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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심원의 판정승?

    대법원이 판사와 배심원의 유·무죄 판단이 엇갈린 국민참여재판 사건에서 무죄를 평결한 배심원의 의견과 같이하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려 관심을 끌고 있다. 일반 시민의 법률 상식이 때로는 전문 법관의 법률 지식보다 나을 수 있다는 방증 사례라고 법조계는 평했다. 강간상해 혐의로 기소된 이모(43)씨가 혐의를 부인하며 참여재판을 신청해 지난 1월20일 법관 3명과 배심원 9명이 참석한 재판이 인천지법에서 이틀간 열렸다. 20 08년 10월29일 인천 부평구 부개동의 한 국밥집에서 이씨 일행은 A(50·여)씨와 합석했다. A씨가 일하는 사우나로 자리를 옮겨 2차 술자리를 가졌다. 그날 새벽 1시4분쯤 A씨는 이씨가 방에 침입했다고 112로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이씨는 옷을 벗은 상태로 A씨의 방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그 옆에는 A씨의 상의와 속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A씨는 코뼈골절상으로 전치 3주 진단을 받았고, 이씨는 강간상해죄로 구속됐다. 이씨는 법정에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강간·폭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머리를 잡아 방바닥에 내리치고, 옷을 벗겨 성관계를 하려 했다고 증언했다. 배심원 8명은 피해자 A씨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무죄를, 나머지 1명은 상해죄만 유죄로 평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을 뒤집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판결은 또다시 뒤집혔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이 ▲피해자의 속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으며 ▲경찰 진술 때 코 부위의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도 정당하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씨줄날줄] 영도다리/노주석 논설위원

    나이 든 부산 사람에게 ‘부산의 상징’이 뭐냐고 물어 보면 세 손가락 안에 영도다리를 꼽는다. 대부분 어릴 적 부모로부터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는 얘기를 듣고 컸기 때문이리라. 그 시대를 산 부산 사람들에게 영도다리는 고향 같은 곳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영도다리를 모른다. 열 손가락 안에도 들지 않는다. 흘러간 명물이다. 마지막으로 다리를 들어 올린 1966년 이후 추억의 다리로 전락했다. 영도다리는 1934년 부산 남포동과 영도를 연결하는 동양 최초의 개폐교(開閉橋)였다. 개통식 날 부산과 경남 일대에서 6만명의 구름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당시 부산 인구가 16만명일 때니 얼마나 북새통이었을지 짐작된다. 당시 신문 보도를 보면 사람들의 관심은 다리가 정말 들릴지에 온통 쏠렸다. 심지어 영도다리가 올라가는 걸 한번 보고 죽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후 6·25전쟁으로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란 온 실향민들에겐 잊지 못할 망향의 장소이자 단골 약속장소가 됐다. 박시춘이 작곡하고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 2절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아치다/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라는 가사 그대로였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속출하면서 ‘잠깐만’이라는 팻말이 나붙었고 경찰관이 배치됐다. ‘자살명소’라는 이름표가 따라다녔다. 요즘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돼지국밥과 밀면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피란 시대의 산물이다. 돼지국밥은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여러 사람이 나눠 먹던 데서 비롯됐다. 밀면은 메밀을 구하지 못한 이북 출신들이 밀가루로 대신 만든 냉면이었다. 아나고, 복국, 부산찜, 동래파전 같은 부산식 음식 족보에 없던 돼지국밥과 밀면이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각광받는 시대가 온 셈이다. 영도다리가 75년 만에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다. 어제 통행이 중지됐다. 부산시는 10월쯤 다리를 해체하고 2012년 6월까지 복원할 예정이다. 철거냐 보존이냐를 놓고 말들이 많았지만, 문화재로 지정돼 살아남았다. 영도다리가 ‘끄덕끄덕’ 들리는 광경을 다시 보고 싶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문경새재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문경새재

    바야흐로 걷기의 전성기다. 걷기여행, 등산, 트레킹 등 걷기를 기본으로 하는 여가 생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국적으로 걷기 좋은 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 옛길의 대표격인 문경새재는 그야말로 길의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가지듯, 문경새재 역시 오래된 길이 내뿜는 그윽한 향기로 가득하다. 문경새재가 특별한 것은 다른 옛길과 달리 길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험준한 백두대간 사이로 뻗은 흙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려 활기가 넘친다. 우리나라처럼 도로 닦는 데 일가견이 있는 나라에서 문경새재가 흙길로 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70년대 국토개발을 진두지휘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이 유독 이 고갯길만큼은 포장하지 말라고 지시해 천만다행으로 남은 흙길이다. 새재는 문경 쪽 주흘관(제1관문)에서 고갯마루의 조령관(제3관문)까지 6.5㎞가 비포장이고 반대편 충주 쪽은 포장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문경 쪽에서 시작해 조령관까지 갔다가 되돌아 내려오곤 한다. 하지만 새재의 전모를 살펴보려면 고갯마루를 넘어 고사리 수옥폭포에서 마무리하는 코스가 정석이다. 문경새재 주차장을 지나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란 간판을 만나면서 마음이 설렌다. 그 길을 따르면 왠지 하늘까지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다. 옛길박물관을 지나면 돌로 쌓은 성문인 주흘관의 웅장한 모습이 펼쳐진다. 주흘관은 그 뒤로 암봉이 두드러진 조령산(1025m), 문경의 진산인 주흘산(1075m)과 어울려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물씬 풍긴다. 성문 앞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정겹다. 나는 새도 쉬어 넘는 고개라는 뜻인 새재는 조선 태종 때에 새로 뚫린 길이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려면 새재 외에도 죽령과 추풍령, 계립령(하늘재) 등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선호했다. 죽령은 너무 멀었고, 추풍령은 과거시험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의 선비들조차 멀고 먼 이 길을 휘휘 돌아갔다고 하니, 새재는 곧 소망의 길이란 믿음이 조선 팔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주흘관을 지나면 왼쪽으로 드라마 ‘태조 왕건’을 촬영했던 KBS 세트장이 나온다. 마치 민속촌처럼 기와와 초가가 적당히 섞여 있는데, 입장료 2000원을 받는다. 다시 호젓한 길을 따르면 조령원터와 교구정이 차례로 나타난다. 조령원은 옛 관리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고 교구정은 경상도 감찰사 이취임식이 열리던 곳인데, 그 앞의 구부러진 소나무가 일품이다. 교구정 앞에서는 잠시 계곡 구경을 하는 것이 좋다. 숨어 있는 용추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계곡을 좀 오르면 용추폭포에 닿는다. 팔왕폭포라고도 부르는 이 폭포는 암반이 발달해 계곡미가 수려하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다시 길을 나서 500m쯤 가면 훈민정음으로 쓴 ‘산불됴심’ 표석이 눈에 들어오고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조곡폭포가 나타난다. 이곳은 문경시에서 만든 인공폭포지만 여름철에는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폭포를 지나면 두번째 관문인 조곡관을 만나게 된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미끈한 금강소나무들이 반기고 드문드문 물박달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큰애기 손질에 놀아난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은 새재아리랑 비석 앞. 아리랑 가락에 발걸음을 맞추면 어깨춤이 절로 난다. 동화원휴게소를 지나 ‘장원급제길’이라는 소로로 접어들면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급제를 기원하던 ‘책바위’가 나온다. 돌을 책처럼 쌓아놓은 책바위는 선비들이 하나 둘 찾아와 장원급제의 소원을 빌었고, 오늘날에도 해마다 입시철이면 학부모들이 찾아와 합격을 기원한다고 한다. 책바위를 지나면 조령관이 서 있는 새재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이곳은 제법 널찍한 공터로 조령산과 주흘산 일대가 시원하게 보인다. 관문을 지나면 이제 충주 땅인데, 제일 먼저 포장도로가 나타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팍팍한 도로를 좀 내려가면 조령산자연휴양림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휴양림을 지나면 수려한 신선봉(967m)이 올려다보이는 고사리 마을에 이른다. 주차장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20분쯤 내려가면 수옥폭포다. 계곡에 발을 담그며 약 20m 절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새재 걷기를 마무리한다. 주흘관∼고갯마루∼수옥폭포까지는 약 10㎞, 4시간쯤 걸린다. ●가는 길과 맛집 동서울터미널에서 문경 가는 버스는 오전 6시30분∼오후 8시 대략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2시간쯤 걸린다. 문경새재 관문 앞의 ‘소문난집’(054-572-2255)은 청포묵조밥과 도토리묵조밥을 잘하고, 고사리에서 가까운 수안보의 투가리식당(043-846-0575)은 올갱이국밥이 소문난 집이다. 문경새재 관리사무소 (054)571-0809. <여행전문작가>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반두비’ 인종차별 꼬집는 용기있는 영화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반두비’ 인종차별 꼬집는 용기있는 영화

