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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민 여의도집회 31일로 연기

    신민당은 26일 하오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갖기로 했던 「노 정권 규탄 공안통치 종식 국민대회」를 오는 31일로 연기했다. 신민당은 이날 상오 김대중 총재 주재로 긴급 주요간부회의를 열어 일기불순과 청중동원의 어려움 등을 감안,대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신민당은 27일 하오 예정된 원주집회는 예정대로 강행키로 했다.
  • 5백여명 가두행진

    「범국민대책회의」는 26일 하오 6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문익환 목사 백기완씨 등 재야인사와 학생 등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귀정양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김양의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 김양 사체 부검 사인규명 방침/검찰/경찰의 과잉진압여부 수사나서

    ◎「대책회의」선 새달 1일 국민대회 계획 지난 25일 시위 도중 사망한 성균관대생 김귀정양(25·불문과3년)의 사망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형사3부(이광수 부장검사)는 26일 김양의 사인규명에 사체부검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를 위해 서울대 이정빈·이윤성 교수 등을 부검의로 선정해 「범국민대책회의」측과 협의를 마치는 대로 부검키로 했다. 검찰은 김양 사망시 근처에 있던 경찰들이 김양을 에워싸고 있었다는 학생들의 주장에 따라 과잉진압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 시위진압에 투입됐던 서울시경 제4기동대의 진압일지를 조사하는 한편 진압중대장 및 소대장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김양의 부검을 위해 법원으로부터 사체압수 수색영장을 발부받았으며 형사3부 소속 임채진·김수남·한명관 검사를 시위 현장과 백병원 영안실로 보내 당직의사 등을 상대로 사망경위에 대해 조사했다. 한편 김양 사건 「임시대책위원회」는 26일 하오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갖고 『김양은 시위대에 깔려 숨진 것이 아니라 경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과 폭력에 의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김양의 장례문제는 사인이 명확히 가려진 뒤 유족들의 의사를 존중해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범국민대책회의」는 오는 28일 하오 6시 명동성당에서 「김양 사망 규탄대회」를 갖고 6월1일에는 전국적으로 「제4차 국민대회」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범국민대책회의」는 또 성균관대 학교당국과 총학생회 민주동문회 및 「대책회의」측 대표 등으로 「고 김귀정양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날 김양의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 영안실에는 장을병 성균관대 총장과 불문학과 김상태 교수(48)와 재야인사들이 조문했다.
  • 신민 오늘 여의도 집회

    신민당은 26일 하오 4시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노 정권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국민대회」를 개최한다. 서울시는 당초 이 집회가 공공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신민당에 장소사용 불가방침을 통보했으나 25일 낮 김영배 총무 등 신민당 항의단의 방문을 받고 장소사용을 허용토록 하기로 했다. 김 총무는 이해원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당사로 돌아와 『교통에 지장을 주지 않고 시민 청소년의 여가선용을 방해하지 않으며 가두시위로 연결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서울시가 집회를 양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여대생 시위대에 깔려 숨져/퇴계로서 시위중

    ◎최루탄 피해 달아나다 넘어져/「국민대회」 무산… 도심 곳곳 격렬시위 25일 하오 3시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 주요 대도시에서 가지려던 정권 퇴진 「제3차 국민대회」는 경찰의 봉쇄로 대부분 무산됐으나 시위 도중 달아나던 여학생 1명이 시위대에 깔려 숨졌다. 이날 하오 5시30분쯤 서울 중구 퇴계로4가 대한극장 건너편 진양상가 앞길에서 동료학생 1천여 명과 함께 시위를 벌이던 성균관대생 김귀정양(25·불문학과 3년)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로 접근해오자 이를 피해 달아나다 넘어지면서 시위대에 깔려 숨졌다. 이날 김양과 함께 시위현장에 있었던 하정림양(19·덕성여대 전산학과 1년)은 『김양 등 70여 명의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서려는 순간,백골단 10여 명이 지키고 있어 시위대의 앞쪽이 멈칫하는 바람에 20여 명이 겹쳐 넘어졌다』면서 『이때 나는 옆으로 넘어져 숨을 쉴 수 있었지만 내 위에 넘어졌던 김양은 숨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최루가스 등으로 질식해 숨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양은 이어 동료학생 2명에 의해 사고현장에 있던 취재차량에 실려 이웃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송 도중에 숨졌다. 김양 시신을 1차 검안한 백병원측은 『김양이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특별한 외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학생 5백여 명은 병원입구에 철제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너통·프로판가스·대형 산소통 등을 놓아둔 채 출입을 통제했다. 이날 김양의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 응급실에는 숨진 강경대군의 부모 민조씨(49)와 이덕순씨(43)가 하오 11시35분쯤 도착해 김양의 어머니 김종분씨(51)의 손을 잡고 위로하기도 했다. ◎대책회의,검시 거부 이날 하오 10시45분쯤 서울지검 형사3부 임채진 검사가 경찰관과 김양의 사체를 검시하기 위해 백병원으로 왔으나 「대책회의」측이 『공식적인 검안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시를 할 수 없다』며 거부해 3시간 동안 병원입구에서 기다리다 돌아갔다. ◎오늘 규탄대회 갖기로/대책회의,명동성당서 「범국민대책회의」측은 이날 하오 성균관대 총학생회와 함께 김양 사건에 대한「대책회의」를 조직,26일 하오 7시 명동성당에서 「폭력살인 공권력 만행 규탄대회」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민대회」가 무산되자 재야인사와 운동권학생 등은 전국 주요도시에서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경찰 18명 부상/1백68명 연행 한편 이날 하오 8시50분쯤 서울 노량진경찰서 소속 황의동 수경(24) 등 경찰관 4명이 을지로 입구에서 페퍼포그차에 타고 다연발최루탄을 장전하는 순간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최루탄이 폭발,얼굴과 손 등에 중화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날 하룻동안 서울에서만 경찰관 1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자 1백68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 “「수첩」 조작한건 은폐기도의 반증”/검찰이 밝힌 필적수사 내용

