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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보정보 국익차원서 관리를”/황병무 국방대학원교수(전문가제언)

    ◎대북 평화 체제구축 우리가 주도권 잡아야 냉전이후 시기의 국가안보 문제는 그 영역의 확대와 상호 연계성의 증대로 보다 복잡해지고 안보방식도 다양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냉전시기에 비해 군사안보의 비중이 낮아지고 경제안보·환경 및 마약범죄 등 비 군사안보 영역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경제빈곤과 사회불안의 정치적 불안정과 연계,경제력의 약화와 과학기술 부진이 야기한 국방력의 약화 등 안보이슈의 상호연계성은 국력의 제요소를 망라한 총체적 역량임이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안보전략은 국력의 제요소를 통합시키는 과정을 통해 수립돼야 한다.외교·통일·군사·정보 및 경제분야의 안보영역을 종합한 국가안보백서의 발간을 생각해볼 수 있다.이러한 문건은 의원입법활동을 비롯,대 국민 홍보 및 안보관료들의 정책입안을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민주화의 심화로 말미암아 안보 외교를 비롯,안보정보의 공개와 국방과 다른 안보관련 부서의 예산집행에 대한 효율성·투명성 및 공개 문제와 관련,국민요구의증대를 정부는 제도적으로 수용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더욱이 당면한 문제인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 국민의 관심은 우리 정부가 외교적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보정보의 공개문제에 있어서 아무리 민주국가라 할지라도 공개해야 할 정보와 공개해서는 안되는 정보가 있다.국회의원이나 안보관료는 개인과 정파 및 부처의 이익을 떠난 국가이익 차원에서 안보정보를 관리해야 할 자세가 요구된다. 군사안보는 기능적인 면에서 군사기밀 영역에 속할 수 있으나 방위개념 전력증강의 기본방향과 같은 본질적 대안은 군 전문가를 포함,광범위한 전문집단의 의견을 수렴해서 채택할 때 안보에 대한 민·군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국민적 지지를 받는 안보전략과 역량의 확충을 기할 수 있다.이 점에서 국회의 안보관련 상임위원회는 가급적 많은 전문가를 초청,청문회를 통한 전문적 견해를 의정활동에 폭넓게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1세기를 향한 한국안보전략의 기조는 독자적 방위력과 한·미동맹을 축으로 한 협력안보방위형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협력방위체제는 냉전기 집단 안보형 방위체제와는 주변국 관계,군사교리,군사력 규모 및 전력구조면에서 다르다. 한국은 집단안보형과는 달리 러시아·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안보교류와 협력을 발전시킨다.북한과도 평화적 공존을 바탕으로 군사적 안정을 유지한다.한국은 미국과는 포괄적 및 상호보완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한다.한·미연합 방위체제에 입각한 대북한 방위교리 위주로부터 주변국 불특정 위협에 대응하는 방위교리로 전환된다.방위력의 규모는 대북 대등전력의 확보로부터 주변국 불특정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이른바 「방위적 충분성」 개념에 입각한 방위력 확충을 지향한다.전력구조는 과거 대북형 지상전 위주로부터 해·공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정된다.핵문제는 비핵정책을 원칙으로 하되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권은 확보해야 할 것이다. 미래 한국의 군사력 규모와 구조는 안보위협의 대응을 위한 군사력 소요,즉 군사적 필요에 의해서만 추진될 수 없다.가용예산의 제약이 주요 이유다.정부는 가급적자원절약형 군사전략을 개발하고 국회는 이러한 전략이 구현할 수 있는 군사역량을 확충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국가의 안보문제는 국회와 행정부의 시각을 분리해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북 군사적 모험 경계/김 대통령,육사졸업식 치사

    김영삼대통령은 11일 『체제의 불안정과 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체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엉뚱한 군사적 모험을 택할수 있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강력한 국방력과 함께 국민의 투철한 안보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거행된 육사 52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치사를 통해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는 힘이 있을 때만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면서 『국가안보에 관한한 한치의 허점도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 전력개선사업의 투명성(사설)

    국방부가 방위력개선사업(율곡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와 관행을 전면 개편한 것은 시의 적절한 조치다.7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전력개선사업은 국방력 증강에 큰 기여를 해 왔으나 사업의 특성상 은밀성 때문에 비리가 개입돼 왔다.노태우씨의 비리사건을 계기로 이번에 이 사업의 계획과 집행을 최대한 공개키로 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국방부가 국가기밀인 방위력 증강사업을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한 것은 이미 지난 연말 87조원 규모의 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다.율곡사업비리로 당시 국방예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진 때에 5개년계획의 대체적인 규모와 특징을 공개함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이번에 마련된 제도와 관행의 개선방안 중에는 사업의 정례브리핑,대형사업의 집행전 국회보고,오퍼상 정비등 획기적인 조치들이 망라돼 앞으로 국방업무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기대된다.무엇보다 사업의 추진과정을 과감히 공개함으로써 투명성 확보를 제도화한 것이 돋보인다.지금까지 내부지향적으로 추진되어 온폐단을 과감히 탈피해 앞으로는 단계별 추진계획과 현황을 그때그때 공개함으로써 이 사업의 공신력을 높이고 효율성이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는 지난 22년 동안 32조원이 투입된 국방력개선 사업이 우리 군의 현대화·정예화에 크게 기여한 점을 인정한다.이 사업이 당면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억지력 향상에 기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불미스러운 비리 때문에 「율곡사업」이 모두 부정적으로 잘못 인식되어 명칭까지 바뀌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함으로써 이 사업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일대 전환이 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이를 계기로 한해 4조7천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의 합리성·전문성·투명성이 확실히 확보되어 방위력 개선사업에 대한 시비가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란다.방위력은 국민의 신뢰감을 바탕으로 효율성이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우리 군의 전력과 사기를 크게 높여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 각계50인이 말하는 통일 해법­전망