    한국의 여름.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카림은 떼인 임금을 받으려고 서울의 길을 걷고 또 걷지만, 고의로 부도를 내고 잠적한 사장은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에게 한국은 비정한 곳이다. 한편 고등학생 민서는 심심한 방학을 맞는다. 친구들은 죄다 학원에 가버리고, 노래방을 운영하는 엄마는 애인에게 한눈을 팔고 있으며, 소녀는 어쩌다 아르바이트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만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마을버스를 타다 만난다. 까만 얼굴의 외국인을 낯설게 느끼던 소녀는 그에게서 점차 황금의 마음을 발견한다. 감독 신동일은 ‘방문자’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이어 ‘반두비’를 완성함으로써 ‘관계 3부작’ 시리즈를 완결하였다. ‘방문’의 메타포를 통해 한국사회의 인간관계를 치밀하게 바라보았던 그는 ‘반두비’에 이르러 주제를 ‘노마디즘’으로 확장한다. 우리는 지식의 횡단과 월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유목하는 인간에 대해선 왜곡된 이중 잣대를 지닌 채 산다. 번듯하게 차려 입은 백인 파트너로부터는 지식을 전파받으려고 하면서, 소박한 차림의 이주노동자는 사회의 밑바닥을 채우는 존재로 대하는 거다. 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고약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일부 한국인은 ‘반두비’의 제작을 반대한다며 제작진과 출연배우에게 협박을 가했다고 한다. 인종 간에 근본적인 서열이 존재한다고 믿는 저질 인종주의자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할 따름이다. 인간은 고립된 상태로 살 수 없으며, 인간과 민족과 국가 사이의 상호작용이 없었다면 인류는 발전하지 못했다. 인종주의자는 오로지 한 인종에 의해 인류 문화가 향상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반두비’는 갖가지 이유로 다양한 인간이 지구촌을 떠도는 현실을 향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동일은 당돌한 소녀 민서가 한 인간으로서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희망을 건다. 민서는 자신의 두 다리가 모험을 원하는 걸 아는 소녀이며, 운명처럼 다가온 여름방학은 소녀에게 모험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마무리될 즈음, 소녀는 한층 성숙한 인간으로 자란다. 신동일은 소녀의 변화를 단 두 장면으로 압축해서 보여 준다. 진실은, 순대국밥을 기피하는 무슬림을 이해하지 못하던 소녀와 그들의 음식을 손으로 척척 먹는 소녀의 모습 사이에 놓여 있다. 존중과 인간애로부터 비롯된 숭고한 실천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좋은 곳으로 만든다. 대다수의 대중영화가 현실 정치에서 눈을 돌리고 있는 지금, ‘반두비’는 진정으로 용감한 영화이기도 하다. 비판받아 마땅한 체제와 미디어를 두고 서슬 퍼런 칼을 들이대는 ‘반두비’는 영화의 또 다른 역할을 숙고하도록 한다. 혹자는 ‘반두비’가 딱딱하고 교조적이라고 평하지만, 그건 신동일의 화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게다가 그가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영화에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미심쩍은 딱지가 붙는 현실이고 보면, 그가 직설적이고 확고한 자세를 취한 게 불편해할 일은 아니지 싶다. <영화평론가>
  • 休~ 올여름 영월로 떠나요

    休~ 올여름 영월로 떠나요

    아~.” 드디어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신음인 듯, 탄성인 듯 짧은 소리들만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구름이 엷게 깔렸지만 밤하늘에는 북두칠성, 북극성, 토성 등 별자국이 또렷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시의 형광등, 백열등 불빛에만 의존해 왔던 타락한 시력이었지만 무더기로 빛나고 있는 별을 찾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별이 주황색, 초록색, 흰색 등으로 각기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는, 책에서만 보던 사실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북두칠성 7개 별 중 손잡이 쪽 끝에서 두 번째 별이 사실은 2개임도 선명히 볼 수 있다. 북두칠성은 ‘북두팔성’이었다. 파천황(破天荒)의 순간이다. 강원도 영월군 봉래산 799.8m 꼭대기에 있는 별마로 천문대의 개폐식 지붕이 열리면서 나타난 풍경들이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매일 저녁이면 세 차례(저녁 8시, 9시, 10시)씩 많은 사람들이 맨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천체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수와 영원으로의 별잔치가 펼쳐진다. 30분간 시뮬레이션 별자리 강의를 듣고, 나머지 30분은 진짜 별을 볼 수 있다. 여름밤에 보는 별은 더욱 선명하다. 별과 자연은 영월 여행의 키워드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가다가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30분 남짓 향하다가 영월 쪽으로 빠져나왔다. 신림 나들목(88번 국도)도 좋고, 제천 나들목(38번 국도)도 좋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멀쩡히 잘 나오던 라디오 음악 FM이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 보니 들쑥날쑥한 음질의 방송만 나오질 않나, 엉뚱한 중국방송이 섞이질 않나, 깨끗한 방송은 잘 잡히지 않는다. 강원도로 깊숙이 들어왔다는 신호다. 실제로 온통 산이다. 영월 길 위를 차로 달려 보라. 산모퉁이를 돌아들면 또 다른 산모퉁이가 버티고 있다. 사람 사는 집 서너 곳이 모여 있나 싶으면 또다시 산이 떡하니 나타난다. 산자락 아래 평평한 곳이면 겨우 손바닥만 한 땅일지라도 한 구석에 집 짓고 밭 일궈온 이곳 옛 사람들의 신산하고 강퍅한 삶이 떠올라 가슴이 막막해진다. 하지만 대대로 사람을 힘들게 했던 산간오지의 때묻지 않은 자연은 이제 하나의 축복이 됐다. 청정무구 영월에 와서 래프팅만 하고 간다면 진짜배기 영월은 보지 못하고 가는 셈이다. ●영월 사람들이 감춰놓고 즐기는 곳 주천강 한 자락에 자리잡은 요선암(邀僊巖)과 요선정은 그 대표적인 예다. 주천강은 서강의 최상류이다. 서강은 다시 동강과 만나 남한강으로 흐르게 된다. 동강이 래프팅 등으로 때만 되면 몸살을 앓는 데 반해 서강의 윗물인 주천강의 요선암은 영월 10경에 꼽히면서도 한 구석에 꼭꼭 숨겨진 탓인지 사람의 손때가 거의 묻지 않았다. 요선암 주변의 바위를 보면 더러는 엉덩이가 꼭 낄 정도로 조그맣게, 더러는 넉넉히 몸 담그면 좋을 법하게 널찍한 모양으로 곳곳에 널려 있다. 완만하게 굽이쳐 흐르는 물결과 두툼한 바위가 힘겨루기를 한 끝에 만들어진 복스러운 바위들은 주천강 요선암 주변에 떡두꺼비처럼 넙죽 엎드려 있다. 요선암은 조선시대의 문인 양사언(1517~1584)이 이곳 경치에 반해 ‘신선이 놀고 간 자리’라는 뜻의 요선(邀僊)이란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주천강과 요선암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는 바로 요선정이다. 주천면에서 8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수주면으로 들어선 뒤 법흥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보일 듯 말 듯하게 ‘요선정, 미륵암’ 표지판이 있다. 미륵암까지 차를 타고 가서 뒤쪽 숲길로 100m 남짓 올라가면 요선정이다. 뒤편으로 난 숲길을 5분 정도 오르면 요선정이 나온다. 정자 앞에는 소박한 형상으로 마애여래좌상과 석탑이 있다. 요선정은 조선시대 숙종과 영조, 정조가 어제시(御製詩)를 남겨 놓았다. 정말 재미있는 것이 마애불이다. 턱없이 길쭉한 상체는 황금비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나름 근엄한 표정의 불상이지만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눈을 감은 듯 뜬 듯 앉아 있는 모습은 뭔가에 심술이 나서 뾰로통한 것 같다. 고려시대 지방의 한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시 것으로서는 유례가 별로 없는 마애불이라고 한다. 조형미에 대한 감탄보다는 장난을 걸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의 친근함과 소박함이 매력이다. 불상 뒤편으로 돌아서면 굽이굽이 돌아가는 주천강을 발 아래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이 있다. 여름 한철에도 잘 붐비지 않아 이름 그대로 ‘신선 놀음’에 맞춤이다. ●그래! 한우 먹자 영월을 찾는 이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 바로 다하누촌이다. 한우직거래의 새 지평을 연 곳이다. 2007년 8월 문을 연 뒤 늘 한산하기만 하던 주천면 섶다리마을을 사시사철 아이들 소리, 사람의 시끌벅적함으로 채운 일등공신이다. 여름, 겨울 성수기때면 마치 영월 필수 방문코스인 듯 하루에도 수천명이 찾아와서 한우를 먹고 가고, 싸들고 간다. 다하누촌 영업방식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부산 자갈치시장이나 서울 노량진시장에서 횟감 사들고 식당 찾아가 밥값, 차림비용 내고 회를 먹는 식이다. 100% 보장하는 한우 생고기가 300g에 8000원부터 시작하니 저렴함은 말할 것도 없다. 다하누 간판을 달고 있는 식당 30여곳 중 하나로 찾아가면 된다. 차림 비용은 한 사람당 2500~3000원이다. 특히 매력적인 점은 식당에 가면 상추, 깻잎, 고추 등 일반적인 쌈 채소는 물론이고 곤드레, 산뽕잎, 곰취 등 깊은 산속에서 뜯은 웰빙 야채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하누촌의 또 다른 미덕은 바로 매달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이벤트 프로그램’이다. 이벤트 내용에 따라 달라지지만 100원에 한우 한 근을 사갈 수 있는 등 턱없이 싼 값으로 한우를 팔거나 경품으로 내놓는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지난 5월 ‘제2 다하누촌’으로 문을 연 김포에서도 섶다리마을과 마찬가지의 이벤트 행사를 벌인다. 영월까지 가기 멀다면 강화도 가는 길에 있는 김포를 들러도 마찬가지다. 관련 문의 1577-5330. 아, 다하누촌에는 또 다른 명물이 있다. 멸종 위기에 놓이며 천연기념물 지정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제비가 다하누촌 본점 처마 밑을 비롯해 섶다리마을 곳곳에 너무도 흔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새끼 제비들의 지지배배 노랫소리가 한우 사러 들어가는 배고픈 이들의 발걸음을 잡아세우곤 한다. 역시 청정무구 영월이다. 다하누촌이 아니라면 딱히 먹을 거리가 없다. 대신 영월읍 복판에 있는 서부아침시장통에 가면 올챙이국수와 메밀전병, 보리밥, 순대국밥 등 소박한 먹거리가 지천이다. 또한 흔히 먹는 곤드레나물밥과 달리 곤드레를 끓여서 먹는 곤드레국밥은 영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로 과음 뒤 해장에 딱이다. 영월읍 리버가든(033-375-8804) 등에서 내놓고 있다. 날짜를 잘 따져본 뒤 덕포 5일장(4, 9일)과 주천 5일장(1, 6일)에 맞춰 가게 되면 장터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 사진 영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나는 전통 가죽신. 그런데 바닥에 수십개의 징이 박혀 있다. 마치 요즘 신는 축구화처럼 보이는데, 과연 어떤 용도였을까? 사계절의 풍취가 고스란히 담긴 10점의 산수화와 한글 화제가 적힌 작은 그림 한 점.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작품이 한자리에서 소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체험, 삶의 현장(KBS1 오전 9시)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를 정복한 사나이, 산악인 엄홍길이 수직거리 지하 500m 탄광 일꾼에 도전한다. 탤런트 김애경은 60여개 점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제천 재래시장에서 순대국밥 만들기부터 흥겨운 엿장수로의 변신까지 구슬땀 무대를 함께한다. 또 탤런트 이숙의 신바람 매실수확 무대도 공개한다. ●늘 푸른 인생(MBC 오전 6시10분) 화려한 양귀비꽃이 아름답게 피어난 곳,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3리 광명마을 어르신들을 만나본다. 태권도, 합기도, 검도, 유도 등 기존 무술의 장점을 취합해서 만든 종합 무술인 용무도. 용무도를 통해 노년을 활기차게 보내며 우정과 건강을 지키고 있는 삼총사 어르신들을 ‘찾아라, 시니어스타’에서 만나본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45분) 19세기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신고전주의 역사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 그의 작품 중 걸작으로 손꼽히는 한 점의 그림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다. 그림 한 폭에 담겨 있는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 과연 그 비밀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선데이 뉴스 플러스(SBS 오전 7시25분) 5만원권 화폐가 23일부터 유통되기 시작한다. 지난 3월부터 5만원권 화폐 인쇄에 들어간 한국조폐공사도 철저한 보안 속에 화폐를 찍어내고 있다. 인쇄·검사 절차, 운송 작업 등 화폐본부의 5만원권 화폐 제조 현장과 5만원권이 유통되면 달라지는 일상을 살펴보고, 거대한 돈 뭉치를 매일 보는 근무자들을 인터뷰한다. ●찬란한 유산(SBS 오후 10시) 나주로 떠나기 위해 고속터미널로 향하던 평중은 지나가던 버스 안에 앉아 있는 은성을 발견하고 서울에 남아 은성을 찾기로 결심한다. 은성과 환은 2호점의 매출을 20% 올리기 위해 아침부터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무례한 손님에게도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는 성숙해진 환을 보며 은성은 감동을 받는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미국 최대의 습지 아차팔라야는 250여 년 전 루이지애나 주에 정착한 프랑스계 이주민의 후손인 케이준들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석유 채굴과 삼림 훼손, 수질 악화 등으로 이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주민들은 이곳의 보존에 필요한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국가 유산으로 지정되도록 애쓰고 있다.
  • [서울광장]대통령 콤플렉스/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대통령 콤플렉스/진경호 논설위원

