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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한-칠레·페루 정상회담, 가까워진 남미

    세종시, 4대강 논란과 서해교전에 묻혀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으나 이번 주에 중요한 외교 행사가 잇따라 개최되었다. 미첼 바첼레트 헤리아 칠레 대통령과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이 연이어 국빈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또 한·중남미 고위급포럼과 녹색성장 비즈니스포럼이 서울에서 열렸다. 고위급포럼과 비즈니스포럼에는 중남미 각국의 경제·환경 장관과 기업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 연쇄행사를 통해 조성된 한·중남미 사이의 우호 분위기를 잘 살려나가야 한다. 중남미가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나날이 커가고 있다. 지구 반대편이라는 지리적 거리는 이제 장벽이 되지 못한다. 중남미는 풍부한 자원과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아프리카 지역보다 국내총생산(GDP) 합계가 4배 이상 높다. 그만큼 유망한 시장인 셈이다. 최근 5년 동안 한국과의 무역·투자가 3배 이상 늘었고, 지난해 우리가 195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지역이다. 한·칠레, 한·페루 정상회담에서도 경제협력 확대방안이 집중 논의되었다. 칠레는 우리가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로, 그 효과가 톡톡히 나타나고 있다. 5년 만에 교역규모가 4배나 늘어났다. 한·페루 정상들 역시 양국 간 FTA체결 논의를 조기에 마무리짓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에 반한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은 방한일정을 하루 늘리는 파격까지 보였다. 정부는 한·칠레, 한·페루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남미를 향한 보폭을 더욱 넓혀야 한다. 무역·투자 확대, 자원·에너지 협력, 건설·인프라 투자 등을 뛰어넘어 녹색성장 경험을 전수하고 공유하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개별국가와의 유대 강화에 주력하는 동시에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등 현지 지역기구와의 협력수준도 한층 올리길 바란다.
  • “한·칠레 FTA 윈윈효과”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국빈 방한 중인 미첼 바첼레트 헤리아 칠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지난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두 나라의 교역액이 4배나 증가하는 등 상호 윈-윈의 결과를 거뒀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앞으로도 경제협력을 긴밀히 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하다.”며 “한국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21세기 경제성장 전략으로 추진하는 만큼 극지 특히 남극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양국이 지난 1962년 수교 이래 여러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해온 데 대해 만족을 표시하고 에너지·자원, 인프라 등에서 우리기업들의 칠레 진출이 확대될 수 있도록 바첼레트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바첼레트 대통령은 “한국이 전 세계 경제흐름을 주도하는 나라 중 하나로 내년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것을 축하한다.”며 “이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G20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칠레·페루 대통령 10·11일 국빈 방한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과 알란 가르시아 페레스 페루 대통령이 각각 오는 10일과 11일 국빈 방한한다.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도 다음달 6~7일 국빈 방한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하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특별동반자관계의 심화·발전, 통상, 에너지·자원분야 협력 등 상호관심분야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또 내년 6월(캐나다) 및 11월(한국)로 예정된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력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韓·아세안 북핵·기후변화 공조

    韓·아세안 북핵·기후변화 공조

    │방콕·후아힌 이종락특파원│동남아를 국빈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23일 훈센 캄보디아 총리 내외와 함께 세계적 문화유적지인 앙코르와트 사원을 시찰했다. 이 대통령 내외는 이날 오전 캄보디아 정부에서 제공한 특별전세기편으로 프놈펜을 출발, 약 300㎞ 떨어진 시엠리아프의 앙코르와트 사원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과 훈센 총리는 오찬을 함께하면서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우리 정부의 시엠리아프 우회도로 확장 지원 등을 주제로 환담했다. 훈센 총리는 한국 정부가 우회도로 건설 등을 통해 앙코르와트 유적 보존에 기여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미래 세대를 위해 인류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 보존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당초 앙코르와트 방문 계획이 없었으나 훈센 총리의 시찰 권유를 받아들여 앙코르와트를 방문하기로 했다. 훈센 총리는 이 대통령의 앙코르와트 방문이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캄보디아 관광객 숫자에서 1위를 차지한 한국인들에게 미칠 홍보 효과를 고려, 시찰을 간곡히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태국 후아힌으로 옮겨 24∼25일 열리는 한·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와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석한다. 이 대통령은 회의에서 지난 6월에 천명한 ‘신(新) 아시아외교’ 구상을 설명하고 북핵 문제 공조와 기후변화 및 녹색성장 협력 방안 등에 대해 협의한다. 내년 11월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유치로 세계 강국들 사이에서의 활동 공간을 확보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국제사회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한 아세안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역내(域內) 중심국 지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아세안+3’는 전 세계 인구의 52%, 세계 총생산(GDP)의 5분의1(10조 7000억달러)을 차지하고 있다. 청와대 김은혜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내년 G20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이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과의 협력 체계를 더욱 긴밀하게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韓, 캄보디아서 20만㏊ 조림사업

