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국민당
    2026-04-01
    검색기록 지우기
  • 리비아
    2026-04-01
    검색기록 지우기
  • 붕괴
    2026-04-01
    검색기록 지우기
  • 사우나
    2026-04-01
    검색기록 지우기
  • 카드사
    2026-04-0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119
  • “남북 공동 연구하면 잊혀진 우리 역사 바로 설 것”

    “남북 공동 연구하면 잊혀진 우리 역사 바로 설 것”

    “광저우 독립운동가를 남북한이 공동 연구하고 잊혔던 우리 역사도 바로 섰으면 좋겠습니다.”1920~1930년대 중국 광저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33명을 발굴한 재중 연구가 강정애(60)씨는 14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같은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공산주의자라는 낙인 때문에 치열한 항일 투쟁을 했음에도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이들을 이제는 남북한이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바람이었다. 강씨는 2009년 11월 광저우에 있는 황포군관학교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한국인 김근제, 안태의 묘를 보게 됐다. 1927년 이십대 젊은 나이에 죽은 이들은 입학도 하지 못한 예비학생 신분이었다. 이들은 왜 꽃다운 나이에 광저우까지 오게 됐을까. 강씨는 의문이 생겼다. 자료를 찾아본 강씨는 독립운동가들이 1924년 쑨원의 국공합작 이후 광저우를 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로 1924년 1월 중국 국민당 전국 대표대회에 의열단 김원봉과 권준 지사 2명이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김원봉은 이듬해인 1925년 의열단 12명을 황포군관학교에 데려온다. 이런 식으로 1927년 봄까지 광저우에 온 독립운동가는 8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1927년 4월 국공합작 결렬 이후 다시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 역사에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강씨는 발품을 팔아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광저우 지역에서 사들인 중고 서적, 중국 중산대학의 역사 자료, 당시 기사와 현장 방문으로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이 자료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자료, 그리고 독립기념관의 자료들과 비교, 대조했다. 회사를 마친 뒤 자료에 나온 곳을 찾고 후손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자료를 정리했다. 전문 연구가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현지에서 10년 동안 모은 자료는 방대하고 촘촘하다. 이렇게 1차로 33명의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냈다. 신해혁명에 참여한 첫 한국인인 범재 김규흥을 제외하고, 거의 모두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다. 분명한 발자취가 있음에도 우리 역사에는 왜 이들에 관한 자료가 없었을까. 알려지지 않은 이들 대부분이 중국 공산당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란 게 강씨의 주장이다. “당시 독립운동가는 나라를 되찾을 힘이 필요했습니다. 공산주의와 상관없이 중국을 돕고, 중국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이루자는 의도였습니다. 이승만을 비롯해 상하이나 미국 등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잘 알려졌지만 (광저우의 독립운동가들은)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잊혔습니다.” 강씨는 자신이 이렇게 얻은 방대한 자료를 내년까지 책으로 낼 예정이다. 이 자료에 관한 검증과 활용은 남북한이 함께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연구 결과가 맞는지 틀리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식으로 바로잡아야 하는지는 결국 후대의 과제라는 것이다. “남북 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은 시기입니다. 체육이나 예술 교류는 활발하지만 다른 분야는 미진합니다. 이런 점에서 광저우 독립운동가는 남북이 함께 연구하기에 아주 좋은 소재라 생각합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광저우 독립운동가 33인… 역사마저 그들을 묻었다

    광저우 독립운동가 33인… 역사마저 그들을 묻었다

    경기 안양에 사는 김기용씨는 1988년 출판한 가문 족보에서 자신의 작은할아버지 김근제(1904~1927·추정)에 관한 기록을 발견한다. ‘독립투사, 독립군장교, 흑룡강전투에서 순국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김씨는 어렸을 때부터 작은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길 수차례 들었다. “과묵한 성격으로 힘이 셌고, 3·1 운동 때 일본 순사를 때려눕히고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갔다. 상하이에서 독립군 장교 교육을 받고 독립투사로 활약하다 하얼빈에서 23세의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확인하려 여러 종친을 찾아다니며 물어보고 250여권의 책을 뒤졌다. 그러나 어떤 증거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한상도 건국대 교수에게서 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중국 광저우에 사는 강정애씨가 “황푸군관학교 묘비에서 ‘김근제’라는 이름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2013년 8월 독립기념관 중국남부지역 독립운동유적지 실태조사 일행과 함께 광저우의 황푸군관학교를 방문한다. 벅찬 마음을 억누르며 묘비를 어루만진 김씨는 준비한 태극기와 국화꽃을 묘비 옆에 세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 한 병을 부어 참배를 올렸다. 강씨가 김근제에 관한 행적을 다수 발견했지만, 김근제 지사는 여전히 독립운동 유공자 명단에 들지 못한 상태다. 묘비가 광저우에 있지만 족보에는 순국지가 흑룡강전투라고 기록된 탓이다.중국 광저우의 역사연구가 강씨가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33명을 발굴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자료는 강씨가 10년 동안 중국 지역의 서적과 자료를 뒤지고 발품 팔아 찾은 것들이어서 순도가 높다. 강씨의 연구로 인해 그동안 어긋났던 사료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들 가운데에는 공산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이유로 우리 학계가 외면했던 이들에 관한 행적이 다수 담겼다. 이들의 행적이 사실로 드러나면 독립운동사 관련 연구에 큰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강씨가 발굴한 33인 가운데 신해혁명에 참여한 첫 한인으로 알려진 범재 김규흥을 제외하고 32명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다. 일부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학계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예컨대 황푸군관학교에서 항공 비행사 교육을 받은 뒤 중국 공군에서 활동하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장교를 지냈던 박태하의 경우 해방 후 북한을 택하면서 남한에서 거론이 되지 않았던 사례다. 강씨는 광저우에서 입수한 자료와 1922년 조선일보 기사 등을 토대로 그의 행적을 밝혀냈다. 박태하는 1916년 12월 스물다섯의 나이로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1917년 쑨원이 광저우로 남하해 설치한 대원수부 항공처 산하의 비행기 수리공으로 취업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취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김복’(金復·본명 김규흥)의 주선 덕분이었다. 김복은 1908년부터 광저우에서 쑨원의 혁명 활동에 참여해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광둥성 정부의 고관이 된 인물이다. 쑨원 정부 아래에서 여러 공을 세운 박태하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으로 1926년 5월 옛 소련으로 유학을 간다. 소련에서 항공 교육을 마쳤지만 박태하는 중국으로도 조선으로도 귀국하지 못하고 파블로프스키 촌에 남아 공산청년회 책임서기를 지내다 광복 후 북한에서 인민군 공군 사령으로 활동했다.이름이 알려진 이라 하더라도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행적을 비롯, 학계의 논란이 될 만한 사실도 다수 확인됐다. 박태하와 마찬가지로 황푸군관학교에서 항공 비행사 교육을 받은 차정신은 강씨가 현지의 여러 중국어 사료를 대조한 결과 남한 군인 김진일로 밝혀졌다. 김진일은 우리 공군 창설의 주역으로, 당시 행적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씨의 자료 가운데 불교계 독립 운동가들로 현지에서 사망한 이들, 한국에 돌아왔으나 알려지지 않은 세 명의 승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이육사가 광저우 중산대학에 재학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강씨가 발굴한 33명의 독립운동가에 관한 자료는 내년 초쯤 출판사 수류산방이 묶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 심세중 수류산방 편집장은 “자료가 워낙 방대한 데다 교차 확인을 거치느라 3년 가까이 걸렸다”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상하이, 미국 등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 외에 그동안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을 구축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뉴질랜드 출생신고서에 남녀 아닌 ‘제3의 성’ OK

    뉴질랜드 출생신고서에 남녀 아닌 ‘제3의 성’ OK

    중성·X 등 신분증 성별 표기도 수정 레즈비언단체 “女인권 노골적 무시”뉴질랜드에서 출생신고서에 등록된 성 정체성을 법원의 승인 없이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성인이 된 후 본인의 선택에 따라 남성, 여성뿐만 아니라 중성, X(불특정)성으로 성별 표기가 가능하다. 뉴질랜드제일당 의원인 트레이시 마틴 내무장관이 새로운 출생신고 변경안을 담은 ‘출생·사망·혼인 관계 등록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가 심의 중이라고 12일(현지시간) 현지 일간 뉴질랜드헤럴드가 보도했다. 뉴질랜드헤럴드는 “마틴 장관의 법안이 소속 정당의 지지를 받는 만큼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노동당, 녹색당 등 다른 정당들도 전폭적인 지지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기존에는 성을 바꾸려면 의학적 증거와 판사의 확인이 필요했다.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면 본인이 변호사, 공증인 등 증인 앞에서 작성한 법정 신고서만 제출해도 출생신고서에 기재된 성별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운전면허증, 여권 등 신분증에 표기된 성별도 한꺼번에 바뀐다. 국민당 소속 브렛 허드슨 국회 행정위원장은 “성을 바꾼다고 해도 출생신고서 원본은 없어지지 않는다”며 “공식적인 기록만 바꾸고 원본은 계속 보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17세 이하 청소년이 출생신고서의 성을 바꿀 때는 보호자의 동의와 의료 전문가의 소견을 반드시 첨부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뉴질랜드 정부의 파격적인 시도에 대해 여성 및 성소수자 단체는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레즈비언 권리 동맹 아오테아로아’(LRAA)는 이날 성명을 통해 “여성의 인권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처사”라면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직 여성, 레즈비언만 사용할 수 있었던 공간, 서비스 등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남성들도 법에 근거해 자신이 여성이라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보수 단체인 ‘패밀리퍼스트’의 봅 매코스크리 대표도 “출생 신고서는 사실에 근거를 둔 역사적 기록으로 이데올로기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다] 폐허로 변한 ‘광복 선봉’ 의용대 옛터… 함께 싸운 팔로군은 혁명성지로 보존

