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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와 읽는 동화] 애꾸눈 누렁이/류근원

    [엄마와 읽는 동화] 애꾸눈 누렁이/류근원

    인삼밭을 다녀오신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대문 밖에서 무겁게 날아왔어요. “어휴, 이놈의 산돼지들 때문에 고생고생 지은 인삼 농사 다 망치겠어.” 아버지는 대문 안 외양간의 누렁이를 한참동안 바라보셨어요. “누렁아, 어쩔 수 없다. 네 운명이려니 생각하렴.” 이상한 일이에요. 아버지는 요즈음 누렁이만 보면 뜻 모를 말과 함께 혀까지 쯧쯧 차시거든요.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해. 누렁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환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덕 너머 인삼밭으로 향했어요. 가시철조망 아래로 땅을 파고 들어온 산돼지들의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거였어요. “어휴, 이럴 수가? 정말 아버지 가슴속이 새까맣게 타고도 남겠다.” 환이는 타달타달 인삼밭을 뒤로 했어요. 근처 인삼밭을 지키는 사냥개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무섭게 터져 나왔어요. “우리도 저런 사냥개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환이가 마악 대문을 들어설 때였어요. 안방에서 부모님이 주고받는 소리가 흘러나왔어요. “그래서 결정했소. 누렁이를 팔아서 인삼밭을 지킬 사냥개를 사기로.” “그래도 정이 흠뻑 든 누렁이인데.” “지금 팔아야 그나마 제값을 받을 수가 있다는구먼. 땀 흘려 가꾼 인삼밭을 지킬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어요.” 순간 환이는 귀를 의심했어요. 잘 못 들었나 싶어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한번 쑤셔도 보았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잖소. 인삼밭을 지키기 위해선……. 내일 소장수가 올거요.” 환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양간 앞에 섰어요. 누렁이가 얼굴을 흔들어 댔어요. 잘랑잘랑 워낭소리가 바람을 타고 집안을 날아다녔어요. “아, 아버지의 어쩔수 없다는 말이 누렁이를 판다는 뜻이었구나. 누렁이, 불쌍해서 어쩌지?” 환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누렁이의 워낭 소리도 밤 이슥토록 잘랑잘랑 들려왔어요. 이튿날, 소장수가 누렁이를 보러왔어요. 소장수와 눈길이 마주치자, 누렁이는 허둥지둥 뒷걸음질을 쳐댔어요. “허허, 겁이 꽤 많은 황소로군. 고개 좀 이리 돌려 보거라. 허허, 이리 돌려 보라니까.” 소장수는 누렁이의 코뚜레를 잡고, 인정사정없이 흔들다가 깜짝 놀랐어요. “아니, 무슨 황소가 이래? 허허, 애꾸눈이잖아? 소장수 30년에 애꾸눈 황소는 첨 보네.” 소장수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어댔어요. 아버지는 깜짝 놀라 허둥거리셨어요. “하하, 애꾸눈이면 어떻습니까? 힘만 세면 최고지.”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힘이 좋아도 눈 하나론 논밭에서 제구실을 못하는 법이죠. 잘 아실 텐데?” “그, 그, 그런 것은 못 느꼈는데요. 논밭을 다른 집 황소보다 몇 배 더 잘 갈아요. 이웃 마을에서도 누렁이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허허, 그렇게 시치미를 떼시면 흥정이 어렵겠는데요.” 환이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쾅쾅 뛰기 시작했어요. 제발 흥정이 깨지라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요. 그러나 흥정이 어렵다는 소장수의 말에 아버지는 금세 한풀 꺾이고 말았어요. “다른 황소보다 조금 낮게 잡아야 되겠습니다.” 두 분 사이에 몇 번 실랑이가 오가는 듯하더니, 이내 만족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어요. “잘 쳐드리는 것입니다. 우선 계약금으로 이걸 받으시고, 나머지 돈은 일주일 후 황소를 실어가는 날 드리도록 하지요.” 두 분은 연신 만족한 웃음을 흘리시며 대문 밖으로 나갔어요. ‘흑, 아무리 말을 못 알아듣는 동물이라지만. 누렁이 앞에서 그렇게 무서운 소릴 주고받으시다니.’ 갑자기 아버지가 미워지는 환이에요. 그러나 잠시 뿐이었어요. ‘따지고 보면 다 내 탓인걸 뭐.’ 환이는 힘없이 외양간으로 들어갔어요. 그때까지도 누렁이는 외양간 모서리에 머리를 틀어박고 있는 거였어요. “누렁아, 나야. 고개를 이리 돌려봐, 응? 다 내 탓이야, 미안해.” 고삐를 잡아당겼지만, 누렁이는 막무가내였어요. 꿈쩍도 하질 않는 거예요. 환이는 뒷동산 언덕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2학년 때였어요. 텔레비전에서 먼 나라 용감한 투우사를 보게 되었어요. 멋진 칼을 찬 투우사가 소를 눕히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는 거였어요. 환이도 멋진 투우사가 되고 싶었어요. 빨간 보자기를 준비하고, 지게작대기를 칼로 대신해서 송아지인 누렁이 앞에 섰어요. “자, 누렁아. 덤벼, 덤벼 보라구. 어서!” 그러나 누렁이는 눈만 멀뚱멀뚱 뜬 채, 오히려 환이를 이상스레 바라보는 거였어요. 지게작대기로 꾹꾹 찔러도 슬슬 피해 다니기만 하는 누렁이였어요. 그때 환이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가는 게 있었어요. ‘그래, 누렁일 화나게 만들면 나에게 덤벼들 거야. 히히히.’ 환이는 누렁이 꼬리에 성냥을 팍 그어댔어요. “우우우! 우우우!” 누렁이는 무서운 비명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어요. 