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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의회,「총통직선」 승인/여 단독 가결

    【대북 로이터 연합】 대만국민대회는 오는 96년 임기가 만료되는 이등휘총통(71)의 후임 총통을 사상처음으로 국민들의 직접선거로 선출키로 하는 동의안을 29일 통과시켰다. 총통 직선제안은 이날 야당인 민진당의원들이 차기 국민대회 의장·부의장 선출동의안에 반대하며 의자를 집어던지고 여당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난동을 벌이고 퇴장한후 여당인 국민당의원들만 참가한 가운데 통과됐다. 국민대회는 이날 총통직선제외에도 ▲재외 화교들에게 총통선출권을 부여하고 ▲고위관리 임명시 행정원장이 행사해온 거부권을 박탈,총통권한을 확대하는 등 여러 개혁안들도 함께 승인했다.
  • 남아공 국민당 내각탈퇴 직면/현지언론 보도

    【요하네스버그 AFP 연합】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계 구집권당인 국민당(NP)은흑백 거국내각에서 탈퇴할지 모른다고 현지 언론이 27일 보도했다. 요하네스버그 스타지는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전대통령이 이끄는 국민당의 소속의원들에게서 거국내각의 동반자인 아프리카민족회의와 결별하자는 주장들이 확산되는 추세라고 전하면서 이같이 전망했다. 스타지에 따르면 탈퇴를 요구하는 의원들은 거국내각에 궁색하게 몸담기보다는 어엿한 야당으로 변신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당 중앙위원회는 그러나 이날 성명을 통해 현단계에서는 거국내각을 탈퇴하려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탈퇴설을 부인하면서 『당분간은 내각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이 국익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 총무 박규식의원/대변인 김수일씨/신민당 임명

    신민당은 18일 원내총무에 박규식의원,대변인에 김수일 전국민당대변인을 각각 임명했다.
  • 대만지방선거 국민당승리/67%당선/차기총선 유리한고지 선점

    ◎무소속·민진,90년보다 약진 【대북 로이터 연합】 대만의 지방정부선거에서 여당인 국민당이 승리했다고 17일 현지언론이 보도했다. 앞으로 있을 총선의 판도를 예고하는 이번 결과에 따르면 국민당은 총1만4백56개 지역중 67%인 7천7개 지역에서,제1야당인 민주진보당후보들은 2백8개 지역에서 각각 승리했다. 그러나 국민당 승리지역은 지난 90년의 7천6백82개에 비해 6백75개 감소한 반면 민진당 승리지역은 과거에 비해 71개 늘어났다. 또 무소속후보들이 전국적으로 선전해 모두 3천2백4개 지역에서 승리함으로써 무소속후보 당선지역은 지난 90년에 비해 8백36개 늘어났다.
  • 대만,대중 직교류 결정/통신·항공·해운 곧 개방

    ◎대륙위 부주임/비정치적 본토영화 상영 허용 【대북 AFP AP UPI 연합】 대만정부는 중국과 통신과 항공및 선박운행에 있어서의 직교류를 허용키로 했다고 행정원 대육위원회(MAC) 고공염 부주임위원이 6일 밝혔다. 고 부주임위원은 대만의 대중국대륙정책 검토를 위한 지난 이틀간 고위당국자회의에서 교통부의 직항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중국정부에 대해 항공및 해양에서의 대만의 법적 권리를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같은 계획은 49년 중국공산화 이후 지금까지 유지해온 통상과 통항,통우금지에 관한 「3불통정책」의 공식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고위원은 또 대만교통부가 1년내로 이들 분야에 대해 양안간 이질적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중국정부에 제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마 카이 중화경제연구소연구위원은 중국정부가 오는 97년 홍콩을 인수할 예정인 점을 감안,중국과의 통상및 관광에 관한 직교류금지 해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혔다.현재 대만의 대중국 통상과 투자의 대부분은홍콩을 경유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대륙정책회의에는 이와함께 대만 신문및 잡지사 소유자들의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와 비정치적 내용의 중국영화 상영을 허용키로 결정했다. ◎3불통정책 사실상 포기/대만,간접교역창구 홍콩반환이후 대비/경제적 실리 염두… 정치적 화해까진 험로(해설) 대만정부가 6일 중국과의 통신및 수송수단에 대해 직교류를 허용키로 한 것은 중국대륙을 둘러싼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경제적 현실주의노선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결정은 특히 대만·중국간 직통전화는 물론 직항로의 개설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대만 국민당정부가 지난 49년부터 중국에 취해오던 통상·통항·통우를 금지하는 「3불통」정책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대만은 중국에 대해 이같은 3불통정책을,중국은 대만과는 반대로 대만에 대해 통신·교통·통상을 요구하는 3통정책을 펴왔다. 대만정부는 지난 90년 이등휘총통이 재선된 뒤 제한적으로 직접투자등 경제교류를 허용,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어느정도 3불통정책을 완화해왔으나 정책의 폐기는 선언한 적이 없다.그러던 지난 3월 중국을 방문중이던 대만관광객 24명이 강도를 만나 몰살된 이른바 「천도호」사건이 발생,대중국투자금지조치를 내리는 등 양측사이에 한때 긴장상태가 조성되기도 했다.이 사건과 관련,중국은 범인들을 즉각 기소해 처형하는 등 「신속한」조치를 취함으로써 대만측에 신뢰감을 조성했다. 대만정부가 3불통정책을 사실상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대중국 무역과 투자창구역할을 해온 홍콩이 오는 97년 중국에 반환돼 직접교역창구를 개설할 필요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직접교류창구를 트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쌓아온 경제적인 실리를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이다.더욱이 매년 1백억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는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과의 직접교역을 염두에 두었으리라는 분석이다.시간이 갈수록 중국은 대만 뿐만아니라 전세계의 더없는 교역시장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결정은 그러나 금융·외환거래및 송금에 대해서는 완전자유화를 허용하지 않아 3불통정책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대만은 또 이날 중국측의 직항로개설 제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중국에 대해 항공과 해양에서 국제법상 대만의 법적 지위 인정을 요구하고 나서 이와 관련한 중국측의 반응도 주목되고 있다. 3불통정책과 함께 대만은 중국 공산정권과의 정치적 접촉을 금지하는 불타협 불협상 불담판이라는 3불정책도 고수해왔는데 이 정책은 당분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중국정책과 관련 대만은 그동안 행정원내에서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는 현실주의론자와 교류를 강화하면 그만큼 중국에 귀속된다는 보수강경론자 사이에 대립하는 양상도 보여 왔다.
  • 보선 앞으로 한달… 선거열기 고조

