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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 퇴근해 아침에 또 출근… “한국인들 일 너무 많이 해요”

    새벽 퇴근해 아침에 또 출근… “한국인들 일 너무 많이 해요”

    “아침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고, 또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을 하더라고요.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걸 한국에 와서야 알았어요.” 캄보디아에서 온 웅 석킴(26)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쉴 새 없이 일하는 개미 아니면 꿀벌이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오후 5시면 일이 끝나거든요. 다들 저녁엔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죠.” 분홍색 스커트로 멋을 낸 아프리카 가나 출신 아푸아콰 라비아(26)도 질세라 말을 보탰다. “지난해 겨울 한국철도공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했었는데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부장님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국 사람처럼만 일하면 가나도 벌써 선진국이 됐을 거예요.” 라비아와 석킴은 한국의 경제 발전을 배우러 왔다. 각각 지난해 9월과 올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설 국제정책대학원의 정책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1945년 광복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 100달러도 안 되던 가난한 나라가 어떻게 부자 나라가 됐는지 궁금했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한강의 기적’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라비아의 말이다. 한국은 불과 50년 만에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1995년 세계은행(WB)이 지정하는 원조 수혜국에서 제외됐고,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조국협의회(DAC)에 가입했다. KDI는 세계 최초로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변신한 한국이 개발도상국에 ‘고기’를 주는 것을 넘어 ‘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자는 취지에서 1998년 국제정책대학원을 설립했다. 지난해까지 대학원을 거쳐간 동문이 119개국 1515명에 이른다. 한국을 배우러 온 사람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15일 세종시 반곡동 국제정책대학원에서 만난 석킴과 라비아는 근면과 성실을 공통으로 꼽았다. 석킴은 “한국 사람들 이제 좀 쉬어 가면서 일해도 될 것 같은데 너무 부지런하다. ‘하드워킹’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라비아는 “1960년대에는 가나처럼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처지였는데 왜 한국만 발전했는지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60년 한국의 1인당 GDP는 79달러였다. 당시 가나(179달러)의 절반 수준도 안 됐다. 하지만 현재 가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1450달러, 한국은 2만 7000달러다. 2014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228시간)에 이어 2위다. 석킴은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가족, 친구, 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한국 사람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두 사람은 한국의 ‘정’(情)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라비아는 “말(영어)이 잘 안 통하지만, 길을 잃어도 걱정하지 않는다”면서 “버스나 기차, 어디에서든 한국인이 잘 도와준다”고 말했다. 석킴은 물건을 살 때 “깎아 주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한국의 발달한 지식·정보기술(IT) 인프라와 기술에 감탄했다. 한국에 오기 전 가나 대통령 직속 자문팀 소속 정책분석가였던 라비아는 국제 원조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K디벨로피디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이 2012년 개설한 K디벨로피디아는 60여년 동안의 한국 발전 과정과 관련한 문서와 논문, 1982년 이후 진행한 개발도상국 연구 자료가 집적된 ‘발전경험 공유 플랫폼’이다. 라비아는 “K디벨로피디아에서 원조를 받아 성공한 한국의 사례를 깊이 있게 살펴보면서 같은 시기 원조를 받았지만 실패한 가나에 앞으로 정부개발협력(ODA)이 적합할지, 아니면 외국인직접투자(FDI)가 효과적일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의 농축산물 무역정책을 주제로 논문을 쓸 생각인 석킴은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고국의 정부에서 산업 및 무역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할 계획이다. 그는 “K디벨로피디아에서 농축산업, 무역 분야의 정보를 찾다가 관련 분야인 한국의 산림녹화 정책과 교통·물류 정책까지 관심을 넓히게 됐다”면서 “한국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상의 변화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라비아와 석킴은 수십 년 뒤 자신들도 ‘G디벨로피디아’, ‘C디벨로피디아’를 구축해 저개발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돕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석킴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기폭제로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꼽고, 이 부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한꺼번에 넘어가는 게 위험하다고 하지만, 70년대 정부 주도로 산업 구조를 바꾼 것이 한국의 경제 부흥을 이끈 시작점”이라면서 “농업과 의류, 섬유 등 경공업 중심의 캄보디아도 장기적으로 중화학공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그 계획을 짜는 데 한국 모델을 연구하는 것은 필수”라고 말했다. 라비아는 수출산업 집중 육성에서 한국의 발전 동력을 찾았다. 라비아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도 열악한 상황에서 과감히 수출산업에 집중해 훌륭한 성과를 낸 것이 정말로 놀랍다”면서 “유망 산업의 육성을 위해 경쟁력 있는 분야에 인센티브를 주고 투자도 집중적으로 한 것은 전 세계 개도국이 모두 본받아야 할 정책”이라고 말했다. 자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어 가야 할 엘리트들답게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원인 분석도 날카로웠다. 라비아는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리스크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특정 산업과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진 그동안의 발전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고, 석킴은 “수출국의 수요 감소, 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 복잡한 내외부적 원인”이라고 했다. 특히 석킴은 “일본의 조선업 위기 극복 사례 등 다른 나라의 경험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브렉시트나 미국 대선 등 국제 요인도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는 국내 전문가 못지않은 조언을 했다. 하지만 둘 다 한국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 낼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라비아는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대책 마련을 위해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이 생산 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어느 나라나 피할 수 없는 문제와 위기에 직면하지만, 한국은 늘 그래 왔듯 슬기릅게 이 시기를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석킴은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뤄 내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모두 이겨 낸 기적의 나라”라면서 “지금의 위기 역시 국민들과 정부, 기업 등의 힘으로 타개하고 K디벨로피디아에 기록으로 남겨 다른 개도국들에 모범 사례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사설] OECD 3위 세비, ‘눈먼’ 특수활동비 다 줄여야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그제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의원 세비(歲費·월급)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20대 국회 초반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이었다. 우리는 현실성 여부를 떠나 다수 국민이 그의 제안에 공감할 것으로 본다. 노 원내대표의 지적처럼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의원 세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3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의원들이 당리당략을 떠나 오로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헌신해 국민의 마음속에 희망의 싹을 틔웠다면 세비가 논란거리가 됐겠나. 국민이 세비 유지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의원들이 민생을 외면하고 특권 유지에 연연했던 업보일 것이다. 그제 노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반값 세비’나 특수활동비 폐지 등을 거론했을 때 여야 의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노 의원 본인도 내심 자신의 제안이 전폭 수용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의 제안을 때만 되면 나오는 인기영합성 발언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20대 의원의 세비가 연 1억 4000만원으로, OECD 회원국 중 1인당 국민소득에 견줘 미국·일본 다음이라는 통계를 보라. 임기 중 겸직 금지를 고려하더라도 항공기와 KTX 무료 이용에다 연 2회 이상 해외 시찰, 그리고 정책개발비 지원 등 온갖 혜택을 고려하면 미·일에 비해서도 결코 낮지 않다. 굳이 “세비를 반으로 줄여도 근로자 평균임금의 세 배”라는 노 의원의 지적을 들먹일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처럼 우리나라 세비는 의원 1명을 유지하는 데 드는 전체 국고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반값 국회’도 아닌, ‘반값 세비’가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까닭이 뭐겠나. 진영 논리에 갇혀 무한 대치를 일삼는 여야가 세비 인상 등 의원 기득권 지키기에는 늘 한통속이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야당 의원이 지난달 13일 개원한 20대 국회에서 첫달치 세비 880만원을 받고 너무 적다고 푸념하는 판이 아닌가. 혹여 ‘반값 세비’에 냉소적인 의원들이 있다면 얼마 전 외신을 통해 전해진 미국 메인주 지사 부인의 사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가계를 돌보면서 불과 연봉 7만 달러(약 7900만원)를 받는 주지사 남편을 내조한다니 말이다. 박봉에도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는 선진국 의회에 비춰 우리 국회의 자화상은 노 의원의 말처럼 부끄럽다 못해 처절하다. 그런 측면에서 세비의 다과보다 더 큰 문제가 의원들이 국고를 불투명하게 축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19대 국회에서 특수활동비를 유용해 물의를 빚은 사례가 어디 한둘이었나. 한 여당 상임위원장은 부인 생활비로, 다른 야당 위원장은 자식 해외 유학비로 특수활동비를 탕진한 게 한국적 특수성이 아닌가. 그러고도 문제점을 고친다더니 그때뿐이었다. 여야는 차제에 세비나 특수활동비를 다만 얼마라도 줄이고 투명하게 사용함으로써 20대 국회에서는 떳떳한 의정 활동을 하기 위한 자계(自戒)의 징표로 삼기 바란다.
  • 中, 年 34억弗 묻지마 원조… 아프리카 지도자 뒷돈으로 유입

