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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봉균 前재경 공직생활 회고록 준비

    강봉균(康奉均)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회고록을 집필중이다. 강 전장관은 24일 “거창하게 회고록이라기 보다 31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겪었던 일들과 무슨 생각을 갖고 어떻게 경제개발 계획 등 정책을 입안했는지 소책자로 정리중”이라며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일과 관련없는 개인적인 얘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 성품인지라 총선 출마를앞두고 ‘인간 강봉균’을 정리한 글일 것이라는 예상도 없지 않다.하지만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을 비롯한 주요 경제정책 결정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만큼 ‘회고록’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2년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고뇌와 학자들과 지식층의 반대의견을 되돌이켜보는 계기가 됐다”는 강 전장관은 김우중(金宇中)대우 회장을 설득하기까지의 과정 등 대우사태와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도 일부 털어놓을 계획이다.생산적 복지 등 ‘DJ노믹스’의 철학적 배경도 나름대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 고창 벽지의 초등학교 교사 시절과 지난 80년 국보위 구성 당시차출명령을 받고 “공무원을 그만둬도 못간다”고 참여를 거부했던 일화도 소개한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하다는 그는 출마지역과 관련해 “이달말쯤 정해지지않겠느냐”며 “(청와대와 당에서)정해주는 대로 갈 것”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균미기자 kmkim@
  • 외교부 조직 대폭 ‘수술’ 할듯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외교조직개편 구상’을 내비쳤다. 이장관은 “40년 외교관 경험을 바탕으로 반드시 경쟁력 있는 외교조직을만들어 나가겠다”며 조직개편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지난 14일 취임때도 “외교부 직원들이 10년,20년 전의 상황에 안주하면 안된다”고 강조했었다. 그의 조직개편 구상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분으로 나눠진다.구체적인언급은 피했지만 향후 ‘조직개편 위원회’ 등을 구성해 가시화시킬 방침이다. 하드웨어로는 80년대 국보위에서 만들어진 외무 공무원법의 개정을 포함한조직 내부의 개편이다.기존의 관련법이 근본적으로 냉전체제의 산물이란 시각이다.국제화 방향에 맞춰 2000년대의 시대흐름을 방영할 방침이다.법개정을 위한 관련부처와의 협조가 필수적인 조건이다. 직급체계의 개선도 추진할 방침이다.이장관은 “국제무대에서 통용되는 직급이 있으며 진급에 얽매여 일하는 분위기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현행사무관-서기관-부이사관-이사관 등으로 이어지는 직급체계 대신 외교관의 대외직급인 서기관-참사관-공사-대사 등의 직제로 대체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개편은 ‘외교전문가 육성’이 핵심이다.단순한 교육 프로그램개편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 ‘수술’을 염두에 두는 분위기다. 특히 이장관은 임용제도 개선과 관련,‘해외전문가 특채’ 방식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그는 “고시 합격자들을 해외로 연수보내는 방식은 5∼7년이 걸린다”고 전제하고 “해외에서 활동하는,국제감각을 갖춘 외교자원들을 뽑아 교육시키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을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제도 전반에 대해 ‘수술’을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지역전문가 육성을 가로막는 ‘냉·온탕식’의 인사관행 개선과 국제 외교환경에 발맞춰 정무·통상·환경 등의 세분된 전문 외교관 육성 등도 우선적 과제다.오는 8월 정기인사가 첫 관문이 될 듯하다. 오일만기자 oilman@
  • 李廷彬 외교장관 “인사관행등 개선전문외교관 육성”

    이정빈(李廷彬)신임 외교통상부장관은 14일 앞으로의 외교정책 방향과 관련,“과감한 개혁을 통해 21세기에 걸맞은 경쟁력 있는 국제외교를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4강외교 등 외교정책 구상은. 우리는 과거의 역사 때문에 강대국 등 외부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그러나 주어진 여건을 잘 활용하면 ‘외교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여건의 활용에 따라 외교적 성과는 물론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외교부 운영 구상은. 21세기를 맞아 국제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다.외교부의 기능과 역할도 변화돼야 한다.수십년 전의 제도와 인사관행으로는 다원화된 여건에 적응할 수 없다.각자의 소질에 맞게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전문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을 개발시키겠다. ◆구체적인 복안은. 관련 부처와 협조,경쟁력 있는 외교환경을 만들겠다.정무뿐 아니라 경제,환경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여건을 조성하고 제도적 장치를만들어나갈 계획이다. 현행 외무공무원법만 해도 그렇다.5공 출범 당시 국보위가 외교부 직원들을 해직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일만기자
  • 李廷彬 외교팀의 과제

    이정빈(李廷彬)신임 외교통상부장관의 첫 ‘관문’은 탈북자정책인 듯하다. 탈북자 7명의 전격적인 북한 송환은 중·러를 포함한 4강외교의 근본적 검토를 요구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홍순영(洪淳瑛)전임 장관의 낙마와도 무관치 않을 정도로 국내외에 미치는 파문이 적지않아 이 장관체제의 안착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탈북자정책의 경우 조용한 외교를 표방한 ‘중·러 접근법’이 한계를 드러낸 만큼 전술변화의 거센 압력을 받고있다.조용한 외교를 표방하며 탈북자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기존의 비공개 외교와 국제여론 환기를 병행하는 공개외교사이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정부는 우선 북으로 송환된탈북자의 신변안전 문제의 해결에 외교력을 모으고 있다.중국의 협조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 국제인권 기구와의 연대를 통해 북한의 가혹한보복을 막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북 포용정책을 기조로 하는 4강외교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않을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한·미·일 공조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정착 구상역시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미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하는 북·중·러 3국의 접근 움직임은 동북아 정세에 새로운 변수가 됐다. 이 장관체제의 또 하나의 과제는 ‘조직개편’과 ‘경쟁력 강화’이다.이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날 임명장을 받을 때 당부받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과감한 개혁 주문을 전하면서 “21세기에 걸맞은 외교조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의 개혁 구상은 크게 두 방향으로 모아진다.하드웨어로는 80년대 국보위에서 만들어진 외무공무원법의 대대적인 개정과 재외공관을 포함한 조직 내부의 개편이다.소프트웨어는 외교전문가 육성이 핵심이다.‘냉·온탕식’의인사관행 개선과 국제 외교환경에 발맞춰 정무·통상·환경 등의 전문외교관 육성 등이 우선 대상이다.오는 8월 정기인사가 첫 관문이 될 듯하다. 오일만기자 oilman@
  • [대한시론] 기록보존과 문화민족

