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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신의주화장품공장 시찰…부인 리설주도 동행

    김정은, 신의주화장품공장 시찰…부인 리설주도 동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 신도군을 찾은 데 이어 신의주를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김정은 동지께서 리설주 여사와 함께 신의주 화장품공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도 이날 1, 2면을 할애해 사진 약 20장과 함께 화장품공장 시찰 소식을 전했다. 전날 북중 합작 개발지인 황금평 경제특구가 속한 평안북도 신도군에 이어 이날 신의주화장품공장 방문까지 이틀 연속 중국과 인접한 지역에 대한 시찰활동을 공개한 것이다. 신의주 화장품공장은 1949년 설립된 북한 최초의 화장품 생산기지다. 북한에서는 최대 규모의 화장품공장으로, ‘봄향기’라는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신의주 화장품공장에서 이미 거둔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계속 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생산공정에서 손노동을 완전히 없애고 공업화하기 위한 현대화사업”을 강조하는 한편 “평양 시내에 신의주 화장품공장에서 생산하는 ‘봄향기’ 화장품을 전문 판매하는 상점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이틀 연속 공개된 김 위원장의 행보는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6월 12일)과 세 번째 중국 방문(6월 19∼20일) 이후 첫 국내 활동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신의주 역시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절인 지난 2002년 지정된 경제특구라는 점에서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잇따른 방중으로 북중관계가 한층 밀접해진 가운데 이번 방문이 북중 경제협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시찰에는 전날 신도군 시찰 때와 달리 리설주 여사가 동행한 점도 눈길을 끈다. 또 안정수·황병서·한광상·김성남·조용원·오일정·황영철 등 노동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이 수행했다고 북한 매체들은 전했다. 이 가운데 오일정은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자 전 노동당 군사부장으로, 북한 매체가 오일정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약 1년 만이다. 아울러 중국통인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제1부부장이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를 이틀 연속 수행한 점 역시 이번 시찰이 중국과 경제협력을 염두에 두고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커버스토리] 평양의 청춘, 그들도 우리처럼

    [단독][커버스토리] 평양의 청춘, 그들도 우리처럼

    8년간 7회 방북… 7개 도시 등 방문 적대감·색안경 벗고 개인의 삶 담아“무섭고 자유가 없는 전체주의 국가의 이미지가 강한 북한에서도 개개인의 삶의 애환이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적대감의 색안경이 씌워진 상태로는 볼 수 없는, 이웃국가로서의 북한을 제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었던 거죠.”일본 사진작가 하쓰자와 아리(45)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일본인의 시선을 좀더 긍정적인 것 또는 객관적인 것으로 바꿔 볼 수 없을까, 그것이 북한 방문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 7차례 북한을 다녀온 그는 북한에서 촬영한 사진 수만 장 가운데 일부를 추려 얼마 전 사진집 ‘이웃, 그리고 38도선의 북(北)’을 펴냈다. 지난 28일 서울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하쓰자와는 “8년 전 첫 방문과 올 2월 마지막 방문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북한의 경제적 발전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북한에 들어간 건 언제였나. -2009년 도쿄의 조선총련을 통해 북한 관광을 신청했는데, 1년을 기다린 끝에야 중국 베이징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평양외국어대 일본학과에 있는 학생들에게 일본어 서적을 전달하는 단체 사람들 틈에 끼어 갔는데, 일행 중에 사진작가인 나만 카메라 소지가 허용되지 않았다. →첫 느낌은 어땠나.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는데 “아, 이 사람들도 뿔은 안 달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그 정도로 나 역시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만을 듣고 살아왔던 것이다. 공항에서 일행들이 가져온 책을 검사받고 있는 동안 혼자 나와 담배를 빼물었다. 베이징에서 압수됐기 때문에 라이터가 없었다. 인민복을 입은 10여명의 남자들에게 다가가 불을 빌려 달라고 말을 건 뒤 담배를 같이 피웠다. 나에 대한 감시를 맡았던 북측 안내원이 그런 모습들을 보며 차츰 경계심을 풀어갔던 것 같다. →사진 촬영은 두 번째 방북 때부터였나. -그렇다. 2011년 6월 두 번째로 북한에 들어갔다. 1년 전 방북 때 밤에 안내원과 술을 마시며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한 게 어느 정도 먹혀들어 카메라 촬영이 허용됐다고 생각한다.→일본인으로서 비교적 자유롭게 북한을 다닌 것 같다. -평양, 청진, 원산, 회령, 남포, 신의주, 함흥 등 주요 도시를 두루 돌았다. 작은 마을이나 농촌 등도 여러 곳 갔다. 안내원이 주민들에게 ‘이 사람은 우리들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이미지를 좋게 바꾸기 위해 왔다’고 나를 소개하면서 촬영에 도움을 줬다. 그러나 몰래 찍은 사진들도 상당수 있는데, 안내원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가 주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2016년 다시 북한에 들어간 이유는. -2012년 네 번째 방북을 마치고 그해 12월 ‘이웃, 38도선의 북’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었다. 그러고서 한참이 흘렀는데, 북한 경제가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2016년 12월 다시 북한을 갔다. →방북은 매번 순조로웠나. -봉변을 당한 적도 있었다. 당장 올 2월 방북 때 입국심사 과정에서 스마트폰을 압수당하고 1시간 동안 억류돼 있었다. 나의 스마트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관련된 사진이 있었는데 그걸 문제 삼았다. 솔직히 그때는 오토 웜비어(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처럼 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두려웠다. →방북이 크게 2개 시기로 구분되는데. -2010~2012년(4차례 방북)과 2016~2018년(3차례)으로 나눌 수 있을 텐데, 2012년 떠나올 즈음 북한 사회는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애도 분위기로 크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4년 후 다시 갔을 때에는 한층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어떤 변화를 느꼈나. -평양 거리의 자동차가 4년 전에 비해 얼추 3배 정도 많아 보였다. 특히 북한산 자동차와 택시가 눈에 띄게 늘었다. 백화점에서도 과거 중국산 일색이던 의류 판매대에 북한산이 많이 보였다. 고려항공 기내 촬영이 허용된 것, 고급 음식점에 부유층이 택시를 타고 오는 것, 남자들의 복장이 과거보다 다채로워진 것 등이 과거와 달라진 점들이었다. →스마트폰은 어느 정도나 보급돼 있었나. -젊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다. 그들도 역시 다른 나라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 게임을 즐겼고 수시로 폰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세그웨이(1인용 이동수단)를 타는 사람들도 보였다. 2010년 첫 방북 때에는 못 봤던 카페들도 생겨나 예쁜 여성들이 음료와 케이크를 팔았다. 일본에 없는 ‘낫토(콩을 발효시킨 일본 전통음식) 아이스크림’ 제품도 개발돼 팔리고 있었는데, 맛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왜 사진을 찍나.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출발점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오키나와와 재일 한국인의 차별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북한을 다녀온 것 역시 큰 틀에서 같은 맥락이다. →오키나와 문제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들었다. -미군의 일본 주둔에 따른 고통을 왜 오키나와 주민들만 뒤집어써야 하나.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 민족이 살던 곳이었는데, 본토인들이 정복한 뒤 원주민들을 태평양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다. 그러더니 전쟁이 끝나자 주일미군을 집중적으로 이곳에 주둔시키면서 일본 전체 안전보장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다. 이젠 그 부담을 본토로 가져올 필요가 있다.(그는 2013년 말부터 1년 3개월 동안 오키나와에 살면서 현지를 촬영했고, 현재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본토로 가져오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 정부도, 국민도 어떻게 북한과 마주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북한을 가상의 적국으로 놓고 때로는 무서운 나라로, 때로는 우스운 나라로 만들며 정치에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학생들 중 태반은 100여년 전 한·일 병합에 대해 전혀 모를 만큼 과거사에 대해 무지하다. 학교에서 안 가르쳤든, 학생들이 열심히 안 배웠든 엄연한 현실이다.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역사와 그에 따른 남북 분단의 책임에는 눈을 가리고 있으면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반도 통일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본은 모든 책임을 다해야 한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하쓰자와 아리는 누구 1973년 프랑스 파리 출생. 일본 조치대 사회학과 졸업. 2002년 전쟁 중인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촬영하고 2013년 오키나와의 슬픔을 담은 작품집을 내는 등 반전(反戰), 소외 등을 주로 다루는 사회참여형 사진작가. 사진집 ‘바그다드 2003’, ‘이웃. 38도선의 북’, ‘오키나와를 말하세요’, ‘이웃, 그리고 38도선의 북’ 등을 펴냈다.
  • 국회 법안 3건 계류 중 판단기관·합숙 등 차이