    노무현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고, 이명박은 묵묵히 순대국밥을 먹었다. 16대 대통령과 17대 대통령을 만든 이 대선후보 TV광고를 보면서 우리는 알아챘어야 했다. 태생과 기질이 다른 두 정권이 잇닿으면 어떤 생체거부반응이 나타나는지. 좌파 대통령이 가르고, 우파 대통령이 혼자 내달리면 나라 꼴이 어찌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야 했다.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눈물과 순댓국은 두 사람의 콤플렉스를 응집한 결정체다.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성공신화를 일궈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비주류 콤플렉스를 떨치지 못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성공 콤플렉스에 묶여 있다. 어릴 적 봉하마을에서부터 가진 자와 싸웠고, 그런 맞짱뜨기 끝에 대통령에까지 올랐지만 노 전 대통령은 끝까지 ‘눈물’을 거두지 않았다. 재임 중에도 자신을 ‘굴러온 돌’이라 일컬으며 비주류 콤플렉스의 포박을 풀지 않았고, 그들과 우리로 편을 갈라 싸웠고, 결국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사람들까지 돌아서게 했다. ‘우리’에겐 순도 높은 연민의 눈물이었으나, ‘그들’에겐 이글대는 분노의 눈물이었다.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꾼다던 내레이터의 장담은 맞았다. 참 많이 바꿨다. ‘밥 더 줘? 더 먹어 이눔아.’라는 욕쟁이 할머니의 타박을 받으며 열심히 순댓국을 떠먹는 이명박의 모습에선 마더(mother) 콤플렉스와 성공 콤플렉스가 어른댄다. 서울대에 입학한 똑똑한 형님 밑에서 풀빵과 아이스케키를 팔게 한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순댓국 하나로 배고픔을 견뎌내게 했고, 굴지의 대기업 사장으로 이끌었다. 자신의 성공공식이 곧 나라의 성공공식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이 웬만한 주변의 잡소리는 거들떠보지 않는 ‘소신’과 합쳐져 성공 콤플렉스로 그를 무장시켰다. 누가 뭐라든 내 팔 내가 흔들고 나중에 성공하면, 500만표나 더 준 국민들이 언젠가 그 시절 어머니처럼 활짝 웃어 주지 않겠느냐는 믿음은, 그러나 지금 안타깝게도 ‘청력 저하’로 이어졌다. 청와대는 난시청 지역이 아니다. 대통령의 의자도 청와대 본관 2층에 나지막하게 놓여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민초들의 외침에 둔감한 청각장애를 겪어 왔다. 신념, 소신, 자기확신으로 일컬어지는 이런 콤플렉스들 때문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딱한 것은 이런 대통령들의 콤플렉스가 국민들의 대통령 콤플렉스로 진화하고 있다는 거다.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져 ‘놈현’은 영원히 ‘놈현’이고, ‘쥐박’이는 죽어도 ‘이짱’이 될 수 없는 나라와 국민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소통하자는 말, 그래서 공허하다. 죽은 대통령이 산 대통령을 흔들고, 서울광장이 열리느냐 닫히느냐에 민주주의의 생사를 거는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애도는 끝나고 서로에 대한 저주의 굿판이 시작됐는데, 무엇을 소통하나. 입이 큰 조조 대신 귀가 큰 유비가 천하를 통일했다는 소통 찬가는 삼국지의 얘기일 뿐이다. 숙적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앉힌 버락 오바마의 화합 찬가는 미국 얘기일 뿐이다. 강을 건너도 배를 버릴 수 없는 게 우리의 반쪽 대통령들의 현실 아닌가. 아예 대통령직을 없애고 내각제로 권력을 쪼개는 건 어떨까. 그래야 대통령을 놓고 나라가 두 쪽 나는 이 지긋지긋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대통령 직선 쟁취를 목 터져라 외친 6월10일에 떠올린 이런 생각이 서글프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7일간의 기록