    中, 年 34억弗 묻지마 원조… 아프리카 지도자 뒷돈으로 유입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에 있는 말라위는 인구 1700만명의 소국이다. 인근 잠비아와 탄자니아에 비해 작은 이 나라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 만연한 가난한 곳이다.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40억 달러(약 4조 6900억원)에 불과한 말라위는 그렇지만 영국을 비롯해 미국 등이 대외원조를 많이 하는 곳 중에 하나였다. 실제로 서방국가가 말라위에 제공하는 대외원조는 2012년 한 해에만 11억 7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는 말라위 국내총소득(GNI)의 28%에 해당하는 액수다. GNI가 생산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국민이 지출하는 실질구매력의 척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조이스 반다 말라위 대통령은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환영받는 인사였다. 하지만 최근 말라위는 서방 국가로로부터 대외원조 대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나라다. 부패한 행정과 정치인, 무능한 관리로 인해 해마다 최소 3000만 달러 이상의 대외원조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가난한 국가를 돕기 위해 서방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대외원조가 정작 필요한 곳으로 가지 않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는 등 불균형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외원조는 자금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정부개발원조(ODA)와 수출신용·해외투자금융, 비영리단체 증여 등 3가지로 분류된다. 기술지원이나 차관 등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대외원조는 한 해에만 대략 1300억 달러(약 152조 6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상당액은 독일과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부담하고 있다. 이 밖에도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도 많은 대외원조를 하고 있다. 대외원조의 20% 이상은 주로 세계은행(WB)이나 유엔 등을 통해 집행되는데 지원 분야도 다양해 의료, 보건 등에 사용됐다. 최근에는 난민 문제에 관심이 쏠리면서 지난해 대외원조 지원액의 9%가량이 난민문제에 사용됐다. 지난해 아프리카계 주민이 대거 유럽으로 이주한 데 따른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적지 않은 대외원조에도 불구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대외원조에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하루 1.9달러 이하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빈곤층이 2억 7500만명에 달하는 인도의 경우 2014년 대외원조로 48억 달러(약 5조 6300억원)를 지원받았다. 한 사람에 대략 17달러에 달하는 액수다. 그러나 인도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베트남 역시 2014년 48억 달러의 대외원조를 받았다. 빈곤층이 상대적으로 인도에 비해 적은 베트남은 국민당 1658달러의 혜택을 볼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은 2015년 1인당 국민소득이 2109달러에 달했다. 이렇듯 대외원조가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최근에는 급진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대외원조를 활용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터키 등에 대외원조가 늘고 있는 것은 이런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시리아와 인접한 터키의 경우 2014년 대외원조 지원액이 34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10년 전인 2004년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유럽연합(EU)도 최근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의 이민문제 해결을 위한 추가 대외원조를 약속했다. 대외원조 전문가인 대런 호킨스는 “대외원조 지원국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국가에 보상차원에서 지원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서방 선진국이 대외원조를 과거 식민지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지원했던 것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대외원조를 대외정책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싱크탱크인 ‘센터 포 글로벌 디벨롭먼트’의 오웬 바더 연구원은 “대외원조를 정책도구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외원조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지원대상 국가의 무능력도 원인이 됐다. 말라위의 경우만 해도 2014년 9억 3000만 달러의 대외원조를 받았지만 지원국들은 말라위 정부에 현금이 들어가는 것을 최대한 막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외원조로 인해 시장경제가 왜곡되거나 빼돌려진 대외원조 금액이 독재정권의 정권 유지와 연장을 돕는 모순이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어쩔 수 없이 지원국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행정이 안정된 국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윌리엄 어스터리 뉴욕대 교수는 “원조는 조직적으로 정부를 통해 이뤄져야 효율성이 높아지는데 최빈국의 경우 조직적인 원조를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 결국 일정부분 행정력을 갖춘 국가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원조가 독재자에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업규모를 축소하고 다자협력을 통해 지원하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대외원조 싱크탱크인 에이드데이터에 따르면 2013년 대외원조 프로젝트에 따른 평균 자금 투입규모는 190만 달러였다. 2000년 530만 달러에 비해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모잠비크에서 이뤄지는 대외원조 사업의 경우 벨기에와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웨덴 등 무려 2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지원하고 있는 액수는 모두 100만 달러 이하의 소규모다. 프로젝트 규모가 줄어들다 보니 지원을 받는 국가 역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누수를 막기 위한 끊임없는 문서작업은 지원국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불만도 고조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은 민주주의 정착을 대외원조의 조건으로 내거는 등 각종 까다로운 요구를 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경우는 독재자에게 아무런 조건도 내세우지 않고 지원을 하고 있어 선진국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이 말라위에 대한 대외원조 규모를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기아해소를 위해 지난달 6500톤의 식량을 무상으로 지원했다. 또 100대의 경찰차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왕스팅 말라위 주재 중국대사는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을 위해 중국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34억 달러에 달하는 대외원조를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패한 독재자에게 중국의 대외원조는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대외원조의 조건으로 내세우지도 않을 뿐더러 쓸데없는 대형 프로젝트에 대외원조 기금을 사용해도 좀처럼 반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돈을 빼먹는 것도 쉽다. 중국의 대 아프리카 대외원조 중 상당액이 지도자의 고향으로 흘러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지만 지원국들은 더이상 직접 예산지원을 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영국의 대외원조를 담당하는 국제개발부(DFID)도 지난해 직접 예산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의 대외원조를 모니터링하는 전문가들도 대외원조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행정력이 안정된 국가에 대외원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민주주의 진전이 이뤄질 경우 오히려 대외원조가 줄어드는 모순도 나타난다. 미국은 오랜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화가 이뤄지고 있는 페루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에이드데이터의 브래드 파크 연구원은 “저개발국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달성한 페루에는 대외원조가 줄어들었다”며 “이는 일종의 벌칙”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수요 에세이] 달인과 원로/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 교수·전 해외문화 홍보원장

    [수요 에세이] 달인과 원로/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 교수·전 해외문화 홍보원장

    ‘달인’이 우리 사회에 넘쳐 난다. 요리에서부터 묘기에 이르기까지 탄복할 만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달인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달인’이라는 타이틀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던 개그맨이 있다.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달인을 소개하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이 대중의 사랑을 받을 정도로 달인은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가 됐다. 달인은 늘어나는데 ‘원로’라는 말은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다. 원로라는 말을 꺼내면 왠지 구식에,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원로라고 할 만한 분들을 한번 꼽아 보라고 하면 선뜻 답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권만이 아니다.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학문을 하는 대학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원로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이 여럿 계셨다. 사회적 갈등 이슈가 생기면 많은 이들이 원로를 찾아 가르침을 구했다. 원로의 말씀이라면 정파와 이념과 이해관계를 떠나 귀를 기울이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원로들은 우리 사회의 갈등 조정자이자 길을 읽고 헤매는 많은 이들에게 등불과 같은 가르침을 주었다. 1989년, 정치권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서로 ‘네 탓’만 외치며 갈등을 부채질할 때,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내 탓이오’라는 말씀으로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한동안 사회 곳곳에서 ‘내 탓이오’가 캠페인처럼 퍼져 나갔다. 자기주장만 고집하기보다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회 분위기가 생겼다. 1981년, 조계종 종정에 추대된 고 성철 스님은 행사에 참석지 않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발표했다. 있는 그대로가 진리라는 이 말씀은 불교 신도 여부를 불문하고 한동안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원로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이유는 여럿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태의 변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문명의 이기가 급속히 발달하면서 사람보다 기계에 더 의존하는 세상이 되었다. 궁금증이나 고민거리가 생기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인터넷이 되었다. 원로를 키우지 않는 사회 풍토도 원인 중 하나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가 있다면 그대로 두지를 않는다. 정치권 등에서 징발해 감투를 주고 활용한 다음 버리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원로 후보군의 씨를 말리는 것이다. 원로로 추앙받을 수 있는 분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평생의 업으로 생각해 천착하기보다 타 분야에서 불러 주면 기웃거려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는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본다. 선진국은 1인당 국민소득의 수치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과 더불어 오랜 시간 닦아 온 경륜으로 신망받는 원로들이 많아야 강건한 나라가 된다. 이제 ‘달인’만 찾지 말고, 우리 사회 각 분야별로 ‘원로’를 찾아 모시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젊은 세대의 열정과 원로들의 경륜이 조화를 이룰 때 어떠한 난관도 능히 극복하는 강한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 [오늘의 눈] 스위스에게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장형우 경제정책부 기자

    [오늘의 눈] 스위스에게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장형우 경제정책부 기자

    지난 5일 모든 국민에게 월 30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내용의 스위스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국내 언론들은 대부분 ‘공돈’을 거부한 스위스 국민들의 ‘수준 높은 선택’을 칭송하며, 우리나라도 무턱대고 복지 수준을 높여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은 300만원은 물가가 높은 스위스에서 최저생계비(268만원)를 약간 넘는 수준이고, 이걸 보장하는 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부족한 만큼을 지급하는 것이란 사실을 몰랐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았더라도 알리지 않았다. 대신 스위스가 ‘공짜 복지’를 반대한 것만 부각시켰다. 하지만 스위스 국민의 선택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스위스 국민들은 기존의 두터운 사회안전망을 기본소득 보장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고민했고, 76.3%가 ‘현상 유지’를 택했다. 효과를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기본소득 보장을 위해 기존의 복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합리적 선택이다. 스위스 국민들이 기본소득 보장에 반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법으로 정하지 않는 스위스에서 집단노동협약을 통해 실제 노동자가 받는 최저임금은 평균 17스위스프랑(약 2만 600원·월 430만원)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6030원·월 126만원)의 세 배가 넘는다. 1인당 국민소득(약 9만 달러) 역시 한국(약 2만 7000달러)의 세 배가 넘는다. 비록 물가가 높다지만 직업의 귀천이 없어서 보일러 수리공이 취미로 승마를 즐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아이들에게 적성에 안 맞는 공부를 시키기 위해 돈을 퍼부을 필요도 없다. 기본소득 보장이 시행되면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2%밖에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왜 이런 저간의 사정은 덮어 두고 스위스 국민을 치켜세우기만 하는 걸까. 양극화 극복을 위해선 복지 확대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 현재의 세금 제도하에서 증세는 재벌 대기업, 고소득자들의 부담을 늘린다. 스위스에 대해 “법인세율이 낮아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하면서 그 나라의 세계 최고 수준 임금은 외면하는 이들은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포퓰리스트’나 ‘프리 라이더’(무임승차자)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물적 기반이 다르면 의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취업은 어렵고, 천신만고 끝에 취직해도 월급은 스위스의 3분의1 밖에 안 되고, 구조조정하면 노동자부터 자르는 나라의 국민은 복지의 확대를 강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일을 해도, 아니 더 많이 일해도 비정규직이라서, 하청이라서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못 받는 나라의 국민은 최저임금이라도 올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복지 확대도, 최저임금 인상도 싫다면 스위스랑 아예 비교를 하지 말자. 한국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19세 청년 노동자가 식사 시간을 보장받지 못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안전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곳이니까.
  • [World 특파원 블로그] 분신 자살로 내몬 中대입 ‘가오카오’

