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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병·허화평·정호용·허삼수·안무혁씨등/의원5명포함 39명 출금

    ◎「12·12」·「5·18」·전씨 비자금 관련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두 사건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해 지금까지 모두 39명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린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출국금지자는 박준병·허화평·정호용·허삼수·안무혁씨 등 현역의원 5명을 비롯,12·12 때의 「경복궁모임」참석자,광주투입 부대 사단장 및 대대장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전씨 비자금과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안현태 전청와대경호실장,사공일 전청와대경제수석,이상연 전안기부장과 김종상 전청와대경호실경리과장 등도 출국금지시켰다. 검찰은 또 조비오신부 등 3명을 참고인과 피고발인 자격으로 29일 중 소환,조사키로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남덕우 전국무총리와 안영화 전국보위 운영분과위원을 소환,5·18 당시의 상황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안종훈 전군수기지사령관을 이날 재소환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안을 반대한 경위에 대해 신문했다.
  • 전씨 실명제직후 20억 「세탁」/검찰 확인

    ◎채권 20장 차명 분산뒤 현금인출/남덕우 전총리 등 오늘 소환조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7일 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작전참모 백남희씨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사무처장 오경락씨,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 정석환씨 등 3명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또 28일 남덕우 전국무총리와 안영화 전국보위운영분과위원장을 불러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검찰은 백씨를 상대로 전남북 계엄사령부였던 전교사의 작전상황과 공수부대 등 광주에 출동한 진압군의 실질적인 지휘계통등에 대해 집중조사했다. 검찰은 오씨에 대해 국보위의 활동이 본래의 설립취지인 대통령 자문기구로서의 성격을 벗어나 이른바 「혁명평의회」구실을 하게 된 경위등을 신문했다. 한편 김성호 서울지검 특수3부장과 홍만표 검사는 이날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산업금융채권 20억원어치가 금융실명제 실시 직후 「동북아전략연구소」 김승환(47) 소장에 의해 돈세탁을 거쳐 현금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조사결과 김씨는 93년12월평소 알고 지내던 부국증권 장옥수(51)상무에게 부탁,전씨의 1억원짜리 채권 20장을 다른 고객들의 계좌에 분산 예치한 뒤 현금인출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 「5·18」 진압·양민피해 등 규명/오늘부터 현장조사

    ◎수사팀 4명 광주 파견/이기백 전 국방 등 3명 환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6일 광주 현장조사를 위해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 등 수사팀 4명을 27일 상오 광주에 파견하기로 했다. 검찰은 현장조사를 통해 계엄군의 진압과정,시위정황,양민피해상황등을 조사하고 현장검증을 병행하는 한편 피해자와 관련자들의 진술 및 자료 등을 확보하기로 했다. 검찰은 우선 27일 10여명의 양민이 학살된 주남마을, 계엄군과 시민군이 교전을 벌인 화정동·쌍촌동·내방동, 어린이 2명이 총에 맞아 숨진 송정리비행장 부근 송암동 등 양민 피해지역 가운데 한곳을 찾아 조사하기로 했다. 한편 검찰은 26일 5·18당시 국보위 운영분과 위원장을 지낸 이기백 전국방부장관과 전남지사 장형태씨, 수경사 작전참모 박동원씨 등 3명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국보위의 설립배경과 주요활동 내용, 해산 경위등을 추궁했다. 검찰은 또 27일 상오 5·18당시 전투병과 교육사령부 작전참모였던 백남희씨 등 3명을 소환,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백씨를 상대로 ▲당시 전남북 계엄사령부였던 전교사의 작전상황 ▲공수부대 등 광중에 출동한 진압군의 실질적인 지휘계통 ▲계업군의 과잉진압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 신군부 내란혐의 입증에 초점/5·18사건 검찰수사 중간 점검

    ◎당시 군수뇌부 등 24명 소환조사/비상계엄 전국확대 경위 등 추궁 지난 19일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통과되면서 5·18사건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20일부터 25일까지 매일 2∼5명씩 이 사건 관련 피고소·고발인 및 참고인등 모두 24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 가운데 15명정도는 5·18사건 피고소·고발인 58명에 포함된 인물들이다. 또 이에 앞서 피고소·고발인 10여명은 12·12사건 조사 때 이미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군사반란죄로 기소하면서 5·18수사를 새해 1월중순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것에 비추어보면 수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방향과 내용을 종합해보면 검찰의 5·18수사는 당초 밝힌대로 신군부세력의 내란혐의를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검찰의 주요 소환조사자는 5·17 비상계엄전국확대 과정과 광주사태 진압 관련자라는 두 부류로 크게 나눠져있다. 검찰은 5·17 비상계엄전국확대 과정과 관련해서는 비상계엄확대를 처음 결의한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시국현안등 정치성 사안을 논의했고 국회해산·비상기구 설치등 국정에 직접 관여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점에 주목해왔다. 검찰은 이 회의에 참석한 당시 유병현 합참의장,윤자중 공군참모총장,김종곤 해군참모총장등 군 수뇌부가 신군부측이 제안한 비상계엄확대에 동의한 경위를 집중조사했다. 또 이한빈 부총리등 당시의 내각 관계자들을 소환한 것은 비상계엄전국확대 조치가 군의 결의뒤 반나절만에 국무회의에서 전격처리된 배경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군이 국정의 책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입증하겠다는 의도의 표현이다.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신군부의 정권 장악의도를 증명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종환 전내무장관을 소환해 당시 치안유지상태가 군의 전격개입이 필요한 정도로 불안했는 지를 조사한 것과 초법적으로 국정을 사실상 장악했던 국보위 참가인사들을 대거 소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또 비상계엄확대 결정이후 군의 국회의사당 봉쇄에 대해서도 폭넓은 조사가 진행됐다.신군부가 행정부 뿐 아니라 국가의 중추기구인 입법부에 대해서도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파악해 총체적인 내란음모를 규명키 위해서였다. 군의 광주 진압작전에 대한 조사는 광주현지 조사와 함께 이번주부터 본격 조사에 들어갈 전망이다. 특히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유지하고 있었는 지와 발포 경위가 주요한 조사사항이다. 당시의 주요 지휘관들이었던 진종채 2군사령관,윤흥정 전남·북 계엄분소장,소준렬 전교사 사령관등은 이미 조사를 받았고 정호용 특전사령관등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 빠르면 내일쯤 광주 현지조사/「5·18」수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검사)는 25일 5·18당시 전남지사인 장형태씨와 이기백 전국보위 운영분과위원장(전국방장관)등 2명을 26일 상오 소환조사키로 했다.
  • 「광주발포」·계엄확대 경위 조사/검찰 「5·18수사」

