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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특검법 통과] 동영상 파괴력은 어느 정도?

    [이명박 특검법 통과] 동영상 파괴력은 어느 정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동영상’ 파문은 17대 대선 투표일을 불과 3일 남겨놓고 불거졌다. 그런 점에서 역대 대선 막판에 돌출한 초원복국집 사건, 정몽준씨의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선언 등과 비교된다.BBK 동영상 파문은 이런 막판 변수들과 다를까, 아니면 같은 전철을 밟을까. 1992년 12월15일 대선 투표일을 3일 앞두고 정주영 국민당 후보측은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부산 지역 주요기관장들과 만나 김영삼 민자당 후보 지원을 논의한 도청 테이프를 공개,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처음엔 당연히 김 후보의 타격이 예상됐지만, 투표 결과 영남 표심이 되레 김 후보쪽으로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났다.2002년 대선의 추세도 비슷했다. 투표 전날인 12월18일 밤 정몽준 의원은 돌연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측은 쾌재를 불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진보 진영이 노 후보한테 결집하는 결과로 드러났다. 이런 몇차례 학습효과에 따라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이제 막판 변수는 판세를 쉽게 뒤집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한다. 반면 이번 파문을 과거의 예에 곧바로 적용시키기는 무리라는 견해도 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층은 지역적·이념적으로 편중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지층 결집과 같은 반사작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그것이다. 이 후보의 지지층은 이슈에 민감한 수도권과 중도성향에 집중돼 있어 변수에 동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귀로 전해듣는 수준이 아니라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접하는 동영상의 파괴력이 간단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관건은 그 이탈표가 판세를 뒤집을 만큼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기존 이 후보의 지지율이 2위권에 비해 워낙 압도적인 격차로 앞서 있기 때문이다. 이탈표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후보들에게 직접적으로 유입되기보다는 부동층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결국 판세를 뒤집을 정도가 되려면 동영상 파문 외에 추가적인 변수가 더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 컨설턴트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박근혜 전 대표의 이명박 후보 지지 철회나 범여권 후보 단일화와 같은 대형 변수가 이어지지 않으면 판 자체를 바꾸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유럽의회, 日 위안부 사과·배상 촉구

    |파리 이종수특파원|유럽의회는 13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본회의를 열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인정과 사과·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최대 정파인 중도 우파 성향의 국민당을 비롯해 사회당·자유당·녹색당 공동 명의로 발의한 제재안 투표에서 57명의 의원이 참석해 찬성 54표, 기권 3표가 나왔다. 국제사회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지난 7월30일 미 하원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하원(11월8일), 캐나다 연방하원(11월28일)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결의안은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20만명 이상의 아시아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해 저지른 만행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공식 사과와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일본 역사 교과서에 그 진상을 정확하게 기술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애초 국민당 등 5개 정당이 각각 발의했지만 10일부터 각당 대표들이 모여 의견을 조율한 뒤 공동 명의로 발의했다. 이번 제재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에 일본군의 만행을 환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일 국가가 아니라 유럽 시민들을 대표하는 의결 기구인 유럽의회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만행에 대한 제재안을 채택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상징적 의미가 더 커진 셈이다. 유럽의회의 이날 제재안 채택에 앞서 한국의 길원옥(79), 네덜란드 엘렌 판 더플뢰그(84), 필리핀의 메넨 카스티요(78) 할머니는 국제앰네스티 주관으로 벨기에·영국·독일 의회와 시민단체 등을 방문해 국제적 연대를 호소했다. 특히 길 할머니 등은 지난달 6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에서 처음 열린 인권·민주 분과위원회 위안부 청문회에 참석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결의안 채택을 촉구하기도 했다.vielee@seoul.co.kr
  • [선택 2007 D-15] 李·鄭 ‘현대가 맺어준 애증’

    3일 한나라당에 입당한 정몽준 의원과 이명박 후보의 관계는 ‘현대’를 공통분모로 형성됐다. 이 후보는 현대그룹 고 정주영 명예회장 밑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일군 주인공이었고, 정 의원은 ‘왕회장’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온 ‘왕자’였다. 태생적으론 가깝고도 먼 사이였던 셈이다. 이 후보는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에서 주로 성장해 왔다. 정 의원은 일찌감치 20대 시절부터 현대중공업에서 일해왔다. 그래서 같은 회사에서 몸 담은 적은 없다. 이 후보는 ‘왕 회장’으로부터 발군의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경영인이었지만, 정 의원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고용한 ‘봉급쟁이 사장’이자 경쟁자이기도 했다.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에서 ‘경영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그다지 매끄럽지 않은 관계가 형성됐다는 얘기도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벌어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정 명예회장이 1991년 대선 출마를 위해 국민당을 창당하면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로 알려졌다. 당시 이 후보는 정 명예회장의 대선출마를 반대하며 경쟁자인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 진영에 합류했다. 이로 인해 이 후보는 현대가(家)로부터 “은혜도 모르는 사람”“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88년 13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등원한 정 의원의 뒤를 이어 이 후보는 92년 14대때 민자당으로 정계 입문했지만 같은 상임위를 한 적도 없고 특별한 교류도 없었다. 하지만 이 후보는 매년 정 명예회장의 묘를 참배하며 화해 메시지를 보냈고, 특히 지난 8월 정 의원의 어머니인 고 변중석 여사의 장례식에 이 후보가 빈소를 찾아가는 등 성의를 보이며 화해의 싹을 키워갔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선택 2007 D-15] ‘20년 야인’ 접은 鄭,李 지지 왜

    “이명박 후보가 우리나라를 미래로 이끌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3일 한나라당에 입당한 무소속 정몽준 의원의 일성(一聲)이다. 오랜 무소속 생활을 끝내고 새 둥지로 한나라당을 택한 이유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무책임하게 중립지대에 안주할 수 없었다.”는 말도 보탰다. ●“우리나라를 미래로 이끌 분” 그는 2002년 대선 전날 당시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한 뒤 또다시 ‘혈혈단신’으로 돌아가 있었다. 선친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통일국민당’과 2002년 대선 때 직접 창당한 ‘국민통합21´ 이외에는 정당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남의 집’, 더구나 2002년 대선 때 자신의 선택으로 패배를 안겨준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은 나름대로 ‘뜻하는 바’가 있다는 관측이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구가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에게 손을 들어주고, 정치적 꿈을 키워가는 ‘윈윈 전략’을 내보인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 후보가 대권 도전에 성공할 경우 정 의원은 당쪽이든, 국회쪽이든, 정부쪽이든 운신할 폭도 넓어질 수 있다.5선 국회의원으로 한나라당 강재섭·김덕룡·박희태·이상득 의원과 선수가 같다.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어 ‘원로’는 아니어도 ‘비중 있는 중진’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특히 정 의원은 입당 선물로 ‘상임고문’을 거머쥐었다. 당내 자리만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와 같은 급으로 올라선 것이다.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경우 선수(選數) 기준으로만 볼 때 국회의장 후보에도 들 수 있다. ●李 집권땐 모종의 역할론도 일각에선 이명박 후보가 이날 그를 가리켜 “집권 후에도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한 말에 무게를 싣는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모종의 역할을 맡길 것이란 다소 섣부른 전망도 나온다.BBK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 결과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이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5년 전의 선택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잘했으면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공(功)보다 과(過)가 많고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말했다. 당시 판단이 오판이었음을 시인하며 ‘화해’의 제스처도 보냈다. 그는 현대가(家)와 이명박 후보의 껄끄러운 인연을 묻는 질문에는 “(이명박 후보와 고 정주영 명예회장)두 분이 서로 상대편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서로 고마워하는 사이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호주총선 반전·친환경이 이겼다

