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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웨이’ 최진희, 남편 유승진 최초 공개 ‘19년차 잉꼬부부’

    ‘마이웨이’ 최진희, 남편 유승진 최초 공개 ‘19년차 잉꼬부부’

    가수 최진희가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남편 유승진 씨를 방송 최초로 공개한다.최진희는 ‘그대는 나의 인새’, ‘사랑의 미로’,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등 명곡으로 잘 알려져 있는 데뷔 35년차 가수다. 최진희는 지난 4월 1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 평화협력 기원 ‘우리는 하나’ 공연에 참석하며 북한 초청 공연에 네 번이나 참석한 기록을 남겼다. 최진희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이었던 ‘사랑의 미로’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별 요청이었던 ‘뒤늦은 후회’를 열창해 북한 주민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이번 방송에서 최진희는 방송 최초로 남편 유승진씨를 공개했다. 올해로 19년차 잉꼬 부부로 살고 있는 최진희-유승진 부부. 한차례 이혼의 아픔을 겪었던 그녀에게 남편 유승진씨는 가장 큰 버팀목이자 최고의 조력자이다. 그녀는 “남편은 강한 사람에게는 강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약하다. 그런 인간미와 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서 참 좋은 것 같다”고 남편에 대해 말했다. 남편 유승진 씨는 “아내는 보기엔 도도한데, 막상 알고 보면 굉장히 순수하다. 그런 면에 반해 결혼을 하게 됐다”고 말하며 애정을 과시했다. 특히 그녀와 유승진씨가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 것에는 딸의 역할이 컸다고 밝힌다. 그녀는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한편,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는 10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TV조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당신”→“경애하는”, “저와 대통령님”···김정은의 놀라운 화법 변화

    “당신”→“경애하는”, “저와 대통령님”···김정은의 놀라운 화법 변화

    다렌 방문 귀국시 “경애하는 습근평(시진핑)”남북정상회담 때는 “저와 문재인 대통령님”“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에 도전해 나선 도발자들은 무자비한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는 북한 당국과 매체들이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는 국가와 개인들을 위협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여기서 ‘최고 존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김정은 위원장이 ‘이 세상 모든 존엄과 권위의 최상위에 있는 존재’라는 뜻으로, 북한에서 김 위원장은 신(神)과 같은 반열에 놓여있다. 하지만 최근 적극적인 대외 행보에 나서고 있는 북한의 ‘최고 존엄’인 김정은 위원장이 상대국 지도자들을 향해 깍듯한 경어체를 사용하고 있어 눈길이 쏠린다. 김정은 위원장은 8일 중국 다롄(大連)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낸 감사 서한에서 “경애하는 습근평(시진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서한에서 “우리를 따뜻이 맞이하고 성심성의로 환대하여준 경애하는 습근평 동지께 충심으로 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라며 “경애하는 습근평 동지께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그동안 최고지도자에게만 ‘경애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 김일성은 ‘경애하는 수령’, 김정일은 ‘경애하는 장군님’, 김정은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로 부르는 식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이번처럼 최고의 경어체인 ‘경애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외국의 지도자를 높여 부르고, 이를 북한 매체가 그대로 인용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28일 중국 베이징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보낸 감사 서한에서는 시 주석을 ‘당신’이라고 호칭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경어체를 자주 사용했다. 그는 판문점 선언 서명에 이어진 남북 공동 발표에서 서너 차례 “저와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언급하며 자신을 낮췄다. 또 이날 오전 정상회담 모두발언 등에서도 여러 번 ‘문재인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며 문 대통령을 높였다.특히 김 위원장은 이날 저녁 판문점에서 열린 만찬 연설에서 “이 땅의 영원한 평화를 지키고, 공동번영의 새 시대를 만들어 나감은 나와 문재인 대통령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남쪽 대통령에게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며 존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통령’이라는 공식 명칭으로만 불렀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의 경어체 사용은 정상국가 외교의 관례를 따르는 측면도 있겠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아버지나 삼촌뻘인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김정은이 동방예의지국의 지도자다운 이미지를 연출하는 모양새”라며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타결될 경우 김정은이 회담 석상에서 최소한 ‘친애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 대통령, 한중일 정상회의서 ‘판문점 선언’ 지지 특별성명 추진

    문 대통령, 한중일 정상회의서 ‘판문점 선언’ 지지 특별성명 추진

    문 대통령 일본 향발 문재인 대통령은 9일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취임 후 처음이며,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6년5개월 만이다.한국과 중국, 일본이 매년 순차적으로 개최하기로 한 3국 정상회의는 201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뒤 2년 반 동안 열리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문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4·27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3국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특히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판문점선언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특별성명 채택을 시도할 예정이다. 한미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한중일 3국의 특별성명이 채택된다면 북미 간 비핵화 방법론의 간극을 좁히려는 문 대통령의 ‘중재 행보’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한중일 정상회의에서는 이 밖에도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방안과 세 나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환경·경제 분야에서의 실질적 협력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회의와는 별도로 리 총리와 회담하고 아베 총리와도 한일정상회담을 한다. 리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중국발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 해결 방안 등을 주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지난 7∼8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랴오닝성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한 것과 관련, 북중간 논의사항에 대한 설명이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는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한 협력방안이 모색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한일 위안부 합의 등 과거사 관련 현안이 언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아베 총리로부터 북한의 미사일 문제와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을 요청받을 가능성이 있어 문 대통령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호 열차’ 대신 전용기 이용…리용호·최선희 북미라인 총출동