    [윤창수 베이징 특파원 항일투쟁 발자취를 찾다] 폐허로 변한 ‘광복 선봉’ 의용대 옛터… 함께 싸운 팔로군은 혁명성지로 보존

    “강제병(으로) 끌려 나온 동포들은 팔로군(八路軍)이 있는 곳마다 조선의용군이 있으니 총을 하늘로 향하여 쏘시오!” “왜놈의 상관 놈들을 쏴 죽이고 총을 메고 조선의용군을 찾으시요!” “조선말을 자유대로 쓰도록 요구하자!”지금 봐도 가슴이 뛰는 한글 격문들이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릴 정도로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남북 600㎞ 길이의 타이항산맥 곳곳에 숨어 있다. 서울신문은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11~12일 중국 허베이성과 산시성 일대 조선의용대의 역사적 발자취를 좇았다. 좌우로 이념이 갈리면서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첫 정규군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피 흘렸던 조선의용대의 역사는 잊혀지거나 버려졌다. 함께 싸웠던 중국 공산당의 팔로군은 승리의 역사로 생생하게 보존돼 있지만 조선의용대의 주둔지는 잡풀만 무성해 저절로 통한의 눈물을 자아낸다. 조선의용대는 1938년 약산 김원봉이 중국의 한커우에서 200여명 규모로 창설한 항일 첫 부대였다. 영화 ‘암살’(조승우 연기)과 ‘밀정’(이병헌 연기)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김원봉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하고 국민당과 함께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이후 조선의용대와 함께 광복군에 편입했지만 1948년 월북하면서 그의 이름과 함께 조선의용대의 전공도 잊혔다. 산시성 진중(晉中)시 쭤취안(左權)현 상우(上武)촌의 흥복사 일대는 조선의용대가 최초로 주둔한 곳이다. 중국 공산당의 화장실 혁명이 아직 시작되지 않아 재래식 화장실만 있는 궁벽한 마을 입구에는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주둔지란 표지판이 당당하게 세워져 있다. 마을 아이들은 베이징에서 온 역사 탐방단이 들어서자 ‘오빠는 강남 스타일’ 노래를 부르며 환영했다.조선의용대는 군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등 3개 언어에 능통해 일제에 저항하는 선전 작업에도 대거 투입됐다. 그런데도 농민이 주력 대원이었던 공산당 팔로군과 달리 전투에도 능해 그들의 맹렬한 기세를 기억하는 현지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이 타이항산에서 벌인 전투는 일본군을 마을 밖으로 유인하느라 인명피해가 컸지만 조선의용대의 명성을 높인 1941년 12월 후자좡(胡家莊) 전투 등이 유명하다. 하지만 중국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과 펑더화이(彭德懷)의 퇴로를 열어 주면서 진광화, 윤세주 열사가 희생된 십자령 전투를 빼놓을 수 없다. 1942년 5월 일본군이 3만 5000명의 대부대를 동원해 팔로군을 싹쓸이하는 ‘참빗작전’을 벌이면서 팔로군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조선의용대가 십자령에서 처절하게 희생된 끝에 팔로군 지도부는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상우촌 마을 주민들은 무명 열사 묘가 있는 곳을 안내하며 잡풀이 무성하니 조심하라고 친절하게 당부했다. 인적이 끊겨 희미한 자취만 남은 길을 따라 가슴팍까지 오는 풀숲을 헤치고 산을 오르자 한국이 있는 동녘을 바라보며 잠든 ‘의용군 열사지묘’가 나타났다.팔로군의 명장이었던 쭤취안 장군의 이름을 딴 쭤취안현 윈터우디(云頭底)촌에는 조선의용대가 70여년 전에 남긴 한글 격문이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이 보존해 온 한글 격문은 마을 입구에 세워진 망루에 쓰여 멀리서도 확연히 보였다. 허베이성 한단(邯鄲)시 서(涉)현 스먼(石門)촌에 있는 ‘조선의용군 열사 기념관’은 팔로군이었던 시아버지를 둔 중국인이 관리한다. 방문객이 오면 전화를 받고 열쇠로 문을 열어 주는 리슈잉(李秀英·53)은 “지난해 10월 개최된 제19차 공산당 대회를 기점으로 중국에서도 공산당 유적을 돌아보는 ‘홍색 관광’ 열기가 크게 일고 있다. 매일 한 팀 이상 찾을 정도로 방문객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중앙(CC)TV도 최근 이곳을 찾아 취재했다.타이항산맥 우즈(五指)산 자락의 조선의용대 주둔지에는 ‘잘생기고 멋진 조선 오빠’를 기억하는 왕차오즈(王巧枝·90)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 왕 할머니는 아직도 큰방을 조선 사람들에게 선뜻 내어 주고 작은방에서 묵었던 기억을 간직한다. 왕 할머니는 “조선의용대가 타이항산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키우는 등 주민들과 농사를 함께 지었다”며 “처음에는 조선 사람들이 우물에서 물을 제대로 못 길어서 동네 사람들이 물 긷는 법도 알려 줬다”고 회상했다. 16살 때 ‘조선인 오빠’라고 기억하는 조선의용대원들과 한집에서 살았던 왕 할머니는 지금도 그 집에 그대로 살고 있다. 집 마당에는 일본군을 피해 조선의용대들이 몸을 숨겼을 법한 토굴도 있다. 왕 할머니의 중국어는 현지 사투리가 심해서 중국인의 통역이 따로 필요할 지경이었지만 한번 잡은 손을 오랫동안 놓지 않으며 말을 이어 갔다. 멀리 베이징에서 왔으니 하룻밤 묵어가라는 인정만은 조선의용대에게 보여 준 것과 같으리라 짐작됐다. 조선의용대를 기억하는 중국인들이 너무 연로해 상세한 역사적 구술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조선의용대들이 현지 주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농사일도 함께 하는 등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의용대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 앞에서 중국인과 한마음으로 힘을 합쳤던 것으로 짐작된다. 타이항산은 조선의용대를 품은 역사 그 자체였다. 잡풀이 무성하지만 일부 주둔지에는 한글로 ‘조선의용군 옛터’라고 쓴 표지판도 설치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내년에 한국 방문객들이 조선의용대를 추모하는 데 손색이 없다. 상룽성(尙榮生) 조선의용군기념관장은 “조선 독립운동에서 조선의용대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지만 아는 중국인들도, 한국인들도 많지 않아 섭섭한 감정을 숨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의용대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얽힌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되새겨야 할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geo@seoul.co.kr
  • [김성곤의 시시콜콜] 조폭과 정치, 악어와 악어새인가

    [김성곤의 시시콜콜] 조폭과 정치, 악어와 악어새인가

    안상구는 깡패다. 골목 깡패는 아니다. 언론사 고위 간부와 대기업 회장, 검사 사이에서 비자금 장부를 들고 게임을 하는 이른바 ‘정치 깡패’다. 어설픈 그의 게임은 곧 들통이 난다. 비자금 장부를 통해 자기 몫을 챙기려다가 되레 손목이 잘리고 버려진다. 그리고 복수의 칼을 간다. 2015년 11월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고, 지금도 케이블TV에서 때가 되면 한 번씩 상영하는 영화 ‘내부자들’ 얘기다. 뜬금없이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요즘 조폭과 정치인이 뉴스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한 공중파 방송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이 경기 성남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국제마피아파 중간보스 출신이 운영하는 코마트레이드와의 연루 의혹을 보도한 뒤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진상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검찰의 수사를 요청했다. 당사자는 연루는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뛴다. 그를 의심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당 진영이 갈라져 온라인에서 갈등의 불꽃이 튀고 있다. 조폭의 역사는 참으로 뿌리가 깊다. 조폭은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국제적인 폭력조직의 대명사인 마피아는 로마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중국의 국민당 정부와 ‘삼합회’ 등과의 관계는 중일전쟁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종종 뉴스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야쿠자도 막부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막부도 적절히 이를 활용했다고 하니 그때도 권력과 조폭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였던 것일까. 야쿠자의 뿌리는 막부시대 도박꾼인 바쿠토(博徒)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야쿠자라는 명칭이 가장 안 좋은 패라는 도박용어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한국에서는 요즘 집단으로 불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 폭력배라는 명칭이 쓰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건달, 깡패 등이 그것이다. 건달은 불교 용어인 건달바(乾達婆)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애초 인도에서는 허공을 날며 음료와 약품을 나른다는 신이었다는 데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놀고먹는 건달로 바뀌었다니 아이러니다. 깡패는 영어가 들어오면서 생겨난 말이란다. 영어 Gang과 패거리를 나타내는 패가 결합해서 태어난 용어라는 게 다수설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깡패는 언제부터 발호하기 시작했을까. 많은 이가 그 시원을 조선시대 보부상에서 찾고 있다. 보부상을 하려면 산적도 피해야 하고, 다른 패거리들과도 경쟁해야 해서 떼를 지어 다녔고 이들이 가끔 폭력성도 띠곤 하면서 부정적 이미지가 부여됐다. 그리고 전국을 돌며 관부 대신 정탐도 하고,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 뿌리가 해방 후까지도 지속됐다고 한다. 깡패도 협객으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청산리 대첩의 독립영웅 김좌진의 아들로 불리는 김두한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깡패는 해방 이후 좌익대결 과정에서 정치와 결부돼 정치깡패로 변질된다. 경기 이천 출신으로 이승만 정부와 결탁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이정재는 정치 깡패의 대명사다. 그는 야당과 가까웠던 김두한을 능가했으며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용팔이(김용팔)를 꼽을 수 있다. 1987년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던 전두환 정권이 기존 야당이던 신한민주당과 손잡고 김영삼, 김대중 등 야당 중진들이 추진하던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려고 폭력배를 동해 난장판을 만든 사건이 이른바 ‘용팔이 사건’이다. 주역이 바로 용팔이라서 이름 붙여졌다. 지금은 그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당시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정치 깡패라는 꼬리표는 떼지 못하고 있다. 조폭은 이권이 있으면 어디든 개입한다.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칼부림도 서슴지 않는다. 깡패의 손에 칼과 도끼가 들리면서 깡패보다는 조직 폭력배로 불리기 시작했다. 노른자위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칼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71년 조양은 등 ‘양은이파’가 칼과 도끼로 ‘신상사파’를 습격한 명동사보이호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기적인 단속으로 설 자리를 점차 잃어 가면서 마약 등으로 갈아타거나 재개발·재건축 현장 등의 철거, 주가조작, 기업 인수·합병(M&A)에까지 손을 뻗쳤다. 사업을 확장·보호하고 이권을 얻어내려고 정치권이나 검·경 등에 선을 대는 것도 이들의 오랜 방식이다. 후원도 하고, 선거 때 사람도 동원하고, 낙선자에게는 각종 편의도 제공하고 후하게 대한다. 정치인은 기업인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조폭이라는 명찰은 달지 않는다. 그러니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가 길어지면 서서히 이빨을 드러내고, 이권을 취하려 한다. 사진도 찍는다. 지난해 대선 때 안철수 후보가 전주에서 찍은 사진 속에 지역 조폭 출신들이 끼었다고 해서 논란되었다. 이번에 이재명 도지사도 성남시절 코마트레이드 사장 이모씨와 찍은 사진이 보도가 됐다. 다들 조폭인지 몰랐다고 한다. 이 지사도 “조폭이 신분 세탁을 해서 접근하면 어떻게 아느냐”고 항변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방송사 보도대로라면 과거 변호도 했고, 성남시장 재직 때 관련기업이 우수기업으로 선정되고, 사업도 수주했다면 그 정도 해명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시장이 아니라 공무원이 했다면 그 공무원을 가려내야 한다. 차량과 운전기사 지원설에 휘말려 있는 은수미 시장도 자원봉사자라는 말로 다 해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어차피 이 도지사 등도 자발적으로 수사 의뢰를 했으니 언젠가는 진위가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은 온갖 사람과 어울릴 수밖에 없지만, 여과장치는 갖춰야 한다. 신분세탁을 하고 접근해 왔다는 이 모 사장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큰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이는 친구가 대가 없는 돈이라며 건넨 후원금을 받은 뒤 자책하며 세상을 등졌다. 이 지사든 은 시장이든 한국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본인과 주변인의 통장을 잘 들여다봤으면 한다. 김성곤 논설위언 sunggone@seoul.co.kr
  •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후보에 김병준·박찬종·전희경·김성원·이용구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후보에 김병준·박찬종·전희경·김성원·이용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자유한국당의 혁신 비상대책위원장 후보군이 5명으로 압축됐다. 자유한국당은 12일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 박찬종 변호사, 이용구 전 중앙대 총장, 김성원·전희경 의원 등 5명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압축했다고 밝혔다. 비대위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장인 안상수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 물론 국민을 상대로 추천받은 결과 150여분의 비대위원장 후보군을 선정할 수 있었다”면서 “실무진이 세부 검토를 하고 비대위 준비위의 심층적인 난상토론을 거쳐 후보자를 압축했다”고 설명했다. 안상수 위원장은 “다섯 분 모두 발표해도 좋다는 말을 했다”면서 “어느 한 분이 비대위원장이 돼도 다른 분이 비대위원 또는 자문위원으로 동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병준 교수는 노무현정부 대통령 정책실장 출신으로, 노무현정부에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탄핵이 거론됐을 때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을 받기도 했다.박찬종 변호사는 5선 의원을 지낸 원로 정치인으로, 신민당 공동대표·한나라당 상임고문·민주국민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폭넓은 정치 행보를 걸어왔다. 현재는 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안상수 위원장은 “박찬종 이사장은 국민공모를 통해 추천된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다른 분들은 처음 (준비위가 추린) 36명 후보군 명단에 있었지만 박찬종 이사장이 애초 명단에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이용구 전 중앙대 총장은 2017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과 조직강화특별위원장을 지냈고, 지난해 말에는 당무감사위원장으로서 당협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또 6·13 지방선거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선거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성원 의원(경기 동두천·연천)은 초선 의원으로, 현재 한국당 지역구 의원 가운데 최연소(45) 의원이다. 초선의원 모임 간사를 지냈고, 이번에 비대위 구성 준비위원으로 활동했다. 전희경 의원은 초선 비례대표로, 지난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 중앙선거대책위 대변인과, 한국당 공동대변인을 역임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 진영 시민사회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절 교과서 국정화를 적극 옹호하고,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관련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오후 열리는 의원총회 등을 거쳐 비대위원장의 자격 등에 관해 토론을 하고, 이번 주말 정도에 최종 후보를 확정할 계획이다. 한국당은 오는 17일 오전 전국위원회를 열어 비대위원장을 추인할 계획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대만 국민당 전 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왜 만나나

