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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5·18」 공판­역사적 현황

    ◎“쿠테타 아닌 구국행위” 궤변/수의입은 전·노씨 뉘우침 없이 당당/“당신들이 스타냐” 항변에 한때 술렁/“불행한 현대사 심판”… 방청객 착잡한 표정 17년 전 무력으로 국권을 장악했던 쿠데타의 주역 16명이 마침내 모두 한 법정에 섰다.두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다.현대사의 획을 긋는 역사적 재판으로,전 세계의 이목도 집중됐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을 비롯,국권탈취 주역들의 표정에서는 뉘우침을 읽을 수 없었다. 11일 상오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재판부의 호명에 따라 전두환 피고인이 먼저 법정에 들어섰다.이어 노태우 피고인이 입정해 전피고인 바로 옆에 섰다. 노씨 비자금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 해 10월7일 육사 교정에서 11기 임관 4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이후 6개월여만의 기구한 만남이었다. 두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노피고인은 쿠데타의 좌장이자 옛 동지인 전피고인의 오른 손을 왼손 안쪽으로 잡았다. 이어 유학성·황영시 피고인 등 나머지 피고인들도 차례로 법정에 들어섰다. 피고인들은 12·12 쿠데타로 군권을 장악한 뒤 보안사에서 당당하게 기념 촬영을 했고 이듬해인 80년 5월 국보위를 출범시켰다.이를 바탕으로 5∼6공의 대통령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이 날은 피고인석에서 뒷모습을 「단체촬영」당하며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했다.그럼에도 이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장의 인정신문에 이어 김상희 부장검사의 공소요지 낭독이 끝난 상오 10시25분부터 시작된 변호인의 공소요지 반박은 정오까지 진행됐다. 하오 2시30분에 속개된 재판에서도 계속됐다. 『민주화 운동이란 이름으로 10여년간의 진실을 호도했다』며 시작된 전상석 변호사의 반박요지는 5공화국의 정통성과 검찰기서의 부당성을 강변하는 것이었다. 노태우 피고인은 검찰의 직접 신문에서도 자신의 행위가 국가를 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숨겨진 진실을 공개해 참다운 정의를 구현하는 계기가 되고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재판』이라는 검찰의 모두진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재판 내내 역사의 심판을 벗어나려는 쿠데타 주역들의 강변이 계속됐다.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상오 재판이 끝나고 피고인들이 악수를 나누자 방청석에 있던 고 강경대 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5)가 『너희들이 스타냐』라고 고함쳤다. 그 순간 강씨의 주변에 있던 20여명의 전·노피고인의 측근들이 일제히 일어나 『조용히 해』라며 달려들어 한동안 소란이 빚어졌다. 방청객들의 표정도 모두 착잡했다.
  • 창간 30돌 「창작과 비평」/비판적 지성의 구심점으로

    ◎민족문학론 텃밭… 「객지」 등 문제작 양산/특집호 마련… 국제학술대회·축연 준비 민족문학진영의 구심점 계간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이 96년 봄호로 창간 30돌을 맞는다. 지난 66년 1월 1백32쪽짜리 겨울호로 출범한 「창비」는 현대사의 거센 외풍속에서 문학을 포함,문화사회적 논의에 젖줄을 대며 한국 비판적 지성의 대부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창비」의 역사는 백낙청 서울대교수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그는 사람과 자금을 끌어모아 「창비」창간을 주도했다.이후 「창비」를 이끌어온 그의 「민족문학론」은 찬반논쟁을 통과하며 한국의 진보지식인사회 전체를 단련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현대문학의 많은 문제작이 「창비」를 통해 나왔다.소설쪽에 방영웅의 「분례기」,이문구의 「장한몽」「우리동네」연작,황석영의 「객지」「한씨연대기」,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조세희의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현기영의 「순이삼촌」 등 70년대의 화제작이 소개됐고,80년대 후반부터는 홍희담·공지영·방현석·김하기·공선옥 등 굵직한 신인이 잇따라 발굴됐다.신동엽·김수영·고은·김지하를 비롯,신경림의 「농무」「새재」등 문제시에 지면을 제공한 것이 「창비」였고,시인 김남주·김정환·최영미가 「창비」로 등단했다. 그런가 하면 분단체제론의 강만길씨,민족경제론의 박현채씨,「전환시대의 논리」의 이영희씨 등이 70년대 「창비」의 필자로 활약했다.80년대 후반 사상의 르네상스기엔 「창비」의 민족문학론은 민중민주주의문학론·노동해방문학론 등 오히려 더욱 급진적인 후배들의 문학론과 맞서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창비」 96년 봄호는 창간 3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내용으로 꾸며진다.작가 이호철·박완서·신경숙씨,베이커 하버드대 옌칭연구소부소장,정개련 상임대표 박형규목사,박석무·이해찬의원 등이 「창비」에 얽힌 사연과 축하인사를 들려주는 「창비와 나와 우리시대」,일반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 「독자가 바라본 창작과 비평」 등이 「창비」 30년을 되돌아보게 한다.이밖에 중진시인 36인 신작시선을 싣고,작가 16인의 신작단편집 「작은 이야기,큰 세상」도 발간한다. 이와 함께 4월24일부터 3일간 브루스 커밍스·와다 하루키·노마 필드 등 세계적 석학을 초청하는 국제학술대회와 2월27일 각계인사를 초청한 자축연도 계획하고 있다. 80년 국보위에 의해 폐간당하는 등 군사정치시대 탄압의 대상이던 「창비」는 지난해 10월 출판문화진흥 공로로 문화체육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창비」 편집인 백낙청씨는 『과학기술·환경·여성문제등 현대사회의 쟁점을 끊임없이 끌어들여 「창비」의 시각으로 해석해내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창비」의 장래를 말했다.
  • 「5·18」 3의원 구속영장 요지

