아야툴라 알리 시스타니도 알 카에다나 수니파의 암살 명단 맨 앞자리에 있다. 실용주의 노선에 반대하고 내전을 획책하는 저항세력들은 그의 동조자 여러 명을 이미 살해했다. 다른 시아파 분파의 손에 암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하드 소탕에 앞장서고 왕정을 현대화한 친미주의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 역시 알 카에다와 수니 극단주의자의 타깃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사마 빈 라덴.9·11 테러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그는 서구사회 ‘공공의 적’이다. 미국의 대전차 미사일 ‘헬파이어(지옥불)’를 맞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의 죽음은 전세계 추종자들을 더 거칠게 만들 것이라고 바이만 교수는 경고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올해로 건설 외길 60주년을 맞는 삼환기업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1세대 건설기업이다. 대림산업·삼환기업·삼부토건 3개사만 명맥을 잇고 있지만 창업주가 살아 있는 곳은 삼환뿐이다. 대부분의 건설기업은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전후에 부도가 나 좌초됐다. 삼환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70∼80년대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빌딩을 지은 주인공이자 중동에 처음 진출해 중동 붐을 일으킨 기업이지만, 최근엔 80년대에 비해 해외 수주액이 급감하는 등 예전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하며 ‘환갑’의 값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삼환은 올해 창업 60년을 맞아 국내외로 외형을 확장, 건설 명가로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창업 60년 맞아 제2의 르네상스 꿈꾸는 삼환 삼환기업은 올해를 제2 해외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 확장공사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계약을 협의 중이다. 건축비가 지난해 삼환기업 해외 매출(600억원)의 4배 규모인 2500억원이다. 해외유전 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연 100억원대 수익을 올린 마리브 유전 투자에 이어, 지분투자(4.9%)로 참여한 베트남 가스전 개발사업이 올해 하반기부터 수익을 낸다. 이밖에 지분투자(1.6%)를 한 예멘 마리브 LNG 개발사업도 오는 2009년부터 수익을 낼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3조원대 규모의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참여, 건설기업 전통 명맥을 잇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창립자인 최종환(82) 삼환그룹 명예회장은 1924년 12월29일 최상림씨와 김림자씨의 5남2녀 중 4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종로의 종(鍾)자에 돌림자인 환(煥)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양반이 광화문 중심에서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 사는 것을 몰락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사대부 출신인 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면서 광화문 중심에서 다동으로, 이어 효자동, 종로4·5가 등으로 밀려났고 그는 종로 4가에서 태어났다.‘종환’이란 이름에는 사대문 안은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의 뜻이 담겨 있다는 회고다. 훗날(1980년)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종로구 운니동에 20층 규모의 삼환사옥을 세운 것을 두고 그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 점령기에 초등학교(어의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 졸업할 때까지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지만 학업에 뜻을 두진 못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궁핍한 살림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형들과의 연관이 깊다. 큰 형인 고 명환씨와 둘째 형인 고 영환씨가 졸업 이후 수도·난방공사 자재를 생산·시공하는 스기야마 제작소에 들어갔는 데 회사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파이프를 집에 가져와 가공, 다시 납품하는 식으로 돈을 벌면서 1933년 경동기계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어의보통학교에 이어 2년제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18세가 되던 1940년 형들의 회사인 경동에 합류했다. ●약관의 나이에 창업…미군 공사로 국내 기반 삼환은 설립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줄곧 주한미군에서 수주한 공사에 전념했다.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공병대에서 크고 작은 공사를 발주했는데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주지 않고 한 업체에 모든 공사를 맡기는 식이었다. 그는 경동기계제작소안에 공사부를 설립해 영업부장으로 뛰며 미군 공사를 수주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하청업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물 한 살이던 1946년 3월15일 오늘의 삼환그룹 효시인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했다. 큰 형과 둘째 형, 그리고 최 명예회장 삼형제가 합심해 만든 회사란 뜻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나 최고경영자는 최 명예회장이다. 회사 설립후 8개월 동안 이룬 공사실적만 총 26건 130만원이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1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1948년 가을 을지로 2가 119번지 53호를 매입해 신사옥도 마련했다. 1949년에 착공한 강원도 영월 등 7개 광산지역의 미국인 광산기술자용 주택공사는 당시 업계의 부러움을 산 초대형 공사였다.1950년 6·25로 공사는 중단됐고 건물은 불에 타버렸지만 이 공사는 훗날 새옹지마격으로 그에게 전쟁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서울 수복후 미군 공사 관계자는 그를 반도호텔(현 롯데호텔)로 불러내 큰 궤짝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 속에는 당시 2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불에 타버려 흔적조차 사라진 건물의 공사비를 뒤늦게 받은 것이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것은 전란 이후 1952년 9월의 일이다. 서울 수복후 전후 복구공사에 힙입어 사세를 키워나가던 중 삼환은 당시 주주 10명이 총 주식 2만주를 발행하면서 주식회사가 됐다. 그 중 최 회장이 1만주, 둘째 형 영환씨가 5000주, 큰 형 명환씨가 500주를 가졌다. ●국내 ‘중동 붐’ 조성…횃불신화로 국제 명성 쌓아 1961년 ‘5·16’은 새 전기를 가져왔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던 관급공사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신문에 종종 입찰공고가 나는 일이 생겼고 삼환은 국내 주요 공사를 맡는 ‘건설 명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5·16 이후 삼환이 따낸 최초의 관급 공사는 1962년 발주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이다. 이어 경부·호남·영동·남해·동해고속도로 등 각종 토목 공사에 참여했고, 국립극장, 삼일빌딩, 조선·프라자·신라 호텔, 지금은 사라진 남산외인아파트, 여의도 전경련 회관, 국립묘지 현충탑, 포항제철(현 포스코) 공장 등을 지으며 주택·오피스빌딩·토목·플랜트 등 각 분야에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삼환은 국내사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진출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던 최 명예회장은 1963년 월남 사이공(호찌민)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첫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정국 혼란으로 4개월 만에 철수했지만 이후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73년 국내 업계 최초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했다. 삼환은 사우디에서 네번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 다섯번째 카이바∼알울라고속도로(175㎞) 입찰에서 24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따내며 국내 중동 진출 1호 기업이 됐다. 완공 때까지 3년간 자재 공급난, 종교 문제 등 시행 착오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어 사우디 최대 규모인 제다시(市) 전체를 뜯어고치는 미화사업을 맡으면서 행운을 잡았다. 미화공사를 메카순례기간 전까지 끝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강행하던 것을 파이잘 국왕이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환은 6000만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를 수의계약하게 됐고 ‘횃불신화’라는 말을 남기며 국내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붐을 조성하는 등 명성을 널리 알리는 개가를 올렸다. ●해외 프론티어의 꿈…정체된 90년대 80년대 들어서는 해외시장에 더 집중했다.1978년 미수교국이던 예맨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1984년 북예맨 마리브 유전개발에 참여하면서 원유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요르단, 파푸아 뉴기니아, 알래스카, 방글라데시, 사할린 등 시장을 개척했다. 국내 기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제 모임에 적극 참여,1982년 아시아 서태평양 건설연합회인 아이포카(IFAWPCA) 5대 회장에 추대됐고 재임시절 세계건설인대회도 제창했다.1990년대 들어서는 회사 일 보다 민간 외교에 시간을 쏟았다.1992년 한·소 경제협력회 2대 회장으로 선임됐고 재차 연임됐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성과를 이루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있다. 이런 탓에 90년대 들어 삼환의 해외 실적은 급감했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삼환의 해외공사 수주액은 1982년 당시 5억 8834만 8000달러(한화 6000억원)였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10분의1 수준인 624만 4000달러에 그쳤다. 국내 건설 업계의 주요 테마인 아파트 실적도 많지 않다.90년대 후반부터 업계가 경쟁적으로 환상을 담은 아파트 브랜드와 광고에 집중하며 수주전에 열을 올릴 때에도 삼환은 아파트 광고를 하지 않았다. 최 명예회장은 오히려 당시 시류에 대해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를 통해 “안쓰럽다.”는 평을 내놓았을 뿐이다. 한 때 9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현재 6개로 정리됐다. 키친아트로 유명한 양식기 제조업체 경동산업(60년)과 코카콜라 등 청량음료 제조업체인 우성식품(69년)은 모두 1990년대 말 정리됐다. 태양관광(관광·77년)은 삼환엔지니어링(기술용역·76년)에 통합돼 삼환기술개발이 됐지만 설계 업무는 거의 하지 않고 관광업도 계열사 직원 출장을 위한 발권 업무 정도만 한다. 이밖에 우성개발(67년), 삼환까뮤(78년), 삼환종합기계(79년), 신민상호신용금고(78년), 회현상사(78년) 등은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건설 명가로서의 국내 입지와 안정적인 매출은 줄곧 유지하고 있다. 건설 계열사를 가진 한화그룹의 1000억원대 대한생명 리모델링 공사를 지난해 수주했고,2007년 준공되는 건축비 595억원 규모의 팬택계열 서울 상암동 R&D센터도 짓고 있다. 삼환기업은 2005년 기준 매출 6612억원, 당기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종합 수주액은 1조 5000억원 규모다. 삼환그릅 기준 2005년 매출은 1조 1000억원, 당기순익은 650억원이다. ●교사 부인과 1남1녀의 단촐한 가정 1947년 봄. 삼환기업공사의 30대 청년 사장으로 뛰면서 당시 숙명여학교 교사이던 고 채광영 여사와 2년여 열애 끝에 1949년 4월 결혼했다. 최 명예회장은 부인을 만났을 당시 “‘아!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퍼뜩 들어 프러포즈를 했다.”고 언론을 통해 회고한 바 있다. 부인 채씨는 그를 홀로 남겨둔 채 1999년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가업을 승계한 외아들 최용권(56) 회장은 동갑내기로 고 한정대 전 대한페인트잉크(DPI) 회장의 3녀인 봉주(56)씨와 1974년 결혼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 보스턴대를 나온 용권씨는 미 유학중 같은 유학생 신분이던 봉주씨를 만나 결혼했다.1975년 삼환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입사해 8년 만인 1982년 32세 나이에 삼환기업 사장에 취임했다. 이어 삼환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1996년 9월 회장으로 등극,2세 경영 체제를 굳혔다. 선친인 최종환 명예회장은 ‘바늘로 찌를 구멍’은 있어 보였던 데 비해 최용권 회장은 ‘찌를 구멍’조차 없는 사람이란 평이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최용권 회장의 장녀 영윤(31)씨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의 며느리가 됐다. 이 회장의 3남 해창(35)씨와 1999년 3월 결혼하면서 국내 두 전통 건설기업은 사돈관계를 맺게 된 것. 대림의 창업주인 고 이재준 선대 회장과 최 명예회장은 건설 1세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창씨는 현재 대림산업 계열사인 종합물류회사 대림H&L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나 2년여 교제끝에 결혼했다. 다른 손녀·손자들은 아직 모두 학생이다. 장손주 최제욱(29)씨는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고, 최지연(26)씨는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RSID에서 공부 중이다. 막내 최동욱(22)씨도 콜롬비아대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있다. ●형제들과의 인연…삼환에 친인척 1명도 남아 있지 않아 삼환은 인척들의 경영 참여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친·인척이 맡았던 경동산업과 우성식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친·인척 중 단 한 명도 삼환에 적을 두는 이가 없다. 맏형 고 최명환씨는 6·25 당시 자신이 설립한 삼환기업의 모체인 경동기계가 잿더미로 변하자 동생 최 회장과 함께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한 뒤 주주와 이사로 활동했다. 그의 아들인 동국대 출신의 용근(67)씨는 계열사인 우성식품 이사, 삼환기업 사장 등을 맡다가 1996년 삼환까뮤 사장직을 끝으로 삼환을 떠났다. 둘째 형인 고 최영환씨는 국내 최초 강관회사인 한국강관의 3인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삼환을 떠났는데 한국강관의 부회장까지 맡은 바 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의 차녀 계자(64)씨는 18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권숙일씨와 결혼했다. 장남 용재(56)씨는 1993년 삼환의 계열사로 지금은 사라진 키친아트 등 양식기를 제조했던 경동산업의 사장을 맡은 바 있다. 차남 용진(53)씨는 ㈜유창 사장으로 삼환과는 무관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형 고 최경환씨는 1958년 삼환의 관계사로 설립된 양식기 제조업체인 경동산업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이 회사가 정리되기 직전인 1999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아들 최용철(60)씨도 이 회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경동산업은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로 자금난을 겪다 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다시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정리됐다. 그의 장녀 최형인(57)씨는 한양대 인문과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 최경환씨의 사위이자 최형인씨의 남편이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온 이윤우(60) 삼성전자 기술총괄부회장이다. 막내 동생인 최정환(73)씨는 삼환이 코카콜라 부산·경남지역 판매권을 가진 우성식품을 1969년 창립하면서 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연간 매출 1300억원대로 한 때 부산지역 대표 식품회사로 명성이 높았지만 방만경영과 과다 부채를 이유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최정환씨는 형인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1997년 4월 경질됐다. 이 회사는 1997년 코카콜라 부문을 매각한 뒤 같은해 말 부도처리됐다. 최정환 전 회장은 서울대 상대, 산업은행을 거쳐 1968년 삼환에 입사했다. 이 회사 사장을 지낸 최정환 회장의 장남 최용석(47)씨는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활동하는 등 한 때 정치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리하고 지성산업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장녀 영혜(45)씨는 건설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고 장예준씨의 차남 동욱(48)씨와 결혼했다. jhj@seoul.co.kr ■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형님-아우’ “아, 이리도 황망히 가셨습니까? 아직도 회장님이 하셔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무얼 그리 급히 가셨습니까? 여든 여섯의 춘추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영원한 등불로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리 가시니 이별의 안타까움과 아픔이 너무도 시리게 느껴집니다. 정주영 회장님.” 최종환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 당시 서울신문을 통해 이같은 조사를 남긴 바 있다. 두 사람은 생시에 형님-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며 경쟁보다는 조언을 구하고, 돕고 의지하는 형님과 아우로서의 정이 돈독했다. 그는 건설 1세대 중에서도 특히 고 정 명예회장, 고 이재준 대림산업 명예회장, 그리고 조정구 삼부토건 명예회장을 존경하면서도 가깝게 지낸 인물로 꼽았다.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에서 고 정 명예회장에 대해 “타고난 능력과 자질 이외에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저돌적인 돌파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최 명예회장에게 부회장을 역임토록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 명예회장에게 처음 소개시켜준 사람도 고 정 명예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고 조정구 삼부토건 회장에 대해서는 “나는 상대방의 잘못이 보이면 즉석에서 쏘아대는 성격이지만 그 분은 어떤 경우에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조용한 목소리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설명해 주는 등 깊은 인내의 미덕을 갖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 조 회장이 건설협회 회장을 맡을 때 최 명예회장은 이사로 그를 도왔다. 최 명예회장은 이들과 함께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서 건설업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남은 건설 1세대로 원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 수십년간 매일 30분씩 해온 ‘대나무 밟기’를 건강 비결로 소개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1996년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물려주고도 일주일에 최소한 사흘은 회사에 나왔지만 올들어선 일주일에 병원가는 날 하루 정도만 오전에 회사에 들른다. 평상시처럼 직원들과 지하 구내 식당을 찾는 등 검소한 모습은 그대로라는 평이다. ■ ’60년전통’ 삼환을 만든 사람들 삼환이 60년 건설 명가의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최종환 명예회장이 꼽는 최고의 CEO는 경성공업학교(현 경기공고) 출신의 고 이창호 사장이다. 부사장직으로 순직한 뒤 사장으로 추서됐고,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고락을 함께한 벗’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회사장으로 치러진 고 이 사장의 영결식 조사에서 “지금 내 오른팔이 떨어져 피가 흐르고 여며드는 것만 같은 아픔이 밀어 닥치는군요. 그러나 당신의 유지를 받들어 나는 기어코 우리 삼환을 세계 속의 삼환으로 만들고야 말겠습니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격무로 일관하다 신병을 갖게 되어 휴양을 하다가도 중동 현장으로 달려가는 등 투철한 사명감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에는 ‘회사를 위해 노력한 사원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꼭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연금제도와 사원주택단지조성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전동진(74) 사장도 삼환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CEO중 한 사람이다.1975년 월남이 패망할 당시 월남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하청업자 공사대금 지불 등 잔무 처리를 위해 남아 있다 8개월간 공산 치하에 억류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8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삼환기업 중기부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1996년까지 삼환기업·삼환엔지니어링·삼환까뮤 등 계열사 사장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은 삼환의 육영재단인 우성문화재단에서 이사로 재직중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최석원(75) 고문은 내무부 치안본부장, 노동청장, 부산시장, 건설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삼환의 해외사업이 꽃을 피우던 1982년 사장대우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지금도 우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노년까지 삼환과의 인연을 지키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탁신 泰총리의 ‘승부수’

