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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문화권의 문학(김종회 편,국학자료원 펴냄)미 일 중 러 등 해외 동포문학에 대한 연구 논문집.경희대 국문학과교수인 편자의 대학원 강의에 참가한 연구자들이 작성했다.지역별 한인문학 개관에 이어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2만8000원 ●황토 마당의 집(김태수 지음,실천문학사 펴냄)울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꾸준하게 시를 써온 시인의 네번째 작품집.거창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장시 ‘그 골짜기의 진달래’를 비롯,역사의식이 담긴 작품들을 이야기하듯 술술 풀어낸다.6000원 ●콩깍지 사랑(추둘란 지음,소나무 펴냄)다운 증후군에 걸린 아들을 키우며 맛본 좌절과 희망,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발견하는 구수한 시골의 인정과 자연의 소중함을 담은 이야기 모음집.‘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실려 네티즌들의 호응을 받았다.8000원 ●옛 로망스(우선덕 지음,민음사 펴냄)76년 등단한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이혼한 뒤 자식을 키우는 주인공의 신산한 삶을 주제로 한 연작 5편과 중단편을 모았다.시점은 달리하지만 등장인물은 맞물리는 연작에서는 일상의 고단함을 들려준다.9000원 ●신원 미상 여자(파트릭 모디아노 지음,조용희 옮김,문학동네 펴냄)1978년 공쿠르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쓴 프랑스 현대문학의 대표작가가 99년 발표한 장편.막 성인이 된 세 여성의 암울한 이야기를 절망적 분위기에서 들려준다.8500원 ●베테랑(프레더릭 포사이드 지음,이옥용 옮김,동방미디어 펴냄)‘자칼의 날’을 쓴 국제적 스릴러 작가의 작품집.퇴역 군인의 살해범을 기소하려는 형사와 풀어주려는 변호사의 대립 구도를 다룬 표제작 등 3편의 중편에서 혼란한 세계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9500원 ●메디쿠스(노아 고든 지음,김소영 옮김,해나무 펴냄)의학담당 기자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낸 신작 장편.런던 빈민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이 온갖 역격을 극복하면서 진정한 의사가 되는 과정을 다루었다.모두 3권,각 8800원
  • 간이역등 29곳의 공간 문학적 서정으로 메워/최재봉 ‘…사이버스페이스까지’

    간이역,카페,절,무덤,사막,숲…. 우리 문학에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해온 소재들이다.어쩌면 우리 문학사는 그 ‘빈 사이(空間)’를 나름대로의 서정과 상상력으로 메워온 숱한 작가들의 고백이 아닐까? 이룸출판사에서 나온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최재봉 지음)는 그 공간들을 다룬 다양한 작품들을 저자가 발로 누빈 기록이다.10여년 동안 한겨레신문 문학기자였던 그가 연재한 기사를 바탕으로 새로 잇고 누비고 한 이 글은 같은 ‘틈’이 보기에 따라서 얼마나 다채롭게 변주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한국문학의 공간 탐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빈집’을 비롯한 29곳의 공간을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동일한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목소리의 작품들을 일일이 캐낸 저자의 열정이 묻어있다. 예컨대 저자는 ‘포장마차’라는 공간에서 시인 안도현의 ‘숭어회 한 접시’와 임영태의 ‘포장마차’에 담긴 “매혹적 자태”를 끄집어 낸다.이어 김승옥의 단편 ‘서울,1964년 겨울’의 한대목으로 안내한 뒤 포장마차가 지닌 매혹의원인을 “따스한 인정,낯선 사람들끼리의 의기투합” 등으로 분석한다. 저자의 공간을 통한 문학보듬기는 다양하다.일그러진 우리 현대사에서 저항의 상징은 문학.투옥된 문인들이 유달리 많았던 터라 ‘감옥’은 문학의 단골 소재였다.그 곳은 “억압적인 현실과 그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상징”(김지하)하거나 ,“확고한 투쟁 의지로 강고한 성채를 이루면서도 뜻밖의 따뜻한 서정성을 발휘”(김남주)한다.여기에 송기원·김영현·황석영의 경우처럼 빼어난 작품을 낳은 ‘문학적 자궁’이기도 하다는게 저자의 시선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 [나의 건강보감]조정래 작가