    ◎평양정권 돌발 변수 대비하라/다각적 대화창구 구축 급선무/인적교류 활성화로 동질성 회복부터/「흡수」보다 협상통한 다단계 통합 추구/인권문제 지속적 거론 북한체제 변화 유도/빠르면 2010년께 「우리는 하나」 가능성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을해년이 지나가고 새출발을 다짐하는 병자년새해가 밝았다.이 아침 국토분단의 고통속에 보낸 지난 반세기를 돌이켜보며 새로운 반세기를 향해 통일의 염원을 되새긴다.서울신문사는 새해 아침 각계인사 50명으로부터 통일문제에 관한 의견을 들어봤다.설문형식으로 이뤄진 이 조사의 문항은 다음과 같다.①한반도의 통일은 언제쯤 이뤄질 것으로 보는지.②통일의 형태는 어떤 것이 될 것인지.③통일에 대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은.④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시급히 착수해야 할 일은. ◇구종서(삼성경제연구소 상무·정치학박사)=①늦어도 2000∼2010년.②북한 자체붕괴후 한국이 흡수하는 독일식 통일이 될 것이다.③북한을 흡수한 뒤 신속한 재건과 남북 균형발전을 이룰 준비가 필요하다.④남북교류 확대,북한개방화가 불가피하도록 상황을 유도해야 한다. ◇홍세표(한미은행장)=①10년안.②북한의 체제가 완전 붕괴되거나 또는 현저히 약화된 뒤 독일식 흡수통일.③북한체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통일에 대비한 각종 제도정비와 통일기금 조성 등의 준비가 필요하다.④남북 정책당국자간은 물론 주민들의 사고방식의 차이 및 불신감을 극복하기 위해 인적 또는 경협차원의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박수환(LG상사 사장)=①2000∼2010년쯤.②북한이 붕괴된 뒤 한국 주도하의 독일식 통일.③북한 경제의 재건을 돕기 위한 통일기금을 조성해야 한다.④남북 경제협력 확대 등을 통해 상호이익을 넓혀나가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윤명환(46·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광원)=①북한은 2005년 길어도 2010년 이상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②악화되고 있는 북한 경제사정 때문으로 결국 독일식으로 흡수,통합될 것같다.③피폐해지고 있는 북한경제를 떠맡아야 하므로 경제성장과 국력배양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④민간 기업체나 문화단체들은 상호 교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도록노력한다. ◇정진관(39·인천시 시의원)=①2000년대나 가야.②경제력을 비롯,국력이 월등하게 앞지르고 있기는 하지만 대화나 협상에 의해 평화통일 될 것으로 생각한다.③남북 주민의 정서적 동질성을 회복시켜야 한다.④남북간 경제협력 등을 확대해 신뢰 회복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전대주(전경련 전무)=①2010년.②북한이 붕괴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될 것으로 본다.③남북한을 모두 먹여살리기에 충분할만큼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④한반도 주변 4강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외교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배옥(39·농어민 후계자 전북 완주군협의회장)=①2010년쯤.②독일식으로 우리가 북한을 흡수해 통일하는 형태가 유력하다고 생각한다.③비뚤어진 이데올로기에 혼을 빼앗긴 북한 동포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도록 민족 동질성을 회생시켜야 한다.④경제교류를 활성화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지지기반을 넓히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권오진(54·경북 경산시의회 의원)=①2005년 이후.②북한 내부의 동요가 가속화되고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독일과 같은 흡수통일이다.③남북사회의 크게 다른 제도를 정비해 통일에 대비한다.④이산가족 상봉 등 인적교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박맹우(45·경남도 조직진단 담당관)=①북한체제가 금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자멸할 것이다.②우리가 흡수,통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③통일과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연구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④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비해 국방력·경제력·정치력 등 총체적인 국력을 배양해야 한다. ◇최인훈(소설가·59)=①예측하기가 어렵다.②가급적 빨리,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지기 바란다.③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정치적 부패의 척결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민주화다.④사회 민주화 부문에서 얼마나 뚜렷한 실질적 성과를 거두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본다. ◇박완서(소설가·64)=①6·25체험 세대가 다 사라진 20년이나 30년후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②평화적 협상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③북한경제의 재건을 도와 북한을 우리의 대등한 대화상대로 끌어올리자.④우리가 쌓아올린 부를 공정 분배하는 사회보장제도 등 복지정책이 시급하다. ◇이만익(56·화가)=①지금으로부터 10여년 후.②무력에 의존해서는 안될 것이며 상호 대화를 기초로 하되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이 바람직할 것 같다.③남북한간에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④무엇보다 정부당국간 대화채널의 유지가 중요하다. ◇조흥동(54·한국무용협회 이사장)=①4∼5년안.②북한이 붕괴하고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③민족간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④정부당국뿐 아니라 민간차원등 다각적인 교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윤형주(48·가수)=①차기대통령이 선출되고 2년쯤 지난 뒤에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까.②엄밀히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아니더라도 독자성을 가진 우리 형태의 통일이 될 수도 있다.③남북간의 언어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합동연구가 필요하다.④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기구가 설립되어야겠고 양쪽 주민의 의식을 계도해나가는 정부차원의 쌍방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박상희(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미주철강산업 대표이사)=①2000∼2010년쯤.②남북대화,협상에 따른 통일이 될 것이다.③남북 주민의 정서적 동질성 회복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④남북경협 확대 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 ◇이재기(공군준장)=①두 체제가 공존하는 방식이 아닌 실질적인 통일은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②북한이 붕괴되고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③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강화하고 남북한간 상이한 각종 제도의 정비방안을 연구해야 한다.④남북경협확대,남북당국간 신뢰회복,각 분야의 인적교류 확대가 추진돼야 한다. ◇임영보(63·현대산업개발 여자농구단 감독)=①북한이 자유와 개방으로 나선 뒤에도 상당기간이 흘러야 하므로 2010년 이후.②한국이 국력을 바탕으로 주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③경제력뿐 아니라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해야 한다.④북한이 자포자기 하지 않도록 도우면서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허재(30·기아자동차 남자농구단 선수)=①2000년쯤에는 통일에 가까운 평화체제를 마련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완전한 통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②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③분단의 장기화에 따른 이질성 극복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④대화의 기회를 가능한한 넓혀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윤길중(38·동아증권탁구팀감독·91년 지바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코치)=①2000∼2010년.②잦은 교류에 따라 북한이 자체 붕괴돼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의 형태를 띨 것이다.③통일기금 마련을 위한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④종교·체육·이산가족등 활발한 민간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 ◇박철순(40·프로야구선수)=①2010년까지.②남북대화와 협상에 따른 평화통일이 이상적으로 보인다.③50년 이상 분단에 따른 국민적 동질성 회복이 시급하며 경제력 부흥이 뒤따라야한다.④남북당국 사이의 신뢰회복과 대화채널이 다양하게 열려야 한다. ◇김정태(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①2010년 이후에 가야.②북한이 붕괴된 뒤 한국의 주도로 독일식 통일이될 것이다.③북한 경제의 재건을 돕기 위한 통일기금 조성부터.④남북경협 확대가 시급하다. ◇김시준(43·어민후계자 제주도협의회장)=①당장 실현되기 어렵고 빨라야 홍콩이 중국에 흡수되는 97년 이후라야 가능할 것 같다.②남·북한 최고책임자간 협상이나 대화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될 것이다.③민족동질성 회복운동에 노력해야 한다.④이산가족 상호 방문이나 종교·학술분야,경제인의 교류 및 협력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신정식(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①20 10년이후.②남북대화·협상에 따른 평화통일이 될 것이다.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회복.④남북 경협확대 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 ◇김창식(29·신촌 그레이스백화점 기획실 주임)=①2010년 이후 ②경제력에서 앞선 남한이 주도하는 독일식의 흡수통일 ③독일이 「통일비용」으로 쩔쩔매고 있듯 우리도 장담할 수 없다.경제규모를 배가시켜야 한다 ④경제인의 교류부터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김철길(57·서대문구 연희동 실로암약국 주인)=①당장 통일은 어렵다고 본다 ②북한이 붕괴되면서 남한의 체제에 흡수통합될 것으로 본다 ③통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안보교육 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④남북한 당국간의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대화의 채널을 우선 복구해야 한다. ◇강승수(28·서울마포경찰서 조사계장)=①북한의 체제변화에 따라 이번 세기안에 통일될 수도 있다 ②독일식 흡수통일도 좋지만 남북협상에 따른 평화통일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③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④북한주민들에게 자유롭고 개방된 남한 사회를 알려야 할 것이다. ◇권재철(34·전국사무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①금세기안에 통일이 이루어지기는 힘들다고 본다 ②협상에 의한 평화적 방식의 통일 ③거리감이 생긴 언어를 통일하는 방안도 생각할 때이다 ④경제인·종교인 등의 교류 뿐만 아니라 노동자단체의 상호교류 또한 하루빨리 성사돼야 한다. ◇이재성(25·서울대 계산통계학과 2년)=①2010년쯤 이뤄질 것으로 본다 ②남쪽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쪽의 계획경제가 혼합된 「시장개혁주의」형태가될 것이다 ③민간교류가 활발하게 선행돼야 하며 NGO의 역할이 중요하다 ④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은 정치적 화해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송보경(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①통일은 교역이 활발해질 때 가능하리라고 본다 ②대화와 협상에 따른 평화통일이 바람직스럽다 ③우리 체제가 저쪽보다 인간적이라는 자긍심을 국민들이 갖도록 하는게 필요하다 ④통일 이후의 혼란에 대비,신문과 방송등 언론매체에서 신문보내기운동과 라디오보내기운동을 펼치는게 중요하다. ◇김은영(58·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①2000∼2010년 ②북한붕괴후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 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회복 ④남북경협 확대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 ◇김주인(전헌정회장)=①2000∼2010년쯤 ②북한붕괴후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바람직하다 ③자유민주주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강화해야 된다 ④남북 경협확대 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계륜(국민회의 국회의원)=①북한내부의 변화에 따라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통일은 20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②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민족통일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며 남북연합,연방제,완전통일등 3단계 방식이 바람직하다 ③남북간 상이한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 ④이산가족교류등 남북간 왕래가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최한수(건국대교수)=①2000∼2010년 쯤에는 남북통일이 될 것으로 본다 ②북한붕괴뒤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③남북 주민의 정서적 동질성 회복이 시급하다 ④남북 당국간 신뢰회복과 대화채널 복구가 중요하다. ◇김문섭(19·서울대 신문학과 1년)①2000∼2010년쯤이나 가능할 것으로 본다 ②「연방제」형태가 될 것이며 흡수통일이 될 가능성은 없다 ③남북간 교류확대로 상호신뢰 회복을 한뒤 정부차원의 협상을 강화해야 한다 ④학술·문화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민간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박갑수(통일원 정보분석실 과장)=①주변국의 개입이 없다는 가정아래 빠르면 2000년대초,늦어도 2010년 안에 ②북한붕괴후 중국·일본의 방해가 없을때 독일식 흡수통일 ③북한주민을 먹여살릴 경제력과 외세의 개입을 막을 군사·외교력을 고루 갖춰야 ④남북간 대화채널을 복구한 뒤 신뢰회복을 위한 장치마련과 경제협력의 동시 추진. ◇이수택(외무부 특수정책과장)=①북한체제의 개방이나 변화에 따라 2000∼2010년쯤 가능 ②남북대화의 진전으로 평화통일도 가능하나 북한붕괴에 따른 독일식 통일에도 대비해야 함 ③자유민주주의체제가 세계사의 대세라는 관점에서 통일한국의 미래상에 대한 통일교육을 강화 ④남북경협 확대를 통해 상호이익과 신뢰를 축적. ◇김종호(신한국당 정책위의장)=①2000∼2010년 ②북한 붕괴후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 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 회복 ④남북 경협 확대등을 통한 상호이익 증진.법과 제도의 정비. ◇정상대(신한국당 조직국장)=①2010년 이후 ②북한 붕괴후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 ③남북간 각종 채널을 통한 대화로는 통일이 불가능하므로 확실한 힘의 우위 확보가 가장 필요 ④동독인권에 대한 서독의 지속적 관심이 동독변화를 자극했듯이 북한인권 문제를 꾸준히 거론, 국제적 압력 수단으로 활용. ◇김점선(37·주부·강서구 화곡1동)=①20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②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하는게 바람직하다.③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④남북 당국간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채널을 복구해야 한다. ◇신웅식(변호사)=①3년안에 통일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돼 7년안에 이루어질 것이다.②북한이 붕괴되면 한국은 좋든 싫든 통일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③평화적이고 안정된 통일을 원하면 북한을 개방화시키고 남북간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한다.④경제협력과 다방면의 인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정치·군사·외교 문제에서는 일관되고 우월적인 위치를 견지해 나가야 한다. ◇장기욱(민주당 국회의원)=①오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②남북대화에 의한 평화통일이 돼야 하며,될 것으로 믿는다.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한간에 서로 다른 각종 제도를 정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④우리가 먼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통일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게 될 것이다. ◇최상용(고려대교수)=①전적으로 북한의 체제유지능력에 달려있다.체제유지능력이 무너진다면 의외로 빨리 통일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②협상이나 전쟁에 의한 통일이 어렵다는 점에서 한국현실에 맞는 「변형된 독일형」의 가능성이 높다.③통일과정중 소요될 경제력의 확충.④「평화공존형 통일」의 전략을 세워 하나하나 가능한 일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철승(전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자유민주총연맹 총재)=①20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②북한체제 붕괴로 인한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③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보다 강화하고 남북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통일기금 조성등의 사전준비를 해야한다.④이산가족 상봉등 인적교류의 확대와 남북당국간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마련 및 대화채널 복구 등이다. ◇강홍빈(서울시정책기획관)=①2010년 이전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②북한 사회가 붕괴된 뒤 한국 주도의 독일통일방식이 될 것이다.③통일 이후 주택·고용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이들에 대한 재교육기관 양성과 통일기금조성이 시급하다.④남북경협확대와 인적교류가 필요하다. ◇송월주(61·조계종총무원장)=①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것이 대업을 이루는 지혜라 여겨진다.②우리가 주도하는 흡수통일이 바람직하나 이번 세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리라 본다.③자유민주주의 체제속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신심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④이해가 앞서는 정치회담보다 비정치적인 인적교류가 필요하다. ◇한성희(41·동대문시장 의류자재상인)=①마음먹고 순리를 따르면 금세기 안에 통일도 가능하다.②서로의 불신을 허물고 서로를 인정하여 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이 바람직하다.③경제협력방안들을 다각도로 모색해 경제적으로 북한을 압도해야 한다.④독일의 예처럼 통일자금마련과 제도정비가 필요하다. ◇한경직(93·영락교회 목사)=①종교의 자유가 북녘땅에도 충만하게 될 때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진정한 통일을 이룰 것이다.이는 2010년이 지나야 가능하리라 본다.②꾸준한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③전쟁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충분히 깨닫게 해야 한다.④분단의 아픔을 가장 크게 느끼는 이산가족의 만남이 우선이다. ◇김상균(대법원 법원행정처 판사)=①북한이 교조주의적으로 굳어가고 있어 언제쯤 통일될 것인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②대화와 협상에 따른 점진적인 방식이 바람직하다.③동질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④거창한 것보다는 법조계 인사 교류와 같이 각 분야에서 서로를 알기 위한 「작은 걸음의 정책」을 펴야 한다. ◇김문하(중앙대 총장)=①2000년대를 향한 통일의 이정표는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길을 확보하는 데서 찾아야한다.②민족이 주체가 되는 민주적·평화적 통일이 되야 한다.③민족적 신뢰와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상호교류와 협력을 통한 사회개방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④진정한 의미의 평화통일은 민족의식의 연대에서 비롯된다.
  • “대만 국방력증강 박차” 외교부장 송년 회견