    ◎찢긴 부분 적외선 실험서 “불일치” 확인/과수연,“유서와 수첩 김씨 글씨 아니다” 김기설씨가 숨진 뒤 「전민련」측에서 보관하다 검찰에 제출,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이 의뢰됐던 김씨의 수첩이 25일 조작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필적감정으로 대치해오던 검찰과 재야세력의 공방전은 일단 검찰 쪽의 승리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 수첩이 조작됐다는 사실은 김씨가 사망한 뒤에도 「전민련」측의 조작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사망한 김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김씨의 수첩을 조작했다는 것은 필적 등 무엇인가 은폐해야만 할 사실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또 이 수첩이 조작된 이상 숨진 김씨의 본래 수첩이 아니며 김씨의 분신자살사건이 단독행위가 아닐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수첩의 필적이 문제의 강기훈씨 것으로 드러나면 강씨가 모든 것을 은폐해왔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셈이 된다. 본래 김씨의 수첩은 숨진 김씨가 자살 전날인 7일 하오 친구 홍 모양을 만나 『내가 죽은 뒤 여기에 적힌 전화번호로 알려주라』면서 건네준 것으로 그뒤 「전민련」측이 보관해왔었다. 「전민련」측은 지난 20일 밤 검찰에 수첩을 제출하기 전까지 검찰의 거듭된 제출요구에 불응,보관 사실조차 숨기며 14일 동안이나 보관했었다. 검찰은 당초 지난 21일 이 수첩을 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단순히 수첩의 글씨가 김씨나 강씨 가운데 누구의 필체인지를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전민련」측으로부터 받은 이 수첩에 대해 검찰에 소환됐던 홍양이 『맨뒤의 3장이 없어지고 내용 가운데 수배된 모 인사의 전화번호를 포함한 중요부분 4장이 찢겨져 있으며 원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힘에 따라 검찰은 과연 김씨가 전해준 본래의 수첩인가까지를 가려주도록 의뢰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전민련」측에 찢겨진 4장을 돌려줄 것을 요구,이 가운데 3장을 받아 함께 감정을 의뢰했었다. 감정 4일째인 이날 서울지검 강력부 강신욱 부장검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를 공개하고 『수첩에 찢겨진 4장 가운데 나중에 받은 3장을 맞춰본 결과 찢긴 자리가 일치하지 않으며 이는 수첩이 조작된 것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라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21일 ▲유서 1장 ▲김씨의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이력서 ▲김씨가 누나에게 선물한 책자의 글 ▲김씨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김씨가 친구에게 보낸 카드 등 6가지 증거물과 함께 이 수첩의 감정을 의뢰했었다. 연구소측은 『유서 및 수첩에 기재된 필적과는 정서와 속필상의 변화상태를 알 수 없으나 서로 다른 필적으로 생각된다』고 밝혀 유서와 수첩이 객관적인 김씨의 글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연구소측은 또 현미경,고정밀 비교확대 투영기,적외선 현미경 등을 통한 실험에서 찢겨진 부분들이 일치하지 않은 것을 확인,검찰에 통보했다. 이에 대해 강 부장검사는 『앞으로 김씨의 글과 수첩을 놓고 필적감정을 한 결과를 곧 받을 것이나 유서가 강씨의 글이라는 것은 구두로 통보받았다』면서 『이 사건은 결론이 났다』고 잘라말했다. 이로써 그 동안 검찰측 감정결과에 대해 반박해오던 강씨의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됐으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여온 강씨 등 「전민련」관계자들을 비롯한 「범국민대책회의」관계자들의 강제소환을 위한 공권력의 투입이 명분을 갖게 돼 이에 따른 검찰의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다. 검찰로서는 그 동안 필적감정의 결과에도 불구,감정결과의 신빙성 논란이 계속되고 강씨 등 관련자의 구체적인 혐의점을 정확히 밝히지 못한 데다 이들이 수배된 다른 1백50여 명의 「대책회의」관계자들과 함께 명동성당에 들어가 있어 신병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상태에서 검찰은 김씨와 강씨의 필적감정 결과 및 증거보전을 해놓은 홍양의 진술말고도 또 다른 물적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강씨의 혐의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끝났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 지난 19일부터 필적감정에 대응해온 강씨 등 「전민련」측은 수첩의 글이 김씨의 글씨가 아니라는 검찰의 이날 발표에 대해 『수첩의 일부가 훼손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검찰의 주장대로 수첩이 조작 됐다할지라도 김기설씨의 필적이 담긴 방명록 등 이후에 제시된 자료 등도 함께 감정돼야 한다』고 주장할뿐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인 대응은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 23일 감정결과를 놓고 김씨의 글씨가 정자와 흘림자 등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 「전민련」측은 조작혐의자로 지목된 강씨의 대응적 자세말고는 다른 적극적인 반격을 못 하고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수첩이 조작됐다는 감정결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결과로 「전민련」측은 앞으로 인간생명을 경시한다는 심한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자체 안에서도 거센 항의가 일 것으로 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이는 또한 강경대군의 치사사건으로 빚어진 「시위정국」을 주도한 재야단체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을 수반하고 국민여론을 들끓게 할 가능성 또한 비추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강씨는 물론 이미 영장이 나와 있는 1백50명 등 재야의 관련자들에 대한 검거선풍이 눈앞에 다가온 것으로 점쳐진다.
  • 불법집회·시위 구속수사/검찰/「대책회의」·전교조측에 경고

