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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C 게임즈 ‘페미니즘 사상검증’ 논란에 민주노총·민우회 항의 성명

    IMC 게임즈 ‘페미니즘 사상검증’ 논란에 민주노총·민우회 항의 성명

    게임회사 대표가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시민·노동단체가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민주노총은 27일 ‘IMC 게임즈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페미니스트 사상 검증과 전향 강요를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민주노총은 “IMC 게임즈는 26일 밤 ‘원화 작가가 메갈 트위터 이용자로 의심된다’는 게임 이용자 항의에 따라 회사 대표가 직접 당사자를 개인 면담한 내용을 게시했다”면서 “여성이 반사회적인 사상인 페미니즘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해고까지 불사하겠다는 여성혐오 게시글을 큰 충격과 공포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여성혐오주의자와 반 페미니스트들은 ‘한남’이라는 표현이 불쾌하다면 그 어원을 생각해보고 그간 여성에 행한 차별과 폭력을 돌아봐야 할 것”이라면서 “IMC 게임즈는 지금 당장 여성노동자에 대한 사상검증과 전향 강요를 중단하고 성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한국여성민우회도 ‘IMC 게임즈의 노동권 침해 및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규탄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민우회는 “성차별에 강경히 반대하는 것이 메갈이라면 우리는 메갈이다”라면서 “우리는 변질된 페미니즘과 그렇지 않은 페미니즘을 판별하여 허락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민우회는 “한국사회는 더이상 기존의 남성중심적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행위를 용납해선 안 된다”면서 “또 사측이 직무와 무관하게 노동자의 정치적 입장을 검열, 판별, 검증하여 유무형의 불이익을 가하는 것은 노동권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한편 넥슨이 서비스하는 게임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콘셉트를 그릴 원화가 A씨는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와 관련한 게시물을 트위터에 옮기고 민우회 계정 등을 팔로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의 지적을 받았다. A씨는 “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며 팔로를 취소하고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IMC게임즈의 김학규 대표는 “A씨와 직접 면담한 결과 메갈 활동에 동참한 적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면서 “당사자가 정직원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쉽게 해고가 곤란하다던가 하는 문제를 떠나 정말로 반사회적인 사상을 추구하는 사람은 동료로서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글을 공지해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갑내기·연하남 부부 전성시대… 연령·학력 격차 줄었어요

    동갑내기·연하남 부부 전성시대… 연령·학력 격차 줄었어요

    연령 차 2.92→1.35세 절반 줄어 동갑 부부 45년 새 22%로 급증 男, 학력 높을수록 결혼 확률 높아 30~40대 무자녀 부부도 늘어 여성의 만혼(晩婚)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동갑내기 부부가 급격히 늘고 있다. 1970년만 해도 남편의 나이가 5살 이상 많은 ‘연상 남편’이 대세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10쌍 중 4쌍이 남편이 연하이거나 부부가 동갑일 정도로 연령 격차가 크게 줄었다.26일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작성한 ‘배우자 간 사회·경제적 격차 변화와 저출산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30대 부부의 연령 격차는 1980년 2.92세에서 2015년 1.35세로 35년 만에 절반 이상 줄었다. 동갑 부부는 1970년 12.0%에서 2015년 21.5%로 급증했다. 남편이 연하인 부부도 같은 기간 9.0%에서 17.1%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반대로 5세 이상 연상 남편 비중은 20.8%에서 8.4%로 줄었다. 부부의 학력 격차도 크게 줄었다. 1970년에는 전체 30대 부부 가운데 남성의 교육수준이 높은 부부 비율이 절반이 넘는 51.5%, 동질혼(배우자의 학력 수준이 같은 결혼)은 45.9%였다. 반면 2015년에는 동질혼이 54.5%, 남성의 교육수준이 높은 부부 비율은 26.8%로 역전됐다. 남성은 석·박사 이상, 대졸, 고졸, 중졸 등 학력이 높은 순서로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 연구위원은 “남성은 한국사회에서 생계부양자로서의 역할과 기능이 존재한다”며 “그래서 학력이 높을수록 결혼시장에서 가치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2015년 기준으로 35세 고졸 남성이 배우자를 만날 확률은 전체 35세 남성 평균에 못 미쳤다. 그만큼 남성의 평균 학력이 많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반면 여성은 석·박사 이상 고학력자가 배우자를 만날 확률이 평균 이하였다. 학력별로는 2년제 대학 졸업자가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고졸과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비슷했다. 연구위원은 “결혼과 출산으로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며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에 여러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고학력 여성이 스스로 결혼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저출산 경향이 심해지면서 30~40대 무자녀 부부도 크게 늘었다. 1970년대에 태어난 2015년 기준 36~45세 인구 중 무자녀 비율은 5.6%였다. 2자녀가 61.0%로 대세를 이뤘고, 1자녀는 20.0%였다. 4자녀 이상 다산(多産) 비율은 1.4%에 그쳤다. 신 연구위원은 “청년들이 결혼으로 감내해야 할 기회비용을 줄이려면 신혼부부의 야근과 회식을 줄여 주고 경제적 지원을 강화하는 등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역사 속 행정] 조선판 ‘청와대 비서실’ 승정원

    [역사 속 행정] 조선판 ‘청와대 비서실’ 승정원

    인조에 침 잘못 놓은 의관 처벌두고 사헌부의 사형 건의 일부러 축소 국왕의 목구멍으로 불렸던 승정원 공정성 잃으면 국정 전체에 통증승정원은 조선시대에 왕명 출납을 관장하던 관청으로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한다. 조선조 대부분의 관청이 왕-의정부-육조-일반 관청이라는 계통 속에 포함된 것과 달리 승정원은 국왕 직속이다. 오늘날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 직속인 점과 같다. 한국사에서 국왕 비서기구의 등장은 백제 때 ‘내신좌평’으로 시작되지만 이는 개별 관청이 아니고 특정 관직이다. 고려시대에는 중추원과 은대 등이 설치돼 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을 관장했는데, 후기에 이르러 중추원이 이를 전담했다. 그러나 중추원은 비서 기능 말고도 군사 기능을 함께 관장했다. 조선 건국 이후에 중추원이 담당하던 비서 기능만 분리해 승정원을 두면서 국왕 비서기구로서의 독립성이 확보됐다. 승정원을 지칭하는 별명은 여러 가지가 있다. 승정원을 줄여 정원이라고 하거나 은대 또는 후원, 후설 등의 별칭으로 불렸다. 여기서 ‘후’(喉)는 신체 일부분인 목구멍을 뜻한다. 흥미롭게도 조선시대에는 중요 관직이나 관청을 사람의 몸에 비유해 말하곤 했다. 관원들 가운데 최고위 관원인 대신은 다리와 팔을 의미하는 ‘고굉’으로, 탄핵과 간쟁을 담당하던 대간은 귀와 눈인 ‘이목’으로, 그리고 승정원은 목구멍을 의미하는 ‘후원’으로 불렸다. 신하들이 국왕의 다리와 팔이자, 귀와 눈이요, 목구멍이라는 것이다. 후원 즉, 목구멍은 승정원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가 아닐까 한다. 승정원을 목구멍에 비유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승정원의 주요 기능인 왕명 출납과 관계된다. 입을 통해 들어온 모든 음식물이 목구멍을 통해 넘어가므로, 만약 목구멍에 질환이 있다면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구멍에 해당되는 승정원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심각한 국정 혼란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승정원의 왕명 출납을 단순히 기능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면 오산이다. 오늘날과 같이 삼권분립이 이뤄지지 않았던 조선 사회에 국왕의 명령은 바로 법이 되므로 왕명 출납은 더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왕명 출납에 오류가 있을 경우에는 사람을 살리기도 혹은 죽이기도 할 수 있었다. 1649년(효종 즉위년) 6월 사헌부와 승정원 사이에 논란이 있었는데, 인조가 승하하기 직전에 치료를 담당했던 의관 이형익의 처벌에 대한 것이었다. 사망 직전에 이형익이 인조에게 침을 놓았는데 혈을 잘못 짚어 문제가 되자 사헌부에서는 이형익을 ‘안율정죄’(按律定罪)하자고 주장했는데, 다름 아닌 사형에 처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승정원은 사헌부의 건의와 국왕 명령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안율’이라는 두 글자를 임의로 빼 ‘정죄’라는 표현만 전달했다. 정죄란 꼭 사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효종에 의해 안율정죄로 다시 결정되기는 했지만 이 과정에서 표현이 바뀌게 된 책임을 지고 해당 승지 정유성이 파직됐다.당시 사헌부에서는 “승정원의 처사로 법을 집행하는 의리가 추락했다”며 신랄하게 공격했다. 국왕의 목구멍인 승정원이 공정성을 잃게 되면 이형익의 사례에서처럼 조정 전체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승정원은 또 각 관청에서 올라오는 보고와 이에 대한 왕의 결재 사항을 각 관청에 하달하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 관보와 유사한 조보를 발행했다. 또 궁궐문의 열쇠 관리도 관장했다. 조선의 아침은 대궐문이 열리면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궐문은 단순한 출입문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데, 그 최종 책임이 승정원에 있었다. ■한국행정연구원 ‘역사 속 행정이야기’ 요약 이근호 연구교수 (명지대)
  • 13개 공공기관 10조 손실…한국석유공사만 8조8500억