    어김없이 그는 두알의 가래를 쥐고 있었다.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앞 찻집 다솔에서 담소를 나눈 4시간 내내 그는 양 손을 번갈아가며 가래를 굴렸다.‘까락까락’거리는 맑은 가래 소리가 어쩌면 목어(木魚)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같았고,또 어찌 들으면 훈풍에 실려와 졸음의 끝에 닿는 풍경소리와도 같았다.호두를 닮은 바로 이 두알의 가래에 그의 문학적 열정과 고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한참 ‘아리랑’을 집필할 때,사단이 벌어졌다.일단 작심하면 좌고우면하는 법없이 외길로 내달아 끝을 보는 성미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써나갔다.그러나 그게 문제였다.너무 무리하게 글쓰기에 매달리는 바람에 그만 오른팔 관절이 어긋나고 만 것.“처음엔 어깨 관절 부위가 아프더니 이내 어깨며 팔,손등까지 마비되는 거에요.글 쓸 일이 태산인데,큰일났다 싶더라구요.그래서 한의원을 찾아 침도 맞고 했지만 완치가 안돼요.그랬는데 한의사가 제게 이걸 권해요.‘설마…’하고 시작했는데,세상에 가래 주무르는 게 내 글쓰기의 구원이 될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그날 이후,그는 손에서 가래를 놓지 않는다.처음 손에 쥐어 7년쯤 주물렀던 가래 두알은 전북 김제의 ‘아리랑 문학관’에 전시돼 있고,지금 것은 연전 전남 장흥의 독자가 선물한 것이다. ●7년 주물렀던 ‘가래' 아리랑 문학관 전시 작가 조정래(61).문단에서는 그를 두고 ‘한국문학의 정신이자 지조’라고들 말한다.그만큼 외롭고 치열하게 그가 숨쉬는 시공(時空)을 싸워서 헤쳐왔으며,이렇게 일군 그의 문학이 도저(到底)하고 웅숭깊어 정치가,역사가도 이루지 못한 우람한 산 하나를 빚어 놓아서다.어두운 시대,금기의 빗장을 벗겨 낸 ‘태백산맥’이 그렇고 ‘아리랑’과 ‘한강’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성취가 거저 주어졌을까.지난 83년 ‘태백산맥’의 집필을 시작해 지난해 ‘한강’을 마무리할 때까지 22년동안 물경 5만장이 넘는 원고지를 오로지 육필로 빼곡하게 메웠다.오죽했으면 집필실을 ‘글감옥’이라고 불렀으며,당초 그가 맘먹은 글편을 마무리한 뒤에는 “이제야 20년 글감옥에서 출옥했다.”고 토로했을까.그만큼 글쓰기는심신을 갉아대는 버거운 중노동이었다.“태백산맥의 원고를 모두 쌓아놓고 사진을 찍을 때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는 그의 말은,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룬 성취감이기도 하겠거니와 영혼의 고독과 육체의 고통을 한꺼번에 이겨낸 한 인간의 눈물겨운 고백 아니겠는가. 그 스물 두해 동안 그는 상상을 절하는 갖가지 직업병과 싸워야 했다.글을 써내야 하는 오른 어깨가 통째로 마비되는 아픔이 가장 치명적이었지만 위궤양과 기침병,둔부의 종기도 그의 ‘장정(長征)’을 위협한 장애였다.이 가운데 위궤양은 지난 90년 취재여행중 중국에서 병증이 나타나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거치는 동안 줄곧 그를 괴롭혔다.“의사 말이 글 쓰는 동안에는 못고칠 병이랍디다.아니나 다를까 아리랑을 끝낼 때까지 다섯 번이나 도졌는데,나중에 담배 끊고,섭생을 잘해 이겨냈죠.” ●글쓰기 22년… 위궤양·기침병·종기 시달려 기침병도 그를 옭아맨 고통이었다.의사의 진단은 ‘누적된 과로’가 원인이었는데,기침 때문에 자리에 누울 수도 없었다.“지금도 기침에는공포감을 갖고 있어요.소설 연재는 시작됐는데,밤잠을 못이루는 고통을 생각해 보세요.두어달 소파에서 앉은 잠을 잤지요.지금 이만큼 나아진 것도 천행입니다.”게다가 둔부의 종기도 그의 발목을 거머쥐었다.“공중에 선반을 매달아 놓고 서서 글을 썼다는 다산의 고백이 이해가 됩디다.결국 하나가 말썽을 부렸는데,나중엔 하는 수 없어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 수술을 받았어요.”이처럼 왜곡된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일방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하려고 드는 병마와도 싸워야 했던 그의 건강이 가래 만으로 담보될 리가 없다.가래와 함께 그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 맨손 체조로 참담한 병마를 떨칠 수 있었다.대하소설 ‘태백산맥’은 이런 산고를 겪으며 태어났다. 그를 얘기하자면 산도 빼놓을 수 없다.요즘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을 오른다.주로 집이 있는 분당에서 출발해 너댓 시간 산을 타 남한산성의 정상에 오른다.아내 김초혜 시인과 함께 산을 타며 자분자분 세상일을 얘기하는 일은 즐거운 도락이다.때로는 집 근처 야트막한 야산을 타며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이런 시간이 정신을 추스리는 충전의 짬이기도 하지만 산의 굴곡을 따라 오르내리는 일은 건강에도 그만이다.