    헌법재판소가 내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병역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국회에서 남은 1년 6개월 동안 어떻게 법을 개정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전해철·박주민·이철희 의원이 각각 발의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한 병역법 일부 개정안이 국방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3건의 법안은 큰 틀에서 내용은 비슷하지만 쟁점인 ‘대체복무 기간’과 대체복무 판단 ‘소관 기관’을 어디에 두느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병의 2배(42개월)로 지정했다. 이는 전 의원과 박 의원이 지정한 1.5배(31.5개월)보다 길다. 또 이 의원의 개정안은 대체복무요원의 업무를 중증장애인 수발, 치매노인 돌봄 등 사회복지, 보건·의료, 재난 복구·구호 분야에서 신체적·정신적 난도가 높은 업무로 지정했다. 대체복무 신청자를 심사하고자 국무총리 소속의 대체복무 사전심사위원회를 신설하도록 했다. 이 의원과 비슷한 시기에 발의한 박 의원의 개정안은 대체복무요원을 심사하고자 국무총리 소속의 대체복무위원회를 만들도록 하는 이 의원 개정안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박 의원 개정안의 다른 점은 대체복무요원을 현역병처럼 합숙근무를 하도록 한다는 데 있다. 전 의원이 2016년 11월 발의안 병역법 개정안도 대체로 비슷하지만 심사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두 의원은 국무총리실 산하의 위원회가 심사하는 것과 달리 전 의원 개정안은 국방부에 중앙대체복무위원회를, 지방병무청에 지방대체복무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여야는 후반기 원 구성을 마치는 대로 이미 발의한 개정안을 병합하거나 새로 발의해서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현역병과의 형평성, 단순 병역 기피자 구분 문제 등에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1차적으로 대체복무제도 자체를 어렵게 설계(복무 기간 연장 등)하면 거기서 단순 병역 기피자와 진짜 양심에 따른 병역 기피자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사 과정에서 단순히 신청자의 진술만 듣는 게 아니라 여러 자료를 제출받고 주변 사실관계 등을 조사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전 의원도 제도 설계 및 심사 강화를 주장했다. 전 의원은 라디오에서 현역병보다 1.5배 더 복무하도록 하는 게 짧다는 지적에 대해 “유럽에서는 대체복무 기간을 1.5배를 넘어 현역복무 기간보다 지나치게 길게 하는 건 (인권 등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이어 “복무 기간이 1.5배가 되면 실제 군 복무에 비해 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충분히 홍보되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신청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징병제하에서 이 제도를 실시하는 다른 나라도 그 숫자(대체복무자)가 많아진다든지 하는 부작용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씨줄날줄] 일본의 ‘폼페이오’/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일본의 ‘폼페이오’/황성기 논설위원

    일본의 ‘마이크 폼페이오’를 노린 경합이 치열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거쳐 국무부 장관에 발탁된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3월 말~4월 초 평양을 방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북한과 정상회담을 준비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폼페이오급의 거물이 평양에 가야 한다는 일본판 ‘폼페이오 모델’이 만들어졌다.2002년 북·일 정상회담 때는 일본 외무성의 다나카 히토시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북한의 ‘미스터 X’를 수십 차례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평양 회담을 성사시켰다. 외무성 국장이 하던 일이 폼페이오 모델에 의해 장관급으로 3단계가량 격상됐다. 일본판 폼페이오는 자천타천으로 3명이 회자된다. 고노 다로(55) 외무장관, 야치 쇼타로(74)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 기타무라 시게루(61) 내각정보관이다. 통상적인 절차를 따른다면 고노 외무장관이 최적격이다. 본인도 의욕을 보인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때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할 당시 아베 관방부 장관이 4년 뒤 총리에 오르고, 지금은 최장수 총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전례를 감안할 때 정치적 욕심을 낼 법하다. 야치 국장은 사무차관을 거친 일본 외교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2014년 1월 NSC가 출범하면서부터 국장을 맡고 있다. 얼어붙은 중·일 관계를 푼 막후이자 한·일 위안부 합의 밀실회담의 주인공이다. 일본 각처에서 수집되는 정보를 분석하는 내각정보조사관실의 수장인 기타무라 정보관은 도쿄대 법학부를 나온 엘리트 경찰 출신이다. 민주당 정권 시절인 2011년부터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 시점은 ‘9월 안’이 부상한다. 아베 총리가 참가하는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9월 11~13일)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김 위원장이 참석하면 정상회담을 한다는 구상이다. 의제 조율을 위해 폼페이오급이 평양에 가야 하는데 막상막하 3인이 아베 총리의 낙점을 기다리고 있다. 정도를 밟자면 고노 외무장관이지만 야치 국장도 유력시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마이 다카야 비서관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 기타무라 정보관인 점은 ‘일본 폼페이오’ 예상을 어렵게 한다. 아베 총리와의 면담 횟수를 척도로 한다면 기타무라가 압도적이다. 고노 외무장관이 취임한 2017년 8월 3일부터 지난 5월 31일 사이 고노 29회, 야치 66회인 데 비해 기타무라는 103차례였다. 기타무라가 평양에 가 본 경험도 있다니 인선이 ‘오리무중’에 돌입했다. marry04@seoul.co.kr
  • 할아버지 김일성보다 진일보… 김정은식 ‘시계추 외교’

    할아버지 김일성보다 진일보… 김정은식 ‘시계추 외교’