뜨거움을 못 참고, 날뛰던 누렁이는 나뭇가지에 그만 오른쪽 눈을 찔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오른쪽 눈은 영원히 뜨질 못하게 되었어요. 환이는 너무나 무서워 영원한 비밀로 감추고 말았어요. 그 후로 누렁이는 이상스레 변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나아갈 때는 얼굴을 이리저리 번갈아 돌리며 나아가는 것이었어요. 논밭을 갈 때도 행동이 굼뜨고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얼마나 구박을 받았는지 몰라요. “미안해, 누렁아! 날 용서해줘!” 환이는 맞은 편 산에 대고 수없이 메아리를 날렸어요. 이튿날부터 환이는 누렁이를 데리고 산언덕으로 향했어요. 잘 드는 톱으로 누렁이의 코뚜레를 잘라냈어요. 시냇가에서 누렁이의 엉덩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똥딱지를 깨끗하게 닦아 주었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어요. 소장수가 누렁이를 데려가기로 약속한 하루 전날, 환이는 누렁이를 데리고 인삼밭으로 향했어요. “누렁아, 미안해. 부모님 몰래 인삼을 캐서 널 줄게. 내 마지막 선물이야, 맛있게 먹었음 좋겠어.” 인삼밭이 환이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눈에 익은 울타리가 아니었어요. “헉, 저, 저, 저럴 수가! 가시철조망이 주저앉아 버렸잖아!” 어미 산돼지와 새끼들이 가시철조망을 무너뜨리고, 인삼밭을 마구 파헤치고 있는 거였어요. “야, 이 나쁜 놈들아. 저리 가지 못해!” 환이는 돌멩이들을 주워 산돼지들에게 쉬지 않고 던져댔어요. 갑자기 어미 산돼지가 몸을 휙 돌리는 것이었어요. “아, 아, 안 돼! 아버지, 어머니!” 그때였어요. 환이 앞으로 무엇인가 휙 지나치더니 쿵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는 거였어요. “음머어! 음머어!” 산자락 하나가 무너져 내릴 듯한 누렁이 울음소리가 터졌어요. 산돼지들은 숲 속으로 허둥지둥 꽁무니를 빼고 말았어요. 누렁이의 애꾸눈 밑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어요. 부딪칠 때, 산돼지의 송곳니에 찔린 게 분명했어요. 환이는 옷을 찢어 누렁이의 피를 닦아주기 시작했어요. “누렁아, 고마워. 너 아니었음, 너 아니었음……. 미안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달려왔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나 놀라셨는지 얼굴이 하얘졌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을이 내릴 때까지 가시철조망을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누렁아, 고맙구나. 많이 아팠겠다. 자, 가자.” 잘랑잘랑 워낭 소리가 환이의 귀에는 누렁이의 울음소리로 들려오는 거였어요. 서쪽하늘엔 누렁이의 핏빛 같은 노을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요. 누렁이와의 마지막 밤이 되었어요. 환이의 방으로 달빛이 환하게 스며들었어요. 밤 이슥토록 누렁이도 잠을 못 이루고 있었어요. 이따금씩 워낭 소리가 잘랑잘랑 들려왔어요. 환이는 귀를 막고 말았어요. 그랬더니 워낭 소리가 종소리보다 더 크게 환이의 가슴을 마구 흔들어놓는 거였어요. 환이는 살며시 방문을 열고, 외양간으로 향했어요. 마당으로 숨이 막힐 듯 쏟아져 내리는 달빛, 달빛. 누렁이는 하염없이 보름달만 쳐다보고 있는 거였어요. “누렁아, 우린 내일이면 헤어져야 해. 사랑해!” 환이는 누렁이의 목을 끌어안고, 울지 않으려 입술을 꽉 물었어요. 누렁이의 긴 혀가 환이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 쏟아져 나오는 꽃향기, 상큼한 풀잎 냄새……. 환이는 무엇엔가 쫓기는 모습으로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어요. 이튿날 누렁이를 싣고 갈 트럭이 왔어요. 환이는 팔려가는 누렁이를 차마 볼 수 없어 마당에 나올 수가 없었어요. 소장수의 웃음소리가 무섭게 들려왔어요. “자, 나머지 돈입니다. 누렁이를 싣고 가겠습니다.” “저, 저, 미안합니다. 누렁이는 팔지 않겠어요. 계약 위반금을 달라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안 파신다니요? 누렁이 값을 잘 쳐드리는 건데, 이거야 어디 원 쩝쩝.” 한참 후, 트럭은 털털털 소릴 내며 돌아갔어요. 환이는 얼마나 놀랐는지, 방문을 쾅 열어젖뜨렸어요. 누렁이에게 맨발로 달려갔어요. “누렁아, 우리 아빠 최고지?” 누렁이가 음머어! 큰 소리로 대답했어요. 잘랑잘랑 워낭 소리도 ‘그래그래’ 라고 들려오는 거였어요. ●작가의 말 애꾸눈 누렁이는 개구쟁이 시절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누렁이는 죽고 없지만, 아직까지도 제 가슴 속에 살아있답니다. 밤 이슥토록 잠 못 이룰 때에는 음머어 소리도 듣고, 잘랑잘랑 워낭 소리를 아직도 듣고 있답니다. 누렁이에게 미안한 마음, 아무리 퍼내도 샘물처럼 줄지 않고 있어요. 혹시 누렁이가 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밤하늘도 많이 쳐다본답니다. ●작가 약력 충북 충주 출생. 1984년 아동문학평론 동화 추천완료. 계몽아동문학상, 새벗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톨스토이 문학대제전 아동문학대상,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주요 동화집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 ‘눈자니 마을의 동화’ 등. 충남 보령 개화예술공원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 동화비가 세워져 있음. 현재 경기 화성시 비봉초등학교 교장
  • ‘창비 어린이’ 특집 ‘아동문학의 결말’

