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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한국 농업 구하기/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미국의 스필버그 감독이 1998년 만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가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미국 정부의 특명이 떨어진 이유는 그의 형 세명이 모두 전사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본 영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도 한시 바삐 ‘한국농업 구하기’ 작전을 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지금은 무역에 관한 한 제2차 세계대전 때보다 훨씬 많은 국가들이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봐도 되는 상황이다. 전선은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에 펼쳐져 있다. 다만 우리나라가 치르는 무역전쟁은 공세와 수세가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농산물은 외국시장을 더 열어서 수출을 늘려야 하는데 반해 농산물은 개방 속도를 줄여 열린 시장에 적응할 시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겪은 것처럼 우리 농업도 산업화 과정에서 토지와 인력, 자본을 타산업에 제공했다. 그 결과 1971년에 비해 농지는 55만㏊(16억 5000만평) 줄고 농가인구는 4분의1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노력과 정부의 기술개발 및 보급 덕에 쌀 생산량은 400만t에서 500만t으로 늘었다. 라이언 일병은 전사한 형들 덕분에 구출작전 대상이 되었지만 우리 농업은 산업화 과정에서 귀한 자원을 제공한 공로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기에 반드시 구해야 한다. 농업은 쌀을 포함한 갖가지 식품을 공급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모자라면 외국에서 사다 먹지.’라고 하는 사람들도 식품 전부를 해외공급에 의존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또 농업은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어서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며 국토 공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농촌의 기간산업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크게 기여하였으며 그 자체로서도 중요한 한국농업을 구하기 위해 이제는 모두가 나서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무역자유화를 추구하는 다국간 또는 양국간 통상협상에서 농업은 피해를 보는 대표적인 부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경제학자인 볼드윈 교수가 강의 중에 ‘자유무역의 이익이 후생증진으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이득을 보는 부문에서 피해를 입는 부문에 소득이 이전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많은 선진국이 직불금 형태의 보조금을 확대하여 일정 규모의 농업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경영주 열명 중 여섯명은 60세 이상이며 새로 농업을 시작하는 젊은 인재는 극히 적다. 농촌의 고령화는 우리사회 전체보다 20년 정도 앞서서 진행되고 있다. 은퇴를 원하는 고령농과 상품을 생산하지 않는 자급농에 대해서 과감한 복지지원과 생활개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농업 구하기의 시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 쌀협상 결과 비준 등을 통해 농민의 시장 추가개방에 대한 불안감이 표출되어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다. 작년에 홍콩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도 다시 재개될 것이고 일련의 추가적인 자유무역협정 협상도 예고되어 있다.‘선대책-후개방’이라는 말도 있지만 국가적으로 필요한 자유화 협상이라면 취약 부문에 대한 대책을 세워 설득하고 협상을 진행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다른 갈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지불은 이제 지양하자. 그보다는 ‘한국농업 구하기’를 위한 실천적인 방안을 구상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기본적으로 시장을 통해 소득을 얻도록 지원하는 한편 모자라는 부분은 재정으로 뒷받침해 줄 안전망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농업 구하기의 근간이 될 것이다. 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 [서울광장] ‘태풍’ 어디로 갔는데?/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태풍’ 어디로 갔는데?/진경호 논설위원

    이상했다. 그리고 당혹스러웠다. 영화 ‘태풍’ 말이다. 볼 만하던데 왜 벌써 잦아드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관객 400만명 어름에서 본전도 못 뽑고 간판을 내릴 상황이라니,1000만명 돌파는 물론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각종 기록을 꺾겠다던 기세와는 영 딴판이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인 150억원의 제작비와 40억원의 홍보비에 이 시대 최고의 얼짱과 몸짱이 나선 영화 아닌가. 스케일도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를 능가한다. 마케팅도 요란했다. 개봉 6개월 전부터 버스에 광고판이 달렸고,TV광고도 다른 영화의 3배를 넘었다. 홍보성 기사도 넘쳤다. 시사회엔 난다 긴다는 유명배우들은 물론 여야 국회의원들까지 초청됐다. 한국영화사 최대의 이 태풍은 그러나 불과 발생 한 달여 만에 열대성 저기압으로 바뀌어 소멸을 앞두고 있다. 텅 빈 객석이 난감했다. 드문드문 앉은 관객들을 빈자리들이 비웃고 있었다.‘다들 어디 간 거지? 영화가 잘못된 거야, 내가 잘못된 거야?’ 엔딩 크레딧을 보며 잔상을 즐기고 시간·비용의 투자 만족도를 따져야 할 판에 무리에서 떨어져 있다는 원시적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유를 찾아야 했다. 매스컴과 인터넷에선 영화 전문가와 관객들이 나름의 분석들을 쏟아냈다. 스토리 전개가 거칠다, 구성의 짜임새가 떨어진다, 극적 효과가 없다…. 제작사인 CJ엔터테인먼트에선 내부적으로 마케팅의 문제점을 꼽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대부분 결과론에 가까운 분석이다. 영화만큼이나 패인분석도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태풍을 복기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카메라의 앵글이 잘못 맞춰진 게 아니냐는 점이다. 제작사가 강조하듯 탈북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지만 탈북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분명 탈북자 최명신(장동건 분)이 주인공이고, 그의 얘기를 다뤘으나 관객들은 시종 대한민국 해군 대위 강세종(이정재 분)의 등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최명신을 이해하고 보듬어야 할 대상으로 삼았을 뿐, 관객 스스로 최명신이 돼 그의 아픔과 원한, 사랑을 체감할 기회를 영화는 주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전반에 남한 중심의 사고체계를 깔고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반미(反美)정서 등 서로 부딪치는 이념적 기제를 여기저기 어설프게 배치한 점도 영화의 색깔만 혼란스럽게 한다. 한·미연합사의 작전권을 내세우는 미군과 이를 무시하고 남한을 핵물질 낙하로부터 구하기 위해 작전에 뛰어드는 해군장교들,“우리 젊은이는 우리가 챙긴다.”며 별도 구출작전을 지시하는 대통령 등이 그것이다.‘웰컴 투 동막골’이나 ‘JSA’처럼, 남북 체제를 넘어 민족적 동질성을 바라보려는 접근이 태풍에선 나타나질 않았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 다양성을 조화해 내지 못한 것이다. 핵물질 기폭장치를 끝내 누르지 않은 최명신이 죽어가며 남긴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대사는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제작진에겐 안된 말이겠으나 탈북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영화라기보다 탈북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에 기댄 영화라는 느낌이다. 우리 관객이 무섭다. 저예산 조폭코미디에 수백만명이 몰려가 깔깔대고 가벼운 퓨전사극에서 진한 감동을 받으면서도 어설픈 블록버스터에는 아무리 최대, 최고의 수식어가 붙은들 가차없이 등을 돌리는 그들 말이다. 하긴 어디 영화에서만의 일이겠는가. 적어도 남북문제에 있어서 우리 관객, 아니 국민들은 다름을 포용할 줄 알고, 섣부른 색깔론엔 코웃음을 치지 않는가. 태풍 객석을 비운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빨리 쫓아가야 할 모양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키 작아도 ‘119’ 될수있다