‘태백산맥’ 이래 지리산에 들면 혼령과 정담이라도 나눌 것같은 그가 아닌가.아니나 다를까 그는 산중에서도 지리산을 으뜸으로 쳤다.“지리산은 좋은 산이에요.살이 깊어 뼈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깊고 따뜻하죠.산,특히 지리산에 드는 일은 인내가 필요합니다.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4박5일은 걸어야 하는데 견딤을 투자하지 않으면 깊은 맛을 못느끼거든요.” ●매일 맨손체조·등산도 ‘병마 떨치기' 일조 역사(役事)를 치르는 동안 참혹한 심신의 피폐를 겪었지만 그는 지금 흔한 성인병조차 모르고 살 만큼 건강하다고 했다.그러나 정작 부러운 것은 그의 몸보다 정신이었다.“우리 민족의 정신건강이 걱정입니다.병폐야 많지만,영어 배우라며 자녀들 내모는 사람들 보면서 광태(狂態)를 느껴요.이거 문화적 식민을 자처하는 일입니다.민족의 얼인 나랏말 제쳐두고 그렇게 해서 좀 잘되면 뭐하고,좀 잘살면 뭐합니까.슬프기도 하고 위기감도 느껴요.” 노고가 끝나지 않았을까.다시 태어나도 ‘글예술’을 하겠노라는 그는 문신처럼 손끝에 밴 여적(餘滴)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대하소설은 못써요.지금 준비중인 연작소설은 사회주의 몰락의 저변을 파헤친 것인데,우선 실천문학 겨울호에 상당한 분량이 실릴 겁니다.”그래도 세상은 희망이다.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공평을 상징하는 여신 ‘아스트라이아’의 천칭으로 이 시대를 저울질하는 그가 있으므로. 심재억기자 jeshim@ ■‘가래' 건강법 호두처럼 생겼지만 씨알이 크고 굴곡이 깊은 과실이 가래다.그 가래를 주물러 병고를 덜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조정래 작가는 지금도 자는 시간 말고는 손에서 가래를 놓지 않는다.양손으로 가래를 굴리다가 때로는 뾰족한 가래 머리로 손바닥이나 발바닥의 경혈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는 “이걸로 내 어깨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손바닥에 우리 몸 전체의 경락이 모여 있고,특히 손가락 끝의 감각기관은 뇌와 바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향유하는 문명이라는 것도 기실은손이 이룬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여기에다 맨손 체조도 그의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하루 중 아침과 점심 후,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세번씩 한 동작을 두번 되풀이해 맨손체조를 하는데,하찮게 여겨 대충 하려고 들지 말고 정성을 쏟아 해보세요.시간이야 5분에 불과하지만 금세 더운 땀이 몸에 뱁니다.”그의 맨손체조는 예전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필요한 몇몇 동작을 더한 것이다.“한창 태백산맥 집필할 때,어깻죽지에 통증이 왔어요.마치 등판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깨지는 듯한 고통이었어요.두드리고 주물러도 안돼요.그때 맨손체조를 시작했는데,불과 열흘 만에 변화를 느꼈어요.”그렇게 어깨 통증을 이겨낸 뒤 하루도 체조를 거르지 않는다.외국 여행중 비라도 내릴 양이면 호텔 현관에서라도 체조를 했다. 까다롭지는 않지만 섭생에도 ‘조정래식’이 있다.야채,된장쌈밥과 매운탕과 구이 등 생선음식을 즐기며,밥은 작은 한 공기가 정량인 소식이다. 대신 육식은 일주일에 1번 정도 먹을 뿐이다.이 원칙을 20년이나 지켜왔다.‘태백산맥’을 집필할 때까지는 커피도 꽤 마셨지만 지금은 녹차가 그 자리를 대신해 하루에 12∼13잔씩 마신다.술도 두주불사였으나 역시 ‘태백산맥’ 집필에 들면서 주색잡기를 금기사항으로 규정,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부터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도원아이한의원 이정언 원장은 “손은 동맥과 정맥이 교차할 뿐 아니라 경혈이 많아 가래나 둥근 공을 자주 주무를 경우 혈행을 개선할 뿐 아니라 경혈을 자극해 운기(運氣)를 돕기 때문에 작가 등 팔을 많이 쓰는 직업인에게 맞는 운동법”이라고 조언했다. 심재억기자
  • 새해 서울신문 연재/ 김영희 가정법원 조정위원의 ‘이혼 클리닉’ 만남, 사랑 그리고 헤어짐