    [노 前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 7일간의 기록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연일 수많은 조문객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지면서 숱한 기록들이 쏟아졌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봉하마을에 도착한 것은 23일 오후 6시30분. 이때부터 29일까지 7일간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100만여명에 이른다고 장의위원회 측은 밝혔다. 김해는 물론 경남의 다른 시·군과 서울·부산·전라·충청·경기 등에서 남녀노소, 종교 등을 가리지 않은 조문객의 행렬이 24시간 이어졌다. 특히 24일에는 폭우가 퍼붓는데도 20여만명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정치권 인사의 조문도 줄을 이었고, 일부 인사들은 노사모 등 지지자들에게 막혀 발길을 돌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다양한 지역에서 오는 데다 버스를 전세내거나 출근길에 조문하고 가는 상황에 대해 우리도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분향소의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 헌화된 국화꽃은 하루 20여만 송이. 인근에서 국화가 동이 났지만 조문객이 몰렸다. 한번 헌화했던 깨끗한 국화를 다시 사용하기도 했다. 조문객들에게 제공된 음식 양도 엄청나다. 7일간 소비된 쌀은 80㎏들이 480가마다. 57만여명분이다. 국밥의 재료로 사용된 소만도 7일간 6마리였고, 김치는 1.8t 이상, 수박은 5000통 이상을 사용했다. 라면은 하루 평균 6000개가 소비됐다. 김해시청과 진영농협 등은 하루 평균 빵 5만개, 우유 5만개, 생수 10만개 등을 제공했다. 쓰레기봉투도 50ℓ와 120ℓ짜리 1만 2000여개가 사용됐다. 취재기자 수도 기록적이다. 7일 동안 한 번이라도 현장을 들른 국내외 기자를 모두 포함하면 1000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진이 몰리면서 봉하마을 인근 숙소에는 빈 방을 찾을 수가 없었으며, 숙소를 구하지 못한 취재진들은 인근 창원과 밀양까지 나가 숙소를 잡기도 했다. 만장은 2000여개가 만들어져 봉하마을 입구에서 빈소가 차려진 마을회관 인근까지 1.4㎞ 구간을 빼곡히 수 놓았다. 분향소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 자원봉사자도 45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소고기 국밥을 비롯해 수박과 떡, 빵, 생수 등 먹거리를 조문객들에게 공급했다. 또 설거지, 주변 청소, 장례식장 안내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은 김해시 자원봉사회, 대한적십자사 김해지회, 김해시 새마을 부녀회 등과 함께 노사모 등으로 구성됐다. 김해 한찬규 박성국기자 cghan@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발인까지 지켜보자… 밤을 잊은 애도

    [노 前대통령 국민장] 발인까지 지켜보자… 밤을 잊은 애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에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는 이른 아침부터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도 줄지어 조문하는 데에 3시간 이상 걸렸다. 일부 조문객은 29일 오전 5시 거행될 발인까지 참가하겠다며 봉하마을에서 밤을 지새웠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을 포함, 지난 6일 동안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을 100만명 이상으로 집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날 아침 처음으로 분향소를 찾았다. 권 여사는 검은색 상복을 입고 왼쪽 가슴에 베 리본을 달았으며, 매우 수척한 모습이었다. 여 비서관의 부축을 받아 걸으면서도 휘청거렸다. ●노 전 대통령 강금원 보석 늦어져 상심 권 여사는 이날 오전 7시20분쯤 마을회관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 나와 남편의 영전에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치고 허리를 깊숙이 숙여 묵념했다. 이어 상주 역할을 하는 참여정부 인사들에게도 깍듯이 인사하고, 분향을 위해 줄을 선 조문객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장의위 관계자는 “권 여사의 판단에 따라 분향소로 나와 조문객과 자원봉사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한 보석결정이 늦어지자 크게 상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 4일 전인 지난 19일쯤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강 회장이 보석으로 풀려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뤄지지 않은 뒤에 지인들의 전화도 아예 받지 않는 등 매우 상심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이날 오전 조문객 중에는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로 유명한 가수 안치환도 눈에 띄었다. 안치환은 조문을 마친 뒤 장례위에 자신의 앨범 ‘비욘드 노스탤지어’ CD를 전달했다. 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와 신자 200여명도 빈소를 방문, 1시간여 동안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미사를 올렸다. 사제단이 분향하는 시간에는 아들 건호씨가 상주로 앞에 나와 예를 갖췄다. 미사를 마치자 건호씨는 분향소를 찾은 직장 동료 10여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울러 각 언론사의 취재진도 이날 정식으로 조문했다. ●봉하마을 6일간의 진기록들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6일간 각종 진기록이 쏟아졌다. 누적추모객은 하루 20만명씩, 100만 이상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조문객들에게 배식한 소고기 국밥의 재료로 하루 80㎏짜리 쌀 125포대가 소비됐다. 소고기도 하루평균 800㎏ 이상이 들어갔다. 황소 1마리 무게와 맞먹는 양이다. 김치 300㎏과 수박 500여개, 생수 1만병, 떡 10t 등이 하루를 채 버티지 못했다. 국화도 하루 평균 10만송이 이상 쓰였지만, 몰려드는 조문객을 감당하지 못해 깨끗한 것을 골라 재활용됐다. 김해 김정한 박정훈 김승훈기자 jhkim@seoul.co.kr ■ 발인식 앞둔 전국 각지 표정 광주·전남 시민 수천명 추모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전날보다 더 많은 추모객이 나와 고인을 애도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고인의 미공개 자료와 유품 등을 입수하는 대로 인터넷 등에 공개했다. ●추모객 “내일이면 만날 수 없어…” 이날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4살짜리 손녀와 함께 나온 김덕주(62)씨는 “내일이면 영영 떠나 보내야 하는데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 같은 이 슬픔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분향소 옆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가슴 깊은 애도를 표하며 전국 대학생들의 힘을 모아 이런 비극을 부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덕수궁 분향소에는 간이화장실 3개가 설치됐다. 서울시는 지하철1호선 시청역2번 출구와 상공회의소앞, 시청 서소문청사 주차장 입구 등 3곳에 변기 27개(여자용 12개, 남자용 15개)가 마련된 이동박스를 설치했다.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역 등 정부분향소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 등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김종선 한진그룹 부회장, 손욱 농심 회장, 이석채 KT 회장 등이 분향소를 방문했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아낀 책 공개 이날 오후 7시 광주 동구 광산동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는 시민 등 수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 광주·전남추모위원회’ 주관으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는 송기숙 위원장의 추모사와 김준태 시인의 헌시, 아침이슬·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영상 상영, 자유발언,추모 나비 날리기 등 순으로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추모객들은 분향소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적힌 가로, 세로 1m 크기의 대자보를 내걸었다. 이날 오후 8시부터 전남 진도군 진도읍 철마광장에서는 고인의 넋을 기리는 씻김굿이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12월27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마지막으로 가진 송년회를 기록한 미공개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장의위는 또 고인이 서거하기 일주일 전에도 “책과 자료를 구해달라.”고 할 정도로 독서열이 높았다고 전하면서 고인이 남긴 책 20권을 ‘노무현이 만난 책, 노무현이 만날 책’이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전국종합 광주 최치봉·서울 김민희기자 cbchoi@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꽃잎처럼 흘러가시라”… 줄지 않는 흰국화 행렬