    ◎진종채 전2군사령관 등 5명 소환/미체류 박희도·장기오씨 그;국 종용/전씨 비자금 거액 분산 확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2일 진종채 전2군사령관,김종환 전내무장관,우병규 전국보위 법사위원,길기상 전국회사무처장 등 5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진씨로부터 80년 5월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결의한 배경과 광주 진압작전의 지휘계통 및 발포경위 등을 조사했다. 또 김전내무장관에게서는 비상계엄확대 때의 경찰의 치안질서장악상태,우씨에게는 국보위활동상황과 내용,길씨에게는 계엄확대 때 군의 국회봉쇄상태에 대해 각각 진술을 받았다. 검찰은 현재 미국에서 머물고 있는 박희도 전1공수여단장과 장기오 전5공수여단장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해 여권재발금금지조치를 외무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또 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당시 부총리이던 이한빈씨등 거물급 5명을 23일중으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전씨 비자금 수사와 관련,지난 93년실명제실시를 전후에 조성된 전씨 친인척및 측근의 수천억대 금융자산 및 부동산 자금출처에 대한 추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전씨가 실명제직전 친인척 및 측근 명의로 거액의 비자금을 분산시켰다는 단서를 확보하고 조만간 친인척 등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21일 경찰병원에 입원중인 전씨에게 현재까지 조사된 3천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경위 및 친인척 명의로 거액의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조성했는지를 추궁했으나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 검찰 5·18수사 이모저모

    ◎김종환 전내무 굳은표정으로 출두/전씨 “구속정지신청 절대 하지말라” 검찰은 전두환 전대통령 기소로 12·12사건 재수사가 사실상 일단락됨에 따라 22일 김종환 전내무장관을 필두로 5·18 핵심 관련인사들에 대한 본격 소환조사에 들어갔다.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김씨는 이날 상오 9시50분쯤 굳은 표정으로 검찰에 출두,사진촬영에 잠시 응한 뒤 조사실로 직행. 또 5·18 당시 국보위 법사위원이었던 우병규씨는 이날 상오10시15분쯤 검찰에 출두,『국보위 초창기의 멤버이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 왔다』고 소환된 이유를 설명. 우씨는 또 「전씨 구속기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인간적으로 안됐다고 생각하지만 공식적으로 말할 처지가 아니다』며 답변을 회피. ○…경찰병원 입원 이틀째를 맞은 전씨는 이날도 링거주사와 미음을 거부한 채 단식을 계속하고 있으나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 이날 상오 11시5분 전씨의 장남 재국씨는 병실을 찾아와 7분동안 병문안을 한뒤 『아버지가 냉수외의 음식물이나 링거주사 등 치료를 거부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누워있어 온몸 통증과 함께 약간의 현기증을 호소하고 있다』고 상태를 설명. 재국씨는 또 『기소된 사실을 알리자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알고 있다」고만 대답했다』며 『법무부 관계자로부터 하루에 20∼30분의 면회가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소개. ○…재국씨가 면회를 마치고 돌아간지 10분후인 낮 12시30분쯤 이양우 변호사가 병실을 방문,5분동안 면회를 마친 뒤 『구속집행정지 신청은 절대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변호사는 『말하기조차 힘들어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데 검찰의 방문조사는 무리』라며 전날 검찰의 장시간 방문조사에 불만을 표시. 한편 검찰관계자는 이날 『어제 장시간에 걸친 조사에도 불구하고 전씨의 건강에는 별다른 문제점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
  • 정관용씨 등 5명 소환/검찰/국보위설치 경위 등 집중추궁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1일 5·18 당시 소준렬 전투병과교육사령관,정관용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사무처장,유병현 합참의장,한용원 보안사 정보1과장,안종훈 군수기지사령관 등 5명을 소환,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당시 전남·북 계엄분소장을 맡았던 소씨를 상대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전개과정 ▲31사단으로부터 공수부대의 작전통제권을 넘겨받게 된 과정과 발포명령 하달경위 ▲5월27일 새벽에 이뤄진 도청진압 경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진압군 병력운영에 직접 관여했는지 등에 대해 집중추궁했다. 검찰은 또 당시 중앙공무원교육원 부원장으로 국보위 사무처장이었던 정씨에게 국보위가 만들어진 경위와 활동내용 등을 신문했다.
  • 「5·18특별법」 처리 조건 안간힘/폐회 하루 앞둔 국회표정

    ◎야2당 「긍정」 선회… 세부 사안놓고 신경전/여야 4분발언 통해 한바탕 「특검제」 설전 14대 마지막 정기국회 폐회일을 하루 남겨놓은 18일 여야는 최대 쟁점인 5·18특별법 처리를 놓고 숨가쁜 막전막후 협상을 계속했다.여야는 대체로 이견을 좁히기는 했지만 몇몇 세부 사안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처리를 하루 뒤로 넘겼다.이때문에 이날 본회의에서는 이수성 국무총리 임명동의안과 민생법안 등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그러나 특별법도 자민련을 제외한 야2당이 긍정적으로 나오면서 전망은 밝아졌다. ▷본회의◁ ○…여야는 이날 하오 2시부터 열린 본회의 4분 자유발언을 통해 특별법제정과 특별검사제를 둘러싸고 열띤 설전을 벌였다. 자민련 김범명 의원은 『역사를 바로 잡는 작업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겠지만 이를 한 사람의 독단으로 일시에 완성하려는 것은 과정자체가 비민주적』이라고 여당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국민회의 이석현 의원은 이어 『현재 검찰 수뇌부에는 80년 국보위에 가담한 인사도 포함돼 있고 야당에 대한 표적수사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며 특검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그는 『공소권이 없다고 결정한 검찰이 재수사를 하는 것은 「갓쓰고 목욕」하는 꼴』이라며 『검찰은 지금이라도 내부의 논리를 정리해 성공한 쿠데타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라』고 검찰에 맹공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신한국당 변정일 의원은 『창조적 개혁작업인 5·18특별법 제정작업이 특검제 도입 논의로 늦어지고 있다』며 『검찰이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수사를 하고 있고,대통령도 국민 의혹을 씻겠다고 밝혔으니 특별법제정에 협조하라』고 맞받아쳤다.변의원은 특히 『특검제를 도입하면 수사가 엄청나게 지연돼 조속한 정국안정을 바라는 국민의사에도 반하게 된다』며 『우리식 특검제인 재정신청 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불공정성을 우려할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무소속 서훈 의원은 『특검제를 고집해 특별법제정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정국의 주도권 상실로 인한 무조건적 반대이거나,5·6공 비리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세력 또는 그런 세력을 끌어안기 위한 당리당략적인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며 국민회의와 자민련측을 싸잡아 비난했다. ▷총무회담◁ ○…4당 총무는 이날 하오4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막판 절충을 시도했으나 자민련은 특별법 반대,국민회의는 조건부 찬성 등 서로의 입장을 고수해 19일 상오10시 다시 논의키로 했다. 자민련 한영수 총무는 『신한국당 소속의원들이 아직 마음의 통일이 안된 상황이나 처리를 미루자』면서 대선자금 공개를 위한 특검제 도입을 주장했고,이에 신한국당 서정화 총무는 『회기내 처리와 특검제 수용불가는 확고한 원칙』이라고 일축했다. 국민회의 신기하 총무와 민주당 이철 총무는 특별법 처리에는 응하되 각자 보완사항을 주문했다.신총무는 ▲5·18희생자에 대한 특별 재심제도 수용 ▲희생자 명예회복 ▲5·18관련자 훈장 박탈근거 ▲부화뇌동자 처벌 ▲양민학살자 처벌 등을 부칙에 명시하는 등 「5대 부대조항」반영과 5·18에만 국한된 특검제를 요구했으며 이총무는 일반 특검제 도입에 대한 정치적 약속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그러나 신한국당 서총무는 『5·18문제는 이번 회기안에 모두 정리해야 한다』고 거부했다. ▷법사위◁ ○…이날 상오 10시 열린 법사위에서는 일반 법안 처리를 우선 진행하면서 소위 위원들이 틈틈이 쟁점조항을 놓고 막판 협상을 계속했다.특히 특별검사제 논의를 1월 임시국회로 유보키로 한 국민회의측은 법안성안 작업에서 핵심역할을 한 박상천 보건복지위원장이 박희태 법사위원장과 단독밀담을 갖는 등 국민회의의 「5대 부대조항」반영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박희태 위원장은 5·18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등의 「재심 특례」 또는 무죄선언 조항과 관련,「법리상 불가」라던 당초 방침에서 「사면을 받았더라도 일반적인 재심과 달리 면소가 아니라 유·무죄에 관한 실체판단을 허용하는」 특칙을 마련키로 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박상천 의원은 당 지도부를 수시로 오가며 수용 여부를 타진했고 김상현 지도위의장도 법사위원장실을 찾는 등 협상분위기는 고조되는 분위기였다. 다만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유공자 대우보장 등을 놓고 신한국당측이 법리적·현실적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시,논란을 벌였다. ▷신한국당 의총◁ ○…신한국당은 특별법을 자민련이 반대하는 만큼 표결처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아래 내부 이탈표 방지에 막판 총력을 기울였다.「5·6공」,특히 대구·경북(TK)출신의원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표단속」을 하느라 분주했다.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총에서 김윤환 대표위원은 『역사적 과제인 5·18특별법안에 국민들은 관심을 쏟고 있다』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구시대의 악습을 일소하기 위해 특별법은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의원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서정화 원내총무는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자민련을 제외하고 가급적 3당 처리로 처리하는 것이 당의 방침』이라면서 『내일까지 협상을 계속하되 합의점을 찾지 못할 때는 불가피하게 표결처리할 것』이라고 거듭 의지를 밝혔다.
  • 신현확씨 “국보위 설치 반대했다”/검찰나와 진술

