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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뢰더 ‘쓴맛’… 정국운영 부담

    ┑베를린 南玎鎬 특파원┑ 독일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집권 사민당(SPD)과 연정 파트너 녹색당이 7일 지난해 9월 출범 후의 첫 지방선거에서 패배,향후 정국운영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이날 헤센 주의회선거 개표결과 보수강경파 롤란트 코흐(40)가 이끄는 헤센주 기민당(CDU)은 예상을 뒤엎고 직전 95년 주의회 선거때보다 4.2%포인트상승한 43.4%를 득표했다.이로써 헤센주 기민당은 110석 정원의 주의회에서50석을 확보,5.1%로 6석을 얻은 자민당(FDP)과 함께 연정을 구성,8년만에 주 정권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이번 헤센주 선거는 슈뢰더총리의 연방정부가 추진중인 독일거주 외국인에대한 2중국적 부여의 국적법 개정에 대한 ‘미니 국민투표’의 성격을 띠면서 집권 100일째인 赤-綠(사민당-녹색당)연정에 대한 국민들의 첫번째 평가라는 점에서 슈뢰더 총리에게 정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사민당은 이번 패배로 각 주대표들로 구성되는 연방 상원에서 과반의석을 상실했다.
  • 美·유럽 5국 내일 佛랑부예서 평화회담

    코소보 분쟁해결을 위해 미국과 유럽 5개국 등 이른바 ‘6개접촉그룹’이마련한 평화회담이 6일 프랑스 랑부예에서 열린다. 유엔안보리와 나토등 국제사회는 연일 세르비아계와 코소보주 알바니아계양측에 대해 평화회담에 참석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나토는 평화안이 타결되는 경우 평화유지군을 최대 3만명 파견하고 미군은 이 가운데 최대 4,000명의 지상군을 파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평화회담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나토측은 7일간의 회담일정을 치밀하게 세워놓고 오는 19일까지 결론이 나지 않으면 군사개입에 나선다는 경고를 양측에 하고있다. 코소보해방군(KLA)측은 일단 회의 참가입장을 밝혔지만 세르비아 정부측은아직 회담참가 여부를 결정짓지 않고있다. 평화안의 핵심은 지난 89년 밀로세비치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말소된 코소보주의 자치권 부활.3년간의 잠정자치가 핵심이다.이 기간 동안 완전독립을위한 국민투표 실시 여부등을 결정한다.또 9개월 안에 선거를 통해 코소보주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코소보주둔 세르비아 병력을 현재 2만5,000명에서 4,000명으로 줄인다는 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알바니아계는 궁극적으로 독립을 원하고 있고 반면 유고정부는 완전독립 절대불가 입장을 고수하고있어 코소보사태의 완전해결까지는 앞으로도적지않은 험로가 예고돼있다.
  • 국민연금 새 가입대상자 반발 확산

    오는 4월 전국민 연금시대를 앞두고 새로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할 도시자영업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IMF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소득이 크게 줄어든 데다 지난해 국회에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부실운영으로 연금재정의 악화가 드러나 연금가입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PC통신과 인터넷 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공단의 연금문의전화에는 국민연금 가입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에는 등록자 ‘홍길동’이 “공단의 부실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또 하나의 부실공사며 우리나라가 앞으로 반드시 선진국이 되지 않는 이상 국민을 조롱하는 것일 뿐”이라고 의견을 냈다. 또 ‘한남자’는 “생계유지조차 빠듯한 요즘 국민연금이 과연 우리의 복지를 책임지는 수단인가.확대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하이텔에서 “IMF 이후 많은 실직자들이 생겨나 반환일시금의 수요가 늘어나자마자 왜 갑자기 전 국민의 연금시대라고 내걸고 나오는지 정말 모르겠다”면서 “연금이라기보다는 세금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의 직종별 권장소득액을 책정해 이를 국민들에게 공람케 한 뒤 본인의 소득액과 크게 차이 날 경우 정정신청을 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경제가 어려워 당장 연금액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울수 있으나 장애나 유족연금의 경우 한달만 가입해도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등 혜택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崔聖載교수는 “당초 전국민 연금은 IMF를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계획한 것이었기 때문에 영세한 자영업자에게는 분명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또 “앞으로 기금운용을 시민단체 등이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국민 연금가입에 따라 4월1일부터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자영업자1,700만명이 새로 국민연금에 가입한다.徐晶娥 seoa@
  • 의회제도 3원화 … 정당정치 폐단 없애자

    지난 9일자 대한매일 ‘난장판 정국·정치개혁의 계기로’ 제하의 장기표씨 글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몇가지 구체적 실현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해볼까 한다. 정치계는 경제·교육·체육계와 같이 사회의 한 분야를 점하면서도 국가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분야이므로 정치계가 흔들리면 국가사회 전체가 흔들린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국가사회 전체가 잘 움직이려면 무엇보다도 정치계가 잘 돌아가야 한다.정치인이 이성과 양심으로 일을 잘 하면 그 이상 바랄것이 없을 것이나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다. 정당의 일차목표는 정권의 획득과 유지에 있으므로 정당은 이를 위해 당력을 기울여야 하는 생리를 가지고 있다.품은 뜻을 펴려면 정권을 잡아야 하므로 정권획득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정당은 그 존재 의의조차 없다. 이치가 이럴진대 평화로운 정국운영을 하려면 정권을 탈취하지 않고도 품은 뜻을 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정당정치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그단점을 보완하고 전체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큰 힘을 발휘해 거침없이 전진할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의회제도의 시스템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말이다. 우선 대한민국 의회를 ‘국민의회’로 호칭을 바꾸고 그 구성을 유당국회(현재와 같이 정당이 지배하는 국회) 무당민회(정당과 무관무연) 약식 국민투표(주민등록번호로 선정한 1,000∼1만명의 투표)의 삼부합일로 해 기계 하나가 고장나도 다른 성한 기계가 있어 무사히 목적지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당민회와 약식 국민투표가 제도권 안에 있으므로 소수당이나 야당도 정권을 잡아 품은 뜻을 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다수당 집권당도 마음대로 흔든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전체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나라 일을 한다는 면모를 보여줄 수 있어 대국민 친화면에서 바람직하리라 여겨진다. 다시한번 원만한 의회제도 운영의 구체적 방안으로 국민의회(유당국회-무당민회-약식 국민투표)안을 확신에 찬 느낌으로 제안한다. 우리는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바쁘다.정치가 마비되면 국가가 마비되어 주저앉는다.힘차고 위험이 덜한 다발(多發) 여객기에 올라타도록 하자.하루빨리 다엔진 여객기를 마련하자.
  • 금서 ‘해방의 길목에서’ 어떤 내용 담겨있나

    朴炯圭목사가 남긴 책은 ‘해방의 길목에서’를 비롯해 ‘해방을 향한 순례’‘파수꾼의 함성’‘폭력을 이기는 자유의 행진’ 등 다수가 있다.이가운데 유일한 금서 ‘해방의 길목에서’는 박목사의 사상과 신앙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요체다.이 책에 실린 글들의 주요 부분을 발췌해본다.● 교육과 그리스도교 중학교 무시험제도 대학입학자격 예비고사제도 그리고 국민교육헌장의 발표,이 세가지는 한국교육의 세 방향을 보여주는 정부의중요시책이다.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오히려 행정부가 어떤 숨은 정치적인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예언자의 역사의식 우리는 모두 국가비상사태라는 이 세상의 아들들이 만들어낸 통치수단에 순응하여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아닌가●마르크스의 휴머니즘 오늘의 공산주의 사회는 국가라는 거대한 독점 자본각가 전 국민을 인격없는 임금노동자로 만들어버린 기형적인 자본주의에 불과하다.●소외된 대중과 교회의 선교(73년5∼6월 빌리 그레함 한국전도대회를 보고) 110만의 신도를 여의도 대광장에 모은 한국 기독교의 눈에는 한국 사회의밑바닥에서 이 사회를 떠받치느라고 피와 땀을 흘리며 살과 뼈를 갈아 희생의 제물이 되고 있는 근로대중의 현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한반도의 미래와 교회의 선교자세 공산 북괴와의 대화와 상호작용에서 최종적으로 판가름하는 것은 남한에 있는 영세대중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와 주권의식및 민권투쟁의 역량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모름지기 한반도의 적화를 방지하려는 권력자나 지도자는 지금부터라도 대중의 저항력과 창조력을 육성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밝은 한국을 찾자(9·14삼선개헌안과 국민투표법안 변칙처리)에 대해 이제다시 흑암의 세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조국의 광명을 지키기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싸웠고 또 붉은 마수와 접전하여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린 한국교회는 이제 다시 대두하는 밤의 세력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새해 화폐통합(달려오는 ‘유럽합중국’:上)