    중국 안후이(安徽)성 농촌도시 류안(六安)시를 아는 중국인은 드뭅니다. 그러나 류안시에 있는 마오탄창(毛坦廠) 고등학교를 모르는 중국인은 없습니다. 고3생만 1만여명인데, 매년 30%가 명문대에 들어가고, 대학 진학률이 무려 90%에 이릅니다. 하루 18시간씩 스파르타 입시교육을 시키는 마오탄창 고등학교를 언론은 ‘입시 사육장’이라고 비판하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에겐 ‘꿈의 학교’입니다. 7일부터 이틀간(일부 지역은 사흘간) 중국의 대입시험인 가오카오(高考)가 실시됩니다. 올해도 1000만 수험생이 ‘한 번의 시험이 평생을 좌우한다’(一考定終身)는 이 시험에 마주하게 됩니다. 가오카오는 중국의 ‘흙수저’들이 밟고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이자, 사회문제가 응축된 ‘모순 덩어리’입니다. 지난달 베이징 창핑구청 앞에서 한 중년 남성이 분신했습니다. 베이징 후커우(戶口·호적)를 획득하지 못해 공부 잘하는 딸이 베이징의 가오카오를 볼 수 없게 되자 몸에 불을 지른 겁니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베이징에 있는 명문대에 들어가려면 베이징 가오카오를 보는 게 유리한데, 베이징 후커우가 없으면 고향의 가오카오를 치러야 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인 허베이성과 1인당 국민소득이 전국 으뜸인 장쑤성 학부모 수만명이 교육청에 몰려가 격렬한 집회를 여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정부가 지역 균형 차원에서 해당 지역 출신 신입생 비율을 줄이는 대신 쓰촨, 광시, 허난 등 낙후 지역 학생들의 할당을 늘렸기 때문입니다. ‘가오카오 경제’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시험 막판 받는 족집게 과외가 한 시간에 600위안(약 11만원)에 이르고 기억력과 체력을 향상시킨다는 온갖 건강식품이 대박을 터뜨리기 때문입니다. 고사장에서 반경 3㎞에 있는 호텔은 ‘가오카오방’으로 불리는데, 보통 3개월 전에 예약이 끝납니다. 특히 6층에 있는 방이 인기입니다. 숫자 ‘6’이 순조롭게 일이 끝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획일적인 입시를 개혁하기 위해 한국의 학교생활기록부 선발이나 논술, 농어촌특별전형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교육 현실을 보면 한국의 실패 경로를 따라갈 가능성이 무척 커 보입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250조원 드는 ‘월 300만원’… 스위스 국민 압도적 거부 왜

    스위스 국민들이 매달 우리 돈 300만원에 이르는 ‘공짜 소득’을 받는 것에 대해 압도적으로 ‘노’를 선언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매달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의 기본소득을 주는 제안을 두고 시행한 국민투표에서 76.9%가 반대표를 던졌다. 일하지 않아도 무조건 받을 수 있는 ‘용돈’을 거부한 이유가 뭘까. 향후 대폭 늘어날 조세부담과 현재 영위하는 복지 근간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본소득 지급 대상을 스위스 국민뿐 아니라 최소 5년 이상 합법적으로 거주해 온 외국인들에게도 적용하려 한 것도 부결의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공짜 복지’를 노린 이민자 증가는 복지 혜택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심이 발동한 것이다. 스위스국민당(SPP) 소속 루치 스탬 의원은 “만약 모든 개인에게 돈이 지급된다면 수십억명의 사람이 스위스로 진입하려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우군이 될 것으로 믿었던 노조도 오히려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인다고 반대하고 나선 것도 투표에 영향을 끼쳤다. 1인당 실질 국민소득(GNI)이 8만 8120달러(약 1억원)인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반대 여론은 애초 60~70% 이상으로 높았다. 기본소득은 최근 로봇 자동화 등 기술발전에 따라 실직자가 증가하고 이로 인한 소득 양극화가 사회문제로 대두할 것을 우려한 대비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스위스는 12개월 이상 세금을 착실히 내면서 일하면 실직하고도 2년 동안 기존 임금의 70~80%를 국가로부터 보장받는 만큼 복지가 탄탄한 국가다. 실업률은 3.8% 수준(지난해 기준)으로 낮다. 스위스는 앞선 국민 투표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유급 휴가를 4주에서 6주로 늘리는 방안도 국가 경쟁력을 저해한다고 거부할 정도로 장인 정신과 직업윤리가 투철한 국가로도 꼽힌다. 이번에도 여론조사 응답자의 3분의1은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국민의 근로 의욕만 저하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게다가 스위스 국민의 중간 소득은 월 6000스위스프랑(약 718만원)이다. 2500스위스프랑은 완전히 생계를 보장하기에는 모자라는 어중간한 금액으로 제도의 실효성도 의심받았다. 스위스 정부는 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재원이 연간 2080억 스위스프랑(약 250조원)으로 현재 연방 정부 연간 지출액(670억 스위스프랑)의 3배라고 추산했다. 이 재원을 마련하려면 결국 다른 사회 복지 비용을 줄여야 하고 세금 인상도 불가피하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이번 투표 결과에도 ‘더 공정한 경제 모델’로 발전할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축하고 있다. 경제학 교수인 세르지오 로시는 현지 STA 통신에 “국민 5명 가운데 1명(23%)이 찬성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월300만원 지급 스위스 포퓰리즘 국민이 거부했다

    스위스가 5일(현지시간) 자산 및 근로와 상관없이 모든 성인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의 기본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압도적 다수가 이를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AFP 통신 등은 여론조사기관 GFS 베른이 이날 오후 부분 개표를 바탕으로 결과를 추정한 조사에서 약 78%의 유권자들이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스위스 TV를 인용해 보도했다. ‘스위스에 도움이 되는’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시민단체가 2013년 10월 13만명의 서명을 얻어 성사시킨 이번 투표는 불평등 문제로 고심하는 모든 국가에서 사회적 이슈가 됐다. 국민 투표에서 찬성표가 절반을 넘으면 스위스는 무조건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첫 국가가 될 예정이었다. 이는 실업수당이나 노령연금처럼 선별적으로 지급되는 수당과 다른 ‘보편적 복지’의 일환이자 유례없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그동안 스위스 국민의 60% 이상이 이를 퍼주기식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매달 2500스위스프랑을 지급받는다면 근로 의욕이 떨어져 국가 생산성이 추락하는 것은 물론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스위스 국가위원회는 반대 157, 찬성 19로 반대 의사를 밝혔고 국무위원회 역시 반대 40, 찬성 1로 반대 뜻을 나타내는 등 의회와 정부 측은 그동안 재원 조달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스위스는 인구 800만명에 1인당 실질 국민소득(GNI)이 8만 8120달러(약 1억원)에 달하는 부자 나라지만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연간 2080억 스위스프랑(약 250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를 충당하려면 기존의 사회보장 예산을 줄이고 세금을 늘려야 하는 등 ‘조삼모사식 복지’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기본소득 법안을 발의한 모임의 공동 대표이자 대변인인 다니엘 하니는 독일 일간 데어 타게스슈피겔 인터뷰에서 “이번에 통과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제비뽑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면서 “이번 투표는 중간적인 과정”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1분기 성장 0.5% 그쳐…메르스 이후 최저

    1분기 성장 0.5% 그쳐…메르스 이후 최저

    올 1분기 우리 경제가 전기 대비 0.5% 성장하는 데 그쳤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영향을 받았던 지난해 2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2일 발표한 ‘2016년 1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372조 3722억원(계절조정계열)으로 전 분기보다 0.5% 증가했다. GDP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1분기 GDP 성장률은 지난해 2분기에 0.4%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지난해 3분기에 1.2%로 반등했던 것을 제외하면 2014년 2분기(0.6%)부터 7개 분기 내리 0%대 행진이다. 경제활동별로 건설업은 4.8% 성장했지만, 서비스업 성장률은 0.5%에 그쳤다. 특히 제조업 생산은 0.2%가 감소해 2014년 4분기(-0.2%) 이후 5분기 만에 역성장을 기록했다. 설비투자는 기계류와 운송장비가 모두 줄어 7.4% 감소했다. 이는 2012년 2분기(-8.5%) 이후 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감소율이다. 그러나 건설투자는 건물건설과 토목건설을 중심으로 6.8% 늘어 2001년 3분기(8.6%) 이후 14년 6개월 만에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1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393조 3000억원(계절조정계열)으로 지난해 4분기보다 3.4% 늘었다. 이는 최근 4개 분기 동안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실질 GNI가 늘어난 배경에 대해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교역 조건이 개선됐고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이 늘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모든 국민에 월300만원… YES or NO?

    모든 국민에 월300만원… YES or NO?