    김 위원장 미·중 균형외교 구사 김 前주석 ‘등거리 외교’ 닮은꼴 단순 경제지원→비핵화·체제 등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고차방정식’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은둔형 지도자였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상반된 면모로, 오히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일성은 우방인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친 바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2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큰 흐름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중국의 이익을 대변해 주고 있다”며 “김일성이 구사했던 ‘시계추 외교’의 21세기판”이라고 분석했다. 김일성은 1950년대 말부터 ‘스탈린 우상화’를 비판한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수정주의’ 노선을 비판하고 중국을 가까이 했다. 이후 1966년부터 10년간 중국이 문화대혁명을 하며 자신을 수정주의자로 공격하자 중국을 교조주의라고 맞비난하고 친소 외교를 펼쳤다. 중·소 간에 국경분쟁(1969년)이 발생하고, 사회주의 패권 싸움까지 벌어지자 김일성은 중·소를 오가는 외교로 양국으로부터 대규모 원조를 받아냈다. 김 위원장 역시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비핵화를 매개로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이익을 취하는 실용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12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명시했고, 지난 19일 방중을 통해 한동안 소원했던 북·중 동맹 관계를 완전히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이날 김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중 친선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활발한 외교 행보는 김 위원장이 외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김일성도 소련은 물론 동구 공산권을 활발히 다녔다. 또 1975년 5월 루마니아, 알제리, 모리타니,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등을 순방할 때 당시 부인이던 김성애를 동반하는 등 공식 석상에 부부 동반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비공산권인 싱가포르에도 갔고,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남측 지역까지 내려오는 등 할아버지보다 더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3차례의 북·중 정상회담과 1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등에 부인 리설주 여사를 동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연내 미국 수도인 워싱턴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지속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단선적 외교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과거 중·소가 한때 반목했지만 큰 틀에서는 공산주의 이념을 공유한 우방국가인 반면 미국과 중국은 이념적·군사적으로는 경쟁 관계에 있고 무역 등 경제분야는 경쟁과 협력이 혼재된 복잡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즉 김 위원장은 과거 같은 공산권 진영인 중·소 사이를 오가며 경제적 지원을 받아낸 할아버지보다 더 복잡하고 리스크가 큰 고난도의 시계추 외교를 해야 하는 처지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및 경제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복잡한 로드맵을 짜야 한다. 여기에 남북관계까지 대입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고차 방정식’이라 할 수 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 부본부장은 “‘북·중 대 한·미’의 대결이라는 과거의 틀이 바뀌고 있다”며 “중국을 북 비핵화 논의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김정은 방중 이틀째, 북경 농업과학원 방문... “농업개혁 관심 드러낸 듯”

    김정은 방중 이틀째, 북경 농업과학원 방문... “농업개혁 관심 드러낸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행이 방중 이틀째인 20일 오전 베이징(北京) 농업과학원을 전격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소식통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전용차인 금색 휘장이 새겨진 VIP 차량 2대와 수행원 차량은 이날 오전 8시 30분쯤(현지시간) 사이드카 호위를 받으며 일제히 조어대에서 나와 북쪽으로 향했다. 이들 차량은 이후 베이징 농업과학원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 목격됐다. 한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 일행이 농업과학원에 들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이 농업분야 개혁에 관심이 많은 점이 반영된 것 같다”고 전했다. 농업과학원은 지난 5월 방중한 북한 노동당 ‘친선 참관단’이 방문한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당시 박태성 노동당 부위원장이 이끈 참관단은 베이징에서 농업과학원 문헌정보중심과 중관춘 과학원 문헌정보중심 등을 둘러보며 북한이 IT 등 과학기술과 농업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을 원한다는 점을 내비친 바 있다. 참관단 방중 당시 중국은 북한에 농업과 과학기술, 인문분야의 대규모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김 위원장이 참관단 방문지를 다시 찾으며 북중 경협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제1차 북중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은 방중 마지막 날 중관춘 사회과학원을 들렀고,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시진핑 국가주석 부부와 양위안자이에서 오찬한 뒤 특별열차 편으로 귀국한 바 있다.앞서 김 위원장은 전날 전용기 ‘참매 1호’로 베이징에 도착한 뒤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을 하고 부부 동반으로 공연을 관람한 뒤 조어대로 돌아가 18호각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조어대 18호각은 외국 정상들이 베이징을 방문할 때 주로 투숙하는 곳으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베이징 방문 당시 묵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3월 말 제1차 북중 정상회담차 베이징에 왔을 때도 여기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조어대 18호각은 중국이 최고 예우를 하는 외빈에게 내주는 곳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올 때마다 이용한다는 것은 중국이 그만큼 공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은, 44일간 비행기로 세 차례 외국행…속도내는 北정상외교

    김정은, 44일간 비행기로 세 차례 외국행…속도내는 北정상외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0여 일간 세 차례나 하늘길로 외국행에 나서며 북한 외교에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19일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지난달 7일 항공편으로 중국 다롄에 날아가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후 44일 만에 또다시 항공기를 타고 베이징을 찾은 것이다. 그 사이 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 차 싱가포르를 방문할 때도 하늘길을 이용했다.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안전에 문제가 있을 때 비상 대처가 쉽지 않아 꺼렸던 방식이었다. 선대와 달리 김 위원장은 첫 외국 방문이었던 3월 말의 첫 방중 때 특별전용열차를 탄 뒤로는 여타 각국 정상들처럼 항공편을 이용하는 셈이다. 항공기를 이용할 경우 육상 교통을 이용할 때보다 이동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고 경호나 의전이 필요한 구간도 줄어든다. 김 위원장의 항공기 이용은 긴박하게 움직이는 한반도 정세에 맞춰 실용적으로 속도감 있게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 위원장의 실용적 성향은 북한 외교 전반의 속도를 높이는 데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방중 이후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시 주석의 답방도 없었던 상황에서 세 번째 방중이 이뤄진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여차하면 시 주석을 직접 만나 한반도 정세 현안을 논의할 의지가 있음을 이번 방중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는 점도 북한 외교에 속도감을 주는 요인이다. 북한에서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외교 분야에서도 최고지도자의 ‘결심’이 있어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선대나 지금이나 같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예전 같으면 특사를 보내는 식으로 처리했을 상황에 직접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렇게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면 내부적인 논의와 결정의 과정이 단축될 수밖에 없다. 북미정상회담 역시 마찬가지였다. 외교관을 6자회담 등에 내보내 논의 과정을 일일이 보고받으며 문제 해결을 도모했던 과거와 달리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에 나서며 ‘톱다운’ 방식을 택했다. 북미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도출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톱다운’ 방식이 작용한 덕이 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최고지도자의 의중이 무엇보다 중요한 북한 체제에서는 김 위원장이 대미·대중 외교의 최전선에 나서는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 김정은 세번째 방중도 항공기로…전용기 ‘참매1호’ 이용