    계간 ‘창비 어린이’ 가을호(26호)는 기획으로 ‘아동청소년 문학의 결말’ 특집물을 내놓았다. 동화의 결말은 작가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책을 골라 줘야 하는 부모나 교사들의 입장에서도 중요한데, 어떤 결말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아동문학평론가 조은숙씨는 동화는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도식적이고 강박관념적인 의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정혜경 순천향대 국문과 교수는 청소년문학이 독자들에게 답을 가르쳐 주려는 강박관념 때문에 ‘닫힌 결말’에 도달하게 될 위험을 지적했다. 이어 중·고교 교사와 10대 청소년, 국문학과 대학원생 등 독자 10명은 ‘위저드 베이커리’,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오늘은 기쁜 날’ 등 문제작 등을 통해 동화의 결말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제시했다.
  • [최동호 오솔길 산책] 큰 슬픔과 부드러운 흙

    [최동호 오솔길 산책] 큰 슬픔과 부드러운 흙

    여름이 막 가려고 하는 즈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역사의 큰 장이 넘어갔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 왔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어서인지 국민적 충격과 놀라움은 적었던 것 같다. 이보다 앞서 봄이 막 시작될 무렵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국민적 애도 속에 맞았다. 금년은 유난히 국가적 지도자들의 죽음이 발걸음을 깊게 드리운 해가 되는 것 같다. 국립현충원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 사이에 마지막 안식의 자리가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하관식을 보면서 이 자리가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의 죽음과 생을 떠올리면 그것은 그대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집약시켜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민족분단의 첫 대통령은 자주독립과 북진통일을 내세웠고, 절대적 빈곤을 극복하고자 했던 대통령은 산업화시대를 선도하면서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민주화를 시대적 명제로 내세운 대통령은 동서의 갈등을 넘어 남북의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정하고 이를 실천하려 했다.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의 만남은 이십세기 한국현대사를 마감하고 갈등에서 화해의 시대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결정적 전환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햇볕정책’으로 지칭되는 일련의 화해적 조치들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남기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는 서사시적 파란곡절을 담고 있다. 한 시인은 그의 생을 ‘창파(滄波)의 삶이요, 태산의 죽음’이라고 요약한 바 있지만 필설로 말하기 힘들 만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는 수많은 역경과 위기 가운데서도 이를 극복하고 결연히 나아간 영웅적인 서사시의 주인공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분 자신의 위기 극복의 용기도 물론이지만 그러한 성공을 가능하게 만든 국민들이 그분의 고난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통 받는 국민들로부터 우러나오는 힘을 하나로 결집시켜 그들의 소망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킨 지도자로 우뚝 선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사시적 생애다.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영웅을 위해 수많은 민초들의 삶이 대지의 흙처럼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근대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분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과 마음이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와 함께 살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30여년 단골 세탁소 주인이나 단골 이발사, 그리고 독재정권 시절 그분을 그림자처럼 감시했던 형사들은 물론 그와 함께 살았던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그분의 삶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거인은 죽음의 발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진정한 거인이 죽지 않는 이유는 그분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바람결처럼, 숨소리처럼 살아 있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은 봄이 시작되려는 어느 날 ‘용서하세요.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이 말이 첨예하게 대립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우리가 그 말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태양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던 여름날 ‘용서와 화해’를 화두로 남겼다. 반목과 갈등이 팽배한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현실에서 이 말은 또 다른 시대로의 전환을 시사해 준다. 이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국민들의 가슴에 메아리치고 더 큰 힘을 얻어서 현실을 주도하는 힘을 발휘한다면 이 두 거인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분들의 영혼은 우리와 함께 살아서 시대를 넘어서는 역사적 생명을 얻을 것이다. 반목하고 갈등하는 풍요는 풍요가 아니다. 큰 슬픔은 격한 충격처럼 빠르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작고 여린 생명들 속에서 뿌리내리고 부드러운 흙이 되어 살아 있는 것이다.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 퇴임

    우리 문학계를 대표하는 석학인 조동일(70·서울대 명예교수 겸임) 계명대 석좌교수가 최근 퇴임식 및 출판 기념회를 갖고 38년에 이르는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다고 24일 밝혔다. 조 교수는 이날 퇴임행사에서 2004년 9월부터 퇴임까지 계명대에서 5년간 강의한 내용을 모은 ‘세계·지방화 시대의 한국학’ 시리즈 10권 완간을 자축했다. 그는 또 후학을 위해 고문헌과 국문학 서적 6700여권, 해외 수집자료 18상자 등 평생 모은 장서와 연구자료를 계명대에 기증했다. 대학 측은 조 교수의 업적을 기려 ‘계명출판문화특별상’을 수여했다.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뜻을 잇기 위해 도서관 내 별도의 공간에 설치한 ‘동일문고’를 개장, 기증자료를 비치했다. 조 교수는 “1968년 교수로서 처음 부임한 계명대에서 다시 퇴임을 맞게 됐다.”면서 “내 학문의 처음과 끝인 계명대에 모든 자료를 기증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1939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조 교수는 62년 서울대 불문과에 이어 66년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76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계명대를 시작으로 영남대(1977~1981), 한국학대학원(1981~1987), 서울대(1987~2004) 등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2004년 서울대 퇴임 뒤 계명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한국문학 연구에 매진해 왔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진지한 모습으로 다시 온 중국의 이야기꾼

    한국과 중국, 일본은 동아시아문학의 중심축이다. 앞뒤를 다투고 있지만 세계문학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진출하고픈 욕망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문학이 중국·일본문학의 경향성과 흐름을 읽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과제 중 하나가 됐다. ‘중국 현대문학의 기수’로 평가되는 위화(余華)의 초기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단편 소설집이 나왔다. 또한 일본에서 십수년 동안 꾸준히 읽히고 있는 아오키 신몬의 소설작품이 국내에 소개됐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십수년 동안 세계 문단에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문단의 타고난 이야기꾼 위화가 다시 찾아왔다. ‘허삼관 매혈기’, ‘가랑비 속의 외침’, ‘형제’ 등에서 보여준 인물과 상황의 익살맞음과 일상의 적나라한 모습 보여주기, 역사와 집단 속의 개인에 대한 장대한 서사 등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키득거리는 위화가 아니라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위화를 만나볼 수 있다. 게다가 중단편 소설이라 호흡이 더욱 짧아져 순식간에 흡입한다. 바로 위화의 초기 작품들이다. 지금의 위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엿보는 듯한 즐거움은 덤이다. 위화의 중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무더운 여름’(문학동네 펴냄)이 나왔다. 1989~1995년에 쓰인 비교적 초기 작품들로, 위화가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직접 소설 여섯 편을 엄선했다. 향후 ‘허삼관 매혈기’(1996년), ‘형제’(2006년) 등에서 보여주는 장대한 서사의 원형이 된 ‘젊은 위화’의 상상력과 실험성이 돋보인다. 특히 중편소설 ‘우연한 사건’에서는 한 카페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그 현장에 있었던 두 남자가 등장한다. 살인자와 피살자, 그리고 아내를 뺏긴 자와 빼앗은 자의 심리와 상황 등을 놓고 두 남자가 토론하듯 주고 받는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속도감있게 풀어간다. 느슨하게 풀었다가 조이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중간중간 일기 형식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서 팽팽하게 이어져온 두 남자 사이의 극적 긴장과 갈등의 실체가 쨍, 하고 드러난다. 여섯 편 중 가장 먼저 쓰인 1989년 발표작이다. 요즘의 작품 경향과 달리 초기에는 꽤 진지한 위화의 서사(敍事)가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표제작인 ‘무더운 여름’과 ‘다리에서’는 쉼없이 이어지는 짧은 대화로 이야기를 끌고 가거나 우스꽝스러운 인물의 등장으로 익살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낸다. 전형적인 위화의 작품 성향이 엿보이는 것들이다. 소설집 마지막에는 위화가 2002년 쑤저우 대학에서 강연한 ‘나의 문학의 길’ 주제의 강연문도 곁들였다.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고향에서 이빨을 뽑던 발치사(拔齒師)였던 위화가 어떻게 소설가가 됐으며, 습작을 하던 이후 작품 경향의 변화, 가와바타 야스나리,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 등 문인들로부터의 배움을 소개하는 등 소설만큼 흥미로운 작가의 이력이 흥미롭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명배우 명무대] 신구의