    ◎현경자씨 출마설속 정창화씨 보수표 모으기/대구수성갑/임진출씨,서전의원 조직접수… 고정표 확대 착수/경주/민자 김기수후보에 맞설 야출마자 아직도 미정/영월·평창 경북 경주,강원 영월·평창,대구 수성갑등 오는 8월2일 보궐선거가 실시될 3개 지역의 선거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민자당이 이미 입후보자를 확정,선거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과 신민당등 야당은 마땅한 후보를 찾기 위해 저울질을 계속하고 있으나 지역마다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면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겠다고 「간판」을 내건 인사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수성갑◁ 박철언전의원의 부인 현경자씨(48)가 오랜 고민끝에 출마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민주당은 현씨의 무소속출마를 전제로 야권 연합공천을,신민당에서는 신민당 소속의 야권단일후보를 내놓기 위해 막판 의견절충을 벌이고 있다. 현씨측은 박씨의 유죄확정을 정치보복이라고 여기는 유권자들의 동정표를 믿고 박씨의 제14대 총선 때보다 높은 득표율을 자신하고 있다. 민자당에서는 일찌감치 후보로 내정돼 조직기반을 다져온 정창화지구당위원장(54)이 대구지역의 친여보수성향표를 모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정씨는 특히 지난해 노동일후보의 사례처럼 중앙당의 지나친 개입으로 반민자기류가 확산될 것을 경계,선거공고가 나는대로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당의 개입은 선거방해행위로 간주하겠다』는 「자립선언」을 통해 주민층에 파고들려는 구상을 하고있다. 이밖에 핵정책을 전공한 정치학박사 출신의 김태우씨가 박찬종신정당대표의 후원아래 야권단일후보를 넘보고 있으며 무소속의 한점수대구정치경제문제연구소장(55),정두병대구사회교육연수원장(48)등 7∼8명의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경주시◁ 유일한 여성지역구의원의 탄생을 다짐하며 민자당의 공천을 받은 임진출지구당위원장직무대리가 여성에 대한 보수적 유권자의 불신에도 불구,고정표를 확산시켜가고 있다.임씨는 고 서수종의원에 대한 높은 동정을 바탕으로 서의원의 조직을 이미 고스란히 접수,오는 5일 개편대회를 기점으로 유권자접촉을 본격화할계획이다. 민주당에서 이상두지구당위원장 말고 영입을 검토하고 있는 김순규경남대교수는 11대 무소속 당선된 경력을 바탕으로 경주중고 동창회와 경주금씨 종친회의 후원 아래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 현지 선거관계자들의 분석. 13대 때 임씨를 누르고 당선된 김일윤전의원은 14대때 공천탈락과 구속으로 이어진 불명예를 회복하겠다고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다. 병원을 운영하는 최병찬씨가 신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점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월·평창◁ 민자당이 가장 자신하는 지역.평창 출신으로는 김기수전경찰청차장외에 출마의사를 나타내고 있는 사람이 없어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유리해져 가고 있다는 설명. 김씨와 공천경쟁 끝에 탈락한 민주계의 원성희전대한중석사장이 김씨의 기반인 평창에 대한 영월주민들의 정서를 바탕으로 독자출마할 것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원씨는 내년도 단체장선거를 기약하기로 의견조정이 이루어졌다는 후문이다. 야권에서는 김경래민주당위원장의 갑작스런 사고사로 공석이된민주당 후보를 영월엄씨인 엄만영씨와 엄의현씨,이건회민주당정치연수원국장등이 노리고 있다.14대때 옛 국민당으로 출마한 신민선전의원도 야권단일공천을 받으면 재도전할 것으로 전해졌고 심명보전의원의 보좌관출신인 강도원씨도 무소속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대만 정치범 복권/의회,몰수재산 반환·피해보상 승인

    【대북 로이터 연합】 대만입법원은 38년간의 국민당 철권통치하에서 투옥됐던 정치범등 수천명의 인사들에 대한 복권을 골자로 하는 일련의 조치를 승인했다. 입법원 법사위원회가 29일 통과시킨 이 조치는 국민당정권하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재산을 몰수당했던 정치범들이 재산반환과 피해보상을 청구하도록 하는 한편 자격을 박탈당한 변호사와 의사들이 변호및 의료행위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로저 히시에 입법원의원은 30일 『이들 피해자는 석방된 뒤에도 그동안 생존수단없이 지내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기본인권 회복은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 신정당과 통합 결정/당명 「신민당」으로/국민당 전당대회

    국민당은 29일 정기전당대회를 열고 신정당과의 통합을 결의했다. 국민당은 또 통합신당의 당명을 신민당으로 확정하고 통합전당대회까지 김동길대표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 민주주류/「홍부의장 선출」 조직적 반발/국회 원구성 이모저모

    ◎이전의장 95표… 황의장 득표율 63% “저조” 제14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을 위한 28일의 국회 본회의에서는 일부 야당의원들이 의장선출은 물론 야당몫의 부의장선출에서까지 조직적으로 반발,투표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개회직후 실시된 의장선출투표에서 황락주의장은 총투표수 2백78표 가운데 1백74표를 얻어 무난히 당선됐으나 득표율면에서는 62.6%로 지난 71년 제8대 백두진의장(62.5%) 다음으로 최저를 기록. 반면 이만섭전의장은 무려 95표를 얻어 야당이 조직적으로 황의장에게 반발했음이 입증. 이어 실시된 여당몫 부의장선출투표에서는 이춘구의원이 2백24표를 얻어 의장단 가운데 최고득표율로 피선. 야당이 의장선출투표에서 무더기로 반발한데 대한 여당의 대응반발여부로 관심을 끈 민주당몫 부의장선출투표에서는 내정된 홍영기의원이 과반수가 훨씬 넘는 1백97표를 얻었으나 주류측의 부의장 주자였던 김봉호의원도 31표를 획득,홍의원을 내정한 데 대한 주류측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 이날 의장단선출은 개회뒤 바로 실시될 예정이었으나 국민당 김동길대표의 갑작스런 의사진행발언으로 지연. 김대표는 발언을 만류하는 이전의장과 한동안 옥신각신한 뒤 새한당 장경우의원의 민주당행을 빗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려고 하면 여당뿐 아니라 야당에서도 무너뜨린다』면서 『왜 국회직을 놓고 그리 흥정이 많은가』라고 민주당을 겨냥. 그는 이어 『이만섭의장이 그만하면 잘했는데 정치적인 힘에 의해 밀려나가니 일말의 설움이 있다』면서 은근히 황의장에 대한 반대투표를 유도. ○…본회의에 앞서 열린 민자당 의원총회에서 지도부는 황락주 의장내정자에 대해 일부에서 있을지도 모를 반란표를 집중 경계. 김종필대표는 『국회의장은 입법부를 이끌어갈 우리의 대표』라면서 『대표를 모시는 정성에 상상을 초월해 웃기는 짓을 하려는 사람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 이한동원내총무도 『국회를 제도적으로 개혁한 새국회법에 따라 구성되는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에 동료여러분의 전폭적인 지지를 모아달라』고 당부. ○…한편 민주당은 전날 자정까지이어진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임위원장 인선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해 이날 아침 7시부터 회의를 재개했으나 본회의가 열리기 1시간전까지도 합의를 보지 못하자 이기택대표에게 결정을 위임.이에 따라 주류측은 우선 야권대통합을 내세워 새한국당에서 입당한 장경우의원을 체신과학위원장에 내정. 조순승상공자원위원장은 재선이지만 국제정치학자로서의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실력을 인정받았고 박상천보사위원장은 그동안 정치개혁입법을 위한 여야협상에서 당에 기여한 공헌이 참작됐으며 이우정여성특위위원장은 당내 유일의 여성의원으로 처음부터 따놓은 당상이었다고.
  • 「표적시비」 매듭… 도덕성 치명상/박철언피고 유죄확정 의미

