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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근대사 100년-좌담] “한국전쟁·반공국가주의가 좌우이념 공존 차단”

    왕조시대의 몰락,서양문물의 유입과 함께 시작한 우리의 근대는 서울신문의 궤적이기도 하다.1904년 서울신문의 전신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될 즈음,우리에게 이식된 서구의 이념은 100년의 세월동안 한국을 움직이는 기간 동력이었다.근대 공간에서 이념은 때로는 항일이나 민족,때로는 개발 논리,또 이후에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우리 사회를 견인했다.그러나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이념적 모순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아직도 보수와 진보,좌파와 우파를 보는 우리의 시각은 협소하고 뒤틀려 갈등과 대립상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여기에 21세기 진로와 정당성에 대한 비판까지 겹쳐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서울신문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임지현(한양대 사학)교수와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교수의 대담을 통해 한국 사회를 관통해 온 이념의 좌표와 미래를 짚는다. -임 공교롭게도 서울신문의 전신 대한매일신보의 창간과 우리가 셈하는 근대의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된 1904년은 안팎으로 시련기였으며,대한매일신보는 이런 시대적 요청과 필요성으로 태어났다.여기에 주목해 보면 우리의 근대사와 영욕을 함께한 서울신문의 존재 의미도 자연스레 살필 수 있지 않을까. -김 신문이라는 매체의 등장이 바로 새로운 이념의 산물이었다.당시는 국운이 쇠해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때였다.이때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된 것은 ‘항일’과 ‘민족’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었는데,그런 가치가 우리 근대에 크고 깊게 자취를 남겼음을 부인할 수 없다.아쉬운 것은 일제 강점기와 1970∼80년대 개발시대를 지나면서 일제와 독재정권에 예속돼 제 목소리를 잃었다는 점이다.90년대 중반 제호를 서울신문에서 대한매일로 바꾸면서까지 그런 과거와 단절하려고 노력했고,지난해 서울신문으로 다시 태어나 확실히 권력과 거리를 두고 건강한 긴장관계를 지키고 있다고 본다.긍정적인 변화다. -임 그런 각성 위에서 서울신문이 우리 사회 공론의 장이 되고,또 새로운 성장의 토대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개화기 대한매일신보의 계몽적 역할은 아무리 그 의의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하지만 21세기의 신문은 달라야 한다.계몽이 강조되다 보면 일방적 주의주장이나 자기정당화의 덫에 걸릴 위험이 많다. 이념 측면에서 지난 100년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일제하에서는 지식인 중심의 좌파적 경향이 지배했고,광복 후에도 이런 배경 때문에 좌우 대립이 치열했다.그러나 당시의 좌우대립은 지금처럼 경직된 모습은 아니었다.그런 점에서 한국전쟁과 이후 박정희 시대의 반공국가주의는 냉전의식의 확산과 좌우 이념의 공존을 차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본다. ●식민통치·분단·민주화 거치며 대전환 완성 -김 근대 100년은 전통사회에서 근대로의 전환이 이뤄진 시기로,식민통치와 분단,민주화라는 큰 궤적을 거치면서 대전환이 완성됐다.문제는 이런 전환이 현재 인권과 분배,환경문제 등에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임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를 고정된 실체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다.이념 구획이 냉전적이다.세계주의가 곧 신자유주의고,이게 보수라는 그릇된 인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살펴보면 우리의 세계주의는 민족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다.지금은 민족주의자도 세계화를 공유해야 한다. -김 60년대까지도 우리는 보수가 곧 우파이며,진보는 좌파라는 인식,나아가 보수는 안정이고 진보는 변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들여다보면 진보적 보수도 있고,보수적 보수도 있다.이런 시각에서 신자유주의는 세계적 보수,국내의 파병반대 이념은 세계적 진보의 표면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지금은 ‘보수=우파,진보=좌파’라는 인식이 적용되지 않는 세상이다.보수와 진보라는 2분법에 세계주의가 더해진 분류법이 제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광복 후 가장 큰 이념적 분기점은 분단으로 본다.이후 80년대까지는 우파 주도의 사회였고,진보주의자나 좌파에는 정치적 시민권이 부여되지 않았다.결국 이런 족쇄가 이념적 지형과 사유의 폭을 협소하게 했는데,이게 80년대 들어 해빙된 것이다. -임 우리 이념체계의 골격인 민족주의 문제도 짚을 필요가 있다.지금의 국제주의는 전 지구적이며,네트워크화하는 특성을 보이는데,우리는 여전히 민족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다.일제강점이나 광복,한국전쟁 등은 한마디로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성’이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그것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 대 반공주의,제국주의 대 민족주의,독재 대 민주주의처럼 이항대립적 이념틀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하게 했고,특히 한반도에서 그 대립은 경직된 형태로 나타났다.그 결과,현실이 이념적 대립에 포박 당해,관념이 승하고 그 관념이 다시 현실을 악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했다고 본다. -김 사실,오늘날 진보주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딜레마에 빠져있다.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적극 사고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세계화의 다중적 특징의 하나는 무한경쟁인데,여기에서 국가나 민족의 개념을 뺀다는 것은 무장해제와 다름없다.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파병 문제도 결국 민족국가적 선택일 텐데,이런 국가주의,민족주의가 개인주의와 개개인의 자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맞서지만,긍정적 면도 간과할 수 없다.예를 들어 월드컵 때의 거리응원을 두고 일부는 파시즘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잠재력의 분출이나 민족주의의 표출로 읽는다.이 이중성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과제일 것이다. -임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도 좋고 나쁜 모델이 따로 있는데,많은 경우 서로 섞여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다.우리의 경우 식민통치를 경험해 저항적 민족주의의 경향이 강한데,이후 박정희가 지배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이를 이용했던 게 사실이다.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바람직한 국가 혹은 이념모델의 정립이 가능하지 않겠나.살펴보면 민주화 세력과 박정희 반공독재는 항상 길항관계를 유지했으면서도 당시의 진보주의자나 좌파는 체제 내에서 존재했다. -김 나는 민족주의를 열린 민족주의와 닫힌 민족주의로 구분하고 싶다.닫힌 민족주의는 공존과 다양성에서 한계를 갖는데,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열린 민족주의다.이는 인간과 민주주의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다른 민족,다른 국가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 기능하는 민족주의일 것이다.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세계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 민족주의 프로그램이다. ●민족주의안에 내장된 폐쇄성 극복해야 -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민족주의의 에너지는 엄청나지만 그 안에 내장된 폐쇄성의 코드를 극복하는 게 필요하다.돌이켜보면 광복 이후 민족이라는 대아(大我)에 개인이라는 소아(小我)가 철저히 매몰돼 개인과 개인의 자율성이 민족주의에 포박된 시기였다. -김 지금의 강고한 민족주의 흐름은 근본적인 자기 비판을 통해 부정적인 면을 해체해야 한다.이런 면에서 바람직한 민족주의는 NGO나 기업 등 다양한 중간조직이 활성화된 것이라야 한다. -임 확실히 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공공성은 신장되고 있다.그런 점에서 우리의 이념적 미래는 일정하게 건강성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규정하고 ‘그러므로 내가 정답’이라고 여기는 행태는 바뀌어야 한다.그건 독선이다. -김 향후 우리 사회의 과제를 개혁과 민주적 통합이라고 본다면,시급한 것은 박정희 시대와 그 시대의 이념으로부터의 단절일 것이다.그런 점에서 일부 문제가 없지 않으나 80년대 이후 진보주의자의 운동 방향을 옳다고 본다.문제는 지금 보이는 박정희 시대에의 향수와 반공국가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인데,우리의 보수가 아직도 박정희의 그늘에 안주해서야 되겠나.좋은 사회란 보수와 진보가 제대로 각을 세워야 하는데,우리 보수는 지리멸렬해 있다.보수와 진보는 결국 적대적 의존관계 아니겠는가. -임 엄밀하게 말해 지금 세계가 당면한 새로운 역사적 조건들은 앞 시대의 이항대립적 이념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것이다.신채호가 말했듯,‘조선의 주의가 아니라,주의의 조선이 되는’ 관념과 현실의 전도된 관계를 넘어서는 발상이 중요한데도 우리가 그동안 시민사회의 진보적 가치에 너무 집착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언론의 역할에 기대를 갖고,또 서울신문의 창간 100주년이 의미있다고 보는 것도 이런 시각과 다르지 않다.과거의 문화적 기제를 점검하고 새 모델을 제시하는 일은 바로 언론과 지식인의 몫이다. 정리 심재억·박상숙기자 jeshim@seoul.co.kr 김호기 교수 ●약력 △연대 및 대학원(석사.동양사회,현대사회론)△독일 레펠트대학 대학원(박사)△미국 UCLA 초빙연구원△현,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 국민통합분과 위원△현,연대 사회학과 교수 임지현 교수 ●약력 △서강대 사학과 및 대학원(박사.서양사상사)△폴란드 바르샤바대학 및 영국 포츠머스대학 연구 및 강의△하버드 옌칭연구소 초빙연구원△현,한양대 사학과 교수 ˝
  • [한국의 2030 그들은 누구인가] 6~8일 1000명조사 오차 ±3.1%P

