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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 직지사 ‘한국고승眞影展’

    지난 1일부터 경북 김천 직지사 설법전에선 이색적인 전시가 열리고있다. 평소 볼 수 없었던 한국 고승 65명의 진영(眞影) 91점이 빼곡하게 내 걸린 ‘고승진영전’. 진영은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져 보통땐 공개하지 않는게 원칙.스님들의 기일이나 다례 등 1년에 한두번 쯤을 빼놓곤 일반인은 물론 스님들도 쉽게 보지 못한다. 전시에 나와있는 진영들은 대부분 전국의 유명 사찰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세기 작품들.소장자들이 워낙 조심스럽게 다루어온 것들이라 전시 성사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고 전시 관계자들이귀띔한다. 직지사 대웅전을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 걷다보면 성보박물관이 나온다.성보박물관 왼쪽에 자리잡은 100평 남짓한 설법전이전시장.평소 법회가 이루어지던 곳이라 분위기도 엄숙하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고승들이 위엄을 과시한다.입구에서 맨 처음관람객들을 맞는 원효 ·의상의 진영 각 1점씩은 일본 고신지(高山寺)에서 빌어온 것들.국내엔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다고 한다.원효의모습이 조금은 세속적인모습이라면 의상은 해맑은 선승의 얼굴을 하고 있어 각자 삶대로 퍽이나 대조적이다. 원효 의상을 보고나면 불교 신도들에겐 숭배의 대상인 고승들이 각양 각색의 얼굴로 위엄스레 둘러서 있다. 송광사 보조국사 지눌 진영의 원본이라는 동화사 보조국사 진영과신륵사 무학대사,청허(서산대사)사명대사들이 나란히 서있다. 갑사가내놓은 청허 사명 기허대사의 진영은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 같은생생한 표정이다. 이밖에 절에서 만난 스님처럼 살아있는 얼굴을 한 김룡사 용암당 찬련스님과 눈을 지그시 감은 인자한 표정의 김룡사 완파당 취관 스님의 진영도 독특하다.또 설법을 할 때면 비둘기도 날아와 듣고 3년간수도를 할 때는 호랑이가 스님을 수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선암사 눌암당 식활 스님의 진영과 김룡사 성월당 스님의 진영은 다분히민화풍을 띠고 있다. 조선시대 이름을 날렸던 스님들의 진영은 전국 사찰에 산재해 있다. 청허 사명만 하더라도 전국에 각각 10여점씩 전해져 전시된 것들은각기 다른 모습이다.표충사 화담당 경화 스님의 진영엔 추사 김정희가 ”봉우리의 등불은 꽃華(화)를 토하고 산에 걸린 달은 못潭(담)에잠기는구나”란 글귀의 제찬(題讚)이 눈길을 끈다. 진영은 주로 화승(畵僧)이 그렸다고 전해지는데 전시엔 이런 화승들의 진영도 나와있다.19세기 지금의 경북 지역에서 활동했던 김룡사퇴운당 신겸과 대승사 의운당 자우 진영이 그것들이다. 한편 근 현대기의 진영들은 사진을 찍은뒤 그 사진을 보고 그린 것들이 독특하다.선암사 화산당 오선스님과 그의 권유로 출가한 동생경붕당 진영은 같은 1917년 작품이지만 경붕당의 진영이 빛에 반사되는 눈동자까지 표현할 정도로 사실적인데 비해 화산당은 만화같은 느낌의 수묵기법을 써 퍽 다르다. 이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중한 사람인 오세창이 글을 쓴 송광사 인봉당 진영과 왕가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 선암사 대각국사 진영과 금란가사도 관람객들의 발길이끊이지 않는 볼거리다. 직지사 성보박물관장 흥선 스님은 “고승들의 진영은 엄연한 문화유산인데도 관련 논문이 석사학위 논문 3편에 불과할 정도로 연구층이엷고 깊이도 얕다”며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수 있도록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천 김성호기자 kimus@
  • 한·러 수교 10주년 국제학술회의/ 기조연설

    대한매일과 한국언론재단이 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국립대에서 개최한 한·러수교 10주년 국제학술회의는 개회사에 이어 분야별로 3개의 회의로 나누어 진행됐다.서대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의 기조연설에 이어 한·러관계의 태동과 전개Ⅰ을 주제로 한 제1회의에서 최덕규 연구위원과 A.A.트로포프 러시아 극동문서보관소장이 나서 주제 발표를 했다.이어 한·러관계의 태동과 전개Ⅱ를 주제로 한 제2회의에서는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과 정성임 연구위원이,한·러수교 이후의 쟁점과 과제를 다룬 제3회의에서는 국민대 장덕준교수, 러시아 극동국립대 V.N. 안토노프 교수와 L.V.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선임연구원이 각각 주제 발표를 맡았다.한·러관계의 과거와현재 그리고 미래를 심도있게 점검해본 8명의 주제 발표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 서대숙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새천년의 한러관계1: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한·러 양국이 국교를 처음 맺은 것은 1884년 7월7일이었다.이후 양국은 1896년 2월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 등여러 일을 겪었고 러일전쟁으로 제정러시아의 영향력은 한반도에서 쇠퇴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식민지가 되자 독립운동을 위해 러시아연해주지방으로 많이 이주했다.제정러시아는 한민족의 이주를 장려하고 선열들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등에 머물렀다. 러시아혁명후 독립운동은 공산주의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분열된다.임정의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는 고려공산당을 연해주에서 처음 선보였고 레닌의 지원을 받아 공산혁명을 하려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자 일본을 두려워해 연해주의한국사람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2차대전 종전후 소련은 북한에 공산정권을 세우고 42년 동안 북한을 유일정부로 인정했다.그러다 1990년에 처음 한국과 국교를 맺고 한국정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됐다.1980년대 중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세계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소련은 이후 한반도에 두 정부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한국도 때마침 북방정책을 국책으로 삼아 중·소 등 공산진영과 국교를 맺으려 나섰다. 한·러 관계는 아직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러시아는 지금도 한반도의 두 정부를 인정하고 있고 두 정부와 수교하고 있다.지금 바야흐로 한국과 북한의 화해와 통합의 문이 열렸다.한반도의 통일은 물론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그러나 지난 50년의 분단사를 보면 한국의 통일은 한반도 인접국가들의 협조와 후원,나아가 격려가필요하다. 한국과 러시아는 앞으로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해야겠지만 앞으로 한민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과 조선이합쳐서 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러시아의 협조가 있기를 바란다.한반도에 통일이 온후 러시아와 한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와 안보 그리고 모든 면에서 협조하고 정상적인 국교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다.그러한 앞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 가볼만한 문화유적 11곳