    ◎“알선수재죄 적용 무리없어” 결론/“판결은 정치적일수 없다” 분명히 표적수사시비 등으로 관심을 끌었던 국민당의원 박철언피고인의 슬롯머신비리사건은 1년 가까이 계속된 법정공방 끝에 28일 대법원이 유죄확정판결을 내림으로써 박피고인의 패배로 끝났다. 이날 판결로 박피고인이 이미 제출한 보석신청도 자동기각돼 대법원판결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박피고인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마감됐다. 지난해 7월 박피고인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이후 6공비리척결의 표본이라는 상징성과 새정부의 사정수사의 마지막 대상이라는 점때문에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박피고인은 특히 이같은 재판외적인 의미를 십분 활용,법정안팎에서 자신의 무죄를 거듭 주장해왔었다. 따라서 이번에 대법원이 유죄확정판결을 통해 하급심의 법률적용에 문제가 없었음을 확인함으로써 박피고인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특히 법률문제와 관련,그동안 관심의 초점은 구체적인 물증없이 박피고인에게 적용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의 알선수재혐의와 정치보복주장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여부였다. 결국 대법원은 정덕진씨형제와 홍성애씨가 검찰및 원심법정에서 진술한 피고인의 혐의내용이 일관되게 일치해 이 사건의 범죄사실을 인정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대법원은 그러나 정치보복설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6억원과 징역1년6월에 추징금 6억원이 각각 선고된 이번 사건은 검찰과 변호인측 모두 형량과 유죄인정사실에 불복,항소하는 진기록을 남겼다.실형을 선고한 법원이 두차례 모두 검찰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시체 없는 살인사건」임을 주장하는 변호인측의 무죄주장과 고위공직자비리에 대한 형량으로는 부족하다는 검찰의 주장이 한치의 양보없이 팽팽하게 맞선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재판부인 1·2심의 판단을 상고기각사유로 그대로 인정했다. 특히 2심재판부인 서울형사지법 항소4부도 대법관·고법부장판사·검사장출신의 쟁쟁한 변호인단 10여명이 동원돼 벌인 표적수사설·정치재판설등 집요한 변론에 대해 『사건은 정치적 일 수 있으나 법원의 판결은 결코 정치적판결이 아니다』는 사법부의 소신을 분명히 했다.
  • 민주 상위장배분 싸움/진경호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제14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을 앞두고 민주당은 하나의 「거래」를 했다.상임위원장 자리를 하나 주고 중진급 국회의원 1명을 영입했다. 명분이야 그럴 듯 하다.야권대통합 작업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그리고 어려운 결단을 내린 당사자를 예우해야 하기에 자리를 마련했다는 얘기다. 우리 정치가 그렇게 순수하다면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다.원내교섭단체 정족수가 모자라는 국민당이 그를 영입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민주당이 유일야당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관건이 되고 있는 새한국당의 장경우의원을 빼돌려야 했던 것이다.자리를 안주면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상임위원장직을 내준 것이다.27일 밤 『국민의 여망에 따라 야권대통합의 초석이 되고자 한다』는 그의 거창한 입당선언이 실소를 자아냈지만 그래도 그것까지는 좋았다. 이날 하오 2시부터 민주당 최고위원 9명은 국회에서 주요 당직 및 6개 상임위원장직 인선에 관한 협의에 들어갔다.회의시작부터 최고위원들은 장의원의 상임위원장직 배정을 놓고 두파로 갈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을 벌였다.두차례 정회끝에 회의가 끝난 시간은 밤11시45분.무려 10시간 가까이 논쟁을 벌였지만 손에 쥔 결론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이기택대표와 동교동계의 권로갑·한광옥최고위원,유준상최고위원등은 장의원에게 상임위원장직을 주자고 했다.조세형·이부영·노무현최고위원등은 주어서는 안된다고 맞섰다.나머지 상임위원장 후보들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못했다.회의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의원도 있었고 언성을 높이며 흥분한 의원도 있었다. 왜 그랬을까.장의원의 자질이 상임위원장에는 못미쳤기 때문일까.상임위원장직을 거래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대의 때문일까. 아니다.야당몫의 상임위원장직 6석이 모자라서였을 뿐이다.장의원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자기 측근의원을 상임위원장에 앉히지 못하겠기에 밤 늦도록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앉아 마냥 버텨야만 했던 것이다.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임된 민주당 상임위원장 6명은 그런 이전투구끝에 승리한「용사」들이다. 어쩌면 9인9색인 민주당과 이전투구는 뗄라야 뗄 수 없는 관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박철언씨 유죄 확정/의원직 상실

    슬롯머신업자 정덕진씨 형제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국민당의원 박철언피고인(53)에게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주한대법관)는 28일 박피고인에 대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위반(알선수재)사건 상고심에서 박피고인의 상고를 기각,징역 1년6월에 추징금 6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유죄 확정으로 박피고인은 이날자로 국회의원직을 상실,지역구인 대구 수성갑구의 보궐선거가 90일 이내에 치러지게 됐다.또 「3년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이 확정된 경우 5년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된다」는 현행 통합선거법 및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제7조에 따라 박피고인은 앞으로 형집행이 만료되는 오는 11월22일부터 99년 11월까지 일체의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씨 형제의 진술과 홍성애씨(도미중)의 공판전 증인신문,기타 다른 증인들의 진술등을 종합해 볼때 박피고인이 슬롯머신 업자 정덕일씨로부터 탈세조사를 완화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6억원의 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홍씨의 공판전 증인신문이 피고인및 변호인의 참여와 반대신문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져 신빙성이 없다는 변호인측의 주장에 대해 『홍씨의 제1회 공판기일전 증인신문에서의 진술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도 피고인에 대한 범죄사실을 모두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법정에는 박의원의 부인 현경자씨(48)등 가족과 국민당원,지지자 등 1백여명이 나와 방청했으며 현씨는 재판결과에 대해 『대법원이 이같이 판결한다 해서 없는 죄가 생기겠느냐.진실은 역사가 밝혀줄 것』이라고 말하고,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 상황에서 그같은 질문은 너무 잔인하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6억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지난해 5월 21일 구속기소됐었다. 한편 이날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용준대법관)심리로 열린 슬롯머신업자 정덕진피고인(54)에 대한 상고심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탈세및 공갈혐의로 구속돼 징역 2년6월에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은 정씨의 조세포탈부분 가운데 일부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 국회 의장단·상위장·특위장 내정자 프로필