    ◎계엄확대 경위 등 조사받아/장태완씨 오늘 소환 조사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16일 12·12 당시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씨와 육본헌병감 김진기씨,청와대의전비서관 신두순씨 등 3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신전총리를 상대로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하고 사후재가를 받은 과정 ▲5·17 당시 비상계엄확대조치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경위 등을 집중조사했다. 신전총리는 이날 상오 검찰에 출두하면서 『80년 4월 전두환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직하는 것과 국보위 설치를 반대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 전헌병감에 대해서는 12·12 당일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과 함께 연희동 요정에 초청된 경위 등을 물었다. 검찰은 신 전청와대비서관을 상대로 정승화전계엄사령관의 연행 재가과정에서 신군부측이 최 전대통령에게 위압적으로 요구했는지를 조사했다. 한편 검찰은 장태완 전수경사령관을 17일 하오 2시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 「12·12 핵심부분」 접근하는 검찰

    ◎「반란」 매듭단계… 「내란」 입증에 박차/「보안사팀」 곧 소환… 「사전계획」유무 규명/「대통령에 협박」 최규하씨 증언에 승부 검찰이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출두통보와 함께 12·12사건 재수사가 점차 핵심부인 내란죄 입증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검찰은 유학성씨 등에 이어 8일에도 차규헌·김진영씨등 경복궁모임의 핵심대상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다음주부터는 내란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전대통령과 이른바 보안사팀에 대한 수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검찰의 이번 12·12 및 5·18 재수사가 신군부측의 반란죄에 그친 지난해 수사와는 달리 내란죄까지 규명하는 데 최종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검찰의 재수사가 핵심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은 반란죄에 이어 내란죄를 입증할 핵심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도 의미한다. 반란죄의 핵심조사대상자는 이미 소환되고 있는 「경복궁모임」 참가자들이고 내란죄의 핵심조사대상자란 대통령 재가시 협박여부를 증언해줄 최전대통령과 정권창출을 위한 장기계획의 실존여부를 확인해줄 이른바 「보안사팀」이다.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경복궁모임」에 대한 핵심인물인 유학성·차규헌·김진영씨등에 이어 조만간 장세동·박희도씨등 나머지 핵심인물에 대한 조사를 끝내면 「경복궁모임」을 중심으로 한 반란행위 수사는 일단락된다. 검찰은 반란죄→내란죄라는 수사순서에 따라 내주부터는 내란죄을 입증할 핵심인물인 최전대통령과 「보안사팀」에 대한 직접조사에 들어간다. 반란죄 조사에서 전두환씨에 대한 조사가 먼저였듯이 이번에도 7일 전씨에 대한 2차조사가 내란죄 수사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보안사팀」은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보안사 인사처장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허삼수,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이학봉,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세간에는 이들이 12·12사건은 물론 5공화국을 탄생시키는 장기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조사에서 장기계획여부를 확인하고 최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에서 강압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면 내란죄을입증할 수 있다. 참모총장에 대한 강제연행과 무단병력동원이 군의 명령계통을 전면부인한 반란죄라면 대통령에 대한 강압은 국정을 무시한 내란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보안사팀」에 대한 수사에는 별다른 기대를 걸 수 없는 형편이다. 조사대상자 가운데 허화평·허삼수씨는 소환조사가 쉽지 않은 현역 국회의원신분인데다 소환조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장기계획여부에 관해 부인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수사기법에만 국한시킨다면 이번 검찰수사의 최대승부처는 최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다. 대통령에 대한 강압여부를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정확하게 증명해줄 유일한 사람이 바로 최전대통령 자신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최전대통령측은 『일방적인 과거부정의 상황에서는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조사를 계속 회피하고 있어 검찰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12·12관련 소환자의 당시 역할/「정총장연행 재가」 강요­차규헌씨/육본 수뇌부 무장해제­신윤희씨/「경복궁 모임」 참여 핵심­김진영씨/병력 출동… 중앙청 점거­구창회씨 12·12사건과 관련,8일 검찰에 소환된 5명의 참고인 가운데 차규헌 당시 수도군단장은 거사를 모의한 「경복궁모임」의 핵심 멤버.사건 당일인 12일 하오 9시30분 최규하 전대통령이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에 대해 재가를 거부하자 전두환 합수본부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 등과 함께 대통령관저인 총리공관을 찾아가 최전대통령에게 재가를 강요했다.그는 최전대통령이 재가를 거부하자 경복궁의 30경비단으로 돌아와 병력을 동원,육군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했다.차씨는 거사가 성공한 뒤 군사령관을 거쳐 대장으로 예편했다.국보위 위원과 교통부장관(86∼88년)을 지냈으나 골프장 내인가관련 뇌물수수로 89년 구속됐다가 91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김진영 당시 33경비단장은 장세동 30경비단장과 함께 대령급으로 경복궁모임에 참여한 전씨의 핵심측근.5·6공 때 정치군인의 대표격으로 꼽혔으며 수방사령관·교육사령관·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 참모총장에 올랐다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93년 3월 하나회 숙정 「1호」로 전역조치됐다. 신윤희 당시 수경사 헌병단부단장은 지난 4일 소환,조사를 받은 조홍 당시 헌병단장과 함께 「거사」다음날인 13일 상오 3시40분 수경사 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히고 육본 수뇌부의 무장을 해제시킨 뒤 윤성민 육군 참모차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문홍구 합참 대간첩본부장 등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했다.신씨는 수방사 헌병단장을 거쳐 헌병감에 올랐다가 4년전 예편했다. 구창회 9사단 참모장은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의 지시로 13일 상오 1시30분 전방에 주둔하던 9사단 29연대 병력을 출동시켜 중앙청을 점거하고 신군부 반대진영의 병력동원을 저지했다.노씨의 군맥인 「9·9인맥」의 핵심인 구씨는 6공 때 수방사령관과 보안사령관을 역임했다. 이날 소환된 5명 가운데 이건영 당시 3군사령관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함께 전두환씨 등 신군부측의 군사반란에 대항해 병력을 동원,저지하려다 80년 강제예편된 피해자측인물이다.그는 한국마사회장을 거쳐 14대 총선 때 국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했다가 신한국당으로 옮겼다.
  • 검찰 이원조씨 불구속기소 안팎