    호주가 11년 만에 중도 좌파 정부를 맞게 됐다. 지난 24일 실시된 총선에서 야당 노동당이 53.2%를 득표해 집권 여당인 자유당·국민당연합(46.7%)을 누르고 압승했다. 노동당은 전체 하원 150석 중 83석, 자유당·국민당 연합은 58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25일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존 하워드(68) 총리 정권이 10년 넘게 집권하며 견지해온 호주의 중도 우파 정책과 친미 성향의 대외 노선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뒤따를 전망이다. 외신들은 지속적인 경제호황에도 불구하고 보수 여당이 패한 원인으로 장기 집권에 대한 염증과 지나친 친미주의, 시대에 뒤처진 반 환경정책 등을 지적했다. 케빈 러드(50)가 이끄는 노동당은 이와 대조적으로 이라크 주둔 호주군 철수와 교토 의정서 비준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내년 중반까지 호주군 전투병력 550명을 철수시키고, 호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60% 감축하는 한편 교토 의정서 비준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둘 다 하워드 총리가 미국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개진해온 현안들이다. 러드 당수는 25일 첫 기자회견에서 기후변화 문제와 교육, 보건, 초고속 인터넷망 등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러드 당수의 개인적 성향을 들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친미에서 친중 외교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이란 전망이다. 러드 당수는 지난 9월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의 때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어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중국어가 유창할 뿐만 아니라 평소 호주 경제발전을 위해선 중국 투자가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노동당이 이라크 전쟁과 기후 변화문제 외에는 기존의 대외정책 골격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예상보다 대외 정책의 변화 폭이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만만치 않다. 러드 당수는 이날 이라크 주둔군 철수에 관한 언급은 회피한 채 “미국은 호주 외교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과 더불어 내년에 미국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워드 총리가 재임 기간 중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만큼 노동당이 경제 정책에 손을 대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러드 당수도 스스로를 ‘경제적 보수주의자’로 평하며 전통적인 노동당 정책과 선을 긋고 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색,계’ 실제주인공 사진 전시회 中서 열려

    ‘색,계’ 실제주인공 사진 전시회 中서 열려

    영화 ‘색, 계’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국 광둥(廣東)미술관에서 ‘색, 계’의 실제 주인공의 사진이 전시돼 영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 ‘색, 계’는 중국 여류 작가 장아이링(張愛玲)이 1939년 상하이(上海)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쓴 소설 ‘색계’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1937년 일본의 상하이 점령 이후 각 정권간의 치열한 첩보전 속에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는 정보원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영화 속 여주인공 탕웨이(湯唯)가 연기한 ‘정핑루’(鄭蘋如)다. 국민당 소속 정보기관의 정보원이었던 정핑루는 19살 때인 1937년 ‘량유’(良友)라는 종합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랑유’는 당시 기사에서 “정핑루는 눈동자가 매우 아름답고 얼굴빛이 복숭아 꽃과 같으며 웃을 때 살짝 보이는 보조개가 매우 인상적인 여인”이라고 묘사했다. 정보원이 된 후에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위장했어야 했기 때문에 20살의 정핑루는 ‘정 샤오제’(小姐·미혼인 여성을 부르는 호칭)가 아닌 ‘정 뉘스’(女士·기혼이거나 높은 지위의 여성을 부르는 호칭)로 불린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20살때부터 주로 일본인을 상대로 고급 정보를 수집해오던 정핑루는 영화 속 ‘이선생’의 실제 인물인 딩모춘(丁默邨·1901~1947)을 암살하려다 결국 신분이 발각돼 상하이 교외의 황량한 벌판에서 22살의 나이에 총살을 당했다. 빼어난 외모로 ‘징옌’(경염·驚艶·놀랍도록 아름답다)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는 정핑루는 그녀를 모티브로 한 영화의 흥행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으며 데뷔했던 잡지와 사진들로 이루어진 전시회에는 연일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xkb.com.cn(사진 왼쪽,가운데는 정핑루, 오른쪽은 정핑루를 연기한 탕웨이)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나라, 정몽준의원에 ‘구애’

    대선을 한달여 앞두고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측에서 무소속 정몽준 의원에게 구애의 손짓을 보내 주목되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정 의원은 15일 만찬회동을 가질 것으로 전해졌으나 “없던 일로 했다.”고 박재완 대표 비서실장이 전했다. 박 비서실장은 “회동 일정을 잡으려고 얘기가 오가다 언론에 노출되면서 없던 일로 했다.”고 밝혔다. 이 후보와 정 의원은 그다지 돈독한 관계가 아니다. 비록 취소됐지만 이날 회동설이 주목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91년 12월 정 의원의 선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국민당을 창당하면서 대권 도전을 선언할 당시 이 후보는 이를 만류하면서 결별한 바 있다. 정 의원으로서는 서운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결국 이회창 후보가 낙마하는 계기가 돼 정 후보에게 탐탁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란 말이 있다. 이회창 전 총재가 무소속 후보로 대권 3수 도전에 나서면서 보수진영의 표심을 흔들자 ‘집토끼’격인 보수진영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정 의원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후보는 지난 8월 중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부인이자 정 의원의 어머니인 변중석 여사 빈소인 서울 아산병원을 찾아 정 의원과 장시간 대화를 나눈 바 있다. 최근 정 의원을 만난 적이 있는 한 의원은 “정 의원은 한나라당의 정권교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면서 정 의원의 이 후보 지지 가능성을 점치기도했다. 한편 정 의원은 이날 지역구인 울산 동구관내 울산과학대학 실내테니스 개장식에 참여하고 저녁에 서울에 돌아왔다.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103살노인이 홀로 산속에서 살아가는 사연