    【대북 로이터 AP 연합】 대만지도자들은 대만이 국제적 승인을 얻는 것을 중국이 반대하는데 대해 비난하면서 외교노력에 박차를 가하기로 다짐하는 한편 무기현대화와 훈련강화를 통한 국방력증강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전복외교부장은 29일 대만이 국제적 승인을 얻지 못하는 것은 중국의 극력반대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그러나 대만은 국제적 승인획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부장은 이날 송년기자회견에서 『지난 46년간 우리는 단 하루도 외교노력추구를 중단한 적이 없다』면서 『장래에도 그같은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대만을 일개 성으로 간주,대만은 국제적 승인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면 무력으로 점령하겠다고 으름짱을 놓고있다. 전부장은 외교부로서는 내년에 유엔재가입과 외교관계 확대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북경의 압력 때문에 대만과 정식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30개국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날 이총통은 새로 승진한 1백여 고급장교에게 행한 연설에서 대만은 무기현대화와 훈련강화를 통해 국방력을 증강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고 『대만해협의 불안정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는 2세대 무기교체를 촉진함으로써만 2천1백만 대만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미국민/한국전재발때 단독개입반대/국제안보연·정책성향연「태도조사」

    ◎21%는 긍정적… 다국적군 참여엔 68% 찬성 【워싱턴 연합】 미국민들은 주요우방인 한국이 북한의 공격을받으면 군사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견해가 다수이면서도 다국적군의 형태가 아닌 미국의 단독개입은 곤란하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국이 강력한 국방력을 계속 유지하길 바라나 2개의 동시전을 치를 능력을 독자적으로 갖추는데는 큰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사실은 미 메릴랜드대 산하 국제안보연구센터(CISS)와 민간기관인 정책성향연구센터(CSPA)가 카네기재단 등의 지원으로 실시해 지난 19일 그 결과를 공개한 국방지출에 대한 미국민들의 태도조사에서 드러났다. 보고서는 지난달 18∼25일 미전역에서 성인 1천2백7명을 대상으로 전화인터뷰한 내용과 그간 나온 관련조사들을 종합해 이같은 결과(오차율 3∼4%)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조사대상자의 68%가 『북한이 남침하면 미국이 유엔깃발아래 다국적군을 구성해 이를 분쇄해야 한다』고 대답했으나 「다른 나라들이 동참을 거부해도 미국단독으로 개입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21%만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조사대상의 90%는 『냉전종식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이란,리비아 및 북한같은 위험한 나라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이 강력한 국방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다.
  • 「율곡 사업」 명칭 바꾼다/국방부 내년 1월부터

    ◎군비리 상징 인식… 「방위력 개선」으로/율곡확회·덕수이씨등의 반발도 감안 군 비리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군 전력증강사업의 명칭이 내년 1월부터 「율곡」에서 「방위력 개선」으로 바뀐다. 국방부는 21일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 등과 관련,검찰의 집중적인 수사대상이 되고 있는 율곡사업이 군 부정의 온상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판단,이같이 명칭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지난 74년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자주국방력을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8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군 전력증강사업이 율곡으로 명명된 것은 보안유지를 위해서였다.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전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10만 군사를 길러야 한다고 경고했던 율곡 이이선생의 유비무환정신을 본받자는 뜻에서 당시 합참 전략국 임동원(육사 13기·소장 예편)대령이 작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년간 차세대전투기(KFP)사업 등에 31조원이 투입된 율곡사업은 문민정부의 군 개혁작업으로 감사원감사,검찰수사를 받으면서 대규모 비리가 드러나는 「수모」를 겪는다.이어 노씨 비자금사건으로 다시 거액의 리베이트가 오가는 군 부조리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부각,「율곡비리」로 불리면서 군 안팎에서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특히 율곡사상연구원,율곡학회와 덕수이씨 종친회 등은 율곡선생의 명예는 물론 높은 학문과 업적마저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국방부에 용어변경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전력증강사업의 명칭을 바꾸기로 하고 「군사력 현대화」,「전력 현대화」,「방위력 정비」,「방위력 개선」 등 4가지 안을 놓고 합참의장과 육·해·공군참모총장 등 군 고위층의 의견을 들었다.물론 명칭변경은 어떤 법적 절차도 필요없이 군내회의에서 의결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새 명칭의 「방위력」이 일본식 표현인데다 이름을 바꾸어도 전력증강사업을 둘러싼 구조적인 부조리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빗발치는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이름만 바꾼게 아닌가 하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북한 프로복싱(외언내언)

    72년 뮌헨올림픽 사격 소구경에서 세계신기록(5백99점)을 세우며 북한에 첫 올림픽금메달을 안겨준 이호준은 이렇게 말했다.『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어 미제의 심장을 겨눈다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쏘았다』.20년 뒤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출전선수단 결단식에서 김정일은 『경기장에 나서는 선수는 돌격선에서 총을 들고선 군인과 같다』고 독려했다.북한의 스포츠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명료하게 보여준 말들이다. 북한의 「정치용어사전」은 스포츠에 대해 『신체를 다방면적으로 발전시키며 집단주의 정신과 혁명적 동지애를 배양함으로써 국방력을 강화하고 공산주의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스포츠는 생산력 증대·국방의 강화·김일성부자 우상화와 직결되어 있다.학교·사회·직장등 대중스포츠도 그렇지만 엘리트스포츠도 마찬가지. 그러나 근년들어 북한의 엘리트스포츠가 적잖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비생산적이고 퇴폐적인 자본주의 경기』라고 매도해왔던 프로복싱을 받아들였을뿐 아니라 세계무대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 92년 7월 프로권투협회를 창설한 북한은 조총련을 통해 프로선수훈련에 필요한 기자재를 반입하는 한편 「4·25선수단」「압록강선수단」등에서 본격적으로 유망선수를 발굴·양성해왔다.그리고 93년 4월 67명의 선수가 출전한 가운데 최초의 「공화국프로권투대회」를 갖기도 했다.아직 전반적인 수준은 낮은 편이지만 플라이급의 최철수,밴텀급의 이광식 등은 타이틀에 도전할만한 기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을 얻었는지 최근 WBC(세계복싱위원회)에 공식가입했으며 WBA(세계복싱협회)가입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북한이 세계프로복싱에 뛰어든 것은 외화벌이 때문으로 알려졌다.별다른 투자비용이 들지않는 데다 주먹하나로 많은 돈을 거머쥘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프로복싱으로 얼마나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궁색한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 나무 그루터기·뿌리로 종이 생산(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최근 심각한 종이난을 해소하기 위해 나무 그루터기와 뿌리를 이용해 종이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사로청기관지 노동청년 최근호에서 그루터기와 뿌리는 나무에서 약20%를 차지한다면서 나무 그루터기와 뿌리를 종이생산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나무를 절약하고 원료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일부 국가의 경우 기본펄프에 나무 그루터기와 뿌리로 만든 펄프를 10∼20% 섞어 쓰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렇게 생산한 종이의 강도 또한 종전의 기본펄프만을 쓸때에 못지 않다고 주장했다. ◎「북침 전쟁」 구실삼아 군사력 강화 【내외】 북한은 9일 한·미측의 「북침전쟁」을 구실삼아 군사력을 일층 강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대한 미군의 주둔과 새전쟁 도발책동으로 우리 인민은 항시적인 침략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그에 대처하여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를 힘으로 압살하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취할수록 미국 자체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또 『교전관계에 있는 미국으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조금도 겁나거나 놀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체 학생들 우상화물 보수 동원 【내외】 북한은 최근들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청소년들의 충성심 제고를 위해 이른바 혁명사적지와 사적물들에 대한 보수와 주변환경미화 등에 학생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북한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북한의 지방방송인 원산방송에 따르면 북한은 전체학생들을 대상으로 교내는 물론 해당지역내에 있는 김일성 김정일부자 우상화물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이른바 「정성사업」을 생활화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한국 영해법 개정추진 강력반발 【내외】 북한은 최근 한국정부가 대한해협의 영해폭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영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국제법상 허용될 수 없는 문제로서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게재한 논평에서 한국정부가 영해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선박들의 항해를 통제방해하기 위한 음흉한 책동이라고 밖에 달리 볼 수 없다』면서 그같이 주장했다. 이 신문은 특히 한국정부가 영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배경에는 『우리 공화국 선박들의 항로대 통과를 막아보려는 불순한 기도가 숨어 있다』면서 『우리는 조선해협 영해폭 확대책동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F16 국내생산 자주국방 쾌거”/어제 첫 출고식