    부패와 권력남용 의혹으로 퇴진 압력을 받아온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24일 의회(하원)를 해산하고 오는 4월2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4월2일 조기총선 실시 탁신 총리는 이날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을 알현하고 나와 기자들과 만나 “국왕에게 의회 해산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태국 헌법에는 국왕이 총리의 요청을 받아 의회를 해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왕실은 이어 국영 TV를 통해 총선 날짜가 4월2일로 잡혔다고 발표했다. 탁신 총리는 퇴진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권좌에 오른 지 꼭 1년 만이다.2001년 취임한 그는 지난해 2월 총선 압승을 통해 재선됐다. 탁신 총리는 전날에는 푸미폰 국왕의 수석 고문격인 프렘 틴술라논 왕실 추밀원장과 면담했다. 프렘 추밀원장은 “여론에 더욱 귀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탁신은 그의 가족들이 소유한 이동통신 재벌 ‘친 코퍼레이션’의 주식을 싱가포르 회사에 19억달러(약 1조 9000억원)에 팔아 엄청난 차익을 챙기고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는 잠롱 스리무엉 전 방콕시장도 퇴진을 요구해 왔다.●내일 대규모 反정부집회 탁신 총리는 또 비현실적인 의료보험과 주택정책으로 비판을 받아 왔다. 지난해 태국의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에 이르는 등 경제가 좋지 않은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마약과의 전쟁과 남부 이슬람 3개주의 분리독립 운동에 강경 대응해 최근 수년간 수천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조기 총선이 실시되면 탁신의 지지 기반인 저소득층과 농촌 지역의 표를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현재 하원 500석 중 124석을 갖고 있는 반대파가 이번 총선을 통해 총리 불신임안을 상정하는 데 필요한 200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한편 일요일인 26일 방콕의 왕궁 사원 옆 ‘사남 루엉’ 공원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학생과 교사, 노동자, 중산층 등 1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실전논술] 바람직한 법을 만드려면…

