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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년 국보위법 입법은 무효”/해직자 34명 복직판결

    ◎해직 국회직원 승소 서울고법 특별3부(재판장 고중석부장판사)는 24일 지난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법 부칙조항에 따라 강제면직된 전국회 공무원연수원장 장욱상씨(58ㆍ국회 임법심의관) 등 국회해직공무원 39명이 국회의장과 국회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면직처분 무효확인청구소송에서 『장씨 등 34명에 대한 면직조치는 무효』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그러나 정년을 넘긴 장창종씨(65ㆍ전 국회부이사관) 등 5명에 대해서는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회가 80년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법 부칙조항에 따라 공무원을 면직한 조치는 헌법의 공무원신분보장 규정에 위반되므로 무효』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장씨 등은 그동안 지급받지못한 9년동안의 봉급과 이자 등 금전적보상을 받게됨은 물론 신분상 완전한 원상회복을 하게됐다. 원고 장씨 등은 지난80년 11월 강제면직된뒤 88년9월 이 면직 처분이 무효라고 소송을 낸데 이어 헌법재판소에도 헌법소원을 내 지난해 12월 국가보안법회의법 부칙 제4항의 위헌결정을 받아냈었다.
  • 재벌가 형제들/“상부와 상쟁”… 「숙명의 짐」 나눠진다.

    ◎경영참여ㆍ분가 등 오늘의 현주소를 알아보면/선대 때 대부분 “영토 분할”… 갈등소지 줄여/삼성 “3남 승계” 특이… 현대는 불화 씻어내/금성,인화바탕 위계 엄격… 불협화 적은 편/경영 소외땐 가족유대 단절등 비극도 재벌의 성장사를 살펴보면 왕조사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창업과정에서는 전집안이 동원돼 부의 성을 쌓지만 일단 성이 완성되면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의미에서 총수의 형제들은 항상 주목받아 왔다. 왕조하에서 대군 또는 군은 견제의 대상이 되며 때로는 역모의 누명을 쓰고 희생되기도 한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낸 예에서 보듯 이들은 항상 잠재적인 「권력에의 도전자」로 치부됐다. 이래서 현대판 영주인 재벌총수의 형제들은 어쩌면 숙명적인 짐을 지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조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영토의 분할 또는 새로운 영토개척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대물릴수록 세포분열 ○…국내의 재벌가 「형제」들은 대부분 총수와 가족적 유대로 뭉쳐 상부상조하며 경영상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위상은 현직 총수가 창업자인지 혹은 2ㆍ3세 승계자인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창업자가 총수로 있는 경우 형제들은 창업공신으로서 그룹내의 주요 직책을 맡거나 일부 계열기업을 넘겨받아 독립하는 등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에 비해 2ㆍ3세 총수의 형제들은 경영일선에서 도외시되기도 하며 승계다툼이 심했던 경우에는 아예 가족적인 교류마저 끊기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대를 물릴수록 세포분열의 조짐이 나타나 이미 분할을 마친 그룹도 적지 않으며 일부 그룹은 분리과정에 있다. 이 경우 독립하는 형제가 적지 않은 지분을 챙겨 본가에 버금가는 독자적인 성을 쌓기도 했다. ○정명예회장 절대권한 ○…현대그룹은 그룹규모 못지않게 형제의 수가 많은 것으로도 한 몫을 한다. 창업자이면서 아직도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정주영 명예회장(75)은 6남1녀의 장남이면서 8남1녀의 자녀를 둔 대가족의 가장이다. 정명예회장의 동생 4명(다섯째 신영씨는 동아일보 기자로재직중 62년 사망)은 모두 형을 도와 현대그룹을 키워온 일등공신들. 그러나 그룹의 덩치가 커지면서 3명은 독립,별도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둘째인 인영씨(70)는 만도기계등 8개 계열사를 거느린 한라그룹 회장으로,한라그룹 자체가 국내 48대 재벌에 끼이는 또다른 재벌총수이다. 