    한국 차세대전투기 사업(KFP)으로 추진해 온 F­16 C/D전투기 국내생산 기념식이 7일 이양호 국방부장관,김홍래 공군참모총장 및 삼성항공의 이대원 부회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남 사천비행장에서 열렸다. 이장관은 치사를 통해 『최근 임진강 무장공비 침투와 부여 무장간첩 남파사건에서 보듯이 북한은 아직도 군사모험주의 노선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투철한 안보의식 재무장과 튼튼한 자주국방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념행사에 이어 국내에서 조립생산된 F­16기 5대가 부채꼴 모양의 기동비행을 선보이는 등 F­16기 시범비행이 펼쳐졌으며 공군 에어쇼팀인 「블랙 이글」의 A­37 전폭기 6대가 공중묘기비행을 연출했다.
  • 한·미 동맹관계 현안토론 경남대 국제학술회의

    우리나라를 비롯,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호주 등 6개국 학자들이 참가해 한·미 동맹관계의 관련 쟁점들을 토론하는 국제학술회의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미육군대학 전략연구소의 공동주최로 지난 5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개막돼 7일까지 열린다. 7일 「21세기의 통일한국과 미국」이란 제목의 분과회의에서 발표될 3편의 주제발표문을 요약한다. ◎군비통제 미 역할/“한·미 동맹 강화만이 군비경쟁 억지”/이춘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반도의 군비통제에 대한 한미동맹의 역할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 연구 주제였다.한미동맹의 주요 목적과 역할이 군비통제라기보다는 전쟁억지에 있었기 때문이다.한미동맹은 주로 한미동맹의 전쟁억지 기능 또는 미국이 한국의 군사화에 어떻게 기여했는가의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군비통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다.사실 1950년대 및 1960년대 한국과 북한은 스스로 군비경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나라였다.당시 한반도에 군비경쟁이 있었다면 그것은 사실상 전적으로 미국과 소련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은 1960년대 말엽 이후 미국의 안보약속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고 자주국방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북한의 경우 자주국방은 한국보다 빠른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북한의 군사력이 급격히 증강하는 동안 한국은 스스로 군사력을 늘릴 수 없는 처지였고 미국은 한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았다.한국이 스스로 국방력을 갖추기 시작한 1970년대에도 미국은 한국이 원하는 군사력을 제공하지 않았고 한국의 방위산업을 제어하였다.즉 미국은 한반도의 군비경쟁을 통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국제질서의 도래는 한미동맹의 목적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다.미국은 냉전의 주적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계를 맞이했으나 한국 및 동아시아 주변국은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다.특히 19 90년대 한국은 경제력 및 기술의 발전을 통해 스스로 군비증강을 이룩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한미동맹관계는 바로 이처럼 불안정한 상황을 안정화 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 있다.미국은 이 지역에안정화 세력으로 존재함으로써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 군비경쟁을 전개할 수 있는 국가들의 군비경쟁 의욕과 필요성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안보동맹의 지속은 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는 물론이거니와 한반도 주변국의 군비경쟁을 억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한국은 미국의 안보개입이 불투명할 경우 스스로의 힘으로 군사력을 증강할 수 있는 기본을 갖추고 있다.한국의 군사력 증강은 북한의 무력적인 반응을 촉발할지도 모른다.또한 중국과 일본은 미국이 빠져나갈 경우 생기게 될 힘의 공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중국 및 일본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간단한 방법 중 하나가 한미동맹의 유지인 것이다. ◎통일과 미의 전략/“미는 한반도 통일위해 적극 나서야”/에드워드 E.올슨 미 해군대학원 교수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미국의 정책은 불확실하지만 다른 정책을 통해 그 정책의 대강을 연역해내는 것은 가능하다.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모호하다.한국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미국의 명확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미국이 남한정부를 위해 남한에서 수행했던 여러가지 역할들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분단의 영속화에 기여하고 있다.미국은 현상유지를 우선하고 있는 듯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종식은 미국이 한반도의 통일에 유리하고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해냈으며 한국 역시 냉전유산인 분단을 종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현재의 관점은 기껏해야 복합적인 것이다.더구나 그것은 한국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최상의 방안을 제시하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양측의 의지 결여가 이러한 대안들의 실행을 가로막고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강대국이 남북 양측에 통일을 추구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떠맡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냉전의 유산인 분단을 종식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려를 낳을 수 있는 접근들은,관계국들에 의해 결정된 것은 보다 창의적인 정치일정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그것의 한 부분으로 미국은 비록 그것이 한국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하더라도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보다 혁신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역학/“평화정착은 내실있는 남북대화로”/제임스 E.굳비 미 카네기맬론대 교수 한반도 안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실있는 남북대화다.남북대화를 위한 상호간의 기대는 91년과 92년에 걸쳐 남측과 북측에 의해 합의된 사항들에서 이미 제기되었었고 94년 10월의 미국과 북한과의 기본합의사항에서도 다시 한번 언급되었었다. 미·북 기본합의의 결정들은 한반도에서의 핵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으나 이는 이 결정들의 만족할 만한 이행이 곧 재래식 무기 감축을 포함한 남북간의 안보문제에 관한 대화를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진 것이었다.물론 동북아시아의 지역적 특수성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겠지만 상호신뢰 구축의 다양한 경험들은 우리가 심각하게 고려해 볼만한 분석과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독일에서 동방정책과 함께 양독의 내부관계 개선을 위한 독일정책이 동시적으로 수행되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명확하게 정리된 한국정책이 수행될 여지가 있다. 한국정책의 결정적인 부분은 오판에 의한 전쟁 방지와 방어위주 군사력을 갖춘 상대적으로 안정된 남북관계를 위한 명확한 사찰방법과 제재조치에 의해 추진되는 재래식 군사력의 재편성일 것이다.이것이야말로 한국정부가 말하는 평화체제의 모습일 것이다.
  • 제헌국회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29)

