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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0)왕은이골의 노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0)왕은이골의 노래

    “이웃끼리 서로 돕는 형세는 생각하지 않고 창칼 휘둘러 날마다 전쟁만 일삼는구나 그 굳세던 성벽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성 위엔 당나라와 신라군 깃발뿐이네. 노래와 춤 가락 연기처럼 사라지고 아름다운 구슬 다시는 아름다움 못 다투네 가련타,물고기 창자 속에 서린 꽃다운 넋들이 봄바람 강물 위에 꽃으로 지고 있네.” -시인 이삼탄 조선 성종 때 시인 이삼탄은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낙화암에 올라,신라가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을 멸망시킨 역사를 아파하면서 이 시를 남겼다.오늘은 이 시의 배경이 된 역사 유적 중 하나인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왕은이골로 여행을 떠난다. 백제 유적 답사 여행자들에게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거니와 술 마시고 떠드는 관광객 부대들에는 전혀 재미없는 곳이기도 하다.하지만 부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끝나서는 안된다. ●부여는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토박이말 지금의 부여가 백제 시대에는 ‘소부리’ 또는 ‘사비’로 불렸는데,사비는 본디 새벽이라는 토박이말이고,지금의 이름 부여도 본디 ‘날이 부옇게 밝았다.’는 말에서 나온 토박이말이었다고 한다.이 토박이말에 나중에 한자를 억지로 갖다 붙였다고 하는데,부여를 제대로 부르자면 새벽의 땅,아침의 땅이라 해야 옳다.그런 부여에 가서는 침묵의 소리를 듣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 눈에 보이고,손끝에 만져지는 것만으로 역사를 말하고 문화를 느끼려는 조급함,옹졸함,속좁음을 지긋이 누르고 눈을 감은 채 마음의 귀를 열어야 한다.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세상도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것은 아니다.세상의 절반 혹은 좀 더 많은 부분이 눈에 안보이고 만져지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부여땅 역사와 문화도 그러하다.그래서 부여 여행은 단순한 지도 위의 한 지점을 둘러보는 것이라기보다 마음으로의 고요하고 깊은 명상과 아름다움을 향한 구도여행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나 신라 역사 문화 유적들은 대부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보고 느끼기가 한결 수월하지만 백제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신라와 당나라의 공격으로 망해도 깡그리 망해버린 탓에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이 거의 없다.박살나버린 백제가 조각조각 흩어져 흙 속에 매몰되었거나 강물에 휩쓸려 가버리고,남아 있는 몇몇 흔적에는 망한 나라의 백성이 겪어야 했던 뼈아픈 수모와 굴욕의 날들이 숨어 있다. 오늘 여행지 왕은이골은 규암면에 있다.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와 마주보고 있는 규암면에는 규암나루가 있는데,부여를 드나드는 사람이나 생활물자가 모두 이 나루를 건넜었지만 오늘날 규암나루는 민물고기 낚시터로 변해 있다.백마강에서 낚은 장어 잉어로 매운탕을 만들어 빼어난 강의 경치를 즐기며 소주잔을 기울이게 하는 매운탕집도 몇 군데 보인다.매운탕 그릇에 담긴 물고기 창자 속에는 백제 멸망 때 떼죽음 당한 백제인들의 꽃다운 넋들이 서려 있을까? 시인이 절규했던 그 노래를 되뇌며 백마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시내를 따라 오르면 규암면 신리 왕은이골에 닿는다.지금은 민가가 몇 채 서 있고 논과 밭이 층계를 이루고 있는 소박한 모습인데,그 유명한 왕흥사(王興寺)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나당연합군의 공격이 얼마나 잔인했던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인 폐사지 중 하나다. ●2대 30년에 걸쳐 세워진 호국사찰 왕흥사 법왕(法王)은 그가 죽던 해인 600년 정월 이곳에다 절터를 정하고 왕흥사라 부르게 했다.그 해에 법왕이 죽고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이 되었으니,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의 아버지다. 무왕은 41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그동안 약화된 왕권을 안정시키고 신라에 계속 밀리기만 하던 전선을 정복전쟁으로 전환시키면서 승리를 구가한 영웅적인 군주였다.국내 정치의 안정을 발판 삼아 강화된 왕권의 표징이자 존엄을 과시하기 위해 대규모 역사를 단행했는데,630년 백제의 중심적 사찰로 평가받은 웅장하고 화려한 왕흥사를 완성시킨 것도 대역사 중 하나였다.아버지 법왕이 착공해 놓고 죽자 아들 무왕이 이를 이어받아 30여년 만에 완성시킨 왕흥사는 이름에서 암시되듯 왕이 공사를 직접 챙겼고,몸소 불공을 드리는 곳이어서 왕실의 원찰이자 왕과 특별한 관계를 지녔던 사원이었다. 왕흥사는 작은 강물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있는 낮은 언덕 위에 지어졌다.단청은 화려하고 장식은 장엄하였다.무왕은 자주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향불을 피우고 기도했다.백제가 고구려와 신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정복하게 되기를 빌었다. 하늘 고요하고 맑은날 왕흥사는 언덕 아래의 호수에 비쳐 신비감을 자아냈다.물에 비친 왕흥사의 화려한 단청과 웅장한 장엄은 땅 위의 것이 아니라 물 속 깊은 어느 다른 세계의 것인 듯 환상적이었다.무왕은 때때로 작은 배를 타고 천천히 노를 저어 물에 비친 왕흥사로 다가섰는데,노젓는 흔적으로 호수에 잔물결이 일면 왕흥사도 따라서 잔물결졌다.무왕은 배를 멈춰 세웠다.다시 고요해진 수면 위엔 왕흥사의 아름다움이 되살아나고 왕은 배 위에서 향을 사르고 예배하기도 했다. 절과 호수를 사이에 둔 맞은편 언덕에는 널따란 바위가 놓여 있었다.무왕은 절에 가기 전 먼저 이 바위에 올라서서 물에 비친 왕흥사를 바라보며 예배를 올렸는데 그때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자온대(自溫臺)라 불렀다는 전설도 전해져 온다. 인간은 누구나 무엇엔가 기대고 싶어하듯이 무왕도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비록 신라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승리를 계속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왕흥사 부처님께 간곡한 기도를 하는 이유였다. 멈춰서는 안된다고 느낀 무왕은 새로운 백제의 웅비를 꿈꾸면서 사비성(泗泌城) 시대를 지나 새로운 익산(益山) 시대를 열기 위해 익산 천도를 계획했다.엄청난 경비와 시간을 쏟아 부어 동방 최대 규모의 미륵사를 창건하기도 했다. 익산 천도를 통하여 귀족세력을 재편성함으로써 새로운 인물 중심으로 집권체제를 갖출 계획이었다.국보 제11호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미륵사 7층 석탑을 동서 상탑으로 세우면서 불교의 원력으로 고구려와 신라를 제압하고 백제 중심 통일국가를 꿈꾸었다.미륵사지 석탑에는 백제 후반 백제인들의 소망이 녹아 있는 셈이다.그러나 무왕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고 아들이 뒤를 이어 의자왕이 되었다. 의자왕은 옳은 충고를 하는 어진 신하를 박해함으로써 나라를 잃게 되었다.신라의 무열왕과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술을 따르는 수모를 겪으며 당나라로 끌려가서 죽었다.백제인들은 왕흥사를 거점으로 하여 침략군에 항거했다. 그러나 항전 7일 만에 무열왕에 의하여 절은 부숴지고,불타고 깨어져 폐허로 변했다.그 때 수많은 여염집 여자들이 당나라 군사들에게 능욕당한 뒤 죽었거나 죽지도 못한 여인들은 당나라 군인들의 씨를 받아야 했다. ●백제 부흥세력, 왕흥사 거점으로 항거 당나라 군사왈패들은 국보 9호 정림사 오층석탑 기단부에다 ‘대당평제탑(大唐平濟塔)’이란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뒷날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 탑을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세운 전승기념탑이라 왜곡하기도 했다. 또한 일제는 부여에다 유달리 눈독을 들여 신궁을 세우려 했다.왜냐하면 일본 아스카문화의 고향이 바로 백제시대 부여이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침략군에게 짓밟혀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백제땅에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이 드물지만,상처를 지닌 채 남아 있는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빼어나게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왕흥사 옛터에 뒹구는 깨어진 기왓장 조각들,민가가 들어선 여기저기 슬프게 드러나 있는 주춧돌들,논밭으로 변해버린 ‘쇠대박이’란 이름에서 그 아름답던 왕흥사의 꿈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소리를 깨달아야 하느니.
  • [씨줄날줄] 제2의 베트남전/이기동 논설위원

    미국은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으로 베트남전에 뛰어들어 1975년 사이공함락과 함께 물러날 때까지 모두 5만 8000명의 미군 전사자와 15만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다.이후 베트남전은 현대 미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최악의 악몽으로 남아 있다. 이라크 전세가 악화되면서 미국 조야에서 ‘제2의 베트남전’논란이 한창이다.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 민주당 지도부와 반전 논객들이 다투어 제2의 베트남화를 경고하고 있다.반면 공화당계 인사들은 이라크와 베트남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맞선다.소수 이슬람 극단세력과 후세인 잔당의 최후저항일 뿐 다수 이라크국민이 미국을 지지하고,혼란은 곧 진압된다고 주장한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협력해 동시다발로 벌이는 저항세력의 대공세는 1968년 베트콩의 구정(舊正)대공세를 연상케 한다.당시 월맹군과 월남해방전선이 합작,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한때 사이공 주재 미국 대사관과 케산 미군기지가 넘어갔다.구정대공세는 미국내 반전여론에 기름을 부어 이후 전쟁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반미연대가 월남·월맹군 연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미국내 여론에 가하는 충격은 대단하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모든 전쟁은 분명한 정치적 목적과 확고한 군사적 수단을 갖고 시작돼야 한다고 설파한다.부시대통령이 개전 명분으로 내세운 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 연계설,이라크내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주장이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나며 개전 명분은 크게 훼손당했다.개전 명분뿐 아니라 비주류인 과격 시아파 성직자 알사드르를 제대로 못 다루어 우호적이던 온건 다수의 시아파 민심을 반미로 돌려놓는 전략적 실책까지 저질렀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미군이 물러난다면 제종파간 서로 죽고죽이기로 이라크 전국토가 제2의 킬링필드화할 것이라는 진퇴양난의 형국으로 빠져들고 있다.늦었지만 이라크정책 전반을 재검토해 미국 대신 유엔이 전면에 나서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그렇게 해서 악화되는 미국내 여론을 되돌리고 이탈하는 나라들을 붙잡아 국제연대를 유지한다면 제2의 베트남전 수렁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부시행정부는 지금 국제사회에서 ‘메이드 인 USA’식 미국 만능주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톡톡히 배우는 중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 [오늘의 수능- EBS플러스1]

    06:00 선택! 화제의 인물 07:00 뉴 포트리스 국어(상),영어 08:40 수능출제유형분석 언어영역 09:30 오답노트 언어영역 10:20 수능초이스 컴퓨터일반 11:10 수능초이스 현대문학 12:00 수능초이스 영어Ⅰ 12:50 뉴 포트리스(재) 국어(상) 14:30 수능초이스(재) 컴퓨터일반 15:20 수능출제유형분석(재) 언어영역 16:10 오답노트(재) 언어영역 17:00 수능특강 언어영역 17:50 수능특강 수학Ⅰ 18:40 수능특강 선택 사회문화 19:30 수능특강 선택 물리Ⅰ 20:20 수능초이스(재) 현대문학,영어Ⅰ 22:00 수능특강(재) 언어영역,수학Ⅰ 23:40 수능특강 선택(재) 사회문화 24:30 수능특강 선택(재) 물리Ⅰ 01:20 오답노트(삼)언어영역 02:10 인터넷강의〈사회탐구〉 정치 03:00 음악이 있는 명상 03:10 인터넷강의〈사회탐구〉 경제 04:00 삶이 풍요로운 명상 04:10 인터넷강의〈사회탐구〉 세계사 05:00 희망을 여는 명상 05:10 인터넷강의〈사회탐구〉 국사˝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9)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9)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下)

