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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무회의 의결 안건] 조달수수료 납품대금 선납땐 20% 감면

    정부 조달사업 수요기관이 조달청에 대금을 선납하면 조달 수수료를 20%까지 감면받는다.정부는 17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조달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조달청이 수요기관을 대신해 납품대금을 지급하는 ‘대(代)지급’ 대상을 단가계약, 제삼자를 위한 단가계약, 2인 이상을 계약상대자로 하는 공급계약 등의 납품대금으로 규정했다. 단가계약은 여러 기관이 사용하고 수요가 잦은 물품의 단가를 정해 조달청이 계약하는 방식을 말한다.조달청은 수요기관이 대금 선급(先給) 의사를 통보하면 납입고지일로부터 14일 이내에 대금을 납부하며, 해당 수요기관에는 조달 수수료를 20%까지 감면해 준다. 이같은 대지급 대상 확대와 조달 수수료 감면 조치에 따라 중소기업 등 정부 조달사업 참여업체들은 신속한 대금결제가 가능해져 유동성 향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국무회의는 이와 함께 국가정보화 시행계획 수립에 관한 세부적 절차를 담은 정보화촉진기본법 시행령 개정안,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의 사업범위를 규정한 농촌진흥법 시행령 개정안 등 8개 법안 시행령과 중소기업 기술혁신 유공자 포상안 등을 처리했다.국무회의는 이밖에 최근 별세한 박세직 재향군인회 회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는 등 12개 부문 유공자 3379명에게 훈장 또는 포장을 수여하기로 의결했다.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부고] ‘한국 가곡의 거장’ 김동진 예술원 회원 하늘로

    [부고] ‘한국 가곡의 거장’ 김동진 예술원 회원 하늘로

    ‘가고파’의 작곡가이자 한국 가곡의 거장인 김동진 예술원 회원이 31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96세.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교회에서 찬송가를 들으며 서양음악을 접했다. 평양 숭실중에 진학해 바이올린과 피아노, 화성학, 작곡을 공부했다. ●숭실중 5학년때 ‘봄이 오면’ 첫 작곡 숭실중학교 5학년(현 고교 2학년)이던 1931년에 김동환의 시에 곡을 붙인 ‘봄이 오면’을 처음 작곡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이은상 작사의 가곡 ‘가고파’를 비롯해 ‘발자욱’, ‘뱃노래’ 등을 만들었다. 이 곡들은 널리 애창되며 가곡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1936년 일본고등음악학교로 유학가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1939년에는 만주 신경교향악단에 입단해 제1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6·25 전쟁 때에는 육군 종군작가단 단원, 해군정훈음악대 창작부장 겸 지휘자로 활동하며 수십곡의 군가를 작곡했다. 이후 서라벌예술대학 음악과 교수를 거쳐 경희대 음대 교수, 학장, 명예교수 등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다. ‘목련화’는 경희대 재직시 개교 25주년 기념 칸타타로 발표한 곡이다. ●판소리·서양음악 접목 ‘신창악’ 창안 ‘가고파’, ‘봄이 오면’ 뿐만 아니라 ‘진달래꽃’, ‘내 마음’, ‘못잊어’ 등 다양한 가곡을 작곡한 고인은 우리 귀에 친숙한 작품으로, 가곡의 대중화를 이끈 한편 한국 가곡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평가도 함께 받았다. 1979년부터는 판소리 창법과 서양음악 기법을 접목한 ‘신창악’을 창안해 ‘심청전’, ‘춘향전’ 등을 가극으로 만들어 보급에 힘썼다. 한국의 음악 예술에 다양한 가능성을 발굴하고 활발한 활동을 한 공로로 부일영화음악상(1962·1970), 서울시 문화상(1967), 국민훈장 모란장(1973), 3·1문화상(1974), 대한민국예술원상(1982), 은관 문화훈장(2000)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보림씨와 신영(사업), 신원(경희대 예술디자인대 교수), 신화씨 등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발인은 3일 오전 7시. (02)958-9549.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모닝 브리핑] 李대통령 새달 3~6일 지방서 여름휴가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고(故) 박세직 재향군인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고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빈소에 도착, “갑자기 일을 당해서 안타깝다.”면서 “항상 나라를 위해 사신 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다.”고 유족들에게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다음달 3일부터 6일까지 지방 모처에서 여름휴가를 보낸다. 이 대통령의 휴가에는 부인 김윤옥 여사를 비롯해 가족들이 동행한다. 이 대통령은 독서와 테니스로 휴식을 취하고 개각과 청와대 개편 등 하반기 정국 구상도 할 예정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환경보전 유공 39명 포상

    ‘제14회 세계 환경의 날’ 기념식이 5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승수 국무총리, 이만의 환경부 장관 등 각계 인사 1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환경부는 올해 환경의 날 행사 주제를 저탄소 녹색성장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국가비전 구현을 위해 ‘환경가치 제고를 통한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정했으며 ‘우리 모두가 녹색성장의 주인공’을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기념식에서는 한국식물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식물도감 집필 등 국내 식물학 발전에 공헌한 고(故) 이영노 원장에게 국민훈장모란장이 추서된다. 또 김성만 재단법인 송우이사장이 국민훈장동백장을, 민경석 경북대 교수가 홍조근정훈장을 받는 등 환경보전 유공자 39명이 정부포상을 받는다. 경기도 광주시는 수질오염 총량제를 전국 최초로 시행해 수도권 2400만 주민의 상수원을 깨끗이 유지한 공로로 단체 대통령표창을 받는다. 한편 이날 전국의 환경관련 기관·단체는 환경과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고, 4대강 유역에서는 민·관·군 5000여명이 상수원 보호를 위한 수중 정화활동도 벌인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캠퍼스 라이프]