    ▷정호용◁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허삼수·허화평·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 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 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시위가 발생하자 피의자 등의 정국장악에 상당한 장애요소로 판단,언론보도를 통제하면서 공수부대를 광주로 투입,강력히 진압하고 광주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계엄군으로 하여금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자위권발동이라는 명목으로 실탄을 분배해 발포케 하고 광주 재진입작전인 상무 충정작전을 실시해 광주 시민인 이정연 등을 살해했음.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 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하고,광주 시민들을 살해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허삼수·허화평◁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 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7일 하오 11시쯤 사회혼란 조성 및 학생·노동계 소요의 배후조종 혐의로 김대중 등을,권력형 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혐의로 김종필 등을 각각 체포하고 18일 무장병력으로 하여금 국회의사당을 점거,8월30일까지 국회의원 등의 출입을 통제하게 해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음. 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하고 7월 중순 국보위 법사분과위원들을 동원해 개헌안 시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전두환·노태우·이학봉 등과 함께 간선제 대통령 선출안 등을 결정하고 피의자 등이 운영하는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국정을 장악하고 대통령과 행정 각부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전대통령이 8월16일 하야하자 18일 서울과 제주를 필두로 잇달아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안보보고회의에서 새 대통령 후보로 전두환장군을 추대토록 하는 한편 8월21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도 전두환을 국가원수로 추대하기로 결의하고 8월27일 전두환이 제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9월1일 취임했음. 집권에 이르는 과정에서 취한 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거나 완결하고 언론을 순화시키며 신당을 창당해 정계를 개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계엄상황을 계속 유지하면서 9월 20일 피의자 등의 의견이 반영된 제 5공화국 헌법개정안을 마련,2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고,10월22일 국민투표로확정된 헌법개정안을 27일 공포하고,제10대 국회를 해산시키면서 국가보위 입법회의로 하여금 81년 4월10일까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게 하고 80년 6월20일부터 신당 창당을 추진하여 특정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한편 정보·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주도하에 민주정의당을 창당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으로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 최규하씨 법정증인채택/5·18특수부/전·노씨 공판과정서 신문키로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4일 5·18사건과 관련,내란 및 반란혐의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등 관련자에 대한 공판과정에서 최규하전대통령을 법정증인으로 채택,신문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재수사과정에서 최씨에 대한 방문조사를 통해 신군부측의 내란 및 반란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진술을 확보치는 못한 만큼 참고인인 최씨를 법정증인으로 정식채택,보다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신군부측이 5·18 당시 집권시나리오에 따라 대통령의 의사와 관계없이 국보위를 설치한 뒤 입법·행정·사법 등 국가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최씨의 대통령직 하야를 유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 80년 「신군부」와 맞섰던 사람들

    ◎신현확전총리­군 동원 시위진압 반대/유병현전합참의장­국보위설치 이의 제기/정웅사단장­시위 정치적수습 건의 5·18사건 전후 군권을 멋대로 휘두르며 정국을 장악하려던 신군부에 맞서 나름대로 소신을 펴며 군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23일 검찰의 5·17,5·18사건 공소장속에 등장하고 있다. 신군부측은 이른바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에 따라 80년 5월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비상계엄전국확대·국회해산·국가보위비상대책위라는 비상기구 설치 등의 안건을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 유병현합동참모의장은 이 회의가 열리기 전 주영복국방부장관으로부터 회의 안건을 듣고 『비상기구설치와 국회해산을 군지휘관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면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안건을 일단 보류토록 했다. 안종훈육군군수사령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학원 소요의 과열·폭력화와 심상찮은 북한의 동향으로 계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사가 개진되자 『계엄확대조치는 국민의 합의에 의해 해야 하는데 시기상조』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결국 이 회의에서 정호용특전사령관과 노태우수경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 등 신군부측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비상계엄 전국확대는 참석자의 서명을 통해 결의됐다. 신군부에 대한 반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러 나섰던 계엄군 지휘관 가운데도 나타났다. 김기석전교사부사령관은 5월21일 하오4시쯤 황영시육군참모차장으로부터 무장헬기와 전차를 동원,시위대를 조속히 진압할 것을 명령받았으나 거절했다.계엄하에서 상관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정웅31사단장은 5월21일 전투병과교육사령부를 통해 「시위대의 주장 내용이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수습보다는 정치적인 수습이 최선」이라는 사태 수습방안을 이희성계엄사령관과 정호용특전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 등에게 냈다. 이밖에 공소장에는 대학생들의 시위진압을 위해 군병력 동원하자는 신군부측의 의견에 『유혈사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는 신현확국무총리 등 일부 국무위원들,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에서 김재규피고인 등에게 내란목적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소수의견을 밝힌 양병호대법원판사 등이 기재돼 있다.
  • 발포명령·지휘체계이원화 규명/전씨등 내란죄 기소­수사결과와 의미