    1986년 여름,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중앙도서관의 한 모서리에 자리잡은영국성서공회 고문서실에서 100여년이 넘은 한통의 편지를 발견하고 놀랍도록 기뻐하였다.1885년 3월 8일자로 된 이 편지는 당시 만주에 와서 활동하고있던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소속 선교사 존 로스가 쓴 것이었다. 로스는 이 편지에서 서울에 파송한 권서(勸書) 서상륜의 활동보고를 간단하게 썼다.“그가 2년 동안 노력한 결과 현재 70명이 넘는 세례 청원자가 있으며,그가 개종시켜 데리고 온 한 동행자의 말을 빌리면 서울의 서쪽에 있는한 도시에 ‘설교당’을 개설하였고 18명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록은 한국 기독교회사의 기년을 바꾸는 결정적인 내용이다.위의 예는 보존된 기록이 어떻게 역사적인 사실을 명증하는 위력을 갖고 있는가를보여 준다. 종래 한국 기독교는 복음선교사 아펜젤러(감리회)와 언더우드(장로회)가 한국에 도착한 1885년 4월 5일 이후에 시작되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그러나 로스의 이 편지는 이들 복음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적어도 한달 전에 서울에는 이미 70여명의 세례 청원자가 있었고,서울 서쪽의 한 도시에서도 18명의 신자들이 모여 ‘설교당’을 개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이 기록은 한국 기독교의 시작 시기를 앞당겨 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가 외국 선교사가 아닌,열성있는 한국인 권서들에 의해 시작되었음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단 몇 줄의 기록이 이렇게 역사를 바꿔버렸다. 97년말 IMF 경제위기를 맞을 때,이 나라의 경제를 좌우하고 있던 고급관료두 사람이 보여준 책임전가의 비열한 행태를 우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IMF행을 앞둔 시점에 바뀐 전·현직 재정경제원 장관들은 ‘IMF행 결정시기’의 인계인수 여부를 두고 흙탕물 공방을 벌였고 그 싸움에 전직 대통령까지말려든 적이 있다.이 점은 국회 청문회에서도 분명하게 가려지지 않고 얼버무려지고 말았다.다만 인계했다고 주장한 측은 경제파탄의 책임 여부로 법의심판을 기다리고 있고,인수받지 않았다는 측은 다음 정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관운을 누리는 듯하다가 다른 일로 역시법의 심판 아래 있다. 왜 이처럼 불필요한 공방이 가능하였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을 피곤하고 답답하게 만들었을까.그런 중요한 시점의 인계인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인계인수서에 그 내용을 남겼다면 머리 좋기로 이름난두 사람인들 어찌 감히 거짓말로 책임전가를 할 수 있었겠는가. 중요한 일일수록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그러나 탈법적인 사건일수록 문서로 남겨지기를 원치 않는다.군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증거를 남기기싫은 일들은 직접 말 혹은 전화로 지시하는 버릇이 있었다.그런 분위기에서문서를 요구하는 깐깐한 합리주의자들의 목이 성할 리 없었다.설령 어쩔 수없이 문서로 남겨졌다 하더라도,그 문서는 검증을 필요로 하는 시기까지 보존되지 않았다. 12·12사태때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전두환이 요구했다는 대통령의재가서는 지금 온데간데 없고,신군부가 자신들의 권력장악을 합리화시키기위해 급조했던 국보위의 기록도 지금 어느 수중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의 진실을 밝히자면 꼭 필요한이런 문서들은 왜 보이지 않는가.그 기록으로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무리들이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그뿐인가.벌써 몇대째 대통령을 거쳤건만 그들이 재임시에 청와대에서 남긴기록들이 공적으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이것이 21세기 근대국가를 지향하는우리 기록문화의 현실이다. 외국의 여러 기록보존소를 열람하면서 그들의 치밀성과 정직성을 보고 많은것을 느꼈다. 기록보존은 그 사회의 문화적 척도이면서 통치능력의 증거이다.영국이 해외의 식민지를 많이 가졌던 것은 지금에 와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그 시대에 이미 알차게 정리된 식민지 관련 문서가 영국의 식민통치 능력을 보인다고 한다면,그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라거나 제국주의적인 시각이라고만 할 수 없다. 조선조가 그런 유약한 힘을 가지고서도 500년 넘게 왕조를 유지한 것은 기적같이 보이지만,지금도 남아있는 방대한 기록문화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설명해 주고 있다.기록을 정직하게 남기지 않는 시대는 문화를 논할 자격이 없다.그런 점에서 내년부터 발효될 공공기록보존에 관한 법률의 시행에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李萬烈 숙명여대 교수·한국사]
  • 정부와 언론/대립과 갈등… 민주화 기여(한국문화 50년:1)