    키 작아도 ‘119’ 될수있다

    앞으로 소방·경찰·교정·철도공안직을 채용할 때 신체 기준이 완전히 폐지되거나 개선될 전망이다. 소방직과 소년보호직은 신체 제한규정이 없어진다. 경찰과 철도공안직도 개선은 하되, 신체적 제한을 일부 두는 쪽으로 검토중이다. 다만 교정직은 현행대로 제한을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29일 “신규채용시험에서 신체조건의 제한규정을 폐지하고 체력측정을 강화하는 소방공무원 임용령 시행규칙 개선안을 마련,1년간 유예·검토 기간을 거쳐 2007년부터 전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남자는 키 165㎝ 미만, 몸무게 57㎏ 미만(여자는 154㎝ 미만, 몸무게 48㎏ 미만)에 대해서는 응시를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가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지적함에 따라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의뢰, 개선책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개선안은 신장·체중 제한 규정을 폐지하는 대신 비만도 평가를 추가했다. 체지방률(fat), 허리와 히프의 둘레 비율(WHR), 신체질량지수(BMI)등을 평가,0∼4점으로 나눠 최하위인 0점으로 평가되면 응시를 제한키로 했다. 또 색맹과 색각은 현행대로 제한을 두되, 녹색약은 제한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아울러 악력과 배근력, 왕복오래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등 6개 항목에 대해 체력측정(0∼4점)을 해 체력조건에서 최하위인 0점을 받아도 응시자격을 제한한다. 반면 비만도와 체력측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시험 점수에 포함돼 이득도 본다. 하지만 소방방재청이 제시한 기준대로 측정을 할 경우, 일반 국민의 60%정도가 최하위 점수인 0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돼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정정기 소방대응본부장은 “현재 정한 신체규정은 28년 전에 규정된 것으로 지금의 국민 신체 수준에 맞지 않아 폐지하는 게 타당하다.”면서도 “소방업무의 특성상 제 3자를 구출해야 하는 일이 많아 어느 정도 체력 기준이 필요해 비만도와 체력 조건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기관도 개선에 골몰하고 있다. 법무부의 소년보호직은 업무가 신체적 접촉이 없어 해당 규정을 없애기로 했다. 반면 강력범 등도 다뤄야 하는 교정직은 업무특성을 고려해 현행대로 신체규정을 두기로 했다. 여기에 체격검사를 추가하는 것을 놓고 중앙인사위와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경찰도 개선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경찰의 업무는 범인 검거 과정에 심한 몸싸움을 필요로 하는 등 소방과 다른 업무 특성을 갖고 있어 신체 제한규정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편이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인권위가 불합리한 것을 개선하라고 했지 완전히 폐지하라는 것은 아니다.”면서 “개선 방안에 대해 신중히 검토중이지만, 쉽게 폐지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APEC 한달 앞으로… 부산은 축제중

    ‘2005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개회(10월19일)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부산시는 오는 19일 ‘D-30일’을 전후해 대 태러 합동 모의훈련과 함께 전국민적 관심과 참여 유도 및 성공개최 분위기 확산을 위해 다양한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다.●부산항 대테러 합동 모의 훈련 13일 부산항 제2부두 24번 선석에서는 오거돈 해양수산부장관, 허남식 부산시장 등 각급 기관장 및 항만관련 기업체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항 대 테러합동 모의훈련’이 실시됐다. 이 날 모의훈련에는 부산해경, 해군 함대, 부산경남본부세관, 항만소방서, 부산항만공사, 부산항 부두 관리공사 등이 참가해 ▲선박테러 첩보입수 및 전파▲대 테러단계설정 및 조치▲테러범 진압 및 요인 구출▲선박내 폭발물제거▲화재 진압 및 사상자 수송 등의 훈련이 실시됐다.●다양한 경축행사 봇물 13일 오후 해운대 우동 시네파크에서는 시민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축 행사인 ‘KBS 열린음악회’가 열렸다. 이 날 축하 공연에 앞서 APEC 성공을 기원하는 대통령 및 부산시장의 영상메시지가 상영됐으며, 인기연예인들의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15일 같은 장소에서 춤과 함께 하는 청소년들의 거리축제, 시민참여 그림전, 미술체험전, 퍼포먼스 등 ‘APEC 성공기원 거리축제 행사’가 펼쳐진다.정상들의 회의 장소로 사용될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들어서 있는 해운대 동백공원에서는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해 준공기념 시민대축제를 연다. 19일 부산시청 12층 국제회의실에서는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형성을 위한 세미나가 열린다. 또 부산외국어대학과 부경대에서는 각각 ‘APEC 정상회의 기념 학술대회’와 ‘APEC 성공개최 기원 합동 학술세미나’가 열린다(20일).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실전 논술] 가난의 책임 소재와 국가 역할