    ◎헌법·각종 기본법률 제정… 민주주의 토대구축/일제잔재 청산 미비·농지개혁 실패 등 실정도 1950년 5월 30일 제헌국회는 두번째 정기회기를 마침으로써 2년여만에 막을 내렸다.이 날은 마침 제2대 국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한 날이었다.대한민국 출범이후 지금까지 14대의 국회가 구성됐지만 제헌국회의 의미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제헌국회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기본적인 법률의 제정,초대 대통령 선출등 대한민국 탄생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또 일제 잔재 청산등 묵은 시대를 정리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업적은 대단하다.물론 새로 도입한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사회에는 생소한 것이어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고 일제 청산이 미흡한 점 등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헌국회 2년을 수치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선거에서 의원 1백98명이 선출됐다.회기는 그해 5월 31일 개막해 2백3일동안 계속된 임시회를 비롯,임시회와 정기회를 합쳐 6차례,6백40일동안 문을 열었다.임기 7백30일 가운데 90일을 제외하곤 늘 개회 상태였으니 신생국가의 첫 의회답게 엄청난 열정을 보였던 것이다.실제로 첫 임시회는 정기국회 개회를 이틀 앞둔 48년 12월 18일 폐회,하루만 쉬고 다시 회기에 돌입할 정도였다. 이같은 열의로 제헌국회는 2백34건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또 2백26건의 청원을 접수해 65.5%인 1백48건을 처리했다.국회 자체의 건의·결의안은 모두 1백45건이나 됐으며 1백1건을 가결했다. 이같은 활동 중에서도 제헌국회가 다룬 주요 의제로는 반민족 친일파의 처벌,미군 철수대응,국가보안법 제정,농지개혁과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꼽을 수 있다.특히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응은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사활이 걸린 최대 현안이었다.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분단은 곧 전쟁을 불러오리라는 예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더욱이 북한의 군사력이 대한민국의 수준을 능가한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따라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국가안보를 위해 꼭필요했고,만약 미군이 떠난다면 그에 앞서 자체 국방력을 대폭 강화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물론 미국 정부가 쥐고 있었던 만큼 당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미 정부는 1947년 9월 말 한반도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정지작업을 했다.하지만 미 국무성과 육군성,그리고 주한 미 군정 사이에는 입장에 따른 견해차가 있었다. 육군성은 『한국에 대해 군사전략적인 이해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합동참모부(JCS)의 분석을 바탕으로 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미 군정도 군정을 지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상황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철군을 지지했다.국무성도 철군주장에는 동의했다.다만 한국이 공산화하지 않도록 철군에 앞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미정부는 1948년 4월 초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NSC 8)」이라는 문서를 채택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했다.이 문서에는 주한미군이 그해 12월 31일까지 철군을 완료하도록 규정돼 있었다.하지만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남북한간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철수는 계속 연기됐다.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미군철수를 반대하지만 일단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더 많은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 미 정부에 집요하게 요구했다.이에 미국도 군사고문단을 설치하고 국방경비대를 강화하는 등 철군이후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제헌국회 내에서도 미군 철수는 최대의 논쟁점이 되었다.1948년 10월 13일 제87차 본회의에서 의원 46명은 「외군철회 요청에 관한 긴급동의안」을 제출했다.그들은 『자주국가로서 자율권이 엄연한 이상 외군의 주둔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다음 유엔을 겨냥,『유엔은 총회에서 19 47년 11월 14일 결의한 기록을 회상해』외군철수를 조속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이에 대해 많은 의원들은 「공산당 모략」이라고 흥분했고 양쪽 의원들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국회의장이 경위를 출동시키기 까지 했다. 이어 11월 19일에는 최윤동 의원 등 99명이 『대한민국의 방위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군의남한주둔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미군주둔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다.이 결의안은 약간의 논란을 거친 뒤 표결에 들어가 재석 1백13명 가운데 찬성 88,반대 3의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외군철회 동의안」이 나온 뒤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 속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급격히 사그라든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반역자 노릇을 한 친일파를 처벌코자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제헌국회는 48년 9월 친일파를 사형까지 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곧 이어 이를 실행할 기구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반민특위」는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뽑고 중앙과 지방에 사무국을 설치했다.또 친일파를 기소·재판할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도 정하는 등 발빠르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위원회는 넉달동안 3백5명의 친일분자를 검거하는 실적을 올리지만 곧 활동이 벽에 부딪힌다.친일파를 대거 기용한 이승만 정부가 시국이 불안정한데 사회지도급 인사를 대량검거하면 사회불안을 가중한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게다가 19 49년 6월에는 친일파의 조정을 받은 사회단체가 『반민특위를 해체하라』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특위 소속 사법경찰관이 습격을 받는 등 온갖 행패가 자행됐다.국회는 그해 8월 22일 「반민특위 폐지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행정부에 굴복했고 친일파 처리는 흐지부지돼 아직도 역사의 짐으로 남아 있다.제헌국회가 친일파 처리에 좌절한 것은 당시 국회·행정부를 차지한 계층의 본질적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제헌국회는 이밖에도 국가보안법·농지개혁법·지방자치법등을 제정해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개혁 의지를 보였다.『국헌을 위배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은 48년 11월 19일 통과됐다.이 법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고 일부 문구의 수정이 있었지만 투표에서는 찬성 84,반대 3으로 가결됐다.남북이 대치하고 「여순반란사건」등 공산주의 폭동을 여러차례 겪은 그때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제정은 어쩔 수 없는선택이었을 것이다. 「농지개혁법」은 49년 6월 21일 제정됐다.헌법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소유의 한도,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는 규정에 따라 하위법으로 마련된 이 법은 유상매수­유상분배를 골자로 했다.농지개혁법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결국 대농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 전문/이 대통령,49년4월11일 미군철수 동의/1년간 강력반대… 미,계획 수차례 연기/무기이양·군사고문단 설치 조건 수락 대한민국 수립직후부터 한국과 미국 양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둘러싸고 협의를 계속했다.한국은 철군을 강력하게 반대한 반면 미국은 한국 안보를 위한 보완책을 제시하며 설득했다. 미 정부는 1948년 4월 2일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정리한 「한국에 관한 미국의 입장 (NSC 8)」을 미군철수의 지침으로 삼고 있었다.그 내용은 49년 3월 31일까지 철군을 끝낸다는 것이었다.그러나 한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미국이 계획한 철수 일자는 점차 늦어졌다. 시한은 5월 10일로 한번 수정됐다가 49년 3월 23일 채택한 「NSC 8­2」에서 그해 6월 30일로 최종 결정됐다.따라서 49년 4월 미국으로선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은 당시 양국에서 오간 문서 가운데 한국측 입장 변화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전문을 발굴했다.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이 문서는 주한미군사령부가 49년 4월 12일 미 국무성에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날 미군철수에 마침내 동의했으며 며칠안에 이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철군에 앞서 미군이 한국의 육군,해안경비대,경찰에 장비를 이양하며 정식으로 군사고문단을 설치한다는 조건에 합의했음을 밝혔다. 이대통령은 합의에 따라 4월 18일 주한미군 철수를 공표했으며,주한미군 1천5백여명은 49년 6월 27일 인천항을 통해 철수했다.
  • “미군 즉각 대응력 결함없다”/로렌스 커브(해외논단)

    ◎화력·훈련 최고수준… 예산증액 구실 안돼야 미군의 즉각대응력에 결함이 있으며,이를 끌어올리려면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군부와 공화당 의원들의 주장에 브루킹즈연구소의 로렌스 코브 선임연구원은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다음은 그가 최근 뉴욕 타임즈 메거진에 기고한 글의 요약이다. 공화당 사람들이 하는 말과 군대 나팔소리를 듣노라면 미합중국군대가 속빈강정이란 말을 들을 만큼 사기가 떨어진,그래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선거운동 이슈로까지 제공했던 지난 70년대를 연상케 한다.현시대의 획기적 사건으로 기록된 이라크전쟁에서의 군사적 승리를 경험한지 단4년만에 이처럼 군대가 부적절한 훈련과 예비부품부족,엉망인 사기등으로 허덕이게 됐다는 것이 가당한 말인가. 오늘날 미합중국은 바로 다음 순위의 경쟁국가에 비해 군사비를 6배이상 지출하며 다른 모든 나라에서 들이는 양을 합친 것 만큼의 안보비용을 쓰고 있다.베를린장벽 붕괴이후 국방력은 25%가 줄었고 신무기를 위한 예산은 50%가 감소했다.반면 즉응력을 위한 비용은 단지 10%만이 줄어들었다.지난해의 경우에는 전체적인 국방비는 3%가 줄어든데 비해 즉응력 예산은 50억달러가 늘었다.국방부는 지금 레이건·부시 행정부 시절보다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으며(개인당 연 6만달러정도)카터 시절보다 무려 50%를 더 들이고 있다. 그리고 신병들의 질은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1980년 68%이던 고졸이상 학력자가 지금은 96%)병영을 이탈하려는 군인들이 거의 없어서 생겨난 잉여인력이 제대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정치인들과 장군들은 즉응력에 결함이 있다고 암울하게 보는 것일까. 즉응력이란 것이 파악하기 어렵고 아주 잘못 이해되는 개념이란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즉응력은 군사 능력이나 준비상태와 같은 말로 간주된다.그러나 즉응력이란 준비상태가 갖는 네가지 요소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니다.제대로 된 즉응력이란 화력의 구성(전함·항공기·탱크의 숫자등),현대화(무기들의 제작연도),그리고 유지성(군장비를 사용가능상태로 유지하는것)의 세측면에서 살펴봐야한다. 나는 또 부대단위의 즉응력이란 다음 네가지의 범주가 최소의 수준으로 유지된 상태에서 갖춰진다는 것을 알았다.즉 병력,장비,공급가능한 보급품,장비의 준비상태와 훈련이 그것이다.현대화무기를 갖췄더라도 훈련시간이 적다면 즉응력을 갖췄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즉응력이란 정치적으로 자주 이슈로 등장하고 끊임없이 조작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군 지도자들은 즉응력이 갖는 공포감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데 빠르다.나는 즉응력을 측정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정교한 과학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됐다. 각군은 즉응력을 서로 다르게 정의 하고 즉응력에서 서로 다른 수준을 보여주면서도 비슷한 조직이면 비슷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공군은 조종사가 적절한 임전태세를 갖추려면 한달에 20시간의 비행시간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해군과 해병대는 최소 24시간이 필요하고 국립방공대는 10시간이면 족하다고 말한다. 소련의 위협이 컸던 시절인데도 70년대의 군사비는 매우 적었다.게다가 국방부의 민간·군지도자들은 비행시간과 부품확보에는 비용을 들이면서도 스텔스전투기나 크루즈미사일등 첨단무기개발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최근 즉응력을 위한 비용이 20%가 증가했고 개인당 1만달러가 쓰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참의장에 따르면 해군전함을 제외한 84년도까지의 모든 군대의 즉응력은 떨어졌다.레이건의 군비증강에 따라 즉응력은 80년대 중반부터 높아져갔다.걸프전때 미군의 임무수행은 얼마나 적절하고 잘 준비가 됐었는지 보여준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즉위」하면서 즉응력은 다시한번 도마위에 올려졌다.지난해 12월 힘이 약화된 클린턴은 2백50억달러의 추가비용을 즉응력에 충당키로 약속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즉응력 결함이란 문제는 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국방성 사람들이 냉전시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국방비를 유지하기 위해 형태만 바뀐채 정치적 문제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에 따르면 군대는 동시에 두군데에서 전투를 수행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한곳은 이라크,다른 한곳은 북한이다.국방부와 많은 공화당원은 군대가 돈도 없고 이 임무를 수행할 화력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합참 수뇌들은 간단히 군조직을 조종한다.세개의 육군 군단 가운데 두개 군단은 즉응력이 없다는 이유로 해체되고 있다.다른 군대들은 실전에 들어간 상태란 이유로 일상적인 훈련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군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군대이다.그러나 그 군대는 민간인 수뇌부들이 잘못 조종하고 있다.민간인 지도자들은 공화당원들이나 혹은 군참모들과 충돌하는 모험을 꺼린다.결과적으로 「비정치적인」 제독과 장군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위협에 대처한다며 즉응력의 결함을 귀중한 달러를 잡아채 가는데 이용하면서 우리를 빈털터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중 미사일 대만전역 사정권에/복건성에 새기지

