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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감충격 큰듯 식사 거의 못해/전두환씨 안양교도소 24시

    ◎7시에 기상 초췌한 모습으로 점호/변호사 접견외 외부접촉 없이 명상/수감자 2백명,독방 수용 등 특별대우 항의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전두환씨는 4일 눈발이 간간이 날리며 영하 4도까지 내려가는 매서운 추위속에 수감 첫 아침을 맞았다. 전씨는 상오 7시에 기상,간단한 점호를 받는 것으로 미결수로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점호를 받은뒤 간단하게 세수를 한 그는 전날밤 늦게까지 강도높은 검찰조사를 받고 자정이 넘어서 취침한 탓인지 매우 피곤해하는 모습이었다고 교도소관계자들이 전했다.미역국·감자양파조림·배추김치등의 반찬을 곁들여 제공된 식사도 드는둥 마는둥 했다. 또 점심식사는 『속이 좋지 않다』며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전씨는 상오 내내 별다른 일없이 휴식을 취했다.이따금 감방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걷기도 했으나 대부분 가만히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하오 2시15분쯤 찾아온 이양우·전상석 변호사 등 2명을 하오 3시까지 면회하는 일 외에 외부와의 접촉은 없었다. 면회를 마치고나온 이씨는 쏟아지는 보도진의 질문에 『노 코멘트』라고 말하며 건강상태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씨가)수감이후 음식을 전폐』했다고 두차례 걸쳐 강조했다.이에 항의 뜻이냐고 묻는 질문에는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전날 11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고 4일은 검찰의 수사가 예정돼 있지 않아 부인 이순자씨 등 가족들이 면회를 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하오 9시쯤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는듯 자주 뒤척거린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의 관계자는 독거실에는 석유난로를 비롯한 난방시설이 갖춰져 있어 그렇게 춥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노태우씨와는 달리 전씨는 생각만큼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신이 수감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교도소측은 그러나 전씨의 자세한 동태나 생활등에 대해서는 『상부에서 불필요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언급을 하지말라는 함구령이 떨어져 이야기할 수없다』고 전했다. 한편 일부 수감자들은 『교도소측이 전씨에게 보안과옆 2층 교화용 교실에 칸막이를 설치,개인 독방을 마련해 준 것은 상식에 어긋난 특별대우』라며 거칠게 항의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지난 93년 「혁명적 국제사회주의 노동자당」사건으로 구속 수감중인 이진영(28·연대 전기4중퇴)씨등 시국사범 9명이 『자신들과 동등한 처우를 하라』며 집단행동에 들어가자 일반 수감자 2백여명도 이에 동조해 항의하다 교도관들에게 제지당했다.
  • 진순신 「중국의 역사」 12권 한길사서 번역 출간

    ◎중국사 대하소설처럼 재미있게/시대순 정사에 독특한 평설양식 도입/몬헌고증·역사적 평가 소개후 현장답사 소감도 중국에 대한 관심이 최근 크게 높아졌지만 그 이해의 바탕이 되는 중국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광대한 땅덩어리를 무대로 다양한 민족이 흥망성쇠를 거듭해 역사의 흐름을 꿰뚫기가 어렵기 때문이다.한마디로 중국사는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복잡한 중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정리한 진순신의 역사평설 「중국의 역사」가 번역돼 최근 12권 짜리로 나왔다(한길사 간).이 책은 신화시대인 삼황오제에서 현대 중국을 이룩한 모택동의 공산주의혁명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중국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서술했다. 중국사를 총정리한 역사책이 적지 않은데도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가 유난히 돋보이는 까닭은 학술서만큼의 역사해석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소설처럼 재미있기 때문.이는 「역사평설」이라는 특이한 서술체제에서 비롯됐다.「역사평설」이란 픽션을 더하지 않고 역사를 사실대로 다루되,소설 같은 구성으로 극적 효과를 높이며,여기에 지은이 나름의 평가를 덧붙인 방식. 지은이는 한 사건을 설명하면서 먼저 도입부를 소설적인 내레이션으로 묘사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뒤 문헌고증을 통해 확실한 이해를 도운다.이어 갖가지 평가를 소개한 다음 자신이 비평을 더해 기존 역사해석을 보충한다.게다가 역사현장를 답사한 소감을 곁들여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같은 서술방식은 특히 5호16국시대와 같은 격변기에 더욱 효과를 낸다.5호16국시대(4세기초에서 5세기 중엽)는 한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진이 강남으로 쫓겨가자 화북지방에 다섯 이민족(호)이 번갈아가며 열여섯 국가를 세운 시기를 말한다.중국에 첫 이민족왕조가 등장한 이 시대는 7세기초 당나라에 이르러 중국이 세계최대의 영토와 최고의 문화를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중국사에서 가장 복잡하게 얽힌 이 시대도 진순신의 붓끝에 그 체계가 명쾌하게 정리되고 있으며 시대성격도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왕조중심의 정치적 변동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지은이는 각시대의 종교·문학·백성의 생활등에도 따로 지면을 많이 할애해 전체적인 역사상을 제시한다. 지은이 진순신은 일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작가.동양고전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살린 작품을 발표해 「직목상」등 숱한 상을 받았다.80년대 중반부터 「황하」(전6권),「이야기 중국사」(전15권),「십팔사략」(전3권)등 작품 10여종이 국내에 소개돼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
  • 한국문화 세계화의 공인(사설)

    석굴암과 불국사,8만대장경과 경판고,종묘 등 5건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지정됐다.우리나라 문화재가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처음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유네스코총회의 결의는 각별한 뜻을 갖는다.우리 문화재가 당당히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라 세계적 기구와 관련인사들에 의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지정은 세계적 문화유산을 공동으로 보호·관리·선양하자는 국제기구의 노력의 일단이며 현재 95개국 4백11건이 지정돼 있다.지정된 문화재는 유네스코에서 연구·기술의 지원이 따르며 관광의 대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따라서 유네스코의 이번 지정은 한국문화의 세계화 공인화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8세기 신라시대의 조각과 건축으로,해인사 8만대장경과 판고는 고려시대 정신문화의 상징으로,서울 종묘는 조선시대 건축양식으로 각각 세시대의 대표적 문화유산에 해당된다.시대가 다른 문화재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킨 것은 우리 문화외교의 성과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세계문화유산지정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보존 관리에 힘써야 할 것이다.선조가 남긴 문화유산은 그 독창성과 예술성에서 세계적 평가를 받고 있다.중국문화의 위세나 일본문화의 선전공세 속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던 한국문화가 최근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이번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영예를 부여하는 한편 인류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보존·계승의 책무도 아울러 부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과거처럼 개발의 경제논리에 밀려 문화재보호가 훼손되고 양보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문화재의 보존은 우리 민족문화수호의 최우선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또한 세계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것이 문화재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제1공화국의 과오(새로쓰는 한국 현대사:46)