    ‘1호 열차’ 대신 전용기 이용…리용호·최선희 북미라인 총출동

    리수용·김영철·김여정 등 수행 트럼프와 담판 전 북·중 입장 조율 리설주 대동 안 해 실무 방문인 듯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녹색 1호 열차’를 이용한 첫 번째 중국 방문과 달리 전용 항공기를 이용했다. 또 북한의 대미외교 핵심라인이 대거 동행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 간 협상 스탠스를 조율하고자 방중했다는 목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부인 리설주 여사를 동행하지 않아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현안에 집중한 실무형 방중이라는 평가다.조선중앙방송은 8일 김 위원장의 방중에 “리수용·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 김여정 당 제1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국무위원회 관계자들이 동행”했다고 언급했다. 김영철 부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에도 배석했다. 김 위원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여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은 지난 방중 때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번 수행단엔 포함됐다. 리 외무상과 최 외무성 부상은 자타가 공인하는 북한 외무성의 대표적 ‘미국통’이다. 특히 리 외무상은 핵·군축 분야를 담당하며 외무성에서 오래전부터 대미 협상에 참여했다. 사실상의 북한 외교의 핵심 실세로 통한다. 최 부상은 역시 지난해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비공개 접촉을 하고 각종 반관반민(1.5트랙) 대화에 참여하는 등 최근 북한의 대미접촉과 핵 외교의 ‘최일선’에서 활동했다. 그는 올해 3월 초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국장에서 부상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중에 대중 담당인 리길성 외무성 부상이 아니라 대미 라인인 최 부상이 동행한 것은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 목표가 북미관계와 비핵화 문제에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말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처럼 전용열차를 이용했지만, 이번에는 북한 내부에서 자주 이용하던 전용기 편으로 중국 다롄을 방문했다. 아버지인 김 위원장이 비행기를 꺼린 이유는 납치나 폭발 등에 대한 불안감 탓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대형 전용기는 물론이고 경비행기로 지방 시찰에 나서곤 했다. 김 위원장은 2014년과 2015년 공군 지휘관들의 전투비행술 경기대회를 참관할 때 전용기로 대회가 열리는 비행장을 찾았다. 2016년 2월 이른바 ‘광명성 4호’ 위성 발사 때에도 전용기인 ‘참매 1호’를 이용해 동창리 발사장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이 직접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영상은 여러 차례 공개됐다. 김 위원장의 ‘항공기 사랑’은 30대의 젊은 나이와 개방적인 성격, 스위스 유학 등 외국 생활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다롄 방문에 항공기를 이용한 것은 중국 방문 시간을 단축과 경호·의전 등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역대 北·中 비밀회담 장소로 사용…2010년엔 김정일-리커창 회동도

    역대 北·中 비밀회담 장소로 사용…2010년엔 김정일-리커창 회동도

    방추이다오는 중국 랴오둥(遼東)반도 끝 부분에 있는 다롄시 동쪽 외곽의 해변 휴양지로 수려한 경관 덕에 ‘북방의 진주’로 불린다. 작은 섬에 조성한 리조트는 다롄 앞바다에서 여러 개의 다리로 연결됐다. 주위가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만큼 경호 및 언론 차단이 쉽다. 김일성, 김정일 등 역대 북한 지도자의 북·중 비밀회담 장소나 중국 지도자의 휴양지로 사용됐다.2010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곳에서 리커창(李克强) 당시 부총리와 회동했다. 1951년 건립된 게스트하우스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휴가 때 자주 들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중국의 첫 국산 항공모함인 001A의 시험 운항 행사 참석차 다롄에 방문했다. 001A는 현재 러시아산을 고쳐 운항 중인 중국의 유일한 항모 랴오닝함에 이어 중국이 처음 자체 제작한 것으로, 지난해 4월 다롄 조선소에서 진수식을 가졌다. 지난 5일 001A에서 수송용 헬기 이착륙 훈련이 시행됐고, 랴오닝성 해사국이 군사 임무를 이유로 4~11일 보하이해협과 서해 북부 해역의 선박 진입을 금지했다. 아직 정식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001A의 일거수일투족은 전 중국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국가원수급’ 삼엄 경계 다롄 방추이다오는···김정은 방문하면 ‘3대 인연’

    ‘국가원수급’ 삼엄 경계 다롄 방추이다오는···김정은 방문하면 ‘3대 인연’

    북한 고위급 인사가 7일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방추이다오 섬이 관심을 끌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미국의 대북 압박 메시지로 인해 북한과 미국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북한 최고위급 인사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다롄 시내에서 방추이다오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들은 공안들에 의해 차단된 상태로 알려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다례으로 이동했다. 이에 따라 국가원수급의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다. 방추이다오는 중국 랴오둥(遼東) 반도 끝 부분에 있는 다롄시 동쪽 외곽의 해변 휴양지로, AAAA급 국가공인 경구(관광지)이다. 수려한 경관 덕에 ‘북방의 진주’로 불리는 다롄에서 가장 좋은 해수욕장 가운데 한 곳으로 500m 길이의 모래사장을 갖췄고 다롄 앞바다에서 여러 개의 다리로 연결된 작은 섬 리조트가 조성됐다. 1951년 이곳에 건립된 게스트하우스 빌라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휴가차 자주 들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알려졌다. 섬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봉쇄하면 외부 침입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안상 안전하다. 이에 역대 중국 지도부와 외국 정상급 지도자들의 회동 장소로 애용됐다.특히 북중 비밀 회담이 열리던 섬으로, 김일성 전 주석과 덩샤오핑(鄧小平) 등 중국 지도부가 은밀히 회동하던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0년 5월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다롄을 방문,방추이다오에서 리커창(李克强) 당시 부총리와 만찬 및 회동해 주목받았다. 이 때문에 이번에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고위급 인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일 경우 선친과 인연 있는 장소를 둘러본 셈이다. 현지 소식통은 “북한 고위급 인사의 다롄 방문설에 이어 방추이다오에 대한 중국 측 보안이 매우 강화돼 이곳에 숙박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방중 인사의 동선과 관련해 열차역, 공항과 더불어 주시할 만한 장소”라고 평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서해 NLL 평화수역 지정, 北 태도가 관건이다