    5일까지 대동제 경로잔치 ●청주대 총학생회가 3~5일 열리는 우암대동한마당 축제 기간에 경로잔치를 연다. 내덕2동 65세 이상 노인들을 초청, 위문공연과 식사대접을 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8회째를 맞는다. 올해는 지역 미용실의 후원을 받아 이·미용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한다. 한국IBM과 산학협력 합의 ●KAIST 2일 한국IBM과 산학협력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선진국형 교육서비스 제공에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한국IBM은 KAIST의 고성능 컴퓨팅 클러스터센터 구축을 지원하기로 했다. 친환경농산물 분석인증센터 개소 ●전북대 친환경농산물 분석인증센터가 2일 농업생명과학대학에 문을 열었다. 인증센터는 환경자원과 친환경 농업과 관련된 분석 및 인증사업, 농가 교육, 컨설팅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또 국민들에게 자연친화적인 농·축산물을 제공할 수 있도록 환경자원을 개선하고 이와 관련된 학문적 연구개발도 하게 된다. 김기태교수 정보화 유공 포상 ●호남대 김기태(신문방송학과) 교수가 3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제22회 정보문화의 달 기념 정보화 유공 정부 포상자로 선정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4일 한상네트워크 학술토론회 ●전남대 4일 오전 11시~오후 5시 여수캠퍼스에서 세계 한상네트워크 학술토론회를 연다. 교수 등 4명이 주제 발표자로 나서 1, 2부로 나눠 진행될 토론회는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성공 개최와 박람회를 통한 지역경제 성장방안 등을 찾는다. (062)530-2701.
  • 재향군인회 유공자 포상

    정부는 27일 서울 성수동 향군회관에서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김영일 전 제주 향군회장에게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하는 등 재향군인회 관계자들을 포상했다. 안승관 경북 안동 향군회장과 김동헌 6·25참전유공자회 경남지부장은 국민 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또 김동욱 향군본부 복지부장 등 5명은 국민포장, 박소봉 서울시 향군 사무처장 등 9명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 [부고]박 미하일 모스크바 국립대 공훈교수 별세

    러시아에 한국학을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박 미하일(92·한국명 박준호) 모스크바 국립대 공훈교수가 16일 세상을 떠났다고 박종효 모스크바 국립대 한국학센터 교수가 17일 알려왔다. 고인은 한인 2세로 러시아에서는 물론 유럽과 전세계적으로도 한국사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50년에 걸쳐 ‘삼국사기’를 러시아어로 번역했으며, 1991년 모스크바 대학교 부설 한국학센터를 창립하는 등 평생 한국사를 교육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데 헌신했다. 특히 고인은 초대 전 소련 고려인 회장으로서 옛 소련지역 고려인의 단합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한국과 러시아의 우호협력에 공헌했다. 이후 옛 소련이 붕괴 된 이후 서거 직전까지는 러시아 고려인협회 명예회장으로 두 나라 우호협력과 남북의 평화적 대화에 힘썼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옛 소련시대 최고회의 간부회의로부터 명예훈장을 비롯한 10개의 각종 공로 훈장과 메달을 받았고, 한국에서도 1992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9년 KBS 해외 한민족상을 수상하였다. 발인은 4월18일 모스크바대학교 교정, 장지는 모스크바 고려인 전용묘지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원로시인 김남조