    ◎오늘 22개 도시서 3차 「국민대회」 대검은 24일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 등 재야단체가 주말인 25일과 26일 「제3차 국민대회」 등 대규모 집회를 갖기로 함에 따라 불법시위 주동자와 화염병투척 등 폭력시위 주동자 등을 반드시 검거,엄벌하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집회의 주최자는 반드시 입건,엄단조치하고 신고된 집회라도 집회가 끝난 뒤 화염병 투척이나 투석 등 극렬행위자 및 폭력시위 주동자를 철저히 가려내 모두 구속수사하기로 했다.
  • 「대책회의」 기자회견

    「범국민대책회의」는 24일 상오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5일 하오 3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를 비롯,전국 22개 주요도시에서 「제3차 국민대회」를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 「유서대필」등 증거 확보한듯/검찰,공권력투입 시사의 저변

    ◎“강씨가 김씨 행세 했다” 행적등 확인/사건성격 정치성에 즉각 투입 미뤄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분신자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24일 이 단체 총무부장 강기훈씨가 김씨의 유서를 쓴 사실을 확인,신변확보를 위한 공권력의 투입을 검토함에 따라 이 사건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잇따른 분신사건에 배후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수사를 시작한 검찰은 지난 20일 ▲김씨의 유서 ▲누나에게 보낸 책 카드의 김씨 필적 ▲지난 89년 김씨가 쓴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등 김씨의 필적과 ▲강씨가 김씨에게 써 주었다는 「정세연구」 책자의 필적 ▲강씨의 85년 경찰조사 자술서 ▲김씨의 친구 홍모양의 메모지 필적 등 강씨의 필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을 통해 강씨의 혐의를 잡았다. 검찰은 지금까지 ▲홍양 수첩의 필적 ▲김씨 수첩의 필적 ▲김씨의 편지·이력서 등에 대해 추가감정을 의뢰했고 강씨집을 압수수색했을 때 입수한 또다른 강씨의 필적 등을 확보하고 있다. 전재기 서울지검 검사장과 수사부장인 강신욱 부장검사가 지난 23일 『필적감정은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고 못박을 정도로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자신감에 넘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강씨 등의 신병확보를 제때 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일부에서는 『검찰이 강씨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냐』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측도 없지 않다. 그러나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강력부의 입장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검찰이 김씨의 사건을 맡을 때 흔히 시국사범을 담당하는 공안부가 아니라 강력부가 나섰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번 사건을 「변사사건」으로 규정하고 철저하게 형사사건의 시각으로 파헤치려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씨의 혐의점을 잡은 검찰은 곧 신병확보를 추진했으나 여기서 장애에 부딪치게 됐다. 수사대상이 공교롭게도 「전민련」 등 재야단체가 되어 사건의 성격이 「정치색」을 띠게 된 때문이다. 명동성당에 있는 강씨 등 혐의자들의 신병확보를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게 되면 그것은 곧 「범국민대책회의」에 대한 국가의 대응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검찰은 김씨의 자살에 강씨가 얼마만큼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히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단 몇사람 때문에 막강한(?) 공권력을 투입한 뒤 이들만 선별해서 데려올 수는 없는 난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수사와 병행해 최근 시위를 주도해온 이수호 「대책회의」 집행위원장 등 80여 명의 구속영장발부 대상자와 김종식 「전대협」 의장 등 1백50명의 재야인사에 대한 검거를 거듭 지시해놓고 있다. 검찰은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기 전 김씨사건 혐의자들의 행적과 가담정도를 밝혀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23일 전 검사장이 『필적공방은 끝났다고 본다』고 밝힌 것은 곧 이들 배후세력에 대한 철저한 행적추적이 진행됨을 알리는 공식선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서울지검 강력부는 「전민련」측이 『유서의 필적이 강씨의 것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사실과 유서가 객관적인 강씨의 필체와 같게 나타났다는 모순을 해결하기위해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은 이 모순이 『강씨가 「김기설」이라는 이름으로 행세했었다』는 가정을 밝히면 말끔히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뒷받침 하듯 강씨의 집을 압수수색한 결과 또 다른 강씨의 글에 발신자는 명훈,수신자는 김정훈으로 되어 있으며 『이 이름은 앞으로 동지와 제가 쓸 이름』이라는 내용이 있고 강씨가 「이현우」로 행세한 증거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은 아울러 자살 전에 김씨를 만난 방송통신대학생 6명과 「전민련」의 임근재씨,또 다른 20대 1명,서강대학생회 등을 중심으로 밝혀지지 않은 김씨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점들이 보완되어 수사당국이 강제력을 쓸 때는 재야쪽에서도 이렇다 할 항변을 하지 못해 어둡고 긴 외로운 여정을 밟아야 할 것으로 검찰은 보인다.
  • 강기훈씨 강제구인 검토/정 검찰총장