    ◎초창기 서울신문­동아­경향 순 정간·폐간/5共때 강제 통폐합… 이젠 구조조정 태풍 건국 50년을 맞이하는 우리 문화 50년은 감동과 의지,그리고 희망이다.또 전쟁과 경제개발과 민주화의 험난했던 지난 반세기를 꿋꿋이 헤치고 세계 현대사에 우뚝 선 한국을 이뤄낸 힘의 원천이다.가난과 고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분야분야 소중한 꿈으로 간직해온 우리 문화 50년을 장르별로 나누어 중요했던 역사적 순간들을 도설(圖說)로 엮어본다. 정부수립 이후 언론과 정부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 관계를 보여왔다.정부는 언론의 정당한 비판을 수용하기 보다는 탄압으로 일관했고 언론은 불굴의 기개로 이에 맞섰다.이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신문들에 대한 신생정부의 첫대응은 정부수립 직후 ‘언론정책 7개항’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주로 좌파신문을 대상으로 국시위반,정부모략 등 보도 금지항목을 제시한 것으로 사실상 이승만정부의 정권 안정을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이에따라 기자 검거,신문 정간을 자행했다.언론과 정부와의 최초의 집단적 대립은 49년 5월3일 정부에 비판적인 서울신문을 뚜렷한 이유없이 정간시켰을 때였다.서울의 주요 일간지 통신사 편집국장 모임인 담수회가 대통령에 재고요청서를 제출했고 중앙청기자단과 조선신문인협회 등도 일제히 정간해제를 요구했다. 56년 동아일보 무기정간,경향신문 폐간 등 정부의 탄압이 이어졌다.언론계는 자구책으로 57년 4월7일,한국신문편집인협회를 결성했다. 정부의 제도적 언론탄압은 크게 3차례.첫번째는 5.16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로 발효된 ‘사이비 언론인 및 언론기관 정화’.전국 912개 보도기관 중 82개만 남게 됐다. 두번째는 71년12월 정부는 ‘사이비기자’를 없앤다는 구실로 발행인들이 ▲프레스카드 소지 ▲지방주재기자 인원제한 등을 자율 결의케 했다.세번째는 80년11월 국보위에 의한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제정.소위 ‘제도권언론’시대가 열리게 됐다.5공(共)하에서 언론은 정부의 탄압을 심하게 받았다.87년 6.29선언과 그해 11월 언론기본법 폐지로 상당부분 자유를 되찾았고 신문창간 러시를 이뤘으며 대부분의 신문사에 노조가 창립됐다. 6공과 문민정부에서도 정부의 언론에 대한 간섭은 계속됐다.90년대들어 경제호황으로 인한 광고 증가로 증면경쟁이 벌어졌다.또 각사는 전자신문 등 뉴미디어경쟁시대로 돌입했다.그러나 IMF 한파로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언론사는 구조조정에,언론인은 명퇴바람에 휩싸이는 등 우리 언론 역사상 최악의 시기를 맡게 됐다. 그러나 건국50년 아침,불쑥 자라오른 자유언론의 싹이 희망으로 다가온다. □언론계 변천사 48년 9월 정부 언론정책 7개항 발표 49년 5월 서울신문 정간으로 언론계 최초의 조직적 반발 59년 4월 한국신문편집인협회 결성 60년 7월 신문등록에 관한 법률 공포 61년 5월 1차 통폐합 언론기관 일제 정비 64년 언론의 상업화·신아·중앙 창간 71년 12월 2차 통폐합.프레스카드 발급 74년 12월 광고 탄압.동아 백지 광고 80년 11월 3차 통폐합 국보위 언론정비 87년 11월 언론기본법 폐지 88년 신문창간 러시.언론 노조 결성 94년 증면 경쟁 95년 뉴미디어 경쟁 9
  • 여야 국회의장 후보 지상 검증/‘빅’ 對 ‘퀵’ 거포냐 속사포냐

    국회의장 선출을 위한 여야간 힘겨루기가 본격화됐다. 한나라당은 29일 의원총회를 통해 국회의장 후보를 뽑았다. ‘다수당 몫’챙기기 차원에서 의장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결의도 다졌다. 여권은 여권대로 자신들의 후보를 당선시킬 필의 전략을 숙의했다. 여야 의장 후보를 지상 점검한다. ◎자민련 朴浚圭 후보/지역구 9選 무게 내세워 “의장은 영남” 기치 여당 후보인 자민련 朴浚圭 최고고문은 9선(選)의원이다. 15대 국회 최다선이다. 전국구 의원은 한차례도 안했다. 모두 지역구를 거쳤다. 두 부문에서 기록보유자다. 9선 타이틀은 金泳三 전 대통령과 공동으로 갖고 있다. 그러나 지역구 9선은 혼자만의 기록이다. 朴최고고문은 지난 60년 정치에 입문했다. 4·19 직후 5대 총선에서 첫 ‘금배지’를 달았다. 당시 민주당 구파(舊派)에 속했다. 이때부터 신파(新派)의 金大中 대통령,구파의 金泳三 전 대통령과 40년 인연을 맺었다. 그는 5·16뒤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겨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고비를 두차례 맞았다. 80년 정치규제가 첫 시련이다. 93년 金泳三 정권 출범 이후 당한 ‘팽(烹)’이 두번째다. 이런 명암이 ‘처세술의 달인’이라는 닉네임을 만들어냈다. 93년은 재산문제가 토사구팽(兎死拘烹)의 빌미로 제공됐다. ‘벌집’으로 불리는 다세대주택을 포함,부동산 과다보유로 파문에 휘말렸다. 결국 국회의장과 의원직을 내던지고 유랑길에 올라야 했다. 金泳三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악연으로 바뀌었다. 그는 94년 야당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金鍾泌 총리서리가 자민련을 창당할때 손을 잡았다. 그러나 金총리서리와는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다. 지난해 15대 대선때는 金大中 대통령 편에 섰다. 야권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며 ‘탈당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金총리서리에 대한 양보 주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계기로 金대통령과는 더 가까워졌다. 金대통령이 의장 후보로 적극 지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우정과 무관치 않다. ‘호남대통령,충청총리,영남국회의장’이 출마 명분이다. ◎한나라 吳世應 후보/외국어 능통 등 순발력 부각 “공정한국회를” 한나라당 국회의장 후보로 확정된 吳世應 의원은 국회 외무통일위원만 22년 역임한 7선 의원이다. 당내 최다선이다. 그는 영어·불어·독일어·일어·서반아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외교통으로 꼽힌다. 국제의원연맹(IPU) 집행위원과 한·미의원외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吳의원이 28일 당내 후보 경선에서 국제 의원외교 경력을 유난히 부각시킨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吳의원은 15대 전반기 국회 부의장을 지내던 96년 12월 신한국당의 ‘노동법 새벽 날치기 통과’때 金守漢 전 국회의장대신 본회의장 사회를 맡았던 ‘불명예’를 안고 있다. 6공 당시 주가를 올리던 朴哲彦 의원과 가까이 지내는 등 ‘정치적 변신의 귀재’로도 불린다. 때문에 당내 개혁성향 인사들의 표 이탈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이날 당내 후보 경선에서 吳의원은 ‘입법부 독립’과 ‘국회의 자율성 회복’을 최대 과제로 꼽았다. 후보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吳의원은 “대통령을 반대하는 당에서,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은 국회의장이 출현한다면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며 여권의 朴浚圭 의장후보와 차별화를 꾀했다. 吳의원은 특히 “金大中 대통령과 金鍾泌 국무총리서리가 한나라당 의원 몇사람을 빼내 국회의장 선출에서 이긴다든지 서리 꼬리를 떼려 한다면 현 정권 말기의 책임은 두 분이 져야 한다”고 독설(毒舌)을 서슴지 않았다. 吳의원은 또 “만약 의장으로 당선되면 특정 정당에 편견을 갖지 않고 불편 부당하게 국회를 운영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국회의장 당적 이탈이나 金鍾泌 국무총리서리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내각제 개헌 논란 등 원내 쟁점에 대해서는 “당론에 따르겠다”고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여야 국회의장 후보 신상명세 ▲국민회의·자민련 朴浚圭 출생일:25. 9.12 본적:대구 달성 학력:대구 경복중→일본 마쓰야마(松山)고→서울대 정치학과 지역구:대구 중 재산:18억7천만원 경력:△서울대 정치학과 교수(54년) △부산일보 사장(62) △국회외무위원장(67) △IPU명예종신회원(79) △남북국회회담 수석대표(88) △민정당 대표위원(88∼89) △13·14대 국회의장 △5·6·7·8·9·10·13·14·15대 국회의원(9선) ▲한나라당 吳世應 출생일:33. 4.18 본적:서울 종로 학력:경기중·고→연세대 정외과 지역구:경기 성남분당 재산:9억2천만원 경력:△미국의소리방송 아나운서(60∼64년) △국보위입법위원(80) △IPU한국대표단장(81∼87) △정무 1장관(82∼83) △국회문체공위원장(92) △국회외무통일우원장(94) △15대 국회 부의장 △8·9·10·11·12·14·15대 국회의원(7선)
  • 기아自 3자매각 가닥잡힐듯/柳鍾烈 관리인 내정따라