    ◎명성비해 경미한 혐의… 야 공세 예상/「일처리」 거의 완벽… 물증확보에 큰 어려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에서 노씨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금융계의 황제」 이원조전의원이 「예상대로」 불구속기소됐다. 정치권에 대한 사정한파가 몰아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떠올랐다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갔으나 결국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셈이다. 검찰이 밝힌 이씨의 혐의내용은 『92년1월 국회 재무위소속 의원으로 있으면서 노전대통령과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의 면담을 주선,장회장이 노전대통령에게 30억원을 제공하도록 알선했다』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방조죄.물론 금진호 민자당의원·김종인 전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6공의 경제를 주무르던 명성에 비하면 「경미한」 혐의내용이다. 이씨를 둘러싼 각종 구설수와 정치권의 논란 등 과중한 부담을 느끼면서도 이씨를 인신구속하지 못한 것은 구속을 위한 물증확보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이는 이공계 출신(경북대 화학과)답게 이씨의 일처리 솜씨가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과 친구인 이씨는 80년 은행원(제일은행 지점장)에서 국보위 자문위원으로 변신하면서 관계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오랜 은행원생활의 경험을 밑천으로 석유개발공사사장·은행감독원장 등을 지내며 경제계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처음 검찰에 소환된 것은 지난 89년 5공비리 청산정국 때 불법정치자금조성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됐을 때다.그는 이때 일본으로 출국,검찰의 칼날을 피했다. 이어 지난 93년5월 동화은행 안영모 전 행장의 거액비자금조성사건 때도 뇌물수수혐의를 받았지만 역시 일본으로 출국,불똥을 피했다.검찰이 6개월후 『물증이 없다』며 내사종결처분을 내리자 이씨는 1년 뒤 슬그머니 귀국했다. 검찰은 5일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이씨 등 관련자에 대해서는 조사를 계속해나가는 과정에서 혐의가 발견되면 추가로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의지표명에도 불구하고 야권에서는 이씨의 불구속처리를 대선자금지원 등 정치자금과연계시켜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 “전씨 사법처리 속전속결” 신호/검찰 「오늘 출두요구」의 배경