    [노 前대통령 국민장] “꽃잎처럼 흘러가시라”… 줄지 않는 흰국화 행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일째인 27일에도 김해 봉하마을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뙤약볕 아래에서도 3㎞쯤 늘어선 ‘흰국화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몰랐다. ●끊임없는 조문객 행렬 29일이 영결식이어서 문상 기간이 내일 하루밖에 남지않아서 인지 오후 들어서부터 직장인과 중장년층의 조문이 부쩍 늘었다. 이날 25만여명 등 5일간 누적 조문객은 90만명을 돌파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모(57)씨는 “생전에는 노 전 대통령을 미워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니 그분의 명복이라도 빌려는 생각에 일을 끝내고 급히 달려왔다.”면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빈다.”고 애도했다. 공동 장례위원장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이날 “권양숙 여사가 빈소 자원봉사자와 분향소를 찾은 국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권 여사가 ‘무더운 날씨에도 본업을 뒤로한 채 슬픔을 같이하고 도움을 주신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한다는 말을 대신 전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역사 희생자 보듬었던 고인 이날 오전 제주시 4·3항쟁 유족 대표 20여명이 조문했다. 이중흥(63) 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사저를 방문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방문 당시 사저 정원이 너무 허술해 나무 하나 심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하니 ‘제주 수종으로 심어달라.’고 하셔서 산딸기나무를 심었다.”고 소회했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이용수(81) 할머니도 고인의 영정 앞에서 흐느끼며 “큰 별이 떨어져서 달려왔다.”면서 “명절마다 권 여사가 술·과일을 챙겨주셔서 꼭 방문하고 싶었다.”며 눈가를 훔쳤다. 봉하마을 진입로 양쪽에는 1700개의 만장이 내걸렸다. 부산민족예술인총연합회 회원들이 인터넷 다음 ‘아고라’에 오른 노 전 대통령 추모글을 적은 만장은 빈소까지 2㎞ 구간에 설치됐다. 만장에는 ‘돌아와 주세요. 노 통장님.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울어도 울어도 보고 싶다.’라며 애도와 그리움을 나타내거나 ‘우리 갈 길 멀고 험해도 끝내 이기리라.’라는 민중가요 가사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경남지방경찰청장 물병 세례 일부 조문객들이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과 경찰간부 40여명에게 물을 뿌리고 야유를 퍼부었다. 이 경남경찰청장 등 일행이 봉변을 당한 까닭은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길게 늘어선 조문객들을 제치고 맨 앞으로 나아가 ‘새치기 조문’을 했기 때문이다. 이 청장이 조문하는 동안 먼저 차례를 기다리던 일부 조문객들은 경찰간부 일행에게 물을 뿌리고 울먹이면서 “경호(청와대 경호를 오해)도 못하고 자살경위 수사도 제대로 못한 주제에 무슨 얼굴로 왔느냐, 경찰이 왜 조문 순서를 지키지 않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화가 난 일부 조문객은 경찰 일행이 벗어놓은 신발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경찰간부 일행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흩어진 신발을 집어와 신은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김해 김정한 이재연기자 jhkim@seoul.co.kr ■ 식지 않는 추모열기 서울광장 추모제 끝내 불허 한낮에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뜨거운 추모 열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서울역사박물관 등 전국 93개 공식분향소를 비롯한 300여개 민간 분향소에는 고인의 서거 5일째인 27일에도 추모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정부는 노 전 대통령 추모 행사를 위해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을 이날 결국 불허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중앙청사 접견실에서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이대영 경실련 사무총장 등 시민추모위원회 관계자 4명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추모위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추모문화제를 개최하기로 하고 서울시에 허가를 신청했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광장 사용규정에 따라 비정치적 행사만 보장되면 개방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위는 이날 오후 8시30분 정동교회 앞 광장에서 20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약식 추모제를 열었다. ●유시민 “영결식 때 노란넥타이 맬 것”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이날 서울역 정부 분향소를 찾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분향소에서 지은 ‘넥타이를 고르며’라는 글을 통해 “꼭 검은 넥타이어야 할까,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과 같은 것을 맬 수 없다.”면서 “5월29일 서울광장 노제에서 노란 풍선 백만개가 하늘 높이 오르는 꿈을 꾼다….”며 영결식 당일 노란 넥타이를 매고 가겠다고 말했다. 관공서와 기업들이 회식 등 각종 여흥 행사를 국민장 이후로 미루는 등 전국이 ‘엄숙 모드’에 들어갔다. ●재계 줄지어 분향… 진도에선 씻김굿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이날도 정·재계 인사들의 분향 추모가 이어졌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부인 홍라희씨는 오후 8시30분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앞서 오전 7시40분 이백순 신한은행장을 선두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등이 분향했다. 삼성그룹 사장단은 회사 버스 편으로 도착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30여명이 단체 분향을 했다. 오후 1시쯤 분향소를 찾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모두의 비극”이라면서 “생전에 고인을 대전야구장에서 뵌 적이 있는데 매우 인간적인 분이었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신동빈 부회장을 비롯한 롯데그룹 사장단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도 분향소를 찾았다. 충북지역 시민추모위는 28일 오후 7시30분 청주시 상당공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시민추모제를 개최한다. 또 전남 진도군은 진도 씻김굿 주최로 28일 오후 8시 진도읍 철마광장에서 인간문화재와 씻김굿 기능 보유자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씻김굿을 한다. 전국종합 김해 강원식 서울 김성수 김민희기자 kws@seoul.co.kr ■휴가내고… 지방서… 자원봉사 물결 서울에 사는 정모(45)씨는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뒤 곧바로 김해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씨는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휴가를 내고 27일까지 5일째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정씨는 “저에게는 유일한 대통령이었던 노 전 대통령을 위해 무작정 봉하마을로 내려와 국밥 끓이기, 설거지, 청소, 자원봉사 모집, 물나르기 등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있다.”면서 “여기서(봉하마을)는 딱 정해진 일이 없어 그때 그때 필요한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모(여·33·여수)씨도 지난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자마자 여수에서 경남 양산 부산대학병원을 거쳐 5일째 봉하마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씨는 “양산에서 집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봉하마을에 가면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찾아왔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에는 하루 400~5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된다. 이들은 대부분 새마을단체나 녹색회 등 단체 소속이지만, 상당수는 스스로 일손을 자청하고 있다. 봉사자들은 조문객 질서유지, 리본 및 조화 나눠주기, 국밥 끓이기, 쓰레기 줍기, 설거지, 간이화장실 청소 등 수십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정씨와 이씨처럼 스스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하루 300명 이상에 이른다. 하루 몇 만명의 조문객을 맞아야 하는 봉하마을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조문객으로 왔다가 일손을 도와달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자원봉사자로 남은 사람들도 많다. 김모(55·부산·식당업)씨는 25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가 밤늦게까지 국밥에 들어갈 무를 종일 썰고 이튿날 귀가했다. 김해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방명록 수놓은 조문객 글들 “당신의 빈자리 이렇게 클 줄…” “6년 전 당신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60년 당신을 기억하며, 가슴에 담고 살아가겠습니다.”(경기 부천시 배항섭)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은 고인을 잊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방명록에 옮기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저마다 노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마음을 햐얀 종이에 쏟아내고 있다. 초등학생 정지은양은 “대통령 할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국화 놓고 갈게요.”라고 썼고, 김명규씨는 “정작 가야 할 사람은 나이 많은 나인데, 아직 할 일이 많은 당신을 먼저 보내 가슴이 미어집니다.”며 애끊는 마음을 옮겼다. 이진희씨는 “말이 안 나옵니다. 그냥 멍하네요. 멍했다, 슬펐다, 다시 멍해집니다. 살면서 흔들릴 때마다 대통령님을 생각하겠습니다.”고 적었다. 송민호씨는 “주름진 이마와 희끗한 머리를 보면 ‘할아버지’, 막걸리 잔을 기울일 땐 ‘이웃집 아저씨’, 밀집모자를 쓰고 들녘에 나선 모습을 볼 때면 ‘삼촌’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빈 자리가 이렇게 클줄 몰랐습니다.”며 생전을 추억했다. 한권, 한권 맺어지는 방명록에는 권양숙 여사를 걱정하는 마음도 담았다. 연옥이라는 추모객은 “권 여사님, 기운 차리세요. 대통령님은 가셨지만, 여사님은 우리 곁에 남아 우리를 지켜주세요.”라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았다. 김해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공시족’에게 공직이란?…달라진 의식들 “비정규직 차별 임금 차액 전액 지급하라” 유학생 입국 시즌… 신종플루 금주가 고비 서울대 주요학과 합격자 출신고 분석하니 올 지방직 9급 시험문제 분석해보니 경호관은 은폐 시도… 경찰은 부실 수사
  • [SPECIAL | 장날] 부산 기장군 월내장

    [SPECIAL | 장날] 부산 기장군 월내장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린다. 벌써 봄을 재촉하듯 삼라만상이 부산스럽다. 봄비 속의 아침장터는 아직 한산하다. 그래서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부산 기장군 월내장. 월내(月內)마을의 포구에서 펼쳐지는 5일장이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바다풍광이 좋고, 그 위로 뜬 달이 밝고 선명한 곳. 그래서 마치 달 안에 있는 신선의 마을 같다하여 붙여진 월내. 이 월내포구의 바닷길에 전이 펼쳐지는 장터가 바로 월내장이다. 장터로 들어서자 갯내음이 물씬 풍긴다. 뒤이어 싱그러운 봄 바다가 펼쳐지고, 파도소리도 찰박찰박 들려온다. 늦은 장꾼은 아직도 전을 펴느라 손길이 바쁘고, 전을 편 장꾼들은 급하게 국밥 한 그릇 후룩후룩 털어 마신다. 아직까지는 이른 아침의 갯바람이 차다. 장터 한 귀퉁이에 모닥불이 토닥토닥 타오르고 있다. 포구에는 배들이 물결 따라 일렁이고, 뒤늦게 귀항한 어선은 잡아 온 해산물 거두기에 여념이 없다. 예로부터 기장은 바다 특산물이 많이 나는 곳. 바닷물이 맑고 깨끗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기장미역’ 등 해조류나 ‘대변멸치’ 그리고 갈치, 오징어 등 맛있는 수산물이 사시사철 풍성했었다. 지금도 철마다 갖가지 수산물이 흘러넘치는 것은 여전하다. 제철 횟감을 가장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망설임 없이 ‘기장’을 꼽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월내장도 기장의 장터답게 해산물전이 올망졸망 열리는 ‘해산물 전문 장’이다. 100m의 장터를 휘휘~ 둘러본다. 기장특산의 해조류들이 가득 가득하다. 싱싱하다 못해 윤이 반짝반짝 난다. 원래 기장 앞바다는 조류가 차고 거칠기 때문에 모든 해조류들이 쫄깃쫄깃하고 맛이 깊다. 임금께 진상했다는 ‘기장미역’과 몇 년 전 양식에 성공한 쇠미역, 오동통한 톳, 끝물의 몰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했다. 과연 바다 해초의 고장답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미역에서 정제되지 않은 바다 냄새가 격렬하다. 해초전 옆에는 ‘해녀 할매’가 직접 잡은 ‘앙장구(말똥성게)’를 쌓아놓고 까고 있다. 어느새 노오란 앙장구 알이 대접에 가득하다. 이 앙장구는 질리도록 고소하고 바다의 아련한 향이 그윽해 최고의 바다요리 재료로 쓰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고슬고슬한 밥에 갖은 해초와 앙장구 알을 얹은 뒤 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려 비벼먹는 앙장구밥을 즐겨먹는다. 그래야 비로소 봄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곳 해녀들이 잡아서 파는 것 중 군소도 빠지면 섭섭하다. 군소는 바다 연체동물로 달팽이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을 삶아서 말려 초장에 찍어 먹는다. 소주 한 잔에 군소 한 점 입에 넣으면, 입 안 가득 감도는 쌉사름함이 입맛 없는 봄을 아주 개운하게 한다. 자연산 전복과 소라, 코고둥, 문어 등도 해녀의 고무대야에서 꼬물거린다. 월내장은 봄 바다 장이 제격이지만, 그렇다고 해산물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장의 산과 들은 착하고 넉넉해서, 각양각색의 ‘산 것’과 ‘들 것’이 지천이다. 나물전에는 벌써 봄나물의 향연이 절정이다. 파릇파릇 취나물, 원추리, 방풍나물을 비롯해서 ‘아시 정구지(첫물 부추)’ ‘머구 싹(머위 어린 잎)’들이 앙증스레 풋풋하다. 쑥, 냉이, 달래도 있고 겨우내 잘 자라준 겨울초, 미나리, 시금치 등도 좋다. 그 옆의 닭똥 묻은 토종계란이 생뚱맞으면서도 우습다. “할매요, 미역 한 줄기만 맛보입시더”라는 말에, 미역전의 촌로는 군소리 없이 미역 두어 줄기를 집어준다. 한 입 ‘으적’ 씹어 먹는다. 코끝으로 살짝 바다 바람이 스친다. 짭조름한 갯내가 몸조차 싱그럽게 한다. 미역 1천 원치 산다. 비닐봉지 한 가득 꾸역꾸역 넣어주신다. ‘그래, 오늘 장 본 김에 해초 파티나 하자’는 심산으로 쇠미역도 사고, 톳과 몰도 조금씩 산다. 쌈도 싸먹고 나물도 조물조물 무쳐 먹으리라. 벌써 몸은 봄에 물들고 따뜻한 바닷물에 젖는다. 바야흐로 봄기운이 완연하다. 돌아오는 길 산기슭에는 매화가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고, 완만히 흐르는 좌광천변 왕버들은 푸릇푸릇 물이 오른 채 휘휘 느린 손짓을 해댄다. 이제 곧 봄볕에 개나리도 호들갑스레 노란 봉오리를 터트릴 것이다. 일광 앞바다도 생명의 푸른 기운으로 아른아른 피어오르기 시작할 것이고. 글 · 사진 최원준 시인
  • [하드코어 맛기행③] 남도의 짚불 구이와 나주곰탕