    ◎車 업계 구조조정 가속화 예상 기아자동차 법정관리인에 柳鍾烈 효성중공업 부회장이 내정됨에 따라 기아자동차의 진로와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기아의 채권단은 林寅澤 전 교통부 장관 등을 추천했으나 모두 고사하는 바람에 柳부회장을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업계는 ‘구조조정을 빨리 진행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생각한다 柳부회장이 지난 80년 국보위 상공분과 간사를 맡아 자동차 산업합리화 정책을 주도했던 경력 때문이다.정부와 채권단은 柳부회장이 기아의 자력회생이나 국민기업화보다 구조조정이라는 정부의 방침을 최대한 수용할 것으로 본다.기아의 제3자 매각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柳부회장을 관리인으로 선임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반면 기아는 柳부회장이 자력회생을 추진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한편 서울지법 민사50부가 14일 柳부회장을 면접,법정관리인에 선임함으로써 기아자동차에 대한 법정관리 개시결정이 15일 내려질 전망이다.
  • 공무원 10% 감원 어떤 원칙으로

    ◎중앙부처 1급 이상 대거 밀려날듯/3급 이상 별정직도… 6금이하 인정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3일 공무원 감축에 따른 5대 원칙을 제시한 것은 이제 ‘공무원 10% 감축’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됐음을 뜻한다.5대 원칙의 내용을 보면 일단 각 행정기관에 감축 할당량을 내려보내는‘80년 국보위 방식’을 택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그렇다면 감축대상은 누구인가. 우선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1급 공무원의 감축 규모는 예상밖의 큰 폭이 될 가능성이 있다.기본적으로 1급 이상 공무원 수가 불필요하게 많은데다,결재라인만 길게 만든다는 것이 인수위의 판단이다.차관보를 없애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3급 이상,특히 별정직은 ‘불요불급한 직위와 직급’으로 분류하여 상당한 감축이 예상된다.인수위는 일단 5급 이상 상위직에 대한 감축비율은 ‘솔선수범’이라는 측면에서 하위직에 비해 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특히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통·폐합될 운명에 있는 부처의 5급 이상은 적지않은 위협을느껴야할 것 같다. 6급 이하는 통·폐합될 부처에 있다고 해도 소속 과조직이 완전히 폐지되지 않는 한 크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오히려 통·폐합부처가 아니라고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인수위는 통·폐합 대상이 아닌 부처에 대해서도 과 단위 조직을 축소 개편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공무원의 운명은 행정구조가 언제 어떤 방향으로 개편될 것인지와 밀접하게 맞물려있다.읍·면·동 조직을 폐지할 경우 6급 이하의 수가 크게 줄어들게 되고,이는 또 조직의 균형을 위해 시·도,시·군·구 상위직의 상당부분 감축을 불러올 것이다.그러나 읍·면·동을 폐지한다해도 대민서비스분야를 강화한다는 방침인 만큼 상당수는 자리옮김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재계,‘새정부 압박카드’에 촉각/구조조정 재촉구 따라

    ◎업종전문화 방향·빅딜 방안 ‘전전긍긍’/결합재무제표­지보해소­여론악화도 큰 부담 새정부는 재벌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어떻게 압박해 들어갈까. 재벌기업들은 구조조정안에 대한 여론악화에 이어 21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구조조정 재촉구하고,나서자 당선자측의 ‘의중’과 사용가능한 수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재벌의 구조조정은 노사정 합의 및 뉴욕 외채협상 등과도 연계돼 있어 김당선자측이 답답한 속을 혼자서 다스리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재계도 예상치 못한 난기류가 형성되자 한발 앞서간 삼성의 구조조정안에 대한 여론을 살피면서 과연 당선자측이 어떤 복안을 갖고 ‘강공’에 나서고 있는지 탐색에 열중하고 있다. 기업들은 새정부가 과거 국보위나 문민정부의 사정처럼 강제적이거나 타율적인 구조조정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 의장도 이를 확인했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에게 강력한 대응 수단은 우선적으로는 여론몰이와 결합재무제표 등 개혁입법의 내용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상호지급보증과 계열기업간의 상호주식보유에 대한 규제도 든다.언제 어느 정도의 강도로 실시하느냐는 것.이는 재계에 당장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안들이다. 재계가 궁금해하는 것은 ‘업종전문화’방향과 수이다.당선자를 비롯,신정부 관계자들은 전문업종의 범위를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김원길 당선자측 정책위의장은 이날 “빅딜 방안 등을 정부가 제시할 수도,제시해서도 안된다.자율적으로 해야한다”면서도 “계열사 중 적자부분만 잘라내는 것은 적자를 국민부담으로 떠넘기는 하지하”라고 이미 내놓은 구조조정안을 폄하하는 방법으로 방향을 시사했다. 재계는 당선자측이 2∼3개라던지 3∼4개라던 지식을 요구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하고 있어 감을 잡지 못한채 현재의 업종을 대부분 끌고가는 백화점식 방안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정부가 전문업종을 2∼3개로 선정할 경우 그룹간의 자율 빅딜은 불가피하며 재계 순위 또한 급변하게 된다.국제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 당선자측의 가장 강력한 재벌 압박 무기는 전문 업종의 수일 수 있다는게 재계의 분석이다.
  • 초반 시행착오 후반 제자리 찾기/대통령직 인수위 활동 중간점검