    ◎대북선 “화전양면 책략” 비난 【홍콩 연합】 중국은 강택민 당총서기 명의로 지난달 30일 대만과의 평화통일회담 개최 등 8개항을 제의하면서 이와 동시에 공격용인 M­9,M­11 미사일 기지를 강서성에서 대만과 가장 가까운 복건성으로 이동시켜 대만 전역이 중국미사일의 사정거리내에 들어섰다고 유화겸 대만 참모총장이 24일 처음 공개했다. 유 참모총장(대장)은 또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구매한 역시 공격용인 킬로급 잠수함 1척이 지난 20일 절강성 상산항에 이미 도착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이같은 행위들은 「화전(평화와 전쟁)양면」의 책략을 사용하는 전형적 경우라고 공격하고 대만은 중국군에 대해 경계를 강화하고 국방력을 길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 “등사후 중국 현상유지 확률60%”/일 노무라연

    ◎서방­주변국이 내다 본 북경기상도/각국 시나리오 「희망사항」따라 차이/혼란·분열로 「종이호랑이」전락 바라/미·영·불/“정쟁땐 난민 밀물” 대륙안정 기대/일·대만 『등소평 사후 군부의 권력투쟁으로 인한 중국의 분열 가능성은 50%가 넘으며,기존 체제의 유지는 30%,급진적인 자유화는 20%에 불과하다』(미국 국방부) ○미,“자유화 20%” 『등이 죽더라도 권력투쟁에 의한 심각한 정국 혼란은 단지 15%의 가능성 밖에 없으며 현 체제가 지속될 가능성은 60%이다』(일본 노무라연구소) 중국의 최고 실력자 등소평(91)사후의 중국 장래를 점치는 미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시나리오이다. 등 사후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중국의 분열 가능성)은 50%와 15%라는 숫자에서 뚜렷하게 다르다.등의 사망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해 벽두부터 쏟아진 서방과 동양의 시각차가 뚜렷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중국 전문가들은 모두 자국의 희망사항이 시나리오를 통해 반영됐다고 풀이한다.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중국이 분열해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길 바라고 있다는 분석이다.이는 역사적으로 이어진 서방의 대중관이며 더욱이 공산국가의 마지막 보루인 중국의 붕괴야말로 자본주의의 확실한 승리로 귀결된다는 판단이다. 그 반면 중국과 인접한 일본과 대만,홍콩 등은 중국의 안정을 절대적으로 바란다.정국이 혼란에 빠질 경우 생길 보트피플(난민)들을 대략 1억∼2억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이 자국으로 몰려올 경우 경제는 물론,정치·사회적으로 심각한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더욱이 수백억에서 수천억에 이르는 돈을 중국에 투자한 일본으로서는 현 체제의 안정을 지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다. ○혼란 도미노 확산 대한무역진흥공사의 이인석 중국실장은 『미국이 중국의 분열을 점치는 국방부의 보고서를 언론에 흘린 것은 중국의 분열을 강력히 바란다는 증거이다.언론을 통해 계속 분열의 가능성을 유포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등사후의 정국을 이끌겠다는 화평연변의 전략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실장은 각 국가마다 점치는 시나리오는 대체로 세가지라고 전했다. ▲강택민과 이붕,주용기의 삼두 집단체제의 현상 유지▲양상곤·양백빙 형제의 후원을 받는 군부의 집권과 이로 인한 천하대란▲조자양 계열의 급진 자유주의파의 집권 등이다.단지 그 우선 순위가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국은 지난 해 8월 미국 국방부가 대외비로 작성한 「등 사후의 중국 장래」라는 보고서를 지난 달 24일 언론에 공개했다. ▲군부의 전면 등장과 이에 따른 분열 가능성이 50% ▲강택민 체제의 유지 30% ▲자본주의식의 자유화 20%를 예견했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등도 미국의 견해에 동조한다. 그 반면 일본의 노무라연구소는 최근 「등 사후의 3가지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현상 유지가 60%,시장 경제의 급진전 25%,권력투쟁의 격화로 인한 정치 혼란이 15%였다. ○대만,침공우려 대만은 좀더 복잡하게 계산한다.분단국인만큼 군부의 전면 등장은 대만 침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대만의 이등휘 총통이 연초부터 국방력 강화방침을 발표하고 군사 훈련의 빈도를 높이는 것도 이에 대한 대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제면에서도 전체 대중 투자의 30∼40%를 점할 정도로 본토에 대한 이해관계도 깊다.최근 「대만 세계 서국」에서 출간한 「등소평 사후의 중국」이란 책자에서 현 체제 유지를 60%로 내다본 것도 어쩌면 대만 정부의 희망사항을 반영한 셈이다. ○홍콩운명과 직결 중국의 투자창구로 불리는 홍콩의 운명도 등 사후의 중국 정국에 걸려있다.오는 97년7월 본토 반환을 앞두고 중국이 혼란에 빠져 홍콩인의 대부분이 외국으로 빠져나갈 경우 결국 홍콩의 경제는 파탄에 직면하기 때문이다.현지 언론이나 연구소의 80% 정도가 현 체재의 유지 가능성을 점치는 것도 당연한 셈이다. 제일경제연구소의 양범직 연구원은 『한국도 중국의 분열보다 중국의 안정이 정치나 경제의 분야에서 훨씬 유리한만큼 중국의 지도부를 자극하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중관계 우리정부 전망/경제개발 주력… 대한협력 강화 불가피/한반도 안정·비핵화정책 골격 유지/장기적으론 「정경분리」원칙도 바뀔듯 우리정부는 「등소평이후」에도 개혁과 개방이라는중국 대내외 정책의 기본 골격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정부는 특히 최근 4∼5년간 중국이 한반도와 러시아,베트남,인도,아프가니스탄등 국경을 맞댄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현상유지에 고심해 온 점에 주목한다.정부는 중국이 그런 바탕위에서 남북한 관계도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등거리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중국의 대 한반도 2대 정책인 안정과 비핵화 정책은 유지될 것이며,이는 우리나라의 이익과도 부합한다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정부는 등사후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심리적인 변화」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양측의 혁명 1세대를 대표하는 등과 김일성이 사라지면 「정부 대 정부」「당 대 당」「혁명원로 대 혁명원로」라는 양측의 3가지 채널중 하나는 없어져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우리와 중국과의 실질적인 관계는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정부는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가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개발 속도를 좀더 가속화시키는 등의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중국은 그 과정에서 한국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외무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등이 사망하더라도 올해 강택민국가주석이 방한하는 계획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장기적으로는 「정경분리」라는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 92년 8월 수교한 이후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외교 당국자간의 공식적인 만남을 근간으로 해왔다.현재도 우리와 중국간에 비공식적인 채널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최근에는 양국의 최고지도자들 사이의 관계가 두터워졌다고 한다.김영삼대통령은 지난해 중국 방문,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정상회의 등 주요한 행사가 끝난 뒤에는 강택민,이붕,교석등과 서신 교환을 통해 우의를 다져온 것으로 전해진다.이와 함께 공로명외무부장관은 지난 83년의 중국 민항기 납치사건 해결협상 과정에서의 활약으로 중국에 잘 알려진 편이며,황병태중국대사도 중국측이 『김영삼대통령의 측근이라서 한국의 경제관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현지 외교가에서의 비중이 커져간다고 외무부 당국자가 말했다.
  • 불/대선정국 열렸다/우파끼리 맞대결

