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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GO / 시민단체, 광복절 행사 ‘선의의 경쟁’

    8·15 광복절 58주년을 맞아 시민사회단체들은 비록 성격과 지향점은 다르지만 선의의 경쟁속에 나름대로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 하루동안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을 촉구하는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의 대대적인 평화·통일 캠페인이 경쟁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통일연대,민중연대 등 보수와 진보진영의 각 시민사회단체들은 도라산역과 금강산 등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한목소리를 낸다. 특히 지난 2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당시 현장에 ‘인간방패’로 나섰던 ‘이라크 반전평화팀’(IPT)은 미국·일본 등 외국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반전행사를 알차게 치를 계획이다. 그러나 한총련 등 일부 반미단체들의 미군기지 기습시위 등 반미 과격 집회도 동시에 열릴 예정이어서 자칫 평화적 행사에 ‘옥에 티’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통일을 노래한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등은 15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역에서 ‘8·15특집평화콘서트’를 연다.통일의 ‘시발역’인 도라산역에 모여 평화·통일을 노래하는 한편 북한어린이 돕기와 북한내 수액(링거액) 공장건설 지원을 위한 성금도 모금한다.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와 통일연대 등으로 구성된 ‘2003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도 14일부터 17일까지 평양에서 해외동포 등 8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를 갖는다. 남측 인사 300여명과 북측 인사 400여명,해외동포 150여명 등이 어우러지는 이 행사의 개막식과 본대회는 능라도공원에서,남북합동공연과 폐막식은 고구려 유적지인 대성산성 남문 앞에서 열린다. 또 사단법인 ‘지우다우(지금 우리가 다음 우리를)’는 13일 전국 대학생 815명이 육로를 통해 금강산을 방문,3박4일간의 ‘8·15기념 금강산 대학생 평화캠프’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사망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이 임시중단돼 취소 가능성이 우려됐지만 북측이 지난 10일 ‘개최를 허용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이에 앞서 참여연대와 민주노총,학술단체협의회 등 100여개 단체로 구성된 ‘정전 50주년 한반도 평화대회 조직위원회’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7월27일을 ‘평화의 날’로 제정하자는 운동을 펼쳐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전쟁을 반대한다 진보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반전 행사도 예정돼 있다.통일연대와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 등은 15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10만여명이 참가하는 ‘반전평화 8·15 통일대행진’행사를 마련했다.이들은 “정전 50주년을 맞은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여전하다.”며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평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행사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같은 장소에서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성향 단체로 구성된 반핵반김 8·15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주최하는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국민대회’도 열린다. 앞서 평화네트워크는 지난달 24일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으며,대한국제법학회와 통일연구원도 지난달 25일 ‘한국 정전 50주년과 한반도 평화’ 학술세미나를 열어 한반도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정치·군사적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술단체협의회도 지난달 25일 일본,미국,중국 등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쟁 정전 50주년 국제평화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하지만 한총련 등 일부 반미단체들은 지난 7일 한총련의 미군 훈련장 장갑차 점거 시위에 이어 15·16일 이틀간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1만여명이 참가하는 반미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이후에는 전국 93개 미군기지를 상대로 기습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밝혀 경찰과의 충돌이 우려된다. ●지구촌이 함께 나선다 15일은 광복절이자 2차 세계대전 종전일이기 때문에 한국·일본 평화운동 단체가 공동주관하는 국제적 반전행사도 열린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8·15 반전 서울대회’ 조직위원회는 서울 종로에서 ‘반전평화행진’을 벌이고,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해소와 평화를 촉구하는 ‘서울선언(가칭)’을 채택한다. 한국은 IPT와 ‘IPT지원연대’ 등을 중심으로,일본은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화를 비판하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전국 교환회’(ZENKO),‘민주주의적 사회주의 운동’(MDS),‘평화와 생활을 잇는 모임’ 등 진보적 좌파단체 인사 100여명이 방한,행사를 치른다. 또 미국의 ‘글로벌익스체인지’와 미얀마의 ‘바이얀’ 등 반전평화단체 대표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조직위 관계자는 “한국·일본 반전평화 운동가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지역의 위기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반전 국제연대활동을 통해 평화적 해결을 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 광복절 집회 ‘보·혁 충돌’우려/진보·보수단체 수만명 시청앞서 행사

    오는 15일 진보·보수단체들이 동시에 서울시청 앞에서 광복 58주년 대규모 기념행사를 열기로 해 마찰이 우려되고 있다. 10일 경찰과 관련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통일연대와 민중연대 등 진보성향의 단체들은 오는 15일 오후 4시 서울시청 앞에서 ‘반전평화 통일대행진’을 연다. 반면 자유시민연대와 재향군인회 등 보수성향의 단체들로 구성된 ‘8.15 국민대회 준비위원회’도 같은 시각 서울시청 앞에서 행사를 갖고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들은 이날 행사에서 정부를 상대로 ‘친북’ 정책을 버리고 한·미동맹 강화에 힘쓸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모두 1만∼2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가 될 전망이라 물리적인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먼저 집회를 신고한 측에 우선권이 주어지지만 두 행사가 각각 기도회와 추모행사라 신고대상 집회도 아니다.”면서 “두 단체에 물리적 충돌의 위험이 있으니 행사장소를 외곽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부득이한 경우엔 먼저 교통통제를 요청한 국민대회측이 시청에서 행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통일대행진 행사 관계자는 “시청 앞에서 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물리적 충돌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장소가 겹쳐서 충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대회 행사 관계자는 “장소 이전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충돌을 막기 위해 행사 참여자들에게 질서유지를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혜영기자 koohy@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4)이청준