    ▷황낙주 의장◁ ◎5척 단구… 6선의 상도동계 원로/유신시절엔 「명총무」 명성… 독서광 5척 단신에 야무진 면모를 풍기는 재사형.70년대부터 김영삼대통령과 정치노선을 같이 해 온 상도동계 원로.제7대 때 정계에 입문했으나 낙선,8대에 원내에 진출한 뒤 정치규제에 묶인 11대를 빼고 6선을 기록.사무실에는 일본어책이 잔뜩 쌓여있는 독서광으로 학구적인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는 뛰어난 대중연설가라는 중평. 지난해 박준규전국회의장이 재산공개파문으로 물러난 뒤 강력한 후임자로 거론됐으나 막판에 이만섭의장에 양보.그러나 권토중래 끝에 민주계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이번에 입법부 수장에 내정됐다.지난해 예산안파동 때 이의장 대신 강행을 하려다 야당 의원들로부터 수모를 당한 점이 부담이었으나 극복에 성공. 유신시절이던 10대 때 야당의 원내사령탑을 맡아 당시 김영삼총재 제명파동의 와중에서 당의 결속에 주도적 역할을 한 「명총무」로 평가되고 있다.당시 여당 총무를 세번이나 바뀌게 할 정도로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79년 YH여공사건 때 김총재와 함께 폭력진압에 항거하다 병원신세를 진것을 비롯,부마사태,김총재 연금및 단식투쟁등 역사적 사건 때마다 김대통령을 보좌해와 누구보다 그의 의중을 잘 읽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지금도 김대통령이 사석에서는 「황총무」라고 부를 정도로 그 때의 역할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5·17 때 계엄군이 점령한 국회의사당을 뚫고 들어가다가 계엄군에게 수난을 당한 일화는 외국에까지 알려진 사실. 경남 진해여중고 교장으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이승만독재 정권의 부당성을 고발,주목되기도 했다.군납부정과 관련한 환금장유사건을 폭로한 것이 김대통령과 인연을 맺게한 계기가 됐다. 부인 이재옥여사(56)와의 사이에 1남2녀. ▲경남 진해(66) ▲서울 상대 ▲일본 와세다대학원수료 ▲신민당 부총무·총무 ▲국회동자위원장 ▲민자당 중앙상위의장 ▲국회부의장 ▲8,9,10,12,13,14대 의원 ▷이춘구 부의장◁ ◎사심없는 일처리… 「동상」 별명 사심 없는 처세와 칼날 같은 업무처리로 「5·6공」을 두루 권력의 핵심부에서 활약한 「원칙주의자」.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으로 「동상」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그러나 성품은 청렴하면서도 담백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 문민정부 출범후엔 두드러진 활동이 없었지만 그에 대한 김영삼대통령의 호감으로 미루어 언젠가는 적절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됐었다.지난 92년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경선 때 사무총장으로서 전당대회를 엄격하게 관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는 것.제13대 대선 선거대책본부장,14대 대선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아 「대통령만들기」에 솜씨를 보였다. 부인 문춘자여사(54)와의 사이에 1남1녀. ▲충북 제천(60) ▲육사졸(14기) 육군준장 예편 ▲사회정화위원장 ▲내무장관 ▲민정당 사무총장·대통령선거대책본부장 ▲13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 ▲민자당 사무총장 ▷홍영기 부의장◁ ◎항상 꼿꼿한 자세… 77세의 5선 희수(77)를 눈앞에 둔 나이에도 의정활동이나 개인생활등에서 노익장의 대명사로 불리는 5선의원. 지난 55년 민의원 국방위전문위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뒤 60년 전북 순창에서 제5대 민의원으로 의정생활을 시작.지금까지 변변한 감투를 쓴 적이 없어 이번에 소원을 성취한 셈.지난번 야당몫 부의장 결정과정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다른 2명의 경합자를 예상밖으로 제쳐 「어부지리」라는 말도 들었으나 결과적으로 『잘됐다』는 것이 당내의 중평. 11·12대때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를 못했으나 80년대 중반 「민추협」부의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복귀.고령에도 항상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옷맵시도 뛰어나 여의도에서는 멋쟁이 신사로 통한다.부인 백수임여사(78)와의 사이에 1남4녀. ▲전북 순창(76) ▲일본 동북대졸 ▲육본 법무차감 ▲5,6,8,13,14대 의원 ▲민추협 부의장 ▲민주당 고문겸 당무위원 ▷박희태 법사◁ ◎대변인 4년… 뛰어난 화술명성 순발력있는 화술과 재치로 집권당의 최장수 대변인(4년 3개월)을 역임했다.고시 13기의 선두그룹을 달린 검사출신. 88년 초선의원으로 민정당 대변인에 발탁된 이래 정곡을 찌르는 화법과 명담을 날려 TV토론에 단골 초청멤버로 자리를 굳혔다. 김영삼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지난해 문민정부첫 법무부장관에 기용됐으나 딸의 특례입학 시비로 도중하차한 쓰린 기억을 갖고 있다.부인 김행자여사(53)와의 사이에 2녀. ▲경남 남해(56) ▲서울법대 ▲미버클리대 수학 ▲춘천·대전·부산지검장 ▲부산고검장 ▲13,14대의원 ▲민정당·민자당 대변인 ▲법무부장관 ▷심정구 재무◁ 인천의 부두하역전문회사인 선광공사 사장을 지낸 재력가로 3선. 원만한 성격에 합리적 처신으로 대인관계가 좋다.재무위원과 재무위 간사를 지낸 재무통. 원래 이번 국회직 인선의 초기과정에서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인천출신 서정화건설위원장이 물러난 데 따른 지역배려차원에서 기용됐다는 분석. 유신시절 1,2대 통대의원을 지내면서 정치에 뜻을 품었다고. 부인 이명희여사(59)와의 사이에 1남3녀. ▲인천(62) ▲서울대상대 ▲한국관세사회장 ▲민정당 재정위원장 ▲국회재무위 간사 ▲민자당 인천시지부위원장·당무위원 ▷양창식 농림수산◁ ◎육사출신… 월남전 겪은 학구풍 민자당의 불모지인 호남지역에서 3선을 기록,탁월한 지역구 관리능력을 입증한 중진.육사10기 출신으로 6·25와 월남전을 겪었으며 학구열도 대단한 호인풍의 무골. 민자당 대선 후보경선때 이종찬진영에서 활동하기도.지역안배차원에서 중용은 미리부터 예상됐으며 대통령직 인수위때 농수산분야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번에 농림수산위원장에 발탁.육사에서 전두환전대통령을 교육한 인연때문에 5공에 참여. 부인 박인옥여사(62)와의 사이에 3남2녀. ▲전북 남원(64) ▲육군준장 예편 ▲강원대·동국대 행정대학원 ▲이리직업훈련원장 ▲국회교체위원장 ▷신상우 정보◁ ◎언론인 출신의 상도동계 6선 언론계 출신의 상도동계 6선의원.지난해 32년만의 첫 문민출신 국방위원장에 임명된데 이어 이번에 신설된 요직의 정보위원장에 중용되는 행운을 차지.80년 신군부집권 당시 민한당 산파역을 맡아 부총재등을 지내고는 12대때 낙선을 맛본뒤 상도동에 재합류. 지난해 율곡사업 국정조사등을 무리없이 이끈 솜씨를 인정받았다.황명수의원의 국방위원장기용에 따라 정보위원장으로 발탁.부인 조정강여사(53)와의 사이에 3남. ▲경남양산(57) ▲고려대 정치학과 ▲부산일보기자 ▲민한당 사무총장·부총재 ▲민추협부의장 ▲국회보사위원장 ▲8,9,10,11,13,14대의원 ▷나웅배 외무통일◁ ◎이론·실무 겸비한 경제정책통 금융계와 학계·관계를 두루 거쳐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제정책통. 11대대 민정당 전국구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재무·상공·경제기획원장관을 역임한 4선의원. 세련된 화술과 합리적 판단으로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을 맡아 외교와도 인연을 맺어 왔으며 맡은 일에 완벽을 기하는 외유내강형.부인 박효균여사(59)와의 사이에 2남. ▲서울(60) ▲서울 상대 ▲미캘리포니아대 경영학박사 ▲서울대교수 ▲해태·한국타이어사장 ▲아주대총장 ▲재무·상공장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대전엑스포조직위원장 ▲민자당 정책위의장 ▷황명수 국방◁ ◎솔직 담백… 할말 꼭하는 외곬형 솔직담백한 성격에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못하는 의리파.옛 신민당 진산계 출신으로 9대때 첫 금배지를 달았다. 11대 인 의정동우회장을 맡아 원내에서 정치규제를당한 김영삼대통령의 해금을 강력히 촉구하는등 눈치를 보지 않는 외곬형.공군 교관을 지내기도 해 군에 대한 애정이 깊다.지난해 5월 국방위원장으로 내정됐다가 당 사무총장에 임명됐었다. 부인 유설자여사(53)와의 사이에 3남1녀. ▲충남 아산(67) ▲동국대 정치학과 ▲충남도의원 ▲신민당원내부총무 ▲민권당부총재 ▲민추협간사장 ▲민주당부총재 ▲국회 보사위원장 ▲민자당 사무총장 ▷박재홍 교통◁ ◎재담좋고 신망 두터운 마당발 특유의 친화력으로 정가에서는 「마당발」로 통한다.고 박정희전대통령의 장조카로 11대 때 옛 민정당 공천을 받아 원내에 진출한 4선의원. 주변의 어려운 사람은 꼭 챙기는 스타일.누구라도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을 만큼 재담이 좋고 동료의원들의 신망도 두텁다.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탁월하다. 4선인데도 별다른 당직을 맡지 못해 「자리 운」은 별로 좋지 않은 편.부인 김양자여사(49)와의 사이에 1남2녀. ▲경북 구미(53) ▲고려대 법대 ▲동양철관회장 ▲11,12,13,14대 의원 ▲민자당 당무위원 ▷김용태 예결◁◎총무·정책위의장 역임한 4선 언론계출신으로 민자당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을 역임한 4선.예결위원장은 이번이 3번째. 국회부의장 물망에까지 오르다 상임위원장으로 낙착돼 다소 의외라는 평이나 김영삼대통령이 UR협정 비준과 관련한 추경과 새해예산안 처리에 비중을 둠에 따라 특별기용됐다는 분석. 좀 다혈질이다 싶을 정도로 성격이 활발하면서도 숫자에 밝다는 평. 김대통령과는 현직 기자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로 신망이 두텁다.부인 정란희여사(57)와의 사이에 2남1녀. ▲대구(58) ▲서울대법대 ▲조선일보 정치부장·편집국장 ▲민정당 대변인 ▲국회재무위원장 ▲민자당 정책위의장·원내총무 ▷김기배 내무◁ ◎재무·상공부 관료출신의 3선 재무부와 상공부 관료출신으로 야당세가 강한 서울(구로갑)에서 내리 3선을 기록. 민정당 전문위원을 지내다 전두환전대통령에게 발탁,12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했으며 14대 대선때는 당 서울시지부 위원장을 맡았다. 3선의 의정생활동안 당직과 국회직의 운이 없다가 이번에 상임위원장에 발탁됐다.부인 윤정자여사(54)와의 사이에 3녀. ▲서울(58) ▲고려대 법대 ▲상공부상역국장·표준국장·품질관리국장 ▲수출산업공단 이사장 ▲민자당 서울시지부위원장·제1사무부총장 ▲국회 국제경쟁력강화특위위원장 ▷신경식 문체공◁ ◎친근한 인상… 재선 발탁 행운 친근한 인상에 걸맞게 정이 많아 대인관계가 원만한 언론계 출신의 재선의원. 민정계이면서도 일찌감치 「김영삼대통령 만들기」에 참여.이같은 공로로 대통령인수위 대변인,총재비서실장을 지냈고 재선이면서도 상임위원장에 발탁되는 행운을 차지. 11,12대때 야당으로 출마했다가 내리 고배를 마신뒤 13대때 여당으로 변신해 등원에 성공. 부인 최금녀여사(54)와의 사이에 2남 1녀. ▲충북 청원(55) ▲고려대 ▲대한일보정치부장 ▲국회의장 비서실장 ▲김영삼 민자당총재비서실장 ▲13,14대의원 ▷이성호 건설◁ ◎신중·합리적… 수석부총무 지내 공화당 공채3기로 정계에 입문한 당료출신으로 조직관리에 수완이 뛰어나다. 12대때 민정당 전국구로 국회에 입성,13,14대에 경기 남양주·미금에서 당선된 3선의원. 문민정부 출범이래 원내 수석부총무로 협상때 인내력을 발휘하고 신중하면서도 합리적인 성격이어서 야당 총무단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었다. 취미는 테니스로 국회안에서 최고수준.부인 박성애여사(46)와의 사이에 1남3녀. ▲경기 남양주(55) ▲고려대 법대 ▲민정당 조직국장·청년분과위원장 ▲국회 세계잼버리특위위원장 ▲국회 스카우트의원연맹회장 ▲민자당 수석부총무 ▷김한규 경쟁력◁ ◎독실한 종교인… 사회복지 전문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사회복지를 전공한 재선의원. 14대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경선 때 박철언의원의 집요한 설득을 뿌리치고 김영삼후보편에 섰고 대선과정에서는 홀트아동복지회장등을 지낸 경력을 활용,사회복지단체에 대한 득표활동을 주도했다. 13대 총선 때는 대구 달서에서 국민당후보로 출마한 이만섭국회의장을 꺾어 파란을 일으켰었다. 부인 정영저여사(51)와의 사이에 1남1녀. ▲대구(54)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평통자문위원 ▲국회 올림픽특위위원장 ▲민자당 서울시지부위원장 ▲14대 대통령직인수위원
  • 박철언 피고인 오늘 최종공판