50년대초부터 형과 사업을 함께 하다 77년 분가했다. 분가 이유로는 중동진출과 관련해 의견이 엇갈렸다는 것이 현대나 한라측의 공식 설명이지만 현대양행(현 한국중공업) 설립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분리 이후 이 형제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는 것을 기피할 정도로 단절된 상태였다가 지난 80년 국보위 시절 인영씨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을 계기로 화해했다. 정회장이 자주 면회를 한 것은 물론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곧 풀려날 수 있었던 것. 인영씨가 지난해 7월 고혈압으로 쓰러지자 정회장은 미국의 병원을 주선,치료받도록 했고 해외출장 때마다 들러 격려하곤 했다. 정명예회장은 『한라그룹이 어려우면 현대에서 도와주라』고 지시할 만큼 요즘은 동생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하고 있다. 셋째 순영씨(68ㆍ현대시멘트 회장),여섯째 상영씨(54ㆍ금강 및 고려화학 회장)도 이 무렵 계열기업을 나눠 받고 독립했다. 지금은 넷째 세영씨(62ㆍ현대그룹 회장)만이 그룹에 남아 형을 돕고 있는데,87년 2월 그룹회장을 맡아 사장단회의등 그룹내 일상사를 직접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이 스스로 밝히듯 시베리아개발 등 그룹의 투자를 결정하는 일은 아직도 정명예회장이 직접 처리한다. ○맹희씨,스스로 물러나 ○…삼성 고 이병철회장의 자녀는 모두 4남6녀. 이 가운데 이건희 현회장(48)을 포함한 3남4녀가 적자로,이회장은 적자태생으로는 막내아들이기도 하다. 71년 후계자로 지목돼 경영수업을 받아오다 87년 11월 이병철 회장이 별세하자 대권을 이어받았다. 맏형 맹희씨(59)는 그룹경영에 전혀 개입치 않고 있고 둘째 창희씨(57)는 73년 독립,현재 새한미디어를 경영하고 있다. 삼성이 이처럼 이례적인 말자상속을 한데 대해 고 이병철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은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다가 그룹에 혼란이 생기자 자청해 물러났고 2남은 본인이 알맞은 규모의 회사를 경영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형제간 재산분배는 이미 선대 생존시 이루어져 맹희씨는 안국화재 해상보험,창희씨는 제일합섬,맏누님 인희씨(61ㆍ신라호텔 고문)는 고려병원과 신라호텔,여동생 명희씨(47ㆍ신세계백화점 상무)는 신세계백화점의 대주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부장제적 권위 유지 ○…럭키금성 구자경 회장의 2대 그룹회장직 취임은 상당히 드라마틱했다. 창업자인 고구인회 회장이 69년 세밑에 급작스레 타계하면서 「누가 그룹을 맡을 것인가」가 세인들의 큰 관심거리였다. 당시에는 구인회 회장의 큰 동생인 철회씨(그때 61세ㆍ낙희화학 사장)등 창업자의 형제 4명이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었고 구자경 현회장은 45세에 금성사 부사장을 맡고 있었다. 기라성 같은 숙부들을 제치고 창업자의 장남인 자경씨가 회장직에 오를까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장례식을 마친 뒤 처음 열린 회의에서자경씨를 회장으로 전격 추대한 사람은 철회씨였고 「정권교체」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구인회가는 인화와 위계질서를 내세우며 철저한 가부장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어 숙질간이나 형제간에 불협화음이 새어 나오는 일이 없다. 현재는 구자경 회장의 형제 가운데 셋째 자학(60ㆍ금성일렉트론 회장) 넷째 자두(58ㆍ희성산업 부회장),여섯째 자극씨(44ㆍ미주분실 전무) 등이 그룹 일을 보고 있고 다섯째 자일씨(55ㆍ일양전기 회장)만이 독자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 선대인 회자 항렬을 포함,자자와 본자 등 3대를 합치면 모두 24명이 그룹경영에 참여중이다. ○덕중씨,81년 학계 복귀 ○…대우 김우중회장(55)은 5형제의 넷째. 둘째 관중씨(60ㆍ예비역준장)는 계열사인 항만업체 대창기업을 맡고 있다가 이를 인수,독립했고 셋째 덕중씨(57ㆍ서강대 교수)는 76년부터 대우실업 사장으로 동생일을 돕다가 81년 학교로 돌아갔다. 