    오로지 소설가로 남기 위해 일찍이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서재 속으로 들어간 사람,사십 년 세월을 오로지 이야기 쓰기로만 일관해 온 사람,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견해를 떠나 지역과 성별을 떠나 누구나 그가 한국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고 감동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직조해 내는 사람,그가 바로 이청준이다.문학에서 장인다운 장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한국의 문학과 예술이 완성으로 가는 길을 찾아,그것이 사람들에게 해(害)나 독이(毒) 아니라 오로지 미(美)와 이(利)가 되는 길을 찾아 남도인 이청준을 찾아 가자.남쪽으로 가자. 서울 양재동 허름한 커피숍 2층으로 선생을 안내하여 자리를 잡자마자 선생은 담배를 꺼내 피워 문다.그리고 어딘가 못 올 데 와 있다는 심정을 표현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메모지를 꺼내놓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태세다.무엇이든 예정하지 않은 일은 피하려 하는,조심스럽다고나 할까 섬세하다고나 할까,자리를 가리지 않는 선생의 소탈함은 그런 까다로움을 감추기 위한 포즈라고나 할까.나는 선생의불편한 심정을 덜어드리고 싶어 단도직입하기로 한다. “서울을 떠나셨는데 무슨 이유라도……,있으신지요?” “삶이나 문학이나 밤 산길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결국 헤맨다는 건데,헤매다 보니 문학 사십 년이더군요.지금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자리를 확인해보고 싶고,그러려니 주변 공간을 정리하고 싶어졌어요.예를 들면 온 집안에 흐트러져 쌓인 책 같은 거 말이에요.그 책들 좀 정리해서 제대로 만나고 싶은 거……” “올해 펴내신 장편소설 ‘신화를 삼킨 섬’을 읽다보니 옛날 ‘이어도’가 생각났습니다.감명 깊게 읽던 대학 시절이 그리워지더군요.신화나 무속세계에 천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우리 현재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리가 있는데,하나는 꿈이고,다른 하나는 그 꿈을 실현하는 힘이겠지요.꿈은 내일에 대한 이념이랄까요? 이것을 공적으로 실현하는 힘은 권력으로 귀착되는 것 같아요.삶이 이렇게 진행된다면,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정신인데,그 정신이 태어나고 거(居)하는 곳은 우리의 역사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논의를 수없이 해왔어요.그렇지만 실제 우리 삶이 얼마나 행복해졌느냐,값지게 살고 있느냐,이런 문제로 들어가 보면 제자리걸음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뭔가 빠져 있고 겉돌고 있는 것 같아요.이런 생각 끝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가지고 나오는 어떤 심성,즉 영적인 차원과 넋의 문제에 대한 천착이 결여되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그 부분을 빼 놓고 역사의 차원,과거 경험의 차원에서만 소설을 써서는 안 되겠다,더 깊은 근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신화의 세계죠.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우리 무속이죠.그 무속 혹은 신화에 우리들이 이어온 넋의 요소가 가장 많이 내포되어 있지 않았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문학관이라고 보아도 될까요?” “글쓰기라는 것이 결국에는 하늘이에요.하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문제라는 거죠.달리 이야기하면 그것은 우주관이지요.현실이나 역사는 어떻게 보면 특수성입니다.보편으로서의 하늘,곧 신화를 확대해가면 우주적 통합에 다다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선생님 작품 가운데 ‘서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을 듯한데요.아마 임권택 감독 덕분이시겠지요.그러나 그것이 ‘남도사람’이라는 연작소설집의 한 부분이고 또 ‘언어사회학 서설’이라는 다른 연작소설집과 연결됐다는 것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서 신화적인 요소는 늘 중심 역할을 해왔고,문학도 그런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남도 사람’은 그런 세계를 찾아다닌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 것이고 ‘언어사회학 서설’은 세속적이고 도회적인 삶에 대한 반성을 시도한 것이었습니다.이렇게 도시와 시골을 왕복하는 속에서 삶의 균형,즉 삶의 현장성과 근원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신화적인 세계는 현실적인 삶의 겹을 이루어줄 요소라는 것이지 그것 자체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는 이쯤에서 내가 정작 여쭈어 보고 싶었던 이야기로 들어가기로 한다.선생은 남도의 예인,장인이고 한(恨)의 초극과 승화를 보여주는 예술가다. “우리 문화예술의 가장극명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한의 정서를 드는데요.그것이 무얼까요?” “이렇게 정리해봅니다.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리고,자기가 누려야 할 몫을 누리지 못했을 때 겪게 되는 감정의 부조화라고.부조화로 인해 겪게 되는 삶의 정서라는 것이지요.흔히 한 맺힌다는 것은 심한 일을 당했다는 거거든요.가령 광주 항쟁 이후의 문제같은 것은 광주 사람들이 시민의 자리에서 쫓겨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몫을 못 누린 때문에 생겨난 한의 문제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한을 정리해놓고 보면 원한도 될 수 있지요.이것을 풀어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려면 그것을 씻어내야 하는데 그럴 요량으로 만든 것이 우리네 굿이죠.그것을 남에게서 풀려고 하면 앙갚음이 되고 복수가 되죠.일종의 폭력이 되는 것이죠.그것을 자기 안에서 자기가 풀 때 원한은 원한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으로 승화되는 거지요.용서하고 받아들여서 자기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킨단 말이죠.그러려면 굉장히 내면적인 자기 결단이 필요하죠.그리고 그 부분이 문학같은 예술의 몫이지요.문학의 몫이라는 게 결국은 우리 정신이나 정서를 답답하게 굳히기보다는 그것을 풀어서 넓게 열려고 하는 탄력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한을 씻는 문학을 해 오신 셈인데요.” “힘과 힘의 대결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일,힘에 의해서 자꾸 휘둘리는 삶을 원래의 삶의 자리로 돌려주는 것이 문학이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떤 신념이 느껴집니다.오늘같은 시대에 한국문학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나는 신념이라는 말을 경계합니다만…… 우선 지금은 대량 첨단정보 유통시대이지요.그러다 보니 그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정보를 제대로 검색하거나 선택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가치관의 혼란을 잡아주어야겠지요.둘째로 이상과 현실의 대립 구조 속에서 배제의 현상,배제의 사고,배제의 담론이 범람하고 있습니다.예를 들면 현재는 과거를 배제해요.또 미래는 현재를 배제하고.젊은 사람들은 늙은이를 기성세대라고 해서 배제하고.정치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요.자기 독선을 넘어서 보다 넓은 가치를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문화예술은 유통주의자들의 천국처럼 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만……,과연 장인정신이라는 것이 오늘같은 세상에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지요?” “장인의 세계는 원창조의 세계여서 어느 시대나 그런 세계를 요구하게 마련이지요.장인이 같은 물건 만드는 법은 없어요.나는 그런 생각을 하죠.삶의 벼랑에서 이 작품을 쓴다.이것 쓰고 나면 더 못쓸 것이다,하는 각오로 쓰고…….그러니까 장인들 세계라는 것은 죽을 각오로 만들어진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자기 끝을 아니까 한 걸음을 더 나갈 수가 있는 거지요.자기 삶의 끝에 서있지 않으면 그 삶에 묻혀버리죠.그런 장인의 세계는 원정보 생산이고 진짜 창조의 핵이기 때문에 오늘 같은 세상이라고 해서 버려질 수가 없을 겁니다.유용성과는 좀 떨어져 있는 비물질적·정신적 가치의 세계를 이루면서 우리 삶의 근저를 형성해 주는 거지요.” “젊은 예술가들은 지금 어떤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 걸까요? ”우리 시대에 제일 문제가 된 것은 개인·개성·자유였어요.그 후 개발독재로 산업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평등의 문제가 대두되었지요.그것이 1990년대까지 계속되었어요.이후로는 양상이 달라졌어요.지금은 인류사의 두 개 사상 틀,즉 자유를 보수하여 연결짓고 평등의 요소를 확대하는 두 가지 요소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문학에서는 특히 그렇지요.인문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한 그러한 부분을 획득해 가야만 삶의 가치가 더 넓어지고 높아질 수 있습니다.“ 생은 연신 담배를 물고 한 가닥 연기를 내 쪽으로 연신,느리고 길게,흘려보내고 있었다. ”평소에 궁금했던 일이 하나 있습니다.소설 쓰시려고 교수직을 버리신 적이 있으신데요? “소설은 모든 지식정보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교수는 지식정보가 신전이에요.그러니까 그 두 개가 다 부딪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인터뷰를 마치자점심때가 되었는데 선생은 당뇨때문에 바깥에서 식사를 하기 어려운 몸이 되었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나는 그런 선생을 막을 수가 없다.선생은 허름한 커피숍 문을 더듬더듬 열고 나가서는 우산을 들고 빗속으로 멀어져 갔다.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겸허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이청준 ●겸허가 밴 장인의 삶 김유정(金裕貞)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둘 없는 친구인 소설가 안회남(安懷南)은 그를 기려 ‘겸허(謙虛)’라는 소설을 썼다.가난과 폐병에 시달리던 친구의 생애를 슬퍼한 그 소설에는 김유정의 머리 맡에 겸허라는 두 글자가 붙어 있더라는 사연이 적혀 있다. 용인까지 어떻게 찾아오냐며 서울 양재동 서초구민회관이라고 있는 데 그 앞에서 만나 어딘가로 가자고 하셔서 일손이 줄겠다는 마음에 덜컥 응했다.비는 내리는 데 내가 오히려 늦게 돼 선생이 약속 장소에서 두리번거리고 계셨다.서둘러 비 그을 곳을 찾는 데 오전인지라 다들 문을 닫고 허름한 커피숍 하나만 겨우 들어갈 만했다. 너무 누추해서 어떻게 하느냐고,다른 곳을 찾아 드리겠다고 했는데,선생은 괜찮다고,당신은 담배만 피울 수 있으면 된다고,주섬주섬 뭔가 종이쪽을 꺼내시는데,보니,팩스로 넣어드린 질문 용지다.오늘 하실 말씀을 빼곡하게 메모해 놓으신 그 종이쪽이 왜 그리 귀해 보였는지.담배를 피워 물고 앉으신 선생의 모습은 어딘가 이유도 없이 내게 미안스러워하는 것 같았는데.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선생의 겸허였다. ●남도 멋에 한국 미학 구축 1939년 전남 장흥 출생인 이청준은 남도 예술의 멋과 향취를 한껏 뿜어내는 예인·장인이다.열 살에 뒤늦게 국민학교에 들어가 4·19가 일어난 1960년에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에 입학하여 4학년 재학중에 당대 지식계를 대변하던 ‘사상계’를 통해서 문단에 나왔으니,김현·김승옥 등이 중심이 된 ‘산문시대’ 동인들과 함께 4·19세대 작가라고 할 것이지만,독보적인 길을 걸었다. 어렸을 때 형제와 부친이 세상을 뜨는 등 외롭고 가난한 삶 속에서 소설을 쓴 그는 ‘병신과 머저리’(1966),‘매잡이’(1968) 등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동안 ‘언어사회학 서설’과 ‘남도사람’으로 대변할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시민사회가 제시하는 합리성의 모순에 대한 반성,그것을 뛰어넘는 진정한 인간상의 탐구로 이어졌다.‘당신들의 천국’(1974-5),‘이어도’(1974),‘서편제’(1976),‘눈길’(1976),‘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1984),‘씌어지지 않은 자서전’(1985) 등 숱한 화제작을 남겼다. ‘흰옷’,‘축제’,‘신화를 삼킨 섬’ 등 근년 작품들은 시민사회의 합리주의적 도구성에 대한 반성,한국 사회와 역사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에 바탕해 용서와 화해,신화와 근원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최인훈이 한국 현대사를 서구적 지성으로 날카롭게 응시하면서 ‘표현주의적’ 모던함을 추구한 작가였다면 이청준은 그러한 문학사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미학을 구축한 문제적인 작가라고 할 것이다.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3) 김지하 -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저 뜰 앞에 선 잣나무이니라.”.옛 선사에게 불법을 묻듯,지하에게 이 시대를 물으러 간다.