    [명배우 명무대] 신구의

    한때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지가(地價)를 자랑하던 명동에 연극전용극장이 복원되었다. 원래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1934)에 메이지자(明治座)라는 이름의 영화관이 있던 자리로 건축사무소를 경영하던 이시바시 료스케(石橋良介)가 이 영화관의 주인이었다. 그는 5년 후 1939년에는 단성사를 인수하여 대륙극장으로 개명, 영화전용관으로 운영함으로써 당시 경성(게이죠) 극장가의 대부로 군림하기도 했다. 명동은 조선 시대에 명례방(明禮坊)이라고 불렸는데, 장악원이 있었던지라 넓은 의미에서 예술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메이지쵸(明治町)로 바뀌고, 그 이름을 따서 메이지자가 들어선 것이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일본공사관을 중심으로 일대가 근대식 상가지역으로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권을 발전 시켜왔다. 지금은 대체로 중저가 상품이 대종을 이루지만, 아직 일본 관광객이 가장 즐겨 찾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번화했던 거리인지라 자연히 예술가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이 건물은 1945년 광복 이후 1961년까지 시공관으로 사용되다가, 1962년 국립극장으로 개·보수되면서 좌석이 1,178석에서 820석으로 축소되었는데, 이번 복원 공사를 거치면서 552석으로 조정되었다. 1973년에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신축, 이전되면서 문화공보부가 총무처로부터 이 건물을 임대하여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 아래 극장으로서 계속 활용하였다. 이후 1976년에 신축 비용을 이유로 대한투자금융, 대한투자신탁에 매각되어 사무실로 용도 변경, 1994년 11월, 대한종합금융이 이 건물을 10층 신사옥으로 건립하려는 계획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연극인들을 비롯하여 문화계가 ‘극장 되찾기 운동’을 벌였고, 명동상가번영회는 정부가 이 건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계속하여 경매 유찰을 유도함으로써 결국 2003년 12월에 정부가 매입하면서 5년 공사과정을 거쳐 2009년 5월에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극장에서는 최초의 오페라 공연, 최초의 오케스트라 공연, 그리고 신협과 민극이 통합된 최초의 국립극단 공연이 연이었다. 그런가 하면 국립오페라단, 국립국극단(현 국립창극단), 그리고 국립무용단이 1962년에 설치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예술 수준을 자임했는가 하면, 최고의 인기 대중가수 현인이나 신예 윤복희 등이 그 무대에 서기도 했다. 나아가 1960년대 이후 한국연극계를 지탱해온 대학극 출신의 동인극단들의 활약도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명동백작’을 자임했던 작가 이봉구가 “우리나라 문화가 다 들어가 있다”고 했다던가?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명동예술극장의 재개관은 단순히 또 하나의 극장 개관과는 다른 특별한 의의를 지니게 되었고, 바로 그 개관 공연이 신구가 주인공을 맡은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 이병훈 연출)이다. <맹진사댁 경사>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일본어 시나리오로 《국민문학》에 발표된 이래, 같은 해 작가에 의해 희곡으로 개작, 연극으로 초연되었다. 1956년에 <시집가는 날>, 1961년에 <맹진사댁 경사>로 영화화 되기도 하고, 1974년 11월에서는 국립가무단이 뮤지컬로 공연했는가 하면,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1988년에는 메노티에 의해 오페라로도 작곡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홍현택이 쓴 오페라도 있다. 연극으로는 ‘신협’(1951)과 ‘실험극장’(1969, 1972)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에 의해 무대에 올렸는데, 그 중 실험극장 공연이 단연 오랫동안 수작으로 손꼽혀 왔다. 돈으로 진사 신분을 사들인 맹진사는 외동딸 갑분을 지체 높은 김판서 아들 미언과 결혼시켜 더 높은 신분 상승을 꿈꾼다. 그러나 김판서와 같은 마을에 산다는 손님을 통해 사윗감이 절름발이라는 말을 듣고 딸의 몸종인 입분을 딸로 둔갑시켜 혼례를 치르고자 한다. 당일 도착한 일행 중 신랑이 당당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맹진사는 친척집으로 보낸 갑분을 급히 불러들이나 신랑과 노망기가 있는 부친의 재촉에 할 수 없이 입분과의 혼례를 치른다. 첫날 밤, 입분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만, 신랑은 이 모든 사단을 자신이 꾸몄음을 실토하며, 참된 마음을 지닌 사람, 곧 입분이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신방의 불이 꺼지자, 맹진사댁 가족들은 망연자실한다. 신구는 1962년에 유치진 선생의 문하생으로서 연극 <소>로 데뷔한 후, 그로부터 본명 신순기 대신 신구라는 예명으로 받아 지금껏 쓰고 있다. 오랠 ‘구’(久)자의 효험인지 그는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47년 동안 꾸준하게 활약하고 있고, 이후로도 그럴 것이다. 데뷔 이래 대체로 진지한 역할 내지 순박한 역할을 맡아오고 있지만, 그의 연기에는 희극적인 계기를 잘 살려내는 묘미가 섞여 있다. 그가 이번에 맡은 맹진사 역은 한편으로는 탐욕적이지만, 바로 그로 인해 희극적인 면모를 드러내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가 주역으로 발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광고방송에서 히트한 것에서 보듯이 그의 희극성은 과장되게 꾸미지만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유치진의 후원으로 탈춤을 소개하기 위해 하와이동서문화센터에서 1년간 있으면서 현대무용을 익힌 경력도 작용해서인지 그의 연기는 유연성이 높다. 나는 아직도 그가 유치진의 마지막 연출 공연에서 보여준 유연한 몸동작을 어제인 양 기억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많은 움직임을 요구하는 연출가 김아라나 한태숙과도 무리 없이 호흡을 맞춰낸다. 또한 그는 서울 태생답게 표준어를 훌륭하게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점에서 그는 같은 서울 태생인 오현경과 맞먹는다. 그가 비록 2지망이지만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두고 한때 아나운서를 지망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드라마센터 연극으로부터 출발하여 국립극단의 배우를 거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TV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러면서 <토마토>라는 영화에서 연기생활 45년 만에 처음으로 주역을 맡았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연극을 고향으로 삼고 있고, 언제고 무대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 그와의 인터뷰들에서는 의례히 그가 명문 경기고 출신이란 점을 들어 다른 직업을 택했을 가능성이 질문되기도 하지만, 그로서는 관객과의 교감에서 진정한 희열과 기쁨을 느낄 만큼 연극, 아니 연기만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신념이 누구보다 강하다. 그가 <하나를 위한 이중주>로 근 10년 만에 무대에 다시 서서 윤석화와 호흡을 맞출 때에나 <숨은 물>에서 노영화 등 비교적 젊은 배우후배들과도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룬 것도 연기를 천직으로 삼고자 하는 후배들의 각오를 귀히 여기고 이를 격려하는 심성과 연기에 대한 자부심이 무리 없이 배어 나온다. 신구세대가 함께 작업해야 하는 이번 공연에서도 그의 중심추로서의 무게감이 공연의 성공에 알게 모르게 작용했으리라고 여겨진다. 그가 경기고교 출신들이 만든 화동연우회 회장을 오랫동안 맡아온 것도 단순히 선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넉넉한 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글_ 김문환 서울대교수, 연극평론가
  • [최동호 오솔길 산책] 광화문광장, 세계의 심장으로 열리다