    ◎내주초 농성장에 공권력투입 시사/“「대책회의」 간부도 함께 검거/「유서대필」의 명백한 증거 있다”/강·김씨,이름 서로 바꿔 사용했을 가능성도 검찰은 분신자살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준 것으로 보고 있는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의 신병을 강제구인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강씨가 빠른 시일안에 검찰에 자진출두해 이번 사건을 마무리지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갈수록 출두가능성이 줄어듦에 따라 이같이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강씨가 머물고 있는 서울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구인을 하게 될 경우 이미 구속영장이 나와 있는 「범국민대책회의」간부 등도 모두 함께 검거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를 위해 명동성당측에 협조공문과 강씨의 소환장 등을 보내는 한편 치안본부와 서울시경 등 경찰수뇌부와 긴밀한 협의를 벌이고 있다. 정구영 검찰총장은 24일 하오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번 「유서대필사건」은 검찰이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내사로 강씨가 유서를 대신 써준 것이 틀림없다』면서 『그러나 당사자인 강씨가 검찰의 출두요구에 불응하고 있어 수사에 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 뒤 강씨가 하루빨리 검찰에 자진 출두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 총장은 강씨를 강제 구인하기 위한 공권력 투입시기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으나 빠르면 내주초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총장은 숨진 김씨의 여자친구 홍 모양을 검찰에서 90여 시간 동안 강제로 붙잡고 강압수사를 하고 있다는 「전민련」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홍양 문제도 알아봤더니 48시간내에 귀가시킨 것이 확인됐다』고 밝히고 『국가의 중추적인 수사기관인 검찰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지검은 유서대필 혐의자인 강씨가 김씨가 자살하기 전에 「김기설」의 이름으로 행세했을 수도 있다는 혐의점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강씨의 집에서 발견된 강씨 필적의 글에 수신자 「김정훈」,발신자 「명훈」이 쓰여있고 『이 이름들은 앞으로 동지와 제가 쓸이름입니다』라고 된 내용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다른 이름은 물론 서로 이름을 바꿔 사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 진퇴양난의 「대책회의」/명동성당 농성의 언저리

    ◎“나가달라” 단전… 밤만 되면 칠흑생활/「유서사건」 겹쳐 시민들 호응도 시들/검찰도 공권력 투입 놓고 불상사 우려,결행 부심 지난 19일 서울 연세대에서 명동성당으로 근거지를 옮겨 농성에 들어간 재야·운동권의 「범국민대책회의」가 날이 갈수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지고 있다. 「대책회의」는 당초 명동성당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아 강경대군 장례 이후에도 「강력한 제2의 투쟁」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김기설씨 유서사건」에 휘말려 「투쟁」은커녕 당국의 발표를 해명하기에도 급급해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대책회의」는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과의 공방을 사건의 핵심인물인 강기훈씨가 소속된 「전민련」이라는 한 단체와의 싸움으로 애써 축소하려 하고 있지만 「전민련」이 애당초 재야세력의 집결체로 결성된 데다 「대책회의」의 핵심 또한 이 조직원들로 짜여 있기 때문에 재야를 대표하려는 「대책회의」로서는 모든 역량을 기울여 대응하는 것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대책회의」로서는 이 사건의 성격이 재야와 학생운동권의 도덕성을 가름할 만큼 큰 부담을 주는 사안이기 때문에 기왕에 추진했던 6월까지의 모든 투쟁계획을 제쳐두고라도 우선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명동성당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6백명 선에 이르렀던 농성자들도 농성 나흘째인 22일 밤에 이르러서는 1백50여 명으로 부쩍 줄어들고 있고 기대했던 학생·시민들의 호응마저 시들해 「대책회의」측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명동성당 성모동산에 대형 천막 2개를 치고 낮에는 30도 안팎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밤에는 성당측의 단전으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사기는 뚝 떨어졌고 내부결속마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단전에서 보듯 명동성당측의 냉대 또한 「대책회의」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대책회의」가 옮겨오기 전부터 『성당을 농성장으로 쓸 수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밝힌 성당측은 『마치 성당측이 수배자를 포함,농성자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국민들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대책회의」측이 다른 곳으로 옮겨주기를 바라고 있다. 「대책회의」측은 이처럼 성당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성당측의 압력과 함께 유서대필 용의자로 지목된 강기훈씨(27)가 검찰의 소환에 계속 불응하게 되면 공권력이 투입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책회의」가 가장 안전한 피난처라고 여겼던 명동성당을 떠나야 한다면 갈 곳도,받아줄 곳도 마땅히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입장은 다르지만 진퇴양난의 갈등을 겪기는 검찰과 경찰 등 수사당국도 마찬가지이다. 강씨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고는 유서사건의 수사를 매듭지을 수 없는 검찰은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해서라도 강씨와 구속영장이 미리 나와 있는 이수호 「대책회의」 집행위원장 등 20여 명의 핵심간부를 검거해야만 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명동성당이 지니는 상징적 이미지와 공권력을 투입했을 때 생길지도 모르는 불상사 등의 우려 때문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검찰 고위관계자의 말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 또한명동성당 주변에 5백여 명의 경비경찰과 수사요원들을 배치해놓고 있으나 「대책회의」가 매일 하오 6시에 갖는 집회에 일반인들의 참가조차 엄격히 봉쇄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명동성당측의 고민도 「대책회의」나 당국의 그것에 못지않다. 22일 검찰측으로부터 『강씨와 「전민련」 인권위원장 서준식씨의 신병인도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성당측은 이렇다할 공식적인 방침을 정하지 못해 부심하고 있다. 성당측은 『이번 일은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때 문부식씨 등을 원주교구 최기식 신부가 적극 보호해준 것과 달리 원하지도 않는데 「대책회의」측이 성당에 들어온 것』이라고 하면서도 『성당이 치외법권지역이 아닌 이상 공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바람직스러운 일은 아니다』라고 어정쩡한 입장을 밝히고 있어 성직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서로 다름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 “시위선동” 재야 1백50명 검거령/검·경