    ◎발라뒤르 출마선언… 시라크와 열전예상/발라뒤르/참신성 바탕 36%지지 확보/시라크/3번째 대권도전… 경륜앞서/집권 사회당 후보도 못내 실권확실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가 지난 18일 대통령후보출마를 공식선언함에 따라 프랑스는 본격적인 대선정국에 접어들었다.그 선거전은 지난해 11월 1착으로 후보출마를 선언한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과의 맞대결이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두 사람 다 이미 파리시내의 건물을 임대해 선거본부를 차려놓고 선거준비를 해왔다.다만 발라뒤르 총리는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직책 때문에 출마선언을 늦춰왔을 뿐이다.그의 선언은 선거전이 공개적으로 펼쳐지고 그만큼 치열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뜻을 밝힌 대권주자는 우파 5명,좌파 4명 등 모두 9명.그러나 좌파는 심각한 인물난을 겪고 있고 우파의 후보는 난립해 있다. 우파에서는 시라크 시장과 발라뒤르 총리 외에 프랑스민주동맹당(UDF) 원내총무인 샤를르 미용,UDF를 탈당해 신당(MPF)을 만든 필립 드 빌리에,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 당수 등 3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좌파,특히 미테랑 대통령이 몸담은 사회당에는 아직도 후보가 없다.자크 랑 전문화장관,리오넬 조스펭 전교육장관,앙리 에마뉘엘리 1서기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으나 누가 나서더라도 시라크 시장이나 발라뒤르 총리와 견주기는커녕 당내의 집중된 지지도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자크 들로르 유럽연합(EU)집행위원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뒤 사회당 전체가 구심점을 잃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미테랑의 집권으로 시작된 사회당의 14년 정권은 이제 권력을 우파로 넘기게 됐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사회당 외에선 공산당수인 로베르 위당,환경정당의 3명 등이 고정표획득을 노리고 있다.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발라뒤르가 단연 앞선다.발라뒤르가 36%,시라크 24%,랑 전장관 23% 등의 순이다.그러나 프랑스의 선거는 사전 여론조사결과가 들어맞은 적이 한번도 없다는 전통이 58년 이후 깨진 적이 없다.때문에 여론조사는 무의미하다고 정계소식통들은 밝히고 있다. 강력한 후보인 발라뒤르와 시라크의 정치노선과 정견 등의 차이는 거의 없다.발라뒤르가 후보선언을 하면서 『정당의 후보가 아닌 국민의 후보』를 강조한 것이나 시라크가 저서 「모두를 위한 프랑스」를 최근 발간한 데서 보듯 두 사람은 국민적 후보를 내세운다. 하지만 국민에 비치는 두 사람의 이미지는 상반된다.발라뒤르는 참신하고 시라크는 경륜을 자랑한다.행정관료 출신의 발라뒤르는 이번 선언으로 정치에 정식입문한 셈이 된다.그러나 시라크는 파리시장 17년,총리의 경력에다 대권에 3번째 도전하는 백전노장이다.이런 이미지는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발라뒤르의 참신성은 역으로 프랑스대통령의 3대요소인 대중정치력,외교·국방력,위기관리능력 등에서 뒤진다는 의미도 된다.위기관리능력은 최근 에어프랑스기의 납치 때 어느 정도 과시되기는 했지만 대중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은 여전히 미지수다. 강성이미지의 샤를르 파스콰 내무장관이 발라뒤르 진영에 들어옴으로써 정치적 파워는 보강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이에 비해 시라크는 경험을 바탕으로 선거전을 자신의 페이스대로 능숙하게 이끌것으로 여겨진다.하지만 그의 대권도전경력은 국민의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한계도 동시에 안고 있다.
  • “이 핵전력강화/방관할수 없다”/애국방장관

    【카이로 AFP 연합】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핵무장과 막대한 국방력으로 중동 지역의 무력 불균형을 초래할 경우 이를 간과하지 않을 것임을 경고했다고 이집트 관영 메나 통신이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의 말을 인용,15일 보도했다. 탄타위 장관은 이날 의회 국방위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이 우리의 평화 노력에도 불구,자국의 안전보장이라는 미명 아래 국제사회가 제지하고 있는 핵전력 유지를 기도,전략적인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불균형은 정책의 오판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신중히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 새 장관 새 포부

    ◎공노명 외무/“조직 활성화… 안보·경제 실익 추구” 『갑작스럽게 대임을 맡게 돼 책임감이 앞섭니다』 주일본대사에서 외무장관으로 발탁되기는 처음인 공로명 신임 외무장관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은.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지방화,통일대비라는 국정목표를 내걸고 있다.실행부서 가운데 하나인 외무부의 장으로서 대미·대일 관계를 기축으로 인접우방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안보와 경제이익을 추구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세계화와 경제외교등과 관련,평소 생각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국경없는 경쟁이라는 말이 있다.안보도 경제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무역면에서 기술도입등을 통한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일본과의 합작을 더욱 모색,수입대체의 실력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외무부로서 외교망을 모두 동원,노력해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경제부처와도 긴밀히 협의하는 제도가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 ­외교팀의 불화가 지적되곤 했는데. ▲우리나라는대통령 중심제다.김대통령의 시정방침을 받들어 관계부처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조화로운 정책을 수행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 ­외교정책수행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시정할게 있다면. ▲시간을 두고 고칠 것은 고치고 장점은 최대한 살려나가겠다.외무부가 맡은 직분을 다하는 가운데 외교정책을 성실히 수행하는 근무자세가 되도록 하겠다.또 외무부의 조직활성화에도 힘쓸 것이다.이는 40년 가까이 외무부에서 일해온 나의 중심 철학이다. ­북한 핵문제는 어떤 각도에서 접근할 것인가. ▲북한 핵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북·미 합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핵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충실한 합의이행을 위해 국제공조체제를 유지·강화하면서 문제해결을 모색하겠다. ◎이양호 국방/“군기강 확립 통해 전투력 높일터” 이양호 신임국방장관은 24일 상오 11시쯤 국방부 안 육군회관에서 32대 국방장관 취임식을 갖고 『싸워 이길 수 있는 강군 육성도,국민의진정한 사랑을 받는 일도,또한 사기를 높이는 일도 우리 스스로의 몫이며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업』이라고 지적했다. 이장관은 이에 앞서 정부의 개각발표가 있은 23일 하오5시쯤 국방부 동측광장에서 전역식을 가진뒤 곧바로 청사1층 기자실을 방문,간단하게 취임소감등을 밝혔다. ­취임소감은. ▲앞으로 군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우리 국방부의 업무는 국방력을 강력하게 유지,적의 도발을 억제하는 것이다.지난 2년간 군은 많은 변화 속에서 발전해 왔으며 내년부터는 보다 안정된 상황속에서 군기강을 확립하고 전투력을 향상시켜 나갈 것이다.특히 미국과 긴밀히 연락,한미연합체제를 공고히 유지할 것이다. ­군통수권자로부터 장관 임명과 관련해 무슨 언급이 있었나. ▲군통수권자는 군이 안정된 가운데 사기를 진작하고 군기를 확립해 전투력을 확립하는데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이에 따라 군본연의 모습을 갖추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앞으로 군은 정부의 세계화정책방향에 맞춰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우리 군은 6·25전쟁 이후 미국의 편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현재 진행하고 있는 21세기위원회의 연구에 따라 군편제와 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춰 개선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3군사령관이 함께 자리를 옮기게 돼 후속인사가 불가피해졌는데. ▲빈자리를 채우는 피치 못할 인사를 제외하고는 내년 4월 정기인사때 인사를 하겠다. ­공군출신으로 국방업무의 장악력이 약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중장진급 이후 줄곧 국방부와 합참에서 근무해 많은 일을 배웠다.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소신껏 일하면 후유증이 없다는게 소신이다. ◎김윤환 정부1/“야와의 접촉은 「제도권」 위주여야” 역시 하주(김윤환정무1장관의 아호)였다.24일 아침 김장관이 6척장신의 몸을 휘청거리며 정부종합청사에 나타나자 모두들 『정치 분위기가 난다』고 했다.한사람이 주변 분위기를 이렇듯 달리 바꾸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공직사회도,여야관계도 모두 얼어붙은 상황에서 그의 역할이 한층 기대되고 있다. 종합청사 10층 중앙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그는 시종 여유만만했다. ­정무장관을 다시 맡은 소감은. ▲3수한 셈인데 곧 기네스북에 오를지도 모르겠다.(웃음) ­왜 기용됐다고 보는지. ▲바깥에 있으면 대통령께서 여러 정치상황에 대해 지시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어려움이 많으니까 안에 있으라는 뜻이 아니겠는가.당초 당쪽이 아니었나 싶었고 입각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총리물망도 있었는데. ▲나는 별로 생각도 않았는데 언론에서 쓴거지. ­2월 전당대회 때 당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대통령의 의중이니 모르겠다.정무장관으로 왔으면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당대표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 ▲내가 김종필대표를 몰아내고 민자당 대표를 희망하는 것처럼 일부에서 쓰는데 절대 그게 아니다.집권여당에서 부총재의 경선과 집단지도체제는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전제 아래 경선을 하려면 대표를 하는게 숫제 낫다는 얘기를 했는데 마치 대표경선을 주장한 것처럼 보도됐다.다시 말하지만 김대표를 부도덕하게 몰아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생각이다.김대표가 언제까지 당대표를 해야 하느냐 하는 의견을 가진 이도 있지만 그것은 대통령과 김대표가 직접 얘기할 일이고 다른 사람이 끼어들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야당의 이기택대표보다는 동교동계를 주로 상대하라는 포석 같은데. ▲아니다.야당과 접촉을 한다면 역시 제도적으로 가야 한다. 김장관은 이번 개각에서 대구·경북출신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는 말에 대해 『배려보다는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을 기용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그리고는 『나는 큰 꿈이 없다.겸허해야지….픽서(Fixer·정치기반을 공고히 해주는 사람을 지칭한 듯)가 더 중요하지』라고 말했다.그러나 「작은 꿈」이 무어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답변을 보류했다.
  • “정적을 천거하는 까닭은…”/이재근(서울광장)