    [최동호 오솔길 산책] 광화문광장, 세계의 심장으로 열리다

    8월1일 광화문광장이 열렸다. 일년 넘도록 닫혀 있던 광화문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동안 광화문광장의 개방을 소망하던 수십만의 사람들이 신광화문시대의 역사적 개막을 바라보았다. 차량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하는 행정당국자의 말이나 국가 중심축을 바로잡겠다는 설계 책임자 말도 한번쯤은 귀담아들을 필요는 있다. 광화문광장은 서울광장, 숭례문광장, 청계광장 등 서울의 네 개의 광장을 종합하는 중심축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광장이다. 앞으로 이 광장은 세계의 광장으로 그 명성을 획득해야 한다. 막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서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은 물론 세계 문화의 중심축으로서도 자리잡아야 한다. 전통, 역사, 문화, 디지털이 함께 공존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거듭나야 한다. 조선시대 500년의 전통 위에 디지털 시대의 천년을 내다보는 안목과 역동적인 문화가 어우러질 때 광화문광장은 그 역사적 소명을 빛낼 것이다. 광화문광장은 그동안 한국근현대사는 물론이고 조선조의 역사가 소용돌이치는 과정에서 소실·재건·축소 등의 파란곡절을 겪어 왔다. 문제는 과거를 잊지 않고 그 과거와 현재를 융화시켜 새로운 역사를 생성하는 창조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광장은 어느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부당국이나 운동단체나 그 어느 한 곳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광장이다. 우리는 촛불시위에서 거대하게 일렁거리는 국민적 에너지의 파동을 보았다. 광화문광장으로 몰려드는 인파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들만이 아니다. 광화문광장은 이제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인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세계사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신광화문시대는 디지털시대의 선도자로서 세종대왕을 내세우고 있다. 세종대왕은 창조적 인문주의 시대의 상징이다. 조선조 전체 역사는 물론이고 우리 민족사의 불세출의 영웅 세종대왕이 아니었다면 한글창제는 물론이고 국방, 외교, 과학기술, 법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토대가 구축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것은 태조이지만 조선을 확립한 것은 세종이며 여기서 나아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것도 세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의 태산 같은 치적의 밑바탕에는 국민에 대한 사랑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반대파를 처절하게 숙청하며 왕위에 오른 태종이 삼남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 하자 조정에는 또다시 권력 투쟁의 그림자가 스쳐갔다. 그러나 세종은 신하들의 강력한 상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왕위 승계를 반대하던 이직(李稷)이나 황희(黃喜)를 중용했으며 집현전을 만들어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였다. 과거의 역사를 바로 보고 현재를 분명하게 판단하며 이를 국민을 위한 국가 비전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지도자로서 세종의 위대성이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세종의 지도력을 본받는 지도자들만이 신광화문시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광장은 풍문에 휩싸이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닫힌 세계를 떠도는 일상사다. 열린 광장에서 잠시 떠돌던 풍문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수많은 소로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광장을 떠받치는 힘이다. 소로에 굽이치는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를 국가적 에너지로 결집하는 지도자가 없다면 광화문광장은 또다시 반대자들의 성토장이 되고 말 것이다. 실핏줄 같이 퍼져 있는 소로에서 중심을 향해 들려오는 국민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바다처럼 귀담아 국가적 비전으로 만드는 지도자들의 마음의 문도 활짝 열리기를 소망한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남한산성’등 12편 번역지원작 선정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2009년 한국문학 번역지원 대상작으로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 등 12편을 선정했다. 선정작으로 ‘남한산성’ 외에 한승원 소설 ‘멍텅구리배’, 구효서 소설 ‘나가사키 파파’, 이승우 소설 ‘식물들의 사생활’, 김혜순 시집 ‘당신의 첫’, 정복근 희곡집 등이며 언어권 별로는 영어가 5건, 불어 4건, 스페인어 4건, 독어 1건이다.
  • [내 책을 말한다] 삼천궁녀·논개·진채선… 역사속 여인들 다시보기

    #1. “만약에 말이야, 정말로 여기서 3000명이 뛰어내렸다면, 이 절벽은 낙화암이라기보다는 피바위 같은 명칭으로 불렸을 거 같지 않아? 아비규환 속에 누군가는 의지와 상관없이 등이 떠밀려 떨어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등이 부러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눈알이 튀어나오기도 했겠지. 그런데 왜 이 바위는 꽃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낙화의 이미지가 됐을까?” “그러게. 실제로 3000명의 여자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여기서 한 번 뛰어내려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낙화암이라는 말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재밌겠지.” 충남 부여의 부소산성을 오르며 생각했던 그 이벤트는 물론 성사되지 못했다. #2. “왜 그 언니 귀신은 애먼 사람을 잡았을까. 자기를 죽인 사람 앞에 나타나면 될 걸 신임관리들 앞에 나타나 원한을 풀어달라 하니까 심장 약한 아저씨들 여럿 죽었잖아.”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이 영남루는 예사롭지 않은데. 빛바랜 단청, 좁고 어둑시근한 계단, 섬세한 난간…. 추리소설이나 귀신이야기 하나쯤 나오기에 충분한 공간이야. 오! 여기서 귀신카니발을 열면 어떨까. 아랑이 죽었다는 4월 보름에 우리나라의 귀신, 서양 마녀들, 베트남 귀신, 루마니아 귀신(드라큘라다.)이 이곳 밀양강변으로 모이는 거야. 생각만 해도 멋지잖아.” 시크릿 선샤인, 경남 밀양. 그곳에서 이런 카니발이 열린다면 가고 싶다는 사람 여럿 있다. #3. “논개는 왜 그렇게 죽었을까? 나 같으면 혼란의 와중에 기적(妓籍)을 불태우고 함경도나 평안도 어디쯤으로 가서 ‘전쟁통에 남편도 자식도 잃은 과부요.’하고 살았을 거 같은데. 조국이 논개한테 해준 게 뭐 있다고 적장을 끌어안고 뛰어내렸을까?” 5월, 논개제가 열리는 촉석루에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친구가 말했다. 남강 위에 부표로 관객석을 만들고 진주성을 배경으로 하는 논개투신재현극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논개가 왜 그렇게 죽었을까에 대한 이해를 하기에는 아쉽고 부족했다. 이런 농담 속에서 찾아낸 숨은 거짓말과 잘 해석되지 않는 그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춰봤다.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호미 펴냄)은 그렇게 나왔다. 삼천궁녀와 소서노 등 백제에서 시작해 최초의 여성 소리꾼 진채선, 근대작가 박화성, ‘목포의 눈물’ 이난영, 정신대 할머니, 한국문학의 거목 박경리…. 마치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하나도 모르는, 오랫동안 의심없이 이어졌지만 섬세하게 따져보면 몹시 기이하고 우스운 얘기들이 치밀하게 직조되어 위험하게 자리잡는 과정들도 이야기했다. 책을 쓰면서 행복했던 건 책에 나오는 공간들이 더없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통영, 하동, 고창, 남원, 목포, 부여, 진주, 밀양…. 시간의 지층이 쌓여 만들어진 섬세하고 우아한 오래된 도시들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우선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지만, 아이들 손을 잡은 아빠 엄마가, 또는 친구들과 여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이곳에서 그 여자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도 여름을 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김현아 로드스꼴라 대표교사
  • [학술·종교플러스]