    대만 국민당 전 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왜 만나나

     대만 국민당의 롄잔(連戰) 전 주석이 12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양안문제를 논의한다고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이 보도했다. 롄잔 전 주석이 13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대륙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하는 롄잔 전 주석은 재계인사 등 50여명의 수행단을 이끌고 방중해 베이징에 이어 랴오닝, 지린,저장성 등을 방문한 뒤 20일 대만으로 돌아간다.  롄잔 전 주석은 국공내전 이후 국민당 당수로서는 처음으로 2005년 중국을 방문하여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과 만나 긴장된 양안관계(중국·대만 관계)를 화해 분위기로 바꾸고 전례없는 양안 평화발전 국면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만의 롄잔 판공실 측은 현재 양안관계가 다시 긴장관계로 치닫고 있다면서 롄잔 전 주석의 방중이 양안관계 평화와 공동발전, 대만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대만 독립노선을 추구하는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취임 이후 대만해협에서 무력 도발이 이어지는 등 양안관계는 전례없는 위기를 보이고 있다.  대만의 한 매체는 롄잔 전 주석이 2006년 저장성 당서기 시절의 시 주석과 만난 이래 교분을 나누고 있고 시 주석이 그를 ‘오랜 친구’로 호칭한다고 전했다.  이후 롄잔 전 주석은 2013년, 2014년, 2015년 등 모두 4차례 시 주석을 만났다.  롄잔 전 주석의 방중은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에게는 압박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사분오열’ EU, 난민 해법 도출할까

    메르켈 “해결책 없을 것” 비관적 마크롱 “구조선 국제법 위반 심각” 오스트리아 난민 차단 훈련 강행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2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다. 이번 회의의 주요 안건은 최대 난제인 난민 해법이 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야 할 이 시점에 유럽은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DPA통신 등에 따르면 2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베를린에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끝난 뒤 “이번 회의에서 EU 차원의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현재 이탈리아 등 반(反)난민 기조에 선 EU 회원국들은 EU 역내에 들어온 난민이 처음 도착한 회원국에 망명을 신청하게 한 현행 ‘더블린 조약’의 개정을 주장하며 유럽의 맹주인 독일에 맞서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난민 해법을 도출하는 데 실패하면 EU의 대표적 친난민 지도자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연정 파트너인 기독사회당 대표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난민 강경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메르켈 총리를 압박했다. 제호퍼 장관은 이번 EU 정상회의까지 해결 방안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만약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과 제호퍼 장관의 기사당 연정이 깨지면 조기 총선, 총리 교체 등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난민 구조선들이 국제법을 어기면서 무분별하게 난민 구조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 중인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가 난민들의 이동 위험을 줄여줌으로써 난민장사꾼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구호단체들이 난민들을 구조해 유럽 국가에 입항시키는 일이 계속되면 결국 난민장사꾼들이 득세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1일 독일 구호단체 소속 구조선 ‘라이프라인’은 지중해에서 아프리카 난민 230여명을 구조한 뒤 이탈리아와 몰타의 입항 거부로 해상을 떠돌다 엿새 만에 몰타에 입항 허가를 받았다.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는 전날 독일 일간 빌트지 인터뷰에서 알바니아의 EU 가입 승인 대가로 난민 캠프를 제안받더라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DPA통신은 라마 총리가 난민들에 대해 ‘유독성 폐기물’이라고 비하했다고 전했다. 이 와중에 오스트리아는 대규모 난민 유입 차단 훈련을 강행했다. 독일이 난민에게 국경 문을 닫는 상황을 가정해 오스트리아 군인과 경찰이 연합한 훈련이었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슬로베니아 접경지인 남동부 슈필펠트에서 중화기로 무장한 경찰 수백명이 군의 지원을 받아 국경으로 밀려온 난민을 차단했다. 오스트리아 연정은 우파 국민당과 극우 자유당으로 난민들의 지중해 루트를 차단하고 EU 경계 밖에 난민 수용 시설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서유럽에서 가장 강경한 난민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궈모뤄와 폼페이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궈모뤄와 폼페이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지난 12일로 40주기(周忌)를 맞은 궈모뤄(郭沫若)는 ‘20세기 중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린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 작가이자 극작가, 시인이다. 다섯 살 때 사서오경을 줄줄 외워 신동 소리를 들은 그는 고교를 졸업한 뒤 일본 규슈대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장티푸스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어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으로 삶의 방향을 틀었다. 문학단체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해 낭만주의 열풍을 일으켰고 여성 해방을 주창한 ‘3인의 반역적 여성’을 내놓으며 극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1927년 국민당 탄압을 피해 일본에 망명해 갑골문과 중국 고대사 연구로 학술 분야에서도 일가(一家)를 이뤘다. 1937년 중·일전쟁 때 귀국한 그는 항일에 참가하는 와중에도 희곡, 산문, 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며 작가로서 성가를 높였다. 작가, 학자로 쌓은 탁월한 업적도 그의 끝없이 권력을 붙좇는 모습에 빛을 완전히 잃었다. 공산당이 반성하라면 반성했고 문단 동료를 비판하라면 앞장서 두들겨 팼다. 공자 등 역사 인물을 반박하라면 바로 반대 학설을 내놓았다. “1955년 한 농민이 ‘참새 때문에 농사를 못 짓겠다’는 탄원서를 정부에 보냈다. 농업부는 ‘참새 식성에 대해 연구를 한 적이 없어서 박멸이 필요한지 말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며칠 뒤 마오쩌둥(毛澤東)이 ‘전국 참새를 섬멸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중국문화예술계연합회(文聯) 주석이던 그는 ‘수천 년간 우리 양식을 수탈하여 저질러 온 죄악, 이제야 관계를 청산할 때가 왔다’며 참새를 상대로 선전 포고를 했다.”(‘중국인 이야기’ 중에서) 이뿐만이 아니다.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정치 풍향이 바뀐 것을 재빨리 알아채고는 “지금 보면 내가 이전에 발표했던 문장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수많은 저작을 직접 불태웠다. 소련 방문 때 마오를 수행한 궈는 그를 태양에 비유하는 시를 바쳤다. “1만미터 높은 하늘에서/104호 비행기 안에서/어쩐지 햇빛이 두 배로 밝게 빛나더라니/비행기 안팎에 두 개의 태양이 있구나!” 문혁을 찬양했던 그는 문혁 4인방이 체포되자 “통쾌하도다”라는 글을 썼다. 덕분에 정무원 부총리와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중국과학원장 등 정치·문화계의 요직을 섭렵하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권력을 누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72세 생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친 헌사가 도마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바를 재빨리 알아내 충실히 대변하고 실행해 온 그는 트위터에 ‘저희 부부는 대통령께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동안 힘과 불굴의 의지를 유지하시길 기원한다’며 ‘국가를 대표해 당신의 밑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황송하다’고 썼다. 의회 청문회에선 “외교정책이 트럼프의 개인 사업과 이해 충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기이한 질문이다. 가짜 뉴스다”라고 전면 부인하며 트럼프 비호에 몸을 던졌다. 일개 하원의원이던 폼페이오가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무장관 등 요직으로 승승장구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궈모뤄나 폼페이오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곡학아세가 처세의 무기임에 분명한 것 같다. 그렇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khkim@seoul.co.kr
  • 스페인 새 내각 여성 장관이 65% ‘파격’

    스페인 새 내각 여성 장관이 65% ‘파격’

    ‘키맨’ 부총리·경제·재무장관 3명 모두 여성·친EU 성향 인물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신임 총리의 사회당 정부가 내각의 65%를 여성으로 발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성 각료 비율이 62.5%로 가장 높았던 핀란드의 기록이 깨졌다. 전체 각료 17명 중 여성이 11명인 데다 친(親)유럽연합(EU) 인물들이 대거 포진한 점도 인선 특징이다. 산체스 총리는 6일(현지시간) “평등 사회를 위한 정부”라며 “EU는 우리의 새로운 고국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내각은 1975년 스페인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BBC는 이날 새 정부의 ‘키맨’(핵심 인물)으로 경제부 장관에 지명된 나디아 칼비노 현 EU 집행위원회의 예산담당 총국장(차관급), 전 문화부 장관을 지낸 부총리 겸 양성평등부 장관 지명자 카르멘 칼보, 전 안달루시아주 국무위원인 마리아 헤수스 몬테로 재무장관 내정자 3명을 꼽았다. 모두 여성이고 친EU 성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 호세프 보렐과 동성애자이자 성소수자(LGBT) 활동가인 판사 출신 페르난도 그란데 말라스카가 각각 외무장관과 내무장관에 올랐다. 이 밖에 국방, 교육, 법무, 노동, 환경 등 장관직도 여성 인사가 거머쥐었다. 남성 각료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은 엔지니어 출신이자 스페인 최초의 우주인인 페드로 두케다. 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스페인 왕립 엘카노연구소의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이날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이번 내각보다 더 친EU 성향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산체스 총리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프랑켄슈타인(괴물) 정부가 들어설 것이란 우려를 떨치기 위한 팀을 골랐다”고 평했다. 앞서 정적인 국민당은 집권을 위해 세를 규합한 사회당 정부를 프랑켄슈타인에 빗대며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새 정부와 가까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새 정부가) 독일보단 프랑스 라인에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EU 경제 통합 심화, 유로존 공동재무장관 창설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시민 직접 참여 없이 통일은 어렵다”

    “시민 직접 참여 없이 통일은 어렵다”

    “남북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당신의 분단체제론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럴 때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분단체제가 다시 굳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답했다. 판문점 선언을 비롯해 최근 정황을 돌아보니, 내 의견이 맞았던 것 같다.”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창비)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들어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너스레로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그가 주장했던 통일 담론인 ‘분단체제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설명한 것이다. 그는 반민주적인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남북 어느 쪽에서도 온전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분단체제가 허물어질 것이라 진단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이후 보수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남북 관계가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는 이번 신간을 통해 분단체제론에 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재확인했다. 책은 창비 출판사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한반도 정세를 진단하고자 마련한 ‘창비담론아카데미’에서 7차례에 걸쳐 진행한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의 토론 내용을 담았다. 교사, 문인, 연구자, 시민운동가, 출판사 편집자 등 30명이 백 명예교수의 글과 저서를 읽은 뒤 첫째, 셋째, 다섯째 주에 모여 토론했다. 둘째, 넷째, 여섯째 주에는 백 명예교수가 참여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함께 토론했다. 이어 마지막 일곱째 주에 종합토론을 진행해 완성했다. 당시는 남북 관계가 상당히 악화됐을 무렵이었다. 이 탓에 책엔 남북 관계를 비관적으로 보는 내용이 다수 실렸다. 백 교수는 그럼에도 촛불시민혁명을 내세워 “희망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의 통일 방안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시했다. 중도주의는 ‘중도가 아닌 것들을 하나씩 깨나가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는 “분단체제에 무관심하거나 전쟁에만 의존하는 통일 방식, 남한이나 북한만의 변혁을 요구하는 방식, 또 평화주의 생태주의가 결여된 방식 등을 깨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국의 야합이 깨지면서 전쟁이 발발한 예멘이나 국민당 정부와 중국 정부가 통일을 주도하다 관계가 틀어져 버린 대만의 사례를 돌아보라. 시민들이 참여하지만 통일은 어렵다. 시민들이 촛불혁명에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이어질 남북 교류와 협력, 재통합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정부를 채찍질하거나 필요하면 직접 참여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동아시아나 국제사회와의 연대 등도 꾀해야 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스페인 ‘親EU’ 새 총리… 총선 없이 첫 취임