    김정은 세번째 방중도 항공기로…전용기 ‘참매1호’ 이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올해 들어 세 번째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또다시 전용기를 이용해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이 지난 3월 25일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이용한 교통수단은 그의 전용열차였다.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중국을 방문할 때 전용열차를 이용했기에 이는 큰 관심을 끌지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납치나 폭발 등 사고에 대한 불안감으로 비상시 대처가 유리한 열차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달 7∼8일 중국 다롄(大連)을 방문해 시 주석과 깜짝 재회동했을 때 그가 이용한 것은 열차가 아닌 전용기 ‘참매 1호’였다. 이번 방중에서 김 위원장이 이용한 항공기도 역시 참매 1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옛 소련 시절 제작된 ‘일류신(IL)-62M’을 개조한 것이다. IL-62는 1960년대 개발됐으며, 1970년대에 개량형인 IL-62M이 나왔다. 1995년 단종됐지만, 북한의 유일한 항공사인 고려항공은 ‘참매 1호’를 포함해 4대의 IL-62M을 보유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때 인천공항으로 오는 데 이용한 항공기도 바로 이 기종이었다. 4개 엔진을 장착한 IL-62M은 비행거리가 1만㎞에 달해 평양에서 미국 서부 해안이나 유럽 도시까지 비행할 수 있다. 평양에서 5천㎞가량 떨어진 싱가포르까지도 충분히 비행할 수 있어 6·12 북미정상회담 때 이를 이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김 위원장은 중국에서 빌린 보잉 747기를 이용했다. 당시 참매 1호는 김 위원장의 수행단이 싱가포르를 방문할 때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매 1호와 함께 북한 화물기인 ‘일류신-76’과 김 위원장이 국내시찰 때 이용하는 안토노프(An)-148기종인 고려항공 251편 특별기 1대도 이날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 항공기는 김 위원장의 수행단과 함께 그의 전용차, 각종 식기와 집기 등을 운송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후 김정은 위원장이 조부 김일성 주석처럼 항공기를 이용한 ‘전방위 외교’에 나선다면 북한이 그의 전용기를 확충할 가능성도 있다. 김일성 주석은 항공기를 이용해 옛 소련을 수차례 방문했다. 또 동유럽 국가와 제3세계 국가들을 방문할 때도 항공기를 애용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 비핵화 후 개혁개방을 마음먹었다면 이에 필요한 외국 지원과 투자 유치 등을 위해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전용기를 전면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하지만 IL-62가 1960년대 개발돼 1995년 단종된 낡은 기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최신 항공기를 사들여 ‘항공기 외교’를 펼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싱가포르 방문 때는 중국에서 빌린 보잉 747기를 이용했지만, 장거리 해외방문 때마다 중국에서 항공기를 빌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국도 기존의 보잉 747-400 4대 외에 중국 지도부 전용기로 사용하기 위해 최신 보잉 747-800 여객기 4대를 추가로 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김정은은 부친 김정일보다 형식이나 절차를 따지지 않고 실용적인 일 처리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열차가 아닌 전용기로 중국을 방문한 것도 그의 실용주의적인 통치방식이 잘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글로벌 인사이트] ‘총리 아베’ 만든 납북 피해자 문제… 정권의 운명도 걸렸다

    [글로벌 인사이트] ‘총리 아베’ 만든 납북 피해자 문제… 정권의 운명도 걸렸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가 다시 전면에 부상했다. 올 초부터 본격화한 남북과 북·미의 한반도 비핵화 대화 국면에 편승해서다. 납치 피해자 문제 자체는 북·일 간에 새로운 이슈가 아니지만, 현재 놓여진 여건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 속에 한국과 미국이 일본의 요청에 따라 대화 분위기 조성을 거들고 나섰고, 자국 내 정치역학 때문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성과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납치 피해자 문제의 해결은 북한과 일본 모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북·일 수교’의 가장 확실한 마중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인 납치 피해 문제와 관련한 과정을 정리하고 향배를 전망해 본다.18일 현재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는 17명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는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특정실종자’가 전국적으로 470명에 이르고, 이 중 77명은 가능성이 특히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식적인 북한의 납치 피해자는 17명 정부 집계 기준으로 첫 번째 피해자는 도쿄 관공서 경비원이었던 구메 히로시(당시 52세)로, 1977년 9월 19일 이시카와현의 바닷가에서 납치됐다. 이어 10월에 회사원 마쓰모토 교코(29)가 돗토리현에서, 11월에 중학생 요코타 메구미(13)가 니가타현에서 납치되는 등 석 달 새 연달아 3명이 납치됐다. 특히 당시 니가타시 요리이중학교 1학년이었던 요코타는 학교 배드민턴부에서 연습을 하고 오다 실종돼 1년간 연 3000여명의 경찰이 수색을 했지만, 전혀 행방이 파악되지 않았다. 특히 요코타는 자기 집 근처에서 납치된 어린 소녀라는 점 때문에 ‘납치 피해자의 대명사’처럼 일본 국민 사이에 인식되고 있다. 이듬해인 1978년에는 남녀 3쌍을 포함해 10명이 북한으로 끌려갔다. 1980년대에 들어서도 유학생 등 4명이 납치됐다. 대부분 원인불명의 실종 상태로 분류돼 있던 가운데 결정적인 전기가 되어 준 것은 1987년 11월 일어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이었다. 당시 체포된 범인 김현희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여성으로부터 일본어를 배웠다”고 말하면서 경찰은 북한 피랍 가능성이 있는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에 다시 착수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는 1988년 3월 최초로 북한의 개입 혐의를 공식화했다. 당시 가지야마 세이로쿠 공안위원장은 참의원 질의에서 “1978년 발생한 3건의 남녀 실종사건은 북한의 납치 혐의가 뚜렷하다”고 답변했다. 요코타 사건의 경우 발생 20년 만인 1997년 1월 북한 공작원 출신 탈북자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그해 3월 요코타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85)를 대표로 하는 ‘납치피해자가족회’가 결성됐다. ●사건 11년 만에 北 개입 혐의 공식화 북·일의 협상이 시작된 것은 28년 전이었다. 1990년 9월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 전 부총리와 사회당의 다나베 마코토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가네마루 방북단’이 북·일 국교 정상화 협상을 위해 평양에 들어갔다. 방북단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납치문제는 직접적인 의제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협상은 2년 남짓 만에 결렬되고 말았다. 1992년 11월 일본 정부가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일본인 ‘리은혜’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 달라”고 하자 북한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 해결을 북한에 처음으로 직접 요구한 것은 1997년 9월 제1차 북·일 적십자 연락협의회에서였다. 그해 11월 김용순 조선노동당 비서가 일본에 ‘피랍자’가 아닌 ‘실종자’로서 조사는 해 볼 수는 있다고 하며 진전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 6월 북한이 “일본이 찾고 있는 실종자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통보하면서 대화는 다시 중단됐다. 다시 전기가 마련된 것은 2002년 9월 17일의 제1차 북·일 정상회담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사상 최초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당시 일본과의 수교를 원했던 김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1970, 80년대 초에 특수기관의 일부가 망동주의, 영웅주의에 사로잡혔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책임 있는 사람들을 처벌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며 사과했다. 이때 북한이 집계한 수치는 ‘5명 생존, 8명 사망’이었다. ●2002년 정상회담 후 첫 책임 인정 북·일 평양선언이 채택되고 그해 10월 15일 하스이케 가오루 부부, 지무라 야스시 부부, 소가 히토미 등 5명이 일본에 돌아왔다. 북한은 ‘일시 귀국’이라며 나중에 5명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다. 일본 외무성은 북한과의 수교에 장애가 된다며 일단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자고 했으나 일부에서 “우리 국민을 다시 북한에 보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당시 관방 부장관 자격으로 같이 갔던 아베 현 총리다. 그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성원에 힘입어 자기 주장을 관철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이듬해인 2003년 자민당 간사장, 2005년 관방장관을 거쳐 2006년 9월 총리(1차 아베 내각)까지 초고속으로 올랐다. 아베 총리가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 국면에 과도하게 자국의 이슈를 끼워 넣으려 한다는 비판을 여당 내에서도 받을 만큼 납치 피해 해결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성장에서 이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5월에 열린 제2차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사망했다는 8명에 대한 설명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과의 수교가 급했던 북한은 이를 수용했다. 이에 더해 2년 전 송환했던 하스이케 부부와 지무라 부부의 자녀 5명도 일본으로 보냈다. 이어 7월에는 소가의 남편 찰스 젠킨스도 두 딸과 함께 일본에 송환했다. 같은 해 11월 북한은 “납치 문제를 다시 조사했지만, 2002년 9월과 비교해 달라진 게 없다”고 일본에 통보하는 동시에 “요코타 메구미의 것”이라며 유골을 전달했다. 그러나 DNA 분석 결과 이는 요코타의 것이 아니라고 판명 났다.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납치문제, 日 정권차원 이슈로 팽창 ‘재조사’ 요구와 ‘해결 완료’ 주장의 평행선 속에 양측의 협상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근근이 이어져 왔다. 2014년 5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납치 피해자와 함께 특정실종자도 포함해 전면조사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나름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2016년 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에 일본의 독자적 제재 등이 이어지면서 북한은 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해 버렸다. 그로부터 2년여 만에 다시 찾아온 북·일의 협상 재개 가능성에 일본 내 납치 피해자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오른 상태다. ●9월 총선 앞두고 납치 문제 올인한 아베 일본에서 납치 문제는 한 번 불거지면 급격히 정권 차원의 이슈로 팽창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 없는 북·일 수교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정서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를 해결된 것으로 볼 것인가”라는 대목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외무성 관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한·일 정부 간에 어떠한 타협이 이뤄져도 한국 국민들이 ‘해결됐다’고 납득하기 어려운 것처럼 북한 납치 피해자 문제도 일본 내에서 똑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그동안 납치 문제에 ‘올인’하는 바람에 ‘해결의 수준’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임계점을 한껏 상승시켜 놓은 상태다.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 일본 최장수 총리 기록을 다시 쓰고 싶은 아베 총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지나치게 서두르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의 주요 대학 교수는 “아베 정부가 납치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을 과도하게 높여 놓고 있다”며 “이 문제를 일단락 짓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기대치를 낮춰 놓아야 하는데 아베 총리는 정반대로 가면서 마치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일본 국민 정서를 볼 때 납치 문제 해결에 있어 시작과 끝은 요코타 메구미 사건의 진전”이라면서 “요코타와 관련된 성과를 북한으로부터 얻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것을 성과로 들이대더라도 국민을 설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얼싸안은 서훈과 폼페이오…어떤 사이길래