    어문硏 40주년 기념 강연회 ●한국어문회와 한국어문교육연구회는 3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서초동 한국어문회관 강당에서 창립 40주년 기념강연회를 연다. 한국어문교육연구회는 1969년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을 초대 회장으로 추대해 출범한 이래 국어국문학 학술연구와 국한혼용 어문운동을 전개해 왔다. (02)6003-1405. 조계종 시스템평가 종책좌담회 ●불교미래사회연구소는 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종책좌담회 ‘변화와 합리적 개혁을 이야기한다’를 개최한다. 오는 10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마련된 이 행사에서는 지난 94년 확립된 현 종단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평가하고 향후 종단 운영 방안 등을 모색해 본다. 이학종 미디어붓다 기자의 사회로 현응스님(중앙종회의원, 전 해인사 주지), 법안스님(불교미래사회연구소 소장),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 등이 토론을 나눈다. (02)725-4277. 그리스도교 2000년 DVD 출시 ●성베네딕도 수도회는 기독교 역사를 다룬 교회사 다큐멘터리 ‘그리스도교 2000년(원제·2000 JAHRE CHRISTENTUM)’ DVD 세트를 출시했다. 1999년 독일에서 제작한 이 작품은 전세계 30여개 언어로 번역됐고, 국내에는 수도회 임 세바스찬 신부의 주도로 2002년 판권을 사와 7년 동안 번역·더빙을 했다. www.benedictmedia.co.kr.(054) 971-0630.
  • [내 책을 말한다] 막대한 사료 분석해 청일전쟁 세밀하게 묘사

    ‘구한말 러시아 외교관의 눈으로 본 청일전쟁’(제노네 볼피첼리 지음, 유영분 옮김, 살림 펴냄)은 동양사와 동북아 외교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주요 참고문헌으로 자주 인용되는 책이다. 그러나 번역서로 출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에서 최근 영인본이 재출간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청일전쟁의 주무대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번역 출판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일본과 중국의 방대한 사료를 분석, 전쟁이 끝난 지 1년 만에 이토록 상세한 전쟁사를 발간할 수 있었다는 점은 지금처럼 정보 공유가 쉽지 않았던 100여년 전 일임을 감안할 때 매우 놀랍다. 동양 문화와 역사에 대해 상당 수준의 지식을 자랑하며 일본과 중국의 사료와 출판물, 외교 문서 등 수집 가능한 막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단히 체계적으로 전쟁의 전말을 상술하고 있다. 저자는 고조선 성립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한·중·일 삼국의 역사적 관계를 개괄하면서 청일전쟁이 중국과 일본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한반도 종주권을 둘러싼 수천 년에 걸친 뿌리 깊은 역사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으로는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연상시키는 웅변조의 어투로 전쟁의 주요 장면마다 간략한 논평과 분석을 곁들였다. 당시 극동 지방에 거주하였거나 여행 중이던 서양인의 인식 틀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번역을 하면서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전쟁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점에 있다. 번역하면서 참고했던 그 어느 서적보다 집중적으로, 상세하고 밀도 있게 청일전쟁을 기술하고 있다. 전쟁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벌거벗은 채 원시적 공포와 잔인함, 분노와 대면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마치 오래된 무성 영화를 관람하듯 전장의 긴장과 공포, 흥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 전쟁사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꼼꼼하게 양국의 전략과 전술, 부대 전개 방식, 군대 편제, 무기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초기 전쟁 무대인 한반도 주요 요충지에 대한 지리적 정보 외에도 김옥균 암살과 고승호 침몰, 상하이 조계지 일본인 학살 등 몇몇 사건에 대한 상술을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다시 관심권에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그동안 일반 대중의 관심으로부터는 차츰 멀어져 갔던 만주 지역의 자세한 지리적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흥미롭다. 청일전쟁의 주요 전투지는 10년 후 발발한 러일전쟁의 접전지이자 과거 만주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고구려의 주요 요새가 위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일본 사료를 주로 참고한 까닭에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언급들이 있으나 이 또한 당시 일본의 정보력이 그만큼 앞섰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불편한 편향이 책 자체의 가치를 심하게 훼손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한 편향조차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의 ‘한국관련 서양고서 국역출판사업’ 2007년도 지원도서로 선정돼 이번에 출판됐다. 유영분 역사서 전문번역가
  • [책꽂이]

    ●산남수북(한샤오궁 지음, 김윤진 옮김, 이레 펴냄) 위화, 모옌과 더불어 현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에세이집.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떠난 ‘팔계’라는 산골마을의 생활상을 그렸다. 특유의 기개와 해학이 묻어나며, 때로는 날카로운 필치로 도농간의 문화적 격차, 문명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2007년 루쉰문학상 수상작. 1만 6000원. ●바다의 성분(허만하 지음, 솔 펴냄) 등단 이후 30년간 의사로 활동했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2006년 이후 발표한 작품 66편을 모았다. ‘내 목숨 최초의 열 달을 한 마리 물고기처럼 캄캄한 그 안에서 촉감으로 사귀었던 태초의 바다’(‘바다의 성분’ 중)처럼 원시적 풍경이나, 사물 사이 ‘틈새’의 이미지를 주로 다뤘다. 7500원.
  • 한국문학의 세계화… 노벨상도 머지않았다