    ◎“피의자” 규정… 조사뒤 즉각 구속 가능성/“관련자 재소환 조사 물꼬트기” 분석도 검찰이 12·12 및 5·18 전면재수사에 착수한지 이틀만인 1일 전두환 전대통령을 2일 소환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속전속결식」수사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특히 내일 소환되는 전전대통령의 신분에 대해 「피의자」라고 규정,소환조사 즉시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아 주목된다. 이종찬 수사본부장은 구속가능성도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말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그러나 『조사할 분량이 상당히 많다』고 부연설명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밤샘조사를 받을 것임을 시사했다. 노태우 전대통령이 검찰에 불려 나왔을 때도 소환 첫날 구속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최소한 3차례 정도의 소환조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2번째 소환에서 노씨가 구속되자 놀라워 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검찰이 올해안으로 전씨를 어떤 방식으로든 조사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소환통보를 한 이상 구속으로 향하는 「사법처리일정」이 더욱 단축될 가능성이 크다.다만 노씨의 예에 비춰 전씨도 최소한 2차례 이상의 소환조사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을 뿐이다. 이와 함께 전씨에 대한 전격소환은 노씨를 구속수사한 경험이 검찰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때문이라는 분석과 함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거칠 것이 없다는 검찰의 수사의지도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씨가 검찰소환에 불응할 경우다.『불응하면 진행상황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 경우에 대비한 대책도 이미 충분히 세워 놓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강제구인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검찰은 지난 12·12사건 당시의 수사기록을 상당히 검토했으며 전씨의 진술이 고소·고발인 및 피해자들의 진술과 상치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어 이같은 가능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검찰은 처음부터 전씨를 조사해야 모든 꼬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전씨 조사를 통해 32명의 12·12관련자의 재소환 조사 및 사법처리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전씨가 소환을 거부할 경우 관련자들을 우선 소환해 방증자료를 더 수집하는 방안도 있으나 현재의 검찰분위기와 검찰수뇌부의 이번 사건에 대한 의지에 비추어 채택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날 이본부장은 전·노 두전직대통령이외에 나머지 핵심관련자들의 사법처리를 가름하는 5·18 재수사착수여부와 관련,『수사기법상의 문제이며 다음에 말하겠다』고 답변을 피해 검찰이 「공소시효의 벽」에 부딪혀 고민하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현행법상 사법처리는 12·12쿠데타가 완료된 79년 12월 13일이 공소시효의 기산점으로 적용되지만 대통령재임기간의 공소시효 중단으로 15년의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사람은 전·노 두전대통령 뿐이다.그러나 두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12·12사건 공범 32명의 공소시효는 이미 종료됐다는 내부결론이 검찰을 괴롭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2·12­5·18 재수사 쟁점/정승화 육참총장 강제연행 규명­12·12/보안사 집권 시나리오 실체 추궁­5·18 검찰이 전두환 전대통령을 상대로 조사하게 될 12·12와 5·18사건을 쟁점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2·12◁ ◇우발적 또는 계획적인가 여부=경복궁 30경비단에 집결한 장성들은 지휘부를 형성해 집단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요구할 것을 결정했다.쿠데타를 반대할 우려가 있는 주요 지휘관들을 연희동 요정으로 유인,그들의 병력 동원을 저지시켰다.12월13일 새벽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하기 전에 이미 이희성 중앙정보부장서리에게 육군 참모총장직을 제의하고 합동수사본부측 장성들을 군 요직에 중용하는 인사안을 제시한 것은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목적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강제연행=전두환 전대통령측은 거사 당일 하오 7시10분쯤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등 보안사 수사관 7명과 수경사 33헌병대 병력 60여명을 한남동 총장공관으로 보내정총장에게 동행을 요청,거부당하자 정총장을 M16소총으로 위협하며 강제 연행했다.군사법경찰관이 수사권을 발동할 때는 형사절차법상 필요한 절차를 밟는 것은 물론 군통수권과 정상적인 군 지휘계통을 문란시키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동시에 취해야 한다.따라서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의 사전 재가 또는 승인 없이 비상계엄하에서 사실상 최고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계엄사령관인 정총장을 강제 연행한 것은 직속 상관에 대한 하극상임은 물론 군 통수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 ▷5·18◁ ◇보안사 집권시나리오의 실체=80년 3월부터 세간에 나돌기 시작한 보안사의 집권 시나리오 실체여부는 신군부측의 집권의도와 내란혐의 규명을 위한 중요한 단서이나 신군부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직=80년 3월 전씨의 중정부장 겸직은 최규하 전대통령의 인사발령에 의한 것이기는 하나 국내외 정보와 중앙정보부의 예산을 장악,신군부의 영향력을 정계에까지 미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배제한 채 전씨가 직무상 관련이 없는 보안사 참모들에게 지시해 입안하게 한 다음,이를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군 지휘관들이 결의하는 형식으로 추진했다. ◇정치인 및 재야 인사들의 활동 금지조치=기성 정치인들과 재야인사들을 체포·연행·구금한 조치는 향후 정국운용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사전에 제거,경쟁자없이 권좌에 오르게 된 기반이 됐다. ◇임시국회 무산=국회의 계엄해제 결의를 차단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의 기획 및 설치=대통령이나 국방장관,계엄사령관이 배제된 채 보안사 참모들이 기획해 전씨 주도로 설치됐다.전씨는 국보위 상임위원장에 취임,사실상 내각을 조정,통제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최 전대통령이 자의로 사퇴한 것으로 발표됐으나 최씨의 전술거부와 신군부측의 강압 부인 등으로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계엄상황을 이용,정국을 주도하고자 한 신군부측이 학생·시민들의 계엄해제 등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호한 진압만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판단,강경진압과 증원으로 사태를 수습함으로써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사전 계획된 증거는 없으나 상당한 정치적 판단에 따라 단행됐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 헌소제기서 취하까지 전말/7월이후 4건 접수… 모두 원점으로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검찰의 5·18 불기소처분 취소에 관한 헌법소원은 모두 4건이었다. 검찰이 지난 7월18일 「공소권 없음」의 결정을 내린 직후인 7월24일 정동년씨 등 3백22명이 「5·18 민중항쟁 국민위원회」명의로 낸 불기소처분 취소와 이신범 민자당 부대변인 등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된 「5월 민주동지회」18명이 제출한 불기소처분취소,그리고 국민회의 김근태 부총재 부인 인재근씨 등 5·18 여성피해자 20명이 낸 불기소처분 취소 등이다.여기에 민주당의 장기욱의원과 이부영 전의원이 지난 20일 헌법소원 심판청구 건을 접수시켰으나 재판관들이 아직 본안심리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따라서 이날 모두 취하절차를 밟긴 했지만 헌재가 30일 최종 선고를 앞두고 있던 사건은 3건이었다. 이들이 주장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검찰의 「공소권 없음」의 결정은 자의적 처분이라는 것이다.또 검찰이 최규하전대통령의 하야시점인 80년 8월16일을 내란죄 공소시효 기산점으로 잡은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국보위의 마지막 회의인 25차 본회의가열린 81년 4월10일,또는 전두환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80년 9월1일까지는 내란행위가 계속된 것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헌재의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5·18 관련단체들은 「검찰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며 서울 등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등 대학교수 6천4백여명도 특별법 제정 촉구성명을 발표했다. 헌재는 그러나 8차례의 전체평의를 거쳐 검찰과 마찬가지로 최전대통령의 하야시점을 공소시효 기산점으로 잡아 내란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만료됐고,12·12 군사반란은 전·노씨에 한해 공소시효가 계속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이러한 사실이 정치권에 알려지자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28일 헌재에 최종선고 연기를 요청했다.이를 논의하면서 불기소처분 사건 대리인인 천정배·유선호변호사 등 민변 일부변호사들이 『재판부 기피신청도 함께 제출하자』는 의견을 개진했으나,국민회의 변정수고문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며 「소취하」로 방향을 틀었다.29일 상오 당차원에서 이를 협의하기 위해 신기하총무가 민주당 이철 총무와 접촉했고,같은 5월동지회 회원인 민자당 이신범 부대변인과 국민회의 설훈 부대변인도 비슷한 시간에 전화로 소취하문제를 협의했다.결국 최종합의에 이르러 헌재에 이날 하오 소취하 서류를 접수시켰다.
  • 민자 「5·18특별법」 제정 착수/처벌대상 헌정문한 국한

    ◎공소시효 등 기소절차 규정/검찰의 재수사·기소권 인정 민자당은 27일 「5·18특별법」기초위원회(위원장 현경대)첫 회의를 열고 12·12 및 5·18관련자 처벌을 위한 절차를 마련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기초위는 이날 회의에서 특별법의 적용대상을 헌정파괴 및 반인륜적 범죄 일반이 아니라 「12·12 및 5·17,5·18 등으로 헌정을 문란시킨 사범들」에 국한시키기로 했다. 기초위는 또 특별법에 따른 처벌대상이나 형량을 따로 규정하지 않고 행위 당시의 관련법(형법)에 맡기되 공소시효와 수사절차등 기소에 필요한 절차만을 특별법으로 규정키로 했다. 공소시효와 관련,기초위는 내란죄의 시효기산점을 계엄군이 철수한 81년1월24일,전두환씨의 대통령취임일인 81년3월3일,국보위 입법회의 해체시점인 81년4월10일 가운데 하나로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전씨의 재임기간인 7년동안은 시효가 중단된 것으로 규정하는 방안도 긍정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씨의 재임기간중 행해진 각종 입법·행정조치에대한 무효화나 5·17및 5·18 등의 피해자들에 대한 별도의 배상및 원상회복절차는 특별법의 논의대상에서 배제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검사제 도입에 대해서는 별도의 수사주체를 인정하지 않고 「정부는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와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한다」는 원칙만을 규정,검찰의 재수사및 기소권을 인정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위원회는 다음 주초에 당안을 마련,당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한 뒤 다음 달초까지 국회를 통과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 정치권,「5개 쟁점」 법리논쟁 치열