    대한매일은 새해 서울신문으로 새롭게 출발하면서 김영희(사진·60)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의 에세이 칼럼 ‘이혼클리닉-만남,사랑 그리고 헤어짐’을 신설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혼율 세계 2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이혼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습니다.우리 사회는 위기의 적색선을 넘었는지도 모릅니다.이 칼럼에서 김 위원은 파경 직전의 부부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상담해줄 것입니다.때로는 따뜻하게 설득하고,때로는 엄하게 꾸짖으며 함께 고민을 나눌 것입니다.자녀·교육 등 다른 가정사도 다룰 것입니다. 김 위원은 가정문제 상담 전문가입니다.1997년부터 서울가정법원에서 7년째 이혼하려는 부부들을 상대로 판결 전에 조정을 통해 이혼을 재고하도록 해왔습니다.그는 70%라는 높은 조정 성공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흔들립니다.‘김영희 에세이 칼럼’은 위기를 맞은 부부들에게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우리 사회의 안정성을 높일 것입니다.독자여러분의 많은 상담 의뢰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대한매일(kdaily.com)이나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의 온라인 지면을 통해서도 상담을 받을 예정입니다. ●김영희 위원은 ▲1943년 7월 광주 출생 ▲65년 숙명여대 국문학과 졸업 ▲국제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 여성인권 및 지위향상위원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현)
  • 이집이 맛있대요/회기동 ‘뚝배기 바지락칼국수집’

    적당히 퍼져 입안에서 감칠맛나게 씹히는 보리밥 한 공기와 된장맛이 깊게 밴 우거지,그리고 밀가루와 보릿가루,메밀가루를 6:2:2 정도로 섞은 반죽에 바지락을 듬뿍 넣어 맛을 낸 칼국수는 담백하고 쫄깃한 면발도 좋지만 속을 개운하게 풀어내는 국물이 일품이다. 도회의 장삿속으로는 웬만해서 낼 수 없는 맛을 가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앞의 ‘뚝배기 바지락칼국수집’.이 집은 경희대 국문학과 서정범 교수가 짬짬이 들러 칼국수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바지락칼국수와 바지락칼제비,물만두와 열무김치보리밥이 주 메뉴.보리·메밀가루는 전남에서,바지락은 안면도에서 직송한 것만 쓰며,고추장도 정갈하고 맛이 깊은 순창 것만 고집한다. 여기에 주인 임삼남(61·여)씨의 육수 내는 비법이 어우러져 한번 맛을 본 사람은 다시 이 집을 찾게 된다. “먹거리 장사 시작한 뒤 한번도 이것저것 만들어 파는 곁다리 메뉴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지금의 칼국수 맛에 대한 임씨의 자부심은 대단하다.그동안 입소문으로 엮은 단골도 많아더러는 분당에서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1·2층의 널찍한 공간을 갖춰 붐비지 않으며 단체 예약도 가능하다. 심재억기자 jeshim@
  • 故 석동 윤석중 옹의 삶/아이들과 한평생 ‘아흔두살 어린이’

    9일 타계한 석동(石童) 윤석중(尹石重) 선생은 풍요로운 우리말 표현을 담은 아름다운 동시와 동화로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였다.선생의 작품은 어느틈엔가 사라져버린 전래동요의 빈 자리를 메우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새로운 ‘국민동요’였다. 선생은 13세 때인 1924년 동시 ‘봄’을 ‘소년’지에 발표하여 등단한 이후 80년 가까이 어린이 문학운동에 몸을 바쳤다.방정환·윤극영 등과 일제강점기 문화적 암흑상황을 아동문학으로 극복하려 노력한 주역이기도 하다.남의 책에 서문을 안 써주기로 유명했던 춘원 이광수도 그의 동요집에는 주저없이 글을 실었다고 한다. 1941년 일본 상지대를 졸업한 선생은 해방을 맞은 1945년 ‘주간 소학생’을 창간하여 본격적인 어린이 문학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한국전쟁을 거치며 동요가 사라질 위기가 닥치자 어린이 노래 운동을 다각적으로 펼쳤다. 그의 동시는 한국적 정서에 충실하면서도 서양식 동요의 운율에 쉽게 적용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그가 남긴 1000여편의 동시 가운데 무려 800여편이 노래로 만들어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낮에 나온 반달’은 대표적인 사례이다.리듬감 있는 그의 동시는 우리 어린이들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퐁당퐁당)와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댁에…’(집 보는 아이),‘기차길 옆 오막살이/아기 아기 잘도 잔다…’(기차길 옆 오막살이)는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밖에 ‘날아라 새들아…’(어린이날 노래)와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졸업식 노래)는 한국사람이라면 노래를 들으며 한번쯤 환희를 맛보거나 눈물을 흘렸을 명곡들이다. 