    ◎「대책회의」·전대협 간부등 포함/용공유인물 배포 사노맹 간부도 시국사범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일기 시작했다. 검찰과 경찰은 명지대 강경대군의 장례식과 「5·18」 관련행사가 일단 마무리됨에 따라 20일부터 강군치사사건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 및 노동계 핵심인물들에 대한 일제 검거에 나섰다. 검·경의 이번 조치는 「범국민대책회의」 간부 등 1백여 명이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돼 있는데다 강군사망 이후 전국에서 열린 각종 집회와 시위의 대부분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법률을 명백히 위반했기 때문에 취해지는 것이다. 검거대상은 ▲강군장례와 관련해 각종 불법집회 및 시위를 주도해 온 「범국민대책회의」관계자 ▲배후에서 인원동원을 맡았던 「전민련」 「전대협」 지도부 ▲「사노맹」 등 이적·용공성 유인물을 제작·배포한 지하단체 ▲불법 동맹파업을 벌인 「전노협」과 「임금인상을 위한 전국투쟁본부」 간부 등으로 소속단체별로는 「대책회의」 이수호 집행위원장과 한상렬상임대표·김선택 부위원장 등 간부 20여 명을 포함,구속영장이 미리 발부돼 있는 80여 명 등 1백여 명과 「전대협」 의장 김종식군(23·한양대 사회학과 4년) 등 「전대협」 「전민련」 「전노협」 간부와 신원이 확인된 「사노맹」 조직원 22명 등 모두 1백50여 명에 이른다.
  • 25일 3차 국민대회/범국민대책회의

    「범국민대책회의」는 2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25일 「제3차 국민대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25일까지를 「정권퇴진을 위한 총력투쟁기간」으로 정하고 매일 낮 12시 서울시내 도심에서 「대국민선전전」을 갖는 한편 하오 6시에는 명동성당 앞에서 「결의대회」를 가지기로 했다. 한편 「대책회의」 간부 등 2백여 명은 20일 밤에도 명동성당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 강군 운구차 빼돌려 노제 강행

    ◎학생들이 금남로로 몰고 가… 새벽 망월동으로/광주시민등 5만명 경찰과 대치… 한때 격돌위기 【광주=최치봉 기자】 명지대 강경대군의 유해는 20일 상오 유가족·동료학생·재야인사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망월동 「5·18」묘역에 안장됐다. 강군의 시신이 묻히자 유가족들은 오열을 터뜨렸으며 학생·「범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은 강군의 죽음을 민주화로 승화시키자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광주시내 곳곳에서는 밤늦도록 시위가 잇따랐다. 이에 앞서 유가족·학생·시민·「대책회의」 관계자 등 5만여 명은 19일 하오 10시부터 광주 금남로3가 광주은행 앞 네거리에서 「강군 노제」를 치렀다. 강군 운구행렬은 북광주인터체인지에서 전남도청 앞 노제를 막는 경찰과 대치하다 무등경기장→광주역 등을 거쳐 하오 8시30분쯤 이곳에 도착했다. 이에 앞서 하오 7시30분쯤 명지대생 등 대학생 1천여 명은 경찰과 공방전을 벌이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운구차량을 빼내 어린이대공원 쪽으로 몰고 갔다. 경찰은 당시 고속도로를 점거,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을 해산시키는 작전을 전개하던 중이어서 학생들이 운구차를 빼돌리는 것을 발견치 못했다. 강군 「대책위」는 광주인터체인지 앞에서 경찰과 13시간 남짓 대치하다 하오 3시쯤 노제를 생략키로 하고 망월동 「5·18」묘역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시내에서 몰려든 대학생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운구행렬은 움직이지 못했다. 한편 이날 하오 1시쯤 광주시 북구 동은동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순천경찰서 507기동대장 김명호 경감과 전경 20여 명이 학생들에 의해 1㎞쯤 떨어진 광주 서강전문대에 끌려갔다가 6시간20분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금남로 국민대회」가 열린 18일 하오부터 이날까지 계속된 시위과정에서 학생·경찰 등 1백20여 명이 부상했으며 시위진압차량 2대가 화염병에 맞아 불타기도 했다.
  • 시위로 얼룩진 「5·18」/44개 시군서 장례… 추모… 파업

