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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역대 대선에서 D-30일, 후보 등록, 선거운동 기간 돌입 시점은 각 후보 간 지지율의 변곡점이 됐다. 흥미로운 건 대선 여론조사가 처음 시작된 1987년 13대 대선 이후 2007년 17대 대선까지 모두 다섯 차례 대선에서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 1, 2위가 바뀐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2002년 16대와 2007년 17대는 이번 18대 대선과 정치 일정이 똑같다. 12월 19일 대선이 치러졌고, 11월 27일부터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2002년의 경우 후보 등록 직전인 11월 23일 갤럽 조사까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32.3%로 줄곧 선두였고, 노무현 민주당 후보 25.4%,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25.1%로 박빙이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4일 노·정 단일화가 되자 전세는 역전됐다. 25일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는 43.5%로 올랐고, 이 후보는 37.0%를 기록했다. 노 후보는 단일화 이후 단 한 차례도 역전을 허락하지 않았고, 정 후보의 지지 철회도 최종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11월 3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하며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같은 달 15일 여론조사까지 김대중 후보는 34.0%로 1위를 달렸고,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각각 24.4%, 23.7%로 박빙이었다. D-30일이던 18일을 기점으로 이회창-이인제 후보의 단일화가 최종 무산됐다. 신한국당은 같은 달 21일 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승부수를 띄우며 추격에 나섰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 후인 11월 29일 조사에서 김대중 후보는 32.8%, 이회창 후보는 29.3%로 양강 구도가 형성됐고, 김대중 후보의 우위는 선거 결과까지 이어졌다. 2007년 대선은 당시 야당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부동의 1위였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범여권 단일화가 시차를 두고 무산된 후, 이명박 후보는 투표일까지 줄곧 독주 체제를 굳혔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씨줄날줄] M&A와 후보 단일화/임태순 논설위원

    기업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외형을 키우거나 기업가치를 높인다. 또 사업 다각화나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해 M&A를 하기도 한다. SK그룹은 알짜배기 공기업을 인수해 덩치를 키운 대표적 기업이다. 유공을 물려받아 SK에너지로 키웠고, SK텔레콤은 한국이동통신을 모태로 하고 있다. 그러나 M&A가 항상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문화의 이질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별하거나 실제 가치보다 프리미엄을 과도하게 지급해 인수기업이 휘청거리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영 컨설팅사 매킨지는 1997년부터 2006년까지 M&A를 한 10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62%가 오히려 기업가치가 저하됐다는 보고서를 냈다. 대표적인 실패사례가 다임러크라이슬러사다. 자동차 업계의 쌍벽을 이루는 독일의 다임러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는 1998년 결합했으나 완고함과 서열 중심의 독일 기업문화와 자유분방하면서도 성과를 중시하는 미국 기업문화가 융합되지 못해 2007년 끝내 갈라서고 말았다. 후보단일화 등 정치적 M&A는 선거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최근의 사례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진보진영 후보단일화를 통해 교육감에 선출됐으나 후보사퇴의 대가로 금품을 준 사실이 적발돼 직도 잃고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선거에서의 M&A는 대부분 당선으로 이어져 효과가 높다. 후보단일화는 지지세력이 엇비슷할 때보다 우열이 심할 때 이루어지기 쉽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DJP 공조에 쉽게 합의할 수 있었던 것도 지지율 격차가 컸기 때문이다. 반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간의 단일화는 선거 하루 전 파기되기는 했으나 대등한 세력 간 후보단일화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의 대선 후보단일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두 후보의 지지율은 서로 엇비슷해 단일화를 둘러싼 신경전,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급기야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이 ‘안 후보 양보론’을 퍼뜨리는 것에 반발, 단일화 협상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가 사과를 하고 안철수 후보가 당 혁신을 위한 회동제의를 했으나 두 사람 간의 앙금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늘에 태양이 두 개가 아니듯이 권력의 세계는 나눔에 익숙지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정치쇄신을 주장해 온 만큼 그 정신에 충실하면 단일화가 어렵지도 않을 것 같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민주 2002년 ‘후단협 악몽’ 재현되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후보 단일화 협상이 중단된 가운데 두 후보의 단일화 협상 재개를 촉구하는 재야와 학계·사회단체 등 각계의 압박과 중재도 활발해지고 있다. 또 민주당 소속 전직 의원 67명이 당 소속 문재인 후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안 후보 중 지지대상을 택할 수 있는 자율선택권을 요구하자 주류 측이 반발하는 등 돌발 변수도 속출하고 있다. 기로에 선 단일화 협상이 후보 간 정면충돌에다 외생변수까지 겹치며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정대철·이부영 전 의원 등 ‘2013 정권교체와 민주헌정 확립을 촉구하는 전직의원 모임’은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당을 탈당하지 않고도 안 후보 지지를 허용해 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당 주류 측은 이들의 움직임을 ‘문재인 흔들기’이자 해당(害黨) 행위라며 정면대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2년 대선 당시의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사태를 연상시키지만 여론을 어떻게 움직일지 주목된다. 당시 후단협은 지지율이 급락했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흔들며 월드컵축구 열기를 타고 지지율이 급등했던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촉구했다. 대선을 2개월 앞두고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5%대까지 추락하자 당내 반노(반노무현)·비노(비노무현)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목표로 한 후단협이 출범했다. 집단 탈당 사태가 발생하고 후보 교체론까지 나오며 노 후보가 대로하는 등 내홍에 휩싸였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새누리 “대항마 안갯속… 홍보전략 헷갈려”