    100살이 넘은 노인이 문명과 담을 쌓고 심산 유곡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중국 대륙에 100살이 넘은 한 할아버지가 세상을 등지고 홀로 깊은 산속에서 은둔해 살아가고 있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허위안(河源)시 동위안(東源)현 쩡톈(曾田)진 위후(玉湖)촌에 살고 있는 장둥라이(張東來·103) 할아버지.103살 생일을 맞은 지난달 30일 장 할아버지는 27년째 문명과는 담을 쌓아 아무런 걱정과 병이 없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상향)에서 생활하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있다고 대양(大洋)망이 31일 보도했다. 대양망에 따르면 장 할아버지가 27년동안 도시 문명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연은 이렇다.지난 1954년 10월29일,장 할아버지는 허위안시 둥위안현 쩡톈진 위후촌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사실 그의 원래 고향은 광둥성 자오칭(肇慶)시 위난(郁南)이고 본명은 후둥라이(胡東來)이다.젊었을 때 국민당군에 입대해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일본군과 싸워 혁혁한 전공도 세웠다.하지만 일본군과 전쟁중 포로가 돼 구메밥도 먹어야 하는 간난신고를 겪었다. 그러던 어느날 장 할아버지는 야음을 틈타 몰래 일본군 감옥을 탈출,동장허(東江河)를 따라 오다 심산유곡에 있는 둥위안현 쩡톈진 위후촌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당시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이곳으로 오다 기절을 해 마을 사람들이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장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동네 주민들이 너무나 고마워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고 한다.이때 원래의 이름을 ‘후둥라이’에서 자신을 구해준 마을 사람의 성을 따 ‘장둥라이’로 고쳤다. 위후촌에 살면서 그는 두차례에 걸쳐 결혼을 했다.첫번째는 40살 되던 해 같은 동네 처녀와 결혼을 했다.그러나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해 결국 헤어지게 됐다.두번째는 60살이 넘어 아이를 한명 데리고 온 과부와 다시 결혼했다.하지만 워낙 애옥살이 살림이라 두 사람을 부양하기 어려워 또다시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에 장 할아버지는 혼자 살기로 작정하고 산중으로 들어가 홀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무릉도원’의 생활을 하게 됐다.그는 화전(火田)을 일구어 백그루 이상의 과일나무를 심고 집앞에 조그마한 호수를 만들어 각종 물고기도 길렀다. 이렇게 일하기를 20여년.장 할아버지의 집은 편안한 ‘낙원’으로 변모했고 개와 고양이,벌 닭 등도 키우며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다.이 덕분에 100살이 넘은 나이이지만 그의 건강은 60대의 ‘젊은(?)’ 몸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목소리도 카랑카랑했다. 그러나 장 할아버지의 ‘무릉도원’생활도 이제 청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최근들어 산속에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출몰이 잦아져 다칠 위험이 있는 데다 지난 여름 대홍수로 집이 완전히 붕괴되는 바람에 거처할 곳도 마뜩치 않은 것을 본 동네 주민들이 마을로 내려와 같이 살자고 강력히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장 할아버지의 27년째 ‘산중 은거생활’도 곧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폴란드 총선, 親EU 야당 승리

    21일 실시된 폴란드 총선에서 중도우파 야당이 카친스키 형제가 이끄는 보수파 여당을 누르고 승리했다. 99%의 개표를 끝낸 결과 친기업, 친유럽연합(EU)을 내세우는 야당인 시민강령(PO)이 41.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집권 법과 정의당은 32.2% 득표에 그쳤다. 시민강령의 연정 파트너로 유력시되고 있는 폴란드 농민당도 8.9%의 지지를 얻어 이 두 정당이 안정적인 연정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총선에는 도시지역의 젊은 층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1989년 공산정권 붕괴 이후 가장 높은 53.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야당의 승리는 쌍둥이 형제인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의 급격한 우경화와 대외 고립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집권 보수 여당은 낙태금지 규정을 강화하고 유로화 도입을 반대하는 등 줄곧 반 EU 정책을 폈다. 반면 자유주의 성향의 친기업 정당을 표방하는 시민강령은 세금감면과 국유산업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EU의 통합 정책에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시민강령은 또 집권하면 이라크 주둔 폴란드군(900명)을 철수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시민강령의 도날드 투스크(50) 당수는 이번 승리로 차기 총리에 오르게 된다.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는 13살 때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경찰이 발포하는 것을 보고 정치인이 될 결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같은 날 실시된 스위스 연방의회 의원 총선거에서 극우파인 스위스국민당과 녹색당이 각각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스위스 연방당국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스위스국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29%의 득표율을 올려 제1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스위스 국민당은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의 추방을 촉구한다는 취지에서 ‘세 마리의 흰 양이 검은 양을 발로 차 스위스에서 몰아내는’ 선거벽보와 스위스 주요 도시내의 이슬람 첨탑 건립금지 등 인종주의 선거운동으로 국내외에서 비난을 받았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5) 존 하워드 총리 5연임 성공할까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5) 존 하워드 총리 5연임 성공할까