막내 성중씨(50)만이 대우자동차 사장으로 그룹 일을 보고 있다. ○…한진그룹 조중훈회장(70)의 형제 3명은그룹의 성장과 영욕을 함께 하면서 1명의 이탈자도 없이 현재도 모두 그룹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보기 드문 케이스. 맏이인 중렬씨(75)는 한일개발 부회장,동생인 중건씨(58)가 대한항공 사장, 막내 중식씨(55)는 한일개발 사장이다. ○3개주 연립정부 비유 ○…이미 실질적인 분할을 마쳤거나 준비중인 그룹도 여럿 있다. 효성그룹은 선대 고 조홍제 회장이 3형제간의 기업배분을 마쳤다. 장남인 조석래 회장(55)이 효성물산등 주요기업 14개를 맡았고 둘째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53)이 한국타이어 및 한국전지 등 2개사를,셋째인 조욱래 대전피혁 사장(41)이 7개사를 맡았다. 효성측은 이들의 관계를 「3개주로 구성된 연립정부」에 비유한다. 한국화약그룹도 김승연 회장(38)과 김호연 한양유통사장(35),누나 김영혜씨(42) 등 3남매간에 분리될 전망이다. 호연씨가 현재 사장직을 맡고 있는 한양유통과 19%로 최대 주식을 갖고 있는 빙그레를 갖고,누나인 영혜씨는 남편 이동훈씨(42)가 사장으로 재직중인 고려시스템과 자신이 21.3%의 주식을 보유한 제일화재를 가질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쌍용그룹은 장남인 김석원 회장(45)이 석준(37ㆍ쌍용건설 사장) 석동씨(30ㆍ쌍용투자증권 과장) 등 동생들을 이끌며 사이좋게 그룹을 경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동아그룹의 경우는 최원석 회장(47)의 동생 원영씨(36)가 그룹경영과는 별도로 문화예술 계통의 예음그룹을 이끌고 있다. ◎경영권 타툼에 촉각/코오롱,「대권」 싸고 숙질간 마찰 절정/일정기간 경영 분가… 알력 사전 예방 재벌가의 대권승계 과정에는 많은 다툼이 있었다. 2세 형제간에도 있었고 나이 어린 2세와 공이 큰 숙부사이에도 있었다. 코오롱그룹의 창업자인 이원만씨(87)의 동생 원천씨(작고)와 이동찬 현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따라서 창업자들은 흔히 그룹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형제들을 분가시킨다. 현재 주요그룹의 핵심 경영진 가운데 형을 도와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는 현대그룹의 정세영 회장과 한진그룹의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정회장은 현대자동차를,조사장은 대한항공을 현재의 위상으로 키우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정회장을 그룹회장으로 임명한 뒤 『앞으로 10년은 정세영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말은 정회장에게 그룹을 「맡기는」 기간이 한시적이며 후계자는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아직 2세 승계가 현안으로 떠오르지 않아 조사장의 분가여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러나 재계는 언젠가 이들이 그룹을 떠나야 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때 어느 정도 지분을 인정 받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에게 자신이 키운 현대자동차와 대한항공을 나눠 주는 것이 순리라고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이들 기업이 그룹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막중하다는 시각이다.
  • 정문화 총무처차관(얼굴)

    ◎업무처리ㆍ유머감각 뛰어나 24년 공직생활중 20년을 총무처에서 보내 누구보다 총무처 안팎의 사정에 밝은 정통 총무처 맨. 인상이 다소 매워서 대인관계에서 손해보는 면도 없지 않으나 유머감각으로 이를 극복한다. 상황분석이 남다르다는 평에서 보듯 업무처리가 능수능란하다. 80년초에는 국보위에 잠시 파견근무했다가 다시 행정관리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5공초의 정부조직개편을 단행한 산파역이었다. 차관급으로 승진한뒤 소청심사위원장과 중앙공무원교육원장 등 한직에 머물러 있어 관운이 끝난 게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부인 노몽규여사(49)와의 사이에 1남2녀.