    새누리당이 18대 대선 후보 등록을 불과 9일 앞두고도 TV 광고 캠페인·토론 준비를 위한 콘셉트를 잡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다. 야권 단일화 협상에서 누가 대항마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박근혜 후보의 ‘소구(訴求·호소) 포인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통상 대선을 앞둔 11월 중순이면 후보의 광고 콘셉트와 시안이 시리즈별로 나와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 대선에서 박 후보 캠프는 2개의 시나리오를 들고 ‘야권 후보 결정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변추석 선대위 홍보본부장은 15일 “60초짜리 TV광고는 후보의 시대정신·강점을 그야말로 압축적 영상 메시지에 담아내야 한다.”면서 “기본 시나리오는 있지만 단일화 변수가 매우 커서 예년과 달리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후보의 광고 전략이 상대적으로 크게 바뀔 수 있다.”고 전했다. 변 본부장은 “정치인 광고는 일반 브랜드 광고와 달리 선거운동 기간 중 단 20여일간 경쟁후보와 맞부딪치는 시간·상황 게임이고, 메시지도 선거운동 기간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선 캠프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로 단일화되면 ‘경제 실정의 책임자’로 공략하면서 위기극복론을,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되면 국정운영 능력을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적으로는 ‘국민통합·국민행복 브랜드’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원칙과 신뢰, 서민·민생, 여성 대통령 등도 메시지에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를 박 후보가 걸어온 개인사와 연결시키는 감성 터치 광고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캠프 홍보본부 관계자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당선자의 ‘눈물’, 2007년 이명박 당선자의 ‘욕쟁이 할머니’ 등 감성 광고가 호평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마냥 그 전철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박 후보 특유의 이성과 감성적 측면을 동시에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사설] 文·安, 새 정치선언 넘어 공동정부 구상 밝혀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새 정치 공동선언의 얼개를 마련했다고 한다. ‘안철수 양보론’을 둘러싼 신경전으로 협상이 잠정 중단되는 진통이 따르고는 있으나 조만간 ‘새 정치’의 윤곽이 드러날 듯하다. 새 정치 구현 의지를 내세워 후보 단일화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선제 조치인 셈이다. 국무총리 인사제청권 보장과 대통령 임명권 축소, 정당의 상향식 공천과 비례대표 의원 정수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정치쇄신안과 상당부분 겹칠뿐더러 그동안 정치권 안팎에서 숱하게 제기돼 온 내용들이라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제대로 실천된다면 정치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도 한다. 한데 이 공동선언에는 단일화와 맞물려 가장 중요한 핵심내용이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문재인-안철수 공동정부의 청사진이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대선에서 승리하면 두 후보는 공동정부 형태로 국정을 운영할 것으로 보는 게 불문가지의 현실이다. 두 후보가 지난 6일 만나 ‘국민연대’ 구성을 다짐한 것도, 그리고 양측이 새 정치 선언과 별개로 경제·복지 정책과 통일외교안보 정책을 조율하고 있는 것도 다 공동정부 운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차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두 후보는 단일화가 임박한 지금까지 연기만 피운 채 정작 단일화의 대명제인 공동정부 구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다. 두 후보 나름의 대선 전략일지는 몰라도 유권자에 대한 진솔한 자세는 아니라 할 것이다. 공동정부의 형태는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처럼 대통령-국무총리 분담 체제가 될 수도 있고, 신당 창당 등의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권력 나눠먹기로 보느냐, 국민통합 행보로 보느냐는 단순히 관점의 차이를 넘어 전적으로 두 후보의 자세에 달렸다. DJP 연대가 내각제 개헌 밀약으로 혼란을 겪다 끝내 붕괴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명하고 당당한 논의가 요구된다. 단일화를 하겠다면 지엽적인 기싸움을 접고 최소한 어떤 모습의 정부로, 어떻게 국정을 꾸려나갈 것인지부터 밝히는 게 유권자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 이인제 “盧, 부패 혐의에 쫓겨 자살” 파문

    이인제 “盧, 부패 혐의에 쫓겨 자살” 파문

    새누리당과 합당을 의결한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가 1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 “부패 혐의에 쫓겨 자살했다.”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대표는 세종시에서 열린 새누리당 선대위 발대식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겨냥해 “야당의 한 사람은 오직 정치적 경험이 대통령 비서라는 것밖에 없다. 자기가 모시던 대통령이 부패혐의에 쫓겨 자살했다. 정치적으로 영원히 죄인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와서 대통령을 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고인의 죽음을 매도했다.”며 반발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함께 경선을 치른 경쟁 상대에 대한 미움도 없지 않겠지만 고인의 죽음마저 매도해야 하는지 인간적 비애를 느낀다.”면서 “전직 대통령의 죽음마저 매도하고 조롱하는 것이 박근혜 후보의 인식, 새누리당의 수준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노무현재단도 논평을 내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한 수많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무려 13번이나 당적을 옮겨 가장 추악한 정치인으로 꼽히는 철새 정치인이 더러운 말을 입에 담느냐.”고 따졌다. 재단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에게 망언을 일삼는 자들을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게 ‘박근혜식’ 국민통합이냐.”며 박 후보의 사과를 촉구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DJ 3남 김홍걸 文캠프 합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가 12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선대위에 합류했다. 김씨는 이날 문 후보의 중앙선대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돌아가신 어른의 뜻을 따라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과 맞서 싸우는 민주당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김씨는 선대위 내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김씨의 선대위 합류를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 관계자는 “이 여사는 홍일, 홍업씨 등 형 2명에 이어 홍걸씨까지 아들 3명이 모두 정치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걱정했다.”고 전했다. 한편 광주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며 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 회장을 역임한 정상용 전 의원도 문 후보 선대위에 동참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2002년 실무협상 이후 ·鄭 담판…2012년 文·安 직접 나서 협상 개시