    13개 공공기관 10조 손실…한국석유공사만 8조8500억

    한국석유공사 등 13개 공공기관이 5년간 10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24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보고서 ‘대한민국 재정 2018’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이어지는 기간 동안 13개 공공기관이 낸 손실액의 합계는 약 9조7057억원에 달했다. 5년 연속 손실을 낸 13개 기업은 한국석유공사, 대한석탄공사, 근로복지공단, 한국철도시설공단, 국제방송교류재단, 예술의전당, 한국나노기술원, 한국고용정보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 사회보장정보원,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한전 의료재단법인 한일병원이다. 13개 기업 가운데 가장 큰 손실을 낸 기업은 한국석유공사로 손실액은 8조8500억원이었다. 이는 공공기관 손실액의 92.1%를 차지하는 수치다.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던 것은 저유가로 인한 영업 손실, 해외 자원 개발 사업 부진, 유가 전망 하락에 따른 자산 가치 감소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어 대한석탄공사 3천952억원(4.1%), 한국철도시설공단 2천217억원(2.3%), 근로복지공단 1천304억원(1.3%) 순으로 손실액 규모가 컸다. 대한석탄공사의 정규직 직원 평균보수는 6천264만3천원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의상대사 창건 高雲寺, 가운루·우화루 지은 최치원 호 따 孤雲寺로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의상대사 창건 高雲寺, 가운루·우화루 지은 최치원 호 따 孤雲寺로

    1742년(영조 18년) 10월 보름, 임진강 우화정(羽化亭)에서 웅연(熊淵)까지 선상(船上) 연회가 벌어졌다. 참석자는 경기도관찰사 홍경보와 연천현감 신유한, 양천현령 정선이었다. 이날은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1037~1101)가 적벽강에서 뱃놀이를 하며 ‘후적벽부’(後赤壁賦)를 지은 660주년이었다고 한다. 우화정은 경기 연천군 중면 대사리에 있었다. 지금은 임진강댐 상류 북한 땅이다. 청천 신유한이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라면 겸재 정선은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이 뱃놀이에서 신유한은 ‘의적벽부’(擬赤壁賦)를 지었고 겸재는 배가 우화정에서 떠나는 장면과 웅연에 닿는 모습을 각각 ‘우화등선’(羽化登船)과 ‘웅연계람’(熊淵繫纜)이라는 그림에 담았다. 여기에 창애 홍경보의 서문이 더해진 시화첩을 세 벌 만들어 나누어 가졌으니 유명한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이다.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비로 변하는 것이 우화(羽化)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사람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을 이르는 도교적 표현이다. 소동파의 ‘훌쩍 세상을 버리고 홀몸이 되어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만 같다’(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는 ‘적벽부’ 구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겸재는 이 구절의 신선 선(仙) 자를 배 선(船) 자로 살짝 비틀어 화제(畵題)로 삼았다. 신유한(1681∼1752)은 집안 배경이 변변치 않은 탓에 늦은 나이까지 지방관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와 문장에서만큼은 일찍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1719년(숙종 45)에는 통신사의 제술관(製述官)으로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다. 통신사 제술관은 여간 글재주가 뛰어나지 않으면 뽑힐 수 없었다. 신유한의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는 것도 통신사행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는 1719~1720년 일본을 여행하면서 지리·풍속·제도는 물론 자연환경까지 자세히 적었으니 곧 ‘해유록’(海遊錄)이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을 이끈 사명대사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사명대사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자신의 평가를 붙인 ‘분충서난록’(奮忠難錄)을 편찬하기도 했다.●오늘날 고운사 중심은 대웅전… 과거엔 극락전 오늘은 ‘컬링의 고장’으로 떠오른 경북 의성의 고운사(孤雲寺)로 간다. 의성군 동북쪽의 고운사는 안동과 경계를 이루는 등운산(登雲山)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절 이름만으로도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孤雲) 최치원(857~?)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친다. 신유한을 떠올린 것은 그가 평해군수 시절인 1729년(영조 5) 고운사의 사적기를 썼기 때문이다. 그의 사적기는 1918년 오시온이 지은 또 다른 사적기와 함께 이 절의 역사를 구성하는 결정적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고운사는 절의 역사를 이렇게 서술한다.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해동 화엄종의 시조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연꽃이 반쯤 피어난 부용반개형상의 천하명당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원래 고운사(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유교·도교에 모두 통달해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如智)·여사(如事) 양 대사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고운을 빌려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도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들이다’. 고운사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흩어진 60곳 남짓한 절들을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 지은 산문을 지나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역시 최근 조성한 대웅전을 비롯한 30개 남짓한 전각이 규모 있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고운사는 ‘사세(寺勢)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칸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지금은 교구본사로는 작은 사찰로 전락했다’고 적어 놓았으니 지금보다 훨씬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오늘날 고운사의 중심은 웅장한 대웅전 주변이라 할 수 있지만, 과거의 중심은 극락전이었다. 극락전과 마주 보는 우화루 사이 양옆으로 만덕당과 종무소가 사방에서 마당을 에워싼 일종의 산지중정형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유행한 형태다. 극락전 영역은 소박하기만 하다.●가운루, 구름 탄 누각 의미… 등운산 계곡 가로질러 종교적 의미에서 절의 중심이 어디든, 고운사의 상징은 우화루와 가운루다. 등운산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가운루는 과거 다리 역할을 했다. 가운루란 구름을 타고 앉은 누각이라는 뜻이다. 곧 신선의 세계다. 고운이라는 최치원의 아호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우화루란 이름에서는 곧바로 홍경보, 신유한, 정선의 임진강 뱃놀이가 떠오른다. 사찰의 강당은 부처가 설법하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빌려 우화루(雨花樓)라 이름붙이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은 찻집으로 쓰는 고운사 우화루에도 내부에는 우화루(雨花樓)란 편액이 하나 더 붙어 있다. 우화루와 가운루는 이 절이 최치원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음을 과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화루 명칭은 신선·부처님 가르침 동시에 상징 고운사가 신유한에게 사적기를 청한 것도 청천이 유학은 물론 불교와 도교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청천은 사적기 서두에 ‘1728년 고운사 스님이 찾아와 청하는 것을 서류에 파묻힐 만큼 바빠 응하지 못했는데, 이듬해 사자(使者) 셋이 고운사 주지의 글을 다시 들고 오니 거절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고운사의 역사를 정리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사적기는 신유한이 관련 사료를 엄격히 고증해 서술했다기보다는 스님들이 알고 있는 구전(口傳) 자료를 재구성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런데 청천의 사적기에는 ‘의상대사 창건’ 다음에 최치원이 등장하지 않고 곧바로 ‘고려 건국 초 운주화상 중수’로 넘어간다. 최치원의 고운사 중창설(說)과 이후 절 이름 변경설(說)은 신유한이 사적기를 쓰던 시기에는 아직 널리 보편화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명대사가 고운사를 의승군의 전초기지로 썼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사명대사 전문가’인 신유한은 역시 사적기에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운사와 최치원과의 관계로 국한하면 신뢰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보물로 지정된 고운사 약사전의 석조여래좌상은 최치원이 살았던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미술사학계는 보고 있고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도 신라 후기 양식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유한의 사적기에 왜 최치원과의 관계가 서술되지 않았고 오시온의 사적기에는 왜 들어가게 됐는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극락전이 서쪽에 있는 건 서방정토 상징성 살린 것 가운루의 존재에서 보듯 고운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그 동서쪽에 전각이 있는 사찰이었다. 극락전 영역이 서쪽에 자리잡은 것은 주존(主尊)인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정토의 상징성을 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계곡 동쪽은 모니전(牟尼殿) 영역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전각이다. 흔히 이런 전각을 대웅전이라 부르지만 절의 큰법당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고자 이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대웅전은 1992년 가운루 상류의 계곡을 메우고 모니전 영역을 해체해 세운 것이다. 모니전 옛 건물은 대웅전 동쪽의 삼층석탑 위로 옮겨 지었으니 지금의 나한전이다. 조촐함에서 닮은 나한전과 삼층석탑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것인 양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여 준다. 일주문 밖으로는 화엄승가대학원이 보인다. 산내 암자인 운수암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신유한은 운수암기(雲水庵記)도 남겼으니 이래저래 고운사와는 인연이 깊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In&Out] 무력분쟁과 인도주의 활동가/요르간타스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