    흔히 진주를 한국 인권의 고향이라 말한다.1862년 류계춘과 그의 동지들이 주도했고 한국 최초의 농민 생존권 투쟁이 된 ‘임술년 농민항쟁’과 1923년 ‘형평사 운동’이 진주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은 형평운동 80주년이었고,지난 1993년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진주에서 형평운동 70주년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다.백정해방운동을 백정이라는 특수 신분의 해방 운동으로 기념하는 데 그치지 말고,보다 폭넓은 인간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계기로 삼자는 뜻이었다.인권문제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형평기념탑을 세우고,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 회의도 열어 70년 전 일제 때에 시작된 형평운동 정신을 새롭게 하는 일을 논의하였다.일본에서는 일본의 백정에 해당하는 부락민(部落民) 다수와 부락민의 인권과 차별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부락민의 생존권을 돕고 일본사회의 차별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락해방인권연구소 관계자들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강상호와 장지필의 이름과 생애가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그 이전에는 국내의 극히 적은 연구자들에 의해 간신히 이름과 생애가 이야기되고 있었을 뿐이었다.다행스럽게도 강상호는 진주를 대표하는 부자이며 명문가 출신인데다 후손들이 진주 지역에 살아 있었기에 그에 대한 연구 자료는 풍부한 편이었다.그러나 장지필의 경우에는 그의 후손들이 살아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한국의 후예들은 공식참배 안해 형평운동 70주년 국제 행사 이후 한 해에 두 차례씩 일본 부락민들이 강상호의 무덤을 참배하는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일본 부락민들의 강상호 무덤 참배 때마다 안내자로 참석해온 필자는 올봄 그의 아들 강인수씨와 둘이서만 참배를 했다.참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최초의 인권해방운동 선구자는 차도 옆에 누워서 자동차 굉음과 흙먼지,행인들이 내던지는 오물,그 보다 더 심한 무관심 속에서 초라하게 삭아가고 있었다.아들은 여유없는 그의 노년을 부끄러워할 뿐 말이 없었다.한국의 백정 후예들이 강상호 무덤을 공식적으로 참배했다는 이야기도 아직 듣지 못하였는데,이 역시 안타깝다. 형평사 운동이 시작되던 1923년 당시 한국에는 40여만 명의 백정들이 살고 있었는데,백정의 원류는 고구려의 영토 확장 때 생겨난 전쟁 포로나 귀순자들이라고 한다.그들은 고구려로 온 뒤 주로 변방에서만 살았는데,‘삼국사기’는 이들이 모여 살았던 곳을 부락(部落)이라 불렀음을 적고 있다.‘280년(서천왕11)에는 숙신을 공격하여 주민 600호를 옮기고 항복한 부락 예닐곱 곳을 부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원래 부락은 흉노족이 사막지대에서 떼를 지어(部) 천막을 치고 정착한 곳(落)을 의미했다.고려 때는 고구려에 복속당한 북방 유목민들의 후예인 수척(水尺),양수척(揚水尺),화척(火尺)들이 살던 곳을 부락이라 불렀다.이런 예를 두고 볼 때 부락은 원주민과 다른 족속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겠다. 일제 식민지 이후 총독부는 한국 민속을 파괴하고 마을이나 산의 지명을 바꾸는 것으로 정체성을 소멸시키려 하였다.그 과정에서 한국 고유어인 ‘동네,마을’ 대신 ‘부락’을 쓰게 하였는데,일본의 부락과 부락민이 일본인들로부터 차별 멸시당하듯이 한국인 전체를 부락,부락민으로 취급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우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백정들의 거주지를 부락이라 불렀던 것과 일본의 부락민들이 사는 곳을 부락이라 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일반인들의 생활언어도 사용못해 당시에 백정들은 갓 대신 패랭이를 써야 했고,상투머리엔 반드시 검은 띠를 둘러 백정임을 표시해야 했다.백정 여자들은 언제나 검정색 물들인 치마를 입어야 했고,비단옷이나 양반들이 입는 두루마기며 도포를 입어서는 안되었다.기와집에 살 수 없었으며 세 칸 이상의 넓은 집은 갖지 못했다.또,백정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었고,혼인할 때 신부는 가마를 타지 못하고 신랑은 말을 탈 수 없었다.서당이나 향교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글을 배워서도 안되었다.죽은 뒤에도 상여에 관을 얹지 못하며,거적대기에 말아 매장하되 일반인 무덤보다 높은 곳에는 봉분을 짓지 못했다.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일반인 소년이나 아이에게 백정은 존댓말을 써야 했고 공공장소를 지날 때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뜀박질하여 지나가야 했다.이러한 법이나 관습을 어길 경우에는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일반인으로부터 처벌받아야 하고,같은 죄를 다시 범한 백정은 중형에 처해졌다.심지어 일반인들의 생활 언어를 사용하는 것까지 금했다.백정들의 삶은 온갖 금지와 차별의 울타리 안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백정마을은 전국 주요 행정관청이 있는 곳에 만들어졌는데,각 지방관아와 병영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와 피혁을 손쉽게 얻기 위해서였다.특히 향교가 있는 지역에서는 봄·가을에 있는 공자와 유교 선현들께 올리는 제사 음식 중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육류와 육류를 가공하여 만든 제수를 공급받기 위해 백정을 꼭 필요로 했다.따라서 숙종 연간만 하더라도 백정은 일종의 관노비였다.그 후 조선사회 신분제도와 경제토대의 붕괴로 지방 토호들이 백정을 사노비화하면서 백정들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그러나 대부분의 백정들은 철저한 문맹과 궁핍으로 최하층민의 가련한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백정들에게는 무거운 의무만 있고 사람답게 살 권리가 없었다. 강상호는 백정들의 생활을 개선시키지 않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위선임을 절감했다.그리고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인들끼리 차별하고 탄압하는 것은 결국 일본의 식민통치를 돕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질타하였다.인간은 평등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고귀하다고 외쳤다.인간을 차별하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이며,미래를 위해 인간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고 굳건히 믿었다. 1923년 봄 진주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 시작되었다.이 운동에는 백정 출신들과 함께 일반 지식인들도 참여함으로써 신분차별의 철폐가 민족해방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낳았다.형평운동이 시작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일제히 환영하면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전국적인 사회 문화 운동의 출발지가 서울이 아닌 진주라는 작은 도시라는 점과 운동본부 및 핵심 지도부 인물 대부분이 지역인들이라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백정자식 양자로 들여 취학시켜 강상호·장지필 등 본부 임원들은 각각 순회 지역을 나누어 돌면서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백정들의 군중 집회에 참석,축사를 하거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하여 토론을 벌였다.백정들은 수백년 동안 억눌러온 감정을 폭발시켰지만 폭력 사태로는 나아가지 않았다.철저한 온건 노선을 지키면서 모든 조선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눈물 겨운 장면을 만들어냈다.민족 해방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고,어떤 사회적 쟁점을 논의하기 위한 집회도 아닌 오직 천한 신분 백정도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달라는 선언과 맹세의 집회다보니 일본 경찰도 적극 단속할 수는 없었다. 형평운동이 본 궤도에 올라 백정들의 생활 개선과 교육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차별의 벽은 백정들이 일반인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만약 백정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일반인들이 모두 동맹 휴학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강상호는 그때 두 명의 백정 자식을 양자로 들여 직접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등 일반 지식인들이 먼저 백정 차별을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 이렇듯 들불처럼 확산되는 형평운동은 그때 막 한국사회에 상륙한 사회주의 노선과 다른 몇몇 사상단체들의 관심을 끌었다.그러면서 점점 예기치 못한 혼란 속으로 빨려 들었다.강상호는 장지필과의 계속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백정도 떳떳한 조선인으로 대우받는 것이 어쩌면 민족해방보다 값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형평운동에 자신과 전 재산을 아낌없이 던져 넣었다.국가나 사회보다 인간이 소중하다는 그의 사상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그는 심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죽었다. 굳이 형평운동이 아니더라도 인간평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진주 촉석공원 앞 그의 작고 외로운 무덤 앞에 술 한 잔을 올리고 강상호란 이름을 불러 보면 어떨까.
  • [열린세상] ‘이념갈등’ 은 있는가/ 임춘웅 언론인

    우리 사회갈등의 핵심은 이념이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 간의 싸움인 것이다.지난 반세기에 걸쳐 형성된 한국사회의 주류계층과 이에 맞서는 비주류 간의 갈등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인가 ‘이념갈등’ ‘보수 대 진보’ 같은 말들이 자주 쓰이고 있다.그러나 이런 말들이 과연 우리의 갈등현상을 바로 표현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 보아야 한다.그런 말들이 한국사회의 갈등의 골을 이분법적으로 쉽게 나누는 편리성은 있으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은 아니다.우리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좀더 실상에 가까이 접근할 필요가 있다.개념 파악이 잘못되면 해법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갈등’이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말할 것이다.그렇다면 세칭 보수진영이 지향하는 것과 진보진영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서로 달라야 한다.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대립하고,갈등하며,싸울 만큼 목표지향적이어야 한다.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 요인이라는 이른바 ‘이념갈등’이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일까. 반세기전 해방정국에서 우리 사회는 극심한 이념갈등을 겪었다.이승만과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우익진영,박헌영과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진영 간 이념갈등이 치열했다.그때는 우파와 좌파 간 이념적 지향점이 전혀 달랐고 좌와 우의 대칭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층에 이념적 좌파가 과연 얼마나 될까.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수는 무시해도 될 만한 수준일 것이다.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까지도 시장경제의 장점과 사회주의의 장점을 아우르는 이념을 창출하겠다고 하고 있다. 또 만일에 지금의 이념갈등이 이데올로기적 갈등이라면 보수를 대표하는 한나라당 지지세력과 진보정당인 민노당 지지세력 간의 대립이 돼야 할 것이다.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갈등의 한 축에 민노당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민노당이 진보진영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중심은 아니다. 지금 대립하고 있는 양대 축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세력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세력이다.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의 이념이 진보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그런데 한나라당과 열린 우리당이 표방하고 있는 정강정책엔 이념적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탄핵규탄 시위 때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진보이고 시청앞에 모인 사람들은 보수일까.시청앞 사람들이 보수층인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진보라는 데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두 자리에 따로 모인 사람들 사이 미국에 대한 태도,북한에 대한 인식에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광화문 사람들을 ‘반미’라거나 ‘친북’으로 보는 것은 음해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갈등의 핵심은 이념이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 간의 싸움인 것이다.지난 반세기에 걸쳐 형성된 한국사회의 주류계층과 이에 맞서는 비주류 간의 갈등인 것이다. 비주류 계층이란 정치적으로 민주화투쟁을 했던 민주화 세력,경제적으로 소외돼 있는 계층,지역주의의 피해자들,이념적 진보주의자들,기득권사회의 부패와 불의를 용납치 않으려는 개혁세력들이다.이들이 열린우리당을 구성하고 있고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기득권사회에 맞서 사회갈등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문성근씨가 말하는 ‘잡탕’이다. 우리의 사회갈등 해소를 위해 신 좌우합작론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진단을 잘못한 처방이다.이번 총선에서도 대결의 핵심은 이념이 아니라 주류와 비주류 간의 싸움이다.지역주의의 색채가 현저히 완화됐고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이런 분류에 얼마간 변수를 제공할 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사회나 이념 간,파벌 간,이해관계 간 갈등이 있게 마련이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갈등의 근본은 밥그릇 싸움이 돼서 치사스럽고 끈질길 소지를 안고 있다.또 이 싸움의 뿌리는 ‘과거’에 있기 때문에 비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따라서 우리의 사회갈등은 이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중심에 설 때나 풀리게 될지도 모른다. 임춘웅 언론인˝
  • [총선 D-5] 한나라·우리 ‘쉬쉬’ 민주·민노당 ‘부각’