    야권 단일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룰의 전쟁’이 시작됐다. 양측은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극적인 단일화로 ‘이회창 대세론’을 꺾었던 때를 상기하며 방식과 시기에 따른 유불리를 계산하고 있다. 2012년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은 2002년 당시와 시작부터 다르다. 2002년에는 양 진영의 대리인들이 먼저 협상을 시작한 뒤 후보들이 최종적으로 회동하고 합의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후보들이 전격적으로 협상을 개시하고 실무 협상이 뒤따르는 형태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실무 기구가 만들어지더라도 결국 규칙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후보들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2년에는 TV토론 뒤 100%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뒤처져 있었음에도 유리한 당내 경선 방식을 포기하고 전격적으로 여론조사 방식을 수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2012년에는 상황도 다르고 따질 것도 더 많다. 우선 야권 단일화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기정사실화하고 후보 등록일(11월 25~26일)까지 단일화를 마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협상이 지지부진해 등록일이 가까워질수록 손쉬운 여론조사 방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문 후보 측은 여론조사 방식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경선 방식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포함돼야 한다는 의지도 강하다. 후보 간 담판 방식이 마지막으로 거론된다. 1997년 15대 대선의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방식이다. 당시에는 내각제를 고리로 한 두 세력 간 지분 나누기 성격이 강했다. 이번에도 책임총리제를 바탕으로 한 권력분점을 고리로 전격적인 담판이 성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文 호남서 밀리고, 安 ‘쇄신 대상’ 민주와 연대… ‘단일화 딜레마’

    文 호남서 밀리고, 安 ‘쇄신 대상’ 민주와 연대… ‘단일화 딜레마’

    30일로 18대 대선이 5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모두 단일화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 후보는 단일화 열쇠를 쥔 호남 지역 지지율에서 안 후보에게 밀리고 있다. 안 후보는 쇄신 대상이자 기득권 보호 세력으로 지목한 민주당과 단일화를 하려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문 후보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호남 지역 지지율 반등책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추미애 국민통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광주와 전남·북을 제외한 전국 13개 시도 호남 향우회 회장단을 만나 통합을 위한 문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는 추 위원장과 문 후보 부인 김정숙씨 등이 호남 지역 시·군·구까지 돌며 호남 끌어안기에 나선다. 문 후보는 이날 안 후보가 제시한 국회의원 정수 감축이나 중앙당 폐지에 대해 “(민주당이 제시한) 정치 혁신 방안이 안 후보 측 정치 혁신 방안과 차이가 있다.”며 각을 세웠다. 문 후보는 그러나 “정치 혁신을 공통분모로 한 단일화 접점을 찾아 폭넓고 건강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박영선 공동선대위원장은 다음 주 단일화 협상 개시를 촉구했다. 문 후보는 안 후보가 출마를 선언한 9월 19일 이후 40일 동안 단일화를 위한 구애를 계속했지만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했다. 그동안 모든 쟁점을 빨아들이는 단일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야권 단일화→야권 연대→단일 후보화→연합·연대→연합정치→가치연합 등으로 용어를 변화시켰지만 본질엔 변함이 없다. 문 후보 측은 단일화 압박이 초조감 표출로 비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인지 조직이 강한 문 후보에게 유리한 국민경선 실시나 민주당 당적 보유 등의 단일화 전제 조건을 대부분 철회하고 있다. 담판도, 여론조사도 좋다고 한다. 단일화는 안 후보에게도 딜레마다. 민주당이 극복 대상인 동시에 단일화의 상대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의원 정수 감축, 중앙당 폐지 등의 정치 개혁안에 대해 민주당의 반발이 커지면서 안 후보의 대응 수위도 높아지고 있지만 내심 고민은 커지고 있다. 안 후보는 정치 개혁안에 대한 반발이 예상보다 심하자 26일 경남 진주시 경상대 강연에서 “모든 개혁은 사자와 당나귀의 저항을 받게 된다는 말처럼 기득권 보호 세력은 온갖 논리로 대중을 현혹하며 개혁에 반대한다.”며 여야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세력 중 하나인 민주당이 단일화 대상이라는 것은 근본적 딜레마다. 자신으로 단일화가 되면 더 큰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문 후보와 단일화를 하더라도 민주당의 지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입당하게 되면 더 큰 문제지만 입당하지 않은 채 기득권 세력이라고 지목한 민주당의 지지를 받으려는 것도 궁색하다. 문·안 후보는 29일 오후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으나 10여분 차이로 만남이 엇갈렸다. 강 전 장관은 두 후보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문 후보에게는 ‘꼭 승리해 주소서’, 안 후보에게는 ‘아름다운 승리하소서’라고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이춘규 선임기자의 대선 풍향계] 한쪽 후보의 극적 양보 기대감 속 “이제나 저제나” 국민 단일화 피로감 “역사 죄인 되지 마라” 87년 교훈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야권후보 단일화 성사는 정권교체라는 측면에서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있다. 단일화를 전제로 시기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누구로 단일화가 되더라도 최소 한 자릿수에서 최대 30%까지 지지표가 이탈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등 단일화 만능론을 무색하게 하거나 단일화 무산 가능성도 본격 제기되고 있다. 단일화 무산론은 새누리당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안 후보의 빅3 대결론이 대표적이다. 범야권에서는 여전히 단일화가 당연시되고 있지만 “단일화 무산 가능성이 절반을 넘는다.”는 분석은 물론 70% 이상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단일화가 난제 중의 난제임을 말해 준다. 역사적으로도 단일화는 난제였다. 1987년 대통령선거 때는 야권의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재야의 거센 단일화 압박에도 불구하고 ‘3자 필승론’이 나오면서 무산됐다. 그 결과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담판을 통해 단일화에 성공,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했지만 끝내 내각제는 무산됐다.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여권표를 잠식했지만 불과 39만표 차이였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선거 전날 정 후보가 단일화 파기 선언을 해버렸지만 진보진영의 표 결집 현상으로 노 후보가 간신히 이겼다. 2007년에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막판까지 티격태격하다 단일화가 무산됐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초강세여서 단일화를 해도 승리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평이다. 돌이켜보면 지지율이나 세력 차이가 크게 날 때 단일화는 성공했다. 1997년 대선이 대표적인 예다. 지지율이나 세가 팽팽하거나 단일화 효용이 없을 때는 실패했다. 1987년과 2007년의 경우다. 지지율이 팽팽했지만 세력 차이가 확연했던 2002년에는 단일화에 성공한 듯했지만 최종적으로 결렬됐다. 단일화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문·안 후보의 단일화 여건은 좋지 않아 보인다. 문·안 후보의 지지율은 팽팽하다. 세력 차이도 크지 않아 보인다. 200명 가깝게 팽창한 안 후보 캠프도 정당 수준으로 커졌다. 후보가 자진해서 양보하려 해도 어려운 구조가 돼 버렸다. 1987년 당시 재야세력은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며 양 김씨를 압박했지만 단일화에 실패했다. 상대를 주저앉히려 하기보다는 절박성을 갖고 단일화에 임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올해도 25년 전처럼 재야를 중심으로 외부 압박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들의 단일화 피로감이 높아지는 등 상황도 점차 엄혹해지고 있다. 한 후보의 극적인 양보를 기대하는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두 후보 진영이 단일화 문제를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할 때 같다. taein@seoul.co.kr
  • 박근혜 ‘부마항쟁 특별법’ 대표발의 검토

