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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스타 대거 출진…총선판도 새변수/「얼굴」무기로 표밭갈이 분주

    ◎박성범·이윤성·맹형규·김한길씨 도전­신한국당/정동영·유재건·정한용씨에 돌풍 기대­국민회의/김희라·이대엽씨 앞세워 수도권 교두보 확보 모색­자민련 오는 4월 15대 총선에서는 「안방스타」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다.TV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앵커 출신이나 방송인,연예인들이 그 주역이다.이들은 「얼굴」을 무기로 여야 각당의 부름을 받고 표밭 공략에 나서고 있다. ▷신한국당◁ ○…KBS 9시뉴스 앵커출신의 박성범 전 보도본부장은 서울 중구에서 국민회의 중진인 4선의 정대철부총재에게 도전장을 냈다.역시 KBS 9시뉴스 앵커출신인 이윤성씨는 인천 남동갑을 맡아 최근 3개 CF를 통해 「얼굴」을 더 알리는데 주력하면서 표밭을 다지고 있다.SBS 8시뉴스 앵커출신의 맹형규씨는 서울 송파을을 맡아 여성표를 집중 공략하며 발판을 넓히고 있다.특히 이 지역은 비교적 여권성향표가 많은데다 맹씨에 대한 평가도 호의적이어서 신한국당이 기대를 걸고있다.이밖에 MBC 9시뉴스 앵커출신인 엄기영씨는 서울지역 영입대상으로 분류되고있다. 방송인으로는 교통전문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가수 서유석씨가 경기 고양을에 거론되고 있으며,TV토크쇼 진행자인 김한길씨는 경기 분당을 원해 오세응의원과 공천 경합중이다.탤런트 출신에는 최영한전국구의원과 이덕화씨가 있다.최의원은 TV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15년동안 출연해온 「전원일기」를 중도포기,지역구에 매달리면서 국민회의 김민석씨와 서울 영등포을에서 격돌할 태세다.이씨는 지난 92년 대선 때 민자당 연예인자원봉사단으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경기 광명갑을 맡아 국민회의 남궁진의원과 한판 붙는다.코미디언 출신으로 지난 14대때 국민당으로 당선,신한국당에 입당한 정주일의원은 경기 구리에 재출마할 계획이나 공천여부는 불투명.또 지난 11대때 서울 용산갑에 출마,낙선했던 영화인 강신성일씨는 대구 동을에 공천이 유력시된다.강씨는 당시 본명인 강신영으로 출마했다가 신성일이라는 예명이 유권자들에게 「입력」이 덜 됐다는 분석아래 이번에는 아예 본·가명을 합친 강신성일로 개명해 맹렬히 도전하고 있다.이밖에 아직 확정단계는 아니지만 MBC탤런트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지난번 영입을 시도했다가 무산된 유인촌씨도 아직 유효한 상태이며 역시 탤런트인 한인수씨도 영입대상으로 거명되고 있다. ▷야권◁ ○…변호사로 TV심야토론에서 명성을 얻은 유재건씨를 이미 부총재로 영입한 국민회의는 이번에 MBC 정동영앵커(43)를 전격 영입했다.TV 앵커출신이 없는 점을 감안,정씨의 대학동창인 이해찬 전 서울시부시장과 박지원대변인이 오랫동안 설득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정씨는 고향인 전북 임실·순창에 박정훈의원(전국구)이 낙점상태에 있어 서울 또는 전주출마가 유력시 되고있다. 국민회의는 이미 가수출신 최희준씨를 경기 안양 동안갑,탤런트 정한용씨를 구로갑의 조직책으로 내세웠다.최씨는 지난달 22일 지구당 창당대회이후 아예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췄다.정씨도 최근까지 MBC 주말연속극 「아파트」에 출연했으나 6일 밤 극중 중국출장으로 처리돼 브라운관을 떠났다. ○…민주당에서는 동대문 시의원인 KBS 탤런트 김을동씨가 총선출마를 희망,공천신청을 내기 위해 최근 의원직을 사퇴했다.그러나 당 지도부에서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시·도의원의 공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당론을 정해 공천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다. 민주당은 TV스타에 대한 반대여론을 의식,영입에 다소 비판적이나 1∼2명 정도의 영입은 필요하다고 보고 대상자를 물색중이다. ○…자민련은 영화배우겸 탤런트인 김희라씨를 광진을에 내정,수도권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김씨는 지난 주말 MBC 코미디프로 특별출연을 끝으로 지역구 일에 매달리고 있다.같은 영화배우 출신 이대엽 전 의원은 성남 수정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고 최무용씨도 파주에서의 재기를 검토중이다. 아나운서실장 출신인 변웅전씨는 한영수원내총무 지역구인 충남 서산을 물려받은뒤 열심히 표밭을 다지고 있다.
  • 원광호의원 탈당

    신한국당 원광호의원(원주시)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92년 대선자금 공개 등을 요구하며 신한국당 탈당과 무소속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14대 총선당시 옛 국민당 후보로 출마,당선된 후 민자당에 입당한 원의원은 지난 달 20일 현역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지급된 귀향활동비 1백만원짜리 수표 5장의 복사본을 제시하며 『마땅히 줘야 할 깨끗한 정치자금이라면 돈의 출처를 떳떳하게 공개하고 주저함없이 명분있게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보조금 나눠 준것” 이에 신한국당의 이신범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원의원이 당이 지급한 연말 귀향활동비를 「검은 돈」운운하며 개혁정책을 비꼰 것과 관련,『연말연시를 맞아 국고보조금을 쪼개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지급한 의례적인 활동비를 문제삼아 개혁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정치인 이전에 인간의 기본도리를 저버린 행위』라고 비난했다.
  • 1995년에 사라진 별들