    ◎5·18특별법 국회통과까지 진통클듯/특검제­야 “꼭 필요” 여 “부작용 우려” 반대/피해 배상­처벌범위도 시각차 드러내 민자당이 27일 「5·18특별법」 기초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법안 마련작업을 본격화함에 따라 관련자 기소를 위한 정치권과 법조계의 움직임이 빨라질 전망이다. 그러나 각론을 둘러싸고 민자당의 구상과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는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의 관련법안이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다 법조계·학계의 의견,전두환·노태우씨측의 위헌주장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국회통과까지는 법리논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특별법의 위헌성 여부=특별법 자체가 특정사안에 대한 처벌을 전제로 하는 만큼 헌법상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전·노씨측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학계 일부에서는 특별법이 위헌은 아니지만 헌법재판소가 검찰의 불기소처분등을 파기하면 그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자당은 공소시효등에 관한 해석을 입법으로 확인하는데 그치므로 소급입법이 아니라는 논리다.야당도 같은 견해다. ▲공소시효규정=12·12 하극상에 따른 군사반란죄와 5·17비상계엄확대에 따른 내란죄,5·18광주학살에 따른 내란목적 살인죄등을 언제까지 기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특별법의 핵심이다.이는 다시 공소시효의 기산점에 대한 해석과 전·노씨 재임기간의 시효중단여부로 나뉜다. 시효의 기산점은 해당범죄행위가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검찰은 지금까지 최규하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8월16일설을 취해 왔고 이에 따라 공소시효 15년인 신군부의 내란죄등은 95년8월16일로 기소기간이 끝났다는 해석이었다. 그러나 민자당은 계엄군이 철수한 81년1월24일,전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81년3월3일,국보위와 입법회의가 해체된 81년4월10일등을 실질적인 내란행위 종료시점으로 보아 적어도 96년1∼4월까지는 기소가 가능하다는 시각에서 특별법 기초작업을 벌이고 있다.재야법조계와 야당측의 주장을 전향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시효중단론=전·노씨가 집권하고 있는 동안은 그 기초가 된 내란행위에 대한 기소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특별법 전문 또는 본문조항에 삽입,시효만료를 7년 또는 12년 연장할 수 있다는 국민회의 주장이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2002년까지 기소가 가능하다.민주당에서는 캐나다처럼 「헌정파괴사범등에 대한 시효배제원칙」등을 규정,5·18 주역들에 대한 기소가 언제까지나 가능하게 하자는 주장도 있다. ▲피해자 배상및 명예회복조치=5·18의 와중에서 부상·연행·처벌을 받은 사람이나 재산상 불이익을 당한 사람의 원상회복에 대해 민자당은 이미 부상자및 유족보상,사면·복권등 조치를 취했고 기업·언론통폐합등에 대해서는 개별소송에 의해 해결할 문제라는 태도다.삼청교육대문제도 국회에 진상규명및 관련자처벌,피해자배상등을 요구하는 당사자들의 입법청원이 제출돼 있으나 민자당은 이같은 입법을 수용하면 당시의 모든 입법·행정조치들을 무효로 하는 혼란이 야기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그래서 신군부 처벌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필요한 행정조치들을 강구하는 선에서 해결책을 모색중이다.그러나 5·18단체및 국민회의는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심의위원회 설치등 구체적 절차를 5·18특별법 또는 별도 입법으로 규정,완전한 원상회복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사주체=국민회의와 민주당은 불기소결정을 내렸던 검찰에 다시 수사및 기소를 맡겨서는 철저한 재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별검사제를 요구하고 있다.자민련도 뒤늦게 이에 가세했다.그러나 민자당은 기소독점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법체계와 특검제도입에 따른 검찰의 신뢰추락등 부작용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처벌범위및 형량=민자당은 범죄및 형의 종류,즉 처벌대상및 처벌내용을 특별법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당시의 형법에 맡기고 특별법에서는 기소절차를 규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상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국민회의등은 5·18학살 관련자 전원을 처벌대상으로 하고 이같은 원칙을 특별법에 선언적으로라도 명시함으로써 처벌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맞서 있다.
  • 5·18 특별법­현 기초위원장 회견

    ◎당시 형법 적용하는 처벌절차 마련/공소시효 기산일 해석 입법에 반영/시효연장은 형벌불소급 원칙 위배 민자당의 「5·18특별법」기초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현경대의원은 26일 『헌법이 규정한 소급입법 금지원칙을 위배하지 않고도 쿠데타라는 반역사적 불법행위를 단죄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현위원장은 이날 지역구인 제주도에서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현위원장은 먼저 『특별법이 범죄에 대한 새로운 처벌규정을 신설하는 차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4·19 직후 2공화국헌법처럼 부칙에 특정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하는 소급입법은 개헌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법이 분명 12·12 군사반란과 5·17내란,5·18내란목적살인죄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시의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법』이라고 말했다.따라서 28일 첫 회의를 여는 기초위원회의 활동도 야당과 재야법조계·시민단체등에서 제기해온 5·18관련 법안내용을 포함,쿠데타 사범들을 기소할 수 있는 절차,특히 공소시효 문제에 그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내란죄를 기소할 수 있는 공소시효는 형법상 15년이지만 5·18특별법에서는 이를 2년 또는 5년 연장하자는 주장도 당내에서는 없지 않다.그러나 현위원장은 『시효연장 자체가 형벌불소급과 관련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그보다는 『공소시효 기간이 시작되는 시점,즉 내란행위가 종료되는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 하는 해석상의 문제를 입법에 반영,논란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17내란의 완성시점(시효 기산점)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최규하 전 대통령 하야(80년 8월16일) ▲전두환씨의 대통령 취임(81년 3월3일) ▲국보위 활동종료(81년 4월10일)등 3가지로 견해가 갈려 있다.현위원장은 이 가운데 『81년 3월설과 4월설을 택하면 공소시효는 96년 3월과 4월까지 각각 15년간 인정이 되므로 지금도 기소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현위원장은 이와 함께 전두환·노태우씨의 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 진행이 중단된다는 법조계와 학계 일부의 주장을 수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음을 밝혔다.그는 『내란죄의 주역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은 공소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공소시효 기간을 따질때 이들의 재임기간 만큼을 추가해 계산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했다.여기에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중의 범죄로 임기중 소추되지 않는다」는 헌법규정을 문자대로만 해석,내란죄등은 재임중에도 공소시효가 진행된다는 반론도 있다.그러나 현위원장은 『불필요한 소추공세로부터 재직중의 대통령을 보호하자는 취지일 뿐인 조항을 공소시효 중단론에 대한 반대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야당측의 특별검사제 도입에 대해서는 현위원장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민자당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법체계,우리 법률문화에의 부적합성』등을 들어 이미 반대를 당론으로 정해 놓았다.적용대상 범죄를 5·17뿐 아니라 헌정파괴 사범 일반과 반인륜적 범죄등으로 확대하자는 새정치국민회의측 주장에 대해서도 현위원장은 『이번 특별법은 어디까지나 5·17등에 대한 단죄가목적』임을 상기시킨뒤 『일반적인 헌정파괴사범은 형법상 내란죄등으로 처벌하면 되지 특별법의 일반법화는 입법권의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반대했다.
  • 「5·18」 「12·12」 수사 경과와 전망