    서울신문은 창간 100주년을 맞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공동으로 ‘20대,누구인가’라는 주제를 내걸고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을 20대와 30대로 국한시킨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첫째,우리 사회가 최근 20년 동안 급변해 왔기 때문에 그 변화과정이 어떠한 영향을 젊은 세대에게 주었는가를 분석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둘째,한국 사회의 20대와 30대는 앞으로 10년 뒤면 우리 사회의 허리부분을 담당할 인적 자원이다.이들의 행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을 가능케 할 것이다. 조사는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3일동안 20세 이상 40세 미만의 대한민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95% 신뢰수준에 최대 허용오차는 ±3.1%포인트다. KSDC(Korean Social Science Data Center)는 1998년 설립된 조사전문 연구기관이다.이번 의식조사의 설계 및 분석,집필에는 ▲이남영 KSDC소장(숙명여대 교수) ▲김형준 KSDC부소장(명지대 객원교수) ▲김영태 목포대 교수 ▲이명진 국민대 교수 ▲서우석 서울시립대 교수가 참여했다.˝
  • [한국의 2030 그들은 누구인가] 6~8일 1000명조사 오차 ±3.1%P

    서울신문은 창간 100주년을 맞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공동으로 ‘20대,누구인가’라는 주제를 내걸고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을 20대와 30대로 국한시킨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첫째,우리 사회가 최근 20년 동안 급변해 왔기 때문에 그 변화과정이 어떠한 영향을 젊은 세대에게 주었는가를 분석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둘째,한국 사회의 20대와 30대는 앞으로 10년 뒤면 우리 사회의 허리부분을 담당할 인적 자원이다.이들의 행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을 가능케 할 것이다. 조사는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3일동안 20세 이상 40세 미만의 대한민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95% 신뢰수준에 최대 허용오차는 ±3.1%포인트다. KSDC(Korean Social Science Data Center)는 1998년 설립된 조사전문 연구기관이다.이번 의식조사의 설계 및 분석,집필에는 ▲이남영 KSDC소장(숙명여대 교수) ▲김형준 KSDC부소장(명지대 객원교수) ▲김영태 목포대 교수 ▲이명진 국민대 교수 ▲서우석 서울시립대 교수가 참여했다.
  • [데스크 시각] 친일진상규명 충분한 설명을/황성기 사회부장

    친분이 있는 일본 신문의 서울특파원을 지난 13일 만났다.그날은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제주정상회담을 청와대가 공식발표한 날이었다.또 열린우리당이 친일진상 규명법 개정안을 마련해 14일 제출키로 했다는 소식이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언제나 웃는 얼굴의 이 특파원은 이날만큼은 심각한 표정이 됐다.“하필 한·일 정상회담을 발표한 날,개정안을 여당이 내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조사가 진행되면 한국인들의 일본 이미지가 더욱 나빠질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이런 우려의 분위기는 주한 일본대사관도 비슷하다.”고 전했다.그는 “한국의 국내 정치상황을 잘 모르는 일본사람이 이런 기사를 읽으면 ‘역시 한국사람은 일본을 싫어하네.’라고 생각할 것 같다.”면서 “기사를 잘 써야겠다.”고 말을 맺었다. 이튿날 도쿄로 전화를 넣었다.기자가 도쿄특파원으로 있던 시절 알고지내던 일본 정부 사람이었다.한·일관계에 밝은 그는 이런 풀이를 내놓았다.“양국관계에 언제나 걸림돌인 역사문제가 한동안 잠잠했지만 국면이 악화돼 한국여론이 일본에 비판적으로 돌아설 경우 한국 정부도 여론에 밀려 대일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며 그 역시 걱정하고 있었다.한국 정부로선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렇다면 대 한국정책의 사령탑인 일본 외무성은 한국의 친일 진상규명 움직임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외무성을 출입하는 다른 일본 신문의 기자는 익명을 요구한 외무성 간부의 언급이라면서 이렇게 전해줬다. “개정안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한국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 얘기로 받아들이고 있다.‘과거청산’은 한국에서는 정치적으로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문제이다.단 개정안 발표가 고이즈미 총리의 한국방문 발표와 겹친 것에는 별다른 의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청와대와 여당이 같은 날 정상회담과 개정안을 발표한 것을 ‘우연’으로 분석하고 있는 점은 다행한 일이다.그렇지만 친일반민족행위 조사의 의미를 애써 폄하하려는 일본 정부의 속내가 읽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이런 외무성의 인식은 21일 제주를 방문하는 고이즈미 총리에게도 보고될 것이다. 일본으로선 친일진상 규명은 껄끄러울 터이다.과거사로 인해 지금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진상규명의 대상을 넓히려는 움직임을 정치상황으로 격하하고 싶어하는 인식은 따지고 보면 그 껄끄러움을 피하고 싶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일관계에는 호재와 악재가 함께 기다리고 있다.국교정상화 40주년인 2005년은 ‘한·일 우정의 해’로,비록 한시적이지만 일본 입국비자가 면제되고 양국의 공동이벤트가 예정돼 있다.그러나 2001년의 교과서파동이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고,한·일 자유무역협정(FTA)도 순탄하지 않을 듯하다.거기에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되풀이한다면 더욱 어렵다. 친일진상규명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다.그러나 호재와 악재가 뒤섞인 양국관계를 잘 다뤄나가려면 적어도 일본이 느끼고,인식하고 있는 껄끄러움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과거의 친일이 우리 민족에게 준 고통과 그 아픔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기록하겠다는 진상규명인 점,현재와 미래의 한·일관계를 보다 발전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과정임을 한국 정부는 잘 설명해줘야 한다.정상회담과 개정안을 단 하루쯤이라도 시차를 둬 발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정도는 남기지 않는 세련됨도 기대해 본다. 황성기 사회부장 marry04@seoul.co.kr˝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신채호(申采浩·1880∼1936)