    얼싸안은 서훈과 폼페이오…어떤 사이길래

    14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여러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특별히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취재진에 포착됐다. 서 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은 양팔로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한-미 정보라인의 핵심인사다.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낼 때부터 각별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 원장은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러차례 미국을 방문해 폼페이오 당시 CIA 국장과 대북 정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신뢰를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자리에 국정원에서 북한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는 실무자도 대동해 구체적인 정보를 교환했으며 폼페이오 측도 만족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방한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만남을 극비리에 추진했던 것도 서 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인 것으로 전해졌다.서 원장은 북한 정보라인을 책임지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도 각별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통일전선부는 대남공작을 담당하는 정보기관이면서 대남 정책도 총괄한다. 서 원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는 비공개 접촉에 대표로 참가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선친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난 인물로 꼽힌다. 2007년 정상회담 과정에도 참여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북한과 미국 양쪽을 모두 잘 아는 서 원장과 폼페이오 ‘드림팀’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이뤄낸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공식 카운터파트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지만 최근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둘러싼 남북미 관계에서 서 원장도 못지 않은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악역’ 볼턴·김정은 어색한 만남… 트럼프 “대화 끝날 땐 서로 신뢰”

    ‘악역’ 볼턴·김정은 어색한 만남… 트럼프 “대화 끝날 땐 서로 신뢰”

    회담 합류해 트럼프에 최종 조언 트럼프 “김정은에 소개 흥미로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슈퍼 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의 만남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또 다른 관심사였다.볼턴 보좌관은 회담 준비 과정에서 ‘선 핵폐기, 후 보상’의 리비아 모델을 강력 주장하면서 북한의 거센 반발을 산 당사자다. 이 발언이 빌미가 돼 지난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백악관 면담 때 배석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북한과 미국 양국 정상의 확대정상회담과 오찬에 전격 합류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볼턴이 회담 과정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배드 캅’(나쁜 경찰)이라는 악역을 맡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볼턴 보좌관이 북·미 회담 당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로 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량 ‘캐딜락 원’에 동승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비핵화 합의 수준 등에 대한 최종 조언을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볼턴 보좌관은 회담 초반 다소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북한 노동신문이 13일 공개한 확대정상회담 시작 직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 위원장과 볼턴 보좌관이 악수하는 사진에서 두 사람의 표정은 꽤 대비된다. 김 위원장이 미소를 띤 반면 볼턴 보좌관은 무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늘 나는 김 위원장에게 볼턴 보좌관을 소개했다.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면서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나는 그들이 서로를 신뢰하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초반에 냉랭했던 기류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오찬이 끝난 뒤 볼턴 보좌관의 태도는 한층 누그러졌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카펠라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온 김 위원장과 얼굴을 맞대고 수분간 대화를 나눴다. 둘 사이 대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볼턴 보좌관은 한결같은 대북 강경론자였다. 국무부 차관 시절이던 2003년 김 위원장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폭군 같은 독재자”라고 쏘아붙였고 “북한의 삶은 지옥 같은 악몽”이라는 표현으로 북측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한반도 평화 여정 첫 관문 넘은 남북미 정상] 김정은, 정상국가 지도자 부각

    [한반도 평화 여정 첫 관문 넘은 남북미 정상] 김정은, 정상국가 지도자 부각

    선대가 남긴 가난·고립 청산 의지 분명히 ‘파격적’“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 말을 하기 전에 이미 전 세계 시청자들은 그의 실제 행태가 선입견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은둔의 독재자’로만 알았던 김 위원장이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보여 준 자유분방한 표정과 행동은 그를 정상국가의 지도자로 보이게 했다는 평가다. 입고 있는 인민복만 아니면 그를 서방세계의 지도자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외교 매너’를 선보였다. 특히 11일 밤 관광지를 깜짝 방문해 찍은 ‘셀카’에 나타난 그의 밝은 표정에서 ‘잔인한 폭군’의 이미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보다는 평범한 30대에 더 가까웠다. 김 위원장 일행을 보고자 몰려들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대는 군중을 향해서는 손을 흔들어 주는 여유도 보였다. 초강대국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한 역사적인 순간에도 34세의 젊은 지도자는 거침이 없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앞두고 모두 발언에서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걸 이겨 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그동안 북·미 간 대립의 책임을 미국에만 떠넘겼던 과거에서 벗어나 북한 스스로도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파격적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선대의 지도자가 남긴 가난,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등의 유산을 청산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1984년생인 김 위원장은 38살 위인 1946년생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서방 외교무대 첫 데뷔전에서 시종일관 절제된 자세를 유지했다. 처음에는 다소 긴장된 모습을 보였지만 금세 여유를 찾았다. 김 위원장은 기념 촬영을 마치고 걸어가며 자연스럽게 트럼프 대통령의 팔에 손을 올리는 등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상국가 지도자를 바라는 면모는 회담장으로 싱가포르를 받아들였다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이나 북·중 정상회담이 열린 베이징과 달리 싱가포르는 주변 환경을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지만 김 위원장은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10대 중반에 스위스 베른의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선진 문물을 익힌 경험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행을 위해 항공편을 이용해 선대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고소공포증을 앓아 열차 이용만을 고집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특히 국가의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중국의 항공기를 빌려 타고 정상회담 길에 오른 것도 눈길을 끈다. 노동신문은 중국의 오성홍기가 선명한 에어차이나 항공기에 오르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1면에 실어 주민에게 알렸다. 선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떳떳하게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과 꼬박 5시간을 함께 보낸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재능이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가족과 오토 웜비어 등을 죽인 김정은이 재능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26세에 권력을 승계해 국가를 터프하게 운영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상황을 잘 헤쳐 왔다”고 답했다. 물론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모습만으로 김 위원장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이행 단계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난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나타난 그의 태도를 놓고 볼 때 근본적으로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는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트럼프, “김정은에게 볼턴 소개…막판엔 분위기 좋아”