    단풍의 계절,온 산을 불태울 듯 맹렬한 가을산과 함께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문화유적 답사 11곳을 한국관광공사 추천으로 소개한다. ◆한계사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 국립공원 장수대 지구에 위치한 옛 절터로 통일신라시대 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에 폐사되고 현재는 보물로 지정된 두 기의 석탑만 남아있다.장수대 풍광과 낙엽이 절경이다.인제군청 문화관광과(033)460-2366◆고성 건봉사 신라 법흥왕 때 세워진 사찰로 한국 4대 사찰에 들 정도로 큰 절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전소됐다가 근래 복원됐다.금강산이바라보인다.민통선 지역에 속해있지만 일반인도 들어갈 수 있다.고성군청(033)680-3545◆서운산 석남사와 청룡사 안성시 남쪽 서운산(547m) 정상에 토성인서운산성이 있고 산성 남쪽에 고려시대 고찰 청룡사가,동쪽에는 석남사가 있다.안성시청(031)670-1060◆소백산 죽령옛길 한강과 낙동강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 죽령.삼국의 각축장이기도 했던 이곳에 영주시에서 옛 자취를 되살리는 차원에서 가족 단위 역사탐방 산책로를 조성했다.영주시청(054)639-6062◆칠보산 각연사 속리산 국립공원 북동쪽 끝자락.칠보산(778m)과 덕가산(858m) 사이 그윽한 골짜기에 위치해 조용한 단풍감상을 즐기기에 그만이다.신라 법흥왕때 세워진 각연사의 수많은 문화재도 자랑거리다.괴산군청(043)830-3223◆천안 광덕사 천안시와 아산시 경계에 있는 광덕산(699m) 아래에 위치한 광덕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된 절.입구에 우뚝 서있는 호두전래사적비가 유명하며 대웅전 앞에 400년된 호도나무가 볼만하다.천안시청(041)550-2031◆천태산 영국사 충북 영동의 양산팔경 중 제1경으로 바위 암릉으로유명한 천태산(715m)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다.계곡의 기암과 울창한숲의 경치가 빼어나며 천태종 사찰로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영동군청(043)740-3225◆입암산성 삼국시대 때 축조돼 고려와 조선에 걸쳐 개·보수된 산성으로 내장산 국립공원에 속해있으며 전북과 전남의 경계를 이룬다.가을철 정상의 억새와 북쪽에서 내려다보는 호남평야의 드넓은 들녘,그리고 남쪽으로 남창계곡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장성군청(061)350-5226◆영광 불갑사 백제 침류왕 때 세워진 사찰로 불갑산(516m) 단풍이특히 아름답다.경내 숱한 문화재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식나무 군락이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영광군청(061)350-5226◆남해 용문사 육지와 연결되면서 섬아닌 섬이 되어버린 남해군에는섬답지 않게 높은 산들이 많다.남해 제1고봉 망운산(785m)이 있고,국립공원인 남해 금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호젓하고 빼어난아름다움으로 인해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호구산(560m)이 있다. ◆천왕사와 어승생악 한라산 국립공원 북서쪽 구구곡에 자리한 절로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이 절경이다.구구곡 위 봉우리인 어승생악(1,169)에 오르면 제주산록의 선연한 가을을 목격할 수 있다. 임병선기자 bsnim@
  • [매체비평] ‘안티조선운동’ 뭍에 오르다

    9월말 언론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MBC ‘100분 토론’에서 조선일보 문제를 주제로 다룸으로써 ‘안티조선운동’이 공식화된 일과 조선일보가 객관적인 북한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북한섹션을 신설하겠다고 밝힌 일이라 하겠다.주제의 신선미와 치열성,토론자의 능력과 열기에 성패가 좌우되는 100분 토론에서 조선일보문제는 열띤 토론과관심을 유도하기에 적절한 의제였다.그러나 토론의 진행과정에서 한국사회의 토론문화의 수준이 유감없이 드러난 것이 유감이다. 토론자들의 준비부족이 도처에서 드러났으며,그러다보니 근거가 부족한 무책임한 말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싸움’을 벌이는데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토론자들의 질서파괴적인 막가파식 발언과사회자의 통제력 상실로 차분한 토론에는 실패했다. 좀더 효율적인 토론을 벌이기 위해서는 토론의 세부의제를 설정하고그 의제에 따라 사회자가 조정력을 갖고 발언기회를 적절하게 배분하는 방향으로 토론의 형식을 바꾸고,내공이 다져진 토론자들을 교섭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내공이 다져진한 시민의 발언은 그 토론의 백미였다. 이 토론회는 그 준비단계부터 시끄러웠다.조선일보측은 주제선정 자체에 대하여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으며,출전을 거부하다가 결국 ‘대타’를 기용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조선일보 반대운동은 ‘강준만’,‘인물과 사상’,‘말’,‘딴지일보’(www.ddanzi.com),‘우리모두’(www.urimodu.com)로 이어져 왔다.동아일보사가 발행하는 ‘신동아’ 10월호에 안티조선문제가 등장함으로써 일차 망신을 당한 조선일보는 곧이어 시청각효과까지 갖춘 MBC 텔레비전까지 나서서 다루겠다니 그 심기가 몹시 불편했던 것 같다. 급조된 대타가 진행한 토론을 끝낸 뒤 아전인수격으로 승리를 선언하고 나선 조선일보의 행태는 목불인견이다. 결과에 대해서도 과연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승부에 대한 판단은자유지만 그날 대타로 기용된 ‘선수’들의 역량은 기대 이하였다.조선일보측을 가장 열심히 대변했던 한 선수는 다양한 지식은 가지고있지만 그것을 적절한 논리구조에 따라 꿰어맞추는 능력이 현저히 뒤떨어졌으며, 다른 선수는 토론의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사오정’ 에지나지 않았다.이들은 조선일보를 대변하고 토론상대와 국민을 설득하기에는 적절치 못했다. 조선일보 내에 그보다 훨씬 더 잘 정리되고 언변도 좋은,그래서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텐데,그좋은 인력자원들은 어디에 쓸려고 아껴두었는지 궁금하다.회피는 패배다.열린 공간에서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알리고,오해가 있으면 풀고 설득하며,잘못이 있으면 수정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토론회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선일보는 북한을 “통일시대 협력파트너”로 표현하면서 북한섹션을 신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안티조선측은 조선일보의 통일문제에 대한 시각이 지나치게 수구·극우적이며 냉전·반통일적이라 비판하고 있다.그런 보도태도는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었지만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긴장완화의 시대에는 너무도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신설될 북한섹션이 어떤 방식으로 북한·통일문제를 다룰지 알 수 없지만,문제는 보도의 양이 아니라 그 시각과 한민족에 대한 애정 여부다. 변화를 위해서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적어도 조선 내부에서 그동안수구적이고 냉전적 분위기를 만들어 왔던 일부 사람은 교체되어야 한다. 동일한 사람들이 말을 바꾼다고 해서 누가 그것을 진실한 말이라고믿겠는가.어쨌든 조선일보 내부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긍정적 변화를 기대해 본다. 류한호 광주대교수·언론정보학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0)美洲 거점 워싱턴DC·미디아市

    [필라델피아·워싱턴DC 김삼웅주필] 8월초 필라델피아시는 공화당전당대회 관계로 온 시가지가 시끌벅적하고 호텔방의 예약도 어려웠다.변두리 초라한 모텔에서 자고 오전 일찍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아시에 위치한 서재필박사 기념관을 찾았다. 대지 1.5에이커, 건물 4,000평방피트의 이 건물은 서박사가 1925년에 입주하여 1951년 서거할 때까지 25년동안 조국의 독립과 근대화를염원하며 활동의 근거지로 삼아 기거했던 곳이다.이 유택은 1987년서박사기념재단이 구입하여 기념관 뿐만 아니라 한국이민 역사에 관한 도서실과 연구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박사가 쓰던 유물 가운데 역사적 유품은 이미 한국독립기념관으로이관되었으며 그밖의 유품들은 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이지영사무총장의 설명이다.유물중에는 서박사의 손떼묻은 성경책과 일기장이 전시돼 있고 192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선생과 찍은 사진도걸려있다. 정원이 한국식으로 꾸며진 것이나 한국산 대나무를 심은것 등은 서박사의 조국사랑 정신을 기리는 것이라 한다. 서박사는 김옥균·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18세 나이로 병조참판이 되었으나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해 워싱턴대학 의과대학에 입학,세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미국과 인연을 맺었다.