    韓, 캄보디아서 20만㏊ 조림사업

    │프놈펜 이종락특파원│캄보디아를 국빈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외교부 청사에서 훈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조림협력, 광물자원 공동연구, 상공회의소 간 협력, 방송콘텐츠 공동제작 등과 관련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양 정상은 양국 산림청 간 조림협력 MOU를 체결, 캄보디아가 제공하는 20만㏊(제주도의 1.1배)에 대규모 조림사업을 펼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인도네시아를 방문, 이미 70만㏊의 조림지를 확보했다. 두 정상은 또 한국지질연구원과 캄보디아 광물자원청 간의 MOU 체결과 캄보디아 유망 광산지역 지질조사 등 공동으로 자원을 개발키로 했다. ●MB “경제정책 포괄적 컨설팅” 이 대통령은 시엠리아프 우회도로 포장사업 등에 대한 총 1605만달러의 무상지원과 대외경제 협력기금(EDCF) 기본약정 개정을 통한 다목적댐 건설 등에 올해부터 오는 2012년까지 최대 2억달러를 유상지원키로 했다. 양 정상은 ▲한국인 체류 상용비자기간을 기존의 한 달에서 1년으로 연장 ▲범죄인 인도협정 체결에 따른 양국협력의 사법분야 확대 ▲저탄소 녹색성장 협력 기반 확대 등에도 합의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이 캄보디아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며 캄보디아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포괄적 컨설팅을 해 주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훈센 총리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적극적 지지입장을 표시하며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맺자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교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길만 열리면 다 나와서 활동한다.”며 재외동포들의 저력을 평가했다. 이어 “한국의 위상이 매우 높아져 그에 따른 의무도 중요하다.”면서 “국제사회에서 도와야 하고 국제적 문제에 관심도 많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통령 “한국사람 정말 대단” 앞서 이 대통령은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훈센 총리가 주최한 ‘한·캄보디아 경제인 오찬’에 참석해 훈센 총리의 농업, 산림, 지식서비스, 인프라 구축 등 ‘사각 전략’에서 착안한 양국 간 미래협력 방안으로 ‘4각 협력’을 제의했다. 훈센 총리는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지원으로 투자를 위한 재원조달이 가능해지는 등 많은 이익을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캄보디아에 도착한 직후 왕궁 앞에서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과 약 30분간 환담했다. 이 대통령은 왕위 즉위 5주년을 축하하면서 “양국 간 경제·개발 협력은 물론 민간차원의 인적·문화적 교류도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시하모니 국왕도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jrlee@seoul.co.kr
  • 李대통령 “경제 힘들수록 투자 더 많이 해야”

    │하노이 이종락특파원│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응우옌 민 찌엣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홍강 개발사업이 하노이와 서울 두 수도간의 상징적인 협력사업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홍강 개발 한국기업 도움 요청 베트남 기업인들도 홍강 개발사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뿌 띠엔 록 베트남 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날 한·베트남 최고경영자(CEO) 오찬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형제들이 앞으로 홍강의 기적에도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홍강 개발사업은 10년간 70억달러가 투자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40㎞ 구간에 하천정비, 강변공원 조성, 도로건설 등이 진행되며 지난해 1월 한국기업 16개사가 사업개발추진단을 발족시켰다. ●“기업인 존중받는 사회가 발전” 이 대통령은 하노이 내셔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베트남 CEO포럼’에 참석, 격려사를 통해 “늘 나라 사랑하는 애국자는 기업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기업인이 존중받는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시장경제의 바탕”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어려울 때일수록 도전정신을 갖고 더 많은 투자와 통상을 해야 한다.”면서 “지금이야말로 기업이 과감하게 투자하고 통상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성장 파트너십 구축 필요” 이 대통령은 “원자력 에너지 이용과 신재생 에너지 개발, 에너지 절약형 산업구조 전환, 홍강 프로젝트 등 녹색성장 분야의 협력을 통해 양국이 상호 경제적인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며 양국 기업이 녹색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포럼에는 한·베트남 경협위원장인 김재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등 주요 경제단체장과 베트남 기업인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하노이 시내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베트남에 사는 분들에게 한국 사람들이 참 배울 게 많다.”며 “(베트남 사람들은) 대단히 포용력 있고 아주 실용적인 사고를 가진 분들이다. 존경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응우옌 떤 중 총리와의 면담에서 “오늘 한국과 베트남 CEO 오찬 때 보니 누가 한국 사람이고 누가 베트남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더라. 그만큼 양국 국민들은 핏줄로도 가까운 사이”라며 “베트남인들도 한국 사람들처럼 어릴 때 몽고점을 갖고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일기도 했다. jrlee@seoul.co.kr
  • 한·베트남 전략적 동반자관계 격상