    “각자가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일하지 않고도 받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가브리엘 바르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부회장)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노동으로 돈을 버는 대신 집에서 빈둥거리게 만들 것이다.” (마이클 거핀 스위스 베른대 경제학과 교수) 스위스가 자산 및 근로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한 국민 투표가 5일(현지시간) 실시되는 가운데 찬반양론이 격화하고 있다. 이 안이 도입되면 스위스는 세계 최초로 모든 성인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매달 650스위스프랑(약 78만원)을 지급하는 국가가 된다. 소득이 있지만 월 2500스위스프랑이 안 되면 부족분만큼 국가가 지원한다는 의미다. 이번 국민투표는 ‘스위스에 도움이 되는’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시민단체가 2013년 10월 13만명의 서명을 얻어 시행 요건을 충족시켰고, 스위스 연방정부가 결정을 내려 이뤄지게 됐다. 스위스는 지난해 실업률이 3.38%대로 낮은 국가다. 그럼에도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본 수당을 보장하게 되면 경기를 활성화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보다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부의 문제의식이 발단이 됐다. 투표를 앞두고 기본소득이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과 노동 의욕을 떨어뜨릴 ‘복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맞서고 있다. 찬성 측은 모든 이에게 품격 있는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충족시키고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들의 복지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스위스에는 최저임금 제도가 없다. 여기에 인구 800만명의 스위스가 1인당 실질 국민소득(GNI)이 8만 8120달러(약 1억원)에 달하는 ‘부자 나라’로 예산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고 기본 소득을 받아도 국민의 노동 의지는 크게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월 데모스코프 연구소가 스위스 국민 107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기본소득을 받으면 일을 완전히 그만둘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2%에 불과했고, ‘고려해볼 것’이라는 답은 8%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3%는 ‘기본 소득이 보장되면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반대 입장은 기본 소득이 사람들의 근로 의욕을 없애고 재원 마련도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운다. 스위스 의회도 재원 마련 등을 이유로 기본소득 안에 반대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연간 2080억 스위스프랑(약 250조원)이 필요한데 기존 사회보장 예산을 줄이고 세금을 늘리는 것 외에는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복지 비용 증가에 대한 두려움 탓인지 국민 여론은 반대쪽이 우세하다. 스위스 미디어그룹 타메디아가 지난 4월 2만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찬성’이 33%, ‘대체로 찬성’이 7%인 반면 ‘반대’는 50%, ‘대체로 반대’가 7%로 집계됐다. 포퓰리즘 논란에도 스위스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유럽 국가들은 또 있다. 핀란드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국민에게 월 800유로(약 101만원)를 지급하고 대신 기존 복지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네덜란드에서도 위트레흐트 등 19개 시 당국이 시민들에게 매달 기본소득 900유로(약 12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서울광장]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할 목표가 아니다/강동형 논설위원

    [서울광장]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할 목표가 아니다/강동형 논설위원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고귀한 즐거움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라고 했지만 ‘고귀한 즐거움’부터 머리를 아프게 한다. 사전에는 행복을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 정의하고 있지만 모호하기만 하다. 행복이란 단어가 추상적이면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인 탓이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라는 책을 찾아봤다. 이 책의 주인공이 여행을 통해 찾아낸 행복의 조건은 모두 23가지다. 행복조건의 첫 번째 비밀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몇 개를 더 소개하면 ‘아름다운 산길을 걷는 것’,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 ‘좋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등 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것과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라는 것도 행복의 조건이다. 행복의 조건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며, 대부분 비물질적이고 마음먹기에 달렸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점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각종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행복 관련 지수는 대체로 낮다. 낮다는 표현보다는 꼴찌 수준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유엔에서 지난 3월 내놓은 ‘2016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조사 대상 157개국 가운데 58위였다. 전체적으로는 중상위 그룹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서는 29위였다. 전체 순위에서 2015년 47위였던 것이 11위나 떨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외형적으로 수출 규모 세계 6위,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는 GDP가 증가한다고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이하일 때는 행복지수도 올라가지만 그 이상이 되면 정체 상태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경제성장 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조사하고 있는 OECD의 ‘보다 나은 삶의 지수’에서도 만년 꼴찌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72%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초등학교 졸업자(53%)와 대졸자(83%)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 조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우리 국민의 약 28%가 고립무원의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람이 어려움에 부닥쳐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없다는 건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성인뿐만 아니라 아동의 삶의 질도 매한가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포럼 5월호에 게재된 OECD 아동복지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학업 성취는 뛰어나지만 아동의 권리인 삶의 질은 최하위였다. 아동이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48분으로 OECD 국가 평균 2시간 30분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1시간 이하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아동 교육이 현재의 삶의 질 개선에 있지 않고 아동 발달 교육에 치우쳐 있는 게 문제다. 아동들이 나이가 들면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을까. 한국노동연구원의 우리나라 연령별 행복도를 보면 암울하기만 하다. 연령별 행복도는 보통 청소년기에는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다가 40대나 은퇴 시기가 다가오는 50대 후반에 가장 낮고, 65세 이상 노년층이 되면 높아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행복도가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노인 빈곤율 1위와 노인 자살률 1위라는 우울한 지표가 이를 방증한다. 각종 국내외 지표는 우리나라가 잘사는 나라지만 국민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헬조선이나 흑수저니, 양극화니 하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우리의 자화상이다.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은 물론이고 모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종합적인 처방전이 나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개인적인 목표가 아니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yunbin@seoul.co.kr
  •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당 정유섭

    [초선 내 정치를 말한다] 새누리당 정유섭

    4·13 총선 개표 과정에서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에게 시종일관 뒤처지다가, 마지막 투표함에서 26표 차이로 승리한 ‘역전의 용사’ 새누리당 정유섭(인천 부평갑) 당선자는 “내게 정치는 하늘이 딱 한 번 준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근소한 표 차이로 이긴 만큼, 하늘의 명령이라 생각하고 당파, 계파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 일해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Q. 19대에 이기지 못한 상대를 꺾었다. 비결은. A. 아내, 고향. 문 의원이 “정유섭은 별로 안 무서운데 정유섭 아내가 너무 열심히 해서 무섭다”고 했다더라. 아내가 지역에서 단체활동도 많이 하고 봉사활동도 오래전부터 해 왔다. 봉사라는 것은 진심으로 하는 것과 겉치레로 하는 게 금방 티가 난다. 험지에서 당선된 사람들을 보면 부부가 모두 열심히 했다. 우리 당 정운천 후보, 이정현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도 그랬다. 덧붙여 지역구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낸 후보는 선거 때 부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것 같다. 이번에 새누리당에 불리한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오랜 시간 함께해 온 곳이라서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Q.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정책은. A. 수도권 정비계획법. 지역 균형발전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시법으로라도 준비해서 발의할 것이다. 균형발전한다고 수도권을 너무 규제로 묶어 놨다. 예를 들어 해외 기업들을 수도권에는 오지 못하고 충청 이남으로 가게 해 놨다. 수도권에 있는 공장은 증설도 못 한다. 기업들은 사내 유보금을 쌓아 놨는데 수도권엔 투자를 못하게 하니 안 한다. 이런 규제를 3년만 풀자는 거다. 작은 부작용 걱정에 시급한 문제를 그냥 둬선 안 된다. Q. 정치적 롤모델은. A.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지구상에 그만 한 정치인이 또 있을까 싶다. 그 더운 곳에서 300만명쯤 되는 인구로 아시아 최고 수준의 1인당 국민소득을 기록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30년 가까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집권했다는 점도 본받을 만하다. Q. 해양, 교통 전문가이자 정치인으로서 반드시 해 내고 싶은 것은. A. 선진국 수준의 재난안전 시스템. 재난을 100% 막을 수는 없다. 예방도 중요하지만 재난이 일어났을 때 인명을 잘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안전에 관한 국민안전처의 기능엔 불만이 많다. 전문성이 없다. 안전 문제는 모든 분야에 있는데 어느 한 부처가 총괄할 수 없다. 각 부처에서 다루되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 장·차관이 맡는다고 안전한 게 아니다. Q. 당에 쓴소리 한마디. A. 혁신은 외부에서. 가장 처절하게 반성하고 뭐가 잘못된 건지 느끼는 건 낙선한 사람들이다. 혁신이라는 걸 왜 당선자들끼리만 하는지 모르겠다. 보수 혁신에 관해 고민하는 외부 사람들을 모셔 와야 한다. 그분들이 안 오려고 하는데 정진석 원내대표 한 사람에게만 맡겨 놓을 일도 아니다. 중진들이 직접 나서서 같이 모셔 와야 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프로필 ▲1954년 인천 출생 ▲인천 제물포고, 고려대 행정학과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제17대 해운조합 이사장, 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 건설교통부 광역교통기획관
  • 새달 4일 시행 ‘공인노무사 1차 시험’ 마무리 전략