서박사는 1894년 갑오경장때 귀국하여 독립협회를 창립하고,1896년에는 ‘독립신문’을 창간해 국민의 독립정신을 드높이는한편 사대의 상징인 영은문 터에 독립문을 세웠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책동으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3·1운동 후에는 한국문제를 세계여론에 호소하는 한편 ‘한인친구회(Friends of Korean)’를 조직,재미교포들을 결속해 독립운동후원회를 만들었다.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필라델피아에 ‘한국통신부’를 두고 활약했다. 1922년에는 워싱턴 군축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연판장을 돌렸고 1925년에는 호놀룰루의 범태평양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일본의 야만성을 폭로했다.독립운동으로 파산상태에 이르러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강의하고 광복후 80세의 노령으로 미군정 고문으로 초빙되어귀국,노혁명가로 국민의 추앙을 받았으나 시국의 혼잡함속에서 세번째로 미국으로 건너가 여생을 마쳤다. 서박사의 미국내 독립운동 사적지로는 1914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개최한 ‘한인자유인대회’의 장소와 1919년에 창설한 ‘한국통신부’건물을 들수 있다.한국통신부는 상해 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산하인데도 불구하고 서박사의 노력으로 필라델피아에 본부를 두고 독자적인 조직으로 활발하게 대미선전 활동을 벌였다.1919년 한국통신부는 필라델피아 체스넛 1524번지 웨이트맨 빌딩 825호에서 ‘한국평론(Korea Review)’을 발행하면서 국제사회에 일본 식민통치의 부당성과 한국독립의 당위성을 선전했다. 서박사는 1920년 9월부터 한국통신부 바로 옆 체스넛 1537번지에 Philip Jaisohn Company라는 인쇄소와 문방구점을 운영하면서 ‘한국평론’을 발행하였다.8층 건물이었던 한국통신부 건물이 현재는 3층 건물만 남아 GAP outlet라는 의류체인점이 들어있다.인쇄소와 문방구가있던 건물도 신축되어 약품상이 입주해 있다.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등 유학생과 임병직 선교사 등 150여명이 모여 ‘한인자유인대회’를 열었던 필라델피아 17가 리틀극장은 지금도여전히 연극 전용극장으로 이용되어 고색창연함을 보여준다.필라델피아 역사보존회가 승인한 역사보존물(제391호)로 지정돼 있다.서박사 일행은 한인자유인대회에서 임시정부 수립과 한국독립을 천명하고결의안을 채택한 다음 미국독립기념관까지 태극기 퍼레이드를 벌이고 한국통신부 설치를 결의했었다.서박사는 이 대회에서 의장으로 추대되었다. 필라델피아 미디아시 로즈 트리공원에는 서박사의 광복운동과 생애를 기리는 서재필박사 기념비가 세워져 이웃주민들의 발길을 멈추게한다. 대한제국 정부는 1880년대부터 대미외교를 중시하여 워싱턴시에 주미외교의 본산인 주미공사관을 설치했다.처음에는 박정양 공사가 워싱턴시의 스트리트 1513번지 3층 건물을 임대해 쓰다가 1891년 시 중심지인 15가 1500번지의 독립빌딩을 당시로는 거금인 2만5,000불을주고 매입, 공사관으로 사용했다. 현재 백악관에서 동북쪽으로 길게 뻗은 버먼트 에버뉴가 13 번가와교차하는 노건로타리에 위치한다.주소가 로건 15번지다.이 공사관은대한제국이 국권을 일제에 빼앗길 때까지 공관으로 사용하다가 강제합병과 함께 주미일본대사에게 넘어갔다. 대한제국 황제 이희의 명의로 등기되었던 이 건물이 1910년8월29일주미일본대사 우찌다에게 공사관 건물과 토지일체가 어떠한과정을 거쳐 넘겨졌는지는 미궁으로 남아있다. 소유권이 넘어가고 곧미국인 홀트에게 매각되어 현재는 개인소유 주택으로 사용중이다. 워싱턴 한인연합회에서는 1998년 이 건물의 매입을 시도했으나 예산부족으로 중단했다.한말 풍운과 함께 조국의 비극을 상징하는 유서깊은 이 건물을 현지 교민의 성금과 본국정부 지원으로 매입하여 사료관 등으로 사용했으면 한다.붉은 벽돌조 콘크리트건물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영사관의 한미외교사료실장을 맡아 근현대 한미관계사의 사료를 수집·정리하고 있는 노령의 양기백 박사는 직접 현장을 안내하면서 이 건물의 역사를 증언한다. 워싱턴구미위원회는 1919년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함께이승만이 대통령에 선임되면서 이승만이 프랑스 파리의 주 파리위원회와 필라델피아 대한민국 통신부를 통합, 워싱턴구미위원회(구미위원부)를 조직하고 김규식·이대위·임병직 등이 업무를 수행케하였다 워싱턴 구미위원회는 창설때부터 1922년까지 노스웨스트 H스트리트1314번지 콘티넬탈 드르스트 빌딩에 본부를 두고 외교활동을 벌였다. 워싱턴시 중심가에 있는 이 빌딩은 그후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1951년에 신축한 뉴욕 에버뉴 장로교회가 웅장한 모습으로 세워지면서 옛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구미위원부는 1922년에 개최된 워싱턴 국제회의를 겨냥한 외교활동에서 별 성과를 올리지 못한 뒤로는 활동이 현저하게 위축되었으며본부도 몇차례 옮겨 다녔다.1927∼1931년 구미위원회 본부였던 파크로드 1310번지의 붉은 2층 양옥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kimsu@
  • 오늘 단기 4333년 개천절 되짚어 본 단군

    ‘단군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신화의 우상인가 아니면 역사적 실체인가’최근 언론사 사장단과 문화계 인사 등 남측 인사들의 잇따른 북한 단군릉 방문을 계기로 강단 학자와 재야 사학자들의 논쟁이 다시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또 단군학회는 2일 단기4333년 개천절을 앞두고 단군을 중심으로 한 상고사 관련 교과서 개정을 위한 대규모 학술대회를 열어 학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가열되는 단군논쟁은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단군이 신화적 존재든 역사적 사실이든 그 실체를 규명해야 하며 그것이 민족구심을 위한 사상정립의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요체다. 우선 실체 규명의 차원에서 일고있는 단군실재론 재조명론은 주류학계의 입장을 강하게 비판한다.현행 초·중·고교 국사교과서에 반영되고 있는 주류 학계의 고조선 건국과 단군조선의 기원,강역에 대한 기술이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이들은 ▲초·중학교 교과서가단군의 건국과 관련 “곰이 웅녀가 돼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는 신화화된 내용만을 싣고 있고 고교 교과서에선 ▲고조선의 실재를 인정하면서도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 규정하며 ▲한반도의 청동기를 기원전 10세기로 보면서 단군 건국은 기원전 24세기(2333년)로 적고 있음은 모순이라고 말한다.기원전 2500년경의 역사를 입증하는 고조선의 고고학적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는데도 이같은 기술이 나오고있는 것은 주류 학계가 일제의 황국사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재야학자들 사이에선 단군조선의 세력범위에 대해서도 만주·한반도 일대에서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있다. 이같은 논의는 최근 북한의 접근방식과 맞물려 더욱 확산되고 있다. 북한의 학계는 단군이 민족의 시조임을 부정했으나 단군릉에서 5,011년 전의 단군유골이 출토됐다며 93년 단군릉발굴보고를 내고,94년 단군릉을 대대적으로 재건,공개했다.이후 관련유적과 기념물을 정비하면서 매년 전 학계를 동원해 단군과 상고사 학술회의를 개최해오고있다. 남측 학계는 이에대해 “정치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시각이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남북간 관련정보를 공유하고 양측 주장을 검증할 공동연구의 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않게 제기되고있다. 또다른 논의는 단군의 역사적 실체를 재해석,민족통일과 세계의 미래에 기여할 보편적인 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단군은 학파와 종교를 초월해 공유할 수 있는 민족 정체의식을 확립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같은 단군의 실체규명에 대한 논의는 더욱번져나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근 논의가 ▲학문으로의 기본요건에 충실해야하고 ▲단군의 모습을 시대과제에 맞게 재해석,민족성원들을 실천의장으로까지 이끌어내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동력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즉 민족에 대한 애정은 덕목이 될 수있지만 그 애정이 과학적 엄격성을 약화시키는 명분이 돼선 안된다는것이다. 한말·일제기의 단군은 저항민족주의의 요구에 부응했지만지금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현재 단군에 대한 인식은 혼란 그 자체다.강단 학자들 간 뿐만 아니라 ‘강단학계’와 ‘재야학계’,그리고 국민들의 편차가 너무 크다. 