    한·베트남 전략적 동반자관계 격상

    │하노이 이종락특파원│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응우옌 민 찌엣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이날 하노이의 주석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지난 2001년 구축한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이같이 격상하기로 하고 ‘한·베트남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베트남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은 국가는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에 이어 한국이 5번째다. 양 정상은 외교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하고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연례 차관급 전략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으며 양국간 군사교류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또 양국간 경제·통상협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 100억달러 수준인 양국 무역규모를 오는 2015년까지 200억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의 추진 가능성과 실효성을 논의하기 위한 공동 작업반 설치 문제에 대해서도 연내 의견 교환을 개시하기로 했다. 양 정상은 베트남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는 총 70억달러 규모의 홍강 개발사업과 총 90억달러 규모의 호찌민∼냐짱 고속철도 복선화 사업에 한국기업의 참여를 보장하기로 명문화했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베트남의 시장경제체제 발전을 위한 노력에 따라 베트남의 ‘시장경제지위(MES)’를 인정했으며 응우옌 주석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했다. 시장경제지위가 인정되면 ‘반덤핑 관세’와 같은 상대국의 무역보복조치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된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 두 정상은 평화적 해결을 통한 비핵화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안정을 유지하는 데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은 브리핑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정치, 경제, 인적, 문화 교류까지 포함해 전면적인 협력 동반자 관계로 가겠다는 의미”라면서 “양국간에 잠깐 논란이 있었던 과거사 문제는 이미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대통령 방문 직전 정리를 다 했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특별히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모닝 브리핑] 李대통령 한·아세안 정상회의- 동남아 순방 출국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20일 동남아 순방을 위해 출국한다. 이 대통령은 베트남(20~22일)과 캄보디아(22~23일)를 국빈 방문한 뒤 24일부터 25일까지 태국 후아힌에서 열리는 한·아세안(ASEAN)+3 정상회의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도 참석한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대기업 총수들 베트남… 베트남으로

    ‘베트남, 베트남으로!’ 다음 주엔 주요 대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의 베트남 방문이 ‘러시’를 이룬다. 오는 20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수행하는 자리지만, CEO들은 자사의 베트남 사업장도 함께 둘러본다. 그룹 총수 중에는 SK 최태원 회장, GS 허창수 회장, 두산그룹 박용현 회장, 금호아시아나 그룹 박찬법 회장 등이 이 대통령을 수행한다. 삼성전자는 이윤우 부회장이 오는 20일 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법인을 둘러본다. 1995년 베트남 법인을 설립한 삼성전자는 최근 휴대전화와 TV를 앞세워 베트남에서 ‘디지털한류’를 선도하고 있다. 호찌민시에 생산공장을 둔 삼성TV는 시장점유율이 40%에 육박하며, 20%대의 점유율에 그치고 있는 2위 소니를 크게 앞서고 있다. 하노이 인근 박린성에 있는 삼성 휴대전화 공장은 올초부터 시범생산에 들어가 지난 7월부터는 월 생산량 100만대를 돌파하며 양산체제에 돌입했다. 삼성휴대전화는 지난 8월 기준 14.5%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 노키아(62.9%)에 크게 뒤지고 있지만, 최근엔 격차를 빠른 속도로 줄여나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베트남 사업현황 등에 대한 보고를 현지 법인으로부터 받게 된다. SK는 SK에너지가 베트남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이동통신 합작법인인 ‘에스폰’도 진출해 있다. 최태원 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현지 지사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한다. 현대차는 부인상을 당한 지 얼마되지 않은 정몽구 회장 대신 글로벌 판매 담당인 양승석 사장이 베트남 시장을 둘러본다. 현대차는 지난해 베트남 시장에서 1만 539대의 차를 팔며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해마다 두 자릿수가 넘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포스코는 16일 이례적으로 호찌민시에서 이사회를 가졌다. 정준양 회장 등 이사회 멤버들이 베트남 투자 사업 현장을 둘러보고 추가적인 투자 여건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베트남은 포스코가 구상 중인 ‘아시아 철강 생산벨트’ 구축 작업의 주요 축이다. 포스코는 베트남에서 일관제철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19일에는 베트남에 연간 생산 120만t 규모의 냉연공장을 준공, 동남아시아 고급재 시장을 겨냥한 안정적 생산 라인을 갖출 계획이다.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베트남 진출을 꾀해 왔고, 향후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는 국내 기업 중 베트남 진출이 가장 활발하다. 금호건설, 대우건설,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금호렌터카 등 7개 계열사가 베트남에 나가 있다. 박 회장을 비롯해 계열사 사장단이 동행하고 베트남 진출기업의 성공사례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구체적인 사업성과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자주 얼굴을 알리면서 베트남 내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도 CEO의 베트남 방문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이영표 윤설영기자 sskim@seoul.co.kr
  • 왜? 경호용 오토바이 95%가 외제