    국방·통일·외교·해양수산부 4개 부처 장관이 그제 연평도와 백령도를 찾아 남북 정상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지대화 합의와 관련한 주민 의견을 청취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이후 나온 ‘4·27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다. 그동안 서해 NLL은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렸다. 1, 2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등 숱한 남북 무력 대결이 펼쳐졌고, 전면전으로 번질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NLL을 평화수역으로 지정하고, 공동어로구역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교류 활성화 등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신뢰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대남ㆍ대북 비방 확성기 철거와 달리 NLL 평화수역 지정은 직접 무력 충돌의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고, 남북 정상 간 합의의 신뢰성을 전 세계에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953년 8월 30일 NLL 설정 이후 야간 어로 금지 등으로 생계에 지장을 받아 온 어민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는 크다. 우리 바다에서 불법 조업을 일삼던 중국 어선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평화수역 지정까지는 갈 길이 멀고 험하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합의, 발표한 ‘10·4선언’에도 ‘공동어로수역’ 지정과 ‘평화수역’ 선포가 들어 있었지만, 기준선을 유엔군이 설정한 NLL로 할지, 아니면 북측이 설정한 ‘서해 경비계선’으로 할지를 놓고 이견만 노출하고 무산됐다. 북한이 판문점 선언문에 NLL을 그대로 쓰는 등 태도 변화 조짐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달 열리는 남북 군사당국 회담에서도 같은 입장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연평도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NLL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모르겠지만, 그 전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결국 NLL의 평화지대화는 북한 태도에 달려 있는 셈이다. 북측이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원한다면 먼저 실체적 존재인 NLL의 인정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서해 NLL에서의 남북 간 긴장완화 조치와 신뢰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한 번의 군사당국자 간 회담에서 성과를 도출하기는 어렵다. 군사 회담과 별개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NLL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는 방안도 선택지에 넣었으면 한다.
  • 김정은 위원장이 어릴때 스위스 유학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김정은 위원장이 어릴때 스위스 유학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도올 김용옥 교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린 시절 스위스 유학을 떠났던 이유에 대해 “보통 사람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김용옥 교수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과정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았다”며 지난 4일 이같이 말했다.김정은은 10대 시절 스위스 베른에 있는 공립학교 유학했다. 김정은이 독일 문화권 학교까지 매일 4년 넘게 걸어다녔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는 몸이 아파서 스위스에 따라가지 못하고, 그의 이모인 고영숙과 이모부가 스위스 대사관 직원으로 등록해 김정은을 돌봤다. 김정은은 ‘박은’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다녔는데 당시 학교의 교장은 “일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담임교사는 “자신의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분발해서 달성하고야 마는 아이였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학적부를 보면 수학 점수가 월등히 높아요. 그런 것을 보면 머리가, 수학이 어학보다 능력이 뛰어났다”고 소개했다.특히 김 교수는 “고용희는 김정은이 북한에 있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제대로 교육받을 길이 없다고 봤다”며 “김정은이 보통 사람의 삶을 사는 게 고용희의 소원이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립국가인 스위스를 택해서 대사관 관원의 아들로 해서 위장시켜서 다니면서 보통사람의 삶을 살도록 했다. 김 교수는 “(아들에게) 일체 보통 사람 이상의 의식을 주는 행위를 못 시키게 했다”고 말했다.김정은의 스위스 시절 가장 친한 친구는 포르투갈 출신의 ‘미카엘로’로 둘 사이의 우정이 한 번도 금 간 적은 없었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그는 포르투갈 대사관 직원의 아들이었다. 그러면서 “농구를 좋아하고 상당히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는 것이 스위스의 종합적인 평가”라고 덧붙였다.미카엘로는 13살 때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를 다니면서 김정은을 만나 단짝 친구가 됐다. 같은 반 한 책상을 썼다고 밝힌 미카엘로는 “16살 시절의 김정은은 나와 비슷한 평범한 아이였다”고 CNN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바 있다.김 교수는 또 “김정은이 스위스에서는 독일어로 공부했고 영어도 같이 써야 했기 때문에 영어를 상당히 잘한다. 북한에 돌아온 후에도 영어공부를 계속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식적으로는 한국말을 쓰겠지만 중간중간 아주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日 언론, :김정은 7세때 위조여권으로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

    日 언론, :김정은 7세때 위조여권으로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

    일본이 북한을 상대로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과거 일본 방문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6일 북한 노동당 비서실의 박영무 부부장이라는 인물이 지난 1991년 5월12~22일 김정은 위원장, 김 위원장의 형 김정철 씨와 함께 일본에 머물렀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1984년생이라고 본다면 이 때는 김 위원장이 7살이던 때다. 박 부부장은 브라질 여권을 가지고 ‘조셉 팡’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입국했으며 출입국 기록에 김 위원장과 김정철은 그의 아들로 기재됐다. 산케이는 당시 김 위원장 등이 도쿄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것으로 판명됐다며 박 부부장과 김 위원장은 이듬해인 1992년 4월2~12일에도 일본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일본 수사 당국은 이후 박 부부장이 사용한 신용카드 기록을 조회해 결제 은행이 중국은행의 마카오 지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실 김 위원장의 과거 일본 방문 소식은 김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주목되던 지난 2011년 이미 일본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NHK와 요미우리신문 등은 당시 신용카드 사용 기록을 조사한 결과 김 위원장이 디즈니랜드에 들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었다. 김정철·정은 형제의 생모인 고용희는 195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2년 가족과 함께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이주했다. 산케이는 일본 수사당국이 입국 당시에는 김 위원장과 김정철 씨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1996년께 박 부부장을 공작원으로 보고 조사하던 중 뒤늦게 확인됐다며 이후 박 부부장이 일본에 입국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도쿄 디즈니랜드는 작년 암살된 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씨와도 관련이 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김정남 씨는 1990년대 일본을 여러차례 방문해 도쿄의 신바시(新橋)역 주변과 번화가 아카사카(赤坂) 등을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1년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가 도쿄 인근 나리타공항에서 구속됐는데, 당시 그는 가족으로 보이는 여성 2명, 남자 아이와 함께 일본에 와 “김정일의 아들이다. 도쿄 디즈니랜드를 볼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27이행·핵폐기 절차·다자 협력틀…숨가쁜 5월 시작됐다