  • 차관등 인사

    ◎농림수산 이동우ㆍ총무처 정문화 씨/산림청장 최평욱ㆍ황해지사 방준필 씨/공무원연수원장 황병인 씨/종합화학사장 이병기 씨/대전무박사무총장 손종석 씨 내정 정부는 26일 농림수산부차관에 이동우 산림청장을 임명하는 등 차관급 5명의 인사를 단행했다. 이날 인사에서 총무처차관에는 정문화 중앙공무원교육원장,산림청장에는 최평욱 전 보안사령관,황해도 지사에는 방준필 안기부자문위원,총무처 중앙공무원교육원장에는 황병인 소청심사위원장이 각각 임명됐다. 정부는 또 이병기 농림수산부차관을 한국종합화학사장에 임명하고 손종석 총무처차관을 국제무역산업박람회 사무총장에 내정했다. 이번 차관급 인사는 김용휴 한국종합화학사장 겸 남해화학사장이 아들의 부도사건으로 퇴진해 수습이 필요한데다 허남훈 환경처장관이 맡고 있던 국제무역산업박람회 사무총장 자리를 메우기 위해 단행된 것이라고 이연택 총무처장관이 말했다. ◇이 농림수산부차관 약력(55ㆍ충남 부여)=▲홍익대 법학과졸 ▲농수산부 농지개발국장ㆍ농업개발국장 ▲대통령비서실비서관 ▲농림수산부 제1차관보 ▲산림청장 ◇정 총무처차관 약력(50ㆍ부산)=▲서울대 법대졸 ▲총무처고시ㆍ총괄과장 ▲〃전산계획담당관 ▲국보위전문위원 ▲총무처행정관리ㆍ인사국장 ▲〃행정조사연구실장ㆍ기획관리실장 ▲소청심사위원회위원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최 산림청장 약력(53ㆍ경남 남해)=▲육사 16기 ▲인사운영감 ▲인사참모부장 ▲7군 단장 ▲보안사령관 ▲교육사령관 ◇황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약력(56ㆍ전북 전주)=▲서울대 법대졸 ▲총무처 행정관리국심의관ㆍ인사국장 ▲〃행정조사연구실장ㆍ기획관리실장 ▲소청심사위원회위원장 ◇방 황해도지사 약력(59ㆍ황해 안병)=▲국제대학 법학과졸 ▲연세대행정대학원 행정학과수료 ▲안기부 서울지부장 ▲〃종합판단실장 ▲〃자문위원 ◇손 국제무역박람회 사무총장 약력(52ㆍ서울)=▲서울대 법대졸 ▲총무처 의정ㆍ인사과장 ▲정부청사관리사무소 인사부장 ▲총무처 인사국장 ▲〃기획관리실장 ▲중앙공무원 교육원장 ▲총무처차관
  • 뭔가 잘못돼가는 세태/황산성 변호사(서울시론)

    ◎사회악 추방은 온국민의 합심으로… 도심 한복판에서 자동차의 소음ㆍ공해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왁짜지껄이는 잡음을 들으면 황량하고 삭막한 삶을 실감한다. 그러나 시멘트블록 사이로 뚝심좋게 뻗어난 사철나무위에서 재잘거리는 참새소리에 깨어나는 아침의 감격이 뿌듯해진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고 시인 김영랑은 5월은 창엄한 햇살이 퍼지는 달이라고 읊었다. 그 아름다운 5월을 보내면서 어디선가 『더럽다,더럽다. 미쳤다,미쳤다. 망한다,망한다,망한다』하는 탄식소리가 내 귓가를 때리고 있다. 지금 이 때에 만약에 하늘로부터 특명을 받은 예언자가 나타난다면 분명히 이 세마디를 외며 통곡하고 헤매리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탄식소리 들리는 듯 모두가 먹고 마시며 기분내는 놀자판에서 돌팔매질을 당하면서도 그 예언자는 계속 그 말들을 외칠 것이다. 어느 청렴한 젊은 경찰관이 권총자살을 했다. 나는 그의 자살을 무척 안쓰러워 한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기가 힘겹고 뿌리칠 유혹은 많다.집안에서 철없는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과 바가지 긁는 소리에 미칠 것 같다. 그 결과 그 집안은 망해버린 것이다. 어느 여고 3학년 학생이 아침 일찍 보충수업 등교길에 집 근처 50m 떨어진 곳에 보온도시락을 버려둔 채 행방불명이 되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그 여학생이 그렇게 깜찍하게 납치극을 위장한 가출극을 벌였다기 보다는 납치로 인정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경찰은 그 여학생을 찾기도 전에 가출이라고 단정하였다. 수사촉각과 현장감각이 뛰어나서 그런 결론을 얻고 있다면 우리국민 모두가 경찰에 대한 신뢰와 존경으로 안심해도 되는 치안만세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의 실상은 그렇게 평가내릴 수가 없다. 흔히들 중매로 사귀다가 결혼한 경우에 중매반 연애반이라는 말에 비유된다. 