    새달 4일 시행 ‘공인노무사 1차 시험’ 마무리 전략

    제25회 공인노무사 1차 시험이 다음달 4일 치러진다. 1차 시험에서는 노동법 1·2, 민법, 사회보험법과 선택과목(경제학원론, 경영학개론 중 1과목) 등 5과목을 치른다.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을 얻으면 합격하는 절대평가 방식이다. 노동법, 인사노무관리론, 행정쟁송법, 선택과목(경영조직론, 노동경제학, 민사소송법 중 1과목) 등 4과목을 논술형으로 치르는 2차 시험은 8월 13일부터 이틀간 예정돼 있다.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1차 시험에서 합격하기 위한 마무리 전략을 노무사단기, 합격의 법학원 등 강사진의 도움을 받아 살펴봤다. 지난해 공인노무사 1차 시험 지원자 수는 3956명이었다. 2009년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몰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증가세다. 11일 공인노무사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1차 시험에 지원한 응시자 수는 4957명이다. 기존 사법시험 수험생들의 유입이 지원자 수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차 시험 합격자는 2014년보다 220명 늘어난 1688명이었다. 합격자 수는 증가했지만 합격률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응시생 3394명을 기준으로 산출한 합격률은 49.7%로 전년(59.8%)에 비해 10% 포인트 정도 낮아졌다. ●노동법 1·2 지난해 가장 어려웠다는 평가를 받은 과목은 노동법1이다. 박스형 문제를 비롯해 답을 고르기가 애매한 문제가 많았던 데다 부속법령 등 수험교재에 나오지 않은 문제들이 다수 출제됐다. 합격의 법학원 김기범 강사는 “기본적인 법조문 내용의 학습은 기본 전제”라며 “법조문이 문제로 출제되는 기본 패턴을 기출문제들을 통해 숙지하는 게 1차 시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분야에서 판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판례 학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특히 객관식 형태로 출제되는 1차 시험에서는 판례가 제시하는 법리나 논거보다 결론 자체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김 강사는 “각 수험서에 수록돼 있는 최신 판례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밖에 빈출 쟁점은 반복적으로 출제되어 왔기 때문에 반드시 기출문제를 풀어 봐야 한다. 또 공인노무사 1차 시험은 과목별로 별도 시간이 배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수험생들이 자체적으로 모의시험을 통해 시간 배분 훈련을 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노동법1·2는 다른 과목들에 비해 문제를 푸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따라서 가능하면 30분 안에 노동법 과목 50문제를 풀고 다른 과목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 노무사단기 이윤기 강사는 “막바지 시험 준비 기간에는 만점을 목표로 과도하게 학습량을 늘리는 것보다 과목별 목표 점수를 얻기 위한 공부시간 안배가 필요하다”며 “노동법의 경우 평소 잘 보지 않던 시행령을 정리하면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보험법 사회보험법 과목 역시 지난해 난도가 높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출문제를 벗어나 지엽적인 문제가 많이 출제된 탓이다. 노무사단기 임성호 강사는 “사회보험법은 출제되는 내용별로 암기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며 “통상적으로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보험료징수법에서 17문제, 사회보장기본법에서 4문제, 건강보험법, 국민연금법에서 4문제가 출제된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전략적으로 공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문제가 출제되는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보험료징수법에서는 법률과 대통령령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문제 출제율은 낮지만 출제되는 법조문의 수가 방대한 건강보험법, 국민연금법은 기출문제와 관련 법률을 중심으로 공부해야 한다. 사회보장기본법은 출제되는 법조문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법률 전체(시행령, 시행규칙 제외)를 충실히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임 강사는 “최근 3년치 기출문제는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법 합격의 법학원 신정운(법무사) 강사는 “민법 시험의 난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라며 “올해도 한두 문제가 어려워진다고 가정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강사는 난도가 높은 사례형·박스형 문제보다는 쉬운 문제를 먼저 정확히 풀어 내는 것을 득점 전략으로 꼽았다. 남은 20여일 동안에는 어려운 쟁점보다는 쉬운 판례, 조문, 기출지문 등을 중심으로 ‘아는 것은 틀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반복 정리해야 한다. 또 공인노무사 1차 시험 특성상 어렵게 출제되는 문제는 틀리거나 풀지 못해도 합격하는 데 큰 지장이 없으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침착하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 노무사단기 강양원 강사는 “수험기간이 짧고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수험생들은 시험 전까지 출제 빈도가 높은 부분을 반복적으로 학습해 점수를 따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법총칙, 채권총칙, 계약총칙 등은 폭넓게 출제되므로 충분히 공부해야 하고 계약각칙 중에서도 자주 출제되는 매매, 임대차, 도급, 위임과 부당이득, 불법행위 중 사용자책임, 공동불법행위 등의 내용은 확실히 숙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영학개론 선택과목 중 경영학개론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다소 까다로운 문제가 출제됐다. 반면 경제학원론은 여전히 다른 과목들에 비해 평이한 수준의 난이도를 보이고 있다. 노무사단기 최중락 강사는 “2010년 처음 도입된 후 지난해까지 6차례 시험이 실시된 경영학개론 과목에서는 인사·조직 분야의 출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까지 출제된 누적 문항 수 150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인사·조직이 60문항, 재무·회계 34문항, 마케팅 19문항, 생산관리 16문항, 전략 10문항, 경영정보론 11문항이다. 인사·조직 분야 중 인적자원관리론은 2차 시험 준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되므로 직무관리, 평가오류와 고과기법, 보상제도, 숍제도 등을 중심으로 정리해야 한다. 조직행동론 분야는 2차 선택과목이 경영조직론이 아닌 수험생의 경우 동기 부여와 리더십을 중심으로 학습하되 나머지 분야는 기출문제에서 다뤄진 지각오류, 귀인, 권력, 갈등, 집단의사결정, 조직구조유형 등을 중심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최 강사는 “대다수의 수험생이 어려워하는 재무·회계 분야는 거의 해마다 출제되는 내용인 자본예산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그 밖에 관리기능 분야(마케팅, 생산관리, 전략, 경영정보론)에서는 대표적인 용어 위주로 출제되고 있다. 최근에는 실무에 활용 가능한 최신 개념과 용어도 시험에 등장했다. 2014년 시험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이 출제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버즈 마케팅’ 등이 문제로 나왔다. ●경제학원론 또 다른 선택과목인 경제학원론은 비교적 쉽게 출제돼 왔다. 합격의 법학원 장선구 강사는 “공인노무사 2차 시험 과목 중 하나인 노동경제학과 관련된 분야가 주로 출제되므로 최종 합격을 목표로 한다면 1차 때 선택과목을 경제학원론으로 선택한 뒤 2차 때는 노동경제학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겹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응시자가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장 강사는 “7급 공무원 공채 경제학 시험에서는 지엽적인 내용까지 출제돼 방대한 양을 공부해야 하지만 노무사 시험은 문항 수도 25문항으로 적은 데다 출제되는 내용도 대략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크게 수요와 공급, 소비자·생산자·시장 이론, 생산요소시장 등 미시경제학과 국민소득이론, 화폐 수요와 공급, 재정금융정책 등 거시경제학으로 분류된다. 출제 비중은 미시 경제학이 더 높다. 노동의 공급(여가와 노동의 선택), 노동의 수요곡선(한계생산가치), 대체관계와 보완관계, 수요의 가격탄력성 등이 빈번하게 출제된다. 장 강사는 “시험 대비를 위한 첩경은 최신 기출문제 분석”이라며 “단답형 형태의 문제가 많기 때문에 자신만의 요약노트를 만들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한국정책학회, ‘사회적 포용성 제고’ 춘계 학술대회

    한국정책학회, ‘사회적 포용성 제고’ 춘계 학술대회

    한국정책학회(허만형 중앙대 행정대학원장)는 오는 22일 서울 은평구 진흥로 한국행정연구원(옛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사회적 포용성 제고를 위한 정책학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대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열린다. 허 회장은 “우리 사회가 저출산·저성장 기조가 형성됨에 따라 국가차원의 새로운 정책 방향성 모색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국민소득, 기업, 고용구조, 지역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효과적인 관리를 위한 국민통합 방안의 마련이 중요한 정책과제가 됐다”고 설명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골목과 일상의 품격/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

    [열린세상] 골목과 일상의 품격/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문제는 정치다”, “문제는 경제다”라는 구호가 등장했지만 일반 시민에게 정작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이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 예의는 고사하고 염치조차 없는 행동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인도를 향해 차 꽁무니를 들이밀고 매연을 뿜는 일,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어도 차가 그대로 달리는 일, 기차에서 큰 소리로 전화하는 일, 이렇게 자기만 제 가족만 생각하는 일들이 이미 일상이 됐다. 정말이지 문제는 일상이다. 얼마 전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런 복고적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무얼까. 1인당 국민소득이 4692달러로 지금의 약 6분의1에 불과했던 시절, 대학진학률은 36.4%로 지금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던 그때가 싫지 않고 오히려 그리운 것은 왜일까.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고 학교 교육은 덜 받았지만 일상의 수준은 그때가 오늘보다 한참 나았기 때문이 아닐까. 일상에도 품격이 있다. 품격이란 천박함의 반대말로 고상함, 우아함, 세련됨 등을 말한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거나 학벌 등의 스펙으로 얻을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어떤 존재의 고상함과 우아함은 어떤 겉치장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여유가 있을 때, 세련미는 주변과 조화를 이룰 때 우러난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일상의 품격은 적절한 공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골목을 같이 사용하는 이웃들이 음식을 나누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에 반해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먹방은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다. 맛있게 만들어서 잘 먹는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다. 그것을 아무리 애청해도 이웃과 함께하는 여유와 조화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일상의 품격은 어디 가고 개인적인 욕구만 난무하고 있다. 그럼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일상의 품격이 추락하기 시작했을까. 필자는 1980년대부터라고 본다. 대규모 도시 재개발의 상징인 ‘을지로 재개발’이 일어난 것은 바로 ‘응답하라 1988’ 때다. 광풍처럼 불어닥친 도시 재개발로 인해 건물과 길은 커지고 작은 집들과 골목길들이 급속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와 가족만을 위한 집은 커졌는데 나와 가족 이상을 생각할 수 있는 공간, 일상의 품격을 배우고 실천하는 공간, 골목이 사라진 것이다. 골목은 집과 도시를 이어 주는 공간, 곧 개인·가족과 공공을 이어 주는 공간이다. 그것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배우기 어려운, 이웃과 화목하게 조화를 이루고 살기 위해 필요한 예의와 매너를 가르쳐 주는 곳, 곧 사회교육의 장소다. 또한 그것은 어떤 보안 시스템보다도 강력한 상호 감시라는 장치로 낯선 사람을 걸러 주어 생활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골목은 사적인 공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적인 공간도 아닌 중간 성격의 공간, 공동체의 공간이다. 개인 혹은 가족들을 작은 공동체로 묶어 주고 공공, 곧 도시 공간으로 연결해 주는 끈이자 중요한 삶의 무대다. 골목이 사라진 것은 공동체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골목이 사라지고 그것이 지지하던 공동체가 붕괴하면서 도시는 일상의 품격을 배울 수 없고 안심하고 살기도 어려운 곳이 됐다. 현대의 대도시에서 대로변에 대형 건물을 짓고 도시 기능을 수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이면의 주거지에까지 높고 큰 집을 짓고 골목을 없애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같은 과제를 이미 근대 시기에 풀어 낸 이웃 나라들을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중국에서는 리룽(里弄), 곧 골목길을 따라 집들을 붙여 지은 이롱주택이라는 공동주택 유형을 창안했고, 일본은 폭이 좁고 깊이가 깊은 집들을 가로를 따라 붙여 지은 나가야(長屋)라는 공동주택 유형을 만들어 냈다. 모두 자신들의 전통 주택을 새로운 도시에 맞도록 진화시킨 결과다. 우리도 이제 전통 한옥을 현대도시에 맞게 발전시킨, 오랫동안 일상의 품격을 지켜 준 골목과 짝을 이룰 수 있는,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주거 유형을 창안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우고 이웃과 함께 따뜻하고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 한국인 연간 육류 소비 51㎏, 중국은 47㎏… 일본은 35㎏