    ◎유로화 탄생 ‘20세기 최대 경제사건’ 【브뤼셀·프랑크푸르트 김수정 특파원】 유럽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유럽통합’을 향한 장대한 행진을 해온 유럽연합(EU)은 바야흐로 세계중심에 다시 설 수 있는 디딤돌을 갖게 됐다.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됐던 ‘화폐통합’은 이제 4주 후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유럽단일통화 유로화의 출범은 ‘유럽 합중국’ 실현의 기폭제.유럽은 하나의 경제권을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사를 유럽으로 옮겨놓으려 하고 있다.유로화 탄생의 의미를 살펴보고 유럽 정치권과 사회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통합현장을 찾아 ‘노(老)대륙’에서 ‘신(新)대륙’으로 거듭나려는 유럽을 두 차례에 걸쳐 진단해 본다. ◎의미와 전망/달러 대항 제2의 기축통화 역할 ‘E­데이’가 다가온다. 유럽연합(EU)집행위 본부,유럽의회 등이 있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고풍스런 분위기가 매력인 이 도시는 유럽단일통화인 유로 탄생을 축하하는 분위기로 가득찬 느낌이다.갖가지 크리스마스 장식과 시가지 전체를 수놓은 파란색 유럽연합 엠블렘의 강렬한 대조,세계 각지에서 몰려 든 언론인,기업 참관단의 분주한 움직임은 대규모 축하 행사장을 방불케 한다.이미 브뤼셀 시내의 호텔과 레스토랑은 벨기에프랑화와 유로화로 가격을 표시하고 있다. 유로화의 탄생은 유럽통화동맹(EMU)에 가입한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핀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11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유로화 출범이 갖는 막대한 국제경제적 파급효과 때문이다.‘20세기 최대의 경제사건’으로 부르는 유로시대는 내년 1월1일,정확히 새해 연휴가 끝나는 1월4일 막을 올린다. 유로 단일통화권,‘유로존’ 출범은 세계 제1의 기축통화 달러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기축통화가 탄생함을 의미한다.11개 가입국가의 총 인구는 2억9,000만명으로 미국을 능가한다.국내총생산(GDP)합산액은 6조5,000억달러.미국의 8조1,000억달러보다 적지만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로 17%인 미국보다 높다.유로화로 전환될 전세계 자금 추정액은 7,000억달러선. 그러나 유로화의 성공에는 금융 외환부문의 경쟁력을 확보,유동성과 안전성을 구비해야 한다는 단서가 뒤따른다.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유로화의 성공을 확신한다고 밝혔다.독일 도이치뱅크가 국제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가 오는 2003년에 제2의 기축통화 역할을 할 것으로 낙관했다. 독일 유럽통합연구센터(ZEI)의 버나드 하요박사는 그러나 유로가 달러를 능가하진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달러의 세계 지배 뒤에는 정치·안보논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 가입 4개국 행보/영,가입여론 확산… 1년내 참여할듯 “조만간 영국은 유로존에 가입할 겁니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나머지 유럽국가들이 모두 유로를 쓰는데 우리만 파운드를 고집해서 이득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거래선과 회의을 위해 독일 프랑크 푸르트를 방문했다는 영국의 중소 철강업체 알펙스사 중역 프라샨트 코퀘일씨는 영국이 1년안에는 유로존에 가입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영국은 지난 5월 브뤼셀에서 열린 EU정상회담에서 덴마크 스웨덴과 함께 유로존 불참을 통보했다.그리스는 가입을 원했으나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근거한 예산 적자및 정부 부채 비율 등 자격요건 미달로 가입하지 못했다. 영국 등이 가입하지 않은 까닭은 상이한 경제여건을 갖춘 나라가 하나의 경제통화 정책을 실시할 경우 파탄으로 치달을게 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통화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도 강했다. 그러나 최근 영국의 분위기는 유로 가입쪽으로 기울었다.여론조사는 전국민의 3분의 2이상이 유로가입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기업들의 유로가입 의지는 더 확고하다.영국 주요 기업들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유로가입을 희망하는 전면광고를 내기도 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내년 1월 유로가입을 결정할 국민투표에 관한 계획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로가입 희망은 자칫하다간 런던이 지난 수세기 동안 지켜온 유럽 금융중심지역할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내줄 수 있다는 경계심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향후 일정과 화폐종류/3년간 가상 통용… 2002년 사용의무화 ●99년 1월1일 11개 가입국 외환시장에서 유로로 거래가 시작된다.그러나 향후 3년동안 유로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화폐.‘사이버’ 유로로 부른다.신용결제 및 국가간 거래의 결제수단으로 이용된다.2002년까지는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한 계도기간.모든 국채와 투자는 자국 통화와 함께 유로로 표기되며 유럽중앙은행 은 공채와 통화운용을 유로로 하게된다. ●1999년 후반.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 이외 지역과 통화및 교환비율을 정한다.국가간 유로로 채권거래를 시작하는 것도 이때 부터다. ●2002년 1월 유로 지폐와 동전이 본격적으로 원래 통화와 교환돼 유통된다.7월까지 회원국들은 자국통화를 유로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 ○지폐 7·동전 8가지 ▷유로화◁ 지폐는 5 10 20 50 100 200 500 유로까지 모두 7종.동전은 1,2,5,10,20,50센트와 1유로 2유로 등 8가지.지폐는 유로권 전체가 같은 디자인이다.동전의 경우 한 면은 각 국가별로 특징을 넣어 다른 모양으로 주조된다. EU집행위 통화정책실은 500억장의 지폐와 600억 개의동전이 발행될 것으로 추정했다. 1유로는 6.6프랑스 프랑, 14오스트리아 실링,2 독일 마르크, 1.1달러로 교환될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의 역할/통화량·금리 등 주요 정책 결정 유로 출범 전날인 12월31일 하오 11시30분.세계의 이목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금융가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에 집중된다.바로 이 시간 빔 두이젠베르크 총재가 유로와 가입국가들의 통화,달러와의 교환비율,유로존의 금리를 확정 고시한다. 이처럼 ECB는 유로화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유럽통화동맹의 ‘두뇌’다.최고의결기구인 의사결정회의(Governing Council)는 집행위원회(Executive Board)임원 전원과 유로 가입국 중앙은행 총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집행위원회는 8년임기의 총재와 부총재,4명의 이사로 짜여져 전 유로지역의 통화정책에 대한 책임을 떠맡고 이 지역의 통화량 총계와 인플레 변화율을 근거로 금리등 주요 정책사항을 결정한다. 유럽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주도권을 잡기 위한 회원국들간 물밑작전도 치열하다.지난 5월 초대 총재 선거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다.독일의 실세 오스카 라퐁텐 재무장관이 차기 후보로 거명될 정도다. ◎어떤일 생길까/상품값 투명화/인수·합병 활발/돈세탁·위조 등 범죄기승 우려 포르투갈 시골의 마을.은행원을 가장한 한 남자가 할머니에게 말한다. “에스쿠도스(포르투갈 화폐)는 이제 쓸모가 없어요.유로로 바꿔야해요” 내년 1월 이후,3년간 유로가 가상화폐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당할 수 있는 사기범죄다. 유로시대의 시작은 유럽 사람들과 기업들에게 전혀 새로운 경제활동의 지평을 제시한다.나라마다 표시가 달랐던 상품의 가격이 유로로 통일됨으로써 가격은 투명해진다. 소비자들은 싸고 질좋은 상품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 것이다.국제거래에서 환차손도 사라진다. 그만큼 이 지역의 상품은 가격경쟁력을 얻게되고 달러에 집착하던 자본은 유로에 찾게된다.기업들은 더 쉽게 조달할 수 있으며 무한경쟁속에 기업간 살벌한 인수 합병이 시작된다. 여기서 살아남는 기업은 최대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탄생할 것이다.프랑스의 유통업체 카르푸의 공격적 확장에 유럽의 소형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독일 지멘스 등 유럽의 대형 기업들이 수년전부터 유로화 대비태세를 끝낸 것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최근엔 유럽 자동판매기 협회와 신용카드업협회 등 전문·소형 업체들도 막바지 준비에 부산하다. 한편 돈세탁을 원하는 마약 등 범죄조직에게 유로권은 파라다이스와도 같다.위조지폐에 대한 우려도 높다.동일 화폐가 각 나라에서 제조되기 때문에 특별한 보안 장치가 요구된다. 유로지폐에 익숙치 않은 노인들의 경우 위조범들이 노리는 범죄대상이라고 언론들은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 加 분리주의 퀘벡당 재집권

    ◎州의회선거 득표율 43% 그쳐 국민투표는 늦어질듯 캐나다 퀘벡주가 분리독립 문제로 다시 들썩이게 됐다.30일 주 의회 및 정부 선거에서 이 문제의 국민투표 회부를 공언해온 분리주의 퀘벡당이 재집권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뤼시엥 부샤르 주 총리가 이끄는 퀘벡당은 득표율 43%로 주 의회 125석중 77석을 획득,분리독립 반대를 내건 제1야당 자유당(43.6%,46석)에 신승했다. 지지율에 비해 퀘벡당 의석수가 많은 것은 지지자가 주 전체에 고르게 분포돼 있기 때문. 퀘벡당이 이기긴 했지만 지지율이 신통찮아 국민투표 시기는 다소 늦춰질 전망이다.당초 퀘벡당은 의석 80석 또는 지지율 50% 이상 압승으로,국민투표에서의 승리가 보장될때만 즉시 투표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었다.
  • 클린턴·옐친/권력 입지 흔들 ‘동병상련’