그는 특유의 건강미 넘치는 필치로 동화 창작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열손가락 이야기’ ‘멍청이 명철이’ ‘열두 대문’ 등 동화집은 그 결실이었다. 선생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3·1 문화상(1961)과 국민문화훈장(1966),‘외솔상(1973),막사이사이상(1978),대한민국문학상(1982),세종문화상(1983),대한민국 예술원상(1989),인촌상(1992) 등을 수상했다.팔순을 맞아 동요집 ‘여든 살 먹은 아이’를 출간하기도 한 선생의 노작(勞作)은 ‘새싹의 벗 윤석중 전집’에 대부분 실렸다. 황수정기자 sjh@
  • “福은 나누고 恨은 풀고 사시게나”인간문화재 노만신 김금화 씨

    “아직도 무속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이나 정신유산으로 보아야 합니다.” 11월 중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 예능 보유자 20여명이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굿을 하고 있었다.그런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은 목이 길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김금화(金錦花·72) 선생이었다. 고운 얼굴에선 신기(神氣)가 풍겨나오는 것 같았다.굿 막바지엔 나이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날래게 사다리를 올라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영령과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무속은 미신이 아니라 민족신앙 11월 말 서울 이문동 자택 ‘김금화무속연구소’에서 만난 노만신(老萬神)은 외래종교에 밀려 무속(巫俗)을 체계화하여 무교(巫敎)에 이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노만신은 불교나 기독교를 인정하듯이 무속도 하나의 신앙으로 보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20,30년 전만 해도 우리 할머니들은 집안이나 뒤꼍에 정화수를 떠놓고 소복 차림으로 ‘자식들이 건강하게 해달라.’‘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지요.한 집에서 굿을 하면 온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잔치를 했습니다.굿은 사람들이 그간 쌓인 앙금을 풀고 마지막엔 울기까지 하면서 새로 결속하는 화해의 마당이었어요.무속은 그런 정신과 전통을 잇는 것이지요.” 1985년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 82-나호가 된 노만신은 국내외에서 해마다 30,40차례 굿이나 굿 공연을 하며 우리의 민속신앙과 전통예술을 알리고 있다.배연신굿은 배를 가진 선주와 선원의 안전과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뱃굿,대동(大同)굿은 마을의 평안과 생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마을공동체의 굿이자 제사다. 지난해 4월에는 문화관광부 후원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와 하와이대 등을 순회하며 서해안 풍어제를 공연했다.11월에는 프랑스 파리 가을축제에서 관객들의 환호 속에 대동굿을 펼쳤다.올 7월과 11월에도 미국 뉴욕 링컨센터 페스티벌과 일본 미야자키현 초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링컨센터에서 9·11 테러 참사의 아픔을 위무하고 인류 평화를 비는 대동굿이 펼쳐지자관객들은 감탄을 연발했고 출연진 20여명과 어우러져 떡과 과일,술을 나누고 춤을 추며 뒤풀이를 했다. 지난 10월에는 서울대 학술회의 초청으로 인류학 민속학 국문학 종교학 교수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굿의 의식과 정신 등에 대해 강연했다. ●美·佛등 해외 굿공연 관객들 환호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김금화가 무당이 된 것은 17세 때.14살에 이웃마을로 시집을 갔다가 시어머니가 일을 하지 못한다며 때리고 밥도 주지 않아 친정에 되돌아왔다.그런데 혼잣말을 하고,각혈을 하고,말발굽 소리가 들리고,꿈 속의 호랑이가 옆구리를 물고,속이 메스껍고,진저리를 치며 울었다.무병이 든 것이다.그러나 큰 무당이었던 외할머니 김천일은 “방자한 년”이라며 손녀가 천대받는 무당이 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그러나 손녀의 무병이 더 깊어지자 외할머니는 어느날 장구를 치며 춤을 춰 보라고 했다.