    [만나고 싶었습니다] 원로시인 김남조

    ‘말 없음의 시’라고 할까. 침묵 너머의 소리를 전하는 ‘깨달음의 시’라고 해야 할까. 한국 여성 시단의 최고 원로인 김남조(82)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묵시(默詩)’라는 화두를 던졌다. “세월 깊어져 지금은 침묵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할 말들이 그치진 아니합니다.” 60년 가까이 시업(詩業)을 이어온 이 노성한 시인에게 아직도 시로써 할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이제 시인은 하고 싶은 말들을 침묵, 아니 그 이상의 언어로 전하려 한다. 서울 효창동 비탈의 하얀 단독. 창밖 백목련 그림자가 우련히 비쳐 드는 2층 응접실에서 만난 시인은 예의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1953년 첫 시집 ‘목숨’ 이후 지금까지 열여섯 권의 시집을 내며 불굴의 시혼(詩魂)을 살라온 천생 시인. 얼마 전에는 한지에 요즘 보기 드문 납활자를 사용한 수제 시선집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를 펴내기도 했다. “시는 땀과 눈물의 수제품”이라고 믿는 그이기에 이처럼 공력이 든 활판시집이 더없이 맞춤해 보인다. 시집에는 그동안 써온 1000여편의 시 중에서 가려 뽑은 100편의 작품이 실렸다. “무릇 좋은 시란 영혼성이 깃들어 있는 시, 예언적인 시라고 생각해요. 시의 하늘은 종국에는 그런 데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최근 젊은 시를 호명하는 용어로 굳어진 ‘미래파’ 시에 대해서는 사뭇 마뜩잖은 표정이다. “‘형의 두개골을 파먹고… ’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게 이른바 미래파라는 건데, 요즘 시가 점점 기괴한 쪽으로 흘러가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불온한 서정의 섬뜩한 시가 아닌 순연한 정조(情調)의 따뜻한 시를 지켜 나가자는 것이다. 김 시인에게 시는 영혼 혹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그 영혼이란 육체와 따로 노는 영혼이 아니다. 늘 육체와 함께하는 영혼, 육체를 입은 영혼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사변적일지언정 공허하지 않다. 좀처럼 관념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유정함, 종교적인 경건함, 만유에 대한 감사, 세상과의 화해·용서의 마음”이 생생한 시어로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참담한 영혼의 고통을 맛본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절대 긍정의 세계다. ●자신의 시대 업신여기는 건 모순 시인은 혹독한 일제 강점기를 거쳤고 한국전쟁의 참화도 몸소 겪었다. 처녀 시집 ‘목숨’은 그 전쟁의 와중에 탄생했다. 표제시 ‘목숨’에는 시인의 고단했던 삶의 한 자락이 그대로 녹아 있다. “아직 목숨을 목숨이라고 할 수 있는가/꼭 눈을 뽑힌 것처럼 불쌍한/산과 가축과 신작로와 정든 장독까지//(중략)반만 년 유구한 세월에/가슴 틀어박고/매아미처럼 목태우다 태우다 끝내 헛되이 숨져간/이 모두 하늘이 낸 선천의 벌족(罰族)이더라도/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그래도 죽지만 않는/목숨이 갖고 싶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시름겨운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참혹한 상황, 시인은 오죽하면 ‘벌족’이라는 말을 썼을까. “지금 우리 삶이 힘들지만 식민지 시절보다 슬프고 6·25때보다 더 가혹하겠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시대를 업신여기는 건 의미 없는 일입니다. 자기부정이에요. 인생의 수틀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색상과 잘못 기워진 자국도 남지만 그것까지 포함해 산다는 건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진보니 보수니 좌(左)니 우(右)니 하며 분열을 앓고 있다. 상생의 길은 없을까. “어린 아이들이 빨갛고 파란 예쁜 자동차를 보면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돌을 던지게 만드는 세상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문학 쪽도 마찬가지예요. 이수익·신달자 같은 괜찮은 시인도 성향이 어떠어떠하다고 한국 대표시인 목록에서 빼고 그랬지요. 편 가르고 증오하는 마음의 자리에 사랑이 들어서야 합니다.” 시인에게 사랑의 대상은 무궁하다. 사랑의 총량 또한 무한하다. “떫은 사랑일 땐/준 걸 자랑했으나/익은 사랑에선/눈멀어도 못다 갚을/송구함뿐이구나”(‘사랑초서’ 53)라는 시인의 시구처럼 더욱 넉넉한 사랑이 필요한 때다.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사랑 밖엔 길이 없음’을 설파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결코 무력하지 않다. 진리는 지극히 평범한 데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남(男)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서 일까. 시인의 시에는 굳이 ‘페미니즘적’이랄 게 없다. 스스로도 페미니즘 운동엔 별 관심이 없다고 고백한다. 이 또한 사랑의 프리즘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가장 여성적인 여성은 인간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남성적인 남성 역시 인간적인 남성이고요. 양쪽 모두 인간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서로 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 아니겠어요. 여성이 여성이기에 받는 사랑의 몫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퍽이나 선명한 논리다. ●부권 상실 풍조에 아쉬움 시인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지적해온 부권(父權)상실 풍조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TV 드라마에서도 여걸형 가모장(家母長)이 뜨는 시대. 하지만 시인의 생각은 좀 달랐다. “부권의 역조현상이 점점 가속화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를 아버지의 자리에 앉혀 줘야 합니다. 뒷방에 내앉거나 머슴이나 문지기의 자리에 있어선 안 되지요. ‘기눌림’을 풀어줘야 해요. 남자에게는 큰 틀을 세우는 능력이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요즘 시류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남 탓 하지 말고 각자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의 원로의 충고로는 충분한 값을 지닌다. 우리 사회에 원로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원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들의 말을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지금 헨리 키신저(86) 전 국무장관 등 7080세대 원로그룹이 정부 대외정책의 ‘선봉’에서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우리에게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원로회의가 생겼다. 김 시인은 공동 의장을 맡았다. 어떤 형태의 세속정치와도 절연된 삶을 살아왔기에 나라를 걱정하는 그의 말에서는 한층 진정성이 느껴진다. “38년간 대학에 있으면서 어떤 보직도 맡지 않았어요. 내 문학에 상처를 줄까봐서였지요. 지난 독재정권 시절엔 전국구 의원을 하라고 찾아온 이에게 ‘날 빼주면 평생 은인으로 삼겠다.’며 통사정해 돌려보낸 적도 있어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심정입니다. 식민지 시절을 생각하면 나라가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인데, 정치도 국민 노릇도 너무 미숙하기만 하니….” ●감성에도 이성에도 치우치지 말라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시가 그의 후기작에 속하는 ‘좌우명’이다. “잎이 아닌 뿌리에서 더욱 봄답기를,/능금 익히듯 사람들 마음에 공들이고/충직한 농부에서 모범을 취하여라/백지를 능가하는 글을 쓰고/침묵보다 나은 말일 때 말하여라/살고 있는 이와 살다간 이를 동일하게 경애하며/다수의 복지를 섬기는 이에게/앞자리를 대접하고 아울러 그 줄에 서거라/감성에도 이성에도 치우치지 말며/행복에 앞서 가치를 생각해라…” 삶의 잠언, 나아가 우리 사회의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국민교육헌장’ 같은 시다. 김 시인은 그의 애제자인 신달자 시인이 첫 시집을 냈을 때 ‘봉헌문자’라는 제목을 지어 줬다. ‘평생 문자를 받들며 살라.’는 뜻이다. 봉헌문자는 결국 그의 명제가 됐다. “시를 쓰는 건 살점을 뜯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이지만 그 측은한 길동무와 언제까지 함께하리라.”고 지금도 다짐하고 있으니 말이다. 2007년 만해대상 수상 시집 ‘귀중한 오늘’ 출간 이후 80줄이 넘어 새로 쓴 시만 30여편. 60편쯤 모이면 내년에는 열일곱 번째 시집을 낼 계획이다. “문학은 내게 병이면서 치유”라고 말하는 노시인. 그의 바람은 시의 언어가 사회 구석구석 스며들어 미움으로 얼룩진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해 시인은 오늘도 변함없이 뜨거운 기도의 문을 연다. 글 김종면 편집위원 jmk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7년 대구 출생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숙명여대 교수(1955∼93년), 한국시인협회·한국여성문학인회의 회장 역임 ▲예술원상, 영랑문학상, 만해대상 등 수상. 국민훈장 모란장·은관문화훈장 받음 ▲저서:‘목숨’ ‘나아드의 향유’ ‘정념의 기’ ‘풍림의 음악’ ‘바람 세례’ ‘마음 안의 마음’ 등 16권의 시집과 ‘잠시 그리고 영원히’ ‘먼 데서 오는 새벽’ 등 12권의 수필집 등 다수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국민원로회의 공동의장
  • 국민교육발전 유공자 46명 포상