    ‘호주 사상 두번째 장수 총리인 존 하워드(68)가 5연속 집권에 성공할 수 있을까.’ 호주사회의 최고 이슈이며 연방총선의 최고 관심거리다. 집권 11년차인 하워드 총리는 최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연방총선에서 5선에 성공하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중도에 은퇴해 피터 코스텔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에게 자유당 당수 및 총리직을 넘겨줄 것”이라고 공언했다. ●“재집권하면 3년 임기중 은퇴” 연방총선 선거일은 하워드가 고를 수 있다.10월 셋째주부터 내년 1월 셋째주까지 어느 때라도 선거를 치를 수 있다. 현재 호주의 수도 캔버라 정가에서는 선거일을 10월 하순이나 11월 초순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 10단’으로 통하는 하워드가 지지율과 경제동향, 국내외 정세 등 모든 변수를 고려해 날짜를 연립여당(자유당과 국민당)에 유리한 날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은 3∼4년마다 치러지며 하원 의석 150석을 모두 바꾼다. 현재 의석분포는 연립여당이 87석, 야당인 노동당이 60석, 무소속이 3석이다. 시드니대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하워드는 지난 1974년 시드니 베네롱 지역구에서 자유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승승장구, 상무장관과 재무장관, 자유당 당수를 역임했다.96년 자유당 당수로 국민당과의 연정을 이끌어 내면서 폴 키팅 노동당 총리를 물리치고 총리에 당선됐다. 그후 세차례 총선에서 연속 집권당의 승리를 일궈냈다. 하워드의 장기 집권 비결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강력한 안보정책이다. 그는 경제를 되살려 호주의 국제적 위상을 올려놓겠다는 11년 전에 한 약속을 실현했다. 그의 집무실엔 윈스턴 처칠 전 영국총리의 흉상이 있다. 그는 처칠처럼 강력한 리더십과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왔다. 호주는 그의 지도력 덕분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국민들도 하워드를 호주 현대정치사에서 가장 뛰어난 총리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하워드의 5연속 집권가도는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우선 장기집권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여기에 높은 물가와 치솟는 임대료, 대출금을 빼면 남는 게 없는 깡통주택이 속출하는 등 서민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스캔들로 인해 각료들이 중도하차하는 등 악재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하워드가 고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젊은층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하워드를 지지하던 18∼24세 유권자 25%가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됐다. 호주의 유권자 1350만명 가운데 400만명이 35세 이하인 점을 볼 때 하워드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하워드는 현재 지역구인 베네롱에서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유명 여성방송인 출신 노동당후보 맥신 매큐가 예상을 뒤엎고 선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워드는 매큐와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데 만약 이곳에서 지면 하워드는 연립여당이 승리해도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정계은퇴를 해야 한다. 심상치 않은 지역구 분위기를 감지한 하워드는 주말이면 이스트우드, 에핑, 라이드, 글레이스빌 등지의 상권을 돌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이 곳은 한국교민들이 몰려살고 있어 교민들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번 바꾸어 보자는 열기 속에 등장한 ‘젊은 피’ 케빈 러드 노동당 당수가 최대 걸림돌이다. 러드는 12년간 정권 재창출을 위해 와신상담해온 노동당의 ‘최신 무기’다. 러드는 지난해 12월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전 당수 킴 비즐리를 표대결에서 누르고 새 당수로 취임하자마자 인기몰이를 해왔다. 깨끗한 마스크와 참신함을 무기로 하면서 단호하고 강력한 이미지도 구축,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하워드를 줄곧 앞지르며 차기 총리감으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승원홍(60) 시드니한인회 회장은 “개인적으로 하워드가 되기를 바라지만 동포사회의 입장에서는 러드가 되는 것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금 호주는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기운이 무르익는 것처럼 비쳐진다. 그렇지만 하워드가 쉽게 정권을 내주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최근 부인이 운영하는 기업체와 관련된 잡음 등이 불거지면서 러드의 지지도가 상승행진을 멈추고 주춤거리자 대반격을 시도중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지지도의 격차가 1%까지 줄었다. 지난달초 뉴스폴 여론조사에서 연립여당이 노동당에 18%포인트나 지지도가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총리직 수행에 대한 만족도는 50%에 달했다. 뒷심이 만만찮은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여전히 높은 것이다. ●‘뒷심´ 하워드 지지도 여전히 높아 그는 여론 플레이에 능수능란하며 위기를 역이용할 줄 안다는 평을 듣는다. 최근 총선에서도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층이 좋아할 만한 대책을 발표해 그 표를 결집시켜 역전극을 벌이곤 했다.2001년 총선에서는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으로 야당후보인 킴 비즐리에 줄곧 뒤지다 국제테러 소탕전에 동참하고 해상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강경책을 발표하면서 지지율이 급상승, 막판 역전극을 이뤄냈다. 또한 2004년 총선에서는 젊은 진보주의자 마크 레섬 노동당 당수에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자신의 경제업적을 내세워 종반 역전에 성공했다. 남기성(58) 캔터베리 시의원은 “하워드의 당선가능성이 높다.”며 “6개 주정부를 노동당이 장악하고 있어 연방총선에서는 국민들이 연립여당 총재인 하워드를 밀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하워드는 선거 때마다 역전승을 거둔 경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천수이볜 “타이완이 한국보단 낫다”

    “아무리 그래도 타이완이 한국보단 낫다.” 천수이볜 타이완 총통이 발끈하고 나섰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국민당이 만든 한국 기업인이 등장하는 선거광고 때문이다. 타이완의 경기침체와 집권 민진당의 실정(失政)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한국인은 광고에서 “타이완은 한국이 경쟁하고 연구했던 대상이었지만 지난 몇년간 지나치게 정치에 시간을 허비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경제가 가장 중요한데, 타이완 정부는 그 점을 모른다”고 집권당에 직격타를 날렸다. 한국과 타이완의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하거나 타이완의 경제 둔화를 나타내는 화면까지 삽입했다. 이 광고는 TV와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자 급기야는 천 총통이 직접 수습에 나섰다. 천 총통은 18일 타이완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타이완 경제의 지표를 감히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한국에 비해서 좋은 것은 확실하다.”고 반박했다. 구체적인 통계수치도 제시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타이완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5.05%로 한국(4.25%)보다 높고, 세계경제포럼(WEF)의 ‘2006년 성장 경쟁력 지표’도 한국은 21위지만 타이완은 6위라고 강조했다. 부의 불평등도를 봐도 타이완은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6배지만 한국은 무려 8배에 달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타이완 일간연합보는 타이완이 한국에 뒤진 다른 경제수치를 제시하며 천 총통의 주장을 재반박,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 대선의 수준/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 대선의 수준/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시아 전역에서 각종 선거가 한창이다. 독자들은 아마 지난 7월의 일본 참의원 선거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전역에는 각종 선거의 열풍이 불고 있다.2006년이 브라질 등 9개 국가에서 대선을 치렀던 남미 선거의 해라면 2007년은 한국의 대선을 포함한 아시아 선거의 해라 하겠다. 32년 동안 집권한 독재자 수하르토에게 과거청산의 일환으로 최근 약 400만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 인도네시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지방선거를 직접선거로 치렀다.8월 초에 자카르타 주지사를 주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것이다. 7월에 치러진 인도의 대선에서는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이로써 인도는 여성이 총리와 대통령 자리를 각각 한 번 이상 차지한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나마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성숙해 나가는 징표들이다. 그러나 구태를 반복하는 선거가 더 많다. 일본에서는 7월 아베 총리가 참패한 선거결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있다.5월에 열린 필리핀 의회선거는 더 끔찍하다.1986년 마르코스가 미국으로 쫓겨난 뒤 20년이 더 지났건만 선거기간동안 사제폭탄도 날아다니고 후보자를 포함한 100여명이 사망했으며 중복투표를 포함한 선거부정이 횡행했다. 6월에 열린 동티모르의 의회선거는 아직까지도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지 못한다.5월의 대선에서 당선된 라모스-호르타 대통령이 6월 의회선거에서 2등을 차지한 정당의 대표인 구스마오를 총리로 임명했다.1등 정당의 대표이자 구스마오와 수십년 동안 라이벌 관계에 있는 알카티리 전 총리는 승복하지 않았다. 나라의 약 100만명 인구 가운데 실업률이 50%에 육박하는데도 지도자끼리 정쟁에 몰두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쿠데타로 집권한 태국의 군부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18번째 개헌을 통과시키는 8월 중순의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은 70%도 안 되는 지지를 보였을 뿐이다. 이번 헌법은 1997년 헌법이 강조했던 시민사회, 권리와 자유, 참여와 개혁 등에서 퇴보하여 국가안보와 군의 역할 등을 강조한다. 국민투표 결과 11월로 예정된 의회선거도 불확실해졌다. 파키스탄은 더욱 심각하다.1999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무샤라프 대통령이 위헌임에도 불구하고 군참모총장 직을 고수한 채 9월경으로 예정된 대선에 재출마하려 한다. 대법원의 반대에 부딪히자 묘안을 짰다. 부패와 무능으로 영국으로 추방당한 부토 전 총리를 끌어들인다. 두 번씩 총리를 역임한 부토는 내년 의회선거에서 총리를 희망하지만 두 번 이상 총리역임은 법으로 금지된다. 둘은 비밀회동을 하고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동분서주한다. 내년 5월로 예정된 타이완 대선도 정가를 벌써부터 달군다. 하버드대 출신에 법무부 장관을 지낸 마잉주 국민당 대통령후보가 올 초 타이베이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부패혐의로 기소되었다.8월에 마잉주는 무혐의 판결을 받았으나 그의 비서는 14개월 형을 받았다. 민진당 대통령 후보 프랭크 쉬도 가오슝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가성 뇌물로 조사를 받는 중이다. 올 12월과 내년 4월에 큰 선거를 잇달아 치를 한국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후보들의 과거행적이 큰 쟁점으로 부각되는데 몸통 대신 꼬리만 잘리고 있다. 경선결과도 불복종하는 상황이다. 후보들은 민생 대신 선거에 목숨을 걸고 정쟁과 합종연횡만 꾀한다. 정당들도 유권자의 관심을 모으려고 별의별 시도를 다 해보지만 올 선거만큼 분위기가 안 뜨는 경우도 없다.100명이나 넘는 예비후보가 벌써부터 출사표를 던졌지만 단 한 명 선뜻 표를 줄 사람이 없다는 국민의 깊은 탄식과 긴 한숨을 겸허하게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서울광장] 이종찬과 이인제, 그리고… /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종찬과 이인제, 그리고… /육철수 논설위원