    슬롯머신업자 정덕진씨 형제로부터 6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2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상고한 국민당 박철언의원에 대한 최종 선고공판이 28일 하오2시 대법원 형사1부(김주한 대법관) 심리로 열린다. 이날 판결에서 박피고인의 상고가 기각될 경우 원심이 확정돼 보석신청도 자동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원심이 파기되면 잔여형량 6개월미만을 남겨놓은 박의원의 보석이 허가될 전망이다. 박의원의 유죄가 확정되면 형집행이 종료된 날로부터 10년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되며 의원직도 자동 상실하게 돼 박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구의 보궐선거가 선고일자로부터 90일이내에 치러지게 된다.
  • 오늘 「신민당」 국회등록… “향후정국의 핵” 으로

    ◎「제3 교섭단체」 가시권에/후반 원구성 상위장 1석 노려/장경우의원 입당여부로 촉각/「야권대통합」 악재에 민주 곤혹 28일 있을 제14대국회 후반기 원구성을 앞두고 제3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한 국민당과 신정당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새 원내교섭단체의 등장은 앞으로의 정국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치권의 관심도 그만큼 높다.특히 이른바 「야권대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대통합의 악재가 될까봐 매우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통합선언후 당명을 「신민당」으로 정한 신당측은 통합전당대회에 앞서 우선 27일 원내교섭단체 성격의 「신민회」를 국회에 등록,원내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목표다. 이처럼 원구성에 앞서 교섭단체 구성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상임위원장 1석을 차지하려는데 1차적 목적이 있고 정치자금법에 규정된 여러 혜택도 감안한 때문이다. 한영수의원등 신당주도파는 그동안의 활발한 접촉을 통해 김동길·박철언의원등 국민당소속 10명과 박찬종신정당대표·무소속의 서훈의원,그리고 이미 통합을 전제로 국민당에 입당한 무소속의 양순직·박박식·임춘원·김진영의원등 4명을 포함한 모두 16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당 소속의원 가운데 아직 서명을 하지 않은 김용환의원도 처음 생각을 바꿔 서명을 약속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여기에다 무소속의 정태영·이학원의원도 당일까지 서명에 동참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서명의원은 모두 19명에 이른다.「신민회」를 등록하기에는 한명이 모자란다. 때문에 새한국당의 장경우의원및 무소속의 윤영탁·변정일의원등 3명과 계속 접촉을 하며 이들의 합류를 학수고대하고 있다.특히 민주당측으로부터도 입당제의를 받고 있는 장의원에게 원내총무를 이미 「입도선매」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신당주도파는 이들 가운데 최소한 한명만 영입하면 되는만큼 원내교섭단체의 구성을 낙관한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는 않다.국민당 내부에서조차 이런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당 소속이면서도 통합신당에의 합류에 거부의사를 밝힌 이자헌의원은 끝내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있고 장경우·윤영탁·정태영·이학원의원등이 서명을 할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또한 양순직의원등 입당파 4명에게 주요당직을 「이면계약」한 것이 지금와서 분위기를 야릇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28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게 되는 박철언의원도 변수일 수밖에 없다. 국민당이 지난 25일 최고위원·당직자 연석회의에서 박의원의 형이 확정되면 대구 수성갑 보궐선거에서의 바람몰이를 바탕삼아 교섭단체 구성을 추진한다는 2단계 전략을 수립,슬쩍 한발짝 물러선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고려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 국민·신정 통합당명/신민당으로 결정