    ◎이승만­이기붕 장기집권으로 건국공로 퇴색/중석불­원면사건 등 고질적 정경유착 싹 키워 대한민국사 첫쪽에 등장한 제1공화국은 오명으로 얼룩졌다.국가의 기초를 다진 공화국일지라도 과오가 공적을 가려버린 것이다.그 이유는 이승만 대통령이 카리스마적 지배로 일관한 권위주의정권이었다는 데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2년간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동안 관료와 경찰을 철저하게 끌어들였다.필요할 때는 군도 직접 동원했다.그래서 충성심에 젖어 있는 봉건적 엘리트가 주변에 몰려들었다.이들 그룹은 이승만의 카리스마에 쉽게 편승하여 지배영역을 거침없이 확대해나갔다.그리고 사사오입이라는 전대미문의 국회 개헌투표를 통해 건국대업을 이룩한 이승만에 한해 종신대통령으로 당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절대권력 위해 군 동원 제1공화국에서 3대에 걸쳐 대통령자리를 차지한 이승만의 종신집권욕은 대단했다.가히 독선이었다.그의 정치고문이던 로버트 T 올리버박사(전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 건국비화」에서 당시 이승만대통령의 심경을 명확히 밝혔다.1959년 봄 서울에 온 자신이 이대통령에게 1960년에는 대통령직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더니 『누가 맡아 일을 할 것이오』라고 반문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대통령직에서 물러설 뜻이 조금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승만은 자기자신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신화속에 산 인물이다.그래서 자신이 대통령직에 있는 한 부통령자리는 별스럽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다만 자신에게 충직한 인물을 부통령자리에 앉히고 싶어했을 뿐이다.당시 이승만은 정·부통령선거에서 함께 당선한 장면 부통령과는 같은 단상에 앉아서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사이였다. 이때에 이승만 의중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인물은 이기붕 이었다.이기붕은 장면에게 부통령자리를 놓친 바 있지만 이승만은 또 그를 점찍었다.이기붕이 60년 선거에서 이긴다고 하면 부통령은 매력적인 자리였다.이승만대통령이 제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하더라도 이미 고령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했다. 이기붕은 미국 유학시절에 일찍 이승만과 인연을 맺었다.이승만의 환국후 개인비서로 일하다 한국전쟁 직전에 서울시장을 거쳐 전쟁중 국방장관에 기용된 것을 계기로 권력의 양지에 들어섰다.이어 1953년 창당한 자유당의장에 선출되고 54년 5·20선거에서는 서대문 을구에서 민의원에 당선했다.그리고 민의원의장을 차지하는 것으로 자유당 제2인자가 되었다.실세로 부상한 것이다. 제3대 민의원을 뽑는 5·20선거는 관권에 의한 혹독한 탄압선거였다.그래서 이기붕과 서대문 을구에서 경선키로 한 조봉암 은 유권자 추천심사에서 제동이 걸려 입후보자등록조차 못하고 말았다.이기붕은 압도적 지지를 얻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뒷날 여론에 밀려 19 58년 제4대 민의원선거에서는 서대문 을구를 버렸다.부랴부랴 선거구를 경기도 이천으로 옮겨 당선하는 정치곡예를 연출했다. 그럼에도 이기붕의 지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이천에서 민의원에 당선하기 전해인 57년 맏아들 강석이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로 들어가 있던 터라 오히려 막강해졌다.이무렵 사람들은 서대문로터리에서 가까운 그의 집을 「서대문경무대」라 불렀다.거대한 집권여당 자유당을 거머쥐고 대통령을 움직일 수도 있는 확고한 지위의 제2인자자리를 굳힌 것이다. 이승만대통령의 장기집권은 민주주의방식의 국가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그의 집권은 통치 그것이었다.그래서 채찍 말고도 당근이 필요했다.당근으로 비유되는 돈,다시 말하면 정치자금을 거두어들였다.그 돈은 이승만대통령에게도 직접 전달되었고,그를 핵으로 한 권력주변 인물도 챙겼다.정치와 돈,정권과 재벌의 유착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정치자금은 주로 한국은행의 돈을 산업은행이 지정한 기업에 대출하는 이른바 연계자금에서 조달되었다.58년2∼4월 사이에 39억7천만환(원)을 11개 대기업에 대출해주었다.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이 자금대출을 통해 10억환의 정치자금을 챙겼다고 주장했다.이 기업 가운데는 해방 이후부터 이승만에게 생활비를 댄 태창의 백악승이 끼었는데,자유당시절 가장 많은 특혜를 받았다. 제1공화국의 경제비리는 어떤 정치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터져나왔다.부산정치파동이 있던 1952년 중석불사건에 이어 58년 5·2선거에 따른 연계자금사건이 그것이다.3·15정부통령선거에서도 외환·금융·건설입찰을 통해 70억환의 자금을 마련했다.특히 1958년 정부통령선거를 7개월 앞두고 실시한 4개 시중은행에 불하되어 큰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자금과 맞물린 비리는 돈이 될 만한 틈새가 보이면 비집고 들어갔다.심지어는 외원 달러를 들여 민수용으로 구입한 솜뭉치를 국방부가 국군의 겨울나기이불과 방한복을 만든다는 명목을 달아 빼돌렸다.그 유명한 1956년의 원면사건이다.50만달러어치나 되는 62t짜리 8천2백54뭉치의 솜을 유령회사 등에 되팔았다.이익금은 물론 자유당의장 이기붕에게 돌아갔다. ○손원일 해임으로 수습 이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으나 겨우 쥐 한마리를 잡는 꼴이 되었다.국방부장관 손원일을 해임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그리고 나서 손원일은 곧바로 해외여행길에 올랐다.이 원면사건 조사책임자는 육군특무대장 김창룡 소장이었다.그는 사건을 매듭짓지 못한 채 갈등관계가 있는 다른 패거리의 저격을 받고 숨졌다.그의 죽음은 원면사건과직접 관련을 가진 사건은 아니었으나 이승만대통령을 등에 업은 정치군인의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1공화국의 말기증상은 여러 분야에서 표출되었다.1960년3월15일 제4대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는 3·15선거는 그 대표적 케이스로 이승만을 핵으로 한 그 추종자의 몰락을 재촉했다.선거는 전해 59년3월 선거내각의 내무부장관으로 기용된 최인규에 의해 철저한 부정선거로 치러졌다.치안국장 이강학을 비롯한 전국 경찰과 내무공무원의 사전투표 등 온갖 부정방법이 동원되었다. 그 3월15일 이른 봄,날씨는 차가웠으나 하늘은 맑았다.그런데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부정선거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최인규는 그 시간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에게 『전국의 투표가 평화스럽게 치러지고 있다』고 능청을 떨었다.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이 서거하고 없는 이 선거에서 자유당 대통령후보 이승만이 9백63만표,자유당 부통령후보 이기붕이 8백33만표로 집계되었다.민주당 부통령후보 장면의 표는 1백84만여표에 불과했다.그러나 투표결과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차장) ▲김성호( 〃 기자) ▲김영중(조사부 〃)
  • 전 육군특무부대장 김창용씨 비밀 일지 발견/서울신문 취재팀

    ◎공산주의자 군침투 실상 등 상술/미 국립 공문서 보존 기록 관리국서 육군 특무부대장이었던 김창용(1920∼56년)의 비밀일지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에 의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국(NARA)에서 발견됐다.2백자 원고지 8백장 분량의 이 일지는 그가 암살당한 이후 주한 미대사관 직원이 번역,미 국부성에 보낸 자료.군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은 물론 다른 공산주의 세력의 실상까지 밝혀 현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떠올랐다. 이 자료는 우선 국군의 모태였던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준장도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숙군과정에서 그와 빈번히 마찰을 빚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그렇듯 군 내부에 공산주의 세력이 거미줄처럼 침투,숙군작업에 방해가 돼 사무실을 서대문형무소안에 설치했다고 밝힌 이 일지는 군 외부의 공산주의세력 색출과정도 소상히 보여주고 있다.특히 김수임사건과 고희두사건에 일지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김수임 사건은 그녀의 정부인 주한미군 중령 베트와 김형육등이 관련된 간첩사건이다.정부인 베트중령을 등에 업은 김수임은 미 군정하에서 애인 이강국의 남로당활동을 돕고 의붓오빠인 골수 공산당원 최만용을 함께 월북시켰다.김창룡은 이 일지를 통해 서대문형무소를 근거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국방경비대에 공산당을 침투시킨 이중업을 체포하면서 김수임간첩사건을 들추어냈다고 기록했다. 김창룡일지에 따르면 이중업은 1948년 무장봉기를 기도하다 체포된 것으로 돼 있다.그런데 이중업은 그의 비서격인 김형륙의 도움으로 육군형무소 수감 중에 탈출하고,김형륙은 체포되었으나 곧 전향했다는 것이다.이 때 김수임사건을 실토한 김형륙은 1950년 6·25발발이후 서울에서 공산군에 처형당했다는 대목도 일지에 나온다.사건의 주인공 김수임은 6·25 남침과 더불어 서울이 적의 수중에 떨어질 무렵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고 베트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은 떠돌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일지는 김창룡의 조작설로 널리 알려진 1949년의 고희두사건도 명확히 규명했다.고희두는 동대문시장과 청계천시장을 손아귀에 넣었던 당시의 정치깡패 두목.당시 민보단 서울 동대문단장이었던 그는 주먹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우익으로 분류되었으나 김창룡이 공산당혐의를 잡고 붙잡아들여 심문도중 숨졌다.이때 여론은 무고한 죽음으로 애도했으나 김창룡은 그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과 공산주의자였다고 주장했다.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은 1950년 7월과 8월 고희두 부인이 서울시 여맹위원장으로 활동한 사실로 입증했다. 국사편찬위 김광운 연구원(현대사)은 『서울신문 취재팀이 김창룡일지 원본을 찾는 과정에서 입수한 영문번역본 일지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하면서 『대한민국 초기 건국사와 시대상을 해명하는 데 큰 몫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 “역사의 죄인이 국민 우롱”/「전씨 검찰소환 불응성명」시민 반응