    교육과학기술부는 25일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의 이종환 전 이사장 등 국민교육을 위해 헌신한 학교법인 및 교육단체 관계자 46명을 국민교육발전 유공자로 선정해 포상했다고 밝혔다.정부포상 대상자는 국민훈장 12명, 국민포장 2명, 대통령 표창 14명, 국무총리 표창 18명 등이다. 훈·포장 선포식은 이날 오전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이 전 이사장은 재산 6000억원을 출연,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을 설립해 국내외 장학금으로 498억원을 지급하는 등 국가발전의 핵심 인재를 길러내는 데 기여한 공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박상복 동양학원 이사장, 손동수 명덕학원 이사장에게는 국민훈장 모란장, 윤철상 전 삼량학원 이사장, 동화학원 유경화 이사장, 설월학원 천병춘 이사장에게는 국민훈장 동백장, 백운영 신일학원 이사장, 김옥순 소년의 집 학원 이사장, 정화국 문성학원 이사에게는 국민훈장 목련장이 각각 수여됐다.국민훈장 석류장은 서천수 덕명학원 이사, 이찬희 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 고(故) 이강오 전 조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오치석 송강학원 이사장, 정태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포장을 받았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허영엽 신부 문답

    김수환 추기경 장례위원회의 홍보담당인 허영엽 신부는 17일 “추기경께서는 병상에서도 당신의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르도록 신신당부했다.”면서 “그래서 화환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허 신부는 “20일 장례미사도 일반 신자와 다르지 않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 신부는 이날 구성된 장례위원회 첫 회의를 마친 뒤 명동성당내 임시 프레스센터에서 이렇게 브리핑했다. 장례위는 정진석 추기경을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은 염수정 주교, 김운회 주교, 조규만 주교 등 3명이 각각 맡으며 한국천주교주교단이 고문역할을 담당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추기경의 시신 옆에 놓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둘러싼 얘기들이 분분한데. -추기경께서 군사독재에 반대해 거부한 훈장을 정부가 갖다 놓아 갈등이 빚어졌다는 식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됐는데 잘못 알려진 것이다. 추기경께서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1970년 8월15일에 이미 받았다. 유신 선포전이다. 어제 정부가 유인촌 장관을 통해 이 훈장을 다시 갖다 놓은 이유는 국민의 사랑의 표시로 다시 제작,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장례미사는 어떤 방식으로 치러지나. -미사 끝에 몇분의 조사가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신자의 장례미사와 기본적으로 같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진행된다. 여기에 마지막 기도를 바치는 고별 예식이 따른다. →안구 적출 수술을 받았는데 안구 상태는. -감염이 없는, 일반적인 각막으로 판정됐다. →유리관은 특별한 장치가 돼 있나. -냉장 장치가 돼 있다. →19일 입관되면 더 이상 얼굴을 못 보나. -그렇다. 정식 관에 모시는 것이다. →추기경의 재산은 어떻게 되나. -재산도 많지 않다. 교구 사무처에 맡겨 놓은 유언장에 모든 것을 교구에 넣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황청의 조문 일정은. -일단 조전이 와 있다. 일반적으로는 교황청이 조문 대표를 선임해 조문하고 미사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게 일반적인 관례다. →후임 추기경은 누가 되나. -전 세계에 추기경은 150명가량이다. 교황청이 임명에 대한 전권을 갖는다. 특정한 나라에 배당하는 게 아니다. 후임이 누구인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순진씨 ‘국민훈장 동백장’

    김순진 놀부NBG 회장이 22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김 회장은 민주평통 상임위원으로 재임하면서 탈북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인도적 대북지원사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테너 안형일 서울대 명예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영원한 테너 안형일 서울대 명예교수