    ▷국내◁ ◎전 국무총리 진의종씨 해방후 상공부차관과 한전부사장을 거쳐 8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10대 선거에 낙선한뒤 10·26 이후 보사부장관으로 입각.11·12대 민정당의원으로 당선된뒤 대표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의학박사 장기려씨 지난 25일 서울 백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국의 슈바이처」.서울대·가톨릭대 의과대학교수를 역임했으며 68년 영세민을 위한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고 79년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민법학자 안이준씨 지난 3월19일 서울 중앙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 향년 65세.안교수는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뒤 경희대교수로 재직했으며 민사법학회장을 지냈다.주요 저서로는 민법총칙,채권법 등이 있다. ◎법조인 김성일씨 법관의 정도로 일컬어졌으며 10월31일 상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60세의 나이로 순직.그는 서울법대를 졸업한 후 천안지원 판사를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제주지법원장을 역임했다.간결한 판결문 정착에 애썼다. ◎전 대법관 김갑수씨 강직한 대법관의 대명사로 꼽혀온 변호사.1월26일 하오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향년 82세.김변호사는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나와 평양법원판사를 거쳐 법무·내무차관을 역임했고 지난 60년 대법원장 직무대리 시절 군사정권에 맞서다 법복을 벗었다. ◎충남방적 이종성 회장 지난 70년 부실기업인 국안방적을 인수한지 10년도 안돼 오늘날의 충남방적으로 키웠다.81년에는 국민당에 입당,1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국민당의 부총재·전당대회의장 등을 거쳤다.공직자·기업인·정치인으로 거듭된 변신을 하면서도 성공을 거뒀다. ◎명창 김소희여사 우리 시대의 소리꾼.지난 4월17일 78세로 별세.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기능보유자로 우리 국악의 양갈래를 이루는 「동편제」소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국창」.그의 소리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제1회 한국국악대상,대한미국 문화예술상등을 수상했다. ◎추상조각가 문신씨 지난 5월24일 73세를 일기로 타계한 추상조각의 거장. 국내보다 세계화단에서 더 명성을 떨친 추상조각가로 90∼92년 미술의 본고장 유럽을 순회하며 가진 회고전에서 호평을 받았고 9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기사 훈장을 받았다. ◎작곡가 윤이상씨 세계적인 음악가이면서도 끝내 이역땅에서 유명을 달리 한 비운의 예술가.지난 11월4일 78세를 일기로 독일땅에서 서거한 그는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힐 만큼 큰 족적을 남겼다.67년 동백림사건으로 「이데올로기의 멍에」를 쓰고 71년 독일에 귀화했었다. ◎작곡가 길옥윤씨 지난 3월 17일 68세로 별세한 우리 가요계의 대표적인 작곡가. 대표작으로는 「서울의 찬가」 「이별」 「빛과 그림자」 「4월이 가면」. 가요생활 50년을 통해 작사·작곡·편곡한 노래가 3천여곡이 넘는다. 서울 세종로공원에 「서울의 찬가」 노래비가 건립됐다. ◎소설가 김동리씨 지난 6월 17일 82세로 별세한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60여년 작품활동을 통해 「무녀도」「황토기」「사반의 십자가」「을화」등 1백여편의 장·단편소설을 남긴 현대문학의 증인.서라벌예대 교수,한국문인협회장을 역임했다. ◎레슬링선수 송성일씨 위암으로 1월29일 타계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백㎏급 국가대표선수.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번지는 것도 모른 채 위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를 걱정하며 혼신의 투혼을 발휘,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배구선수 김병선씨 대학졸업을 불과 4일 앞둔 2월21일 심장마비로 숨진 남자배구의 큰 별. 2m의 장신으로 성균관대학 1년 때부터 부동의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하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데 주역을 담당했다. ◎경제학자 고승제씨 함남 출신으로 학술원회원을 지낸 원로 경제학자.일본 릿교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서울대·고려대·연세대 교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경제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대림창업주 이재준씨 지난 39년 대림그룹의 모태인 부림상회를 세워 목재업과 건자재업에 진출한뒤 한평생 건설 외길을 걸어왔다.한국전쟁후 복구특수를 활용해 기반을 다졌고60년대 중반부터 해외건설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섰다.지난 88년 장남인 이준용 대림그룹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겼다. ▷국외◁ ◎반전기수 풀브라이트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설립자이자 베트남전 당시 「권력의 오만」을 출간,반전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인물.지난 2월10일 워싱턴 자택에서 90세로 타계했다.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맹비난,미군의 베트남철수에 기여했다. ◎전 일 총리 후쿠다 지난 7월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그는 대장상과 외상 및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한 뒤 76년 미키 다케오 전총리에 이어 67대 총리로 취임,중국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하고 도쿄국제공항 개항등 현안을 처리했다.그는 86년 중의원 14선을 역임한뒤 90년 정계에서 은퇴했었다. ◎미 언론인 레스턴 미국 언론인들의 최고상인 퓰리처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는등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언론인중의 한 사람.지난 12월6일 워싱턴DC의 자택에서 암으로 숨졌다.그는 뉴욕타임스에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제임스 레스턴 칼럼」을 연재,필명을 떨쳤다. ◎중 실용주의거두 진운 중국의 최고실력자 등소평과 함께 모택동사후 중국정치를 요리해온 인물.지난 4월10일 노환으로 90세에 사망했다.모택동으로부터 「당내 제일의 경제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50년대부터 실용주의 경제노선을 지향,모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중동평화 상징 라빈 지난 11월4일 텔아비브에서 중동평화협상 지지집회에 참석중 극우파학생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그는 군생활 28년을 거치는 동안 아랍세계와의 6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었으며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모색한 평화노력으로 9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케네디 모친 로즈 1월 1백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그녀는 19 14년 조지프 페트릭과 결혼,케네디가와 인연을 맺은후 대사의 아내로서,대통령과 두 상원의원의 어머니로서 최상의 영광을 누렸으나 9명의 자녀중 두명의 아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는 암살의 비극을 겪기도 했다. ◎전 영국총리 윌슨 60년대와 70년대초 영국 노동당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79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그는 29세때 하원에 진출한뒤 2년후 무역장관으로 취임해 최연소 입각기록을 세웠다.64년 총선에서 승리한뒤 총리 재임기간동안 줄곧 미국의 베트남 파병요청을 거부하고 반전무드를 조성해 영국노동당 시대를 주도했다. ◎전 일 부총리 와타나베 지난 9월 72세를 일기로 사망한 그는 『한일합방은 원만하게 체결됐으며 36년간 통치했지만 식민지 지배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는 망언을 남긴인물.63년 고향에서 중의원에 당선된이래 대장상·당정조회장등 요직을 거쳤고 대북한 쌀지원 협상에서는 막후조정을 벌였다. ◎영국시인 스펜더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지난 7월 86세로 타계했다.그는 20세기 영국의 인도주의적 사상을 대표한 강력한 자유주의적 운동을 펼쳤으며 30년대 비평가들로부터 이 시대의 가장 저명한 3인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고의 양심 질라스 공산주의의 모순을 비판한 저서 「새로운 계급」으로 유명한 티토치하 유고의 대표적 반체제인사.83세를 일기로 4월20일 심장병으로 사망.부통령에 올라한때 티토의 후계자로 지목되기까지 했으나 공산체제에 염증을 느껴 반체제 이론가로 변신했다. ◎백신개발 선구자 소크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해 인류를 불구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의료계의 선구자.80세를 일기로 지난 6월23일 사망했다.뉴욕대학 의학부를 졸업,면역학및 세균학을 연구했으며 「소크백신」개발 후에는 샌디에이고 소크연구소에서 다발성 경화증과 암연구에 몰두했다.
  • 신임 부총리­청와대 비서실장 인터뷰

    ◎나웅배 경제부총리/“민생 역점… 신경제정책 일관 추진”/국민 생활 안정 뒷받침에 최선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뒷받침과 노력을 하겠습니다』 신임 나웅배 경제부총리는 20일 개각발표 직후 민생에 역점을 두어 경제를 운용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그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제시하고 약속하기보다는 문민정부에서 추진해오던 신경제정책을 일관성을 갖고 하나하나 착실히 실천하겠다』며 『신경제정책의 테두리 내에서 신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신임부총리는 옛 재무장관과 상공장관 및 경제기획원장관을 다 거친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이다.이들 경제부처장관을 역임하면서 그는 재무부는 힘있는(powerful) 부처,상공부는 화려한(colorful) 부처,그리고 경제기획원은 명예로운(honorable) 부처로 작명했었다.지금도 경제부처에서 회자되는 말이다.그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진 재정경제원장관에 발탁됨으로써 명예롭고 힘있는 자리에 앉게 됐다.서울상대 교수 출신으로 해태제과·한국타이어사장을 지냈고 4선의원에다 장관을 5회나 역임(부총리 3회)한 팔방미인이다. 서울대 교수를 지내다 한때 재계에 입문,변신한 동기에 대해 그는 『실천을 전제로 한 경영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사석에서 『6남2녀의 장남이어서 교수봉급만으로는 부족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그의 실물경제경험과 합리적·보수적 경제관으로 인해 비자금사건으로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재계는 일제히 환영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늘 웃는 얼굴이며 소탈하다.논리도 정연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다채로운 경력도 경력이지만 품성과 자질 때문에 그를 알고는 「쓰지 않고 못배길」 정도의 사람이라는 호평을 듣기도 한다. 그가 기용된 것에 대해 『경제운용의 중심축이 청와대에서 재경원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82년의 이철희·장영자 사건으로 재무장관에서 5개월여만에 물러났으나,상공장관시절인 86년에는 처음으로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부인 박효균씨(60)와 은행에 근무하는 장남,미국 유학중인 차남이 있다. ◎권오기 통일부총리/“「국민의 소리」 담긴 통일정책 도출”/북의 자력개혁 우리가 도와야 『통일로 향해 한발 두발 다가가고자 합니다』 20일 현직 언론사 사장에서 통일안보팀의 좌장으로 전격 발탁된 권오기 신임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취임 일성이었다.그의 이같은 다짐은 통독의 초석을 다진 옛서독의 헤르베르트 베너 전내독성장관의 「작은 발걸음 정책」을 연상케 했다.아울러 점진적·현실적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시사로도 받아들여졌다. ­취임 소감과 각오는. ▲나 자신도 얼떨떨하다.대통령의 간곡한 권유에 대해 사양하다 결국 맡게 됐다.맡은 이상 재임중 통일을 내손으로 다 이루겠다는 것은 거짓말이고,한발 두발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겠다.국민의 목소리를 한데 묶어서 통일정책을 추진하겠다. ­자신의 대북관이 진보·보수중 어느쪽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제는 그러한 양분법적 잣대로 봐서는 안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민주화·시장경제화·인권과 환경존중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 세계화라고 한다면 통일도 그러한 기조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이 자칫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는 오해를 살 소지도 있는데. ▲흡수통일은 좋지 않다.통독 직전의 동독 총리인 드 메이지에르는 언젠가 개혁을 하고 있는 체코는 활력이 넘치는 반면 개혁을 당하고 있는 동독은 활기가 없었다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북한이 개혁 당하지 않고 스스로 개혁하도록 우리가 도와주는 것이 통일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역대 정권에서 여러 차례 입각을 제의받았으나 언론의 외길을 걸어온 원로 언론인.자유당 시절인 지난 56년 경향신문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동아일보 워싱턴 및 동경특파원,정치부장,편집국장 등을 거쳐 사장에까지 올랐다. 동아일보 사장 자격으로 TV광고에 나갈 정도로 호감이 가는 마스크에 대화를 좋아하고 주위에 적이 없는 원만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지난 70년대 동아일보정치부장 재직시 기사와 관련해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협박과 테러를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경북 안동 출신으로 부인 최영주씨와 1남2녀. ◎김광일 비서실장/“대통령의 「국정 결정」 소신껏 보좌”/「청와대에 대한 비판」 적극 반영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중대한 과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해 나가겠습니다』 신임 김광일 대통령비서실장은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신한국당 의원·지구당위원장회의 참석도중 인선소식을 듣고 이같은 각오를 밝혔다.그는 이어 『역사바로세우기의 목표는 확고하다』면서 『방법론이나 대통령의 직무수행 방식에 대해 일부 비판들이 있다면 모두 전하겠다』고 덧붙였다. 재야 인권변호사 출신의 김실장은 76년 명동사건때 김대중 국민회의총재의 변호를 맡아 한때 동교동계로 분류되기도 했다.그러나 13대 국회때 김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원내에 진출한 뒤 우여곡절에도 불구,「YS사람」으로 불리울 만큼 김대통령의 신임을 받아왔다. 13대 총선으로 이루어진 여소야대 정국에서 통일민주당 기조실장으로서 악법개폐와 청문회등을 맡으면서 김영삼 총재를 가까이 보좌했다.그러나 3당 통합 과정에서 민주당에 잔류한 뒤 국민당에입당하는 등 한때 다른 길을 걷기도 했다.이에 대해 『합당 때 잠시 떨어져 있게 된 것도 정치적 견해차이였을 뿐』이라면서 『김대통령은 수단으로서 합당을 했고 지금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행정개혁의 획기적 기구로 발족한 국민고충처리위 초대위원장을 맡아 탁월한 업무추진력을 인정받기도 했다.그는 최근 신한국당 서울 송파갑지구당위원장을 맡고 김대통령으로부터 『내년 총선에서 중요한 수도권을 지켜 달라』는 당부를 받은 뒤 5·18특별법 기초위원으로 맹활약했으나 이제 다시 15대 총선출마 대신 대통령 곁을 지키게 됐다. 김실장은 15대 원내복귀 기회가 없어진 데 대해 『개인적으로서는 희생일 수 있지만 국회의원이 되는 것 못지않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또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비서실을 통할하고 국민의 소리와 정당의 의견,내각의 정책집행이 제대로 조화·종합되도록 대통령의 결정을 보좌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홍콩파견 관리 40명 교육/중국,공무원들 탈출 대비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은 주권을 받환받는 97년을 전후해 홍콩 공무원들이 대량으로 빠져나가 정부업무가 마비될 경우에 충당하기 위해 북경 서산소재 중앙당교(교장 호금도)에서 40명의 중국관리들을 교육중이라고 홍콩의 중국어신문 빈과일보가 20일 보도했다. 이들 관리는 북경에 내년부터 설립돼 예비정부 역할을 할 「홍콩특별행정구 정부임시비서처」에서 근무하다가 홍콩 공무원들의 대량 이직사태가 발생하면 특구정부에 파견돼 정부 운영에 직접 관여할 것이라고 교육받고있는 한 관리가 익명을 전제로 빈과일보에 밝혔다. 이들은 홍콩의 정치,경제,금융,사법제도를 비롯 현 홍콩정부의 구조와 운영방식,공무원제도 외에 중국공산당이 49년 국민당으로부터 상해시를 인수한 방식까지 교육받고 있다고 이 관리는 말했다. 빈과일보는 별도의 관련 해설기사에서 북경소식통의 말을 인용,97년이 다가옴에 따라 「상해방식」으로 홍콩을 접수하자는 분위기가 중국관리들 사이에서 팽배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 대만 국민당 내분 막는길(해외사설)