    ◎용서못할 행동… 즉각 구속 마땅/죄과 뉘우침 없는 궤변에 분노/“좌파 논리 운운에 할말잃어”­광주·전남 전두환 전대통령이 2일 현정부를 비난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데 대해 대다수 시민들은 『법과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TV를 통해 전씨의 성명발표가 중계된 직후 검찰과 언론사 등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다』『아직도 착각에 빠져 정신을 못차렸다』『철저한 응징만이 해결책이다』라는 등 흥분한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시민들은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전씨를 구속시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인걸(서울대 국사학과교수)=전씨는 12·12사건과 5·18사건의 진상규명과 역사의 심판을 요구하는 국민의 뜻을 무시했다.검찰의 소환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검찰에 당당하게 출두해 사실과 소신을 밝혀야 할 것이다. ▲기동민(전국연합 부대변인)씨=전씨는 역사의 용서를 받기 위해 검찰소환에 즉각 응하고 진상을 스스로밝혀야 한다.검찰은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를 강제소환해야 한다. ▲김일수(고려대 법학과교수)=전씨는 자신의 잘못을 모면하기 위해 현정부를 비난하는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법과 정의의 집행은 정치,상황논리보다 엄중해야 한다. ▲신대균(경실련 부정부패추방본부 운영위원장)=국민은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전씨를 포함한 5·18세력들은 비자금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정과 부패로 일관해 왔다. ▲정태흥(한총련 의장)=5월 영령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용서를 구해야 마땅할 전씨가 또다시 국민을 능멸했다.현정부는 정치적 고려나 법리적 해석 이전에 국민의 이름으로 전씨를 즉각 구속하라. ▲이용재(고교교사)=괴변으로 자신의 죄를 모면하려는 전씨의 뻔뻔함에 분노한다.전씨가 현정부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5·18학살의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 ▲안상수(변호사)=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지만 확정효력은 없어 언제라도 재수사가 가능하다.5·18관련자 처벌을 원하는 대다수의 국민을 좌익으로 몰아붙이면서 죄를 피하려는 것은 비열한 행위다. ▲김경록(29·회사원)=전씨 자신의 개인적 생각을 밝힌데 불과하다.그러나 노태우씨와 다른 모습을 보여 그의 임물됨을 가늠케 했다. ▲장철운(40·공무원)=전씨가 5·18사건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변론하는 태도가 당당해 보였다.감추고 숨긴다고 끝날 애기가 아니므로 당당하게 검찰의 수사에 응하는게 좋겠다. ◎학살자 사법처리를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와 전남 지역 주민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담화가 너무 뻔뻔하다고 분개했다.5·18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이곳의 주민들은 전씨 등 학살자들을 하루 빨리 사법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전남도 의회 최성호(53·국민회의) 의원은 『담화의 내용이나 태도가 너무나 떳떳해 5·18에 대한 반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서갑성(조선대 교수협의회 의장·47)씨는 『총칼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자가 반성은커녕 「좌파의 논리」니 「정치적으로 끝난 문제」이니 운운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며 흥분했다. 조비오 신부(60·광주 봉선동 성당)는 『나라와 국민과 역사를 무시하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를 느낀다』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가 따르고 사죄하는 자에게는 자비가 따르나,그처럼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발언을 일삼는 자는 법을 이용해 강제로 무릎을 꿇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광주·전남 대학총학생회연합 이몽석(25)군은 『이제껏 피흘리며 쓰러져간 민주인사와 민주화 투쟁을 좌파세력의 주장이라는 데는 할 말이 없다.당장 구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존 사법틀」 유지속 점진 보완/사법개혁 최종안 배경과 의미

    ◎법조 반발로 「사시폐지」·「로스쿨 도입」 못해 시험·교육·연수 등 핵심제도는 대폭 개편 대법원과 세계화추진위원회가 1일 최종 합의한 사법개혁안의 핵심골자는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이 존치되고 「로스쿨(전문법과대학원)」설립안이 백지화된 것이다. 개혁안은 한마디로 법조인 양성 및 교육의 기존틀을 완전히 바꿔 놓겠다는 정부측안이 대법원을 중심으로 한 법조계의 조직적 반발에 밀려 무산된 품새이다. 97년부터 시행토록 양측이 합의한 확정안은 현행 뼈대는 유지한 채 사법시험·법학교육·사법연수 등 3개 핵심제도의 내용과 운영방식을 점진적으로 보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법조인증원문제는 지난 4월 합의내용이 그대로 확정됐다. ▲사법시험제도의 경우 수험생의 부담을 덜고 전문법조인 양성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시험과목수와 종류를 조정하는 방안으로 조정됐다.시험내용을 대학의 법학교육과정과 연계,대학의 법학교육을 충실히 받은 사람이 합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했다는 설명이다.이에 따라 1차 시험의 필수과목을 헌법 민법 형법 등 3개 기본법학과목에 한정했다.경제학개론·문화사·국사는 필수과목에서 제외됐다. ▲사법시험운영의 경우 응시 횟수를 1차시험 기준으로 4회로 제한하되 97년부터 횟수를 기산하기로 했으며 향후 응시자격 제한·연2회 시험 실시·판사임용시 대학학업성적 반영 등의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사법연수제도 개편안은 대법원이 사법연수원 운영과 내용을 대폭 개편하는 선에서 정리됐다.특히 사법연수원을 대학원화해 정부안이었던 「로스쿨」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개편키로 했다. ▲법조인증원은 보다 획기적인 「문호개방」을 요구하는 소리도 만만치 않지만 현재 3백명인 법조인수를 96년에는 5백명으로 늘리며 향후 5년동안 매년 1백명씩 증원한다는 지난 4월의 확정안 그대로이다.2천년 이후에는 2천명선까지 혁명적으로 증원한다는 밑그림도 제시됐다. 사법개혁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각자의 안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은 지난 4월 「법조학제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계속해 왔으나 증원문제에만 합의를 도출했을 뿐 나머지분야에서는 팽팽한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양측은 이 와중에서 법대학제개편·사법시험제도 및 사법연수원폐지·변호사자격시험제도 및 미국식 「로스쿨」도입·한국식 「로스쿨」(국립전문법과대학원) 신설 등 갖가지 개별안을 내놓아 혼란을 가중시켰다. 급기야는 법학계·사법시험 응시준비생·학부모들이 집중 제기한 여론의 호된 비난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개혁안은 급진적인 변혁에 반대하는 쪽으로부터는 현실적 바탕 위에서의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재조·재야 법조인들로부터 환영받을 만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입시학원화」한 법대교육과 사법시험응시준비생의 양산이라는 현행 사법시험제도의 문제점과 함께 변호사수의 제한에서 비롯된 대국민 법률서비스질의 저하·변호사들의 고액 수임료횡포·전관예우·정실재판·유명무실한 국선변호인제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기를 원하던 쪽에서는 미온적이며 현행 제도에 대한 손질수준의 「미봉책」이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 「로스쿨」 백지화/사법개혁안 확정/사시응시 4회로 제한

    ◎내년 5백명 선발… 연 1백명씩 증원 세계화추진위원회와 대법원은 1일 현행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제도를 유지하되 시험과목과 운영방식을 개편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법률서비스 및 법조인 양성제도 세계화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법조인 양성방안이 기존제도를 개편하는 선에 마무리됨에 따라 그동안 논의되어 오던 국립전문법과대학원,이른바 「로 스쿨」 설치안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그러나 선발인원은 이미 계획한대로 95년 현재 3백명에서 96년 5백명,97년 6백명,98년 7백명,99년 8백명,2000년 이후 1천∼2천명으로 늘려나가기로 했다. 세추위와 대법원은 사법시험의 시험과목을 줄여 수험생의 부담을 덜어주고 조세·특허·통상 등 새로운 전문과목을 보강,97년부터 시행토록 했다. 또 인력낭비를 막기 위해 1차시험 응시횟수를 97년부터 4회로 제한하는 한편,응시자격을 일정학력 이상으로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이와함께 선발인원이 연차적으로 늘어나게 됨에 따라 시험을 1년에 2차례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다. 개편안은 사법연수원의 교육내용과 운영방식도 2차례 시험으로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기제와 학점제 등 대학원식 운영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판·검사말고도 대학교수를 전임교수로 영입,전문분야에 대한 이론과 실무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법학교육제도의 개편문제는 대학교육개혁의 추진차원에서 법학교육계가 필요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추진토록 할 방침이다. 사법시험 개편안에 따르면 1차시험 필수과목에서 경제학개론과 문화사·국사가 제외된다.
  • 팔만대장경·석굴암·종묘 「세계 문화유산」 지정 확실

    ◎4일 독 베를린서 유네스코 유산위 심사/확정땐 보존·연구비 지원… 「가치」 공인받아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경고,불국사와 석굴암,종묘가 4일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엔경제사회 문화위원회(UNESCO)의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우리 문화재로는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위한 최종 심의를 받는다고 외무부가 밝혔다. 이번 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확정되면,정부는 UNESCO로부터 팔만대장경등을 보존하고 연구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보조금을 지원받게 되며,이 문화재들의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도 공인받게 된다고 외무부는 밝혔다. 이에앞서 지난 9월 열린 세계유산위원회 이사국회의는 팔만대장경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데 긍정적 평가를 내린 바 있다. 현재 UNESCO가 지정한 세계 문화·자연 유산은 95개국 4백11개(문화재 3백5개,자연 90곳,복합 16)이며,인도가 21개,프랑스가 20개를 유산으로 지정받았다. 또 중국은 태산과 진시황묘 등 10개,일본은 법륭사 등 4개를 유산으로 지정받았다.
  • 「공소권 없음」 결정한 공안부 배제/「특수팀」 어떻게 구성됐나