    [하드코어 맛기행③] 남도의 짚불 구이와 나주곰탕

    ▶50년 전통의 짚불 구이 두암식당목포를 좀 벗어날 정도로 여유가 있다면 무안 몽탄면의 두암식당을 찾을 일이다. 짚불 구이의 명가다. 삼겹살을 석쇠에 얹고 볏짚에서 순간적으로 구워내는 요리가 짚불 구이. 삼겹살에 볏짚의 은은한 향이 배는데다가 기름도 적어 맛이 일품이다. 특히 짚불 구이는 ‘뻘게젓’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뻘게젓은 펄에서 나는 작은 게로 담근 젓갈이다.맛의 명가라고 대단한 식당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목포 시내에서 차로 밤길을 30여분간 달려 도착한 곳은 그저 허름한 집이다. 제대로 된 안내판 하나 없이 벌써 50년째 장사를 해왔다. 남다른 점이 있다면 식당 뒷 편의 별채에서 연기가 하염없이 피어오른다는 점 정도다. 이 곳이 바로 볏짚을 태워 삼겹살을 굽는 장소다. 저녁 9시가 다 돼서야 찾은 식당에서 짚불 구이에 게장 비빔밥을 정신없이 먹는데, 적막한 동네에 이장 댁 마이크가 웅장한 소리를 쏟아낸다. “주민 여러분. 아무개네 송아지가 집을 나가 밤 늦도록 돌아오질 않고 있습니다. 발견하시는 분들은 즉시 이장네로 연락바랍니다.” 먹는 일에 열중하던 고객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타는 볏짚의 구수한 냄새와 함께 후미진 산골 이름난 식당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어디서도 비슷한 맛의 나주곰탕귀경길이 편한가, 아닌가는 일요일 아침에 달려 있다. 부지런히 행색을 차리고 나서면 서해안 고속도로로 4시간이면 족하다. 그러나 오후를 넘기기 시작하면 귀경 차량 행렬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6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일찍 서울에 도착해 일도 봐야 하고, 쉬기도 해야 해서 10시 전에 길을 나섰다. 그렇다고 맛 기행을 주린 배로 끝낼 수야 없다. 호남에서 특별히 맛집을 찾을 시간이 없을 때는 흔한 나주곰탕을 찾는 게 괜찮을지도 모른다. 물론 원조 나주곰탕은 나주에 몇 집이 있다. 이 일대에서 장터 국밥으로 내놓았던 곰탕은 다른 곳 곰탕보다 훨씬 국물이 맑고, 잔고기를 많이 얹어준다. 지금은 나주곰탕 체인점들이 전국 곳곳에 많이 들어선 상태다. 원조 맛집들에야 비할 바가 안 되지만, 한 끼 간단히 해치우기로는 이만한 집도 없다. 귀경길에 들른 곳은 영암 지역의 한 나주곰탕집. 서울에서 명성 높은 곰탕집 하동관에야 좀 못 미쳐도, 그 나름의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다시 서둘러 귀경길에 오르면서도 시간이 없어 못 들른 집들이 눈에 밟힌다. 민어회, 꽃게무침, 쑥굴레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은갈치는 또 어떤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목포의 비릿하지만 깊은 맛에 벌써 길들여진 나는 또 어떻게 화려하지만 건성인 서울 땅의 식당을 찾을 것인가. 서울신문NTN 이여영 기자 yiyoy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3일 TV 하이라이트]

    ●청춘예찬(KBS1 오전 7시50분) 대두는 문규가 순결, 승대와 함께 국밥 장사하는 것을 보고 눈이 뒤집히고, 순결은 헛구역질을 한다. 문규는 승대에게 순결과 결혼하겠다며 허락을 구하고, 승대는 어이없어 한다. 광자는 순자의 병상을 지키는 지순에게 찾아가 경숙을 위해 멀리 이사가 달라고 말한다. 상미는 순결에게 문규와 헤어져 달라고 한다.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KBS2 밤 12시45분) 네덜란드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다 7년 만에 귀향한 발레리나 김지영을 만나본다. 고국무대에서의 화려한 시작을 알린 공연 ‘신데렐라’ 이야기, 네덜란드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을 오가는 프리마돈나의 삶, 고국무대와 외국무대의 차이점을 들어보고 수석무용수가 되기까지의 사연 등을 들어본다. ●닥터스(MBC 오후 6시50분) 태어날 때부터 얼굴의 반 이상을 뒤덮은 붉은 반점과 비정상적으로 부푼 아랫입술의 점수씨. 힘들게 찾은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스터지-웨버 증후군’. 뇌에 혈관기형이 생기는 희귀질환으로 한 번의 수술로 완치될 수 없기에 의료진은 우선 안면 혈관종 제거 수술부터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자명고(SBS 오후 9시55분) 독이 든 술을 가져온 왕자실은 왕굉에게 잔을 건넨다. 왕자실은 왕굉에게 최리를 진정으로 죽일 생각이냐고 묻고, 놀란 왕굉은 고래잡이 최리의 부인으로 살아갈 자신이 있냐고 맞받아치며 진심을 속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독이 든 술을 나누어 마신 네 사람은 언쟁을 벌이다 차례차례 쓰러진다. ●세계테마기행(EBS 오후 8시50분) 메마른 모래 빛깔의 서아프리카. 그곳에 생명력 넘치는 초록의 바다, 코트디부아르가 있다. 아프리카 최고의 예술혼을 지닌 66개 종족의 춤과 음악 등의 예술세계와 그들의 삶 깊숙이 남아 있는 정령 신앙이 여행자의 발길을 사로잡는 곳, 코트디부아르! 그곳으로 아프리카의 로망을 찾아 떠나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0분) 종이풍선 날리기 대회가 멕시코에서 열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무풍선이 아닌, 종이와 접착제, 기름을 가지고 만드는 종이풍선이다. 멕시코에서는 이것을 칸토야 풍선이라고 부른다. 풍선을 만들어 가장 멀리, 오래 날게 하는 사람이 우승한다. 색상과 디자인 또한 심사에 포함된다.
  • [노무현 전격고백 파장] 봉하마을 ‘침통’… 주민들 “믿기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았다고 고백한 7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도 관광객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승용차나 관광버스 등을 이용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등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사저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의 전시관이 내부 수리를 이유로 문이 굳게 잠겨진 데다 ‘봉하 국밥’을 파는 음식점도 문을 열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였다.주민들은 전직 대통령이 또다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닥친데 대해 걱정하며 향후 전개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이병기 마을 이장은 “(노 전 대통령이 돈을 건네 받은 것이) 봉하마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부인 민미영씨는 머뭇거리며 “죄송하지요.”라며 더 이상 얼굴을 들지 못했다.한 주민은 “(돈을 받은) 그런 사실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또 다른 한 주민은 “검찰이 박연차 회장의 주변을 샅샅히 뒤질 때 노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두지 않았겠느냐.”며 예견된 수순이라는 반응도 보였다.노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은 권양숙 여사가 언제 돈을 받아 어디에 썼는지 등에 대해서는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김 비서관은 “(검찰조사 등과 관련해) 검찰과는 접촉이 없었다.”고 전했다.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씨줄날줄]석면 노이로제/노주석 논설위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1856∼1939년)는 “노이로제란 위기적 상황에서 야기되며, 위기의 도래를 예고하는 불안을 회피하려는 자아의 방위 반응”이라고 진단했다. 베이비파우더의 원료인 탈크에서 석면이 검출된 데 이어 중국에서 수입된 문제의 탈크가 화장품 등 300여개 제품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사실이 공개됐다. 탈크가 알약을 만들기 위해 첨가하는 부형제(賦形劑)로 쓰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만성질환자들이 약섭취를 회피하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이른바 석면 노이로제다. 미국 독성물질질병등록국(ATSDR) 에 따르면 2007년 화학물질의 인체독성 우선순위 1위는 중금속 비소(As) 였다. 음용수에 포함된 비소로 인해 수천명이 암으로 사망했고 수십만명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대표적 발암성 물질이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도 음용수 중의 비소 기준치를 ‘0’으로 설정하진 않는다. 선진국은 10ppb로, 우리 나라는 50ppb로 정하고 있다. 발암성 물질이라고 해서 무작정 사용을 금하지 않는 것이다. 노출량과 노출 경로 등 과학적 근거가 중요하다. 석면은 이 순위에서 90위에 불과했다. 석면 노이로제는 석면에 대한 정확한 위해성 평가와 기준치 설정 등을 통한 ‘소비자와의 소통(Risk Communication)’이 부족한 탓에 생긴 사달이다. 5개월 전 발생한 멜라민파동으로 놀란 가슴이 석면 보고 더 놀란 격이다. 한국독성학회와 독성과학원 등 전문가그룹에 따르면 석면에 의해 오염된 음용수나 파우더 제품의 경우 인체 유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석면함유 화장품이나 경구 알약의 경우 피부흡수나 소화기를 통한 위해 요소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다. 문제는 정부의 소홀하고 뒤늦은 대처다. 그동안 환경부, 노동부, 보건복지가족부, 식약청, 지자체 등 관련 부처는 ‘따로 국밥’ 식으로 대증요법만 내놓았다. 시류에 편승한 일부의 과장된 표현과 호들갑이 혼란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소비자들이 석면 노이로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철저한 가이드라인을 세워주길 바란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서울광장] 육사·해사·공사 통합의 전제조건/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육사·해사·공사 통합의 전제조건/노주석 논설위원