    ◎「정권찬탈」 단죄… 역사 재정립에 큰획/16년 응어리 광주시민 명예 법적회복 23일 검찰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8명을 내란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함으로써 12·12 및 5·18사건 재수사가 마무리됐다. 국회 회기가 끝난 뒤 정호용·허화평·허삼수·박준병의원 등 국회의원 4명을 사법처리해야 하는 수순을 남겨놓고는 있지만 수사 자체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지난해 11월30일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된 지 54일,12월19일 5·18특별법이 제정된 지 35일 만이다. 이로써 전씨와 노씨는 기왕에 기소된 비자금 및 12·12사건에 이어 3가지의 사건으로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전·노씨에게는 12·12사건에서뿐 아니라 5·18사건에서도 군사반란혐의가 추가적용됐다. 일각에서는 5·18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12·12사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한다.물론 헌법재판소에서 5·18특별법에 대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 12·12사건 관계자들도 사법처리할 수 있다.그러나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한 5·18이후 15년8개월여 만에 공소시효만료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관련자들을 기소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재수사를 통해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의 법적·역사적 성격을 확실히 했다는 점은 큰 성과다. 검찰은 5·18사건이 ▲계엄확대 ▲국보위 등 비상기구설치 ▲국회해산 ▲언론통제 등 신군부측의 치밀한 집권시나리오에 의해 이뤄진 정권찬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따라서 아쉬운 점은 없지 않지만 「역사를 바로 세웠다」는 점에서 전국민으로부터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5·18 당시 발포명령 및 지휘체계의 2원화문제 등도 어느 정도 밝혀냈다. 김상희주임검사는 『명시적으로 발포명령을 내린 사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이희성계엄사령관의 자위권발동 천명을 발포명령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수사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16년동안 응어리진 광주시민의 명예가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완전하게 회복된 점 역시 큰 의의로 내세울 수 있다. 앞으로 전씨측은 5·18특별법 등에 대해 집요하게 위헌시비를 벌인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전씨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이미 5·18사건 불기소처분에 대해 「성공한 내란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또한 전씨측은 5·18사건 공소시효 기산점이 최규하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공소시효 기산점은 법률문제가 아니라 검찰의 재수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질 수 있는 사실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전씨 등 4명 내란목적살인죄” 검찰

    ◎「5·18」 핵심 노씨포함 8명 기소/“자위권행사 지시”는 발포명령 간주/광주 일설 지휘관들은 무혐의 처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3일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정에서의 발포명령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희성계엄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주영복국방부장관·정호용특전사령관 등 5명에 의해 사실상 하달된 것으로 밝혀냈다. 검찰은 이날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5·18사건 관련자 8명을 기소하면서 수사결과를 발표,이에 따라 국회가 개회중이라 이번 기소대상에서는 빠진 정호용의원(무소속)을 제외한 나머지 4명에게 내란목적 살인죄가 추가적용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 5명은 80년 5월21일 일련의 회의를 통해 광주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하고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조속히 진압하기로 결의,이날 하오 7시30분 방송을 통해 이희성계엄사령관이 자위권 행사를 지시했고 이는 일선 지휘관들에게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계엄군들은 전씨 등의지시에 따라 정권찬탈의 의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광주에 투입,「생명이 있는 도구」로 이용됐다고 지적,따라서 계엄군의 일선지휘관들은 무혐의 처리키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어 5·18 사건은 전씨 등 신군부측이 집권시나리오인 이른바 「시국수습방안」에 따라 비상계엄 전국확대,광주민주화운동 과잉진압,국가보위비상대책회의와 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 등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내란이었으며 이에 따라 이 사건의 공소시효 기산점은 5·17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24일로 잡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씨 등 신군부측은 최규하전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국보위를 설치해 내각을 무력화시켰으며 결국 입법·행정·사법권을 총괄하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발족,헌법기관의 기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추가기소된 전·노씨를 비롯,황영시씨,유학성 당시 3군사령관,이학봉보안사대공처장 등 5명을 구속기소하고 이희성씨,주영복씨,차규헌 당시 육군사관학교장 등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에게는 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목적살인·반란수괴·불법진퇴·지휘관계엄군지역수소이탈 등 9가지 혐의가 2∼5가지씩 적용됐다. 검찰은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 대로 정호용·허화평·허삼수·박준병의원 등 4명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발표에서 『광주진압군의 지휘체계가 뚜렷하게 이원화된 것은 아니지만 전두환·정호용씨가 정식 지휘체계에 뛰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지휘체계가 일원화됐다는 전씨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또 전씨 등은 80년 5월17일 임시국무회의가 열린 중앙청 안팎에 무장병력을 배치,위압적인 분위기속에 비상계엄확대를 결의토록 한 사실 등이 확인돼 군사반란죄가 추가됐다고 밝혔다. 전씨는 특히 80년 7월 권한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전대통령이 사임을 결심하자 8월10일 노태우씨를 만나 대통령에 취임하는 문제를 논의한 뒤 각 지역 보안부대장들에게 지시,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자신을 지지토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80년 언론통폐합 조치도 전씨 집권계획의 일환으로 자행된 내란의 주요과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 전씨 등 내란죄 기소­수사검사 문답