    푸치니가 토스카니니보다 나이가 아홉살 위였지만 둘은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였다. 그만큼 서로 싸우기도 자주했다. 어느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둘은 무척 삐쳐 있었다. 푸치니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빵을 보냈다. 그런데 실수로 토스카니니에게도 빵을 보냈던 것. 이 사실을 뒤늦게 안 푸치니가 토스카니니에게 서둘러 전보를 쳤다.‘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보냈음, 지아코모 푸치니’ 며칠 후 토스카니니한테 전보가 왔다.‘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먹었음,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푸치니가 출세한 것은 어쩌면 토스카니니 덕분이다. 푸치니가 37세때 만든 ‘라보엠’이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1896년 토리노에서 초연되면서 명성을 얻었으니 말이다. 잠시 감상해보자. 어스름한 달빛 2층 가난한 시인 로돌프의 어둡고 침침한 방, 아래층에 사는 아가씨 미미가 들어온다. 미미는 폐결핵 환자. 둘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미가 나가려는데 열쇠를 떨어뜨려 잃어버린다. 둘은 방바닥을 더듬거린다. 로돌프가 열쇠를 찾지만 재빨리 감춘다. 계속 찾는 척하던 로돌프는 미미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른다. ‘그대의 찬 손, 내손으로 따뜻하게 덥혀 주리다. 지금은 어두워서 열쇠를 찾기 어렵지요, 다행히 조금 있으면 밝은 달님이 떠오를 거예요.(나가려던 미미를 제지하며)잠깐만 기다려줘요, 아가씨. 그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사는지, 내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나는 시인이지요. 가난하지만 글을 쓰는 기쁨으로 산답니다. 당신이 저 문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의 선율 이야기의 보석을 당신의 아름다운 두 눈이 모두 훔쳐가버렸어요.’ ‘라보엠’에 나오는 아리아 ‘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이다. 음역이 ‘하이C’까지 올라가는 어려운 노래로 테너의 절정감을 만끽할 수 있다. 푸치니의 천재성과 음악적 특징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그의 오페라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꼽는다. 이 노래에 대한 화답으로 ‘나의 이름은 미미’라는 아리아도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1959년 10월 서울오페라단에 의해 국립극장에서 초연됐다. ●60년동안 1000여회 무대에… ‘라보엠´과 깊은 인연 우리나라 테너계의 대부격인 안형일 서울대명예교수.1926년생이니 올해 83세인 셈. 전설의 테너 라우리 볼피(Giacomo Lauri-Volpi,1892~1979) 이후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쩌렁쩌렁한 혼의 목소리로 무대를 휘어잡는 현역은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그래서 안 교수를 ‘한국의 볼피’라고 부른다. 안 교수는 ‘라보엠’과 유독 인연이 깊다. 한국에서 초연됐던 1959년에 처음 주역을 맡은 이후 10여차례 ‘라보엠’의 로돌프 역할을 했다. 또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토스카’‘투란도트’ 등에도 단골로 주역을 도맡았다. 이래저래 서울대 재학때부터 지금까지 60년동안 무대에 선 것만 1000여회에 이르러 이 방면에도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이 가을을 맞아 아름다운 선율로 또한번 노익장을 과시한다. 내일(28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영원한 테너 안형일 교수와 제자들-골든 보이스, 가곡과 오페라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라보엠’의 ‘그대의 찬 손’과 한국가곡 등 모두 다섯 곡을 부를 예정이다. 모스틀릭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로 박상현·김홍식씨가 지휘하며 박성원 나승서 손성래 황건식 등 유명 테너 10여명이 출연한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 인근의 자택에서 안 교수를 만났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목청을 가다듬는 모습이 나이보다는 20살 정도는 젊어 보였다. 그런 까닭을 묻자 “그냥 매일 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시간 나면 동네 헬스장에 나가고, 집식구와 둘이 오붓하게 지내고…”라고 하면서 웃는다. ●윗몸일으키기 자주 하며 꾸준히 노래 연습 ▶8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노래를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대학 때부터 (노래를)했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성악가는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무대에 서든 안서든 늘 연습을 해야지요. 거의 빠지지 않고 하루에 한번 몇곡씩 부르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몇년은 더 노래할 자신 있습니다. ▶무대에 선 지 어느덧 60년 가까이 됐습니다. -대학 졸업은 1953년이고 대학재학시절부터 노래를 불렀으니 그럭저럭 60년이 됐지요. 오페라에서 처음 주역을 맡은 것은 1957년입니다. 그러니까 31세때 베르디의 ‘리골레토’에 출연했지요. 당시 서울오페라단 단장이기도 했던 음악가 현제명씨가 ‘안형일은 목소리가 좋은데 왜 주역을 안 시키느냐.’고 해 주역을 맡게 됐지요. 이후 ‘춘희’‘춘향전’ 등을 거쳐1959년부터 ‘라보엠’의 주역을 맡았지요.‘라보엠’은 음색도 맞고 해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합니다. 안 교수는 잠시 그림을 그리듯 회상에 젖는다. 시인 로돌포, 화가 마르첼로, 철학자 코르리네, 음악가 쇼나르 등 보헤미안 기질을 가진 네 사람이 모인 2층 다락방, 그들의 방랑생활과 우정, 비련의 사랑… ●28일 제자들과 ‘골든 보이스´의 밤 ▶이번 무대는 제자들이 마련한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2년 전 제자들이 황금빛 목소리라는 ‘골든 보이스’ 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작년에도 같은 제목으로 공연을 가졌지요. 앞으로는 제자뿐만 아니라 우리 성악계가 참여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힐 생각입니다. ▶그 동안 길러낸 제자만 해도 아주 많을 텐데요. -한국의 테너는 대부분 제자라고 보면 맞을 겁니다. 대학교수만 50~60명은 됩니다. 제자 중에 73세도 있고, 또 제자의 제자도 대학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에서 이름을 떨치는 제자도 많지요. 이번 무대에 같이 오르는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음악학교 들어가려 혼자 월남… 가족과 생이별 ▶실향민인 것으로 압니다. -우리 마을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백남준, 함석헌, 김소월, 이승훈 등이 평북 정주 출신이지요. 중 3때 최용린 음악선생의 권유로 레슨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부농이셨는데 레슨비용을 돈대신 쌀로 지불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공부하고 음악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서울로 혼자 월남했지요. 안 교수는 이 부분에 이르자 가족 생각이 난 듯 “누가 6·25가 터질 줄 알았나. 생이별이 됐지 뭐. 나중에 누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는데 6·25 전에 월남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1946년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위해 해주에서 밀선을 타고 서울에 도착한 그는 허름한 판잣집 단칸방에 살면서 남대문 시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가 미군 대령집 ‘하우스보이’ 생활을 했다. 어느날 몰래 노래 연습을 했는데, 이를 들은 미군 대령이 칭찬을 하며 매주말 미군 장교 정기모임 때 노래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음악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겠다고도 했다. 이후 서울대음대 테너 이상준 교수의 문하에서 성악공부에 전념했다.6·25가 발발하자 해군정훈음악대 합창단에 들어가 유엔 참전국 부대를 방문해 위문공연을 다녔다. 전쟁이 끝나면서 제대를 한 그는 정신여고와 숙명여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가 현제명씨와 김연준 한양대총장의 권유로 한양대 음대 창설멤버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6년 후에는 김성태 선생의 거듭된 요청에 모교인 서울대교수로 옮겼다. 그가 많은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은 인생살이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이겨낸 경험을 바탕으로 언제나 부드럽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성품 덕분이다. 지금도 대학교수 제자들이 자주 찾아와 한수 지도를 받는다. 그의 자녀들은 모두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남 종선씨는 테너, 차남 종덕씨는 작곡가(상명대교수), 맏며느리 임희정씨는 피아니스트, 둘째며느리 박선하씨는 소프라노 등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으며 딸 종숙씨도 연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서울 동대문·광장시장 등지에서 40년 넘게 포목상을 하면서 아이들을 교육시킨 부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성악 수준은 세계적입니다. 국제 콩쿠르를 거의 휩쓸다시피해서 한국사람들을 못나오게 할 정도입니다. 앞으로 10년후면 이탈리아나 독일 사람들이 한국으로 유학오게 될 것입니다. 음악학교도 가장 많고요. 일본의 경우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선 사람이 아직까지 못나오고 있지요.” 그는 평소 윗몸일으키기 운동을 자주한다. 소리를 잘 내려면 복부 횡격막 근육을 긴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두차례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앞으로 4~5회정도의 독창회도 자신있다고 강조한다. 노(老)성악가의 아름다움은 끊임없는 노력에서 우러나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안형일은 누구 ▲1926년 평북 정주 출생 ▲1945년 정주고등학교 졸업 ▲1953년 서울대 음대 졸업 ▲1960년 한양대 음대 조교수 ▲1966년 서울대 음대 교수 ▲1974년 이탈리아 로마산타체칠리아국립음악원 졸업 ▲1983년 이탈리아 가곡연구회 회장 역임 ▲1983년 국립오페라단장 역임 ▲1992년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 ▲1995년 추계예술학교 대우교수 ▲199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7년 국립오페라단 자문위원장 #상훈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서울시문화상, 한국음악대상, 대한민국예술원상, 국민훈장 목련장, 예총예술문화상 등. #주요공연 카르멘, 춘희, 리골레토, 춘향전, 라보엠, 루치아, 토스카, 아이다, 파우스트, 나비부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라조콘다, 노르마 등. 이밖에 KBS 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 서울아카데미심포니 등 다수 협연. 일본교향악단 협연. 일본, 미국, 태국, 독일, 네팔, 타이완 등 각국 순회공연. 국내외 각종 연주회 1000여 회 출연. #저서 이태리가곡집 전8권,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 등.
  • [부고] 정필근 前 의원 별세