    트럼프, “김정은에게 볼턴 소개…막판엔 분위기 좋아”

    지난 12일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은 ‘선 비핵화-후 보상’의 리비아 모델을 주창하며 북한의 반발을 산 당사자였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관심을 모았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2003년 김 위원장의 선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폭군 같은 독재자’라고 칭하고 ‘북한의 삶은 지옥 같은 악몽’이라고 발언한 후 북한으로부터 “인간쓰레기”, “흡혈귀”라는 비난에 직면한 뒤 북핵 협상 미국 대표단에서 제외되는 등 북한과 악연이 깊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백악관을 예방했을 당시엔 사실상 배석 대상에서 배제됐지만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확대 정상회담과 오찬에 배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북미정상회담 후 ABC방송과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과 볼턴 보좌관의 조우 상황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과 막후 조율을 해 온 점 등을 언급, “오늘 나는 그(김 위원장)에게 존 볼턴도 소개해줬다”며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나는 그들이 (서로에 대해) 좋은 신뢰를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초반에는 분위기가 다소 경색됐었다는 걸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새 역사 쓴 트럼프·김정은 회담, CVID로 완성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오전 9시(현지시간) 싱가포르의 ‘평화와 고요’라는 뜻을 가진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세계사에 길이 남을 세기의 악수를 나눴다. 이 감격스러운 장면은 전 세계에 중계됐다. 지구촌 사람들이 TV를 보면서 놀라움과 기쁨으로 흥분했고,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다. 한국전쟁의 당사자 북·미 두 정상이 전쟁의 종지부를 찍고자 68년 만에 마주 앉았고, 140분간 만나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3월 8일 전격 수락한 지 97일 만이다. 70년 적대 푸는 두 정상 감격의 악수 두 정상이 서명한 4개 항의 공동합의문은 비핵화와 체제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에 관한 포괄적 내용을 담고 있다. 기대했던 3대 현안의 구체적인 시간표나 로드맵,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완전한 체제보장’(CVIG)은 들어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러려고 어렵게 정상회담을 했느냐는 비판도 제기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과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김 위원장이 미사일 엔진 실험장의 폐쇄를 비롯해 ‘모든 곳을 비핵화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한 것은 합의문에만 명기를 안 했을 뿐 CVID로 가는 조치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북한 해안 개발을 놓고도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두 정상이 얘기를 나눴다는 걸 보면 꽤 깊숙이 경제개발 문제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역대 북·미 정상들이 할 수 없었고, 가 보지 못한 길을 김정은·트럼프 두 정상이 활짝 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구상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평가도 바로 이런 점을 두고 한 말이다. 모든 일은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가에 달렸다. 회담에서 두 정상은 서로의 의중을 직접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구축했으며 신뢰한다”고 강조했다. 불신과 증오에서 벗어나 신뢰 구축의 첫걸음을 뗐다는 얘기다. 회담 제의로부터 불과 3개월간 70년의 적대관계를 풀 수 있는 묘수를 찾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합의문에 없는 CVID, 경제건설 논의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워싱턴에 초대했다. 워싱턴 다음은 평양이 될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해체가 4차례 정상회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처럼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의 비핵화가 ‘원샷 빅딜’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한반도 평화의 길이 열리기를 바랐던 우리로선 아쉬움이 크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 올 들어 연속해서 일어났다. 1990년대부터 핵 위기에 시달려 온 한반도에 비핵화라는 기적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의 검은 그림자가 시시각각 다가왔던 지난해 하반기였다. 위기를 직감한 문 대통령이 “한반도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수차례 경고하고, 12월 9일에는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던졌다. 전기는 그때 만들어졌다. 김 위원장이 올해 1월 1일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상국가로 나서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이 4월 27일 분단과 전쟁, 정전을 상징하는 판문점에서 열려 ‘완전한 비핵화’를 담은 판문점 선언을 채택했다. 하지만 호사다마였다. 지난 5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선 핵폐기, 후 보상’을 골자로 하는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거세게 밀어붙이며 종래의 북·미 공방이 재연됐다.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3시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6·12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거세게 요동쳤다. 몇 개월 사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경험 속에 만인이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북한의 비핵화, 북·미의 적대관계 청산은 쉽사리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평화체제 위한 양국의 대타협에 기대 6·12 정상회담은 많은 과제를 남겼다. 북·미의 비핵화·체제보장 협상은 주권을 가진 국가 간의 대등한 입장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항복을 요구하는 듯한 미국의 거친 태도가 협상에 장애가 됐다고 한다. 향후 본협상에서 미국이 전승국 대 패전국 식의 방법을 취하면 생존을 걸고 비핵화에 나선 북한을 설득하기 어렵다. 자발적인 폐기와 무보상의 남아공 모델, 핵폐기와 경제 지원을 맞바꾼 카자흐스탄 모델 등이 거론됐지만 북한에는 기존의 어떤 모델도 맞지 않는다. 불과 수십㎞를 사이에 둔 남북 대치, 중국 변수 등의 특수 상황을 감안하면 ‘트럼프·김정은 모델’, ‘한반도 모델’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사한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우리와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비핵화, 북·미 관계 정상화의 여정은 시작됐다. 미래를 낙관하고 다음 스텝으로 나가야 한다. 이번에 담지 못한 남ㆍ북·미 종전 선언은 “곧 종전이 있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차기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나와야 한다. 핵을 포기하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겠다고 선언한 북한이다. 그 전제는 제재 해제와 북·미 관계 정상화다. 북한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에 가입하고 정상국가로 가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과감한 비핵화를 약속하고 실천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은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제네바합의, 9·19합의 같은 북·미 약속이 휴지 조각이 된 과거가 있다. 한 번 더 뒷걸음질치면 한반도가 다시 어떤 혼돈에 빠질지 자명하다. 핵을 내려놓는 것만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는 방법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역사의 물줄기는 뚫렸다. 전쟁을 끝낸 평화의 땅 한반도에서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것이야말로 비핵화 끝에 놓인 새로운 시작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끝났지만, 이제부터가 진짜다.
  • [6·12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 김정은에게 “워싱턴 오시라”…백악관 우선 거론

    [6·12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 김정은에게 “워싱턴 오시라”…백악관 우선 거론

    성사 땐 北최고지도자 사상 최초 마러라고 리조트도 유력 후보지 “비핵화 위해 평양보다 좋은 카드” “시점은 이르면 7월·늦으면 11월”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 후 김 위원장을 미국 워싱턴으로 초청할 뜻을 밝히면서 이제 시선은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쏠린다. 다만 양측이 공개한 합의문에는 추가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생략돼 있어 일정과 장소는 양측 실무진의 논의에 따라 최종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합의문 서명식을 마친 뒤 “우리는 여러 차례 만나게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을 워싱턴으로 초청한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마지막 악수를 나누면서 “워싱턴으로 초청해도 되겠나”라고 직접 묻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6월 12일은 과정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등 후속 회담의 가능성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을 언급만 만큼 2차 회담 장소로는 우선 백악관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김 위원장을 미국으로 초청할 경우 그 장소가 백악관이냐 아니면 대통령 소유 휴양지인 플로리다 마러라고냐”라는 질문에 “아마도 백악관에서 먼저 시작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만약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에 응하면 북한 최고 지도자의 사상 첫 미국 방문이 된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전례가 없지만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에 비춰 볼 때 방미가 아예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라면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라도 워싱턴은 평양보다 좋은 카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별장이자 ‘겨울 백악관’으로도 불리는 마러라고 리조트 역시 여전히 유력한 후보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대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북한으로 초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하면서 7월 중 평양에서의 2차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초청에 응해 평양에 간다면 역시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는 사례가 된다. 전직 대통령 중에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 억류된 미국 여기자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찾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재 대상 국가를 방문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 2차 회담 시점은 이르면 7월, 늦어도 11월 전에는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 부원장은 “1, 2차 회담 시점의 간격이 좁을수록 양국이 합의한 내용을 빨리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매개체로 비핵화 프로세스를 서둘러 밟아 나가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1월로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와 가을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날짜도 향후 북·미 정상회담 일정에 변수로 꼽힌다. 미국 중간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띠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그전에 1차 회담에서 매듭짓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차 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에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과 ‘시간표’는 도출하지 못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6·12 북미 정상회담] 예술단 등 문화교류부터… 대북 제재 완화는 다소 늦어질 듯