    경찰이 경호·의전용 오토바이의 95% 이상을 외국산을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산과 비교했을 때 가격 대비 성능에 큰 차이가 없는데도 외국산을 선호하는 데 대해 혈세를 낭비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경찰측은 경호와 의전에서 오토바이의 성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최고 성능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12일 경찰청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은 “2005∼2008년 경찰청이 구매한 경호·의전용 오토바이 224대 중 95.5%(214대)가 고가의 외국제품”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경찰은 이 기간 고가의 수입 오토바이인 할리 데이비슨 제품 151대, BMW 제품 63대를 사들였지만 국산인 효성 ‘미라주’는 10대만 구매했다. 한대당 가격은 할리 데이비슨이 2250만원, BMW는 2080만원이지만 효성 미라주는 770만원으로 외국산이 국산의 3배 정도 더 비싼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4년간 구입한 오토바이 비용 47억 8500여만원 가운데 할리 데이비슨과 BMW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데 지출한 돈은 전체 비용의 98.4%인 47억 800여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외국산 오토바이를 주로 구매한 이유에 대해 “국산에 비해 안전성이 높고 잔 고장이 없기 때문” 이라고 답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오토바이의 성능이 경호와 의전의 70~8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최고 성능의 오토바이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가격이 비싼 만큼 국빈급 경호와 의전 행사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할리 데이비슨과 BMW 오토바이의 최고속도는 각각 시속 200㎞, 220㎞로 시속 180㎞인 국산 오토바이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연비의 경우 “할리 데이비슨과 BMW 제품은 각각 리터당 17㎞, 27.7㎞이지만 효성 미라주는 리터당 20∼22㎞로 오히려 할리 데이비슨 제품보다 연비가 높다.”면서 “경찰이 외국 제품만 선호해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DJ 국회로… 조문 24시간 개방