    ◎한밤 광주로 운구… 망월동 안장/「노제」 충돌 끝에 공덕동서 치러 「5·18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며 명지대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은 온통 군중집회와 격렬한 시위로 얼룩졌다. 이날 강군의 장례행사는 무사히 치렀으나 전국 주요도시에서는 밤늦게까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해 부상자가 속출하고 곳곳에서 경찰관서 등이 시위대에 의해 불타기도 했다. 또 상·하오에 걸쳐 전남·광주 등지에서 남녀 3명이 또 분신,1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졌다. 강군의 「노제」는 「대책회의」측이 경찰의 설득으로 이날 하오 6시30분부터 서울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거행됐으며 이어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 앞∼국립묘지 앞∼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휘문고교에서 잠시 들른 뒤 하오 10시10분쯤 고속도로로 진입,광주로 향했다. 19일 새벽 광주에 도착한 운구행렬은 곧바로 5·18묘역으로 가 시신을 안장했다. 「대책회의」측은 이날 집회와 시위에 서울에서 7만여 명을 비롯,광주·부산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8만5천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또 「전노협」은 이날 9만여 명이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으나 노동부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9개 도시의 32개 노조 1만2천5백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날 낮 12시30분쯤부터 서울에서는 「대책회의」측 장례행렬이 이화여대 입구에서 서울역 쪽으로 향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장시간 공방전을 벌였다. 광주에서는 상오 10시 망월동 묘역에서 「5·18 추모제」가 열린 것을 비롯,하오 금남로에서 「5·18정신」의 계승 등을 주장하는 「국민대회」와 종교단체·근로자·학생들의 추모집회가 잇따라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됐다. 이밖에 부산 전주 인천 등 다른 도시에서도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고 군청소재지에서는 이른바 「농민대회」 등이 열렸다. 이들은 곳곳에서 도심진출을 기도하다 경찰에 제지당하자 주요간선도로 등을 점거하고 돌과 화염병을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시위를 막다 서울에서 53명을 비롯,전국적으로 73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자 가운데 91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 광주선 7만명 추모집회/금남로 일대서 산발시위도

    【광주=임정용·최치봉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인 18일 광주시내는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에 이어 전국으로 확산된 분신자살 파문으로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추모식과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상오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 묘역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항쟁 11주기 추모식에는 전규랑 유족회장(56) 등 유족과 시민·학생 등 참배객 1만여 명이 참석,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추모식에 참석했던 유족과 시민·학생들은 보성고교 김철수군의 분신소식이 전해지자 하오 3시쯤부터 광주시 동구 금남로3가 광주은행본점 사거리를 중심으로 금남로·중앙로·충장로 일대에 모여들어 「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규탄 및 박승희 학생 광주전남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5·18 광주민중항쟁 계승 및 노 정권 퇴진을 위한 제5차 국민대회에 참석했다. 경찰의 집회허가를 받아 열린 이날 대회는 7만여 명의 시민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이광우 「5추위」 회장의 기념사와 오종렬 대책회의 공동의장의 대회사,도시빈민 노동자 학생 등 각계 대표의연설·결의문·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대회를 마친 시민 학생 2만5천여 명은 이날 하오 8시50분쯤 집회장소인 광주은행 앞 4거리에서 5백여 m 떨어진 전남도청 앞 광장으로 진출하려다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광주시 동구 충장로1가 시내 중심가 곳곳에서 밤늦도록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한밤까지 도심서 격렬시위/강군장례·국민대회등 전국서 20여만 참여