    육사, 해사, 공사. 3군 사관학교를 나온 분들이 의외로 주위에 많다. 군문에 남은 분들은 군 엘리트로서 한몫하고 있다. 군을 떠나 공직이나 기업에 몸담고 있는 분들도 한결같이 추진력 있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육사는 육사대로, 해사는 해사대로, 공사는 공사대로 풍기는 멋이 다르다. 나름대로 평가해 보면 육사 출신은 촌스럽지만 리더십이 있다. 해사는 거칠지만 통이 크다. 공사는 잘지만 세련됐다. 60년 안팎의 전통 속에 장점을 살리면서, 조화를 이뤘기에 오늘의 대한민국 국군이 있다고 믿는다. 정부가 2012년까지 3군 사관학교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나선 것으로 보아 구두선(口頭禪)은 아닌 듯하다. 육·해·공 3군을 대표하는 각 군 사관학교 출신의 편가르기와 이기주의가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본 것 같다. 일정대로라면 3년 후에는 현재의 3군 사관학교를 통합한 막강한 국군사관학교의 생도 모집공고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방부를 출입하고, 국방대학교에서 수학하면서 육군의 일방 독주와 해·공군의 상대적 피해의식을 목격했다. 자리와 사안을 놓고 벌어지는 각 군의 이합집산에 신물이 날 정도였다. 그 중심에 육사, 해사, 공사 출신 ‘정치 장교’들이 있었다. 솔직히 따로 떨어져서 다투느니 합치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그런데 청와대가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사관학교 통합추진 소식을 듣자 통합의 당위성과 시너지효과보다 통합에 따른 불협화음과 부작용이 먼저 떠오른 것은 왜일까. 구조적인 문제는 팽개치고 곁가지만 흔드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또 뭘까. 파벌 불식과 더불어 사관학교 통합의 주요 이유로 거론된 ‘3군 균형발전론’은 ‘3군 차별론’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합동성 강화’는 현재의 ‘따로 국밥’ 체계로는 3군간의 신뢰와 이해가 다져지지 않는다는 양심선언이다. 3군을 하나로 묶자는 통합군체제의 도입과 통합사관학교 창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 메뉴였다. 노무현 정부 국방개혁의 화두 중 하나였다. 불과 3년 전 격론 끝에 ‘통일이 이뤄질 때까지’ 3군간의 합의를 존중하는 합동군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론내렸다. 불문곡직하고 3군의 교육기관부터 통합하고 보자는 아이디어는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 전 정권이 버린 통합군 카드를 다시 꺼내들기 위한 ‘바닥 다지기’라는 음모론마저 나돈다. 사관학교 통합은 통합군제가 도입되고 난 뒤 이뤄지는 게 순리다. 문제의 원천은 육군독식이다. 육군은 전형적인 가분수 군대다. 50만 병력으로 10개 사단을 운영하는 미국 육군에 비해 한국 육군은 비슷한 병력으로 무려 47개 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장교들의 자리 유지를 위한 저효율 고비용 구조다. 병력 감축과 부대 해체의 대상인 육군이 구조조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관학교 통합론을 꺼냈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기업이 어려우니 신규채용 직원의 월급부터 깎자는 논리와 마찬가지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2006년 여·야 합의를 거쳐 만든 국방개혁법 법제화 당시 합참의장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국방개혁법을 꺼내놓고 찬찬히 읽어보기 바란다. 그 속에는 사관학교 통합 같은 무리수를 두지 않고도 3군의 선의적 경쟁을 촉발하면서 균형발전을 도모할 상책(上策)들이 기지개 켤 날을 기다리고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新귀거래사] 대경대 강삼재 부총장

    [新귀거래사] 대경대 강삼재 부총장

    “학생들과 함께하는 인생 2막이 더 행복합니다.” 국회의원 5선에다 40대 초반에 여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강삼재(57)씨. 그는 요즘 경북 경산시 자인면의 대경대에서 부총장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 한때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하던 그가 지방의 조그만 대학 부총장에 있다는 것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19일 그를 만나 보니 이는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정치인에서 교육가로 행로를 바꾼 그는 “부총장이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럽다. 부르는 상대방이 오히려 더 어색해하는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가 부총장으로 취임한 건 지난해 6월16일. 두달 전 4월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 이곳으로 내려왔다. ●“정계은퇴 후 교육가로서도 성공하고 싶었다” 결심 대경대 부총장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지방의 작은 대학의 부총장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에서 석좌교수 자리나 차지해서 이름만 걸어놓고 월급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내려왔을 때는 교육에도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은 나름의 결심이 있었다.” 대경대를 택한 것은 유진선 총장과의 인연 때문. 그가 정치판을 주름잡던 2000년 초 유 총장이 “정계에서 물러나면 우리 대학으로 와 달라.”고 제의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유 총장과의 8년 전 약속이 그를 대경대로 이끌었다. 그는 “당시 약속할 때는 15년 뒤에나 실현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빨라졌다.”며 담담히 말했다. 그는 대구 수성구의 전세 아파트에 혼자 산다. 부인은 처음 2주간 함께 지내다가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로 갔다. 그는 “혼자 지내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이제는 많이 적응했다.”며 “아침을 빵 등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우는 것을 제외하고는 큰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일정은 빡빡하다. 오전 6시면 일어나 천을산에 오른다. 운동과 아침을 한 뒤 오전 9시까지 학교에 도착한다. 오전에는 학교 현안에 대해 토론을 하며, 손님을 맞는다. 점심은 주로 교내 식당이나 학교 인근 식당에서 해결한다. 돼지국밥 등 5000~6000원 하는 것들을 많이 먹는데, 교수 10여명과 함께 먹어도 밥값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에는 총장 대신 대외적인 일을 본다. 국내외 저명교수의 강의를 유치하고, 우수 학생을 선점하기 위해 고등학교도 찾는다. ●월 3~4차례 강의…“자신의 분야서 최고 되라” 그는 월 3~4차례 강의한다. 특강 형식이라 수강생이 한 번에 수백명씩 몰린다. “학생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게 강의의 핵심이다. 명문대 출신처럼 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퇴근 뒤에는 지인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고 소주도 한 잔씩 한다. 학계와 언론계 사람들을 주로 만난다. 정치권 인사는 없다고 귀띔했다. “대구가 고향도 아닌 데다 배타적인 도시라는 선입관에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정하게 대해줘 지금은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 정치권 복귀 의향을 묻자 “32세에 여의도로 진출해 25년동안 정치하면서 막강한 권한을 누렸지만 요즘같이 행복하진 않았다. 부총장으로 언제까지 있을지는 몰라도 다음에 내가 서 있을 자리도 정치판이 아니라 교육 현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 부총장은 최근 정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점이 많다. 하지만 정치와 결별한 만큼 더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고 손을 저었다. 글 사진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맛있는 대구’ 만들기