    스페인 ‘親EU’ 새 총리… 총선 없이 첫 취임

    카탈루냐 수반 “독립 논의” 제안‘미남’이라는 별명을 가진 페드로 산체스(46) 신임 스페인 총리가 정부 수반으로 공식 취임했다. 산체스 총리는 유럽연합(EU)과 유로존 수호를 지지해 온 대표적인 친(親)EU 인사다. 당분간 스페인은 EU와 안정적인 정치적 유대를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중도좌파 사회노동당(사회당)의 대표인 산체스 총리는 2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사르수엘라 왕궁에서 필리페 6세 국왕에게 취임 선서를 했다. 산체스 총리는 “부패를 척결하고, 긴축 정책으로 고통받았던 국민들을 돕겠다”고 밝혔다. 스페인 의회는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우파 국민당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전날 하원 전체 회의 표결에서 가결했다. 국민당의 마리아노 라호이(63) 총리는 실각했다. 스페인 헌법에 따라 내각 불신임안 제출을 주도한 사회당의 산체스 대표가 총리직을 자동 승계했다. 산체스 총리는 차기 총선 때까지 총리직을 수행한다. 총선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선거를 치르지 않고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은 스페인 역사상 산체스 총리가 처음이다. 산체스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아직 단단하지 않다. 사회당이 의회 350석 가운데 84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당은 국민당 불신임 투표에 힘을 모았던 급진 좌파 정당 포데모스(67석), 카탈루냐 분리독립 정당(24석), 바스크국민당(5석) 등과의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킴 토라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 총리 취임선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페드로 산체스 총리에게 대화를 제의한다”면서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정부 대 정부로서 협상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을 지속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스페인 라호이 총리, 부패로 실각... 새 총리에 ‘미남’ 산체스

    스페인 라호이 총리, 부패로 실각... 새 총리에 ‘미남’ 산체스

    스페인 하원이 1일(현지시간)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마리아노 라호이(63) 총리의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이에따라 제1야당인 사회노동당의 페드로 산체스(46) 대표가 신임 총리를 맡게 됐다.AFP통신에 따르면 총 350석으로 이뤄진 스페인 하원은 이날 중도 우파 국민당의 라호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찬성 180표로 통과시켰다. 반대는 169표, 기권은 1표가 나왔다. 라호이 총리가 실각함에 따라 제1야당인 사회노동당의 페드로 산체스 대표가 총리 자리를 이어받게 됐다. 스페인 헌법은 총리 불신임안이 통과되면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결의안을 제출한 정당이 집권하도록 하고 있다. 1977년 스페인에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한 후 총리가 불신임 투표를 통해 퇴출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라호이는 지난해 카탈루냐 지방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 대해 유혈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된 상황에서 헌법 조항을 동원해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직접통치라는 초강수를 두는 등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다.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완전히 굴복한 것은 아니지만, 라호이의 강경책이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같은 정치력을 지닌 라호이도 부패 스캔들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스페인 법원은 국민당이 조직적이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모았다면서 29명의 전직 국민당 소속 각료 등 핵심당원들에게 최근 무더기 유죄판결을 내렸다. 국민당 인사들이 기업인 프란치스코 코레아에게 각종 공공계약 관련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불법자금과 뇌물을 받아 줄줄이 감옥에 간 이 사건은 스페인 역사상 최대 부패 스캔들로 꼽힌다. 라호이는 스페인 현직 총리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지난 7월 이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라호이는 의회의 불신임 표결 전 자진 사퇴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날 불신임이 가결되자 라호이는 새 총리 산체스에게 악수를 청한 뒤 6년간 재임한 스페인 총리직을 내려놓고 의원들의 박수 속에 의사당을 떠났다.국민당 정부의 실각을 주도해 성공한 산체스 신임 총리는 미남으로 유명하다. 정계에서의 별명도 ‘잘 생긴 페드로’다. 산체스는 이날 투표에 앞서 의원들을 대상으로 “오늘 우리는 스페인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장에 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의 임명과 취임 허락 절차를 거친 뒤 정식으로 총리로 취임할 예정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6·13 지방선거 D-18] 기초단체장 후보 명단

