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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돼지국밥과 육개장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돼지국밥과 육개장

    이젠 외국인들도 곰탕, 설렁탕, 삼계탕 등 우리 고유의 뜨끈한 탕반(장국밥) 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제법 즐긴다. 하지만 아직은 눈치를 보며 손사래를 치는 게 돼지국밥과 육개장이다. 돼지국밥의 약간 비릿한 냄새, 육개장의 얼얼한 매운맛이 낯설 것이다. 돼지국밥은 돼지 뼈와 머릿고기 등으로 곤 육수에 내장 등 잡육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이며 밥을 토렴해 먹는다. 토렴이란 밥을 담은 그릇에 국물을 부었다 빼는 것을 반복하면서 탱글한 밥알에 국물이 배도록 하는 조리법이다. 국밥에는 삶은 잡육을 삼베 보자기에 싸서 누른 뒤 가지런히 썬 제육편육을 넣기도 한다. 여기에 새우젓, 부추, 양파 등을 곁들인다. 본래 순대를 넣으면 순대국밥이라고도 하지만 순대는 만들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부산 등 경남 지역에선 머릿고기와 오소리감투라는 별칭을 지닌 위장, 허파, 염통, 간, 곱창 등을 넣는다. 이를 또는 내장국밥이라고도 한다. 육개장은 본래 개고기와 대파, 고춧가루 등으로 땀을 흠뻑 내면서 즐기던 보양식이었다. 개고기는 식용을 하는 데 호불호가 갈리니까 조선 후기 궁중 등에서 소고기의 양지머리로 대체됐다. 마늘, 숙주, 부추, 고사리 등 약성이 강한 채소에 고춧가루와 고추장, 고추기름을 넣고 팔팔 끓인다. 오래전부터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주로 사육되던 돼지가 갑자기 남쪽인 부산에 나타나 돼지국밥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더 아래로 내려가 제주나 오키나와에 돼지가 등장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우선 6·25전쟁 직후 부산엔 함경도에서 배를 타고 남하한 피란민이 많았다. 돼지국밥이나 순대는 그들의 고유 음식이다. 부산에 밀집된 미군 부대에서 돼지고기의 안심, 등심 등 질 좋은 살코기를 제외한 뼈나 잡육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실향민들이 고향의 맛으로 재현했다. 1960~70년대엔 경제 부흥기를 맞은 일본에서 돼지고기의 등심과 안심으로 만드는 돈가스가 유행한 덕분에 김해 등지에 수출용 축산단지가 조성되기도 했다. 제주 북부의 삼성혈에는 선사 시대에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라는 3명의 신이 땅에서 솟구쳐 탐라왕국을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을나’는 고구려의 고위 직함이다. 고씨는 고구려 왕족이고, 양씨는 양만춘 장군처럼 중국 요동 지방의 군벌 세력이다. 또 부씨는 평양의 지방 토호 세력이다. 고구려 역사에서 서로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이던 3개 집안의 어떤 이와 그 식솔이 제주에 느닷없이 등장한 것은 본국의 변란을 피해 망명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발해만에서 배를 타고 남하하면 제주 북부에 닿는다. 이때 고향에서 즐기던 돼지고기가 함께 전해졌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돼지 불고기는 제주 등에 머물다가 추격을 피해 탈출한 몽골 저항군 삼별초의 후손들에 의해 개발됐을 가능성이 있다. 소고기는 남하한 돼지고기와 달리 벼농사가 발달한 아시아 남방에서 북상했다. 조선 시대에 한양에선 소고기를 먹었으나, 평양 등에선 돼지고기를 즐겼다. 일제강점기 때 경북·대구에는 소 사육장이 많았다. 골목의 허름한 가게에서 손마디가 굽은 주인 할머니가 말없이 국자로 퍼주는 돼지국밥이나 육개장이 언젠가는 그 시대 주인공들의 입맛에 맞게 바뀌겠지만, 음식 문명의 뿌리는 꼭 흔적을 남긴다. kkwoon@seoul.co.kr
  • 13년 만에 알려진 문재인·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의 ‘인연’… 왜?

    13년 만에 알려진 문재인·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의 ‘인연’… 왜?

    盧대통령 당선자 때 유족 찾아 일일이 위로하며 법률 대책 조언 朴위원장, 13일 文자택 들러 해후 “더민주 입당해 총선 출마 도전”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인연이 13년 만에 공개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박성찬(58)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문 전 대표가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직후부터 3개월간 유가족을 조용히 도왔다’고 뒤늦게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제1야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칩거하는 문 전 대표의 13년 전 행적이 뒤늦게 알려지자 일부 야당 지지자는 “역시 문 전 대표는 정치인에 맞지 않는다”면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게 재빨리 알려야 할 정치인이 사골 국물 우려내듯이 수십 차례 우려낼 일을 13년씩이나 감추고 있었다니…”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이런 사연을 올린 박 위원장을 지난 19일 만났다. 그의 기억에 당시 유가족들은 희생자대책위원회가 마련한 대구시민회관에 모여 있었고 국회의원, 장관 등 많은 정·관계 인사가 찾아왔다. 이들 대부분이 대책본부 사무실에 들러 유가족 대표들만 만나고 돌아갔지만 문 전 대표는 행보가 달랐단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충격에 넋을 잃은 유가족들을 일일이 위로하면서 사고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 진행될 법률적 절차 조언도 했다. 박 위원장은 “당시 문 전 대표가 누구인지 몰랐다. 대구 모 경찰서 정보 형사가 문 전 대표를 가리키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도운 분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뒤 유가족들이 건의한 희생자 추모비와 위령탑 건립, 추모공원 조성, 희생자재단 설립 등을 국무조정실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마 문 전 대표의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월 25일 이후에 문 전 대표는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대구 지하철 참사는 민정수석실 업무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 전 대표에게 제안했던 일들은 유가족 간 의견 대립 등으로 여전히 미완인 상태다. 대구 지하철 참사 13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28일 유가족들이 모였을 때 박 위원장은 “항상 회색 양복을 입고 저를 비롯한 유가족들의 두 손을 잡고 위로하던 문 전 대표의 모습이 갑자기 뇌리를 스쳐 갔다”고 했다. 생각난 김에 박씨는 지난 5일과 13일에 문 전 대표를 찾아 경남 양산으로 갔다. 5일에는 허탕을 치고 13일에야 면담을 했는데 “세월호 참사,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때 경찰 폭력에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백남기 농민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지난 1일 더민주 대구지구당에 입당했다. 그는 “문 전 대표와의 인연이 은연중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내친김에 비례대표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직능별 비례대표에서 사회안전 부문에 배정된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다. 그러나 현재 더민주의 공천권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내 손에 있다”고 하는 마당에 그가 13년 전 문 전 대표와의 인연을 밝혔다고 이른바 ‘친노’(친노무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25일 전화통화에서 “현재 당 대의원 500명을 상대로 분주히 뛰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13년 만에 밝혀진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 인연

    13년 만에 밝혀진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 인연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들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인연이 13년 만에 공개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다. 박성찬(58)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4일 페이스북에서 ‘문 전 대표가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직후부터 3개월간 유가족을 조용히 도왔다’고 뒤늦게 올리면서 시작됐다. 제1야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칩거하는 문 전 대표의 13년 전 행적이 뒤늦게 알려지자 일부 야당 지지자들은 “역시 문 대표는 정치인에 맞지 않는다”며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 재빨리 알려야 할 정치인이 사골국물 우려내듯이 수십차례 우려낼 일을 13년씩이나 감추고 있었다니?”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이런 사연을 올린 박 위원장을 지난 19일 만났다. 그의 기억에 당시 유가족들은 희생자대책위원회가 마련한 대구시민회관에 모여 있었고, 국회의원, 장관 등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찾아왔다. 이들 대부분 대책본부 사무실을 들러 유가족 대표들만 만나고 돌아갔지만, 문 전 대표는 행보가 달랐단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충격에 넋을 잃은 유가족들을 일일이 위로하면서 사고 대책을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 진행될 법률적 절차 조언도 했다. 박 위원장은 “당시 문 전 대표가 누구인지 몰랐다. 대구 모 경찰서 정보 형사가 문 전 대표를 가리키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도운 분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뒤 유가족들이 건의한 희생자 추모비와 위령탑 건립, 추모공원 조성, 희생자 재단설립 등을 국무조정실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아마 문 전 대표의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월 25일 이후에 문 전 대표는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대구지하철 참사는 민정수석실 업무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당시 문 민정수석에게 제안했던 일들은 유가족 간 의견 대립 등으로 여전히 미완인 상태다. 대구지하철 참사 13주기를 앞두고 지난달 28일 유가족들이 모였을 때 박 위원장은 “항상 회색 양복을 입고 저를 비롯한 유가족들의 두 손을 잡고 위로하던 문 전 대표의 모습이 갑자기 뇌리를 스쳐 갔다”고 했다. 생각난 김에 박씨는 지난 5일과 13일에 문 전 대표를 찾아 경남 양산으로 갔다. 5일에는 허탕을 치고 13일에야 면담을 했는데 “세월호 참사,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문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때 경찰 폭력에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백남기 농민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일 더민주 대구지구당에 입당했다. 그는 “문 전 대표와 인연이 은연중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내친김에 비례대표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직능별 비례대표에서 사회안전 부분에 배정한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다. 그러나 현재 더민주의 공천권은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내 손에 있다”고 하는 마당에 그가 13년 전 문 전 대표와 인연을 밝혔다고 이른바 ‘친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25일 전화통화에서 “현재 당 대의원 500명을 상대로 분주히 뛰고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