그 여학생은 공부가 하기 싫어서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나섰다가 그날로 인신매매단에 넘겨진다. 가출이든 납치든 미성년의 어린 여학생이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가출신고를 받으면 경찰은 열심히 찾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가출한 지 40일후 내가 출연하는 MBC­TV 프로그램 「여론광장」에서 이 여학생의 실종을 다루게 되었다. 방송 전날밤 하나님께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아 헤매신다는 주님이시여. 주님은 이 어린양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겠지요. 방송을 통하여 이 아이를 꼭 찾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간절히 기도드렸다. 그 여학생은 이미 눈쌍꺼풀 수술과 파마머리를 했기 때문에 그 가족들도 알아보기 어려운 얼굴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과거 방식으론 안 통해 기도의 힘은 큰 것이다. 신문보도와는 달리 어느 시민의 제보가 아니었고 여러 손을 거쳐 마지막으로 데리고 있는 포주가 이 방송을 본 것이다. 아이를 찾으려는 열정적 나의 태도에 놀라 이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골치아프겠다며 경찰에 인계하였다 한다. 경찰은 그 여학생을 인도받은 지 무려 7시간후에 애타는 부모에게 연락하였다. 먼저 신문기자에게 배부할 진술서와 녹음내용을 다 만든 후에 말이다. 그무렵 며칠동안 자칭 인신매매단이다,경찰관이다 하는 남녀들로부터 집으로 사무실로 교회로 협박전화때문에 전화통이 불이 났다. 내가 더러운 곳만 건드리면 미치광이처럼 발작하는 자들이 왕왕거리는 세태에 우리식구들은 이미 익숙하여 그자들로부터 시달리지 않는다. 작년 여름에 가출한 딸을 찾는 부모가 시경에 가출신고를 했더니 YMCA 신고센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인신매매단에서 활약한 전력있는 사람의 경험에 의하면 경찰이 3일만 집중단속을 하면 인신매매단의 소굴은 뿌리를 뽑을 수 있다고 한다. 올 상반기 가출ㆍ납치사건을 시경에서 3건,대검에서 5건,민주시민운동연합에서 25건을 해결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공권력에 대한 신뢰성의 도는 가늠할 수 있다. 공직자 비리조사운운으로 다소 퇴폐산업이 기울어지고 있다 한다. 요즘처럼 부조리와 퇴폐문화가 만연되고 있는 때가 또 있었을까. 정부관리나 기업체 임직원들,세도부리는 사람들 치고 뇌물 주고받는 향응과 바이어들이 베푸는 기생파티나 술집에는 으레 여자의 시중이 있어야 한다는 빗나간 접대문화가 우리사회를 이모양 이꼴로 만들지 않았겠는가. 만 16로세부터 29세까지 6백50여만명 여성중 5분의 1이 접객업소에 근무하고 있다 한다. 딸과 아내와 어머니,즉 여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진다면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있는 실태인가. 정말로 바른 삶과 행복한 삶은 도덕관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한편에서는 또 돈이 너무 많아서 미치고 있다. 작년 한해 재벌기업이 사들인 땅이 약 2조4천억원어치라고 한다. 서울에 땅 한평 안가진 사람이 71%인데 애써 모든 국민의 저금으로 기업들이 기술개발이나 기업설비 증설은 하지 않고 부동산투기에만 열을 올렸다. 그래서 미친 여자 널뛰듯이 부동산값은 폭등했다. 덩달아 최근 9년만에 가장 심한 물가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다가 계층간의 갈등을 폭발시켜 끝내 자유민주주의체제,자유경제체제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절박한 상황에서 5ㆍ8조치가 나왔다. 지난 80년 9월27일 국보위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있었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정부는 1990년대에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음성ㆍ진천군의 보궐선거의 결과에서 교훈삼아 강력하고 지속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도덕관의 재정립을 국민소득 4천달러의 우리가 국민소득 1천만달러 수준의 국민 이상으로 과소비를 하고 있는 망국의 징조가 보인다. 