    DJ 국회로… 조문 24시간 개방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영결식을 사흘 앞둔 20일 국회에 마련됐다. 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입관된 뒤 여의도 국회로 옮겨졌다. 입관식은 병원 1층 안치실에서 유가족과 동교동계 인사 등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은 운구 직후 국회의사당 정문 10m 앞의 천막 안에 설치된 냉장용 유리관에 안치됐다. 유리관은 길이 2.2m, 높이 1.35m, 폭 1.1m 크기로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 온도가 섭씨 2도로 유지되며 습기도 조절된다. 이 유리관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때 사용된 것과 같은 제품이다. 국회 본청 앞에 마련된 빈소에는 유가족이 먼저 분향했고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원내교섭단체 대표 등이 뒤를 이었다. 일반 시민들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참배객들은 사상 처음 국장이 치러진 국회에서 1961년 5대 민의원에 당선된 뒤 6, 7, 8, 13, 14대 의원을 지내며 철저한 의회주의자로 살았던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북측은 이날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포함된 6명의 조문단 명단을 남측에 통보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김대중 평화센터’로부터 북한이 보내온 조문단 명단과 비행운항 계획서를 제출받았다.”면서 “유가족의 뜻을 존중하고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북한 조문단의 방문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고인의 국장을 주관하는 장의위원회를 2371명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 규모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때는 1383명이었다. 장의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단독으로 맡았다. 김 전 대통령측 최경환 비서관은 이날 “총리가 국장의 장의위원장을 맡는다는 현행 법률 규정과 기존 국장 관례를 따랐다.”고 설명했다. 부위원장은 국회 부의장 2명, 선임 대법관, 수석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전남도지사 등 6명이다. 장의위원회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전·현직 3부 요인 및 헌법재판소장, 주요 정당대표, 광복회장, 종교계 대표, 친지 대표, 유가족 추천 인사 등 68명으로 이뤄졌다. 고인은 이날 국회 본청 현관 앞에 마련된 임시 건물에 안치됐다. 분향소는 그 앞에 설치됐다. 이희호 여사와 국무총리, 국무위원, 외국 국빈 등을 위해 본청 내 국회의장 접견실 등에 별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오는 23일 영결식은 국회 본청으로 오르는 계단 하단부에 별도의 단을 조성해 치르기로 했다. 공식 분향소는 24시간 개방된다.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 평온한 모습의 고인 ‘햇볕’속 운구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영결식을 사흘 앞둔 20일 국회에 마련됐다. 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신촌병원에서 입관된 뒤 여의도 국회로 옮겨졌다. 입관식은 병원 1층 안치실에서 유가족과 동교동계 인사 등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운구 직후 유가족들이 국회 본청 앞에 마련된 빈소에서 먼저 분향했으며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원내교섭단체 대표 등이 뒤를 이었다. 일반 시민들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참배객들은 사상 처음 국장이 치러진 국회에서 1961년 5대 민의원에 당선된 뒤 6, 7, 8, 13, 14대 의원을 지내며 철저한 의회주의자로 살았던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북측은 이날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포함된 6명의 조문단 명단을 남측에 통보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김대중 평화센터’로부터 북한이 보내온 조문단 명단과 비행운항 계획서를 제출받았다.”면서 “유가족의 뜻을 존중하고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북한 조문단의 방문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고인의 국장을 주관하는 장의위원회를 2371명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 규모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때는 1383명이었다. 장의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맡았다. 부위원장은 국회 부의장 2명, 선임 대법관, 수석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전남도지사 등 6명이다. 장의위원회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전·현직 3부 요인 및 헌법재판소장, 주요 정당대표, 광복회장, 종교계 대표, 친지 대표, 유가족 추천 인사 등 68명으로 이뤄졌다. 장의위원에는 국회의원과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행정부 장·차관, 각종 위원회 위원장, 3군 참모총장 등 군 대표, 시·도지사, 국·공립 및 사립대 총장, 경제·언론·방송·종교계 등 각계 대표, 유족 추천인사 등 2290명이 포함됐다. 고인은 이날 국회 본청 현관 앞에 마련된 임시 건물에 안치됐다. 분향소는 그 앞에 설치됐다. 이희호 여사와 국무총리, 국무위원, 외국 국빈 등을 위해 본청 내 국회의장 접견실 등에 별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본청 옆 국회 도서관에는 밤새 조문객을 받아야 하는 상주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대기실이 설치됐다. 오는 23일 영결식은 국회 본청으로 오르는 계단 하단부에 별도의 단을 조성해 치르기로 했다. 공식 분향소는 24시간 개방된다. 국회는 일반 조문객의 편의를 위해 여의도역과 대방역에서 국회를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국회 입장 때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국회 정문 앞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려 바로 국회로 들어가도 된다. 글=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영상=영상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모든 시름 내려놓은 듯 편안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영결식을 사흘 앞둔 20일 국회에 마련됐다. 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 신촌병원에서 입관된뒤 여의도 국회로 옮겨졌다. 입관식은 병원 1층 안치실에서 유가족과 동교동계 인사 등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운구 직후 유가족들이 국회 본청 앞에 마련된 빈소에서 먼저 분향했으며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원내교섭단체 대표 등이 뒤를 이었다. 일반 시민들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참배객들은 1961년 5대 민의원에 당선된 뒤 6, 7, 8, 13, 14대 의원을 지내며 철저한 의회주의자로 살았던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북측은 이날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포함된 6명의 조문단 명단을 남측에 통보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정부는 ‘김대중 평화센터’로부터 북한이 보내온 조문단 명단과 비행운항 계획서를 제출받았다.”면서 “유가족의 뜻을 존중하고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북한 조문단의 방문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북측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21일 오후 특별기편으로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한한 뒤 다음날 오후 귀환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날 고인의 국장을 주관하는 장의위원회를 2371명으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 규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때는 1383명이었다. 장의위원장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맡았다. 부위원장은 국회 부의장 2명, 선임 대법관, 수석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전남도지사 등 6명이다. 장의위원회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전·현직 3부 요인 및 헌법재판소장, 주요 정당대표, 광복회장, 종교계 대표, 친지 대표, 유가족 추천 인사 등 68명으로 이뤄졌다. 장의위원에는 국회의원과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행정부 장·차관, 각종 위원회 위원장, 3군 참모총장 등 군 대표, 시·도지사, 국·공립 및 사립대 총장, 경제·언론·방송·종교계 등 각계 대표, 유족 추천인사 등 2290명이 포함됐다. 고인은 국회 본청 현관 앞에 마련된 임시 건물에 안치됐다. 분향소는 그 앞에 설치됐다. 이희호 여사와 국무총리, 국무위원, 외국 국빈 등을 위해 본청 내 국회의장 접견실 등에 별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본청 옆 국회 도서관에는 밤새 조문객을 받아야 하는 상주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대기실이 설치됐다. 오는 23일 영결식은 국회 본청으로 오르는 계단 하단부에 별도의 단을 조성해 치르기로 했다. 공식 분향소는 24시간 개방되며 일반 조문객의 편의를 위해 국회 입장 때 신분증 검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글 / 서울신문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美여기자 석방] ‘클린턴 1박2일’ 깔끔한 진행