    한국인 연간 육류 소비 51㎏, 중국은 47㎏… 일본은 35㎏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1.4㎏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63.5㎏)보다 덜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OECD가 발표한 2014년 기준 회원국(34개국)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이 평균 63.5㎏으로 집계됐다고 15일 밝혔다. 고기 종류별 소비량은 닭고기 27.6㎏, 돼지고기 21.9㎏, 소고기 14㎏이었다. 한국의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1.4㎏이었다. 돼지고기(24.4㎏)를 가장 많이 먹고 닭고기(15.4㎏)와 소고기(11.6㎏) 순이었다. OECD 평균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많이 먹고, 닭고기와 소고기는 덜 먹는 셈이다. 세계에서 육류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이 89.7㎏이었다. 아르헨티나(85.4㎏), 이스라엘(84.2㎏), 브라질(77.6㎏), 우루과이(72.6㎏), 칠레(69.3㎏), 캐나다(68.1㎏) 등이 뒤따랐다. 미국인은 1년에 소고기 24.5㎏, 돼지고기 20.7㎏, 닭고기 44.5㎏을 먹었다. 고기를 가장 적게 먹는 방글라데시 육류 소비량(2.1㎏)의 43배 규모다. 중국의 육류 소비량은 47.1㎏, 일본은 35.5㎏으로 우리보다 적었다. 호주(39.6㎏)와 미국(44.5㎏), 캐나다(33.1㎏) 등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국가에서는 닭고기 소비량이 다른 육류보다 많았다. 농식품부 측은 “우리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적색육보다 닭고기와 같은 백색육 소비량이 앞으로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작년 5577조원 규모 中 소비재시장 공략을”

    “작년 5577조원 규모 中 소비재시장 공략을”

    우리 기업들이 날로 커지고 있는 중국 소비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 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 도시가 100개를 돌파하는 등 소비 기반이 커지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세계 각국의 마케팅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우리도 중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4일 ‘중국 소비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와 진출 방안’ 보고서에서 “지난해 중국의 소비재 소매 총액은 4조 8316억 달러(약 5577조원)로 한국(3506억 달러)의 13.7배에 달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실제 중국 소비재 소매 시장은 쑥쑥 자라고 있다. 중국 소비재 소매 총액 연간 증가 추이를 보면 2014년은 전년 대비 5051억 달러, 2015년은 4197억 달러 증가했다. 그러나 중국의 소비재 소매 시장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우리의 중국 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5%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15년 기준 중국 전체 소비재 소매 총액에서 한국 수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도 0.17% 수준에 불과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내수확대 중심으로 가져가고 있는 만큼 지금이 우리가 중국 소비시장 진출을 확대할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소득수준 증가에 따라 지역?고객?가격 등 소비 패턴의 차별화도 뚜렷해지고 있는 만큼 고객을 세분화해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어린 비명에 귀 막았는지…나라예산 27% 소리 없이 잘랐답니다”

    “어린 비명에 귀 막았는지…나라예산 27% 소리 없이 잘랐답니다”