    트럼프 “핵 이슈 아닐 때 제재 해제” 경제교류 한다면 전력·농업부터 美 민간자본 北투자 방식 가능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하면서 문화·스포츠 교류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다만 경제 교류는 북한 비핵화 진전에 따른 대북 제재 완화가 선행돼야 하기에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과 미국이 관계 개선 과정에서 상호 교류 활성화와 신뢰 구축을 위해 우선 활용할 분야는 문화와 스포츠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뒀던 10일(현지시간) 미국 온라인매체 액시오스는 “회담 준비에 관여한 미국 관료들이 공식적인 외교 이외에 북한과 교류할 방안을 강구해 왔다”면서 “그중 하나가 북한의 체조 선수단과 평양의 관현악단을 미국에 초청하는 등 문화 교류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남북 예술단 공연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수행단에 포함돼 북·미 문화 교류를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2008년 2월 미국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상임지휘자 로린 마젤은 평양을 방문해 동평양대극장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협연한 바 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연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예술단 공연에 잇따라 참석한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문화 교류 행사에 직접 참석한다면 양국의 관계 정상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경제 교류는 정부보다 민간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13일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면 미국 정부가 예산을 들여 북한 경제 지원을 할 수는 없지만 대북 제재를 완화해 미국 자본이 북한에 투자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역시 미국 정부의 직접 지원은 북한 내부의 체제 개혁 요구를 증대시켜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기에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AP는 분석했다. 경제 교류는 북한이 경제 개발을 위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전력과 인프라, 농업부터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2016년 “인민 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경제 부문 사이의 균형을 보장해 나라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며 5개년 경제 발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같은 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간 분야의 미국인이 북한의 에너지 설비 구축을 도울 것이다. 북한은 엄청난 양의 전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이후 북한과 함께 인프라를 건설하고 미국 농업 역량으로 북한을 지원해 그들이 고기를 먹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위해 당장 대북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완전한 비핵화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서 “제재 해제는 핵무기가 이슈가 아닐 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보여 줬듯 트럼프 대통령이 신속한 합의와 이행을 원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문화·스포츠 교류도 단시간 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히 김 위원장이 농구 광팬이니 북·미 간 농구 친선 경기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제 교류는 비핵화와 맞물려 가야 하기에 속도와 범위는 문화·스포츠 교류에 비해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6·12 북미 정상회담]평양·워싱턴 연락사무소 개설 관측 … 단계적 북·미 수교 가능성

    [6·12 북미 정상회담]평양·워싱턴 연락사무소 개설 관측 … 단계적 북·미 수교 가능성

    양국 정상 “새로운 관계” 천명 연락사무소 교류·소통 ‘상징’ 美, 北 비핵화 이행 감시 가능 北, 정상국가 발돋움 효과 커 ‘세기의 담판’이라고 불린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70년 적대관계를 유지해 온 양국이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가 있다. 도널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날 서명한 공동성명 1항에는 “미국과 북한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동성명에는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명시되지 않지만 전례로 봤을 때 연락사무소 설치가 첫 단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향후 북한의 비핵화 이행 정도에 따라 연락사무소를 대사관으로 격상하는 등 북·미 수교가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데드라인’을 구체적으로 못박지 않은 만큼 북·미 수교까지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상당히 오래 시간이 걸릴 것”라며 “북·미 수교는 가능한 한 빨리하기를 원하나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워싱턴·평양 간 연락사무소 개설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대립과 불신을 이어 온 북한과 미국이 교류와 소통의 채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북·미 간 긴밀한 연락 시스템이 구축되면 이번 정상회담 이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대화와 협력의 동력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미국은 리비아를 비핵화시켰을 당시 연락사무소를 통해 비핵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미국은 2004년 6월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먼저 설치한 뒤 2005년 10월 리비아 핵 프로그램 중단을 발표하자 2006년 이를 대사관으로 승격했다. 반면 북한은 미국 등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김 위원장이 지향하는 정상국가화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27 정상회담에서 개성 지역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합의했다. 2000년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과 연락사무소 설치 문제를 논의했지만 북·미 관계가 악화되면서 좌초됐다. 만약 연락사무소가 개설된다면 북·미 관계 진전에 따라 대사관으로 격상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대사관 설치는 양국 사이 정상적인 국교가 성립됐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 평양에 성조기가, 미국 워싱턴DC에 인공기가 각각 휘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다만 대사관 설치는 의회의 승인를 얻어야 하는 만큼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 조치가 전제돼야 한다. 현재 미 대사관이 없는 국가는 북한과 부탄, 이란 등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평양 문수동 외교공관 단지 등에는 중국, 러시아 등 24개국의 대사관이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국 대사관이 설치된다면 장소는 문수동 일대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에 미국 대사관을 세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미 정치전문 매체 악시오스는 지난 9일(현지시간)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비핵화를 전제로 평양에 미국 대사관 설치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의 종착지는 북·미 수교다. 북한의 국가적 숙원 과제인 북·미 수교는 김정은 정권이 경제 협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식 외교 관계 수립까지는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과거 베트남, 중국 등 적대국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을 때도 4~8년이 걸렸다. 북·미 수교 논의가 이뤄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의 마지막 해인 2020년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북한과의 후속 회담을 다음주에 개최할 예정이다”, “우리(김 의원장)는 여러 번 만날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 논의가 진전될 여지가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미 수교로 가는 단계를 밟을 것”이라면서도 “어느 시기에, 어떻게 되는지는 향후 실무 논의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6·12 북미 정상회담]정상국가 지도자 각인시킨 김정은… 세계외교 ‘록스타’ 데뷔