대답은 듣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그것이 바로 해답일 테니까.얼굴과 손이 희지 않고,상민(常民)의 옷을 걸치고 살아가는 그에게,옛날 백 사람의 시인에게 시대를 물을 때 묻지 않은 물음을 던지기 위해,그가 몸을 기대고 살아가는 백성의 마을로 간다. 얼마 전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의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본 시인의 모습은 예전보다 한층 더 수척하면서도 어딘가 부은 데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장기간 요양을 해야 할 만큼 상한 몸을 이끌고 멀리 부산 범어사에서 요양을 하다가 올라온 시인을 붙들고 무슨 말을 들으려 한단 말인가.그러나 자기 바깥에 싸리 울타리를 두르지 않는 시인은 흔쾌히 내방을 허락해 주었다. “회고록의 제명이 ‘흰 그늘의 길’이더군요.그 말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 법한데요.” “글쎄,애매성이라고나 할까.안개 낀 것 같은.단지 이성,오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겠지요.내가 흰 그늘이라는 말을 쓴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하나는 우리 삶이 상당히 이상해졌다는 것이에요.사이코,정신분열적인,착란적인 사회심리가 지배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식하고 용서할 어떤 시적인 그릇을 찾아내려고 한 거지요.흰 그늘이라는 것도 일종의 환상이지만,치료적 기능을 갖는 환상입니다.마치 융의 그림자처럼 가라앉은 욕구라고 할까…,일종의 역설이지.고통의 역설적 인식,성스러운 고통,이런 것을 추구함으로써 시대의 정신적 질환을 넘어설 수 있지 않느냐는 거지요.시(詩)가 바로 그에 관한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김지하 시인은 천래(天來)의 시인답게 비약적인 어법으로 생각을 전개하기 시작한다.그렇다면 나는 논지를 잃고 헤매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지나온 삶이 어땠다고 보시는지요? 요약하신다면요?” “요약?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지.소위 ‘요기 싸르’라고.요기는 요가를 하는 사람,즉 수련자지.그러니까 내면적으로는 수련자고 외면적으로는 싸르,코뮌 싸르,직업 혁명단.그러니까 요기 싸르는 명상을 통한 내면적 수련과 외면의 사유적 변혁,두 가지를 같이 추구하는 자야.나는 옛날에 이 요기싸르라는 말은 몰랐지만 바로 그런 삶을 희망했었다고 생각해요.삶에 대한 쉬르(초월)적 인식과 그 아래 미학으로서의 리얼리즘을 함께 추구했으니까.리얼리즘과 함께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초월성,철학 같은 것을 오랫동안 꿈꿔왔어요.이것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생명’과 ‘살의(殺意)’죠.내 첫 시집 ‘황톳길’에서 보듯 ‘뛰어올라오는 숭어’와 ‘가마니에서 죽어가는 아버지의 시체’,즉 생명과 죽음의 대비를 늘 생각했어요.이것이 현실에 대한 비평으로,부정으로 나타났죠.생명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이것은 죽음까지도 포함하는 어떤 전체변화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었어요.” 시인의 말씀은 깊은 숲 같아 갈래가 많고 걸리는 것도 많다.그 속을 호랑이 타고 달린다면? 다치지 않으려면 머리를 잔뜩 숙여야 하리라. “선생님의 삶에서 예지적인 면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런 삶을 가능케 한 근거를 찾아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글쎄,그건 꼭 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시를 쓰면서도 시인이 아닌 아웃사이더로 남고 싶었고,그러면서도 세상은 변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사람의 정신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시대야말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선생님께서는 젊은 세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무엇보다 ‘현실적 부정’입니다.그들은 자기들 삶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에 대해 선험적 사고에 익숙했던 우리나 우리 바로 아래 세대 사람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부정적입니다.뭘 보면 알 수 있느냐.정치나 경제에 대한 부정은 사항적 비판일 수 있지만 문화적 반항은 사항에 따른 게 아니라는 겁니다.지금 젊은이들은 문화적 반항 밑에 더 커다란 문명 단위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어요.그 불만을 가지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붉은 악마’라든가 ‘네티즌 선거’라든가 ‘촛불 시위’ 같은 것으로 빛나지 않나 싶습니다.내가 보기에 그들의 이 힘은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긍정이 광폭(廣幅)인 김지하 시인이다. “그렇다면 선생님 세대와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세대적 역할은 어떻게 비교하거나 대조할 수 있을까요?” “저는 4·19세대였음에도 불구하고 4·19의 혁명적 의미를 똑똑히 몰랐습니다.그러다가 5·16 뒤에 차츰 민족이라든가 민중이라든가 변혁이라든가 하는 개념에 눈뜨게 됩니다.그러면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리얼리즘과 함께 반리얼리즘적인 추상·환상·상상력의 측면을 강조한 사람들도 있었고 나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어요.나는 어떻게 하면 리얼리즘 안에 반사실과 환상을 이끌어들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했던 세대입니다.지금 젊은이들도 자기들 수백만 명이 거리에 나와서 외쳐대던 구호의 진짜 의미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생각해 봅니다.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습니다.글 쓰고 그림 그리고 강연을 통해서라도 젊은이들의 소명이 무엇이고, 그 사람들이 한 일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물꼬를 터야되는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지금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세계적이고 동시에 민족적입니다.아주 개인적이고 내면적이면서도 범생명계적인 성격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이런 모순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세대적 특질에 걸맞은 복합적인 역할과 내용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지혜 또는 슬기라면 어떤 것이 있겠는지요?” “첫째는 들뢰즈나 가타리,미셸 셰르 같은 선각자들이 이미 지적했던 것인데 현대,모던 월드의 가장 큰 질병으로 논리를 들고 있습니다.‘이것은 이것,저것은 저것’이라며 상호 배제하는 것,‘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다’라면 싸움이 시작되고 경쟁이 시작되겠지요.또 하나의 질병은 전쟁법입니다.나와 너는 싸울 수밖에 없고 싸워서 하나가 이김으로써 상호 통합을 한다.전쟁의 철학이죠.우리는 매일 평화를 원하고 안정된 삶과 우정과 휴머니즘과 생명계와의 화합을 원하면서도 그 매일의 생활 속에서는 전쟁 논리를 진행시키고 논리의 전쟁을 치러내는 겁니다.나는 전쟁법의 반만 긍정하고 다른 반은 부정하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지만 너는 나일 수 있고 나는 너일 수 있다.이게 뭡니까? 음(陰)과 양(陽)의 철학이죠.음이면서 양이고 양이면서 음인,그러면서도 양은 양이고 음은 음인 음양법 말입니다.철학적으로 더 들어가면 불교의 인식논리입니다.색(色)은 공(空)이 아니고 공은 색이 아니면서도 공은 색일 수 있고 색은 공일 수 있다.결국은 색공이 하나다.하나가 아니고 둘이 아니면서 하나도 둘도 될 수 있다는 것.묘한 이치에 도달하는 겁니다.여기서 또 숨은 차원과 드러난 차원을 생각해야합니다.드러난 차원은 가시적이고 진행 중이고,숨겨진 차원은 드러난 차원 밑에서 드러난 차원을 조절하고 진행시키고 수정하고 교정을 보다가 전혀 이것이 유지될 희망이 없을 때에는 이것을 와해시키면서 안에서 새로운 드러난 차원으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이게 뭘까요.생명이죠.생명의 논법이 ‘아니다’이면서 ‘그렇다’이고 ‘그렇다’이면서 ‘아니다’인 겁니다.이러한 인식은 다행히도 우리 민족의 근대에,1860년대에 유럽 쪽의 베르그송이나 생철학자들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나타났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이 부분에서 우리의 논리적인,새로운 변혁적 생활을,새로운 논리의 발견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일상적으로.말로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삶에 있어서는 늘 투쟁이나 경쟁,대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생각하면서 논리를 진행시키고 현실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는 김지하 시인의 거침없는 논리 개진에 언더라인(밑줄)을 긋는다.인터뷰를 떠나 이것은 매우 중요한 논리 전환인 까닭이다.내친 김에 더 ‘광폭(廣幅)’한 물음을 던져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우리는 공공성을 회복해야 합니다.남북의 통일에도 공공성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적 공공성과 우주적 공공성을 함께 회복해야 합니다.너무 작은 담론들에 얽매여 공공성을 무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또 자신만이 아니라 타자까지도 자기 안에집어넣는 것이 중요합니다.주체를 배제해버리고 타자화하는 유럽사상을 따라가지도 말고 주체를 회복하면서 우주적 주체가 되는 것,이것이 새로운 인간입니다.그것은 개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동학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서로가 서로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생명의 총체,정체성을 각자 자기 나름으로 실현하라.’고.‘밝고 밝은 이 우주를 각자 자기 나름대로 밝혀라.’고.이게 뭘까요.개인주의죠.그러나 그것은 개(個)이지 사(私)는 아닙니다.개와 사는 다른 겁니다.사는 그 뒤에 세모꼴 같은 것이 붙어 있죠? 이게 귀신에 붙어 있는 거예요.잡귀.인간의 정신 가운데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위해서 살려고 하는.” 오랜만에 거인을 만나는 귀한 시간을 놓치기 싫어 더 많은 것을 물었고 더 많은 말씀을 들었다.병마에 시달리는 ‘대선사’가 탈진에 이를 때까지 마구 괴롭혔다.그러나 그렇게 귀동냥한 모든 것을 여기에 쓸 수 없음이 안타깝다.이 나라에 또 누가 있어 그처럼 많은 궁리를 하고 세상의 내일을 이야기할까? 바로 김지하 시인 같은 이를 종요로운 존재라 이름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사진 이언탁기자 vielee@ 방교수가 본 시인 김지하 ●수척해진 어깨 위에 걸린 흰 달 지하는 지하라고 하지 말고 지하당(芝河堂)이라고 해야 하리라.평생 바람으로 살되 가는 곳이 집이다.바람이 바로 집이다.살아 움직이는 집이다.바로 그가 김지하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바라본 지하당의 낡은 서까래가 기울어졌다.어긋난 문짝 같은 옷을 걸친 지하당,구멍이 숭숭 뚫린 지하당의 야윈 몸채,두 시간 남짓에 배터리가 소진되고 마는 허한 기운.이것을 본 어느 누가 지하당의 과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인터뷰를 마치는데 회고록을 쓰느라 바싹 야윈 지하당의 어깨 위에 흰 달이 떠 있었다. 지하당의 후광은 낮달,희미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달이었다. ●김지하는 누구인가 1941년생으로 문명(文名)이 높은 분들이 많은 문학계지만 그 가운데서도 김지하는 거인이다.아니,괴물이다.희대의 풍운아다. 전라남도 목포 출생.1959년에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이후 그의 삶은 바람의 삶이었다.한·일회담 반대운동,그리고 저항시인.황토빛 한의 전달자,박정희 군사정권을 향한 조롱과 야유(풍자시 ‘五賊’).시집 ‘황톳길’과 함께 열린 김지하의 1970년대는 연행·석방·도피로 점철된 시대,부당한 체제에 맞서 처절한 싸움을 벌여나간 시대였다.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로 감형된 1974년부터 1980년까지 그는 옥중의 시인이었다.많은 이들이 그가 걸어간 길처럼 민주주의를 외치며 전두환 정권과 처절한 항전을 벌일 때 김지하는 황야를 건너 생명의 낙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을,광폭한 남성성이 아니라 섬세하고 여린 여성성을,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화회(和會)의 세계를. 그는 시대와의 불화를 감당해야 했다.시집 ‘애린’의 세계가 그것이다.1980년대였다.1990년대,그리고 지금,김지하는 또 다른 초극을,완성을 꿈꾼다.시집 ‘중심의 괴로움’은 내가 내 안에 갇히지 않고 우주와 호흡을 함께 하는 새로운 리듬과 조화의 세계를 노래한다.김지하는, 뜨거운 불꽃 김지하는 오늘,안으로 타오른다. 정지용으로부터 김수영을 지나 김지하로통하는 한국 현대시의 행로는 내부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성찰적인 것과 투쟁적인 것이 맞씨름을 벌이며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해간 운명의 길이었다.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2)김윤식