    |다롄 노주석·박지윤특파원|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세상을 떠돌게 했을까.또 그렇게 외치던 조국광복의 날을 보지 못하고 이역만리 차디찬 옥사의 바닥에서 세상을 등지게 했을까. 중국 다롄시 뤼순 감옥,신채호 선생이 옥사한 곳이다.뤼순 감옥에 관한 우리의 기억은 대개 안중근 의사의 투옥과 순국이 이곳에서 이뤄졌다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단재의 원혼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뤼순감옥은 다롄시에서 47㎞ 떨어진 뤼순구에 있다.감옥에는 안중근 의사가 감옥살이를 한 감방과 처형당한 건물,신채호 선생이 병들어 숨진 의무계 건물이 잘 보존돼 있다.최근 중국 공안당국은 외국인의 뤼순항 접근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뤼순으로 향하는 도로와 역 등지의 길목에서 검문검색이 이뤄지고 있었다.해군기지의 노출을 막으려고 미개방지로 지정,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다롄대학 한영 교수는 “최근 다롄시 관광국장이 외국인 바이어와 함께 들어가려다가 쫓겨났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취재진은 뤼순 감옥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단재의 흔적은 주로 베이징에 남아 있다.1918년 한국사 연구에 전념하면서 날카로운 논설을 중국 신문에 발표해 문명을 날린 동화시북리 숭문동 보타암터,1920년 4월 상하이에서 돌아온 선생이 박자혜 여사와 결혼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를 보낸 서성구 부성문내대가 금시방가의 거주지,1923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머문 서성구 신문화가 석등암,1924년 독립운동에 좌절한 선생이 머리를 깎고 수도승 생활을 한 동성구 방가호동 관음사,1920년대 거주한 서성구 취화골목이 그곳이다.만주 환런현 정양가도 서관가 민족백화점부근 동창학교터,러시아 연해주 신한촌 등 곳곳에도 짙은 민족향과 함께 남아 있다. joo@seoul.co.kr˝
  • [한국의 2030 그들은 누구인가] 한국의 20대는 ‘희망의 세대’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의 구조가 아닌 통합의 구조로 이해하고 있는 젊은 세대가 몰려오고 있다.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래를 낙관하는 이들을 ‘희망의 세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훨씬 큰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특히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이 누구보다도 강한 20대 신세대가 있어 한국 사회의 앞날은 밝다. 창간 100주년을 맞은 서울신문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20대,누구인가’를 밝히는 의식조사를 실시했다.그 결과 젊은 세대의 의식구조가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사는 2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4개 세대집단(cohort)으로 나누어 진행됐다.30대와의 비교 분석을 거쳤을 때 20대의 실상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20대전반은 아직 한국 사회 안에서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충분히 기능하고 있지는 않았다.이들은 노무현 정권 출범으로 더욱 공고화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는 신세대다.공동체 의식보다는 개인주의에 젖어 있고,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은 데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관용성도 낮았다. 하지만 이들은 풍요롭게 성장했고,그 결과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그리고 우리 사회의 갈등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한국사회에 대한 믿음도 상대적으로 높았다.반면 30대후반은 흔히 386세대라고 불리는 집단의 말미에 속하는 저항적 민주화 세대이다.제5공화국과 6월항쟁을 경험한 세대로 사회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정치적 관심과 관용성이 높고 정치참여에 적극적이지만,한국 사회에 대한 신뢰도는 낮았다. 30대후반이 가장 진보적인 반면 20대전반이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전체적으로 30대후반으로 갈수록 한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반면 20대초반으로 갈수록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조사를 주도한 이남영(숙명여대 교수) KSDC소장은 “30대가 우리 사회를 분열의 구조로 이해하고 있다면 20대는 통합의 구조로 이해하고 있다.”면서 “지역차별,빈부격차,세대갈등,여성차별 등이 구시대의 산물이라면 20대는 평등에 기초한 개인주의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소장은 특히 “평등에 기초한 개인주의가 현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는 밝아 보인다.”면서 “인권개선,법앞의 평등,자유경쟁 등 아직 한국 민주주의가 내재화하고 있지 못한 부분을 크게 개선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100년기업 100년상품] 한국의 장수 상품들

    기업이 길이 존속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게 오랫동안 제품 브랜드를 지켜내는 일이다.뛰어난 품질과 브랜드 전략을 통해 강인한 생명력의 ‘장수만세’를 외치고 있는 우리 상품들을 되짚어 봤다. 국내 유일의 100년 상품은 동화약품의 ‘부채표 활명수’.1910년 한일합방 직후 일본상표법에 따라 특허등록해 공식적으로는 100년이 안됐지만 실제로 회사(동화약방)를 차려 대량생산을 한 것은 1897년부터였다.1924년에는 영원한 서민의 술 ‘진로’가 평안남도 용강의 진천(眞泉)양조상회에서 처음 생산됐다.초기에는 평남지역에서 복의 상징으로 통했던 원숭이가 상표에 쓰였다가 55년 지금의 두꺼비로 교체됐다.6·25전쟁 뒤 기반을 서울로 옮기면서 남쪽에서 교활하다고 여기는 원숭이는 용도폐기됐다. 이듬해인 25년에는 조선무약이 ‘기사회생 우황청심원’을 발매했다.현재 ‘솔표 우황청심원’으로 바뀐 이 약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한국의 대표명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수많은 유사제품 중 지금도 솔표의 시장점유율이 제일 높다.유한양행이 33년에 출시한 ‘안티푸라민’은 여전히 소염진통제의 대명사로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4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구회사인 동아연필이 설립돼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손에 쥐어봤을 ‘동아연필’을 만들기 시작했다. 50년 동방청량음료(지금의 롯데칠성음료)는 ‘칠성사이다’ 생산을 시작했다.칠성사이다는 단순한 음료수라기보다는 중장년층에 향수의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60년에는 광신화학공업사(지금의 모나미)가 설립돼 63년 ‘모나미 볼펜’과 ‘모나미 싸인펜’ 생산을 시작했다.40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 모양 그대로 간직한 가장 친숙한 필기도구다.같은해 ‘이태리타올’이 처음 나왔다.이태리타올은 장수브랜드 차원을 떠나 손바닥만한 때밀이용 수건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다.원조 이태리타올의 특허권이 소멸된 70년 송월타올이 자사 브랜드로 생산을 시작했다. 동아제약이 61년 출시한 ‘박카스’는 지금도 연간 2000억원대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웬만한 제약회사의 전체 매출액보다 많은 액수다.처음에는 정(錠)제 형태로 나왔으나 물에 잘 녹지 않는 문제가 발견돼 63년 지금의 드링크 형태로 바뀌었다.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인 강신호 회장이 독일 유학시절의 기억을 살려 박카스란 이름을 지었다. 70년대 들어서 ‘장수 과자’들이 잇따라 선보였다.70년 해태제과에서 ‘부라보콘’이 나왔고,71년에는 농심이 ‘새우깡’을,74년 오리온제과가 ‘초코파이’를 각각 내놓았다.‘야쿠르트’(71년 한국야쿠르트)와 ‘바나나맛우유’(74년 빙그레)도 빼놓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오늘의 수능] EBS플러스1