    대만의 국민당이 임양항과 학백촌을 당에서 제명하고 출당한 것은 국민당 내부의 이념 및 정견 차이,이익충돌 및 권력충돌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국민당의 이번 내분은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국민당의 뿌리를 흔들고 대분열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그동안 국민당내부에선 당권파의 「소외」현상이 진행돼 왔다.이상적인 소장의원들이 탈당,「신당」을 창당한 이래 몇달전 당 중앙위원겸 감찰원장인 진리안이 탈당,내년 3월 총통직선에 출마를 선언했고 당 중진인 임양항과 학백촌 역시 내년 총통선거출마를 선언하다 제명된 것도 이러한 현상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대만정치에 제3의 세력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며 국민당의 정예들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상징한다.그만큼 국민당 당권파가 직면한 도전은 적잖다할수 있다.그러나 이들이 이등휘의 재선에 위협 세력이 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찾을수 없다. 국민당의 근본적인 변화는 당을 이루는 인적구조의 변화에서 찾아진다.대만성출신의 비율이 높아가면서 이들은 당권파를 떠받치는 힘이 됐다. 그러나 일련의 변화에서 국민당은 「검은돈의 정치」의 폐단을 직시하고 내부 민주화개혁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내분의 격화를 막을수 없다. 뒷거래와 검은돈의 정치가 깊숙이 선거과정에 개입돼 있고 정치를 저질화시켰다는 것에 국민당 지도부의 책임을 피할길 없다.국민당이 검은돈의 정치를 청산할 이상을 갖지 못하고,이를 실행할 결심을 갖지 못한다면 정치의 청렴도가 그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또 그렇지 않는다면 깨끗한 정치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증가경향에 따라 국민당의 의석과 영향력의 감소는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국민당의 내부소외현상은 당내 민주화의 결여와 상관관계를 갖는다.민주화정신에 맞게 당내운영규칙을 개선하고 이익추구집단에서 벗어날때 국민당의 생존의 길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 한국 「부패와의 전쟁」 저력은 민주화/미 비즈니스위크지 분석보도

    ◎일본·대만 등 동아시아에 파급될지 관심 미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에서 이달초 전대통령 노태우씨와 7명의 재벌총수들을 뇌물관련 혐의로 기소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층 뿌리깊어졌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한국과 똑같이 사회전반에 심한 부패 문제를 안고 있는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부패와 싸우고 이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한국의 정치적 의지를 공유하지 않아 부패정화에 관한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끊고 있는 한국의 남다른 독자성이 더욱 돋보인다는 비즈니스위크 기사 주요부분을 발췌한다. 한국의 오래된 부패 시스템은 점진적으로 보다 투명하고 시장경제·자유경쟁 체제에 맞는 새 시스템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한국의 35개 대표적 재벌들이 대통령에게 3억6천9백만달러의 뇌물을 바쳤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드러남에 따라 한국에서 뇌물수수 관행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며 이는 앞으로 한국의 재벌이 역량을 기준으로 서로 경쟁한다는 것을 뜻한다.또 이로 해서 독재적이고 가족중심의 재벌 체제가 전문경영인이 관리하는 기업체제로 변할 것임을 예상케 한다. 중요한 관심사의 하나는 한국의 이같은 정화 움직임과 노력이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로 파급될 것이냐의 여부이다.한국의 김영삼대통령이 약속하고 있는 정치적,경제적 개혁은 분명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일본 정계가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 개혁은 많은 허점과 틈이 드러나 보이고 있는데다 아직 선거를 통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는 상태다.대만도 이달초 선거를 통해 부패에 물든 집권 국민당에 대한 염증을 강도있게 표출했으나 더러운 돈을 주고받는 사회관행 자체를 근본적으로 문제삼고 이와 싸울 가능성은 아주 미미하다. 한국의 현 민주주의 체제가 80년대 후반부터 혁명에 가까운 과정을 통해 틀이 잡혀져온 덕분에 한국은 독직,수회와 용기있게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미국으로부터 헌법을 받은 일본에 비해 한국의 정체는 훨씬 자유를 스스로 쟁취하고 자치를 이룩한 기운을 품고 있다. 아무튼 지금까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자기네 국민들이 과연 한국처럼 뇌물관행에 기초한 시스템과 과감히 맞설 충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인지 의심스러워 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을 따름이다.
  • 「벼농사의 대부」 황용세(압록강 2천리:17)