    ●다음 글을 읽고, 가난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살펴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해 1600자 내외(±)로 쓸 것.) 장 발장은 라 브리 지방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으며, 소년 시절에는 글도 배우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파브롤에서 나뭇가지 치는 일을 해 왔었다. 어머니의 이름은 잔 마티외였고, 아버지는 블라장이라고 불렸다. 이것은 필시 별명으로 브알라 장을 줄인 것이었을 것이다. 장 발장은 음울한 성격은 아니었으나 늘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인정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게 되는 특징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장 발장이라는 인간은 어딘지 멍청해 보였고, 눈에 선뜻 띄는 사나이가 아니었다. 그는 아주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산후 몸조리를 잘못해서 죽었고, 아버지는 그와 마찬가지로 나뭇가지 치기가 직업이었는데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장 발장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자식 일곱을 낳고 과부가 된,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누이 하나뿐이었다. 장 발장을 키운 것은 이 누이로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그 동생을 집에 데려다 키워 주었다. 그런데 남편이 죽었다. 일곱 아이 중 제일 큰 아이가 여덟 살이고 제일 작은 아이가 한 살이었다. 장 발장은 그때 스물다섯 살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한 집의 가장이 되어, 이번에는 자기를 길러 준 누이의 가족을 떠맡아야 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무슨 의무처럼 되어 버려서, 장발장으로서는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그 고장에서 ‘애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를 쫓아다닐 틈이 없었던 것이다. 저녁이면 그는 녹초가 되어 돌아와 아무 말 없이 수프만 먹었다. 잔 아주머니라고 불리는 누이는 종종 그 옆에 앉아 돼지고기, 또는 양배추 속 같은 그의 음식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그의 접시에서 떠다가 아이들에게 주곤 했다. 그러면 그는 식탁에 바싹 엎드려 머리를 수프 접시에 처박다시피 하고서, 긴 머리카락을 접시 가로 늘어뜨리고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척 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파브롤에는 장 발장의 오두막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길 건너편으로 마리 클로드라고 불리는 소작인 아낙네가 있었다. 늘 허기져 있는 장 발장의 아이들은 가끔 어머니 심부름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는 이 마리 클로드한테 가서 우유를 한 되 얻어다가 생울타리 뒤나 길 모퉁이에서 서로 우유 그릇을 빼앗아 가며 마시곤 했는데, 너무 급히 서두르는 통에 작은 계집 아이들은 흔히 턱밑이나 앞치마 위에 엎지르는 것이었다. 만약에 어머니가 그런 속임수를 알았다면 호되게 야단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장 발장은 퉁명스런 말투로 투덜대면서도 누이 몰래 클로드에게 우유값을 치러 주었으므로 아이들은 벌을 받는 일이 없었다. 그는 나뭇가지를 치는 계절에는 하루에 24수씩 벌었다. 그리고 추수를 거드는 일이라든지 잔손일, 농가의 소몰이, 혹은 인부로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다 했다. 누이 역시 일을 하긴 했지만,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었던 만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갈수록 가난에 쫓기고 몰리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혹독한 겨울이 왔다. 장 발장은 일이 없었다. 집에는 빵이 없었다. 그야말로 한 조각의 빵도 없었다. 어린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는데도! 어느 일요일 저녁, 파브롤의 성당 앞 광장에 면한 빵집의 주인 모베르 이자보는 막 잠이 들려다가 가게의 창살 달린 유리 진열장이 쨍그랑 하고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 보니 창살과 유리를 한꺼번에 주먹으로 깨뜨린 구멍으로 팔 하나가 쑥 들어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팔은 빵 하나를 움켜쥐고 나갔다. 이자보는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도둑놈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이자보는 그를 쫓아가 붙잡았다. 도둑놈은 이미 빵은 내던져 버렸으나, 그 팔에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도둑은 바로 ‘장 발장’이었다. 이것은 1795년에 일어난 일이다. 장 발장은 ‘밤중에 남의 집에 침입하여 도둑질을 한 혐의’로 재판소에 불려 나갔다. 그는 오래전부터 소총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총을 쏘는 솜씨에 있어서는 어떤 명사수에 못지않았다. 또 가끔 밀렵도 했다. 그것이 그를 불리하게 만들었다. 밀렵자라고 하면 당연히 나쁜 놈 취급을 해 버린 것이다. 밀렵자는 밀수입자와 더불어 비적과 비슷하게 취급된다. 그러나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이러한 자들과 도회지의 끔찍스런 살인자들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밀렵자는 숲 속에 살고 밀수입자는 산 속이나 바닷가에 산다. 도시는 부패한 인간을 만들고, 또한 잔인한 인간을 만들어 낸다. 산과 바다와 숲은 야성인을 만들어 낸다. 산과 바다와 숲은 인간의 거친 면을 키워 주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파괴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장 발장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문(法文)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우리들의 문명 사회에는 끔찍스런 순간이 있다. 형법이 인간의 파멸을 선고하는 때가 바로 그러하다. 사회가 그 옷자락을 거두어 가 버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을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다 내팽개치는 순간은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장 발장은 5년형을 선고받았다. -빅토르 위고,‘레 미제라블´ ●지문의 배경 이해하기 이 작품은 인도주의적인 세계관으로 일관된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서사시적 작품이다. 작가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자가 한 사제(司祭)의 자비심으로 선악에 눈뜨게 되고, 사회에 항거해 가면서 고민하다가 점차 순화되고, 성화(聖化)되어 죽음에 이르러서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찾게 되는 영혼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청년 장 발장은 한 조각의 빵을 훔친 죄로 19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한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에게 하룻밤의 숙식을 제공해 준 신부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쳤다가 다시 체포되어 끌려가게 되었을 때, 밀리에르 신부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 은촛대는 자기가 장에게 준 것이라고 증언하여 그를 구해 준다. 여기서 장은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뜨게 되어 마들렌이라는 새 이름으로 사업을 하여 재산을 모으고 시장으로까지 출세한다. 그러나 경감 자베르만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그의 뒤를 쫓아다닌다. 때마침 어떤 사나이가 장 발장으로 오인되어 체포되고 벌을 받게 되었을 때, 장은 스스로 나서서 그 사나이를 구해 주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러나 곧 탈옥하여 예전에 자기가 도와주었던 여공의 딸 코제트가 불행한 생활에 빠져 있는 것을 다시 구출하여 경감의 눈을 피해서 수도원에 숨겨준다. 코제트는 그때 공화주의자인 마리우스와 사랑하게 된다. 장은 1832년 공화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구출하여 코제트와 결혼시킨다. 장 발장의 신분을 알게 된 마리우스는 일시 그를 멀리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그에게로 돌아온다. 장 발장은 코제트 부부가 임종을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둔다. 결국 이 작품은 중세 계급 사회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의 한 개인의 수난사를 그리고 있다. ●출제의도 제시문은 주인공 장 발장이 잘 살아 보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노력하지만, 가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은 빵을 훔치다가 체포되는 내용이다. 이런 문제를 통해 가난을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차원의 구조적인 문제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 의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빈곤 문제는 어떤 사회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관심거리가 될 수 있고,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 사회 문제화됨으로써 그 사회 자체의 존립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주된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그 원인이 개인에게 있든 사회에 있든 간에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그 대책은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보느냐, 사회적 차원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빈곤의 문제를 사회적 책임으로 볼 때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회 제도를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모든 국민들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복지 국가를 지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 발장의 행위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국가가 져야 한다는 관점을 지닐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사회 문제가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해 보도록 하고, 그와 관련된 논의 전개 능력을 평가하고자 하는 데 출제 의도가 있다. ●생각하기 이 논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빈곤 문제를 개인적 책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사회 복지 정책의 관점에서 빈곤 문제를 국가가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빈곤 문제를 개인적인 책임으로 본다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빈곤 문제는 개인적 차원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관점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장 발장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이라는 측면에서 빈곤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IMF 경제 위기 이후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빈곤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런 현상을 순수하게 개인의 노력에 의해 극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이 논술문의 서론에서는 빈곤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보는 입장과 사회에 있다고 보는 입장이 있음을 정리하고, 전자의 주장에는 문제점이 있다는 정도로 내용을 제시하면 다루려는 논의의 방향도 정리가 된다. 둘째 논점은 현대 사회가 지향하는 복지 국가의 관점에서 국가가 빈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구체적인 활동으로 사회 보장 제도의 실시나 각종 국가 정책을 제시하면 될 것이다. 빈곤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모순점과 관련이 있으므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책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을 본론에서 언급해야 한다. ●어떻게 쓸까 이 문제는 가난 문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국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그러므로 주제의 방향은 사회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잡을 수 있다. 먼저 서론 부분에서는 문제의 출제 의도를 고려하여 빈곤 문제를 보는 관점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다. 빈곤 문제를 개인적 측면에서 볼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측면에서 볼 것인지에 대해 언급해 글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본론에 들어가서는 빈곤 문제를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된다는 측면에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빈곤 문제가 개인적 노력으로 쉽게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토대로 가난 대물림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그것의 구체적인 예로 제시문에 드러난 장 발장의 예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논의의 심화를 위해서 빈곤의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보는 관점의 문제점을 제시하면 좋다. 실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기회 균등의 보장,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의 보장 등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사회 복지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된다.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사회 복지 정책 등에 대해 언급하면 된다. 결론에서는 논의한 내용을 마무리하여야 하는데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적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좋을 것이다. 이석록 서울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9)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대일본제국의 애국적 지식인’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호소이 하지메란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한일합병(1910년)을 전후해 ‘동경아사히신문’과 ‘한일전보통신사’ 기자로 다년간 한국에 체류했다. 갓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호소이는 흥미를 느꼈고 나름대로 많은 ‘연구’도 했다. 그런 호소이에게 1919년의 기미독립운동은 전혀 뜻밖의 사태였다. 무지렁이로 보였던 한국인들이 수백만 명씩이나 길거리로 뛰쳐나와 독립을 요구할 줄 그는 미처 몰랐다. 한낱 정치군인에 지나지 않는 조선총독이 그걸 짐작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당한 한국전문가 호소이 자신도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독립만세운동이 좌절되자 한국엔 예언서 ‘정감록’이 더욱 인기를 끌었다. 대한독립이 박두했다는 둥, 신천지가 열릴 거라는 둥 갖가지 소문과 예언이 한반도를 뒤덮을 지경이었다. 특히 1921년부터는 계룡산을 중심으로 숱한 신흥종교단체들이 등장해 위세를 떨쳤다. 겉으론 종교를 표방했지만 은연중 독립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파악한 조선총독부는 정감록 비상이 걸렸다. 1922년 겨울, 호소이는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부탁을 받았다.