    ◎특수·형사·강력부 주축 15명 배정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가 특수부와 형사부·강력부 출신 검사로 구성돼 눈길을 끌고 있다. 특별수사본부는 본부장인 서울지검 이종찬 3차장검사와 주임검사인 김상희 형사3부장검사를 비롯해 특수부와 형사부,산하 지청 검사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수사의 총지휘권자는 최환 서울지검장.서울지검 공안2부의 박태식 검사를 제외하고는 공안사건의 사령탑인 한부환 1차장검사는 물론 공안1·2부의 검사 모두가 배제됐다.서울지검 지청과 지방에서 차출된 검사도 모두 자기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특수·공안통이다.한마디로 「특공특수·공안팀」이라는 것이 검찰 내부의 평가다. 시국사건을 전담하는 공안부가 빠지고 대형비리와 일반사건을 담당하는 특수부와 형사부·강력부 검사가 우리 현대사의 최대사건이라 할 수 있는 12·12와 5·18사건을 맡은 것은 전례에 없는 일이다. 최환서울지검장은 이같은 팀구성의 배경이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잘 알지 않느냐』라는 말로 대신했다.12·12사건을 기소유예처분하고 5·18사건을 불기소처분한 서울지검 공안1부에 다시 배당할 경우 쏟아질 비난을 고려해 진용을 갖췄다는 뜻이다. 지난해 12·12와 5·18사건을 담당한 검사 가운데 5명이 서울지검 공안1부에 남아 있지만,이들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직무유기로 피소돼 적절치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는 후문이다.김재기공안2부장도 5·18사건 수사당시 대검 공안기획담당관으로 있다가 피소된 상태다. 크게 보면 수사의 주체는 공안부에서 특수부로 옮겨졌다.본부장에 서울지검의 특수1·2부와 조사부·강력부를 총괄하는 이차장검사에 배당됐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이 가운데 총괄기획팀은 분석력과 공안감각이 뛰어난 검사를,수사전담1은 직접 수사를 담당할 검사를 배정했으며 수사전담2는 「예비군」 성격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주임검사를 맡은 김부장검사도 서울지검으로 오기 전까지 서울지검 동부지청 특수부장으로 재직했다.검찰은 이들 가운데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검사 모두를 서울지검으로 발령한다는 계획이어서 이 사건을 대하는 의지를 엿보이게 한다. ◎특수본부장 맡은 이종찬 검사/5공비리·장영자 사건 처리한 「미스터특수」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본부장을 맡은 서울지검 이종찬 3차장검사는 「미스터 특수」라고 불릴 정도로 검찰 안팎에서 인정하는 특수 수사의 베테랑이다. 사법시험 12회 출신인 이차장검사는 87년 대검 중수4과장을 맡은데 이어 서울지검 북부지청 특수부장,서울지검 특수 1·2·3부장,대검 중수1과장,초대 대검 수사기획관 등 검찰의 특수 수사와 관련한 요직은 모두 거쳤다. 지난해 9월 정기인사때 서울지검 제3차장검사로 발령받아 특수 1·2·3부와 조사부,강력부를 총괄하고 있다. 이차장검사는 특수수사 계통에 있는 동안 5공 비리를 비롯,이철희·장영자사건,범양상선사건 등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굵직굵직한 사건을 처리했다. 83년 서울지검 공안부와 85년 대검 공안2과장도 거쳐 공안사건에 대해서도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 월스트리트저널 「떡값」 오보 정정 보도

    ◎“한국 관리들 「돈 안받기」 잘 지킨다”/“과거의 명절풍습 추측보도한건 유감”/문민정부 개혁 평가 기획물 함께 실어 『한국의 각료들은 재벌들로 부터 「떡값」을 받는다』고 보도했던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신문이 우리정부의 강경대처 움직임에 밀려 27일자에 정정기사를 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 신문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키로 했던 당초 방침을 거두어 들이기로 했다. 주무부서인 공보처의 유세준 차관은 이날 이같은 사실을 발표하며 『해외 유수 언론이 한국문제에 대한 오보로 정정기사를 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정정 및 부연」란에 실은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한국정부 대변인의 서한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은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기업인들로 부터 한푼도 받지않고 있으며 각료 전원도 김대통령의 확고한 결의를 충실히 준수해 오고 있다. 일전에 본보는 명절때 떡값을 주고받는 한국사회의 전통으로 미루어 볼때 기업체는 올해 각료들과 관리들에게 금품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한다고보도했다.동 기사는 한국각료들과 관리들이 실제로 그러한 떡값을 받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본보의 의도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런 추측을 자아낸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같은 날짜 1면 오른쪽 머리에 「한국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이례적인 대형 박스기사를 김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실었다.작성자는 지난 21일자에 문제기사를 썼던 한국특파원 스티브 글랜이다.그는 이 기사에서 『한국인들은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이 폭로될 수 있도록 주요개혁을 한 것은 30년만의 첫 민선지도자인 김대통령이라고 공을 돌리고 있다』고 한주일전의 오보를 만회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그는 이어 『정치가와 재계지도자들이 줄줄이 검찰의 준엄한 신문을 받게되자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는 새로운 정치세대에게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고 문민정부 개혁의 결과를 평가했다. 이 두 건의 기사는 윌 스트리트 저널이 우리정부에 내민 「패키지 타협안」인 셈이다.유차관은 이에 대해 『정정·사과의 뜻으로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법적대응은 오보임을 밝히기 위한 것인만큼 그에 상응하는 「실리」를 얻은 마당에 고소방침을 철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느냐는 설명이었다.
  • 사회주의 3국 영수회담 열리나

    ◎베트남·쿠바 지도자 26·29일 북경 도착/공식적으론 “우호 다짐” 개별접촉만 예정/체류일정 길어 3자 대좌여부 “초미의 관심” 도 무오이와 피델 카스트로.몇 남지않은 사회주의 국가의 대표격인 두 지도자가 이번주 비슷한 시기에 북경을 방문,강택민중국국가주석과 회동한다.이미 26일 베트남 공산당 도 무오이 서기장이 북경에 도착한데 이어 오는 29일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의 중국방문을 앞두고 있다. 중국외교부는 이들의 방문이 각각 중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강주석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양국사이의 공식방문이며 「사회주의권 영수회담」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 도 무오이서기장이 6박7일동안,카스트로는 무려 10일동안 중국에 머무는등 국가최고지도자 방문으로는 일정이 유달리 긴 것도 이례적이다.또 4일간의 체류일정이 겹치는등 이들의 체류기간동안 무엇이 논의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직 강택민­카스트로­도 무오이 사이의 3자정상회담여부에 대해선 공식 확인된바 없다.중국외교부는 강주석이 도 무오이서기장,카스트로의장등과 각각 양자간의 정상회담을 갖게 될 것이라고만 밝혔다.그러나 북경외교가에선 비공식접촉을 포함한 공식회담의 가능성도 없지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 무오이서기장의 방문은 지난해11월 강주석의 하노이공식방문에 대한 답방형식을 띠고 있다.두나라는 현재 경제건설이라는 제일의 국가목표달성을 위해 상호 긴장완화 및 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다. 한편 카스트로의장의 행보는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속에 나름대로의 개혁개방을 시도하는 쿠바의 진로를 전망할 수 있다는 점에 무게가 실린다.특히 30여년동안 친소련적으로 중국과는 소원했던 쿠바가 소련 해체후 어떤식으로 유일한 「사회주의 대국」중국과 관계를 정립하고 이어 성공적인 중국의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어느정도 배워갈지가 주목되고 있다.
  • 만삭의 백인 임부 죽이고 미 흑인여인,태아 탈취

    ◎현장목격 자녀 2명도 살해 【워싱턴 연합】 갓난애를 갖고 싶은 부부가 평소 알고 지내던 만삭의 임산부를 죽인후 태아를 꺼내간 엽기적인 사건이 최근 시카고 인근에서 발생,미국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미언론에 따르면 일리노이주 에디슨에 사는 20대 흑인 부인은 아이를 갖지 못해 고민하던중 자신의 사촌과 한때 동거한 바 있는 만삭의 백인 여인을 죽여 그 몸에서 남아를 꺼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 인면수심의 흑인 여인은 남편과 사촌의 도움으로 범죄를 저지르면서 현장에 있던 10살과 8살난 피해자의 백인 아이들까지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이 한때 병원에서 일했던 경험을 되살려 칼과 가위를 동원,예정대로라면 약 4일후 태어나도록 돼있던 태아를 꺼내 미리 준비한 옷을 입혀 데려가는 악마같은 침착성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 “국민뜻 전폭 수용” 환영/“「5·18특별법」제정” 각계의 반응