    ◎황무지 수십만평 논으로 개간/중국 장작림 군벌 정부의 수리국장 설득/수로공사 지원받아 혼하물길 끌어들여/장작림 위기때 군량미 500가마 보내 보답 「만주땅 넓은 들에/벼가 자라네 벼가 자라/우리 가는 곳에 벼가 있고/벼 자라는 곳에 우리가 있네/우리가 가진 것 그 무엇이냐/호미 바가지 더 있는가/호미로 파고 바가지로 담아/만주벌 거친 땅에 볍씨 뿌려/우리네 살림 이룩해 보세」 중국 조선족에게 유전되던 1920년대 민요다.이 노랫말처럼 중국 동북땅 어디를 가나 논이 있는 마을을 들어서면 조선족이 살았다.그러니까 중국의 동북지역인 만주의 벼농사 효시는 조선족인 것이다.방죽 만들어놓으면 물고기 생긴다고 물이 있는 황무지에는 으레 조선족이 몰려들어 벼농사를 지었다. 압록강유역의 벼농사도 역사가 꽤 오래되어 거의 한 세기에 이르고 있다.18 95년 요령성 집안 팔왕조촌에서 처음 시작했다.이어 무순일대에서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와 포가둔에 자리잡은 송병주·김만리가 처음 논에 볍씨를 뿌렸다.19 06년에는 평안북도 벽동사람인 김시정이 시작한 이래 19 23년에는 심양일대로 벼농사가 번져 5천ha의 개간답에서 해마다 15만섬의 벼를 거두었다. ○연간 순수익 6∼7만원 오늘날 요령성에서도 벼농사 하면 조선족이 꼽힌다.요령성 안산시의 삼대자조선족진 형양기조선족진에 사는 박행관(37)씨는 소문난 벼농사꾼이다.자그마치 5백무(약 1만5천평)나 되는 논을 빌려 광작을 하고 있는 그는 요령성의 우수한 청년농민 10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해마다 비료값과 품삯이 뛰어오르고 국가의 수매가격이 보잘 것 없는데도 불구하고 연간 6만∼7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요령성의 조선족 농촌을 도는 동안 새로운 인물 한분을 주목하게 되었다.벼농사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황용세라는 인물이다.해방 이태전에 작고했는데,그의 아들인 수복(수복·63)노인이 심양시 우홍구 조화향의 영수촌에 살고 있다.수복노인은 황용세의 넷째아들이다.맏이와 둘째는 중국에 살다가 고인이 되었고 서울에 살던 셋째는 영수촌을 다녀간 이후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수복노인은 유일하게 남은 황용세의 아들인 셈이다.영수촌에서 처음 만난 수복노인은 거두절미하고 아버지 황용세의 마지막 죽음부터 장황하게 털어놓았다.아버지의 죽음이 원통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마을에서 십여리 떨어진 마전자마을에 수레거(차)자를 쓰는 차씨네가 살았다.그런데 논물을 가지고서리 우리집과 그집이 크게 다툰 적이 있었습네다.마침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일군 헌병대에 근무하는 차씨네 아들이 있어서리 우리를 걸고 넘어졌습네다.우리 아버지가 팔로군이었다는 것이었디요.그래서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 숱한 매를 맞고 석달만에 나왔디만 곧 돌아가셨지 뭡네까.차씨네는 광복이 나자 한국으로 들어갔디요.헌병대에 있던 아들은 한국에서 장관을 지냈다고 기래요』 황용세는 드라마틱한 일생을 살았다.1990년 평북 벽동에서 태어나 한일합병 이듬해 부친을 따라 요령성 홍경헌 홍묘자로 이주했다.이후 봉천(오늘의 심양)교외로 이사했다가 농사를 짓기 위해 아주 눌러앉은 지역이 조화향 영수촌.개간할 황무지는 얼마든지 있었으나 주위 늪지대 물을 끌어올릴 재간은 없었다.그래서 수십리 밖 훈하(혼하)의 물을 끌어오기로 결심했다.그러나 수로를 내는 데 필요한 자금은 막상 한푼도 없었다. 그래서 당시 중국 동북지방을 장악한 봉천의 군벌인 장작림(18 73∼1928년)정부 수리국에 「수전개발에 관한 청구서」를 냈다.수리국장은 성공이 불투명한지라 깔아뭉갰다.황용세는 수리국장을 직접 찾아나섰다.보잘 것 없는 조선족 농사꾼을 만나줄 리 만무했다.황용세는 생각다 못해 화려한 마차를 타고 집에서 나서는 수리국장의 출근길을 네활개를 펴고 누워서 막았다. ○수리국장 출근길 막아 그의 생떼질은 주효했다.수리국장은 황용세를 자기 사무실에서 만나준 것이다.수전개발의 타당성을 인정한 수리국장은 그 자리에서 서류를 작성했다.자금은 수리국에서 대고 공사를 실패할 경우 황용세가 죽음까지도 감수한다는 서약서를 붙였다.공사를 착공했을 때 한족지주들이 봇도랑을 낼 땅을 내주지 않는등 방해했으나 장작림 군벌정부에서 군대를 풀어 결국 완공했다.깊이 2m,너비 10m의 봇도랑으로 물이 흘러들어 영수촌일대 황무지는 옥토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1924년 북경의 군벌 오패부(오패부·1872∼1939년)가 3개군단을 풀어 장작림을 치는 사건이 일어났다.황용세는 조선족이 만주에서 살려면 장작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군량미 5백가마를 장작림군벌에 보냈다.중국인 지주와 자본가가 두 군벌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을 때여서 황용세의 군량미 기부는 장작림의 환심을 샀다.감동한 장작림은 『그 고려인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해서 황용세를 불러들였다. 황용세는 회색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차림으로 장작림을 만났다.훤칠한 체구의 황용세는 당당했다.그가 황씨라는 것과 요령성 홍경현 산골에 살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장작림은 더욱 감격하고 말았다.왜냐하면 장작림이 비적 두목시절 다른 패거리에 쫓겨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밭에서 들일을 하던 황용세 부자가 감춰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이후 중국 동북3성 도독이 된 장작림은 홍경현을 참빗질하듯 황씨 부자를 찾았지만 찾아내지 못했다.그런 판에 황용세를 만났으니 장작림의 기쁨이 컸다. 장작림은 황용세에게 소원을 물었다.황용세는 의형제를 맺는 것이라고 했더니 장작림은 껄껄 웃었다. 『내,자네 나이 보다 열여덟이 많으니 아버지뻘이 아니겠는가.내 큰아들 학량과 의형제를 맺도록 하세』 장작림이 아들 학량과 황용세의 결의형제의식은 대단했다.당시 「성경일보」도 이를 크게 실었다.황용세의 세력도 막강해져 동북3성 실력자가 되었다.1928년 장작림이 일본군 소행으로 폭사하고 나서 학량이 동북군 총사령관 자리에 올랐다.그리고 1936년 장개석을 서안에서 감금하는 서안사변을 일으킨 학량은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붙잡혔다.그런 와중에 몰락한 황용세는 친일파 차씨네와의 불화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새옹지마라고나 할까.황용세의 몰락은 공산당이 심양을 해방한 1948년 이전에 가문을 알거지로 만들었다.그래서 성분을 해방전 3년까지 본다는 공산당도 황용세의 아들들을 빈농으로 분류했다.
  • 대만 국민당 임양항 부주석 당적 박탈/오늘 당상무위 결정

    ◎입법원 선거서 야지지 【대북 AFP 연합】 대만 집권 국민당(KMT)은 12일 이달초 열린 입법원선거에서 야당편에 섰다는 이유를 들어 임양항 부주석과 학백촌 전행정원장의 당적을 박탈키로 결정했다. 이날 결정에 따라 이들 지지자들의 탈당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보여 1백1년 전통을 가진 국민당의 분당사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개징 국민당 기율위원회 주임은 이날 『임부주석과 학전행정원장이 당규를 위반해 이들에 대한 당적박탈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13일 열릴 당중앙상무원회에서 이들에 대한 당적박탈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임부주석은 지난달 내년으로 예정된 사상 최초의 대만 총통직선에 학전행정원장을 러닝메이트로 독자출마하겠다고 발표해 이등휘 총통과 결별을 선언했었다.
  • 대흥구 중국 심양(세계속 한인촌 탐방:3)