    ‘국문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 김윤식 선생을 뵙고 한국문학 연구의 현 단계를 묻기로 했다.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선생이 일생에 걸쳐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직분의 논리다.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밖에 할 수 없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그는 이렇게 말했다.“안일한 나날보다도 비통한 나날을,죽음 이외의 휴식은 없는 것이다.” “노예선의 벤허처럼 눈에 불을 켜야만 나는 사는 것이었다.” 인터뷰 때 찢어진 바랜 잡지를 가리키며 묻는 내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월평 쓰려고 준비하기 위해 갖고 다닌 거요.그 옆에 종이는 작품 읽고 메모해 놓은 거고.월평을 쓰려면 세 번 읽어야 된다고.한 번 읽고,쓸 때 다시 꺼내가지고 읽고,쓰고 난 다음에 대조해가면서 다시 읽고.그래야 돼.외국 갈 때는 잡지를 찢어가지고 가방에 넣어가.안 그러면 무거워서 많이 못 가져가니까.” 김윤식 선생을 만나러 가는 날은 몹시 긴장되었다.내게 무서운 선생님인 까닭이다.강의실에서 선생의 꾸짖는 소리를,고개를 숙이고 숨소리를 죽여 가며 들어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런 무서움에 앞서 선생은 제자들보다 더 일찍 연구실에 불을 켜놓는 부지런함 때문에,날마다 읽고 쓰는 놀라운 규칙성 때문에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딱딱한 안면,퉁명스러운 말씀을 떠올리며 용산 자택으로 찾아갔다.기어들어 갔다고나 해야 할까.예상 외로 강의실에서와는 달리 선생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래,어떻게 지내나?” “….” 선생이 건네는 말씀은 독백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다할 대답을 하지 않는다.간단한 ‘요식 절차’가 끝나자 인터뷰를 서두른다.여전히 긴장한 탓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책을 하나 써서 곧 나올 때가 되었어요.우리 세대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연구는 일제 강점기 문학이니까….정년 퇴임 후에 일제말기 한국 작가들이 일본어로 글 쓴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해 왔고….한 400페이지 되는 책으로 나올 것 같아요.” “내용이라면?” “유진오,김사량,이효석 이 세 사람이 일본말 창작을 자유롭게 했는데 이중에 이효석이 제일 정확하고 언어감각이 뛰어났어요.그냥 일본말로 바로 창작을 했지요.유진오도 대단히 정확했고 김사량은 그중 제일 서툴렀고….” “일제 말기 일본어 문학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말하자면 그들은 이중어 글쓰기를 했던 셈인데,한국의 근대문학이라고 했을 때 그 문학은 근대국가가 만든 말을 가지고 해야 하지 않겠소? 그게 국어지.그런데 우리는 국가가 망하고 없었으니 조선어학회 같은 곳이 국가 역할을 대행했어요.그런데 일제 말기에 국가를 대행하는 이것을 잡아 가둬 버리기 시작한 것이 1942년 10월이에요.33인을 잡아넣었어요.33인이라는 것은 삼일운동 때 33인,그걸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죠.그래서 그때부터 1945년 광복까지가 암흑기라는 것이오.1942년 10월까지는 조선근대문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없어요.그럼 작가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조선근대문학을 할 수 없으니까 그냥 문학을 하는 수밖에 없고 일본어로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한국근대문학의 고통스러운 운명이 느껴지는군요.” “근대문학이 뭐냐 하면,자본재 생산양식 또는 국민국가주의가 문학에 투영된 것이잖소? 그런데 우리는 근대국가를 만들면서 동시에 일제라는 제국주의와 싸워야 했단 말이에요.근대국가라는 것이 사실은 ‘제국주의’인데 ‘제국주의’가 제국주의와 싸워야 했던 거죠.이 특수성,자기모순,우리 근대문학은 근대문학으로서의 보편성 외에 이 특수성을 반영하는 문학이었어요.” “최근 들어 특수성 대신에 보편성,즉 식민성 대신에 근대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강하지 않습니까.” “지금 세계에 176개의 나라가 있지만 근대화하지 않은 나라는 아무데도 없어요.국민국가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고약한 것인가는 천하가 다 아는 거라고.우리만 사람이고 우리 아닌 사람은 다 짐승이고,그래서 잡아먹어도 괜찮다,카니발적인 거라고.카니발리즘.그러나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우리끼리는 잡아먹지 말자는 거죠.그러니까 지금 사람이 생각해낸 것 중에서 제일 고약하지만 합당한 원리는 이것밖에 없단 말이에요.” 이 대목에서 선생의 일생을 지탱해온 문학 근대주의자 면모를 새삼 재발견한다.그렇다면 문학 역시 특수성에 연연하기보다는 아직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이 되지 않으면 안될 터. “그렇다면 한국문학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내가 김현하고 문학 활동하던 그 세대에는,어땠냐면,어떻게 하면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어요.임화의 이식문학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걸 가지고 떠들고 했어요.자본주의가 우리 내부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하려고 했었고.그런데 요새는 어떠냐.안병직씨 이론이 더 맞다고 하잖소.조선은 근대화할 능력이 없었다,일본이 와서 근대를 이식했다는 거지요. 그러면 이식문학 극복하자고 떠들던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국민국가문학,이런 거 하는 것보다도,문학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이게 광복 직후에 김사량이 펼친 주장이잖소.이태준이 김사량 보고 너 일제시대 때 일본말로 글 쓰지 않았느냐 했더니,김사량이 뭐라고 했소.나 큰소리 안 친다 말이야,그러나 당신은 그럼 뭘 했는가.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나는 일본말로 썼든 뭐로 썼든 쓰지 않았느냐. 요즘 시점에서 보면 이 김사량의 입장이 뚜렷한 의미를 갖고 부상하는 것 같습니다.요즘 젊은 세대들은 6·25도 일본하고 전쟁한 거라고 보지 않아요? 이런 세대가 부각되고 있음을 사실로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어딘가 거북해진다.386세대의 일원인 나는 특수성에 목을 매고 살아온 까닭이다. 한편으로 보면 식민성이니 제국주의니 하는 특수성을 떨치고 세계화니 현대화니 하는 보편성을 향해 거침없는 진군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선생의 관심사를 한국문학이라는 특수성 쪽으로 환기시키려 해 본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한국근대문학의 특질은 무엇입니까.” “한국근대문학사를 공부해 오다 보니까 이게 일본근대문학사로부터 대단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지 않았겠소? 한국근대문학을 일본근대문학과 비교하면서 보는 시각은 한국근대문학만 보는 시각하고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지금 세계의 관심사가 언어와 문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국문학도가 살아남으려면 국문학만 해서는 안됩니다.한국근대문학사의 특질이다,뭐다,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은 어떻고 중국은 어떻다,하는 시각을 갖고 동북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문화틀 속에서 견주어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선생은 오히려 나를 선생의 시각 속으로 끌어 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현대문학은 세계문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수준에 와 있습니까.한국문학은 세계문학사상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까.” “언어나 문학이나 이제 단일성만 주장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이런 상태에 머물고 있는 나라는 아마 일본이나 한국 정도가 아닐까 해요.다른 문화권은 이미 단일성을 주장하지 않아요.우리만 한국어라는 단일한 전제를 갖고 한국어로 된 문학이 국민정서 전체를 버티고 있는 거죠. 그러나 한국문학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우리 문학이 늘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문학은 늘 인간은 벌레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어요.인간의 위엄에 어울리는 문학을 우리는 해왔단 말이에요.일제 때도 그렇고,광복 후 분단 문제와노사문제를 다룬 것도 그렇고.그런데 20세기 이후 21세기의 한국문학은 방향이 바뀌고 있어요.거꾸로 인간은 벌레라고 주장하고 있어요.인간은 벌레다,짐승이다,요녀다,물고기다.이런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요.이것이 한국문학의 단일한 정체성에 파열구를 내고 그 방향을 바꾸고 있어요.인간을 하나의 생물로 보는 커다란 상상력을 통해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에 곧바로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국적성의 해체 국면이군요.” “한글로 쓰든 영어로 쓰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DNA예요.DNA 문제예요.여기서는 한국이고 뭐고 세계가 다 똑같다는 거죠.”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문학의 미래는 어떠합니까.” “그렇다 해도 나는 여전히 하버마스 쪽을 지지하고 있어요.이성이 아무리 도구적인 이성이 되어 가지고 유태인을 죽이고 미사일 가지고 실험한다 하지만 창조하는 것도 이성이란 말이에요.인류는 어떻게 하든 간에 이성을 살려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내가 제일 많이 흔들린 때는 구소련이 무너졌을 때였어요.프랜시스후쿠야마가 역사가 끝났다고 하더군요.역사가 끝장났다면 인간은 그럼 뭐냐.나는 역시 이성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이성이 아무리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그것을 버리면 허무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죠.” 정년퇴임한 선생이 나이 어린 나보다 더 젊게 보이는 느낌을 막을 수 없었다.선생은 세계화라는 시대의 대세를 거침없이 받아들이며 또 다른 국면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생의 아파트를 빠져나올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예사 장맛비가 아니라 좍좍 내리 퍼붓는 소나기였다.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험한 비가,장대 같은 빗방울이 내 이마에 꽂히고 있었다.나 또한 매일 젊어져야 하리라.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평론가 김윤식 ●조선 향기 가득한 자택 겉모습만 보면 김윤식 선생은 서구식 멋쟁이다.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뒤로 잘 빗어 넘긴 머리칼은 지성을 상징한다.양복과 와이셔츠와 넥타이는 항상 세련된 조화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모던 보이’ 같은 외모와는 달리 뜻밖에 아파트는 전통미가 살아 숨쉰다.흔한 서구식 응접세트 대신에 자리를 깐 마룻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야 안성맞춤인 낮고 넓은 옻칠 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그 위에는 우리네 화병이 하나,흰 접시가 하나,접시 위에는 산수유 열매 몇 점. 한쪽 벽에는 백자며 분청사기가 정갈하게 놓여 있어 고전미를 자아내는데 방문은 모두 격자무늬다.선생의 서구식 외모와는 전혀 다른 ‘조선식’ 생리를 발견한 것이 더할 수 없이 반가웠다. 그런데 내외만 사는 그곳엔 먼지 한 점 찾을 수 없다.여인은 어디론지 나가고 없고 선생 혼자 지키는 대낮의 실내는 적막하기만 하다.선생은 국문학이라는 바다를 헤쳐나가는 고독한 항해자였다. ●문학 유목과 지적 여정 1936년생인 김윤식은 한국 현대소설 및 비평 연구 분야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자이자 현재 활동하고 있는 비평가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읽고 소화해 내는 현역 비평가다.한국전쟁 이래 한국 현대문학사의 뼈대를 만든 ‘살아 있는 역사’이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이래 숱한 연구와 저술활동을 벌여 100권을훨씬 상회하는 한국현대문학 관련 저서를 출간했으니,그로 인해 한국 현대문학 연구는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염상섭 연구’,‘김동인 연구’,‘김동리와 그의 시대’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가 연구는 젊은 국문학도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이외에도 ‘한국근대문예비평사’,‘한일문학의 관계 양상’ 등은 한국현대문학사를 일본문학과의 관계 속에서 검토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연구서다. 또 ‘황홀경의 사상’ ‘낯선 신을 찾아서’ 등의 예술·기행 산문집은 현대 산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 참여정부 첫 감사원장 누가 되나