    정필근 전 의원이 11일 밤 11시2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72세. 고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4대 총선 때 경남 진양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민자당, 신한국당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펼쳤다. 일동제약 부사장, 한국제약협회 이사장, 이회창 대통령후보 정무특보, 자민련 총재특보 등을 지냈다. 진주고, 성균관대 약학과를 졸업한 약학박사 출신으로 현역 의원에서 물러난 후 마약퇴치운동을 전개했고, 한국희귀약품센터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저서로 ‘한국의 생약초’가 있으며,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훈했다. 유족은 부인 신숙자씨와 아들 신섭(르노삼성자동차 연구소 팀장)씨, 딸 진주(재미)씨가 있다. 빈소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7일 오전 4시, 장지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선영이다.(031)787-1503.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부고] ‘금복주’ 창업주 김홍식 회장

    대구·경북지역 대표 주류업체인 ㈜금복주 창업주 김홍식 회장이 9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81세. 경북 안동 출신인 김 회장은 1957년 금복주를,1972년 경주법주를 각각 창업하는 등 주류 산업 외길을 걸어 오며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96년)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금복문화재단, 금복장학재단, 금복복지재단 등을 설립하고, 사재인 화원동산 18만여㎡를 시민의 휴식처로 활용해 달라며 대구시에 헌납하는 등 문화·육영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 유족은 부인 이정숙 여사와 김동구 사장 등 3남 4녀이다. 빈소는 경북대학교병원이며 발인은 오는 12일 오전 7시.(053)420-6141.
  • [부고] 전 서울신문 사장 장기봉씨 별세

    [부고] 전 서울신문 사장 장기봉씨 별세

    서울신문사 사장을 지낸 원로 언론인 장기봉씨가 28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81세. 경북 안동 출신인 고인은 광복 직후 언론계에 입문해 대동신문 정치부장과 평화신문ㆍ연합신문 정경부장, 서울신문 사장, 코리아타임스 부사장 겸 편집국장, 한국일보 편집국장, 동화통신 전무, 합동통신 이사, 한국일보 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와 유엔총회 한국대표를 지내기도 했다.1965년에 신아일보를 창간해 16년 동안 발행해 오다 1980년 언론통폐합 조치로 종간의 비운을 맞기도 했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세계언론인상을 수상했으며,‘생산성 향상과 경제 개선’‘백만장자가 되려면’ 등의 저서를 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남득(74)씨, 장남 학준(㈜신아 대표)·차남 학만(한국일보 경제부 차장)·딸 주미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천안공원묘지.(02)2650-2743.
  • 출판계 거목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별세