    [美여기자 석방] ‘클린턴 1박2일’ 깔끔한 진행

    클린턴의 ‘1박2일’은 숨가빴다. 전격적인 방북부터 여기자 석방, 고국 송환까지 시나리오를 짠 듯 치밀하고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다. 22시간가량의 방북 일정 중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 1시간15분, 만찬 2시간, 모두 3시간15분을 보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민간 항공기를 타고 직항으로 평양 순안공항에 발을 디딘 건 4일 오전 10시48분. 도착 1시간 전에야 방북 소식이 언론에 타전될 정도로 극비리에 이뤄졌다. 트랩에서 내려온 클린턴은 영접 나온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인사를 나누며 짧은 환영식을 가졌다. 이후 북측이 제공한 리무진을 타고 외국 국빈들이 이용하는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면한 건 이날 오후. 클린턴은 김 위원장과 유나 리, 로라 링 두 여기자의 석방문제를 논의하고 기념촬영을 가졌다. 저녁에는 북한 국방위원회가 주최한 VIP 만찬을 대접받았다. 회동 중에는 때로 긴장감이 흘렀지만 양측은 결국 원하는 것을 거머쥐었다. 김 위원장은 이들에 대해 특별사면을 실시, 석방을 전격 지시했다. 클린턴은 이날 두 여기자와도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ABC는 이 순간이 “매우 감동적이었다.”며 정부소식통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클린턴은 지체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8시30분 바로 두 기자를 데리고 전세기에 탑승,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이들을 태운 비행기는 미국 서부 현지시간으로 5일 새벽 6시30분쯤 고국에 내려앉았다. ‘1박2일’의 여정 동안 북한이 시시각각 홍보전을 폈던 것과 달리 미국 정부는 김 위원장의 사면 조치가 떨어질 때까지 일체의 반응을 삼가며 신중함을 지켰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카자흐인에 주몽 후예의 혼을 심다

    카자흐인에 주몽 후예의 혼을 심다

    │아스타나(카자흐스탄) 이순녀특파원│ “어, 주몽이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의 대통령문화회관 박물관 5층 전시장. 고구려 고분벽화 전시회를 둘러보던 10대 여학생 2명이 행사장 한쪽에 걸린 한국 드라마 ‘주몽’의 포스터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 4월 현지에서 종영된 ‘주몽’을 재밌게 봤다는 하쿠(15)와 알마(15)는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고구려 역사를 좀더 알고 싶어서 전시장을 찾았다며 반가워했다. 이들은 동방신기, 비, 슈퍼주니어 등 한국 아이돌 스타의 이름을 줄줄 외우며 한국말로 간단한 인사까지 건넸다. ●드라마 ‘주몽’ 포스터 보고 환호 역사를 전공했다는 20대 청년 피르다우시(23)는 “드라마 ‘장보고’와 ‘해신’을 통해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전시된 고구려 고분벽화의 그림에 등장하는 기마문화와 씨름 장면 등에서 카자흐 전통 문화와의 유사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5세기 동북아시아 4강의 일원으로 실크로드 초원의 길을 따라 중앙아시아와 교류한 고구려의 찬란한 문화가 1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실물에 가깝게 복원한 덕흥리벽화분, 강서대묘 벽화 그림을 중심으로 고구려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동아시아 고대 문화의 빛, 고구려’전이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지난 22일 성황리에 개막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하고, 서울신문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고구려 고분벽화 몽골-튀르크벨트’ 순회 전시회의 하나로 마련됐다. ‘몽골-튀르크벨트’는 몽골에서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에 이르는 고대 유라시아 동서 문물교류의 통로이며, 고구려 고분벽화는 동북아시아에서 고구려가 주도한 문명교류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유적이다. 순회 전시회는 지난달 몽골에서 시작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9월)에 이어 내년에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터키에서 종지부를 찍을 예정이다. ●몽골-튀르크벨트 문화교류 흔적 남아 전시 기획을 담당한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몽골-튀르크벨트는 고구려 북방동맹의 통로이자 문화교류의 가교로 동서세력 연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잊혀졌던 역사속 문화교류의 통로를 새롭게 연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회의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고구려 역사지도, 성(城), 고분, 무기,토기, 와당 등의 사진과 동북아역사재단이 지난 2년간 디지털로 복원한 북한 남포시 소재 덕흥리벽화분, 강서대묘 벽화 그림 등 40여점이 소개됐다. ●“암각화와 벽화그림 유사” 지난 5월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과 한류 드라마의 영향으로 부쩍 높아진 한국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현지 관계자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대통령문화회관 박물관 큐레이터인 바흣 발타바예바는 “고구려 벽화의 문양이 카자흐스탄의 암각화에 그려진 산양 뿔 무늬와 비슷하고, 고분 석실의 고깔 형태도 카자흐스탄 전통 집 모양인 유르타와 닮아 문화적 유대감을 느꼈다.”면서 “고구려 문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일반 시민은 물론 역사학자와 언어학자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카립자노바 로자 문화부 부위원장도 “양국간 문화교류가 더욱 활기를 띠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10만명이 넘는다.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한 한인 후손 2~4세대로 최유리 상원의원을 비롯해 정·관계 고위직, 학계,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로만 고려인협회장은 “카자흐스탄은 고향이지만 내 피는 한인”이라며 “우리 선조인 고구려인의 문화유적을 이곳에서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감회를 밝혔다. 김용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암각화와 고분 벽화속 개마무사 사이에 유사성이 확인되고, 카자흐스탄 언어와 한국 고대 언어 사이에도 연결성이 발견되는 등 고구려와 중앙아시아 유목국가는 상당히 긴밀한 문화교류를 해왔음을 알 수 있다.”면서 “이번 전시가 한국과 카자흐간 오랜 교류의 기원을 찾고, 앞으로 교류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전시회는 새달 20일까지 계속된다. 글 사진 coral@seoul.co.kr
  • [정책진단] 근로능력 유무 공무원이 판단… 빈곤층만 病앓이