    ● 다음은 ‘한비자´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에 나타난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과 시행에서의 문제점을 밝히고, 이와 관련하여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법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했다. 화씨는 두 발이 잘려 왕궁으로 갈 수 없었으므로 돌모양으로 된 옥덩어리(璞玉)를 가슴에 품고 매일같이 초산의 기슭에서 엎드려 울었다. 사흘 낮 사흘 밤을 계속 울고 나자, 눈물은 마르고 눈에서 피가 흘렀다. 이 때 문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까닭을 묻게 했다. “이 세상에는 죄를 범하여 발을 잘리는 형을 받은 자가 많은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슬프게 울고 있는가?” 화씨는 대답했다. “나는 다리가 잘린 것이 원통해서 우는 것은 아닙니다. 이 보석이 그저 돌덩이 취급을 당하고,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므로 그것이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문왕은 즉시 옥인에게 그 박옥을 갈아서 감정을 하게 하니 과연 그것은 희귀한 보옥(寶玉)이었다. 이로부터 그 보석은 그의 이름을 따서 화씨의 옥, 즉 ‘화씨(和氏)의 벽(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옥은 당시의 진나라 왕이,“바라건대 열다섯 성으로 그것과 바꾸고 싶다.”고 제안했을 정도로 유명한 옥이 되었다. 원래 보옥이란 것은 목구멍에서 손이 내밀어질 정도로 임금이 탐내는 것이다. 또한 화씨가 헌상한 박옥(璞玉)이 설사 보석이 아니었더라도, 임금으로서는 아무런 손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씨가 두 발을 잘리운 다음에야 그 구슬돌이 보석이란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임금이 탐내는 보석조차도 그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임금에게 있어 법술(法術)의 경우를 살펴보면 화씨의 벽처럼 시급히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임금은 법술을 펴는 것을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릇되어도 금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술을 주창하는 신하나 사람이 아직 임금에게 주지 않은 것은 다만 그가 법술이라는 구슬들(보옥)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임금이 법술을 쓰게 되면 대신은 국정을 제 마음대로 못하고, 측근은 임금의 위엄을 빌릴 수 없게 된다. 법이 나라에 행해지면 떠돌이 백성 따위는 모습을 감추어 마침내는 모든 백성들이 농사일로 돌아가게 되며, 전쟁이 있을 때면 싸움터에 나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법술은 신하에게는 세력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둘 다에게 재난이 되기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임금이 대신들의 반대와 백성들의 비난을 물리치면서까지 법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법을 주창하는 어떤 신하가 설사 목숨을 걸고 의견을 말해 보았자 그 법술이 임금에게 채택될 희망은 없다. 다음과 같은 사례가 그와 같은 경우를 잘 말해 준다. 옛날 오기(吳起)는 초의 도왕(悼王)에게 초나라의 풍속을 혁신할 것을 건의했다. “대신은 지나치게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영지를 가진 신하는 너무 많습니다. 이대로 가면 그들이 위로는 국왕의 권력을 침범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나라는 가난해지고 군사는 약해질 뿐입니다. 영지를 가진 신하에게는 손자 삼대만으로 그 작록을 반환시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모든 관리들의 봉급을 깎고, 불필요한 벼슬을 폐지시키고 그 녹을 선발되어 훈련받은 사병들에게 돌려야 되옵니다.” 도왕은 이 말을 실천하였으나 불과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도왕이 죽자 평소에 오기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지만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꼼짝 않고 있던 구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오기를 손과 발을 잘라 피살하였다. 오기의 법을 시행하였을 때는 국력이 튼튼하고 나라도 안정되었으나, 오기가 죽자 초나라의 토지는 줄어 버리고 나라는 어지럽게 되었다. 상앙은 진의 효공(孝公)에게 정치의 요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섯 집과 열 집을 한 조로 만들어,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여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문학이니 역사니 하는 책들을 불살라 버리고 법령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대신들의 청원을 듣지 말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백성이 집을 떠나 벼슬을 찾아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변이 있을 때 병역(兵役)에 종사하는 농민을 표창해야 합니다.” 효공이 상앙의 말을 듣고 이를 실행하자, 얼마 안 가서 임금의 지위는 매우 높아져 안정되었고, 나라는 풍족하여 군사가 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효공이 팔 년 뒤에 죽자 너무나 가혹한 법령에 숨이 막히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상앙은 곧바로 거열형(車裂刑)을 받고 죽었다. 다시 말하면 초나라 오기가 말한 정책을 폐지한 것만으로도 외환에 위협당하고 내란에 시달렸다. 진나라는 상앙이 말한 법을 실행하였으므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한 말은 모두 정당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나라에서는 오기를 죽여 손발을 끊고, 진나라에서는 상앙을 수레로 찢어 죽이고 만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오늘날 세상은 당시의 진나라, 초나라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신은 세력을 뻗고 있고, 백성들은 전쟁과 난에 익숙해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임금은 초의 도왕이나 진의 효공과는 달리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는 오기나 상앙의 재판(再版)이 되고 말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 법을 말할 사람이 나올 리 없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할 패왕(覇王)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문의 분석 한비는 중국 전국 시대 말기의 사상가이자 한의 왕족으로 젊어서 순자에게서 배워서 뒷날 법가(法家)의 사상을 대성하였다.‘한비자´에서 발췌한 주어진 제시문은 지배층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의 제정과 지나치게 강한 법과 불필요한 법의 제정은 실패하게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한비자´는 공자의 덕치주의를 비판하고 법치주의를 내세운다. 그는 도덕보다 법률을 중시했기 때문에 법 제정 역시 엄격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 제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 글은 법 제정이 실패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를 보여 주고 있다. 첫째, 오기의 경우는 어느 한 쪽(지배층)에게 불리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실패를 하였으며 둘째, 상앙의 경우는 일반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법을 적용하였고, 또 왕권 강화만을 위해 백성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필요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실패하였다. 법을 시행하게 되면 비록 나라가 부강하게 되고 국민이 잘 살게 될 수는 있지만 저항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이 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실패한 원인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주어진 제시문은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을 밝히고 있다. 먼저 오기가 법을 제정한 것이 실패한 원인은 신하들의 권력가로서의 위치를 약화시켰고, 모든 관리들의 봉급을 깎았고, 벼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였고, 영지를 가진 신하의 기득권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기득권 계층인 특권 계층에 불리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그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상앙이 법을 제정한 것이 실패한 원인은 백성들에게 생명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여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여 백성들을 지나치게 감시하였고, 백성들의 지적 욕구를 막았고, 신하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백성들의 참정권을 제한하여 일반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거나 빈틈이 없어 그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또 특정 법규가 정의에 반하는 법을 제정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저항을 받게 됨으로써 실패하게 되었다. 단순히 두 사례에 나타난 특수한 경우를 밝히는 것은 자칫 다른 길로 논술을 이끌 수 있다. 분석을 한 뒤에 분석한 것을 문제점으로 삼아 자기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법 제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여야 한다. 바람직한 법 제정에 대해서는 앞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의 구체적인 해결책이 되어도 되고, 더 크게 일반화시켜 논의를 전개해도 된다. 어쨌든 앞에서 분석한 내용과 자기의 견해를 펴는 것이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문제는 먼저 주어진 제시문에 나타나 있는 사례를 분석하여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찾아내야만 다음 단계의 논의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석을 할 때에는 발문에서 전제하고 있는 법과 관련지어 언급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평소 사회, 정치, 경제 등에 대해서 배울 때 나름대로 정리해 두어야 하는 문제이다. 또 이와 관련된 문제로는 자유와 정의, 평등 등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어떻게 쓸까 주어진 논제인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법의 제정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제시문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논술문의 주제를 국민들의 저항을 받지 않는 법 제정을 위한 노력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법을 제정할 때는 그것이 다수의 행복이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논지를 펼치되 지나치게 피상적인 내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먼저 서론은 법의 제정과 그에 관한 국민의 저항에 관해서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면 자연스럽다. 올바른 사회 질서와 정의를 위해 법은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법을 준수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음을 밝히는 내용 정도가 적당하다. 본론의 첫 번째 단락에서는 주어진 제시문에 나타난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을 들면 좋다. 그 둘이 제정했던 법은 모두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옳았다고 할 수 있으나, 지나치게 특정한 계층에 불리한 법을 제정하거나, 일반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제정했기에 백성들의 저항을 받았다는 내용을 제시문의 요약과 분석으로 얻어낼 수 있다. 이어서 본론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앞서 제시한 실패의 원인을 근거로 법을 제정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주면 된다. 국민 전체의 이익에 반하거나 필요 없는 법은 제정해선 안 되며, 법이 비록 몇몇 특권층에 불리하게 제정되어 저항을 받더라도 이의 시행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를 펼치면 좋다. 법을 제정할 때에는 법의 본래 취지를 살려 어느 단체의 이익이나 저항에 급급해하지 말고 국민 전체의 이익에 합당하는가를 염두에 두고 제정해야 함을 제시해주면 좋다. 본론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다수의 행복과 질서 유지를 위한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본론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법을 제정할 때 따져 보아야 할 것들, 즉 그것이 다수의 행복이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이지, 운용할 때에는 현실에 맞는지 등에 대한 사항을 언급하면 더 좋은 논술문이 될 수 있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법 제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국민적 감시 기능을 강조하면 나름대로 훌륭한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은 피상적인 내용에 그치기 쉬우므로 공청회나 시민 법률 감시단과 같은 제도적 장치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더욱 훌륭한 논술문이 될 것이다. 이석록 서울 메가스터디 원장
  • [피플 인 포커스] 네팔 반군지도자 프라찬다