    ◎출범후 활동 범위 싸고 혼선/새정부 100대 과제 선정 착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15일 법제처와 정무 1·2장관실을 끝으로 정부 각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듣는 일정을 모두 마쳤다.16일부터는 정부 보고내용과 그동안 파악한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주요 현안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에 들어간다.지금까지 활동이 ‘재고조사’였다면,이제부터는 ‘사업계획’을 짜는 작업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동안 인수위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이해찬 정책분과간사는 “정부로 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체는 비교적 무난히 잘됐다.그러나 여야의 정권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라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는 ‘무난’보다는 ‘시행착오’쪽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특히 인수위 출범 초기 사정기관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으로 ‘80년대초 국보위를 연상케 하는 한다’는 홍사덕 정무1장관의 비판이나,인수위 전체 의견이 아닌 ‘인수위발’보도로 혼란이 초래된 일 등은 적지 않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긴 것 같다. 이간사는 이에 대해 “위원 개인의 의견이나 정부쪽의 보고내용이 그대로 인수위 방침으로 전해진 것이 많았고,인수위가 결정하는 기관으로 오인되어 피해를 입은 것도 있었다”고 해명하면서 “인수위원과 정부·언론 모두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반성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수위의 혼란이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3일 “인수위가 이제는 잘 해나가는 것 같다”고 격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활동초반 ‘현정부의 실정 파헤치기’가 주요임무처럼 비쳐지던 인수위가 14일 감사원에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감사’를 요청한 것도 스스로 활동범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일조를 했다는 평가다. 앞으로 인수위는 오는 20일까지 1차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과 함께 새 정부가 추진할 100대 과제를 선정하는 작업을 벌인다.외환위기 극복 등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이전 긴급히 해결하거나 방향을 제시해야 할 22개 긴급현안 과제에 대한 실행계획도 작성한다.이같은 일련의 작업을 바탕으로 김당선자의 집권 청사진도 제시해야 한다.그동안 공무원들로 북적이던 인수위 건물은 부처별 업무보고가 끝나면서 조용해지겠지만 인수위원들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 목소리 낮춘 인수위 ‘호흡 조절’

    ◎“정부업무 파악·분석만 할뿐” 거듭 강조/인수위­현 정부­여론 맞물려 미묘한 기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잠시 ‘호흡고르기’에 들어갔다.인수위와 여론의 관계에 현정부의 심기까지 맞물린 미묘한 삼각기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찬 인수위원장은 6일 아침 이례적으로 기자실에 들러 언론에 대한 ‘협조’를 당부했다.그는 “인수위 발표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면이 있어 우리도 반성하고 있다”면서 “인수위는 정부의 모든 업무를 차질없이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지,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전날 홍사덕 정무1장관이 ”인수위가 마치 80년 국보위를 연상케한다”고 문제를 제기한데 대해 김한길 대변인 성명으로 통해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고 강도높게 반박하던 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이에 따라 인수위 주변에서는 이날 ‘이위원장이 김당선자로 부터 질책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과 함께 박지원 전 의원이 당선자대변인으로 새로 임명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않느냐는 얘기도 떠돌았다. 그러면서 인수위 발족 초기 김당선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수위원들의 걸러지지 않은 개인 의견이 여전히 중구난방으로 인수위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언론에 흘려지고 있는데 따른 결과라는 원인분석도 뒤따랐다.
  • 홍 정무장관­대통령직인수위 ‘월권 논쟁’

    ◎홍 장관 “두개 정부 느낌”/인수위 “무책임한 발언” 홍사덕 정무1장관과 대통령직인수위 사이에 ‘월권 논쟁’이 벌어졌다.홍장관이 인수위 활동을 월권이라고 비난하고 나서자,인수위는 ‘홍장관의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홍장관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수위 활동은 80년대초 국보위를 연상케 한다고 비난했다.그는 문서파기금지 요청이나 행정기구 개편,과외 등 교육개혁,공무원감축,재경원 문책단행 예고 등을 월권의 사례로 들었다.인수위와 비상경제대책위가 방대한 자문기구와 사무처를 설치해 두 개의 정부가 활동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홍장관은 “인수위 활동이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뜻에도 배치되는 것으로 믿는다”며 월권자제를 촉구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인수위가 사정기관인 듯 처신하는데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김영삼 대통령이 6일 김대중 당선자와의 주례회동에서 인수위의 적정한 역할을 거론할 가능성도 있다고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밝혔다. 이에대해 인수위측은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는다.김한길 대변인은 “정무장관의 무책임한 발언은 인수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중앙대 법대 권영설 교수는 “인수위가 대통령령으로 설치됐기 때문에 직무범위가 구체화돼 있지 않다”고 이번 논쟁의 원인을 분석했다.
  • 정부수립부터 오늘까지/연표로 본 대한민국 50년