    4·27이행·핵폐기 절차·다자 협력틀…숨가쁜 5월 시작됐다

    2007년의 남북 이행 중단은 없다 DMZ 평화지대화 등 실행 속도전 北 풍계리 핵실험장 이달 중 폐기 냉각탑 폭파처럼 생중계할지 주목 “金, 북·미회담서 비핵화 구체화”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성공적으로 ‘판문점 선언’을 도출한 후 한반도 평화 로드맵의 방향을 결정지을 ‘운명의 5월’이 시작됐다. 이달 하순 비핵화 로드맵 담판을 지을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공개로 비핵화 의지를 증명할 계획이다. 한국은 한반도 평화 국면을 지지해 줄 다자 협력구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비핵화 국면에 따라 남북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에 나섰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포럼 기조 발제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겠다.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그는 남북 정상의 회담인 만큼 남북 관계 발전이 먼저 들어갔고, 한반도 비핵화 부분은 북·미 정상회담이 곧 있을 예정이어서 목표와 방향만 압축해 넣은 것이라고 전했다. 조 장관은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에 길잡이, 디딤돌이 되는 회담이라는 인식으로 남북 정상회담에 임했다”며 “판문점 선언에 들어간 비핵화 표현은 현 단계에서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할 수 있는 최대치의 내용이 담겼다”고 강조했다.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 전문가와 언론에 공개하기로 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절차도 이달 중에 실시된다.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 의지를 가졌는지 알아볼 테스트 무대다. 2008년 6월 북한이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할 때와 달리 전 세계에 생방송을 허용할지가 관건이다. 당시에는 5개국 언론사 기자들이 참관했고 생중계가 예정됐지만, 북한이 동의하지 않아 녹화본으로 공개됐다. 이달 중 개최에 합의한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는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조성하는 방안,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 등 군사적 긴장 완화 방안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달 중순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를 통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와 산림협력 연구 등 대북 제재에 어긋나지 않는 분야부터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비핵화 과정과 남북 관계 진전 모두 ‘속도’가 관건이다. 충분히 준비가 끝난 상황인 데다, 정권 1년차부터 몰아치지 않으면 동력이 분산된다는 것을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남북은 2007년 10·4 정상선언에서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 추진에 합의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말에 이뤄졌던 남북 간 합의는 정권 교체 및 북핵 문제 악화로 추가 논의가 중단됐다. 정부가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올해 7월 27일을 계기로 종전 선언을 추진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진전 과정에 발맞춰 평화협정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지난 1일부터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확성기 시설 철거에 들어갔고, 이날 판문점선언이행추진위원회 개편을 통해 범정부 차원의 후속 조치 준비에도 돌입했다. 오는 9일 일본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지지하는 특별성명도 추진한다. 이와 관련, 조 장관은 “남북 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의 선순환 구도가 정착되는 토대를 마련했다”며 “남북이 주변국들과 함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로 가고 공동 번영하는 과정을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판문점 선언에 평화협정 주체로 명시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문구는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는 10·4 정상선언에서도 논란이 됐다. 종전 선언의 주체로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이라고 표기했는데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김정일(북한 국방위원장)이 북한 협상팀에 지시한 사항이라서 변경의 여지가 없다고 하여 수용했다”며 “북한이 사정에 따라서 중국이나 한국은 빼겠다는 전술을 구사할 여지를 갖겠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10·4 선언 당시 미국과 달리 중국은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아 우선 3자로도 할 수 있다는 역사적인 유례가 있는 표현”이라며 “하지만 평화체제 논의에 중국이 당연히 함께 참여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종전선언은 남·북·미가, 중국은 평화협정에서 주요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이경주 기자 dlrudwn@seoul.co.kr
  • 트럼프가 석방 시사한 북한 억류 미국인 세 명은 모두 한국계

    트럼프가 석방 시사한 북한 억류 미국인 세 명은 모두 한국계

    북한, 석방은 북미대회 이끌어내는 마중물로 활용억류 ‘3김씨’ 석방 위한 물밑접촉 이미 끝난 듯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석방 가능성을 언급한 북한 억류 미국인 세 명은 모두 한국계다. 김동철, 김상덕(미국명 토니 김), 김학송 씨로 이들은 간첩, 적대행위, 국가전복음모 등 죄목으로 노동교화형을 치르고 있다. 억류 기간이 가장 긴 사람은 지난 2015년 10월 북한 함경북도 나선에서 체포된 김동철 목사다. 당시 그는 북한군인으로부터 핵 관련 자료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와 사진기를 넘겨받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북한은 김 목사에게 간첩과 체제전복 혐의를 적용해 2016년 4월 노동교화형 10년을 선고했다. 중국 연변과기대 교수 출신인 김상덕 씨는 작년 4월에 적대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에 체포된 뒤 억류 중이다. 나진·선봉 지역에서 보육원 지원사업도 하는 김씨는 평양과학기술대학에 회계학 교수로 초빙돼 한 달간 북한을 방문했다가 출국길에 잡혔다. 김학송 씨는 지난해 5월 중국 단둥(丹東)에 있는 자택으로 귀가하다가 적대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평양역에서 체포됐다. 그는 2014년부터 평양과기대에서 농업기술을 보급하는 활동을 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한국계 미국인이 북한 억류 기간에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작년 6월 평양을 방문해 3명을 만난 뒤 ‘모두 건강하다’고 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지난 정부가 북한 노동교화소로부터 3명의 인질을 석방하라고 오랫동안 요청해왔으나 소용없었다”며 “계속 주목하라!(Stay tuned!)”라는 트윗을 올렸다. 이는 이들 억류자 석방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물밑협상이 기본적으로 타결됐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 억류자들의 석방 여부는 이르면 이달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변수로 거론돼 왔다. 억류자 석방이 회담의 긍정적 결과 도출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과거 북한은 억류자 석방을 실질적인 북미대화를 끌어내는 마중물로 활용했다. 특히 전직 대통령 등 미국 고위인사 방북이 이뤄진 뒤 미국인을 풀어주는 패턴이 되풀이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2009년 8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뒤 5개월간 억류중이던 미국인 여기자 로라 링, 유나 리를 데리고 귀국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2010년 8월 평양을 찾아 노동교화형 8년형을 선고받은 아이잘론 말리 곰즈를 데리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북한은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당시 미국 국가정보국장의 방북을 계기로 미국인 억류자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와 매튜 토드 밀러를 풀어준 적도 있다. 조셉 윤 전 대표는 지난해 6월 방북으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석방을 끌어냈으나, 웜비어는 결국 혼수상태로 미국에 돌아와 숨졌다. 국 정부는 웜비어의 사망을 계기로 작년 8월부터 미국 시민의 북한 여행을 전면 금지한 상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한국 방어’ 재확인… 中 ‘최대 위협’ 간주