    ■서울특별시 ●종로구청장 김영종(64·민·공무원) 이숙연(57·한·정당인) 김복동(68·바·정당인) ●중구청장 서양호(50·민·정당인) 최창식(66·한·서울 중구청장) 정동일(63·평·기업인) ●용산구청장 성장현(63·민·공무원) 김경대(46·한·용산구의회의원) 박홍엽(75·바·서울한영대학교 초빙교수) ●성동구청장 정원오(49·민·성동구청장) 정찬옥(63·한·금호금남개발(주) 대표) 안성규(46·바·교수) ●광진구청장 김선갑(57·민·정당인) 전지명(65·한·정당인) 김홍준(59·바·정당인) ●동대문구청장 유덕열(63·민·공무원) 신재학(66·한·주식회사 평산기업 회장) 백금산(60·바·정당인) 문기진(55·평·자영업) ●중랑구청장 류경기(56·민·정당인) 나진구(65·한·중랑구청장) ●성북구청장 이승로(58·민·정당인) 민병웅(51·한·정당인) 노승국(48·바·정당인) 박춘림(56·평·정당인) ●강북구청장 박겸수(58·민·기초자치단체장) 이성희(61·한·정당인) 채수창(56·바·정당인) 선계선(63·무·대중음악가) ●도봉구청장 이동진(57·민·도봉구청장) 이재범(62·한·변호사) ●노원구청장 오승록(48·민·정당인) 임재혁(58·한·구의원) 양건모(55·바·정당인) 한덕희(55·평·정당인) ●은평구청장 김미경(52·민·정당인) 홍인정(48·한·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이익주(58·바·정당인) ●서대문구청장 문석진(62·민·선출직공무원(서대문구청장)) 안형준(61·한·대학교수) 이은석(59·바·정당인) ●마포구청장 유동균(55·민·정당인) 박강수(59·한·정당인) 조용술(36·바·정당인) 홍성문(57·평·정당인) 윤성일(42·정·마포 공동체경제 모아 상임대표) ●양천구청장 김수영(53·민·양천구청장) 강웅원(57·한·정당인) 허광태(62·바·정당인) 양성윤(53·정·정당인) 염동옥(55·무·정치인) ●강서구청장 노현송(64·민·강서구청장) 김태성(51·한·변호사) 김용성(59·바·정당인) 백철(61·무·자영업) ●구로구청장 이성(61·민·공무원) 강요식(56·한·정당인) 이종규(54·바·정당인) ●금천구청장 유성훈(55·민·정당인) 강구덕(59·한·정당인) 안영배(51·바·한국3D프린팅서비스협회 회장) ●영등포구청장 채현일(47·민·정당인) 김춘수(68·한·정당인) 양창호(50·바·정당인) 정재민(37·정·정의당 영등포구위원회 위원장) 조길형(61·무·영등포구청장) ●동작구청장 이창우(47·민·동작구청장) 홍운철(67·한·정당인) 장진영(46·바·변호사) ●관악구청장 박준희(54·민·협치행정가) 홍희영(59·한·정당인) 이행자(45·바·정당인) 김희철(70·평·정당인) ●서초구청장 이정근(55·민·정당인) 조은희(57·한·서초구청장) 김용석(50·바·정당인) 조순형(74·평·정당인) ●강남구청장 정순균(66·민·정당인) 장영철(62·한·정당인) 김상채(51·바·법무법인 한국 대표변호사) 이주영(27·녹·그래픽디자이너) 김광종(55·무·정치인) ●송파구청장 박성수(53·민·변호사) 박춘희(63·한·송파구청장) 전익정(63·바·한국도시문제연구소장) ●강동구청장 이정훈(50·민·정당인) 임동규(73·한·사단법인 지방자치발전연구원 이사장) 박홍기(64·바·정당인) ■부산광역시 ●중구청장 윤종서(44·민·FC푸드 회장) 최진봉(63·한·중구의회의장) 오경석(53·바·정당인) 금봉달(58·무·자갈치시장(사)부산어패류처리조합 본부장) ●서구청장 정진영(55·민·서구의회의원) 공한수(58·한·정당인) 김만근(57·당·농업회사법인 한국도시농업(주) 대표이사) 유승우(53·무·동아대학교 금융연구소 특별연구원) ●동구청장 최형욱(60·민·정당인) 박삼석(68·한·공무원) ●영도구청장 김철훈(58·민·한아름 새마을금고 이사장) 황보승희(41·한·정당인) 안성민(56·바·정당인) ●부산진구청장 서은숙(50·민·정당인) 김영욱(51·한·정당인) 이덕욱(51·바·법무법인 하늘 대표변호사) 정해정(57·평·(주)수강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이종율(51·무·춘해병원 사무국장) ●동래구청장 김우룡(54·민·정당인) 전광우(58·한·정무직공무원(동래구청장)) 정상원(55·바·부산예술대학교 외래교수) 강승관(72·무·방주쇼핑 대표) ●남구청장 박재범(51·민·정당인) 박재본(63·한·정당인) 유정기(53·바·정당인) 현정길(55·정·정당인) 김병원(71·무·경성대학교 법정대학 명예교수) ●북구청장 정명희(52·민·정당인) 황재관(71·한·부산광역시 북구청장) 신오동(57·평·보험업) ●해운대구청장 홍순헌(55·민·대학교수) 백선기(70·한·부산광역시 해운대구청장) 정성철(51·바·해운대구의회의원) 차형규(55·무·비영리사회단체대표) ●기장군수 이현만(56·민·기장군의회의원) 정동만(52·한·정당인) 권상섭(70·바·정당인) 오규석(59·무·기장군수) 장수수(60·무·노인신문 발행인) ●사하구청장 김태석(60·민·정당인) 이경훈(68·한·부산광역시 사하구청장) 신현무(63·바·정당인) ●금정구청장 정미영(51·민·금정구의원) 원정희(64·한·금정구청장) ●강서구청장 노기태(71·민·공무원) 이종환(57·한·(주)제원산업 대표이사) 안병해(61·무·정치인) ●연제구청장 이성문(44·민·변호사) 이해동(63·한·정당인) 주석수(55·무·연제구 의회 의원) ●수영구청장 김혜경(54·민·정당인) 강성태(57·한·정당인) 김종문(55·바·정당인) 황진수(62·무·사단법인 수영발전협의회 회장) ●사상구청장 김대근(51·민·정당인) 송숙희(59·한·사상구청장) ■대구광역시 ●중구청장 노상석(58·민·법무사) 류규하(62·한·약사) 임인환(61·바·대양인쇄출판사 대표) ●동구청장 서재헌(39·민·정당인) 배기철(60·한·정당인) 강대식(58·바·정치인) 조화영(60·애·서울경희한의원 원장) 최해남(66·무·해성행정사사무소 대표) ●서구청장 윤선진(61·민·교육인) 류한국(64·한·서구청장) 서중현(66·바·정치인) ●남구청장 김현철(57·민·정당인) 조재구(56·한·정당인) 강덕수(55·애·정당인) 권태형(58·무·무직) ●북구청장 이헌태(55·민·북구의원) 배광식(58·한·지방정무직(북구청장)) 구본항(61·바·정치인) ●수성구청장 남칠우(58·민·정당인) 김대권(56·한·정당인) ●달서구청장 김태용(56·민·마을기업 협동조합마을산책 이사장) 이태훈(61·한·달서구청장) ●달성군수 조성제(65·한·정당인) 김문오(69·무·달성군수) 박성태(55·무·정책전문가) ■인천광역시 ●중구청장 홍인성(54·민·정당인) 김정헌(52·한·정당인) 전재준(59·바·정당인) ●동구청장 허인환(49·민·정당인) 이흥수(57·한·동구청장) ●남구청장 김정식(48·민·정당인) 이영훈(50·한·사업가) 최백규(50·바·효담채요양원 사회복지사) 문영미(52·정·인천 남구의회의원(기획행정위원장)) ●연수구청장 고남석(60·민·정당인) 이재호(59·한·연수구청장) 서원경(55·바·정당인) 선계훈(58·평·정당인) ●남동구청장 이강호(51·민·정당인) 김석우(63·한·삼환운수(주) 이사 ) 이화복(58·바·대학교수) 배진교(49·정·정당인) ●부평구청장 차준택(49·민·정당인) 박윤배(66·한·정당인) ●계양구청장 박형우(60·민·공무원(계양구청장)) 고영훈(64·한·기초의원) 이한구(52·무·정치인) ●서구청장 이재현(57·민·정당인) 강범석(52·한·인천광역시 서구청장) 정일우(54·바·정당인) 조경곤(51·무·국악인) ●강화군수 한연희(58·민·정치인) 유천호(67·한·정치인) 이상복(64·무·강화군수) ●옹진군수 장정민(48·민·옹진군의회 부의장) 김정섭(60·한·정당인) 손도신(44·무·옹진발전연구소 소장) 김기조(54·무·기업인) 김필우(69·무·정치인) ■광주광역시 ●동구청장 임택(54·민·정당인) 김영우(49·바·정당인) 김성환(56·평·정당인) ●서구청장 서대석(56·민·정당인) 임우진(65·무·광주광역시 서구청장) ●남구청장 김병내(45·민·정당인) 박용권(68·평·정당인) 최진(58·무·대통령리더십연구원) 김귀봉(59·무·정치인) ●북구청장 문인(59·민·정당인) 이은방(55·평·정당인) ●광산구청장 김삼호(52·민·정당인) 이정현(60·평·정당인) 장성수(58·무·정치인) ■대전광역시 ●동구청장 황인호(59·민·정치인) 성선제(51·한·정당인) 한현택(62·바·공무원) ●중구청장 박용갑(61·민·중구청장) 정하길(55·한·정당인) 송인웅(63·바·중구지역인권센터 대표) ●서구청장 장종태(65·민·서구청장) 조성천(48·한·변호사) 이재성(62·바·재성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유성구청장 정용래(49·민·정당인) 권영진(54·한·유성구의회의원) 심소명(61·바·정당인) ●대덕구청장 박정현(53·민·정당인) 박수범(57·한·대덕구청장) ■울산광역시 ●중구청장 박태완(61·민·정당인) 박성민(59·한·중구청장) ●남구청장 김진규(50·민·변호사) 서동욱(55·한·울산광역시 남구청장) 김진석(54·중·정당인) 서종대(55·무·정당인) ●동구청장 정천석(66·민·정당인(더민주 울산시당 정책위원회 제1정조 위원장)) 권명호(57·한·동구청장) 송인국(63·바·현대주유소 대표) 이재현(59·중·현대중공업 사원) ●북구청장 이동권(60·민·호남대학교 초빙교수) 박천동(52·한·울산광역시 북구청장) 김재근(59·바·회사원(현대자동차)) 강진희(48·중·정당인) 박영수(49·무·지산종합법률사무소 사무국장 ) ●울주군수 이선호(57·민·정당인) 이순걸(57·한·정당인) 이형철(86·무·농업) ■경기도 ●수원시장 염태영(57·민·정무직공무원(수원시장)) 정미경(52·한·변호사) 강경식(54·바·정당인) ●성남시장 은수미(54·민·정당인) 박정오(60·한·정당인) 장영하(60·바·법무법인 디지탈 대표변호사) 박우형(53·중·정당인) ●의정부시장 안병용(62·민·의정부시장) 김동근(56·한·정당인) 천강정(50·바·치과의사) ●안양시장 최대호(60·민·정당인) 이필운(63·한·안양시장) 백종주(48·바·한국인성교육원 원장) ●부천시장 장덕천(52·민·변호사) 최환식(59·한·서정대학교 시간강사) 이승호(58·바·정당인) 윤병국(55·무·부천시의원) ●광명시장 박승원(53·민·정당인) 이효선(63·한·정당인) 김기남(54·바·의사 (크레오의원 원장)) ●평택시장 정장선(60·민·정당인) 공재광(55·한·평택시장) ●양주시장 이성호(60·민·양주시장) 이흥규(62·한·자영업) ●동두천시장 최용덕(60·민·최용덕행정사대표) 박형덕(58·한·정당인) 김홍규(56·바·정당인) ●안산시장 윤화섭(62·민·정당인) 이민근(49·한·안산시의회 의원) 박주원(59·바·정당인) ●고양시장 이재준(58·민·정치인) 이동환(52·한·정당인) 김필례(60·바·고양시의회의원) 박수택(60·정·정당인) ●과천시장 김종천(45·민·변호사) 신계용(54·한·과천시장) 안용기(63·바·마을활동가) 안영(47·무·공인회계사) ●의왕시장 김상돈(57·민·정당인) 권오규(52·한·정당인) 김성제(58·무·의왕시장) ●구리시장 안승남(52·민·정당인) 백경현(59·한·구리시장) ●남양주시장 조광한(60·민·군장대학교 석좌 교수) 예창근(63·한·경동대학교 교수(전문경력직)) 이인희(46·바·정당인) 송영진(57·애·정당인) ●오산시장 곽상욱(53·민·오산시장) 이권재(54·한·정당인) 이춘성(62·바·자영업) ●화성시장 서철모(49·민·정당인) 석호현(57·한·정당인) 최영근(58·바·정당인) 김형남(49·평·정당인) ●시흥시장 임병택(43·민·정당인) 곽영달(59·한·시흥생각 대표) ●군포시장 한대희(56·민·정당인) 최진학(61·한·정당인) 김윤주(69·바·군포시장) 안희용(62·무·무직) ●하남시장 김상호(49·민·정당인) 구경서(56·한·정책전문가) ●파주시장 최종환(52·민·정치인) 박재홍(62·한·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권종인(54·바·정당인) 이상헌(40·정·정당인) ●여주시장 이항진(52·민·여주시의회의원) 이충우(57·한·정당인) 신철희(45·무·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원경희(62·무·여주시장) ●이천시장 엄태준(54·민·변호사) 김경희(63·한·정당인) ●용인시장 백군기(68·민·정당인) 정찬민(60·한·용인시장) 김상국(65·바·경희대학교 석좌교수) 유영욱(52·평·민주평화당 용인시갑 지역위원장) ●안성시장 우석제(56·민·안성시 축협 조합장) 천동현(53·한·정당인) 박경윤(53·평·공인중개사) 이기영(56·무·안성시의회의원) ●김포시장 정하영(55·민·정당인) 유영근(63·한·김포시의회 의장) 유영필(63·평·유영필세무회계사무소 대표 세무사) ●광주시장 신동헌(66·민·광주지역발전연구소 대표) 홍승표(62·한·정당인) 남궁형(60·바·정당인) 하성권(53·무·무직) ●포천시장 박윤국(62·민·정당인) 백영현(57·한·정당인) 이원석(56·바·포천시의회의원) ●연천군수 왕규식(59·민·축산업) 김광철(59·한·정당인) ●양평군수 정동균(58·민·정당인) 한명현(60·한·정당인) 김승남(60·바·정당인) 유상진(38·정·목수) 유강렬(38·무·양평군청 체육실무사(무기직)) 신희동(63·무·국가공인자격 농어촌개발컨설턴트) 김덕수(56·무·사업가) ●가평군수 정진구(62·민·정당인) 김성기(61·한·가평군수) 양희석(58·무·무직) 이창규(60·무·농업) ■강원도 ●춘천시장 이재수(53·민·정당인) 최동용(67·한·춘천시장) 변지량(59·바·정당인) ●원주시장 원창묵(57·민·지방정무직공무원) 원경묵(59·한·원주시번영회장) 이상현(61·바·원주시의회의원) ●강릉시장 최욱철(65·민·정치인) 김한근(54·한·강릉원주대학교 초빙교원) 김중남(55·무·강릉시민단체협의회 대표) 최재규(57·무·회사원) ●동해시장 안승호(60·민·정당인) 정일화(57·한·정당인) 심규언(62·무·동해시장) ●삼척시장 김양호(56·민·삼척시장) 김인배(54·한·정당인) 이병찬(62·무·무 직) 양희태(44·무·무직) ●태백시장 유태호(54·민·정당인) 임남규(54·한·정당인) 최종연(58·바·자영업) 류성호(58·무·무직) 심용보(65·무·태백시의회의원) 김호규(60·무·자영업) ●정선군수 최승준(61·민·무직) 유승근(56·한·무직) 방훈화(64·애·대한애국당 강원도지부장) ●속초시장 김철수(61·민·정당인) 이병선(55·한·공무원) 장철규(63·바·정당인) 조영두(65·무·나폴리아 회장) ●고성군수 이경일(60·민·교수(부총장)) 윤승근(63·한·고성군수) 신준수(62·바·농업) ●양양군수 이종율(56·민·정당인) 