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라는 것이었다. 동경의 자택 서재에 틀어박혀 호소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반도는 우리 대일본제국에 무엇인가. 제국의 용맹스러운 장졸(將卒)들이 목숨 바쳐 강적 청나라도, 러시아도 연달아 무찌른 다음 어렵게 얻어낸 제국의 새 영토가 아닌가. 저 버러지 같은 한국 놈들은 천황폐하의 신민이 된 영광을 모른다. 놈들은 감히 독립을 바라고 있다. 훈련된 군대도 총칼도 없이 맨주먹으로 일어서려는 무지막지한 저들의 맨주먹을 쇠뭉치로 둔갑시키는 것은 독립에 대한 부질없는 열망이다. 거기 불 붙이는 부싯돌이 바로 정감록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정감록을 처단할 것이다. 나 호소이로 말하면 천황폐하의 뜻에 언제나 기꺼이 순종하고 순수한 대일본제국 신민의 고귀한 혈통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는 위대한 제국의 충량한 신민이 아닌가. 우리 대일본제국으로 말하면 단일하고 순수한 혈통이 천만대를 두고 이어져온 아름다운 나라. 그에 비할 때 이른바 저 한국 놈들은 어떤가. 놈들은 우선 생리학적으로 열등하다. 혈액만 하더라도 한국 놈들의 피는 ‘거무칙칙하고 더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조 50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당쟁이 일어나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지만 나라꼴은 늘 엉망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 놈들은 유전인자 자체가 불순하고 열등하다. 따라서 놈들에게 밝은 미래란 있을 수가 없다. 오직 천황폐하의 자애로운 품속에 있을 때만 그들은 행복을 바랄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나는 이미 두 권의 저서에서 명확히 입증했다.‘조선문화사론(朝鮮文化史論)’과 ‘조선 문제의 근본적 해결(朝鮮問題の根本的解決)’이 그것이다. 한국에 대한 나의 전문적인 연구는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위해 바쳐질 것이다. 실용성이 없는 학문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대일본제국의 발전을 위해, 무지하고 악랄한 한국 놈들의 순화를 위해 나의 저술은 두고두고 쓰일 만한 것이다. 탁상공론으로 걸핏하면 양심을 들먹이는 비겁하고 위선적인 놈들이 있어 훗날 나 호소이를 대일본제국의 어용학자(御用學者)라고 불러도 좋다. 제국의 영예를 위한 나의 일편단심은 그럴수록 더욱 밝게 드러날 것이다. ●정감록을 죽이는 묘책 호소이는 묘안을 찾기 위해 좀더 생각했다.‘도무지 정감록이란 무슨 책이냐. 조선시대 위정자들도 몹시 두려워했던 책이 아니냐. 위정자들은 정감록을 소지하거나 퍼뜨리는 일체의 행위를 범법 행위로 간주했다. 그런데 혹독한 금압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감록은 널리 퍼져나갔다. 지금 반도의 덜떨어진 한국 놈들이 감히 독립을 바라는 것도 다 그놈의 정감록 때문이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공개하라. 그렇다, 금단의 예언서 정감록을 죽이는 방법은 공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감록은 신비함을 잃게 된다. 신비성을 잃어버린 정감록이라면 이미 반쯤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또 하나. 기왕에 공개할 바엔 정감록의 정본(正本)을 만드는 거다. 바로 이 호소이가 대일본제국의 정치적 이익에 봉사할 정감록의 정본을 결정한단 말이다. 총독부에서 수집해 놓은 정감록의 이본들을 자세히 살펴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 선동성이 별로 없는 텍스트를 골라 공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 텍스트에 살짝 손을 댈 수도 있다. 아주 심하게 손을 대면 조작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영악하고 의심 많은 한국 놈들을 상대로 하는 일인 만큼 더욱 주도면밀해야 한다. 나는 정감록을 순화시킬 뿐이다. 이것은 변조나 개작이 아니다. 나는 대일본제국과 천황폐하를 위해, 한반도와 한국 놈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정감록을 편집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잊지 말아야 될 일이 또 있다. 이렇게 교묘한 수단을 부려 김을 빼놓더라도 한국 놈들은 순화된 나의 정감록을 다시 개악하거나 제멋대로 해석할 우려가 있다. 놈들은 워낙 피가 더럽기 때문에 제멋대로니까. 그들의 망령된 행위를 막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을까. 그래, 예방주사를 놓자! 정감록은 이래서 진짜 믿을 것이 못 된다. 이런 식으로 계몽적인 비평을 잔뜩 써 가지고 독자 놈들의 배를 채우는 것이다. 정감록의 대가 호소이가 만든 정감록 정본의 맨 앞에 실린 비판을 읽게 하자. ●동경판 정감록에 대한 불만 대일본제국의 충량한 신민 호소이는 이미 수집된 정감록 이본들을 널따란 책상 위에 펼쳐놓고 수술을 시작했다. 일제는 이미 오래 전에 광개토대왕비문까지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변조했다. 정본이 따로 존재할 리도 없던 정감록을 개작하는 것쯤이야 호소이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그의 솜씨와 애국심은 참으로 대단해 불과 몇 달 만에 ‘정감록비결 집록’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인들에겐 억압의 상징인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정감록을 죽이기 위한 음모가 결실을 맺은 날은 1923년 2월15일이었다. 이것이 사상 최초의 정감록 인쇄본이다. 도쿄판 정감록은 인기가 대단했다. 초판으로 몇 부를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출간된 지 약 보름 만에 제3판을 제작할 정도였다. 도쿄판은 아마 일본에서도 상당히 팔렸겠지만 주로는 ‘식민지 조선’에서 소비됐을 것이 뻔한 이치였다. 호소이가 바란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도쿄에서 만든 정감록으로 한국의 정감록 세계를 평정한다는 목표는 어쩌면 단시일 내에 달성될 듯도 하였다. 도쿄서 들어온 정감록이 잘 팔려 나가자 한국의 출판계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정감록을 찍어내면 돈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호소이의 민족성 비판에 강한 불만이 제기되었다. 내놓고 맞싸울 형편은 안 되었지만 정감록까지도 ‘그 잘난’ 일본인의 손으로 다듬어진 책을 봐야 되는가 하는 강력한 반발이 없지 않았다. 동경판의 뚜껑을 열어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경악했다. 호소이는 무지한 한국 사람을 계몽한답시고 무려 50쪽이나 되는 정감록 비평을 썼다. 정감록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치고 나아가 한국 사람의 타고난 ‘야만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논지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한국인들은 태초부터 불합리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련한 한국 민족의 정신적 미성숙은 그들이 정감록과 같은 미신에 맹목적으로 빠져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이렇게 유치하고 야만적인 성격이 한국민족의 본성이다. 국제적으로 저열한 한국의 민족성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반도의 역사 및 지리적 조건이 빚어놓은 결과다. 당시 유행하던 지리적 결정론을 빌려 호소이는 ‘미개한’ 한국인을 질타했다. 귀신을 숭배하고 점치기를 좋아하는 풍습은 당시 일본사회에서 더욱 성행했다. 그러나 일본민족의 위대성을 맹신한 호소이의 눈에는 그런 현상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야만적’인 한국인까지도 호소이는 마음속 깊이 사랑했던 것일까. 그는 하루바삐 정감록 신앙에서 한국인을 구출하여야만 된다고 믿었다. 합리적이고 발달된 현대 일본사회의 참된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한국인은 정감록 신앙을 포기해야 된다. 이것이 호소이의 변(辯)이었다. 그러나 1923년 동경판 정감록을 간행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대일본제국의 번영을 위해 정감록이라는 정치적 폭탄에서 뇌관(雷管)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동경판이 제3판에 돌입한 지 보름 정도 지난 1923년 3월19일 김용주가 편찬한 정감록이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편찬에 나선 김용주는 호소이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는 정감록의 내용에 대해 아무런 비평도 보태지 않았다. 딱히 정감록을 옹호하지는 않았으나 이것은 호소이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었다. 굳이 김용주가 정감록을 신앙하였다거나, 민족주의자였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정감록에 대해 아무런 비평을 가하지 않은 데는 호소이의 지나친 악평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밖에도 김용주에게는 정감록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첫째, 당시 많은 한국인들은 정감록의 내용을 틀림없는 예언으로 믿고 있었다. 식민지의 힘없는 지식인에 불과했던 김용주로서는 대중의 그러한 열망에 굳이 찬물을 끼얹을 이유가 없었다. 설사 그가 남다른 애국심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대한독립이 된다고 믿고 있는 동포들의 기대심리를 비난할 필요는 없었다. 둘째, 단순히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잠재적인 독자들의 희망을 꺾어서는 안 됐다. 김용주의 편집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호소이에 대한 반감을 비롯해, 독립에 대한 기대와 상업적 목적이 골고루 다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김용주는 정감록의 신빙성에 대하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또 하나의 정감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은 한성판이라 불릴 만했다. 한성판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동경판과 공통되는 부분도 상당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두 판본이 내용 면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매사를 곧이곧대로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민간에 퍼져 있던 허다한 비결 가운데 어느 것은 호소이만, 또 다른 것은 김용주만 수집해서 자연히 그렇게 됐다고 할 것이다. 실제 정감록은 수백 년 동안 필사본으로 암암리에 전파되었기 때문에 각자의 수집본이 서로 다를 수가 있다. 그렇다면 동경판과 한성판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비결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야 물론 좀 더 널리 퍼져 있던 유명한 예언서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전국 어디에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누구나 손쉽게 수중에 넣을 수 있는 그런 대표적인 예언서 말이다. 나는 이런 입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동경판을 편집한 호소이가 매우 국수주의적이었단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수집된 정감록을 모두 출판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 달리 말해 진인출현이나 대한독립의 메시지가 약한 ‘순화된’ 비결만을 선별적으로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그는 ‘고약한’ 내용의 예언까지 인쇄에 부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김용주는 달랐다. 그는 도쿄본의 상당수를 답습하면서도 도쿄본에 실리지 못한 다른 비결들을 많이 포함시켰다. 김용주는 호소이가 정감록의 정본을 만들려고 한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쿄판이 정감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진짜 정감록은 훨씬 더 위험한, 폭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정감록을 출간하지는 못했다. 총독부의 검열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결국 호소이의 뜻대로 되다 당연히 김용주의 정감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은 조선총독부의 의도와 배치된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김용주의 한성본이 딱히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점이 없지 않아 조만간 도태되어야만 될 책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식민지 한국의 정세는 한결 경색됐다. 이른바 전시총동원체제가 작동돼 비상시국이었다. 엄격한 사상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정감록에 대한 통제도 한 단계 더 나갔다. 그 무렵 새로운 정감록이 나왔다. 현병주의 ‘비난정감록진본’이었다. 마침 경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를테면 경성본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해명돼야 할 문제가 있는 책자였다. 우선 표면상 출간연도가 미상이란 점이 문제다. 책의 간행지를 ‘경성(京城)’이라고 표기해 놓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식민지시기 서울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다. 경성본이 나온 시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내기 위해 나는 본문의 표기법을 자세히 분석했다. 문장의 구조와 맞춤법이 현대의 격식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경성본의 간행시기를 1930년대 중반 이후로 확신한다. 경성본은 내용면에서도 앞서 간행된 한성본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경성본은 정감록이 사실무근의 허망한 책자라는 논설을 싣고 있다. 편자 현병주는 정감록의 가치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을 보류한 김용주와는 달랐다. 하지만 현병주가 단순히 일본인 국수주의자 호소이를 추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정감록의 허구성을 비판하였을 뿐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을 한국인의 저열한 민족성에서 찾지는 않았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점은 현병주가 비결의 내용 중에서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대목에 대해 일일이 비판을 가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비결의 본문에 길지(吉地)에 피난을 가더라도 피난 시기에 따라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부분이 있다. 현병주는 바로 그 구절의 끝에 괄호를 치고는 “생명을 건지는 땅 중에도 종종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비꼬는 투로 주석을 붙였다. 이와 같이 조목조목 정감록의 내용을 비판함으로써 현병주는 정감록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 했다. 호소이의 정감록 말살 의도는 현병주에 이르러 더욱 공교해졌다. 나는 현병주가 친일파였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정감록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감록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현병주는 호소이의 완벽한 후배다. 현병주는 좀더 중요한 점에 있어서도 호소이의 전통을 계승했다. 나는 지금 경성본에 실린 비결의 내용을 문제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호소이는 35종의 선별된 비결을 공개했다. 김용주는 그보다 16종이 더 많은 51종을 간행했다. 그런데 경성본에는 25종만 실려 있다. 현병주는 호소이의 동경본과 김용주의 한성본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비결로 한정했다. 결과적으로 말해 그는 호소이가 간행한 비결의 일부만이 정감록의 정본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기여했다. 호소이가 공개한 35개의 비결 가운데 25종은 광복 이후 간행된 여러 정감록에도 빠짐없이 등장한다.20세기 후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정감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호소이의 비결을 정본으로 대접하게 됐다. 그렇게 된 줄이나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장영달 병장 구하라”