외신들은 한국에서 다시는 기적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우리 모두 씀씀이를 절제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듯 근검절약하는 마음가짐으로 합심하여 노력해야겠다. 하나님께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하던 중 내 생각,내 염려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할테니 좀 기다려보라고 하신다. 분명히 곳곳에 숨은 의인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 김용균 체육차관(차관급 후속인사 새 얼굴 11명)

    ◎솔직하며 대인관계 원만 솔직 담백한 성품에 업무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인관계도 원만한 편. 13대 총선에서 구민정당후보로 부산 동래을구에서 출마했다 차점 낙선. 부인 김귀조씨(45)와의 사이에 3남. ▲경남 합천출신ㆍ48 ▲서울대 법대ㆍ미아메리칸대졸 ▲미조지워싱턴대 법학박사 ▲군법무관 ▲국보위법사위원 ▲국회행정차장
  • 김종인 경제수석(새 장관ㆍ청와대 비서진의 얼굴)

    ◎원칙에 투철한 서강학파 이승윤부총리와 함께 「서강학파」의 한사람으로 보사부장관 8개월만에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게됐다. 서독 경제학박사답게 매사에 원리원칙을 고집하며 그래서 때로는 거만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5공때 국보위 재무분과 위원을 거쳐 11ㆍ12대 전국구의원을 지냈으나 13대때 서울 관악을구에서 낙선했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노선생의 손자로 고집과 뚝심도 대단한 편이다. 평소 금융실명제 반대이론을 펴기도 했던 성장론자.
  • 15부처 장관 경질/부총리 이승윤씨… 금명 차관급 후속 인사

    ◎내무 안응모/재무 정영의/법무 이종남/체육 정동성/농수산 강보성/상공 박필수/동자 이희일/보사 김정수/교통 김창식/총무처 이연택/과기처 정근모/통일원 홍성철/정무2 이계순/법제처 최상엽/청와대 비서실장 노재봉/정치특보 이홍구/경제수석 김종인/평통사무총장 현경대 노태우대통령은 17일 상오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에 이승윤민자당의원을 임명하는 등 15개부처 장관을 경질하는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노대통령은 이번 개각에서 건설장관을 제외한 경제각료 모두를 교체했으며 대통령비서실장에 노재봉정치담당특보를 기용하는 등 청와대비서진 일부도 개편했다. 이번 개각에서 내무장관에는 안응모안기부1차장,재무장관에 정영의증권감독원장,법무장관에 이종남전검찰총장,체육장관에 정동성 민자당의원,농림수산장관에 강보성민자당의원이 각각 임명됐다. 상공장관에는 박필수외국어대총장,동자부장관에는 이희일 민자당의원,보사장관에는 김정수 민자당의원,교통장관에는 김창식민주평통사무총장,총무처장관에는 이연택청와대행정수석이 각각 기용됐다. 또 과기처장관에는 정근모한국과학재단이사장,통일원장관에는 홍성철대통령비서실장,정무2장관에는 이계순서울사대교수,법제처장에는 최상엽 대검차장이 각각 임명됐다. 장관급인 민주평통사무총장에는 현경대 전의원(구민정)이 기용됐으며 대통령비서실은 이홍구통일원장관이 정치담당특보로,김종인보사장관이 경제수석비서관으로 각각 임명됐다. 이번 개각에서 강영훈국무총리 김영준감사원장 서동권안기부장과 최호중외무 이상훈국방 정원식문교 이어령문화 권영각건설 최영철노동 이우재체신 조경식환경처 최병렬공보처 박철언정무1장관 및 이상연보훈처장은 유임됐다. 3당통합 처음으로 단행된 이번 개각에서는 구민주ㆍ공화출신의원을 포함,민자당의원 5명이 내각에 진출했으며 특히 경제팀의 대폭 교체로 인해 여권의 정국운영방향과 경제시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이날 이번 개각의 배경과 관련,『노대통령의 이번 대폭 개각은 정계개편으로 굳건한 안정의 기틀이 마련됨에 따라새로운 정부의 진용과 체제를 갖추어서 국정분위기와 민심을 쇄신하고 국민이 기대하는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 단행됐다』고 밝혔다. 