    07:00 뉴포트리스 과학,수학10-나 08:40 단기완성강좌 수능어휘특강 09:30 오답노트 탐구영역 10:20 뉴포트리스 국사 11:10 수능초이스 수학Ⅱ 12:00 수능초이스 한국근현대사 12:50 뉴포트리스(재)과학,수학10-나 14:30 뉴포트리스(재)국사 15:20 단기완성강좌(재)수능어휘특강 16:10 오답노트(재)탐구영역 17:00 10주 완성 수능특강 외국어영역 17:50 구술&심층면접 자연계 18:40 수능특강 유형분석 국사 19:30 수능특강 유형분석 지구과학Ⅰ 20:20 수능초이스(재)수학Ⅱ,한국근현대사 22:00 10주 완성 수능특강(재)외국어영역 22:50 구술&심층면접(재)자연계 23:40 수능특강 유형분석(재)국사 24:30 수능특강 유형분석(재)지구과학Ⅰ 01:20 오답노트(삼)탐구영역 02:10 인터넷강의 Power Listening(1)(2) 03:50 인터넷강의 수능영문법(1)(2)(3)˝
  • ‘사립학교법 개정방향’ 대담

    교육계가 또 한 차례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다.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쟁점이 됐다.교육부가 엊그제 검토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사립학교 교직원을 법인 이사회를 대신해 학교장이나 총·학장이 임명토록 하고,이사회에서 설립자의 친·인척 비율을 줄이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교육의 공공성을 빙자해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려는 것으로 대다수의 건전 사학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그런가 하면 2000년 이래 지금의 사립학교법의 개정을 끈질기게 주장해온 범국민교육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그들대로 아쉬움을 토로한다.전국 중·고교의 32.2%,대학의 85.5%를 차지하고 있는 사립학교의 틀을 다시 짜는 사립학교법 개정 작업은 쟁점도 많고,그 하나하나가 민감한 사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학교법인 상산학원 이사장인 홍성대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명예회장과 범국민교육연대 상임대표인 박거용 상명대 교수와 대담을 마련해 사립학교법 개정의 핵심을 짚어 보았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는 까닭이 무엇인가요. -박 교수 우리 교육은 사립학교의 의존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높습니다.국민의 교육기관으로서 위상이 높은 만큼 교육기관으로서 공공성이 요구된다 할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은 비리와 부정,부패가 구조화되어 있고 관행화되어 있습니다.잘못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습니다.사립학교의 공공성,학교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홍 회장 사학의 비리가 침소봉대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4년 전 일입니다.1998년부터 2000년까지 905개 사립 중·고교가 교육청 감사에서 부정과 비리로 적발됐다고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1.1%만이 문제의 비리였고,나머지는 행정착오나 부주의로 빚어진 실수였습니다.비리 문제도 그렇습니다.전국의 사학 법인이 1300여개,학교가 2000여개에 이릅니다.그 수가 많다 보니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사학을 질타하는 대신에 대다수의 건전한 사학을 격려하고 뒷받침해 주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할 것입니다. 사학 법인들은 이번 교육부 개정안에서 무엇이 문제라고 보십니까. -홍 회장 사립학교의 자산은 사유재산입니다.설립자의 재산은 아니지만 사학을 경영하는 법인의 재산입니다.무릇 재산권이 보호되어야 하듯 법인의 독자적인 재산권 또한 보장되어야 합니다.또 하나 사립학교를 세운 건학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자주성은 확보돼야 할 것입니다.학교 운영에서 인사권,재정권,감사권 그리고 규칙 제정권 등이 침해된다면 사립학교의 존립 근거를 흔드는 것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박 교수 사학은 개인 재산의 사회환원 차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육영사업을 하겠다고,중·고교며 대학을 세울 때에는 이미 개인의 재산이 아닐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학 재단들이 학교를 문어발식으로 거느리고 치부의 수단으로 삼고,세습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사학이 튼실하게 육성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사학의 특수성을 강조하시지만 사립 초등학교에서 보듯 사립학교의 특수성도 이제 빠르게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사학 재단의 이른바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재단 이사회에 손대야 하나요.무슨 방안이 있을까요. -홍 회장 사학 재단의 이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공무원법을 준용하여 자격을 제한하고 있고 또 관할청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전체의 3분의1로 제한하고 있는 설립자의 친·인척을 문제 삼지만 현실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사립학교 이사회는 대개 이사장을 포함해 7명으로 되어 있습니다.최소한 3분의1은 보장을 해주어야 이사장을 제외하고 한명의 이른바 친·인척이 이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가업을 잇는다는 차원에서 한 사람쯤은 이사회에서 활동하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박 교수 사학에서 이사회의 권한은 무소불위입니다.전권을 행사합니다.그 권한을 분산하자는 것입니다.한국 사학의 이사회 내막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오너 이사라는 실세 이사가 있습니다.실세 이사를 중심으로 그의 뜻을 헤아려 움직이는 거수기 이사 그리고 사학 재단끼리 서로 바꾸어 이사를 맡아 주는 품앗이 이사가 포진합니다.여기에 정·관계 출신으로 이른바 외풍을 막아줄 방패 이사가 자리를 잡습니다.비리가 싹틀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학 비리 관련자가 학교에 복귀할 수 있는 기간을 지금의 2년에서 5년으로 늘리려고 하고 있지요. -홍 회장 사학 비리는 근절되어야 합니다.또 부정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그러나 이사장 개인이 비리를 저질렀다 해서 다른 이사까지 취임승인을 마구 취소하는 관행은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또 다른 직종과 형평성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공무원이 비리와 관련해 해임되면 3년,파면당했을 경우 5년이면 복귀할 수 있습니다.사학 관련자에게 공무원과 같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게 옳은지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박 교수 이사장의 비리를 개인비리 차원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정상적인 이사라면 이사장의 비리를 막았어야 합니다.학교 운영의 모든 결정이 이사회에서 이뤄지는데 이사장의 반교육적 행태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복귀 시한의 형평성을 말씀하셨는데 다음 세대 교육을 자임한 처지이고 보면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직원 임명권을 아예 학교장이나 총·학장에 부여하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요. -박 교수 지금은 대학의 경우 이사회의 임명권을 총·학장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학부나 학과의 추천을 받아 인사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고 총·학장을 거쳐 이사회가 최종 임명토록 하는 방안이 정착되어야 합니다.경영권 침해 논란이 있다면 신사적으로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중·고교의 경우에는 지금처럼 이사회에서 임명하는 대신,국·공립학교처럼 임용고시를 통과한 사람 가운데 임명토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홍 회장 먼저 학교장이나 총·학장이 교직원을 임명하면 투명성이 확보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입니다.또 학교를 대표하는 것은 학교장이나 총·학장이 아니라 법인 이사회입니다.이사회의 책임하에 교직원을 임명토록 해야 합니다.건학이념을 실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사회에서 임명권을 행사해야 맞습니다.학교장 등은 학교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법인 이사회는 영원하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합니다.사립 중·고교도 국·공립처럼 임용고시를 통과한 사람 중에서 임용토록 하자는 주장은 이미 교원자격증이 있는 사람의 자격을 또 심사하자는 것으로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학교 운영위원회와 같은 기구들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은 어떻습니까. -박 교수 국·공립 중·고교에서 학교 운영위원회가 도입되면서 예산의 규모며 쓰임새 등을 점검해 학교 운영이 크게 건전해졌습니다.재원의 효용성을 높이고 투명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적극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사립학교법을 개정하는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홍 회장 이사회 이외에 다른 기구들을 법제화할 경우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툼이 생기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그 혼란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교육은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교육 활동을 획일적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유도해 옥석이 가려지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입니다.일부 사학의 잘못 때문에 초가삼간 태우는 사립학교법 개정이 되어선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사회 정인학 교육대기자 ˝
  • 司試장수생 법원행시로 대이동