    ◎“「자위권」 선언직후 진압군에 실탄 지급”/“황영시씨 「탱크진압·헬기 위협사격」 지시/전씨 등 내란상황 계엄해제날까지 지속” 23일 5·17 및 5·18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부장검사는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수사경위와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두환씨 등 4명에 대해 내란목적살인을 적용한 것은 이들이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렸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인가. ▲이들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발포명령을 내렸다고는 볼 수 없다.그 누구도 발포명령을 명시적으로 한 사람은 없다.그러나 이희성계엄사령관이 TV연설을 통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다』고 한 뒤 곧바로 계엄군에게 실탄을 지급했다.이와 함께 시위대에 대한 3회이상 경고,사전 위협사격실시,생명보호를 위한 하반신 조준 등 자위권행사요건의 준수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내란목적살인의 「미필적 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백한 지휘체계 이원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운데. ▲이원화여부를 한마디로 말하면 「없다」고 해야한다.이계엄사령관으로부터 광주지역 정웅30사단장 등에 이르는 정식 라인에 전·정호용씨 등이 중간에서 끼어들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이원화는 있었지만 뚜렷한 이원화 체계는 없었다. ­불법진퇴,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등의 혐의는 전·노태우씨에게만 적용됐는데. ▲이들의 혐의는 국무회의 병력동원과 김영삼씨 가택연금 등 두가지 범죄사실에서 발견했다.다른 사람들도 이같은 혐의는 인정되나 대통령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전·노씨에게만 적용했다. ­내란목적살인에 황영시씨가 포함된 이유는. ▲당시 참모차장으로서 내란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참여했으며 탱크진압을 지시했고 헬기기총위협사격을 전교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등 광주 강경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명령을 받고 실제 발포를 했던 군인들은. ▲계엄군은 명령을 받아 진압에 나섰던 생명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따라서 계엄군 전체를 공범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또 단순살인은 공소시효도 지났다.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도적 역할 및 적극적인 행동 여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는데 차규헌씨 등 불구속자들은 관여정도가 다른 피고인들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이희성씨는 고령이 감안됐다.이외에 개전의 정과 범행후 정상 등이 참작됐다. ­전씨가 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해 사실상 내란의 목적을 완성했으면 이 때가 공소시효 출발점이 되는 것 아닌가. ▲전씨 등은 대통령 취임후에도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크게 불안을 느끼고 계엄을 해제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꾸준한 논의를 벌여왔다.따라서 계엄을 다음해 1월에서야 해제한 것이므로 이때까지는 내란상황이 계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번 수사때와 비교해 이번에 새로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비상계엄해제시점까지가 신군부 폭동의 종료시점이라고 봤으므로 지난번 소홀했던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초법적 비상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국보위설치령」을 발동한 것을 비롯해 국무회의장에 병력을 배치하고 전화선을 끊어버려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등이 새로 밝혀졌다.또 K공작과 시국수습방안은 물론,언론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실체도 이번에 드러났다. ­광주현지조사의 성과는. ▲수사가 다 끝나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다. □「12·12」 「5·18」 재수사 일지 ▲95년 11월24일=김영삼대통령,5·18특별법 제정 및 관련자 의법처리 지시. ▲11월29일=정동년씨 등 고소·고발인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취하서 제출. ▲11월30일=검찰,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1일=검찰 전두환씨 출두통보. ▲12월2일=전씨,대국민성명 발표직후 합천행.전씨에 대한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발부. ▲12월3일=전씨 안양교도소에 전격구속수감,1차 방문조사. ▲12월5일=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소환. ▲12월7일=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9일=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 등 소환. ▲12월10일=권정달보안사정보처장,황영시1군단장,정도영보안사보안처장,허화평보안사비서실장 등 소환. ▲12월12일=최규하전대통령 1차 방문조사 시도.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16일=신현확국무총리,김진기육본헌병감 소환. ▲12월17일=장태완수경사령관 등 소환. ▲12월20일=전씨 경찰병원에 이감. ▲12월21일=전·노씨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 ▲12월27일=광주현장조사단 구성. ▲12월28일=검찰,사공일·이상연·안무혁씨 등 39명 출국금지. ▲96년 1월9일=정호용특전사령관,소준렬전남북계엄분소장 소환. ▲1월10일=허문도중앙정보부비서실장,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주영복국방장관,박영수통일주체국민회의사무총장 소환. ▲1월17일=장세동·황영시·최세창·유학성·이학봉씨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청구.전씨측,서울지법에 위헌제청신청. ▲1월18일=서울지법(당직판사 김문관) 전씨측 위헌제청 인용,장세동·최세창씨 영장기각. 황영시·유학성·이학봉씨 영장발부. 전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1월22일=노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헌재,「5·18특별법 위헌심판사건 및 5·18 재수사 헌법소원」 심리착수.
  • 국보위 참여교수 퇴진 촉구 대자보(조약돌)