    지역구 0석-비례대표 47석.1998년 독일 국회의원 총선에서 녹색당이 거둔 성적표다.지역구 당선자를 1명도 못냈지만 비례대표의원 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어 47석을 확보했다.‘1인2표제’의 위력이다. 우리 유권자들도 이번 4·15총선에서 이 ‘요술방망이’를 휘두르게 된다.여야 각 정당도 이에 맞춰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부심하고 있다. ●진보개혁 정당이 유리 1인2표제는 진보·개혁정당에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독일 녹색당처럼 외국의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민주노동당 등이 유리한 셈이다.김형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 부소장은 “1인2표제는 외국의 경우 진보야당을 강화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실제 지난달 31일 내일신문·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노동당은 단순지지도가 6.9%였으나 정당명부(비례대표)지지는 10.2%를 얻었다. 반면 지역구 후보 투표에서는 그만큼 ‘인물’이 중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은 정당투표로 찍고,지역구 후보는 인물을 보고 투표하는 성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대도시·호남 분할투표 가능성 높아 그렇다면 후보와 정당을 나눠 찍는,이른바 ‘분할투표’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외국의 경우 전체 투표의 20∼30%선이다.즉 유권자 10명중 2,3명 정도가 후보와 정당을 따로 찍고,나머지는 같은 정당,같은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김영태 목포대 교수는 그러나 “우리나라는 1인2표제 경험이 없어 비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특히 “탄핵 등이 투표기준이 되면서 표를 한 당과 후보에게 몰아줘야 한다는 심리가 많아 나눠줄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지역별로는 차이가 있을 듯하다.김형준 부소장은 “접전지와 대도시,영·호남에서 분리투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관측했다.민주당과 열린우리당,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영·호남 유권자들의 경우 분할투표를 통해 ‘고민’을 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반면 소도시나 농촌지역은 상대적으로 2표를 일치시킬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민주노동당 총력전 이같은 1인2표제의 속성에 맞춰 각 당의 비례대표 득표전략도 판이하다.가장 1인2표제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정당은 민주노동당이다.1인2표제가 부각될수록 분할투표 비율이 높아지고,자신들이 유리해진다는 판단이다.권영길 대표는 9일 기자회견에서 “비례대표 득표율 15%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며 중앙선관위에 1인2표제를 적극 홍보할 것을 촉구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열린우리당은 사정이 다르다.한나라당은 불법선거자금에 따른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민주노동당과 정반대의 전략을 택하고 있다.서울의 한 후보는 홍보물에 “정당보다 인물을 보고 뽑아달라.”는 글귀를 적어 인물투표 부각에 진력했다. 교섭단체 구성이 관건이 된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하나라도 늘리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당 관계자는 “다른 당 후보를 찍더라도 정당만은 정통야당인 민주당을 찍어달라고 호남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후보보다 정당이 부각됐던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으로 표심이 흔들리면서 선거전략 수립에 애를 먹고 있다.특히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이 상당부분 잠식하는 것으로 분석되자 1인2표제를 부각하고 싶지는 않다는 분위기다. 진경호기자 jade@˝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9)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下)

    흔히 진주를 한국 인권의 고향이라 말한다.1862년 류계춘과 그의 동지들이 주도했고 한국 최초의 농민 생존권 투쟁이 된 ‘임술년 농민항쟁’과 1923년 ‘형평사 운동’이 진주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은 형평운동 80주년이었고,지난 1993년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진주에서 형평운동 70주년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다.백정해방운동을 백정이라는 특수 신분의 해방 운동으로 기념하는 데 그치지 말고,보다 폭넓은 인간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계기로 삼자는 뜻이었다.인권문제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형평기념탑을 세우고,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 회의도 열어 70년 전 일제 때에 시작된 형평운동 정신을 새롭게 하는 일을 논의하였다.일본에서는 일본의 백정에 해당하는 부락민(部落民) 다수와 부락민의 인권과 차별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부락민의 생존권을 돕고 일본사회의 차별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락해방인권연구소 관계자들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강상호와 장지필의 이름과 생애가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그 이전에는 국내의 극히 적은 연구자들에 의해 간신히 이름과 생애가 이야기되고 있었을 뿐이었다.다행스럽게도 강상호는 진주를 대표하는 부자이며 명문가 출신인데다 후손들이 진주 지역에 살아 있었기에 그에 대한 연구 자료는 풍부한 편이었다.그러나 장지필의 경우에는 그의 후손들이 살아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한국의 후예들은 공식참배 안해 형평운동 70주년 국제 행사 이후 한 해에 두 차례씩 일본 부락민들이 강상호의 무덤을 참배하는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일본 부락민들의 강상호 무덤 참배 때마다 안내자로 참석해온 필자는 올봄 그의 아들 강인수씨와 둘이서만 참배를 했다.참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최초의 인권해방운동 선구자는 차도 옆에 누워서 자동차 굉음과 흙먼지,행인들이 내던지는 오물,그 보다 더 심한 무관심 속에서 초라하게 삭아가고 있었다.아들은 여유없는 그의 노년을 부끄러워할 뿐 말이 없었다.한국의 백정 후예들이 강상호 무덤을 공식적으로 참배했다는 이야기도 아직 듣지 못하였는데,이 역시 안타깝다. 형평사 운동이 시작되던 1923년 당시 한국에는 40여만 명의 백정들이 살고 있었는데,백정의 원류는 고구려의 영토 확장 때 생겨난 전쟁 포로나 귀순자들이라고 한다.그들은 고구려로 온 뒤 주로 변방에서만 살았는데,‘삼국사기’는 이들이 모여 살았던 곳을 부락(部落)이라 불렀음을 적고 있다.‘280년(서천왕11)에는 숙신을 공격하여 주민 600호를 옮기고 항복한 부락 예닐곱 곳을 부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원래 부락은 흉노족이 사막지대에서 떼를 지어(部) 천막을 치고 정착한 곳(落)을 의미했다.고려 때는 고구려에 복속당한 북방 유목민들의 후예인 수척(水尺),양수척(揚水尺),화척(火尺)들이 살던 곳을 부락이라 불렀다.이런 예를 두고 볼 때 부락은 원주민과 다른 족속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겠다. 일제 식민지 이후 총독부는 한국 민속을 파괴하고 마을이나 산의 지명을 바꾸는 것으로 정체성을 소멸시키려 하였다.그 과정에서 한국 고유어인 ‘동네,마을’ 대신 ‘부락’을 쓰게 하였는데,일본의 부락과 부락민이 일본인들로부터 차별 멸시당하듯이 한국인 전체를 부락,부락민으로 취급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우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백정들의 거주지를 부락이라 불렀던 것과 일본의 부락민들이 사는 곳을 부락이라 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일반인들의 생활언어도 사용못해 당시에 백정들은 갓 대신 패랭이를 써야 했고,상투머리엔 반드시 검은 띠를 둘러 백정임을 표시해야 했다.백정 여자들은 언제나 검정색 물들인 치마를 입어야 했고,비단옷이나 양반들이 입는 두루마기며 도포를 입어서는 안되었다.기와집에 살 수 없었으며 세 칸 이상의 넓은 집은 갖지 못했다.또,백정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었고,혼인할 때 신부는 가마를 타지 못하고 신랑은 말을 탈 수 없었다.서당이나 향교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글을 배워서도 안되었다.죽은 뒤에도 상여에 관을 얹지 못하며,거적대기에 말아 매장하되 일반인 무덤보다 높은 곳에는 봉분을 짓지 못했다.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일반인 소년이나 아이에게 백정은 존댓말을 써야 했고 공공장소를 지날 때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뜀박질하여 지나가야 했다.이러한 법이나 관습을 어길 경우에는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일반인으로부터 처벌받아야 하고,같은 죄를 다시 범한 백정은 중형에 처해졌다.심지어 일반인들의 생활 언어를 사용하는 것까지 금했다.백정들의 삶은 온갖 금지와 차별의 울타리 안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백정마을은 전국 주요 행정관청이 있는 곳에 만들어졌는데,각 지방관아와 병영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와 피혁을 손쉽게 얻기 위해서였다.특히 향교가 있는 지역에서는 봄·가을에 있는 공자와 유교 선현들께 올리는 제사 음식 중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육류와 육류를 가공하여 만든 제수를 공급받기 위해 백정을 꼭 필요로 했다.따라서 숙종 연간만 하더라도 백정은 일종의 관노비였다.그 후 조선사회 신분제도와 경제토대의 붕괴로 지방 토호들이 백정을 사노비화하면서 백정들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그러나 대부분의 백정들은 철저한 문맹과 궁핍으로 최하층민의 가련한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백정들에게는 무거운 의무만 있고 사람답게 살 권리가 없었다. 강상호는 백정들의 생활을 개선시키지 않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위선임을 절감했다.그리고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인들끼리 차별하고 탄압하는 것은 결국 일본의 식민통치를 돕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질타하였다.인간은 평등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고귀하다고 외쳤다.인간을 차별하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이며,미래를 위해 인간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고 굳건히 믿었다. 1923년 봄 진주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 시작되었다.이 운동에는 백정 출신들과 함께 일반 지식인들도 참여함으로써 신분차별의 철폐가 민족해방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낳았다.형평운동이 시작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일제히 환영하면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전국적인 사회 문화 운동의 출발지가 서울이 아닌 진주라는 작은 도시라는 점과 운동본부 및 핵심 지도부 인물 대부분이 지역인들이라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백정자식 양자로 들여 취학시켜 강상호·장지필 등 본부 임원들은 각각 순회 지역을 나누어 돌면서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백정들의 군중 집회에 참석,축사를 하거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하여 토론을 벌였다.백정들은 수백년 동안 억눌러온 감정을 폭발시켰지만 폭력 사태로는 나아가지 않았다.철저한 온건 노선을 지키면서 모든 조선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눈물 겨운 장면을 만들어냈다.민족 해방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고,어떤 사회적 쟁점을 논의하기 위한 집회도 아닌 오직 천한 신분 백정도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달라는 선언과 맹세의 집회다보니 일본 경찰도 적극 단속할 수는 없었다. 형평운동이 본 궤도에 올라 백정들의 생활 개선과 교육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차별의 벽은 백정들이 일반인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만약 백정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일반인들이 모두 동맹 휴학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강상호는 그때 두 명의 백정 자식을 양자로 들여 직접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등 일반 지식인들이 먼저 백정 차별을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 이렇듯 들불처럼 확산되는 형평운동은 그때 막 한국사회에 상륙한 사회주의 노선과 다른 몇몇 사상단체들의 관심을 끌었다.그러면서 점점 예기치 못한 혼란 속으로 빨려 들었다.강상호는 장지필과의 계속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백정도 떳떳한 조선인으로 대우받는 것이 어쩌면 민족해방보다 값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형평운동에 자신과 전 재산을 아낌없이 던져 넣었다.국가나 사회보다 인간이 소중하다는 그의 사상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그는 심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죽었다. 굳이 형평운동이 아니더라도 인간평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진주 촉석공원 앞 그의 작고 외로운 무덤 앞에 술 한 잔을 올리고 강상호란 이름을 불러 보면 어떨까.˝
  • [오늘의 수능-EBS플러스1]

    06:00 선택! 화제의 인물 07:00 뉴 포트리스 과학,수학10-가 08:40 수능출제유형분석 외국어영역 09:30 오답노트 탐구영역 10:20 뉴포트리스 국사 11:10 수능초이스 수학Ⅱ 12:00 수능초이스 윤리 12:50 뉴 포트리스(재) 과학,수학10-가 14:30 뉴포트리스(재) 국사 15:20 수능출제유형분석(재)외국어영역 16:10 오답노트 탐구영역 17:00 수능특강 외국어영역 17:50 구술&심층면접 자연계 18:40 수능특강 사회탐구 국사 19:30 수능특강 과학탐구 지구과학Ⅰ 20:20 수능초이스(재) 수학Ⅱ,윤리 22:00 수능특강(재) 외국어영역 22:50 구술&심층면접(재)자연계 23:40 수능특강 사회탐구(재) 국사 24:30 수능특강 과학탐구(재) 지구과학Ⅰ 01:20 오답노트(삼)탐구영역 02:10 인터넷강의 영어독해기법 03:00 음악이 있는 명상 03:10 인터넷강의 영어독해기법 04:00 삶이 풍요로운 명상 04:10 인터넷강의 영어독해연습 05:00 희망을 여는 명상 05:10 인터넷강의 영어독해연습˝
  • [부고]