    [In&Out] 무력분쟁과 인도주의 활동가/요르간타스 국제적십자위원회 한국사무소 대표

    필자가 근무하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서는 전 세계 무력분쟁의 파급력과 피해자들의 고난을 조명하기 위해 서울신문과 함께 사진전을 개최하게 됐다. 분쟁의 진화로 과거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는 오늘, 동시에 이들을 돕는 인도주의 활동가들 또한 여러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인도주의 활동의 성격과 그 전개 방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많은 변화를 거쳤다. 전쟁 당시 벌어진 잔학행위에 전 세계는 경악했고, 인간의 포악한 모습을 다시 목격하지 않기 위해 국제적 차원에서 억제 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에 따라 정부 간 기구, 법적 체계와 다양한 메커니즘이 탄생했고 인도주의 단체들 또한 우후죽순 생겨났다. 혹자는 인도주의 활동이 하나의 산업이 됐고, 남을 돕고자 하는 욕구가 아닌 개인의 이익이나 정치적 어젠다에 기반을 두게 됐다며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수백만명의 인도주의 활동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이들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해온 헌신적인 활동과 그들의 노력으로 전쟁이 더욱 비인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론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분쟁지역 관련 소식은 대부분 현실의 일부만 반영한다. 사실 지난 15~20년 동안 무력분쟁은 극적으로 변모했다. 선전포고 후 얼굴을 맞대고 벌이는 형식이 아닌 복잡하고 분석이 어려운 분쟁이 됐다. 전쟁의 전개 기간, 강도, 파급력과 최종적 결과에 대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때도 있다. 확실한 것은 전쟁의 진화로 인해 정치 분석가, 정치인, 법률ㆍ군사 전문가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인도주의 활동가들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현대 분쟁의 특성으로 인도주의 기구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무수히 많다. 일례로 오늘날 분쟁은 대부분 수십년간 지속된다. 분쟁이 장기화되면 언론과 대중 그리고 인도주의 활동에 특히 중요한 영향력을 갖는 기부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들의 관심 또한 멀어지게 된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점점 국제전이 아닌 국내전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내전에는 비국가행위자를 포함해 여러 가담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들의 행동 동기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전 세계 무력분쟁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오래전부터 두 가지 기본 개념에 입각해 활동해 왔다. 첫째는 전쟁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과 둘째는 국적, 정치적ㆍ종교적 신념 및 소속 진영에 상관없이 무력충돌 피해자들은 모두 인도적 대우를 받아야 하고 기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민족, 이념 및 신념에 기반해 활동하고 그 외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인도주의 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사이버전과 드론, 자율화무기 등의 신무기기술이 등장했음에도 준법 통제 체계가 충분히 확립되지 않아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피해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면서, 전쟁에도 한계가 있다는 무력충돌 시의 인도적 활동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약화되고 있다. 현대 전쟁의 위험한 흐름을 뒤집기 위해서는 인도주의 단체들은 물론 국가, 비국가행위자 등 전쟁 가담자 모두가 앞서 언급된 기본 개념을 존중해야 한다. 국제적십자위원회에서는 이를 위해 앞으로 국제인도법 등 관련 법과 정책 개발에 더욱 힘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무엇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만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미투, 광장에 나오다... 청계광장서 ‘2018분 이어말하기’

    #미투, 광장에 나오다... 청계광장서 ‘2018분 이어말하기’

    “여자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죽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모르는 아저씨가 삼촌 친구라며 다가왔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여섯 살 때 성폭력을 당했다. 초등학교 같은 반 남자아이가 가슴을 만지고 학교 담임 선생님이 나를 뒤에서 끌어안기도 했다.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내 몸 전체를 주무르고 아무런 동의 없이 키스한 수사도 있었다. 직장인이 된 뒤에는 회식 뒤 노래방에서 상사들과 블루스를 춰야 했다. 그들이 내 몸을 만지는 것이 거슬렸지만 관행처럼 이뤄졌다.”22일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된 발언대.꽃샘 추위 속에 이른 아침부터 성폭력 경험을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에 참여하고 이를 지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340여개 여성·노동·시민단체들의 연대체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마련한 ‘2018분의 이어말하기’ 행사가 이날 오전 9시22분부터 2018분 동안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2018년에는 근절시키겠다는 의미로 기획한 행사다.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선 여성민우회의 한 회원은 어린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당했던 성폭력 경험을 되짚으면서 “한국에 사는 대다수 여자는 어릴 때부터 남자들로부터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고 공격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처럼 성폭력을 당해왔던 모든 여성은 죄가 없으면서도 움츠리고 말 못하고 살았다”면서 “하지만 죄책감은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버젓이 가정을 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그들(가해자)이 느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동시에 시달리며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 여성들의 현실도 발언대에 올랐다. 남편으로부터 성폭력 당하는 결혼 이주 여성,사장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이주 여성 노동자,마사지사로 취업해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태국 여성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제시됐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한 활동가는 “이주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해도 체류 문제 때문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체류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이주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할 수 있고 가해자가 처벌받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밖에 한 젊은 여성은 학창 시절 남학생뿐 아니라 여학생으로부터도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놨고, 한 중년 여성은 대형교회 목사가 자신의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고 주장하는 등 다양한 고발과 증언이 터져나왔다. ‘미투’를 지지하는 ‘위드유(#withyou)’ 발언도 이어졌다. 한 여성은 “미투 운동을 보면서 여성 혐오 사건들은 가해자가 여성을 통제 대상으로 보는 권력욕 때문에 성립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나 또한 여성으로 고통받았고 나 또한 당신들과 함께하겠다”고 미투 참여자들을 응원했다.또 다른 여성은 “미투 운동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성추행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과거 기억들을 되짚어보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많은 현장을 목격하고도 방관자로 모른 척하지 않았나 반성했다”며 앞으로는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행사가 열리는 청계 광장 한켠에는 자신이 당했던 성폭력을 고발하고 미투를 지지하는 발언이 담긴 25m 길이의 대자보 벽도 설치됐다. “나는 버스 창가에 절대 앉지 않는다.내 허벅지를 만지던 소름끼치는 손이 생각나서.” “나는 00사 면접에서 겪었던 성희롱을 고발합니다.” 등의 글이 적혀있다.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SNS를 통해 자유발언 신청을 받아 23일 오후 7시까지 ‘2018분의 이어말하기’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23일 오후 7시에는 퍼포먼스와 공연, 청계광장 일대 행진 등으로 구성되는 성차별·성폭력 끝장문화제가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터뷰] ICRC 한국사무소 대표가 전하는 ‘분쟁지역의 참상’

    [인터뷰] ICRC 한국사무소 대표가 전하는 ‘분쟁지역의 참상’