    ○…서울대 동아리연합회 일부학생들은 18일 교내 학생회관 3층에 내건 「서울대에서 진행중인 광주학살」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80년 당시 국보위 농수산분과위 입법위원으로 활동했던 이모교수(61·농경제)의 퇴진을 촉구. 이들은 대자보에서 「이교수는 신군부의 집권준비 작업을 주도한 국보위에 참여해 농업협동조합법,농촌근대화촉진법 등 반농민적인 악법제정에 기여했다」고 주장. 이교수는 이에 대해 『당시 문교부에서 서울대를 통해 차출명령이 내려와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국가공무원으로서 교수직을 떠나지 않으려면 활동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농어민후계자 육성 등 농어민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일이었다』고 해명.
  • 「12·12」·「5·18」 핵심 5명 영장

    ▷유학성◁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황영시·차규헌·박준병 등과 함께 79년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그곳 참석자중 최상서열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황영시·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그 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피의자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승화총장 연행에 항의하는 장태완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오라』고 회유함. 또 하오 9시부터 11시 사이에 윤성민참모차장,김용휴국방차관,1·2군사령관,제3군사령부 참모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측 지시에 따른 병력출동의 저지를 부탁한 것을 비롯,출동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전화를 걸어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달라고 회유하는 등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함. 전두환등과 함께 80년5월2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으로 제안된 국보위설치령을 의결하게 한뒤 공직자숙정계획에 따라 공직자 8천6백1명에게 사임을 강요하고 각 언론사에 언론인 3백36명의 해직을 종용하는 등 계엄하의 고유업무와 무관한 조치들을 결정함. 이를 통해 전두환등의 국정수행능력을 내외에 과시,유일한 집권세력으로 부각시키는데 이용하면서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하고 10월29일부터 81년 4월10일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함. 80년 9월1일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언론을 계속 통제한 상태에서 집권과정의 제반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고 신당을 창당,정계를 재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함. 이로써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황영시◁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그곳 참석자중 최고령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서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또 육군 주요지휘관이나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 정식지휘계통에 따른 병력출동을 저지하는 한편 12월13일 0시30분쯤 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도록 지시하고 1시10분쯤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는 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80년 5월초 전두환·노태우·유학성 등과 함께 수시로 만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시국수습방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도록 한뒤 이를 추진하기로 모의함. 5월17일 전군에 소요진압부대 투입작전명령을 하달,5월18일 하오 2시30분쯤 광주의 전남대·조선대를 포함한 전국 92개 주요대학과 국회 및 신민당사와 공화당사,언론기관,공공기관등 1백36개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 2만5천여명을 배치하여 각 해당시설을 점거함. 5월18일 상오 1시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출입을 저지함으로써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함. 피의자등의 정국장악을 위한 비상계엄확대조치와 계엄군 투입 및 정치인들의 체포에 반대하고 전두환의 퇴진과 민주화추진을 요구하는 광주 학생·시민들을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발포하는 등 강경진압함. 이후 공직자 숙정,언론 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등 자신들의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하는 등 폭동하여 내란을 일으킴. ▷최세창◁ 피의자는 1957년 6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3기로 졸업했으며 10·26사건 당시에는 제3공수여단장으로 근무했던 자임. 피의자는 10·26사건과 관련,정승화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해 군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해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는사전계획을 세웠음. 이에 따라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쯤부터 하오 7시쯤까지 사이에 경복궁내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유사시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했음. 피의자는 같은날 하오 11시30분쯤 자신이 여단장으로 있는 특전사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했음. 박종규는 이날 자정쯤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에게 사령부 외곽을 포위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육군대위 김홍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육군하사 6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했음.이어 육군하사 6명이 이들에게 M16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해 김오랑을 살해하고 정병주에게 중상을 입힘. 피의자는 또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을 위반하고 다음날인 13일 상오 2시쯤서울 송파구 거여동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3시경 경복궁으로 진주했음. 피의자는 이같이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자신의 부하인 박종규에게 지시하여 직속상관인 정병주를 체포하고,제3공수여단 2개대대 병력을 인솔하여 경복궁으로 진주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반란중요임무종사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장세동◁ 피의자는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잦은 월권행위와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을 문제삼아 인사조치할 것으로 알려지자 그 지휘권을 박탈하고 무력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함.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하오 7시 사이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함. 하오 7시40분쯤 허화평으로부터 정승화총장을 무사히 연행하였으며 전두환이 정승화총장 연행조사문제를 보고하기 위해 총리공관에 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있는 장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줌. 잠시후 허화평으로부터 총장연행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연행하러간 우경윤대령이 부상을 입었으며 동원된 제33헌병대 병력이 공관경비를 맡고 있는 해병대 병력에 포위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장성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준 뒤 제33헌병대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김진영으로 하여금 제30경비단 소속 5분대기중대 병력 80여명을 인솔하고 총장공관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조치함. 수경사에서 비상이 발령되고 장태완수경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지휘관 비상소집 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소집에 응하지 않음. 제30경비단 상황실로 전파되는 상황과 각 부대에 전화하여 파악한 상황등을 통해 육본 수뇌부가 비상을 발령하고 정승화총장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병력출동을 전제로 한 준비명령을 하달된다는 첩보 등을 수집,제30경비단장실에 모인 장성들에게 전파함. 중요임무종사자로서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정승화총장 연행,부대동향 및 병력이동 상황을 수시 파악,지휘부에 전파하면서 총장공관에 억류된 합수부측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병력을 출동시키는 등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이학봉◁ 피의자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사건」당시 보안사대공처 대공수사과장으로 근무하고 육군준장으로 전역한 뒤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자임. 1,79년 「10·26」사건 합수부본부장으로 임명된 전두환은 계엄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마찰을 빚어왔음.이에 정총장의 지휘권을 박탈,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김재규의 범행에 관련됐는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총장을 강제연행키로 결의했음.연행일을 12월12일로 결정한 전두환으로부터 연행장소 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허삼수 등에게 통보했음.또 79년 12월12일 하오 6시20분쯤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전두환을 수행해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정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했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정총장에 대한 연행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행장소를 결정했음.허삼수등이 정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합수부수사관 7명을 지원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2,80년 5월초 군이 전면에 나서 정국을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전두환의 지시를 받았음.그뒤 전국계엄의 실시,과도정부적 성격의 소극적인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 설치 및 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추진했음.5월16일 보안부대 대공과장들을 보안사로 불러 소요 배후조종자 및 권력형 부정축재자등의 검거대상자 명단을 주고 검거를 지시,사회혼란 조성등 혐의로 김대중 국민연합공동의장,문익환목사등을 체포하고 권력형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범죄혐의로 김종필 공화당총재,이후락·박종규국회의원등을 구속했음.11월12일 45개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언론통폐합 조치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주요정치인·재야인사에 대한 수사계획을 수립,이들을 체포·구속했음.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하거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으며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자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 「K공작」 기획 집중추궁/「5·18」 특수부