    ◎「공소권 없음」에 불씨 내연/전·노씨 등 58명 이미 피소/헌재 위헌 결정땐 재수사 정부 여당이 25일 5·18특별법을 제정키로 함에 따라 5·18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불가피해졌다.또 5·18의 사전 정지 작업이랄 수 있는 12·12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도 뒤집어질 가능성이 크다. 5·18에 대한 수사는 94년 5월 정동년 「광주민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등 6백16명이 지난해 5월13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35명을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고발하면서 시작됐다.5·18에 대한 고소·고발은 그 이후에도 잇달아 지난 4월3일까지 모두 70건에 58명이 고소·고발됐다. 검찰은 정동년씨의 고발이 있자 곧바로 서울지검 장륜석공안1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수사팀을 구성,관련 자료를 검토한 끝에 지난해 7월13일 피고소·고발인 가운데 현역군인 11명은 국방부에서 조사하도록 의뢰했다. 고소·고발인인 정씨 등 4명이 검찰의 첫 조사를 받은 것은 6개월여만인 11월23일.검찰은 이후 12월13일 소준렬 전 전교사사령관 등 피고소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지난 7월4일까지 피고소·고발인,참고인 등 모두 2백69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이 가운데 전·노전대통령과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서면 조사로 대신했다. 검찰은 이어 본격적인 법률검토에 착수,지난 7월18일 『5·18 등 일련의 행위는 헌법 질서를 바꾸는 고도의 정치행위로서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공소권이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피고소·고발인들이 서울고검과 국방부에 즉각 항고한데 이어 대검에 재항고했으나 불기소 결정이 뒤집어지지 않자 헌법소원까지 제기,현재는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에 계류돼 있다. 또한 대한변협 등 재야 법조계,학계 등 대학교수,시민 등도 검찰의 불기소 결정이 내려지자 곧바로 5·18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연대서명 운동을 펼치는 등 계속해서 불씨가 내연해왔다. 12·12 문제는 지난 1월20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1차 결론이 나 있는 상태다.헌재는 당시 내란죄는 94년 12월11일로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군형법상 반란죄는 대통령 재임기간동안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결정을 내렸다.헌법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원용한 것이었다.즉 내란죄의 성립 여부에 상관 없이 내란죄 자체가 대통령 재임기간동안에도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하지만 반란죄는 전두환전대통령에게 재임기간인 7년5개월24일,노태우전대통령에게는 5년동안 추가로 적용된다는 것이 헌재의 최종결론이었다.한마디로 12·12와 관련,전·노 두 전직대통령을 반란죄로는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헌재는 그러나 검찰이 12·12 관련자들에 대해 기소유예 조치를 내린데 대해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정도로 자의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 등 12·12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12·12 건은 정전총장 등 22명이 지난 93년 7월 전·노 전대통령 등 38명을 군형법상 반란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재차 법적 절차를 밟게 됐으나 검찰은 지난해 11월2일 피고소인 전원을 기소유예조치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한뒤 김영삼대통령은 12·12에 대해「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5·18에 대해서는 「문민정부는 광주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면서 5·18의 반역사적,반민주적 성격을 적극 부각시켰다.다만 이에 대한 최종결론은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 시대의 흐름은 12·12와 5·18에 대한 분명한 진상규명과 관계자들에 대한 법적 제재쪽으로 기울고 있다.「역사적 판단」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5·18 관련일지 ▲80년 5·18 신군부 등장 및 비상계엄 확대에 분노한 광주시민들,민주화 항쟁 시작. ▲5·27 신군부 무력으로 광주시민 진압,국무회의 국보위 설치 의결. ▲8·16 최규하 대통령 하야 발표. ▲8·18 전두환 보안사령관 집권. ▲87년 12·29 민정당 광주사태치유 특별법제정 방침발표,민화위 출범. ▲88년 4·1 정부 광주사태 유감표명. ▲91년 5·11 광주사태 보상지급 완료. ▲93년 5·13 김영삼 대통령 광주문제관련 담화. ▲94년 5·13 정동년씨 등 전·노전대통령및 군지휘관 35명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로 고소·고발. ▲11·23 서울지검 수사착수. ▲95년 4·29 전·노전대통령에 질의서,최전대통령 방문조사 결정. ▲7·18 검찰 수사결과 발표(불기소처분). ▲7·24 5·18고소인 3백22명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제출. ▲10·26 서울지검 5·18관련자 국회위증고발 「공소권없음」 결정.
  • 이원조 전 의원 이번에도 법망 피할까

    ◎5·6공 정치자금 「원조」… 사법처리 여부 주목/「떡고물」 손안대는 특유의 처세술로 화 모면 검찰에 출두하되 처벌은 받지 않는 정치자금의 귀재 이원조 전 의원이 다시 검찰수사 선상에 올랐다.5·6공 정치자금의 「원조」로,야당으로 부터는 92년 대선 때도 자금창구역을 맡았다는 공세를 받고 있는 이전의원이 이번에도 다시 법망을 피해갈 수 있을지 화제아닌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지난 90년 국회 5공특위가 5공 비리자로 형사고발,검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일본으로 나가 위기를 넘긴바 있다.93년의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도 관련됐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또한차례 위기를 넘겼다.항간에는 그가 정치자금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 정치권에서 그의 도피성 출국을 방조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그의 정치자금 조성과 전달방법은 매우 특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우선 그는 기업인과 해당 정치인을 연결만 시킬 뿐 그가 어떤 경우에도 직접 정치자금을 만지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가 몇대에 걸쳐 최고실력자의 신임을 받으면서 정치자금을 주무르게 된 가장 큰 「덕목」이다. 때문에 설령 검찰에 소환되더라도 그의 구체적 혐의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으리란 분석들도 나온다.대부분의 정치자금 관련자들이 자신들의 「몫」을 챙기거나 중간에 일부를 착복함으로써 주인의 신임을 잃어 보호를 받지 못하고 또 검찰의 심문앞에서 무력해지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6공 당시에 활약했던 다른 한 관계자가 중간에 자신의 몫을 떼어내 미움을 사고,법앞에서 보호를 받지 못했던 것과는 좋은 대비가 된다.정치자금을 전달 받는 측에서는 제공자에게 전화를 걸어 얼마를 보냈는 지를 반드시 확인하게 된다는 간단한 상식을 대부분의 정치자금 관련자들이 소홀히 하는 데 비해 이전의원은 이를 가장 중요한 철칙으로 삼은 차이다. 이전의원이 정치자금이 문제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금융계의 거물이 된 것은 신군부의 등장 때문이다.12·12이후 전두환과 노태우전대통령이 실권을 장악하자 그의 위세도 덩달아 세진 탓이다.지점장이던 그는 신군부 집권과 함께 제일은행 상무로 승진한 뒤,국보위자문위원·대통령 경제비서관·은행감독원장을 거치며 통치자금의 창구를 맡아왔다.석유개발공사 사장을 맡은 것도 정치자금 조성과 관련있다는 게 정설로 돼 있다.5조원의 석유안정기금을 굴리면서 정치자금을 만들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지난 91년 서울은행의 행장에 김준협씨가 선임된 게 그가 유일하게 금융계 인사에서 물먹은 사건으로 불릴 정도로 금융계 대출과 인사에서 힘을 휘둘렀다.그는 안동출신인 H씨를 밀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자금과 관련해 이전의원과 함께 수사선상에 오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정주영씨가 김씨와 말이 안통해 정치를 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그는 경제정책·기업정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노씨 구속­육사서 구치소까지