    ◎국민화합·군 명예회복 전기/역사의 응어리 푸는 계기로 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민자당이 「5·18특별법」을 제정키로 한데 대해 사회 각 단체는 물론 대다수 국민들도 이를 크게 환영했다. 이러한 반응은 검찰이 「5·18사건」을 수사하고도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관련주동자들을 불기소처분해 이 문제가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는 국민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종성(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연구실장)씨=정부의 결단이 한편으로 놀랍다.특별법의 제정을 통해 5·17내란과 양민학살의 진상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지고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로 민족정기를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안동일(변호사)씨=「소급입법」의 전례를 남기는 것은 좋지 않다.그러나 국민 대다수의 여망에 따라 법률제정권을 가진 국회에서 제정하면 도리가 없다.특별법을 제정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잘못됐다』는 결정을 내려줌으로써 푸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진위(연세대 정외과교수)씨=어떤 식으로든 과거를 매듭짓겠다는 것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과거의 상처 때문에 언제까지 국력을 소비할 수는 없다.다만 특정 정당의 인기나 정략의 차원이 아닌 순수한 역사의식과 애국적 차원에서 특별법 제정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번 단안이 비자금문제로 비등한 국민감정을 달래기 위한 국면전환용이 아니길 바란다.특별법안의 핵심은 특별검사제의 도입 및 공소시효 문제일텐데 5·6공과 결속된 현 검사들이 아닌 시민사회단체들로 이루어진 특별검사제도의 도입을 촉구한다. ▲김승현(고대신방과교수)씨=역사의 묵은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특별법을 이번 기회에 마련하기로 한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입법해 역사의 응어리를 올바르게 청산하길 빈다. ▲정해숙(전교조위원장)씨=그동안 국민들의 5·18특별법제정요구에 대해 민자당이 이를 수용한 것은 늦은 감은 있으나 환영한다.그러나 정치적 계산에서 이번 결정을 내렸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민족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5·18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문규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씨=5·18특별법이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주동자 처벌을 담보하려면 엄정한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제가 도입돼야 한다.또 이번 결단이 비자금 문제로 빚어진 정부여당의 위기를 탈출하려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 ▲지병륜(한국노총 조직국장)씨=노씨의 비자금파문이 계속되는데다 여당이 당명을 바꾸는 등 수세타개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결정이 나와 정치적 의도가 짙다는 느낌이 든다.그러나 늦게나마 5·18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 다행이다. ▲박원순(변호사)씨=이번 기회에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관련자를 사법처리해야 한다.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정계의 영향를 받지않고 독자적인 처리를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덕균(엑스포기념재단이사장)씨=특별법을 제정한 뒤에는 정치보복 및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균형있고 합리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지혜를 모아야 할때다. ▲조성권(사업·인천시 남구 관교동 동부아파트 101동 505호)씨=해방정국에서 친일파를 확실히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의 어두운 면이 되풀이 된 것을 거울 삼아 이번 만큼은 여야가 정치적 타협없이 특별법을 만들고 관련자들을 법대로 처리해주길 바란다. ▲류춘기(50·부산시 중구 동광동 부산데파트 2층 한성화랑 대표)씨=5·18은 언젠가는 청산돼야 할 과제이면서도 지금까지 처리하지 못하고 질질 끌어와 국민화합을 해쳐왔다.특별법제정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군의 명예를 위해서나 국민화합을 위해서도 잘된 조치이다.
  • 토크쇼로 재기한 미 라디오/워싱턴 김재영(특파원 코너)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구석으로 밀려나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라디오가 지금 정보통신최첨단의 나라 미국에서 「시대착오적일 만큼」(?)겁없이 힘찬 목소리를 낸다. 세계적인 TV시대에 미국 라디오방송은 토크쇼 덕분에 90년대들어 인기와 영향력의 재봉춘 시절을 즐기고 있다.이 토크쇼는 입심좋은 「호스트」(진행자)와 즉석 인터뷰 및 청취자 참가용 전화시설만 갖추면 돼 뉴스·스포츠·음악 전문방송에 비해 시설준비가 훨씬 간단한데도 미국 라디오를 재기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힌다.여러 종류의 토크가 있겠지만 세계적으로 드문 일을 해낸 미국라디오의 토크쇼는 완전 정치 이야기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러시 림보라는 정치해설가가 라디오 청취붐을 중흥시킨 토크쇼의 「킹」으로 받들어지며 매일 낮 12시 미 전역의 6백60개 지역방송망에 중계되는 「러시 림보」프로는 최소한 2천만명이 귀담아 듣는다.민주당·클린턴대통령을 신랄히 비판하는 정통 보수파인 그는 지난해말 공화당의 중간선거압승을 이끌어낸 견인차역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있다. 토크쇼하면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필 도나휴,오프라 윈프리 등의 TV쇼를 연상하기 쉬우나 이들 잡담·고백 형식의 TV토크쇼는 갈수록 「변태적」이 돼 비난의 소리가 높다.최근에도 공화당의 깅리치 하원의장과 살라라 보건장관등 여·야로부터 미국문화를 저질화하고 청소년을 부패시킨다는 맹비난을 받았다.반면 라디오 토크쇼는 미국 정계가 주목하고 주요 일간지가 정치면에 매일 10여개 쇼의 스케줄을 게재한다.정치가 뿐아니라 미국인 40%정도가 가끔씩 이를 들으며 17%인 4천4백만명은 거의 매일 듣는데 특히 TV토크쇼의 주 시청자가 여성·청소년 등 미국사회의 주변 계층임에 비해 라디오 정치토크쇼의 청취·전화참가자는 평균이상의 재산을 가진 보수적 백인층이라는 주류계층에 속해있다. 라디오가 황금기를 빼앗긴지 30여년 뒤인 지난 80년대말부터 붐을 타기 시작한 토크쇼의 현 호스트들은 4대1 비율로 압도적인 보수파 성향을 보인다.깅리치 의장과는 반대로 클린턴대통령은 지난4월 오클라호마 연방건물폭탄테러시 반연방정부적 코멘트를 일삼은 라디오토크쇼 호스트들을 비난했는데 진보파가 열세인 실정과 관계가 없지 않다.민주당의 명 이론가인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지사가 보수파우세를 뒤집기 위해 진보적 호스트로 나서고 있으며 에드워드 카치 전뉴욕지사,올리버 노스중령도 인기 호스트다.
  • 무책임한 외국언론 한국 보도(사설)

    정부가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지의 한국에 대한 왜곡보도에 대해 단호한 대응의지를 보이고 있다.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이 기사를 보도한 기자는 아직도 여전히 「입증이 가능한」 보도임을 주장하며 사과나 정정보도를 거부하고 있다.그렇다면 법적 방법으로라도 밝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가 고약한 것은 한국의 기업이나 재벌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 것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무슨 때면 관리나 담당공무원에게 주기 위한 떡값을 얼마쯤 준비한다느니,각료급은 누구나 1년이면 수억을 챙길 수 있다느니 하는 말을 한국사람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시기와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서술한 보도내용을 묵인한다면 무엇보다 사정당국이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 된다. 만일에 확실한 근거도 없이 떠도는 설만을 가지고 쓴 기사라면 그 책임은 글쓴 기자와 그것을 실은 언론사가 함께 져야 한다.그점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혹시라도 노씨비자금정국을 두고 한국사회를 우습게 여긴 무책임한 보도라면 더욱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우리는 전대통령까지 법 앞에 세워 옛날에 저지른 비리를 준렬하게 따지는 중이다.국가사회적 의지와 능력이 어느 수준과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이런 준렬함은 가능하지 못하다. 주재국에 대한 파악과 판단이 이렇게 미흡하고 악의적이기까지 한 언론인은 직업윤리로 보아도 잘못된 사람이다.그런 매체와 기자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넘어간다면 우리의 부정과 비리에 대한 엄격한 관리의지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혁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공직자는 엄격한 통과의례를 겪었다.그런 과정에서 많은 부담을 감수했고 더구나 노씨비리(비이)정국이 우리 공직자에게 가져다준 상처는 아직도 깊다.그런 시기에 문민정부의 도덕성까지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기사는 지구촌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타격이다.반드시 진위가 밝혀져야 하고 이를 계기로 한국을 아무렇게나 보도해도 상관없는 나라로 생각하는 의식을 바꿔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무비자 협정 체결”/미,한국 요청 거부

    미국은 22일 입국사증면제협정 체결을 요청하는 한국측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시영 외무부차관은 이날 제13차 한미 경제협의회에 참석,『우리 국민이 미국 입국사증을 얻는데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면서 『양국 기업인간의 활발한 교역을 위해서도 한미 양국이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미국측 대표인 조안 스페로 국무부 경제농업담당차관은 『사증발급 거부율 등을 감안,양국이 아직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하기에는 이르다』면서 『사증 발급절차 등을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제11회 향토문화 대상/대상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