    ◎허문도·유학성·주영복씨 등 소환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0일 5·18 당시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이자 국보위 문공분과위원이었던 허문도씨와 박영수전통일주체국민회의 사무총장을 처음 소환한 것을 비롯,3군사령관 유학성씨,국방부장관 주영복 등을 재소환,조사했다. 검찰은 허씨를 상대로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서리를 겸직하게된 경위와 언론통폐합 및 신군부측 집권시나리오의 일환으로 알려진 「K­공작」을 기획·추진한 의도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또 유씨와 주씨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5·17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 확대조치가 결의된 경위와 5·18 광주 현장 진압을 위해 계엄군이 출동한 과정 등과 관련해 미진한 부분을 캐물었다. 검찰은 12·12 및 5·18 사건의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사법처리와 관련,「경복궁모임」 참석자,보안사팀,정승화전육참총장 연행팀,광주 진압군 주요지휘관 등 주요 사안별 관련자들을 분류,사법처리 범위와 수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정호용씨 「지휘권 행사」조사/검찰/「5·18」핵심내주말 사법처리

    ◎양민 암매장 장소 발굴계획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9일 80년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정호용의원과 전교사사령관이자 전남북계엄분소장 소준열씨,수경사 헌병단장 성환옥씨,30경비단장 이현우씨 등 4명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당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와 관련,임시국무회의가 열린 회의장주변에 병력을 배치한 30경비단장 이씨와 수경사 헌병단장 성씨를 정의원 등과 대질신문,병력동원경위 등을 추궁했다. 검찰은 또 국보위 문공분과위원이던 허문도씨 등 3명을 10일중 소환,언론통폐합과정과 배경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이본부장은 이날 『다음주초까지 이 사건의 핵심관련자와 참고인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면서 『현재 핵심관련자들을 다음주말쯤에 사법처리한다는 계획 아래 법률 검토작업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광주에서 벌이고 있는 시민의 피해상황과 계엄군의 이동 및 과격행동 등 현장조사도 다음주말에 끝낼 방침이다. 이본부장은 양민이 암매장되었다는 장소에 대한 발굴과 관련,『많은 제보가 있지만 가능성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 발굴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암매장장소로 알려진 황룡강변과 화정동 잿등부근 야산,송암동 분뇨처리장부근 등에 대해 5·18단체 관련자들의 진술을 들은 뒤 이 가운데 일부지역을 굴착기로 파본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정의원을 상대로 80년 5월17일 전국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제안한 경위와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에 대한 실질적인 지휘권을 행사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조사했다. 한편 검찰은 8일 소환했다 귀가조치한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의원과 보안사 언론대책반장 이상재의원 등 4명을 조만간 재소환하기로 했다.
  • 허화평씨 등 5명 조사/정호용·소준열씨 오늘 소환/5·18 수사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8일 80년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씨,인사처장 허삼수씨,대공처장 이학봉씨,언론대책반장 이상재씨 등 보안사 관계자들과 3공수여단장 최세창씨 등 5명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80년 당시 특전사령관 정호용씨와 전교사사령관겸 전남북 계엄분소장 소준열씨 등 2명을 9일 소환,광주 현장 지휘체계와 발포명령 등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보안사 관계자들을 소환한 것과 관련,『보안사팀들이 12·12사건 이후 5·17비상계엄확대에서부터 81년 1월24일 비상계엄해제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깊이 관여한 사실이 밝혀져 각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를 확증하기 위해 재소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보안사팀들을 상대로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하게 된 경위와 광주에 계엄군을 출동시킨 과정 및 보고체계,계엄확대 전날인 5월16일 보안사에서 전국보안부대 대공과장회의를 소집한 이유,국보위의 설치를 기획한 의도 등을 조사했다.
  • 「5·18」 10여명 20일께 일괄 기소