    ‘부마항쟁 민주주의 재단 설립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인 새누리당이 법안 대표 발의를 박근혜 대선 후보가 직접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마항쟁으로 촉발된 10·26 사태로 인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잃은 박 후보가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항쟁 피해자들에게 직접 손을 내민다는 차원이다. 100%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25일 “특별법 초안은 거의 완성됐다. 박 후보가 대표 발의 의원으로 나서는 안을 확정하는 게 남은 핵심”이라면서 “최종 조율이 마무리되는 대로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주 100%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부마항쟁 민주주의 재단 설립 특별법’ 제정에 대해 “항쟁의 진상규명과 피해자·유족의 명예회복, 부마 민주주의 재단 설립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존 과거사 규명 위원회들이 과거사 진실을 밝히는 데 초점을 뒀다면, 부마 민주주의 재단은 관련 민주화 운동 유공자 지원 등 미래지향적인 국민통합에도 방점을 찍을 계획이다. 박 후보의 대표 발의를 놓고 당내 일부에선 ‘자칫 인위적 행보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고 한다. 그러나 박 후보가 강조하고 있는 ‘국민대통합’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분위기가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회의 다른 관계자는 “10·26 사태는 (공적으로) 국가 지도자가 서거한 사건이라면, 박 후보에게는 아버지를 잃은 불행한 개인사다. 역사적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자에게 손을 내미는 화해의 상징으로 보면 된다.”면서 “박 후보가 (대표 발의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10·26 사태 33주기인 26일 박 후보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할 예정이다. 박 후보는 매년 추도식에 참석해 왔다. 유가족 인사말은 동생 지만씨와 번갈아 해 왔는데 올해는 박 후보가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해 1979년 10월 부산·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朴 “모든 공직 大탕평인사 하겠다”

    朴 “모든 공직 大탕평인사 하겠다”

    국민 대통합 행보를 재개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23일 취약지역인 호남 지역을 찾아 지역균형발전과 ‘동서 화합’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특히 호남이 요직 인사에서 소외됐다는 불만을 감안한 듯 거듭해서 ‘탕평인사’를 강조했다. 호남은 그동안 새누리당의 불모지였지만 박 후보는 처음으로 ‘박근혜 정부’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후보는 오전 광주에서 열린 광주·전남도당 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지역화합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꼭 해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지역균형발전과 공평한 인재등용”이라고 밝혔다. 박 후보는 그러면서 “저는 모든 공직에 대(大)탕평인사를 할 것”이라면서 “‘박근혜 정부’는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의 100% 대한민국 정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제가 대통령이 되면 호남이 희망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서화합의 적임자이니 수고해 달라.”고 당부했던 점을 언급하며 “저 역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화합과 통합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민대통합위에 한광옥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해 인요한 부위원장, 김경재 특보 등을 영입한 데 대해서도 박 후보는 “인재등용에 있어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분들을 적재적소에 모시겠다는 저와 당의 확고한 의지”라고 강조했다. 이날 박 후보는 선대위 출범식은 물론 개인택시 관계자 면담 등 5개의 공개 일정을 소화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대 대선에서 호남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었던 것처럼 박 후보도 호남을 ‘승부처’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박재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취임 1주년 맞아