    네팔의 산악 지대에 25년째 살면서 정부군과 10년 동안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 반군의 최고지도자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의 BBC는 반군 창설 10주년을 맞은 13일 그동안 서구 언론인을 좀체 만나지 않았던 프라찬다(52)와의 최초 인터뷰를 내보냈다. 지금까지 그의 얼굴이 알려진 것은 지난 2001년 찍힌 사진 한 장이 고작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을 추종하는 프라찬다는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 내에 갸넨드라 국왕은 추방당하거나 인민재판에 처해질 것”이라며 공화제의 승리를 장담했다. 그는 그러나 “국민이 원하면 왕정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종전보다는 다소 유연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실용주의적 변모는 정부와의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데서도 드러난다. 그는 “수도 카트만두를 점령할 능력이 있으나 전투에 따르는 국민의 희생을 감안해 정치적 타협을 원한다.”고 밝혔다. 외국(영국, 미국, 인도 등)이 네팔 정부를 지원하고 있어서 사실상 무력투쟁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반군은 히말라야 지역에서 독자적인 조세·교육·의료 정책을 펴고 있다. 그는 그동안 정부군과 반군의 무력충돌로 1만 3000명의 사망자가 난 점에 유감을 표시했다. 프라찬다는 여느 혁명지도자와 같은 외적인 카리스마보다는 부드럽고 수줍음이 많은데다 농담도 잘하는 ‘옆집 아저씨’ 같았다고 BBC는 전했다. 지난해엔 “권력에 굶주렸다.”며 자신을 비판한 부인 사리타와 2인자 바부람 바타라이 박사를 축출했으나 몇 달 뒤 복권시켰다. 그는 네팔의 목가(牧歌)적인 지방 안나푸르나에서 태어나 농학을 공부했다. 본명은 ‘푸스파 카말 다할’. 상당수 네팔인들은 그를 힌두신 비슈누의 현신으로 여기고 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美-이란 ‘만평 파문’ 대리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방언론의 마호메트 만평 게재로 촉발된 무슬림들의 분노가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사태의 배후에 이란과 시리아가 있다며 강도높게 비난했고, 뉴욕타임스 등 언론은 ‘이란 배후설’등을 뒷받침하는 기사를 잇달아 내보냈다.●“반미시위로 번질라”백악관 긴장 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남부 카라트에서 시위대가 미군기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총격을 가해 최소한 4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이날 시위에 참가했다 부상을 입은 40대 농민은 “미국은 유럽의 리더이자 이슬람의 적”이라면서 “더구나 우리를 점령했으니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이 주둔중인 이슬람 국가에서 사태가 반미시위로 확산될 기미가 보이자 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미국 정부도 입을 열었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압둘라 요르단 국왕과 만난 자리에서 “자유로운 언론 매체가 표현한 내용에 폭력을 사용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압둘라 국왕이 “언론 자유는 존중해야하지만 마호메트를 비방하거나 이슬람 교도들의 감성을 공격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응수, 긴장감이 감돌자 부시 대통령은 “언론 자유에도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며 서둘러 분위기를 수습했다.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아예 작정한 듯 이란과 시리아를 지목했다. 그는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시리아가 불순한 목적을 위해 무슬림들의 반서방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이란측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실”이라고 일축했다. 이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이 이란 부통령은 9일 유숩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을 만난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것은(미국의 주장은) 100% 거짓”이라면서 “그 발언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NYT “이슬람 정상회의 이후 파문확산” 하지만 미국 언론은 ‘배후론’을 제기하며 정부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열린 이슬람 57개국 정상들의 회의가 만평파문 확산의 분수령이 됐다.”며 사실상의 ‘기획설’을 제기했다. 신문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등 정상들이 공식의제도 아닌 덴마크 언론의 마호메트 풍자만평에 대한 토론에 열을 올렸다.”면서 “북유럽의 작은 무슬림공동체에 국한됐던 분노가 이 회의 직후 정부 차원에서 공론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됐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아프가니스탄 시위대 가운데 탈레반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있었고 그가 경찰을 향해 총을 발사하면서 경찰의 대응사격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말레이시아 신문은 무기한 정간 한편 말레이시아에서는 만평을 게재한 지방신문이 정부로부터 무기한 정간조치를 받았다. 일부 무슬림국가에서 만평 게재를 주도한 언론인이 해고된 적은 있지만 신문사가 문을 닫기는 처음이다.국영 베르나마 통신은 이날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총리가 지난 4일 만평을 실어 물의를 빚은 사라와크 트리뷴지의 발행허가를 무기한 정지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만평을 게재한 유력언론사가 빅토로 유시첸코 대통령의 비난과 독자들의 거센 항의에 공개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앞서 파키스탄 AIP통신은 무장세력 탈레반이 마호메트를 모독한 덴마크 만화가들을 살해하는 자에게 금 100㎏의 현상금을 내걸었다고 보도했다.dawn@seoul.co.kr
  • 피로 얼룩진 선거