그러자 김금화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나는 듯 춤을 추며 무당이 되는 것을 막았던 외할머니에게 호령을 하고 야단을 쳤다. ‘신의 말문’이 트인김금화는 마을을 돌며 쌀과 쇠를 걸립해서 외할머니를 신어머니로 모시고 내림굿을 받았다. 1·4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와 인천 화수동에 머물다가 부평과 서울 석관동 등으로 전전했다.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는 무속을 미신이라 천대하며 굿만 하면 경찰이 붙잡아가 무업을 그만두었다가 집안에 액운이 잇따라 다시 시작했다. 만신이 된 지 56년째인 요즘에는 더 늙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부쩍 북한 점을 자주 친다고 한다.그러나 통일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또 날마다 신령님들에게 우리나라가 잘 되게하고,훌륭한 지도자가 나와 나라를 잘 이끌고,온 국민이 평안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그런 기도를 하면 자신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난다고 한다. ●온 국민이 평안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굿이나 공연이 없으면 하루에 7∼8명씩 예약 고객을 상담한다.그 때 노만신은 “인내하면서 마음을 비워라.” “건강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 “한걸음 물러나 기도하라.” “상대편이 되어보라.”라고권한다.점을 치면 다 맞느냐고 물었더니 “맞는 것도 있고 안 맞는 것도 있지.”하고 웃었다. 사람을 보면 영화의 필름처럼 어떤 장면이 순간적으로 쓱 지나가거나 어떤 소리가 귀에 들리고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한단다.그런데 마음이 얽혀있거나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은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새벽 4시쯤이면 일어나 30∼40분 동안 2층 신당에서 기도를 하고,3시간 가량 가까운 경희대에서 조깅도 하고,뒷걸음질도 친다.그러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단군신,장군신,조상신 등 신령님의 보살핌 덕분이고,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춤을 추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만신은 1년에 30차례 넘게 날카로운 작두를 탄다.순간적으로 어떤 힘에 이끌려 작두에 오르는데 내려올 때까지는 자신도 다치지 않을지를 모른다고 했다.부정한 마음으로 작두에 오르면 다치는데 50여년간 서너차례 발을 베었다. 지금까지 내림굿을 해준 신딸과 신아들이 40여명인 ‘나라 만신’이자 ‘한국문화예술명인’인 김금화는 요즘 강화군 화전면 신봉리에 우리의 무속과 정신,음식문화를 연구하고 전수하는 ‘김금화당’을 짓고 있다.그 곳에서 1995년에 지은 책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라는 제목 그대로 우리 굿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생각이다. 글 황진선기자 jshwang@ 사진 강성남기자 snk@
  • 나눔세상/성균관大 故최동씨 어머니

    “별 거 아니여.그냥 먼저 간 아들 뜻 잊지 말자고 조금 보탠기여.얼굴도 모르는디 선배 기일이라고 굳이 찾아오는 후배들이 고맙잖어.”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지난 90년 끝내 분신 자살한 최동(崔東·당시 30세)씨의 어머니 김순옥(金順玉·사진·67)씨가 아들의 모교인 성균관대에 ‘평생 장학금’을 내기로 했다.아들이 국문학과를 다녔기 때문에 해마다 국문학과 학생 1명을 뽑아 등록금과 맞먹는 장학금을 주기로 한 것이다. 김씨는 지난 3월 아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가 회복되고 보상금으로 1억여원을 받게 되자 후배를 위해 쓸 뜻을 굳혔다.해마다 추모행사에 참여하고,추모책자에 기념영화까지 만든 아들의 후배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김씨는 이같은 뜻을 담아 지도교수였던 국문학과 김시업(金時業·60)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그는 “교수님이 추천해 주시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겠다.”