실제로 최근 월간 ‘뉴휴먼丹’이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54%가 단군을 역사속의 실존인물,34%가 신화속의 인물이라고 답했다.종교별로도 개신교신자는 32%만이 실존인물이라고 한 반면 비개신교 신자는 50∼68%가 실존인물로 보고있는 것으로 나타나 큰 편차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영훈 교수(정치학)는 “지금의 단군연구는 전체적으로 만연한 혼란상 정리를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학계는 엄격한 사료를 근거로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해 문을 여는 개방적인 자세로 공동연찬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교과서에 나타난 단군. “1970년대 시험문제를 1990년대 교과서 내용에 근거해 채점한다면정답이 바뀌거나 문제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도 적지않다.지난 20∼30년 동안 국사교과서의 무책임성을 교정하지 않고 되풀이 한다면 언젠가는 이 문제로 소송이 벌어지는 사태도 올 것이다” ‘한국 상고사의 쟁점-국사교과서 개편방향과관련하여’를 주제로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개천절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정영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 가운데 일부다. 우리나라는 국사교과서를 1974년부터 국정으로 편찬하고 있다.정교수의 지적은 그동안 우리 국사교과서가 다루어 온 상고사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문제점은 고조선 및 단군에 대한 기술에서도적지않게 나타난다. 인문계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고조선의 중심지를 놓고 74년판은“고조선의 옛 지역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면서 지도에 낙랑을 평양지역에 표기함으로써 중심지가 평양지역임을 나타냈고,이런 서술은 82년판까지 이어졌다.90년판부터 “고조선은 랴오닝(遼寧)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인접한 군장사회들을 통합하면서 한반도까지발전하였다”고 하여 중심지가 이동해왔음을 밝혔다.96년판부터는 “초기에는 요령지방에 중심을 두었으나,후에 대동강 유역의 왕검성을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면서 발전하였다”고 이를 분명히했다. 단군이 고조선의 건국자인가 하는문제를 놓고도 미묘한 차이가있다.74년판은 그저 단군신화가 존재했고 단군신화가 고조선사회를이끌어가는 세계관의 구실을 했다고만 언급했다.그러나 82년판에 단군왕검은 제정일치 시대의 족장이었다고 적음으로써 고조선의 건국자가 단군일 수 있음을 암시했다.기원전 2333년이라는 건국연대를 소개했다는 것은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되지만,단군왕검을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해석함으로써,고조선의 건국시조로 분명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이같은 서술경향은 90년판과 96년판에도 이어지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북한 단군릉 답사기. 98년 11월 첫 방북취재 중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 위치한 단군릉을 방문했다.북에 오기 전에 사진으로 보기는 했지만 능입구에 도착한 순간 그 규모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눈부신흰색 화강암 계단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고,그 정상에는 피라미드를연상시키는 단군릉이 우뚝 솟아 있었다.그런데 능 입구에 모서리 일부가 떨어져 나간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높이는 2m 정도.1936년에 세워진 ‘단군릉 기적비(紀蹟碑)'였다.비석에는 수많은 한자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일제가 이 곳에 위치한 단군릉을 파괴하자 이에 분노한 뜻있는 조선인 인사들이 단군릉 수축기성회(修築期成會)를 조직,단군릉을 보존 관리하기 위한 기금을 모았는데 성금을 기부한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었다.기자는다시 한번 놀랐다.그러면 일제하에서도 이 곳에 단군릉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는 말인가.해설 강사는 일제하 뿐만이 아니라고 했다.조선시대에 간행된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평양의 단군릉에 대한 기록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숙종·영조·정조 조에 강동의 단군묘를 수리,관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다.또한 단군릉 주변의 지명도 대박산(밝은 산),단군호,단군동,아달동 등 단군과 관계있는 것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북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평양 단군릉의 실재 여부를 두고 논쟁이 많았는데 김일성 주석이 단군릉으로 알려진 강동군의 작은 무덤을 실제로 발굴해 진위를 과학적으로 밝히라는 교시를 내렸다. 역사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한 결과 사람의 뼈가 나왔는데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었다.유럽의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서 전자스핀공명법으로 뼈의 연대를 추정한 결과 5011년전(오차 267년)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와 이 뼈를 단군의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해설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화강암 계단을 올랐다.계단은 무려 279개.돌계단 중간에는 선돌을 연상시키는 돌기둥이 대문처럼 세워져 있었고 양쪽 끝으로는 단군의 네 아들과 여덟명의 신하상이 능을 호위하듯 서 있었다.모두 눈부신 흰색 화강암들이었다.279개의 계단을 다오르자 한 변이 50m, 높이 22m,9층 계단식 무덤인 단군릉이 위용을드러냈다.1994년에 준공되었음을 기념해서 모두 1,994개의 화강암 돌로 짜맞추었다고 했다.이처럼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건축하는 것은북의 건축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단군릉의 모양은 광개토왕릉으로 추정되는 퉁거우의 장군총을 본뜬것이라 했다.무덤의 네 모서리에는 코끼리 만한 돌호랑이상이 세워져있었고, 그 앞에는 높이7m의 비파형 동검이 서 있었다.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 무기다.능 뒤쪽에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었다.안으로 들어가보니 이곳에서 발굴된 86개의 단군과 그아내의 뼈가 나무관 내부의 밀폐된 유리관 속에 보존되어 있는데 빛과 습기·공기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유골은 참관시키지 않는다고했다. 평양 단군릉에 대해서는 실재성에 대한 근거도 있고,또 그에 대한반론도 있다.이 문제는 앞으로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합동연구로 밝혀내면 될 일이다.또한 북이 ‘민족의 시조' 단군릉을 그처럼 거대하게개건한 것은 ‘평양'이 아니라 ‘민족'을 내세우기 위함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합리적인 시각일 것이다. 평양 신준영기자 junyoung@