    [정책진단] 근로능력 유무 공무원이 판단… 빈곤층만 病앓이

    #사례 1 최모(57)씨는 얼마 전 디스크가 심해져 입원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병원에 가지 못했다. 의료급여 2종 환자에게 매겨진 ‘본인부담금’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의료급여 1종이어서 입원을 해도 진료비를 내지 않았지만 올해 2종으로 전환되면서 혜택이 사라졌다. 최씨는 마땅한 직업이 없어 수입도 거의 없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매번 장애 판정을 받아오라며 1종 인증을 거부했다. #사례 2 의료급여 수급자인 김모(65)씨는 지난해 의료기관 272곳을 돌아다녔다. 불치병에 걸린 것도,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의 한방 병·의원 141곳, 일반 병·의원 131곳을 다녔다. 한달에 각기 다른 병원을 35곳이나 다니기도 했다.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일수와 약국에서 처방·조제 받은 일수를 합치면 모두 1446일. 하루에 평균 4곳의 병의원과 약국을 방문한 셈이다. 이 두가지 사례는 의료급여 제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의료급여 판정은 수급권자들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되고 있다. 반면 제도를 악용해 ‘의료쇼핑’을 즐기는 부정 수급권자도 부지기수다. 주무기관인 보건복지가족부는 최근 불필요하게 의료기관을 많이 찾는 의료급여 수급자와 이를 방치하는 의료급여기관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재정악화를 이유로 건강보험 의료쇼핑을 즐기는 의료급여 환자를 규제해 보장성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의료급여 제도를 들여다 보고 대안을 제시해 본다. ●의사의 근로능력 판단은 위법 1종과 2종을 구분하는 ‘근로능력유무’는 의료급여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다. 의료급여 1종과 2종은 근로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한다. 문제는 근로능력 유무를 판단할 기준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3개월 이상의 치료나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면 1종 수급권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관련 기준이 변경돼 ‘근로 능력 없음’이 적시된 의사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료법상 의사가 근로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 대한의사협회가 규정 변경의 모순을 지적하자 입장이 궁색해진 복지부는 또다시 ‘담당 공무원’이 진단서를 기초로 근로능력 유무를 판단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초기에는 1개월 이상의 의사진단서가 발급된 환자를 근로무능력자로 인정해 주었는데, 기준을 점점 더 까다롭게 규정함으로써 가난한 환자 생존권의 침해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측은 “현재는 담당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지만 올해 안에 세부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지자체 관리감독 강화 절실 건강보험 가입자들은 ‘의료급여 환자는 공짜로 병원을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료급여 환자도 일정액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의료급여 1종은 500~2000원, 2종의 경우 많게는 의료급여 전체비용의 15%까지 부담해야 한다. 돈을 조금이라도 내면 의료쇼핑이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 하에 정부가 만든 제도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료쇼핑이 줄지 않고 있다. 최근 복지부가 적발한 사례에 따르면 향정신성 의약품을 1만 4700정씩 받아 챙긴 환자가 있는가 하면 병원을 매년 200~300회씩 순회하듯 다니는 환자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3개 이상의 병·의원에서 동일 성분의 중복투약 일수가 30일이 넘는 사람만 2만 6000명에 이른다. 앞으로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특히 지역 병·의원과 환자의 사후관리를 맡는 지방자치단체의 관리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료급여 행태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과 분석을 위한 인력 및 조직 확충도 절실하다. 다만 의료급여의 본질이 ‘취약계층 보호’에 있는 만큼 그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한양대 의대 신영전 교수는 “현재 의료급여 정책은 비용을 줄이는데만 혈안이 돼 있다.”면서 “과도한 감시로 실제 현장에서 많은 수급권자들이 상당히 위축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이용 행태를 철저히 분석해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우크라이나 총리 SK텔레콤 방문