    카리브해의 소국 아이티 대선 투표가 4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치는 유혈 사태 속에 7일(현지시간) 종료됐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투표소에선 유권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2명이 깔려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북부 그로스 모르네 지역에서는 한 유권자가 경찰관과 시비를 벌이다 총에 맞아 사망하자 군중들이 이 경찰관을 폭행, 숨지게 했다. 유권자들끼리 난투극을 벌여 수십명이 다치기도 했다. 군부 쿠데타로 반미 성향의 장 메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축출된 지 2년 만에 실시된 이날 선거는 유엔 평화유지군 9400명과 경찰 6000명의 삼엄한 경계 속에 치러졌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는 남아공에 망명해 있는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 추종세력의 재기 여부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지킨 르네 프레발(63) 전 대통령은 아리스티드의 충실한 계승자를 자부하고 있다. 군부세력을 결집, 아리스티드 축출 쿠데타를 주도했던 귀 필립(37)이 얼마나 프레발을 추격할지가 관심거리다. 무려 33명이 출마한 이번 선거는 당선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다음달 19일 결선투표를 통해 당선자를 확정한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반발해 대규모 소요가 벌어질 개연성은 여전하다.8일 치러진 네팔 지방선거도 결국 피로 얼룩졌다. 정부군과 공산반군의 충돌 속에 투표율마저 저조해 정정은 끝모를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반군은 선거사무소 등 12곳의 관공서에 폭탄 공격을 가했으며, 정부도 30여명의 시위 정치인을 체포했다. 사흘 동안 여당 후보 2명 등 모두 9명이 반군에 살해됐다. 로이터 통신은 반군의 공격을 두려워한 후보자들의 출마 기피로 4000여개 의석 가운데 2200개 이상에서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나머지 선거구도 삼엄한 경계 속에 투표가 진행됐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유권자를 찾기는 힘들었다.7개 야당연합과 마오이즘을 추종하는 반군은 이번 선거가 지난해 2월 친위쿠데타로 집권한 기아넨드라 국왕의 철권 통치를 강화할 것이라며 투표 불참과 총파업을 선언했다. 또 투표하는 유권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해 왔다. 심지어 여당 소속 후보조차 선거운동 기간에 출마를 포기했으며, 남은 후보들도 군부가 제공한 안전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이세영 박정경기자 sylee@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 샷] 골프경기 용품 규제와 상술

    [이종현의 나이스 샷] 골프경기 용품 규제와 상술

    보다 신선하고 알찬 지면을 위해 골프와 축구 칼럼 필자를 이번주부터 교체했습니다. 골프는 현재 레저신문 편집국장인 이종현씨가, 축구는 평론가 정윤수씨가 맡아 유려하고 깔끔한 필체와 재미있는 소재로 기사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올해부터 국내 골프경기에는 용품과 관련된 규정 두 가지가 바뀐다. 하나는 GPS 거리측정기 허용, 또 하나는 드라이버 반발계수(COR)가 0.830을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규제다. 당초 드라이버의 반발계수는 2008년부터 제한할 예정이었지만 일본과 유럽,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어 앞당겨 적용하게 됐다는 게 대한골프협회(KGA)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허용과 규제’의 내막을 살펴보면 미국골프협회(USGA)의 상술이 그대로 드러난다. 드라이버는 고반발을 규제함에 따라 반발이 적은 드라이버로 바꿔야 한다. 거리측정기기 역시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골프용품 판매에 대단한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10년 전 국내의 한 골프장은 쇠징이 달린 골프화를 신고 코스에 나서는 것을 금지했다. 이는 급속히 전국 골프장으로 퍼져나갔다. 쇠징이 그린 훼손은 물론 그린 전염병까지 옮긴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국내 골퍼들은 쇠징 골프화를 창고에 박아두고 고무징이 달린 골프화를 하나 더 구입해야 했다. 골퍼 1명씩 새 골프화를 샀다고 가정할 때 한 켤레당 10만원씩 100만명만 잡아도 1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쓰여졌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 골프장들은 고무징 골프화의 효과를 보았을까? 오히려 골프장 관계자들은 “고무징이 그린 훼손 정도와 답압률에서 쇠징보다 더 나쁘다.”고 고백한다. 다만 고무징이 쇠징에 견줘 코스와 클럽하우스 시설물을 보호하고 딱딱한 바닥에서 소음이 적어 계속 사용을 권장하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골프의 양대산맥 가운데 하나인 영국왕실골프협회(R&A)는 지나칠 정도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보수적 입장을 보여왔다. 반면 USGA는 시대와 상술을 녹여내는 규정을 발빠르게 개정시켜왔다. 딱히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먼 훗날 또 다시 고반발 드라이버가 허용되고 거리측정기가 규제되는 대신 또 다른 골프용품에 대한 구매 압박이 더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프로선수와 공식대회에 출전하는 골퍼들은 이 때문에 늘 규정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기플레이에 안도하는 주말골퍼들은 걱정을 붙들어 맬 것. 이미 쇠징을 고무징으로 바꿔 신어 나름대로의 본분(?)은 다한 셈이다. 아무리 반발력이 큰 드라이버를 써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또 거리측정기 대신 또박또박 거리를 계산해주는 친절한 캐디가 옆에 있지 않은가. 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07)潛行(잠행)