    9월28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이종남 감사원장의 후임 감사원장 인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비정부기구(NGO) 출신 등 개혁성향의 인물이 우선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졌던 ‘감사원장=법관출신’이라는 등식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참여정부 들어 민변 출신인 강금실 법무장관과 고영구 국정원장,YMCA 출신인 이남주 부패방지위원장 등 주요 사정기관장에 NGO 출신이 등용된 것도 이같은 추측에 힘을 싣게 한다. 현재 후보로 강철규(58) 공정거래위원장과 전윤철(64·제주대 석좌교수) 전 경제 부총리,김정길(58) 전 행자부장관,이남주(65) 부패방지위원회 위원장,김병준(49)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강 위원장의 경우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와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부방위 위원장 등을 두루 경험했으며,전 전 부총리도 공정거래위원장과 기획예산처 장관 등을 거쳤다.이 위원장은 YMCA 사무총장 출신으로 지난 2000년부터 3년간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을 지냈고,김 위원장의 경우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출신으로 경실련에서 지방자치위원장으로 활동했다.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낸 박원순(47) 변호사와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낸 이석연(49) 변호사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조현석기자 hyun68@
  • ‘중국 행정법’ 연구발표회

    장명봉(張明奉·국민대 교수) 북한법연구회장은 한국법학교수회 북한법연구특별위원회와 함께 24일 오후 6시30분 서울 정동 ‘세실’에서 ‘중국 행정법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갖는다.
  • 기고 / 공공성 훼손하는 국가학벌이 문제

    얼마 전에 끝난,‘수평사회를 만들자’라는 기획의 제2부로 진행된 대한매일의 ‘학벌 타파’기획 연재기사를 빠지지 않고 읽어왔다.근래 사회에서 학벌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함에 따라 일시적으로 관심을 보인 언론은 있었으나,이번처럼 무려 넉달에 걸쳐 다각도에서 학벌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기획은 없었다.그러기에 이번 기획기사는 앞으로 우리사회의 학벌문제를 고민하는 정책담당자나 일반인에게 중요한 자료로 남을 것이다. 기획 측은 학벌을,우리 사회가 수평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억압하고 서열과 차별이 지배하는 수직사회요 닫힌 사회로 만드는 원인자라고 보았다.그리하여 학벌을 ‘현대판 골품제’라고 명명하였는 바,신라시대에 골품제로 인해 많은 능력있는 인재들이 사회발전에 참여하지 못하고 좌절함에 따라 통일신라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자는 강한 호소력을 담고 있다고 보인다. 아울러 18회에 걸친 연재에서 학벌의 실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취재한 것으로 시작하여,학벌문화의 정점으로 거론되는 서울대의 문제를과감하게 파헤쳤으며,일본과 유럽 등지의 해외취재를 통해 보다 넓은 시각에서 우리 모습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광범위한 취재를 바탕으로 하여 학벌타파의 해법이 무엇인지를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가며 모색하여 보았으나,학벌문제가 워낙 난마처럼 얽힌 문제라 어디서부터 손을 써나가야 할지 뚜렷한 방향을 보여주지는 못한 듯하다.오히려 이러한 기획이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심도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대안 모색에 있어서는 크게 두가지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하나는 ‘학벌 타파’라는 구호 자체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의구심이다.그들은 이러한 구호에 대해 인위적인 평준화,실력보다는 자리 나눠먹기 등을 말하는가라고 되묻는다.나아가 학벌은 우리 현실에서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능력의 지표이며,학벌에 서열이 있고 그에 따라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기도 한다.그러기에 학벌타파가 어떤 ‘인위적’인 간섭의 빌미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러나 현재의 학벌구조는 그 자체가 매우 인위적인 것이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경쟁질서의 형성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기획기사가 학벌문화의 정점으로 서울대 문제를 자세히 다루었는데,바로 국립 서울대가 학벌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인위적인 것이다.그것은 국가가 국립중앙대학으로서 특별히 지원하여 일종의 국가 엘리트 양성소로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시키기 때문인 것이다.이것은 자연스레 대학간에 공정한 경쟁질서와 그것이 가져오는 창의와 역동성을 억압하게 되어 고착된 대학 서열구조가 형성되고 이것이 학벌문제의 핵심인 것이다.우리가 심각하게 문제삼는 학벌은 단순한 동창회 문화가 아니라,마치 구소련의 노멘클라투라와 같이 국가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국가를 사유화하는 국가학벌의 횡포이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방향은 학벌문제에 대한 근본주의적이고 사회공학적인 접근이다.교육공화주의,대학의 평준화,대학별 인재할당제 등을 내세우는 일련의 흐름이 있다.이들은 학벌문제는 궁극적으로 고등교육이 시장의 영역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모든 불평등이 생긴다며,대학교육을 전면적으로 국가관리체제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대한민국을 새로이 건국하지 않는 한 이러한 주장이 우리 사회의 동의를 얻으리라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학벌로 인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에 의하여,학벌에 대한 문제제기가 마치 대중주의적이고 평등지상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는 데 이용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마침 참여정부에서도 학벌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의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합동기획단을 발족시킨다고 한다.그러나 학벌문제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없이 단순히 지엽적이고 결과적인 현상을 수정하고자 한다면 어색하고 인위적인 정책들만이 나올 것이고 그 실효성도 크지 못할 것이다. 김동훈 국민대 법대학장
  • 창간99주년 특집2 - 지방분권시대 / 김병준 지방분권위원장·최병대 교수 좌담

    이제는 분권이다.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자치’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지역간 사회경제적 격차,중앙의 권한집중 등 각종 문제점은 여전하다.이의 원인으로는 재정과 권한의 부여 없는 자치제의 한계 탓이라는 지적이 크다.따라서 중앙이 쥐고 있는 재정과 권한의 지방이양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나아가 이참에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위해 관련 틀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게 일고 있다.대한매일은 이에 따라 지방분권의 추진이유와 내용,행정수도 이전 논의,외국의 경험 등을 다각도로 조명한다.먼저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과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를 초청,이목희 정치부장의 사회로 좌담회를 갖고 지방분권의 의미와 추진전략 등을 알아본다. 김병준 지방분권위원장 ▲경북 고령(49) ▲영남대 ▲미국 델라웨어대 박사 ▲국민대 교수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 간사 최병대 한양대교수 ▲경북 경산(50) ▲한양대 ▲미국 에크론대 박사 ▲서울시 정책기획관 ▲한국도시행정학회 이사 ●사회정부가 얼마전 발표한 ‘지방분권 로드맵’에 대해 추진 주체가 없고 시기도 장기간 잡혀 있어 과연 추진 의지가 있느냐는 반응이 있다. ●김 위원장 추진 의지가 있는 정도가 아니다.나도 감당할 수 없는 정도다.97년 당시 국고보조금을 통폐합하면서 550억원을 잘라냈다.지금 국고보조 규모가 11조원이 넘는데 이번에 아마 조단위로 잘라내게 될 것이다.대한매일이 6조원으로 보도하지 않았나.6조원이면 혁명이다.지난 2일부터 작업에 들어가 이미 확정된 것만 3500억원이다.기본 목표는 국고보조만 올해 말까지 통폐합 완료이다. ●사회 역대 정권과 이번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추진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최 교수 지방분권 작업은 91년 총무처에서 출발했다.내가 총무처 지방이양 합동심의회를 만들어 98년까지 하면서 2000여건을 이양,규모만 보면 실적이 있었다.그러나 대부분 지방에서 요구하는 기능이 아니라 중앙부처 공무원이 선별해 주다 보니까 영양가 있는 걸 줄 수가 없었다.단편적이고 산발적으로,이름은 좋지만 결과는 미흡했다. ●김 위원장 과연될까 회의적인 사람들을 이해한다.국회의원을 비롯해 지방분권보다 중앙집권의 득을 보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권력이라는 게 잡기 전과 잡고 나서가 다르다.강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갖는 게 국정운영에 편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엔 다르다.우선 대통령을 비롯해 주변의 국정운영자들이 진짜 분권론자들이다.국민의 정부 때는 대통령이 분권론자이지만 다른 한편 정치적인 목표와 연계돼 있었다.지금은 원천적으로 대통령 자신이 분권론자이다.분권이 되지 않고서는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고 믿고 있다.옛날에 잘 안된 이유는 중앙공무원에게 무조건 이양하라 했기 때문이다.지금 참여정부의 방법은 반대다.중앙정부가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을 찾아내 주는 것이다. ●최 교수 성공 요건은 두 가지다.첫째 대통령이 국민들과 약속했으니 법제화시켜야 한다.용두사미로 안 끝나려면 시종일관 그 마인드로 계속해야 한다.둘째 국민들과 호흡이 맞아야 한다.일방적이 아닌 상호이해와 협력이 돼야 한다.가다가 어느 순간 대충 됐다고 한발 빼면 그때부터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김 위원장 로드맵을 내놓은 것도 국민과의 약속이고,이대로 따라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원칙적 입장이지만 부처간 타협을 거쳐야 하고 시민사회와 학계의 협력도 구해야 한다.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의 지원 약속을 받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참여정부의 기본 분권전략은 ‘선(先)분권-후(後)보완’인데 적지않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지역사회에 대한 시민통제가 약한 상황에서 상당 기간 단체장한테 권한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이러다 보면 국민들로부터 ‘지방분권하다 나라 망하겠다.’는 소리가 나올 텐데 그게 제일 겁나는 거다.그래도 무조건 선분권해야 한다. ●최 교수 기왕지사 약속이니까 최소한 매년 두 차례 이 공정표를 따라 항상 투명하게 오픈시켜 달라.지금 계획은 어디까지 왔고 안된 부분은 뭐고 걸림돌은 없는지…. ●사회 다음 정권에서 후퇴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김 위원장 돌이킬 수 없는 물줄기를 만들어야겠다.아,이것은 역사적 물결이구나 몸에 와 닿도록 해야한다.시간은 5년밖에 없는데 일단 가는 데까지 가서 국민들이 지방분권을 괜찮게 여기는 분위기만 생기면 다음 정권은 그르칠 수 없을 것이다.대통령은 가능하면 내년 말로 잡힌 신행정수도 입지 선정도 앞당기라는 입장이다. ●사회 행정수도 이전은 정말 하는 건지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한다. ●김 위원장 안 할 수가 없다.수도권 인구가 얼마인가.지금 세계는 한국과 중국의 경쟁이 아니다.지역과 지역 간의 경쟁이다.수도권이 상하이와 싱가포르,도쿄와 경쟁한다.집값이 자꾸 올라가면 어느 순간 완전히 폭락하는 때가 오는데 그러면 국가 멸망이다. ●최 교수 신행정수도 정책이 성공하려면 다음에 인계받는 사람이 계속 해줘야 한다.5년까지 가다 중단되면 국가적 분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서울 인구는 92년을 정점으로 안 느는데 수도권이 불어나고 있다.또 강남 집값을 수도이전의 이유로 드는데 지금 강남 집값 앙등은 세금제도 등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그 속성을 들여다보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평택 소재 대학교수가 거기선 전세를 살고 집은 서울에 두는데 왜 그러겠나. ●김 위원장 권력에 돈이 간다는 핸더슨의 가설이 있다.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은 행정과 정치권력이다.일단 떼놓으면 여러가지 완화요소가 작용할 것이다. ●사회 서울은 뉴욕처럼,행정수도는 워싱턴처럼 한다는데 미국과 비교할 수 있나.서구식 ‘캐피털’ 개념과는 달라서 남다른 교육열이나 한양에 살아야 한다는 유교적 정서가 뿌리깊어 권력자들이 사는 곳에 다시 명문고,명문대가 생기는 것 아닌가. ●김 위원장 그러기엔 서울의 흡인요소도 여전히 강하다.지방분권화와 시장자율 정책을 같이 밀고 나가면 대기업이 대통령과 장관이 있는 곳에 꼭 가야 할 이유가 없다. ●최 교수 수도가 대전 인근으로 가면 자칫 수도권이 더 확장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속전철이 생기면 1시간 교통권에 든다.대전에 가 있는 11개 외청을 조사해 보니 가족 전체가 이동한 경우는 30%에 불과했다.따라서 정부 기능이 한데 몰려 시너지 효과가 없는 것은 다른 지방으로 갖다 놓는 것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김 위원장 정부투자기관의 지방분산 계획이 있다.예를 들어 국토연구원의 경우 “우리한테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지자체가 있으면 옥션(입찰) 방식에 부치는 거다.지자체들이 서로 자기들한테 오면 땅도 주고 집도 지어주고 종업원들 교육도 지원해 주겠다고 경쟁하는 것이다.정부 부처는 상호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이지만 투자기관은 흩어질 수 있다. ●사회 지방분권을 위한 지방대 인재 육성 방안은. ●김 위원장 과거에는 산업체를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공단을 짓고 세제혜택을 주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 이 개발 방식은 통용되지 않는다.지역 인재가 그 지역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지방대를 하나의 지역성장 거점으로 잡아 중점 투자해야 한다. 정리 김상연 박정경기자 carlos@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 최인훈