    “장영달 병장 구하라”

    ‘장영달 병장 구하기’가 가능할까? 열린우리당 재야파가 당의장 경선의 대표주자로 밀고 있는 장영달 후보의 선출직 상임위원 5인 진입 여부를 두고 범개혁 진영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재야파는 지난 3월10일 예비선거를 앞두고 386의원들이 ‘송영길 일병 구하기’에 적극적으로 나서 거의 순위 밖이던 송 후보를 3위로 끌어올린 기억을 내세우며 ‘역전 신화’를 다시 쓸 수 있다고 얘기한다. 장 후보 진영은 국민정치연구회(국정연) 소속 43명 의원들을 독려하는 가운데 29일 여론조사에서 4%포인트 이상의 상승세가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특히 27일 서울시당위원장 선거를 마지막으로 시·도당중앙위원 경선이 끝난 상황에서 ‘장영달 후보 선대본부장’을 맡은 문학진 의원의 발걸음이 더욱 바빠졌다. 지역적으로 서울 이인영, 경기 문학진, 대전 선병렬, 전북 최규성, 전남 유선호 의원 등이 맡아서 집중 마크하고 있다. “당의 안정을 위해 장영달을 포기하면 안 되지 않느냐.”는 재야파의 ‘협박성(?)’ 읍소는 유력한 1위 후보에 오른 문희상 후보 진영을 비롯해 송영길·한명숙 후보진영에도 일정 부분 공감대를 얻어가는 분위기다. 각 진영에는 과거 ‘운동’을 공유했던 선·후배, 동료들이 넓게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후보측의 한 의원은 “장 후보를 버리고 간다면 도대체 열린우리당이 개혁적으로 리모델링한 한나라당과 어떤 차별성을 찾을 것이며,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개혁적·이념적 공세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부에서는 ‘장 병장 구하기’가 30일 오후 각 후보진영이 내놓을 여론조사 결과와 연동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동영계이자 재야운동권 출신 의원은 “장 후보가 ‘상승’분위기를 탄다면 ‘표 나누기’를 통한 구출 희망이 있다.”고 내다봤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책꽂이]

    l경제·실용l ●내안의 게으른 돼지(마르코 폰 뮌히하우젠·헤르만 쉐러 지음, 배진아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기업 내에서 각종 전략들이 번번이 실패하는 원인을 내부의 적에서 찾는다. 내부 훼방꾼의 정체를 파악하고 퇴치하는 방안을 담았다.1만 1000원. ●부자IQ, 내안에 부자능력 있다(김영한·하공명 지음, 서울문화사 펴냄) 최근 4∼5년 사이에 부자가 된 사람들 300명을 만나 부자가 되는 능력을 분석했다. 부자의 비결은 단순한 재테크 기술이 아니라 부자가 되는 본질적 능력에 있음을 밝힌다.9000원. ●황홀한 맛기행(김재준 지음, 랜덤하우스 중앙 펴냄) ‘맛의 달인’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국에서 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몇몇만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들을 소개한다.9000원. l유아·아동l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마거릿 초도스 지음, 민유리 옮김, 베틀북 펴냄) 꼬마 숙녀 엘라는 입고 싶은 옷을 맘대로 입지 못하게 엄마 아빠 언니가 늘 간섭하는 게 불만인데…. 다른 사람의 개성과 취향을 인정할 줄 아는 아량을 웅변하는 그림책.4세 이상.8500원. ●어떤 느낌일까요?(파멜라 힐 네틀턴 지음, 이문향 옮김, 애플트리태일즈 펴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우리 몸의 오감을 이해하게 해주는 해설그림책. 실생활 소재를 이야깃감으로 삼아 그림이 더욱 친숙하다.4세 이상.8000원. l초등·청소년l ●로마 신화(제랄딘 맥코린 지음, 정희경 옮김, 마루벌 펴냄) 트로이 멸망과 로마제국 건설, 시리우스 별자리에 얽힌 사연, 불칸이 아름다운 아내 비너스를 길들인 이야기…. 간결한 현대적 문체로 다듬은 15편의 로마신화들을 통해 고대 로마인들의 생활방식과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초등생.1만 4000원. ●제닝스, 동물 구출에 나서다(앤터니 버커리지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 펴냄) 영국에서 반세기 넘게 사랑받아온 ‘제닝스 시리즈’. 장난꾸러기 제닝스와 친구들은 동물들의 안식처인 호킨 아주머니 농장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동물 구하기에 팔소매를 걷어붙이는데…. 동물사랑을 실천하는 아이들의 자립적 사고와 적극적 행동이 구체적으로 잘 묘사됐다. 초등3년 이상.7800원.
  • 北·이란 核해결 재확인할 듯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일 저녁(한국시간 3일 오전) 의회에서 새해 국정연설을 통해 2기 정부의 주요 정책 목표를 밝힌다. 우선 대외정책에서는 이라크 총선을 포함한 ‘중동 민주화’의 노력에 연설의 대부분을 할애할 것으로 보인다. 또 국내정책에서는 사회보장의 개혁이 핵심 주제가 될 전망이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그가 미국을 앞으로 4년 동안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라크 선거가 언급될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승리와 대규모로 투표에 참여하는 용기를 보여준 이라크 국민의 열망을 축하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미국은 이라크 군대와 경찰이 법 집행 책임과 폭도들과의 싸움을 떠맡을 수 있게 되면 이라크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구체적인 철수 시한 등은 제시하지 않을 방침이다. 매클렐런 대변인은 또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대한 질문에 “부시 대통령은 사회보장을 강화하고 (붕괴로부터) 구출하는 방안에 대해 과거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할 것”이라면서 “미국민에게 사회보장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가능한 방법들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얘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대외정책을 밝히면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부터 말해온 대로 일단 6자회담에 계속 주력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사에서 거듭 사용했던 ‘폭정’(tyranny)이란 단어가 북한에 대해 다시 사용될지는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은 북한이 미국측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북한이 회담에 복귀하면 그 때는 생산적으로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라이스 장관은 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은 얼토당토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dawn@seoul.co.kr
  • DJ - 한통련 31년만에 재회