    儒林(517)에는 ‘潛行’(잠길 잠/갈 행)이 나오는데, 남몰래 숨어서 오고 가거나 남모르게 비밀리에 행함을 말한다. ‘潛’자는 ‘水’와 ‘ ’(일찍이 참)이 組合(조합)된 形聲字(형성자)이다.‘說文解字(설문해자)’에서는 본래의 뜻을 ‘물을 건넌다’로 보고, 일설에는 ‘감춘다’라는 뜻도 있다는 主張(주장)을 收容(수용)하고 있다.‘가라앉다’‘숨다’‘몰래’‘깊다’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用例(용례)에는 ‘潛伏(잠복:드러나지 않게 숨음),潛水(잠수:물속으로 잠겨 들어감),沈潛(침잠: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물속 깊숙이 가라앉거나 숨음)’등이 있다.‘行’은 정돈된 ‘네거리’의 象形(상형)으로 ‘길’‘가다’의 뜻을 나타냈다. 후대로 오면서 ‘거리, 걷다, 움직이다’의 뜻이 派生(파생)하였다. 본래의 音(음)은 ‘행’이나 ‘行列’(항렬)같은 단어에서는 ‘항’으로도 읽는다.‘行樂(행락:재미있게 놀고 즐겁게 지냄),行方不明(행방불명:간 곳이나 방향을 모름),行狀(행장: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橫行(횡행:아무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행동함)’ 등에 쓰인다. 나라의 指導者(지도자)가 민생 현장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한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임금이 대궐 밖으로 擧動(거동)하는 것을 行幸(행행)이라고 한다.巡幸(순행)은 공식적인 行次(행차)요 潛幸(잠행)은 일종의 비밀 나들이다. 微服潛行(미복잠행)하여 민정 시찰에 나선 요임금이 외진 시골에서 鼓腹擊壤(고복격양:중국 요임금 때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요 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태평성대를 즐겼다는 데서 유래)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無爲之治(무위지치)의 이상이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逸話(일화)는 지금도 인구에 膾炙(회자)되고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에는 허름한 복장을 하고 민생 투어에 나선 父王(부왕)을 따라나섰다가 襤褸(남루)한 차림의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옛 文獻(문헌)에도 임금이 民生(민생) 點檢(점검)을 위해 庶民(서민)의 服裝(복장)으로 저자를 돌아다녔다는 記錄(기록)이 많다. 민심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微服潛行(미복잠행)은 임금의 전유물은 아니다. 조선 초에는 국왕과 신하 사이의 의를 깨치는 행위라 하여 금기시하였으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지방 首領(수령)들의 비리문제가 속출하자 暗行御史(암행어사)를 제도화하였다. 암행어사는 감찰효과의 極大化(극대화)를 위해 극비리에 임명 절차를 마치고, 임무 수행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 유지에 힘썼다. 암행어사는 보통 堂下官(당하관)으로, 왕이 직접 임명하거나 議政府(의정부)의 薦擧(천거) 인사 가운데 落點(낙점)하였다.秘密(비밀) 維持(유지)가 생명이기 때문에 왕이 직접 불러 任務(임무)와 目的地(목적지)를 알려주고 封書(봉서:어사 임명장),事目(사목:수행 임무 사령장),馬牌(마패:역마 사용권),鍮尺(유척:각 고을의 도량형과 形具의 규격 검사용 잣대)을 주었다. 직접 면담이 여의치 않을 때는 承旨(승지)를 통해 봉서와 마패 등을 전달했다. 해당 고을을 돌면서 首領(수령)이나 武將(무장)의 업무수행 상황,鄕吏(향리)와 土豪(토호)의 不法行爲(불법행위) 등을 糾察(규찰)하여 보고하였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국제플러스] 쿠웨이트의회, 사드 국왕 퇴진 결정

    쿠웨이트 의회가 24일 건강이 악화돼 거동이 불편한 셰이크 사드 알 압둘라 알 사바(76) 왕위 계승자의 퇴진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지난 15일 셰이크 자베르 알 아흐메드 알 사바 전 국왕이 노환으로 서거한 이후 불거졌던 쿠웨이트 왕권 계승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다음 국왕은 셰이크 사바 알 아흐마드 알 사바 현 총리가 맡을 예정이다. 지난 97년 결장암 수술을 받은 사드 왕위 계승자는 현재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새롭게 왕권을 승계하게 된 사바 총리는 2003년 총리직을 맡은 이후 건강이 나빴던 전임 국왕을 대신해 실질적인 통치자 역할을 해 왔다. 하루 25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자원부국이자 미국의 우방인 쿠웨이트의 에너지 및 대외 정책은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 두바이유 ‘고공비행’… 1월 무역수지 적자로?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선 두바이유가 또다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에따라 달러화 기준 원유수입액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1월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24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3일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는 배럴당 60.78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전거래일(20일)의 60.34달러보다 0.44달러 올랐다. 석유공사는 이란 핵문제와 나이지리아의 공급불안 문제에 이어 쿠웨이트에서도 의회가 국왕의 퇴위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키로 해 국제 석유시장이 더욱 불안해졌다고 분석했다. 두바이유가 폭등은 무역수지 악화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두바이유가는 국내 원유수입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가로 작용한다. 지난해 원유수입액은 413억달러로 2004년 대비 45% 증가했는데 같은기간 두바이유가도 46% 올랐다. 올들어 수출(통관기준 잠정치)은 20일까지 150억 18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4억 7700만달러보다 20.4% 늘어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수입이 이 기간에 33.5% 늘어난 166억 700만달러에 달해 무역수지는 20일 현재까지 15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수입이 급증한 것은 19일까지의 원유 도입액이 26억 5300만달러로 지난해(11억 3200만달러)보다 두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원유수입 물량이 30% 가까이 늘었고 두바이유가가 지난해 1월 평균 배럴당 37.97달러에서 올 1월 평균 58.02달러로 53%나 치솟는 등 유가도 많이 올랐다. 원유가 국내로 수입되기까지 한달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이번달 두바이유가의 폭등은 2월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통상 수출이 월말에 집중되는 점을 감안하면 1월 전체적으로는 무역수지 흑자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월말에 설 연휴(28∼30일)가 있어 무역적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산자부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20일까지는 적자를 보였다가 월말 흑자로 전환된 적이 종종 있기 때문에 이번주 수출물량이 대폭 증가해 흑자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1월 무역적자가 현실화되면 2003년 3월 5억달러 적자 이후 34개월 만의 첫 월별 무역적자로 기록될 전망이다.2004년 1월에는 27억달러, 지난해 1월에는 3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었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국상 쿠웨이트’ 조문단 파견

    정부는 셰이크 자베르 쿠웨이트 국왕 장례식에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민·관 합동 조문사절단을 16∼18일 쿠웨이트 현지에 파견한다. 합동사절단은 추 장관을 비롯, 송근호 주 쿠웨이트 대사, 한·쿠웨이트 의원친선협회장인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 한·쿠웨이트 친선협회 회장인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신임 국왕으로 책봉된 셰이크 사드 알 압둘라 알-사바 왕세자 앞으로 자베르 국왕의 서거를 추모하는 조전을 발송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세계적 작품 60여점 한자리에

    ●Top Show-스페인국왕 문화훈장 특별 기념전 2월20일까지 서울 청담동 쥴리아나 갤러리.1980년 갤러리 개관이래 기획 전시했던 세계적인 작가 미로, 워홀, 솔 르윗, 자코메티, 머레이, 알레친스키 등의 작품 60여점을 선보인다.(02)514-4266.
  • 민주국가 기틀세운 ‘쿠웨이트 아버지’ 자베르 국왕 별세