    美 ‘한국 방어’ 재확인… 中 ‘최대 위협’ 간주

    트럼프는 해외 주둔에 부정적 北, 中 견제… 철수 원치 않아 中, 쌍중단 카드로 美 견제할 듯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의 근간이자 미국의 동북아 패권 전략을 위한 전초기지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 입장에선 꼭 철수시켜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주한미군 문제는 종전선언 후 평화협정 체결 단계에서 휘발성 강한 의제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군의 해외 주둔에 부정적이다.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서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기를 점점 더 원하지 않고 있다”며 “이것이 우리의 우선순위가 돼서는 안 된다”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가와 정치권에선 주한미군 철수를 아직 먼 얘기로 보는 분위기다. 미 인터넷 매체 ‘매클래치 워싱턴 뷰로’는 1일(현지시간) “트럼프가 거듭 2만 5000명 이상의 병력을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아이디어를 제기했지만, 이번 주말 군 지도자들은 한국을 방어한다는 미국의 ‘철통같은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일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역할과 지위를 수정하려 들 가능성이 거론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2일 “평화유지군으로서 충분히 주한미군에 새로운 임무 설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대(對)중국 견제를 고려할 때 미국도 주한미군을 쉽게 포기하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도 대외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미군 철수를 원치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동북아시아의 역학관계로 보아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19일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북한이 비핵화의 전제로)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세종연구소 주최 포럼에서 “북한은 이미 1991년 소련이 멸망한 이래 주한미군의 주둔을 사실상 인정해 왔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은 미군이 한반도에 있는 것 자체를 최대의 위협으로 여긴다. 평화협정 체결 단계에서 중국이 본격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 최상의 시나리오는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국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서 물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실성이 없어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쌍중단’(북한 핵개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 카드로 미국의 한반도 군사안보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주한미군은 현재 8군사령부와 제7공군사령부, 해군사령부 등에 2만 8500명이 배치돼 있다. 핵심 병력인 미8군의 경우 제2보병사단, 제19원정지원사령부, 제35방공포병여단, 501정보여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문정인 딜레마’에 빠진 靑… “동북아 중재자 역할에 미군 필요”

    ‘문정인 딜레마’에 빠진 靑… “동북아 중재자 역할에 미군 필요”

    청와대가 ‘문정인 딜레마’에 빠졌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한반도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외교안보 ‘멘토’로서 맹활약해 왔지만, 청와대와 사전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지난 1년간 불필요한 혼선도 일으켰다.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이후 주한미군의 국내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란 문 특보의 기고문이 또다시 논란을 일으키자 문 대통령이 2일 즉각 ‘경고’ 카드를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 불가피성’을 강조한 문 특보의 발언이 청와대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정부는 국외적으로 매우 곤란하다. 굳건한 한·미 동맹이 한반도 평화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간 이견이 표출된 것으로 보여선 안 된다. 진보 진영 쪽에서는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안보에 민감한 보수 진영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문 특보의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 대해 ‘사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평화협정이라는 것은 남·북·미와 중국까지 포함하는 한반도 전체의 평화 정착을 위한 협정으로, 주한미군 문제도 이런 관련성 속에서 얘기가 나올 수 있다”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적 긴장과 대치 속에 중재자로 역할하는 데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문 특보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특파원 간담회에서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이 깨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새 정부 들어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한·중 간 마찰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을 때였다. 같은 달 세미나에서는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할 경우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할 수 있다. 또 한반도에 배치된 미국의 전략자산 무기 역시 축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급기야 청와대는 “해당 발언이 앞으로 있을 여러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문 특보에 대한 첫 번째 경고였다. 문 특보는 지난해 9월 “(북한을) 핵무기 보유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국방위 회의에서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느낌이지 안보특보로 생각되지 않아 개탄스럽다”고 문 특보를 비판했다가 청와대로부터 엄중 주의를 받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도 문 특보는 지난 2월 강연에서 “대통령이 주한미군더러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고 말해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했다. 한편으론 문 특보의 이런 돌출 발언이 청와대가 의도한 연출이란 의구심도 계속되고 있다. 문 특보가 청와대를 대신해 외곽에서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다양한 여론을 형성하도록 사실상 내버려 두고 있다는 추측이다. 이날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특보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교수”라며 학자적 견해를 존중하겠다고 해 해당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씨줄날줄] 대북 확성기/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북 확성기/이순녀 논설위원