    국민당은 23일 당무회의를 열고 신정당과의 통합신당 당명을 「신민당」으로 결정했다.
  • 인 국방부 「한국전포로 감시」 비록 입수 공개

    ◎“중공군 포로 송환 막아라”/대만공작팀 극비리 침투/반공교육후 “말 안들으면 처형” 위협/포로들 난동 잦아… 인 사령관 납치도 한국전쟁은 1953년7월27일 휴전협정조인으로 막을 내렸다.그러나 실제로 전쟁은 송환을 거부한 2만3천명 포로의 처리문제를 놓고 이른바 「총성없는 전쟁」으로 6개월간 처절하게 계속됐다.판문점일대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유엔군진영과 북부군(북한인민군·중공의용군)진영의 치열한 설득전과 이들의 심판을 맡은 인도의 철저한 중간입장고수는 2차대전후 네루중립주의 첫실험의 성공이라는 현대사적 의미를 부여받기도 했다.서울신문은 한국전쟁발발 44주년을 맞아 당시 송환거부포로 설득작전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인 「주한인도관리군활동사」(History of the Custodian Force of Indiain Korea:1953∼54)를 최근 인도현지에서 입수,발췌소개한다. ▷인도군첫해외파병◁ 휴전협상이 한창 진행중이던 53년5월8일 미국이 인도측에 송환거부포로 관리를 위한 인도군 파병가능성을 타진해왔다.이미 인도는 이들을 지휘감독할 5개 중립국송환위(NNRC)의 의장국을 맡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네루총리는 파병을 수락했다.8월5일 R K 네루외무차관,관리군사령관 토라트소장,사르다르 싱 인도적십자사무총장등 3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를 파견,도쿄의 유엔군사령부와 개성의 북부군사령부를 거쳐 구체적인 임무와 병력규모등을 협의했다. 인도군의 총규모는 6개 보병대대와 각종 부속대로 6천명.9월28일 제5진의 인천항 도착으로 이동을 모두 끝냈다.그러나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인도군의 한반도상륙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유엔군측은 인천에서 판문점까지 헬기로 이동할 것을 제의했다.동아시아의 모든 미군헬기를 동원,5명씩 수송했는데 모두 1천3백회의 출격을 기록한 사상최대의 헬기작전에서 다행히 사고는 단 한건도 없었다. ○통정리에 텐트촌 ▷새 포로수용소◁ 통정리일대에 유엔군이 건설한 막사는 5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캠프 7∼10개씩을 1개구역으로 하는 7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중공군 3개,북한군 2개,송환희망자격리수용소 1개,병원용 1개소씩으로 할당됐다.캠프는 17개의 막사와 식당·목욕탕·화장실텐트등 모두 20개의 텐트로 구성됐다.냉난방은 물론 전깃불과 온수공급이 완벽했다. 미군측은 이곳에 3만명의 식수및 생활용수공급을 위해 50만갤런상당의 물탱크를 설치했고 임진강으로부터 모두 31㎞의 대형송수관을 매설했다.전기공급을 위해 발전소 12개를 건설했으며 전체 생필품공급을 위한 대형보급창고도 세웠다.또한 설득장및 설득자대기소,송환표명포로수용을 위한 막사등 설득관련막사 10여동이 별도로 건설되었다.이들 전체지역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포로수에의 의문◁ 포로의 숫자는 포로교환협정에 따른 것으로 인도군의 입장에서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그러나 양측의 휴전협상이 처음 시작된 51년7월26일당시까지 유엔군측은 12만1천명의 북한군과 중공군포로를 억류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4만1천명이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북부군측은 6만5천명의 유엔군 생포를 주장했으며 그 가운데 5만명이 자발적으로 북한인민군과 중공의용군에 합류했다고 밝혔다.이같은 주장은 유엔군측이나 공산군측모두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에 손상을 입는 것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가 없었다. 휴전협정조인후 33일간 양측은 포로교환을 실시,유엔군측은 7만5천8백명을,북부군측은 1만2천7백60명을 상대방측에 넘겨주었다.그리고 9월25일까지 인도군이 넘겨받은 포로는 유엔군으로부터 북한군 7천9백명과 중공군 1만4천7백4명,북부군으로부터 한국군 3백35명(여군5명 포함),미군 23명,영국군 1명등 모두 2만2천9백63명이었다. 유엔군으로부터 인도받은 숫자는 남한정부의 6·18 반공포로석방으로 1만7천여명이 도망간 상태여서 어느정도 타당성 있는 숫자로 받아들여졌다.그러나 북부군으로부터 인도받은 숫자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자발적으로 귀순해왔다는 5만명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1만5천명중 유엔군측으로 송환되지 않은 수가 2천3백여명에 달하는데도 아무 설명이나 명단제시조차 없이 3백여명만 인계했던 것이다. ○총격사건 두차례 ▷포로들의 저항◁ 양측 사령부로부터 포로의 인계는 9월10일 시작돼 25일에 모두 끝났다.그들은 막사마다 리더를 선출,자치적으로 움직였으며 자체 취사를 했다.일과는 상오6시 기상하여 하오9시30분 취침에 들 때까지 대부분 운동과 오락으로 진행됐다. 첫날 중공군포로 가운데 7명이 대열을 이탈하여 송환을 요청해온 것을 비롯하여 밤에 철조망을 뚫고 번의를 요청해오는 포로들이 많았다.이같은 자발적 이탈자들의 증가로 포로측과 인도군측은 점점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본격적인 설득작전은 포로 인계인수가 끝난 뒤 26일부터 시작될 계획이었다.그러나 문제는 마지막날인 25일 발생했다. 날이 밝자 각 캠프의 포로들은 인도군에게 「납치」해간 원추를 즉각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하며 대규모시위를 벌였다.그들은 반인플래카드를 내걸고 돌을 집어던지며 강력히 저항했다.이 와중에서 토라트사령관이 포로들에게 억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먼저 억류된 그류왈소령의 구출협상을 벌이기 위해 캠프를 찾은 토라트사령관과 브두와르중령·싱소령등 12명이 순식간에 5백명에게 포위된 것이다. 부사령관 싱준장은 즉시 무장병력을 출동시켜 캠프전체를 에워싸고 사령관일행의 즉각석방을 요구했다.그리고 유엔군사령부에 협조를 요청하는등 순식간에 긴장이 감돌았다.그 사이 페인탈여단장은 특공대를 동원,극비의 구출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고 대화의 진전이 없는 가운데 마침내 토라트사령관의 기지로 포로대표를 설득,상황은 끝나게 되었다.그러나 그후에도 10월1일과 2일 두차례 총격사건이 발생,수십명의 사상자발생등 긴장상태지속으로 첫설득회는 10월15일에 가서야 가능했다.반면에 북부군측에 억류돼 있던 포로들은 규율이 잡혀 있었으며 공산주의에 몰입해 있는 듯했다. ▷대만의 선전전◁ 탈출해온 원추는 대만정부가 단 한명의 중공군포로도 대륙으로 송환시킬 수 없다는 장개석총통의 신념에 따라 조직적으로 포로설득에 개입했음을 폭로했다. 휴전협상이 진행중인 동안 중공군포로들이 수용돼 있던 제주도수용소로 대만정부는 포로들의 교육을 위한 두개의 공작팀을 침투시켰다.각각 12명과 6명으로 조직된 공작팀은 대만의 외교부·정보부·국민당등 각처에서 엄선된 심리전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포로막사로침투해 반공강연을 했고 누구든지 대륙으로 돌아간다면 공산당이 그를 죽여 사지를 절단한 뒤 반공에 대한 본보기로 삼을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그들은 어떻게 공산당의 설득을 피할 것인가를 가르쳤다.한사람의 이탈도 막기 위해 8∼9명으로 소그룹을 조직,송환의사를 나타내는 포로들을 목졸라 처치해버리는 방법까지 가르쳤다. 송환위대표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는 오직 『대만으로 가고 싶다』는 말만 할 것을 강조했고 포로개개인들에게 「TAIWAN」이라는 영문글자도 가르쳤다. ○88명 제3국 선택 ▷설득완료◁ 12월23일까지 90일간 주어진 설득기간중 실제설득이 이뤄진 날은 10일에 불과했다.설득받은 포로는 전체의 15%에 불과한 3천4백69명이었으며 설득후 송환을 요청한 자는 모두 1백37명,그나마 공산군측 억류포로중에는 한명도 없었다.여기에 설득을 기다리지 않고 막사탈출등으로 송환을 희망한 2백38명(공산군측 포로 8명 포함)을 더해 최종적인 송환희망자는 모두 3백75명.결국 설득작전은 양측사령부와 송환위·인도군등이 엄청난 인원과 물량을투입한 작전치고는 별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90일간의 설득기간이 끝난 후에도 양측은 포로들의 추가설득을 위해 설득기간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그러나 송환위측은 협정에 규정된대로 이 포로들은 30일간의 정리기간을 가진 뒤 54년1월22일자로 포로의 신분이 아닌 자유인의 신분으로 되돌아감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마침내 1월20일 상오8시부터 인도군은 포로들의 인계를 시작했다.다음날 새벽3시까지 모두 19시간 2만1천8백39명이 유엔군측으로,3백47명이 북부군측으로 인계됐다.이 가운데 북한군 74명,중공군 12명,남한군 2명등 88명은 제3국을 택했다.
  • 정쟁 중지(외언내언)