    ◎성추문 부각 共和 전략에 중간선거 고전/패배땐 무거운 책임… 탄핵공세 시달릴듯 요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좌불안석이다.코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확실한 승리가 쉽게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패하면 물론 박빙의 승리를 얻어낸다 해도 클린턴은 공화당의 탄핵 공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책 대결을 벌일 만한 쟁점이 없다보니 정치지도자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공화당은 민주당의 간판스타인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유권자의 지지를 유도하고 있다.민주당의 반격 역시 같은 채널에 맞춰져 있음은 물론이다. 안으로부터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지금까지의 여론조사대로라면 민주당은 어려운 중간선거를 치러야 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클린턴에게 전가될 조짐이다.‘지퍼게이트’에 책임과 원망이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으로 민주당이 선거에서 패배라도 한다면 클린턴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될지도 모른다.공화당의 정치 공세를 제쳐두고라도 일부 민주당의원들마저도 지역구의 여론 등을 의식해 찬성하는 ‘반란표’를 던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구태여 성추문이 아니더라도 96년 대선자금 의혹,화이트워터 부동산 사기사건 등 클린턴이 연루된 다른 비리사건에 대한 조사 가능성도 도사리고 있어 선거 결과는 자칫 클린턴의 설 땅을 앗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측근들 “대통령 권력 일부 정부·의회 이양”/상원의장 “대통령은 선거인단서 뽑아야” 【모스크바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흔들린다.크렘린궁 고위 관리들조차 대통령의 권력 일부를 정부와 의회에 이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옐친의 위험한 입장은 경제위기와 함께 거론되기 시작했지만 측근들이 입에 올렸다는 데 의미가 크다.옐친 대통령이 의사들의 권유로 흑해 연안의 휴양지 소치로 휴가를 떠난 게 권력이양을 재촉하고 있어 보인다. 올레그 스이수예프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은 최근 옐친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일부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치권 반응은 마치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했다.우리집 러시아 당의 알렉산드르 쇼힌 원내총무는 “”대통령 권력의 이양과 조기 대선 거부 등은 현재 정부 내에서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예고르 스트로예프 연방회의(상원) 의장은 한술 더 떠 대통령은 일반 국민투표보다는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돼야 한다며 헌법상의 대통령선거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크렘린과 정부는 내심 당황한 눈치다.특히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는 옐친이 여전히 대통령으로서 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그러나 크렘린과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옐친의 권력이양 작업(헌법 개정 작업)은 진행중인 상황으로 이해되고 있다.
  • 피노체트는 누구/73년 유혈쿠데타로 집권… 17년 철권통치

    ◎반대파 무자비한 탄압… 4,309명 사망·실종 【산티아고(칠레) 외신 종합】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73년부터 90년까지 칠레를 철권 통치한 독재자. 1915년 칠레의 항구 도시인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나 18세 때에 사관학교에 들어가 지정학을 공부했다. 73년 당시 아옌데 대통령에 의해 군 총사령관에 임명됐고 그후 한달만에 유혈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88년 집권 연장을 묻는 국민투표가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자 마지못해 다음해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으나 파트리시오 아일윈 후보가 당선되는 바람에 90년 3월12일 퇴임했다. 그러나 재임중에 개정했던 헌법에 따라 면책특권이 부여된 종신직 상원 의원에 취임하는 등 퇴임 후도 미리 대비를 해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피노체트는 칠레식 독재 모델로 경제성장을 달성해 부유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경제건설과 공산주의로부터 칠레를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좌파 등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해 악명을 떨쳤다.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그의 집권기간에 3,197명의정적들이 살해됐고 보안군에 의해 체포 구금됐다 실종된 사람도 1,102명에 달했다. 또 수십만명이 체포,고문당하거나 외국에 망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美 대통령‘탄핵정국’속 새달 3일 중간선거/탄핵조사·청문회 전망

    ◎클린턴 정치생명 좌우한다/성추문·대선자금·화이트워터 등 무제한 조사/공화 상원 12석 더 획득땐 탄핵 독자의결 가능 연방의회·주지사·주의회를 대상으로 한 미국 중간선거의 D­데이는 오는 11월3일. 각 방송사와 갤럽 등 여론조사기관이 본격적인 여론조사에 돌입하면서 미 정치권의 선거 열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는 특히 미 하원이 지난 8일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를 결정함으로써 클린턴의 정치생명을 결정짓는 최대 열쇠로 부각되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둔 미 의회의 현황과 세력 판도,그리고 그 결과가 미칠 영향 등을 짚어본다. 오는 11월3일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겐 ‘운명의 날’이다. 클린턴은 지난 8일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이 탄핵조사안을 의결,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빠진 상태. 앞으로 시한을 정하지 않고 탄핵조사와 청문회가 열린다. 특히 조사범위의 제한도 없어 성추문사건은 물론이고 96년 대선자금 불법모금과 화이트 워터 사건 등 모든 문제에 대해 집중조사를 받는다. 이제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는 클린턴에게는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최대 중대사일 수밖에 없다. 선거 결과가 클린턴에 대한 탄핵안의 상·하원 통과에 영향을 줄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탄핵정국’에 대한 국민투표 및 클린턴과 민주당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여기서 나온다. 클린턴이 비록 미국민들로부터 6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다 하더라도 공화당이 압승한다면 클린턴에 대한 탄핵절차가 진행될 게 분명하다. 민주당이 선전한다면 탄핵 대신 견책이나 벌금 등의 징계 정도에서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크다. 클린턴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에는 세계 경제 위기,나토의 코소보 무력 개입,중동 회담 등 여러가지 변수들이 존재한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탄핵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중간선거 결과에 비하면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8일 의회 결의를 앞두고 힐러리 여사가 민주당 의원들을 굳이 단속하지 않은 것도 정작 중요한 열쇠는 11월3일 선거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헌법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하원의원 과반수와 상원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규정해 놓았다. 공화당은 현재 435명 정원의 하원에서 228석을 보유,독자적인 탄핵발의가 가능하다. 하지만 100명 정원의 상원에서는 55석을 보유해 의결 정족수인 67석에 12석이 모자란다. 선거 여론 분석가인 마크 펜은 성추문에 발끈하던 보수 세력이 주춤해지면서 분위기는 민주당 선호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설령 민주당이 선전,클린턴이 위기를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벌거벗은 임금님’이 돼버린 클린턴의 잔여 임기 2년은 ‘레임 덕’(권력누수) 그 자체일 것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 “편파 司正 절대 않겠다”/金 총리,국회본회의 답변

    ◎北 금강산 관광수입 年 1억弗/金榮煥 의원 “청구 돈 200억 舊여권 유입 의혹” 국회는 26일 하오 본회의를 열고 金鍾泌 총리와 康仁德 통일·洪淳瑛 외교통상·朴相千법무장관 등 관계 국무위원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여야의원 7명이 차례로 정치·통일·외교·안보분야에 대한 대정부 질문을 했다. 金총리는 답변에서 “정부 여당이 야당파괴공작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일부 야당의원들의 당적 변경은 여러 인과관계와 상대적인 이유가 있으며,개인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金총리는 이어 “편파사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朴법무장관도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표적수사 시비가 일지 않도록 여야를 막론하고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金총리는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경제가 나아지고 나라 사정이 좋아지면 공개적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내각제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변했다. 金총리는 북한 金正日 주석의 취임식 때 축하사절단을 파견할 것이냐고 묻자 “정부는 현재 아무런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康통일장관은 “金大中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특사교환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측의 반응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국민회의 金榮煥 의원은 질의를 통해 “12조원에 이르는 부실채권을 만들고 IMF 초래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던 기아그룹의 비밀장부 속에서 900억원의 비자금이 조성·사용되었다”면서 “92년 총선때 金모의원이 13억원,96년 총선 당시 李모의원이 13억원,또 다른 李모의원 7억원,金모의원이 3억원을 각각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청구그룹의 자금 200억원이 구여권에 뿌려졌다고 폭로했다. 국민회의 柳在乾 의원은 “金大中 대통령이 제의한 남북 상설대화기구 창설을 위한 정부의 준비상황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무엇이냐”고 묻고 “판문점에 프랑스의 퐁피두센터같은 한반도 공동학술조사 연구센터를 건립할 것”을 제안했다. 한나라당 李源馥 의원은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의원내각제 개헌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용의는 없느냐”고 묻고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를 개혁할 필요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 민주열사 열전:4/金相眞 서울농대생(정직한 역사 되찾기)