    “전쟁의 파괴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 서울신문과 함께 하는 ICRC사진전이 온·오프라인 상에서 개최되고 있는 가운데 1863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인도주의 기구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한국사무소 요르고스 요르간타스(Georgios Georgantas) 대표를 만났다. 그에게서 무력 분쟁지역 속 피해자들의 뼈아픈 고통과 ICRC의 임무와 활동에 대해 묻고 이번 서울신문과 함께 준비한 사진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국제적십자위원회, 국내에서는 그 이름이 생소하다. 어떤 기구인가? ICRC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도주의 기구로, 설립된 지 올해로 155년이 되었다. ICRC의 탄생은 인류가 최초로 인도주의 활동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행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ICRC 설립 이전에는 주로 개인 자선가들이 활동을 했었다. 지난 155년간 ICRC는 전장에서 부상당한 전투원들을 돕는 구호단체에서 다양한 인도주의 사업을 실행하는 기구로 거듭났고, 임무도 보다 광범위해졌다. 오늘날 ICRC는 무력충돌과 기타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보호와 원조를 제공하는 기구로 알려져 있고 전쟁 중 민간인 보호를 목표로 하는 법인 국제인도법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각국에 있는 적십자사(한국의 경우 대한적십자사)와는 별개의 기구이지만 필요 시 함께 지원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Q. 세계 각국의 무력 분쟁지역에서 어떤 일들을 하나? ICRC의 임무는 분쟁 지역 피해자들을 돕는 것으로, 이들을 위한 매우 다양한 보호 및 원조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는 ∆군사작전 모니터링을 통한 국제인도법 위반행위로부터의 민간인 보호 ∆분쟁 중 억류된 자 및 전쟁 포로 등 방문 ∆분쟁 중 헤어진 가족간 연락 재개 ∆실향민을 비롯한 분쟁 피해자들에게 식량, 식수 등의 생존 필수품 제공 ∆분쟁 피해자들의 위생 상태 개선 ∆외과 수술 및 신체 재활 치료를 포함한 의료 서비스 제공 등이 있다. Q. 서울신문과 함께 하는 이번 ICRC 사진전의 의의는? 앞서 언급했듯, ICRC는 아직 한국 대중들에게 생소한 기구다. 더욱이 한국인들에겐 지구 반대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력충돌에 관한 뉴스가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전장 한 복판에서 불과 몇 분 만에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전시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분쟁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고 둘째는 ICRC가 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돕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Q. 사진전 제목이 ‘Torn Apart: 산산조각난 세상’이다. 사진전의 주제는 무엇인가? 전쟁의 파괴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다.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분쟁 중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고, 부상을 당할 수 있으며 신체 일부가 절단될 수도 있다. 또한 집과 모든 재산을 두고 피난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 친구와 헤어지기도 하고 또 납치 또는 구금되어 고문을 당할 수도 있다. 즉 평범함을 상실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진전의 제목은 전쟁으로 사람들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고, 평범한 일상이 산산조각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Q. 세계 속 분쟁지역들은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 불행히도 오늘날엔 모든 대륙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세계 모든 지역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은 특히 더 길고 격렬한 분쟁으로 고통 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및 남수단과 같은 국가에서는 극빈곤, 만성적 저개발, 분쟁의 장기화 등의 악조건들이 겹쳐 사람들의 삶을 견디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중동에서는 시리아, 이라크, 예멘의 전쟁이 수백만 명의 삶을 앗아갔고 살아 남은 사람들에겐 끝이 안 보이는 고통을 선사하고 있다. 물론 아시아나 유럽 또한 예외가 아니다. 미얀마의 위기 상황이나 우크라이나의 분쟁 또한 해결되려면 갈 길이 멀었다. Q. 분쟁지역의 상황들이 생각보다 훨씬 끔찍하다. 어떤 문제들을 겪고 있나? 보통 분쟁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희생,죽음이다. 이것은 분쟁이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한 영향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남은 자들이 더 불행하다는 말을 한다. 한 편으론 이 말이 이해가 된다. 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나 마을 혹은 실향민 캠프에 가서 짧게는 하룻밤 사이 삶이 풍비박산 나버린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역시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나은 건가라는 슬픈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분쟁 상황에서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가족이나 친척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때인 것 같다. 가족의 소식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서서히 시들어간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권리는 신성한 것이고 이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Q. 지금 이 순간, 분쟁지역 중 ICRC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2018년도 기준 ICRC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시리아, 남수단, 예멘 그리고 이라크이다. 이 네 개 국가에서 활동하는데 사용되는 예산은 ICRC 전체 예산의 30% 정도에 해당된다. ICRC는 총 예산의 41%를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31%를 중동에서 사용한다. 비록 ICRC가 전 세계적으로 80개가 넘는 많은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이 수치들은 대부분의 자원이 분쟁이 가장 격렬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Q. 각 나라에서의 구호활동에 애로사항이 있다면? 오늘날, 분쟁 지역에서의 인도적 지원 활동은 매우 복잡한 이슈다. 인도적 지원을 실제로 현장에서 실시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분쟁의 요소, 상황, 영역 등)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많은 요소들 중에서 인도적 활동을 실시하기에 가장 필수 적인 두 가지를 꼽자면, 즉 이 두가지 요건들이 성립되지 않으면 인도지원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바로 접근성과 자원이다. 접근성은 분쟁을 야기시키는 모든 단체들이 ICRC의 존재와 활동을 인정하고 분쟁지역에서의 구호 활동가들의 안전이 보장되어야만 확보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자원에 대한 것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구체적 예를 들어보겠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접근이 어려운 장소에서 격렬한 분쟁이 일어나 많은 부상자들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만약 육로를 통해 의사를 보내고자 한다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의사가 도착하기 전에 사람들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엔 항공 전세기를 현장으로 보내야 할 텐데, 그러려면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호 요원을 현장으로 보낼 수 없는 걸까? 혹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해서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살릴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자원은 돈 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인적자원은 자금만큼이나 중요하다. 위와 같은 경우에서, 만약 구호요원을 현장으로 보낼 필요한 돈이 다 준비가 되었다 하더라고, 의사가 없다면 부상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다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돌아가서, 정리해서 얘기한다면 다음 네 가지로 답변하고 싶다. 분쟁지역에 대한 접근성, 보안, 인도적 지원 자금, 인적자원, 이 네 가지는 인도적 지원활동을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사항이다.Q. 사진전 Part 6. ‘니아닌의 이야기’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도 많을 것 같은데… 니아닌의 이야기는 정말 안타깝다. 니아닌은 내가 앞에서 언급했던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몇몇 지역들 중, 특히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한다. 분쟁과 갈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한 일 이지만, 이미 극심한 빈곤과 다른 많은 문제들이 있는 국가에서 일어나게 된다면, 그 상황은 더욱 더 참혹해진다. 내가 아프리카 에서 일했을 때의 일이 기억난다. 한번은 정부군과의 대치 상황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소년병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만약 24시간안에 수술을 하지 않는 다면, 그 소년은 생명을 잃게 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소년을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유일하게 의사가 있는 곳인 수도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군 입장에서 보면 ‘적군’인 소년의 이동을 위해 통행 허가가 필요했고, 비행기를 마련해야 했으며, 도착하는 때에 맞춰 병원의 모든 것들이 준비되도록 조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아침 이 모든 것들은 준비된 듯 보였고, 비행기는 소년을 수도 병원으로 이송시킬 채비가 다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활주로 같은 것이 없고, 특히 이렇게 아프리카 시골의 작은 마을들은 활주로라 부를 수 없는 흙바닥에 이착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러한 엄청난 폭풍우가 쏟아지게 되면 금방 땅이 진흙으로 바뀌고, 물이 넘쳐나 착륙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하여, 수술은 하루 늦춰질 수 밖에 없었고, 소년을 살릴 수 있는 확률은 낮아져만 갔다. 이 모든 과정을 최선을 다하여 준비했던 직원들은, 이렇게 어려워져만 가는 상황에 좌절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소년은 우리 생각보다 강했고, 그날 밤을 견뎌냈다. 결국 다음 날, 비행기는 착륙에 성공했고, 무사히 소년을 수도로 이송시킬 수 있었다. 소년은 병원에 도착한 뒤,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고, 결국 한쪽 다리를 잃게 되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동료들과 나는 소년이 한쪽 다리로만 남은 일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매우 안타깝고 슬퍼 하고 있었는데, 정작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나는 아직도 소년이 수술실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면서 보여주었던 미소를 기억한다. 몇 달 뒤, 우리는 그 소년을 ICRC 가 운영하는 인근 나라의 외과 센터로 이송했고, 후에 소년이 의족을 하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이 이야기는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며, 아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힘듦을 이겨내고, 적응하여 살아나가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Q. 사진전을 보는 이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나는 사진전을 본 이들이 사진전을 본 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충격을 받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이 사진들이, 어떤 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일매일 겪어야 하는 일상인 것이 사실이다. 사진전을 통해 보는 이러한 활동들이 ICRC가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는 것이고, 또한 이것은 ICRC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Q. 앞으로도 ICRC 는 세계 분쟁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펼쳐나갈지?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ICRC 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많은 프로그램들을 발달시켜 왔다. 처음에는 전쟁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는 하나의 활동으로만 시작했던 구호 활동이 지금은 수십 가지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들로 이어지게 됐다. ICRC 는 분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필요할 때마다, 그 방법을 모색하고 더 나은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왔다. 그 예로, 무기오염방지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분쟁 지역에서의 지뢰나 불발탄 등의 위험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단순한 위험 인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지금은 이런 불발 병기 제거방법에 대한 실직적인 훈련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ICRC 는 앞으로도, 분쟁상황에서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고 개발할 것이다. 예를 들어, 너무나 긴 시간 동안 다수의 분쟁들이 지속되어 오면서, 아동 대상 교육이 붕괴되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교육에 대한 접근은 우리가 앞으로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한 부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ICRC는 급변하는 분쟁 상황에 적절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하여, 인도적 지원활동을 상황에 맞게, 그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손진호 기자 nsaturu@seoul.co.kr
  • “노동 존중사회 실현하려면 비정규직 차별 해소 급선무”