    ■ 日위안부 징용 배족간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출신인 배족간 할머니가 지난 4일 오후 9시35분쯤 서울아산병원에서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배 할머니는 16살때 경찰지서 주임의 소개를 받아 광목공장에 취직하고자 부산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갔다가 항저우(杭州),다이칭(大慶) 등지에서 8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1963년 결혼해 73년 남편과 사별했으며 9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위안부 신고를 했다.할머니의 유골은 일본군 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에 따라 6일 오전 충남 천안의 국립 망향의 동산에 묻혔다. 이세영기자 sylee@ ●金隆一(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장·전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씨 별세 5일 오후 8시20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영결미사 7일 오전 10시30분 가톨릭대 성심교정 성당 (02)3779-2191 ●金春守(한양대 농구팀 감독)씨 부친상 5일 오후 9시20분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8일 오전 7시40분 (02)2290-9457 ●金孝謙(목포대 사무국장)씨 모친상 5일 오후 6시40분 충남 논산시 양촌면 채광2구 자택,발인 7일 오전 9시 (041)741-2961 ●吉信京(미국 거주)榮京(캐나다 거주)씨 모친상 盧政善(한국언론재단 이사)씨 빙모상 6일 오전 3시50분 서울대병원,발인 8일 오전 6시30분 (02)760-2032 ●宋定基(전 KBS 정경부장)씨 별세 李鎬哲(삼성전자 책임연구원)씨 빙부상 5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발인 7일 낮 12시 (02)760-2026 ●安文福(회사원)文善(동부정밀화학 직원)文勸(대한항공 직원)文喆(재정경제부 산업관세과 사무관)씨 부친상 5일 오전 11시 인천 적십자병원,발인 7일 오전 9시30분 (032)815-4220 ●鄭鍾喆(KBS 진주방송국장)鍾一(한독약품 상무)鍾學(강남구청 주택과장)鍾道(미키통상 대표)鍾明(티엠빌드 이사)씨 부친상 5일 오전 6시15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7일 오전 9시30분 (02)590-2352 ●元勝皓(현대엔지니어링 과장)勝晨(서울 알파와오메가학원 강사)씨 부친상 5일 오후 4시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7일 오후 3시 (02)921-5099 ●金東一(덴소풍성 직원)씨 부친상 具本祥(현대증권 창원지점 과장)씨 빙부상 5일 오전 5시15분 경남 창원시 상남동 한마음병원,발인 7일 오전 8시30분 (055)286-5106 ●申鶴秀(자영업)泌秀(〃)惠秀(〃)씨 모친상 宋在賢(서울 플러스학원장)씨 빙모상 6일 오전 6시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9시 (02)3010-2262 ●梁在根(서울산업대 사회체육학과 교수)씨 모친상 盧閏善(청주교도소 교도관)씨 빙모상 6일 오전 10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9시 (02)3010-2236 ●洪鍾國(화곡유통협동조합 이사장)鍾勳(자영업)鍾佑(좋은오늘 대표)鍾延(하오랜드 부장)씨 부친상 5일 오후 10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2)3010-2268 ●朱明俊(자영업)錫熙(글로텔 대표)錫載(아남전자기술 이사)씨 모친상 5일 오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7일 오전 9시 (02)3010-2293 ●吳英煥(전 동아일보 인천주재 기자)씨 별세 6일 오전 5시30분 인천 부평구 갈산동성당,발인 8일 오전 10시 (032)506-8001 ●金日坤(사이버다임 기획관리실장)씨 조모상 6일 오전 11시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61 ●李海龍(토펙ENG건축사사무소 감리사)씨 모친상 允植(선양카메오 대표)源益(광명시 열린연세정형외과 원장)仲植(서울대 초빙교수)씨 조모상 6일 오후 3시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2)3010-2295 ●宋宗燮(자영업)大燮(홍익대 미술대학 교수)씨 부친상 廉光烈(미국 거주)方珌洙(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전무)金承萬(서울 김승만내과의원장)씨 빙부상 6일 오전 7시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발인 8일 오전 9시 (031)920-0310˝
  • [김영희 이혼클리닉] 동거중 남자친구가 결혼하자는데…

    서른살된 전문직 여성으로 남자친구와 2년째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결혼하지 않기로 했는데,남자친구가 마음을 바꿔 아이를 갖고 싶다며 결혼을 재촉합니다.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남자친구하고 헤어지기도 싫습니다.어쩌면 좋을까요? -장민정 한 조사에 의하면,남녀 네티즌 470명을 대상으로 동거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전체의 61%가 ‘반대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합니다.반대하는 이유로는 ‘성(性)적으로 무책임할 수 있기 때문에’‘헤어지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결혼의 신성함이 퇴색되기 때문에’‘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사회적 인식이 아직은 부정적이기 때문에’‘전통적인 정조관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등 순이었고,반면 동거에 찬성한다는 응답자의 39%는 ‘결혼에 앞서 보다 신중한 결정을 위해’‘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 때문에’‘생활비 절약’‘호기심 때문에’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장민정씨.남자친구와 2년째 동거하고 있다면 짧은 세월이 아니네요.독신으로 살지 않을 생각이라면 결혼할 나이가 꽉 찬 것 같습니다.‘결혼은 해도 후회,안 해도 후회한다.’고 합니다.많은 미혼 남녀들이 “결혼 하는 게 좋을까요.안 하는 게 좋을까요?”하고 난감한 질문들을 해오는데 저는 이런 비유를 해 봅니다. 옛날에 장님들에게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한 후,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가 물었더니 대답이 제 각각이더랍니다.집체만한 코끼리를 보지 못하고 손으로만 더듬어 본 장님들이라 대답이 다를 수밖에 없었겠지요.또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결혼하는 게 좋을까요?”하고 묻는다면 “결혼하세요,정말 좋아요.”할 것이고,불행한 결혼으로 마지못해 살고 있는 사람은 “아이고….하지 마세요.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어요.”하겠지요.우스갯소리로 결혼은 ‘복권당첨’과 같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민정씨.동거와 결혼은 근본부터가 다릅니다.동거는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절실하지 않으니 의무감 또한 없고 싫으면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지만,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여성들은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동거가 남자는 손해 볼 것 없다는 인식들을 하고 있어 여성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입니다.일부 젊은 층에서 서구 문화를 잘못 받아들여 동거를 유행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자유 분방한 것처럼 보이는 미국사람들도 동거를 바람직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일부 계층의 일부사람들에 불과하지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혼이 급증하다 보니 살아보고 결혼하겠다는 신중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한 이불 덮고 몇 십년을 살아도 알 수 없는 게 부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청춘 남녀는 결혼을 합니다.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고 싶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저축을 하고….결혼은 미래가 있지요.민정씨.누군가 나를 챙겨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구속일 수만은 없습니다.결혼을 하면 백 가지 고민이 생기고,결혼하지 않으면 단 한 가지 행복도 느낄 수 없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인생관이 다르니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가를 단정키 어렵지만 상식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기로 했던 남자 친구가 마음을 바꿔,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고 싶다고 했다면 같이 사는 동안 당신을 많이 사랑하게 됐나 봅니다.주변에 이혼한 친구들을 보고 ‘이혼공포증’으로 결혼하기가 두렵고,구속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고 싶고,남자 친구하고 헤어지기도 싫다는 생각인데….떠나보내고,또 새롭게 만나고,화살처럼 빠른 게 세월이랍니다. 민정씨.독신으로 살며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는 여성도 많습니다만,이제 당신은 자신의 앞날을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남자친구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면,그를 떠나 보내줘야겠지요.나이 들어 외롭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 ‘김영희 이혼클리닉’에서 받습니다.˝
  • DJ 동생 횡령혐의 기소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6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생인 한국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 김모(72)씨를 업무상 횡령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검찰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연구소 이사들로부터 정기적으로 받은 운영비 1억 7000여만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정부미’ 공무원 “주사가 할일 장관이 하고 있다”

    “공직사회 승진 시스템은 조선시대보다 뒤떨어져 있다.” “정부미(공무원의 속칭)는 왜 품질과 가격이 떨어지는가?” “주사(6급)가 해야 할 일을 장관이 하는 것이 공직사회다.” 현직 고위 공무원이 공직사회를 향해 쓰디쓴 소리를 내뱉었다. 행정자치부 배국환(48·행시22회) 지방재정국장이 지난 3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행자부 변화와 혁신 연찬회’에서 종합토론자 자격으로 나서 공직사회에 대해 ‘할말’을 했다.박주현 청와대 참여혁신수석을 비롯,행자부 김주현 차관 등 4급 이상 간부 200여명이 함께 한 자리에서였다. ●능력 관계없이 사무관→1급 29년 배 국장은 “사회가 변하는데 관료는 농업국가시대 전통을 고수한다.”며 말문을 열었다.그는 한국사회는 남자·상사·대통령 등 권위주의가 붕괴되고,대신 여성·전문가·돈·명예·유명인 등이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중앙과 윗사람에 몰려 있던 권한도 지방과 하부로 이양되고,권력도 50∼60대 기성 정치세력에서 20∼30대 인터넷 세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료사회는 농업국가시대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아무리 유능해도 연차가 되고 계단을 밟아서 올라가는 구조”라며 공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시를 거친 사무관이 과장,국장,1급까지 오르려면 29년이 소요된다.”며 “조선시대 조광조가 과거에 합격해 3년 만에 대사헌(현 감사원장에 해당)이 된 것과 비교하면 승진 시스템이 조선시대보다 못하다.”고 비난했다. 이어 “공무원의 봉급은 쉬운 일을 하든 어려운 일을 하든 똑같다.”면서 “일하거나 놀거나 (봉급이)마찬가지여선 곤란하다.”고 했다.따라서 “계급이 같더라도 보수가 차이나는 보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보수규정도 없애고 연봉계약제 도입을 요구했다. ●동일직급 동일보수·면피용 결재 배 국장의 지적은 장관 등 윗사람들에게도 이어졌다.그는 “책임회피용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으로부터 결재를 받는 관행이 비일비재하고,위에서 (업무를)챙기니까 중간 관리자도 연쇄적으로 챙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지금의 국장은 옛날 사무관이나 서기관이 했던 일을 할 정도로 직급이 인플레돼 장관이 주사가 하는 일도 한다고 꼬집었다.“하찮은 것까지 장관이 결재를 해서는 발전이 없다.”고 장관에게도 화살을 돌렸다.“결재 단계를 줄이지 않으면 속도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며 한 문건에 결재를 10개 이상 받는 사례는 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국가를 위해 일하는지,부처를 위해 일하는지 모를 정도로 다툼이 심하다.”며 부처 이기주의의 심각성도 거론했다. ●고시출신도 관료사회 오면 정부미로 배 국장은 특히 “고시 출신들이 관료사회에 들어오면 너나없이 정부미가 돼 버린다.”면서 “정부미는 왜 품질과 가격이 떨어지는가?”라고 반문했다.이어 정부미도 ‘철원 청결미’나 ‘이천 임금님표 쌀’처럼 차별화돼야 한다고 했다.이를 위해선 파격적인 보수와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조직을 슬림화하고 보수를 차별화해 전체적인 인건비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관료조직에 기름이 너무 많이 끼어 있다.”며 “공무원의 신분보장제(정년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철밥통’이라는 수치스러운 표현을 지적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한편 배 국장은 기획예산처 개혁기획팀장·예산제도과장·예산총괄과장 등을 거쳐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에 파견중이던 지난 1월 중앙부처 국장급 교류인사를 통해 행자부 지방재정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덕현기자 hyoun@˝
  • [부고]