    ◎할복 자결… 反 유신의 魂으로 부활/학생운동사 목숨 던진 첫 인물/꺼져가던 투쟁의 불씨 되살려/암울한 시대 희망의 새싹 틔워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합법을 가장한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75년 4월11일 상오 11시. 서울대농대 4학년 金相眞은 수원에 있는 농대 캠퍼스에서 그렇게 ‘양심선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격정의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차분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는 비장함에 묻혀 이내 사그라졌다. 선언문 낭독이 거의 끝나갈 즈음. “이 보잘것 없는 생명,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는 말이 나오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순간 그는 품속에서 과도를 빼 치켜들었다. 그리고 하복부를 깊게 찔러 위로 그어올렸다. 그는 친구들에게 들려 택시까지 가며 “애국가를 불러달라”고 했다. 수원도립병원에서 1·2차 수술을 받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중이던 12일 상오 8시55분 그는 앰뷸런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죽어가며 “애국가 불러주오”金相眞 열사는 민주화투쟁 학생운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진 최초의 인물이다. 주변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죽음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했고,그 파장까지도 충분히 예측했던 것 같다. 75년 2월 朴正熙 정권은 유신체제에 대한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에서의 승리를 내세워 강경으로 선회했다. 정부가 약속했던 구속학생과 교수들의 복학·복직을 불허하고 극심한 언론탄압을 일삼는 등 유신체제가 오히려 폭악화되자 그는 어떤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미온적인 동료·후배들의 자세도 그를 피할 수 없는 ‘결단’으로 밀어댔다. 그는 ‘양심선언문’과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을 꼼꼼히 작성했다. 그리고 4월9일 ‘인혁당 재건 사건’으로 8명이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사형당했다는 소식에 치를 떨며 과도를 구입했다. 인혁당사건은 10년 뒤인 95년 모방송사가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 사법사상 ‘가장 치욕스런 판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김상진기념사업회 安鍾健 회장(50·방송대 교수)은 “相眞이는 복학후 되도록 시위에서 빠지려고 했다. 그러나 74년말부터 급격히 암울해지는 시대상황에 매우 당혹스러워했고,무언가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회고했다. 安회장은 金相眞 열사와 고등학교 및 대학 같은 과 동기다. 그는 또 “相眞이가 할복 전날 밤 자신을 찾아와 칼을 보여주며 가족과 애인 걱정을 했다”고 전한다. “相眞형은 항상 ‘이래선 안되는데’라고 중얼거렸어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때다’‘내가 해야할 것 같다’고 결의를 나타내기도 했구요”후배 鄭鉉敦씨(축산·74학번)의 회고다. ○시위 확산에 긴급조치 9호 선포 朴正熙 정권은 金相眞의 죽음이 반유신의 상징으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숨을 거둔 지 15시간만에 장례식도 없이 화장하게 했으며,서울대 농대를 사실상 폐쇄했다. 각 대학에도 휴교·휴강 조치를 내려 4월 중순까지 25개 대학이 전면 휴강에 들어갔으며,시위 주동자의 대량 연행과 구속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는 5월13일 체제에 관한 어떤형태의 반대의견이나 행동도 금지하는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그러나 서울대생 1,000여명은 5월 22일 관악 캠퍼스에서 기어이 ‘金相眞 열사 장례식’을 거행하고 긴급조치 철폐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5·22사건’이다. 朴炯圭 목사는 95년 金相眞 20주기 행사때 “모든 사람들이 좌절할 때 꺼져가는 민주화운동의 불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긴 이가 金相眞 열사”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튼 민주화와 정의의 물길을 우리가 제대로 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반문했다. 당시 5·22사건으로 수배됐던 金槿泰 의원(국민회의)은 “金相眞형과 그 사건은 아직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진정한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제의 폭압아래 똑같은 나이(27살)에 옥사한 尹東柱의 ‘서시’는 그의 이상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金相眞 열사는 尹東柱의 ‘서시’처럼 한점 부끄럼 없이 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채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민주화투쟁은 오늘의 민주주의로 승화됐고 밝은 미래의 희망으로 존재할 것이다. ◎어머니 朴載娟 여사의 통곡/“정부에 의한 명예회복 평생소원” “에미로서 자식 마음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고 혼자 고통을 겪다 가게 했어요…” 金相眞 열사의 어머니 朴載娟 여사(80)가 아직도 못내 아쉬워하는 점이다. ‘군대까지 다녀와서 데모에 끼겠느냐’며 항상 어머니를 안심시키던 아들. 그가 죽자 슬픔과 원망이 뼈에 사무쳤지만 朴여사는 차차 목숨을 던져야 했던 아들의 장한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相眞이는 유난히 정이 많고 심지가 깊었어요. 친구를 무던히도 좋아했지요. 친구들을 몰고와 내가 음식상을 내오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어요” 어머니는 95년 20주기 행사때 손수 음식을 장만해 벽제 묘소로 가져가 100여명의 아들선·후배 동료들을 먹였다. 朴여사는 아들이 죽자 병원에서 “제발 화장하지 말고 묘를 쓰게 해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포항에 있던 맏아들을 불러올려 억지로 설득해 화장을 강행했다고. 그녀는 “화장터로 쫓아가 ‘우리가 뿌릴 터이니 유골단지를 달라’고 해 중앙청 옆 법륜사에 감췄다”고 했다. 그로부터 1년후에 金相眞 열사는 벽제공원묘지에 묻힐 수 있었다. 朴여사는 현재 서울 갈현동 자그마한 한옥에 혼자 산다. 신경통과 위경련을 앓고 있지만 심하지는 않은 듯했다. 고려컨테이너 부사장인 맏아들 상운씨와 대한투신 원주지점장으로 있는 둘째아들 상근씨 등 8남매가 모두 건실하게 살고 있어 흐뭇하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이 공식적으로 정부에 의해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죽기 전에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후배 鄭赫基씨의 맺힌 恨/“긴 겨울 몰아낸 ‘민주햇살’ 빛 봐야” 김상진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鄭赫基씨(42·산야농산 대표)는 “相眞이 형이 죽은 이후 학생들은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재야나 지식인들이 자기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金相眞 할복사건이 유신독재정권이 내리막길을 걷는 시대적 분기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朴正熙 정권의 폭압이 절정에 달해 정권 말기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죠. 공권력으로는 도저히 국민의 항거를 막기 힘들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건 당시 축산과 새내기였던 그는 金相眞 열사가 할복하는 순간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뒤에 있던 선배들은 그가 칼을 빼드는 순간 그 뜻을 얼른 알아차리고 덮쳤지요. 그러나 정작 저는 ‘단순히 각오를 다지기 위해 빼들었겠지’했어요. 그런데 막상 할복하고 쓰러지자 정신이 멍하고 아찔했습니다” 그는 “그후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鄭씨는 지난 95년 기념사업회가 출간한 金相眞 열사 평전 “긴겨울 얼음뚫고’의 정리작업을 맡았었다. 3년이나 걸린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는 “죄책감에 대한 빚갚음의 의미도 있지만 相眞이 형의 진실이 진정한 역사로 기록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화가 후퇴하고 권력이 부패하면 언제라도 제2,제3의 金相眞이 나올수 있다”는 鄭씨. 그는 “全·盧 시대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며 “지금의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항상 경계해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金相眞 열사 연보 ▲1949년 金東壽·朴載娟씨의 3남6녀중 여섯째로 서울에서 출생 ▲1962년 혜화국민학교 졸업 ▲1965년 보성중학교 졸업 ▲1968년 보성고등학교 졸업,서울대농대 축산학과 입학 ▲1971년 군입대.경기 포천의 공병대에서 근무 ▲1974년 2학기 복학 ▲1975년 4월11일 서울대 수원농대 교정에서 유신정권의 허위성을 고발하는 ‘양심선언문’낭독하고 할복 자결 ▲1975년 4월12일 상오 8시55분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도중 사망
  • “림팩98 합동훈련은 한반도의 가상전쟁”/美 군사문서 공개

    【도쿄 교도 연합】 미국 하와이 인근에서 실시되고 있는 림팩 98(환태평양합동훈련)은 한반도와 같은 분단국에서 발발한 가상전쟁 훈련인 것으로 최근 공개된 림팩 관련 미 군사문서에서 밝혀졌다. 지난 6일 시작돼 1개월여 계속되는 이번 훈련에는 한국과 미국,일본,캐나다,호주,칠레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중국과 인도네시아,싱가포르,페루가 옵서버를 파견했다. 미 제3함대 사령관인 허버트 브라운 부제독은 이번 작전의 시나리오가 미래에 발발할 수 있는 전쟁 가능성에 대비한 현실적인 훈련이라고 말했다. 군사문서에 따르면 시나리오는 호놀룰루에 기지를 둔 작지만 풍요로운 민주주의 ‘블루 랜드’와 거대하지만 가난하고 군사독재가 지배하는 농경 사회주의 ‘오렌지 랜드’와의 전쟁이다. 가상전쟁은 오렌지 랜드가 양국의 통일문제와 관련해 블루 랜드가 제안,실시한 국민투표 결과를 거절하면서 블루 랜드를 침공함으로써 발발했다. 유엔은 즉각 오렌지 랜드에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블루랜드를 지원하기 위해 다국적군을 파병한다는 것이다.
  • 美의 51번째 州가입 문제/푸에르토 리코 12월 투표