    “노동 존중사회 실현하려면 비정규직 차별 해소 급선무”

    노사정위 ‘21세기 한국’ 토론회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 미조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 확대, 노동시간 단축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는 20일 한국사회학회와 공동으로 ‘21세기 한국의 노동과 사회발전’ 토론회를 열고 노동존중사회의 실현을 위한 과제와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서 전문가, 경영계, 노동계가 참여해 논의한 내용은 향후 정부가 수립할 ‘노동존중사회 기본 계획’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존중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저임금과 근로빈곤의 해결, 비정규직 노동자의 격차 해소, 노조의 경영참가 등이 꼽혔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에 대한 적절한 경제적 보상으로 저임금이나 근로빈곤이 해결돼야 한다”며 “일하는 사람이 고용주로부터 인격적으로 멸시당하고 푸대접을 받으면 노동은 기피와 경멸의 대상이 된다”고 진단했다. 특히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차별과 격차를 강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며 “노동의 질 하락을 초래했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봤다. 신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 채용 확대,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현실화, 노조 조직률 제고, 노동 참여의 노사 관계 거버넌스 구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도 청년과 고학력 여성의 고용률 제고, 최저임금 수준의 개선과 사각지대 해소,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 해소, 실제 노동시간 단축 등을 노동존중사회의 실현을 위한 과제로 꼽았다. 노동에 대한 교육과 인식의 전환에 대한 지적도 쏟아졌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젠가부터 법률 용어로 쓰고 있는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는 것이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노동 중심의 임금·소득 주도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90% 노동자에 대한 노조 가입을 높이고, 노조할 권리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박재근 대한상의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차별과 격차의 해소를 위해 과보호된 부문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한국보도사진전 새달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서늘하게 분노하고, 뜨겁게 감격했던 역사의 순간들을 포착한 보도 사진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21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미술관 2관(지하 1층)에서 열리는 제54회 한국보도사진전이다. 한국사진기자협회 주최로 ‘하나된 열정, 모두의 불꽃’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사진전에서는 지난 한 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난해 현장을 지킨 사진기자들이 찍은 수백만 컷 가운데 11개 부문으로 나눠 골라낸 90여점을 비롯해 올해 주제전인 ‘하나된 열정, 모두의 불꽃’에서 선보이는 평창동계올림픽 주요 사진 30여점, 매년 소개되는 한국보도사진전 역대 대상 수삭장 50여점 등 총 250여점의 사진이 전시장에 나온다. 관람료 6000원. (02)773-9576~7.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부고]

    ●김호정(전국사무금융노조 부위원장)은주(서울 역삼 아르누보시티호텔 총괄매니저)은숙(임실군청 홍보팀장)씨 부친상 문상도(하나은행 ICT그룹 IT 기획팀장)유승훈(전라일보 사회부 차장)씨 장인상 19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1일 오전 11시 (010)3682-0076 ●김대유(전 청와대 경제정책수석비서관)호유(전 신한은행 지점장)만유(건설업)씨 모친상 김시만(전 대검찰청)윤종수(전 현대건설)김정우(전 태백시)씨 장모상 김성민(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씨 조모상 19일 근로복지공단 동해병원, 발인 21일 오전 10시 (033)532-4440 ●김웅(개인사업)진(한국투자증권 감사본부장)웅대(개인사업)씨 부친상 19일 진주 중앙병원, 발인 21일 (055)745-8000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이성계 때 고려 강역도 계승…‘철령~공험진’까지 엄연한 조선 땅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이성계 때 고려 강역도 계승…‘철령~공험진’까지 엄연한 조선 땅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살펴보니 세종 압록강~두만강 확장은 가짜 4군6진 설치 일부 신도시 세운 것 현 국정·검인정교과서 ‘기재 오류’국정·검인정을 막론하고 현행 국사 교과서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역사, 즉 ‘가짜 역사’를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조선의 북방강역도 마찬가지다. 현행 교과서는 모두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가 4군 6진을 개척해서 조선의 북방강역이 압록강~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고 쓰고 있다. 세종 전까지 조선의 국경선은 압록강~두만강까지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권 때 만든 중학교 국정교과서는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에게 4군6진을 설치하게 하고 충청·전라·경상도의 주민을 이주시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영토를 개척하였다”라고 쓰고 있다. 현행 검인정교과서도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삼화출판사)는 “세종 때에는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을 확정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출판사만이 아니라 모든 검인정 교과서가 마찬가지다. 교과서 편찬 기준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조선의 북방강역에 대한 1차 사료는 ‘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은 조선의 북방강역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태조실록’은 태조 4년(1395) 12월 14일자에서 “의주(義州)에서 여연(閭延)에 이르기까지의 연강(沿江) 천 리에 고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어서 압록강을 경계로 삼았다.…공주(孔州)에서 북쪽으로 갑산(甲山)에 이르기까지 읍(邑)을 설치하고 진(鎭)을 두어…두만강을 경계로 삼았다”라고 쓰고 있다. 태조 이성계 때 이미 압록강~두만강 연안에 읍과 진을 두어 다스렸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세종 때 압록강~두만강까지 국경을 확장했다는 현재의 교과서 내용에 대해 ‘가짜 역사’라고 수없이 말하고 있다. 세종 때 최윤덕이 개척한 4군의 끝이 여연(閭延)이고 김종서가 확장한 6진의 끝이 경원(鏡源)이다. 그러니 현행 교과서의 논리대로라면 최윤덕, 김종서의 북방 개척 이전까지 여연과 경원은 조선의 강역이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태조실록’ 4년 12월조는 여연이 이미 태조 이성계 때 조선 강역이었다고 쓰고 있고 같은 ‘태조실록’ 재위 7년(1398) 2월 3일자도 ‘경원부는 부사(府使) 1명을 두고 영사(令史) 10명, 사령 20명 등을 둔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원은 태조 이성계 때부터 이미 부사를 파견해 다스리던 조선 강역이었다. ‘태조실록’ 7년(1398) 2월 16일자는 동북면도선무사 정도전이 경원부에 성을 쌓았다고 기록하는 등 태조 때 이미 조선 강역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태종과 영락제의 국경조약 더 중요한 것은 조선의 북방 경계가 압록강~두만강도 아니라는 점이다. 태조 이성계는 재위 1년(1392) 7월 28일 즉위 조서에서 “국호는 그전대로 고려라 하고 의장(儀章)과 법제(法制)는 한결같이 고려의 고사(故事)에 의거한다”고 말했다. 고려의 의장과 법제를 계승했다는 말은 고려의 강역도 계승했다는 뜻이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서 정종·태종·세종 등은 모두 고려의 북방 강역이 현재의 요령(遼寧)성 심양(瀋陽) 남쪽 철령(鐵嶺)과 흑룡강(黑龍江)성 목단강(牧丹江)시 남쪽 공험진까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태종은 이 국경선을 명나라 영락제로부터 다시 확인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종은 재위 4년(1404) 5월 19일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김첨(金瞻)과 왕가인(王可仁)을 명나라 수도 남경에 보내 두 나라 사이의 공식적인 국경선 획정을 다시 요구했다. “밝게 살피건대(照得),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부터 공주(孔州)·길주(吉州)·단주(端州)·영주(英州)·웅주(雄州)·함주(咸州) 등의 주(州)인데,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태종은 명나라 영락제에게 공험진 남쪽 땅에 대해서 설명했다. 고려 고종 45년(1258) 12월 고려의 반역자 조휘와 탁청 등이 압록강 북쪽~두만강 북쪽 땅을 들어 원나라에 항복하자 원나라에서 그곳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했지만 공민왕이 재위 5년(1356) “공험진 이남을 본국(本國·고려)에 다시 소속시키고 관리를 정하여 다스렸다”는 것이다. 이후 명나라가 심양 남쪽 지금의 진상둔진(陳相屯鎭)에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자 고려 우왕이 재위 14년(1388) 밀직제학 박의중(朴宜中)을 명 태조 주원장에게 보내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다시 속하게 하고 공험진부터 철령까지는 본국(고려)에 다시 속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명 태조 주원장이 “철령 때문에 왕국(고려)에서 말이 있다”면서 철령~공험진까지를 그대로 고려 강역으로 인정했다는 설명이었다. 태종은 김첨에게 압록강 북쪽 철령과 두만강 북쪽 공험진이 본국(本國·고려 및 조선) 강역이라는 시말을 자세히 적은 국서와 지도까지 첨부해서 영락제에게 보냈다. ●여진족들의 귀속권 문제는 압록강 북쪽~두만강 북쪽에 사는 여진족들의 귀속 문제였다. 여진족들이 세운 금(金)나라가 원나라에 붕괴된 이후 국가가 없었으므로 명나라에서 여진족들도 사는 이 지역을 자국령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에는 삼산(參散) 천호(千戶) 이역리불화(李亦里不花) 등 여진족 10처 인원(十處人員)이 살고 있었다. 처(處)란 여진족들로 구성된 집단 거주지역을 뜻한다. 이역리불화는 이화영(李和英)이란 조선 이름도 갖고 있었는데 조선 개국 1등 공신이자 이성계의 의형제였던 이지란(李之蘭)의 아들이었다. 태종은 이 여진족들은 조선에서 벼슬도 하고 부역도 바치는 조선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은 비록 여진 인민의 핏줄이지만 본국 땅에 와서 산 연대가 오래고…또 본국 인민과 서로 혼인하여 자손을 낳아서 부역(賦役)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그곳에 살고 있는 여진의 남은 인민들을 전처럼 본국(本國·조선)에서 관할하게 하시면 일국이 크게 다행입니다.” 국서와 지도를 가지고 명나라에 갔던 김첨이 돌아온 것은 다섯 달 정도 후인 태종 4년(1404) 10월 1일이었다. 김첨은 영락제의 칙서를 받아 돌아왔다. “상주(上奏)하여 말한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을 살펴보고 청하는 것을 윤허한다. 그래서 칙유한다.”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10처 인원이 사는 요동땅이 조선 강역임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선도 철령과 공험진이라는 사실이 영락제에 의해 재차 확인되었다. 태종은 조선과 명의 국경선이 심양 남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공험진까지로 확정된 사실을 크게 기뻐하고 계품사 김첨에게 전지(田地) 15결을 하사했다. 세종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은 재위 8년(1426) 4월 근정전에서 회시(會試)에 응시하는 유생들에게 내린 책문(策問·논술형 과거)에서 “공험진 이남은 나라의 강역이니 마땅히 군민을 두어서 강역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서술하라고 명령했다. 세종 때에야 조선의 국경선이 압록강~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는 현행 국정·검인정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이라면 100% 낙방했을 것이다. ‘세종실록’ 21년(1439) 3월 6일자에 명 태조 주원장이 “공험진 이남 철령까지는 본국(조선)에 소속된다”고 했다고 기록한 것처럼 조선의 국경은 압록강 북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까지였다. 최윤덕, 김종서 등은 조선 강역 내에 일부 신도시를 세운 것이지 강역을 확장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이케우치 히로시가 조작한 고려, 조선의 북방강역을 교과서로 가르치는 나라, 역사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도 크게 부끄러워하고 분노해야 할 일이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 등 당국자들의 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 “MB 불구속 바람직” 의견에도 문무일은 ‘구속수사’ 결단