이대변인은 이어 인선의 기준에 대해 『노대통령은 90년대를 여는 지금 국정의 운영에는 국민의 화합과 폭넓은 참여가 중요하다는 생각 아래 각 분야와 지난날의 여야를 두루 망라해 능력과 경험있는 인사를 폭넓게 기용했다』면서 『노대통령은 특히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조속히 극복하는데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의지로 경제부처간에 긴밀한 협조체제가 이루어지고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해 나가도록 하는 점을 이번 경제부처인사에서 특별히 배려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이날 충북 청남대에서 김영삼ㆍ김종필 민자당최고위원과 회동,개각내용과 인선배경을 설명하고 정부개편이후의 민자당및 국정운영방안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노대통령은 19일 상오 이부총리를 비롯한 신임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 약력(경남 마산ㆍ54)〓▲서울대정치학과졸 ▲뉴욕대 정치학박사 ▲미암스트롱대 조교수 ▲서울대교수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 ▲대통령 정치담당특별보좌관 ◇이홍구대통령정치담당특보 약력(서울ㆍ56)〓▲미에모리대졸 ▲예일대 정치학박사 ▲서울대교수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장 ▲세계정치학회집행위원 ▲한국정치학회장 ▲통일원장관 ◇김종인대통령경제담당수석비서관 약력(서울ㆍ50)〓▲외대 독어과졸 ▲서독 뮌스터대졸ㆍ경제학박사 ▲서강대교수 ▲국보위재무분과위원 ▲민정당 국책연구소 정책연구실장 ▲12대 국회의원 ▲사회개발연구소장 ▲보사부장관 ◇현경대민주평통자문회의사무총장 약력(제주ㆍ51)〓▲서울대법대 ▲육군법무관 ▲서울지검 검사 ▲변호사 ▲11ㆍ12대 국회의원 ▲민정당원내부총무
  • 새 내각 명단

    ●총리 강영훈 유 68 평북 창성 만주 건국대졸ㆍ미남가주대정박ㆍ육사교장ㆍ중장예편ㆍ외대대학원장ㆍ주영대사ㆍ13대 민정 전국구의원 ●부총리 이승윤 신 59 인천 서울대문리대졸ㆍ서강대경상대학장ㆍ재무장관ㆍ10ㆍ13대의원 ●외무 최호중 유 60 서울 서울대문리대졸ㆍ외무부기획관리실장ㆍ상공차관ㆍ주사우디대사 ●내무 안응모 신 60 황해 벽성 단국대졸ㆍ치안본부장ㆍ청와대정무2수석비서관ㆍ조달청장ㆍ안기부1차장 ●재무 정영의 신 53 경남 하동 서울대문리대졸ㆍ행정박ㆍ재무부차관ㆍ산은총재ㆍ증권감독원장 ●법무 이종남 신 54 서울 고대법대졸ㆍ대검중앙수사부장ㆍ서울지검검사장ㆍ법무부차관ㆍ검찰총장 ●국방 이상훈 유 57 충북 청원 육사11기ㆍ사단장ㆍ합참본부장ㆍ한미연합사부사령관ㆍ국가비상기획위원장 ●문교 정원식 유 62 황해 재령 서울대사대졸ㆍ서울사대학장ㆍ서울대교수ㆍ교육학회장ㆍ교육개혁심의위원 ●문화 이어령 유 56 충남 아산 서울대문리대졸ㆍ문박ㆍ서울신문ㆍ조선일보문학사상사주간ㆍ이대교수 ●체육 정동성 신 51 경기 여주 경희대졸ㆍ민정당총재비서실장ㆍ10ㆍ11ㆍ12ㆍ13대의원ㆍ민정당원내총무 ●농수산 강보성 신 60 제주 단국대학원졸ㆍ제주대교수ㆍ남제주고교장ㆍ11ㆍ13대의원 ●상공 박필수 신 58 서울 외대졸ㆍ한양대경박ㆍ상공부상역차관보ㆍ전매청장ㆍ외대총장 ●동자 이희일 신 59 함남 신흥 고려대졸ㆍ외무부경제차관보ㆍ농림수산부장관ㆍ13대의원ㆍ공화당종합기획실장 ●건설 권영각 유 59 경북 안동 육대졸ㆍ미참모대수료ㆍ군단장ㆍ국방부차관ㆍ주공사장 ●보사 김정수 신 53 경남 함안 부산대약대졸ㆍ약사회부회장ㆍ11ㆍ12ㆍ13대의원ㆍ민주당사무총장 ●노동 최영철 유 55 전남 목포 서울대정치학과졸ㆍ9ㆍ10ㆍ11ㆍ12대의원ㆍ국회부의장ㆍ체신부장관 ●교통 김창식 신 61 전남 강진 국민대졸ㆍ총무처차관ㆍ청와대정무수석비서관ㆍ내무부차관ㆍ평통사무총장 ●체신 이우재 유 56 서울 육사13기ㆍ국보위교체분과위원장ㆍ11대의원ㆍ전기통신공사사장 ●총무처 이연택 신 54 전북 고창 동국대법학과졸ㆍ국무총리비서실행정심의관ㆍ청와대행정수석비서관 ●과기처 정근모 신 51 서울 서울대문리대졸ㆍ미뉴욕대교수ㆍ한국전력기술사장ㆍ과학재단이사장 ●통일원 홍성철 신 64 황해 은율 서울대상대졸ㆍ내무부장관ㆍ보사부장관ㆍ대통령비서실장 ●환경처 조경식 유 54 경남 밀양 서울대상대졸ㆍ국방부차관보ㆍ해운항만청장ㆍ교통부차관 ●공보처 최병렬 유 52 경남 산청 서울대법대졸ㆍ조선일보편집국장ㆍ민정당국책연구부소장ㆍ정무수석비서관 ●정무1 박철언 유 48 대구 서울대법대졸ㆍ대통령정무비서관ㆍ대검검사ㆍ13대의원ㆍ대통령정책보좌관 ●정무2 이계순 신 63 대구 서울대사범대졸ㆍ서울대사범대교수ㆍ한국여성유권자연맹회장 ●법제처 최상엽 신 53 경북 영일 서울대법대졸ㆍ사법연수원부원장ㆍ대검공안부장ㆍ대검차장 ●보훈처 이상연 유 54 경북 성주 경북대졸ㆍ보안사정보과장ㆍ민정당중앙정치연수원장ㆍ서울부시장ㆍ대구시장