    ‘쿠웨이트의 아버지’ 세이크 자베르 알 아마드 알 사바 국왕이 15일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쿠웨이트가 원유 수출로 부유해지기 전인 1926년 6월29일 태어난 자베르 국왕은 1961년 모국이 영국에서 독립한 뒤,1977년 삼촌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7개월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망명생활을 한 뒤 미국의 절친한 우방이 됐다. AP통신은 “자베르 국왕은 겉치레를 싫어하고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들었다.”고 평가했다. 석유로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식사는 빵과 요거트만으로 만족했으며, 종종 직접 차를 운전해 시장에 가서 국민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1985년 시아파가 자살 폭탄 차량으로 암살을 시도한 이후 시장 방문은 중단했다. 1999년 여성들에게 투표권과 출마권을 허용해 인권운동가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보수파와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의 반발로 6년뒤인 2005년 5월에서야 의회가 마침내 여성 선거권을 승인하고, 내각은 첫 여성 장관을 임명한다. 전세계 원유 매장량의 10%를 갖고 있는 쿠웨이트의 인구는 100만명에 불과하다. 자베르 국왕은 석유가 바닥났을 때를 대비해 미래 세대를 위한 차세대기금(RFFG)을 마련해 매년 석유수입금 10%를 모아 현재 600억달러를 적립했다. 2001년 뇌출혈로 런던에서 치료를 받은 뒤 대부분의 권한은 이복형제인 세이크 사바(75) 총리에게 넘어갔다. 쿠웨이트 내각은 15일 왕세자 세이크 사드 알 아마드 알 사바(75)가 왕위를 계승한다고 밝혔으나 그 역시 97년 결장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다. 노쇠한 왕세자때문에 실질적으로 쿠웨이트를 이끌게 될 사바 총리는 자유로운 개혁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는 노회한 정치인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화인생 27년 여류작가 서공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민화인생 27년 여류작가 서공임씨

    친근하고 정겹다. 해마다 이맘 때면 늘 든든하고 풍요롭게 다가온다. 원래 백성이 그렸다. 온 가족의 소망을 담았고 행운과 건강을 기원했다. 집안의 액운을 물리쳐 주고 무병장수를 염원했다. 맞다. 민화(民畵)라 한다. 좋은 일을 바라고 나쁜 일을 막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그려졌다. 한 해가 시작될 때, 액을 막고 복을 누리기 위해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요즘 들어 전통 민화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국제대회의 휘장이나 행사장의 포스터 등만 하더라도 민화적 배경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IMF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자 기업인들은 사업번창을 위해 너도나도 민화를 찾는 경향이 부쩍 늘었다. 여기엔 맛깔스럽게 잘 버무려진 창작 민화의 발전이 한몫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여류 민화작가 서공임(47)씨. 특유의 정성과 섬세함으로 우리의 민화를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다. 고교 졸업 직후 스무살 처녀 때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27년째 전통 민화를 그려오는 셈. 특히 1998년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띠 그림전을 시작으로 매년 새해 초 어김없이 우리 일상과 반가운 ‘띠그림’ 전시를 열어 눈길을 끄는 작가다. 올해에도 그냥 있을 리 없다. 병술년의 개그림 민화 등을 포함, 서민들의 새해 소망과 벽사를 기원하는 뜻에서 길상화(吉祥畵) 49점을 선보이고 있다(2월5일까지·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갤러리). 지난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작업실에서 서씨를 만났다. 작업실이 독특했다. 전통 한옥에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도록 현관 천장을 유리로 장식했다. 어디서 본 듯한 사진이 눈에 확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지난 96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 부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씨와 함께 찍은 사진. 당시 국왕 부부는 유럽에서 서씨의 명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터라 방한한 김에 서씨 작업실에 일부러 들렀다. 이 자리에서 소피아 왕비는 30분 동안이나 무릎을 꿇고 민화 감상을 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고 서씨는 왕비에게 그림 한 점을 기증해 국내와 스페인 언론에도 소개됐다. 먼저 이번 전시회의 분위기를 물었더니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님 등 각계 어른들께서 많이 찾아주셨고 아무래도 새해 벽두이고 개가 우리와 친숙해서인지 일반 관람객들도 많네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개는 옛날부터 집을 지키고 사냥, 안내, 수호신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잡귀와 병도깨비, 요귀 등 재앙을 물리치는, 즉 재난을 경고·예방해 주는 것으로 믿어 왔지요.”라고 덧붙인다. 아울러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비롯해 용, 해태, 닭, 모란, 봉황, 거북이, 사슴 등도 우리 길상화에 자주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띠그림으로 매년 전시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 아니냐고 했다.“8년 전 호랑이 길상화전을 열면서 호랑이를 무려 100마리나 그렸지요. 이때 얻은 별명이 ‘호랑이 100마리를 키우는 여자’였어요.”라며 웃는다. 서씨의 좌우명은 ‘준비하고 있어야 기회를 맞는다.’는 것. 정말이지 27년 동안 연중무휴로 그림을 그려 왔기에 언제 어디서든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민화 인생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뭐, 변변치 못해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는걸요.”라며 애써 겸손한 모습이다. 잠시 회상에 젖더니 “여든일곱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지요. 원래 어머니가 보호자인 줄 알았는데 지난해 어머니가 (골다공증으로)쓰러지고 나서는 제가 보호자라는 걸 알았어요.”라고 했다. 인생의 한 깨달음을 느꼈을까. 이어 “어머니는 저를 안 낳으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그래서 덤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인내심이 저절로 강해지더군요. 아마 어머니를 보호해 드리려는 마음도 그런 데서 생겼나 봐요.”라고 말꼬리를 약간 흐린다. 서씨는 전북 김제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농사를 짓던 평범한 서씨 가족은 서씨가 중학교때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를 한다. 서씨는 어릴 적부터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동네 아이들의 미술 방학숙제를 죄다 해줄 정도로 타고났다. 취직을 해야 한다는 부모의 권유에 성남 제일실업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부는 뒷전이고 책가방에 갱지 노트를 넣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들판의 꽃과 나무를 그렸다. 수업이 끝나면 남한산성으로 어서 달려가 풍경화며 수채화를 그리기 일쑤였다.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4월 서울시내 화방에 미술재료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민화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접했다. 그 길로 곧장 찾아갔다. 말로만 듣던 민화공장이었다. 미군들을 상대로 파는 이른바 ‘쫑쫑이 그림’을 생산해 내는 곳. 처음에는 접시 닦고 걸레질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직하게 7년을 버텼다. 불교화, 이발소 그림, 일본 수출용 그림 등 손을 안댄 그림이 없었다. 그러다 스물여섯 살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어 홍익대 미대의 송수남 교수한테 2년 동안 수묵화를 배웠다. 드디어 86년 한국민화 연우회전을 시작으로 세상에 명함을 내밀었다.88년 서울올림픽 때에는 초대전을 가졌고 93년 이후에는 매년 단체전·초대전을 열면서 많은 팬들을 확보해 나갔다. 특히 9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갤러리에서 개최된 ‘서공임 민화 호랑이전’은 빅히트였다.IMF 외환위기 직후의 침울한 사회 분위기에 부자가 되는 ‘웰빙민화’를 떡하니 내놓아 인기폭발이었다. 이때부터 신문과 방송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림픽을 치르고 난 후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흐름이 생겨났지요. 가구나 도자기 등에도 민화가 많이 응용됐어요.” 그의 그림은 어떤 사람이 소장하고 있을까.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인, 언론인, 정치인 등은 대부분 소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외국인 초청 행사가 많은 부산 하야트호텔이나 제주 그랜드호텔 등에서도 장식용으로 민화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와 지난해 8월 열린 세계의료윤리학회에도 협찬출연하는 등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서씨는 아침 9시면 작업실로 출근해 밤 12시가 돼야 퇴근한다. 토·일요일도 쉬지 않는다. 스스로 일 중독증 환자란다. 동방대학원과 연세대·동국대 사회교육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잘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다. 자신의 인생은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무(無)에서 유(有)도 생겼다. 명성과 덕, 마음의 부유함, 주위 친구들이다. 학연도 지연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해 오늘날 이 자리에 온 것만 해도 커다란 복이 아니냐고 했다. 또 하나의 커다란 유(有). 서씨의 민화가 올해 유니세프카드에 실려 세계 각국의 어린이 생명을 구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이 카드에는 그동안 고흐·샤갈·피카소 등 세계적인 미술가의 명작들이 실렸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실명 민화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0년 전북 김제 출생 ▲79년 성남 제일실업고 졸업 ▲2000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예술사학 수료 ■ 작품 활동 ▲86∼92년 한국 민화연우회전 ▲88년 한국일보 초대전 ▲93년 일본 다카시마 백화점 초대전 ▲94년 민화의 새 지평전(동호갤러리) ▲95년 한국 민화작가전(세종문화회관) ▲97년 한국 민화3인전(롯데화랑) ▲98년 무인년 호랑이 민화전(롯데화랑) ▲2000년 불멸의 신화 ‘용’ 전(삼성플라자갤러리) ▲02년 아트월드컵 대한민국 부채그림전(고양 꽃박람회 전시관) ▲05년 9회 개인전-서공임 민화 닭그림전(한국일보갤러리) ▲06년 1월 서공임 병술년 길상화전(한국일보갤러리)
  • 가마로 보는 조선왕실 어가행렬