    “Stop! 자녀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지난달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각 언론 매체에 내보내고 있는 아동학대방지 공익광고(작은 사진)의 카피다. 광고에선 어린 여자아이가 사각의 링 귀퉁이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도를 넘어선 아동학대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요즘, 눈길을 잡아끄는 광고가 아닐 수 없다. 에두르지 않고 정곡을 찔러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한다. 정부가 2차 아동학대방지 대책을 내놓고, 서울과 부산가정법원이 이혼하려는 부모에 대해 부모교육을 의무화하고 가해자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내려 사건 초기부터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동학대방지에 묘책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기본과 원칙만 있다. 공익광고로 아동학대방지 캠페인 포문을 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제훈 회장을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무교동 집무실에서 만나 아동학대 문제를 풀어갈 방법 등에 대해 들어 봤다. →‘자녀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라는 광고 카피의 잔영이 오래갑니다. 메시지가 직설적인데, 반응은 어떻습니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반응이 좋습니다. 공감을 많이 불러일으키고 있어요. 아동학대 문제는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이 잘못된 데서 비롯합니다. 아이들을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가 아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잘못 생각해 왔습니다. 부모의 인식을 바꾸지 않고는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정공법을 택했죠. 일단 연말까지 공익광고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 광고비가 부담돼 지원해 주실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아동학대방지 공익광고를 한 게 처음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동학대 문제만 따로 떼 광고를 한 건 처음입니다. 그동안 재단에서는 빈곤가정 아이들을 돕는 데 치중해 왔는데, 얼마 전부터 아동이 행복한 환경을 만드는 사업 쪽으로 관심을 늘리고 있습니다. 재단의 주력 사업을 생존 지원에서 환경개선 쪽으로 재편할 계획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빈곤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각지대를 찾아 돕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합니다. →아동학대사건이 최근 들어 유난히 더 많이 발생하는 건가요, 아니면 예전부터 있어 왔는데 요즘 언론에 자주 보도돼 빈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가요. -둘 다입니다. 아동학대는 오래전부터 있어 온 문제인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전반적인 문화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동학대라고 하면 부모가 자녀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욕을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 등 가족공동체가 있어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자체적으로 용해됐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핵가족,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 등이 전체 가구의 50%에 이릅니다. 가족공동체 개념이 사라져 가족이 둥지 역할을 못 하고 있어요. 양육 부담이 큰 20~40대는 경제적으로 팍팍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부모가 받는 스트레스는 더욱 크죠. 육아 노하우도 없고…. 아이를 키울 준비가 안 돼 있는 젊은 부모가 늘어나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도를 넘어선 아동학대와 자녀 살해 후 자살하는 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일부 시민단체들은 존속살인과 마찬가지로 비속살인의 경우에도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부모 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부모는 준비 없이 될 수는 있지만, ‘참부모’는 저절로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가족공동체 해체가 지속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가족 해체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입니다. 정부 대책은 가족공동체가 복구되도록 유인하는 데 방점이 찍혀야 한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구에 지원을 늘리고, 손자·손녀를 돌보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등의 실질적인 유인책이 필요합니다. 이는 아동학대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되는 동시에 노인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어요. 사회·가족 관련 정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입니다. →지난달 43개 시민사회단체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에 10개항을 제안했습니다. 최우선적으로 상설 컨트롤타워 구축을 주장했는데. -컨트롤타워는 아동학대 문제뿐 아니라 아동친화적 정책, 나아가 저출산 대책 차원에서 구축해야 합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아동친화적인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죠. 따라서 아동학대방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아동이 행복한 세상을 위한 컨트롤타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도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지 않습니까.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가족공동체 회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지난해보다도 27%나 감소한 올해 아동학대 관련 국가 예산(185억원)을 늘리고 안정적으로 편성해야 합니다.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의 구축과 법 집행자의 인식 개선, 지역사회의 협업 강화, 체벌·방임 전면 금지 등도 중요합니다.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추가 대책에 제안한 내용들이 어느 정도 반영됐던데, 특히 생애주기별 부모교육 실시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부모교육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저희 재단에서는 전국 14개 기관에서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 37명의 전문강사가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정부에서도 아동학대 대책으로 생애주기별 부모교육을 추진하기로 해 반갑습니다. 아동학대의 싹을 근절해 나가는 노력이 정책과 더불어 사회 각처에서 다양한 실천으로 나타나 주기를 바랍니다. 덧붙인다면 미국과 대만에서 제도화한 혼인준비교육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합니다. 자발적 참여에 한계가 있는 만큼 혼인신고를 할 때 부모교육 관련 영상을 필수적으로 보도록 하는 건 어떨까 싶어요. →굳이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부모교육 못지않게 지역사회의 관심과 협업이 중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구룡포 마을’ 사례가 자주 거론되던데요. -포항의 ‘구룡포마을’ 사업은 재단이 2012년부터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 등 3자가 힘을 모아 진행하고 있는 친아동적 환경 만들기 프로젝트입니다. 당시 구룡포는 열악한 교육환경과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 성인들의 음주문화, 아동들의 문화체험기회 부족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을을 떠나려는 사람들만 많았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재단의 포항종합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학교장, 경찰서장, 읍면장, 소방서장, 지역 유지들이 아동복지위원회를 결성해 아동 관련 문제들을 협의하고 지원했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권리교육과 심층면담을 실시하고, 자치회활동과 문화체험활동을 늘렸어요. 초록우산 드림오케스트라도 결성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족 대상으로는 권리교육과 부모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지역사회는 성인모임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아동이슈들에 대처하고 있어요. 구룡포가 아마 전국에서 아동을 위한 행사가 가장 다양할 겁니다. 구룡포마을 사례를 다른 자치단체로 확산해 나갈 계획입니다. →배우 송중기와 같은 인기 연예인들을 홍보대사로 위촉하면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현재 원로 배우 최불암씨가 31년째 후원회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고두심씨는 나눔대사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개그맨 이홍렬, 아나운서 김경란, 야구선수 추신수 등 여러 분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분들이 더 많이 아동 문제에 힘을 보태주면 좋겠는데…. 국방장관이 나서 도와줘도 잘 안 되더라구요. →공익광고를 한 이후 후원이 늘었나요. -재단 운영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후원 규모를 좌우합니다. 경기가 좋지 않았지만 후원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15년 총수입이 1606억 4000만원인데 이 가운데 후원금이 1228억 5500만원으로 76.5%를 차지합니다. 작년에 후원자 수가 전년 대비 6만명 늘었고, 올 들어서도 3월 말까지 2만명 가까이 늘었습니다. 개인 후원자가 대부분입니다. 매달 2만~10만원으로 후원 규모는 다양해요. 후원은 돈이 많아야만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후원합니다. 3년 전 교통사고로 고인이 된 고아 출신 중국집 배달원 김우수씨는 월급 70만원에서 매달 10만원씩 후원을 했습니다. 아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온기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죠. 아동이 행복한 사회는 어른이 행복한 사회이고 미래가 행복한 사회입니다. 아동학대가 근절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균미 기자 kmkim@seoul.co.kr ■이제훈은 누구 ▲1940년생 ▲중앙일보 편집국장, 발행인 대표이사 사장 ▲한국자원봉사포럼 회장(2004~2009) ▲경기도자원봉사센터 이사장(2007~2010)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표이사 (2008~2010)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2010.8~ ) ▲한국아동단체협의회 부회장(2010.8~ )
  • [열린세상] 갈등, 미래를 위한 성장통?/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갈등, 미래를 위한 성장통?/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진달래, 개나리와 벚꽃이 꽃망울을 환하게 터뜨리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의 마음도 절로 아름다워진다. 이런 맑고 아름다운 봄은 쓸쓸하던 잿빛 겨울을 지내야만 온다. 작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갈등은 이런 잿빛 겨울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나 계절과는 달리 세사는 갈등의 결과가 반드시 밝은 미래를 기약하는 것은 아니다. 총선을 앞둔 현재,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갈등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은 여전히 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미처 피우지 못한 어린 학생들을 추모하는 마음이야 누군들 다를 수 있을까. 그러나 새로 입학한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공간을 추모교실로 남겨 두어야만 추모하는 마음이 유지될까. 광화문 광장에 천막을 그대로 두어야만 추모하는 그 마음이 유지될 수 있을까. 광화문광장 얘기가 나왔으니 최근 여기에 국기게양대 설치를 둘러싼 서울시와 보훈처 간의 갈등을 생각해보자. 광화문 광장은 우리 모두를 위한 공간이다. 광장은 시민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가 되었다. 그 장소에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국가보훈처가 영구히 태극기를 게양하고자 서울시와 협의를 했다고 한다. 보훈처는 광화문광장이 대한민국의 심장과 같은 존재임에도 여기에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수많은 상징물만 있을 뿐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것은 없다는 점과, 광복과 6·25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가장 중심이 되는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국기게양대를 설치하여 영구 보존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이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 게양대 설치로 조망권이 침해되고 안전 확보가 어렵다는 점, 양해각서 체결 시 영구 설치는 없었다는 점, 광화문광장은 서울시의 상징과 같은 장소라는 점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지만 사실 핵심은 태극기와 같은 국가 상징물을 설치하는 것이 국가 중심의 가치관을 주입하려는 의도라는 입장에서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사안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해 현재 행정조정협의회의 조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핵심은 이러한 갈등을 스스로 조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갈등 조정 능력 부재와 그로 인해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이다. 갈등 조정 능력의 부재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수반하여 우리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한다. 기억하는가. 원전 폐기물 저장소 건립지를 선정하지 못해 20년 이상 허송세월하면서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과정에서는 환경단체들의 극심한 반대를 조정하지 못해 수조원의 세금과 3년 넘는 시간을 낭비했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서울 외곽순환도로 건설과정에서 사패산 터널이 그랬고, 경부고속철도 건설과정에서 천성산터널이 그랬다. 밀양 송전탑 반대나 제주 강정마을 군항 건설도 마찬가지였다. 환경보호라는 명분과 지역 이기주의가 적절히 결합된 강력한 이익집단의 과도한 요구에 정부의 미숙함과 무능이 얹어지고 정치인들의 기회주의가 거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각종 정책 갈등 사례에서 환경보호단체의 주장은 단 한번도 맞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갈등 조정을 잘못한 결과는 지불할 필요가 없었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언제까지 이를 반복할 것인가. 모든 갈등이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논쟁과 숙의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작금의 무분별한 갈등은 건전한 논쟁의 수준을 넘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사회의 갈등 조정 능력의 부재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유발하여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10년째 계속되는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생동하는 봄은 계절처럼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겨울은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 봄은 오고 있지만 봄이 아니라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 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산을 닮아 있었다…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 엄홍길 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산을 닮아 있었다…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 엄홍길 대장