    독일의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는 저서 ‘위대한 패배자’(Grosse Verlierer)에서 역사상 패배한 인물들의 유형을 소개했다. 대표적 인물과 유형을 보면, 전쟁에서 졌지만 적군한테서도 존경받은 독일군의 에르빈 로멜 장군을 ‘영광스러운 패배자’로 불렀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보여준 인간미와 신사도 정신에 점수를 많이 주었단다.‘승리를 사기당한 패배자’로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후보 보다 많은 표를 얻고도 선거제도 때문에 대권을 놓친 앨 고어를 꼽았다. 안전수칙 소홀과 지휘 미숙으로 승객 400명을 더 살릴 기회를 놓친 에드워드 스미스 타이타닉호 선장은 ‘비참한 패배자’로 분류됐다. 희극 ‘살로메’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를 저지른 죄로 감옥에 갔다오고 거지로 생을 마쳤는데, 그는 ‘끝없이 추락한 패배자’ 부류에 들어 있다. 나는 슈나이더의 패배자 분류법에 흥미를 느끼며 상당부분 공감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패배자의 일생을 조명함으로써 승자 독식의 기존 역사관에 반기를 들기 위한 것이라는 그의 저술 취지에 더 마음이 끌린다. 승자는 승리의 기쁨만으로 충분히 보상이 되겠지만, 패자는 아픔을 삭이고 경우에 따라 승자에게 굴욕적인 협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자에겐 승자 이상의 아량과 겸손과 인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민의 정이 더 간다. 한나라당이 20일 대통령 후보를 확정한다. 경선 출마자 4명 가운데 3명은 패배자다. 유력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1년이상 경쟁하면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치열하게 싸웠다. 분위기를 보면 패자가 승복하고 협조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기회에 경선 불복의 과거사를 들춰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거기엔 패자가 걸어야 할 길에 대한 모범답안이자 반면교사가 들어 있어서다. 멀리 갈 건 없고 1990년대 이후 역대 경선을 보자.1992년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김영삼 후보와 이종찬 후보가 맞붙었다. 세 불리를 느낀 이종찬은 경선을 불과 이틀 앞두고 불공정·위장 경선을 이유로 경선 거부를 선언했다. 이종찬은 탈당해서 새한국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가 됐다가, 대선 직전 사퇴하고 국민당 정주영 후보를 지지했다. 이종찬은 어떤 패배자일까. 슈나이더 분류법을 빌리면, 그는 타이타닉호 스미스 선장처럼 지도자로서 능력이나 판단력 없이 이리저리 휩쓸렸으니 ‘비참한 패배자’에 가깝다.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대결했다. 이인제는 패배 후 승복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회창 측이 심한 견제와 무관용으로 일관하고, 아들 병역비리로 지지율이 자신보다 떨어지자 경선불복을 선언했다. 몇달동안 국민 지지율이 더 높자 그로서는 ‘승리를 사기당한 패배자’로 느꼈음직하다. 욕심을 부려 국민신당을 만들어 본선에 나섰지만, 결과는 김대중·이회창에 이어 3위(500만표 득표)에 그쳤다. 그 바람에 40만표 차로 정권을 놓친 신한국당과 그 지지자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이쯤 되면 ‘비참한 패배자’다. 그의 패배 행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세론을 업고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노무현 후보에게 밀리자 경선을 중도에 포기했다. 결국 그는 ‘끝없이 추락한 패배자’의 길을 선택했다. 이틀 후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또 어떤 패배자가 나올지 궁금하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이자해선생등 독립운동가 290명 포상

    국가보훈처는 62주년 광복절을 맞아 일제 강점기 내몽골 지역에서 의사 신분으로 광복군 활동에 참가한 이자해(1895∼1967) 선생 등 290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고 13일 밝혔다.훈·포장 대상자는 건국훈장 166명, 건국포장 35명, 대통령 표창 89명이며 생존자 2명과 여성 3명이 포함됐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게 되는 이자해 선생은 내몽골 지역 독립운동을 펼친 의료인으로 1926년 중국 난징에서 국민당 정부의 북벌군에 참여한 뒤 산시성, 내몽골 일대에서 국민당군 소속 군의관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내몽골 지역에서 항일독립 운동이 확인돼 훈장이 수여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보훈처는 설명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정치꾼과 정치인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정치꾼과 정치인