    깡촌 소작농의 아들 누나의 희생으로 진학 철도원으로 살다가 다시 주경야독육사에 붙고도 결핵으로 불합격그래도 내 결론은 도전박운상 선생님 덕에 물리학에 눈떠4년 만에 석·박사 탄소나노튜브 실험과 응용 연구나는 콧수염 학자 애벌레처럼 살 거야 “제가 원래 털이 빨리 자라는 편이에요. 철도원 생활을 하다가 스물두 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오랜만에서 해서 그런가, 너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공부에만 정신이 팔리니까 다른 일들은 다 귀찮아지더군요. 하루이틀 안 깎은 게 60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콧수염의 역사를 묻자 이영희(61) 교수는 “사람들이 전공인 탄소나노튜브보다 이 털들을 더 궁금해하니 큰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경기 수원에 있는 연구실(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물리학과)로 그를 만나러 간 지난 15일은 전국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리구조연구단 단장을 겸하고 있는 이 교수는 7명의 교수, 30명의 박사후연구원 및 연구교수, 80명의 석·박사 과정 학생 등 120명에 이르는 대식구와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학생들 논문 지도 때문에 요즘 정신이 없다”며 약속 시간에 30분 늦은 데 대해 양해를 구했다. -1974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다. 기차를 타고 출근하며 메마른 창밖을 내다보는데 문득 ‘10년 뒤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철도고를 졸업하고 철도청에 들어간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였다. 인천 부평에서 누나 집에 얹혀살며 매일 근무지인 서울역으로 통근을 했다. 갑작스럽게 든 생각처럼 결론도 갑작스럽게 났다. ‘그래, 다시 공부를 하는 거야.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겠지.’ 그때 고민만 하고 끝났다면 지금쯤 난 한적한 시골역의 역장이 돼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렇게 산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중학교 때까지 전북 김제의 깡촌에서 자랐다. 논이 동네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누가 “이 동네에서 가장 못사는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누구라도 우리 집을 가리켰을 것이다. 부모님은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머슴에 가까웠지만.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초등학생 때 가진 꿈은 말을 타고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큰 농장을 갖는 것이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어린 사람에게까지 무시당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동네 형들하고도 주먹질을 할 정도로 괄괄한 ‘이씨네 말썽꾸러기’로 통했다. -원래 집안 사정이 안 좋기는 했지만 애들이 공부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어려워진 것은 ‘딸깍발이’ 할아버지 탓이 컸다. 일제가 쳐들어와 양반들이 몰락하자 “왜놈들 세상에선 아무것도 안 한다”며 평생 돈벌이라곤 하지 않으셨다. 집 안에 먹을 게 다 떨어져 자식들이 굶고 있는데도 할아버지는 소신만 지키셨던 것 같다. 평생 힘들게 사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지금도 여전하다. 어려서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집은 이게 뭐냐”고 대들다가 아버지나 삼촌들한테 맞은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가난한 집에 먹는 입은 많다고, 나는 3남 2녀 중 장남이었다. 바로 위 누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누나는 집안 사정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내가 이만큼이나마 된 것도 그렇지만 여동생과 남동생이 초등학교 교사와 공무원을 하고 있는 것도 누나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부모님은 “우리 장남 영희는 중학교까지는 나와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뒤집어 보면 중학교 졸업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남의 집 머슴일을 하면서 틈틈이 중학교 등록금을 모아 놓으셨는데, 어느 날 그 돈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에 못 가게 될 상황이 된 거였다. 그때 이웃집 할머니께서 “사내놈이 중학교까지는 나와야 하지 않겠나”라며 여기저기 수소문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셨다. 그게 나에겐 약이 됐다. 중학교 들어가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 한 초등학교 친구가 “영희가 미쳤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꿈은 없었다. 그냥 공부를 잘하는 걸로 만족이었다. -대학교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등학교는 마치고 싶었다.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인문계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나라에서 세운 철도고에 들어가면 학비 대주고, 나중에 취업까지 시켜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딱 내 학교였다. 그렇게 철도고에 들어갔는데 철도원으로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다 보니 별달리 꿈이란 게 생길 턱이 없었다. 머리건 몸이건 좀 더 써 보고 싶은데, 내 몸의 혈액과 호르몬들은 나에게 한계 상황까지 가 보라고 다그치는데 현실은 그저 ‘등교-수업-하교’가 전부였다. 그러다 유도를 시작했다. 먹고 자는 시간과 수업받는 시간을 빼고는 그것만 했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멋지게 업어치고 메칠 수 있을까, 관심은 그것뿐이었다. -1974년 1월 5일 토요일에 졸업식을 하고 7일 월요일 서울역으로 첫 출근을 했다. 통신전자과 출신인 나에게는 통신기지국과 열차 간 송수신기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하고 열차 자동 정지장치를 수리하는 일이 부여됐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달을 지내고 난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들었던 것이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됐다. 딱히 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가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에 공부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고나 할까. 실업계 학교를 나왔으니 당연히 대학 입시 기초가 약했다. 서울 종로2가에 있는 종로YMCA에서 대학입시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난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국문학과가 어울릴까? 수학 문제를 풀 때가 제일 신나는데, 그리로 가 볼까?’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학원에서 ‘분석물리’ 과목을 가르치던 박운상 선생님 덕이다. 입시 학원이었음에도 문제 풀이 요령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간단한 실험도구를 갖고 물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물리학도 문학만큼이나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구나.” 거창하게 말하면 내 인생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1975년 초 기관차 수리 공장이 있는 수색역으로 발령났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곳이라 공부하기엔 좋았지만 그러다 보니 체력은 바닥나고 업무 환경도 그리 좋지 않아 대입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결핵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중한 병을 얻었다. “고등학교 졸업해 번듯한 직장까지 얻었으면서 몸까지 상해 가면서 대학을 가려고 하느냐.” 아버지는 나를 꾸짖다가 “다 내가 못나서 널 제때 공부를 못 시켜 준 탓”이라며 통곡을 하셨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공짜로 공부시켜 주는 곳.’ 내가 가야 할 대학의 최우선 조건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필기·실기시험에 모두 합격했지만 결핵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그때의 상실감은 아주 컸다. 회사에 2개월 휴직계를 냈다. 머리까지 박박 밀고 고향집에서 2주 동안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부모님께서는 ‘얘가 죽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셨단다. 방 안에 틀어박혀셔 ‘과연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결론은 ‘일단 시작한 것, 원 없이 한번 도전해 보자’는 것이었다. -2개월 휴직 기간이 끝나니 김제에서 가까운 익산역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직장 생활과 대학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전북대 물리학과였다. 입학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고 76학번으로 입학했다. 함께 일하는 직장 선배가 눈감아줘 근무 시간에 전공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그러기를 1년. 공부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회사에 못 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표를 냈다. -죽어라고 공부만 했다. 장학금 받기 위해서도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뤄진 공부가 쌓이자 내 평생의 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지도교수님께서 미국 켄트대를 추천해 주셨다. 입학 지원서를 냈는데 놀랍게도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1982년 8월 졸업이 예정돼 있었는데 가을 입학을 하라는 통보를 받아 7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학 후 첫 학기를 끝낸 1월 갑자기 온몸이 아파 왔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웬걸. 학교 보건소 의사는 타이레놀 한 알을 주더니 “푹 자라”고 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유학에서 비롯된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좋아하는 공부를 장학금 받고 해서 그랬을까. 석·박사 과정을 4년 만에 초고속으로 마쳤다.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고 모교인 전북대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마침 우리 학교에 교수 자리가 하나 났으니 지원하라”고 하셨다. 덜컥 합격했는데 그게 1986년 여름이었다. 7월 켄트대 학위수여식을 한 달 앞두고 모교에 돌아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박사 때까지 희한하게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는데 외려 그것 때문에 나는 졸업식에 참석해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학위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이 없다. 아들내미와 딸내미가 아빠 학력 위조한 거 아니냐고 말한 적도 있었다. -반도체 물리학이 전공이었지만 다양한 분야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있었다. 1991년 탄소나노튜브가 세상에 처음 소개됐다. 논문들을 읽다 보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본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기초연구이면서도 실험과 응용연구가 가능했다. 대단한 매력이었다. 물리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이론과 실험 두 분야를 동시에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내게는 공고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이 있었다. 직장에서 열차 무전기를 고쳤던 경험 등 현장에도 익숙하다. 그래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실험과 응용연구에 두려움이 없었다. -일반 사람들에게 내 연구 분야는 아주 생소하다.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탄소는 뭐고, 나노는 뭐고, 거기에 튜브는 뭐란 말인가. 탄소나노튜브 연구가 잘 이뤄지면 요즘 많은 사람이 관심 갖는 전기자동차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정도로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까. 탄소나노튜브를 응용하면 고성능 에너지 저장장치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전기차의 생명인 배터리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전자 소재로 응용될 경우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초고속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다.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각국의 연구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눈에 불을 켜고 책과 논문을 파고 실험을 하는 것이다. 탄소나노튜브의 기초이론을 보강하고 응용연구로 연결시키는 과정은 앞으로도 지난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후배들과 함께 가야 할 길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막다른 길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은 물론 연구원들에게도 나는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나온 구절을 인용한다. ‘애벌레가 화려한 나비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최종 목표’를 묻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다. “내 최종 목표는 이거다”라고 정해 버리면 그것을 성취하고 난 다음에는 무슨 재미로 삶을 살겠나. 나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내 인생 최종 목표를 향해 이제 제대로 한 걸음 뗄 수 있는 준비가 됐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이영희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나라보다 해외 학계에서 더 유명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리구조연구단장을 함께 맡고 있는 그는 전 세계 대학 연구실과 산업 현장에 ‘탄소나노튜브’ 열풍을 일으킨 한국의 대표 물리학자 중 한 명이다. 차세대 신소재로 각광받는 단층 탄소나노튜브의 대량 합성과 성장 메커니즘 규명이 그의 성과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론’과 ‘실험’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자기 주력 분야를 정한다. 그러나 이 교수는 탄소나노튜브 이론뿐 아니라 수소 저장, 투명전극, 복합체 연구 등 산업화 기술도 함께 개발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누가 “기초과학은 투자 대비 성과가 적다”, “기초과학은 돈이 안 된다” 같은 말을 하면 질색을 한다. ‘기초과학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그가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1955년 전북 김제 출생 ▲1987년 전북대 물리학과 교수 ▲1989년 미국 에임스국립연구소 방문연구원 ▲1993년 IBM 취리히연구소 방문연구원 ▲2001년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2006년 한국물리학회 학술상 수상 ▲2006년 국가석학 선정 ▲2014년 수당상 기초과학분야 수상. 【탄소나노튜브 Carbon nanotube】 탄소 6개로 이뤄진 육각형 모양이 서로 연결돼 가늘고 긴 대롱 모양을 이루고 있는 신소재. 1991년 일본 이지마 스미오 박사가 처음 발견한 이 물질은 튜브의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1에 불과한 나노(10억분의1)급 크기여서 탄소나노튜브로 불린다. 탄소나노튜브는 구리보다 전기 전도율이나 열 전달률이 우수하고 강도도 강철보다 10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배터리, 초강력 섬유, 생체 센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가 원래 털이 빨리 자라는 편이에요. 철도원 생활을 하다가 스물두 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오랜만에서 해서 그런가, 너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공부에만 정신이 팔리니까 다른 일들은 다 귀찮아지더군요. 하루이틀 안 깎은 게 60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 하츠,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가스쿡탑 3구 출시

    하츠,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가스쿡탑 3구 출시

    공기 질 관리 기업 ㈜하츠(대표 김성식)가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가스쿡탑(GC-3605SDSH/SASH)’ 을 3월 출시한다고 밝혔다. 하츠는 25년간 후드와 주방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렌탈 후드, DIY 후드 등 고기능에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국내 후드 시장을 선두하고 있는 기업이다. 후드 이외에도 빌트인 기기와 최근 출시한 아로마 디퓨저 등 소비자 중심의 제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에 하츠가 직접 개발한 가스쿡탑은 자체 생산라인 구축 이후 처음 출시되는 상품으로, 3,440kcal(4kW)의 고화력으로 빠르고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다. 최초 점화 시 눌러서 돌리면 바로 켜지는 퀵 스타트(Quick Start) 기능으로 더욱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감각적인 직선과 유기적 곡선의 조화로 주방 공간을 깔끔하게 연출하는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이다. 또한 소화안전장치가 있어 불꽃이 꺼지면 가스를 자동으로 차단하고 국물이 흘러도 제품 내부로 들어가지 않는 실드 버너로 안전까지 고려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파워코드선 타입과 건전지 타입으로 선택이 가능하고, 클립삽입형으로 설치도 편리해 사용자 편의성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해 온 하츠만의 노하우가 반영되어 있다. 하츠 관계자는 “공간 활용 및 인테리어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하츠가 자체 개발한 가스쿡탑은 높은 화력에 심플한 디자인으로 편리한 요리뿐만 아니라 깔끔한 주방 공간 연출이 가능해 트렌디한 제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하츠는 지난 18일(목) 서울 역삼동 노보텔앰배서더 호텔에서 2016년 하츠 딜러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 현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하츠는 가스쿡탑 자체생산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후드와 더불어 빌트인 가전 전문업체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됐다. 하츠 가스쿡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www.haatz.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국토기행] 강원 삼척시