    DJ - 한통련 31년만에 재회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구출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구명운동에 앞장선 곽동의(74)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전 의장을 14일 다시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찾아와 눈물을 글썽이는 곽 전 의장과 30여년 만에 두 손을 굳게 잡았다. 한통련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다 1978년 대법원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규정됐다. 입국금지된 곽 전 의장은 한통련 고국방문단의 일원으로 지난 10일 44년 만에 고국땅을 밟았다. 곽 전 의장은 새로 발급받은 ‘대한민국 여권’을 김 전 대통령에게 보여주며 “우리가 올 수 있었던 것은 6·15공동선언으로 정치적 여건이 성숙됐기 때문”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오늘이 일생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감개무량하다.”면서 “군부독재는 나를 한민통(한통련의 전신) 의장으로 몰아 반국가단체의 괴수라며 사형을 선고했지만 최근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한통련의 누명도 벗겨졌다.”고 화답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우리나라처럼 국내외 민주인사들이 피흘리며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가 없다.”면서 “여러분같은 개혁적 인사들이 세계화 시대 한국의 전위부대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駐이라크대사 태만… 징계자체결정”

    감사원은 지난 6월 이라크 테러집단에 납치·피살된 김선일씨 사건과 관련,김씨의 납치가 알자지라 방송보도에 의해 알려진 6월21일까지 정부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최종 판정을 내렸다. 감사원은 지난 3개월간 실시해온 ‘김선일씨 피랍·피살사건’ 감사 결과를 24일 발표하고,재외국민 안전보호조치 태만에 대한 책임을 물어 외교통상부에 임홍재 주이라크 대사의 징계 여부를 자체 결정하도록 통보했다. AP통신 서울지국으로부터 김씨 실종문의 전화를 받았던 외교부 정우진 외무관에 대해서는 “상부에 보고하거나 영사과·중동과에 확인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지나쳤다.”면서 징계를 요구했다. 김선일씨가 일했던 가나무역의 김천호 사장에 대해서는 김선일씨 구출 노력보다는 개인사업에 열중했다고 결론짓고 형법상 유기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정부가 김씨 피랍을 최초로 인지한 시점은 알자지라 방송이 주카타르 대사관에 피랍 확인을 요청한 6월21일 오전 4시(한국시각)로 파악됐다.미군이 김씨의 피랍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김씨 살해위협 방송 후 24시간이라는 촉박한 시한,‘파병철회’라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 조건 때문에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면서 “정부가 김씨 피랍이 알려진 뒤인 22일 파병 원칙을 재천명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한국정부 조급한 파병 재확인이 문제”

    “한국정부 조급한 파병 재확인이 문제”

    이라크 테러단체를 상대로 고(故) 김선일씨 구명협상을 벌였던 가나무역 소속 이라크인 변호사 E(여)씨는 3일 “김씨 피랍사실이 한국에서 처음 방송된 뒤 한국 정부가 서둘러 파병재확인 원칙을 발표했다.”면서 “이는 (김씨를) 죽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E씨는 이날 국회 ‘김선일씨 피살사건 청문회’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이같이 말하고 “(한국 정부의 파병 발표는) 한 명을 위해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는데,납치단체와 저,중간협상자,이라크 국민도 그렇게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E씨는 또 “6월 18,19일 사이에 파병 발표가 있었는데,납치자들은 현재 파병된 군대를 철군하라는 게 아니라 한국군의 (추가) 파병결의 철회를 요청했다.”고 말했다.E씨는 “김선일씨는 (피랍 후) 3주 동안 안전하게 있었다.”면서 “이를 봐도 납치자들이 원래부터 김씨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날로 3일간의 청문회를 마감한 국조특위는 E변호사가 “6월21일 주 이라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김선일씨 구출을 위한 노력을 설명했다.”고 밝힘에 따라,“E변호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한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을 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또 AP통신 기자의 전화를 받고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외교부 정우진 외무관도 고발키로 결의했다. 한편 이날 국정원 관계자는 이라크 현지에서 한국인을 겨냥한 테러단체에 대해,‘하느님의 사자(The Lions of God:아사드 알라)’라는 테러단체가 활동 중이라는 첩보가 입수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소영 박록삼 김준석기자 symun@seoul.co.kr
  • 불가리아인 인질 1명 또 살해

    이라크에서 인질 살해를 둘러싼 위기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이라크 저항세력들은 13일 불가리아인 인질 1명을 참수한 데 이어 24시간 내에 다른 인질 1명도 참수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재건작업 참여를 위해 이라크에 진출한 사우디아라비아 회사 소속의 이집트 인질도 72시간 내에 처형하겠다는 협박을 새로 내놓았다.인질 처형 문제가 미국에서 파병국으로,이제는 재건사업 참여회사로까지 그 외연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필리핀이 14일 인질로 잡힌 자국민 구출을 위해 조기철군을 시작,납치범들에게 승리를 안김으로써 철군을 관철시키기 위한 인질 참수는 더욱 빈발할 것으로 우려된다.이에 따라 인질 참수문제 해결이 이라크 임시정부는 물론 미국과 파병국 전체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5번째 인질 참수 불가리아 정부는 13일 지난 6월27일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에 피랍된 2명의 자국인 인질 중 1명이 피살됐다고 확인했다.이라크에서의 5번째 인질 살해다.이에 앞서 아랍어 방송 알자지라는 불가리아인 인질이 참수됐으며 미군에 수감된 이라크 포로들이 풀려나지 않으면 24시간 후 다른 인질 1명도 참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는 또 이라크에 진출한 사우디 기업 소속 이집트인 1명을 인질로 붙잡고 있다면서 사우디 회사가 72시간 내에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이 인질을 살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라크 임시정부가 안정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저항세력들의 인질 납치 대상이 연합군에 참여한 파병국 국민들에서 재건사업 참여 회사 소속 직원들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주목되는 미국의 대응 필리핀 정부는 14일 자국인 인질을 붙잡고 있는 무장세력들의 요구에 따라 이라크에 파견한 51명의 필리핀군 가운데 8명이 철수하는 등 필리핀군의 철수가 시작됐다고 밝혔다.필리핀으로서는 인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안타까운 노력이라고 하겠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으로선 뼈아픈 타격을 입은 셈이다. 테러범들의 협박에 굴복하는 것은 테러를 더욱 부추길 뿐이라며 필리핀에 조기철군 요구를 거부할 것을 종용해온 미국은 필리핀군의 조기철군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지만 필리핀에 대한 대응책을 당장 내놓지는 않았다.그러나 이라크에 여전히 수십명의 외국인 인질이 잡혀 있고 필리핀의 굴복에 기세가 오른 저항세력들의 인질 살해가 더욱 빈발할 것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를 그냥 넘어갈 리 없다. 특히 불가리아는 인질 참수에도 이라크에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밝힌 데 비해 필리핀의 조기철군으로 대테러전 협력 전선에 균열을 부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필리핀에 대한 대응 조치가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거 바람 부는 이라크 이라크 경찰은 13일 하루 동안에만 527명에 이르는 범죄 용의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지난달 말 임시정부 출범 후 최대규모의 검거작전이다.그러나 체포된 범죄 용의자들 가운데 무장투쟁에 나선 저항세력은 별로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다드에서는 14일에도 임시정부 건물과 미 대사관이 소재한 그린존의 검문소 인근에서 차량폭탄이 폭발,최소한 10명이 숨지고 4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저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PD수첩(MBC 오후 11시5분) ‘문화’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보이지 않는 전쟁과 그 중심에 서 있는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을 취재했다.미국은 왜 유독 한국에만 FTA를 맺기 위해서는 BIT(한·미투자협정)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BIT의 선결 조건으로 스크린 쿼터 축소를 고집하는지 이유를 살펴본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성형미인이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으로 찾아간다.18세 모델인 ‘위안’양은 인공미인이라는 이유로 ‘미스 인터콘티넨털’대회에 참가자격을 박탈당했다.참가자격 박탈이 재론의 여지가 있다는 여론에 미인대회 측은 위안 양을 다시 초청했지만,위안 양은 출전을 거부한 상태이다. ●문화,문화인(EBS 밤 12시) 동양인 최초로 뉴욕대 연기학 MFA를 받고, 한양대에서 연기자들을 배출해온 ‘연기 전문가’ 최형인.가장 하고 싶은 배우,배우를 길러내는 교수,한 연극을 이끄는 연출가,한양레퍼토리의 대표. 어느 것 하나 싫지 않다.그녀의 손끝하나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연극 무대에서의 최형인을 만나본다. ●실제상황(iTV 오후 10시50분) 인천 남동공단에서 2년간 연이은 금고털이 사건이 발생했다.용의자에 대한 단서는 의문의 족적과 앞문이 뜯겨진 금고. 형사들은 동일수법임을 주목하고 전과자를 대상으로 용의자 추적에 돌입한다.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금고털이의 대부가 지목하는 한 사람,그를 추적한다. ●장길산(SBS 오후 9시55분) 장충은 장길산에게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뜻을 펴라고 이른다.최형기는 벼슬 자리에 오를 야심을 품고 현감 민재형에게 장길산을 잡아들이겠다고 큰소리친다.장길산은 오만석이 잡혀갔다는 얘기를 듣고 구출하기 위해서 나선다.장길산은 오만석을 구출하고,현감 민재형을 벌준다. ●대한민국 1교시(KBS2 오후 11시) 한선교 의원과 국민대표 연예인 가수 이현우가 출연한다.한선교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후 달라진 점과,초선의원으로서의 애로사항 등을 이야기한다.또한 춤으로 응원을 하는 보통 치어리더와 달리 공중돌기와 피라미드쌓기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고 있는 애크러배틱 치어리딩을 배운다. ●그대는 별(KBS1 오전 8시5분) 위세척을 마친 화연은 의식을 되찾고,금분은 화연을 안고 오열을 한다.병문안을 온 정우에게 화연은 모든 게 끝났다며 흐느껴 운다.퇴원한 화연은 세븐클럽을 만나기 위해 학교에 갔다 일직하는 정우를 만나러 온 민 회장 내외를 보게 되고,동시에 정우가 화신제과의 외아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
  • [독자의 소리] 해외공관 무책임에 분노/최남이(경남 창녕군 영산면)