    ◎본상 개인 5명·단체 1곳 선정/새달 1일 시상식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 계승과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써온 숨은 일꾼을 찾기 위해 제정한 제11회 향토문화대상 수상자가 22일 결정됐다. 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누어 전국의 시·군 문화공보실과 문화원·예총·향토사학자들이 추천한 단체 및 개인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영예의 대상에는 김정명 춘천문화원장(75)이 선정됐다. 본상중 전통문화부문에는 ▲김상곤(남원애향운동 본부장·58·전북 남원) ▲대구향토문화연구소(대표 김택규·66) ▲최종덕(양양 오색국교교사·52·강원 양양)씨등 3명이,현대문화부문에는 ▲이윤수(시인·82·대구시) ▲이은구(이천문화원장·52·경기 이천) ▲심우성(극단 서낭당 대표·62·충남 공주)씨등 3명이 뽑혔다. 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본상에는 각각 2백만원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올해 심사는 구상(시인)·차범석(극작가)·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민속학)·정영호(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이중한(서울신문 논설위원)씨등 5명이 맡았다. 서울신문사 주최,LG전자 협찬,문화체육부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향토문화대상 시상식은 오늘 12월 1일 하오 4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대상 수상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소양제」 부활·예술행사 활성화/민속자료실 만들고 삼악산성 복원 앞장 『큰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지역에 묻혀버린 향토문화의 발굴,보존에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강원도 춘천문화원장 김정명씨(75)씨는 『선인들의 얼이 담긴 향토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작업이 너무 미흡해,후손으로서의 도리를 하려고 애썼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양구군수·강릉시장·도청 상공국장,중소기업 협동조합 도지부장 등을 거쳐 지난 87년 춘천문화원장으로 부임했다.그 때 문화원은 봉의동 도청 앞의 건물에 3평짜리 사무실를 임대해 쓰고 있었다.인원은 여직원 한명과 원장 뿐이었다. 문화재를 간수하는 유일한 기관인 문화원의 당시 역할과 위상을 말해주는 사례이다.『조상들의 발자취와 손때 묻은 유품들을 추스리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때마침 시립도서관이 새 건물을 짓자,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해 사무실을 도서관으로 옮기고 민속자료실과 영상오디오 자료실·미니 도서실 등을 만들고 지역의 예술·문화 행사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흐지부지됐던 춘천의 향토문화 축제인 「소양제」를 77년부터 부활하고 정월 대보름 놀이와 청소년 유적답사 등도 알차게 추진했습니다』 향토문화를 지키고 가꾸려면 주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고 솔선하기 시작했다.스스로 강원도 전역을 누비며 선조들의 생활도구와 유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은 베틀,소 구유,재래식 쥐틀 등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6백여점의 유물들을 의상,음식,생활,생활방식,습관 등으로 나뉘어 민속자료실에 전시했습니다』 대부분 지금은 볼 수 없는 물건들이다.학생들과 주민들이 문화원을 향토문화의 학습장으로 활용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요즈음은 스러져가는 산성 복원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춘천 덕두원리에 10여m 정도만 남아 있는 고대 맥국의 마지막 유적인 삼악산성의 복원 작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맥국은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 왕국으로 강원도의 뿌리입니다』 춘천,나아가 강원도의 뿌리인 맥국의 보존을 위해 3년 전 조사위원회를 만들었고,오는 연말까지는 신북읍 발산1리에 맥국터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에 앞서 몽고 침략에 맞서 결사적으로 싸웠던 항몽터전으로,허물어져 자취를 잃어가는 봉의산성을 2차례에 걸쳐 복원했다. 『국립 강원박물관을 세우고,지역 인사 17분이 모여 한일합방에 반대하는 시를 읊던 국사봉에 망배도 세워 선조들의 참된 얼을 배우고 잇는 곳으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정선아리랑 등 전통문화를 12분야로 나눠 책으로 펴내기 위해 서두르는 등 제 2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원장은 『강원도에 제 2의 김유정과 이효석이 배출될 수 있는 문화의 터전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춘향제」를 전국규모의 축제로/김상곤 남원애향운동본부장 지난 85년 춘향문화선양회를 발족해 해마다 춘향제를 창의적으로 유치,전국적인 규모의 축제가 되도록 했다.91년 춘향제부터는 춘향문화대상(학술·예술·여성·언론분야)을 제정해 올해까지 상을 시상해오고 있다.92년 춘향제 때는 「춘향제 60년사」를 발간했으며 93년에는 「춘향전 관계사 학위논문선집」「춘향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발간했다. 투철한 향토애를 바탕으로 남원의 문화전통을 가꾸고 남원인의 품위향상을 위해 애쓰는 것은 물론 현재 춘향제를 세계적인 관광문화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사당 놀이」 등 문화재지정 공헌/심우성 극단 서낭당 대표 59년 사라져 가던 「남사당 놀이」의 연희를 수합해 재연한 이래 특히 전통 인형극과 탈놀이의 발굴조사를 통해 무형문화재의 지정에 공헌해 왔다. 저서로 「남사당패 연구」「무형문화재 총람」「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민속문화와 민중의식」「탈」등이 있으며 「조선무속의 연구」「역과 점의 과학」「연극의 역사」등 20여권의 역저가 있다. 현재는 문화체육부 문화재 전문위원,극단 서낭당 대표,한국민속연구소 소장,공주민속극박물관 관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69년 창립… 「향토문화」 회지 발간/대구향토문화연구소 69년 6월 향토사 및 향토문화의 조사연구에 관심있는 교수와 향토사가들이 모여 창립됐다.같은해 12월 회지인 「향토문화」를 육필사본으로 간행하는등 연구회의 발전을 꾀했으며 85년 7월부터는 대우학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모임을 활성화 하고있다. 현재 회지는 제7집까지 간행됐으며 조사보고서로는 「경상감사 도임행차순력 복원」「화랑문화의 신연구」「낙동강 유역사」등을 출간할 예정이다.이밖에도 향토사 사료 윤독회,향토사적 답사 등으로 대구 경북지역의 향토문화연구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87년부터는 각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단체를 결집해 우리 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76년 청파요 개설… 도예발전 헌신/이은구 이천문화원장 우리 전통도예의 맥을 이은 분청사기의 장인으로 76년 이천읍 사음리에 청파요를 개설해 도예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다. 91년 1월 이천문화원장에 취임한 이래 각종 문화사업을 통해 지역문화 발전은 물론 지방문화원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다.특히 이천문화원이 해마다 10월에 개최하는 이천도자기축제를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문화관광축제로 적극 육성,올해 제9회 이천도자기축제의 경우 외국인 1만5천명을 포함한 25만명의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으며 4억3천만원의 도자기 판매실적과 함께 도예작품전·한국의 잔 특별전·도자기 제작실연등 각종 행사를 마련해 도예문화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농악대 구성… 전통민속 보존 힘써/최종덕 양양 오색국교 교사 63년 교육계에 투신한 이래 투철한 교육관으로 전통민속예술과 우리 뿌리찾기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해왔다. 전통민속예술의 창달 및 계승발전을 위해 사라져 가는 향토민속의 발굴에 힘써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최우수상 3회,종합우수상 2회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3차례 수상했다. 양양군 전통민속보존회와 어린이·청년·노인 농악대를 각각 구성해 농악보급 및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청소년 어울마당 지도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여름 피서철에는 해수욕장에서 고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통민속을 공연함으로써 볼거리를 제공하고 향토민속을 관광자원화해 주민소득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광복뒤 첫 월간시집 「죽순」 창간/이윤수 시인 지난 45년 「죽순시인구락부」창립 이래 현재까지 대표로 있으면서 46년 광복 최초로 월간 동인시집 「죽순」을 창간했다.48년 한국문단 최초로 「상화시비」를 대구달성공원에 건립했으며 50년에는 문총(현 예총)구국대 경북지부를 조직했다.79년 동인시집 「죽순」을 복간했으며 83년에는 「전선시첩」1·2·3 합본을 발했다. 85년 상화시인상을 제정,올해로 10회째를 맞고 있으며 90년부터는 상화시 전국백일장을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92년 2월부터 한동안 서울신문에 「향토시인 이윤수 특집」이라는 글을 게재해 필력을 과시했으며 지난해 5월에는 한·일 국교수립후 처음으로 한·일 친선합동시화전을 주일 한국총영사관 초청으로 열었다.
  • 특별정담 오늘의 서울신문을 말한다(서울신문 50돌 특집)