    박재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취임 1주년 맞아

    박재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24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박 사장은 현장중심 경영을 통해 농어촌공사를 실질적 영농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으로 혁신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년간 직접 찾아다닌 전국 농어촌 현장이 126곳에 이른다. 취임 후 처음 찾은 충남 당진 석문지구 간척지에서 농민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염해피해 영농손실 보상제도를 개선했다. 철원 비무장지대(DMZ)의 황금느르지지구 수리시설개보수 사업을 2년 앞당겨 끝낸 것도 현장 목소리를 중시한 결과였다. 박 사장은 104년 만의 가뭄이라던 올 5~7월 영농 현장에 상주하면서 관정 개발과 하천굴착 등 농업용수 공급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박 사장은 “실제 농어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시행하는 현장 경영 외에 소외계층 지원과 농어촌 복지 개선 등에도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다문화가정 지원, 의료 봉사활동, 농어촌 집 고쳐주기, 농어업인 자녀 채용, 친서민 일자리 창출 등 사업을 대폭 강화할 예정이다. 박 사장은 1944년 전남 보성 출신으로 9급 공무원부터 시작해 1급까지 올랐다. 전남도청 공보관, 농정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전남 강진군수, 한나라당 전라남도당 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 국민통합특별위원장 등을 지냈다. 농어촌공사 사장 임기는 2014년 10월까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뉴스 WHO] 한국 여성대변인의 역사

    [뉴스 WHO] 한국 여성대변인의 역사

    ‘대변인 중의 대변인’인 청와대의 첫 여성 대변인은 박선숙(52) 안철수 대선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이다. 박 본부장은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의 대변인으로 임명돼 1년여 동안 활약했다. 박 본부장은 1995년 민주당 지방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으로 활동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일 때부터 부대변인으로 일했다. 송경희 전 KBS아나운서는 2003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으로 짧게 근무했다. 김희정 의원은 2010년부터 1년여 동안 대통령실 대변인으로 일했다. ●대검·통계청 등도 女대변인 활약 대검찰청의 박계현 부장검사도 대변인으로 좋은 평을 얻고 있고, 지난해 통계청 대변인으로 임명된 김현애 과장은 대전청사 8개 기관 가운데 홍일점 대변인으로 안팎의 신임을 얻고 있다. 이 밖에도 중앙부처에는 여러 명의 여성 부대변인과 외신 대변인들이 있다. 금융위원회 김미경 외신 대변인,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 한혜진 외교부 부대변인 등이 여성 대변인으로서 입지를 쌓아 가고 있다. 여성 대변인의 활약은 정치권에서 눈부시다.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 첫 여성 대변인이었던 조윤선(46) 대변인은 2002년 보수정당 역사상 첫 여성 대변인이 됐다.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활약 중이다. 조 대변인 외에도 전여옥, 나경원 전 의원 등이 한나라당 여성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김행 위키트리 부회장은 2002년 정몽준 의원이 창당했던 국민통합21의 대변인을 역임했다. ●이지현, 2003년 靑 신설 외신대변인 청와대는 2003년 외신 대변인직을 새로 만들면서 SBS기자 출신이자 이헌재 전 경제 부총리의 딸인 이지현(44) 줄리안리컴퍼니 대표를 최초의 외신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손지애 아리랑TV 대표, 김은혜 KT 전무 등이 외신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현재 이미연 대변인이 업무를 맡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기고] 한국, ‘그린 트라이앵글’ 체제 구축했다/장성호 배재대 정치학과 교수

    [기고] 한국, ‘그린 트라이앵글’ 체제 구축했다/장성호 배재대 정치학과 교수

    우리나라가 환경 분야의 세계은행으로 불리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국격 상승의 홈런포를 쐈다.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의 공식 출범 이후의 ‘녹색 스타일’ 겹경사다. 2008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새로운 국가발전 어젠다로 내세운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창한 이래 2010년 6월 서울에 설치된 GGGI가 명실공히 국제기구로 공식 출범하는 것이다. 정부는 “녹색성장이야말로 개도국의 관심 사항인 개발과 기후변화라는 두 가지 이슈에 동시에 대응할 수 있는 어젠다”라면서 “국격을 높이고 사업적인 ‘컨벤션 비즈니스’ 면모에서도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개발도상국이 환경을 통한 지속가능 경제를 지원하고 녹색성장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된 GGGI는 기존의 자원 소모적인 화석경제 시스템을 대체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과 인류 공존을 위한 환경문제를 결합한 새 패러다임을 제시,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GGGI는 녹색성장의 거점 국가로서 국제적인 위상 제고, 환경과 성장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보여 줬다. 한국을 포함해 영국·덴마크 등 1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GGGI는 녹색성장 모델의 확산, 개발도상국의 녹색성장 전략 지원이라는 두 가지 목표 아래 국가·지역별로 맞춤형 녹색성장계획(GGP)을 지원하는 싱크탱크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주와 협력해 산림 보전과 황폐화 방지 전략을 수립해 주고 있으며, 캄보디아 정부와는 태양열 조리기 설치 사업을 진행 중이다. 녹색성장 전파 사업은 2010년 에티오피아와 브라질·인도네시아 등 3개국에 불과했지만 현재 17개국 24개 프로젝트로 늘었다. 우리는 척박한 천연자연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통한 인적자원 양성과 국제 무역과 교류를 통해 지난 세기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경제발전과 개발을 견인해 왔다. GGGI는 우리 주도로 만든 첫 번째 국제기구라는 점과 함께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결실을 맺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이다. GGGI의 역할은 그동안 기후변화협약(UNFCCC)에 가입한 194개국이 참여하는 기후변화 대응기금인 이른바 GCF 사무국 유치가 치열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의 본산이 한국이 된다는 역사적 의미에서다.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성장 모델을 공유할 수 있는 GGGI의 위상 제고와 새로운 역할 변화는 더욱 주목되고 있다. 2013년부터 기금 조성이 시작돼 2020년부터는 해마다 1000억 달러(약 110조원)씩 조성되는 GCF는 영향력 면에서 향후 국제통화기금(IMF)을 능가할 전망이다. 경제 효과도 3812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한국은 GGGI-GCF-녹색기술센터(GTC)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 세계 환경 클러스터인 이른바 ‘그린 트라이앵글’을 구축, 해당 분야의 선도 국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차제에 GGGI 지식과 GTC 기술, GCF 기금의 삼각 협력체 중심 국가인 한국이 새로운 국가 발전과 국민통합의 계기를 만들고, 전 세계 지속가능 경제의 메카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서울광장] 박근혜,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김종면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박근혜,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김종면 수석논설위원