  • “쟁의「3자개입 금지」는 합헌”/헌재

    ◎위헌 심판제청 기각…논란 종지부/“노사의 자주적 의사가 중요/정당ㆍ사회단체서 독립 돼야”/분규 당사자 해결,「외풍 차단」 법적근거 마련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문희재판관)는 15일 노동쟁의행위에 제3자가 개입할 수 없도록 규정한 노동쟁의조정법 제13조 2항과 벌칙조항인 제45조 2항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날 이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정진동씨(57ㆍ청주도시산업선교회목사ㆍ청주시 사직2동 360의8)의 신청에 따라 청주지방법원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에서 『쟁의행위는 노동관계 당사자사이의 자유롭고 자주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밝히면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기업과 근로자는 쟁의행위로 발생하는 손해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므로 쟁의행위의 여부와 방법은 노사당사자의 책임아래 자주적으로 결정돼야 하고 국가ㆍ정당ㆍ사회단체ㆍ경쟁기업 등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제3자개입금지조항은 근로자측에 대한 개입 뿐만 아니라 사용자측에 대한 개입까지도 함께 금지한다고 볼수있으므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합헌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조항은 조종ㆍ선동ㆍ방해행위를 규제하고 있을뿐 변호사나 공인노무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할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의 총연합단체나 산업별연합단체의 도움을 받을 길은 열어두고 있으므로 근로3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금지조항은 그동안 『노동운동을 가로막는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는 재야측의 위헌론과 『쟁의행위에는 노동관계당사자의 희생이 따르므로 그 과정은 당사자의 자주적인 의사에 따라 진행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재조측 합헌론이 팽팽히 맞서왔으나 이날 판결로 다툼의 여지가 없어졌다. 이같은 결정과정에서 김문희주심 등 5명이 제3자개입은 무조건 금지돼야 한다는 합헌론을,김양균재판관 등 3명은 『노동운동의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제3자의 부당한 개입행위만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한정적 합헌론을 펴 9명의 재판관 가운데 8명이 합헌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위헌제청을 신청한 정씨는 청주도시산업선교회의 목사로 일하다 지난88년 6월 청주시내 택시회사의 노사분규에 개입,택시운전사들을 대상으로 유인물을 나눠주고 단식투쟁을 하도록 격려한 혐의로 같은해 10월 기소됐었다.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금지조항은 지난80년 국보위에서 신설됐으며 지난해말까지 모두 81명이 이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됐다.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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