    군사분계선 최전방 철책선에 설치됐던 대북 확성기가 사라졌다. 우리 군은 어제 이동형 10여대, 지상 고정형 30여대 등 40여곳의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 철거 작업에 돌입했다. 북한 군도 전방의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철거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신속한 이행에 나선 것이다. 남북 간 심리전의 첨병 역할을 해온 확성기의 퇴장은 한반도의 새로운 앞날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상징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1963년 5월 1일 시작돼 2018년 5월 1일 막을 내린 대북 확성기의 운명은 지난 55년간 변화무쌍한 남북 관계의 진동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확성기 방송을 함께 중단했지만 1980년 9월 북한이 확성기 방송을 시작하면서 우리 군도 대북 방송을 재개했다. 2004년 6·4합의에 따라 확성기를 전면 철거했으나 이번에도 화해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정부는 확성기 방송 시설을 재구축했다. 2015년 8월 4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사건이 발생하자 방송을 재개했다가 8월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이 타결되면서 다시 중단했다. 이후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방송이 전면 재개돼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국방부 직속 심리전단에서 시행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 홍보뿐 아니라 날씨 예보, 생활 정보, 스포츠, 케이팝 같은 한류 문화를 적극 소개하는 창구 역할로 영향력을 높였다. 북한이 알레르기에 가까운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 같은 대북 확성기 방송의 위력을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말 국군심리전단이 김학용 국회 국방위원장에게 제출한 ‘대북 확성기를 통한 한국 가요 현황’에 따르면 북한 지역으로 송출된 가요 100여곡 중 최다 송출곡은 가수 방미의 ‘날 보러와요’였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 나훈아의 ‘부모’,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도 여러 차례 송출됐다. 노래 제목과 가사의 의미, 정서적 공감대를 두루 감안한 선곡이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대북 확성기는 비리에 연루되는 수모도 겪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특정 업체가 대북 확성기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해 국가에 144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전 심리전단장 권모 대령 등 영관급 현역 군인들이 최근 구속 기소됐다. 지난한 굴곡의 역사를 통과해 온 대북 확성기가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올 일이 없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coral@seoul.co.kr
  • 美도 관심 갖는 ‘北원유’… 남북경협 때 탐사·개발되나

    美도 관심 갖는 ‘北원유’… 남북경협 때 탐사·개발되나

    동해 등 7곳 40억~50억 배럴 추정 향후 북·미 협력 사업 가능성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베일에 싸여 있는 북한 원유 매장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원유 탐사가 향후 남북 경협뿐 아니라 북한·미국 간 주요 협력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1일 북한 전문가는 “미국 정부는 북한 원유 매장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고 향후 북한 투자 시 원유 탐사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 역시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딕 체니 부통령이 경영자로 일했던 핼리버튼의 자문변호사가 내게 북한 원유 매장 문제를 물어 본 적이 있다”면서 “아는 대로 얘기해 줬더니 굉장한 관심을 보이더라”고 밝혔다. 핼리버튼은 세계 최대 석유 채굴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문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료는 석유 분야 전문지인 ‘지오 엑스프로’ (2015년 9월호)에 실린 ‘북한 석유 탐사와 잠재력’이란 보고서였다. 집필자인 영국 지질학자이자 석유개발회사인 아미넥스에서 일했던 마이크 레고 박사다. 아미넥스는 2004년 북한 정부와 원유 탐사·개발 계약을 체결한 뒤 북한 전역의 원유 매장 가능성을 현장조사했고 레고 박사가 그 작업을 지휘했다. 그는 “북한 육지와 바다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존재한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면서 “북한에서 원유와 가스의 상업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라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레고 박사는 북한 전체 원유 매장량을 40억~50억 배럴로 추정했다. 그는 평양, 황해남도 재령, 평안남도 안주~온천, 평안북도 신의주, 함경북도 길주~명천, 서한만, 동해 유역 등 7곳을 원유 매장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언급하면서 특히 동해안 유역을 “명백히 많은 잠재력을 가진 곳”으로 지목했다. 레고 박사는 재령 유역에서 지표면으로 원유와 가스가 유출되는 현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북한 원유 매장 가능성은 사실 오랫동안 거론됐던 사안이다. 1998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평양이 기름 위에 둥둥 떠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도 2005년 보하이만과 인접한 서한만 분지에 약 6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고 발표했다. 그후 북한과 원유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지만 북·중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속도를 내지 못했다. 물론 북한 원유 매장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15년 7월 현재까지 확인된 원유, 석유, 기타 정제유 매장량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원유 매장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명확한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직접 원유 탐사를 해 보는 수밖에 없다. 원유 탐사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외국자본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6년 5월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원유를 비롯한 중요자원들을 적극 개발하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김대중·노무현정부 대북 특사가 본 판문점 선언] “도보다리 벤치가 이번 회담 핵심…법적 효력 위해 국회 비준 받아야”

    [김대중·노무현정부 대북 특사가 본 판문점 선언] “도보다리 벤치가 이번 회담 핵심…법적 효력 위해 국회 비준 받아야”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은 30일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확인한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 바람과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해 먼저 확고한 의지를 받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던 정 의원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은 벤치 회담에 있었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총평하면. -북한이 외로운 섬에서 탈출하는 운명의 전환점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도보다리 벤치에서 남북 정상이 단둘이 만나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판문점 선언이 10·4선언의 재탕이거나 나아진 게 없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지 않다. 궁극적인 목표는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적 통일이 아닌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내 정치의 도구로 쓴 게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북한 붕괴론이었고 제재와 압박으로 일관했다가 우리의 운명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 게 아니었나. 지금은 그 벼랑 끝에서 유턴해서 전쟁의 위험을 없애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려는 상황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구체적 행동이 나올 수 있을까. -김 위원장이 평소 ‘지정학적 피해국’에서 ‘지정학적 수혜국’으로 나서야 한다는 말을 해 왔다. 역사 의식이 담긴 말이다. 김 위원장은 10대 때 스위스에서 유학했고, 스위스가 한반도와 유사한 지정학적 운명을 겪은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이 손을 잡으면 천지개벽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에 진정성 있게 나올 것이다. →전문가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이 엇갈린다. -북·미 대화가 이뤄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서로 신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도 서로의 신뢰를 위해 선행 조치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간절히 듣고 싶었던 ‘서로를 존중한다’, ‘종전은 축복이다’라는 두 가지 말을 선물로 줬다. 이 말의 힌트는 북한이 목말라한 주권 국가로 인정해 북·미 수교를 해줄 수 있다는 것, 평화협정까지 승낙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바랐던 미국 본토까지 겨냥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사일 시험 발사 중지를 선언했다. 여기에 핵실험장 폐쇄까지 언급했다. 서로 원하는 걸 다 내놨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할 것이다. 이보다 앞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벤치 회담 내용을 100% 설명해 주면서 그 진정성을 전달해야 한다.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이 필요한가. -비준한다는 것은 곧 법적 효력이 생긴다는 의미로 반드시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판문점 선언은 이어 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을 꼭 설득해서라도 비준해야 한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서훈 국정원장의 눈물…20년간 걸어온 ‘남북 화해의 길’