    최인훈이라는 한 사람의 작가 속에 20세기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이 거울처럼 담겨 있다.젊은 날의 최인훈을 사로잡은 고독이란 식민,분단,전쟁,냉전으로 얼룩진 20세기 한국인의 초상이 아니고 무엇이랴.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장강처럼 펼쳐간 사유의 대기록인 ‘화두’는 비극적인 운명을 초극하려는 노대가(老大家)의 몸부림이 아니었던가.이 시대를 묻기 위해서는,밤길처럼 어둡고 동물원처럼 혼탁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안녕하십니까?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읽고 쓰는 일 외에 별로 분주하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1980년 광주 특집 방송과 탈북자 관련 프로그램을 봤습니다.책보다 생생한 역사와 삶의 현장이 담겨있었는데 남과 북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지금은 한민족이 과거를 딛고 새 시대로 가는 전환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역작 ‘화두’(1994)는 바로 그와 같은 한민족 내지 한반도의 운명과 20세기말의 세계사적 변화에 대해 가장 넓고 깊게 사색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두’는 냉전의 종식,소련 체제의 붕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었죠.20세기에 훌륭한 예술가·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만 불행하게도 20세기 말까지 생존한 분들은 적습니다.저는 20세기를 넘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각을 얻은 행운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들어 세계는 심각한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선생님께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현재의 제 감각으로는,세계는 지금 19세기적인 국제 정치 환경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저는 이것을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결과를 생각해 볼 때 20세기는 상당히 괜찮은 세기였다고 생각합니다.그 시대에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자기 존재에 대해서 높이 존경하고 그 존경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문명사는 인간에게 분수를 알라고 가르치지만 겸손이 지나칠 필요는 없습니다.20세기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존의 우상이나 정해진 틀을 대담하게 넘어서려는 운동을 전지구적으로 전개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바라고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환경,거꾸로 우리가 그런 대로 해결하면서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과거 상황으로 되돌아와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사태를 보면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에도 미국과 아랍 문명권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습니다.이 현상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은 20세기 내내 성공적으로 자기 이미지를 관리했습니다.물론 많은 비판이 있었고 미국이 뼈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견해가 방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라 지구상의 소박한 민중들 눈에 비친 미국은 훌륭한 나라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은 그런 이미지를 단번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 항공모함으로서만 살 수 없고 미사일만으로서 세계를 만만하게 요리할 수도 없습니다.내가 아까 19세기 운운했지만 형국이 그렇다는 것이지 지구상에 현존하고 있는 민중들의 정치의식이 19세기로 되돌아간 것은 아닙니다.세계 민중의 의식은 21세기에 와 있습니다.이런 시대에 지금까지 국제 질서의 주역을 맡았던 미국이 이처럼 퇴행적인 행위를 보여준다는 것은 심각히 우려되는 일입니다.당장 우리 반도 남북의 거주자들한테 염려스러운 문제입니다. 북한 핵 문제 등 남북한을 둘러싼 세계사적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한반도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의 현장이라고 합니다.이 어려운 시대를 한국인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지난 20세기는 우리 반도 거주자들이 한반도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이래 최악의 세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세기 전반에 국가 전체가 일제에 의해서 강제 납치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우리 역사에 이처럼 완전히 권리를 제약당한 적은 없었습니다.그런가 하면 20세기의 후반기에 우리는 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를 견뎌 왔어요.한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어느 의미에서는 새로운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평화입니다.평화는 우리 전부의,최대의,인간으로서의 희망 사항이고복지라고 생각합니다.이것이 있어야 이런저런 설계도 할 수 있습니다.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비극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50년 전,100년 전보다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50년 전,100년 전 사람들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미래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오늘의 동북아시아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습니까? -과거에 문명사적 기대를 한 몸에 안았던 구소련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은 러시아권·슬라브권이 인류사적 의미의 문명의 축적을 이루지 못했던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은 러시아가 갖지 못한 인류사적 문명의 전통이 있습니다.그들은 난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그들이 제공하는 방향은 그들 자신은 물론 우리 같은 이웃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일본은 중국과 다릅니다.일본은 20세기의 문명사에 커다란 오류를 범했습니다.그러면서도 명쾌한 과거반성이 없습니다.이러한 일본의 존재로 인해 동북아시아는 유럽과 상당한 격차를 가질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들 또한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일원입니다.앞으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유럽에 비견될 만한 공동체적인 지역 환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과정을 보면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두드러졌습니다.새롭고 젊은 세대의 구성원들을 위하여 당부의 말씀을 남겨 주시지요. -그들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그들을 견제할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자제하라느니 자기 검열을 하라느니 하는 말은 노파심의 소산입니다.선거가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가선 안 된다,판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말려야 하는 웃지 못할 시대를 우리는 지나왔습니다.바로 어제까지 그러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야 합니다.소신이 있다면 책임지고 갈 때까지 가라는 이야기지요.갈 때까지 가고 결과는 본인들이 책임지라는 거지요.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하는 것은,험한 역사를 본 세대의 입장에서는 감히 뭔가 앞질러서 다 지혜롭게 꿰뚫어 보고서 충고를할 만한 저축이 없습니다.새로운 세대에게 한 번 기대를 걸어 봅시다. ■방민호가 본 작가 최인훈 ●최인훈 선생 만나는 날 ‘북(北)에는 최인훈이요 남(南)에는 박경리다.’.함경북도 회령은 반도의 북쪽 끝,경상남도 통영은 남쪽 끝이 아니던가.그러니 먼저 최인훈을 찾아 가리라.나는 이 막막한 시대를 헤쳐 나갈 지팡이를 얻기 위한 제일(第一) 행선지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최인훈 선생의 자택으로 정했다. 그를 만나는 길은 멀었다.선생은 여러 겹 문을 가진 성(城)처럼 깊은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처음 본 선생은 셔츠를 맨 위 단추까지 꼭 채워서 입고 있었다.그것이 내게는 선생의 작가적 성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여러 번에 걸쳐 ‘광장’을 고쳐 쓴 선생은 완벽주의자다. ●최인훈의 문학세계 1936년에 국경도시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을 거쳐 전쟁 중에 해군함정을 타고 월남한 가족의 한 사람,최인훈.부산과 목포 등지를 떠돌다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했지만 그는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대형 작가임을 증명해준 ‘광장’(1961)과 ‘회색인’(1964)의 주인공들은 깊은 고독에 빠져 있다.극단적인 냉전의 시대에 남과 북을 모두 상대화시키고 절대적인 고독의 경지를 개척한 그들의 내성(內省)은 바로 최인훈 자신의 것이었으리라. 그의 문학을 새로운 차원에 진입시킨 것은 1973년부터 76년까지 계속된 미국 체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새로운 생각들이었다.그는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은 어떠하며 한국문학의 길은 무엇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희곡과 소설을 시도해 간다. 1994년에 간행된 ‘화두’는 20세기 한국사를 그 자신의 삶 속에 응축시켜 기억과 회상의 형식으로 풀어낸 대작이다. 이를 통해서 그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와 한국인의 독특한 존재 의미를 건져내 보여주었다.이는 실로 오랜 세월에 걸친 탐색의 결과였다. ■방민호 교수는 문학 지성과의 인터뷰를 맡은 방민호 국민대 교수는 문단의 주목받는 신진 문학비평가로서 6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다.94년 ‘현실을 바라보는 세개의 논리’로 제1회 창비신인평론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서’,‘납함 아래의 침묵’,산문집 ‘명주’,산문선집 ‘모던 수필’을 펴냈다.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문학지성들의 진단과 예언