    【산후안(푸에르토리코) AP 연합】 미국의 주(州)가 지금의 50개에서 51개로 늘어날지도 모른다. 미국의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가 미국령이 된지 100주년에 때맞춰 오는 12월 미국의 51번째 정식 주로 편입할 것인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25일 발표했다.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으로 미국령이 됐고 지난 52년 미국의 자유연합 주로 자치권을 얻었다. 미국 의회에 대표를 보내고 있으나 표결권이 없고 대통령 선거권도 없다. 중남미 카리브해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는 제주도의 5배 크기인 8,959㎢. 인구 380여만명. 스페인계와 흑인사이의 혼혈이 전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최근 14%까지 높아진 실업률 등으로 미국의 지원과 51번째 주로의 격상을 희망하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법적 구속력 없이 93년에 실시된 푸에르토리코의 국민투표에서는 지금처럼 자치령 지위로 남아 있자는 주민이 정식 주로 가입하자는 의견보다 2%나 많았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1­2(정직한 역사 되찾기)

    ◎헌법 반세기/9차례 개헌… 민의 철저히 외면/52년 의원들 납치 직선제 채택/54년 부결안 사사오입 억지통과/박 대통령 집권연장 3차례 칼질/12·12 탈취자 헌전파괴로 ‘심판’/10번째 개헌 국민의 뜻 반영돼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헌법전문은 이렇게 시작되어 326자의 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많은 사람들은 학창시절 헌법전문을 의미도 잘 모른 채 달달 외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개헌의 역사도 교과서를 통해 배웠다.그러나 교과서 뒤에는 권력자들의 정치적 음모가 숨어있었다. 그들의 정략적 개헌은 많은 어용 학자와 지식인들에 의해 ‘정당화’ 되어왔다.헌법은 이러한 굴절된 개헌의 역사로 오염됐다. 헌법은 지난 50년 전쟁 와중의 1차 개헌 이후 9차례에 걸쳐 바뀌었다.지금까지 개헌은 집권세력이 자기의 편의대로 헌법을 뜯어고친 정치적 상처의 흔적을 남겼다. 1차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선출을 국회가 아닌 국민직선으로 바꾸는 것이었다.50년 총선에서 참패한 李承晩은 국회에서 대통령 재선이 어려워지자 52년 7월7일 국회의원을 강제로 납치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그는 대통령 중임제한 규정을 초대 대통령에게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개헌을 다시 강행했다.그러나 그 개헌안은 당초 부결된 것으로 선포됐다.하지만 54년 11월29일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기상천외한 수학적 원리를 끌어들여 억지로 통과시겼다. 4·19혁명은 헌법에서 보장받지 못한 민중 스스로의 저항권 행사였다.그러나 혁명주체가 정치적 힘으로 결집되지 못해 직업 정치인들에게 공을 가로채이고,그들에 의해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채택한 3차개헌이 단행됐다.그러나 혁명주체세력들은 4·19정신의 반영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그들은 국회에 압력을 가해 4차개헌이 이루어지도록 했다.4차개헌은 3·15부정선거 주동자에 대한 공민권 정지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민의에 의한 헌법질서 수립은 그러나 5·16쿠데타로 6개월만에 수포로 돌아가고 30여년의 기나긴 군사독재의 장이 열렸다.朴正熙대통령은 3번이나 헌법을 개악했다.개헌의 핵심은 대통령권한의 강화였다.그는 4년 임기 대통령의 중임제한규정을 없애기 위해 69년 대통령 재임을 3번까지 인정하는 6차개헌안을 여당의원들만 모인 가운데 날치기 통과시켰다.72년에는 아예 영구집권을 담보할 수 있는 유신헌법을 공포했다.유신헌법체제는 거센 국민의 저항에 부닥쳤고,이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울한 긴급조치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김재규의 朴正熙 살해는 유신체제를 끝나게 했다.하지만 군사정권의 종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신군부세력이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했다.그들은 80년 10월27일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선출을 골자로한 제8차 개헌을 단행했다.그러나 결국 이들은 헌정파괴사범으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신군부의 공포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거세졌고,이는 직선제 개헌의 요구로 이어졌다.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한열군 최루탄 사망사건이 도화선이 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위기를 느낀 집권세력은 6·29선언을 통한 직선제 개헌 수용으로 국민들을 회유한다. 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여전히 비민주적 요소를 갖고 있다.대통령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돼 있고 긴급권에 대한 통제장치도 부족하다. 새 정부도 내각제로의 개헌을 약속하고 있다.그러나 10번째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단순한 정부형태의 변경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지난 50여년간 왜곡돼온 것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학자들은 입을 모은다.개헌때에는 특히 그동안 소외돼온 국민들의 뜻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대한민국헌법 연혁 ▲1948.7.17 헌법제정 ▲1952.7.7 제1차 개정(제2대 국회) △양원제 △대통령·부통령의 직접선거 ▲1954.11.29 제2차 개정(제3대 국회) △주권의 제약,영토의 변경 등 중대사항에 관한 국민투표제 △국무총리제 폐지 ▲1960.6.15 제3차 개정(제4대 국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의 절대적 기본권화 △의원내각제 △중앙선거위원회 설치 △헌법재판소의 설치 ▲1960.11.29 제4차 개정(제5대 국회) △4·19에 관련된 부정선거관련자 및 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 제한과 부정축재자의 처벌에 관한 소급입법권의 부여 △특별재판부및 특별검찰부의 설치 ▲1962.12.26 제5차 개정(국회재건최고회의)전문개정 △국가안전을 위해 기본권 보장 다소 약화 △단원제환원 △대통령제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위헌법률심사권을 법원에 부여 △헌법개정엔 국회의결을 거쳐 국민투표 ▲1969.10.21 제6차 개정(제7대 국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의원 50명 이상의 발의와 재적.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함 △대통령의 계속 재임 3번까지 가능 ▲1972.12.27 제7차 개정(유신헌법) 전문개정 △통일주체국민회의 신설 △임기의 연장과 긴급조치권,국회해산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강화 △국회의 권한과 지위를 제한 내지 축소 △헌법위원회 신설 ▲1980.10.27 제8차 개정(국민투표) △비례대표제 채택 △국정조사권 신설 △행정심판제도 신설 △대통령 7년 단임제 △대통령 비상조치권 부여 △전직대통령의 예우조항 신설 ▲1987.10.29 제9차 개정(국민투표) △대통령의 직접선거(5년 단임제) ◎누가 참여했나/권력에 들러리 선 학자들 반성없는 ‘법기술자’ 활보/5·16후 법조인 등 21명 개헌작업 참여/신군부 입법회의에 총장 등 이름 내걸어/실제 입법활동 청와대·권력기관이 주도/김철수 교수 등은 양심 지켜 좋은 본보기 쿠데타에 의한 정권찬탈과 독재정치에 합법성을 부여해 주는 역할은 학자들이 주로 맡았다.이들은 개헌안 입안과 각종 악법 제정에 참여해 부실한 통치 이념을 보완하고,양심세력을 잡아넣는데 정당성을 부여했다.그리고 이들은 대개 출세가도를 달렸고,지금도 반성의 말 한마디 없다. 5·16쿠데타 세력이 추진한 5차개헌안 마련에는 兪鎭午·韓泰淵·葛奉根·尹天柱·李英燮 등 21명의 학자와 법조인이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다.兪鎭午는 5·16세력의 개헌에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관제 단체인 재건국민운동 초대본부장을 맡음으로써 제헌헌법 기초자로서의 명예를 스스로 낮추었다. 72년 유신 선포후 개헌작업은 申稙秀 법무 李坰鎬 보사 徐壹敎 총무처장관과 劉敏相 법제처장,그리고 헌법학자 韓泰淵·葛奉根교수로 구성된 법무부 헌법심의위원회가 맡았다.韓泰淵과 葛奉根은 3선 개헌에 이어 유신개헌까지 참여해 독재헌법 제정의 ‘단골’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80년 신군부의 개헌을 위한 헌법심의위원회에는 文鴻柱 부산대 尹謹植 성균관대 尹世昌 고려대 朴承載 한양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그리고 5·6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각종 악법을 양산한 입법회의에는 金相浹 고려대(5공 초대 국무총리) 權彛赫 서울대 鄭義淑 이화여대 安世熙 연세대 총장,朴奉植 서울대 羅昌柱 건국대 韓基春 외국어대 교수 등이 들어갔다.이들중 朴承載 羅昌柱 등은 특히 신군부 집권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각종 기고문을 많이 써서 곡학 아세(曲學阿世)의 본보기가 됐으며,두사람 모두 5공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韓己植 고대 교수는 ‘광주폭도의 실상’이란 주제로 각 대학을 돌며 교수들을 상대로 슬라이드 상영과 강연을 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헌법심의위나 전문위원,입법회의 등은 들러리에 불과하고 실제 입법은 청와대나 정보기관이 관리하는 비밀모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그러나 비록 극소수지만 金哲洙 서울대 명예교수 韓相範 동국대 교수 등 끝내 권력자의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고 법의 본질적 역할인 정의를 지키는 일에 헌신한 양심적 학자들도 있다. ◎3선 개헌 반대 芮春浩 전 의원/“헌정 파괴 방관만 할수 있나 여 의원으로서 저항에 자부심” “헌정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개인이나 당의 이익보다는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가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요” 지난 69년 朴正熙정권이 3선개헌을 강행하자 여당인 공화당의원으로 끝까지 저항했던 芮春浩 전의원(71)은 지금도 그때의 결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芮 전의원은 개악적 개헌 저지를 위한 반대투쟁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그는 여당의원의 신분이면서도 정권의 불의에 끝까지 저항했다.당시의 독재적 정치체제 속에서 여당의원이 개헌에 반대한다는 것은 정치생명의 끝이며 핍박의 시작이던 상황이었다.그러나 그는 온갖 협박과 회유를 거부하고 정의를 위해 세속적 의미의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朴正熙대통령은 정권 연장을 위해 69년 6차개헌에 나섰다.그러나 여당내에서도 芮 전의원 등 40명이 반대 서명에 나서는 등 강한 반발이 나타났다. “숫자상으로 야당의원에 여당의원 5∼6명만 가세해도 개헌은 막을 수 있었는데….그러나 개헌의결 당일까지 당내에서 반대로 남았던 사람은 제명당했던 저와 鄭求瑛 전 공화당의장 등 2명뿐이었습니다.정권의 회유와 협박이 대단히 집요했어요.” “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다른 사람들은 결국 굴복했습니다.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재산가로 변신했죠”라며 芮 전의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정권에 몸담게된 계기에 대해,“5·16직후 벌어진 재건국민운동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됐다”고 밝혔다.“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고,재건운동의 취지가 훌륭했습니다.朴正熙의 소박한 생활과 일에 대한 열정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습니다.” 개헌과 관련해 남다른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는 새정부의 개헌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개인적 소신으로는 의원내각제가 좋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헌의도와 그 과정의 순수성과 투명성이겠지요.국민들을 그과정에 얼마나 많이 참여시키느냐 하는 것도 과제입니다.” 그는 현정부에 대해서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아직 귄위주의적 통치문화를 벗지 못한 느낌이 든다”며 “한번 그 맛에 젖어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 절대 권력의 속성”이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20여년간 서울 진관외동에 살다 지난해 분당으로 이사해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다.주로 독서와 낚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1­1(정직한 역사 되찾기)