    안나푸르나에서 겸허함 배웠고 히말라야 휴먼 원정대 영화로 남아 2006년 여름에 만난 엄홍길은 전사(戰士) 같았다. 허벅지 인대가 땅긴다며 잠시도 앉아 있지를 못하고 거실을 어정거렸다. 뜨거운 심장과 혈액을 히말라야 고봉 능선의 어디쯤에 두고 온 듯했다. 그때는 로체샤르(8400m) 3차 도전에 실패한 직후였다. 머리에서 산이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편안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 만남이 있고 9개월 후 엄홍길은 4차 도전을 했고, 성공했다. 동시에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16좌 완등’ 주인공이 됐다. 10년이 흘러 다시 만난 쉰여섯 살의 엄홍길은 산을 닮아 있었다. 허예진 머리카락에 여유를 담은 미소. “돌아보니 산이 품을 내주어 내가 그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 거인의 깨달음은 ‘겸허함’이었다. -1977년 9월 15일. 네팔 현지시간 낮 12시 50분에 고상돈(1948~1979) 선배가 에베레스트(8850m) 정상에 올랐다. 신문을 보는데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고상돈’이라는 이름 석자는 나에게는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고상돈 선배의 세계 최고봉 정복은 고1 우리 반 교실에서도 화제가 됐다. 대부분 친구들은 “뭐하러 그 추운 데까지 날아가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달랐다. 이미 나는 산을 잘 타는 학생으로 약간 이름을 알리고 있던 터였다. 그걸 아는 한 친구가 말했다. “홍길아, 너도 나중에 한 번 해 봐.”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지나 산소마스크를 쓰고 오른손에 태극기를 든 영웅의 모습이 신문 1면에 일제히 실렸다. 정성껏 사진을 오려 내 방 벽에 붙였다.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히말라야 빙벽을 올라가는 내 모습뿐이었다. 당시 나의 산악 등반 능력은 이미 수준급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앞에서 깔아 준 줄을 잡고 암벽을 오르는 게 아니라 내가 선봉에 서서 루트를 개척하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경남 고성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아버지는 시골살이를 답답해하셨다. 1960년 첫째인 나를 낳고 3년 후 과거에 군 복무를 해서 익숙했던 경기 의정부로 이사를 오셨다. 그런데 하필 터를 잡은 게 등산로였다. 도봉산을 찾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작은 매점을 차렸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부모님과 도봉산 망월사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산은 집이기도 했고 놀이터이기도 했다. 호암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아침에 학교에 갈 때는 1시간을 뛰어서 내려갔고, 오후에는 1시간 30분 동안 산길을 올라왔다. 그 어릴 적부터 하루에 2시간 30분씩 산을 탔던 셈인데, 처음부터 힘들다는 불평도 없이 잘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에서 나는 ‘산에 사는 아이’로 통했다. 지금처럼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게 없던 시절, 친구들에게 우리 집은 인기가 아주 많았다. 봄에는 버찌를 따려 벛꽃나무에 오르고, 진달래를 따 먹었다. 여름에는 계곡물을 막아 물장구를 치며 고기나 가재를 잡았고, 가을이면 다래·밤·잣 등을 찾아다녔다. 겨울에는 눈길을 헤치며 토끼를 잡으러 다녔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클라이밍(암벽 등반)에 관심이 생겼다. 주말이면 산악회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도봉산 두꺼비바위에서 등반하던 산악인들에게 클라이밍의 기초부터 배웠다. 그러나 내가 그들보다 더 산을 잘 타는 ‘날다람쥐’로 성장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 어쩜 그렇게 산을 빨리 올라가니.” 어른들은 일주일이 무섭게 늘어가는 나의 빠른 실력 향상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1980년 2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전문 산악인이 되기로 한 이상 대학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한 선배가 대청봉 밑에서 ‘희운각’ 산장을 운영했는데 그 일을 도우며 산을 탔다. 그때 만난 사람이 정양근 형이었다. 그가 1983년 스물일곱 나이에 안나푸르나에서 눈사태를 만나 세상을 뜰 때까지 그는 나에게 정신적 지주였다. 하도 설악산을 헤집고 돌아다니다 보니 나중에는 능선들이 손금 보듯 훤했다. 일반 등산객들은 대청봉까지 2, 3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1시간이면 올랐다. 5시간이 걸리는 설악동까지의 코스도 2시간 30분이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나를 ‘축지법 청년’이라고 불렀다. 체력이 절정에 달해 어떻게든 발산을 해야만 했는데, 그것이 아무리 험준한 산도 한달음에 내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집에 있는 부모님은 한숨이 늘어갔다. “그렇게 대학도 안 가고 등산만 하면 도대체 나중에 뭘 해 먹고 살려는 거냐.” -그런 걱정과 반대에도 당시 벌이는 꽤 쏠쏠했다. 설악산 등반객들 때문에 산장 운영은 꽤 벌이가 되는 장사였다. 명절이나 휴가철이면 ‘돈을 라면박스에 쓸어 담는다’며 즐거워했다. 군대 가기 전 1년 반 정도의 설악산 산장 생활은 전국 산악인들과의 인연을 맺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일반인 등반객들이 뜸한 비수기가 되면 보름 정도씩 지리산, 오대산, 소백산 등 다른 산을 찾아가 그곳에서 활동하는 산악인들과 만나 등반도 하고 식사도 했다. 얼마 후 전국적인 인맥이 형성됐다. -내가 도달하지 못한 산 정상이 하나씩 둘씩 줄어갈수록 가슴속에 있던 히말라야에 대한 꿈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군대였다. 십수년을 산에서 보내서였을까. 몸으로 하는 거라면 뭐든지 자신이 있었던 시절. 육군은 재미가 덜할 것 같았다. 해군에 입대했다. 인천에서 작은 군함을 탔는데 3개월 만에 배의 엔진에 불이 나서 대기발령을 받게 됐다. 그때 지체 없이 해군특수전단(UDT)에 지원했다. 석 달간의 수병 생활도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UDT 훈련은 산악인으로서 나의 능력을 몇 단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엄청난 양의 수영은 폐활량과 근력을 키워 주었다. 경주 감포에서 독도까지 5박 6일 동안 헤엄쳐 가 본 적도 있었다. 6개월 동안 다이빙, 수중 폭파, 수중 침투, 육상 침투, 낙하산 공중침투 등 훈련을 다 견뎌내야 했는데, 1주일간 단 한숨도 잠을 안 잔 적도 있었다. -1984년 9월 제대를 하고 나서 그해 연말부터 에베레스트 원정을 준비했다. 박영배 대장이 나를 원정대원으로 뽑아 주었다. 대원을 선발할 때에는 등반 기술, 체력도 중요하지만 정신력과 인간성도 중요한 심사 요소로 본다. 1년가량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속보 산행을 하며 지구력 훈련을 하면서 암벽과 빙벽에 붙어살았다. -히말라야 도전은 집에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1985년 겨울 D데이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저 얼마 있으면 네팔에 갑니다.” 아버지는 펄쩍 뛰셨다. 죽을지도 모른다며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다. “저는 정상까지는 안 가요. 꼭대기는 선배들이 오르고 저는 그냥 심부름 정도만 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처럼 원정대 스폰서가 흔치 않아서 그동안 모아둔 돈 500만원을 고스란히 털어 넣었다. 그렇게 떠난 첫 도전에서 에베레스트는 나를 품어 주지 않았다. 1993년 초오유(8201m)와 시샤팡마(8201m) 등정 성공을 시작으로 1998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히말라야 16좌 중 10번째 등정이었는데, 고1 때의 다짐으로부터 20여년 만이었다. -많은 사람이 히말라야 16좌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봉우리가 무엇인지 묻는다. 안나푸르나(8091m)다. 네 번을 실패했다. 1998년 네 번째 도전에서는 동료를 3명이나 잃었고 나 자신도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7600m 지점 급경사에서 미끄러지는 셰르파를 구하려다 함께 굴러떨어졌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발목이 완전히 꺾여 돌아가 있었다. 사고 지점에서 4600m의 베이스캠프까지 그 다리를 하고 2박 3일 동안 내려왔다. 유독 그 봉우리만 실패를 거듭한 이유를 떠올려 보면 젊은 날 그 산에서 떠나간 정양근 선배가 떠오른다. 언제나처럼 자만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을 것은 아닐까. -어쨌든 안나푸르나 4차 등정 실패 후 병원에서 “다시는 산에 오를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11번째 봉우리를 앞에 두고 평생의 여정이 끝나는가 싶었다. 어둠 속의 고통을 말해 무엇하겠나. 10개월간 고통 속에서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재활했고 다시 몸을 만들 수 있었다. 이듬해 5번째 안나푸르나로 향했고 결국 정상에 섰다. 그곳에서 배운 겸허함은 16좌 완등을 무사히 마치게 해 준 힘이었다. -2007년 16좌 등반을 완료하자 기쁨과 함께 허탈함이 밀려왔다. 주변에서 “이젠 편하게 살라”고 했다. 목숨을 건 사투가 그들에게 꽤나 힘겨워 보였는가 보다. 엄홍길휴먼재단을 만들기로 했다. 네팔의 산골 오지 학생들에게 학교를 지어 주는 프로젝트인데 16개를 건립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13개가 착공돼 있다. -2013년 말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을 만든 윤제균 감독이 연락을 해 왔다. 감독이 아닌 영화 제작자로서였다. 에베레스트 8750m 지점에서 조난당한 후배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2005년 휴먼원정대를 꾸린 것을 영화로 만들자는 거였다.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고 자문을 해 달라고 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가까스로 치유한 유족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게 됩니다.” 완강히 거절을 했다. 사실 앞서 2005년에도 여러 영화 제작자가 연락을 해 왔다. 그때도 같은 이유로 모두 거절을 했다. 그러나 윤 감독의 집요함은 이전 제작자들과 달랐다. “산과 사람의 역사를 함께 조명하자”고 했다.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마음을 바꿨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메시지를 영화를 통해 전하기로 했다. 초고속 성장을 하면서 추락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휴먼원정대를 통해 일깨우고 싶었다. ‘배려와 양보가 사라진 이기적인 사회에서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동료애와 희생정신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 정신이 황폐화된 채 맞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는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해서 영화 ‘히말라야’(2015년·황정민 주연)가 탄생했다. -나는 지금도 히말라야에 오르고 싶다. 도시는 너무 답답하다. 야생마처럼 멋대로 천지를 달리다가 갇힌 기분이다. 열정을 불태우던 시절이 그립다. 체력적으로 아직 8000m 산에 오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매월 많게는 10번 정도 강의를 한다. 말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군부대, 경찰, 관공서, 기업체, 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강연 의뢰를 받는다. -지금도 웬만하면 오전 스케줄은 비우고 북한산을 오른다. 내 산책 코스는 북한산 백련사 입구에서 진달래 능선을 지나 대동문까지 오른 후 아카데미 하우스로 내려오는 길(10㎞)이다. 1시간 30분 정도면 완주하는데 요즘은 나를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서 이렇게 저렇게 인사를 하다 보면 2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산에 오르는 길은 ‘이러다 죽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의 연속이다. 산은 사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다. 눈사태도 감수해야 한다. 8000m 고봉에서는 산소가 해수면의 3분의1밖에 안된다. 두세 발짝 움직이고 나서 3~5분간 숨을 거칠게 쉬어야 다음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다. 유일한 동반자는 시련을 참아내는 내 안의 용기와 인내뿐이다. 정상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내고 완전히 탈진이 된 후 하산을 한다. 오를 때는 정상이라는 결과에 몰입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정신이 돌아오면서 겁이 나기 시작한다. 사고도 내려올 때 더 많이 일어난다. 우리들 인생과 비슷하다고나 할까.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엄홍길 대장은 1993년 초오유(8201m)를 시작으로 2007년 로체샤르(8400m) 등정까지 세계 최초로 8000m 이상 히말라야 고봉 16좌를 완등했다. 2005년에는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숨진 고 박무택, 백준호, 장민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휴먼원정대’를 조직했다. 세계 산악계 최초로 동료를 구하러 목숨을 건 등반을 감행해 ‘휴머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재는 엄홍길휴먼재단을 운영하며 네팔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건립에 분주하다. ▲1960년 경남 고성 출생 ▲양주고, 한국외국어대 중문학 학사·체육교육학 석사 ▲밀레 홍보팀 기술 고문, 상명대 자유전공학부 석좌교수, 대한산악연맹 대회협력위원장 ▲체육훈장 거상장·맹호장·청룡장, 대한민국 산악대상, 대한민국 창조경영인상 수상 히말라야 16좌 등정 일지 초오유→시샤팡마(1993년·8027m)→마칼루(1995년·8463m)→브로드피크(1995년·8047m)→로체(1995년·8516m)→다울라기리(1996년·8167m)→마나슬루(1996년·8163m)→가셔브룸1(1997년·8068m)→가셔브룸2(1997년·8035m)→에베레스트(1998년·8850m)→안나푸르나(1999년·8091m)→낭가파르바트(1999년·8125m)→칸첸중가(2000년·8586m)→K2(2000년·8611m)→얄룽캉(2004년·8505m)→로체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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