    ◎「노제공방」 5시간… 곳곳서 충돌/3백여명 명동성당서 철야농성/파출소등 잇단 피습… 학생·경찰 부상 속출 5월 셋째 주말은 온통 집회와 시위로 얼룩졌다.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자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군중과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하는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가 주도한 이날 시위로 서울 신촌 지역과 광주 금남로 등 도심지 상가는 거의 철시를 했으며 곳곳에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강군 장례식◁ 「대책회의」측은 이날 상오 10시30분 세브란스병원에서 강군의 가족을 비롯,백기완씨·문익환 목사 등 재야인사와 이우재 신민당 최고위원 등 1백여 명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제를 가졌다. 발인제를 마친 운구행렬은 「서총련」 소속 대학생 1천5백여 명의 경호를 받으며 상오 11시 영안실을 떠나 낮 12시 신촌로터리에 도착한 뒤 서울역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이화여대 앞과 아현고가 차도를 거쳐 서울역으로 가려다 경찰이저지하자 하오 5시까지 밀고 당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대책회의」측은 경찰의 설득을 받아들여 결국 이날 하오 6시30분쯤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2시간 동안 「노제」를 지냈다.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용마루∼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국립묘지∼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강군의 모교인 휘문고교에 잠시 들렀다가 하오 10시10분쯤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운구행렬은 3백17㎞의 호남고속도로를 시속 80여 ㎞로 달려 19일 상오 3시쯤 광주시 북구 동운동 서광주인터체인지에 도착했다. 장의차를 앞세운 운구행렬은 이어 이날 전남도청 앞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가지로 진출하려다가 경찰 20여 개 중대 3천여 명이 저지하자 전날 밤 금남로에서 「국민대회」를 마친 학생 1천여 명과 합세,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운구행렬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전남도청 앞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새벽 동광주인터체인지∼광주교도소를 거쳐 망월동 5·18묘역에 도착,강군의 시신을 안장했다. ▷가두시위◁ 서울에서는 이날 하오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 등 4만여 명이 회현동 네거리에서 퇴계로2가 및 신세계백화점·남산3호터널 앞 등의 차도와 아현고가도로 등지를 점거하고 경찰과 맞서 화염병 수천개와 돌 등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1시40분쯤 시위학생 20여 명은 신촌로터리 부근인 마포구 노고산동 치안본부 분실에 몰려가 화염병 20여 개를 던져 수위실을 전소시키고 마당에 있던 승용차 2대를 불태웠다. 하오 2시40분쯤부터는 5천여 명의 시위대가 을지로 2·3가 6차선 차도를 점거해 시위를 벌일 것을 비롯,종로 2·3·4가,퇴계로 2가,을지로 6가 등지로 5백∼5천여 명씩 옮겨다니며 경찰과 쫓고 쫓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이날 하오 4시10분쯤 시위대중 1천여 명은 퇴계로 2가 파출소 앞에 세워둔 경찰보급용 트럭을 탈취해 최루탄 4상자 등을 빼앗은 뒤 1시간쯤 끌고다니다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불태웠다. 이들은 또 하오 8시5분쯤 퇴계로2가 파출소로 몰려가 쇠파이프 등으로 현관셔터문을 부순 뒤 화염병을 던져 내부를 불태웠으며 안에 있던직원 6명은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신촌로터리 일대에 집결해 있던 3만여 명은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에서 운구행렬이 광주를 향해 떠난 뒤부터 장소를 옮겨 퇴계로의 시위대와 함께 합세,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5천여 명은 하오 10시쯤 명동성당으로 집결해 규탄집회를 가진 뒤 대부분 해산했으며 나머지 5백여 명은 철야농성을 벌였다. ▷국민대회◁ 강군의 장례식과는 별도로 하오 4시에 갖기로 했던 서울 시청앞 등 주요도시 도심지에서의 「국민대회」는 경찰의 봉쇄로 대부분 무산됐다. 「국민대회」가 무산되자 서울·광주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넘는 인파가 가두시위 등을 벌였다. 이에 앞서 서울대·부산대·전남대·조선대 등 전국 32개 대학생 1만여 명은 이날 학교별로 출정식을 가진 뒤 「국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도심지로 나가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부산=장일찬 기자】 부산지역 학생,근로자,재야인사 등 8천여 명은 18일 하오 3시 부산시 중구 남포동 부영극장 앞에서 개최키로 했던 「광주민중항쟁 계승 및 민자당 해체,현정권 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중구 대청동 국제시장과 카톨릭센터 일대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 “건물 파손 말라” 말리는 행인에 뭇매