    [新국토기행] 강원 삼척시

    강원 삼척시는 험준한 태백산맥과 넓고 긴 해안선, 많은 항·포구를 간직한 천혜의 관광지다. 여기에 수많은 계곡과 깨끗한 백사장,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해변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5억 3000만년 전에 생성된 환선굴과 대금굴은 삼척에 신비로움까지 선사한다. 두타산 정기를 이어받고 오십천 맑은 물이 죽서루를 감돌아 동해로 흐르는 곳을 터전 삼아 제왕운기의 자주정신과 호국정신을 이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태백탄전과 동해공업지역의 연계 교역지로 지하자원, 수산자원, 관광자원이 풍부해 한때 산업의 근간이 되기도 했던 고장이다. 올 상반기에 삼척~동해 간 고속도로가 개통하고 2018년 포항~삼척 간 동해선 철길까지 완공하면 사통팔달 교통 요지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은 지역 경제에 생기를 줄까 벌써 기대에 부풀었다. 강원 최남단에 진주처럼 남아 있는 삼척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삼척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볼거리 ●관동팔경 제1루 죽서루 노래한 詩 500수 넘어 관동팔경의 제1루 죽서루(보물 제213호)는 삼척시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태종 3년(1403년)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터에 중창한 뒤 지금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중수하거나 증축했다. 죽서루는 하층이 17개의 기둥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가운데 9개는 자연석에 세워졌으며 8개는 넓은 바위를 기초석으로 건립돼 건축사적 특성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건물 상층부는 20개의 기둥에 의지해 팔작지붕으로 덮였다. 죽서루 난간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면 서쪽으로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아래로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 오십천의 푸른 강물이 휘감아 돌아 흘러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 및 화가들이 끊임없이 찾아 죽서루를 노래했다. 현재 알려진 시는 500수가 넘는다. ●고려 마지막 왕이 잠든 공양왕릉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태동이 시작된 곳이 삼척이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일파에 의해 교살됨으로써 고려의 국운이 삼척에서 끝을 맺는다. 강원도 기념물 제71호인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공양왕릉에는 왕자 왕석과 왕우, 그리고 시녀의 무덤이 함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공양왕과 그의 추종자들이 살해된 곳이 살해재이고 이곳에 한 달이 넘게 핏물이 흘렀다. 궁촌은 임금이 계신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이성계가 삼척 땅에서 공양왕을 살해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삼척은 조선의 건국이 시작된 곳이다. ●조선 왕실 가장 오래된 선대 묘 준경묘·영경묘 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이안사)의 아버지인 이양무 장군 묘가 준경묘다. 조선 왕실의 가장 오래된 선대 묘로 그 터는 왕기가 서린 천하의 대길지로 조선왕조를 태동시켰다는 ‘백우금관(百牛棺) 전설’(100마리 소 대신 흰 소, 금관 대신 보리짚으로 관을 만들어 사용)이 전해진다. 이양무는 본래 전주의 호족이었다. 당시 향촌 사회를 붕괴시키는 고려 정권에 대한 불만이 관기 문제로 촉발되자 이를 계기로 170여호의 자기 세력을 이끌고 삼척에 정착했다. 이양무는 1231년(고려 고종 18년)에 죽었다. 이들은 의주로 이주하기까지 삼척에서 17년여간 살았다. 이양무 부인의 묘가 영경묘다. 역사성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적 가치 등 중요한 학술 가치를 인정해 강원도 기념물에서 2012년 사적 제524호로 승격됐다. ●물과 5억년 시간이 빚은 환선굴·대금굴 물과 오랜 시간이 빚어낸 삼척의 동굴은 모두 55개로 대이리 동굴지대(천연기념물 178호)를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개방한 동굴은 환선굴과 대금굴이다. 동굴 생성 시기는 고생대(5억 3000여만년 전)로 알려졌다. 동굴 내부에선 에그프라이 석순, 곡석, 종유석, 동굴진주 등 기기묘묘한 동굴 생성물이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지하에는 근원지를 알 수 없는 많은 양의 동굴 수가 흐르고 있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동굴 호수가 형성돼 있는 게 특징이다. 백두산 천지를 닮은 천지연, 비가 오면 높이 2m까지 뜰 수 있도록 설치한 용소부잔교, 높이 8m의 비룡폭포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140m의 인공터널을 지나 동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덕항산 절경과 주변의 생태공원, 전나무 숲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어촌민 생활 느낄 수 있는 해신당공원 동해안 유일의 남근 숭배 민속이 전해 내려오는 해신당공원은 어촌민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어촌민속전시관,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남근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됐다. 또한 공원을 따라 펼쳐지는 소나무 산책로와 푸른 신남바다가 어우러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웃음 바이러스가 넘쳐나는 동해안 최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동해안 따라 5.4㎞ 삼척해양레일바이크 삼척해양레일바이크는 일제강점기, 삼척에서 나오는 지하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삼척에서 포항까지 철로를 놨다가 해방이 되면서 중단한 것을 삼척시에서 2010년 관광자원화한 것이다. 레일바이크 구간은 모두 5.4㎞에 이르며 레일바이크를 타고 가다 보면 자연스레 동해안의 경관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아름다운 길 100선 선정 된 새천년해안도로 이름처럼 새천년을 맞는 2000년에 만들었다. 새천년해안도로는 삼척항에서 삼척해변까지 4.5㎞에 이르는 코스로 바다와 산을 가로질러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 해안 절경과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관광도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다.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졌지만 중간중간 차를 멈추고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소망의탑, 조각공원, 삼척해변 사랑공원 등이 있다. ●전설 깃든 조각·그림… 수로부인헌화공원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남화산 정상에 있는 수로부인헌화공원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헌화가’와 ‘해가’ 속 수로부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공원이다.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의 부인이다. 남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수로부인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돌산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어 하자 마침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칠 때 부른 노래가 4구체 향가인 헌화가다.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끌고 갔는데 백성이 노래를 부르자 다시 수로부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노래가 신라가요인 해가다. 공원에는 이 수로부인 전설을 토대로 한 다양한 조각과 그림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산책로, 데크로드, 쉼터 등이 잘 갖춰져 있어 탁 트인 동해의 비경을 감상하면서 걷기 좋다. 공원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형 수로부인상은 높이 10.6m, 가로 15m, 세로 13m, 중량 500t에 달한다. 천연 돌로 만들어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현재 임원항 방파제 부근에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운행 중이다. >>먹거리 ●버림받던 고기에서 금치 된 곰치 곰치는 다른 고장에서도 볼 수 있는 어종이지만 동해안의 곰치가 살이 더 부드럽고 담백하다. 잘 묵은 김치와 함께 푹 끓여 낸 곰치국은 살살 녹는 하얀 속살에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 때문에 해장국으로 최고다. 곰치국은 삼척이 원조다. 옛날 고기잡이배에 큰 곰치가 걸리면 “재수 없게 제사상에도 못 오르고 값도 없는 이놈의 곰치가 그물 찢어지게 왜 이리 걸렸냐”고 푸념하며 나룻가에 버렸다고 한다. 그런 곰치가 어느 때부터인가 삼척의 대표 음식으로 전국에 소개되며 이제는 바다에서 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줘도 먹지 못하는 귀한 음식이 됐다. ●쫄깃한 속살·담백한 맛 삼척 대게 대게는 물이 차면 살이 꽉 차는 한랭성 어종으로 겨울이 제철인 음식이다. 고려 시대 문장가인 이규보는 게를 산해진미를 초월하는 맛이라고 격찬했고,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1600년대에 지은 ‘도문대작’에서 “삼척에서 나는 대게는 크기가 강아지만 해 그 다리가 대나무 줄기만 하다. 맛이 달고 포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했다. 게는 삼척말로 ‘기’이므로 게 모양의 줄을 당기는 놀이인 ‘게줄다리기’ 또한 ‘기줄다리기’로 불린다. 지난해 12월 삼척의 기줄다리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인접지 경북 울진과 영덕의 인지도에 밀려 명성을 얻지 못하던 삼척의 대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산삼 효능 ‘삼척 장뇌산삼’ 지리적 표시제 등록 120년 전 삼척의 하늘과 맞닿은 작은 마을인 여삼리에서 한 어르신이 산삼씨를 근처 산에 심은 게 현재 ‘삼척 장뇌산삼’의 시초로 알려졌다. 현재 대략 60여 농가가 연간 1만본 정도를 생산하는 삼척 장뇌산삼은 2010년 특허청에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등록을 하며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삼척시는 이를 홍보하기 위해 삼척교 입구에 장뇌 홍보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찍 따서 말린 올미역은 산후조리 인기상품 올미역은 이른 철에 따서 말린 미역으로 허균의 도문대작을 보면 “조곽(早藿)은 이른 미역으로 삼척에서 1월에 나는 게 좋다”고 기록돼 있다. 올미역은 색깔이 온통 검은색으로 요오드 성분 함량이 높아 피를 맑게 해 주는 성질이 있어 산후조리용으로 인기가 많다. ●진한 맛과 향 한잔~ 친환경 ‘삼척 머루와인’ 삼척 너와마을에서 생산하는 머루와인은 해발 600m의 육백산 청정 지역에서 재배한 친환경 머루를 사용해 맛과 향이 진하다. 너와마을 와인공장에는 구입 및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머루는 포도에 비해 5~10배 정도 많은 칼슘, 인, 회분, 안토시아닌 성분이 함유돼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장기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 저혈압과 고지혈증, 부인병 예방과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부고]

    ●조기엽(전 해병대 사령관)씨 별세 성준(케이테코 상무이사)성운(한국물가협회 전산팀장)씨 부친상 방태현(방태현치과병원 원장)씨 장인상 윤경희(대구사이버대 외래교수)씨 시부상 9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30분 (02)2258-5940 ●강한수(경기일보 동부권취재본부장)씨 모친상 11일 용인 강남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31)284-4412 ●장재필(대구은행 차장)재진(두산중공업 차장)재민(현대케피코 차장)씨 부친상 10일 대구 모레아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6시 (053)801-9999 ●이용린(의정부시 자치행정국장)씨 장인상 11일 의정부 중앙병원, 발인 13일 오전 10시 (031)847-4444 ●신원영(신원문화사·신원문고 회장)씨 모친상 주환(새누리당 부대변인)씨 조모상 10일 공주 계룡농협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9시 (041)853-4444 ●권인택(전 수원시 팔달구청장)씨 모친상 11일 수원 연화장, 발인 13일 오전 9시 (031)218-6597 ●송국현(교보생명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장)영현(유비온 차장)씨 부친상 오명구(사업)박형옥(미국 거주)강현호(사업)최용배(대련국제학교 교사)씨 장인상 11일 동국대 일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11시 (031)961-9400
  • [新국토기행] 충남 태안군