    정치(政治)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행위다. 정치의 구성원인 정치인들은 따라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 즉 삶의 질 향상에 가장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정치꾼들만 득실거리고 진정한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에겐 오로지 금배지만 보이는 것 같다. 금도를 넘어선 네거티브 공세에 혈안인 한나라당이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 급조 정당을 만든 범여권이나 매한가지다.17대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여의도 정가는 과거 어느 때보다 혼탁하고 어지럽다. 몇개월 사이에 당적을 바꾼 의원들은 수십명이다. 보따리 풀기 무섭게 다시 싸는 형국이다. 이들 의원의 지역구민들은 어느 당 소속인지조차 헷갈린다. 분당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한나라당의 심각한 내홍 양상은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주자 주변에 이러한 정치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줄 선 후보가 이기면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당선은 떼어논 당상이란 생각에 같은 당 식구라는 동료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밖에 있지 않다. 듣기에도 민망한 정치공작이니 프락치니 하는 말들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툭하면 상대방 후보의 후보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두 진영이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것을 방증한다. 범여권의 움직임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85명의 의원으로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은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올드보이부터 몇 달 사이에 여러 번 당적을 바꾼 철새 의원들까지 정치꾼들이 주력 부대다. 여기에 참여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도 평소 정치적 성향을 뚜렷이 해온 터라 ‘순수(純粹)’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구성원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 ‘미래창조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미래창조를 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명을 급히 바꾼 것은 물론 열린우리당의 당헌과 강령을 베끼다시피 한 일, 창당 전당대회 몇시간 전까지 대표를 정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최고위원 명단을 바꾸는 웃지 못할 일은 급조 날림 정당, 잡탕 정당이란 비판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하드웨어도 그렇지만 소프트웨어도 문제다. 대부분이 열린우리당 출신인 만큼 그간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온 것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내부 쇄신을 바탕으로, 어떤 이념과 노선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필수적임에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반(反)한나라당 구호와 기치만 내걸고 정권 재창출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자고로 정당은 이념과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소신과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결코 다른 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대선이나 총선 패배시 사라지고 마는 포말정당에 지나지 않는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이나 이인제의 국민신당이 다 그런 경우다. 김성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통합신당은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라 별로 참신할 것도 없는 일부 시민사회 인사들을 들러리로 내세워 마치 새로운 정치세력인 양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정치상인연합회’라는 표현까지 썼다. 국고보조금이나 받으려고 부랴부랴 창당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치를 어지럽히는 정치꾼들이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민이다. 표의 심판을 말한다.12월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이 중요한 이유다. 진정한 정치인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jthan@seoul.co.kr
  • [씨줄날줄] 필승론과 필패론

    정주영씨가 1992년 대선에서 당선될 듯싶지 않았다. 국민당 고위인사에게 “뭘 믿고 그렇게 올인하느냐.”고 물었다. 고위인사는 ‘정주영 필승론’이란 내부보고서를 보여줬다. 현대 및 협력업체 직원과 가족, 영남·강원 표를 합쳐 무난히 당선된다고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니 그는 국민당 산하 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정 후보 지지가 김영삼(YS)·김대중(DJ) 후보와 박빙으로 집계돼 있었다.“대상이 현대 직원이냐. 이런 자료로 왜 정 회장 같은 전문 기업인을 현혹하느냐.”고 했는데도 그 인사는 ‘정주영 필승론’을 종교처럼 되뇌었다. 대선필승론의 대표 사례는 1987년 DJ의 4자필승론이다. 노태우 후보와 YS가 영남표를 갈라먹을 때 호남표를 지키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봤다. 사실 4자필승론은 DJ만 의존한 게 아니다. 노태우 후보측은 막강한 정보력으로 전국의 표를 한표한표 세다시피 했다. 양김씨가 동시출마하면 당선된다는 확신을 갖고 직선제를 수용한 것이다.YS도 마찬가지. 부산·경남의 열렬한 지지에 도취해 4자구도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97년 대선부터는 네거티브가 강해지면서 필패론이 많아졌다. 이인제씨가 신한국당을 뛰쳐나간 명분이 ‘이회창 필패론’이었다.2002년 대선에서는 역으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필패론’을 내세워 민주당 후보를 따냈다. 올해 대선은 그야말로 필승론과 필패론의 홍수다.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필패론’을 제기하자 이 후보는 ‘이명박 필승론’으로 맞받고 있다. 군소후보가 난립한 범여권에서는 여론조사 지지율 1∼2%를 갖고도 필승론의 외침이 우렁차다. 필승론과 필패론은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적당한 선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선거전이 가열되면서 자기최면에 걸리는 게 문제다. 내가 아니면 안 되고, 상대 후보가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발만 물러서면 정치전문가가 아니라도 보이는 것이 콩깍지가 살짝 덮인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안 될 후보는 아무리 필승론을 주장해도 안 된다. 한방에 갈 후보는 필패론으로 헐뜯지 않아도 간다. 변수가 많은 미래를 놓고 ‘반드시 필(必)’자에 집착해 대선판을 살벌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정책선거 원년으로] 대선정책 평가교수단 역대 공약 점검