    ◎5·18 국민대회·강군 장례 이모저모/CNN 보도진,이 여인 분신 촬영하다 봉변/광주 상인들,“토요일은 장사 잘되는 날” 영업/연대에 박노해씨 명의 「옥중메시지」 나붙어 ○프락치 아니냐 시비 ○…이날 하오 7시40분쯤 노제가 치러지던 공덕동 네거리에서 김 모씨(42·광고업)가 교통초소의 대형 유리창 3장을 깨는 학생들을 나무라다 시위대들로부터 뭇매를 맞아 얼굴이 찢어지는 등 상처를 입었다. 시위대 40여 명은 이날 김씨가 『공공시설은 파손시키지 말라』고 말하자 『당신 안기부 프락치 아니냐. 신분증을 보자』며 멱살을 잡고 쓰러뜨린 뒤 온몸을 마구 때렸다. 시위대는 또 김씨에게 사건경위를 묻는 H일보 송 모 기자에게도 『당신이 뭔데 자꾸 묻느냐』면서 몸을 밀치고 취재수첩을 빼앗아가는 등 행패를 부렸다. 이를 말리던 한 시민은 『민주사회를 이루자는 사람들이 공공건물을 파손하고 신분을 밝히는 사람들에게 「프락치」라며 군중심리를 이용,폭행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고 한마디. ○…강군 치사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6일부터 학생회관에 사무실을 차려놓은 「대책회의」의 주도로 비롯된 각종 대규모 집회 및 시위로 20여 일 이상 홍역을 치러온 연세대 교직원들은 강군 장례식이 끝난 18일 매우 홀가분해 하는 모습. 학생과의 한 직원은 『그 동안 강군사건과 관련된 외부인들의 집회 등으로 기본 학교업무마저 마비돼 학생증 및 복무단축확인서 발급업무 등 최소한의 민원만 처리해왔을 뿐』이라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운구 휘문고에 들러 ○…이날 하오 9시15분쯤 강군의 운구행렬이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에 도착하자 재학생 50여 명은 검은 리번을 달고 본관 앞에 임시로 마련된 빈소에서 운구행렬을 맞았다. 이곳에서 약 15분간의 추모식이 끝나자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49)는 추모시를 읽은 강군의 선배 배노준씨(24)에게 『추모시를 간직하고 싶다』고 요청,시를 적은 메모지를 건네받기도 했다. ○“정권과의 전쟁” 규정 ○…이날 연세대 백양로 게시판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사노맹」 중앙위원 박기평씨(필명 박노해) 명의로 된 「박노해의 옥중메시지」라는 제목의 대자보 7장이 나붙었다. 박씨는 이 대자보에서 현시국을 「노 정권과 민중과의 전쟁상황」으로 규정하면서 『노 내각을 퇴진시키는 것이나 김대중에게 압력을 넣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노 정권을 쓰러뜨려 임시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곳곳에 화염병 파편 ○…이날 하오 10시쯤부터 전남도청 앞으로 진출하려는 시민·학생 등 1만여 명과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려는 경찰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시내 금남로·중앙로 등 도심 곳곳이 화염병 파편과 최루탄,국민대회에서 뿌려진 3만여 장의 유인물 등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이날 국민대회가 열린 금남로·충장로 일대의 상가에는 「5월단체 회원」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사람으로부터 『오늘은 시민 모두가 그날의 뜻을 기리는 경건한 날이므로 일찍 철시하라』는 요청의 전화가 쇄도하기도. 충장로1가 K의류상 주인 김 모씨(59)는 이날 상오부터 이같은 내용의 전화를 두 차례나 받았으나 토요일은 장사가 잘되는 날이므로 철시하지 않는 등 대부분의 상인들은 11주년을 맞는 5·18정신 계승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업에 열중하는 모습. ○분신자,여대생 오인 ○…이날 상오 11시50분쯤 이정순씨(39)가 투신한 현장에서 이 학교 영문과 2년 신 모양(20)의 가방이 발견되어 「대책회의」측과 학교측은 투신자를 신양으로 보고 가족에게 연락하는 등 한동안 법석. ○“쇠파이프 맞아 입원” ○…미국 CNN­TV 소속 카메라맨과 녹음기술자 등 2명이 이날 연세대 앞에서 한 여자의 분신장면을 촬영하려다 시위학생들로부터 쇠파이프와 곤봉으로 폭행당해 입원했다고 CNN의 한 관계자가 밝혔다. CNN의 통역인 조주희씨는 『한 여자가 분신 후 고가철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으려던 카메라맨 김효성씨와 녹음담당 조남백씨 등 CNN 보도진이 그곳에 모여 있던 군중에게 붙잡혀 폭행당했다』고 말했다. ○고교생도 시위 참여 ○…이날 「한국고등학생기독교운동서울연맹」 소속 고등학생 5백여 명은 퇴계로2가 일대를 점거한 시위대 틈에 끼여 스크럼을 짜고 현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 학생들은 『전진하는 고등학교』 『새 나라의 고등학교』 등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퇴계로2·3가를 왕복하며 2시간쯤 가두행진을 벌이다 시위양상이 점차 격렬해지자 하오 7시쯤 모두 해산. ○고교생 분신 초긴장 ○…광주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은 지난 16일 강진 고교생들의 교외시위에 이어 이날 보성고교 김철수군의 분신사건이 일어나자 시위·분신의 불길이 고교생까지 확산될까 초긴장. 광주시교육청은 이미 고교생들의 추모집회 참가를 학교장 재량으로 허요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5·18추모집회를 용인했으나 이들이 과격시위나 분신 등 극렬행동에 참여할 것인가를 두고 예의주시. 한편 이날 전남도교육청 관내에서는 강진고교를 비롯,5개 고교가 5·18 추모행사를 교내에서 가졌다. ○민자 전북당사 피습 ○…이날 하오 8시20분쯤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1가 민자당 전북도지부 당사에 시위대 학생 1백여 명이 몰려와 50여 개의 화염병을 던졌으나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 문익환목사 재수감 검토/검찰/“형집행정지중의 시국강연 법저촉”

    ◎시위조종 「대책회의」 20명 추가 검거령 검찰은 18일 「범국민대책회의」에 참여,강경대군의 장례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익환 목사(73)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다시 구속하거나 형집행정지를 취소해 재수감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문 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에도 신병치료와는 관계없이 각종 강연회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내용의 강연을 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문 목사는 북한에 몰래 다녀온 혐의로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10월20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었다. 검찰은 또 18일 「대책회의」 주관으로 서울에서 열린 이른바 「제2차 국민대회」 등 전국 33개 도시의 5·18 관련집회에서 시위를 주도,또는 배후조종하거나 적극 가담한 사람들을 가려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처벌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구속영장이 미리 발부돼 있는 「대책회의」 집행위원장 이수호씨 등 80여 명 말고도 20여 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나서기로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동맹파업에 들어간 「전노협」과 「대기업노조연대회의」로 구성된 「임금인상을 위한 전국공동투쟁본부」 산하 32개 노조 가운데 11개 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인 것으로 보고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주동자를 처벌할 방침이다. 이들 노조는 파업 전에 쟁의발생신고나 냉각기간을 거치지 않아 법을 위반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 76개대 「5·18출정식」/광주선 1만명 전야제… 도심 시위도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서울의 22개 대를 비롯,전국 76개 대학생 2만여 명은 학교별로 「출정식」을 갖고 18일의 「제2차 국민대회」에 적극 참여할 것을 결의했다. 「전대협」은 이날 『범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하는 국민대회에 4만여 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밝히고 『현 정권의 퇴진을 위해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광주에서는 「5·18위령탑 건립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이광우 전남대 교수)가 하오 6시 전남대 병원 앞에서 학생·시민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5·18전야제」를 가졌으며 천주교 임동성당에서는 윤공희 대주교의 집전으로 「5·18추도미사」도 열렸다. 이날 전야제에 참여한 시민과 학생가운데 2천여 명은 하오 11시쯤 도청앞 광장으로 진출하려다 광주지방 노동청앞 네거리에서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금남로 등 시내곳곳에서 돌 등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편 여관구 전남도경국장은 이날 하오 기자간담회를 갖고 『18일 금남로에서 열리는 집회를 평화적으로 치를 경우 이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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