    『결코 두려움때문에 협상을 하지는 맙시다.그러나 협상을 두려워하지도 맙시다』­잘 알려진대로 존 F 케네디 미국대통령의 33년전 취임사의 한토막이다.동서 데탕트시대의 개막을 알린 이 케네디수사는 『양편 모두 편을 갈라놓는 문제를 찾으려 애쓸것이 아니라 단합시키는 문제를 찾아나섭시다』로 이어진다. 전쟁위기론에서 협상국면으로 급진전한 북핵상황에서 남과 북이 가져야할 자세로 받아들일만한 얘기다.남북정상회담의 논의와 관련한 우려와 기대는 그런 자세를 더욱 절실하게한다. 제재국면의 전쟁불감증과 전쟁불안감처럼 대북협상에대한 반응은 엄중경계론과 무조건대화론이 좌·우의 넓이만큼이나 멀다.대통령이 조기성사의 적극적 입장을 선택하고 주도적인 조치를 취하고있는 여당안에서도 계파에따라 다른 목소리다.대표위원은 북한의 술수에 말릴 우려가 있다는 불신론인데비해 주류측은 역사적인 전기가 될수 있다는 적극론이다. 민주당은 환영일색이다.북한에대한 유화론의 연장에서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있다.메신저 노릇을 한 카터를 두고도 여당은 비판적이고 야당은 두둔하고있다.한마디로 여야는 성사된다면 민족적 행사가 될 남북정상회담을 두고도 건설적인 대화보다는 정치싸움을 벌이고있다. 시중에는 걱정도 많다.우리측이 너무 떠들썩해서도 안되고 북한을 자극해서도 안되며 속아서도 안된다.형식적으로 만나서도 안된다는 의견과 만남자체만도 의미가 크다는 해석이 엇갈린다.민주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 갈라지고 걱정이 많아서야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성공할수있을지 걱정이다. 국론의 통일은 위기보다 대화국면에서 더 긴요하다.이런 때일수록 국정최고책임자에게 힘을 모아주는게 선진국의 모습이다.그런점에서 국민당·신정당이 정쟁과 사회적 갈등의 한시적 중지와 범국민적 지원체제구축을 제의한 것은 어쨌거나 작지만 신선한 충격이다.
  • 「민주계출신」 오히려 “불리”/민자 보선후보 인선 배경

    ◎여성후보 임진출씨 막판 역전극 민자당의 영월·평창군및 경주시지구당 위원장직무대리에 대한 인선작업은 상당한 장고 끝에 23일에야 확정됐다. 민자당은 오는 7월말이나 8월초에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이들 지역의 보궐선거를 위해 당선가능성에 역점을 두고 후보자를 물색해 왔다.공개신청자만 해도 20여명이 넘었고 각 계파는 물론 실세인 민주계 안에서 조차 의견이 엇갈리는등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그만큼 뒷얘기도 무성하다.해당지역 일부에서는 인선결과에 대해 거세게 반발,조직마찰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영월·평창지역에 임명된 김기수경찰청차장은 원성희씨와 막판까지 각축전을 벌였다.대한중석사장을 지낸 원씨는 민추협 조직부장등을 거친 정통 민주계 인사로 민주계의 전폭적인 지원에다가 여론조사에서 한때 1위를 차지,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었다.그러나 민주계의 인사독주에 대한 불만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김차장은 지난번 경찰인사 때 이 지역에 측근인사들을 상당수 포진시키는등 착실히 준비해 온 점이 높게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민주계의 최형우내무부장관은 「옛 동지」와 「지금의 부하」사이에서 처신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특히 원씨의 탈락에 대한 민주계 인사들의 불만은 적지 않은 편인데 황명수의원이 이날 당무회의에서 민주화 투쟁을 벌인 동지들에 대한 배려를 호소한 것도 이같은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주지역에서는 여성인 임진출한국여성로터리클럽연합회장이 막판 역전극을 이끌어 냈다.임씨는 국민당 출신이라는 점이 취약부분으로 지적받았었다.그러나 당선되면 유일한 여성지역구 의원이 되고,지난 총선때 경주군에서 민자당의 황윤기의원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등 득표력에서는 가장 앞서고 있는 점이 낙점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권령해전국방부장관은 청와대쪽의 후원아래 한때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으나 지역정세 등을 살핀 본인의 고사로 선정대상에서 제외됐다는 후문이다. 민자당은 오는 28일로 잡힌 박철언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박의원의 대구 수성갑지역의 보궐선거를 이들 지역과 함께 실시한다는 방침이다.민자당은 24일의 영월·평창및 대구지역,다음달 1일의 경주지역 당원교육을 계기로 본격적인 보궐선거 채비에 들어갈 계획이다.그러나 이번 선거만은 중앙당의 개입을 배제하고 철저한 지역선거로 치르겠다고 밝히고 있다.새 선거법에 맞춘 「모범선거」가 확실한 득표전략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하지만 「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와 「최소한 2곳에서의 승리」라는 두마리 토끼를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 “나는 한국전에 이렇게 참전했다”/구소군의 증언