    [정책선거 원년으로] 대선정책 평가교수단 역대 공약 점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의 역사에서 본격적인 공약대결이 시작된 것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13대 대선부터다. 이전에는 ‘사사오입’ ‘부정선거’ ‘유신’ ‘체육관선거’라는 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약은 철저히 무시됐다. 민주화 이후의 대선 공약도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과의 약속은 아니었다. 공약이 선거의 장식품으로 전락해 유권자의 선택기준으로 기능하지 못한 탓이다. 지역주의가 선거를 지배하는 구도가 계속되면서 정책공약은 유권자를 동원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후보나 정당은 실천 가능한 정책공약을 개발해 유권자들의 표를 얻으려는 노력보다는 뭐든지 다 해 주겠다며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거나, 장밋빛 공약만 형식적으로 내놓았다. 막상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면 공약 이행에는 관심이 없고, 백지위임을 받은 것처럼 통치해 왔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유권자는 대통령과 정부를 불신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다행히 2002년 16대 대선부터 3김의 퇴장과 함께 지역주의가 완화되고, 이념적 경쟁이 자리잡으면서 정책공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진보를 강조한 노무현 후보와 보수를 강조한 이회창 후보가 원심적 대결을 펼치면서 공약의 차별화가 이뤄진 것이다.15대 대선부터 도입된 TV토론은 후보자간 정책 차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2002년 대선도 과거의 구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주먹구구식 공약 역대 대선 공약을 살펴보면 우선 매니페스토(참공약 실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슬로건이나 구호로 끝난 게 대부분이다. 정당과 후보는 그럴싸한 수사로 공약의 기조를 제시했으나 구체적 실현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특히 재원과 추진일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공약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넉넉하고 고른 경제’,‘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계층간 갈등을 해소해 균형잡힌 사회를 이룩한다.’는 등의 약속은 장밋빛이었지만, 실천방안은 회색빛이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신한국창조를 위한 10대 과제,77개 공약을 발표했다.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도 100대 중점공약을 제시했다.2002년 노무현 후보도 21세기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으로 4대 비전과 20대 정책목표,150대 핵심과제를 제시했으나 모두 실천방안이 결여됐다. 진정한 의미의 매니페스토 공약은 아니었던 셈이다.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된 공약도 주먹구구식이 많았다.1987년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제시한 물가상승률 2∼3% 유지 공약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게 뻔한 주택 200만호 건설과 숱한 개발공약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1997년 김대중 후보가 내놓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의 세계 5강 진입’ 공약은 외환위기 체제에서 어떻게 이루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2002년 노무현 후보의 경제성장률 연 7% 달성 공약은 이회창 후보의 6% 성장 공약에 대응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우선순위 없는 망라형 공약 제한된 예산을 갖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과적으로 집행하겠다는 우선순위가 제시된 공약도 별로 없었다. 공약의 기조와 10대 과제,100대 과제 등은 나열에 불과하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교육 총리’가 되겠다고 선언한 뒤 교육공약을 집중적으로 강조한 것과 대조적이다. 정책은 기본적으로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역대 대선공약은 각계각층의 모든 유권자를 다 만족시키려고 했다. 우선순위를 부여하면 특정계층에 치우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고른 득표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밝히기를 꺼린 것이다. 예산의 뒤에는 이해관계자가 있고 이들의 표를 의식하는 후보로서는 모든 부문의 예산을 증액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감내할 수 있는 예산규모는 한계가 있다. 주어진 예산추계의 틀 속에서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를 애써 모른 체하면서 유권자를 속여 온 셈이다. 역대 대선에서는 실현가능성과 우선순위는 무시되고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공약들이 망라돼 제시됐다. 뿐만 아니라 선거 막판에 ‘깜짝 공약’이 등장해 선거판을 뒤흔들기도 했다. 정책공약보다는 정치공세가 주류를 이뤄 혼탁해진 경험도 많다. ●비전 아닌 선심경쟁 역대 대선공약은 ‘비전경쟁’이 아닌 ‘선심경쟁’이었다.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농가부채 전면탕감을, 김영삼 후보는 그린벨트 해제를 내걸어 공약(空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4대 대선에서는 정주영 국민당 후보가 제시한 ‘아파트 반값 공급’ 공약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군복무기간 단축, 예비군 복무기간 단축은 선심성 공약의 단골메뉴다. ●깜짝공약·위헌공약으로 당선 돌발적인 ‘깜짝공약’이 선거판세를 좌우한 경우도 많다.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는 막판 선거 유세중 ‘88올림픽을 치른 후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공약을 갑자기 발표했다. 중간평가 공약은 6공화국의 족쇄가 됐으며, 결국 야당과 적당히 타협해 없었던 일로 처리됐다. 15대 대선의 깜짝공약은 내각제 개헌이었다.1997년 11월3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대통령후보는 김대중, 총리는 김종필이 맡도록 하는 야권후보단일화에 합의했고, 내각제 개헌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했다.1999년말까지 개헌을 완료한다고 했으나 이 공약은 실현되지 않았다.16대 대선의 깜짝공약은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실행계획과 재원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발표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행정수도를 이전하려면 40조원이 든다.”고 반박했지만, 노무현 후보 측은 “4조 5000억원이면 충분하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행정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결정이 내려졌다. ●정치공세에 눌린 정책대결 대선공약은 정치공세에 눌려 빛을 발할 수 없었다.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는 ‘가짜 보통사람’,‘쿠데타의 주역’으로,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당을 깨고, 거짓말을 일삼는 후보’로 매도됐다. 14대 대선 초반부터 색깔론 시비, 현대그룹을 동원한 금권선거 시비, 초원복집 사건 등이 쟁점으로 부상해 지역주의가 극에 달했다.15대 대선의 이슈는 정권교체,3김 청산, 세대교체 등이었다. 내각제도 정권교체와 맞물린 이슈였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DJ 비자금 사건, 경제파탄 책임론과 IMF 재협상론 등도 쟁점이었다.16대 대선에서는 여권의 대선후보 국민경선과 후보단일화 등이 주된 이슈가 돼 정책대결을 사실상 가로막았다. 월드컵 열풍과 미군 장갑차 사건,DJ정부 말기에 터진 각종 게이트, 서해교전 등도 정책 선거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매니페스토 검증이 우선돼야 공약 입안과 집행과정의 폐쇄성도 문제다. 많은 학자와 당 관계자가 참여했다고는 하나 공론화 과정은 없었다. 공약이행 평가도 공개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정권 인수위 등에서 공약이행계획을 작성하면 이것이 대외비 문서로 관리되거나, 기록조차 남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구체적인 매니페스토식 공약이 제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선공약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길은 매니페스토 요건을 갖춘 공약을 제시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먼저 후보자와 정당이 목표, 우선순위, 절차, 기한, 재원 등 매니페스토 요건을 갖춘 공약을 제시하고, 이를 유권자 앞에서 공개해 토론을 통해 검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선거캠페인의 장식품으로 전락한 공약이 제기능을 다할 수 있다. 이현출 국회입법연구관
  • 인도 첫 女대통령 탄생

    성차별이 만연한 인도에서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인도 선거관리위원회는 21일(현지시간) 집권 연정인 통일진보연합(UPA) 후보인 프라티바 파틸(72) 라자스탄주 총리가 제13대 인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선관위는 19일 선거인단 투표가 완료된 뒤 이날 29개 주와 6개 직할시에서 개표를 끝낸 결과 UPA 후보인 파틸이 인도국민당(BJP) 주도의 야권연합인 전국민주연합(NDA)이 내세운 BS 세가와트 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고 밝혔다. 파틸 당선자는 전체 투표수 109만 8882표 중 65.82%를 획득했다.인도 정치 명문가인 간디 가문의 대표적 가신 파틸 당선자는 대학 재학 중이던 지난 1962년 국민회의당 후보로 주의회 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정계에 입문,23년간 5선 주의원을 지냈다. 파틸 당선자는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국가원수로서 군 통수권, 사면권 등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6·25 전후 좌익 등 민간인 학살도 규명”

    북한군과 좌익세력 등 6·25전쟁 전후 적대세력에 의한 집단희생사건에 대해 첫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양평적대세력사건’과 ‘주문진지역 양봉열 외 4인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20일 밝혔다.‘양평적대세력사건’은 1950년 9월26일에서 30일 사이 후퇴하던 인민군과 정치보위부 내무서원에 의해 양평군 주민 600여명이 집단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희생자들은 주로 우익단체원이나 공무원 및 부농 등으로, 국군과 유엔군에 협조했다고 판단한 적대세력이 이들을 양평면 한강변 백사장으로 끌고 가 집단총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희생자들 중 대한청년단원이 31명, 공무원 12명, 국민회와 대한국민당원이 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또 50년 4월5일 양봉열씨 등 대한청년단원 4명이 인민군에게 의해 산채로 매장당한 ‘주문진 지역 양봉열 외 4인의 희생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정책선거 원년으로] 역대 대선공약 대해부