    ◎황무지를 옥토로… 딴 농촌의 3배 소득/5천여명 정착… 우리말·전통풍습 그대로 간직/된장국·김치 담그기 등 가르쳐 중국인을 조선화/「새마을 공장」 4백여곳 유치… 산업화 앞장도 중국 북동부 3개 성의 심장격인 심양.요령성의 성도이자 우리에겐 봉천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1시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구육성」이란 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초·중학교 우리말 수업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보신탕집 간판으로부터 2차선 찻길을 따라 조선음식점 1백여개가 줄지여 들어서 있다.심양∼대련 사이 고속도로가 곁에 있는 이곳은 심양시 우홍구의 「대흥향」.찻길 따라 음식점과 상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시 교외의 농촌이다.1만5천여명의 주민 가운데 3분의 1인 5천여명이 조선족인 우리동포 자치지역이다.명칭은 「대흥 조선족자치향」. 『20년대초까지 논은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였다.물이 부족해 농사가 어려웠고 극소수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지역이 있을 뿐이었다.그런 황무지를 송화강의 지류인 훈하를끌어들여 물길을 낸 뒤 논농사를 시작,궁핍에서 벗어나게 한 게 바로 조선족이었다』고 48년말부터 30여년동안 이곳 공산당간부로 일해온 지역지도자 이성일·67·전당서기)씨는 회고한다.길지 않은 이민역사와 한족에 비해 적은 인구에도 불구,조선족자치지역이 된 것은 『조선족 손으로 이곳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19세기말∼20세기초 가난과 일제침략을 피해 고향을 등진 사람이 모여 이룬 이곳은 우리말과 생활풍습을 고스란히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아이의 백일잔치,노친네의 환갑은 물론 전통양식을 보존한 제사풍습 등등.설날이면 이웃집에 세배다니고 농사일과 궂은 일이 있으면 몰려가 품앗이를 하는 등의 끈끈한 유대의식도 변치 않았다.순 우리말로만 수업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이곳 조선족은 절대로 한족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행여 자식이 한족과 결혼하려 하면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도 다른 지역에 사는 동포와는 약간 다른 풍습이다. ○연변 등 외지동포 이주 오히려 중국인을 「조선화」시켰다.노인등 어른에 대한 깍듯한 예절,논농사를 모르는 이들에게 쌀재배법을 전파시켰고 적잖은 이 지역 중국인이 김치를 담그고 된장국을 끓여먹는다는 데서도 대흥 조선족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가옥도 이웃 사이에 담장이 따로 없는 개방형 농가다.아이를 조선식 포대기에 들쳐업고 다니는 새색시.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쓰는 동·서혼합 결혼식.집안에 들어서면 구들방이 보이고 크고 검은 무쇠가마솥이 눈에 띄는 곳.안타까운 것이라면 국가규정 때문에 전통적인 무덤(토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문화혁명후 토장이 금지돼 화장한 뒤 죽은 이의 유골을 황해로 흐르는 훈하에 뿌리는 전통이 생겼다.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1910년말부터 평안도에서 일가친지 모두가 이주해온 황성출(65·전대흥향 공업책임자)씨는 『처음 이주자들은 몇년만 있다 고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었지만 1917년 오강소학교란 조선학교를,20년엔 기독교 예배당를 세우며 차차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러나 30년대초까지도 추수때면 한족 지주등에게빚갚고 나면 빗자루 하나만 남는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허일벽(72·전대흥향 정부농업조리)씨는 한때 1만여명 가까운 조선족이 모여 살기도 했지만 해방직후와 59∼60년 대약진운동의 실패여파로 상당수 북한으로 이주해갔다고 설명한다. 연변지역등의 조선족마을이 최근 도시이주등으로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지난해 역시 연변과 흑룡강성등 외지에서 이주해온 동포 가구로 1백호가량 늘었다.이곳 인구는 5천명정도지만 심양시 서탑지역,동릉구 혼하찬지역과 함께 10만 심양지역 조선족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해마다 9월초면 열리는 조선민속·운동절에 약 5만명 대부분이 가족별로 참가한다. 한·중 두 나라의 급격한 관계발전을 타고 이곳도 한국행 열풍엔 예외가 없다.4살때 평안도에서 왔다는 흥성촌의 김응석(69)씨의 세 아들중 두명은 한국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다.비자등 법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김씨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돈 많이 번다』며 자랑한다.김씨집은 산업화이전의 초가집이고 부엌엔 무쇠가마솥이 걸려 있다.해질녘에 불쑥 들른 취재진에게 『저녁은 꼭 먹고 가야 한다』며 붙드는 것이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옛 정서를 느끼게 한다. 한집 건너 김미영(33)씨 집 역시 남편이 지난해부터 한국서 일하고 있다.농토는 연변에서 온 조선동포에게 맡겨 임대수입을 받는다는 김씨는 남편을 보러 꼭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공단인접한 교통요지 개혁개방이 진전되면서 대흥향은 농공산업단지로 탈바꿈하려는 안간힘으로 한창이다.동북 최대공업단지 철서공단에 접해 있고 북경∼장춘∼하얼빈을 잇는 교통요지인 점도 산업화를 향한 행보를 재촉한다.우리 새마을공장격인 향진기업은 모두 4백6곳.지난해 공업생산은 4억위안(5천만달러)으로 농업생산액 1억위안을 앞섰다.피혁·의복·방직·장식재료등을 중심으로 외자기업의 유입이 늘고 있다.정명수 향정부 판공실주임은 『지난 91년부터 올해까지 외자기업의 총투자액은 7백60만달러』라며 『총생산액으로 볼 때 외자기업의 비중이 지난해 공업생산의 절반가량인 2억위안에서 올해는 2억8천만위안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밝은 전망을 소개했다. ○종업원지주제 첫 실시 이곳의 월 평균소득은 여타 농촌지역보다 3배가량 높은 7백∼8백위안정도.한 관계자는 한국 가서 일하고 부치는 노무소득·관광객안내비등을 합치면 실제소득은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향 행정책임자인 김재만 향장은 심양 조선족제1중학(고교과정)과 심양 정법대를 나온 35살의 청년이란 것도 이곳의 활력과 미래를 상징한다.김향장은 투자유치가 자신의 주임무이며 한국기업의 투자를 주민과 함께 기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최근 한국의 삼우금속과 합자로 총자본금 11억규모 심양 흥우금속제품공사설립을 계약했다고 설명한다.중국 공무원하면 경직된 행정관리가 연상되지만 김씨는 자칭타칭 「세일즈맨」임을 자랑으로 여긴다. 김향장은 『대흥향은 내년부터 중국 최초로 기업고정재산의 30%한도내에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는 기업개혁실험에 들어간다』며 밝은 대흥향의 미래를 자랑삼아 밝혔다.전통적으로 북한의 영향이 강하던 이곳에서 이들은 이제 한국의 존재는 우리민족의 자랑이라고 말한다.이들은한국을 모델삼아 공업화된 농촌속의 도시를 만들겠다는 경제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다. ◎장승균/“조선족은 문화수준 높아”/동북부 지역 벼농사 전파… 개발 한몫 중국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항일전쟁 및 해방전쟁(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특히 중국 동북부지역을 개간,수도작문화,즉 벼농사를 전파시켜 경제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조선족은 또 교육을 중시,문화수준이 높고 노래와 춤등 예술성이 풍부하며 호방하면서도 엄격히 예절을 지키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족은 60년대까지 대부분 농민이었으나 개혁개방후 각 방면으로의 진출,계층분화현상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연변지역등 농촌에 모여 살던 조선족의 도시이주가 최근 늘면서 일부 집성촌의 해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경상주 조선족은 현재 1만여명에 달하고 임시거주등의 인구까지 따지면 모두 3만여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조선족의 전체인구는 공식통계로는 1백92만3천여명으로 집계돼 있지만 조사연도(90년)와 전중국의 인구증가률 1.4%보다 낮은 1%가량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할 때 2백만명가량으로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한국방문 및 장기체류는 상대방 국가의 법률만 준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한국정부가 민족연관성을 배경으로 조선족에 대해 특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게 중국정부의 방침이다.
  • 「12·12 핵심부분」 접근하는 검찰

    ◎「반란」 매듭단계… 「내란」 입증에 박차/「보안사팀」 곧 소환… 「사전계획」유무 규명/「대통령에 협박」 최규하씨 증언에 승부 검찰이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출두통보와 함께 12·12사건 재수사가 점차 핵심부인 내란죄 입증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검찰은 유학성씨 등에 이어 8일에도 차규헌·김진영씨등 경복궁모임의 핵심대상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다음주부터는 내란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전대통령과 이른바 보안사팀에 대한 수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검찰의 이번 12·12 및 5·18 재수사가 신군부측의 반란죄에 그친 지난해 수사와는 달리 내란죄까지 규명하는 데 최종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검찰의 재수사가 핵심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은 반란죄에 이어 내란죄를 입증할 핵심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도 의미한다. 반란죄의 핵심조사대상자는 이미 소환되고 있는 「경복궁모임」 참가자들이고 내란죄의 핵심조사대상자란 대통령 재가시 협박여부를 증언해줄 최전대통령과 정권창출을 위한 장기계획의 실존여부를 확인해줄 이른바 「보안사팀」이다.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경복궁모임」에 대한 핵심인물인 유학성·차규헌·김진영씨등에 이어 조만간 장세동·박희도씨등 나머지 핵심인물에 대한 조사를 끝내면 「경복궁모임」을 중심으로 한 반란행위 수사는 일단락된다. 검찰은 반란죄→내란죄라는 수사순서에 따라 내주부터는 내란죄을 입증할 핵심인물인 최전대통령과 「보안사팀」에 대한 직접조사에 들어간다. 반란죄 조사에서 전두환씨에 대한 조사가 먼저였듯이 이번에도 7일 전씨에 대한 2차조사가 내란죄 수사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보안사팀」은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허화평,보안사 인사처장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허삼수,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이학봉,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세간에는 이들이 12·12사건은 물론 5공화국을 탄생시키는 장기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조사에서 장기계획여부를 확인하고 최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에서 강압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면 내란죄을입증할 수 있다. 참모총장에 대한 강제연행과 무단병력동원이 군의 명령계통을 전면부인한 반란죄라면 대통령에 대한 강압은 국정을 무시한 내란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보안사팀」에 대한 수사에는 별다른 기대를 걸 수 없는 형편이다. 조사대상자 가운데 허화평·허삼수씨는 소환조사가 쉽지 않은 현역 국회의원신분인데다 소환조사를 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장기계획여부에 관해 부인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수사기법에만 국한시킨다면 이번 검찰수사의 최대승부처는 최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다. 대통령에 대한 강압여부를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정확하게 증명해줄 유일한 사람이 바로 최전대통령 자신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최전대통령측은 『일방적인 과거부정의 상황에서는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조사를 계속 회피하고 있어 검찰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12·12관련 소환자의 당시 역할/「정총장연행 재가」 강요­차규헌씨/육본 수뇌부 무장해제­신윤희씨/「경복궁 모임」 참여 핵심­김진영씨/병력 출동… 중앙청 점거­구창회씨 12·12사건과 관련,8일 검찰에 소환된 5명의 참고인 가운데 차규헌 당시 수도군단장은 거사를 모의한 「경복궁모임」의 핵심 멤버.사건 당일인 12일 하오 9시30분 최규하 전대통령이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에 대해 재가를 거부하자 전두환 합수본부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 등과 함께 대통령관저인 총리공관을 찾아가 최전대통령에게 재가를 강요했다.그는 최전대통령이 재가를 거부하자 경복궁의 30경비단으로 돌아와 병력을 동원,육군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했다.차씨는 거사가 성공한 뒤 군사령관을 거쳐 대장으로 예편했다.국보위 위원과 교통부장관(86∼88년)을 지냈으나 골프장 내인가관련 뇌물수수로 89년 구속됐다가 91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김진영 당시 33경비단장은 장세동 30경비단장과 함께 대령급으로 경복궁모임에 참여한 전씨의 핵심측근.5·6공 때 정치군인의 대표격으로 꼽혔으며 수방사령관·교육사령관·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 참모총장에 올랐다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93년 3월 하나회 숙정 「1호」로 전역조치됐다. 신윤희 당시 수경사 헌병단부단장은 지난 4일 소환,조사를 받은 조홍 당시 헌병단장과 함께 「거사」다음날인 13일 상오 3시40분 수경사 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히고 육본 수뇌부의 무장을 해제시킨 뒤 윤성민 육군 참모차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문홍구 합참 대간첩본부장 등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했다.신씨는 수방사 헌병단장을 거쳐 헌병감에 올랐다가 4년전 예편했다. 구창회 9사단 참모장은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의 지시로 13일 상오 1시30분 전방에 주둔하던 9사단 29연대 병력을 출동시켜 중앙청을 점거하고 신군부 반대진영의 병력동원을 저지했다.노씨의 군맥인 「9·9인맥」의 핵심인 구씨는 6공 때 수방사령관과 보안사령관을 역임했다. 이날 소환된 5명 가운데 이건영 당시 3군사령관은 장태완 수경사령관,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함께 전두환씨 등 신군부측의 군사반란에 대항해 병력을 동원,저지하려다 80년 강제예편된 피해자측인물이다.그는 한국마사회장을 거쳐 14대 총선 때 국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했다가 신한국당으로 옮겼다.
  • 3당 정립시대 맞은 대만(해외사설)