    대한매일은 창간 99주년을 맞아 다양한 시리즈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먼저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라는 제목으로 문학 지성인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마련합니다.‘혼돈과 격변의 시대,한반도와 한국인은 어디에 와 있으며 미래는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까.’라는 담론을 놓고,시대정신을 온몸으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해답을 구합니다.문학평론가인 방민호(38·국문과)국민대교수가 주 1회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 줄 것입니다.지면에 등장할 문학 지성인들의 면면과 대화의 주제(가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최인훈> 냉전 해체 후 세계사의 전개와 한반도 ●김윤식 한국문학 100년과 한국문학의 향방 ●현기영 남북한에서의 민주주의와 통일의 현단계 ●조동일 한국의 학문,학문의 탈(脫)식민화를 위하여 ●이청준 문학의 본원적인 기능을 회복하자 ●김지하 새로운 시대,새로운 세대,새로운 시 ●이어령 세계사의 새로운 조류와 한국 지성인의 활로 ●김우창 격변기 지성의 의미와 기능 ●신경림 새로운 국가독점과 민중의 새로운 발견 ●박경리물질문명 시대,생명의 가치 회복 대한매일은 중국 대륙에 휘몰아치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다루는 기획 ‘中國 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시리즈와,‘수평사회를 만들자’캠페인의 제3부인 ‘경찰과 시민’시리즈도 시작합니다.
  • 靑, 정치개혁 국민토론 추진

    청와대는 17일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정치자금 문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정치개혁 구상을 뒷받침하는 후속 프로그램으로 국민대토론회 개최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한 제도개혁 등의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및 국민검증’ 제안을 포함한 정치개혁 메시지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후속 조치 ‘보고서’를 작성,문희상 비서실장 등 고위 참모진이 회람하고 세부 추진방안을 다듬어 나가기로 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8·15특사 일반형사범 대거 포함… 대상·폭 협의/ 징계공무원 사면 적극 검토

    정부는 8·15광복 58주년을 맞아 국민대화합 차원에서 일반 형사사범에 대한 특별사면 조치를 하기로 하고 사면 대상과 폭을 검토중이다. 징계 공무원에 대한 사면도 적극 검토중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3일 “8·15 특사를 위한 구체적인 대상 선정을 놓고 법무부와 협의중”이라면서 “이번에는 일반사범이 주 대상”이라고 말했다.그는 “하지만 부정과 비리사범은 제외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4월에는 공안·노동사범을 중심으로 참여정부 출범 이래 첫 특사를 단행했다.하지만 일반형사범의 경우 대상선정 등에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 8·15 특사는 일반형사범 가운데 모범수들과 사상범이든 비사상범이든 장기 복역으로 고통받는 장기복역수 등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특사대상자는 1만명 정도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법무부와 특사 대상 선정의 원칙을 정해 규모를 최종 확정키로 하고 실무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특사규모에 따라 사면권 남용 시비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보고,규모를 정하는 데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곽태헌기자 tiger@
  • 여중생 촛불기념비 훼손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두 여중생 사망 1주년을 기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인도에 세워진 ‘자주평화 촛불기념비’가 훼손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사진). 촛불기념비는 11일 오전 2시쯤 하단의 대리석 받침과 분리돼 각각 평화와 자주를 나타내는 ‘비둘기’와 ‘촛불’ 모양의 상징물이 세 동강이 난 채 발견됐다. 관할 종로경찰서는 “기념비가 있는 장소가 심야에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라 주변 탐문 등을 통해 고의로 훼손한 사람이 있는지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는 이날 오후 교보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념비 훼손을 규탄하고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범대위는 “상징물이 훼손된 상태를 볼 때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최소한 3명 이상의 사람이 둔기로 이같은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며 진상위원회를 조직,12일부터 교보빌딩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구혜영기자 koohy@
  • 원로여행가 김찬삼씨 영면의 세계로…/ 향년 77세 숙환으로… 세계 160개국 누벼

    원로 여행가 김찬삼(金燦三) 전 세종대 교수가 2일 밤 11시40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77세.세계에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평생 동안 세계일주 3차례를 포함해 20여 차례에 걸쳐 지구촌을 누벼온 김씨는 지난 98년 중국 여행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뒤 지병인 당뇨병과 후두암 치료를 받아왔다. 40여년간 그가 찾은 나라는 160여개국,도시는 1000여곳에 이른다.여행 거리로만 따질 때 지구를 32바퀴 돈 셈이며 여행에 바친 시간만 14년에 이른다.92년 67세의 나이로 실크로드·서남아시아·유럽을 잇는 7만 3000㎞의 대장정에 나섰다가,열차 사고로 머리를 다쳐 언어장애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끝없는 동경심은 김씨로 하여금 천직으로 여겼던 고등학교 교사직마저 접게 만들었다.사람들은 그를 ‘기인’이라고 불렀다.“어릴 적 내 꿈은 김찬삼 아저씨처럼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었다는 인형작가 이승은씨의 말처럼 그는 그 시절 모든 어린이들의 ‘우상’이기도 했다. 73년 세종대의 전신인 수도여자사범대의 교수가 되기까지 김씨는 3차례나 세계를 일주했다.김씨가 세계 각국을 돌아보고 여행경험을 담아 80년대까지 연이어 펴낸 ‘김찬삼의 세계여행’은 자유롭게 외국에 나가지 못하던 시절,지금은 중장년층이 된 60∼70년대의 청소년들에게 해외여행에 대한 꿈을 심어준 책이었다. 어떤 이는 ‘남루하고 고달픈’ 현실 세계로부터의 탈출구라고 표현했다.안경환 서울대 법대학장은 “우리는 텔레비전도 없던 60년대초 원시와 밀림을 책상 앞에 가져다 준 ‘김찬삼의 아프리카여행기’에 기꺼이 알사탕을 포기했던 세대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여행길에 동행했던 김씨의 한 지인은 “평생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구욕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한국의 이븐 바투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고 회고했다.유족으로는 김장섭 세계여행문화원 부원장과 국민대 교수인 기라씨 등 1남6녀가 있으며 김상진 ㈜남주개발 상무와 노석재 한림대 교수,백찬욱 영남대 교수가 사위다.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5일 오전 5시30분 서울 혜화동 성당 (02)760-2011. 이세영기자 sylee@
  • 오피니언 중계석/ 盧정부의 개혁과 사회통합

    고려대 김호진 교수는 30일 민족통합개혁연대 주관으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민대토론회에서 ‘노무현 정부의 개혁과 사회통합’이란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개혁의 성공 조건 개혁에는 언제나 비판과 저항이 따른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고,특히 잃을 것이 많은 기득권층은 개혁을 자기들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가. 첫째,개혁정책의 패러다임과 브랜드를 선명하게 부각시켜야 한다.노무현 정부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비전과 추진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개혁담론을 논리정연하게 다듬어 내야 한다.물론 시대변화와 역사성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개혁의 무게중심을 가치창조에 두어야 한다.김영삼 정부가 개혁에 실패하고 경제 환란을 초래한 것은 파괴적인 과거청산에 너무 치중했기 때문이다.노무현 정부는 창조지향적인 개혁에 역점을 둬야 한다.과거를 부수는 게 개혁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 개혁인 것이다.셋째,실사구시의 관점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정부가 개혁목표로 내세운 평화와 번영은 너무 멀리 느껴지고 동북아경제중심론은 구체성이 없다.또 국가개조론은 너무 담대하고 자칫하면 제2건국처럼 정치쟁점으로 비화될 우려가 있다.이런 점에서 개혁은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하며 누구나 수긍하는 시대적 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넷째,개혁적 리더십과 통합적 리더십을 병행해야 한다.개혁 마인드가 강한 인사를 기용한다거나 각 부처에 업무혁신팀을 만드는 것이 개혁적 리더십이라면,지역과 이념,성과 연령을 초월하여 필요한 인재를 기용하는 것은 통합적 리더십이다. 다섯째,시행착오를 극소화시켜야 한다.국가경영의 암적 요소는 낭비다.시행착오에 수반되는 국정에너지의 낭비는 더 큰 문제다.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5년이라지만 시스템 안정과 정책구상을 위한 준비기간 1년과 임기 마지막 1년을 빼면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년밖에 되지 않는다. 여섯째,선택과 집중이다.일에 과욕을 부려 너무 많이 벌이면 아무 일도 못 한다.꼭 해야 할 몇 가지만 선택해서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교육정책을 예로 든다면 NEIS갈등 해결과 공동체 복원,공교육 살리기와 사교육비 줄이기,대입제도의 선진화와 대학의 경쟁력강화만 제대로 해도 성공적이다. 일곱째,갈등조정과 사회통합이 성공의 디딤돌이다.노사갈등 해소와 협력이 중요한 과제이다.만약 이에 실패한다면 개혁도 경제도,삶의 질도 수포가 된다.2002년도 우리나라 노사관계 경쟁력이 조사 대상국 49개 국가 중에서 47위를 기록하고 있다.분규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는 조사대상국 30개 중에서 30위로 최하위를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가능성과 한계 노무현 대통령 리더십의 장점으로는 절차적 정당성이 강하다는 점과 탈권위주의,승부사형,지지세력의 강한 연대성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면 정서적 정당성이 취약하다는 점은 약점이다.아직도 일부 수구세력과 영남정서는 노 대통령을 ‘절반의 대통령’이라고 부른다.또 일부 언론과의 관계가 비우호적인 점과 여소야대 구조 등도 한계로 꼽힌다. 이럴 때는 비판과 저항이 심한 분열성 정책보다는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통합성 정책을 선택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노 대통령이 임기중에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연다면 역사에 남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이게 경제 환란을 겪은 국민들이 한강의 기적을 다시 연출하고 싶어하면서 갖고 있는 일종의 보상심리다.노 대통령은 이 점을 감안해 경제 리더십에 승부를 거는 CEO로 변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정시스템의 효율적 가동은 필수적이다.이것을 뒷받침하는 게 책임경영체제이다.부서장에게 자율을 주되 국정성과를 내지 못하면 철저히 책임을 묻는 게 곧 책임경영체계다. 또 언론과의 대외적 긴장보다는 시스템을 역동적으로 작동시키는 대내적 긴장이 더 시급한 문제다.이것이 전제돼야 개혁과 동북아중심구상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정리 조승진기자 redtrain@
  • [녹색공간] 우리가 숲을 찾는 이유