    ■ 日위안부 징용 배족간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출신인 배족간 할머니가 지난 4일 오후 9시35분쯤 서울아산병원에서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배 할머니는 16살때 경찰지서 주임의 소개를 받아 광목공장에 취직하고자 부산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갔다가 항저우(杭州),다이칭(大慶) 등지에서 8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1963년 결혼해 73년 남편과 사별했으며 9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위안부 신고를 했다.할머니의 유골은 일본군 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에 따라 6일 오전 충남 천안의 국립 망향의 동산에 묻혔다. 이세영기자 sylee@ ●金隆一(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장·전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씨 별세 5일 오후 8시20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영결미사 7일 오전 10시30분 가톨릭대 성심교정 성당 (02)3779-2191 ●金春守(한양대 농구팀 감독)씨 부친상 5일 오후 9시20분 서울 한양대병원,발인 8일 오전 7시40분 (02)2290-9457 ●金孝謙(목포대 사무국장)씨 모친상 5일 오후 6시40분 충남 논산시 양촌면 채광2구 자택,발인 7일 오전 9시 (041)741-2961 ●吉信京(미국 거주)榮京(캐나다 거주)씨 모친상 盧政善(한국언론재단 이사)씨 빙모상 6일 오전 3시50분 서울대병원,발인 8일 오전 6시30분 (02)760-2032 ●宋定基(전 KBS 정경부장)씨 별세 李鎬哲(삼성전자 책임연구원)씨 빙부상 5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발인 7일 낮 12시 (02)760-2026 ●安文福(회사원)文善(동부정밀화학 직원)文勸(대한항공 직원)文喆(재정경제부 산업관세과 사무관)씨 부친상 5일 오전 11시 인천 적십자병원,발인 7일 오전 9시30분 (032)815-4220 ●鄭鍾喆(KBS 진주방송국장)鍾一(한독약품 상무)鍾學(강남구청 주택과장)鍾道(미키통상 대표)鍾明(티엠빌드 이사)씨 부친상 5일 오전 6시15분 서울 강남성모병원,발인 7일 오전 9시30분 (02)590-2352 ●元勝皓(현대엔지니어링 과장)勝晨(서울 알파와오메가학원 강사)씨 부친상 5일 오후 4시 서울 고려대안암병원,발인 7일 오후 3시 (02)921-5099 ●金東一(덴소풍성 직원)씨 부친상 具本祥(현대증권 창원지점 과장)씨 빙부상 5일 오전 5시15분 경남 창원시 상남동 한마음병원,발인 7일 오전 8시30분 (055)286-5106 ●申鶴秀(자영업)泌秀(〃)惠秀(〃)씨 모친상 宋在賢(서울 플러스학원장)씨 빙모상 6일 오전 6시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9시 (02)3010-2262 ●梁在根(서울산업대 사회체육학과 교수)씨 모친상 盧閏善(청주교도소 교도관)씨 빙모상 6일 오전 10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9시 (02)3010-2236 ●洪鍾國(화곡유통협동조합 이사장)鍾勳(자영업)鍾佑(좋은오늘 대표)鍾延(하오랜드 부장)씨 부친상 5일 오후 10시2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2)3010-2268 ●朱明俊(자영업)錫熙(글로텔 대표)錫載(아남전자기술 이사)씨 모친상 5일 오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7일 오전 9시 (02)3010-2293 ●吳英煥(전 동아일보 인천주재 기자)씨 별세 6일 오전 5시30분 인천 부평구 갈산동성당,발인 8일 오전 10시 (032)506-8001 ●金日坤(사이버다임 기획관리실장)씨 조모상 6일 오전 11시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61 ●李海龍(토펙ENG건축사사무소 감리사)씨 모친상 允植(선양카메오 대표)源益(광명시 열린연세정형외과 원장)仲植(서울대 초빙교수)씨 조모상 6일 오후 3시 서울아산병원,발인 8일 오전 7시 (02)3010-2295 ●宋宗燮(자영업)大燮(홍익대 미술대학 교수)씨 부친상 廉光烈(미국 거주)方珌洙(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전무)金承萬(서울 김승만내과의원장)씨 빙부상 6일 오전 7시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발인 8일 오전 9시 (031)920-0310
  • [총선 D-8] 3野대표 모두 낙선대상