    [新국토기행] 충남 태안군

    충남 태안군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해수욕장이 있다. 안면도 두여해수욕장 등 운영을 하지 않는 두 곳을 빼고도 30곳에 이른다. 만리포, 꽃지 등 유명 해수욕장이 포진해 있다.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1978년 지정)이 있는 태안은 559.3㎞의 리아스식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수려한 바다와 기암절벽, 은빛 백사장을 볼 수 있는 해변길만 170㎞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최근 ‘세계의 국립공원’으로 인정해 2007년 12월 7일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로 기름 범벅이 됐던 바다의 생태 가치와 보전 상태가 사고 전처럼 깨끗해졌음을 공식 인정했다. 바다에는 119개의 이름 모를 섬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다. 항·포구가 곳곳에 널려 있고, 안흥항을 중심으로 전국의 낚시꾼들이 몰려드는 ‘낚시 천국’이기도 하다. 철마다 꽃게, 우럭, 대하 등 바다 먹거리가 넘쳐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풍족한 바다 먹거리는 우럭젓국 등 이곳만의 독특한 음식을 만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게다가 2018년 이후에는 국내 최장의 해저터널과 교량으로 보령 대천항~안면도 영목이 이어져 주민들은 벌써 국내 최고의 해양관광지로 떠오를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볼거리 ●123만 봉사자의 자취 배어 있는 ‘솔향기길’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123만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을 닦아 내기 위해 드나들던 길을 둘레길로 만들었다. 그들의 숭고한 자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해변을 따라 모두 66.9㎞에 걸쳐 뻗어 있고, 여섯 코스로 나뉜다. 10.2㎞ 길이인 1코스는 가로림만 끝자락 만대항에서 출발한다. 가로림만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갯벌이 펼쳐져 있다. 갖가지 수산물이 풍부하다. 1코스는 꾸지나무골해수욕장까지 이어진다. 원북면 대기리 갈두천까지 네 개 코스였으나 2013년 안면도 꽃지해수욕장까지 두 개 코스가 더 만들어졌다. 길 이름대로 소나무가 즐비하게 도열한 길을 걸으면서 아름답고 탁 트인 서해를 감상할 수 있다. 길 아래 해변으로 내려가면 갯바위 또는 갯벌이 맞이한다. 기름 사고를 기억하게 하는 희망변화방조제가 있고 용난굴, 구멍바위, 소코뚜레바위 등 신비한 풍경을 전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트레킹 마니아와 가족단위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자원봉사자도 다시 찾아 되살아난 바다에 환호한다. 정다운 농어촌 풍경과 가까운 항·포구에서 굴과 우럭 등 싱싱한 회를 즐기는 것은 덤이다. 서해안의 대표적 힐링 탐방로다. ●국내 최대 해안 모래언덕 ‘신두리 사구’ 국내 최대 해안 모래언덕이다. 가도 가도 모랫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해안선을 따라 길이 3.4㎞, 폭 0.2~1.5㎞ 규모로 있다. 태안반도 북서부 해안인 원북면에 자리잡고 있다. 신두리 사구는 빙하기 이후 1만 5000여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래가 수북이 쌓여 있다. 바닷바람을 막고 파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파도를 내쳐 모래를 유실시키는 인공 방파제와 다른 부분이다. 사구가 발달한 해수욕장에서는 해마다 모래를 사다 뿌리는 풍경을 볼 수 없다. 모래 안에 물을 머금어 갖가지 사구 식물이 잘 자라기 때문에 독특한 생태계를 자랑한다. 신두리 사구는 국내 최대 해당화 군락지로 유명하다. 갯완두, 갯방풍 등 희귀한 해안식물들도 자생한다. 이미 다른 데서 보기 힘든 표범장지뱀, 종다리, 맹꽁이, 쇠똥구리, 금개구리 등 희귀 동물도 서식 중이다. 특히 두웅습지는 희귀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신두리는 사구로는 드물게 천연기념물(제431호)로 지정됐다. ●1만 3200여종 식물 천국 ‘천리포수목원’ 국내 첫 민간 수목원이다. 소원면 의항리 62만㎡에 조성된 수목원은 ‘나무와 꽃의 보고(寶庫)’다. 1만 3200여종의 식물이 심어져 있다. ‘귀신 쫓는 나무’로 알려진 호랑가시나무 370여종에 목련 400여종, 동백나무 380여종 등이 있다. 목련 종류는 세계적이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가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했다. 아시아에서 최초였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때에는 국내 수목원 중 유일하게 관광명소로 선정됐다. ‘서해안의 푸른 보석’으로 불리는 수목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잘 가꿔져 있다. 이 수목원을 만든 사람은 ‘푸른 눈의 한국인’ 고 민병갈(미국명 칼 페리스 밀러·1921~2002)씨다. 미 군정 때인 1945년 통역관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이곳을 골라 50년간 사재를 털어 만들었다. 그의 묘도 이 수목원에 있다. 2009년 4월부터 일반에 개방돼 누구나 아름다운 비경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국보 1호 숭례문 복원 일등공신 ‘안면송’ 안면도를 가로지르면 하늘로 쭉쭉 뻗은 소나무가 끝없이 펼쳐진다. 이른바 ‘안면송(松)’이다. 줄기가 붉은 적송이지만 안면도 것임을 명명해 특별 대접한다. 몸통이 곧게 치솟은 자태가 흡사 빼어난 미인을 연상시킨다. 안면송은 단일 수종으로 500년 넘게 보호를 받으면서 귀하게 쓰였다. 우수한 품질과 장대한 크기로 고려시대부터 궁궐이나 선박용으로 사용됐고, 조선시대 경복궁을 지을 때도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2008년 불에 탄 국보 1호 숭례문을 복원하는 데도 안면송이 쓰여 그 우수성이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요즘은 솔숲이 피톤치드를 뿜어내 심신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인기다. 안면송이 빼곡한 안면읍 승언리의 자연휴양림은 방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산책로가 있어 그윽한 솔향과 솔바람을 즐기며 걷기에 제격이다. 휴양림과 가까운 꽃지해수욕장 앞에 있는 할미할아비바위도 안면도를 상징하는 것이나 안면송이야말로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바다와 산이 펼쳐진 안면도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대표 주자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구불구불한 서해안 풍경을 한눈에 ‘백화산’ 정상에 오르면 리아스식 서해안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태안의 제1경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지만 유적이 여럿이다. 대표적인 것이 백제 최초의 마애불이라 할 수 있는 국보 307호 태안 마애삼존불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과 달리 소박한 미소를 지어 친근한 느낌이다. 게다가 중앙에 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일반적인 삼존불의 형식과는 달리 보살상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삼존불 옆에 태을암이 있다. 호젓한 작은 절이다. 백화산에는 또 흥주사도 있다.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 앞에 충청도기념물 제156호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다. 음기로 가득한 흥주사에 양기를 채워주는 존재로 여겨져 자식 없는 사람이 나무 앞에서 기도하면 아이를 얻는다는 설이 있다. 수령이 900년이 넘는다. 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먹거리 ●시원한 맛과 담백한 맛의 조화 ‘게국지’ 김장을 할 때 만들어 온 토속음식이다. 김장한 뒤 남은 배추 겉껍질이나 무, 무청 등에 삭힌 게장 국물을 넣어 숙성시키는 게 핵심이다. 게장은 충남 서해안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어서 흔했다. 꽃게에 박하지(돌게), 능쟁이, 황발이(농게) 등 각종 게가 갯벌에 널려 있다. 여기에 황석어젓과 밴댕이젓 등 젓갈을 넣어 버무리기도 한다. 호박, 고춧가루도 넣는다. 그런 다음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키면서 끓여 먹으면 겨울철 별미로 입맛을 크게 북돋운다.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고, 구수하면서 칼칼한 맛도 난다. 갈수록 맛이 진해진다. 짭짜름하면서 개운하다. 자칫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 등을 보충하는 데도 제격인 음식이다. 게국지는 겟국지, 갯국지, 깨꾹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 먹고 남은 게장 국물과 시래기조차 아까워 반찬으로 활용했던 게 독특한 음식을 창조했다. 서민 음식이지만 요즘은 안면도 등 태안을 찾는 관광객들이 더 열광한다. ●사골처럼 진한국물의 유혹 ‘우럭젓국’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겨울철로 접어들면 태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우럭젓국이다. 사골처럼 뿌옇게 우러나 담백하면서 개운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우럭은 주로 회가 인기지만 말리면 쫀득쫀득하고 구수하다. 갓 잡은 우럭을 대가리부터 몸통을 모두 갈라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2~3일간 햇볕에 말린다. 이를 태안 육쪽마늘을 넣은 쌀뜨물에 4~5시간 끓인다. 여기에 무, 대파, 청양고추, 두부 등을 넣고 다시 끓이면 완성된다. 맛이 은근하고 구수하다. 끓일수록 짜지지만 깊은 맛에 먹고 나면 속이 개운해져 해장용으로도 그만이다. 최근에는 관광객이 태안에 오면 많이 찾아, 갈수록 전국적인 음식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못 생겨도 속 푸는데는 최고 ‘물메기탕’ 옛날에는 잡자마자 바다에 다시 버려 ‘물텀벙’이라고 불린 물고기로 만든 탕이다. 버릴 때 물메기가 물에 빠지면서 내는 ‘텀벙’ 소리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물메기는 생김새가 흉해 어민들한테 생선으로 취급을 받지 못했다. 요즘은 스타 물고기다. 특히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철로 접어들면 술안주는 물론 해장용으로 인기가 대단하다. 각종 양념을 넣고 끓이지만 송송 썬 김치를 넣고 김칫국처럼 끓이기도 한다. 시원한 맛에 속이 확 풀린다. 비린내와 기름기가 없어 담백한 맛이 난다. 회와 찜으로도 판매한다. 물메기는 쏨뱅이목 꼼치과에 속한다. 물메기는 날씨가 추워지는 입동부터 동지까지가 가장 맛있다. 이때쯤 태안반도 항포구 선창가에 물메기를 풀어내는 배들이 북적인다. 겨울철 항포구와 시장 등에는 물메기탕으로 속을 풀려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겨울 되면 더 달콤해지는 ‘호박고구마’ 육질이 호박처럼 노란색을 띤다. ‘꿀 고구마’로 불릴 만큼 당도가 높다. 섬유질과 수분이 많아 소화도 잘된다. 안면도와 남면을 중심으로 태안군 전역에서 재배하고 있다. 서늘한 기후 속에 황토에서 무농약으로 길러 웰빙식품으로 인기다. 가을에 수확하지만 숙성과정을 거쳐 겨울이 되면 맛이 더 좋아지는 특징이 있다. 태안 곳곳에 호박고구마 전용 저온저장 창고가 있어 겨울철 별미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떡국과 만둣국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떡국과 만둣국