    한국문학의 세계화… 노벨상도 머지않았다

    한국 문학은 세계 문학의 변방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들 얘기하면서도 세계 문학의 보편성을 좇는 이율배반적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 문단에서 차마 말하지 않거나 애써 부정하면서도 내심 갈망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 이를 통해 세계 문학의 중심부로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최근 들어 번역 작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우리의 문학 작품이 해외에 활발히 소개되고 있지만 주류로 나아가는 데는 여전한 한계를 안고 있다. 노벨문학상이 영광의 극점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과만이 아닌, 세계 문명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2009년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에서 차지하는 현주소를 정확히 짚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이 올초 해외 번역사업을 벌이는 기관의 실적을 합계 조사한 결과 역시 고은, 황석영, 이문열 등이 앞줄에 놓였다. 특히 시는 국내에서처럼 해외에서도 ‘찬밥 신세’이기 십상임에도 고은의 시집 ‘만인보’, ‘화엄경’, ‘뭐냐’ 등이 15개 언어로 51종이나 번역 소개됐다. 영어(14종), 독일어(7종), 스페인어(7종), 스웨덴어(4종) 등으로 문화권을 가리지 않았다. 소설가 이문열 역시 무려 9개 언어로 출간된 장편소설 ‘시인’을 비롯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사람의 아들’ 등 작품 50종이 번역됐다. 번역원 박혜주 교육자료실장은 “한국문학은 지난해까지 28개 언어로 번역됐고 가장 많이 번역된 언어는 영어,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순으로 나타났다.”면서 “30년 남짓한 번역 역사에서 미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제교류 나서는 문학, 번역의 질도 높여 이처럼 문학의 국제 교류가 제대로 꽃을 피운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열렸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100여개 나라에서 6000여개의 출판사가 참가하는 세계 최대의 도서행사이자 매해 전세계 인류의 지적, 문학적 발전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한국이 주빈국(主賓國)이 됐고, 90여명의 국내 소설가·시인이 참가해 문학 행사를 열었다. 한국 문학의 커다란 줄기가 도도히 펼쳐졌고,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이 세계 문학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거의 없다시피 미미했던 한국 문학의 존재감을 한 방에 떨쳐낸 성과를 거뒀다. 도서전 현장에서만 2000건이 넘는 출판 계약이 이뤄졌을 정도였다. 이뿐만 아니다. 2006년부터 ‘서울 젊은 작가들’ 모임이 시작돼 연례 행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아시아 문학포럼’ 등을 통해 세계 문학과 한국 문학, 세계 문학과 아시아 문학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풀어가기 시작했다. 번역원은 최근 국내 문학 작품 번역의 질을 확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문학번역원(KLTI) 공식 번역가 5명을 지정했다. 기존의 번역료 1800만원을 3000만원으로 높였고, 공식 번역가들로 하여금 한국 문학의 국제 교류 활동에 대한 가교 역할까지 맡도록 했다. 김주연 번역원장은 “이러한 조치는 번역 작품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물론 번역의 질이 좋아져 결과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작가들은 하지만 행복한 고민도 있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작품이 ‘한국 문학’의 좁은 개념 규정이다. 하지만 이 범주를 고민하게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바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 영어권 한국계 작가들이 가장 눈에 띈다. 이들이 풀어내는 작품 세계의 주조는 국가와 민족,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적 체험과 기억이다. 범세계적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 대상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홍콩 출신의 한인 2세 제니스 리(37)는 올초 내놓은 소설 등단작품 ‘피아노 티처’가 미국과 홍콩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선풍을 일으키며 23개 국가에 판권이 팔렸다. 재미교포 1.5세 문나미(41) 역시 자신의 첫 소설 ‘마일즈 프롬 노웨어’를 영문으로 펴내며 전세계 여류 작가들의 문학상인 오렌지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밖에 고려인 3세인 러시아 국적의 아나톨리 김 역시 톨스토이 문학상 등을 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등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은 ‘만인보’ 23년만에 탈고

    한국 시단의 거목 고은(76) 시인이 민족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시집 ‘만인보’를 최근 탈고했다. 2007년 26권까지 출간된 ‘만인보’에는 총 3285편이 실렸고, 27∼30권에 실릴 500여편의 마지막 원고를 지난 2일 탈고했다. 23년 만에 전체 3800편 30권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각권 120여편씩 구성될 27∼30권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살아간 인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30권의 마지막 부분에는 조선시대 비운의 왕 연산군을 통해 권력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있다. 만인보는 1980년 여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 생각해 냈으며 우리 민족의 여러 인간상을 시를 통해 형상화하려고 했다. 그러던 1986년 봄, 모두 3500편으로 완결하겠다는 공언과 함께 1∼3권을 펴냈다. 이후 ‘만인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 ‘한국문학사 최대의 연작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등 7개 언어로도 번역되기도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부고]원로 국어학자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

    수필가이자 원로 국어학자인 경희대학교 서정범 명예교수가 14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83세. 서 교수는 1926년 충북 음성에서태어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문리과대학장, 한국어원학회 초대 회장, 한국수필가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병상기’ ‘미리내’ 등 수필 10여편과 수필집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 ‘무녀의 사랑 이야기’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호석(차병원 정신과 의사)씨와 딸 승현(워드워즈 대표)·승혜(성남시립교향악단 연주자)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202호, 발인은 17일 오전 8시. (02)958-9548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최동호 오솔길 산책] 여름 도시의 빛과 소쇄원의 바람

    [최동호 오솔길 산책] 여름 도시의 빛과 소쇄원의 바람

    여름 도시의 빛은 화려하다. 현란한 색들이 밀림처럼 눈앞을 가로막아 꼼짝도 못하고 땀만 흘리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한 여름 도시의 빛깔 뒤에 온갖 욕망이 번득인다. 오늘의 우리가 처한 암담한 현실은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거나 방향을 바꿀 생각은 아예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진실을 말해 줄 사람도, 진실을 경청할 사람도 사회의 중심에는 없는 것 같다. 공포와 독단이 지배적이다. 답답한 마음을 씻어 보고자 담양 소쇄원(瀟灑園)을 찾기로 하였다. 알려진 대로 소쇄원은 개혁정국을 주도하던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년)로 능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자 그의 문하였던 양산보(1503~1557년)가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 숨어 살기 위해 건립한 정원이다. 하늘로 치솟은 죽림 사이로 드리운 그늘을 지나 소쇄원에 도달했다. 소쇄원은 예상보다 협소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중첩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계류를 뒤에 두고 대봉정(待鳳亭)이 있고 조그만 계곡을 건너 광풍각(光風閣)이 있고 그 뒤에 제월당(霽月堂)이 있었다. 제월당은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이란 말이요, 광풍각은 ‘비 갠 뒤 햇빛 가득 머금은 청량한 바람’이라는 말이다. 소쇄원에서 직접 본 것은 작열하는 햇빛 속에 잔뿌리가 드러난 나무줄기요, 메마른 계류였다. 실오라기 같은 물이 흐르고 있을 뿐 소쇄원 어디에도 시원한 바람은 없고 메마르고 잔인한 햇살이 칼날처럼 빛나고 있었다. 16세기 전후 조선의 정치적 구도는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그들의 세력이 교체될 때마다 사화가 일어나고 이는 그 후 당쟁으로 발전되어 조선조의 망국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는 일이 있어도 당리댱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도 마지않았던 것이 조선조 사색당쟁의 폐단이 아니었던가. 오늘의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치 눈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인기에 편승하려는 권력투쟁 아니면 누가 뭐라 해도 소신껏 나가겠다는 소통부재의 독선이 지배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 상황이다.  혹자는 양산보가 건립한 소쇄원을 양반 사림의 호사 취미라 몰아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쇄원은 호남의 사림이 도학과 절의라는 그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힘들여 일구어나간 전통문화의 한 증거이다.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자연에 은둔하기로 한 그들에게 소쇄원은 16세기 한국문화의 새 전통을 창출하였던 소통의 공간이다.  권력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갔어도 그들을 지켜 주는 문화적 자존심으로 인해 그들은 당당하게 생을 살아나갈 수 있었다. 소쇄원을 중심으로 모여든 송순, 정철, 기대승, 김인후, 고경명 등은 이후 거듭된 사화는 물론 임진왜란의 위기도 극복하는 저력을 길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문화적 자부심 위에서 17세기 후반 겸재 정선을 필두로 진경산수화가 전개되어 비로소 한국의 산과 들이 우리들 자신의 손에 의해 미학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일 터이다. 기대승이나 김인후의 도학이나 송순이나 정철의 가사문학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문화적 전통의 깊이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고갈한 소쇄원의 계류에서 오늘의 난마와 같은 정치적 현실을 돌아본다. 양상은 다르지만 진보와 보수의 격돌은 언제나 역사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이 뜨거운 정치판에 한바탕 시원한 장맛비가 쏟아졌으면 좋겠다. 소쇄원 광풍각의 청량한 바람이라도 불어 대결적 구도를 만들어 낸 당사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진실을 말하게 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로 탈바꿈시켰으면 좋겠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공식번역가 제도로 작품 질 높이고 해외서 상설포럼… 한국문학 홍보”