    “국민통합이라는 인(因)을 통해 행복이라는 과(果)를 만들어 내겠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다짐이다. 이른바 ‘100% 대한민국’을 통한 국민행복론이다. 국민통합을 이뤄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니 참 좋은 얘기다. 그러나 한편 공허하다.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에 의한 통합이고 행복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다. 지난주 출범한 국민대통합위원회, 아니 100%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는 그 거창한 간판만큼이나 실망도 크다. 박 후보가 진정으로 국민통합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요, 시대정신으로 여긴다면 애당초 다른 건 몰라도 대통합 위원장만큼은 내가 직접 맡겠다고 나섰어야 했다. 티격태격 볼썽사나운 싸움 끝에 할 수 없이 미봉책으로 위원장을 떠맡은 꼴이 됐으니 그게 무슨 원칙이고 소신인가. 한물간 호남 인물을 영입한다고 지역통합이 되고 전향한 좌파 인사를 끌어들인다고 이념통합이 되는 게 아니다. 진정성을 의심받는 보여주기식 통합은 국민의 눈에는 한갓 정치유희로 비칠 뿐이다. 새누리당은 쇄신과 비리, 통합과 봉합이 나란히 어깨동무하는 이상한 동거정당이다. 비리 전력이 있는 한광옥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대통합 위원장에 임명하면 사퇴하겠다며 배수진까지 친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은 한 전 고문이 수석부위원장으로 내려앉자 슬그머니 물러섰다. 위원장 자리를 절대 양보할 수 없다던 한 전 고문은 내가 뭘 더 바라겠냐며 꼬리를 내렸다. 밸 없는 게도 아니고, 정말 속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 강단으로 도대체 무슨 쇄신을 하고 무슨 통합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인의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새누리당의 퇴행적인 조직 문화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강자 앞에 모두가 두려워 납작 엎드리는 백수습복(百獸?伏)의 세계, 그게 바로 지금 새누리당의 자화상이다. 결국 모든 건 박 후보에게 귀착된다. 통합이든 쇄신이든 박 후보가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는 그런 기형적 체질에서 누가 어떤 감투를 맡든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박 후보 개인의 ‘명령일하’ 리더십만이 힘을 발하는 판국이다. 그런 만큼 더욱 엄정한 눈으로 박 후보의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 시대의 화두인 국민통합이야말로 그 리트머스 테스트다. 국민통합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선한 방식으로 풀어 내느냐에 대선의 성패가 달렸다. 문제는 다시 과거사다. 모든 게 과거사 블랙홀로 빨려드는 대선 상황을 우려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건 과거를 잊고서는 한 발자국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박 후보는 5·16과 유신, 인민혁명당 사건에 이어 부마민주항쟁에 대해서도 아쉬운대로 사과를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정수장학회라는 또 하나의 검질긴 과거사가 가로놓여 있다. 진실은 하나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법적으로 장학회에서 손을 뗐으니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입다무는 건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박 후보가 뒤늦게나마 장학회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니 다행이다. 법적으로 무관하다는 판에 박힌 형식논리에서 벗어나 어떤 진전된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생각의 혁명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꼭 정서적 울림이 있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법을 내놓기 바란다. ‘정수’라는 을씨년스러운 역사의 이름을 지워내고 ‘원상회복’ 수준의 사회 환원을 실현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끝내 ‘못난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고 헛것에 연연한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다. 박 후보 앞에는 ‘가지 않은 길’이 놓여 있다. 모든 걸 버리고 한달음에 그 길로 달려가라. 인정할 것 인정하고 사과할 것 사과하고 내려놓을 것 내려놓고 박정희 딸이 아닌 ‘정치인 박근혜’의 길을 가면 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아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이제 지긋지긋한 과거사의 동통(疼痛)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무슨 죄인가. jmkim@seoul.co.kr
  • 文측 “새달 18일까지 단일화”… 安 “단일화 이겨 끝까지 갈 것