    우리는 먼 옛날부터 떡국과 만둣국을 먹었다. 고조선 무렵 조리 기술이나 도구가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엔 지금처럼 쌀로 밥을 짓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둥근 질그릇에 찐 떡을 주식으로 삼았다. 떡은 그대로 두면 굳기 때문에 딱딱해진 가래떡을 국물과 함께 끓여서 부드러운 맛을 내기도 했을 것이다. ●예부터 가족과 떡국 먹으며 새해 시작 이렇듯 유구한 떡국이 새해를 여는 정월 초하룻날 조상과 가족이 함께 나눠 먹는 제례·명절 음식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설날 아침엔 한복이나 단정한 설빔을 차려입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뒤 음식과 술로 음복을 한다. 자녀는 부모와 어른께 세배를 하며 덕담을 듣는다. 때마다 가족이 모여 조상을 받드는 제사 문화가 중국이나 유교에서 전해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본래부터 우리 고유의 것이다. ●개성 부잣집 눈사람 모양 ‘조랭이떡국’ 가래떡은 하룻밤 정도 굳힌 다음에 납작하게 어슷썰기를 해야 바닥에 들러붙지 않는다. 국물은 소의 사골이나 양지머리, 사태를 푹 고아서 내는 게 일반적이다. 양지머리는 건져서 가늘게 손으로 뜯어 고명으로 얹는다. 계란 지단이나 김 가루, 삶은 토란 등을 넣기도 한다. 옛 개성의 부잣집에서는 조랭이떡으로 만든 떡국을 즐겼다. 정성껏 눈사람 모양의 떡을 빚어 만든 고급 떡국이다. 조랭이떡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가래떡보다 낫다. 양반은 한양에 더 많았겠지만 그들은 대체로 치부를 멀리했기 때문에 맑은 국물에 소박한 모양의 떡국을 으뜸으로 여겼다. 옛 실담어에서 떡은 ‘덕흐’(dugha)라고 발음되며 ‘굳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우유가 버터나 치즈로 굳는 것도 그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우리말에 ‘머리가 떡 지다’라는 말이 아직 남아 있다. ●덕흐→떡, 만한 두흐→만두로 변해 여기서의 ‘떡’을 표준국어대사전은 ‘머리 따위가 한데 뭉쳐서 잘 펴지지 않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떡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말에 흔적을 남겼다. 만두는 ‘만한 두흐’(mahn-duh)라고 했다. ‘밀가루로 껍질(만두피)을 말아서 만든,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쌀로 빚은 떡은 동남아시아, 말레이반도, 오키나와, 규슈 등 주로 쌀농사를 짓던 남방계의 음식이다. 반면 밀가루로 빚은 만두는 근·중동아시아, 몽골, 만주 등 북방계의 먹거리다. 따라서 떡국은 한반도 남부와 중국 남서부, 일본 등지에서 즐겼고 만둣국은 한반도 북부와 중국 북동부에서 먹었다. 두 이질적인 음식이 만나는 지점이 가운데 위치인 서울, 개성 등이었다. 영호남이 고향인 노인들은 설날에 만둣국을 먹지 않았다. 반면 탈북민들은 남한에 와서야 떡국을 처음 봤다고 한다. 아울러 서울에서는 떡과 만두를 모두 넣은 떡만둣국을 즐겼다. 오묘한 음식 문명사가 아닐 수 없다. ●평양식 만두피 두껍고 개성식은 반달형 만둣국은 다진 숙주와 양파, 으깬 두부, 양념한 돼지고기 등을 소로 쓴다. 국물은 국간장이나 멸치 육수 등으로 맑고 심심하게 낸다. 평양식 만두는 주먹만 한 크기에 피가 꽤 두꺼워 두어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모양은 손으로 대충 꾹꾹 눌러 조금 볼품없어 보이지만 고기를 듬뿍 다져 넣은 소가 별미다. 개성식 만두는 크기가 작고 피도 얇으며, 깔끔한 모양의 반달형이다. 만두가 서울에 도착해서는 피가 더욱 얇아지고 작은 만두의 양끝을 이어붙여 다소곳한 모양을 냈다. kkwoon@seoul.co.kr
  • “미생 속 타인의 삶에서 자기 모습도 봤으면”

    “미생 속 타인의 삶에서 자기 모습도 봤으면”

    “‘이끼’가 작가로서 잊혀졌던 이름을 되찾아 준 작품이라면, ‘미생’은 바위에다가 이름을 새기게 한 작품이에요. 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줬죠. 저뿐만이 아니라 ‘미생’을 위해 함께 애쓰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작품입니다.” 지난해 말 장그래가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대기업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말단 직원이다. 웹툰으로, 드라마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가 앞으로 어떤 삶을 펼쳐 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장그래 아빠’ 윤태호(47) 작가가 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생’ 시즌2 관련 인터뷰를 고사하다가 첫 단행본 출간을 맞아 자리를 마련했다. 윤 작가는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중소기업’이라는 터전이 알면 알수록 너무 처절하다고 말했다. 또 “스스로 수치심이나 자격지심은 땅에 내려놓고 옷을 벗은 채 전투장으로 나가야 하는 게 중소기업 샐러리맨”이라며 시즌2의 핵심 캐릭터는 중소기업의 생존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중·장년층 이야기도 비중 있게 그려진다고. 물론 장그래 등 청춘들이 실존적으로 직면한 결혼 문제 등도 다뤄질 예정이다. 시즌2는 3년가량 3부로 나뉘어 연재된다. 시즌1은 비정규직의 설움, 우리 시대 자화상을 담아내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웹툰과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물론, 단행본도 잔뜩 움츠러든 국내 출판 시장에서 230만부나 팔려 나갔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저는 땅에서 떨어진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땅바닥에 발을 딛고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죠. 상황이 황당하다면 언어로 현실감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독자들이 매력을 느꼈다면 그런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장그래가 정규직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독자들이 많다. 하지만 윤 작가는 시즌2에서도 위안이나 위로를 줄 생각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생’을 통해 본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독자 몫이라는 것이다. “정규직이 과연 ‘완생’인지 잘 모르겠어요. 해피엔딩일지 아닐지는 그려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미생’이 불행과 행복이 아니라 풍경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타인의 삶을 목격하게 만들고, 그 안에 내 모습도 있었구나 느끼게 하고 싶어요.” 드라마 속 장그래는 막바지에 원작 캐릭터와 조금 달라졌다. 시즌2에 영향은 없을까 싶은데 윤 작가는 드라마와 시즌2는 별개라고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드라마에선 장그래가 크게 성장하지만 원작은 그렇지 않죠. 시즌2 첫 회에 장그래가 김칫국물을 닦으며 초라해 못 견디겠다고 독백하는 장면이 있어요. 드라마와는 결별하고 시즌1을 잇겠다는 의지를 담은 장면입니다.” ‘미생’은 게임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윤 작가는 ‘미생’과는 별도로 100권짜리 교양 만화도 준비 중이다. 올 가을부터는 몇 년 전 다녀온 남극 세종기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 작품을 시작할 계획이다. 애니메이션, 드라마, 음반, 뮤지컬까지 동시에 구상하고 있다. 열기구와 관련한 작품도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린란드에서 한 달간 살아보고 만화로 그리는 게 꿈이라고도 했다. “한 작품이 어디까지 사이즈를 넓힐 수 있을지, 만화 이외의 영역은 어떠한지 구경하고 싶어요. 제안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역으로 기획안을 만들어 제안할 생각도 있지요.” 해외 진출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미생’이 중국, 일본, 대만에 진출한 상황이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물은 나오지는 않은 상태라고. “온라인 만화의 장점은 국경이 없다는 거예요. 저의 경우 국내 현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많은 데 해외에서도 읽힐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을 큰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멍멍이 밥 어쩌지? 온수매트 안 껐어… 여보! IoT랑 톡해요

    멍멍이 밥 어쩌지? 온수매트 안 껐어… 여보! IoT랑 톡해요

    LGU+ ‘홈 IoT’ 반년 새 20만 가구 가입 USB형 허브 꽂은 후 스마트폰 앱과 연결 플러그형은 일반가전도 껐다 켤 수 있어 창문엔 열림감지센서로 침입 여부 알아 月 1만 2100원이면 5가지 단말기 사용 서울에 사는 회사원 최현서(28)씨는 설을 맞아 고향인 경남 거제에 내려간다. 5일간 집을 비워야 하는데 반려견인 시추 ‘초코’가 걱정이다. 초코는 폭식하는 습관이 있어 사료를 많이 부어 두면 한꺼번에 먹어 버린다. 돌봐 줄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버스에 태워 장거리를 함께 이동해야 할지 고민이다. 주부 김연정(52)씨는 지난해 추석 때 건망증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휴 기간 아이들 먹으라고 끓인 사골국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둔 것이 고향을 향해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퍼뜩 생각났기 때문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아들에게 전화해 가스불을 끄도록 했지만 국물이 다 졸아 버린 뒤였다. 평소에도 베란다 전등이나 전기장판을 켜 둔 것을 깜빡한 채 외출하기 일쑤라 김씨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들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다세대주택에서 자취 중인 홍아름(35)씨는 지난 여름 빈집털이를 당했다. 가스배관을 타고 3층까지 올라온 도둑이 온 방을 헤집어 놓고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를 훔쳐 갔다. 홍씨는 도둑이 다시 올까 두려워 며칠간 친구 집에 묵었다.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장기간 집을 비울 때 유용한 안심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집 밖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집 안의 가전 등을 제어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 가정에서 쓰는 IoT인 LG유플러스 ‘홈 IoT’ 서비스는 출시 반년 만에 20만 가구가 가입했다. 통신 3사 가운데 가입자가 가장 많다. 특히 최근 2주 사이 1만 가구가 가입해 전파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IoT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집게손가락 크기의 IoT 허브가 필요하다. 무선 통신 솔루션인 지웨이브(Z-wave) 전파를 사용해 집안의 각종 기기를 연결해 주는 장치다. USB 형태로 돼 있어 인터넷 공유기에 꽂아 쓰면 된다. LG유플러스 고객이 아니더라도 쓸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 애플리케이션 마켓에 들어가 IoT@home 앱을 내려받는다. 이 앱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홈 Io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전원 플러그에 꽂아 쓰는 돼지코 모양의 IoT 플러그는 스마트 기능이 없는 일반 가전도 똑똑하게 변신시킨다. TV, 컴퓨터, 밥솥, 가습기 등 가전 코드에 IoT 플러그를 꽂으면 스마트폰 앱으로 끄고 켤 수 있다. 깜빡하고 온수매트를 켜 두고 외출했더라도 스마트폰으로 전원을 끌 수 있다. 가전이 일정 기간 작동하지 않는 대기상태라면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해 대기전력을 최소화한다. 사람이 집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으면 TV 등을 일정 시간 켰다가 끌 수도 있다. 창문이나 문, 서랍 등에 설치하는 IoT 열림감지센서는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스마트폰으로 침입 사실을 알려준다. 지금은 개폐 여부만 감지할 수 있지만 비가 오거나 해가 드는 등 날씨에 따라 여닫을 수 있는 지능형 창문도 상용화될 전망이다. IoT 가스록은 가스 밸브에 설치해 쓴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두고 외출했더라도 스마트폰으로 끌 수 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에는 자동 사료급식기인 펫 스테이션이 유용하다. 사료통을 채우고 외출하면 앱을 통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먹이를 줄 수 있다. 1회 5~100g, 1일 최대 20번까지 급식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폭식을 예방할 수 있다. 워키토키 기능이 있어 반려동물과 소통이 가능하다. ‘홈CCTV 맘카’는 좌우 345도, 상하 110도 회전하는 200만 화소의 고화질 홈 폐쇄회로(CC)TV 이다.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집안 구석구석을 확인할 수 있다. 인체감지 기능이 내장돼 있어 외부인 침입을 감지해 자동으로 알려 준다. 증거화면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녹화·캡처도 가능하다. 유플러스 초고속 인터넷을 함께 쓰면 한 달에 8800원을 내고 3년 약정으로 이용할 수 있다. IoT에너지미터는 두꺼비집에 설치하는 장치로 전기 사용량을 초 단위로 확인할 수 있다. 집에 아무도 없는 데 실수로 켜 둔 가전 때문에 전력 사용량이 많은지 파악할 수 있다. 일간, 월간 누적 사용량을 중간중간 확인해 누진세 구간에 진입했는지를 미리 알려줘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다. IoT 단말기 가격은 종류에 따라 다르며(표 참조), 단말기 사용료는 개당 월 1000원이다. 단 같은 종류의 단말기는 개수에 상관없이 한 개의 이용료만 내면 된다. 월 1만 2100원을 내면 기계 값 없이 5개의 단말기를 쓸 수 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입자물리학 표준모형 오류 단서 발견… 서울대 연구팀