    올해 사법시험 응시자가 영어 대체제(토익·텝스 등)의 여파로 40%가량 줄어들면서 9월5일 치러질 법원행정고시 경쟁률이 높아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12∼16일 인터넷 접수를 마감한 뒤 19일부터 21일까지 일반접수한다.법원행시는 응시자격이 20세 이상 35세 이하다. ●경쟁률 어떨까 법원행시는 일단 사법시험과 시험과목이나 출제 방향이 대체적으로 겹친다.전통적으로 법원행시는 그 자체만 따로 공부하는 수험생들보다 사시나 행시를 준비하다 응시하는 수험생들이 더 많다. 여기에다 사시의 대체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법무사의 전망이 어둡다는 평가가 많다.법원행시도 올해 시험을 마지막으로 내년부터는 영어시험을 토익·텝스 등의 점수로 대체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출원자 증가세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그러나 선발인원이 20여명 안팎이어서 폭발적인 출원자 증가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수험 전문가들은 “아무래도 사법부 소속이다 보니 행정부처 사무관보다 보수나 승진 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소수를 선발하다 보니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법 과목은 기본서 위주로 법원행시의 시험 과목은 사시와 행시의 중간형태다.1차 시험에 헌법·민법·형법 등 기본법 과목이 들어가되,2차 시험에는 사시와 달리 헌법·형법이 빠지고 행정법이 특별히 추가된다.등기사무직렬 2차 시험에 형사소송법 대신 부동산등기법이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수험전문가들은 법원행시에서 법학과목은 기본서 위주로 공부하라고 입을 모은다.H학원 관계자는 “사시와 차별성 때문인지 몰라도 법원행시에서 민법 몇 문제 정도를 제외하고 법 과목이 까다롭게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따라서 법 과목은 기본서 위주로,정확한 개념 위주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S학원 관계자 역시 “법원행시에서 중요한 법과목을 꼽으라면 민법과 형사·민사소송법”이라면서 “법원행정직이 되려면 기본개념과 절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외 과목은 큰 개념과 굵직굵직한 판례만 알고 있어도 별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차는 한국사와 영어,2차는 구체적인 절차와 케이스 위주로 대신 1차 시험의 당락은 한국사와 영어에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다.최근에는 판례문제 분량이 늘어나는 등 법학과목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추세지만 한국사와 영어가 여전히 대세다. 지난해 1차시험 합격선이 올라간 것도 영어와 한국사가 덜 까다로웠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내년이면 한국사는 폐지되고 영어는 토익이나 텝스 등으로 대체될 예정이어서 올해가 마지막 시험이다.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바뀌는 과목마다 마지막에는 어렵게 출제되는 바람에 수험생들이 골탕 먹었던 경험이 많다.”면서 올해 한국사와 영어가 상당히 까다로울 것이란 예상이다.H법학원 관계자는 “문제가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평소 공부량으로 시험을 볼 수밖에 없다.”면서 “키워드 형식으로 정리한 서브노트를 갖고 다니면서 반복해서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2차시험은 실무 테스트가 많은 편이다.이 때문에 법조문 자체보다는 구체적인 사례와 연결시켜 이해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등기사무직렬의 경우 부동산등기법을 철저히 대비해야 합격권에 무난히 들 것이라고 충고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개혁 경제력 집중 심화… 효과 못봐”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14일 한국사회가 마치 개혁 조급증·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넘쳐나는 개혁주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며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개혁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좌 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제26회 한경연포럼에서 ‘한국경제의 희망찾기’라는 강연을 통해 “참여정부의 개혁이 지난 87년 개헌 이후 균형,형평,경제민주화를 지향해온 이전 정부의 개혁정책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균형,형평,경제민주화를 지향한지 15년여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또다시 똑같은 개혁의 깃발을 드높이고 있는 셈”이라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참여정부의 주요 개혁과제들도 사실은 형평의 논리위에서 더 균형된 경제·사회를 지향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15년여동안 한국경제가 걸어온 개혁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사회적 형평과 균형,평등의 이상을 지향한 정책들이 그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이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개혁목표 자체가 경제발전의 원리와 상충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력 집중 억제와 균형성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력 집중은 더 심화되고 지역 균형발전 정책속에서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 됐으며,노사평등 및 화합을 강조해온 경영민주화 정책속에서 노사관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좌 원장은 “올바른 분배정책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이지,누구에게나 똑같은 결과를 부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예컨대 성공한 정치인이나 공직자,사회지도층,대기업이나 부자,심지어 강남사람들까지 소위 잘나간다는 이유만으로 기득권층이라는 이름 아래 폄하하게 된다면 어떻게 사회가 역동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박건승기자 ksp@seoul.co.kr˝
  • [임영숙 칼럼] 서울신문 다시 보기