    ◎法의 어제와 오늘/‘正義의 저울’ 국민의 것이었나/잘못된 권력 정당한 도구로 전락/반대세력 제압 反민주악법 양산/마지막 양심 사법부 제역할 못해/法의 타락·불신 심각한 수준 공감 한국의 현대사는 굴절의 역사로 얼룩져 왔다.일그러진 권력에 의해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정의를 지켜야 할 법은 잘못된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의 역할로 전락하기도 했다.제헌절 50주년이 건국 반세기를 자축하는 영광과 함께 역사의 상처가 덧나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서울신문은 제헌절 50주년을 맞아 7월 한달동안 시리즈를 통해 헌법과 대한민국 법 반세기의 영욕을 법과 양심,헌법의 발자취,악법의 상처,거듭나야 할 우리 법조 순으로 재조명해 본다.시리즈는 매주 월요일 게재될 예정이다. ‘법은 조직화된 정의다.’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저명한 판사출신 경제평론가 끌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말하는 법의 개념이다.그는 법이 타락하면 정의와 불의에 대한 판단기준이 흐려지고 정치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진다고 경고했다.그의 경고는 20세기에도 진리다.법학은 정의를 지키려고 스스로의 타락을 경계해 왔지만 인류의 역사는 법의 타락으로 얼룩져 왔다.한국의 법도 타락과 불신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집권세력의 자의적인 정치논리에 의해 왜곡돼온 우리 법의 역사가 이를 증언하고 있다. 지난 50년동안 법이 본래의 영역 지키기에 충실했다고 할 수만은 없다.법을 둘러싼 많은 왜곡과 의문이 존재해 왔다.정의를 세우고 지켜야할 법이 오히려 이를 질식시키고,타인의 인격과 재산을 약탈하는 일을 정당화시켜주지는 않았나.약탈행위에 대한 방어를 도리어 범죄로 만들어 처벌한 일은 없었나. 법을 더럽힌 장본인들은 역사적인 평가와 심판을 제대로 받은 것인가.잘못된 법과 법의 오·남용으로 명예를 짓밟히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어야 했던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명예회복과 경제적 보상이라도 받았을까.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는 곧 우리 법이 앞으로 가야할 방향모색의 전제가 된다. 그러나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金大中 대통령이 대통령후보로 나서 양심수 석방을 거론했다가 벌떼처럼 덤벼드는 사상시비에 곤욕을 치렀던 것이 겨우 반년전 일이다.초등학교 통일교재에 이적성이 담겼다 하여 구속영장이 신청됐다가 기각당하는 등의 공방도 얼마전에 있었다.지난 95년 43년만에 옥문을 나섰던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도 특수한 역사적 환경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법체계가 낳은 민족적 불행의 표식이다. 법의 타락은 헌법의 오염으로부터 시작됐다.헌법은 지난 50년간 9번의 손질을 거쳤다.그러나 그중 실질적으로 민의에 의한 개헌은 얼마나 될까.지난 87년 6월 항쟁에 의해 얻어진 9차 개헌과 4·19혁명 직후 이루어진 3차·4차 개헌이 대체로 민의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들도 혁명의 공을 가로챈 정치세력과 위기에 처한 집권세력이 국민을 이용하거나 회유하려는 측면이 있었다.때문에 사실 엄격하게 따진다면 순수하게 민의만을 반영한 개헌은 없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대부분의 개헌이 소수의 집권세력에 의해 이루어졌고,많은 국민들은 그 과정에서 한발 비켜 있거나,반대편에 서 있었다. 개헌을 통해 권력의토대를 마련한 집권세력은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반대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반민주 악법을 양산했다.남북분단이라는 민족적 아픔을 철저히 이용했고,엄청난 수의 양심적 지식인과 학생들이 그 올가미에 걸려들었다.그러한 법률은 위헌시비 논란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가혹한 형량을 적용해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권력의 이러한 불법적 약탈을 막고 양심을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보루가 사법부이지만 법원은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해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폭력적 권력에 의해 상처를 입어야 했고,권력에 굴복해 부끄러운 판결을 내려야 했던 것이 바로 우리 사법부는 아니었을까. 검찰도 불법적 수사를 합법화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법원의 판결문이 공소장과 거의 같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권력에 협조해 정치인으로 변신한 법조인들도 많았다.최근에는 뇌물과 관련,판사가 인사조치되고 변호사가 구속되기도 했다.법이 타락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는 사회의 잘못된 법의식 때문이다.법을 바로 세우는 길은이러한 잘못된 법의식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특별취재반 특별기획팀=李昌淳 팀장·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기고/‘陸法黨’등 軍政엘리트 활개/저항 못한 지식인층에 책임/韓相範 동국대 법학과 교수 근대사회의 시민법학은 악법과 폭정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발전했다.원래 고대 로마법시대부터 “법은 정의(正義)와 형평의 기술(技術)”이라 했고 법학은 그러한 정의 추구를 임무로 자처하면서 타락을 스스로 경계해 왔다.그러한 법학이 관료의 통치기술학으로 발달해 온 한국에서는 법학을 배운 사람이 잘났다고 할수록 권세의 법기술자로 팔렸다.육법당(陸法黨)이란 군정의 엘리트가 바로 그들이다.이들이 한 일은 역사적으로 심판되겠지만,당장 그들의 역기능은 차단돼야 사회가 정상화될 수 있다. ○탈 바꿔쓰고 자리 욕심 지식인의 그러한 부패와 타락은 사회 전반의 비판감각을 둔화시키고 윤리 의식을 마비시켜서 사회를 썩고 뒤틀리게 했다.그런데도 이제까지 그러한 작태를 스스로 반성 자숙하는지식인은 한 사람도 없다.오히려 그러한 죄많은 무리들이 탈을 바꿔쓰고 이미 버스를 갈아 타고 있다. 지식인의 허약한 체질의 문제는 어제 오늘에 비롯된 일은 아니다.1961년 5·16쿠데타 세력이 헌법질서 파괴를 정당화하는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이란 것을 조작해 내자,일부 학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해설서를 만들어서 무법(無法)을 합법화시켜주는 일에 한몫 거들었다.그리고 관청에서 주는 벼슬자리를 걸신들린듯 달려들어 종노릇을 했다.쿠데타를 한 군인들은 아마도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그래서 지식인이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노리개가 되어 갔다. 1972년 유신쿠데타가 일어나자,교수란 이름의 직업인이 그들의 나팔수로 온갖 거짓말을 다하고 다녔다.장사꾼의 거짓말은 사기죄가 되는데,이들의 나라 망치는 거짓말은 아직까지 괜찮으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세상이다.당시 국회권한을 대신한다는 ‘비상국무회의’는 개헌안으로부터 시작해 온갖 악법을 제멋대로 만들었다.그것도 1961년 ‘최고회의’처럼 헌법을 유린하고 만든 기관이었다.그런데 지식인은 그에 대해 반대는 커녕 찬사로 아양을 떨었다. 1980년 박정희 사망후에 등장한 신군부도 5·17쿠데타를 고비로 ‘국가보위입법회의’란 무법적 권력기구를 만들어서 무수한 악법을 양산해 냈다.이때에 어느 누구도 삼청교육대나 군법의 감옥이 무서워 항거하지 못했다.지식인 또는 학자,교수란 사람들이 악법과 폭정에 대해 무기력하게 방관 묵인하고,그러한 피바다의 판국속에 칼부림하는 자들은 ‘정의사회구현’을 외쳤으니,이땅의 정의는 결국 피묻은 칼의 대명사가 되었다. 물론 군정하에서도 미미하지만 법학자들의 약간의 반발은 있었다.법학교수의 체면을 위해서 몇가지 사례나마 적어둔다.박정희 정권이 쿠데타를 정당화하고자 개헌 국민투표를 시도할 때 황산덕은 동아일보 사설에서 ‘국민투표가 만능은 아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하다가 감옥으로 갔다.(그 이후 군정세력 밑에서 장관을 하게 됐지만).1964년 한일협정체결 반대에 나선 교수중 이항녕은 과거 친일행적을 반성하며 앞장섰다가,교수직에서 쫓겨났다.한상범 본인은 1969년 3선개헌에 헌법교수로서 유일하게 이의를 제기했다.70년대 초 유기천은 박정희 정권의 총통제 음모론을 폭로하고 망명했다. ○日 군국주의 비판 귀감 유신쿠데타 후에도 헌법교수 몇명이 홍보를 거부했다.80년 5·17쿠데타 후에 일부 지식인이 계엄사 합수부로 연행되어 사표를 쓰거나 소추 등 탄압을 받았다.그러나 이런 교수·지식인은 소수이다.대개 부정한 권력에 대해 방관 동조 편승한 실적을 지닌 채 그대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일본제국의 혹심한 탄압하에서도 도쿄대학의 국제법 교수 요코다 기사부로(橫田喜三郞)가 일본군의 진주만공격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의한 것이나,식민정책 교수인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가 군국주의를 비판해 탄압을 받았던 것을 생각한다.그들이 일본의 대학과 지식인의 위상을 지키고 지적 양심과 성실성이 무엇인지 보여줘 일본이 아주 망하지 않게 해준 것이다.우리에게는 그와 비슷한 일도 들수 없다고 하는 지식인의 초라함은 이 시대 우리 자화상이랄까?우리가 역사에서 무엇인가 배운다고 하면이젠 그대로 넘어가선 안된다.
  • 東티모르 소요 긴장고조/시위대,EU 방문단 차량 습격…1명 사망