    ◎36년만의 주권 회복… 6·25 상흔 딛고 산업화 대장정/시련속에 꽃피운 민주화운동… ‘문민시대’ 열며 개혁의 길로 ▷48년 정부수립 과정◁ ◇정치 ▲1월8일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방한 ▲5월10일 남한 총선거 실시 ▲5월31일 제헌국회 개원 ▲6월10일 국회의장에 이승만 박사 선출 ▲7월17일 제헌절 제정 ▲7월20일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통령 이시영 선출 ◇사회·문화 ▲1월7일 의무교육제 실시 ▲4월3일 제주도 무장폭동 ▷제1공화국◁ ◆정치 ▲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미군정폐지 ▲ 〃 9월13일 행정권의 한국 정부 완전이양 ▲ 〃 11월30일 국군조직법 공포 ▲ 〃 12월9일 유엔총회에서 한국 승인 ▲50년 6월25일 6·25동란 발발 ◇경제 ▲50년 12월10일 한·미 경제원조협정 조인 ▲55년 8월8월 증권시장 개장 ◇사회·문화 ▲48년 10월20일 여수·순천 반란사건 ▲50년 6월1일 6년제 의무교육 실시 ◇체육 ▲50년 4월12일 한국,보스톤 마라톤대회 제패 ▷제2공화국◁ ◇정치 ▲60년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실시 ▲ 〃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성명 ▲ 〃 4월28일 과도정부 구성 ▲ 〃 8월12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 의원 선출 ▲ 〃 8월19일 초대 총리에 장면 의원 ▷제3공화국◁ ◇정치 ▲61년 5월16일 군사혁명위원회 설치 ▲ 〃 5월20일 장도영 중장을 내각수반으로 하는 혁명내각 출범 ▲62년 4월24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대통령권한대행 ▲62년 12월26일 헌법개정(대통령책임제) ▲63년 12월7일 제3공화국 출범(박정희 대통령 취임) ▲70년 12월23일 정부종합청사 준공 ▲72년 10월17일 박대통령,국회해산 및 계엄선포 ▲ 〃 12월15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첫 대의원 선거 ▲ 〃 12월27일 유신헌법 공포 ▲74년 1월8일 긴급조치 1·2·3호 선포 ▲ 〃 1월15일 고위공직자 숙정 ▲ 〃 8월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경제 ▲62년 1월5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66년 1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사회·문화 ▲68년 11월29일 서울시내 전차철거 ▲ 〃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72년 4월10일 문교부,지명의 로마식 표기공표 ◇통일·외교 ▲65년 1월8일 월남파병 결정 ▲68년 1월23일 미 푸에블로호 북한에 피납 ▲68년 11월2일 울진·삼척 무장공비 출현 ▲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 ▲71년 3월27일 첫 미군 철수 ▲ 〃 9월20일 남북적십자사 이산가족찾기 첫 예비회담 개최(판문점) ▲ 〃 12월27일 국가보안법 국회 통과 ▲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 〃 8월30일 남북적,본회담 평양서 개막 ▲74년 1월30일 한·일 대륙붕협정 체결 ▲ 〃 8월15일 서울지하철 개통 ▷제4공화국◁ ◇정치·행정 ▲75년 2월12일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실시(찬성률 73.11%) ▲79년 10월2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 ▲ 〃 1월6일 최규하 대통령 취임 ◇사회·문화 ▲75년 6월30일 예비군 창설 ▲ 〃 9월2일 학도호국단 발단식 ▲ 〃 9월22일 민방위대 발대식 ▲76년 4월30일 매월 말일을 반상회로 지정 ▲ 〃 8월1일 양정모 몬트리올 올림픽 첫 금메달 획득 ▲77년 9월15일 한국등반대 에베레스트 정복 ▲78년 4월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 〃 4월21일 대한항공기 소련 무르만스크강제착륙 ▲ 〃 10월5일 자연보호헌장 선포 ◇경제 ▲76년 6월18일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77년 6월19일 국내 최초 고리원자력1호 발전기 점화 ▲ 〃 7월1일 부가가치세 실시 ◇통일 외교 ▲75년 4월29일 주월 한국대사관 철수 ▲76년 8월18일 북한군 판문점에서 집단도끼만행 사건 ▲77년 11월7일 한미연합사 사령부 발족 ▷제5공화국◁ ◇정치·행정 ▲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 ▲ 〃 7월9일 2급이상 고위공무원 232명 숙정 ▲ 〃 7월15일 3급이하 공무원 4천760명 숙정 ▲ 〃 8월16일 최규하 대통령 하야 ▲ 〃 8월27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 대통령당선 ▲83년 1월1일 공직자 윤리법 발효 ▲ 〃 7월13일 입법예고제 첫 실시 ▲ 〃 10월8일 아웅산 테러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공직자 17명 사망 ▲87년 6월29일 노태우 민정당대표,대통령직선제 선언 ◇경제 ▲80년 11월8일 경제활성화대책 발표 ▲81년 8월21일 제5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85년 7월4일 제6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사회·문화 ▲80년 7월30일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발표 ▲ 〃 8월2일 컬러TV 시판 ▲ 〃 11월1일 사회정화위원회 발족 ▲81년 9월30일 서울올림픽 개최확정 ▲82년 1월5일 야간통금 해제 ▲83년 3월2일 중고생 복장자율화 ▲ 〃 6월30일 KBS 이산가족찾기운동 ▲ 〃 9월1일 KAL기 격추 ▲86년 1월13일 대입논술고사 첫 실시 ▲88년 2월15일 예술의 전당 개관 ◇통일·외교 ▲84년 2월1일 팀스피리트 훈련개시 ▲85년 7월23일 남북 국회회담 첫 예비접촉 ▲ 〃 9월20일 남북고향방문단 서울·평양에 도착 ▲86년 1월20일 북한,남북회담 일방연기 ▲87년 11월29일 북한,KAL기 추락 ▷제6공화국◁ ◇정치·행정 ▲88년 9월17일 제24회 서울하계 올림픽 개최 ▲ 〃 11월23일 전두환 대통령 재산헌납 발표 ◇경제 ▲91년 11월12일 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발표 ◇사회·문화 ▲89년 1월1일 해외여행제한연령 완전철폐 ◇통일·외교 ▲90년 6월5일 한소 정상회담(샌프란시스코) ▲ 〃 9월4일 남북 첫 총리회담 개최(서울) ▲ 〃 10월16일 2차 남북총리회담(평양)▲ 〃 9월18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91년 12월18일 노태우 대통령 한반도 비핵화선언 ▲ 〃 12월31일 남북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92년 한중 수교합의 발표 ▷문민정부◁ ◇정치·행정 ▲93년 2월27일 김영삼 대통령 재산공개,국무위원 등의 재산공개 당부 ▲ 〃 8월9일 정부 공직자윤리위 가동 ▲95년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5일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97년 12월18일 15대 대통령선거,김대중 후보 당선 ◇경제 ▲93년 5월26일 신경제 5개년 계획발표 ▲ 〃 8월20일 경부고속도로 차종 TGV 확정 ▲ 〃 12월13일 쌀시장개방 합의 ▲94년 5월16일 금융실명제 실시 ▲96년 12월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97년 12월3일 IMF자금 요청으로 ‘IMF시대’ 도래 ◇사회·문화 ▲93년 4월6일 종합유선방송 허가 발표 ▲ 〃 8월20일 제1차 대학수학 능력시험 실시 ▲94년 1월6일 대입 본고사 14년만에 부활 ▲ 〃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 ▲96년 5월31일 한·일 2002년 월드컵공동개최 결정 ◇통일·외교 ▲94년 7월2일 남북정상회담실무절차 합의 ▲95년 6월29일 대북 경수로지원 합의 ▲97년 8월19일 대북경수로 부지공사 착공
  • 조순 시장 누구인가/‘서울 포청천’… 첫 민선시장