     최근 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완성된 물리 기본이론인 ‘표준모형’에 오류가 있다는 단서가 발견됐다. 표준모형을 대체할 ‘초표준모형’을 정립하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격자게이지이론 연구단은 29일 중성 케이온 입자에서 ‘CP대칭성’을 위반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상수를 계산한 결과 이론치와 실험치의 차이가 표준편차의 3.4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론과 실험 결과의 차이가 크다는 점은 표준모형에 오류가 있음을 의미한다. CP대칭성이란 입자를 반입자로 전하를 바꾸거나,입자를 거울에 비춘 모양으로 좌우를 바꿔도 동일한 물리법칙이 적용된다는 원리다.  표준모형은 4개의 매개입자(강력,약력,전자기력,만유인력)에 따라 움직이는 12가지 근원 소립자(쿼크와 렙톤)가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따라 구성된다. 매개입자 중 강력과 전자기력은 CP대칭성을 따르지만 약력은 대칭성을 위반할 수도 있다.  표준모형이 맞다면 단 하나의 파라미터(매개변수)로 CP대칭성 위반을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치와 실험치에서 표준편차의 3배가 넘는 차이가 났다는 것은 파라미터가 두 개 이상 있어야 CP대칭성 위반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팀은 실험 결과에 대해 ”표준모형의 기본가설 중의 하나 또는 다수가 붕괴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동시에 초표준모형의 존재에 대한 중요한 하나의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단을 이끄는 이원종 교수는 ”렙톤 섹터에서는 연구가 된 적이 있지만 쿼크 섹터에서 표준모형이 틀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처음“이라며 ”국내 연구단이 자체 개발하고 구축한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계산한 결과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미국물리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피지컬 리뷰 D’(Physical Review D)에 이날 발표됐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국물 맛이 이상해” 음식 맛 불평하던 손님 살해한 식당 주인

    “국물 맛이 이상해” 음식 맛 불평하던 손님 살해한 식당 주인

    음식 맛을 불평하던 손님을 살해한 식당 주인에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평소 음식 맛을 불평하던 손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다 말다툼 중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신모(54)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신씨는 지난해 2월 13일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역삼동의 식당에서 손님 차모(48)씨와 술을 마시다가 “술만 먹고 능력도 없으면서 주제파악을 못한다”는 말에 격분해 차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신씨는 평소 소주를 가지고 식당에 찾아와 어묵국물을 얻어먹고는 “국물 맛이 이상하다”, “음식이 왜 이리 짜냐”며 타박하는 차씨를 탐탁지 않게 여기다가 범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범행 당일에는 함께 소주 5병을 나눠 마셨고 다툼이 벌어지자 흉기로 30여 차례 이상 잔혹하게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알코올 의존 증후군으로 입원치료한 전력이 있는 신씨는 당시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신감정 결과 신씨에게 사고장애나 기억력 상실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씨가 범행 전후의 행적을 정확히 기억하고 평소 많으면 소주 3~4병을 마시는 음주습관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심은 “기억력이나 판단력을 잃은 정도로 많은 술을 마셨다고 보기 어렵다”며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15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도 이 판결이 확정됐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설 차례상 19만 5920원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은 지난해보다 소폭 오를 전망이다. 한국물가협회는 지난 22일 서울·인천·부산·대구·광주·대전 등 6대 도시 전통시장 8곳의 과일·견과·나물 등 차례용품 29개 품목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설 차례상 비용이 4인 가족 기준 19만 5920원으로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지난해 18만 8760원보다 3.8% 오른 것이다. 29개 조사 품목 중 소고기를 포함한 20개 품목은 가격이 올랐고, 사과 등 9개 품목은 내렸다.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18∼19일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각 36곳을 대상으로 설 차례용품 27개 품목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전통시장이 20만 8755원, 대형마트는 26만 6661원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통시장은 전체 조사품목 27개 중 23개 품목에서 대형마트보다 저렴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짬뽕 맛집 이비가짬뽕, 맛있는 글쓰기 대회 시상식 개최

    짬뽕 맛집 이비가짬뽕, 맛있는 글쓰기 대회 시상식 개최

    추운 겨울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요리, 짬뽕. 계속해서 새로운 짬뽕이 출시되고 있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차별화된 짬뽕요리로 대전짬뽕 맛집에서 전국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비가짬뽕’은 외식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프랜차이즈 브랜드다. 지난 26일에는 소비자가 추천하고 소비자가 직접 뽑은 ‘2016년 한국소비자만족지수1위’ 프랜차이즈(짬뽕)부문에서 수상하며, 전국에 소문난 ‘짬뽕 맛집’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비가짬뽕이 그동안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한 제1회 ‘맛있는 글쓰기’ 대회의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번 ‘맛있는 글쓰기’ 대회에는 총 1,60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이 접수됐고, 이 중 대상 1명(순금 10돈), 2등상 2명(백화점상품권 100만원), 3등상 5명(백화점상품권 10만원), 4등상 100명(4인 식사권) 등 총 108명의 수상자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월 19일, 대전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이비가푸드 사옥에서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이비가짬뽕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이 눈길을 끌었다. 대상을 받은 임무림(울산광역시) 씨는 “우연히 먹은 이비가짬뽕 맛에 반해서 직장동료들과 함께 가게 되었고, 그 만족스러운 경험을 그대로 풀어 쓴 것”이라며 “맛있는 짬뽕을 먹고 좋은 소식까지 듣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3등 수상자 중 초등학교 1학년 김서준(대전광역시) 학생은 “4등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3등 상을 받아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소감과 함께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비가푸드 ‘이비가짬뽕’ 브랜드 매니저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시행된 이벤트였는데, 응모해주신 모든 글들을 읽어보면서 오히려 큰 힘이 되었다. 더 맛있는 짬뽕을 만들고, 100년 이상을 이어갈 짬뽕맛집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히면서, “시상식에 함께 하지 못한 4등 수상자 100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외식 전문 프랜차이즈 기업 이비가푸드는 지역사회와 나눔을 통해 함께하는 ‘고객행복경영실현’으로 2012년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 ‘2013년 제 1회 대한민국 사랑받는 기업 정부포상 ‘중소기업 청장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는 제 9회 국가지속가능경영 컨퍼런스&대상 ‘사회공헌부문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고, 대전시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협약’을 통해 민•관 협력사회공헌 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하는 등 사회책임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짬뽕전문 브랜드인 이비가짬뽕은 이비가푸드의 주력 브랜드로서, 2010년 창업해 전국 가맹점 120여개를 돌파, 계속해서 기록을 세우고 있다. 지난1월 21일 인천서구에 두 번째 직영점을 오픈하며 인천서구 맛집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시래기와 우거지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시래기와 우거지

    식재료를 고를 때 보통 싱싱한 것에 먼저 손이 가는데, 때론 바싹 말라서 축 처진 것이 더 건강하고 맛있는 것일 수도 있다. 흔하고 하찮아서 그대로 버려지기도 하지만 사실 놀라운 효능을 지닌 경우가 있다. 시래기와 우거지가 여기에 들어맞는다. 겨울에 시래기와 우거지의 ‘반전’이 시작된다. 시래기는 무청이나 배추 잎 말린 것을 일컫지만 일반적으론 무청을 새끼 등에 엮어 처마 밑에서 말린 것을 말한다. 강원 양구처럼 겨우내 일교차가 큰 지역의 것이 더 맛있고 몸에 좋다고 한다. 한창 맛이 든 겨울 무를 밭에서 뽑으면 몸통은 김장용으로 쓰고, 이파리는 버려지곤 한다. 그렇게 하찮아서 “시래기죽도 못 먹은~”이라는 말도 있을 것이다. ●“시래기 끓인 물 공복에 먹으면 약” 하지만 이 이파리는 한겨울에 요긴한 식재료로 쓰일 수 있다. 채소가 귀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무엇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시래기의 어원이 고대 실담어의 ‘실라게’(silage·생목초)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한데 확실하진 않다. 무청을 햇볕에 말리면 무기질과 단백질, 황산화 물질 등이 최대 30배나 증가한다고 한다. 또 비타민D와 식이섬유는 대장 질환과 해독 작용에 좋다. 수용성이기 때문에 시래기를 끓인 국물은 쭉 들이켜는 게 현명한 일이다. 시래기 끓인 물을 공복에 먹으면 약이라는 말도 있다. 다만 칼륨이 많기 때문에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조심해야 한다. 시래깃국은 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잘게 썬 소고기와 조개 등을 넣고 푹 끓인 국이다. 마른 시래기를 삶아 찬물에 우렸다가 잘 짜낸 뒤 된장에 나물 버무리듯 조물조물 무친다. 버무릴 땐 들기름이 궁합에 맞는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 등으로 미리 만들어 둔다. 국을 밥상에 내갈 때 들깻가루를 뿌리면 고소한 맛이 더한다. 시래기죽은 먹을 게 궁할 때 끼니를 때우던 음식이었지만, 지금에 와선 입맛이 없을 때 먹는 별미다. 고등어찜에도 시래기가 제격이다. 구수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입맛을 돋우고 고등어의 비릿한 맛도 잡아 준다. ●감자탕·돼지국밥과 어울리는 우거지 우거지는 김장을 담그며 배추의 시들고 지저분한 겉 이파리를 떼어낸 것이다. 그대로 버리면 쓰레기일 뿐이다. 우거지라는 우리말도 ‘웃+것’, ‘웃거지’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배추를 염장한 물에 이파리를 깨끗이 씻어 꾹 짠 뒤 다시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보관했다. 쌀겨를 함께 넣어 발효를 돕는다. 숙성된 우거지에는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칼슘 등이 많아 겨울철 수축된 혈관의 콜레스테롤 제거에 도움을 준다.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 좋다. 우거지는 감자탕, 갈비탕, 돼지국밥 등 푹 끓인 탕이나 국 요리와 잘 어울린다. 들깻가루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우거지갈비된장국은 우거지를 깨끗이 다듬어 끓인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다시 푹 삶은 뒤 찬물에 여러 차례 헹궈 물기를 짠다. 우거지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끓여야 더 맛있다. 소갈비는 찬물에 담갔다가 살짝 익힌 뒤 다시 찬물에 담가 뼛가루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대파와 마늘 등을 넣고 끓인 물에 갈비를 넣었다가 빼내서 육수를 만든다. 육수와 갈비, 우거지가 만나 맛있는 겨울 보양식이 된다. 세상에 하찮게 여길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생명의 소중함이 새삼스럽다. kkwoon@seoul.co.kr
  • [길섶에서] 동(冬)장군/황수정 논설위원