    【딜리(인도네시아) AFP 연합】 28일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의 소요 사태가 이틀째 확산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독립을 원하는 수천명의 시위대들은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의 시내로 몰려 나와 ‘동티모르 분리독립 국민투표’ 즉각 실시를 촉구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군인과 경찰은 소총과 최루탄으로 무장한 채 지켜봤으나 전날에는 독립 반대 세력간의 유혈충돌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포,시위대원 한 명이 숨졌다. 시위대들은 1㎞ 길이의 대열을 형성,“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구호를 외쳤으며 6,000여명은 유럽연합(EU)고위급 방문단이 탄 차량을 습격하기도 했다.
  • 지구촌 분쟁지역 점검

    지구촌이 뒤숭숭하다.엘니뇨가 몰고온 기상이변으로 곳곳에서 인류가 끔찍한 시련을 격었다.아시아는 엎친데 덮친 겪으로 경제위기까지 맞고 있다. 그러나 인류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전쟁.유럽의 발칸반도에서는 ‘인종 청소’라는 대학살이 또다시 시작될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진다.아프리카에서는 한달째 무모하게 죽고 죽이는 국경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도 조용하지가 않다.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반세기 이상 국경분쟁을 겪고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실험을 강행해 인류를 전율케 했다.어느새 전쟁을 하기 시작했거나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세계의 분쟁지역을 긴급진단해 본다. ◎코소보 세르비아측 알바니아계 탄압 배경/민족성지서 이민족 판치다니…/세르비아 전성기유적 코소보에 오롯이/주민 90% 알바니아계 자치 누리며 생활/현정부 자치권 박탈하자 독립 외치며 투쟁/서방,인종청소 우려 ‘공습 불사’ 개입 태세 유럽의 발칸반도를 흔히 ‘화약고’라고 한다.발칸반도의 신(新)유고연방세르비아공화국 코소보주에서 포연이 피어 오른다.끝이 보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발칸반도를 자칫 전쟁으로 몰아 넣을 수도 있는 ‘코소보 사태’는 세르비아군이 자국민이면서 종족이 다른 코소보주 주민들을 유혈 탄압하면서 비롯됐다.코소보주는 세르비아 공화국 땅이면서도 주민은 엉뚱하게 90%가 알바니아계.코소보 사람들은 종족이 다른 까닭에 세르비아로부터 분리,독립하고 싶어 한다.코소보해방군(UCK)이라는 무장단체까지 만들었다. 세르비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분리주의자들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즉각 군사행동을 폈다.알바니아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면 무차별 포격한다.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5만명 이상이 집을 버리고 이웃 알바니아 등으로 피난을 갔다.세르비아가 알바니아계를 없애거나 코소보에서 모두 쫓아내려 한다고 우려한다. ▷배경 및 발단◁ 본질은 민족 갈등이다.유고에서는 세르비아계,알바니아계,몬테네그로계 등이 얽혀 산다.전체는 1,100만명 정도.알바니아계는 200만명 정도로 코소보에 몰려 산다.코소보의 90%가 알바니아계.세르비아계로 둘러싸인 알바니아계‘인종의 섬’같은 형국이다. 코소보의 고난이 시작된 것은 9년전인 89년.밀로셰비치 대통령은 티토정권이 들어선 2차 세계대전이후 인정해온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했다.코소보는 91년 급기야 독립을 선언하고 나선다.세르비아는 바로 옆의 알바니아가 사주했고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코소보는 결코 내줄 수 없는 땅이다.정신적 고향이 자성지이다.세르비아의 전성기인 14세기 스테판두산 왕국 시절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실제 1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세르비아계가 차지하고 있었다.전쟁이 끝나며 바로 옆에 있는 알바니아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이 세르비아가 코소보에서 ‘인종 청소’를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세르비아는 95년 7월까지 3년이나 계속됐던 이른바 보스니아사태에서 ‘인종 청소’을 감행해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유고연방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포하자 세르비아는 즉각 응징에나섰다.보스니아사람들을 아예 없애버리기로 하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었다. ▷사태 전망과 해결◁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때와 마찬가지로 무차별 보복을 할 것이다.그러나 보스니아 사태와는 사안이 사뭇 다르다.코소보 뒤에는 알바니아라는 나라가 있다.벌써 5만여명이 알바니아로 국경을 넘었다.알바니아를 근거지 삼아 장기적인 무력항쟁태세를 갖춘다면 세르비아는 알바니아를 공격하려 들 것이다.전쟁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사태의 심각성은 즉각 감지됐다.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즉각 세르비아에 물리력을 자제할 것을 경고하며 무력시위에 나섰다.알바니아에는 전투기를 치키로 했다.여차하면 폭격을 감행할 참이다.세르비아와 알바니아에 함께국경을 대고 있는 마케도니아에는 지상병력을 파견키로 했다. 그러나 무력시위나 결의안 만으로 이번 코소보 사태가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상대가 아예 없어져 주기를 바라면서 벌이는 싸움이다.보스니아 사태에서도 그랬듯 다국적 평화유지군이 개입해야 발칸의 화약고가 잠잠해질 것같다. ◎印·파 카슈미르 분쟁 뿌리와 현주소/종교갈등이 핵경쟁까지 불러/주민 60%가 이슬람교도/47년 독립때 ‘파’ 귀속 희망/힌두교도 嶺主 인도에 양도/‘파’ 즉각반발 3차례 전쟁/협정이후 양국 분할 통치/모두 완전한 지배는 못해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유권 싸움을 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이 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두나라가 지구촌의 우려와 비난을 무릅쓰고 핵실험을 강행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곳 때문이었다.세차례나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상대를 압도할 무기가 필요했고 앞다투어 핵무기 개발에 진력해왔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과 중국 등이 국경을 함께 맞대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때문에 두나라간에 치열한 영유권 다툼을 가져왔고 남아시아의 화약고가 됐다.22만여㎢의 면적에 500만여명이 살고 있다.인구의 6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종교적 차이로 서로 다른 나라가 된 인도와 파키스탄.카슈미르는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었다.주민들은 당연히 종교가 같은 파키스탄으로 편입될 것을 기대했다.그러나 힌두교도인 영주(領主)가 인도에서 원조를 받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통치권을 인도에 넘겼다. 파키스탄이 즉각 반발하며 전쟁이 벌어졌다.유엔이 중재에 나섰고 어느 쪽에 편입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섰고 결과적으로 분열만 조장했다.그리고 65년과 71년 또 두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세번째 전쟁이후에는 협정을 맺었다.카슈미르를 두개로 쪼개 북부의 아자드 카슈미르는 파키스탄이,남부의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가 통치하도록 했다.어느 나라도 완전한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해 지금도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무력충돌 원인과 전망/독립당시 국경선 획정이 불씨/이웃사촌이 앙숙 사이로… 평화적 해결 불투명 아프리카 북동쪽에서 한달 가까이 총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국경선을 둘러싸고 에티오피아와 이웃 에리트레아가 전면전을 방불케 하는 국경분쟁을 치르고 있다. 이번분쟁은 지난달초 에리트레아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겠다고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를 공격하면서 본격화했다.에티오피아의 반격과 함께 두 나라는 전투기까지 동원,수도와 주요 도시들을 서로 폭격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국민소득은 각각 400달러와 570달러.모두 95년도 기준치이지만 요즘이라고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근래엔 심한 가뭄마저 들어 더욱 먹고살기가 어렵게 됐다.싸울 형편도 못되는 두 나라가 곧 전면전에 돌입할 태세다. ▷발단과 배경◁ 직접적인 원인은 국경분쟁이다.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서북부에 위치한 티그레주의 바다메를 침공해 점령한 것은 지난달 12일이었다. ‘내 땅은 내가 차지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루아침에 ‘내 땅’을 빼앗긴 에티오피아도 발끈했다 두나라의 응어리는 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에리트레아는 2차대전이 끝나면서 50여년만에 이탈리아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그러나 독립국가는 되지 못했다.국력이 월등했던 에티오피아가 흡수 통합해 버렸다.에티오피아와는 천년도 넘게 같은 생활권으로 살아왔던 터.에리트레아는 즉각 해방전선을 조직해 무력항쟁을 벌인다.그리고 31년만인 93년 마침내 신생 독립국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국경선이 문제였다.이번 분쟁의 빌미가 된 티그레주 일부가 에티오피아 땅으로 되어 있었다.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당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자국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에 편입되어 있었다. 모호한 국경선이 늘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두 나라는 우호적이었다.한나라나 다름없이 화폐도 같이 쓰던 이들이 틀어지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통화 ‘비르’를 버리고 ‘나크파’라는 화폐를 만들었다.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가 괘씸했다.예전과 달리 교역을 하면서 미국 달러로 결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에티오피아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온 에리트레아는 당장 큰 타격을 입었다.에티오피아의 국민총생산액은 250억달러에 이르지만 에리트레아는 20억달러.두나라 국민감정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잠재되었던 국경분쟁이 자연스레 불거졌다. 미국과 르완다,리비아 등이 앞다퉈 분쟁의 중재에 나섰다.두 나라에게 93년 이후 지켜져 왔던 국경선으로 각자 군대를 철수시키고 협상을 갖도록 촉구하는 평화안을 제시했다.그러나 감정이 절정에 다다른 두나라가 영토분쟁을 평화적으로 매듭지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두 나라 비교◁ 에티오피아 면적은 112만8,000㎢로 한반도의 5.5배쯤 된다.인구는 6,000만명.이탈리아의 침략을 물리치고 독립을 유지했던 나라로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돕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극빈국에 머물고 있다. 반면 에리트레아는 국토의 크기를 비롯해 전체인구와 국민총생산액 등 국력이 에티오피아의 10분의 1 수준.종족과 언어가 9개에 이르고 이슬람교에서 기독교까지 종교도 복잡한 것은 두나가 모두 똑같다.
  • 분단국가들 긴장·분쟁 다시 고조/칼 킨더만(地球村 칼럼)