    올해 마지막 정치마당인 정기국회의 소용돌이­태풍이 일과했다.곧 이어 임시국회라니 아직 좀더 두고 볼 일이다.전과 다름없는 일그러진 의정모습에 구태정치 운운할 계제도 못되지만 어떻든 한바탕 정치바람이 지나가고 이제 인사의 회오리가 닥쳐올 참이다.내각개편과 그 후속인사등 모두가 지켜보는 태풍 직전의 고요함이다. 인사는 만사라고들 했다.정말 인사는 만사인가.『미국의 국방장관은 왜 전통적으로 문관출신이 맡는가』.오래전 미국의 한 안보관계 전문지에서 읽은 글이다.국방안보와 관련한 특수교육이나 훈련을 받고 온몸으로 「국방·안보」를 해온 무관이 적재일듯한 자리에 왜 항용 문관이 기용되는가 하는 문제제기와 의견을 담은 작은 논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필자의 논지는 이러했다.『만약 기갑사단 지휘관 출신이 국방장관이 된다면 전력편제에서 탱크의 기능을 너무 강조할 것이다.또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라면 항공전력 증강에 편중될 우려가 있다』.대체로 상식선의 해석이다.개별적인 각 분야의 기능과 요구를 편견없이 수용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로서의 국방력을 증진하는 데에는 특수분야 전문가보다는 아무래도 사고의 폭과 시야가 넓고 행동이 유연한 문관쪽이 적격일 것이라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양식은 대개 자기체험의 한계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이념이란 것이 결국 「체험의 총집결」이라고 말한 사람은 토마스 만이다. 체험의 축적이 전문성이라면 공무처리에 있어 전문성은 물론 중요하다.그러나 장관을 비롯한 고위 정책 당로자들은 당해 부처의 이해관계에 앞서 전체로서의 국정운영 과정을 놓고 타 관계부처와의 이해와 협조를 생각해야 한다.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는 탁월한 그들이 갖고 있을 지도 모를 편협된 시각이나 경직성이 때로 전체적인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정에 장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특히 장관으로서는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남보다 다양한 안목과 건전한 상식,균형된 판단을 갖춘 상식인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인사란 한마디로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다.위로는 책임각료로부터 아래의 모든 공직자,큰 기업의 책임자와 임직원 용원에 이르기까지 인사문제는 조직사회의 가장 중요한 인간사라 할 수 있다.인사에는 경우에 따라 위기를 예상하고 이에 대처하는 인사가 있을 것이고 위기관리가 끝난뒤 평상체제로의 복귀를 뜻하는 인사도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이번 인사는 그 두 측면의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그리고 그 어느 경우든 능력·경륜·도덕성­이 세가지의 요체가 고려되지 않는 인사는 생각할 수 없다.또한 새 진용은 색깔이 선명해야 한다.내각의 구성원이나 고위 보좌진의 의식의 빛깔,행위의 성격이 비슷해야 국정운영의 목표와 방향이 뚜렷해진다. 말이 그렇지 적재적소의 인사란 그리 쉽지 않다.『사람은 있으되 인재는 없다』고도 했다.그 인사의 어려움을 다음의 고사는 일깨워준다.진의 도공이 자신을 오래 보필해온 노재상이 물러나려 할 즈음 그에게 후임자를 천거해 보라고 일렀다.노재상은 뜻밖에도 자신의 오랜 정적을 추천하는게 아닌가.도공이 의아해서 『그 사람은 당신의 적수가 아닌가』고 물었다.노재상은 『상감께서는 이 나라의 재상감을 추천하라고 하셨지 제 적수가 누구냐고 묻지는 않으셨습니다』고 대답했다. 신임재상이 병으로 일찍 물러나자 도공은 은퇴해 고향에 머물고 있는 노재상에게 다시 재목감을 골라 보라고 했다.노재상이 이번에 천거한 인물은 뜻밖에도 그 자신의 장남이었다.연유를 묻는 도공에게 노재상이 말했다.『상감께서는 적임자를 물으셨지 제 자식놈이 누구냐고 묻지는 않으셨습니다』 연말에 이르도록 사회가 참으로 번거롭고 어수선하다.공동체 윤리 규범이 크게 훼손되는 와중에 대형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소득은 날로 올라가는데 국민들 삶의 질의 향상은 왜 이토록 더디고 불안한가는 이 시대의 의문이자 해결과제이다.정기국회 뒷감당에다 정당들의 당권경쟁,내년 여름의 지방선거등 예정된 일정으로 정치판은 벌써부터 시끌벅적하다. 이런때 예의 「인사가 만사」임을 믿어 그 결과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결단의 시기,비상의 인사이니 만큼 적재적소의 묘도 갖추리라 짐작된다.시행착오가 되풀이되서는 안된다.하늘아래 사람과 사람들의 일과 관련해서,『일을 이룸은 하늘의 뜻(성사재천)이나 일을 꾀함은 사람에 달렸다 (모사재인)』고 한 옛사람의 가르침을 「새 사람들」에게 적고자 한다.
  • “재침공 꿈꾸지 말라” 발빠른 대응/미 항모 급파 등 으름장

    ◎“외교무능 오명 벗을 마지막기회” 판단/클린턴,선거의식해 과잉행동 가능성 미국은 이라크측의 쿠웨이트국경으로의 병력이동에 대해 걸프전 당시와 같은 쿠웨이트 침공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일단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미측은 만에 하나 사담 후세인이 중간선거를 앞둔 클린턴 미행정부를 시험하려 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신속한 대응조치를 취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7일하오 『후세인이 미국의 결의를 의심한다면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며 제2의 걸프전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 항공모함의 신속한 이동 등을 지시했다. 미국이 취한 조치는 ▲페르시아만에 항공모함 1척 파견 ▲유사시 즉각적인 동원을 위한 육군 일부에 대한 경계령 발령 ▲이라크에 대한 정찰활동 강화 ▲남부 걸프지역에 있는 2천명의 미해병대를 쿠웨이트국경쪽으로 이동토록 명령 ▲인도양에 배치된 중무장 전투함들의 걸프지역으로의 신속이동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이라크군병력의 이동이 침공규모는 아니라 할지라도 전혀 통상적인 수준과는 다른 사단급 병력의 국경이동인 점을 들어 유엔안보리의 소집도 요구해놓고 있다. 이날 하오 미국방부의 고위관리는 백악관에서 가진 배경설명을 통해 『미국은 절대 과잉반응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향후 24∼48시간동안의 이라크군 병력의 이동상태를 면밀히 파악해보면 이번 병력이동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사분석가들은 이번 병력이동은 이라크의 후세인대통령이 다음주부터 유엔안보리에서의 대이라크 경제봉쇄조치 완화문제의 논의를 앞두고 일종의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산 원유의 해외판매를 봉쇄한 유엔제재조치를 완화시키려면 유엔결의안을 준수해야 하며 대결적인 전략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한달 앞두고 있는 클린턴행정부는 민주당의 대참패가 우려되는 가운데 후세인으로부터도 「농락」을 당하는 것은 결코 참을 수가 없는 입장이다.클린턴대통령의 취임이후 보스니아사태,소말리아사태,북한의 핵개발문제,최근의 아이티사태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입으로만 강하고 행동은 없는』 나약한 「초강대국」으로 인식되어왔다.그리고 항상 「말로만 번드레한」 클린턴의 외교정책에 미국민들도 식상해하고 있어 클린턴행정부는 본의아니게 대이라크 과잉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서방·걸프국 바짝 긴장/쿠웨이트 주유소 석유주입 차량쇄도/이스라엘선 “안보리 앞둔 이라크의 쇼” 미국·영국 등 서방국가들과 이스라엘 등 중동국가들은 8일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접경지대를 향한 대규모 군사이동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그러나 이라크·쿠웨이트 국경지대는 이라크군의 대규모 이동으로 고조된 긴장에도 불구하고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은 7일 군함 1척을 쿠웨이트 해역으로 급파했으며 프랑스와 이스라엘 등은 이라크군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이스라엘 군사소식통은 그러나 이라크의 대규모 병력이동은 오는 10일 이라크 제재 문제를 논의할 유엔안보리회의를 앞두고 벌이는 쇼에 불과하다고 분석. ○…쿠웨이트 접경지대로 이동한 이라크군은 쿠르드족 반군과 대치중이던 최정예부대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라크 정부대변인은 국영통신을 통해 병력이동을 확인했으나 유엔총회에 참석한 이라크의 타리크 아지즈 부총리는 이라크군의 병력이동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채 4년간에 걸친 미국의 제재로 이라크인은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다며 경제제재 해제를 요청. ○…전군에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한 쿠웨이트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무기구입 의사를 미국에 전달.쿠웨이트가 구입을 희망한 품목들은 AH­64 아파치 공격용 헬기 16대를 비롯해 6억9천만달러 상당의 미사일과 로켓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쿠웨이트 국민들은 이라크군의 병력이동에 공포심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많은 사람들은 초조와 우려감을 나타냈다.주민들은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경고연설 장면을 보기위해 텔레비전 주변으로 몰려들었으며 일부 주유소는 연료를 채우려는 자동차로 붐볐다. 한편 쿠웨이트정부는 접경지역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역내 협력체인 걸프협력회의(GCC)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사바 알아흐마드 쿠웨이트총리서리는 아무르 무사 이집트외무장관과 GCC 6개 회원국들및 시리아 이집트 등으로 구성돼 있는 「다마스커스선언」 참여국들의 긴급회의 소집가능성도 협의. ○…미국과 주요 동맹국들은 지난 91년2월 걸프전이 끝난 후에도 지금까지 이라크 주변에 막강한 병력을 유지하며 각종 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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