    2일 실시된 대만 입법원 선거는 대만의 정치판도를 가르는 중요 선거였다.80년대 민진당 창당후 2당 대결구도였던 입법원 선거는 이번엔 3당 구도로 변했다.이번 선거는 국민당에게는 총통선거를 준비하는 전초전 격이었고 민진당에게는 대권에 도전하는 시금석으로 여겨졌다.또 창당3년의 걸음마단계인 신당에게는 중량급 야당으로의 도약 여부를 가늠하는 기회였다. 국민당은 85석으로 입법원에서의 과반수를 넘었으나 총득표율은 46%에 그쳐 3당 어느당도 과반수 득표율에는 실패했다는 결과를 얻었다.제1야당인 민진당은 54석으로 과반수의 3분의1에 약간 못미쳤고 득표율은 33%를 기록했다.민진당은 강붕견,요가문 등 중량급들이 거의 모조리 낙선하는 사태가 발생,걱정 속에 빠졌다.이는 내년 3월 총통선거에서 대권 도전에 대한 일대 타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신당은 21석으로 의석이 증가했을 뿐아니라 중남부지역 진출에 성공하는 등 「외성인들의 당」이라는 통념을 뛰어넘는데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한마디로 이번 선거를 통해 대만 입법원은 3당 정립시대를 맞이하게 됐다.국민당은 비록 과반수 이상의 의석은 확보했지만 득표율에선 과반수에 미달했다.이것은 국민당에서 민의가 떠나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특히 유권자들은 국민당의 「흑도금전」 정치에 커다란 불만을 표시했다.이러한 불만은 권력의 억제에 대한 희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대북,고웅 등 주요도시에서는 3당의 어느당도 과반수를 넘기지 못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이는 입법원에서 정치앞날을 보여주는 것이다.또 국민당 등 3당의 내부에서조차 합종연횡의 정치가 이뤄질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신당의 대만독립반대가 두드러졌으며 대만독립이 당론인 민진당의 후보들조차 대만독립주장은 보이지 않았다.감히 대만독립을 기치로 들고나온 후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총체적으로 이번 선거는 대만민주정치의 한 발전단계이며 국민들의 냉정하고 이성적인 선택을 발휘한 선거였다.
  • 대만 국민당 의석 과반 확보 성공/입법원선거 개표결과

    ◎85석 차지… 득표율은 역대 최저 【대북 AFP AP 연합】 대만 집권 국민당은 2일 실시된 입법원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종전 의석보다 5석이 줄어들었으나 과반수를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최종 개표 결과 국민당은 총 1백64개 의석 가운데 절반을 조금 넘는 85석을 확보했으며 제1야당인 민진당이 54석,신당이 21석,무소속이 4석을 각각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국민당은 그러나 득표율에서 유효투표의 46%로 역대 총선사상 최저치였으며 안정적 과반수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함으로써 당내 분파세력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국민당은 지난 총선에서 53%의 득표율을 기록했었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 국민당의 대륙정책에 반대,탈당한 의원들이 지난 93년 결성한 신당은 13%를 득표하면서 종전 의석보다 3배가 늘어난 21석을 얻는 약진을 기록했고 민진당도 33%를 득표하면서 4개의 의석을 추가했다.
  • 대만 오늘 총선/직선 128석·비례 36석 뽑아

    ◎집권 국민당 과반 획득 미지수/독립파 약진땐 중 위협 커질듯 중국의 군사적 압력이 계속돼온 가운데 대만의 입법원(국회)선거가 2일 실시된다.89년 민주화조치이후 세번째인 이번 선거는 이등휘대만총통의 미국방문으로 인한 대만·중국간의 긴장고조와 중국의 군사적 위협속에 치러지는 총선으로 대만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선거결과는 내년 3월로 예정된 총통선거를 비롯,앞으로의 대만정국과 중국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평론가들은 국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과거와 같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예상한다.국민당은 총 1백64석(직선 1백28석,비례대표 36석)중 과반수가 넘지만 현의석(92석)보다는 다소 줄어든 85∼92석을 노리고 있으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당은 ▲집권당의 부패스캔들과 금권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 ▲당내분등으로 고전이 예상된다.국민당은 진리안 감찰원장의 탈당에 이어 최근에는 임양항 부주석이 학백촌 부주석을 러닝메이트로 총통선거출마를 선언,분당위기를 맡고 있다.국민당내에서 대륙출신의 비주류를 형성해온 임부주석등은 특히 지난해 국민당에서 떨어져나와 본토와의 통일을 내세우며 창당한 신당의 후보를 지원해왔다.당내분과 함께 대만을 위협하기 위해 중국이 대만근해등에서 잇따라 실시해온 군사훈련도 신당후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당은 최악의 경우 과반수획득에 실패하더라도 제도상으로는 소수여당으로 내각을 유지할 수 있다.하지만 국민당은 내년초 행정원장(총리)의 인사개편과 총통선거에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정국의 혼란으로 정계개편의 가능성도 예상된다. 국민당이 입법원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실용주의적 독자외교노선을 걸어온 이총통의 전략과 그의 지도력도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다.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이 크게 약진할 경우는 중국의 군사·정치·외교적 압력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 「반인류 범죄」 처벌에 시효없다/과거청산 외국선 어떻게 했나