    ◎구소군 장교 2인의 회고담 북한의 남침은 소련의 지원 아래 준비되고 감행되었다.한국전쟁 개전후에는 지상전투부대를 보내지는 않았으나 공군력과 정보장교등을 비밀리에 참전시켰다. 오늘날 러시아가 관련 극비 문서까지 한국에 넘겨줄 정도로 양국간의 관계는 크게 변했다.이렇듯 상황이 달라졌고 또 당시 한국 전투병력과의 직접접촉이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 참전자들은 자신들의 체험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이들은 체험담에서 당시 소련군이 참전 사실 자체를 숨기려 중공군으로 위장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올로프/“특수임무” 받고 단동서 중국군에 합류/수풍발전소 방어지원… 미 포로 심문도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51년 나는 정보장교로 모스크바에서 근무하고 있었다.계급은 육군대위였다.2월말 어느날 총참모부에서 나를 포함,우리부대 장교 몇명을 호출했다.해당자 모두 영어를 할줄 알고 전자정보분야에 근무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한밤중에 우리를 면담한 게르만 말란딘 참모차장은 우리에게 특수임무를맡기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며칠 뒤 우리는 민간인 복장을 하고 모스크바­만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7일만에 만주역에 도착했고 거기서 이틀만에 북경에 도달했다. 우리가 탄 열차에는 모두 민간인 복장을 한 공군장교와 군사고문단등이 가득 타고 있었다.북경에 도착하자 주중 소련군사고문단장이 우리 목적지가 중국의 안동(단동)이라고 알려주었다.그로부터 며칠 뒤 안동으로 갔다.안동은 전선을 방불케했다.한국전선으로 가기 위해 중공군들이 곳곳에 집결하고 있었고 병력·군장비들은 모두 위장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배속된 안동주둔 소련군 제64비행단의 임무는 압록강 철교들과 수풍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중지원,국경으로부터 반경 75㎞내 북한영토에 대한 공중지원이었다.소련군 조종사들은 북위 39도선 이남과 서해상공에는 출격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받았다.소련군의 한국전 참전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안동에는 야간에는 등화관제가 실시됐고 미군 폭격기 B­29기,B­26기들의 밤낮으로 압록강철교 상공에 출현했다.안동에 도착한 이튿날 우리는 견장·표식이 전혀없는 중공군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64비행단 소속 모든 전투기들은 중공군이나 북한군 표식으로 바꿔 달았다.전투중 소련조종사들은 모두 중국어로 교신토록 명령을 받았다.그러나 실제전투에서 우리 조종사들은 대부분 중국어를 잊어먹어 러시아어로 교신했다.소련당국의 은폐기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참전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미군 조종사들은 공중전 중 육안으로 우리를 식별할 수 있었고 우리가 러시아어로 교신하는 것을 모두 들었다.그럼에도 미군측은 우리의 참전을 공식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았다. 우리 정보팀은 미공군의 조직·배치·전투능력등을 사령부에 보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미공군이 사용하는 암호를 판독해 미군기들의 정확한 이륙시기등도 즉시 사령부에 보고했다.우리 사령부는 세이버기를 미그­15의 가장 무서운 적으로 생각했다.우리는 포로로 잡힌 미군들도 심문했다.나를 포함해 영어를 할 줄 아는 장교 몇사람이 북한내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미군과의 직접접촉은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면으로 심문했다.그러는 중에 나는 몇차례 그들을 직접심문할 기회가 있었다.그중 51년 5월에 격추된 B­29기 조종사 블랙 중령이란 사람의 이름이 기억난다.3개월간 미군포로 심문 임무를 마치고 나는 다시 안동으로 돌아왔고 그해 10월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왔다.9개월여의 참전기간중 중공군측은 우리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음식·잠자리 모두 나무랄 데가 없었다.소련·중공·북한군들간의 사이도 아주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발렌틴 골루베프/중국공군 위장… M15로 미군기와 교전/51년 안산 이동,북한조종사 기술교육 1950년6월 나는 모스크바방공군 소속 공군중위로 모스크바 북서쪽 칼리닌시(현트베르시)부근 비행대에 근무하고 있었다.나는 항공기 기술장교였다.우리는 49년말부터 새 전투기인 미그­15기의 관련기술을 습득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어느날 모스칼렝코 방공군대령이 우리 부대를 방문했다.모스칼렝코대령은 우리 부대가 특수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일체의 휴가가 중지됐고 휴가중인 군인들은 조속히 귀대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그로부터 우리는 매일 24시간 주야로 근무하며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전투기들을 해체해 기차에 싣는 작업을 했다.해체된 비행기는 특수컨테이너에 넣어 열차에 실려졌다.모든 부대원들에게 무기가 지급됐고 대신 당원증,콤소몰 회원증,신분증은 모두 사령부에 반납했다.그때부터 부대원간에 절대 계급을 부르지 말고 이름,그것도 가능한 한 성만 부르도록 엄명이 내려졌다. 그해 8월초 우리는 해체된 비행기를 실은 열차에 함께 타고 출발했다.열차는 남쪽으로 계속 달려 중국국경쪽을 향해 갔다.마침내 국경을 지나 만주역에 도착했다.만주역에서는 중공군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최종목적지는 목단이었다.50년8월말부터 우리는 목단의 한 행대에서 첫 임무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소련군은 3개의 비행연대를 운영했다.부식조달,막사등은 전부 중공군이 맡아서 했다.우리의 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웠다.신문·잡지등이 본국으로부터 배달됐고 시내 나들이도 간혹 했다.시내 나들이를 할 때 우리는 민간인복장을 했는데 국민당 잔당들이테러를 자주 저지른다고 신변보호를 위해 중공군 2∼3명이 반드시 우리 뒤를 따라다녔다.10월말 우리는 중국인민해방군복장을 지급받아 겉으로는 중공군이 됐다.중국말 교습도 받았다.우리 공군기들의 표지도 중공군으로 바뀌었다. 12월 우리는 전투기들과 함께 안동(현 단동)으로 이동했다.그곳에서 우리는 압록강철교와 수력발전소 보호를 위한 공중지원을 맡았다.안동에 도착한 바로 이튿날 우리 부대는 미군기의 폭격을 받았으나 큰 피해는 없었다.조종사들은 매일 2∼3회,일요일이면 3회이상씩 출격해야 했다. 한번 출격하면 쌍방 모두 합쳐 60∼80대가 맞붙었는데 항상 미군기의 수가 더 많았다.서해 상공에서도 자주 공중전이 벌어졌다.당시 미군 세이버기는 우리 미그­15기에 비해 다소 성능이 앞섰다. 51년4월 우리 부대는 안산시 비행대로 옮겨가서 중공군과 북한군의 조종사·기술자들을 교육하는 새 임무를 맡았다.당시 젊은 북한 여군들이 통역으로 따라온 기억이 난다. 우리는 51년10월 한국전 임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왔다.우리 연대에서 모두4명의 조종사가 전사했고 전투기 6대를 잃었다.본국에서 우리는 모두 무공훈장을 받고 일계급 특진됐다.중공정부로부터도 친선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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