    “대한매일신보 100년의 역사가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한국언론학회와 서울신문이 지난주 마련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선 한 언론학자가 던진 질문이다.대한매일신보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언론구국운동,애국계몽주의를 실천한 민족언론으로 요약되는데 언론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보내는 그같은 찬사가 지닌 함정을 한번 생각해 보자는 얘기였다.즉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언론권력으로 비판 받고 있는 일부 신문의 일제 시대 ‘민족지적 성격’도 비슷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역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그 진의가 무엇이건 간에 한국언론사에서 차지하는 대한매일신보의 ‘전설적인 위치’를 확인시켜 준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이어받아 1945년 혁신 속간된 서울신문에 대해서는 일반의 이해가 부족한 듯싶다.4·19의거 때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사옥이 불탄 신문,군사 독재 정권시절 ‘권력의 나팔수’역할을 한 신문으로만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민족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민중주의를 실천하는 참신하고 진보적인 신문으로 출발했다.따라서 해방공간에서 가장 권위있는 신문이었다고 평가하는 언론학자들도 있다.당시 서울신문의 초대 사장은 3·1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분으로 끝까지 변절하지 않았던 위창 오세창이었다.한국 근대신문의 효시인 한성순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만세보,대한민보 등 항일민족지를 창간한 언론계의 선구자였다. 또 한국 역사소설의 기념비적 걸작인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가 서울신문 고문으로 참여했고 어문학계의 권위자였던 그 아들 홍기문이 편집국장을 맡았다. 1945년 11월23일자로 처음 발간된 서울신문은 창간호가 아닌 혁신속간호로 나왔다.지령도 1호가 아닌 제13738호였다.대한매일신보와 매일신보의 지령을 이은 것이지만 “일제의 괴뢰였던 매일신보의 성격을 불식하고 구국독립언론이었던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였다. 좌우이념 대립이 첨예했던 해방공간에서 서울신문은 사설을 통해 ‘일당일파에 기울어지지 않는 공정하고 적확한 보도’를 다짐했다.특정 정치단체의 선전 전단 같은 신문이 난무했던 시절 좌우익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다는 뜻에서 중립을 표방했다.서울신문의 혁신속간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어느정도였는지는 미 군정장관 아널드,조선인민당 당수 여운형,국민당 당수 안재홍,한국민주당 수석총무 송진우,조선공산당 이현상 등이 축하인사를 보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가 매일신보로 전락했듯이 서울신문도 이승만 정권 수립 이후 중립적 노선을 지키지 못하고 독자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됐다.이에 대한 뼈아픈 반성에서 서울신문은 1998년 대한매일로 재창간됐고 사원들이 제1대 주주인 민영화를 이룩했다.그리고 5년동안 공정보도를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서울신문이 다시 태어났다. 앞서 한국언론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주문한 언론학자의 지적대로 오늘의 한국 언론은 독자의 신뢰를 잃었다.언론을 신뢰하는 독자는 19.5%,즉 5명중 1명도 안 된다는 것이 한국언론재단의 최근 수용자의식조사 결과이다. 대한매일신보를 뿌리로 해서 창간 100주년을 맞는 서울신문은 그 언론학자의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초심으로 돌아가 독자의 신뢰를 다시 찾도록 노력하겠다고.그것이 신문의 위기,나아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것을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서울신문-대한매일-’서울신문으로 이어지는 100년 역사는 깨우쳐 준다고. 주필 ysi@seoul.co.kr˝
  • [열린세상] 한·미관계의 지식 인프라/이근 서울대 국제정치학 교수

    우리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지식을 우리의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종합하여 활용하는 데 매우 약하다.이번 이라크 김선일씨 납치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정보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한국에 장기적으로 진짜 중요한 것은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능력뿐만이 아니라 우리 정보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식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앞으로 한국이 아랍세계에 더욱 깊이 관련하게 된다면 한국의 입장에서 정보처리를 가능케 하는 아랍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 인프라가 필요할 것이다.아랍세계의 테러리즘,종교,역사,국제정치,문화 등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모여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설사 중요한 정보가 스쳐간다 해도,그것이 중요한지,그리고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정보기관에 정보요원 몇 사람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취약한 지식 인프라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한·미관계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특히 지금과 같이 한·미관계가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시기에도 지식 인프라는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다.단적인 예로 한국에서 한·미간에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이에 대응하여 한·미간의 신뢰의 의미가 무엇인지,미국인이 생각하는 신뢰란 무엇인지,미국 사람과의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깨지는지에 대한 연구가 단 한 건이라도 있었는가? 그러한 연구에 기반하여 한·미간에 신뢰를 회복할 방안과 정책을 만들거나 권고한 사례가 단 한 건이라도 있었는가? 신뢰는 인간관계의 다각적인 모습이 담겨있는 문제인데,한·미간의 신뢰문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사회학자,인류학자,지리학자,교육학자,그리고 경제학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왜 한·미관계는 미국정치학자나 안보전문가,외교관,언론인,군관계자들만이 추상적인 국가이익이라는 개념만을 가지고 분석하고 처방을 내 놓아야 하는가? 한·미관계는 국가간의 관계이지만 실제로는 한국사람과 미국사람과의 관계이다.따라서 한·미관계를 잘 만들어 가려면 우리가 상대하는 미국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이는 미국정치에 관련한 단편적인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 신문과 TV 뉴스만을 열심히 본다고 알 수 있는 일도 아니다.미국의 사회,미국의 지리,미국의 문화,미국의 다양한 거시 및 미시사,교육 시스템,그리고 사회심리 등에 대한 총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미국은 엄청난 경쟁의 사회이다.그야말로 최고의 베스트만이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다.그러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낙오자로서 매우 외롭게 살아가야 한다.말하자면 사람이 경쟁시스템이라는 사회적 구조 속에 매몰된 매우 잔인한 사회가 바로 미국이다.따라서 이러한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엄청나게 전문적이지만 동시에 지독히도 경쟁적이다. 한국이 중요하게 상대하는 미국사람들은 주로 이러한 시스템의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이다.그래서 이들과 업무적으로 만나서 한국사람과 같은 인간미를 느끼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미국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최고가 될 때까지는 겸손할 수 없다.” 이러한 미국 사람을 상대로 할 때 신뢰를 어떻게 쌓고,어떻게 유지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는가? 우리는 미국 사회에서 말하는 신뢰에 대해서 연구해 본 적이 있는가? 정치학자와 외교관 몇 사람이서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미간의 신뢰를 말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다각적인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고 모아서 미국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지식 인프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정치학 교수 ˝
  • M&A주간사 외국계 ‘독식’