    文측 “새달 18일까지 단일화”… 安 “단일화 이겨 끝까지 갈 것

    야권 단일화, 운명의 한달이 시작됐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11월 18일’을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 최종 데드라인으로 못박았다.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등록(11월 25~26일) 일주일 전으로, 그 시점까지 단일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내부 방침이다. 문재인 캠프 핵심 관계자는 19일 “야권 단일화는 정권 교체의 절대 조건으로, 두 후보 진영 모두 3자 구도가 불가하다는 인식에 공감하고 있다.”며 “누가 단일 후보가 되든 내달 18일까지는 합의가 이뤄져야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대선 후보 등록일 이후에는 단일화가 돼도 투표용지에는 두 후보의 이름이 모두 기재돼 무효표가 속출할 수 있다.”며 “선거 공보물 준비 등 세부 일정에 차질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대선 시간표상 11월 초 단일화 논의를 시작해 최종 후보 등록일(26일) 전까지는 합의해야 대선승리를 위해 후유증 없는 단일화가 가능하다는 복안이다. 2002년 대선의 경우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와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후보가 대선후보자 등록 마감 하루 전날인 11월 25일에 극적인 단일화에 합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단일화 시기를 실기할 경우 선거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문 캠프의 인식이다. 전례도 있다. 2010년 6·2 경기지사 선거에서 당시 심상정 진보신당 후보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는 후보 등록일 이후 단일화에 합의했다. 심 후보가 중도에 사퇴했지만 유 후보는 김문수 한나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두 후보의 표차는 19만 1580표. 그러나 무효표도 18만 3387표나 쏟아졌다. 심·유 후보가 단일화를 했지만 투표용지는 이미 인쇄된 상태였고 단일화 사실을 모른 유권자들이 심 후보에 기표한 표들이 모두 무효 처리된 것이다. 대선 투표용지는 후보 등록이 종료되는 다음 날(11월 27일)부터 전국 251개 지역선관위가 개별적으로 인쇄를 개시한다. 최종 등록된 후보들의 이름이 모두 투표용지에 기재된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12월 10일부터 부재자 투표용지를 발송하기 때문에 후보 등록이 끝나면 각 지역선관위가 개별적으로 인쇄를 의뢰하게 된다.”며 “후보 등록일 이후 사퇴 후보가 나와도 투표용지에는 변동사항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쇄 전 후보 사퇴가 이뤄질 경우 통상 투표용지의 기표란에는 ‘사퇴’라는 문구가 기재된다. 그러나 각 지역선관위마다 인쇄 시기가 달라 이미 인쇄가 완료된 지역의 경우 기표란에는 별도 표시가 없다. 다만 투표소마다 후보 사퇴로 인한 변동 공고문을 게재할 뿐이다. 후보 등록일 이후 단일화가 되면 무효표가 속출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선거비 보전도 현실적인 문제다. 통상 후보 등록일 1~2주전이면 각 캠프마다 각종 선거공보물 등 법정홍보물 제작 계약을 한다. 각 후보 측은 1차적으로 등록 마감 사흘 뒤인 29일까지 선거 벽보 등의 제작을 완료해 선관위에 제출해야 한다. 12·19 대선 예상 선거인수는 4043만명. 각종 공보물 인쇄 비용만 기본적으로 50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후보 등록 마감 후 사퇴하면 선거비는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한다. 문재인-안철수 양 진영은 정치 혁신를 화두로, 양자의 지지율 결집에 총력전을 펴며 ‘각자도생→단일화→진보·중도 진영 규합’의 시간표를 짜고 있다는 분석이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安, 초미니캠프서 정당급 확대…완주 수순?

    安, 초미니캠프서 정당급 확대…완주 수순?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출마 선언 한 달을 맞은 18일 안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야권 연대 시나리오가 3가지로 압축되어 가는 분위기다. 안 후보의 독자세력화 뒤 무소속 완주, 안 후보의 창당 후 당 대 당 통합, 안 후보의 민주당 입당 등이다. 이날도 윤여준 민주당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이 “무소속 대통령은 책임 정치를 할 수 없다.”며 안 후보를 압박했지만 단일화 신경전은 주춤해지고 있다. 전날 안 후보가 협력의 정치, 직접민주주의 강화, 특권 내려놓기 등 정치개혁 3대 과제를 제시하고 문 후보 측이 이에 동의하면서 단일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안 후보가 독자세력화를 통해 무소속으로 완주하려는 수순을 밟는 것 아닌가.”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안 후보 캠프는 초미니로 출발, 단시일 내에 정당급으로 확대돼 독자출마 준비설의 빌미로 작용하고 있다. 안 후보는 전날 강연에선 민주당에서 무소속 대통령 불가론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을 겨냥, “무소속 대통령이 된다고 하면 정치개혁을 위해 입법화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국회에서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무소속 대통령도 충분히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는 반박이다. 안 후보는 이날 강원 속초에서 페이스북으로 모인 지지자들과의 ‘번개미팅’ 자리에서 “앞으로 두 달 더 기대하셔도 좋다.”며 완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18일은 출마선언을 한 지 30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1년은 된 것 같다.”면서 “불과 30일 전에 혼자서 출마선언을 했는데 한 달 만에 캠프 인력이 200명 가깝게 됐고 그 수만큼 전문가들이 정책을 위해 도와주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러 모일 수 있는지 감격스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창당 후 당 대 당 통합론이 힘을 받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통합을 통해 두 후보가 공정한 조건 위에서 단일화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신당 창당을 위해선 최소 3주가 소요된다. 통합 절차를 마치려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통합론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정치공학적 가설정당 비판도 장애물이다. 통합 뒤 후보 단일화를 해도 난관은 많다. 후보 등록 뒤 단일화를 하게 되면 대규모 사표(死票)가 발생할 수 있다. 후보 단일화 논란이 길어지면서 감동은 없고 피로감만 쌓여 이미 효과가 반감됐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벌써부터 단일화를 해도 지지자 가운데 최대 30%가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단일화가 만능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안 후보의 민주당 입당론도 있지만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아 회의론이 우세하다. 특히 민주당이 쇄신 인상을 못 준 채 입당이 이뤄지면 “새 정치를 한다던 안철수가 구정치 세력에 합류했다.”는 비판이 일 수 있다. 안·문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확대될 경우 한 후보의 중도 포기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야권 연대 해법은 점점 난해한 고차 방정식이 돼 가고 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유신 선포일에 ‘김대중 토론회’ 달려간 대선후보 3인… 호남 민심잡기 ‘舌戰’