김진하(58·한·지방정무직 공무원) 김동일(48·무·자영업(어업)) 장석삼(48·무·무직) ●인제군수 최상기(63·민·정당인) 이순선(61·한·인제군수) 양정우(61·바·법무사) ●홍천군수 허필홍(54·민·정당인) 노승락(67·한·정무직공무원(홍천군수)) ●횡성군수 장신상(62·민·정치인) 김명기(66·한·정당인) 한규호(67·무·정치인) ●영월군수 유영목(57·민·정당인) 최명서(61·한·정당인) 황석기(60·바·정당인) ●평창군수 한왕기(58·민·정당인) 심재국(61·한·기초자치단체장(평창군수)) ●화천군수 김세훈(59·민·농업) 최문순(64·한·화천군수) 방승일(61·바·자영업) ●양구군수 조인묵(59·민·정당인) 윤태용(62·한·정당인) 김성순(62·바·엠이유가스회사대표) 김상돈(57·무·농업) ●철원군수 구인호(54·민·농업) 이현종(68·한·정당인) 김동일(54·무·농업) ■충청북도 ●청주시장 한범덕(65·민·정당인) 황영호(58·한·청주시의회의장) 신언관(61·바·농업CEO) 정세영(53·정·정당인) 김우택(53·무·자영업) ●충주시장 우건도(68·민·정당인) 조길형(55·한·충주시장) ●제천시장 이상천(57·민·정당인) 남준영(51·한·변호사) 지준웅(46·바·두성정보통신 부사장) ●단양군수 김광직(57·민·정당인) 류한우(68·한·공무원) 엄재창(59·무·정치인) ●영동군수 정구복(61·민·정당인) 박세복(55·한·영동군수) ●보은군수 김인수(64·민·상업) 정상혁(76·한·보은군수) 구관서(60·바·정당인) 김상문(65·무·건설업) ●옥천군수 김재종(63·민·정치인) 전상인(49·한·정치인) ●음성군수 조병옥(60·민·정당인) 이필용(56·한·음성군수) ●진천군수 송기섭(61·민·진천군수) 김종필(54·한·자영업) 김진옥(71·무·학원장) ●괴산군수 이차영(56·민·정당인) 송인헌(62·한·괴산군 미래연구소 소장) 박동영(63·무·법무사) 임회무(59·무·행정사) ●증평군수 홍성열(63·민·증평군수) 최재옥(63·한·정당인) 이현재(61·무·농업인) ■충청남도 ●천안시장 구본영(65·민·천안시장) 박상돈(68·한·정당인) 안성훈(57·무·정치인) ●공주시장 김정섭(52·민·정당인) 오시덕(71·한·공무원) ●보령시장 김기호(56·민·정당인) 김동일(69·한·정당인) 조양희(60·바·농업) ●아산시장 오세현(49·민·정당인) 이상욱(61·한·정당인) 유기준(61·바·아산시의회의원) ●서산시장 맹정호(49·민·정당인) 이완섭(61·한·서산시장) 박상무(59·바·순천향대학교대우교수) 신현웅(48·정·노동자) ●태안군수 가세로(62·민·정당인) 한상기(71·한·태안군수) 김세호(68·무·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지방자치학과 겸임교수) ●금산군수 문정우(53·민·정당인) 이상헌(61·한·금산군의회의원) 박찬중(71·바·정당인) 박범인(58·무·정치인) 김진호(67·무·정치인) ●논산시장 황명선(51·민·논산시장) 백성현(58·한·정당인) 이창원(60·바·세무회계사무소 대표) ●계룡시장 최홍묵(69·민·계룡시장) 이응우(61·한·객원교수) 이기원(65·바·정당인) ●당진시장 김홍장(56·민·당진시장) 오성환(60·한·정당인) 이철수(57·바·정당인) ●부여군수 박정현(53·민·정당인) 이용우(57·한·부여군수) ●서천군수 유승광(56·민·정당인) 노박래(68·한·서천군수) 김기웅(60·무·(자)해양선박 대표이사) ●홍성군수 최선경(49·민·홍성군의회의원) 김석환(73·한·공무원) 채현병(69·바·무직) ●청양군수 김돈곤(60·민·무직) 이석화(71·한·청양군수) 김의환(64·바·정당인) 이기성(59·무·청양군의회의원) ●예산군수 고남종(62·민·정당인) 황선봉(68·한·공무원) ■전라북도 ●전주시장 김승수(49·민·정무직 공무원) 이현웅(55·평·정당인) 오형수(55·정·직장인) ●군산시장 강임준(62·민·정당인) 이근열(44·한·(유)남북철강 부사장) 진희완(53·바·군산시의원) 박종서(71·평·정치인) 서동석(58·무·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김용경(54·무·발명가) ●익산시장 김영배(63·민·정치인) 정헌율(60·평·정치인) ●정읍시장 유진섭(51·민·정읍시의원) 정도진(57·평·정당인) 한병옥(47·정·지앤비영어전문학원 원장) 김용채(64·무·시민운동 활동가) 강광(81·무·정치인) 이학수(57·무·정치인) ●남원시장 이환주(57·민·남원시장) 김영권(71·바·무직) 강동원(65·평·정당인) 박용섭(61·무·무직) ●김제시장 박준배(62·민·정당인) 정성주(53·평·김제시의회의원) ●완주군수 박성일(63·민·완주군수) 박재완(50·평·정치인) ●진안군수 이항로(61·민·진안군수) 이충국(63·평·정당인) 박수우(38·무·농업) ●무주군수 백경태(56·민·정당인) 황인홍(62·무·농업) ●장수군수 장영수(50·민·정당인) 배한진(60·무·정치인) 이영숙(62·무·한표농장 대표) 김창수(64·무·농업) ●임실군수 전상두(61·민·정당인) 박기봉(63·무·무직) 심민(70·무·임실군수) ●순창군수 황숙주(70·민·공무원) 홍승채(57·평·유한회사 농업법인청순시대 대표이사) 강인형(71·무·무직) ●고창군수 박우정(73·민·고창군수) 유기상(61·평·고창미래전략연구소장) ●부안군수 권익현(57·민·정당인) 김경민(63·바·정당인) 김상곤(48·평·농업) 김종규(66·무·부안군수) ■전라남도 ●목포시장 김종식(67·민·정당인) 박홍률(64·평·목포시장) 박명기(48·정·정당인) 김성남(44·래·정당인) ●여수시장 권세도(59·민·조선대학교 법학과 초빙교수) 심정우(58·한·호남대학교 행정학과 초빙교수) 권오봉(58·무·무직) ●순천시장 허석(53·민·정치인) 이창용(68·무·순천시의원) 손훈모(48·무·변호사) ●나주시장 강인규(63·민·나주시장) 김대동(72·평·정당인) ●광양시장 김재무(58·민·정당인) 김현옥(73·바·정치인) 정현복(68·무·광양시장) 이옥재(63·무·발명가) ●담양군수 최형식(62·민·담양군수) 강승환(59·바·무역업) 신동호(61·무·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김현석(47·무·새희망 정책연구소 소장) 전정철(60·무·정치인) ●장성군수 윤시석(56·민·정당인) 유두석(68·무·정무직공무원) ●곡성군수 유근기(55·민·정치인) 조상래(60·평·정당인) 박웅두(49·정·농업) 강대광(55·무·정치인) ●구례군수 김순호(55·민·정당인) 박인환(67·평·정당인) 전경태(70·무·무직) ●고흥군수 공영민(64·민·정당인) 송귀근(61·평·정당인) ●보성군수 김철우(53·민·정치인) 박남일(66·무·무직) 변재면(63·무·가톨릭상지대학교 부교수(副敎授)) 하승완(66·무·변호사(변호사 하승완 법률사무소)) ●화순군수 구충곤(59·민·화순군수) 임호경(66·평·정당인) ●장흥군수 박병동(61·민·정당인) 조재환(58·무·장흥발전 정책연구소장) 정종순(63·무·농업인) ●강진군수 이승옥(61·민·정당인) 곽영체(70·평·정당인) 장경록(62·무·농업) ●완도군수 신우철(65·민·완도군수) 박삼재(63·평·정당인) ●해남군수 이길운(52·민·정당인) 명현관(55·평·정당인) 이정우(58·무·축산업) ●진도군수 이동진(72·민·공무원) 장일(61·평·정당인) 김희수(62·무·정치인) 이양래(60·무·정치인) ●영암군수 전동평(57·민·영암군수) 박소영(62·평·정당인) 박성호(57·무·한국지방자치전략연구원 대표) 김철호(66·무·영암군의회의원) ●무안군수 김산(60·민·자영업) 김호산(54·평·정당인) 김재훈(58·무·정치인) 안기선(42·무·직장인) 정영덕(54·무·정치인) 임창진(52·무·농업) ●영광군수 김준성(66·민·정당인) 김연관(75·평·정당인) ●함평군수 김성모(66·민·기업인) 이윤행(52·평·함평군의회 의원) 노두근(65·무·정치인) ●신안군수 천경배(42·민·무직) 정연선(64·평·정당인) 고길호(73·무·신안군수) 박우량(62·무·정치인) 임흥빈(57·무·무직) ■경상북도 ●포항시장 허대만(49·민·국회의원 김부겸 정책특보) 이강덕(56·한·포항시장) 이창균(58·바·정당인) 손성호(50·무·부동산 컨설팅) 모성은(54·무·정치인) ●울릉군수 박영희(54·민·아암건설(주)회장) 김병수(63·한·정당인) 최수일(66·무·울릉군수) 김현욱(66·무·컨설팅행정사) 남한권(58·무·무직) ●경주시장 임배근(64·민·동국대학교 상경대학 글로벌경제통상학부 교수) 주낙영(56·한·정당인) 손경익(56·바·월성법무사법인 대표법무사) 최길갈(46·애·축산농업) 박병훈(53·무·정치인) 최양식(66·무·선출직 공무원) ●김천시장 김응규(62·한·정당인) 박희주(49·무·김천시의회의원) 김충섭(63·무·무직) ●안동시장 이삼걸(62·민·정치인) 권기창(55·한·안동대학교 부교수) 권영세(65·무·선출직공무원) 안원효(67·무·약사) ●구미시장 장세용(64·민·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정교수 대우)) 이양호(59·한·정당인) 유능종(52·바·변호사) 박창욱(33·무·경영인) 김봉재(58·무·무직) ●영주시장 윤옥식(54·민·참사랑노인복지센터운영) 장욱현(61·한·영주시장) 김주영(69·무·무직) ●영천시장 이정훈(44·민·정당인) 김수용(49·한·정당인) 이남희(66·무·농업) 최기문(65·무·무직) ●상주시장 정송(63·민·정당인) 황천모(60·한·정당인) 김형상(66·애·농업) 이정백(68·무·공무원(상주시장)) 성백영(67·무·(재)상주장학문화재단 상임고문) 김종태(69·무·무직) ●문경시장 박영기(62·민·선진농약사 대표) 고윤환(61·한·기초단체장(문경시장)) 신현국(66·무·한국종합기술 부사장) 권칠경(64·무·농업) ●예천군수 김학동(55·한·정당인) 이현준(63·무·예천군수) ●경산시장 김찬진(66·민·정당인) 최영조(63·한·정무직 공무원(경산시장)) 정재학(60·바·정당인) ●청도군수 김태율(65·민·청도군의회의원) 이승율(66·한·청도군수) ●고령군수 곽용환(59·한·고령군수) 임욱강(57·무·무직) ●성주군수 이강태(42·민·아세아농기계 성주군대리점 부사장) 이병환(59·한·정당인) 배기순(60·무·(주)세진이엔씨 대표이사) 오근화(64·무·지방정치인) 전화식(60·무·정치인) ●칠곡군수 장세호(61·민·무직) 백선기(63·한·공무원) 장재환(59·무·칠곡군의회의원) ●군위군수 김영만(65·한·군위군수) 홍진규(58·무·정치인) 장욱(63·무·정치인) ●의성군수 김주수(66·한·의성군수) 신광진(59·중·농업) 최유철(64·무·법무사) ●청송군수 윤경희(58·한·정당인) 심상박(62·무·정치인) ●영양군수 김상선(43·민·한우세상 창바우 대표) 오도창(58·한·정당인) 박홍열(59·무·무직) ●영덕군수 장성욱(61·민·정당인) 이희진(54·한·영덕군수) 박병일(56·무·무직) ●봉화군수 김두성(53·민·정당인) 박노욱(57·한·봉화군수) 엄태항(69·무·자영업) ●울진군수 강진철(58·민·자영업) 손병복(60·한·울진인재육성아카데미 대표) 임광원(67·무·공무원(울진군수)) 전찬걸(59·무·무직) ■경상남도 ●창원시장 허성무(54·민·정치평론가) 조진래(52·한·변호사) 정규헌(51·바·경영인) 석영철(54·중·정당인) 안상수(72·무·창원시장) 이기우(62·무·기술보증기금 사외이사) ●진주시장 갈상돈(53·민·정당인) 조규일(53·한·조규일부강진주연구원 원장) 김동우(47·애·입시수학학원 원장) ●통영시장 강석주(53·민·정당인) 강석우(59·한·정당인(자유한국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박순옥(49·애·어린이집 대표자) 서맹종(66·무·세무사) 진의장(73·무·정치인) 박청정(75·무·세계해양연구센터 대표) ●고성군수 백두현(51·민·정당인) 김홍식(55·한·경상남도 고성군의회의원) ●사천시장 차상돈(60·민·행정사) 송도근(70·한·사천시장) 이종범(58·무·정치인) ●김해시장 허성곤(62·민·김해시장) 정장수(51·한·정당인) 허점도(57·바·김해시민무료법률상담센터소장) 최성근(43·무·낙동강민물횟집대표) 송재욱(59·무·회사원) 김동순(42·무·정치인) ●밀양시장 조성환(59·민·정당인) 박일호(55·한·밀양시장) ●거제시장 변광용(52·민·정당인) 서일준(53·한·정당인) 박재행(67·애·서당골 관광농원 대표) ●의령군수 김충규(63·민·정당인) 이선두(61·한·정당인) 한우상(70·무·행정사) ●함안군수 김용철(56·민·정당인) 조근제(65·한·정당인) 배한극(65·무·무직) ●창녕군수 배종열(56·민·변호사) 한정우(61·한·법무사) 하강돈(69·무·연구단체임원) 김종규(69·무·무직) ●양산시장 김일권(66·민·정당인) 나동연(62·한·양산시장) ●하동군수 이홍곤(52·민·농업) 윤상기(63·한·정치인(하동군수)) ●남해군수 장충남(55·민·남해사회통합연구소 소장) 박영일(63·한·남해군수) 이철호(61·무·치과의사) ●함양군수 서필상(47·민·농협 직원) 진병영(53·한·정당인) 서춘수(67·무·정치인) ●산청군수 허기도(64·민·산청군수) 이재근(65·한·정당인) 이승화(62·무·산청군의회의원) 배성한(66·무·정치인) ●거창군수 김기범(49·민·정당인) 구인모(58·한·정당인) 조성진(42·무·세무사) 안철우(63·무·정치인) ●합천군수 정재영(54·민·농업(하늬농장 대표)) 문준희(58·한·정당인) 조찬용(63·바·바른미래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윤정호(49·무·농업(농업회사법인 파머스클럽 대표이사)) ●민=더불어민주당 ●한=자유한국당 ●바=바른미래당 ●평=민주평화당 ●정=정의당 ●중=민중당 ●애=대한애국당 ●코=코리아 ●경=경제애국당 ●공=공화당 ●새=국민새정당 ●행=국민행복당 ●국=국제녹색당 ●불=그린불교연합당 ●기=기독당 ●자=기독자유당 ●노=노동당 ●녹=녹색당 ●대=대한민국당 ●주=민중민주당 ●사=사회민주당 ●리=새누리당 ●우=우리미래 ●인=인권정당 ●진=진리대한당 ●친=친박연대 ●통=통일한국당 ●합=통합민주당 ●당=한국국민당 ●라=한나라당 ●누=한누리평화통일당 ●래=한반도미래연합 ●홍=홍익당 ●무=무소속●광역·기초의원 출마자 명단은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www.seoul.co.kr)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선관위 제공·25일 오후 10시 현재>
  • 조선인에게 해외 여행은 ‘근대에 대한 동경’이었다