    “MB 불구속 바람직” 의견에도 문무일은 ‘구속수사’ 결단

    법무부 장관 “전직 대통령, 불구속 바람직하나 검찰이 판단하길”검찰총장 “범죄 혐의 중대하고 증거인멸 우려 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결정 과정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불구속 수사·재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으나 문무일 검찰총장이 구속수사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19일 검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의 중간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문 총장은 지난 주말 동안 자료를 검토한 후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범죄 혐의가 중대하고, 증거인멸 우려가 크므로 구속수사가 타당하다’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충분히 검토하겠다’나 ‘숙고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신중한 입장을 거듭 밝혔던 문 총장은 ‘불구속 수사 및 재판으로 충분하다’는 일각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통상 수사원칙에 따라 구속 필요성으로 결론 낸 것으로 보인다. 문 총장의 결단에는 이 전 대통령의 수뢰 혐의액만 110억원대에 달해 법원 양형기준상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는 중죄라는 점이 고려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이 전 대통령이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어 사건 관련자를 회유하거나 말을 맞출 가능성 등 증거인멸 우려가 크다는 점도 영장청구 결정에 힘을 실은 것으로 관측된다. 문 총장의 이 같은 판단을 보고받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관계자는 “법무부 장관은 전직 대통령의 범죄가 내란, 헌정질서 문란 등 소위 국사범의 경우가 아닌 이상 국격이나 대외 이미지 등을 고려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불구속 수사·재판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면서 “증거인멸 가능성, 다른 피의자와의 형평성 및 국민 법감정 등도 함께 고려해 검찰에서 최종 판단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법무부 장관은 제시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민 법감정’까지 고려 대상으로 거론한 것은 검찰총장과 주고받을 법리적 의견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반응도 일각에서 나온다. 검찰은 지난 7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국방부의 수사를 축소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도 “국민의 법감정을 무시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최종적으로 법과 원칙에 따른 결정임을 분명히 했다. 대검은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가능성을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 이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혐오를 혐오하자] “저런 것들은 맞아 죽어야 해”…뒤틀린 분노가 혐오로