면서 “제가 죽은 다음에도 동이의 동생 삼남매가 뜻을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5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집에서 만난 김씨는 “지금도 아들을 보낸 그 시절만 생각하면 가슴이 활활 타고,숨이 막혀온다.”고 운을 뗐다.그는 가슴에 묻은 아들이 생각나면 잠이 오지 않아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 지난 80년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최씨는 군사독재에 항거,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83년 5월에는 광주민주항쟁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됐고,복학을 거부해 제적됐다.88년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4월 다시 구속됐다. 같은 해 9월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 결정을 받고 출소한 최씨는 신경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90년 8월7일 한양대 사회과학대 강의실에서 자살하고 말았다.당시 최씨의 방에서는 ‘저들의 목적은 인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저는 무엇하나 할 수 없는 폐인이 되었습니다.’라는 한 맺힌 유서가 발견됐다. 늘 침착하게 화를 삼켰던 아버지 최수호(당시 56세)씨는 아들의 49재를 치른 직후인 10월 홧병으로 세상을 등졌다.극심한 스트레스 덕에 혈관이 터져 고름이 찬 상태였다.김씨는 “나야 실컷 울고 진통제도 먹었지만 남편은 가슴 속에만 묻어두다 훌쩍 가버렸다.”면서 “아들 보내고 남편까지 뜨니 나도 콱 죽고 싶어서 약을 사기도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큰 돈도 아니고,자랑할 일도 아니라고 말한 김씨는 “4학년 1학기까지 마친 아들이 명예졸업장이나 받게 됐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지연기자 anne02@
  • 대입특집 / 숭실대학교

    숭실대는 올해의 경우 그동안 학과군과 학부로 모집했던 모집단위를 세분화,학과와 최소한의 부 단위로 신입생을 뽑는다. 한국·동양어문학과군은 국어국문학과와 중어중문학과로,유럽어문학군은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로 세분화됐다.역사·철학과군도 사학과 철학과로 나누었다.언론홍보·평생교육학과군도 언론홍보학과와 평생교육학과로 분리했다.사회사업학과,정보사회학과 등 8개 학과도 학과군에서 학과로 변경해 신입생을 모집한다. 숭실대는 정시 ‘다’군에서 1999명을 선발하며,정원외로는 올해 신설된 실업계고 전형을 통해 80명을 선발하는 것을 비롯해 농어촌전형 80명,특수교육자 전형 19명 등 총 179명을 모집한다. 전형 방법은 지난해처럼 일반전형에서 수능(65%)과 학생부(30%),비교과(5%) 성적을 일괄합산한다.수능 성적은 3개 영역을 반영한다.인문대·사회대·법대는 언어와 외국어,사회탐구(사탐) 영역을,경상대는 사탐과 외국어,수리 영역을 반영한다.자연대와 공대·정보과학대는 수리와 외국어,과학탐구 등 3개 영역을 반영한다.수능성적은 변환표준점수를 활용한다.학년별 학생부 반영비율은 1학년 20%,2학년 30%,3학년 50%다.학생부 요소별로는 교과성적 86%,출결상황·봉사활동 7%씩을 반영한다. 실업고교 출신 전형에서는 수능은 65%,학생부의 교과와 비교과는 각각 30%와 5%를 적용한다. 영역별 가중치는 두지 않는다.그러나 수능 제2외국어전형인 불문과와 독문과의 경우 제2외국어 영역 원점수에 5%의 가산점을 준다.원칙적으로 계열별 교차지원을 할 수 없지만 문화체육학부의 생활체육 전공에 한해 교차지원을 허용한다.동점자가 있으면 모집인원을 조정하는 모집인원 유동제를 적용한다.
  • 책꽂이

    ●중국행 슬로보트(무라카미 하루키 지음,김춘미 옮김,문학사상 펴냄)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작가의 첫 단편집.표제작을 비롯,7편의 단편에 대해 역자는 “모든 것의 무너짐을 끝까지 지켜보고,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곳에서 고독하게 새로운 정신을 구축한다.”고 평가.7800원 ●푸른 망고의 집(데이비드 데이비다르 지음,공경희 옮김,문이당 펴냄)인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출판사 펭귄 북의 대표가 된 작가의 첫 소설.푸른 망고숲이 있는 인도 남쪽 지방의 마을을 배경으로 3대에 걸친 한 집안의 운명을 세밀하게 그렸다.모두 2권,각권 8500원 ●따뜻한 흙(조은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88년 등단한 시인의 세번째 작품집.씨앗을 통해 고통을 감수하면서 현실에 뿌리내리려던 기억을 떠올리는 표제작 등에 대해 평론가 김진수는 해설에서 “세련된 문체나 현란한 기교도 없이 ‘사랑의 힘’으로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다.”