    이라크에 근무하는 공관원 14명이 교민 57명도 챙기지 못하는 우리 외교 행태에 심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해외공관원의 임무중 하나는 해외주재원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지 아니한가.어떻게 57명의 신원도 제대로 맡기기 어려울 정도로 이토록 무책임하게 행동한단 말인가. 또 AP통신이 6월3일 고 김선일씨 피랍 여부를 외교부에 문의한 것이 사실이라면 즉각 외교부는 사실 확인과 외교력을 총동원한 구출 방안 마련을 강구했어야 했다.그런데도 문의전화를 예사롭게 여김으로써 최악의 사태를 유발한 것과도 같다.비록 정확하지 않은 정보라도 이라크 대사관 등에 김씨의 행방을 추적하고 조사시켰어야만 했다.당시 우리 외교력을 총동원했더라면 참수라는 최악의 결과는 면하지 않았을까 싶다.허술하고 무사안일한 대처 방법과 부실한 정보수집 능력이 이처럼 비참하고 암담한 결과를 가져왔으니 도대체 국민은 누굴 믿고 살아가란 말인가. 최남이(경남 창녕군 영산면)
  • [열린세상] ‘NO’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박상기 연세대 법대학장

    불길한 예상은 하였지만 현실이 된 김선일씨의 참혹한 죽음은 한국인은 물론이고 세계를 경악하게 하였다.정부가 다각적으로 구출노력을 하였다지만 처음부터 그의 생환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지금 모든 한국인은 이 끔찍한 사실 앞에서 참담한 심정이다.가족의 심정은 차마 헤아릴 수도 없다.아무 죄 없는 민간인을 납치,살해한 이슬람 무장단체의 잔인한 행동에 대하여 온 세계가 규탄하지만 무슨 소용인가.원한을 살 적국관계도 아닌 이라크에 가서 무고하게 살해된 김선일씨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정부는 이제 파병결정을 철회할 수도,그렇다고 전투병을 보내기도 망설여지는 상황을 맞았다.노무현 대통령은 파병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고,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그러나 전투병을 보내면서 재건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모순이다.굳이 재건을 위한 파병이라면 처음부터 서희,제마 부대와 같은 비전투 부대를 보내기로 하였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여론은 극도로 분열되고 악화될 조짐이 엿보인다.그러나 우리는 냉정하게 사태를 판단하여야 한다.한편에서는 이슬람 테러조직에 대한 응징을 주장하지만 9·11을 경험한 부시정권도 궁지에 몰린 형국이다.부시는 테러를 없애겠다고 이라크를 침공하고,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이라크 상황은 주지하다시피 무법천지와 같은 혼란상태이고,그로 인하여 전 세계가 테러공포에 떨고 있다.무언가 잘못된 것이다.부시에 의한 이라크 전쟁은 이미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판정이 난 것과 다름없다.그래서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미국의 파병요청을 거부하였다.그리고 파병을 한 국가들도 군대를 철수시키기로 하였다.우리 역시 흔쾌히 파병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많은 반대가 있었고,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미국의 강력한 파병요구가 우리를 지금의 상황으로 몰고 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라크에 전투병 파병을 결정한 것은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이라크 전쟁에서 한국의 국가이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라크 국민을 위한 파병결정이었는지는 더욱 의문이다.미국과의 관계,재건복구사업 진출과 같은 경제적 이유 등 우리의 이익만을 좇아 파병결정을 하였다면 이를 두고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 파병이라고 말하기 힘들다.국가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이러한 비극적 사태를 접하고 다시 한번 자주국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갖지 못한 국가는 진정한 자주국가일 수 없다.우리 정부는 얼마 전 미군에 의한 비인간적인 이라크 포로학대를 보고도 제대로 된 비난성명도 내지 못한 바 있다.이와 같이 인권문제처럼 보편적이고 중요한 사안까지도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한 우리나라는 국제관계에서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미국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반미로 몰아가고,반미를 곧 반국가적 행동으로 바라보는 논리가 우리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6·25 전쟁에서 우리를 도운 미국에 대해 고마움의 감정을 갖는 것과 미국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구별할 줄 아는 성숙함을 갖출 때도 되었다.반한적 발언을 잘하는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의 책 제목과 같아 마음에 걸리지만 정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자존심 있는 한국이 보고 싶다.지구상에는 우리보다 국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당당한 국가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이라크에 비전투부대를 파병하고 있다.비전투부대인 만큼 이라크 국민과 갈등없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고,희생자도 없었다.그러나 이미 이라크 상황이 미국도 진퇴양난인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에서 추가파병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답답하다.국가간의 약속이행을 위해서,그리고 테러리스트에 대한 굴복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위하여 파병을 한다면 비전투부대를 보내야 한다.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을 희생시킬 수 있는 정책을 중단하여야 한다. 박상기 연세대 법대학장˝
  • 우리당 진상조사단, 김천호사장과 국제통화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25일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피살된 김선일씨의 실종 사실을 지난 3일 알았고,15일쯤부터 무장세력과 접촉했다고 밝히고 “최대한 빨리 귀국하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김선일씨 피살사건 진상조사단(단장 유선호 의원)은 25일 저녁 국회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조사단이 김 사장 및 임홍재 주 이라크 대사와 나눈 국제통화 내용을 소개했다.유 단장과 조사단원인 정의용·최성·윤호중·이화영 의원은 오후 3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국회방송실내 스피커폰을 이용해 이라크 한국대사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 대사 및 김 사장과 통화했다고 밝혔다. ●“아무런 요구하지 않았다” 김 사장은 열린우리당 진상조사단과의 전화통화에서 “(김선일씨의) 행방이 묘연해졌음을 안 것이 6월3일부터였고,10일까지는 경찰이나 병원을 찾아다녔다.”고 말하고 “이런 사실을 한국대사관에 알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6월14일에서 16일 사이 김선일씨의 억류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고,납치 사실은 이라크 현지 직원들과 변호사를 통해 알게 됐다.”며 “협상은 억류 무장세력들과 한 것이 아니라 팔루자에서 가장 큰 무장세력을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김 사장은 지난 23일 연합뉴스 바그다드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는 “6월10일께 김씨가 무장세력에 의해 억류중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었다. 김 사장은 “15일부터 무장세력과 2∼3회 정도 만나면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협상 과정에서 그들은 ‘곧 풀어줄테니 가서 기다리라.’고 했고,금전 등 요구 조건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무장단체로부터 ‘절대 무사하니 안심하라.그 대신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끝까지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그래서 20일까지는 김씨가 납치된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납치사건이 잘 해결될 줄 알고 대사관에 신고를 하지 않아서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협상 대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매우 당황했다.”며 “태도가 바뀐 이유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와 이라크 현지 직원 2명으로 구성된 협상팀과 함께 팔루자에서 (협상측) 단체를 접촉했다고 밝히고 “(상대측에서) 여러 명이 나왔는데 높은 사람이 와서 우리를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 얘기했다.”고 협상 상황을 설명했다.김 사장은 “처음에는 협상측 무장단체가 김선일씨를 납치한 단체와 상하관계라고 했는데 나중에 상하관계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직속세력이 아닌,관계가 없는 다른 세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해 사실상 엉뚱한 세력과 협상을 벌이다 구출 시기를 놓쳤을 가능성을 내비쳤다.그는 또 “팔루자의 (협상) 단체에서는 ‘한국사람들이 (자기들과) 별 상관이 없으니까 일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했고,우리는 지금까지 그쪽 단체를 믿었으나 하루아침에 뒤집혔다.”고 말하고 “그 이후에는 경황이 없었고 변호사가 (상대측과) 계속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안됐다.”고 덧붙였다.그는 “(김씨가) APTN의 비디오 테이프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아마 억류한 측이 그렇게 시켰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한국에) 들어가겠다.정리하고 난 이후 들어가겠다.”고 말했다.그는 “(현지)대사관으로부터 귀국을 막는 압력을 받은 일은 전혀 없고,오히려 빨리 한국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내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김선일씨가 고인이 됐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이루 다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다.”면서 “김씨는 이라크에서 봉사하려는 마음에 아랍어 공부도 했는데,기금을 조성해 김씨가 당한 일을 김선일의 이름으로 이라크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복수’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임홍재 주 이라크 대사는 우리당 조사단과의 통화에서 “지난 20일 김천호 사장에게 신원을 확인한 뒤에야 피랍사건을 알게 됐고,21일 아침 7시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통해 긴급 협조를 요청했으며 다국적군 사령부에도 연락을 취했다.”고 말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외교부 피랍문의 묵살 의혹