    증권·은행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미래 핵심사업 중 하나로 꼽는 투자은행(IB) 시장에서 영 힘을 못쓰고 있다.특히 IB업무의 주축으로 국내 시장규모가 연간 1000억원(수수료 기준)에 이르는 인수합병(M&A) 주선은 사실상 외국계가 독식,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고 있다.이에 따라 국내 금융회사들의 경쟁력 저하는 물론 불필요한 국부유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국내기업들의 정보가 밖으로 새는 게 아니냐는 말도 없지 않다. ●금융권 3대 주식빅딜 모두 외국계 수임 대한투자증권은 13일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으로 받아 갖고 있는 KT&G 주식(3600억원 규모)의 매각 주간사로 메릴린치증권을 선택했다.살 사람을 물색해서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컨설팅을 해주는 등 매각의 모든 과정을 메릴린치가 책임지는 셈이다.5개 외국계 증권사 외에 삼성,LG,대우,현대 등 국내 4대 대형 증권사들도 수주전에 뛰어들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로써 예금보험공사의 하나은행 지분매각(UBS증권·대우증권,1조 700억원),신한은행의 신한지주 지분 매각(모건스탠리,6300억원) 등 올해 주식매각 3대 빅딜의 주간사를 모두 외국계 증권사가 차지하게 됐다.최근 잇따른 인수합병에서도 매각 주간사는 외국계 일색이다.대우종기의 매각작업을 CSFB증권이 진행하는 것을 비롯해 쌍용자동차는 PwC삼일,하이닉스 블록세일은 모건스탠리가 각각 주간사를 맡고 있다.앞으로 있을 진로의 매각 주간사 선정에서도 국내사는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진로 채권자 중에 외국계가 많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매각 주간사는 매각가격의 3%를 수수료로 받으며 대형 인수합병에서는 통상 1% 정도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외국 불균형 갈수록 심화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인수합병 중개 실적 상위 10개사 가운데 9개가 외국계였다.특히 JP모건은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의 하나로통신 지분 인수,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지분인수,신한지주의 조흥은행 지분인수 등을 주도했다.모건스탠리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인수,푸르덴셜의 현대투자증권 인수 등의 주간사로 참여했다.반면 국내 증권사들은 수수료가 낮은 법정관리 기업의 매각 정도만 겨우 참여하고 있는 수준이다.은행들은 거의 입찰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렇게 인수합병 시장에서 외국계가 각광받는 것은 인수 후보를 많이 끌어들여 국내사가 주간사를 맡을 때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국내 금융회사들도 외환위기 이후 많은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생겨 지금은 얼마든지 외국계와 경쟁할 능력이 있다.”면서 “특히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국내자본이 인수할 가능성이 높은 매각에서도 국내 증권사들이 배제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 한 기업의 인수합병 작업에서 외국계와 동시에 주간사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실무는 다 우리쪽에서 했지만 수수료는 외국사 90%,우리회사 10% 정도로 불평등하게 배분됐다.”고 말했다.그는 “매각주간사를 선정하는 채권단이 외국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면서 “우리 회사의 경우 전체 인수합병 담당부서 실무자의 20% 정도가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데도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고 전했다. 김태균 박지윤기자 windsea@seoul.co.kr˝
  • [길섶에서] 선 물/오풍연 논설위원

    선물은 언제 받아도 기분이 좋다.크든,작든 상대방의 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주는 기쁨은 더하다.그래서 선물을 고를 땐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꼭 필요한 것을 전해주면 금상첨화(錦上添花).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물건 자체에 의미가 담긴 선물도 많다.연인들 사이에 주고받는 ‘반지’.영원한 나의 것이 되어달라는 의미일 법하다.‘흰색 손수건’은 이별,‘빨간 손수건’은 정열을 뜻한다고 한다.성공을 빈다면 ‘만년필’을 선물해도 좋을 듯하다.못 이룰 사랑엔 ‘종이학’을 보낸다.특히 여성들은 ‘초콜릿’을 선호한다.당신을 사랑한다는 의미 때문 아닐까.시집과 책은 고상한 축.시간적 여유를 선사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얼마 전 출판사를 통해 책을 선물 받았다.한국사회와 경제위기에 대한 긴급처방전을 담은 지인의 저서였다.첫 장을 넘기면서 유쾌함을 맛보았다.정성스러운 글씨로 ‘촌평’을 부탁했다.마침 무슨 책을 볼까 찾고 있던 터라 더욱 반가웠다.올여름 휴가를 떠나는 가까운 이들에게 책 선물을 하면 어떨는지….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열린세상] 문명의 충돌과 공존/도중만 목원대 역사학 교수

    문명의 충돌과 공존에 관한 담론은 이미 21세기의 최대 화두로 굳어졌다.이 화두는 지난 세기를 마감하면서 등장했다.사실 금세기의 문턱에서 이라크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그랬다면,이 화두는 그저 헌팅턴 대 뮐러 간에 벌어졌던 일대 논쟁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불행하게도 역사는 반대로 흘러갔다.9·11사건이 터진 것이다.미국은 보복조치로 이라크를 침공했다.이때까지만 해도 문명에 관한 담론은 아직 우리에게 국제적인 톱뉴스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에 불과했다.하지만 이라크 파병을 강요당하고 고 김선일씨가 무고하게 희생된 현실 앞에서,문명의 충돌과 공존에 관한 화두는 이제 우리에게도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현실과 역사는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처럼 밀접하다.역사는 현실문제의 해결방향을 제시하고,현실 또한 그 역사의 의미를 새로이 되새겨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중국사에는 농경문화권의 한족과 유목문화권의 이민족이 만리장성을 사이에 두고 충돌에서 공존으로 나아갔던 장면이 선명히 남아있다.이 역사적인 장면은 우리의 눈앞에 진행중인 이라크 사태의 해결방안을 근본부터 다시 재고하도록 이끌어 준다. 만리장성은 한족과 유목민족 사이의 ‘피에 젖은 경계선’이었다.그것은 또한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를 가르는 문명권의 철벽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상고시대부터 유목민족은 농경민인 한족을 끊임없이 침범하고 약탈하였다.한족에게 유목민족은 공포 그 자체였다.그것은 무소불위의 진시황제에게도 마찬가지였다.그가 만리장성을 축조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이어서 한 무제도 유목민족을 악의 근원으로 판단했다.그는 전 국력을 기울여 유목민족을 공격했다.그러나 시황제의 만리장성도 무제의 수 차례의 파병도 모두 실패하고 만다.이것은 유목민족과 그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선택의 결과였다.이해 없이 공존의 길은 결코 모색될 수 없었다.아니 도리어 양측의 무고한 젊은이들만이 무수히 희생되고 말았다.지금도 만리장성은 수많은 백성의 한(恨)으로 쌓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존의 길은 강자가 약자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 만리장성의 문을 여는 순간 다가왔다.유목민이 한족을 침범하고 약탈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다.그들은 근본적으로 자급자족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농경민인 한족에게 침범과 약탈이었던 것이 유목민에게는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었던 셈이다.한족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자 문제해결은 비교적 간단했다. 한족이 유목민에게 자급자족의 부족 분을 제공하면 평화공존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만리장성을 열고 국제무역장을 개설하면 그만이었다.그 결과 관시(關市) 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이렇듯이 문명권 사이에 평화공존의 길은 강자가 약자를 이해하는 토대 위에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고 김선일씨의 피살은 우리에게 경악과 분노를 가져왔다.파병 반대를 외쳤던 많은 이가 찬성론자로 돌아섰다.정부도 ‘테러 단호 대처’란 기본 방침을 결정하였다.미국의 강경론자들을 따라 이슬람문명권과 우리 사이에 진시황제처럼 만리장성을 쌓겠다는 것이다.한무제처럼 군대를 파병해 악의 근원을 제거하겠다는 얘기다.여기에 공존은 있을 수 없다.오직 충돌의 법칙만이 더욱 난무하게 될 뿐이다.충돌의 법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린다.우리의 통찰력도 발휘될 수 없다.그 결과가 다시 더 큰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우리는 경악과 분노의 와중에서도 통찰력을 되찾아야 한다.이성을 회복해야 한다.하루빨리 충돌의 법칙을 파기하고 공존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강자인 미국의 강경책에 휘말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이슬람문명권의 입장에서 약자인 그들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공존의 원칙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이것이 끝까지 “살고싶다.”고 울부짖던 고 김선일씨의 희생과 지나간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숭고한 메시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 우리는 그 메시지에 따라 충돌에서 공존으로 나아가야만 될 중요한 길목에 서있는 셈이다. 도중만 목원대 역사학 교수 ˝
  • [자문위원 칼럼] 희생양을 찾는 사회/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중세 유럽에 한때 무서운 대역병이 번져 나갔다.무고한 사람들이 원인 모를 흑사병에 죽어나가고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져 갔다.신에게 기도도 하고 나름대로 의학적 해법을 찾아 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이때 중세 유럽인의 성급한 사회심리가 선택한 묘책은 바로 희생양 찾기였다.유대인들이 독극물을 우물에 타고 다닌다는 악성 루머가 나돌기 시작했고,역병보다 무서운 유대인 학살이 시작됐다.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가 ‘희생양’이라는 책에서 들려주는 엉뚱하고도 처절한 여론의 사회심리학이다. 2004년 한국사회는 사회적인 재난을 엉뚱한 희생양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심리로부터 자유로운가.건실한 청년 김선일씨가 이라크 땅에서 테러리스트의 포로가 되어,죽고 싶지 않다는 외침이 무색하게 속절없이 죽임을 당했다.그러나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허탈과 분노에 사로잡힌 게 고작이었다.정작 피살의 진짜 원인을 추적하는 데 실패했고 그 해결방식도 세련되지 못했다. 누가 뭐라 해도 김선일씨를 살해한 주체는 테러리스트였다.살인자가 이렇게 명확한 마당에 억울하게 피살된 김선일씨와 그의 가족,가나무역,정부,그리고 국민 모두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살인자인 테러리스트를 잡거나 단죄할 능력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같은 피해자인 우리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괴롭히고 있다. 물론 정부나 가나무역이나 김선일씨 본인 모두 실수를 줄이고 예방대책에 좀더 만전을 기했으면 억울한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이다.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는 그 순간 문제해결은커녕 오히려 갈등과 불신의 늪에 빠지는 법이다. 올봄에는 예상치 않았던 수십년만의 폭설이 쏟아졌다.고속도로가 순식간에 마비되고 농가의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어이없이 무너지자 언론들은 정부의 늑장대응을 일제히 비난했다.한 방송사는 러시아 특파원을 연결해 러시아는 ‘게발식’ 제설기를 항시 배치해 폭설에 대비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를 힐난했다.일년에 한두 번 사용할 게발 제설기를 정부예산으로 구입하라는 얘기인가.물론 정부의 기상예측은 어설펐고 대응도 신속하지 못했다.그러나 폭설은 누구나 속수무책일 정도였으며 그게 아니라면 언론 자신도 예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정부를 희생양으로 삼은 보도 이후 기상예측 시스템이나 정부의 재난 대응 체계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뉴스를 접하지 못했다.시스템 개혁없이 일회성 여론 무마용으로 끝나는 것이 희생양 메커니즘과 그 보도의 속성이다. 크고 작은 정치적 스캔들이 폭로되지만 그때마다 몇몇 정치인이나 공무원,기업인들이 희생양으로 등장했다가 풀려나기만 하고 정작 정치 개혁은 없다.일련의 시끄러운 사건들이 발생하면 내각개편을 해 보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인 멤버교체만 있지 정작 사건의 해결은 없다.불량만두 파동으로 몇몇 업체들이 책임도 지고 피해를 입었지만 그로 인해 불량음식을 먹지 않게 되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모두 희생양을 제물로 삼아 어려운 고비를 넘겨보려는 사회심리의 부산물이다.성급하게 재난의 원인이나 탓을 규정해 버리는 사회나 언론은 특히 이런 희생양 메커니즘에 취약하다.조급성은 하루빨리 희생양을 찾고 싶어 하고,희생양을 죽임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착각한다.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조급증과 희생양 찾기에 너무나 익숙하다.조급증이야말로 인간을 낙원으로부터 추방시킨 주범이라고 했거늘.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정보뱅크] 수능레이더