    [혐오를 혐오하자] “저런 것들은 맞아 죽어야 해”…뒤틀린 분노가 혐오로

    혐오를 혐오하자 <1> 불평등이 낳은 혐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세계인권선언의 제1조 조문 중 일부다.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선포(1948년 12월 10일)한지도 햇수로만 70년이 흘렀다. 그동안 세계 각국, 적어도 유엔 회원국 중 상당수는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인류의 보편적인 기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하지만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중국동포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범죄소굴로 묘사한 영화가 개봉됐다. 지역 주민들의 인권 보호·증진을 목표로 하는 조례가 ‘성소수자 차별 금지 규정을 포함한다’는 이유로 폐지하자는 안건이 지방의회에서 가결됐다. 최근에는 성별·지위에 따른 불평등한 권력관계 안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에 힘입어 어렵게 용기를 내고 있지만, 가해자들에겐 너그럽고 피해자들에겐 가혹한 시선을 보내는 현실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인권의 현주소다.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저한테 깔깔 웃으면서 묻더라고요. ‘몰래 연애하다가 부모한테 맞아서 목발 짚게 됐지?’라고요.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연애 해봤냐’, ‘결혼은 했냐’, ‘섹스는 했냐’라고···. 처음 봤는데 그런 소리를 해요.” (청각·지체장애인 A씨) “어떤 사람이 저한테 늘 정해진 시간에 카톡으로 ‘따봉’ 이모티콘을 계속 보내더라고요. 그러다 외모 평가를 당하고 나서는 제가 ‘제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메시지를 보냈거든요. 그런데 그 쪽에서 ‘나랑 차 한 잔만 하자’고 보내더라고요. 그러다가 또 카톡이 왔어요.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내가 널 본 적이 있다. 네가 집에서 잠옷을 입은 상태로 안경을 끼고 부스스한 얼굴로 나오는 게 마음에 든다’라고.” (여성 B씨) 위 사례들은 일상에서 피해자들이 당하는 성적 언동 사례들이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수치심과 모욕감, 두려움을 주는 말과 행동은 주로 사회적 소수자를 겨냥하고 있다. 여성, 장애인뿐만 아니라 이주민, 성소수자 등 다른 소수자 집단도 표적이 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어디서 왔느냐’, ‘종교는 뭐냐’고 묻고는, ‘아내가 몇 명이냐’ 이런 말을 불쑥 던지고 ‘밤 생활은 어떠냐’고 계속 묻기도 하죠.” (이주민 C씨) “군대 신체검사장에서 ‘호르몬 투여 중’이라고 밝히면 보통 호르몬 투여 증빙 서류하고 CT 결과 그 정도만 보는데요. 신체 일부를 대놓고 보여 달라고 한 의사가 있었어요.” (트랜스젠더 D씨의 목격 사례)상대가 ‘마이너리티’에 속한다는 이유로 그를 모욕하고 멸시하거나, 배제하고 차별하면서 그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위를 ‘혐오’라고 부른다.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혐오표현’이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혐오는 단순히 개인의 기호 또는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기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공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성소수자 응답자의 92.2%가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장애인(87.5%)과 여성(78.4%)의 혐오표현 경험 정도도 높았다. 이주민 집단의 경우 63.2%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주민은 이주민 밀집 지역에 거주하거나 이주민이 많이 일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이주민 공동체 내에서 주로 인간관계를 맺는 등 한국인과의 접촉면이 넓지 않고 한국어 이해 능력에 따라 혐오표현을 경험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른 집단에 비하여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한 비율은 매우 높았다. 성소수자 응답자의 98.0%, 장애인 응답자의 95.0%, 여성 응답자의 90.4%가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이주민 응답자의 온라인 혐오표현 경험 비율은 50.0%로 다른 집단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지만, 오프라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설명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표현이 쏟아지고 있는 원인으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사회·경제적 불안’을 꼽았다. 특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경쟁이 심화되면서 혐오표현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설명이다. 홍 교수는 “불평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약자에게 표출하는 것이 혐오표현”이라면서 “강자와 기득권에 맞서 싸울 여력이 없으니 약자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즉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차별이 없어야 하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위협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혐오표현의 발화 형태는 다양하다. 성적 언동 외에도 폭력과 차별로 나타나기도 한다. “중학교 때는 ‘장애인 새끼야’라는 말을 들으면서 빗자루로도 맞아보고 대걸레로도 맞아봤어요.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에 갔는데 애들이 저만 혼자 방에 들어가라고 한 다음에 ‘너 여기서 혼자 자, 우리는 다 같이 라면 끓여먹고 잘게’하고.” (발달장애인 E씨) “식당에서 일을 할 때 저하고 한국인 아줌마 다섯 명이 근무했어요. 남자 관리자가 있는데, 월급이 나올 때 그 사람이 저한테 그래요. 통장에 월급이 들어갈 텐데 월급에서 현금 5만원을 빼서 자기한테 주라고. 저는 한국사람이 아니니까 말을 못하고 일을 잘 못하고, 이 아줌마들 너무 수고하니까 (그 돈으로) 음료수 사야 한다고. 어이가 없죠. 그래도 어떻게 해요. 저는 외국인인데.” (이주민 F씨)폭력을 암시하거나, 근거 없는 편견을 조장하는 행위도 혐오표현에 해당한다. “친구가 겪은 일인데, 퀴어퍼레이드가 열렸을 즈음인데 직장에서 동료들이 뉴스를 보고 성소수자가 화제에 오른 거예요. 그때 동료들이 ‘만약 내 옆에 ‘저런 것들’이 있으면 다 때려 죽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요.” (게이 G씨) 상대방을 단지 보호의 대상으로, 호의를 베풀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도 당사자들에게는 혐오로 다가온다. “언젠가 사진을 대놓고 찰칵하면서 찍는 사람이 있어서 왜 찍느냐고 저지하니까 ‘낫게 해주려고 한다. 기도하면 나을 수 있으니까 사진을 찍어놓고 보면서 기도해주려고 한다’고 하는 거죠.” (지체장애인 H씨)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는 ‘모럴 패닉’(moral panic)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기존에 익숙한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익숙하지 않은 소수 집단이 사회 전체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여긴다. 지난달 벌어진 EBS ‘까칠남녀’ 사태가 바로 그런 경우다. 프로그램 ‘까칠남녀’는 국내 최초 젠더 토크쇼를 표방하며 다양한 성 담론을 다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과 올 1월 두 차례에 걸쳐 성소수자 특집편을 방영한 후로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교육방송에 성소수자들이 출연하면 청소년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는 논리였다. 결국 프로그램은 논란에 휩싸여 조기 종영됐다. 최근 우리나라는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다. 이주민이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서면 통상 다문화 사회로 분류한다. 현재 국내 외국인 주민은 171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3.4%를 차지한다. 지난 10년 동안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인종이 다양해진 것일 뿐 한국 사회의 포용성이 확대된 것은 아니다.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높아지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이 GRI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7월 31일부터 8월 25일까지 성인남녀 820명을 대상으로 ‘재외동포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를 대한민국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응답이 61.1%에 이르렀다. 2013년 같은 조사 때의 응답률 57.5%보다 3.6% 높아졌다. 외국인 노동자도 대한민국 구성원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3.6%포인트 낮아진 38.9%에 그쳤다. 이는 캐나다와 대조적이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답게 ‘다양성’을 중시한다. 2016년 캐나다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 국민 5명 중 1명이 이민자로 나타났다. 그렇기에 자신과 다른 삶의 방식도 편견없이 포용한다. 지난해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캐나다군이 트위터를 통해 “모든 성적 취향과 성 정체성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다양성은 우리의 힘’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커지면 사회 구성원 사이의 대화가 실종된다”면서 “구성원들의 소통과 토론이 사라지면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씨줄날줄] 신라조각가 양지(良志)/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신라조각가 양지(良志)/서동철 논설위원

    지금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에서는 사천왕사의 녹유신장상(綠釉神將像)을 특별 전시하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나누어 보관하던 녹유신장상 파편을 모아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한 3점의 벽전(壁塼)을 만날 수 있다. 녹색 유약을 바른 듯한 신장상은 사천왕사터 동·서 목탑의 기단을 장식했던 것이다.사천왕사는 679년 문무왕이 경주 낭산 신유림에 세운 호국사찰이다. 명랑법사가 문두루비법으로 당나라 군대를 물리쳤다는 곳이기도 하다. 1915년 일본인 학자 아유카이 후사노신이 서탑 터에서 녹유신장상 파편의 일부를 수습했고 조선총독부가 1918년 발굴을 시작했다. 경주문화재연구소가 체계적인 발굴조사를 벌인 것은 2006~2012년이다.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왼손에 칼을 든 녹유신장상’의 하체와 짝을 이루는 상체 파편들을 서탑지 북편에서 수습한 것도 중요한 성과였다. 이렇게 ‘완전체’를 이룬 신장상도 이번 전시에 출품됐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천왕사 녹유신장상을 만든 사람은 양지(良志)다. ‘삼국유사’에 ‘양지가 지팡이를 부리다’는 뜻의 양지사석(良志使錫) 조에 적혀 있는 대로이다. 석굴암조차 조각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양지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삼국유사’의 내용은 이렇다. 양지가 석장에 포대를 걸어 두면 저절로 시주할 집에 날아가 목탁 소리를 냈고, 이에 사람들이 시주 곡식을 담아 주었는데 포대가 차면 석장은 다시 날아왔다. 그래서 그가 있던 절을 석장사라 했다는 것이다. 일연은 ‘양지가 영묘사 장육존상을 만들 때 입정(入定)해 정수(正受)의 태도였으니 사람들이 다투어 진흙을 날랐다’고 했다. 선정(禪定)에 들 만큼 침잠한 단계에서 작업했고, 불성(佛性)이 담긴 작품에 사람들이 감동했다는 뜻이다. 양지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두고서는 학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중국에 유학했을 가능성이 많은 신라인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서역에서 수련을 쌓은 조각가이거나 아예 서역인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가 서역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인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사천왕사터 녹유신장상은 그동안에도 경주박물관의 중요 전시품의 하나였다. 그런데 일부만 보던 그동안과는 달리 전체를 대하고 보니 매우 새롭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경주박물관은 “신라미술관의 ‘감은사터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도 함께 관람해 보라”고 권한다. 역시 양지의 작품이라는 학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니 한번 확인해 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dcsuh@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살이] 한성판윤과 서울특별시장