    ◎「2인자 처신」 성공후 「탐욕의 추락」/9사단장때 「12·12」 가담… 권력 전면에/올림픽 조직위장→민정대표→대통령으로 팔공산 기슭.꿈많던 피리부는 소년 노태우는 마침내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그러나 그가 평생 이루었던 꿈은 이제 한낫 물거품이 됐다. 현재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차디찬 감방.만인지상으로 일국을 호령했던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되는 역사의 오점을 남겼다.또 온 국민들의 가슴속에 참담한 상처를 남기게 됐다. 꿈많던 소년시절,명예를 존중했던 육사시절,화려했던 군생활,세계에 올림픽개막을 선언하던 당당한 대통령의 모습은 이제 과거사가 됐다.가난한 시골 면서기의 아들에서 대통령으로,또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죄인으로까지 그는 전락했다.노씨가 예순넷 평생을 걸어온 길은 한 인간이 얼마만큼 화려하게 변신할수 있는가,또 얼마만큼 비참해 질수 있는까 하는 점을 극한적으로 보여준다. ○51년 육사11기 입학 그는 1932년12월4일 팔공산 기슭인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룡리(현재 대구시 동구 신룡동)에서 태어났다.7살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뒤 삼촌의 도움으로 공산국민학교를 거쳐 대구공업중학교에 입학했다.대구공업중학교 4학년때 경북중학에 편입해 졸업한뒤인 51년 육사 11기로 입학하면서 무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육사는 그의 인생항로를 크게 뒤바꿔놓았다.노씨는 육사에서 동기생인 전두환전대통령,김복동자민련부총재 등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전전대통령과는 군요직과 대통령직을 주고받는 동지로,후계자로 인연을 맺게 된다.김씨와는 59년 김씨의 여동생 옥숙씨와 결혼해 처남 매부지간이 됐다. 노씨는 대위로 서울대사대 ROTC교관으로 지내던 중 5·16을 맞았으며 전두환대위와 함께 하나회를 이끌며 박정희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계기를 마련한다.이후 67년에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68년에는 대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했고 70년에는 대령진급을 했다.74년 장군에 진급해서는 전씨의 뒤를 이어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지냈다.78년 소장으로 진급해 9사단장을 맡았다.그는 9사단장 시절 자신의 병력을 12·12군사쿠데타에 동원함으로써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이미 그때부터 그의 영광과 오욕의 운명이 예고되었을지도 모른다. 노씨는 12·12거사의 주모자였던 전두환보안사령관과 함께 하극상에 성공함으로써 권력의 길을 걷는다.12·12 다음 날인 79년 12월13일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옮겼고 다음해 국보위 상임위원으로 기용되면서 중장으로 진급했다.또 그해 8월 보안사령관으로 취임하는등 권력의 핵심인 신군부의 2인자로 부상했다.마침내 81년 7월 대장계급을 달고 29년 6개월의 군생활을 마감했다. ○전국구로 국회 진출 그는 정무장관,초대 체육부장관,내무부장관을 거쳐 올림픽조직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을 맡는 등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다.85년 2·12총선에서는 민정당전국구로 국회에 진출했다.초선이며 전국구인 그는 전대통령의 후광으로 민정당대표위원에 올라 본격적인 차기대권수업에 나섰다.이때 그는 최고권력자에게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는 2인자의 처신을 완벽하게 해냄으로써 전전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잃지 않았다.친구였던 전씨에게 사석에서도 반말은 커녕 다리를 꼬고 앉지도 않았다.마침내 그는 87년 6월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전씨로부터 대통령후보로 지명받았다. 그는 87년 12월 대선에서 「보통사람의 시대」를 내세우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와 대결해 유신이후 16년만에 직선제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 됐다.이에 앞서 그는 재집권 시나리오의 하나인 직선제 개헌수용등을 「6·29선언」으로 묶어 자신의 것으로 발표함으로써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이는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평가된다. 그는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88년 4월26일 13대총선은 여소야대로 나타나 정국운영에는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됐다.과거청산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급기야는 자신을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려준 전씨를 국회증언대에 세우고 백담사에 유배시키는 등 평생동지의 관계가 돌이킬수 없는 원한관계로 돌아섰다.전씨의 형과 동생,처남 등 친인척과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전씨측 사람들은 이를두고 노씨를 배은망덕하다느니,배신자라는 소리가 나왔으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비난에 묻혀버렸다. ○외교치적 긍정 평가 노씨는 재임시 「물태우」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다소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군사정권에서 문민정권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과도기에 무난한 역할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특히 북방외교를 통해 소련과 중국등 구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를 하면서 우리의 외교적 지평을 넓혔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또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여세를 몰아 모두 8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을 열어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것이나 남북유엔동시가입을 성취해 내는등 외교적인 치적에는 상당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93년 2월 퇴임후 밝은 얼굴로 연희동 사저로 돌아갔다.그는 한때 보통사람으로 돌아가 이웃의 환영을 받은 전직대통령이었다.전씨와 화해를 한 것도 사저로 돌아간 뒤였다.그러나 퇴임후 불과 얼마 안돼 과거정권의 비리설이 끊임없이 나돌았고 측근들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 6공시절 장관들이 수뢰혐의로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그에게도 거액의 정치자금 은닉설이 공공연히 떠돌았고 급기야 금융실명제의 위세는 그를 더 이상 보통사람으로 남겨놓지 않았다. ○「역사적 책임」 망각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역사적 책임을 망각했다.국책사업과 관련한 이권개입,수천억원대에 이르는 비자금 착복은 그가 역사를 의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그의 불행은 대한민국 역사의 불행이라는 점을 그는 몰랐던 것일까. 그는 지금 무얼 생각할까.그는 대통령후보가 됐을 때 『정상적인 사람이 사는 길이라면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다.나는 대장이 되고자하는 목표를 세운 적이 없었지만 우연히 대장이 됐고,장관을 꿈꾸지 않았는 데도 3부장관을 지냈고,민자당대표나 대권후보를 목표로 하지 않았는데도 오늘에 이른 것을 보면 내 운명은 기구하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도 「영광은 사라지고 오욕만 남은」지금의 처지에 까지 이를 정도로 기구한 운명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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