    AP텔레비전뉴스(APTN)가 지난 6월 초 김선일씨의 피랍 초기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배달받은 뒤 김씨의 피랍 사실을 우리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APTN의 모회사인 AP통신 잭 스톡스 미디어국장은 24일 “자사 서울지국 기자가 ‘김선일이란 이름의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실종된 사실이 있느냐.’고 지난 3일 외교부에 전화로 문의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의 말이 사실일 경우,김선일씨가 납치된 5월31일 직후 외교부가 외국 언론사로부터 김씨 납치의 단초를 제공받고도 이를 무시,안이한 대처로 자국민 보호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와 관련,갖가지 의혹의 진위 여부 규명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감사원에 조사를 요청했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윤 대변인은 “정부는 김씨의 피살사건과 관련된 몇가지 의문스러운 정황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감사원의 심도있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노 대통령은 이같은 논의결과를 수용,감사원에 외교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김선일씨 피랍 직후 납치 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다.’는 AP통신의 주장에 대한 진위 여부와 김씨 소속 회사 차원의 구출협상,현지 공관의 실질적인 역할 수행여부 등 김씨의 피랍에서 피살까지의 전반적 사실관계가 조사내용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이날 감사착수팀을 꾸려 가능한 이른 시간 내에 조사에 들어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변인은 “외국 언론사와의 진실 공방은 정부 부처의 신뢰성에 중대한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사항으로 판단,정확한 사실관계를 중립적으로 판단할 제3의 기관이 밝혀냄으로써 사건의 실체를 국민에게 알리고 국가신뢰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AP측은 이날 외교부로 보낸 팩스에서 “(문의를 받은 외교부)관계자는 김선일이라는 사람 등 어떤 한국인도 실종되거나 납치됐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면서 “한국인이 실종됐는지 여부를 단독으로 확인하기 위해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비디오테이프는 6월 초 바그다드에 있는 APTN 지국으로 배달됐다.”며 “비디오테이프에는 김씨가 납치됐거나 그의 의사에 반해 억류돼 있다는 어떤 표시도 없어 방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AP측은 외교부 어느 부서의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이에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문 답변에서 “외교부와 정부 관련기관이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AP통신은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지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이어 우리측에 책임이 있다면 관련부서는 책임을 지고,관련자는 엄중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외교부 피랍문의 묵살 의혹

    AP텔레비전뉴스(APTN)가 지난 6월 초 김선일씨의 피랍 초기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배달받은 뒤 김씨의 피랍 사실을 우리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APTN의 모회사인 AP통신 잭 스톡스 미디어국장은 24일 “자사 서울지국 기자가 ‘김선일이란 이름의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실종된 사실이 있느냐.’고 지난 3일 외교부에 전화로 문의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의 말이 사실일 경우,김선일씨가 납치된 5월31일 직후 외교부가 외국 언론사로부터 김씨 납치의 단초를 제공받고도 이를 무시,안이한 대처로 자국민 보호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와 관련,갖가지 의혹의 진위 여부 규명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감사원에 조사를 요청했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윤 대변인은 “정부는 김씨의 피살사건과 관련된 몇가지 의문스러운 정황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감사원의 심도있는 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노 대통령은 이같은 논의결과를 수용,감사원에 외교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김선일씨 피랍 직후 납치 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했다.’는 AP통신의 주장에 대한 진위 여부와 김씨 소속 회사 차원의 구출협상,현지 공관의 실질적인 역할 수행여부 등 김씨의 피랍에서 피살까지의 전반적 사실관계가 조사내용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이날 감사착수팀을 꾸려 가능한 이른 시간 내에 조사에 들어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변인은 “외국 언론사와의 진실 공방은 정부 부처의 신뢰성에 중대한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사항으로 판단,정확한 사실관계를 중립적으로 판단할 제3의 기관이 밝혀냄으로써 사건의 실체를 국민에게 알리고 국가신뢰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AP측은 이날 외교부로 보낸 팩스에서 “(문의를 받은 외교부)관계자는 김선일이라는 사람 등 어떤 한국인도 실종되거나 납치됐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면서 “한국인이 실종됐는지 여부를 단독으로 확인하기 위해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비디오테이프는 6월 초 바그다드에 있는 APTN 지국으로 배달됐다.”며 “비디오테이프에는 김씨가 납치됐거나 그의 의사에 반해 억류돼 있다는 어떤 표시도 없어 방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AP측은 외교부 어느 부서의 누가 전화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이에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문 답변에서 “외교부와 정부 관련기관이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AP통신은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지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했다.이어 우리측에 책임이 있다면 관련부서는 책임을 지고,관련자는 엄중 문책하겠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 [김선일씨 피살] 정치권 긴급 대책회의

    김선일씨가 이라크 테러단체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밝혀지자 정치권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여야는 23일 예정됐던 회의를 취소하거나 김씨 피살 대책회의로 주제를 바꾸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김씨 빈소가 마련된 부산에 조문단을 보냈고,이라크 추가 파병을 둘러싼 여론 향배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긴급 현안질의를 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열린우리당은 이날 오후 예정한 중앙위원회 워크숍을 취소했다.아침에 긴급 소집된 의원총회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일부 의원들은 김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검은 넥타이를 맸으며 추도 묵념도 1분간 했다. 신기남 의장은 확대 간부회의에서 “충격과 슬픔의 날”이라면서 “우리가 노크한 것은 지옥의 문이 아니라 평화와 재건의 문이다.민간인 살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한 천정배 원내대표는 “오늘은 애도와 긴급대책 마련을 위해 의총을 연 만큼 다른 발언은 삼가달라.”며 추가파병 재검토 확산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결연한 표정이었다.김혁규 상임중앙위원은 “여·야,국민 모두 이럴 때일수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파병문제를 둘러싼 국론 분열을 경계했다. ●“재발방지 대책 마련하라” 한나라당도 이날 아침 8시 박근혜 대표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갖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은 반인륜적 행위로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며 테러 행위를 비판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김씨 시신이 발견된 시간에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통상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구출의 희망이 보인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생각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의원 총회장에서도 협상력 부재 등 정부의 안이한 대처를 비판하는 질타가 이어졌다.“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도대체 누구와 만나 무슨 얘길 나눴는지 발표해야 한다.”(박진 의원),“이번 사태를 한나라당은 기존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자.한·미 동맹도 중요하지만 한·중동,한·이라크 관계도 중요하다.”(권오을 의원)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한나라당은 ‘쓴소리’에서 그치지 않고 사태 수습을 위한 초당적 지원도 약속했다.이한구 정책위 의장은 “정부가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초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병 철회를 촉구했건만” 민노당과 민주당도 충격과 비탄 속에 안이한 정부 대처를 질타했다. 이날 새벽 1시45분쯤 국회 본청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비보를 듣은 민노당 천영세 의원은 “납치 이후 목이 메도록 파병 철회를 촉구했건만 이런 불행한 사태가 오고 말았다.”면서 “정부와 공전 중인 국회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오늘이라도 당장 국회를 열어 대정부 질의를 해야 하고,외교부 장관도 국민이 피살된 데 대해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갑 박정경기자 eagledu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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