    ◎경제학자 출신… 6공때 부총리로 관료변신 20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 조순 서울시장은 학계와 관계를 두루 거친 경제전문가다.그는 만 40세부터 서울상대 교수를 지내면서 ‘한국의 케인즈’로서 꿈을 키웠다.교수시절 펴낸 ‘경제원론’은 전공과 관계없이 대학생이면 누구나 한번은 일독한 대학가의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그가 ‘상아탑’을 떠난 것은 6공시절인 88년말 경제부총리에 발탁되면서 였다.부총리 시절 국회 경과위원이었던 현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인연을 맺게 돼 94년초 김총재가 아태재단을 만들면서 자문위원을 맡는다. 그는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하면서 줄곧 ‘경제안정론’을 역설,정부측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특히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려다 “기득권자들의 반대로” 좌절된 것으로 알려졌다.또 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후보측과 정부가 ‘금리인하와 통화량 증가’ 등의 경기부양책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해 결국 한은총재직을 물러났다는 후문이다. 조시장은 어린 시절부터 수재로 꼽혔다.강릉 중앙초등학교 시절 그는 책읽기를 즐기는 모범학생이었다.중학시절 조시장은 작은 아버지가 판사로 재직하던 평양으로 옮겨 평양중학교를 다니다 경기중학에 편입했다.경기중학 시절 그는 독서회에 가입,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다 ‘이념논란’에 휩쓸리기도 했다.그는 서울상대 전문부를 졸업한뒤 강릉농고 영어교사를 역임하다 6·25때 육군 통역장교를 거쳐 육사 영어교사직을 맡았다.이를 인연으로 조시장은 80년 그가 가르쳤던 신군부 인사들이 득세하자 국보위 경과위원장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지난 95년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민주당에 입당,첫 민선시장으로서 정치입문의 꿈을 키운 조시장은 청렴하고 고고한 이미지로 ‘포청천’ ‘산신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12·12 상고심 선고­81년1월24일 내란종료 판결 의미

    ◎「5공 통치행위 무효」 대혼란 배제/자위권 보유 천명 발포명령 아니다/황영시·정호용씨 내란목적 살인죄/의사당 점거·국보위 국헌문란 규정 12·12사건은 「군사 쿠데타」,5·18사건은 「내란」으로 청사에 기록되게 됐다.대법원은 17일 이같은 확정판결과 함께 그동안 검찰과 변호인,1·2심 재판부 사이에 엇갈렸던 몇가지 쟁점에 관한 법리 논쟁을 마무리지었다. 먼저 내란죄의 종료시점에 관련,재판부는 유일하게 항소심 판결내용을 깼다.항소심은 국민적 저항에 밀려 87년 「6·29선언」으로 「항복」하기까지 폭동행위가 계속됐다고 보았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폭동행위가 끝난 것은 「비상계엄 해제일인 81년 1월24일」이라고 규정했다.내란죄가 「계속범」이 아닌 「상태범」이라는 판단에서다.이 점에서 변호인측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지만 폭동행위의 종료시점이 80년 9월1일 전두환 피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날이라는 변호인측 주장은 기각했다. 대법원이 항소심대로 87년 6월29일로 규정할 경우 5공 정권자체가 불법정권으로 당시 이뤄졌던 모든 법률적·행정적 행위가 무효화돼 파문을 불러 올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다음은 황영시·유학성 피고인에게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한 부분이다.1심 무죄,항소심 유죄로 엇갈렸지만 항소심의 손을 들었다.이들 피고인이 육본과 국방부 회의 등에 참석,광주 재진입 작전지침을 작성해 계엄군으로 하여금 특정집단에 대해 「살인」 의도를 갖고 유혈·강경 진압케 했으므로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위권 보유천명을 실질적인 발포명령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도 항소심의 판단을 따랐다.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담화문이나 계엄훈령 등에 『계엄군이 무장시위대가 아닌 사람에게 발포해도 좋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밖에 국회의사당 점거 및 폐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은 모두 국헌문란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12·12사건의 정승화 총장 연행과 관련,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했다는 변호인측의 주장에 대해 『묵시적으로라도 이를 승낙했다고 볼 자료가 없고,오히려 이를 거절했다』며 일축했다. 한편 박만호 대법관은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에 대해 『대통령과 국회 등 통치권의 담당자가 교체되는 등 국가 헌정질서의 변혁을 가져 온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사법적 심사대상이 아니다』며 유·무죄를 판단하지 말고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박만호·신성택 대법관은 내란목적 살인죄의 공소시효 문제와 관련,『이 죄의 범죄행위가 80년 5월27일에 종료돼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공소시효가 끝났다』며 면소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12·12」 「5·18」 재판일지 ▲95년 10월19일=민주당 박계동 의원,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폭로. ▲10월20일=대검 중수부 수사착수. ▲11월16일=노 전 대통령 구속수감.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제정 발표. ▲12월3일=전두환 전 대통령 안양교도소 구속수감. ▲12월4일=조홍 전 수경사 헌병단장 등 관련자 본격소환. ▲12월15일=헌재,5·18헌법소원에 대해 사건종료 결정.▲12월18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첫공판. ▲12월21일=5·18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특별법 제정,공포. ▲96년1월17일=장세동·최세창·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등 구속영장청구. ▲1월23일=전·노 전 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차규헌 피고인 등 기소. ▲1월29일=노 전 대통령 비자금 관련 재벌총수 14명 구형. ▲1월30일=정호용·허삼수·허화평 피고인 구속영장 청구. ▲2월16일=헌재,5·18특별법 합헌결정. ▲2월22일=박준병 피고인 구속영장 청구,최세창·장세동 구속. ▲2월26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첫공판. ▲2월28일=12·12 및 5·18사건 수사종결. ▲4월29일=전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안현태 피고인 등 4명 구형. ▲6월27일(17차공판)=윤성민 전 육참총장 등 증인 신문시작. ▲7월4일(19차공판)=전·노 피고인측의 변호인단 집단불출석,재판부 국선변호인 선임. ▲7월8일(20차공판)=전·노 피고인측 이양우 변호사 등 변호인 8명 집단사퇴. ▲7월16일=유학성·황영시·이학봉 피고인 구속집행 정지. ▲7월29일(25차공판)=유학성·황영시 피고인측 정영일 변호사 등 변호인 6명 집단사퇴. ▲8월5일(27차공판)=김경일 12·12당시 1공수1대대장의 증언을 끝으로 사실심리종료.검찰전·노피고인 비자금 사건과 병행해 구형. ▲8월26일(28차공판)=12·12 및 5·18사건과 전·노 피고인의 비자금사건 피고인 34명에 대한 선고. ▲10월7일=12·12및 5·18사건 항소심 첫공판.최규하 전 대통령 등 증인 33명채택. ▲10월10일=전·노씨 비자금 사건 항소심 첫공판. ▲11월7일=노씨 비자금사건 2차공판. ▲11월14일=최 전 대통령 강제구인.항소심 결심 및 검찰구형. ▲12월16일=항소심 선고. ▲97년4월17일=대법원 선고.
  • 오늘 12·12 5·18 최종판결