    ●서울 동부교육청(www.sendb.go.kr)은 14일(수) 오후 4시 중랑구 면목4동 용마중에서 중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영재교육원 수업공개의 날’ 행사를 갖는다.과학 2개반과 수학 1개반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다.(02)2210-1245 ●㈜고려출판은 올 수능에 대비,최근 교육방송 교재집필팀과 공동으로 여름방학용 수능교재 ‘수능방송 플러스α 30점’시리즈를 내놓았다. 언어·외국어(영어)·수리Ⅰ·국사·화학Ⅰ 등 총 5권으로 수능 기출문제의 대표 유형 및 교육방송 수능교재의 대표적인 주요 유형을 심층분석한 것이 특징이다. ●진로정보센터 커리어넷(www.careernet.re.kr)은 중3∼고3학생을 대상으로 강남구 청담동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별관 진로정보센터에서 ‘자기이해를 통한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적성·흥미·가치관 등 과학적인 진로 관련 심리검사를 통해 자기이해를 돕고 진로탐색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학년별로 8명 선착순 모집.중3은 19일(월)·26일(월),고1 20일(화)·27일(화),고2 21일(수)·28일(수),고3 22일(목)·29일(목) 오전 10∼12시.학부모도 함께 참석 가능하다.무료.(02)516-2590 ●서울 강서교육청(www.gsedu.seoul.kr)은 15∼16일(목∼금) 오후 2∼4시30분 강서교육청 4층 강당에서 관내 영어과 교사 70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수업 시연회’를 연다. 등명중 이진수 교사와 염창중 이희진 교사가 영어로 진행하는 범교과 학습 관련 영어수업을 시연하며,실제 영어수업과 관련한 사례 발표와 워크숍도 열린다.(02)2600-0843
  • [정보뱅크] 수능레이더

    ●서울 동부교육청(www.sendb.go.kr)은 14일(수) 오후 4시 중랑구 면목4동 용마중에서 중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영재교육원 수업공개의 날’ 행사를 갖는다.과학 2개반과 수학 1개반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다.(02)2210-1245 ●㈜고려출판은 올 수능에 대비,최근 교육방송 교재집필팀과 공동으로 여름방학용 수능교재 ‘수능방송 플러스α 30점’시리즈를 내놓았다. 언어·외국어(영어)·수리Ⅰ·국사·화학Ⅰ 등 총 5권으로 수능 기출문제의 대표 유형 및 교육방송 수능교재의 대표적인 주요 유형을 심층분석한 것이 특징이다. ●진로정보센터 커리어넷(www.careernet.re.kr)은 중3∼고3학생을 대상으로 강남구 청담동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별관 진로정보센터에서 ‘자기이해를 통한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적성·흥미·가치관 등 과학적인 진로 관련 심리검사를 통해 자기이해를 돕고 진로탐색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학년별로 8명 선착순 모집.중3은 19일(월)·26일(월),고1 20일(화)·27일(화),고2 21일(수)·28일(수),고3 22일(목)·29일(목) 오전 10∼12시.학부모도 함께 참석 가능하다.무료.(02)516-2590 ●서울 강서교육청(www.gsedu.seoul.kr)은 15∼16일(목∼금) 오후 2∼4시30분 강서교육청 4층 강당에서 관내 영어과 교사 70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수업 시연회’를 연다. 등명중 이진수 교사와 염창중 이희진 교사가 영어로 진행하는 범교과 학습 관련 영어수업을 시연하며,실제 영어수업과 관련한 사례 발표와 워크숍도 열린다.(02)2600-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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