    조선인에게 해외 여행은 ‘근대에 대한 동경’이었다

    근대 조선의 여행자들/우미영 지음/역사비평사/529쪽/2만 5000원 “밤 되어 시모노세키 항에 정박하고 히로시마현에서 아침 해 바라보았지. 해군과 육군을 양성하느라 산자락 바닷가에 길을 내었고 산은 푸르게 숲이 우거졌으니 국방의 위력을 알 수 있었네.”1908년 ‘대한학회월보’에 실린 유학생 옥구생의 글 ‘동도잡시’의 일부다. 그는 당시 선진국이었던 일본에 도착해 군대와 울창한 산림을 마주하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강해지는 일본을 본 그는 기울어가는 조선을 돌아보며 “조국을 크게 세우고 다시금 억만세를 외쳐보리라”면서 시를 마무리한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병탄 사이에 놓인 유학생의 일본에 관한 부러움과 조국에 대한 다짐이 이렇게 교차한다. ‘근대 조선의 여행자들’은 당시의 다양한 여행자와 그들의 여행 양상, 그리고 여기에 담긴 여행자들의 시선을 담았다. 학생, 기자, 작가, 학자, 정치인을 비롯해 일반 관광객들의 여행기는 물론 당시 문학작품과 관공서 글 등을 수록하고 분석했다. 지금은 여성 대부분이 여행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지만, 당시엔 교육받은 극소수 여성만 가능했다. 그 시대 여성들의 외국 여행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는 억압받는 여성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여성 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박인덕이 1928년 한 잡지에 기고한 ‘조선여자와 직업문제’에도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시를 향해 올 때 역장마다 여역원(여성 역무원)들이 간단한 행장을 차리고 일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어디든지 사업이란 명칭이 있는 곳에는 남녀가 같은 권리를 가지고 일을 한다. (중략) 우리 가정 같아서야 일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가정 사업에 헤매이기에 감히 다른 일은 염두에도 못 두게 되고…”라고 지적한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 수학여행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다. 수학여행이 학교 정기 행사로 정착된 시기는 1920년쯤부터다. 일제는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 발표 이후 실용주의를 부르짖으며 실업교육에만 치중하다 3·1운동 이후 교육정책을 달리한다. 중등교육과정에 인문교육을 시작했으며, 수학여행은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상 여행은 유흥으로 비칠 수 있다. 동아일보는 1926년 10월 11일자에 “조선의 경제 상태에 비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여행 시기가 농가의 추수기와 맞물려 인력적으로 낭비”라고 지적하기도 한다.책은 1~5부까지 여행과 여행자의 유형에 따른 다양한 여행기를 수록하고 분석했다. 다만 6부에서는 중외일보사 신문기자인 이정섭을 별도로 빼내 분석했다. 중외일보사는 1920년대 국내외 변화에 맞춰 ‘세계 시찰’을 목적으로 그를 중국과 유럽에 파견했다. 일본에서는 보통선거 시행이 가시화하고, 사회주의 운동이 진전될 때였다. 중국에서는 국민당이 북벌을 전개할 무렵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민족주의운동이 고조되는 등 역동적인 움직임이 보였다. 지금까지 시찰자 대부분이 일본 식민지 시선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반면, 그는 객관적이고 당당한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여행기에서 근대 조선의 음울한 분위기가 조금씩 벗겨지는 것도 이즈음이다. 책은 저자가 썼던 논문을 단행본으로 바꾸며 다소 딱딱하게 읽힌다. 그러나 근대 조선에서의 여행은 어땠는지 살펴보는 여정은 그 자체로 즐거운 여행임에 틀림없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내년 임시정부 100돌 앞두고 ‘역사 바로잡기’

    내년 임시정부 100돌 앞두고 ‘역사 바로잡기’

    정부가 13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4월 13일에서 4월 11일로 바꾸기로 한 것은 내년 임정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지금까지 알려진 임시정부사(史)의 ‘중대 오류’를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다.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식을 역사상 가장 성대하게 거행하려면 우선적으로 잘못된 기념일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지난해부터 역사학계 등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기념일 변경이 과거 ‘건국절’ 논란처럼 소모적인 국론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교롭게도 임정 수립 기념일 논란은 참여정부 때인 2006년 학계 내부에서 거세게 제기됐으며 2008년 이후 보수정권 9년 동안은 잠잠했다. 임정 수립 기념일을 1919년 4월 13일로 정한 것은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이다. 기념일 제정 당시에는 임시헌장이 4월 13일 선포됐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는 1932년의 ‘조선민족운동연감’과 1956년 발간된 ‘민족독립투쟁사 사료’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고 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 등이 당시 ‘4월 13일설’을 주도했다. 하지만 한시준 단국대 교수 등은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개원한 뒤 이튿날 임시헌장을 발표하고 국무원 선임까지 마쳤기 때문에 4월 11일을 임정 수립 기념일로 삼아야 한다”며 기념일 변경을 꾸준히 요구했다. 특히 ‘4월 11일설’과 관련한 자료들은 지속적으로 발굴됐다. 임정 내부의 기념식 시행 기록과 백범 김구가 주도한 한국국민당 기관지 ‘한민’, 중국신문 ‘대공보’, ‘신화일보’ 기사 등 역사적 자료는 20건이 넘는다. 임정 참여 인사들의 증언도 나왔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하반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의 합리적 획정 방안’이라는 제목의 정책 연구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 의뢰하고, 지난달에는 학술심포지엄을 주최해 기념일 변경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보훈처는 이를 토대로 이달 중 대통령령 개정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달 학술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4월 11일이 맞다고 결정했으며 여전히 4월 13일이 맞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미국 독립기념일 등 수립일(선언일)과 기념일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신중론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련의 과정이 정부 주도 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에 대한 의혹의 눈길도 없지 않다. 광복회의 한 관계자는 “건국절 논란 같은 문제가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김유찬 “MB가 정주영 배신한 건 차명재산 지키기 위해서였다”

    김유찬 “MB가 정주영 배신한 건 차명재산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추진 중이던 국민당이 아닌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가게 된 것은 자신의 차명재산 등을 비롯한 재산을 권력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세계일보는 13일 이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이었던 김유찬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이 전했다. 김유찬씨는 “2006년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함께 이 전 대통령 캠프에서 일한 주모씨와 함께 정주영 전 회장의 종손인 정모 박사에게서 이 전 대통령과 정 회장의 결별 이유를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김유찬씨는 “정 박사에 따르면 1992년 초 노태우 정권은 이미 이 전 대통령의 차명 재산 상당 부분을 파악하고 있었다”면서 “노태우 정권 차원에서 정주영 회장의 (국민당) ‘황색 돌풍’을 잠재우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돼 있는 재산을 빼앗기고 감옥 갈래, 아니면 우리에게 협조하고 전국구 국회의원 감투 받을래’라고 이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고 전했다. 김유찬씨는 “정 회장을 배신하고 재산을 지키고 감투(전국구 의원)를 받는 게 이 전 대통령의 기준에서 보면 남는 장사였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전 대통령은 1992년 현대건설 사장에서 물러나 정계에 입문했다. 정주영 회장은 그해 12월 치러질 대선에 나가기 위해 2월에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통일국민당이 아닌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영입돼 당선됐다. 이 일로 이 전 대통령과 정주영 일가와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광복 후 유명 역사학자들 월북·납북… 남한은 식민사학자들 장악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광복 후 유명 역사학자들 월북·납북… 남한은 식민사학자들 장악