    서훈 국정원장의 눈물…20년간 걸어온 ‘남북 화해의 길’

    지난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동선언문인 ‘판문점 선언’ 발표를 끝내자 이를 지켜보던 서훈 국정원장이 갑자기 돌아서며 등을 보였다. 그러더니 안경을 벗고 손수건을 꺼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이 장면은 언론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그가 평양, 미국 워싱턴, 일본 도쿄 등을 오가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해 온 그간의 과정을 떠올리며 감정이 북받친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겠지만, 서훈 원장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눈물엔 남북 화해를 위해 달려온 지난 20년간의 노고가 담겨 있음을 알 것이다. 매일경제는 29일 서훈 원장이 이번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맡아온 막후 역할과 함께 지난 20년간 그가 걸어온 길을 소개했다. 서훈 원장은 1997년 대한민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북한 경수로 사업 직원으로 공식 파견돼 약 2년간 북한에 상주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5월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때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훈 원장은 제가 제일 존경하는 국정원 선배다. 이런 분이 국정원장으로 돌아와줘서 기쁘다”라고 말하면서 울먹였다. 이어 “북한에 파견될 때 굉장히 위중한 시기여서 사상 문제에 대해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신원 재조사를 받은 바 있다. 그때 유서를 쓰고 가셨다”고 기억했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 2007년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등 세번의 남북정상회담에 서훈 원장은 모두 참여했다. 그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국정원의 ‘KSS’ 라인의 일원이라고 한다. KSS 라인은 김보현(3차장)-서영교(대북전략국장)-서훈(대북전략조정단장)으로 이어지는 대북협상채널을 의미한다. 2000년 당시 대북특사였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수행해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과 비밀협상을 했고, 임동원 국정원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도 서훈 원장이 동행했다. 남북 장관급회담 등에서 협상이 꼬이면 간접 지원에서 나서 협상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고 한다. 2007년에는 국정원 제3차장으로 재직하면서 10·4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키는 역할을 했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비공개적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동행했고, 정상회담문 작성에도 직접 참여했다.그러나 남북 화해를 위해 쉼없이 달려왔던 그에게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국가는 그에게 어떤 역할도 맡기지 않았다. ‘돌아와줘서 기쁘다’는 김병기 의원의 덕담은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한반도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고 살얼음판 같았다.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서는 ‘핵단추’, ‘미치광이’ 등 험한 말들이 오갔고, 국내외 언론에서는 한반도 위기설이 오르내렸다.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 같던 당시에도 국정원과 북한의 통일전선부 간 채널은 비공식적으로 유지돼 온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서훈 원장과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의 비공식 채널이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국정원-통전부 라인은 지난해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이뤄질 때에도 끊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 간 채널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김영철 부위원장이 방남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공식화됐다.미국 정보기관과의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 유지도 서훈 원장의 몫이었다. 서훈 원장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매일경제는 정부 외교·안보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 “서훈 원장이 지난해 7월부터 폼페이오를 지속적으로 만나 좋은 관계를 맺었다”면서 “CIA에도 북한 분석관이 있지만, 북한 제도와 역사를 꿰고 있고 세세한 부분까지 아는 서훈 원장이 폼페이오에게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알려줬다”고 전했다. 북미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말 폼페이오 당시 CIA 국장이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난 것도 서훈 원장이 김영철 부위원장을 통해 주선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매일경제는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 시절 공직 한 컷] 그날처럼… 평화, 새로운 시작