  • 美 프레드 앨퍼드교수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한국인에 관한 이야기는 더이상 낯설지 않다.그것은 멀리 17세기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구한말 비숍 여사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타인의 시선을 유난히 의식하는 한국인으로서는 늘 관심사가 아닐수 없다. 최근 출간된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C.프레드 앨퍼드 지음,그린비 펴냄)는 한 미국인 교수(메릴랜드대 정치학과)의 한국인에대한 특별한 시각이 담긴 책이다.원래 제목은 ‘Think No Evil(악의부재를 생각한다)’.원제가 암시하듯 저자는 한국인의 심리에는 ‘악(惡)’의 개념이 없다는 데서 출발,한국인의 자아와 세계화를 펼쳐가는 한국인의 심리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악’이란 다분히 서구적인 개념이다.서구의 이원론적 사고의 산물이다.서구는 그리스도교라는 유일신앙의 역사를 전개해오면서 악을탄생시킬 수밖에 없었다.전지전능한 신으로부터 파생된 사탄이라는존재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에 비해 동양사상에서는 조화와 하나됨을강조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세계에서 악이 생겨날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도 악이 존재하지 않는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저자가 말하는 ‘악의 부재’는 어디까지나 추상화된 개념,추상적으로 정의하고 이해하는 개념으로서의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예컨대 한국사람들이 ‘나쁜 날씨’‘나쁜 친구’‘나쁜 물건’이라고 하는 말에는 그것을 하나로 묶을공통점이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나아가 ‘죄가 밉지,사람은 밉지 않다’는 식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악의 정체를 스스로 은폐하며 그책임소재를 모호하게 만드는 ‘죄악’이라는 비판도 곁들인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두 차례 한국을 찾아 250여명과 인터뷰를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세계화를 일종의 악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냈다.세계화는 과연 악인가.저자에 따르면한국의 세계화 논의의 핵심에는 집단적 환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화는 정(情)에 기초한 모든 것을 순전히 도구적인 관계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두려움의 환상이다.막스 베버는‘정’을 비합리성의 전형으로 보았다.저자는 이러한 속성의 정을 그토록 부여잡고있는 한 진정한 세계화의 길은 요원하다고 강조한다. 마치 조선 개화기 때처럼 한국사람들은 동도서기(東道西器)나 구본신참(舊本新參)혹은 계지술사(繼志述事)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끝으로 세계화를 계몽과 연관짓는다.그가 말하는 계몽이란칸트가 이야기한 바 ‘발언 또는 대화로서의 계몽’이다.남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생각이라도 공감을 얻기 힘들다.칸트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인간은 ‘남들과의 공동체 속에서’가장 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러한계몽에 대한 실험이 성공하려면 선택의 원칙과 유형을 만들어야 한다.세계화 또한 그런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남경태 옮김,1만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강초현선수 충남대 간다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강초현선수(18·유성여고)가 집 근처인대전 충남대에 진학키로 최종 결정했다. 2일 대전시체육회에 따르면 강 선수는 지난달 30일 오후 유성여고교장실에서 지도교사 강재규(姜在奎)감독,임창학(任昌鶴)교장,김광식(金光植)대전시체육회 사무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충남대 입학 지원서를 작성하고 서명했다. 몸이 불편해 집에 남아 있던 강 선수의 어머니 김양화씨(40)도 동의하고 이들이 들고온 지원서에 서명했다. 강 선수는 “홀어머니를 보살피고 대전국립묘지에 모셔진 아버지 영령을 지키면서 학업과 선수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충남대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밝혔다. 충남대는 강 선수에게 4년간 장학금을 지급키로 했으며,강 선수는졸업 후에도 유성여고 사격장에서 강 감독과 함께 훈련을 계속하기로했다. 지난 5월 한국사격연맹으로부터 입학 지원서를 받은 강 선수는 당초고려대와 한국체육대를 두고 진로를 고민해왔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기고] 日방송 개방 앞서 청소년 문화수용교육 시급

    지난 6월 3차 개방으로 일본 대중문화는 사실상 전면 개방됐다.대중문화 유통의 가장 중요한 창구인 TV방송의 경우 보도,스포츠,다큐멘터리 영역만 제한적으로 개방했지만 전면 개방은 ‘택일’만 남겨놓은 상태이다.멀지 않아 우리는 안방극장에서 일본의 쇼와 코미디,드라마 같은 TV 프로를 볼 수 있게 됐다. 이미 일본 대중문화는 여러 공식,비공식 경로를 통해 들어와 있고일본과 2002년 월드컵을 공동개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조건 ‘쇄국’을 주장할 이유는 없다.다만,개방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해도예상되는 사회적,문화적 영향과 대책을 꼼꼼히 따져보는 절차가 생략된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다. 대중문화 영역은 시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됐기 때문에 정치적 힘이나 산업적 이윤의 논리보다 삶과 문화의 논리가 선행되어야한다.특히 일본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에게 방송을 비롯한 일본 대중문화의 전면개방은 자칫 가치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큼에도불구하고 이에 대한 ‘미디어 교육’ 차원의 별다른 논의가 없는 것은 큰 문제다.방송이 개방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국사회는 이미 일본문화가 넘쳐났다.뿌리깊은 일본어 잔재,노래방,전화방,PC방,일본풍의 가요,만화영화,팬시상품,국적 불명의 패션과 염색머리,신발,담배에 이르기까지온통 일본스타일 투성이다.게다가 신세대 청소년들의 경우 의식과 생활양식,가치기준에 이르기까지 강하게 일본 영향을 받고 있다. 몇몇 일본문화 수용 관련 연구를 보면 청소년들은 이미 초등학교때부터 만화나 비디오게임,학용품 등을 통해 일본문화를 광범위하게 접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주로 친구들과 미디어이다. 또 많은 청소년들은 스스로 일본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받은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일본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지만 일본 문화상품이나 오락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일본방송이 전면 개방되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일본문화에 노출된다. TV를 통해 일본문화를 접하는 것은 인터넷이나 만화,게임 등을 통해개인적,음성적으로 접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국내 청소년들의경우 정상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접촉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주체적 소화력도 약한 편이다.그렇기 때문에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관련해 청소년 미디어교육은 일본문화,일본 미디어에 대한 맹목적 비판교육이 아니라 포괄적 문화수용 교육을 지향할 필요가있다. 문화개방과 경쟁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자(自)문화 정체성에 대한 ‘반성’의 능력과 다른 문화에 대한 변별력 있는 ‘수용’이기때문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계기로 국내 청소년 문화 수용교육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와 반성,청소년 ‘눈높이’,교육의 적극성과 투명성,민간주도를 통한 획일성과 관료주의 극복,영역별 전문성과 사회적 통합성이다. 지금까지 국내 청소년 관련 미디어교육은 국가나 학교와 같은 공공부문보다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많은 부분을 담당해왔다.조만간 정치적,산업적 필요성에 의해 일본 방송을 비롯한 대중문화가 전면 개방된다.지금까지 일본문화는 정부와 무관하게 비공식적으로 유통됐고이에 대해아무도 공식적으로 책임지지 않았다.그저 청소년은 ‘보호대상’이기 때문에 유해환경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난무했을 뿐이다. 이제는 우리사회의 관계자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국가의 필요성에 의해 개방했으니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야기다.때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관련하여 정부,미디어,시민사회,학교와 가정,전문가 집단 등 모든 관련집단이 청소년 미디어 교육,청소년 문화수용 교육에 대한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영목 방송영상연구정보센터 수석팀장.