    ◎유럽/나치전범 86년까지 6,479명 단죄­독일/2차대전 유태인 학살 투비에 종신형­프랑스 집단학살등의 반인류 범죄를 처벌하는데는 시한이 없다.특히 2차대전당시 인류를 학살하고 괴롭힌 전범들에 대해서는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세계 곳곳에서 단죄를 받고 있다. 반인류범 처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미·영·불·소 등 4개국이 2차대전 전범자들을 처벌할 목적으로 지난 45년 11월20일 개설한 이 특별법정은 지난 20일로 개설 50주년을 맞았다. 뉘른베르크법정이 열리자 히틀러의 측근인 헤스를 비롯해 24명의 나치 지도급인사를 처벌됐으며 46년 10월1일까지 1년 가까이 4백8명의 전범들이 법정에 서야만 했다. 독일은 특히 56년부터 루드스비히에 나치전범연구소를 세워 전쟁자료를 추적,구체적 죄목을 입증해 전범을 꾸준히 처벌해왔다.이에따라 86년까지 모두 6천4백79명이 날카로운 법의 심판을 받았고 이중 12명이 사형이 선고됐고 1백60명은 종신형,나머지 6천1백9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7천5백명 정도의 나치전범이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 등지에 불안에 떨면서 숨어지내고 있다.그러나 이들을 찾아내 처벌하려는 노력은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어 시한이 걸리기는 해도 법의 심판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유엔은 반인류범을 집단학살은 물론이고 정치·종교·인종적인 이유에서 학대하거나 약탈행위·암살·포로나 인질을 괴롭히는 등의 행위로 규정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도 이같은 반인류범을 시한없이 끝까지 추적하고 있다.프랑스는 64년12월 반인류범죄에 대해서는 시효를 적용치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지난해엔 형법을 개정해 집단학살범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프랑스에서 전범으로 처벌받은 대표적인 인물은 폴 투비에.투비에는 리옹 등지에서 나치 비밀경찰에 협조해 유태인 추방과 학살등에 관여한 혐의로 45년9월 열린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잠적해 버렸다.사면을 받는 등 우역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89년 붙잡혀 지난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또 유태인 어린이50여명을 학살한 클라우스 바르비도 반인류적인 행위자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리옹지역의 게슈타포 지휘자였던 바르비는 52년 궐석재판을 받았다가 지난 83년 붙잡혀 4년뒤 종신형을 받았다. 스페인도 15년 동안의 작업 끝에 최근 인권 학대 등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뉘른베르크 특별법정 이후에도 반인류범을 처벌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93년 결의안 808조에 따라 유고내전에 대한 특별법정을 헤이그에 설치,전쟁을 일으킨 주범들을 처벌하고 있다.또 르완다내전에 대한 국제법정이 지난해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설치돼 집단학살의 책임자들에 단죄를 가하고 있다. 이런 법정들은 특정사안을 다루는 특별법정이지만 항구적인 법정도 있다.유엔 사법재판소는 45년 헤이그에 설치된 항구법정이고 유럽연합(EU)은 51년 룩셈부르크에 사법재판소를 두고 있다.EU는 이것도 모자라 59년 스트라스부르에 인권법정을 마련해 반인류범에 대한 강한 처벌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의회,67년 군부행위 쿠데타 규정 특별재판서 주모자들 무죄징역 그리스의 쿠데타주모자 처벌은 비교적 순조롭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다.2차대전 종전과 함께 부활된 왕정을 무너뜨리고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것은 67년.쿠데타 주역은 예오리오스 파파도풀로스 대령이 이끄는 영관급장교 24명.이들은 콘스탄틴 2세를 폐위시킨 뒤 68년 독재헌법을 마련,7년간의 군사정권이 계속됐다. 74년 키프로스사태가 군사정권 몰락에 크게 작용했다.키프로스공화국내 터키계 주민과 그리스계 주민 사이에 주도권 쟁탈을 놓고 벌어진 유혈사태에 그리스군을 파병하기 위해 군정실권자들이 총동원령을 내리자 그동안의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일부 군장성과 민간정치인들도 합세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명목상 군정대통령을 맡고 있던 기지키스 장군이 7월22일 야당지도자들과 민선 이양에 합의했다.당황한 군정측은 군대를 동원,아테네시를 포위하는 무력위협에 나섰고 시내 의사당 앞에 군정에 반대하는 수십만 시민이 모여 일촉즉발의 대치상태를 연출했다.결국 대세에 굴복한 군정측이 3일만에 손을 들었고 7월24일 파리에 망명했던 야당지도자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가 금의환양했다. 그해 11월 총리직에 오른 카라만리스는 곧바로 67년 쿠데타주역들을 재판에 회부했다.75년초 의회는 67년 군부행위를 쿠데타로 규정하는 결의안 채택과 함께 특별법을 제정했다.군정기간중 60여명이 독재에 항거하다 숨졌고 수천명이 부상당했음이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같은해 8월 끝난 특별재판에서 쿠데타주모자인 파파도풀로스와 마카레조스에게는 사형이 선고됐고 여타 주모자들에게 최고 사형에서 최하 25년의 중형이 선고됐다.이후 사형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쿠데타주역들은 지금도 복역중이다. ◎남미/쿠데타 집권 전대통령 등 법정에­아르헨/인권탄압자 사면조건 범죄고백 받아­칠레 ▷아르헨티나◁ 76년4월 이자벨리타 페론 대통령을 내쫓고 정권을 잡은 군부는 라울 알폰신 민선대통령이 취임하는 83년12월에 이르기까지 최소 1만3천여명의 동족을 좌파타도의 슬로건 아래 납치·살해(실종 9천여명 포함)했다.알폰신 대통령은 취임 즉시 군 최고지도층 절반을 은퇴시키는 군개혁을 실시한 뒤 군부가 민정이양 4개월전 제정한 과거 10년간 군·경의 정치범죄에 대한 소급 사면법을 폐기,쿠데타주도의 혁명평의회 장군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쿠데타 장군들의 재판은 85년4월 시작돼 12월 혁명후 첫대통령 비델라 장군과 마세라 제독(종신형) 등 5명이 형을 받았고 4명은 석방됐다.포클랜드전쟁(82년) 당시의 갈티에리 대통령 등 3인혁명위원에 대한 재판은 따로 열려 갈티에리는 12년형을 받았다.그러나 알폰신정부는 87년 부분사면법을 통과시켜 인권침해 혐의로 기소된 3백70명의 군·경중 40명의 고위직을 제외한 나머지를 석방했다. 89년7월 취임한 카를로스 메넴 새 대통령은 이전 페론당으로서 군부에게 학대를 받기도 했지만 군부집권시의 좌파대상 「추악한 전쟁」이나 민정 이후 쿠데타기도에 연루된 2백10명의 장교·하사관들을 89년10월 사면했다.그리고 90년12월 2차 대통령사면령을 통해 군부정권 1,2번째 대통령인 비델라,비올라 장군및 마세라제독 등 군부지도자들을 「국민화합」을 이유로 석방했다. 당시 「추악한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 두명이 올 2월과 4월에 약물에 마취된 좌파인사들을 비행기에서 바다로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고 최초로 고백하기도 했으나 1만여 동포살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칠레◁ 세계최초의 민선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아옌데를 살해하고 73년9월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은 국민투표 신임미달(43%)로 90년3월 파트리시오 아일윈 민선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했으나 자신이 오는 97년까지 육군참모총장에 재직할 수 있도록 했다.앞서 군부는 80년 헌법개정을 통해 자신들의 73∼78년 좌파대상 정치범죄를 일괄사면시켰으며 민정이양하면서 상원의 5분의1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다. 지난 17년간의 군부독재 아래서 자행된 인권탄압 범죄를 법적으로 처리할 힘이 부족한 민선정부는 90년4월 「진실과 화해 전국위원회」를 구성,가해자에게 사면을 조건으로 범죄고백을 받고,모든 피해를 확인·적시하는 문서작성에 들어갔다.91년3월 아일윈대통령은 2천2백79명의 정치박해 사망자에 관한 1천쪽 분량의 보고서 완성을 TV방송을 통해 발표하면서 「국민화합」을 강조했다.여기서 피해자는 인적사항을 명확히 기록했으나 가해자는 이름 대신 소속기관을 거명하는데 그쳤다.칠레의 이같은 과거청산 방식은 동유럽,남미,남아공 등 14개국이 모방하는 세계적 모델로 예시되곤 한다. 한편 76년 미 워싱턴에서 전외무장관을 살해한 범죄는 군부의 사면법에서도 제외되었는데 92년11월 장기조사 결과 군부의 정치탄압 실행기관인 국가정보국 소행으로 밝혀졌고 당시 국장인 콘트레라스 퇴임장군과 참모장 에스피노사 현준장은 각각 7,6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선고는 올 5월 최고법원에서 확정되었지만 피노체트 장군과 장교들은 콘트레라스 장군을 해군병원으로 피신시켜 에스피노사 준장만 현재 수감중이다. ◎남아공/「진실 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 창설/과거 인종차별 범죄행위 조사키로 지난 7월20일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진실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를 창설한다는 법안에 서명했다.만델라는 이 위원회가 흑백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숱한 인권탄압 등 국가의 주도 아래 벌어진 범죄들을 조사·단죄하기 위해 창설되며 창설 후 18개월간의 한시적 활동을 통해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모든 범죄행위들을 철저히 조사,남아공의 어두운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공국민들은 대부분 이 위원회의 활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인종차별정책에 따른 피해가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현재 남아공의 연정을 이루고 있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나 국민당도 모두 겉으로는 이 위원회의 취지에 찬성하고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실제로 이들 정치인들이 이 위원회의 활동을 전폭 지지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과거의 범죄행위들이 정말로 철저히 파헤쳐지면 과거의 백인 소수정부를 이끌었던 데 클레르크 부통령의 국민당측은 물론 만델라 대통령의 ANC측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일부 관측통들은과거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가져올 정치적 대가가 도덕적인 사기 앙양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며 과거의 범죄행위가 어디까지 파헤쳐질 수 있을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범죄가 밝혀지더라도 처벌에 있어 어떤 예외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만델라 대통령은 『진실만이 과거를 잠재울 수 있다』며 과거의 범죄행위를 밝혀내는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 대만 독립­통일파 충돌/민진­신당 20명 부상

    【대북 AFP 연합】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는 민진당 당원 4백여명이 23일 집권 국민당 비주류 개혁소장파들이 탈당해 결성한 신당의 우익세력과 충돌해 2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경찰과 목격자들이 전했다. 목격자들은 민진당 당원 4백여명이 남부 고웅시에서 신당 당원 3백여명과 충돌해 90여분동안 싸움을 벌였다고 전했다. 이날 싸움은 민진당 당원들이 하우 페이 순 국민당 부주석이 머물고 있는 호텔을 포위하면서 시작됐다.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하는 보수진영의 지도자인 하우 부주석은 신당이 진정한 국민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지지 입장을 표시해왔다. 민진당 당원들이 호텔을 포위해 깃발을 흔들고 하우 부주석을 향해 「물러나라」고 외치며 계란세례까지 퍼부을 태세를 갖추자 3백여명의 신당 당원들이 현장으로 급히 달려왔다. 양측은 깃대를 들고 상대방을 공격하는가 하면 몇대의 차량도 파괴했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 「56년 대선 미 대사 보고서」 등을 보고(전문가 진단)