    유신 선포일에 ‘김대중 토론회’ 달려간 대선후보 3인… 호남 민심잡기 ‘舌戰’

    박근혜 새누리당·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17일 ‘김대중 기념사업회’(명예 이사장 이희호·이사장 권노갑)가 연 토론회에 참석해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잇겠다.”며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안 후보와 단일화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충북지역 행사에 참석하느라 축하 동영상 메시지로 대신했다. ●安, 朴 면전에서 네거티브 공세 비난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여야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김 전 대통령은 호남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호남 민심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의전 등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져 주최 측이 홍역을 치렀다. 자리 배치나 축사 순서 등을 둘러싼 신경전 끝에 안 후보가 이 여사 옆자리에 앉고, 박 후보는 그 옆자리에 앉았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최근 박 후보 캠프에 합류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이 박 후보를 수행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당초 참석하기로 했으나 일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호남 민심 잡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문 후보는 전날에야 행사 개최 소식을 전달받고 밤늦게 메시지를 작성, 이날 아침 영상 메지시를 만들어 김한정 수행단장을 통해 전달했다. 주최 측과 후보 측에 따르면 문 후보는 후보 일정관리팀과 민주당 대표 비서실 등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불참하게 됐다. 먼저 축사에 나선 박 후보는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 전 대통령을 방문했던 때를 회고하며 “김 전 대통령은 ‘동서화합이 중요하고 여기서 실패하면 다른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박 대표가 하라. 미안하지만 수고해 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제가 그 말에 보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김 전 대통령이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발휘한 지도력을 평가하면서 “지금도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기다리는 지도자도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 국정운영 능력과 식견을 갖춘 사람이 아닌가 한다.”면서 “국민통합의 리더십으로 이겨냈듯 저도 국민대통합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행사 참여 못한 文, 영상메시지로 대체 안 후보는 “1997년 우리 국민이 김 전 대통령을 선택했던 이유는 바로 변화였다. 50년 만의 여야 간 정권교체로 우리는 낡은 과거의 유산을 딛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꽃피는 그 시기에 저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정부가 IT 벤처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했기에 가능했다.”고 김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특히 안 후보는 박 후보의 면전에서 자신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펴는 새누리당을 ‘저들’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굴하지 않겠다. 받은 만큼 갚아 준다는 식으로 저들과 똑같아지지는 않겠다.”면서 “낡은 체제를 극복, 새 미래를 열겠다.”며 박 후보와 각을 세웠다. 앞서 안 후보는 긴장한 탓인지 방명록에 ‘정권교체와 정치혁신 반드시 이루겠습니다’라고 쓰면서 정권교체의 ‘체’를 ‘채’로 잘못 적다 고쳐쓰기도 했다. 문 후보는 짧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내 몸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사실은 김 대통령이야말로 노 대통령의 절반이었다. 이 자리의 모든 분들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절반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절반이었다.”고 회고했다. 문 후보는 이어 “김대중은 횃불이었다. ‘행동하는 양심’인 그분의 궤적을 돌이켜 보면, 그 분은 늘 앞 발자국이었다.”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발자국, 제가 따라 밟으려 한다. 그분이 흩트리지 않고 걸어 갔던 길, 제가 또박또박 앞만 보고 따라 걸으려 한다.”고 말했다. ●安, 이해찬 대표와 인사 안 나눠 한편 이날 안 후보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처럼 비쳐졌다. 두 사람은 두세 번 인사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 대표는 안 후보에게 인사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었다. 이 대표는 최근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해 안 후보 측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분권형 개헌 하자”

    “분권형 개헌 하자”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당 대표 등을 지낸 여야 정치 원로 17명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여야 정당 및 대선 후보 진영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박관용·김원기 전 국회의장, 이홍구·이수성 전 총리,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등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통합을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기초지방자치단체 정당공천 폐지 등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19대 대통령 선거를 2016년 20대 총선과 동시에 실시하고 4년 중임 대통령제로 전환해 차기 대통령은 중임에 나설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국회의 예산편성권과 법률제정권 강화 ▲국회의원 선거제도 및 정당제도 개혁 ▲중앙정부 권한의 지자체 이양 ▲기초의회·자치단체장 정당 공천제 폐지 등도 주장했다. 제안에 동참한 인사는 김형오·임채정 전 의장, 고건·이한동 전 총리,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상현 전 민추협 의장 대행, 목요상 헌정회 회장, 이기택 전 민주당 대표,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우재 전 민중당 대표, 이종찬 전 민정당 원내총무,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등이다. 이들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넘어 초당적으로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통합을 위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옛 정치지도자들이 뜻을 함께했다.”면서 “12월 대선을 앞두고 개혁안을 공개 제안한 이유는 국민적 공감대 확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여야 정당, 각 대선 후보 진영이 차기 대통령의 핵심 의제로 공식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관용 전 의장은 “대선 후보들이 개헌이 빅 이슈로 등장할 것을 우려해 말을 못하는 것을 감안해 먼저 제안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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