  • [외언내언] 三聖祠 복원

    이땅 곳곳에 남은 단군 유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였다.환인·환웅·단군 등 3대(代)의 성인을 모신 이 신묘(神廟)는 고려 초기인 1006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역사가 오랜 유적이다.조선 태종때 이를 폐지하고 단군제사를 평양 단군릉으로 합치니 황해도에 오랫동안 나쁜 병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1472년 성종이 전면 보수하고 제사를 봄·가을로 지내게 했다.영조·정조 때도 임금이 직접 보수를 명하거나 축문을 보낼 정도로 국가가 제사를 주관한 단군 숭배의 현장이었다. 그런데 일제(日帝)는 1916년 삼성사를 파괴한다.추석날 대종교 초대 교주인 나철(羅喆)이 이곳에서 제천의식을 올리고 자결하자 이를 빌미로 헐어버렸다.한민족의 뿌리를 자르려면 단군의 실체를 부정해야하므로 일제는 평소 삼성사를 눈엣가시로 여겼다.그런데 나철이 자결해 민심이 동요하니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일제는 이후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해 한민족 역사를 뿌리 없는 것으로 만들었고 그폐해는 지금껏 이어져아직도 학계에서는 단군의 실재 여부를 논란거리로 삼는다. 그 삼성사를 북한이 복원해 최근 성대한 준공식을 가졌다.조선중앙방송은 이를 보도하면서 “삼성사는 고조선 시기부터 민족의 시조 단군을 숭상해 제를 지내온 역사가 가장 오랜 사당”이라고 소개했다. 보도가 간략해 ‘고조선 시기부터 존재했다’는 주장이 무엇에 근거하는지 알 수 없지만 삼성사 복원은 어쨌든 축복할 일이다. 북한은 1993년 10월 평양시 강동군 강동읍 대박산 단군릉을 발굴,5,011년(서기전 3018년)된 단군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밝혔다.이는 서기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삼국유사’ 기록보다 그 연대를 700년 가량 끌어올린 주장이었다.당시 남한 학자들은 대부분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보강하려는 정치적인 결정”이라며 냉소적인반응을 보였지만 일부에서는 북한에 비해 지나치게 소극적인 우리의고대사 연구 자세를 우려하기도 했다. 이제 한민족은 분단의 역사를 딛고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의 출발점에 섰다.1,000년 넘게 국조(國祖)로 추앙받아온 단군은 우리의 뿌리를 상징하는 존재로 민족 동질성 회복에 큰 몫을 할 것이다.그런데도 우리사회에서는 단군상을 훼손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고교 국사교과서조차 ‘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전하는 단군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시조 신화’(27쪽)라고 격하하고 있다.나흘 뒤면 개천절이다.학자건,보통사람이건 ‘우리에게 단군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뉴스피플 10월5일자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9월26일 발매,10월5일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허물어 버린 ‘경계 소멸 현상’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남녀,미추,인간과 기계 그리고 현실과 가상의 구분마저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 경계소멸의 현상과 그이유를 집중 취재했다. ‘영원한 실세’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의 낙마가 야권 차기구도에영향을 미칠 ‘박지원 사퇴 후폭풍’과 ‘인간 박지원’의 풀스토리도 집중 해부했다.아울러 구속된 이운영 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의 ‘세치혀’에 세인들의 관심이 쏠려있다.이운영씨의 도피행각,박전 장관의 의혹,‘국사모’의 실체 등을 낱낱이 파헤쳤다. 제2차 공적자금 40조원을 새롭게 조성하면서 정부가 단호한 구조조정 의지를 보이고 있다.1차 금융구조개혁의 실패 원인과 제2차 금융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한 선행조건을 진단했다. 3세대 이동전화인 IMT-2000의 ‘서비스 연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기술표준’을 둘러싼 갈등의 원인을 파헤쳤다. 또 현대차의 대우차 인수 컨소시엄 파트너인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인수전 불참을 시사하고 나서면서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선 현대의 묘수찾기도 심층 취재했다.
  • 육상조·박혜룡씨 공모 가능성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씨가 체포된 지난 21일부터 시작된 검찰수사를 중간 점검해 본다. ◆대출보증압력여부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부 장관에 쏠렸던 외압의혹은 상당부분 해소되고 있다.검찰은 ▲당시 아크월드사 사업본부장육상조(陸相朝)씨가 지난해 2월23일 대출보증 신청서를 받아가며 이씨에게 건넨 명함에 5억원 증액 대출요구라는 이씨의 자필 흔적이 있고 ▲3월11일 박씨 형제가 이씨에게 대출보증 부탁을 하고 ▲같은 달13일 육씨가 이씨에게 대출보증 사례 명목으로 케이크상자를 전달했다는데 주목하고 있다.박씨 형제가 대출보증을 부탁하기 이전인 2월초에 박 전장관이 이씨에게 전화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검찰은 육씨가 3월말 대출보증을 위해 돈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큰 케이크를 전달하고,성대묘사에 뛰어난 점을 감안,육씨의 ‘자작극’이나 육씨와 박씨의 공모 가능성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사표종용여부 검찰은 이씨가 최수병(崔洙秉) 당시 신보 이사장과손용문(孫容文) 이사가 박 전장관이나 청와대 사직동팀의 지시를 받아 사표를 종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3가지 가능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최 이사장이 박 전장관이나 박주선(朴柱宣)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지시를 받고 사표를 종용하거나 ▲최 이사장과 손 이사가 회사 차원에서 사표 제출을 요구하거나 ▲신보 임원들이 사표 강요나대출보증압력을 하지 않은 경우 등이다.검찰은 당시 임원회의에 참석했던 정모 전이사(현 감사)가 “최 이사장이 이운영씨의 사표를 종용했다”며 모신문사와 인터뷰한 사실을 감안,회의에 참석했던 손이사(전무)와 백모 전무(감사) 등과 대질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사직동팀 내사압력 이씨는 고위층 지시에 따른 괘씸죄 차원의 ‘청부수사’라고 주장하지만 이씨의 비리를 제보한 김모차장은 “대출보증시 사례비를 꼭꼭 챙기고 자신을 따돌렸던 이씨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후배를 통해 사직동팀에 제보했다”고 말했다.전 사직동팀장 최광식(崔光植)씨나 사직동 관계자들도 “이모 경정이 제보를 접수해정당한 절차에 따라 내사에 착수했다”고 진술하고 있어 이씨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배후세력있나 이씨의 도피를 도왔던 송영인(宋永仁)씨가 안기부 해직 직원들의 모임인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의 총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사모 일부 회원들의 배후 지원설이 제기됐지만 회원들은 정식 기자회견까지 열어 이씨와의 관련을 부인했다.이씨의 도피를 도운송씨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그러나 검찰은 이씨의 기자회견에 국사모 회원 2∼3명이 참여했다는 점을 중시,배후세력 규명에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 南北 실무접촉서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안 의견접근