    가마로 보는 조선왕실 어가행렬

    군사 6000명이 호위하고 깃발 등 의장만 156개나 되는 조선시대 어가행렬. 웅장한 행렬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왕과 왕비가 탄 가마이다.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소재구)이 오는 30일부터 내년 3월31일까지 개최하는 ‘조선왕실의 가마’특별전은 조선시대 왕실의 이동수단이자 국가의례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했던 가마에 초점을 맞춰, 국내 최초로 특별전을 갖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왕과 공주가 직접 탔던 화려한 가마를 감상함으로써 왕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특별전에는 박물관이 소장한 다양한 가마 중 왕과 왕비, 왕세자가 사용한 가마인 ‘연’(輦), 공주·옹주가 탔던 ‘덩’(德應), 대한제국기에 새롭게 등장했던 ‘봉교’(鳳轎) 등이 전시된다. 또 어가행렬에 위용을 부여하기 위해 가마 주변에 배열했던 의장기 7점을 볼 수 있다. 특히 국내에 단 한 점만 현존하는 의장기인 교룡기(蛟龍旗)가 일반에 최초 공개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교룡기는 가로·세로 각 3m에 가까운 거대한 규모로, 조선시대 어가행렬에서 왕의 가마 가장 가까이에서 왕권을 상징하는 대표적 의장기이다. 왕실 가족이 탄 가마는 국가 행사를 위한 어가행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 형식과 꾸밈이 필요했다. 조선 전기에서 후기에 걸쳐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속오례의(續五禮儀)‘ 등의 문헌에 따르면 어가행렬에서 왕과 왕비, 왕세자 등을 태운 가마를 중심으로 막대한 인원(군대·친위대·문무백관·종친·측근신하 등)과 물자(가마·의물·의장기·의장물·악대 등)가 동원돼 백성들에게 국왕의 위상을 강화시키고 나아가 국왕 중심의 지배체제를 굳히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특히 큰 볼거리가 없던 시절, 국왕 가마의 행차는 왕이 백성을 만나 직소를 듣는 ‘소통의 장’이 되기도 했다. 전시와 함께 내년 1월6일과 2월3일에는 ‘조선시대의 가마와 왕실의 가마’(서울여대 정연식 교수)와 ‘조선시대 어가행렬’(서울대 김지영 강사)을 주제로 한 특별강연회도 열린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시리아 축출 앞장서다 암살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가 2월14일 베이루트에서 탑승한 승용차에 장착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운명을 달리했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 레바논 내정에 간여해온 시리아 축출에 앞장섰던 그의 죽음은 레바논 국민의 분노를 이끌어내 ‘백향목 혁명’으로 이어져 6월 총선에서 반시리아 야당 연합이 승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부 보안요원을 제외하고 29년 동안 주둔했던 시리아군이 레바논 땅에서 물러나는 계기도 됐다. 4개월 조사를 벌인 유엔 진상조사단은 10월에 하리리 전 총리의 죽음에 시리아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11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시리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유보하기로 하는 한편, 하리리 암살 조사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시리아가 개입한 게 확인될 경우 중동의 전통적인 화약고가 내전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 한편 아랍권의 맹주 노릇을 해온 파드 빈 압델 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도 8월1일 뇌졸중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올해의 인물](6)아리엘 샤론

    [올해의 인물](6)아리엘 샤론

    ‘고양이 목숨’을 가진 정치인.77세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올해 그 끈질긴 정치적 생명력을 과시했다. 동시에 ‘불도저’라는 별명도 또다시 입증해보였다.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38년 만에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라는 미증유의 일을 완수한 것이다. 정적의 도전을 뿌리치고 당권을 지켜내더니 분신과도 같던 집권 리쿠드당을 탈당하고 의회까지 해산시켰다. 이제 신당을 이끌고 내년 3월 조기 총선에 나설 계획이다. 여론조사는 그의 압승을 예상하고 있다. ●‘도박’과 도전 올 1월 예루살렘은 ‘가자지구 철수반대’ 시위로 요동쳤다.13만명의 시위대는 연말까지 가자지구 정착촌을 완전 철수시키려는 샤론 총리를 “독재자, 배신자, 거짓말쟁이”라며 성토했다. 2003년 샤론 총리는 일방적으로 정착촌 철수방침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을 끝내자는 구상에서다. 당내 극우세력은 사사건건 샤론 총리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급기야 총리 출신으로 당내 ‘매파’를 대변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재무장관은 8월 장관직을 사임, 총리 퇴진운동에 앞장섰다. 결국 매파의 의도대로 5개월여 앞당겨 11월 치러진 당 지도부 개편 대회. 사실상 정치적 ‘탄핵’이었고, 그의 승리 가능성은 낮았다. 샤론 총리는 연설 도중 누군가 마이크 선을 자르는 바람에 발언도 못하고 퇴장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그는 이 즈음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헬기 공습 등 강경책을 사용,52대 48의 신승(辛勝)을 거뒀다. ●의회 해산, 거듭되는 모험 샤론의 위기는 계속됐다. 연정의 한 축인 노동당에서 우군 역할을 해온 시몬 페레스 당수가, 리쿠드당과의 연정 파기를 요구해온 아미르 페레츠 신임 당수에게 밀려났다. 신임 페레츠 당수는 샤론 총리에게 내년 11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당겨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연정 탈퇴를 결의했다. 조기 총선에서 승리해도 당내 내분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 수월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의회 해산이라는 강공책을 택했다. 이어 ‘중도파 대결집’을 주창하며 신당 창당을 선언한다. ●‘전쟁을 위해 태어난 수류탄’ 14살에 대(對)팔레스타인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시작, 총리까지 오른 사람.1953년 요르단 공격,56년 수에즈 위기,67년 6일 전쟁,73년 속죄(욤키푸르) 전쟁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전쟁 영웅. 그러나 ‘전쟁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 ‘수류탄’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적에 무자비했던 지휘관.1982년 레바논 침공 지휘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방조를 책임지고 국방장관을 사퇴했다. 그랬던 그에 대해 아랍세계마저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이스라엘 지도자’라 칭했다. 물론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등은 군인으로서의 그를 잊지 않고 있다. 내년 1월25일 팔레스타인에서도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 사후 처음 총선이 실시된다. 양측의 선거가 마무리되는 내년 3월까지는 평화협상에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는 요즘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연구하고 있다. 고이즈미가 자신에 앞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때문이다. 그의 새해가 주목된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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