    밥상의 김장김치 한 포기에도 겨울이 익는다. 풋내로 뻗대던 모양새가 직수굿해졌다. 비린 젓국에 알맞게 삭아지는 때. 집집에서 김치는 온실의 화초 대접이다. 속성 발효시킬 것, 시간을 두어 익힐 것이 마음대로다. 냉장 기계의 버튼 하나로 시시해진 일이다. 겨울 김치를 익히는 일은 시시하지 않았다. 시골 우리 집에서는 마당 귀퉁이 감나무 밑에 김장독이 묻혔다. 찬바람 나면 독 자리부터 팠다. 젓국의 농도로 앞뒤 먹을 순서를 정해 묻으면 그날로 ‘관계자 외’ 금지 구역. 무른 공기에 군둥내가 김칫독째 잡치지나 않을까, 푹한 날에는 뚜껑을 열지도 않았다. 한낮까지 짜글짜글 살얼음이 버티는 날. 떠들린 배추 포기에 손도장이 찍히도록 꼭꼭 눌러 군물을 단속했다. 겨울의 맛은 찬 맛이다. 칼바람에 단련돼 짱짱했던 동치미 국물은 지금 어디에도 없는 맛. 온 신경줄 홀쳐매던 죽비의 맛. 따뜻해진 겨울은 우리 오감마저 온실에 묶는다. 고드름 녹아 낙숫물 소리,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 눈 다발에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 보고 듣지 못해 말할 수 없어지는 겨울의 이야기. 모처럼 동장군이 오셨다. 버선발로 맞아도 모자랄 그분이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맛있는 스토리텔링 하찮다며 버려진 시래기와 우거지, 한겨울의 반전

    맛있는 스토리텔링 하찮다며 버려진 시래기와 우거지, 한겨울의 반전

      식재료를 고를 때 보통 싱싱한 것에 먼저 손이 가는데, 때론 바싹 말라서 축 처진 것이 더 건강하고 맛있는 것일 수도 있다. 흔하고 하찮아서 그대로 버려지기도 하지만 사실 놀라운 효능을 지닌 경우도 있다. 시래기와 우거지가 여기에 들어맞는다. 겨울에 시래기와 우거지의 ‘반전’이 시작된다.  시래기는 무청이나 배추 잎 말린 것을 일컫지만 일반적으론 무청을 새끼 등에 엮어 처마 밑에서 말린 것을 말한다. 강원 양구처럼 겨우내 일교차가 큰 지역의 것이 더 맛있고 몸에 좋다고 한다. 한창 맛이 든 겨울 무를 밭에서 뽑으면 몸통은 김장용으로 쓰고, 이파리는 버려지곤 한다. 그렇게 하찮아서 “시래기죽도 못 먹은~”이라는 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파리는 한겨울에 요긴한 식재료로 쓰일 수 있다. 채소가 귀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무엇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시래기의 어원이 고대 실담어의 ‘시라게’(silage·생목초)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이 있기는 한데 확실하진 않다.  무청을 햇볕에 말리면 무기질과 단백질, 황산화 물질 등이 최대 30배나 증가한다고 한다. 또 비타민D와 식이섬유는 대장 질환과 해독 작용에 좋다. 수용성이기 때문에 시래기를 끓인 국물은 쭉 들이키는 게 현명한 일이다. 시래기 끓인 물을 공복에 먹으면 약이라는 말도 있다. 다만 칼륨이 많기 때문에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조심해야 한다.  시래깃국은 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잘게 썬 소고기와 조개 등을 넣고 푹 끓인 국이다. 마른 시래기를 삶아 찬물에 우렸다가 잘 짜낸 뒤 된장에 나물 버무리듯 조물조물 무친다. 버무릴 땐 들기름이 궁합에 맞는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 등으로 미리 만들어 둔다. 국을 밥상에 내갈 때 들깨 가루를 뿌리면 고소한 맛이 더한다. 시래기죽은 먹을 게 궁할 때 끼니를 때우던 음식이었지만, 지금에 와선 입맛에 없을 때 먹는 별미다. 고등어찜에도 시래기가 제격이다. 시래기의 구수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입맛을 돋우고 고등어의 비릿한 맛도 잡아준다.  우거지는 김장을 담그며 배추의 시들고 지저분한 겉 이파리를 떼어낸 것이다. 그대로 버리면 쓰레기일 뿐이다. 우거지라는 우리말도 ‘웃+것’, ‘웃거지’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배추를 염장한 물에 이파리를 깨끗이 씻어 꾹 짠 뒤 다시 소금을 뿌려 항아리에 보관했다. 쌀겨를 함께 넣어 발효를 돕는다. 흔한 배추 이파리 하나도 버리지 않았던 셈이다.  숙성된 우거지에는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칼슘 등이 많아 겨울철 수축된 혈관의 콜레스테롤 제거 등에 도움을 준다.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 좋다. 우거지는 감자탕, 갈비탕, 돼지국밥 등 푹 끓인 탕이나 국 요리에 잘 어울린다. 들깨 가루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우거지갈비된장국은 우거지를 깨끗이 다듬어 끓인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다시 푹 삶은 뒤 찬물에 여러 차례 헹궈 물기를 짠다. 우거지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끓여야 맛있다. 소갈비는 찬물에 담갔다가 살짝 익힌 뒤 다시 찬물에 담궈 뼛가루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대파와 마늘 등을 넣고 끓인 물에 갈비를 넣었다가 빼내서 육수를 만든다. 이어 육수와 갈비, 우거지가 만나 맛있는 겨울 보양식이 된다.  세상에 하찮게 여길 만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생명의 소중함이 새삼스럽다.    <시래기를 위하여> 시인 복효근    ....허물어가는 흙벽 무너지는  서까래 밑을 오롯이 지키며  스스로 시래기가 된 사람들 있었으리라  헛헛한 속에 시래깃국 한 그릇이  모닥불을 지핀다  시래기는 쓰레기가 아닌 것이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新국토기행] 경남 통영