    25일 남북경협 첫날 실무접촉에서 양측은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제도적 장치인 투자보장과 이중과세방지 합의안에 대해 원칙적인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담에서는 북한이 당초 안건으로 상정된 4가지 안건 중 투자보장 등 2가지 합의안만 제시했지만,송금보장과 투자자보호 등 경제협력을 위한 기본방향은 양측이 서로 일치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재정경제부 이근경(李根京)차관보는 오전 회담을마친 뒤 브리핑을 통해 “북측이 국제관례에 입각해서 민족내부의 특성을 반영한 합의안을 작성해 양측안이 공통점이 많았다”고 밝혔다. 북측 수석대표인 정운업(鄭雲業) 민족경제연합회장은 기조연설에서“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합의서를 맺는 것은 북남 경제인들 사이에진행되고 있는 여러 경제거래들과 앞으로 투자와 경제협력관계를 쌍방 당국사이에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담보해야 하는 북남 경제협력 발전의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는 절실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은 26일 이틀째 회담을 모두 마친 뒤 회담결과에 대한 공동보도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성수기자 sskim@
  • 모모세 ‘한국은 변했다‘새저서 출간

    [도쿄 연합]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따라잡는 18가지 이유’라는저서를 통해 한국 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던 모모세 다다시(百瀨格·62)전 한국 토멘 사장이 최근 일본에서 ‘한국은 변했다. 일본은 어떻게할 것인가’라는 책을 출간했다. 모모세씨는 이 책에서 1997년 ‘18가지 이유’를 펴낸 이후의 한국사회 변화와 새 한일관계를 조명,양국이 함께 손을 잡을 경우 동아시아의 ‘새로운 번영’을 일궈낼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반일 교육을 많이 받았던 50,60대의 한국인이 변했음을느낀다며 특히 이같은 경향은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지도층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나 이 책에서 한국이 한때 “대일(對日) 카드의 하나로 이용했던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한국에서 과거의 일로 돼 버렸다”고지적하는가 하면 한국을 국제관계나 안보면에서 일본을 지원해 줄 가장 유력한 ‘응원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는 등 다분히일본 중심적인 사고도 드러냈다.
  • 보훈처, ‘문헌·논문목록집’ 발간

    국가보훈처는 최근 ‘일제침략 및 독립운동관련 문헌·논문목록집’을 제작,전국의 공공도서관과 산하 보훈관서에 배포했다.‘목록집’은 국내외에서 발행된 독립운동 관련 문헌과 논문목록을 소장 기관별로 정리하여 연구자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찾는 후손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든 것. 수록내용은 국립중앙도서관,국회도서관,국사편찬위원회,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에 소장된 문헌목록과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제공하는전국주요대학소장 도서목록,홍익대 역사교육과 역사서지,정신문화연구원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독립·순국·항일·배일·의병·일제등의 용어로 검색한 내용을 재편집한 것이다. 따라서 ‘목록집’에는 각 기관에서 실제로 소장하고 있는 자료 가운데 일부가 누락되었거나 또 독립운동과는 다른 자료가 수록되었을 가능성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번 목록집은 국내에 산재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한 군데모아 간행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편집을 맡은 공훈심사과 송권면 사무관은 “목록집이 근현대사 연구자들의 연구작업에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수록자료는 총 2만3,916건.목록집은 716쪽 분량이며,300부 한정제작으로 비매품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국사모“李運永씨와 무관”송영인씨 행동은 사적인 것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모임인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국사모)’ 회원 10명은 24일 서울 서초구 서초2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출보증 외압사건의 이운영씨와 국사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이 모임의 회장 서일성(徐日聖·57·전 국정원 의정부출장소장)씨는“검찰에 수배중인 이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송영인씨는 국사모의 평회원으로서 대학 동문인 이씨를 개인적으로 도운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국사모’·東大동창회 간부 포함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52)씨를 ‘개인비리’혐의로 구속,확실히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본격적으로 이씨의 배후세력 규명에 나섰다. 검찰은 24일 이씨의 동국대 동문인 오홍명씨(59)를 ‘범인은닉’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이어 ‘국사모’(국가사랑모임) 총무대리인 송영인(宋永仁·전 국정원 제주지부장)씨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서울지검 특수2부(부장 李德善)에서 1명,특수3부(부장 金佑卿)에서 이충호(李忠浩) 부부장검사 등 검사 3명을 충원,배후세력 규명을 위한 본격수사에 착수한 상태. 검찰은 이씨 배후조종세력을 일단 두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동국대 총동창회 일부 간부들과 이씨가 참여했던 서클 ‘구농동우회’ 등이씨와 개인적 연분이 깊은 집단이 하나이고 국사모 등 이씨와 연관성이 없으면서도 이씨의 기자회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정치색 짙은 세력이 또 한 축이다.이씨와 학연으로 연결된 부분에 대한 수사는크게 확대되지는 않을 것같다.이와 관련,검찰 관계자는 “동국대 관련 인사들은 동문인 이씨의 호소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던것 아니냐”고 말했다.그러나 국사모 등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강도높은 수사가 진행될 전망이다.이와 관련,검찰은 관계기관으로부터국사모 등 수사대상에 관한 자료를 넘겨받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검찰은 “범인은닉 혐의와 관련해 더 부를 사람이 있다”고 밝히면서 이씨 기자회견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국사모 회원 2∼3명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정치권으로의 수사 확대 여부는 다소 유동적이다.이씨의 배후 논란이 지난 20일 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 의원의 발언으로 촉발된 측면이 있지만 검찰로서는 섣불리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 여부를 확정하기 어려운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에 따라 검찰은 ‘외곽’에서부터 차근차근 배후의 실체로 접근하는 수사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박홍환기자 stinger@
  • 시드니 취재석/ ‘금메달 지상주의’이제 그만