    [6·12 북미 정상회담]정상국가 지도자 각인시킨 김정은… 세계외교 ‘록스타’ 데뷔

    방중·남북회담 부부동반 격 갖춰 도보다리·군사분계선 월경 ‘파격’ 서구 경험, 체면보다 실용적 선택 경호단 등 美에 밀리지 않는 모습 싱가포르 명소 돌며 과감한 행보 셀카 찍고 손 흔드는 등 여유 보여 “앞으로 세상은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김정은(34)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한 말이다. 이날은 ‘은둔의 독재자’로 알려졌던 김 위원장이 마치 ‘록 스타’(연예인)처럼 떠들썩하게 세계 외교무대에 데뷔한 순간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상국가’ 지도자임을 과시했다. 우리 정부 고위관계자는 “은둔형 지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 외교 무대에 정상국가 지도자로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정권을 이어받은 김정은 위원장은 그간 북한을 세계 무대에서 정상국가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 3월 중국을 비공개 방문할 당시에는 부인 리설주 여사와 공식수행원인 참모들을 대동하며 정상외교의 격을 갖췄고,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선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함께 부부 동반 만찬을 했다. 당시 13시간 가까이 언론에 생중계된 김 위원장의 모습은 그간 내부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로 악명을 떨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문 대통령과 함께한 ‘도보다리 회담’에선 30여분간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사전에 계획됐던 도보다리 회담은 잠시 머물다 오는 정도였다”며 “그렇게 긴 대화가 이뤄질 줄은 문 대통령도 몰랐고 김 위원장도 몰랐고 아무도 몰랐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스위스 유학을 통해 서구 사회를 경험했던 김 위원장은 명분과 체면보다는 실용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싱가포르행에선 안전을 위해 중국 전용기를 임차했을 뿐 아니라 경호 목적으로 3대의 비행기를 동원하는 용의주도함도 보였다. 특히 김 위원장은 올해 들어 처음 나선 정상 외교무대에서도 상대 정상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북·중, 남북, 북·미 정상회담장마다 북한 국무위원회 문양이 새겨진 방탄 경호차량 메르세데스벤츠 S600 풀만 가드를 공수했고, ‘방탄경호단’이라는 별칭을 얻은 북한 974부대 소속 경호원들은 차량 주위를 밀착 경호하며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30대의 젊은 지도자인 김 위원장은 전날 밤늦은 시각에 싱가포르 식물원 ‘가든 바이 더 베이’와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스카이 파크 전망대 등 관광 명소를 돌아보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을 수행한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외무장관과 여당 유력 정치인인 옹예쿵 전 교육부 장관은 함께 웃으며 셀카를 찍어 화제를 모았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주변에 몰려든 관광객과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드는 등 여유를 보였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과감한 행보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상에서 문 대통령과 처음 만나 문 대통령을 북쪽으로 이끄는 모습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지난해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을 당시 국면을 전환할 것이라 예측은 했지만, 판문점 선언만큼 나아갈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며 “이번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우리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과감하게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 정상화에 나선 데 이어 고립됐던 북한 외교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현 한반도 정세 변화를 계기로 북·중 혈맹 관계를 복원시킨 데 이어 러시아, 쿠바, 이란, 베네수엘라 등 기존 우방 국가와의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러시아 국경일인 ‘러시아의 날’을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 “북·러 간 전략적·전통적 관계도 새로운 시대의 요구와 양국 국민의 이익에 맞게 더 강화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고 타스 통신은 전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정상국가의 지도자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6·12 북미 정상회담]70년 적대관계 녹인 12초…세기의 악수, 기싸움 없었다

    [6·12 북미 정상회담]70년 적대관계 녹인 12초…세기의 악수, 기싸움 없었다

    12초간 맞잡은 악수가 70년간 지속된 북·미 적대관계사의 전환점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의 첫 만남에서 ‘세기의 악수’를 선보였다. 취재진 앞에서 두 정상은 틈틈이 악수를 나누며, 과거 ‘풀라우 블라캉 마티’(죽음의 섬)로 불렸던 센토사섬을 무대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두 정상의 역사적 만남을 차질 없이 뒷받침한 경호와 의전도 인상적이었다.악수 이날 오전 9시(현지시간) 카펠라호텔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각자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인민복과 빨간색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만났다. 김 위원장은 레드카펫이 펼쳐진 회담장 입구의 왼쪽에서 걸어 나왔고, 트럼프 대통령은 오른쪽에서 걸어 나와 정중앙에서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오는 14일 72세 생일을 맞는 트럼프 대통령이 왼손으로 34세인 김 위원장의 팔을 다독이며 친근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백악관 공동취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때 “Nice to meet you, Mr. President”(만나서 반갑습니다. 대통령님)라고 영어로 인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통역사의 발언을 착각한 오류라는 공지가 나오면서 진위 여부가 확실히 가려지지 않았다. 모두 발언이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다시 손을 내밀며 세 번째 악수를 청했고, 취재진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패션 두 정상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건 검은색 인민복과 빨간 넥타이였다.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패션은 지난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나 4월 남북 정상회담 때와 다르지 않았다. 인민복은 사회주회 국가의 생활복이다. 중국 덩샤오핑 등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상징적으로 입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인민복을 입었다. 때때로 정장을 입기도 했던 김 위원장이 인민복을 입고 나온 건 스스로 북한 인민의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 체제의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색 정장에 빨간 넥타이로 시선을 잡아챘다. 빨간 넥타이는 그의 상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을 비롯해 지난해 7월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지난해 4월 대통령 개인별장인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등 자신의 강력한 리더십을 드러내는 자리마다 붉은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반면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와 지난 10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는 차가운 빛이 도는 푸른색 넥타이를 맸다. 경호 세계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두 정상인 만큼 경호는 엄중했다. 과거 식민지 시절 영국군 주둔지였던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은 주변 지대보다 높고 수림이 우거져 외부에서 관측이 불가능하다. 지리적 이점은 두 정상이 회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천연의 환경이 됐다. 경호는 인해전술 못지않았다. 싱가포르 정부가 배치한 보안요원은 5000여명에 달했고, 주요 지점마다 굵은 밧줄로 프레스라인을 설치하며 통제했다. 본토와 센토사섬을 잇는 다리부터 호텔 주변까지 1.5㎞에 이르는 인도 구간에 사람 키 높이의 가림판을 설치해 정상들의 통행을 시야에서 차단했다. 회담장 상공엔 군용헬기가 수시로 선회하며 감시 활동을 벌였고, 앞바다에는 미국 군함이 비상대기했다. 카펠라호텔 진입로는 방탄복과 소총으로 완전 무장한 경찰관과 카키색 군복 차림의 군인들이 경계했다. 북한의 ‘방탄경호단’도 시선을 끌었다. 김 위원장이 카펠라호텔에 도착하자 요원 10여명이 차량을 에워싸며 말 그대로 방탄 경호에 나섰다. 이들은 북한 인민군 974부대 소속으로 알려진 북한 최정예 요원이다. 의전 의전도 정서적인 측면까지 고려해 호감을 샀다. 두 정상에 대한 의전 키워드는 동등함이었다. 회담장에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먼저 도착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배려가 눈에 띄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취재진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김 위원장에게 ‘상석’을 권했다. 의전을 따질 때 보통 오른쪽을 상석으로 여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편에 섰다. 회담장에 들어설 때나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팔을 가볍게 터치하며 손님을 안내하는 듯힌 행동을 취했다. 아울러 처음 악수할 때도 서로를 향해 다가가 악수한 건 양국 정상이 전 세계 미디어 앞에서 대등하도록 보이고자 했던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연장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예의를 지키는 매너를 취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인민복 입은 김정은과 붉은 넥타이 맨 트럼프

    인민복 입은 김정은과 붉은 넥타이 맨 트럼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인민복’을 입었다. 12일 회담장인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로 들어선 김정은 위원장은 검은색 인민복을 입고 왼손에는 검은색 서류철을, 오른손에는 안경을 들었다. 흰색 와이셔츠에 붉은색 넥타이를 맨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적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3월 말과 5월 초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날 때도 인민복을 입었으며, 4월 27일과 5월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도 인민복을 입고 등장했다. 인민복은 사회주의국가 지도자를 상징한다. 과거 중국의 지도자들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인민복을 입곤 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이번에 입은 인민복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때와는 다르게 줄무늬가 없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양복을 입고 북미정상회담에 나올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예상을 깨고 이번에도 인민복을 입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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