    4·15총선 입후보자 가운데 지난달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참여한 현역의원 전원이 2004 총선시민연대의 낙선 대상자에 포함됐다. 총선연대는 6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구 출마자 208명과 비례대표 출마자 8명 등 216명의 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에는 한나라당 박근혜·홍사덕,민주당 조순형·추미애,자민련 김종필 후보 등 각당의 대표급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100명으로 가장 많고 민주당 57명,자민련 24명,열린우리당 10명 순이다.민주노동당과 국민통합21은 각 1명,무소속은 23명이다. 선정기준으로는 ▲부패·비리·선거법 위반 ▲반인권·헌정질서 파괴 ▲반의회·반유권자 행위 등 1·2차 공천반대자 선정에 적용한 6가지 기준이 동일하게 적용됐다. 논란이 된 탄핵안 가결 행위는 반유권자·헌정질서 문란 행위로 규정,낙선사유에 포함시켰다.탄핵안 가결에 찬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선 리스트에 오른 후보자는 민주당 김경재·정균환,한나라당 김문수·이윤성 후보 등 103명(지역구 100명,비례대표 3명),탄핵안 찬성과 다른 부적격 사유가 중복된 후보자는 민주당 박상천·유용태,한나라당 김용갑·정형근 후보 등 36명(지역구 35명,비례대표 1명)이었다. 지금종 공동집행위원장은 “2000년처럼 집중낙선대상자를 따로 선정하지 않았지만 탄핵안 찬성과 기타 사유가 중복된 지역구 출마자 35명이 집중적인 낙선운동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 낙선대상자 명단과 선정 사유 1.김명섭 (열린우리당,서울 영등포구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경선불복 및 철새정치행태) 2.김민석 (새천년민주당,서울 영등포구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경선불복) 3.김원길 (한나라당,서울 강북구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 4.박계동 (한나라당,서울 송파구을 - 공천반대자) = 선거법 위반 5.박주천 (무소속,서울 마포구을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현대건설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6.성장현 (새천년민주당,서울 용산구 - 공천반대자) = 선거법 위반 7.신계륜 (열린우리당,서울 성북구을) = 부패비리(굿머니로부터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 8.안완길 (새천년민주당,서울 서대문구을) = 도덕성/자질(변호사법 위반) 9.안홍렬 (한나라당,서울 강북구을 - 공천반대자) = 도덕성/자질(수사관련 물의),반인권전력 10.양경자 (한나라당,서울 도봉구갑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썬앤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하면서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중) 11.유용태 (새천년민주당,서울 동작구을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 및 철새정치행태),도덕성/자질(저질발언) 12.이원창 (한나라당,서울 송파구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색깔발언),도덕성/자질(폭력행사:전경폭행시비) 13.임래규 (새천년민주당,서울 노원구을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특허청장 재직시 발명회관 지식알선센터 설립 예산확보를 위한 로비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 14.임왕혁 (자민련,서울 은평구을) = 도덕성/자질(횡령,변호사법 위반 징역1년,집행유예 2년) 15.장성민 (새천년민주당,서울 금천구 - 공천반대자) = 선거법 위반 16.장세동 (무소속,서울 서초구을) = 반인권전력(민주헌정 질서파괴전력,수지김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종결지시) 17.정두언 (한나라당,서울 서대문구을 - 공천반대자) = 도덕성/자질(발언,성희롱 물의) 18.정순주 (자민련,서울 구로구갑) = 도덕성/자질(전과) 19.차은수 (자민련,서울 동작구갑) = 도덕성/자질(전과) 20.최병규 (자민련,서울 금천구) = 도덕성/자질(관세법 위반으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추징금 80억 선고후 미납) 21.홍승채 (무소속,서울 성동구을 - 공천반대자) = 도덕성/자질(폭행) 22.홍준표 (한나라당,서울 동대문구을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지역감정조장발언,폭로),선거법 위반 23.김무성 (한나라당,부산 남구을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공용주파수통신 사업자 선정 비리사건),선거법 위반,도덕성/자질(여성비하발언,재산불성실 신고),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근거없는 폭로) 24.김정길 (열린우리당,부산 영도구 - 공천반대자) = 선거법 위반 25.정형근 (한나라당,부산 북구·강서구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색깔론),반인권전력(검찰수사에 의해 고문행위가 드러난 서경원 밀입국사건 당시 대공수사국장,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사건),도덕성/자질(수사 및 재판 출두 불응) 26.조우섭 (새천년민주당,부산 동래구) = 도덕성/자질(전과) 27.안택수 (한나라당,대구 북구을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철새정치행태),도덕성/자질(비하발언) 28.주성영 (한나라당,대구 동구갑) = 도덕성/자질(1991년 5월 춘천지검 재직시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1998년 9월 쌍방 피해 후 당시 유종근 전라북도지사 비서실장의 이마를 술병으로 내리쳐 눈썹 주위를 찢기게 함.이 사건으로 전주지검에서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전보 발령됨) 29.박상희 (새천년민주당,인천 계양구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대리투표),부패비리(산업연수생 관련청탁) 30.송영길 (열린우리당,인천 계양구을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대우 김우중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원 수수),선거법 위반 31.이경재 (한나라당,인천 서구·강화군을 - 공천반대자) = 도덕성/자질(성희롱 발언),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색깔론),의정활동/개혁성(정치개혁관련법 개악시도) 32.이세영 (무소속,인천 중구동구옹진군 - 공천반대자) = 선거법 위반,반유권자(철새정치행태) 33.조만진 (새천년민주당,인천 부평구을) = 선거법 위반(17대 총선관련 선걱법위반 혐의로 구속,선거법 위반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고발조치 2건) 34.하근수 (무소속,인천 남구을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한보비리),반의회/반유권자 35.김대웅 (새천년민주당,광주 동구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이용호 게이트 수사기밀 누출 혐의) 36.염동연 (열린우리당,광주 서구갑) = 부패비리(특가법 뇌물수수) 37.정몽준 (국민통합21,울산 동구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제16대 대통령선거 후보단일화 후 선거하루 전인 2002년 12월18일 단일화 합의 번복) 38.최병국 (한나라당,울산 남구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부패비리(대전법조비리),반인권전력(부림사건 수사지휘검사),의정활동/개혁성(호주제 폐지 반대 발언,돈세탁방지법 무력화),도덕성/자질(압력성 전화) 39.강성구 (한나라당,경기 화성시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 40.김기석 (열린우리당,경기 부천시원미구갑) = 선거법 위반 41.김종열 (새천년민주당,경기 수원시영통구) = 선거법 위반 42.김진관 (새천년민주당,경기 안산시단원구을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 43.박종희 (한나라당,경기 수원시장안구)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국회의원 서청원 석방동의결의안 대표발의 의원,서청원 석방결의를 위한 의사일정 변경동의안 대표발의) 44.박준호 (자민련,경기 평택시을) = 도덕성/자질(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2년) 45.박혁규 (한나라당,경기 광주시)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부패비리(불법정치자금 제공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46.배기선 (열린우리당,경기 부천시원미구을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선거법 위반 47.신상진 (한나라당,경기 성남시중원구) = 도덕성/자질(2000년 5월 의료계 불법 파업 주도한 것과 관련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위반 등으로 집행유예) 48.신하철 (자민련,경기 안양시만안구) = 반의회/반유권자(의정활동 중 폭력행사),도덕성/자질(변호사법 위반으로 벌금 250만원),기타(총선연대의 소명요청에 출마포기서 보내왔으나 이를 번복,자민련 공천신청 확정) 49.안동선 (새천년민주당,경기 부천시원미구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 및 철새정치행태),의정활동(법안대표발의 0건,무단결석율 17.3%) 50.안종목 (새천년민주당,경기 남양주시을) = 도덕성/자질(병역법위반,사기 전과) 51.원유철 (한나라당,경기 평택시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 및 철새정치행태) 52.유영하 (한나라당,경기 군포시) = 도덕성/자질(청주 K나이트 클럽 사장 이원호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징계) 53.이사철 (한나라당,경기 부천시원미구을 - 공천반대자) = 반인권 전력,도덕성/자질 54.이윤수 (새천년민주당,경기 성남시수정구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도덕성/자질,선거법 위반 55.이재남 (민주노동당,경기 안양시만안구) = 도덕성/자질(1994년 4월 평택시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신 뒤 술값문제로 시비를 벌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5명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돼 1심 징역 10월,집행유예 2년 선고 확정) 56.이충범 (한나라당,경기 하남시 - 공천반대자) = 도덕성/자질(대한변협에서 과다수입료로 정직 3개월 징계조치,과다수임료 문제로 청와대 사정비서관에서 해임됨) 57.이해구 (한나라당,경기 안성시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반인권전력(수지김 사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국내파트 1차장으로 재직하면서 수사종결 지시) 58.이희규 (새천년민주당,경기 이천시여주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 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선거법 위반 59.최영식 (새천년민주당,경기 안양시동안구갑) = 도덕성/자질(품위손상과 성실의무 위반으로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징계조치) 60.홍남용 (새천년민주당,경기 의정부시갑 - 공천반대자) = 선거법 위반(허위학력기재로 벌금 80만원 선고 확정),도덕성/자질(면허증 부정발급 혐의로 선고유예) 61.홍문종 (한나라당,경기 의정부시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철새정치행태),선거법 위반(벽시계 등 금품 돌린 혐의로 2심 벌금 80만원 선고) 62.곽병렬 (자민련,강원 동해시삼척시) = 도덕성/자질(사길,사기및부정수표단속법 전과) 63.유재규 (새천년민주당,강원 홍천군횡성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선거법 위반 64.이용삼 (새천년민주당,강원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 65.허천 (한나라당,강원 춘천시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1993년 7월 6일 실시된 강원도 의회 의장선거와 관련,의장당선자로부터 금품수수) 66.김진영 (자민련,충북 청주시상당구) = 반의회/반유권자(지역감정 조장발언,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색깔론 제기),도덕성/자질(근로기준법,부정수표단속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특별사면복권) 67.이용희 (열린우리당,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서울시 교육감선거 관련 뇌물수수),선거법 위반 68.채영만 (새천년민주당,충북 청주시상당구) = 도덕성/자질(보건범죄특조법,의료법 위반,폭력행위 등 무고상해 전과) 69.최만선 (자민련,충북 제천시단양군) = 도덕성/자질(사기,폭력행위 등 위반으로 징역 1년6월,집유3년 선고) 70.김학원 (자민련,충남 부여군청양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의정활동/개혁성(돈세탁방지법 무력화) 71.박희부 (새천년민주당,충남 공주시연기군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특가법상뇌물수수혐의로 징역 2년 6월,집행유예 3년,추징금 1천만원 확정,1998년 8월 15일 특별사면,복권),도덕성/자질(1994년 7월 국회예결위에서 김숙희 교육부 장관에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 72.오시덕 (열린우리당,충남 공주시연기군) = 부패비리(사정기관의 내사 선처해달라며 김홍업에게 2천만원 건넴),선거법 위반(17대 총선 관련 금품 음식물,제공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고발) 73.오장섭 (무소속,충남 홍성군예산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철새정치행태),도덕성/자질(공직자윤리법 위반: 재산불성실 신고,상임위 활동에 있어 이해 충돌) 74.이상만 (무소속,충남 아산시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변호사법 위반,현재복권) 75.이인제 (자민련,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경선불복) 76.전용학 (한나라당,충남 천안시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차성표결,경선불복),선거법 위반 77.한영수 (무소속,충남 서산시태안군) = 민주헌정질서파괴전력(국가보위입법회의 위원) 78.함석재 (한나라당,충남 천안시을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철새정치행태) 79.김대식 (무소속,전북 김제시완주군) = 선거법 위반(17대 총선 관련 본인이 인쇄물 배부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고발),도덕성/자질(공무집행방해,뇌물공여의사표시,뇌물공여약속,협박죄로 징역1년 6월,집행유예 2년 선고) 80.이종률 (무소속,전북 남원시순창군 - 공천반대자) = 민주헌정질서파괴(1980년 10월∼1981년 4월 국보위 입법 의원) 81.최재승 (새천년민주당,전북 익산시갑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정치부패(석탄비리,특가법 위반) 82.구봉우 (자민련,전남 나주시화순군) = 도덕성/자질(공문서 위조,위조공문서 행사 징역1년 집행유예 3년) 83.김옥두 (새천년민주당,전남 장흥군영암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부패비리(국정원 떡값수수) 84.박상천 (새천년민주당,전남 고흥군보성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도덕성/자질(직위 이용한 월권행위,자질,특권의식),의정활동/개혁성(특검제 도입 약속 번복,검찰개혁 졸속 추진) 85.박주선 (무소속,전남 고흥군보성군 - 공천반대자) = 부패비리(현대비자금 수수 혐의로 뇌물죄 유죄선고,옷로비 사건관련 공용서류 은닉),의정활동/개혁성(정치개혁법안 개악 시도) 86.정철기 (새천년민주당,전남 광양시구례군)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찬성표결),선거법 위반(17대 총선관련 회계책임자가 선심관광,교통편의제공 혐의로 선관위에 의해 고발) 87.주승용 (열린우리당,전남 여수시을 - 공천반대자) = 선거법 위반,반유권자(경선불복 및 철새정치행태) 88.채경근 (자민련,전남 장흥군영암군) = 도덕성/자질(현주건조물방화죄로 징역6월,집유 1년) 89.최응국 (한나라당,전남 해남군진도군 - 공천반대자) = 도덕성/자질(도로교통법특가법 위반) 90.한화갑 (새천년민주당,전남 무안군신안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부패비리(정치자금법 위반) 91.김광원 (한나라당 경북 영양군영덕군봉화군)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 탄핵안 찬성표결,대통령선거 개표부정설과 관련 ‘전교조 교사들이 관련됐다’는 취지의 발언),의정활동 및 개혁성(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안 본회의 반대표결),선거법위반(15대 총선에서 본인이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80만원 선고) 92.김윤한 (새천년민주당,경북 안동시) = 도덕성 및 자질(도로교통법 특가법 위반 징역 1년 집행유예2년) 93.김화남 (무소속,경북 군위군의성군청송군 - 공천반대자) = 선거법위반,도덕성 및 자질(1994년 9월 30년 경찰청장 시절 주사파와 학생시위에 대한 근본대책으로 시위진압시 총기사용의 필요성 주장) 94.이상배 (한나라당,경북 상주시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 탄핵안 찬성표결,대리투표),민주헌정질서 파괴(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 내무분과위원회 위원),선거법위반,도덕성 및 자질(방일외교 ‘등신외교’ 발언) 95.임호영 (무소속,경북 김천시) = 선거법위반(17대 총선관련 기부행위,사전선거운동 등의 혐의로 선관위 고발),반인권전력 96.장윤석 (한나라당,경북 영주시) = 반인권전력(5.18 고소고발사건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으로 공소권 없음 결정) 97.함대명 (새천년민주당,경북 문경시예천군) = 도덕성 및 자질(특가법,도로교통법 위반,사문서위조및동행사,사기,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전과) 98.허화평 (무소속,경북 포항시북구) = 민주헌정질서 파괴(12.12및 5.18사건 당시 반란주요임무종사 등으로 징역 8년형 확정,97년 12월 사면복권) 99.김기춘 (한나라당,경남 거제시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탄핵소추안 찬성표결,지역감정 조장발언),도덕성 및 자질(이해관계인으로부터 편의제공),민주헌정질서 파괴 및 반인권전력,의정활동 및 개혁성(돈세탁방지법 무력화) 100.김동주 (무소속,경남 양산시) = 정치부패(수서비리) 101.김용갑 (한나라당,경남 밀양시창녕군 - 공천반대자) = 반의회/반유권자(대통령 탄핵안 찬성표결,색깔론 발언) 102.김우석 (무소속,경남 진해시) = 정치부패(한보비리,경성비리) 103.김호일 (무소속,경남 마산시갑 - 공천반대자) = 선거법위반,반의회/반유권자(지역감정 조장발언),도덕성 및 자질(장애흉내 및 비하발언,병역법 위반) 104.안석호 (자민련,경남 김해시을) = 도덕성 및 자질(변호사법 상해죄로 징역1년 집행유예 2년) 105.이기원 (자민련,경남 사천시) = 도덕성/자질(환경보전법,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재물손괴,건축법 및 수질환경보전법 옥외광고물관리법 위반 전과) 106.이태권 (자민련,경남 밀양시창녕군) = 도덕성 및 자질(변호사법 위반) 107.임채홍 (자민련,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 = 부패.비리(세무조사 무마청탁관련 금품수수) 108.김창업 (자민련,제주 제주시북제주군갑) = 도덕성 및 자질(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년 집유2년 선고) ■ 대통령 탄핵소추안 찬성을 단일사유로 한 낙선대상자 1.강운태 (새천년민주당 광주 남구) 2.강인섭 (한나라당 서울 은평구갑) 3.강재섭 (한나라당 대구 서구) 4.강창희 (한나라당 대전 중구) 5.고흥길 (한나라당 경기 성남시분당구갑) 6.권기술 (한나라당 울산 울주군) 7.권영세 (한나라당 서울 영등포구을) 8.권오을 (한나라당 경북 안동시) 9.권철현 (한나라당 부산 사상구) 10.김경재 (새천년민주당 서울 강북구을) 11.김기배 (무소속 서울 구로구갑) 12.김덕룡 (한나라당 서울 서초구을) 13.김문수 (한나라당 경기 부천시소사구) 14.김병호 (한나라당 부산 부산진구갑) 15.김상현 (새천년민주당 광주 북구갑) 16.김성순 (새천년민주당 서울 송파구병) 17.김성조 (한나라당 경북 구미시갑) 18.김영선 (한나라당 경기 고양시일산구을) 19.김영환 (새천년민주당 경기 안산시상록구갑) 20.김용학 (한나라당 강원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21.김일윤 (무소속 경북 경주시) 22.김정부 (한나라당 경남 마산시갑) 23.김충조 (새천년민주당 전남 여수시갑) 24.김태식 (새천년민주당 경기 성남시중원구) 25.김학송 (한나라당 경남 진해시) 26.김형오 (한나라당 부산 영도구) 27.김황식 (무소속 경기 하남시) 28.김효석 (새천년민주당 전남 담양군곡성군장성군) 29.나오연 (무소속 경남 양산시) 30.남경필 (한나라당 경기 수원시팔달구) 31.맹형규 (한나라당 서울 송파구갑) 32.목요상 (한나라당 경기 양주시동두천시) 33.박근혜 (한나라당 대구 달성군) 34.박금자 (새천년민주당 서울 영등포구을) 35.박종근 (한나라당 대구 달서구갑) 36.박진 (한나라당 서울 종로구) 37.박창달 (한나라당 대구 동구을) 38.박희태 (한나라당 경남 남해군하동군) 39.배기운 (새천년민주당 전남 나주시화순군) 40.백승홍 (무소속 대구 서구) 41.서병수 (한나라당 부산 해운대구기장군갑) 42.서상섭 (한나라당 인천 중구동구옹진군) 43.송광호 (한나라당 충북 제천시단양군) 44.송훈석 (새천년민주당 강원 속초시고성군양양군) 45.신영국 (한나라당 경북 문경시예천군) 46.신현태 (한나라당 경기 수원시권선구) 47.심규철 (한나라당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 48.심재권 (새천년민주당 서울 강동구을) 49.심재철 (한나라당 경기 안양시동안구을) 50.이강두 (한나라당 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 51.안경률 (한나라당 부산 해운대구기장군을) 52.안대륜 (자민련 서울 노원구을) 53.안상수 (한나라당 경기 의왕시과천시) 54.엄호성 (한나라당 부산 사하구갑) 55.오경훈 (한나라당 서울 양천구을) 56.원희룡 (한나라당 서울 양천구갑) 57.윤경식 (한나라당 충북 청주시흥덕구갑) 58.윤두환 (한나라당 울산 북구) 59.윤철상 (새천년민주당 전북 정읍시) 60.이규택 (한나라당 경기 이천시여주군) 61.이낙연 (새천년민주당 전남 함평군영광군) 62.이방호 (한나라당 경남 사천시) 63.이병석 (한나라당 경북 포항시북구) 64.이상득 (한나라당 경북 포항시남구울릉군) 65.이성헌 (한나라당 서울 서대문구갑) 66.이승철 (한나라당 서울 구로구을) 67.이윤성 (한나라당 인천 남동구갑) 68.이인기 (한나라당 경북 고령군성주군칠곡군) 69.이재선 (한나라당 대전 서구을) 70.이재오 (한나라당 서울 은평구을) 71.이재창 (한나라당 경기 파주시) 72.이정일 (새천년민주당 전남 해남군진도군) 73.이주영 (한나라당 경남 창원시을) 74.이한구 (한나라당 대구 수성구갑) 75.이해봉 (한나라당 대구 달서구을) 76.이협 (새천년민주당 전북 익산시을) 77.임인배 (한나라당 경북 김천시) 78.임진출 (무소속,경북 경주시) 79.임태희 (한나라당 경기 성남시분당구을) 80.장광근 (한나라당 서울 동대문구갑) 81.전갑길 (새천년민주당 광주 광산구) 82.전용원 (한나라당 경기 구리시) 83.전재희 (한나라당 경기 광명시을) 84.정갑윤 (한나라당 울산 중구) 85.정균환 (새천년민주당 전북 고창군부안군) 86.정병국 (한나라당 경기 양평군가평군) 87.정우택 (자민련 충북 증평군진천군괴산군음성군) 88.정의화 (한나라당 부산 중구?동구) 89.정진석 (자민련 충남 공주시연기군) 90.조순형 (새천년민주당 대구 수성구갑) 91.조재환 (새천년민주당 서울 강서구갑) 92.조정무 (한나라당 경기 남양주시을) 93.조한천 (새천년민주당 인천 서구?강화군갑) 94.최연희 (한나라당 강원 동해시삼척시) 95.추미애 (새천년민주당 서울 광진구을) 96.함승희 (새천년민주당 서울 노원구갑) 97.허태열 (한나라당 부산 북구 강서구을) 98.현경대 (한나라당 제주 제주시북제주군갑) 99.홍사덕 (한나라당 경기 고양시일산구갑) 100.황우여 (한나라당 인천 연수구) ■ 비례대표 부적격 후보 1.김경천 (새천년민주당) 2.김종인 (새천년민주당) 3.김종필 (자민련 - 공천반대자) 4.김홍일 (새천년민주당) 5.김휴섭 (새천년민주당) 6.박배철 (자민련) 7.장재식 (새천년민주당 - 공천반대자) 8.조희욱 (자민련) ˝
  • [김영희 이혼클리닉] 동거중 남자친구가 결혼하자는데…