    ‘금메달 지상주의’는 이제 그만’-. 종반으로 치닫는 시드니올림픽에서 한국이 이틀째 금메달 사냥에 실패하자 선수단 관계자와 응원단,매스컴의 관심은 온통 언제 5번째 금메달이 나오느냐에 쏠리고 있다. “레슬링과 태권도에서 5∼6개가 쏟아질 것이다” “배드민턴과 유도가 금메달을 까먹는 바람에 5회연속 종합10위가 어려울 것 같다”“펜싱과 양궁이 아니었다면 목표로 잡은 12개 달성이 아예 불가능할 뻔했다” 등등….가는 곳마다 금메달에 관한 얘기만이 무성하다.응원단마저도 금메달이 나올만한 곳만 몰려 다녀 눈살을 찌푸리게 할정도다. 한국선수단과 응원단,매스컴의 이러한 모습들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올림픽에 출전하면서 금메달 목표를 정해놓는 나라가 흔치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메달 레이스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전체 메달 숫자를 추산은 해보지만 목표를 정하지는 않는다”며 “금·은·동메달의 가치는 차이를 둘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AP통신,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등 미국 매스컴 관계자들도 “관심 종목은 있지만 미국이 몇개의 금메달을 따내느냐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회적이지만 금메달 목표를 설정하고 하루 하루 조바심내는 한국사람들을 ‘비수’처럼 꼬집는 표현들이다. 이제는 우리도 ‘금메달 지상주의’의 사슬을 스스로 벗어 던질 때다.참가 자체만으로 영광이라는 올림픽 정신에 충실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금메달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식의 원초적 ‘금메달 지상주의’만은 버려야 한다.시드니올림픽 참가국은 모두 199개나된다.이 가운데서 한국이 금메달 12개를 따내 종합 10위를 차지한다면 대견은 하겠지만 오히려 어색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국력에 걸맞지 않는 스포츠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분위기가 희석되지 않는한 ‘금메달 지상주의’는 좀처럼 사라질 것 같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오병남기자 obnbkt@
  • [대한광장] 경의선 복원의 역사적 의미

    역사가 발전하려면,외적인 조건과 더불어 내적인 역량이 함께 대응해야 한다.경의선 복원은 새로운 동아시아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면서 통일운동의 가시적 진전이라 생각된다.아는바와 같이,한반도의 분단으로 북한과 중국 및 소련을 포함하는 세력권과 남한과 일본 및 미국을 포함하는 세력권이 대치하여 왔다.또한 민족사적으로볼 때 우리민족은 좌우익 세력과 함께 중도세력들이 힘을 합하여 분단을 막고 통일 민족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외세의 힘은 너무 강해서 좌우익이 협력하는 민족운동은 좌절되었고 이같은 노력의 실패로 1948년 남북에는 다시 두개의 분단국가가 성립되었다. 냉전구조가 만든 세계사의 굴레속에서 우리민족은 분단상황을 극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그 모두가 반통일 분단구조의 벽을 극복할 수 없었다.그러나 이제 냉전체제의 몰락과 함께 등장한 글로벌시장경제 구조는 지구 안의 모든 나라들을 서로서로 연계시키고 있다,세계의 3대 세력권(블록)의 하나로 떠오른 동아시아에는하나의 지역 공동체로 묶어지는 새로운 국제환경과 질서가 대두되었다.이에 우리나라는 그 중심에 위치하여 지역공동체의 균형을 잡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를 위하여 남과 북은 이제 주체적으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해야 되는 때가 되었다.과거 냉전시대때 한반도는그 지정학적 위치상 대륙권과 해양권이 맞부딪치는 전초기지였으나오늘 21세기에는 동아시아 전체를 잇는 평화의 가교가 된 것이다.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평화로운 지역공동체로서등장하는 새 시대에 부응하여 남과 북은 지금까지의 불신과 대결,경쟁과 냉전상태에서 화해와 협력의 남북한 공조체제를 이루지 않으면안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군사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을 뚫고 민족의 대동맥을 연결시킨 경의선 복원 기공식은 우리 민족사의큰 축제요 대역사가 아닐 수 없다.그렇다면 남북 공조체제,협력체제를 이루는데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식의 전환이다.경의선의 복원사업은 평화통일,자주통일의천명이다.그러나 모든 사업에 남북 쌍방이 공조해야 한다,어느 한쪽이 이 일을 주도해서는 안된다. 공조의 첫길은 북한사회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인식이 필수적이다. 분단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은 두 쪽으로 나뉘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경험했다.한쪽은 자유를 근간으로 경쟁과 발전에 매진하여 자본주의사회를 건설하였고,또 한쪽은 평등을 근간으로 변혁운동을 통하여 사회주의사회를 이룩했다. 그러나,북한이 이룩한 사회주의 운동이 모두 실패는 아닐 것이다.비록 물질적 생산력이 낙후되었다고는 하나 한시대 한 공간에서 어려운삶을 공유하였던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구축한 주체성, 도덕성,상호부조의 공동체적 우애 등이 평가되어야 한다 분단시기 동안 남북상호간의 서로 다른 역사경험은 21세기 민족사를 열어가는데 좋은 자원이 될 것이라 믿는다. 분단 50년, 우리민족이 이룩한 역사적 전통과 유산들이 상호간에 부정되지 않는 길을 찾는다면 대등통일의 길이 또한 열릴 것이다.경의선 복원은 세계에 민족의 내적 합의와단결을 과시하였고 시드니올림픽에서 세계는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다.50여년전 전승 강대국들은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자유독립국가가 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그것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통일은 민족 스스로가 이루어야만할 과제다,전쟁에 의하지 않는, 일정한 합의기반을 가지는 점진적 변화·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징조가경의선의 복원사업이다.경의선의 의미는 경제성장 물류교류만은 아니다.한반도가 동아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평화의 가교가 될 수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지금 우리는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민족통일의 소명을 가져야 한다.민족의 일을 함에있어 개인,국가,근로자,지도자 모두는 공이 사에 우선 하여야 할 것이다.지금이야말로 민족사 내부의힘을 한덩어리로 뭉칠 때이다. 서굉일 한신대교수·국사학
  • “대출 외압·배후세력 동시규명”

    대출 보증 외압 의혹사건을 수사 지휘하고 있는 이기배(李棋培)서울지검 3차장은 23일 “이운영씨가 구속됨에 따라 신용보증기금 본점과사직동팀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벌이는 등 앞으로 외압 의혹과 배후 세력 부분에 수사를 주력한다”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수사 상황은 이운영씨의 비리를 사직동팀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김주경씨를 포함,당시 영동지점 팀장 6명과 김씨를 사직동팀에 소개해준 사람들을 조사했다.이들은 김씨와 대체로 유사하게 진술했다. ◆이운영씨는 누구와 대질했나 금품을 준 업체 관계자 3명과 박혜룡·현룡씨 형제다.이씨는 처음에는 진술을 거부하다 돈 받은 혐의를부인한 뒤 대질 과정에서는 다시 진술을 거부했다. ◆이씨가 상속재산말고 파주에 77만평의 땅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확인됐나 조사 중이다. ◆이씨의 도피를 도운 송영인씨 등 4명을 사법 처리하나 오홍명씨에대해 범인은닉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송씨는 조사 중이며 나머지 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의 도피와 관련,이들 외에 수사 대상이 더 있나 있다.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과 안기부 퇴직자들 모임인 국사모(국가를 사랑하는 모임),동국대 ‘구농동우회’ 등도 포함되나 현재 확실한 것은 송영인씨 등이 국사모와 구농동우회 회원이라는 것뿐이고 이 단체들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조사 중이다. ◆최수병 당시 이사장과 최광식 전 사직동팀장도 소환,조사하나 수사상황을 봐가면서 결정한다. ◆김주경씨가 이씨의 비리를 제보한 시점과 박혜룡씨가 추가 보증을요청한 시기,액수는 확인됐나 수사 중이다. ◆사직동팀 중간 내사보고서 같은 게 있나 파악된 바 없다. ◆이운영씨 수기 원본은 확보했나 원본 제출을 거부하면서 소재에 관해서도 함구하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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