    대구시가 올해를 맛의 고장 원년으로 선포했다. 시는 2일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여러 국제행사를 앞두고 올해를 ‘맛의 고장 대구’ 원년으로 정해 다양한 시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친절한 대구식당 만들기, 대구 대표음식 육성, 대구음식 시장확대를 위한 홍보전략 수립, 대구음식포럼 지원 등 음식산업 육성 10개 시책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시는 우수한 ‘친절 음식점’ 100곳을 선정하고 영업주들을 교육시켜 친절분위기를 확산해 나가기로 했다. 또 현장방문을 통한 맞춤식 교육을 실시한 후 업소별 모니터링을 연 2회 실시하고 우수업소에 대해서는 친절메달 및 교육 이수증서를 배부한다. 찜갈비, 막창, 따로국밥 등 10가지 음식 가운데 대표 음식 1~2개 품목을 선정해 집중 육성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11월 개최되는 대구국제음식관광박람회를 국제기구가 인증하는 전문박람회로 승격되도록 추진하고 음식점 투어상품, 대구 음식산업 통합 브랜드도 개발하기로 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뱃속은 든든, 마음은 뜨끈! 2월의 자연밥상 콩나물김치국밥

    뱃속은 든든, 마음은 뜨끈! 2월의 자연밥상 콩나물김치국밥

    우리는 무주 산골에 산다. 눈이 자주 와, 겨울에는 시간 약속을 잘 못한다. 눈이 오면 꼼짝없이 갇혀야 하기에. 대신 눈이 쌓이면 정말 고요하다. 가끔 털털거리며 돌아다니는 경운기도 꼼짝을 못 하지, 붕붕거리며 다니는 차들도 발이 묶이니 온 세상이 조용하고 평화롭다. 눈 오는 날이면 식구마다 ‘뭐 먹을 게 없을까?’ 더 궁금해한다. 겨울이라도 해가 좋으면 할 일이 많지만, 눈이 오면 꼼짝없이 집 안에 갇히니 더욱 먹는 데 관심이 쏠린다. 한데 먹을거리는 오히려 줄어드는 기분이다. 장에 가서 뭐 하나라도 사올 수 없으니 먹을거리도 집 안에 갇혀버린다. 우리나라 음식은 사계절 제철이 뚜렷하고, 논밭에서 나는 곡식과 채소를 주재료로 한다. 봄에는 봄나물, 여름에는 온갖 푸성귀, 가을에는 무 배추, 그렇다면 겨울은? 추운 겨울 자연에는 싱싱한 채소가 거의 없다. 겨울은 땅콩, 호두, 잣과 같은 천연지방과 마른 나물의 철이다. 임락경 님이 쓴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에 보면 겨울에 싱싱한 채소를 먹으면 몸에 탈이 난단다. 채소는 몸을 차게 하는 기운이 있는 데다, 비닐집에서 기르다 보니 자연스러운 먹을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겠다. 하지만 사람이니 싱싱한 게 궁금하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찾아낸 것이 김장김치와 콩나물이리라. 늦가을 뽑은 무 배추로 담근 김장김치. 김치는 무 배추의 차가운 기운을 마늘 생강 고춧가루로 중화시킨 발효식품이다. 김치만 있으면 해 먹을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김치찌개, 부침개, 김치밥에 따뜻한 국밥, 볶음밥, 김치 쏭쏭 썰어 넣고 만 김밥, 국수 그리고 만두…. 콩은 콩인데 상큼한 콩, 콩나물 역시 겨울 음식이다. 겨울 아침 콩나물만 한 게 어디 있나. 그래서 우리 집에선 직접 콩나물을 기르는데, 손쉽게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기른다. 주전자에 하루 여러 번 물을 넣었다가 따라내면 콩나물이 잘 자란다. 처음 싹이 틀락 말락 하는 날, 조심해서 물을 빼먹지 않고 주면 그다음은 저 알아서 잘 자란다. 싱크대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한 움큼씩 뽑아서 먹으면 되니 이 얼마나 좋은가.(정수기 물은 안 되고, 수돗물을 병에 받아 하룻밤 재운 뒤 콩나물에 주면 된다.) 콩나물김치국밥(4인분) 잘 익은 김장김치, 겨울에 어울리는 콩나물 한 움큼, 그리고 김치와 잘 어울리는 고구마를 넣고 뜨끈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을 끓여보자. 재료: 찬밥 두 그릇, 콩나물 한 봉지, 배추김치 한 쪽, 고구마 두 개,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육수. 1. 먼저 육수를 만든다. 국 멸치와 다시마, 대파 그리고 무 한 동강을 미리 물에 담가 30분쯤 우린 뒤, 뭉근한 불에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열어 멸치의 비린내가 날아가도록 한다. 이렇게 10~20분 끓여 육수를 만든다. 2. 겨울을 나며 단맛이 든 고구마를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는다. 3. 신 김치를 쫑쫑 썬다. 4. 육수를 넣고 고구마, 신 김치, 찬밥 그리고 콩나물 순으로 넣고 끓인다. 고구마가 익으면 다 된 것. 김치가 들어가 따로 간이나 양념을 안 해도 된다. 김치의 칼칼한 맛, 콩나물의 시원한 맛, 고구마의 구수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잘 어우러지는 국밥이 된다. 팁. 날 김을 구워 곁들여 먹으면 서로 잘 어울린다. 장영란_ 1996년 ‘이민 가는 기분’으로 귀농을 결심, 뜻 맞는 사람들과 산청에서 간디공동체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무주에 뿌리를 내리고 자급자족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이다> <자연 그대로 먹어라> 등의 책을 썼습니다. “제철에 먹으면 내 몸이 싱싱해지고, 단순하게 먹으면 집중하는 힘이 생기며, 통째로 먹으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고 말하는 그는 샘터가족들의 밥상을 더욱 풍성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줄 자연요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 [CEO칼럼] 한국기업의 윈윈 성공 전략/이국동 대한통운 사장

    [CEO칼럼] 한국기업의 윈윈 성공 전략/이국동 대한통운 사장

    최근 패티 김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라는 노래를 상업광고 노래(CM송)로 패러디한 광고 한 편이 화제다. 코믹한 CM송을 배경으로 국밥집 할머니와 단골손님, 연인의 아름다운 모습 등을 연이어 보여주면서 상대방이 없으면 못 산다는 내용을 인상 깊게 보여 주고 있다. 기업 자체보다 기업이 추구하는 ‘상생’이라는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이례적인 광고라 할 만하다. 최근 우리 기업들도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는 적과의 동침도 망설이지 않으며 전략적 제휴경영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CEO)들은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으며, 나눔에는 익숙하지가 않은 듯하다. 상생(相生), 혹은 공생(共生)의 문화는 한국 기업의 경쟁 메커니즘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용어이다. 하지만 정보기술과 디지털혁명, 자유무역협정으로 대표되는 경제의 세계화는 산업 간의 경계와 한계를 해체시키고 있으며, 통합과 나눔, 상생을 지향하는 새로운 경쟁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세계시장에서는 경쟁자인 삼성과 소니가 합작법인인 S-LCD를 만들어 상호 이익을 추구했던 것이 좋은 예다. 대한통운도 지난 2001년부터 같은 물류기업인 세방과 함께 제철용 석회석 선적작업을 목적으로 동석물류라는 합작법인을 만들었으며, 2006년부터는 경쟁사인 한진과 GM대우차의 인천 New KD(반제품 수출·Knock Down)센터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사업 시행 초기에는 서로 다른 기업문화와 경쟁의식 탓에 적잖은 해프닝도 있었지만 공동의 목표를 이해하고 상호 신뢰쌓기에 주력한 결과 지금은 상생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기업들이 오월동주가 아닌 진정한 윈·윈을 통해 세계 속의 강한 기업으로 우뚝 서려면 다음 두 가지 룰은 꼭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는 신뢰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이 실제 규정과 행동·원칙·약속 등과 일치해야 한다. 신뢰를 구축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파트너를 귀한 인연으로 여기고 공경하며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자신의 능력과 불변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영리 추구의 속성을 지닌 기업 간의 거래에서 100% 정직하고 진실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뢰성을 가진 기업은 의로운 친구를 많이 얻게 되는 반면 신뢰를 잃어버린 기업은 2류에 머물고 지탄 속에 가라앉고 말 것이다. 윈·윈 전략의 성공을 위한 또 다른 수칙은 바로 나눔이다. IT 혁명의 진면목 중 하나가 바로 공유(sharing) 혹은 나눔의 문화이다. 정보교환을 통해 강화된 협력적 문화는 기업 간의 기술과 경영상의 약점을 보완해 주며 가치창출의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준다. 이제 우리는 공유의 문화가 미래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화임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큰 것을 얻으려면 독점에 대한 소유욕을 버리고 협력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발아한 새싹은 떡잎이 둘로 나뉘어서 자란다. 사람 몸도 세포가 나뉘어야 성장한다. 나누어 공유하면 하나가 둘이 되고 힘이 배가된다. 정보와 지식·비전, 기술과 문화를 잘 나누어 함께 공유하는 기업만이 성공적인 미래를 향유하는 시대다. 한국 기업들이 파트너 없인 못 산다고 흥겹게 노래하며 나눔과 신뢰로써 상생을 이루어 어려움을 헤쳐나가 보다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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