    [新국토기행] 경남 통영

    경남 통영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둘러싸인 다도해 지역이다. 남해안 경남 중간에 육지와 유인도 44개, 무인도 526개로 이뤄졌다. 잔잔한 푸른 바다와 올망졸망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이 어우러진 풍광이 환상적이다. 항구와 동·서호만을 낀 도심 경치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린다. 면적은 239.54㎢, 인구는 13만 9349명이다.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에 동해 난류가 흘러 수산자원이 풍부, 일찍부터 수산업이 발달했다. 통영은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의 현장으로 많은 유적이 있다. 충청·전라·경상, 삼도 수군을 총지휘하던 삼도수군통제영이 1604년부터 1896년까지 300년 동안 있었던 군사도시였다. 통영 지명도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것이다.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시인들조차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할 만큼 빼어난 한려수도 통영의 비경은 문학·예술 창작의 자양분이 됐다. 극작가 유치진과 시인 유치환 형제를 비롯해 시인 김춘수,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등이 통영 출신이다. 박경리 선생은 그의 바람대로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는 미륵산 양지바른 언덕에 영원히 잠들었다. 통영은 대전~통영 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이 편리해지면서 사계절 관광지가 됐다. 경남도와 통영시는 김천~통영~거제를 잇는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수도권과의 교통이 더욱 편해져 세계적인 해양 휴양 관광도시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볼거리 ●한려수도 한눈에 보는 ‘국내 최장 케이블카’ 우리나라 100대 명산이며 한려수도 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미륵산(해발 461m)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다. 아래 하부역에서 정상 근처 상부역 사이 선로 길이가 1975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8인승 곤돌라 47대가 시간당 800여명을 수송한다. 정상에 오르면 호수처럼 잔잔한 한려해상공원의 환상적인 다도해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정상에서 직선거리로 90㎞쯤 떨어진 대마도는 1년에 30여일, 105㎞ 떨어진 지리산 천왕봉은 절반쯤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동양 최초의 바다 터널 ‘통영 해저터널’ 1932년 개통된 동양 최초의 바다 터널이다. 길이 483m, 너비 5m, 높이는 3.5m다. 바다 양쪽을 막은 뒤 바다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을 만드는 방식으로 건설했다.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주요 연결도로로 사용되다가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건설되면서 지금은 사람만 다닌다. 터널 입구에 ‘용문달양’(龍門達陽)이 쓰여 있는데 ‘용문을 거쳐 산양(山陽)에 통하다’라는 뜻으로 산양은 미륵도를 일컫는다. ●은하수 끌어와 병기를 씻는 세병관 통제영이 설치된 다음해인 1605년 건립된 객사로 통영시 세병로 27에 있다. 국보 제305호. 통정면 9칸, 측면 5칸으로 된 단층 팔작집으로 1646년과 1872년에 증개축됐다. ‘세병관’(洗兵館)이란 이름은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洗兵馬)에 나오는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것으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통제영 주요 건물과 12공방 건물 등은 2000년부터 13년에 걸쳐 복원·건립됐다. ●한산도 곳곳에 서린 이순신 장군의 혼 한산도 두억리 일대 52만 5123㎡에 제승당을 비롯해 이순신 장군 영정을 봉안한 충무사, 활터인 한산정, 각종 비석 등이 있다. 한산도는 한산면을 이룬 29개 유·무인도 가운데 가장 큰 본섬이다. 섬 중간쯤에 전망 좋은 망산이 있어 가벼운 등산과 유적지 탐방을 같이할 수 있다. 제승당 자리에는 이순신 장군이 기거하는 운주당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 이순신 장군은 1593년 8월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돼 1597년 파직될 때까지 운주당에서 삼도수군을 통제했다. 1740년 통제사 조경이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 터에 건물을 지어 제승당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930년대에 중수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방문한 뒤 1975~76년에 새로 지었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가 다닌다. ●김춘수 유품 전시관·박경리 기념관 예향 도시 명성에 걸맞게 곳곳에 통영 출신 문인·예술인 기념관과 생가 등이 있다. 망일 1길 82(정량동)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청마문학관이 있다. 유치환(1908~1967) 시인의 문학세계를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2000년 2월 14일 개관했다. 육필 원고를 비롯한 유품과 서적·논문 등 문헌자료가 전시됐다. 청마 초가집 생가도 복원했다. 통영항이 한눈에 보이는 해평5길 142의 16(봉평동)에는 ‘꽃의 시인’ 김춘수(1922~2004) 유품전시관이 있다. 2008년 3월 28일 문을 열었다. 김 시인의 육필 원고와 쓰던 가구, 옷가지, 시집 등 유품 330여점을 볼 수 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 유품과 자료를 전시한 박경리기념관도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에 2010년 5월 5일 개관했다. 기념관이 있는 박경리 공원에 선생 묘소가 있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전혁림(1916~2010) 미술관이 남포3길 19-1(봉평로) 미륵산 자락에 있다. 전 화백이 오랫동안 생활하던 집을 헐고 미술관을 지어 2003년 5월 11일 개관했다. 전 화백 작품을 타일 조각을 이용해 벽화로 만들어 단장한 미술관 외벽이 눈길을 끈다. 도천동 중앙로 27 도천테마공원에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기념관이 있고 옆에 생가가 있다. 통영시 큰발개 1길 38(도남동) 해변에 있는 음악 전용 공연장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3만 3038㎡ 부지에 2013년 5층 규모로 개관했다. 메인홀은 1300여석 규모다. 윤이상의 음악 업적을 기리려고 2000년부터 매년 여는 통영국제음악제 공연장으로 사용한다. ●발아래 바다와 함께 즐기는 섬마을 산행 사량도는 발아래 아름다운 바다를 두고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통영에서 뱃길로 20㎞쯤 떨어졌다. 사량도 이름은 뱀이 많이 서식해 붙여졌다는 설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여 부르게 됐다는 설이 있다. 윗섬과 아랫섬에 일주도로가 잘 닦여 있고 두 섬을 잇는 연도교가 지난해 10월 개통됐다. 상도 중앙을 동서로 가로질러 지리산~불모산~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 종주 등산길은 쇠 사다리와 출렁다리로 아찔한 절벽을 지나며 섬 산행의 스릴을 맛볼 수 있다.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24㎞에 있는 연화도는 통영 8경의 하나인 용머리 바위로 유명하다. 연화도는 바다에 핀 연꽃이란 뜻이다. 깎아지른 해변 기암괴석이 늘어선 모습이 신비롭다. 특히 용이 바다를 향해 헤엄쳐 나가는 모양으로 바다에 떠 있는 용머리 바위는 연화도 절경의 백미로 꼽힌다.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등대섬으로 이뤄진 매물도도 가 볼만하다. 특히 등대섬은 경치가 빼어나 영화 촬영장소로 자주 이용되면서 유명하다. 소매물와 등대섬은 바닷물이 들 때는 분리됐다가 빠지면 ‘열목개’라는 자갈길로 이어져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1910년 일본이 등대를 세워 미군 함정을 감시하는 초소로 이용했다. 비진도는 두 개의 섬이 해수욕장으로 이어져 있다. 해수욕장 서편은 모래밭이고 동편은 몽돌밭이다.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욕지도는 욕지면의 주 섬으로 까만 몽돌로 된 덕동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해발 392m의 천왕봉은 산세가 아름다워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일주도로가 잘 뚫려 있다. 장사도는 동백이 섬을 뒤덮어 꽃이 피면 섬 전체가 불타는 것처럼 아름답다. ●남망산국제조각공원과 동피랑 벽화골목 남망공원길 29(동호동) 야트막한 남망산 공원 야외 1만 5700㎡에 10개 나라 조각가 15명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1997년 10월 개장한 조각공원은 작품을 감상하며 통영 시가지와 바다를 구경할 수 있어 인기다. 동호동 언덕에 ‘동쪽에 있는 벼랑’이란 뜻의 동피랑 마을이 있다. 중앙시장 뒤쪽에 비탈진 골목과 작은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마을이다.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에 딸린 시설인 동포루가 있었다. 통영시는 마을을 철거하고 동포루와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지역 시민단체가 나서 벽화 그리기 운동을 벌였다. 예쁜 벽화마을로 변신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시도 철거 계획을 철회했다. >>먹거리 ● 고기잡이 나간 남편 생각에 만든 ‘충무김밥’ 오래 보관해도 상하지 않도록 김 안에 밥만 넣고 만든다. 반찬으로 나오는 무 김치, 오징어무침과 같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충무김밥은 1930~40년대 통영지역 어촌에서 시작한 향토 음식으로 알려졌다.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바다에서 술만 먹는 것을 보고 아내가 김밥을 만들어 줬으나 금방 상해서 버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밥만 넣어 김밥을 만들고 깍두기와 주꾸미로 반찬을 따로 만든 게 충무김밥 시초로 전해진다. 충무김밥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1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문화행사 ‘국풍 81’이 계기가 됐다. 당시 통영지역 ‘원조 뚱보 할매’ 어두이 할머니가 만들어 팔면서 홍보가 됐다. ●철·구리·칼슘·비타민 풍부한 ‘통영굴밥’ 흑미 찹쌀과 콩, 밤, 대추, 수삼 등으로 지은 밥에 통영 굴을 얹어 살짝 익힌 건강식이다. 밥이 뜸이 들 무렵 깨끗하게 손질한 굴을 밥 위에 얹는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인정한 청정한 통영 앞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생굴을 쓴다. 굴밥은 일반 밥에는 없는 철, 구리, 칼슘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 A·B·C·D 등 영양소가 풍부하다. ●청정해역 졸복이라 더 시원한 ‘통영복국’ 통영복국은 통영 청정해역에서 잡은 싱싱한 졸복을 사용한다. 일반 복국보다 국물 맛이 더 시원하고 담백하다. 복어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고 유지방이 없어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꼽힌다. 간 해독이 뛰어나고 여성들의 피부미용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나리와 콩나물을 넣어 끓여 숙취 해소에도 좋다. ●밤처럼 타박하고 단맛 강한 ‘욕지 고구마’ 욕지도 고구마는 섬 특유의 자연환경에서 자라 맛이 탁월하다. 욕지 고구마는 물 빠짐이 좋은 섬의 비탈진 황토밭에서 강한 해풍과 풍부한 일조량 속에 자라 속살이 밤처럼 타박하고 단맛이 강하다. 욕지도 고구마 순을 육지로 가져가 재배해 본 결과 욕지 고구마와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욕지도 밭 가운데 70%가 고구마를 재배한다. 택배 주문할 수 있다. ●팥앙금에 꿀까지 바른 ‘통영 꿀빵’ 뱃사람들이 따뜻한 기후에 상하지 않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만든 간식이다. 6·25전쟁 이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밀가루를 반죽, 속에 팥앙금을 채우고 기름에 튀겨 만든 뒤 상하지 않게 겉에 꿀을 바른다. 통영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국가대표급 5대 해장국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국가대표급 5대 해장국

    황태 해장국에는 한국인의 지혜가 듬뿍 담겼다. 황태로 말리기 전의 명태는 본래 흔한 어종이고, 살 맛도 퍽퍽하기 때문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가축 사료로 썼을 뿐이다. 사실 우리도 1970년대 이전엔 어선 정박장에 마구잡이로 깔린 명태를 사람들이 질겅질겅 밟고 가던 모습을 옛 사진에서 볼 수 있다. 그렇게 천대받던 명태가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고단백질의 해장 식품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런데 동해의 명태가 지금은 단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다. 제 식구가 못되게 군 탓인지 순박한 명태가 결국 ‘가출’을 해서 몇 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명태는 서민과 친숙… 명칭 20여가지로 불려 명태는 서민들에게 친숙한 생선이어서 이름도 20여 가지나 된다. 살집이 있는 생태, 바로 얼린 동태, 딱딱하게 마르면 북어, 먹음직스럽게 말리면 황태다. 이 밖에도 백태, 망태, 먹태, 추태, 춘태 등이 있다. 북어는 동해의 차가운 해풍에 바싹 말린 것이다. ●얼었다 녹기 2~3개월 반복… 살 노래져 황태 함경도 원산 지역에선 밤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뚝 떨어졌다가 낮엔 눈부신 겨울 햇살이 차가운 물기를 말렸다. 이곳의 북어가 한겨울 두서너 달 동안 밤낮으로 꽁꽁 얼었다가 눅눅해지면서 살이 노랗게 변하고 포실포실해지더니 황태라는 별칭을 얻은 것이다. 6·25전쟁 이후 남한에서 원산과 비슷한 곳이 강원도 인제·평창이었다. 해안가는 아니지만 깊은 산의 골을 끼고 있어서 더 혹한의 조건이었다. ●건조 과정서 아미노산 성분 24배나 많아져 북어나 황태는 마르면서 생태보다 오히려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급증한다. 단백질은 4배 증가하고, 아미노산의 경우 24배 이상 많아진다. 특히 아미노산 가운데 간 해독과 면역력에 좋은 메티오닌, 타우린, 아스파라긴 등이 황태 또는 북어 해장국을 탄생시켰다. 덕장에서 말리는 과정에서 북어의 단백질 구조가 깨지며 우리 몸에 좋은 체액이 나오기 때문이다. ●외국 해장 식품은 속에 자극 주는 토마토·식초 황태 해장국은 황태 채와 무를 들기름으로 살살 볶은 뒤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육수가 우러나게 하면 맛있다. 콩나물은 아삭한 식감을 위해 불 끄기 직전에 넣고 새우젓, 파, 마늘 등으로 간을 한다. 각종 채소와 버섯, 두부 등을 넣어도 좋다. 북어 대가리와 무 등으로 미리 육수를 만들기도 한다. 뜨끈하고 진한 국물 맛에 밤사이 지친 속이 편안해진다. 외국에서 공통적으로 꼽는 해장 식재료는 토마토와 식초다. 토마토는 수분과 비타민 함량이 풍부하다. 음주 후 갈증에는 수분 보충이 필요하고, 비타민은 피로 회복에 좋다. 하지만 비타민에 의한 피로 회복은 당장 필요한 알코올 분해와 간 보호 이후의 문제다. 미국에선 핫소스를 뿌린 피자와 햄버거 또는 꿀물로 해장을 한다. 피자와 햄버거엔 토마토가 들어간다. 소금, 후추, 식초, 브랜디 등을 섞은 해장술인 ‘프레디 오이스터’를 먹기도 한다. 그리스에서는 시큼한 레몬주스에 커피 원두를 갈아 먹는다. 프랑스도 양파 수프인 ‘아루아뇽’으로 속을 달랜다. 자극적인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어서 속을 푸는 게 아니라 불편한 속에 더 자극을 주는 것뿐이라고 본다. 그들 주변에 우리 해장국의 식재료가 없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재료를 하찮다고 여긴 탓인지 어떤 절박함이 부족한 것인지, 그들은 몸에 좋고 맛있는 해장국을 만들지 않았다. 우리 옛 어머니들의 지혜에 오로지 감사할 뿐이다.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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