    ◎이번주 관련자 소환조사 마무리/비자금 관련 전씨 하순 추가기소 12·12 및 5·18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7일 이번주중으로 5·18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무리짓기로 하고 이들 관련자들의 사법처리수위와 적용법률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정호용당시특전사령관,허문도국보위문공분과위원,이상재보안사 언론대책반장 등 아직 조사를 받지 않은 10여명의 피고소·고발인에 대한 조사를 이번주초에 끝맺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지난달 27일부터 광주지검과 합동으로 벌이고 있는 광주현장조사도 이번주중으로 완료하기로 했다. 검찰은 사법처리대상자를 결정한뒤 오는 20일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5·18내란사건 추가기소에 맞춰 일괄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사법처리대상자는 전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보안사4인방」 「경복궁모임」 광주진압관련자 등 10명선인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전·노씨를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들은 불구속기소,기소유예,불기소처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비자금과 관련,이달 하순쯤 전씨를 뇌물혐의로 추가기소하면서 비자금조성 및 개인비리에 관련된 장세동·안현태·최세창씨등 3∼4명의 측근인사도 함께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한편 검찰은 8일 이학봉전보안사 대공2과장 등 4명을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 정호용의원 등 곧 소환/5·18수사/현연군인은 군검찰부서 조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6일 80년 당시 특전사령관 정호용의원과 언론통폐합에 깊이 관여한 국보위 문공분과위원 허문도씨,보안사 언론대책반장 이상재의원 등을 다음주중으로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이차장은 『5·18사건과 관련돼 소환하지 않은 핵심관련자들을 다음주까지 모두 불러 조사를 한뒤 관련자들의 사법처리를 위한 법률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차장은 또 당시 20사단 61연대장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김동진합참의장 등 피소된 현역 군인 8명에 대해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할 수도 있지만 가능한 한 국방부 군검찰부에 의뢰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앞서 피고소인인 권승만준장을 5일 소환한 것을 비롯,현역군인 6명을 이미 소환 조사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최초로 투입된 7공수여단장 신우식씨와 전민정당 사무차장 윤석순씨와 당시 대법원 판사였던 양병호변호사,전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장 김만기씨,육군 작전참모부장 김재명씨 등 5명을 소환,조사했다.
  • 이희성씨 등 4명 오늘 소환/검찰/광주에 계엄군 투입경위등 조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4일 80년당시 이수정문공부공보국장등 5명을 불러 국보위가 기획한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경위 등을 추궁했다.이들중 박해준 전총무처 총무국장을 상대로는 국보위 비상대책위원회의 주도로 공무원에 대한 숙정작업이 이뤄진 구체적인 과정 등을 집중조사했다. 검찰은 5일중으로 이희성 전계엄사령관등 4명을 불러 80년 5월18일 광주에 계엄군이 투입된 경위등을 조사할 예정이다.또 당시 언론통폐합에 관여한 이상재씨와 허문도씨등도 곧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 전씨 맏아들 금명 소환/검찰/비자금 관리·운영 개입 혐의

    ◎이수정 전 문공부국장 오늘 환문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3일 80년 당시 신민당의원이었던 손주항씨와 11공수여단장 최웅씨,국보위 사회정화위원 강상진씨 등 3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손씨를 상대로 80년 5월20일 황낙주의원과 제104회 임시국회에 등원하려다 국회를 봉쇄한 33사단 병력에 의해 제지당한 경위 등에 대한 진술을 들었다. 검찰은 특히 계엄 해제 등 현안을 다룰 예정이던 임시국회가 계엄포고령에 의해 돌연 봉쇄되는 과정에 신군부측의 압력이 개입됐었는지도 조사했다. 검찰은 최웅씨에 대해서는 80년 5월19일 광주에 투입될 당시 시위상황과 유혈진압이 이뤄진 경위,금남로 등 도심에서 발포가 되기까지 구체적인 지휘계통 등을 신문했다. 검찰은 또 강상진씨를 상대로 국보위가 「대통령 자문기구」로서의 성격과 기능을 벗어나 사실상 내각을 대신,권력기구로서 활동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과 신군부가 권력 장악에 국보위를 이용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했다. 한편 검찰은 전두환전대통령의비자금 이자 가운데 8백만원이 영화배우 김지미씨(56·여)가 운영하는 지미필름 명의의 계좌에 유입된 사실을 확인했으나 김씨는 전씨 비자금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문제의 8백만원은 지미 필름이 운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어음을 발행해 이를 현금으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입금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검찰은 4일 5·18 당시 문공부 공보국장을 지낸 이수정씨를 불러 조사하기로 하는 한편 전씨의 비자금관리·운영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전씨의 맏아들 재국(36)씨를 굼명간 소환키로 했다.
  • 전씨 건강 빠르게 회복/검찰 수사·경찰병원 이모저모