    20세기 후반들어 분단됐던 국가들은 또다시 긴장과 분쟁의 지역으로 되어가고 있다.대부분 분단이 그랬듯 정치적 체제가 달라 비롯되고 있다.앞으로 통일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베트남과 예멘 두나라를 보면 한쪽이 무력으로 다른쪽의 정치체제를 붕괴시키면서 통일을 이루어냈다.독일은 선거혁명을 통해 동독을 서독과 같은 체제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하면서 통일이 완성되었다.반면 남한과 북한,중국과 대만,그리고 팔레스타인이나 키프로스 등은 문제를 풀지 못한 채 분단상태가 이어지고 있다.21세기에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분단상황의 전형격인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보자.49년 이래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80년대 이후 실질적인 변화가 많았다. ○체제대립 21세기 계속 양쪽의 대치는 1927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출범한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의 마무리되지 않은 내전에서 비롯됐다.국민당 정부는 싸움에서 패했으나 망하지는 않았다.장제스(蔣介石)의 지도 아래 대만에 중국과 똑같은 의회를 구성하고 국가체제를 갖췄다.한국전의 발발로 미 제7함대가 대만에 상륙하고 미국이 외교,군사,경제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유중국이 됐다.닉슨 미 대통령은 핑퐁외교로 중국과 미국 사이에 화해무드를 조성했고 카터 대통령은 78년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시켰다.미국은 중국의 요구대로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지만 미 하원은 1년 후 대만이 중국의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대만을 방어해 주는 것을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후 대만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중국의 희망은 거의 완벽하게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대만의 장징궈(蔣經國) 총통은 죽기 직전 대만 국민들의 본토여행을 허용,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간접 경로를 통한 교역과 본토에 대한 투자도 허용됐다.지난해 양국간 교역은 244억달러에 달했다.대만은 중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국가중 하나가 됐다. ○“하나의 중국” 전력투구 대만에도 최근 대만에서 태어난 인물들로 집권층이 교체되면서 정치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국민당은 스스로 일당 독재를 포기하고 다당제를 발전시켰다.중국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현안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준(準)공식 기구도 여럿 만들었다.대만에서 두번째로 큰 정당 민진당(DPP)은 대만독립을 공개적으로 주창하고 나섰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 아래 몇 남지 않은 대만의 수교국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대만은 외교범위를 넓히는데 전력투구함으로써 이에 맞서고 있다.중국정부는 급기야 95년에는 대만과의 준공식적 관계조차 파기했다.96년 대만에서 처음으로 국민투표로 총통을 뽑을 때는 군사적 요충지 부근 해협에서 대대적이고 위협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중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당시 미국은 대만 부근에 항공모함을 보냈고 중국의 군사훈련에 자극받아 일본과 군사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쟁점 타결 어려울듯 요즘 몇달 사이 중국과 대만 사이에 대화 재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중국은 ‘하나의 중국’ 문제를 논의하고 싶어하고 대만은 실질적인 신뢰관계를 다지기 위한 대화를 원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라고 주장하지만 대만은 중국과 동등한 외교권을 갖길 희망하고 있다.일개 지방이 나머지 전체와 같은 위상을 가질 수 없다는 입장인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밀어붙이지만,대만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재통일의 전제조건으로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대만이 독립을 선포해 중국과의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대만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선포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해왔다. 중국과 대만이 올해 안에 대화를 재개하더라도 쟁점들에 대한 타협은 어려워 보인다.오히려 ‘분리주의’를 표방하는 민진당이 올해말 총선에서 승리하거나 2000년 총통선거에서 이긴다면 양국 관계는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마저 크다.
  • 북아일랜드 ‘평화의 봄’ 오나/평화협정 주민 압도적 지지로 통과

    ◎자치의회 구성·정치범 석방 등 변수 될듯 “북아일랜드의 평화와 희망,미래를 위한 거대한 행보가 시작됐다”(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에서 22일 동시에 실시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국민투표결과 두 지역에서 각각 71.1%,94.4%라는 압도적인 지지가 나옴으로써 피로 얼룩진 북아일랜드에 평화가 정착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평화의 도래를 축하하는 트럼펫 소리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만만찮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은 지난 4월10일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정치조직 신페인당 및 신교도 최대 정당인 얼스터통합당(UUP)등 8개 북아일랜드 정파와 영국,아일랜드가 극적으로 타결했다.골자는 북아일랜드를 지금처럼 영국의 지배아래 두되 주민투표로 구성될 자치의회가 자치정부를 수립,영국의 입법행정권을 인수한다는 것. 쌍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른바 ‘북아일랜드식(式)평화안’이다. 아일랜드와 통합하려는 북아일랜드의 구교도와 영연방에 남기를 원하는 신교도가 권력을 공유하고,북아일랜드에 대한 영토권을 규정한 아일랜드의 헌법을 수정한다는 내용이다. 협정을 통한 평화정착 과정에서 대두된 첫 걸림돌은 북아일랜드내 신교파의 협정안 ‘반대’움직임.그러나 투표결과 찬성률이 70%를 넘김으로써 안정적인 출발은 할 수 있게 됐다. ‘테러에 지친 북아일랜드의 아이들에게 평화의 유산을 물려주자’며 이번 평화협정 투표에 임했던 많은 국민들의 기대에도 불구,전문가들의 전망은 회의적이다. 먼저 6월25일로 예정된 자치의회 선거문제.108명을 뽑는 이 선거에서 신구교도간 갈등 재연은 불 보듯 뻔하며 그 조짐은 투표전 신교도측의 강력한 저지투쟁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6월말까지 양측은 무장테러범 석방안을 입법,2000년 여름까지 실행에 옮겨야한다.이는 양측 준군사조직의 무장해제(시한 2000년 5월)와 함께 갈등·대립을 부를 수 있는 불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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