    주변이 번잡스럽거나 소란스러우면 뒷산 숲을 찾는다.숲에는 고요함이 있고 침묵을 지킬 수 있다.소음과 번잡스러움은 산업문명의 틀 속에서 사는 도시인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그러나 이런 숙명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도 가끔씩 침묵과 적막함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침묵하는 일은 내적인 고요를 연습하는 길이다.적막함을 경험하는 일은 고독을 맛보는 길이다.그래서 사람은 가끔씩 조용한 장소를 본능적으로 찾는지도 모른다. 숲을 찾는 동안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다.따라서 숲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필요 없다.숲에서 갖는 이런 침묵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잊고 있던 거리낌 없는 마음의 자유를 되살려 낸다.우리들은 제 자신과 대면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지만,숲에서는 잊고 지내던 제 자신을 이처럼 자연스럽게 만난다. 그러나 숲은 아무런 노력 없이 그냥 다가갈 수 없다.자연의 충만함과 원기를 느끼고자 한다면 자연의 운행 질서에 순응하면서 두발로 걸어야 하며,때때로 가쁜 숨과 땀방울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런 속성 때문에 숲은 질주의 마법을 깨뜨릴 수 있는 아름다운 장애물로 여겨진다.따라서 숲은 광속의 시대에 느림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숲을 찾으면서 얻은 또 하나의 깨달음은 숲이 비움의 공간이라는 사실이다.어느 날 매번 다니던 뒷산 숲길이 지루하여 새로운 숲길로 내려오다가 소나무들이 옹기종기 자라고 있는 한적한 장소를 만났다.소나무들로 둘러싸인 그곳은 우선 조용했다.가끔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나 새소리도 들렸지만 소음은 아니었다.땀도 식힐 겸해서 솔가리 위에 다리를 펴고 꽤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아무런 행위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는 기분은 새로운 경험이었다.읽어야 할 책도,만나야 할 사람도,해야 할 이야기도,봐야 할 뉴스도,들어야 할 음악도 없이 그저 자연 속에 자신을 멍하니 놓아두었을 때 느끼는 그 자유로움,그 한적함,그 편안함을 잊을 수 없다.그렇다.숲은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꽉 찬 머리를 비워서 빈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영묘한 공간이다. 숲을 찾는 묘미는 바로 이런 ‘느림과 비움’의 여유를 갖는 데있다.느림과 비움의 여유 속에 침잠해 보는 즐거움은 숲을 찾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이다. 숲은 누구에게나 이런 자유를 공평하게 안겨주지만,숨가쁜 우리네 일상은 그걸 옳게 담질 못한다.효율과 속도와 진보에 대한 맹신만 접어두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도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숲의 사회적 효과는 ‘환경행동학’ 또는 ‘녹색심리학’이라는 영역으로 오늘날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숲이 공동체를 결속시키며,업무 및 학습 능률을 향상시키고,애사심이나 애교심을 발휘하게 만들며,현대병인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살아 있는 병원 역할을 한다고 밝혀지고 있다.따라서 녹색으로 대표되는 숲은 인간 유전자에 박혀 있는 자연생명 친화본능을 일깨우는 자극제라고 할 수 있다.500만년 동안 숲과 함께해온 인류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우리들이 숲을 통해서 ‘느림과 비움’을 읽어내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숲을 찾는 데는 거창한 절차가 필요 없다.꽉 찬 머리를 적당히 비울 수 있는 정신적 자세와 오관을 활짝 열 정서적 여유만 있다면 언제든지 훌쩍 나설 수 있는 곳이 숲이며,그 대상은 바로 우리 주변의 숲이다. 전 영 우 국민대 교수 산림자원학
  • 서울 6차동시분양 실수요자에 호기

    서울 아파트 6차 동시분양이 다음달 3일 실시된다.이번에는 17개 단지 2980가구 가운데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1925가구가 일반분양된다. 이번 동시분양 아파트는 블루칩보다는 실수요자용이 많은 편이다.실제로 강남권 아파트는 한곳에 불과하고 대단지도 거의 없다.게다가 5·23조치로 분양권 전매가 전면 금지돼 청약경쟁률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미분양도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앞으로 대단지 및 유망아파트들이 제법 나올 전망”이라며 “청약을 서두르기 보다는 분양가 등을 잘 살펴본 뒤 청약하라.”고 조언했다. ●신정동 동일토건 신정동 771의21에 들어서는 770가구 단지로 전량 일반분양된다.2호선 양천구청역과 신정네거리역이 마을버스로 5분거리이다. 인근에 신월 인터체인지와 경인고속도로,남부순환로가 있으며 단지 주변에 수명산과 서부화물트럭터미널이 있다.신남초등,강신중,금옥여중·고,백암고,양천고교 등이 있다. ●청암동 LG건설 170가구 단지로 전량 일반분양된다.지하철 5호선 마포역이 걸어서 5∼10분 거리이고 단지가 원효로와 인접해 있다.전가구 남향배치된다.일부 한강조망도 가능하다. 원효초등,마포초등,성심여고 등이 인근에 있으며 주변의 강변한신코아,전자랜드,성모병원,한강성심병원,효창공원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방배동 한진중공업 방배동 1482 일대의 단독과 다가구 주택을 재건축하는 아파트로 모두 84가구이며 이중 조합원분을 제외한 46가구가 일반분양된다.지하철 7호선과 4호선 환승역인 이수역이 걸어서 5분 남짓 걸린다. 동작대로,사당로,남부순환로 등을 이용할 수 있다.단지 주변에 방배초등,서문여중·고,경문고교 등이 있다. ●평창동 벽산건설 그린빌라를 재건축하는 아파트로 79가구 가운데 27가구가 일반분양된다.북한산 아래 자리하고 있어 자연경관이 뛰어나다.세검정길과 내부순환로를 이용할 수 있다. 상명대부속중·여고교,국민대,상명대 등이 주변에 있고 북한산국립공원이 인근에 있어 주거환경이 쾌적한 편이다. ●남가좌동 쌍용건설 서대문구 남가좌동 214의65 일대 지역주택조합아파트로 모두 110가구 가운데 42가구가 일반분양된다.지하철 6호선 증산역이 걸어서 10여분 걸린다.내부순환로,수색로,성산로 등을 이용할 수 있으며 연가초,연희중,명지여중·고,충암중·고교 등 교육시설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편의시설로는 재래시장,삼천리마트,신촌현대백화점,그레이스백화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등촌동 현대산업개발 등촌동 515의46,등촌2동 560의17 일대에 월드아파트와 무궁화연립 재건축 아파트로 모두 290가구 가운데 조합원분을 제외한 35가구를 일반분양한다. 지하철 5호선 목동역이 걸어서 10분거리이고 신설 예정인 9호선 등촌동 입구역이 인접해 있다.인근에 강서초,백석중,대일고,영일고,강서고,명덕외국어고교 등이 있다. ●항동 현대건설 항동 15 일대에 들어서는 아파트로 모두 245가구이며 전량 일반분양된다.인근에 항동 저수지와 굴봉산이 있어 주거환경이 쾌적하다.서울시가 항동 일대에 2006년까지 생태탐방로,생태연못,잔디광장 등을 갖춘 대규모 수목원을 조성할 계획에 있어 주거환경은 더욱 좋아질 전망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북한과 중국의 매매법비교’ 발표회

    장명봉(張明奉·국민대 교수) 북한법연구회장은 26일 오후 6시30분 서울 정동 ‘세실’에서 ‘북한과 중국의 매매(賣買)법 비교’를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갖는다.
  • [시론] 시간강사 문제 해법

    우리 대학의 가장 큰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시간강사의 문제만 나오면 대학의 전임교수로 있는 필자는 몸둘 바를 모르겠다.대학강의의 절반을 담당하면서도 ‘일용잡급직’으로 되어 있는 시간강사의 처우가 말할 수 없이 열악하고 이것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마는 문제는 그 해법이다. 그저 국가나 대학당국이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여 강사료를 대폭 올리고 교수를 더 뽑아 전임교수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대종을 이룬다.그러나 그에 필요한 재원을 어디서 염출하는가가 문제다. 강사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측에서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이른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다.사실 강사나 교수나 정작 강의를 듣는 소비자인 학생들에게는 차이가 없으며 둘 다 똑같이 학점을 준다.때로 강사들 중에서 인기도 있고 충실한 강의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나 단지 강사라는 이유로 매우 헐값에 팔리고 있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적용하려면 먼저 강사와 전임교원의 임금체계가 같아 비교의 지표가 있어야 한다.현재 강사는 강의시간당 시간급만을 받으나 전임교원은 완전 월급제이다.즉 전임교원은 실제로는 강의라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임에도 그 기준은 오로지 직급과 호봉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따라서 전임교원이 강사에 비해 어느 정도 동일노동에 대해 우대를 받는 것인지가 불분명한 것이다. 나는 현재 전임교수의 보수체계가 강사들과 같이 강의시간에 따른 대가적 성격으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강의경력,연구실적,학생들의 강의평가 등을 종합하여 등급이 정해지고 그 등급에 상응하는 시간당 강의료를 받으면 된다.그리고 전임으로서는 전임의 역할에 상응하는 약간의 수당을 더 받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전임교수의 보수체계가 강사와 같이 일원화되면 이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피해나가기 어려울 것이고 이것은 자연스레 전임과 강사의 차별적 처우를 획기적으로 완화시키게 될 것이다.그 외 연구활동의 진작에 대해서는 교수나 강사나 차별없이 실질적인 연구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연구기금을 운용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강사의 처우개선은 대학의 특권층을 만들어내는 전임교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그 해결이 난망하다.전임교수측에서도 기득권을 버리는 자세로 현재의 착취체제인 교수와 강사의 이원체제를 타파하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는 또 하나의 관건은 고등교육의 소비자인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다.열악한 강사의 처우는 곧바로 강의의 질의 저하를 가져오는 것이고 이것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간 500만∼600만원의 고액의 등록금을 내면서도 강의의 절반을 시간당 2만여원의 ‘싸구려 강의’로 들어야 한다는 것은 제대로 권리의식을 가진 학생이라면 묵과하기 어려운 파행적 상황이 아닌가. 학교재원의 압도적 부담자인 학생은 학습권의 한 내용으로서 싸구려 강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시간강사의 문제는 단순히 약간의 예산을 더 배정하는 선심성 미봉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우리 대학의 전임-강사 이원구조를 철폐하는 근원적인 체제변화가 모색되어야 한다.그것은 현재의 우리의 무기력한 대학을 더욱 경쟁과 활력이 넘치는 장소로 바꿀 것이고 그 혜택은 전부 강의의 수요자인 학생들에게,나아가 온 사회에 돌아갈 것이다. 김 동 훈 국민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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