    ◎“5공법통 사수”… 단식 재개 가능성 암시/이원홍씨 “국보위 설치요강 작성” 시인 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는 종무식이 열린 30일에도 전두환 전대통령의 사돈 윤광순 전한국투자신탁사장 등 7명을 소환,조사하는 등 세밑에도 수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또 단식을 중단한 전씨는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이날 상오 10시에 출두한 이원홍 전청와대민원수석은 국보위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보위 설치 요강과 조문화 작업에 참여했다』고 떳떳하게 밝히는 등 여유있는 모습. 반면 함께 소환된 안부웅 당시 11공수여단 61대대장 등 공수부대 대대장 4명은 중앙 엘리베이터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을 거치지 않고 옆 엘리베이터를 이용,몰래 조사실로 직행. ○…검찰은 31일까지 정상근무를 계속할 방침이나 신정연휴에는 관련자들을 소환하지 않기로 결정.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일정이 촉박하기는 하지만 명절날까지 소환조사를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면서 『신정연휴에는 수사기록을 검토하는 등 이제까지의 수사결과를 정리할 계획』이라고 설명. 또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도 지난 29일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을 기소하면서 수사의 한 고비를 넘기고 지난 10월19일 민주당의 박계동 의원이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이래 처음으로 휴식. ○…29일부터 응급치료를 받았던 전씨는 이날 상오 링거주사 등을 맞으며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 전씨의 담당의사인 이권전(48) 진료1부장은 『전씨가 링거주사를 수차례 맞았고 진한 쌀뜨물과 동치미 무 2조각을 먹는등 음식을 전혀 거부하지 않고 있다』며 『탈수현상으로 악화됐던 신장기능과 혈압과 맥박등도 정상을 되찾는등 빠른속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설명. ○…이에 앞서 전씨는 이날 상오 단식중단 성명을 내고 28일동안의 단식을 공식 마감. 전씨의 변호인인 이양우 변호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전전대통령은 28일간 지속된 단식으로 건강이 극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가족들과 의료진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단식을 일단 중단키로 했다』며 『그동안 단식으로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설명. 이변호사는 그러나 『전전대통령은 과거정권을 군사반란에 의한 범죄집단으로 규정,건국이래 온국민이 피·땀으로 지켜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전면 부인하려는 오늘의 정치상황에 대항해 목숨을 바쳐 5공화국의 법통을 계속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혀 향후 단식재개 가능성을 암시.
  • 전씨 1천억 투신 입출금/검찰/전 한국투신 사장 소환 조사

    ◎5·18 관련 5명 환문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30일 전두환 전대통령이 재임 동안 한국투자신탁에 1천여억원을 입출금시켰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전씨의 사돈인 전한국투자신탁 사장 윤광순씨를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또 이날 전씨의 장남 재국씨의 장모인 김경자씨도 소환,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지난 15일 압수수색한 한국투자신탁 계좌를 추적한 결과,전씨가 83년 10월25일 「청와대 경호실」명의로 한국투자신탁에 계좌를 개설,지난 10월까지 1천여억원의 비자금을 입금시켜온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5·18 당시 청와대 민원수석이었던 이원홍씨를 비롯,광주 투입됐던 11공수여단 61대대장 안부웅씨,11공수여단 62대대장 이제원씨,3공수여단 13대대장 변길남씨,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씨 등 5명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이날 5·17비상계엄 확대를 의결하던 임시 국무회의장 주변에 투입됐던 윤태이 전수경사 소속 중대장도 소환,투입 경위와 당시 상황에 대해 신문했다. 민원수석 이씨를 상대로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서 최규하전대통령의 돌연 하야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신군부측의 움직임,국보위 설치 요강과 조문화 작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안부웅씨등 공수여단 대대장을 통해 80년 5월20일 3공수여단이 광주지역에 출동한 뒤 최세창3공수 여단장에게 실탄 지급을 요청하고 실탄을 지급 받아 중대장 등 장교들에게 나눠준 경위,M60 기관총·M16 소총으로 위협사격을 실시해 사망자를 발생케 한 과정,광주 시위 상황 등에 대해 확인 작업을 벌였다. 한편 검찰은 당시 국보위 설치령에 반대의견을 냈던 박동진 전외무부장관과 광주진압에 투입된 조창구11공수여단 63대대장,공무원 숙정과 관련해 송영은 총무처 인사국장등 3명을 31일중으로 소환하기로 했다. 이차장은 『내년 1월 하순까지 모든 수사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라면서 『비자금 수사에 대해서는 그전에라도 단계적으로 사법처리 수순을 밟아 갈 것』이라고 말했다.
  • 잠적 전씨사돈 출국금지/검찰 비자금­5·18수사

    ◎장세동씨 어제 소환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9일 전두환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장세동 전청와대경호실장을 재소환,전씨가 조성한 비자금 규모 및 사용처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소환될 예정이었던 전씨 장남 재국씨의 장모 김경자씨가 잠적함에 따라 소재 파악에 나서는 한편 법무부에 출국금지 조치를 요청했다. 검찰은 전씨 비자금 관리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재국씨도 금명간 소환할 방침이다. 이본부장은 이날 전씨 친인척의 사법처리와 관련,『수사 과정에서 혐의가 드러나면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말해 친인척 가운데 일부도 사법처리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은 이날 하오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노태우 전대통령을 방문,그동안 5·18사건 수사에서 드러난 노씨의 당시 역할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또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이었던 조비오신부(60·5·18기념재단이사장)와 최평욱 전국보위운영분과위원,이용상 당시 전교사 정보처장 등 3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본부장은 『앞으로 수사의 비중을 광주 현장조사에 두고 검사 1명씩을 교대로 파견,광주지검과 철저한 공조수사를 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방위산업진흥회가 지난 92년 최세창 전국방장관 등 국방부 고위관계자들에게 군수물자 납품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준 혐의를 잡고 관련 은행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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