    [그 시절 공직 한 컷] 그날처럼… 평화, 새로운 시작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만나 회담을 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당시 합의 사항은 5개 항이다.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힘을 합쳐 해나가기로 했으며, 통일 방안으로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추구하기로 했다. 또 남북 이산가족의 상호방문 실현과 남북경제협력 및 제반 분야의 교류 확대, 당국자 간 대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으며 남북장관급회담이 계속 진행돼 남북 간 교류협력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시대가 이어져 나갔다. 7년 뒤인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 전 위원장은 다시 만났다. 이 자리에서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가기로 다시 선언했다.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면서 냉전을 거듭한 끝에, 남과 북 정상이 4월 27일 다시 만났다. 이제 한반도에 평화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사진 속 김 전 대통령과 김 전 위원장의 웃음 머금은 대화처럼 한반도에 봄이 올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 [특파원 칼럼] 북·일 대화의 전제조건/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북·일 대화의 전제조건/김태균 도쿄 특파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양복 상의 왼쪽에는 항상 파란색 리본이 달려 있다.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 등 다른 나라 정상들을 만날 때에도 리본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블루리본’이란 이름의 이 표지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의 석방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납치 피해자와 가족들이 북한 땅까지 국경 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는 뜻에서 그 색깔로 했다고 한다. 블루리본을 다는 사람이 아베 총리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납치 문제는 자신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치인 아베가 오늘날 총리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게 해준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1954년생인 아베 총리는 1979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고베제강에 다니다가 1982년 아버지 아베 신타로가 외무상에 취임할 때 그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10여년 뒤인 1993년 불혹을 앞두고 처음 중의원이 된 그는 이후 정계에서 빠르게 성장해 2000년 모리 내각에서 처음으로 관방 부장관으로 입각했다. 그가 국민적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이었다. 관방 부장관으로 유임돼 총리와 동행했던 그는 납치 사실에 대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과에 더해 피해자 5명을 데리고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 김정일 위원장과의 약속은 잠깐 가족상봉만 하고 피해자들을 다시 북한에 돌려보내는 것이었지만, 일본에 돌아온 아베는 태도를 싹 바꿨다. 북에 다시 보내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한과의 수교를 기대하고 하고 있던 외무성은 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아베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전폭적인 여론의 지원 속에 피해자 5명의 영구 귀국을 관철시켰다. 이로 인해 북·일 관계는 다시 얼어붙었지만, 아베는 자국민을 지켜 낸 영웅이 됐다. 그 일은 정치인 아베의 출세 가도에 날개를 달아 주었고, 2005년 10월 관방장관을 거쳐 그 이듬해인 2006년 9월 만 52세에 제90대 총리(1차 내각)에 오르는 밑거름이 됐다. 지난 18~19일 미·일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에게 납치 문제를 반드시 북·미 회담의 의제로 다뤄 줄 것을 요청하고, 24일 문 대통령에게도 같은 부탁을 하면서 아베 총리 본인은 과거의 성공에 대한 향수와 기대감을 강하게 느꼈음직도 하다. 북한과의 관계 회복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재임 중 반드시 이뤄 내고 싶어 하는 목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북한과의 수교를 통해 자국 안보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일본의 전후 과제를 청산한 인물로 역사에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납치 문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하다. 한·일 외교관들은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일본의 ‘납치 피해자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어지간한 성과와 합의로는 국민들을 납득시키고 동의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라야 위안부 문제가 일단락된 것으로 볼지 한·일 간에 평행선이 이어지는 것처럼 일본인 납치 문제도 북한이 얼마만큼의 성의를 보여야 해결로 간주할지에 대한 기준도 없고 북·일 간 이견도 크다. 앞으로 북한과 일본의 대화도 진전될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납치 문제에 대한 협의가 일본 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는 수준에 얼마나 근접할지가 북·일 관계의 전체 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windsea@seoul.co.kr
  • 분단국인 중국이 한반도 통일 반대하는 것은 비도덕적

    분단국인 중국이 한반도 통일 반대하는 것은 비도덕적

    “분단국인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비도덕적인 일입니다.”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이 발표된 지난 27일 베이징의 메이디야중신(梅地亞中心)에서 만난 한반도 문제 전문가 청샤오허(成曉河·52)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남북 회담과 곧 열릴 한·미 회담은 협의가 쉽지만 북·미 정상회담은 매우 험난할 전망”이라며 “비핵화가 시작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북·미 회담의 합의 과정이 험난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전혀 중요하지 않은 회담 장소를 결정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했다가 회담을 취소하겠다고 하는 등 칭찬과 협박을 전략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북·미 회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비핵화가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이뤄지고, 미국이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북·미 수교와 같은 외교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은 덜 중요한 부분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얼마나 걸릴 것이라고 보는가.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북한은 가능한 한 천천히 비핵화를 하길 원한다. 2년으로는 부족하고 3년은 너무 늦기 때문에 2~3년은 걸릴 것이다.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중국은 사이드라인에서 지켜보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역사적인 쇼를 빼앗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은 언제쯤인가. -북·미 회담 이후에는 남·북·미 3자 회담을 한국 정부가 계획 중인 것으로 안다. 3자 회담을 중국이 막을 수 없으며 개입할 역량도 의도도 없다. 중국으로서는 4자 회담 또는 러시아와 일본이 참여하는 6자 회담이 훨씬 생산적이다. 북·미 회담 이후 6월에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주한 미군에 대해 중국과 북한의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김 위원장이 주한 미군을 인정했기 때문에 더는 중국이 반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것) 정책은 한반도 긴장 완화 차원에서 중국이 계속 견지할 것이다. 북한의 주한 미군 인정은 매우 상징적인 행동으로 북한의 단독적인 결정이란 의의도 있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선언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최고지도자가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 것이 중요하다. 북한은 그동안 주장하던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단과 주한 미군 철수란 두 가지 전통적인 요구 사항을 이번에는 뛰어넘었다. 1997년부터 남·북·미·중 4자회담이 8차례나 열렸지만 결국 실패한 것은 북한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한 미군 철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는 축소될 것이라고 본다. →현재 북·중 관계는 어떠한가. -혈맹관계는 끝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정치적으로는 정상화 단계를 밟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아니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정한 대북 제재를 어길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방중 때 3일 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을 알리지 않는 등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을 배제한다는 분석이 있다. -폼페이오 방문을 시 주석에게 말하지 않았는진 모르겠지만 정상회담 직전 실무진 간 협의는 합리적이다. 북한 측에서 워싱턴에 가는 것보다 미국 정보기관 인사가 평양에 가는 것이 비밀을 지키기에도 좋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 -일부 중국인은 통일이 되면 백두산을 포함한 북·중 접경 지역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중국 자체가 대만과의 분단국인데 다른 나라의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비도덕적이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통일된 한반도가 스위스처럼 영세중립국이 되는 것이 중국의 소망이지만,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끊으라고 중국이 강요할 수는 없다. →북한 개혁개방을 위한 중국의 역할은. -북한의 진정한 개혁개방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을 돌아보면 1950년대 소련과 동유럽, 1960~70년대 개발도상국, 1979년 미국과의 수교에 이어 1980년대 서방국가에 개방하는 단계를 거쳤다. 북한도 똑같은 단계를 밟을 것이다. 청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김 위원장이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을 차례라며 웃음을 지었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상을 받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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