    [김영희 이혼클리닉] 동거중 남자친구가 결혼하자는데…

    서른살된 전문직 여성으로 남자친구와 2년째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결혼하지 않기로 했는데,남자친구가 마음을 바꿔 아이를 갖고 싶다며 결혼을 재촉합니다.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남자친구하고 헤어지기도 싫습니다.어쩌면 좋을까요? -장민정 한 조사에 의하면,남녀 네티즌 470명을 대상으로 동거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전체의 61%가 ‘반대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합니다.반대하는 이유로는 ‘성(性)적으로 무책임할 수 있기 때문에’‘헤어지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결혼의 신성함이 퇴색되기 때문에’‘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사회적 인식이 아직은 부정적이기 때문에’‘전통적인 정조관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등 순이었고,반면 동거에 찬성한다는 응답자의 39%는 ‘결혼에 앞서 보다 신중한 결정을 위해’‘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 때문에’‘생활비 절약’‘호기심 때문에’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장민정씨.남자친구와 2년째 동거하고 있다면 짧은 세월이 아니네요.독신으로 살지 않을 생각이라면 결혼할 나이가 꽉 찬 것 같습니다.‘결혼은 해도 후회,안 해도 후회한다.’고 합니다.많은 미혼 남녀들이 “결혼 하는 게 좋을까요.안 하는 게 좋을까요?”하고 난감한 질문들을 해오는데 저는 이런 비유를 해 봅니다. 옛날에 장님들에게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한 후,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가 물었더니 대답이 제 각각이더랍니다.집체만한 코끼리를 보지 못하고 손으로만 더듬어 본 장님들이라 대답이 다를 수밖에 없었겠지요.또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결혼하는 게 좋을까요?”하고 묻는다면 “결혼하세요,정말 좋아요.”할 것이고,불행한 결혼으로 마지못해 살고 있는 사람은 “아이고….하지 마세요.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어요.”하겠지요.우스갯소리로 결혼은 ‘복권당첨’과 같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민정씨.동거와 결혼은 근본부터가 다릅니다.동거는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절실하지 않으니 의무감 또한 없고 싫으면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지만,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여성들은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동거가 남자는 손해 볼 것 없다는 인식들을 하고 있어 여성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입니다.일부 젊은 층에서 서구 문화를 잘못 받아들여 동거를 유행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자유 분방한 것처럼 보이는 미국사람들도 동거를 바람직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일부 계층의 일부사람들에 불과하지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혼이 급증하다 보니 살아보고 결혼하겠다는 신중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한 이불 덮고 몇 십년을 살아도 알 수 없는 게 부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청춘 남녀는 결혼을 합니다.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고 싶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저축을 하고….결혼은 미래가 있지요.민정씨.누군가 나를 챙겨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구속일 수만은 없습니다.결혼을 하면 백 가지 고민이 생기고,결혼하지 않으면 단 한 가지 행복도 느낄 수 없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인생관이 다르니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가를 단정키 어렵지만 상식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기로 했던 남자 친구가 마음을 바꿔,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고 싶다고 했다면 같이 사는 동안 당신을 많이 사랑하게 됐나 봅니다.주변에 이혼한 친구들을 보고 ‘이혼공포증’으로 결혼하기가 두렵고,구속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고 싶고,남자 친구하고 헤어지기도 싫다는 생각인데….떠나보내고,또 새롭게 만나고,화살처럼 빠른 게 세월이랍니다. 민정씨.독신으로 살며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는 여성도 많습니다만,이제 당신은 자신의 앞날을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남자친구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면,그를 떠나 보내줘야겠지요.나이 들어 외롭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 ‘김영희 이혼클리닉’에서 받습니다.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

    “퇴계선생은 로맨스나 스캔들이 없었나요?” “왜요,단양의 기생 두향(杜香)이 하고 연애한 것은 유명하잖아요.” “낮퇴계,밤퇴계가 달랐다면서요?” “그런 속전이 있지.” “자네 퇴계선생의 매화음(梅花吟)이라는 걸 들어봤나?” “아뇨.” “퇴계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알고 싶으면 매화에 관한 시를 읽어봐.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저 매화나무에 물 줘라’하셨고 내내 아무 말 없다가 저녁에 일으켜 앉히니 앉은 채로 서거하셨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서 저자와 한 퇴계연구가 사이에 오고 간 선문답이다. 혹자들은 100여년전에 ‘서유견문’의 유길준(兪吉濬)이 있다면 이 시대에는 ‘문화견문’을 쓴 유홍준(兪弘濬·55·명지대 미술사학)교수가 있다고 얘기한다.공교롭게도 둘은 이름의 ‘돌림자’도 같은 기계(杞溪)유씨 ‘충목공파’의 문장가 집안 출신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반도 구석구석 안 가본데가 없다.북한까지 다녀왔다.발품으로 일궈낸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3권이 이를 입증한다.1,2권만 합쳐 250만부나 팔렸다.작고한 소설가 이문구는 생전에 그를 가리켜 ‘문화재급 역마살’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국토 박물관’으로 불려 그는 지난 10년동안 ‘나의 문화유사 답사기’(이하 답사기)를 비롯해 ‘완당평전’‘화인열전’ 등 13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특유의 감각적 글솜씨로 ‘해방후 최고의 베스트셀러’‘살아 있는 국토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어다닐 정도로 평판이 높다. 시인 박노해씨는 옥중에서 ‘답사기’를 읽고 저자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제 눈을 맑게 열어준 운명같은 마주침의 책,펼칠 때마다 선방의 죽비처럼 내 등짝을 때리는 책,내 마음속 가장 은밀한 자리에 꽂아둔 우리 시대 고전같은 책입니다.…유 선생의 ‘답사길’을 따라가다보면 내 속에 갇혀 있던 나 아닌 것들이 벌떼처럼 살아나서 나를 깨뜨립니다.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자식이구나,조상님들이 내속에 살아계시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답사기’를 읽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했다.“읽고 깨우친 바 기쁨이 하도 커서 말하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없다.기막힌 비경이나 특별히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풍기고 싶어 입이 근지러운 심정이라고나 할까….” 지난 주말 명지대 행정관 4층 복도끝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노크했다.한창 집필중인 ‘답사기’ 4,5권의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연구실 문을 열자 ‘고색 창연한’ 냄새가 코끝에 확 밀려왔다. 산골 오지의 어느 노인이 밤새 새끼꼬아 촘촘히 기워만들었음직한 멍석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그위에는 낡은 궤짝 하나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또 양쪽 벽에 쭉 늘어진 책꽂이에는 ‘답사의 노정’을 말해주듯 때묻은 고서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1만권은 훨씬 넘지요.이쪽은 한국미술사,저쪽은 중국미술사,저기 저쪽에는 서양미술사 책자들이지요.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중독처럼 사다놓은 결과물입니다.” 담배 하나 꺼내 물었다.97년 이전에 3년정도 끊었으나 북한을 다녀오면서 다시 피우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네모난 성냥곽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성냥은 충청도 어딘가에 있는 국내 유일의 공장에서 만든것입니다.그런데 자동이래요.이렇게 열었다 놓으면 뚜껑이 저절로 닫히니까.나원 참….”답사도중에 얻어온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가지 놀라운 일,책상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었다.600자원고지와 만년필이 대신해 있었다.그는 “컴퓨터로 글을 쓰면 이쪽저쪽에서 글을 퍼오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쓰다가 잘못되면 원고지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써야 글이 살아 숨쉰다.”며 특유의 ‘원고지철학’을 늘어놓았다.컴퓨터는 인문적인 것을 쏙 빼버린 기계적인 빠름일 뿐,고뇌도 없고 과정도 없으며,잃어버린 게 많다고 했다. 문득 독자들을 사로잡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했다.기다렸다는 듯이 “최고의 취미는 여행이다.여행이라는 매체를 넣고 글을 썼다.마침 독자들이 거기에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거침없는 답변이 계속됐다. ●“학자인지 문필가인지 나도 몰라” “가끔 내 자신이 학자인지,문필가인지,평론가인지를 물어보곤 합니다.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문사(文士)가 없어요.고행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문사말입니다.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서 문사일 수 없으며 지조있는 선비정신이 내재돼야 합니다.‘답사기’를 3권까지 썼지만 갈수록 글쓰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절반쯤 진행중인 4,5권 집필도 더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제주도를 답사했더니 4·3사건을 안 다룰 수가 없고,경상도를 갔더니 거창학살사건을 다시 조명해야 하기 때문이란다.이런 과정을 거쳐 ‘답사기’의 완결편 2권을 올 상반기중 마무리할 작정이다. 그런 다음 일생의 또다른 역작,즉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어떤 강렬한 요구에 답을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새로운 다짐이다.그것은 온국민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일이다.준비는 오래전부터 해와 곧바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술사는 문화사의 꽃입니다.학식과 학덕을 쌓은 사람이 그 시대의 역사관을 잘 반영했을 때 더욱 향기나는 꽃이 되겠지요.또 복잡한 현상을 단박에 단도질할 수 있는 깊이와 연구업적이 뒤따라야 합니다.영어로 쓰여진 한국미술사는 물론 번역할 수 있는 마땅한 텍스트도 없습니다.” ●한국인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 강해 이곳저곳 강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인은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그는 반면에 열등의식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다.결국 ‘짬뽕’식이 되다보니 단군 이래 세계문화를 주도해본 적이 한번도 없이 중심부가 아닌,늘 주변부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이제는 주변이 아닌 중심적인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동아시아문화의 ‘주주’로서 다른 나라에 문화적 영향을 줘야 한다는 필연이 도래했다고 역설했다.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이란다. “일본은 동아시아를 주도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네들만 살려고 해서 실패했습니다.더이상 도덕적으로 동아시아를 주도하기는 틀렸습니다.중국사람들은 우리보다 5,6년 뒤져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한류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십시오.대중의 힘은 어마어마합니다.미국의 문화가 오기전에 마를린 먼로가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왔지 않습니까.이제는 세계에서 1등이 나와야 합니다.노무현 대통령도 동아시아물류중심국가를 외쳤는데 이는 반쪽에 불과합니다.물류와 문화가 합쳐진 그런 정책이어야 하지요.” 나이 40이 넘어가면 과거의 이력이 얼굴에 하나둘 새겨진다는 말을 꺼내자 그는 “파란과 곡절도 많았다.93년 이전까지는 정말 별볼 일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14년반만의 대학졸업,교수직 박탈,8년동안의 백수상태,운동권 이론가라는 제도권 교수의 따돌림 등만 떠올려도 그렇단다. ●고3때 담임선생님 권유로 미대 진학 청운초·중학을 나온 그는 경복고교 입학시험에 낙방했다.중동고로 방향을 튼 그는 1967년 고3때 국문학과를 택하려고 했으나 담임선생의 권유로 서울대 미학과에 진학했다.그러나 ‘예술학개론’‘예술비평’ 등의 딱딱한 강의가 많아 연극회에 가입해 유치진의 ‘토막’,천승세의 ‘만선’ 등 민족극 공연에 적극 참가했다.공부는 뒷전이었다.연출은 주로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김지하씨가 맡았다. 대학시절 그의 서울 종로구 창성동 집에는 소위 ‘의식있는’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보안 경찰관에게 데모꾼 소굴로 인식됐다.결국 69년 4월 ‘3선개헌 풍자극’의 대본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그해 7월 무기정학을 받았다.시련을 호되게 겪은 그는 서둘러 군입대를 하게 됐다.제대 후 한국미술사 연구에 필생을 걸고 뜻을 세우지만 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됐다.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현상수배중이던 이철(전 국회의원)에게 남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75년 2월 그는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다.방황하던 그는 7개월 뒤 군복무중 미술관에서 만난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원래는 장준하 선생이 주례를 맡기로 했으나 의문의 실족사로 리영희 교수로 바뀌었다.결혼 후에는 금성출판사,공간사 등에 다녔다. 80년 10월,입학한 지 14년 반만에 겨우 졸업장을 받고 이듬해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에 들어갔다.대학원을 마친 그는 건국대 교수로 채용됐으나 미복권 상태임이 밝혀져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이때 그는 ‘미술속에서 현실을 찾자’는 구상 아래 그 유명한 슬라이드강좌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를 열어 떠돌이 생활로 대중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답사기’라는 역마살도 이때 시작됐다. “인세요? 한 15억원정도? 세금 한 4억 냈을테고….집사람한테 물어봐도 안 가르쳐줘요.장관이라도 돼야 정확히 알 수 있을란가?(웃음)” ‘답사의 달인’에게 꼭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전문화의 진수는 경주,건축의 아름다움은 병산서원·부석사라고 했다.또 자연의 풍요로움을 느끼려면 제주가 으뜸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알면 보이나니,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유홍준 교수는 ▲1967년 중동고 졸.80년 서울대 미학과 졸.83년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98년 찰학박사(성균관대). ▲77년 공간 편집부.78년∼83년 중앙일보 계간 미술부 근무.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당선.91년∼2002년 영남대 회화과 조교수.2002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장.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2003년 문화재위원. ▲저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다시 현실과 비평에서,정직한 관객,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3,나의 북한유산 답사기,완당평전,화인열전 등. ˝
  • 김융일 가톨릭大 대학원장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을 역임한 가톨릭대 김융일 사회복지대학원장이 5일 오후 8시20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향년 63세. 1964년 서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김 대학원장은 숭실대와 성심여대,가톨릭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쳤으며 한국치료레크리에이션협회장과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을 지냈다.빈소 여의도 성모병원,발인 7일 오전 9시 (02)3779-2191.˝
  • 교수들도 민노당 지지 선언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위원장이 민주노동당 지지를 밝힌데 이어 일부 교수단체가 잇따라 민노당 지지를 선언하거나 당선·낙선 운동에 가세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교수노동조합(위원장 황상익 교수)은 부산 금정구에 민노당 후보로 출마한 김석준 부산대 교수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또 6일쯤 위원장 특별서한 형식으로 조합원에게 민노당 지지를 촉구키로 했다. 민주노총 산하 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위원장 변상출 교수)도 ‘반 한나라당,민노당 집중,수구세력 청산,진보정치 실현’을 기치로 내걸고 경기 평택에서 민노당 후보로 출마한 김용환 성균관대 교수를 지원하고 있다.영남대·경북대 등에서는 대통령 탄핵과 이라크 파병 문제 등과 관련,공동수업을 준비중이다. 한편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의장 손호철 교수)는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총선연대 정책팀에 참여,정당 평가와 낙선 대상자 선정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민교협 공동의장인 박상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진 않지만 진보운동 부각과 진보세력의 정치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사립대학 교수협의회연합회(회장 김성수 교수)도 지난달 27일 사학비리를 옹호하고 사립학교법 ‘개악’에 참여한 국회의원의 명단을 공개하는 등 낙선 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영규기자 whoami@˝
  • [5일 TV 하이라이트]