    ◎증면경쟁 탁류속 「소신의 질경쟁」 호감/정보 홍수시대의 「알짜정보지」로 “우뚝”/상업성­선정성 배격… 「건강한 신문」 특화/“연재소설 등 작가 창작정신 존중” 정평/1950년대부터 한글신문­가로짜기 실험 선도 서울신문은 창간 5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세계화를 선도하는 초일류 고급정론지로의 제2창간을 선언,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오직 독자를 주인으로 일체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배격한채 언론의 정도를 걸어온 서울신문의 50년 역사는 그대로 현대사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시대의 영욕을 국민과 함께 나누며 성장해온 서울신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21세기에의 비전을 그려보기 위한 특별좌담회를 마련했다.정진석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연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소설가 김주영씨가 자리를 같이 했다. ▲정진석 교수=서울신문은 구한말인 1904년 러일전쟁 특파원으로 와 있던 영국인 베델이 만든 대한매일신보가 그 전신입니다.대한매일신보는 한글과 영문판으로 제작돼 당시 최대의 독자층을 향유한 대표적인항일민족지였고 일본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지요.그러다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 총독부는 이 신문을 매입해 「대한」이라는 제호를 떼고 총독부 기관지로 만들었습니다.1910년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논조가 1백80도 달라졌지만 지령만큼은 계속 잇게 했습니다. 또 서울신문은 일제 전 기간동안 한글로 발행된 유일한 신문이었습니다.해방직후 명칭을 서울신문으로 변경했는데 정부·여당을 대변하는 쪽이었어요.물론 신문이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방적인 비판 또한 경계해야될 일이죠. ○항일민족지가 전신 ▲김주영씨=서울신문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시대를 앞서간 신문이었습니다.지난 54년부터 7개월여 연재된 정비석씨의 「자유부인」은 장안의 화제가 됐었지요.또 60년에는 현상공모 사상 처음으로 5백만환이라는 파격적 고료를 내걸고 장편소설을 공모해 문단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죠.저의 대표작 「객주」를 탄생케한 신문도 바로 서울신문입니다.79년 6월부터 84년 2월까지 1천4백65회에 걸쳐 연재했는데 그당시 서울신문은 작가들의 창작정신을 최대한 존중해 「작품」이 잉태될 토양을 마련해주는 신문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하나의 예로 저는 「객주」를 쓰면서 『신문사쪽에서 언제쯤 주문이나 간섭을 해올까』했지만 5년동안 단 한번도 클레임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경영진의 판단보다 담당 데스크의 재량에 맡기는 문화풍토였죠.독자의 말초적 구미에 맞춰 일회용 흥미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매회 간섭을 일삼았던 타 신문에 비해 서울신문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곳이란 인식이 우리 작가들에겐 강했습니다.이는 여타 상업지들이 따라올 수 없는 서울신문만의 독보적인 영역이었다고 봅니다. ▲이연숙 회장=우리 여성단체협의회의 경우 넉넉치않은 재정형편에도 불구,지금까지 서울신문을 한번도 끊지않고 구독해오고 있습니다.소비자문제나 여성문제를 일관성 있고 성의있게 다루어주는 신문이기 때문이죠. ○서울만의 독보영역 ▲정교수=서울신문은 56년부터 4·19때까지 한글판 신문을 따로 낸 적이 있습니다.68년엔 한글전용으로 하고 글씨체와 편집방법에도 변화를 주는 등 선도적인 신문의 모습을 보였습니다.최근 한글전용이나 가로짜기를 시도하고 있는 신문들의 실험적 모델이었던 셈이죠. ▲이회장=저도 어릴때 서울신문이 한글신문이어서 굉장히 친근감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또 미국대사관에 근무할때 보니까 외국인들이 서울신문으로 우리말을 공부하기도 하더군요. ▲김씨=잃어버린 우리말 찾기운동을 지면을 통해 벌이기도 했습니다.지금도 박갑천씨의 컬럼은 시사문제에 대한 안목을 넓혀줄뿐 아니라 우리말의 맛깔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독특한 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교수=사실 서울신문은 해방직후까지만 해도 인적 자원과 시설등의 면에서 가장 뛰어난 언론사였습니다.또 김진섭,김동리,장만영씨 등 유명문인들이 편집책임자로 있던 종합잡지「신천지」는 50년 「사상계」가 나올때까지 당시 지식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교양지였지요.「자유부인」같은 연재소설로 문학계에 더할나위없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4·19이전까지는 정치적인 영향력도 막강했습니다.그동안 역사적 격랑에 따라 시련을 겪으며 때로 침체되기도 했지만요. ▲김씨=역사도 역사이지만 우리의 의식과 감정도 지나치게 흑백논리에 감염되어 있는게 오늘의 현실입니다.요즘은 상업주의를 지향하는 신문들이 정부의 대변지 역할을 하는 측면이 더 강해요.서울신문은 오히려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회장=서울신문은 산간벽지 등 어느 지역 가지않는 곳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지요.또 요즘 신문들 가운데 면수가 가장 적습니다.증면경쟁으로 페이지가 늘어난 신문들을 보면 광고일색이에요.정보홍수시대에 알짜배기 정보를 섭렵하는데 편한 신문이 바로 서울신문입니다. ▲정교수=손주환 서울신문 사장은 올해 제2창간을 선언하면서 『물량경쟁을 지양하고 오로지 질적인 경쟁만을 벌이겠다』고 선언하고 증면경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젊은 기자나 언론학교수가 아닌 신문사의 최고 책임자가 이같은 한국신문의 「반사회성」을 과감하게 지적한 것을 두고 학계에서는 커다란 화제가 됐습니다. ▲김씨=굳이 신문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최근 신문들의 증면경쟁과 부수경쟁에 따라 지국으로 배달되는 신문이 곧바로 폐기장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국내 용지값을 기준으로해 1년에 무려 1천1백억원 이상의 돈이 낭비되는 이같은 폐단에 모두 비분강개하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스스로에 대해 비판을 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회장=그런 점에서 서울신문이 신문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희망입니다.민간단체들은 비판을 하려고 해도 언론의 막강한 힘앞에 지레 겁을 먹고 독자들에겐 조직된 힘이 없고하니 이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교수=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역사를 통해 민족사의 험난한 굽이마다 이정표 역할을 해온 서울신문이 문민시대를 맞아 무한 물량경쟁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김씨=잘 알다시피 다른 신문은 모두 상업지입니다.그 틀에서 과감하게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은 서울신문만이 가질 수 있는 크나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한글 교과서 ▲이회장=저는 서울신문이 정부만 의식하지 말고 정부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을 보다 많이 생각하는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이제까지는 다분히 오해받을 만한 역사도 없지 않았습니다.그런만큼 창간 50돌을 맞은 이 시점에서 대대적인 환골탈태의 노력은 한층 절실한 것이라고 봐요. ▲김씨=요즘 신문사간의 보도경쟁의식은 뉴스가치 여부를 떠나 거짓정보를 양산하는데까지 이르게 만들었습니다.일례로 최근 미국흑인남성대회를 주도한 인물이 유태인과 한국사람은 돈만 아는 민족이라고 말한 것으로 우리 각 신문이 보도했는데 실제로는 미국에 이민온 모든 이민족들을 향해 한 소리였어요.정확한 사실확인없이 일단 신문을 팔고 보겠다는 상업지들의 선정적 보도태도가 낳은 해프닝이었죠.상업주의를 배제하는 서울신문만은 이같은 폐해에서 벗어나 제대로된 정보를 취사선택해 독자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회장=신문들이 국민의 세계관을 오도하는 경우도 많아요.언론인이 올바른 시각과 균형감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교수=한국언론은 한미관계나 한일관계 특히 대일문제에 있어서는 이성적이고 진지하게 접근하기 보다는 맹목적인 애국심에 호소하려는 성숙되지 못한 보도자세를 보이고 있어요.이 역시 국익과 공익을 앞서 생각하는 서울신문이 주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이회장=언론사간의 무분별한 보도경쟁에서 탈피,서울신문만이라도 반듯한 생각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할 것입니다. ▲김씨=요사이 신문은 여배우의 아슬아슬한 사진을 실어대는 등 선정적이고 충동적으로 흘러 「읽는 신문」이 아니라 「보는 신문」이라는 얘기도 듣고 있습니다.그런 맥락에서 볼때 서울신문은 어느 신문보다 「정독하는 신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예를 들어 「두만강 7백리」「압록강 2천리」같은 기획시리즈를 들 수 있습니다.특히 이 기사는 그동안 접했던 단편적인 주마간산식 리포트가 아니라 현지 연변 조선족 작가의 눈을 통해 그려진 한폭의 세밀화라고도 할 수 있어요.저는 스크랩까지 해가며 읽고 있습니다. ▲정교수=「보는 신문」의 역할은 TV로 족합니다.신문성이 강화되어야해요.언젠가부터 각 신문들이 해외토픽란을 통해 지나치게 노출된 여성의 사진을 크게 다룸으로써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는데 서울신문은 그렇지 않더군요.특별히 재미있고 눈길을 끌진 않지만 비교적 건강한 신문으로 온 가족이 함께 돌려 볼 수 있는 신문이라는 느낌이에요. ○딱한 이웃에 애정을 ▲이회장=요즘 신문들은 하지말아야할 일들은 하고 정작 해야할 일은 하지않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민간단체들이 주최하고 언론이 소개·지원해야 마땅할 행사를 신문사가 직접 나서서 벌이고 있어요.사세과시적 행사보다는 애정어린 보도정신이 중요합니다.AIDS문제나 가족파괴 등 절실한 현안을 유야무야 지나쳐선 안되죠.여성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언론이 좀더 충실히 보도해주었으면 합니다.서울신문은 반세기의 연륜이 있으니 타 신문보다 한발 앞서 갈 수 있으리라 여겨져요. ▲정교수=그렇습니다.영국의 「더 타임스」가 보수 대변지이고 그 독자가 따로 있듯이 서울신문도 그 색깔을 살리면서 타 신문과의 차별화를 이루어 나가야할 것입니다. ▲이회장=서울신문이 위치한 프레스센터는 모든 다양한 여론이 모아지는 자리입니다.그같은 의견들을 걸러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특히 서울신문의 「입법예고」라든가 「법령공포」같은 란은 정부와 국민의 가교역할을 자임하는 서울신문만의 특화지면이라고 할만해요.좀 더 알기쉽고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내가 본 파랑도(서울신문 50돌 특집)