    우크라이나 총리 SK텔레콤 방문

    율리야 티모셴코(왼쪽) 우크라이나 총리가 16일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를 방문해 정만원(오른쪽) 사장과 환담하고 최첨단 IC체험관 T.um(티움)을 관람했다. 티모셴코 총리 등 우크라이나 고위 공무원 20명은 정 사장으로부터 SK텔레콤의 선진 ICT 서비스 현황을 소개받은 뒤 유비쿼터스 홈서비스, 텔레매틱스, U-쇼핑 등 첨단 미래기술을 체험했다. 티모셴코 총리는 국빈 자격으로 방한해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으며, 한국 ICT산업을 둘러보기 위해 SK텔레콤을 방문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후진타오 G8 일정취소 급거 귀국

    │우루무치(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박홍환특파원│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시위사태가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참석을 포기하고 급히 귀국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8일 후 주석이 신장지역 시위 사태를 직접 수습하기 위해 이탈리아 국빈 방문과 G8 확대 정상회의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이날 개막하는 G8 확대 정상회의에는 후 주석을 수행한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대신 참석했다. 지난 5일 최소한 156명이 숨지고 1080명이 다치는 유혈사태가 빚어진 신장위구르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烏木齊)에서는 8일에도 크고 작은 시위가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이날 낮 위구르인 30~40명이 시내 중산루(中山路) 인근의 난먼(南門) 광장에서 중국 정부의 편파적인 사건 처리에 항의하는 기습시위를 벌였으나 경찰과의 무력충돌은 없었다. stinger@seoul.co.kr
  • [월드이슈] 가까워지는 中·러 멀어져가는 中·印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과 러시아가 다음달 22일부터 26일까지 각각 1300여명의 병력이 참가하는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한다. ‘평화-사명 2009’로 명명된 이번 군사훈련은 테러 대비가 목적이며 두 나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일대에서 실시된다. 양국은 연합 군사훈련에 앞서 헤이룽장성 성도 하얼빈(哈爾濱)에서 군사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16일 보도했다. 이번 군사훈련은 두 나라간 2004년 체결한 협정에 따른 연례행사에 불과하지만 최근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전례없는 밀월관계에 비춰 주목되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러시아의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상하이협력기구와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모스크바로 이동, 러시아를 국빈방문한다. 중·러 관계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더욱 공고해지는 양상이다. 달러화를 대체할 ‘슈퍼통화’의 필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면서 공조하고 있다. 중국은 또 지난 2월 러시아에 250억달러(약 31조원) 의 차관을 제공하면서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약속받기도 했다. 중·러 관계의 안정과는 대조적으로 중국과 인도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두 나라는 지상군 연합훈련을 올해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베이징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2007년 말 첫 훈련을 실시한 지 2년만에 양국간 군사협력이 위기를 맞게 됐다. 이 소식통은 “양국이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모두 합동훈련을 원하지 않고 있다.”며 재개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임을 시사했다. 인도가 국경지대인 북부 아삼주(州)의 테즈푸르 공군기지에 수호이-30 MKI 비행 편대를 배치하고, 비행장을 추가 건설키로 한 데다 병력 6만명을 증원키로 하는 등 양국간 국경분쟁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후 주석과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가 15일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만나 두 나라 총리간 핫라인 개설에 합의했다. 하지만 군사적 긴장 이외에도 올초부터 인도가 중국산 휴대전화 수입을 금지키로 하는 등 무역분쟁까지 겹쳐 실타래처럼 얽힌 양국관계를 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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