    ◎「내란 종료시점」 원심파기 여부 관심/일부피고 살인죄·정태수씨 업무방해 무죄 수용도 주목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대한 상고심 판결의 향방은 크게 3가지로 나눠진다. 검찰과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해 원심(항소심)을 확정하거나,원심 가운데 일부를 깨고 대법원이 직접 판결(파기자판)할 가능성 및 사건 전부를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다시 심리(파기환송)토록 하는 것이다. 이번 재판에서 대법원은 사건 전체에 대한 파기환송을 할 경우 재판에 또다시 장기간이 걸리는 점 등 여러 사정에 비춰 일단 파기환송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일부 피고인에 대한 파기환송은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사건을 되돌려보내지 않더라도 파기자판의 형식으로 재판과정에서 부각된 각종 쟁점 가운데 일부에 대해 원심과 다른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원심 파기 가능성이 점쳐지는 부분은 내란죄의 종료시점과 금융실명제와 관련해 차명거래의 위법성 여부 등이다. 우선 내란행위의 종료시점을 87년 6·29선언으로 본 항소심 판단은 깨질 공산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5공 정권 자체를 「불법 정권」으로 규정하면 당시 이뤄진 각종 통치·행정행위 등의 법적 효력도 원인무효가 되는 등 겉잡을수 없는 파문이 예상되기 때문이다.검찰이나 1심 재판부의 판단처럼 비상계엄해제일인 81년 1월24일이 거론되고 있다.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 등 일부 피고인의 업무방해죄에 대한 무죄판결이 확정될 지 여부도 주목된다.원심은 노씨의 비자금을 실명전환해 준 정피고인 등에 대해 『금융기관은 돈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었다.금융실명제 실시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차명거래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울수 없다는 것이다.대법원도 같은 해석을 내리면 업무방해죄 적용 자체가 불가능하게 돼 앞으로 유사사건에 대한 수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호용·황영시 피고인에게 적용된 내란목적 살인죄의 수용여부와 80년 신군부의 국보위 설치 운영 등이 내란죄의 국헌문란 행위인지에 대한 판단도 주목거리다.
  • 권정달씨 기소유예 처분/허문도씨등 5명 무혐의/언론 통폐합 관련

    서울지검은 10일 지난 80년 언론 통·폐합과 언론인 강제 해직을 주도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로 고소된 권정달 전 보안사 정보처장을 기소유예 처분했다고 밝혔다.함께 고소된 허문도 당시 국보위 문교공보분과위원 등 5명은 무혐의 처분했다.
  • KIEP 원장 양수길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양수길 교통개발연구원장을 원장으로 선임했다. 유장희 전 원장은 3월 문을 여는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사표를 제출,수리됐다. 양원장(53)은 서울대 공대와 미 존스홉킨스대(경제학박사)를 졸업했으며 국보위 전문위원,한국개발연구원(KDI)연구위원,경제부총리 자문관 등을 지냈다.
  • 개신교/KNCC의 「개혁·개방」 이룬 해/’96 종교계 결산

    ◎불교­사찰환경 보존·지역개발 대립 핫이슈/카톨릭­2천년 「대희년」 준비·우리말 교리서 완성 올해 개신교와 불교·카톨릭 등 종교계는 조용한 가운데 교계별로 「21세기를 맞는 준비」를 갖춘 한해였다. 불교계는 사찰환경보존과 지역 주민들의 개발의지가 첨예하게 대립했으며 개신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를 가맹교단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교회협의 개혁과 개방을 이루었으며 카톨릭은 2000년 대희년을 맞는 준비와 교리서·미사통상문의 우리말 시행등 카톨릭신앙의 토착화에 성공한 한해였다. 불교신문과 불교방송·월간 불교등 불교 관련 언론인들이 뽑은 「96 불교계 10대뉴스」는 ▲경부고속철도 경주도심통과 반대운동 ▲해인골프장 건설 반대운동 ▲대통령 국군군종센터 방문및 종교편향 파문 ▲석굴암 돔과 본존불에 균열발견 ▲불교 대구방송국 개국 ▲해인사 고려대장경 CD롬화 ▲초파일 전후로 잇따라 일어난 훼불사건 ▲종합토지세법을 비롯한 사찰 토지관계법 정비 ▲불교청소년단체 파라미타창립 ▲세계불교석학 세미나 등이다. 이밖에 ▲한·중·일 불교우호대회 개최와 ▲서경보스님·이기영 박사 등 열반과 타계도 주요뉴스였다. 불교계는 올해 연초부터 고속철도의 경주도심 통과와 해인사 인근의 가야산 해인골프장 건설 반대운동을 편 결과 사찰환경과 문화재보호차원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뜻깊은 한해였다. 기독교 신문이 선정한 개신교계의 올해 주요뉴스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개혁과 개방 ▲북한주민 돕기운동 ▲대한예수교 장로회에 여성목사 탄생 ▲다락방전도운동 이단규정 ▲기독신학대학원과 합동신학대학원 설립인가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했던 교계인사들 반성 및 과거 청산성명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지역총회제로 전환 ▲한국찬송가공회 「수정본 찬송가」발행 중단 ▲부활절연합예배 여의도광장에서 장충체육관으로 장소변경 등이다. 가톨릭신문이 선정한 카톨릭교회 10대뉴스는 ▲한·일 주교단이 공통역사교재의 편찬추진 ▲한국주교단의 교황청방문 ▲카톨릭교회 교리서 우리말본 완간 ▲우리말 새 미사 통상문 인중 및 시행 ▲김대건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수원교구 최덕기 부주교 탄생 ▲인천 가톨릭대학교 개교 ▲광주 및 대구평화방송국 개국 ▲서울 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북녘형제와 국수 나누기운동 전개 ▲한국교회에 첫 4형제신부 탄생 등이다. 이밖에 불교와 개신교,카톨릭,민족종교 등이 연합해서 북한수재민돕기 운동을 펴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설립했으며 남북통일에 대비해서는 북한에 있던 사찰·교회·성당 등 종교시설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돋보였던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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