    ◎미 “이 박사 싫지만 혁신 불원” 확고/“국민들 독재 염증… 민주의식 제고” 분석/부통령제 폐지­내각제 전환 의견 제시 한국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에 대하여 미국의 존재가 의미했던 바는 무엇이었는가.한국사회의 정치발전은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이 갖는 현상유지적 성격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서울신문이 이번에 소개하는 제3대 정·부통령선거 관련자료는 1950년대 한미관계를 해명하는데 가장 중심적인 두 문제에 대해 개설적 수준을 뛰어넘는 인식의 확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952년 「발췌개헌안」으로 대통령에 재선된 이승만은 1954년에 다시 종신 집권을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3선제한을 철폐할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4사5입개헌).이 개헌안이 통과되자 야당이었던 민주국민당과 혁신세력은 개헌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이승만정권에 반대하는 단일야당을 형성하려고 시도했다.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내부적인 갈등과 이념대립에 의해 민주당과 진보당으로 분열되었다.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신익희는 유세도중 서거했으며,진보당은 조봉암을 내세워 괄목할 만한 신장을 하였다.3·15부정선거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 향후 대한민국의 정치정세를 소용돌이로 몰아간 서곡이었다. 제3대 대한민국 정·부통령선거 관련자료는 1956년 3월2일 미대사관 1등서기관 카메론(Turner C Cameron)의 「대통령선거 예비평가서」로부터 시작된다.계속해서 그를 포함한 대사관 직원들은 「사전 선거운동에 대한 보고서」,「반이승만 연합전선의 붕괴」,「진보당의 발전」,「민국당의 양위와 이범석의 독자적 입후보」,「서울 근교에서의 정·부통령선거 동향관찰」,「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 UNCURK의 선거관찰」,「충청북도와 강원도에서의 예비모의선거결과」등으로 이어졌다.보고서의 제목만으로도 미국이 선거에서 어떤 점에 관심을 기울였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하기를 바랐는지를 알 수 있다.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옮겨보면 『선거과정에서 후반기로 갈수록 행정관리와 경찰의 직접 개입이 심했다』고 지적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공정했다』고 결론지었다.또한 선거는 ▲한국의 다수 군중이 현 정부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있음 ▲기본적으로 양당제의 출현 ▲유권자들의 무소속 후보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 ▲민주선거의 중요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향상등을 보여주었다고 한다.이것은 이승만 정권에 불만이 있지만,혁신세력의 정권 대체세력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정치안정을 위해 「양당제도」의 정착을 차선책으로 고려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여기서 미국은 선거이후 나타날 이승만의 국내정치 장악력의 현저한 약화를 부통령제의 폐지와 국회의 내각제로의 수정을 통해 해결했으면 하는 견해를 피력했다. 제3대 대한민국 정부통령선거 직후 작성된 이 보고서류를 혁신세력의 성장 차단과 군사정권의 대두를 예언했던 1950년대말에 작성된 「콜론보고서」와 관련지어 검토해보는 것도 흥미가 있을 것이다.
  • 임양항 총통출마 발표/대만 국민당 분당 “초읽기”

    【대북 AFP 연합 특약】 대만 집권 국민당의 임양항 부주석(68)과 학백촌부주석(76)이 15일 대북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이등휘총통이 대만을 정상궤도에서 이탈시키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대만에 정상적인 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해 내년 3월 사상 첫 총통직선에 총통·부총통으로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국민당 간한생 대변인은 출마발표는 명백한 당기 위반으로 당적을 박탈하겠다고 경고,분당 위기에 처한 국민당 지도부는 최악의 혼란에 빠졌다.
  • 대만 국민당 분당위기 직면/비주류 임양항 오늘 총통출마 선언예정

    ◎학백촌은 부총통에… 대륙·대만계 결별예고 【홍콩 연합】 대만 집권 국민당의 임양항 부주석(68)과 학백촌 부주석(76)이 15일 상오9시30분 대북에서 내외신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3월 사상 첫 총통직선에 총통·부총통으로 출마하겠다고 공식발표할 예정이어서 국민당이 최대분당위기에 직면했다. 이들의 출마선언은 국민당이 총통·부총통후보로 현 이등휘 총통(71)과 연전총리(59)를 확정한 후여서 이총통에 대한 노골적 반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와 관련,국민당 간한생 대변인은 출마발표는 명백한 당기위반으로 당적을 박탈하겠다고 경고,국민당 지도부가 최악의 혼란에 빠졌다. 임양항과 학백촌은 국민당내 통일추진세력이자 대륙출신이 대부분인 비주류의양대지도자로 이번 발표는 주류측 이총통과의 완전결별을 의미한다. 이 두 지도자는 그간 대만출신인 이총통이 통일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실제로는 대만독립을 추구해왔고,더구나 연임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저버렸다고 비난해왔다. 따라서 이번 발표는 통일세력과 독립세력,대륙출신과 대만출신간의 오랜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대만의 국론분열을 야기하고 12월 의회선거,내년 3월 총통선거는 물론 향후 대만정치의 향방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대만정치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 6공 비자금 파문­돈준 기업 역추적

    ◎90∼95년 법인·부가세 집중조사 예상/장부일체 대상… 상당기간 필요/인력 등 감안 「최소범위」 그칠듯 정치자금을 제공한 재벌기업들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는 과연 어느 선으로 이뤄질까.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져온 기업의 정치자금에 예상을 뒤엎고 정부가 손을 대겠다는 방침을 정하자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홍재형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지난 22일 검찰수사 결과에 따라 돈 준 기업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단호한 의지를 분명히 밝힘에 따라 정치자금 수사에 이어 재벌들의 비자금에 대한 조사가 예고되고 있다.재벌 비자금에 대한 세무조사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전기가 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세무조사를 담당할 국세청은 공식적으로는 『검찰수사 결과에 따라 세무조사 실시 여부와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이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언론에 거론된 기업들을 중심으로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등 세무조사 준비에 들어갔다.세무조사가 실시된다면 92년 초 현대상선의 「비자금 세무조사」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한 뒤인 91년 12월 17일부터 현대상선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현대상선이 운항비 2중 계상과 장부변조 등의 수법으로 2백71억원의 세금을 포탈했다』며 92년 4월 8일 이를 추징하고 관련자 3명을 검찰에 고발했었다.당시 국세청 발표로는 현대상선의 정기 법인조사에 필요한 20여개 항목을 전산입력한 결과 89년 귀속분 신고내용에 이상한 점이 발견돼 91년 12월 17일 세무조사에 착수했었다. 국세청은 87년부터 91년까지 5년간 외화매입신청서와 외화송금수수료의 지급 내용,외화예금 계좌의 입출금 상황 등 증빙서류를 중심으로 이잡듯 뒤져 결국 현대상선의 탈세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이번에도 관련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착수되면 90년부터 95년까지 장부를 중심으로 법인세와 부가세 등에 대한 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현실론과 경제계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최소 범위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먼저 대상업체가 최소한 수십 곳에 이를 것으로 보여 한꺼번에 대규모 세무조사를 실시할 조사인력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또 검찰이나 경찰의 기획수사처럼 한부분만 떼어 집중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세무조사의 특성도 빼놓을 수 없다.따라서 국세청이 기업의 비자금 조사를 한다면 관련 장부 일체를 대상으로 기간도 만만치 않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른 문제도 있다.추징할 수 있는 기업의 법인세와 부가세,소득세 등의 조세시효가 5년이라 90년 이전에 자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면 불법성 여부를 떠나 세금추징 자체가 불가능해진다.여기에 만약 노 전대통령이 비자금 일체를 국가에 헌납,처벌이 어려워질 경우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나 처벌은 형평상의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국세청 주변에서는 검찰조사 결과 밝혀진 탈세액만을 추징하는 선에서 세무조사가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선은 지배적이다.정치적인 문제인 만큼 해결도 정치적으로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수표추적 어떻게 하나/예금점포 수표일땐 신청서로 확인/복잡한 「세탁」 거치면 두달이상 소요 노태우 전대통령의 정치자금을 수사중인 검찰이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입금된 수표추적에 나섬에 따라 수표를 건네준 기업의 실체도 조만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서소문지점에 입금된 수표추적에 나섰다는 것은 이미 입금된 1억원,5억원,10억원 짜리 자기앞수표에 대한 입금전표 및 마이크로필름 확인작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는 입금된 자기앞수표가 노 전대통령 주변인물의 입금계좌에서 발행됐느냐,다른 은행에서 발행한 타점권과 맞교환하는 형식으로 자기앞수표가 발행됐느냐를 가리는 단계로 볼 수 있다.입금계좌를 근거로 자기앞수표가 발행됐다면 자기앞수표 발행신청서에 기재된 계좌번호만 확인하면 된다.예금계좌가 있는 점포에서 발행한 수표인 경우 수표발행 신청서에 기재된 신청인을 확인하면 바로 수표를 건네준 당사자의 꼬리를 잡을 수 있다.그러나 발행점포에서 발행된 수표가 또다른 타점권을 근거로 발행됐다면 다시 발행점포를찾아 나서야 한다. 서소문지점에 입금된 수표가 이처럼 복잡한 세탁과정을 거쳤다면 수표추적에는 2개월 이상 소요된다.과거 정권에서는 기업이 정치자금을 상납할 경우 미리 알아서 「깨끗이」 세탁한 뒤 상납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게다가 정치자금이 전달된 당시에는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이었기 때문에 배서가 되지 않았거나 가명으로 돼 있을 경우,그리고 주식시장 등 2금융권을 들락거렸을 경우에는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수표추적은 증거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수사의 단서는 피의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월 이형구 전노동부장관이 구속되면서 뇌물을 건네준 기업인들이 줄줄이 드러났으나 당시에도 수표추적보다는 뇌물받은 당사자의 진술에 의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관건은 검찰이 참고인 또는 피의자들로부터 얼마나 캐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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