    ◎한국해양연구소 이동영 박사는 말한다/“「태풍의 길목」 기상관측의 최적지”/기상예보 정확성 높여 태풍피해 최소화/대륙붕 개발·어업전진 기지로도 활용 『파랑도는 해양기상 연구와 구난활동·어업 전진기지로서의 활용은 물론 지구환경 변화 감시에도 이상적인 장소입니다.과학기지를 건설해 한국 해양연구의 일류화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초석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해양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재직하다 85년 귀국 직후부터 파랑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해양공학자 이동영박사(46·한국해양연구소 해양환경공학실장).87년부터 4차례나 격랑속의 파랑도 현장을 답사하면서 기지건설 기초 조사등을 벌여온 이박사를 만나 그간의 연구 성과와 바람직한 파랑도 이용 방안등을 들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귀국후 폭풍에 의한 재해방지 관련연구를 하게 됐는데 현장 관측자료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태풍이 지나가는 동지나 해상에 고정 관측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됐습니다.미국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해양 한복판에 고정구조물이 있으면 해양과 대기의 경계면에서의 와동에 의한 운동량이나 열,수증기,각종 가스등의 이동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기때문에 해양및 기상예측을 더 정확히 할 수 있거든요.그러던 차에 87년 「전설의 섬 이어도」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초대돼 현지를 방문하면서 「이거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연구성과는 어떻습니까. ▲해양과학기지 건설에 필요한 설계조건 도출을 위한 기초조사와 각종 관측연구를 했습니다.정부간 해양위원회(IOC)가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는 목표로 세계 해양관측 시스템(GOOS) 구축을 제안해 와 90년부터 「국가 종합해양 관측망 구축」을 국책연구과제로 수행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고정연속 관측소의 필요성이 현실화됐기 때문이지요.97년까지 구조물 완공을 목표로 94년부터 파고 조위계 설치 암석채집 정밀수심 측량등을 했지요.과거 태풍 자료와 7년간의 파랑자료,위성자료등을 모으고 시뮬레이션해 설계 조건을 구했어요.섬주변에 등부표를 설치해 제한된 관측도 시도해 봤습니다. ­과거에도 파랑도 개발계획이 있었지요. ▲파랑도의 최초 이용계획은 1938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작성됐습니다.당시 일본은 나가사키에서 상해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부설계획을 세웠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중간 지점인 파랑도에 인공섬을 건설키로 했어요.2차대전으로 인해 실현되진 못했습니다.그후 개발계획은 87년 어업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부두 물양장등 대형시설을 갖춘 축구장만한 크기의 인공섬 건설계획을 세웠으나 이 역시 수조원이 소요되는 무모한 계획으로 판단돼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파랑도 인공섬,혹은 연구기지는 어떻게 추진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파랑도는 태풍에 의한 큰 파도로 구조물의 설계 시공이 어렵고 경비가 많이 들므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연구를 거쳐 기본 설계,실시에 들어가야 합니다.우선 해양 기상 부이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자료에 의한 기초연구를 수행해 나가고 고정 구조물은 최소한의 규모로 설치해 시범 운영하면서 충분한경험을 쌓은 후 규모를 키우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정보화 사회와 우주개발시대에 걸맞게 통신과 지구환경 모니터링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국제 위성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활용도가 넓은 만큼 국내에서는 여러 관련부처를 망라한 기획위원회가 발족돼 부처간 업무분담과 사업추진및 활용 운영방안을 협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파랑도 과학기지는 어떻게 활용됩니까. ▲정확한 해양예보와 기상예보,조류등 해양학적 연구측면은 물론 환경 감시,해상교통 안내,구난기지로서의 활용과 나아가서는 대륙붕 개발을 위한 전초기지등 다양한 활용이 기대됩니다.사실 우리나라는 육상에는 매 14㎞마다 하나씩 조밀한 자동 기상관측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상에는 기상관측소를 하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편서풍대에 있는 우리나라는 서쪽 지역의 기상 관측자료가 중요한데 여기에 기상관측소를 설치할 경우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크게 높여 국가 산업,경제에 파급효과가 클것입니다.파랑도에는 이미87년부터 해운항만청에서 등부표를 설치해 국제적으로 공표했는데 등대를 설치하면 매년 10만척이 넘게 이지역을 지나가는 선박들의 항해지표로서 국제사회에 크게 공헌할수도 있습니다.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전설의 섬」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 환태평양 시대를 맞아 전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히려는 세계화 추진 차원에서도 상징적인 계획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7년 완공계획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수대교 사고 이후 구조물의 안전성 문제가 재삼 제기됐고 예산상의 문제점도 있어 그렇습니다.우리나라는 각종 연안문제가 많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관측시스템 개선이 시급한데 해운항만청,수로국,기상청등 관련부처에서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밖에 파랑도 건설에 장애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규모에 따라 인접국가와 영토 분쟁 소지가 있고 또 환경감시를 행할 경우 인접국들을 자극할까 하는 점입니다.따라서 초기에는 규모를 최소화해 국제 분쟁을 피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획득된 자료들을 국제사회에 제공해 지구환경 문제에 한국의 역할 수행으로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게 추진하는것도 방법입니다.건설이후 유지 운영도 과제가 되겠지요. (결론적으로 이박사는 충분한 사전 준비와 국가의지,기상연구자들의 적극적 자세가 파랑도 사업의 열쇠가 됨을 강조했다) ◎파랑도 전설/폭풍만나 표류하던 한 선원이 도착… 과부들만 모여사는 환상의 외딴섬에 파랑도가 곧 「이어도」인지 과학적으로 규명할 길은 없으나 제주도의 대표적 부녀노동요인 「이어도 허라…」의 가사내용을 음미해 보면 파랑도와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특히 파랑도가 한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81해리,중국 동도에서 북동쪽으로 1백35해리에 위치한 제주도와 중국사이의 수중 암초라는 사실과 노래가사중의 「강남가는 남해항로의 절반지점에 이어도가 있다」는 내용이 부합됨을 들어 「이어도전설」을 허구로만 볼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파랑도가 설사 이어도가 아닐지라도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여인들에있어 이어도는 상상의 섬이요,사후에 돌아갈 피안의 섬이다.그것은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이어도에 있으며 자신들도 결국 그곳으로 떠날것을 굳게 믿고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어도」는 바다로 나간 남편을 잃은,과부들만 모여사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환상의 섬이라고도 일컫는다. 향토사가인 제주민속박물관 진성기 관장(60)은 이에 관계되는 전설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구전돼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먼 옛날 지금의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리 마을에 고동지라는 젊은남자가 살고 있었다.어느 해인가 중국으로 국마진상을 가게돼 고동지는 동료들과 함께 수십척의 배에 말을 가득 싣고 조천포구인 「수진개」를 떠났다. 배가 수평선쯤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폭풍이 점점 심해지면서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고 몇날을 떠다니다 마침내 어느 한 섬에 도착하게 됐다.동료들을 모두 잃은채 고동지가 도착한 곳은 바로 「이어도」였다. 이어도는 고기잡이 간 어부들이 태풍을 만나 수중고혼 되는 바람에 남자어른이 없는 이른바 과부섬이었다.고동지가 도착하자 과부들의 환영은 대단했다.이집 저집에서 다퉈가며 고동지를 묵도록해 고동지는 밤낮없이 이 과부 저 과부를 전전해가며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시뿐,날이 갈수록 무엇인가 허전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날 고동지는 처마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지는것을 보게됐다.마치 고향집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처럼 들렸다.불현듯 고향에서 밭을 갈고 멧돌을 돌리고 있을 아내와 부모형제가 그리워졌다.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솟았다. 고동지는 바닷가를 배회하며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을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이후 달밝은 밤이면 더욱 고향이 그리워졌고 고향이 그리워지면 늘 바닷가를 찾았다. 초승달이긴 해도 달빛이 유난히 밝던 어느날 밤.고동지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며 저도 모르게 노래를 읊조렸다.자신의 신세를 달래는 구슬픈 노래가락이었다. 이어도허라 이어도허라. 이어 이어 이어도허라. 이엇말 허민 나 눈물난다.이엇말랑 말앙근 가라. 강남을 가난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해라. 여기서 「강남」은 중국이며 「해남」은 바로 남해항로인즉,강남가는 길목 절반쯤에 있는 「이어도」에 내가 있으니 불러달라는 애절한 내용이었다. 이어도사람들은 이 고동지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고 많은 여인네들이 그의 처지를 동정하게 됐다.고동지의 노래를 듣고는 잃어버린 남편을 그리며 우는 과부들도 많았다.이윽고 「이어도노래」는 파도에 실려 멀리 퍼졌으며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후 고동지는 뜻밖에 중국상선을 만나 그 배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됐다.이어도에서 고동지를 섬기며 사랑했던 한 여인도 함께 따라왔다. 고향 사람들은 태풍으로 죽은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며 큰 잔치를 벌였다.고동지의 아내는 남편을 극진히 보살펴준 이어도여인을 받아들여 한 가족이 되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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