    “번역의 질을 확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노벨문학상 자체를 굳이 목적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번역의 질이 좋아져 결과적으로 노벨상을 받는 데 기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죠.” 취임 6개월을 맞은 김주연(67) 한국문학번역원장은 6일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원장은 한국문학번역원 공식 번역가(KLTI Translator) 다섯 팀을 선정했음을 밝히며, 국내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김 원장의 우선적 바람은 노벨상과 같은 가시적 성과보다는 한국 문학의 활발한 해외 소개와 번역의 질 제고다. 김 원장은 “번역가 제도 운용을 통해 작품 번역의 질을 높임은 물론 뉴욕, 파리, 베를린, 베이징, 도쿄 등에서 해외 상설 문학 포럼을 개최해 국내 작가들과 그 작품들이 활발히 소개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선정된 번역가들은 영어권 브루스 풀턴·주찬 풀턴과 유영난씨 등 2개팀, 불어권은 최미경·장 노엘 주테, 독일어권은 김선희·에델트루트 김, 스페인어권은 고혜선·프란시스코 카란차다. 이들은 번역원이 고른 40권 안팎의 국내 작품들 가운데 한 권을 골라 번역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번역료는 기존 18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대폭 오른다. 김 원장은 “지금껏 수백편이 해외에 소개됐지만 제대로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은 없었다.”면서 “우선적으로 한두 권만 제대로 알려져도 우리 문학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와 함께 한국 도서의 해외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오는 13일 도쿄에서 일본 출판사, 한국 번역가 등이 참가해 ‘KLTI 도서포럼’을 여는 등 베이징(9월8일), 뉴욕(10월 중) 포럼을 진행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세 도시 외에도 파리, 베를린으로 해외 도서포럼의 영역을 넓히고 이후 모스크바, 스페인어권 도시 등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근영, 1년만에 브라운관 컴백하나?

    문근영, 1년만에 브라운관 컴백하나?

    배우 문근영의 브라운관 컴백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문근영이 피겨 스케이팅을 소재로 한 드라마 ‘질 수 없다’의 출연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근영 소속사 관계자는 7일 오후 서울신문NTN과의 전화통화에서 “문근영이 ‘질 수 없다’ 시놉시스를 상당히 재밌게 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 작품들 중 하나 일 뿐”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이어 “아직 컴백이다 아니다를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면서 “확정 되는대로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관계자는 “지난 1학기에는 학교를 잘 다녔고 현재는 방학이라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근황을 덧붙였다. 문근영은 지난해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 종영 후 올해는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복학해 3학년 1학기를 마친 상태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미법원 “‘호밀밭의 파수꾼’ 속편 출간 금지”

    미법원 “‘호밀밭의 파수꾼’ 속편 출간 금지”

    미국 법원이 현대 미국문학의 결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J D 샐린저(90)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캐릭터를 빌려와 다른 작가가 쓴 소설의 출판을 금지시켰다.  영국 BBC가 2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의 데보라 뱃츠 판사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콜팅이 J D 캘리포니아란 필명으로 쓴 새 소설 ‘60년 뒤-호밀밭을 지나며’가 샐린저의 1951년 작품과 너무 비슷하다며 미국내 출판과 광고,유통을 무기한 금지한다고 판결했다.뱃츠 판사는 지난달 1일 샐린저가 법원에 소장을 제출해 요구한 것을 지난달 18일 받아들여 열흘 동안의 출판 금지 명령을 임시로 내린 바 있다.  당초 미국에서 9월 출간될 예정이었던 이 소설은 이미 영국에서는 시중 서점에 깔려 있다.  스웨덴 출판사 측은 이 작품이 원작자와 주인공에 대한 패러디라고 할 수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 반면,뱃츠 판사는 37쪽에 달하는 방대한 판결문을 통해 신작에 등장하는 주인공 ‘미스터 C’의 캐릭터가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너무 비슷해 원작에 성공에 기대려는 상업주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또 콜필드의 캐릭터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려 했다는 콜팅의 주장도 “문제가 많으며 신뢰성이 결여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오랜 은둔생활 끝에 최근 건강이 많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진 샐린저는 지난달 법정에서 진행된 청문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콜필드가 기숙학교에서 쫓겨난 뒤 기존 제도에 항의하기 위해 뉴욕 일대를 배회하는 원작의 설정과 달리 이 작품에선 76세의 미스터 C가 요양원을 빠져나와 뉴욕으로 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두 작품 모두 주인공들의 방황이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마무리되는 것까지 똑닮았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부고]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지다

    [부고]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지다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유현목(兪賢穆) 감독이 28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84세. 유 감독은 지난 2007년 뇌경색 진단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당뇨합병 증세까지 보이는 등 병세가 악화돼 경기도 고양시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1925년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휘문중·고등학교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1956년 영화 ‘교차로’를 만들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오발탄’(1961년), ‘아낌없이 주련다’(1962년), ‘순교자’(1965년), ‘사람의 아들’(1980년) 등 40여편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신상옥·김기영·김수용 감독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전후 1세대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1976년부터는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활동했으며, 1990년 정년 퇴임했다. 1995년에는 70세의 나이로 영화 ‘말미잘’을 내놓아 대종상 ‘영예로운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영화사의 관점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의미있는 성취들이 적지않다. 실존주의에 기반한 철학적 사유, 잉그마르 베르히만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같은 종교색 짙은 서구 거장 감독의 영향, 몽타주 편집기법과 대담한 화면 구도 등이 두고두고 평가받는 요소들이다. 특히 ‘오발탄’은 전후 사회의 불안, 자유당 말기의 부패, 남북분단과 이산의 고통을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잘 포착해내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물론, 엄혹한 시대적 상황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다. ‘오발탄’은 한국사회를 지나치게 어둡고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한때 상영이 금지됐고, ‘춘몽’은 나체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한국 최초로 ‘외설죄’ 논란을 일으켰다. 한편, 이날 장례위원회가 구성돼 김수용 감독이 위원장을, 정인엽 영화감독협회 이사장과 이덕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고 유현목 감독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지며, 장례식은 ‘대한민국 영화감독장’으로 5일간 치러진다. 새달 2일 오전 영결식과 발인을 진행하며, 오후에는 고인이 영화를 제작했던 충무로 인근에서 노제를 벌일 예정이다. 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연 묘지다. 유족으로는 서양화가인 부인 박근자 여사가 있다. (02)2258-5940.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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