    출판계 거목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 별세

    60여년간 출판 외길을 걸어온 한국 출판 역사의 산증인 은석(隱石) 정진숙 을유문화사 대표이사 회장이 22일 오후 3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96세. 고인은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그해 12월 평소 친분이 있던 조풍연, 윤석중, 민병도 등 4인과 함께 동인체제로 을유문화사를 창립했다. 을유문화사란 이름은 1945년 을유년에 세웠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해방과 함께 국학 진흥의 기치를 내걸고 ‘출판보국’의 길을 걸어온 고인은 6·25전쟁의 와중에 창립동인들이 흩어지는 위기를 극복하고 ‘1인 대표체제’로 전환해 오늘의 을유문화사를 일궜다. ●한국사·우리말 큰사전 등 펴내 1912년생인 고인은 최근까지도 어김없이 회사로 출근하는 등 출판 현장을 지켜온 국내 최고령 현역 출판인으로 출판계 안팎의 존경을 받아왔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나와 보성전문학교에서 수학한 고인은 무엇보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데 앞장섰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이 한국 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한국사’와 우리말 보존을 위한 ‘우리말 큰사전’(전6권)이다. 각각 10여년 각고 끝에 완간한 이 역사적 간행물은 단절된 우리 역사와 언어를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인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전병석(70) 문예출판사 대표는 “오랜 일본강점 과정에서 짓눌린 우리 얼을 되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출판사를 차린 뒤 처음 펴낸 책이 바로 ‘한글 글씨본’이었다.”면서 “그만큼 우리말글에 대한 애정이 컸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을유문고’의 출간을 통해 교양학술서의 문고본 시대를 열며 지식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특히 ‘세계문학전집’‘구미신서’ 등을 펴내면서 일본판을 중역하던 기존 출판 관행에서 탈피, 철저한 원어 중심의 완역주의 원칙을 세우는 등 국내 출판 역사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1955년에는 외국영업부를 신설, 한국학 관련 도서를 세계 주요 대학 등에 공급하는 등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도 기여했다. ●상업주의 철저히 배제한 애국지사 ‘한국 단행본 출판의 대부’로 불린 고인은 출판상업주의를 철저히 경계한 ‘지사형’ 출판인의 면모를 보였다. 책을 낸 뒤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부수적으로 돈이 들어오면 좋지만 돈벌이를 위해 책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이라는 게 그의 지론. 날로 가벼워지기만 하는 요즘 출판계가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고인은 1960년대와 70년대 세 차례에 걸쳐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사단법인 한국출판금고 이사장, 출판저널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출판 분야외에 중앙박물관협회 회장,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등도 지냈다. 이같은 다양한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서울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02-2072-2091).26일 오전 8시 발인하며, 장지는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월문리 선영. 유족으로는 아들 낙영·필영(을유문화사 이사)·무영·해영씨와 딸 지영(을유문화사 대표이사)씨가 있다. 한편 고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백석기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과 이기웅 파주출판문화산업단지 이사장, 박맹호 민음사 회장 등 출판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은 화환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고] 문홍주 前문교부장관 별세

    법학계의 원로인 문홍주 미국헌법학회 이사장이 2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90세. 고인은 경성제대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법제처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문교부 장관, 부산대 총장 등을 지냈다. 미국헌법론, 한국헌법론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국민훈장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학선씨와 아들 형철(대홍자동차공업 회장), 형인(고려열연 사장)씨 등 2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5일 오전 8시.(02)3410-6917.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2) 한국 살레시오회 모지웅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2) 한국 살레시오회 모지웅 신부