    [정책선거 원년으로] 역대 대선공약 대해부

    ■ 김형준 명지대 교수가 본 ‘대선공약’ 대공황 시기에 치러진 1932년 미국 대선은 정초선거(foundation election)의 원형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15개의 혁명적인 법안을 통과시켜 경기부양과 실업대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가 국가재건을 위한 이러한 과감한 변혁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간단하다. 대선 기간 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국가 발전 철학과 비전이 담겨 있는 공약을 실천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정초선거는 결코 공약(空約)에 바탕을 둔 구호가 아니라, 국민을 설득시키고 나라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참 공약(公約)에서 나온다. ●美루스벨트, 국가비전 공약에 담아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운동이후 동일한 헌법에서 4차례의 대선을 치를 정도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대선 공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경제전반에 대한 영향이나 재원마련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고 표만 된다면 무조건 남발하는 ‘선심성 공약’, 정부지출의 확대를 약속하면서 오히려 세금을 깎겠다는 ‘허황된 공약’, 정책을 집행할 때 생길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가 배제된 ‘한 줄짜리 부실공약’ 등이 한국 대선판을 요란하게 장식했다.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은 유권자의 선택 기준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선거가 끝나면 애물단지가 되거나 금방 잊혀버리는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안정된 정당체계 속에서 정당들이 공약 개발에 치중하기보다는 기존 정당을 깨고 신당을 만드는 이합집산에만 매몰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념과 노선이 다른 정당과 후보들이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무모한 ‘한탕주의식 선거연합’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는 정책보다 지역과 인물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2007년 대선에서 그동안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선거가 실종되는 위기를 넘어, 어렵게 쌓아올린 선거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퇴보하는 불행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가 5개월밖에 남지 않았는 데도 이른바 범여권은 ‘대통합 신당창당’ 타령만 하고 있고, 대선 후보 윤곽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민주성장 불구 허황된 공약 남발 야당인 한나라당 경선은 ‘상생, 정책, 공정’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정책공약에 대한 진솔한 검증은 없다. 금도가 실종된 상대방 죽이기식 네거티브 공방에만 매몰되어 있다. 정책은 없고 네거티브만이 판을 치는 진흙탕 선거에서는 포퓰리즘에 입각한 선심성 깜짝 공약이 부상되게 마련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이러한 기우가 현실화될 개연성이 크다. 과거에는 보통 대선 7개월 전에 후보를 선출해서 공약을 준비했지만 부실 덩어리였다. 하물며 선거를 2∼4개월 남기고 선출된 후보들이 내실 있는 공약을 제시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정책선거가 민주발전 지름길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를 정립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후보자와 정당이 목표, 우선순위, 절차, 기한, 재원 등 매니페스토 요건을 갖춘 공약만을 제시하도록 하고, 이를 철저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절차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언론의 사명·역할과도 부합된다. 언론은 선거 결과보다는 선거 과정을 아름답게 하고,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 역대 대선공약 탄생의 비화 서울신문 취재팀은 역대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만든 핵심 브레인을 인터뷰해 공약이 나오기까지의 숨은 얘기를 들어봤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농담이 공약으로 “뭘 그리 고민해. 일단 뽑아달라고 하고, 국민들이 일 못한다고 하면 그만둔다고 해.” 술자리에서 툭 던진 친구의 농담이 귓속을 파고 들었다.1987년 노태우 후보의 선거팀 ‘한가람기획’에서 일하던 전병민(현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씨는 여기서 ‘중간평가’ 아이디어를 얻었다. 서울대 법대 교수 두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헌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맥이 풀렸다. 잠을 청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교수 중 한 명이 “헌법적으로는 안 되지만 정치적으로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동이 트자마자 기획안을 만들어 당시 민정당 정세분석실장이었던 최병렬 의원에게 넘겼다.1987년 10월30일의 일이다. 노태우 후보는 선거 1주일 전 여의도 ‘100만명 집회’에서 중간평가 공약을 불쑥 내놨다.36.7%의 득표율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중간평가’ 공약으로 톡톡히 곤욕을 치른다. 전병민씨는 ‘중간평가대책단장’을 맡은 박철언씨를 비롯한 참모들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어야 했다. 전병민 고문은 “박철언 주도의 3당합당이 성사되고,DJ의 20억원 수수설이 불거지면서 중간평가 논란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우리가 남이가”에 한 숨 돌린 YS 1992년 민자당 김영삼 대통령 후보는 검증된 ‘선거 기술자들’인 전병민 임팩트 코리아 대표와 최병렬 의원을 선거 캠프에 기용했다.YS 선거기획팀인 ‘동숭동팀’의 전병민씨는 “정주영 국민당 후보는 ‘주책없는 할아버지’로 몰아 세웠고,DJ와는 지역대결로 승부했다.”고 전했다. 대선 직전에 터진 ‘초원복집’ 사건은 YS 캠프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부산시장 등 지역기관장을 부산의 음식점 초원복집으로 불러 가진 대선 대책회의 내용이 정주영 후보 측의 도청으로 공개된 것이다. 최병렬 당시 선거대책위 기획위원장은 “유세를 마치고 돌아온 YS가 고래고래 소리치며 김기춘 장관을 욕하는 등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전했다. 그는 YS를 63빌딩으로 데려가 “결코 불리한 사건이 아닙니다. 두고 보십시오.”라고 위로했다.YS도 빙그레 웃었다. 다음날부터 경상도 민심은 ‘우리가 남이가’로 모아졌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부터 검토됐던 금융실명제는 YS의 단독 작품이었다. 황인성 전 총리는 “대통령에게 ‘언제 하실 겁니까.’라고 물으면 ‘하긴 합니다.’라는 대답만 했다.”고 회고했다. ●문구까지 감수한 ‘꼼꼼한 DJ’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의 ‘준비된 대통령’론은 빈말이 아니었다.DJ는 1971년 처음 대선에 나간 이후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DJ의 측근인 고재득 통합민주당 사무총장은 “DJ는 공약집 문장의 조사와 부사까지 바로잡고,500여개의 세부공약을 빠짐없이 외울 정도였다.”고 말했다.DJ는 전자정부 실현, 정보통신벤처기업 1만개 육성 등 정보통신국가로의 리모델링을 강조했다. 당시 정무담당특보였던 이강래 의원은 “IT강국은 DJ의 오랜 신념이었다.”고 말했다.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이었던 김원길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는 “당시 세종대 재단이사장이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제안해 왔으나, 토목사업보다는 IT 육성이 더 시대에 맞는다고 판단해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로드맵’속에서 길 잃은 참여정부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행정수도 이전’. 김병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균형발전’이라는 대통령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공약 구상 단계에서는 깊은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브레인들은 ‘평화번영의 동북아시대’라는 공약에 무게를 뒀고,FTA의 대상을 아세안 국가나 일본으로 한정했으나 2005년 8월 갑자기 한·미 FTA가 핵심 정책으로 대두됐다고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전한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나 정 전 비서관 등 초기 브레인들이 청와대를 떠난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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