    북한의 역사학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먼저 아래 글을 보자.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에 성공하자 그들의 소위 역사학자들은 조선역사에 대해서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이 입증한 사실의 가장 중요한 것이란 과연 어떠한 것들인가? 첫째 서기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약 500년 동안 오늘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漢)나라 식민지인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요, 둘째 신라·백제와 함께 남조선을 분거하고 있던 가라가 본래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요….” ‘조선’만 ‘한국’으로 바꾸면 아직도 한국 사학계가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한다고 비판하기 위해 엊그제 쓴 글 같다. 그러나 이 글은 ‘임꺽정’(林巨正)의 저자인 벽초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이 1949년에 쓴 ‘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일제 어용학설의 검토(상·하)’라는 글의 일부다. 윗글은 일제의 식민사학이 두 축으로 되어 있다고 분석한 글이다. 하나는 낙랑군이 서기전 108년부터 서기 313년까지 500여 년간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평양설’이고, 다른 하나는 가야가 임나라고 주장하는 ‘가야=임나설’이다.홍명희는 1948년 4월 백범 김구와 함께 ‘전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협상)’ 참석차 방북했다가 내려오지 않은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였다. 아들 홍기문도 훈민정음과 향가 및 이두(吏讀) 등에 정통한 국어학자였는데, 홍씨 부자는 국어뿐만 아니라 국사에도 해박했다. 정상적인 학자들이라면 국어와 국사는 떨어질 수 없다.●北은 ‘낙랑=평양설’ 1949년 이미 비판 홍기문이 1949년에 이미 ‘낙랑=평양설’을 비판한 것은 남한 학계에서 ‘낙랑=평양설’이 100년 전에 논증이 끝난 ‘정설’이라고 우기는 것과 잘 대비된다. 더구나 이때는 김일성 일가 중심의 주체사관이 등장하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이런 글들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역사학을 남북한 체제 경쟁의 주요한 요소로 설정한 데서 나온 글들이기 때문이다.1945년 10월 10~13일 평양에서 조선공산당 ‘이북 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김일성은 박헌영이 당수인 조선공산당에서 북한 지역을 떼어 독립하겠다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를 주장했다. 오기섭, 정달현 등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한 나라에는 하나의 공산당만 존재한다’는 코민테른(제3국제 공산당)의 ‘1국1당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대했지만 소련 군정이 지지하는 김일성의 주장이 관철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같은 해 10월 23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치되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을 먼저 사회주의 체제로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남한까지 사회주의화하겠다는 이른바 ‘민주기지론’을 채택한 것은 ‘북조선분국’ 설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북한에 먼저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남한과 체제 경쟁에 나서 통일하겠다는 의미였다. 북한은 이때 역사학을 체제 경쟁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다. ●南선 식민사관을 정설 인정 비난 자초 1946년 7월 31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김일성은 남한에 파견원을 보내 유수한 역사학자들을 초청했다. 박시형·김석형·전석담 같은 마르크시스트 역사학자들이 김일성의 초청에 응해 월북했다. 이외에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였던 역사학자 백남운도 1947년 5월 여운형 등과 근로인민당을 결성해 부위원장을 역임하다가 월북했다. 식민사관에 비판적인 남한의 역사학자 중에서는 국학대학 학장 정인보와 안재홍 등 소수만 남게 되었다. 그나마 이들도 6·25전쟁 때 모두 납북되고 말았다. 그 결과 남한에는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이병도·신석호 등만 남아서 역사학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이 북한의 학자들처럼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학에 의문을 품고 광복된 조국에 맞는 새로운 역사학 연구 기풍을 일으켰다면 지금 남한의 역사학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북한이 남한을 식민지 등으로 폄하하는 논리가 궁색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병도·신석호 등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작한 역사학을 하나뿐인 ‘정설’로 승격시키고 이를 비판하는 모든 학설을 이단으로 몰아 강단과 국사관련 국가기관에서 내쫓았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가 왜곡한 ‘낙랑군=평양설’이 이미 100년 전에 확립된 ‘정설’이라는 망발이 지금까지 횡행하면서 남한 사학계는 여전히 조선총독부를 추종한다는 비난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패수, 신채호 “요령성에” 이병도 “청천강” 북한은 1947년 2월 17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내에 ‘조선력사편찬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가장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사상에 의거해서 조선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옳게 표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라는 연속성은 역사학의 가장 기초이다. 그러나 남한은 이른바 전공이란 칸막이로 역사학과 다른 학문을 단절시키고, 역사학 내에서도 각각의 전공으로 서로 단절시켜서 ‘전공이 아니라서…’를 입에 달고 사는 분절적 역사학자들만 양산했다. 위원회의 위원장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투옥되었던 이청원이 맡았다. 이청원은 최익한의 사위였는데, 최익한은 조선 말기 영남 유림의 거두이자 파리장서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곽종석의 제자이자 사회주의자였고 1938년부터 ‘동아일보’에 ‘여유당전서를 독(讀)함’을 연재했던 다산 정약용 전문가였다. 위원회는 1948년 10월 2일 관할 기관을 교육성으로 이관했는데, 위원장은 교육상(敎育相: 교육부 장관) 백남운이 겸임했다. 위원회에는 백남운·박시형·김석형·김광진 등의 역사학자와 도유호 같은 고고학자뿐만 아니라 홍명희·한설야·리기영 등의 문학가들과 최창익 등의 정치가들도 참여했다. 그야말로 범국가적인 위원회였다. 이 위원회의 기관지가 앞의 홍기문의 글을 실은 ‘력사제문제’(歷史諸問題)였다. ‘력사제문제’는 1948년부터 1950년 6·25전쟁 직전까지 만 2년이란 짧은 기간에 18집이나 간행되었다. 고대사에 관한 여러 논문이 실렸는데, 그중 하나가 정세호가 1950년 ‘력사제문제’ 16호에 실은 ‘고조선의 위치에 대한 일고찰’이고, 또 하나가 17호에 실은 정현의 ‘한사군고’(漢四郡考)다. 정세호와 정현의 논리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고조선의 서쪽 강역이 지금의 북경 부근까지 이르렀다가 연(燕)나라 장수 진개(秦開)에게 1000~2000리의 땅을 빼앗긴 이후 지금의 대릉하와 요하 사이까지 밀렸다고 보고 있다. 한사군도 당연히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요동 지역에 있었다고 보았다. 남한에서 고조선의 강역을 평안남도에 국한했던 것에 비교하면 큰 차이였다. 이런 역사인식은 다분히 단재 신채호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였던 패수(浿水)의 위치에 대해서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은 압록강(쓰다 소키치)·청천강(이병도)·대동강(이나바 이와기치) 등 한반도 내의 강으로 비정했지만 정세호와 정현은 지금의 요하(遼河) 부근으로 비정했다. 그것도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1000~2000여리의 땅을 빼앗겨 축소된 이후의 패수가 그렇다는 것이었다. 신채호는 패수의 위치를 지금의 요령성 해성(海城)시로 비정했는데, 정현은 ‘한사군고’에서 “(신채호는) 패수를 지금 해성현에 있는 헌우락(軒芋樂)이라고 했는데, 참으로 탁월한 고찰 방법이다”고 높였다. ●신채호를 北 “탁월한 고찰” 南 “또라이” 패수의 위치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남한에서는 지지난 정권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진흥사업단장으로 연간 300억원대의 예산을 주무르던 한 역사학자가 공개 학술대회 석상에서 “단재 신채호는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라고 폄하했다. 신채호의 학설을 ‘참으로 탁월한 고찰’이라고 보는 북한학계와 ‘또라이, 정신병자’로 보는 남한학계 사이의 괴리는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 학계는 1960년대 초반까지 고조선의 중심지와 낙랑군의 위치를 고대 요동으로 보는 리지린 등의 문헌사학자들과 평양으로 보는 도유호 등의 고고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을 거치며 학설을 정리해 나갔다. 일체의 논쟁을 봉쇄하고 ‘낙랑군=평양설’이 ‘정설’이라는 따위의 비학문적 논리로 문제제기 자체를 막았던 남한 역사학의 행보와는 달랐다.(계속) 中 국공 내전 때 학자 쟁탈전…대만, 지식인들 학문 기반으로 대륙과 겨뤄 중국의 국공 내전 때 국민, 공산 양당은 문화재 쟁탈전만 전개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 쟁탈전도 전개했다. 1948년 12월 북경에서 이륙한 국민당 비행기에는 북경대 총장을 역임한 호적(胡適)과 청화대 역사학과 교수 진인각(陳寅恪) 등이 타고 있었다. 유수한 학자들을 대만으로 이송하는 ‘학자 이송’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남경에 기착하자 진인각은 대륙을 선택해 내렸고, 호적은 대만으로 갔다. 다수의 학자가 대륙을 선택했지만 북경대 총장대리를 역임했던 부사년(傅斯年)도 대만을 선택했다. 부사년, 호적 등은 국립 대만대와 중앙연구원(中央研究院) 등을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성장시켰다. 현 중화민국(대만)이 그 협소한 영토에도 대륙과 정신적으로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원천이 대만을 선택한 지식인들이 만든 학문에 있었다.
  • 헝가리 총선 反난민 여당 압승… ‘리틀 푸틴’ 오르반 4선

    헝가리 총선 反난민 여당 압승… ‘리틀 푸틴’ 오르반 4선

    민족주의 성향 “난민은 독” 발언 反유럽연합의 구심점 될 전망‘동유럽의 트럼프’ 또는 ‘리틀 푸틴’으로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극우 정당 피데스가 총선에서 압승했다. 통산 4선, 3연임을 보장받은 오르반 총리가 막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헝가리가 동유럽 반(反)난민, 반(反)유럽연합(EU)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8일(현지시간) 헝가리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여당 피데스와 기독민주국민당(KDNP) 연합은 총선 개표가 98.5% 진행된 가운데 득표율 48.5%를 기록했다. 전체 의석 199석 가운데 개헌이 가능한 3분의2에 해당하는 133석 또는 그보다 한 석 많은 134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르반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한층 굳건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평소 “외세에 의존하지 않겠다”며 강력한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내 왔다. 때문에 종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스트롱맨’ 지도자에게 비견되기도 했다. 평소 난민 문제를 놓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EU와 대립해 왔다. 공공연하게 EU의 난민 분산 수용 정책을 비판하고 난민을 ‘독’(毒)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민족주의만 강조해서 4선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헝가리는 오르반 총리가 재집권한 2010년 이후 줄곧 2∼4%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왔다.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도 EU 평균보다 높다. 오르반 총리는 1998년 35세에 총리직에 앉았다. 2010년 재집권에 성공했으며, 이번 승리로 2022년까지 헝가리를 이끌게 됐다. 사위가 연루된 부패 스캔들, 측근들의 언론장악, 시민단체 탄압 등의 문제점이 터졌으나 ‘오르반 돌풍’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올해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 퍼스트’라는 문구로 표심을 빼앗았다. 또 헝가리에 유입된 난민이 유럽의 기독교 문화를 훼손한다는 논리로 민족주의를 자극하기도 했다. 경제 안정도 승리의 발판이 됐다. 그의 재집권으로 EU가 동서로 분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디언은 “오르반 총리는 관용과 다원주의에 경멸을 표하는 사람”이라면서 “헝가리 총선이 EU에 경보를 내렸다. 유럽은 근본적인 싸움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오르반 총리는 비셰그라드 그룹(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가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EU에서 더 많은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또 EU에 적대적인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헝가리는 EU의 반대에도 차관을 받는 조건으로 러시아 국영기업 알스톰에 원전 확장 공사를 맡겼고,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에 대해 EU가 취한 제재에도 반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오르반 총리는 극우의 영웅”이라면서 “그는 외세와 맞서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해 EU 내에서 2등 국민으로 대접받는다고 생각해 온 헝가리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앞서 “나는 오르반 총리와 그의 용기를 존중한다. 그는 EU의 협박과 위협에 대응할 힘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나란히 앉거나 마주 앉거나… 中 ‘상석의 정치학’

    나란히 앉거나 마주 앉거나… 中 ‘상석의 정치학’

    베이징 인민대회당은 중국의 정치와 외교의 심장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처럼 국가의 근간을 세우는 정치 활동이 이뤄지며, 전 세계 각국과의 주요 회담이 이루어진다. 그런 만큼 인민대회당은 그 자체로 ‘권위와 의전’의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 지도자로서의 힘을 대내에 과시하며, 그 권위를 바탕으로 의전이 이뤄진다. 대지 면적 15만㎡, 건면적 17만㎡에 이르는 거대한 3층 규모로 내부에는 중국의 각 성(省)을 대표하는 33개의 큰 방이 있다. 각 방은 지방의 특징을 반영한 대형 그림과 장식 등으로 꾸며져 있다. 푸젠팅(福建廳)은 이 가운데 권위의 핵심이랄 수 있다. 정문이랄 수 있는 북문 왼편의 ‘작은 방’이지만, 국가주석이 머무는 곳이어서다. 최근 한·중 간의 두 차례 외교 결례 논란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푸젠팅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푸젠팅은 인민대회당의 수많은 방 가운데 사용 빈도가 가장 높다. 국가 정상 간 회담은 주로 둥다팅(東大廳)에서 열리고 이후 만찬이나 오찬은 맞은편 시다팅(西大廳)에서 이뤄진다. 푸젠팅에서도 정상회담은 이뤄지지만 기본 용도는 주석의 준비실이자 접견실이며 휴게실이다. 그래서 이 방은 기본적으로 이른바 ‘소파 세팅룸’이다. 외국 정상을 접견할 때 정중앙에 나란히 놓은 2개의 소파에 중국 국가주석과 외국 손님이 앉고, 배석자들은 양쪽으로 길게 늘어앉는다. 실무자들은 배석자 뒤편에 앉는다. 공식 회담을 할 때는 이곳에 테이블을 놓고, 양쪽 면에 마주 보고 앉아 왔다. 이처럼 중국이 ‘나란히 앉거나’, ‘마주 보고 앉는’ 관행을 깼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지난해 5월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이곳을 찾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몇 명의 일행 앞에 긴 테이블이 놓였고, 전에 없던 ‘상석’(上席)이 생겨났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푸젠팅에서 후진타오 당시 주석을 접견할 때나, 2013년 박 전 대통령의 특사로 인민대회당을 찾은 김무성 의원이 시진핑 주석을 만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만남이었다.2013년 5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시 주석을 푸젠팅에서 만났을 때와도 다르다. 북핵 문제가 심각했던 만큼 시 주석은 ‘비핵화’란 단어를 연거푸 써 가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시 주석은 2015년 7월 독일 사민당 당수를 만날 때도, 그해 5월 대만의 국민당 주석을 만날 때도 마주 앉았다. 2014년 11월 량전잉(梁振英)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을 회견할 때도 나란히 앉았다. ‘상석’의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7월 브릭스(BRICS)가 파견한 대표들을 만날 때 시 주석은 상석에 앉았다. 이에 대해서는 브릭스 대표와의 만남에서 상석에 앉은 것은 이해찬 특사 홀대 논란 이후, ‘비슷한 사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 섞인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한 국가의 정상이 보낸 특사는 해당 국의 외교장관보다 격이 높다. 정상에 준해 예우를 하는 게 국제적 관행이다. 지난해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단을 마주 보고 앉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시 주석은 프랑스 외무부 장관, 미 합참의장을 만날 때도 관행을 깨지는 않았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