    서울 영등포구 대림1동 살레시오 근로청소년회관은 소년원 수감생활을 마친 청소년들이 사회와 가정으로 복귀할 적응훈련을 받는 곳. 순간의 잘못으로 삶의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했지만 제자리를 다시 찾아가기 위한 마음을 다지고 방법을 배우는, 일종의 재교육장이다. 이곳에서 늘상 ‘Be Happy’(행복하게 지내세요)를 입에 단 채 청소년들의 벗이요, 아버지로 살고 있는 벽안의 노사제가 있다.80여명의 청소년들과 도예, 목공예를 함께하며 인생상담을 소임삼아 사는 5명의 신부 중 유일한 외국인, 모지웅(80·본명 몰레로 산체스·스페인) 신부. 살레시오 수도회를 창설해 평생 가난한 청소년들의 후원자요, 버팀목으로 살았던 이탈리아 사제 요한 보스코(1815∼1888)의 정신과 삶을 한국에서 52년간 이어와 ‘한국의 작은 요한 보스코’로 통하는 이방인이다. ●어딜 가도 “나는 모모신부” 자랑 예보에 없던 장맛비가 줄기차게 쏟아지던 지난 24일 오후 대림동 살레시오 근로청소년회관.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네 할아버지들의 넉넉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은 모지웅 신부는 대뜸 성경을 펴들어 손으로 줄을 쳐내렸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복음 25장). 평범한 성경구절이지만, 평생 소외되고 뒤처진 젊은 영혼들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등불로 살아온 노사제의 삶이 얹힌 때문인지 눈에 쏙 박힌다. 한국에 온 지 10여년쯤 됐을까. 한국의 대학생들이 우연한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 몰레로와 비슷한 한국의 성씨 모자를 따 장난삼아 지어준 별명 ‘모모 신부’를 본명보다 더 좋아하는 신부. 처음엔 이름을 놀림감으로 삼은 게 기분나빴지만 나중에 대중가요 ‘모모’의 노랫말을 듣고는 ‘이것이 바로 나의 길’이라는 생각을 갖고부터 어느 자리에서든 “나는 모모 신부”라고 자신을 소개해왔단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 앞에서 한 자의 틀림도 없이 ‘모모’ 노래를 유창하게 불러내는 노사제. 그는 정말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모모인 것일까. ●56년 입국 ‘작은 요한 보스코´로 살아 스페인 톨레도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선교사의 꿈을 키우며 살았다는 모 신부에게 한국은 원래 ‘가고 싶지않은 땅’이었다. 어릴적 중국 선교사를 꿈꾸던 신학생 친척으로부터 중국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때문인지 중국을 향한 동경이 아주 컸다고 한다. 마드리드 살레시오회 신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도쿄 살레시오회 신학교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지만 그때까지도 한국은 “전쟁에 파묻힌 위험한 나라”일 뿐 결코 가고싶지 않은 곳이었다. 살레시오회 일본 관구장이 ‘한국엘 가보라.’고 거듭 권유해 반 강제로 한국 땅을 밟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마지못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해 한강철교를 건널 때였어요. 스페인에서 보았던 사진 한 장이 불현듯 떠올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더군요. 폭격 맞아 엿가락처럼 엉긴 다리를 건너려는 개미떼 같은 피란민들…. 운명처럼 느껴지더군요.” 1956년 8월13일 낮 12시15분.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시·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그 순간은 원치 않던 땅에서의 새 삶을 다짐한 회심(回心)의 찰나였음에 틀림없다. 사진으로 보았던 한강철교를 넘어 밤차로 광주에 내려가 살레시오 중학교 기숙사 사감을 맡은 게 ‘작은 요한 보스코’ 삶의 시작. 한국 청소년, 특히 어려운 환경의 젊은이들이 털어놓는 속 깊은 생각과 애환을 들어주며 자신도 모르게 요한 보스코가 되어갔다. 살레시오 중학교 교감, 살레시오 중·고교 서무과장, 살레시오 중·고교 이사장 대리, 서울 살레시오회 생활관장, 살레시오회 공동체 원장,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원장, 대전 살레시오회 생활관장…. 한국에서 52년을 사는 동안 서울 도림동성당·구로3동 본당의 주임 신부시절 6년과 이탈리아 로마 유학 2년을 합친 8년을 빼곤 모두 한국 청소년들의 곁을 지키며 살아온 셈이다. ●학교 세워 어려운 청소년에 기술교육 서울 도림동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해 가정형편상 중학교 문턱을 밟지 못한 이들을 위해 야간 중학교를 만들었고, 광주 살레시오 중·고교 이사장 대리시절엔 돈보스코 야간 중학교를 세웠다. 의지할 곳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받아들여 기술교육을 시켰던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원장 재직시절엔 수용하고 있던 청소년들을 전원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진학시켜 어엿한 직장을 잡도록 주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원장 시절 겪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불쑥 꺼내는 노사제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80년대 중반 간첩죄로 몰려 사형당한 아버지의 아들이 있었어요. 교도소에서 사형 직전 수녀에게 ‘내 아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지요. 아들을 우리 청소년센터에 들어와 살게 했는데 말을 끊고 혼자만의 생활에 빠져들었어요.‘아들아 아들아’ 부르며 어렵게 말을 건넸지만 막무가내였는데, 어느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건네며 ‘아버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꺼내는 게 아닙니까.” 모 신부가 세워놓은 야간중학교며 청소년센터를 거쳐간 우리의 청소년은 얼마나 될까. 뜬금없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결혼 주례만 500번을 보았다.”는 말을 돌려준다. 커서 결혼을 한 뒤에도 배필과 함께 찾아와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란 말에 미안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조금 더 잘해줄 것을”. 가정의 행복과 부모의 사랑에서 멀었던 그들이 항상 행복하기를 기도한단다. ●주례만 500번… 아버지라 부를때 뿌듯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이런저런 상을 주겠다는 제의가 쏟아졌고 받았다. 국민훈장 석류장, 대한적십자 최고훈장인 ‘인도장’ 금장, 스페인 국왕 훈장에 명예 서울시민증도 받았다. 하지만 “상패들이 어딘가 있을텐데…”하며 자랑삼지 않는다.“상을 너무 많이 받아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이 없을까봐 걱정”이라며 웃는다. ‘전 세계 12억명이 하루 1달러로 살고 있고 5∼17세의 2억 450만명이 노동을 하고 있는 세상’. 인터넷에서 찾았다는 자료를 내밀며 사제가 말한다.“부자들은 자신이 받은 것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결코 잊지 않아요.” 돈보스코 청소년센터에서 학생상담을 하던 일을 마지막으로 은퇴해 이곳으로 온 게 지난해 7월. 은퇴했지만 여전히 바쁘다. 화·목요일 이틀은 서강대에서 스페인어·라틴어 강의를 해야 하고 성당들에서도 수시로 강의며 이런저런 도움을 청해온다. 중국 옌지의 국제합작기술학교(공업학교) 후원 책임을 맡아 학생들의 기숙사비며 장학금도 모금해 보내는 일도 큰 일이다. 가톨릭의대에 시신을 기증키로 약속했다는 노사제는 “내 껍데기를 세상에 돌려주는 게 내 일의 마지막”이라며 웃는다. 창문을 후려치는 빗소리가 팔순 노 사제의 목소리에 갇힌다.‘Be Happy’. 어쭙잖은 기자의 이별사에 노 사제가 다시 성경을 펴든다.“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복음 15장 13절).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모지웅 신부는 ▲1928년 스페인 톨레도 출생 ▲1955년 일본 도쿄살레시오회 신학교 졸업, 사제 서품 ▲1956년 한국 입국 ▲1959년 광주 살레시오중학교 교감▲1964년 서울 도림동성당 주임신부, 야간 중학교 설립 ▲1970년 로마 살레시오대 유학 ▲1974년 광주 돈보스코 야간중학교 설립 ▲1979년 살레시오회 생활관장 ▲1984년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원장 ▲1989년 서울 구로3동성당 주임 신부 ▲1993년 살레시오 공동체 원장 ▲1995년 대전 살레시오회 생활관장 ▲1998년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사목 ▲2007년∼ 대림동 살레시오 근로청소년회관 사목
  • 신동식씨 여성 지위향상 최고상

    여성부는 제13회 여성주간(7월1∼7일)을 맞아 여성의 지위를 높인 유공자로 신동식 한국여성언론인연합 대표 등 16명을 선정, 포상한다고 26일 밝혔다. 신 대표는 서울신문 재직 당시 사회부 기자로서 여성 폭력과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복지제도 개선, 사내 성차별 관행 개선 등 여성의 권익증진을 위해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 지위향상 및 양성평등의식 확산’ 부문 최고상인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다. 시상식은 새달 3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모범 국가유공자 17명 포상

    정부는 20일 장순기(66)씨 등 17명을 2008년도 모범 국가유공자로 선정했다. 23일 정부중앙청사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장순기씨는 군 복무 중 척추 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전역한 뒤 1969년부터 서울 상도동 천막집에 모여 살던 6·25 및 베트남 참전 상이용사 27명과 ‘상도용사촌’을 결성했다. 이후 장씨는 상이군경회 대방동 특별분회 사무장, 신생원호아파트 관리소장 등으로 활동하며 상이용사들의 생활기반 마련에 기여했다.2004년에는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보훈체육회를 결성, 회원들의 재활체육을 위해 헌신했다. 다음은 포상자 명단.◇국민훈장 동백장=장순기 ◇국민훈장 목련장=서분점 ◇국민포장=강영수, 김성복 ◇대통령 표창=박재신, 황구연, 구제선, 신옥균, 이강수, 박원범 ◇국무총리 표창=신두균, 유상호, 정교석, 송기성, 이미자, 김옥희, 김상규.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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