    [노주석의 서울살이] 한성판윤과 서울특별시장

    서울특별시장의 조선시대 관직명은 한성판윤이다. 한성부의 수장이라는 뜻이다. 한성부는 오늘의 서울특별시청이고, 한성은 서울특별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양은 한경·한도·왕도·황도·왕성·황성·도읍·도부·경조·경·경사·경도·경성·경화·수부·수선 같은 숱한 별칭 중 하나다. 1946년 미군정청이 수도의 지명을 경성에서 서울로 바꿀 때까지 이 복잡한 이름이 횡행했다. 미군정이 잘한 일 한 가지를 꼽으라면 서울이라는 도시 이름을 우리에게 준 것이다. 서울이라는 순우리말 지명은 1896년 4월 7일 창간한 독립신문 창간호 한글판에서 따왔다. 사상 처음으로 ‘조선 서울’이라는 발행 장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서울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중앙부처였다. 한성판윤 또한 정2품 경관직(京官職)으로 의정부 좌·우 참찬, 육조 판서와 함께 아홉 대신(九卿) 중 한 명이었다. 한성부의 담당 업무는 호적, 시장, 산, 도로, 하천, 차량, 순찰 등이라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다. 특이하게 도시행정뿐 아니라 전국의 호적 관리를 통해 소송을 담당하는 사법권을 행사했고, 궁궐과 도성을 지키는 치안 업무까지 맡았다. “한성판윤 되기가 영의정 되기보다 어렵다”는 옛말은 한성판윤의 집행 권한과 이해관계가 그만큼 크고 복잡했다는 얘기다. 한성판윤은 왕과 조석으로 머리를 맞대고 국사를 논의하는 측근이었다. 뉴욕·런던·파리·모스크바·베이징·도쿄시장과 달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의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수도 시장의 전통이 여기서 비롯됐다. 조선시대 서울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국가 그 자체였고 서울이 곧 국가였다. 서울은 왕의 직할통치 지역이었다. 이처럼 서울의 행과 불행은 중앙이라는 장소의 역사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오는 6월 치러지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3선을 노리는 박원순 시장과 각당 예비 후보들에 관한 기사가 연일 미디어에 오르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지방선거의 성패를 좌우하는 하이라이트이자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작 한 표를 행사할 시민의 반응은 달아오르지 않는 듯하다. 심드렁하다. 내 손으로 시장을 선출한 1995년 이후 지난 23년 동안 조순·고건·이명박·오세훈·박원순 등 5명의 민선 시장을 뽑았지만 누구를 위한 시장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일까. 또 진정한 자치의 길은 아직 멀었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을 배출한 경험이 시장직의 위상을 올렸다기보다 오히려 시장직을 대통령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기는 나쁜 풍조를 고착화시켰다. 미국의 정치평론가 그레고리 핸드슨은 한국 정치권력의 중앙집중화를 “정치권력을 향해 상승 기류를 타고 몰려드는 소용돌이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모두 중앙만 쳐다보니 서울시민을 위한 민생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장은 중앙의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울시의회와 구의회는 중앙정당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아류, 핫바지에 불과하다. 시민을 위한 시민정치와 생활행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수도 서울의 시장은 관직명만 달라졌을 뿐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를 향해 한눈팔기에 바쁘다. 세상을 변화시킨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었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의 대혁명을 세계 3대 시민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대한민국 국민이기 이전에 서울시민의 온전한 삶을 누리고 싶다.
  • “사립대 등록금 동결에 재정난…1조 4000억 이상 지원 필요”

    “사립대들이 수년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정책 때문에 재정 부담을 겪고 있습니다. 특례법을 제정해 1조 4000억원 이상을 지원해야 합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16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고등교육 재정 확대를 위한 입법 방향 세미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공동으로 개최했다. 송 교수는 “등록금 동결 정책은 국립대보다는 사립대에 불리하게 작용해 재정수입 감소로 이어졌고 개설 강의 축소, 비정년 교수 임용 확대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면서 “제로섬 구조(한 대학이 지원을 많이 받으면 다른 대학은 그만큼 지원이 축소되는 구조)의 현형 사업별 재정지원 방식으로는 사립대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정적인 고등교육 재원 확보와 사립대 지원을 위해 ‘사립고등교육기관 지원·육성을 위한 특례법’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함께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 교수는 “규제나 국가정책에 따른 사립대 재정 결손을 우선 보상해 줘야 하며 이 경우 최소 1조 4389억원이 든다”면서 “경상비를 지원하게 되면 적어도 3조 467억원이 들어 특례법상 최소한의 재정 소요는 4조 4856억원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에 대해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국내 고등교육예산이 국내총생산(GDP)의 0.7~0.8%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아 지원이 확대돼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비리 등으로 사학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서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우선되거나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4년제 사립대의 평균 등록금은 2000년 중후반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다 2010년 정점(752만 5000원)을 찍은 뒤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739만 9000원으로 떨어졌으며 올해도 사립대 153곳 중 145곳이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수능, 수시·정시 전 두 번 나눠 봐야”

    수험생이 자신의 성적을 모른 채 대학 입학 정시나 수시 전형에 ‘깜깜이’ 지원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두 번으로 나눠 봐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규민 연세대 교수는 16일 한국교육평가학회 주최로 서울교대에서 열린 ‘2022학년도 수능 개편 방안과 쟁점’ 세미나에서 “‘수능Ⅰ’과 ‘수능Ⅱ’로 시험을 두 차례로 나누는 분리형 수능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교육부 수능개선위원회 수능개편정책 연구책임자였다. 분리형 수능 방안에 따르면 수능Ⅰ 때는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통합사회·통합과학 등 공통과목의 시험을 치르고 수능Ⅱ 때는 탐구영역과 제2외국어·한문영역, 다양한 선택과목 등을 본다. 수능Ⅰ은 수시전형 시작 전에 시험과 성적발표를 마치고, 수능Ⅱ는 수시 결과 발표 후 시험을 봐서 정시 전형 시작 전에 성적을 발표한다.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아는 상태에서 대학에 지원해 혼란이 줄고 수시에 합격하면 수능Ⅱ를 볼 필요가 없어 부담도 감소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이 교수는 또 수능 전과목에서 절대평가를 도입하게 되면 현행 정시모집 전형은 계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또 절대평가로 인한 변별력 문제는 일부 상위권 대학에 국한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중상위권 대학에서 더 심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현재 (대학 선발정원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수능 중심의 정시모집 전형을 일정 부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이명박 소환 두고 노무현 걸고넘어진 자유한국당

    이명박 소환 두고 노무현 걸고넘어진 자유한국당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된 가운데 두 대통령을 배출한 자유한국당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각시키려 애쓰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전직 대통령 한 분이 또 (검찰) 포토라인에 섭니다”라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전·노(전두환·노태우)처럼 국사범도 아니고, 박(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국정농단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노(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개인비리 혐의로 포토라인에 섭니다”라고 했다. 홍준표 대표는 “죄를 지었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라면서도 “그러나 복수의 일념으로 전전 대통령의 오래된 개인 비리 혐의를 집요하게 들춰내어 꼭 포토라인에 세워야만 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MB처럼 부메랑이 될 겁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검찰 소환을 언급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불과 1년 새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됐지만,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버랩된다”면서 “정치 보복이라 말하진 않겠지만,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으로부터 잉태된 측면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모두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불행임이 틀림없지만, 한풀이 정치, 회한의 정치가 또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10년 전 노무현 정권의 경제 실패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와중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 경제적 효율성이 강조되는 대신 사회의 민주적 합리성이 저하된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면서 “이어 권력이 사유화하면서 최고 정점에 달한 사건이 최순실의 국정 농담으로 이제 종착역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사회·국가 시스템을 바로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넘어서는 개헌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천 남구→미추홀구 ‘주민이 바꿨다’

    7월 1일부터 인천 남구(南區)의 명칭이 미추홀구(彌鄒忽區)로 바뀐다. 행정안전부는 ‘인천광역시 남구 명칭 변경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13일 국무회의를 거쳐 20일 공포된다고 밝혔다. 남구라는 이름은 1968년 처음 구획될 때 행정편의상 인천 지역 남쪽이라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지역 이미지 등 고유한 의미가 자치구 명칭에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미추홀구로 재탄생하게 됐다. 이번 개명은 주민 여론조사와 명칭 공모, 선호도 조사 등 지역 주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라고 행안부는 설명했다. 미추홀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인천 최초 지명으로 ‘물의 고을’이란 뜻이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전국 지리서인 ‘여지도서’에는 미추홀의 발상지가 남구 문학산 일대로 돼 있다. 지난 30년간 지방자치단체가 이름을 바꾼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1986년 전남 금성시가 나주시로 이름을 바꿨고 1989년에는 강원 원성군이 원주군으로, 경북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각각 바꿨다. 1991년에는 충북 제원군이 제천군으로, 충남 천원군이 천안군, 경남 울주군이 울산군, 경남 의창군이 창원군으로 각각 개명했다. 하지만 인천 남구 사례처럼 ‘동서남북’의 방위식 지명이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방위가 명칭에 들어간 자치구는 전국적으로 26개다. ‘중구’와 ‘동구’가 각각 6개, ‘서구’와 ‘남구’가 각각 5개, ‘북구’는 4개다. 윤종인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다른 자치단체에서도 지역 주민 등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명칭 변경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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