    ●포토에세이 사람(오전 10시50분) 조성연씨는 한인 3세 화가로 현재 자신의 작품을 사할린 국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다.2년 전 제주도에 국제 문화축제초청을 받은 것 말고는 한국에 온 적은 없지만,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학교도 다니고 한국음식도 즐겨먹는다.‘한국사람 조성연’의 미술에 담긴 고향 세계를 찾아본다. ●사이언스+(오전 8시30분) 수술이 필요 없는 환자가 의사의 권유로 척추수술을 받고 부작용을 호소한다.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척추관련 신기술을 이용한 치료법으로,환자의 주머니를 긁어내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대학병원 교수들이 ‘과잉 진료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자정운동을 펼치는 현장을 찾아간다. ●하나뿐인 지구(오후 10시20분)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황사는 그 피해가 우리나라에까지 미치고 있다.날이 갈수록 중국의 국토 가운데 사막이 되는 토양이 넓어지고 있어 중국의 사막화는 중국,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반에 걸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사막화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 산림의 중요성을 새겨본다. ●리얼TV 경찰24시(오후 10시50분) 경기도 일대의 찜질방에 비상이 걸렸다.드라이버 하나만으로 옷장을 열어 손님들의 금품을 훔치는 10대들 때문이다.그들은 24시간 영업 찜질방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다.검거를 하고 조서를 작성하면서 형사들은 그들이 모두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2004인간시장(오후 10시5분) 곰은 사주를 받고 20년 동안 자기와 함께 지낸 양사장을 제거한다.곰은 총찬에게 전화를 걸어서 시연이 잡혀 있다고 거짓말한다.총찬은 시연을 구하기 위해서 쫓아간다.총찬이 들어서자 양사장이 쓰러져 있고,경찰들이 들이닥친다.살인범으로 몰린 총찬은 죽을 힘을 다해서 도망간다. ●백설공주(오후 9시50분) 진우가 지나가며 영희가 만든 케이크를 먹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영희는 그 말을 새겨듣는다.희원은 진우의 마음을 잡기 위해 그의 집으로 찾아가 영남에게 양주를 선물한다.그때 진우와 영희는 주사장집 케이크를 들고 온다.영희와 희원은 진우집에서 영남과 진우가 눈치채지 못할 암투를 벌이게 된다. ●한민족 리포트(밤 12시) 사막 위에 30여년 만에 세워진 기회와 도전의 땅,두바이.그곳에서 가구왕이 된 한국인 차정헌 회장.그의 회사에서 만들어낸 가구들은 두바이 최고급 호텔과 건물들을 장식하고 있다.80년대 중동 건설현장의 한국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차 회장의 성공비결과 제3국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을 만나본다.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0대 사건 중 하나는 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사운동이었다.여러 세기에 걸쳐 인간 이하의 천민으로 분류되어 수탈과 탄압,능멸과 죽임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백정(白丁)들도 인간이라는 백정해방운동을 형평사운동이라 불렀다.일본의 부락민(部落民),유대인 차별 정책인 게토,인도의 최하층민 수드라,노예시장의 매매물건인 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이,1923년 이전 한국의 백정들도 인간이 어찌 평등할 수 있느냐는 조선시대 정치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우리의 이웃이었다. 형평사운동을 계획하고 탄생시켰으며,그후 십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문제를 줄기차게 제의했던 사람들 중에서 강상호(姜相鎬)와 장지필(張志弼)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진주 형평사운동은 ‘백정해방운동’ 장지필은 대물림한 백정 집안 후손이었다.그의 부친 장덕찬(張德贊)은 경남 의령의 백정인데 상당한 재력가였다.백정의 주된 사업인 도살업,육류판매,피혁의 건조와 가공,쇠기름(牛脂)의 생산 판매,소피(牛血)를 이용한 식품의 제조와 판매,가축의 내장과 뼈의 판매,이를 이용한 음식점의 독점적 운영은 오랫동안 백정 계급만의 전용물이었다. 이 사업은 이윤이 많이 남기로 유명한 데다 국가로부터 세금 징수의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생각이 깊었던 이들은 큰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19세기 후반 이후 서울과 지방의 토호들은 백정들의 전유물이었던 도축장 경영권을 빼앗는 농간을 부렸다.많은 백정들은 토호들의 자본에 흡수되어 신분의 억압 외에 다시 경제적 수탈 대상이 되었고,이중의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장덕찬은 대구의 김경삼,부산의 이성순,마산의 이상윤과 박유선,진주의 이학찬 등과 함께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백정출신 부호였다.당시에는 재력가라 하여도 백정신분으로 서당이나 향교 같은 교육기관에 나가 공부할 수 없었다.백정들은 평민들과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장소에 얼씬거리는 것도 금지되었으며,교회 설립 초기에는 일반인과 백정이 함께 예배보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장덕찬은 집에 독선생을 초빙해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켰는데,장덕찬의 아들 장지필은 요즘식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하여 일본 메이지대학까지 유학하였다.행운아였던 셈이다. ●‘장지필’은 백정 출신의 부호 장덕찬은 평생토록 백정 해방을 꿈꾸며 투쟁하였다.그는 1887년 무렵 경상도 관찰사에게 백정도 패랭이를 벗고 망건을 쓸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경상도 71개 군에 있던 백정공동체인 도중(都中)들을 모아 시위를 벌였다.그 과정에서 곤장을 맞고 고문도 당했지만 요구를 끝까지 외쳐 경상도 백정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장덕찬에게 곤장을 가하며 백정들의 요구를 거부했던 경상도 관찰사는 이호준(李鎬俊·1821∼1901)인데 그의 아들이 한일합방을 주도한 이완용이다. 관찰사와 담판을 벌였을 만큼 재력과 식견을 갖추었던 장덕찬은 아들에게 백정 해방을 위한 투쟁정신을 물려주었다.아버지의 뜻을 잇는 장지필은 세상의 두터운 차별의식과 싸우기 위해서는 재력과 신학문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믿어 동경유학을 감행했고,귀국하여 백정해방 운동에 전력을 다한 백정 해방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강상호’ 양반신분으로 독립운동 헌신 반면 강상호는 당시 진주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양반신분이며 부유한 집안의 큰아들이었다.일제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문맹에서 눈을 떠야 한다며 학교 세우기와 신식교육을 장려했고,직접 기미년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한 행동하는 지성이었다.애국계몽운동의 하나로서 동아일보 창간 주주로 참여했고,신간회활동 등 일제에 문화적으로 항거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장지필과 강상호가 지향하는 백정해방운동의 목표는 서로 달랐다.강상호는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순진하다 할 수 있는 민족운동노선을 따른 데 반하여,장지필은 백정 고유의 산업에 일반인들이 진출하지 못하게 하여 백정계급의 경제적 토대를 지키고 장차 백정들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관념적인 백정해방운동은 성공할 수 없으며,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경제적 자신감이 있어야만 백정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믿는 바는 달랐지만,1923년이라는 시대상황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장지필과 강상호가 함께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1919년 기미만세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표방하였다.민중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이다.국내에는 다양한 사회운동 조직이 생겨났고,각 조직은 민족해방운동의 뜻을 폈다.겉으로는 조직 회원들이나 민중의 계몽을 표방했으나 궁극적으로는 민족해방을 바란 것이다. 민족해방운동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첫째는 일본에 무장 투쟁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한 민족독립운동으로 만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애국주의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치중했다.두 번째는 대종교,보천교 등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었고,세 번째는 3·1운동을 이끈 세력이 주도한 문화 계몽 운동이었다. 강상호가 문화 계몽 운동에 매진하고 있던 중에 진주의 대표적인 부자 백정 이학찬이 새집을 장만하여 강상호의 이웃으로 이사하였다.강상호는 이학찬의 이사를 계기로 백정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원래 진주 지방에는 여느 행정 관청이 있는 주요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관청 관할 아래에 백정들의 거주지가 정해져 있었다.이른바 백정마을 혹은 백정놈 동네였다.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백정단취(白丁團聚) 조항에 따라 거주이전이 금지되었고 죽는 날까지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혹 거주지를 이탈하면 엄하게 처벌받았는데,마을 밖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관청에서 발행한 통행 증명서가 필요했다.통행증명서에는 목적지와 여행 기간이 적혀 있어서 이를 어길 때에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개도살 요구 거절한 백정, 매질당해 죽어 그러나 1863년 고종임금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특별사면으로 백정마을에서 살던 백정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얻게 된다.거주이전 금지 규정이 해제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숙명 같았던 옛 거주지를 벗어나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로 옮겨가기 시작했고,재력 있는 백정은 마을 안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백정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강상호는 기미 독립만세 시위 이후 어느날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하였다.진주공원에서 청년들에 의해 백정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청년들은 백정마을에 사는 백정을 강제로 데려와 개를 잡으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 백정은 청년들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였고,결국 매질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이후 백정들이 청년들을 고소하였지만 죽은 백정은 호적이 없으므로 그를 죽인 청년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일본 경찰의 판결이 내려졌다.살인죄가 성립하려면 죽은 자의 신원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법률적 증거가 없으므로 산짐승이나 벌레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이 사건은 강상호가 백정해방운동에 적극 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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