고 분석.6000원 ●딸기(원재훈 지음,문학동네 펴냄)시인·소설가·방송인 등으로 활약하는 시인의 네번째 작품집.딸기·화초호박·사과 등 작은 생명체에서 일상을 견디는 힘을 찾는다.평론가 박철화는 시 세계를 ‘삶,그리움과 연민’으로 정리하면서 “자연과 교감하면서 생명의 신비가 숨쉬는 ‘먼 곳’을 찾아가는 사랑의 세계”에 비유한다.5000원 ●오빠의 탄생-한국 근대문학의 풍속사(이경훈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이광수·이상 등 근대작가의 작품세계를 연구해온 저자의 첫 평론집.식민지 시대 다양한 풍속을 통해 근대 문학과 근대성을 고찰했다.상세한 텍스트 분석과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여 흥미롭게 읽힌다.1만 4000원 ●지옥만세(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이상해 옮김,문학동네 펴냄)93년 데뷔작 ‘다다를 수 없는 나라’로 프랑스 문단을 놀라게 한 작가의 신작.전통적 글쓰기에서 탈피,경구의 나열 등의 새로운 기법으로 트럭운전사,신인 배우,창녀 등 주변부 인생을 그렸다.8800원 ●파문(이명원 지음,새움 펴냄)‘2000년 전후 한국문학 논쟁의 풍경’이란 부제가 말하듯 민감한 사안을 거리낌없이 쟁점화해온 저자의 세번째 평론집.‘문학권력’‘주례사 비평’ 등 발언하기 꺼려하는 현실적 문제를 제기해온 저자의 내면적 고충 등도 함께 들려준다.1만 6000원
  • HOT & NEW - 게임 애니 만화

    ●새게임 쿠키샵2 초등학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PC용 경영 시뮬레이션게임.위자드소프트.2만 5000원. 고스트리콘:아일랜드 썬더 X박스용 1인칭 액션 게임.마이크로소프트.5만 2000원. 톰 클랜시의 스프린터 셀 X박스용 1인칭 잠입 액션 게임.마이크로소프트.5만 2000원. 카오스 레기온 PC용 팬터지 오페라 액션게임.위자드소프트.3만 3000원. NBA 라이브 2004 PC·PS2·X박스용 3D 농구 게임.EA코리아.PC용 3만 6000원,PS2·Xbox용 4만 5000원. ●새만화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 1∼6(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외) 이문열,박완서,이청준,전경린,하성란 등 한국의 대표적인 문인들의 원작들을 만화화했다.이원희 외 글·그림,이가서.각권 9500원. 일곱개의 숟가락 1 가족의 소중함을 그린 아동만화.김수정 글·그림,행복한 만화가게,1만 2000원. 발바리의 추억 1∼9 80년대 젊은이들의 사랑 풍속도.강철수 글·그림,애니북스,각권 6500원. 어른이 되는 방법 1∼3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이야기.야마다 난페이 글·그림,대원씨아이,각권 4800원. 러브툰 사랑에 대한 185개의 짧은 삽화 보고서.루퍼트 포셋 글·그림,애니북스,9000원. 달나무의 고양이방 ‘반려’에 대한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그런데 그 반려란 사실 두 고양이들이다.박수인 글·그림,애니북스,8000원.
  • 책꽂이

    ●사춘기(김행숙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99년 등단한 시인의 첫 작품집.사춘기와 귀신 등 경계에 머무는 소재를 통해 ‘떠도는 감성’을 노래.평론가 이장욱은 “구체적 개인으로서의 서정적 자아를 창조해 현대시의 새 징후를 보여준다.”고 평가.6000원. ●살아남은 자의 전설(장혜영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조선족 작가의 장편.여성 4대의 삶을 소재로 중국에서 겪은 우리 민족의 억압된 역사와 남존여비 등 수난사를 비롯, 자본주의 도입 이후 변화된 사회상을 묘사.모두 2권,각 9000원. ●해방후 조선족 소설문학연구(이광일 지음,경인문화사 펴냄) 중국 옌볜대 교수인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조선족 문학에 대한 기존연구를 검토한 뒤 김학철,이근전 등의 작품세계를 조명.해방 후 조선족 소설이 중국문학의 단순한 번안이 아니라 자체의 발전법칙이 있음을 규명.2만 2000원. ●휴일의 에세이(이어령 편저,문학사상사 펴냄) 나도향,김동인,최인호와 생텍쥐페리,앙드레 지드,보르헤스 등 국내외 유명 문인들의 유려한 에세이 61편을 모은 것.생활·자연·사상·문명·기행 등 5개의 장으로 나눠 작가들의 내면 풍경과 철학을 섬세하게 담았다.8000원. ●열대어(요시다 슈이치 지음,김춘미 옮김,문학동네 펴냄)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소설집.일본문학의 전통을 바탕으로 대중문화적 감수성을 겸비한 작품세계로 젊은 세대를 가장 잘 그리는 작가로 평가받는다.심리묘사 없이 행동만을 묘사한 표제작 등 3편.7500원. ●나의 날개로 날고 싶다(이춘해 지음,열매출판사 펴냄) 교직생활,전업주부로 살면서 습작한 작가의 첫 장편.남편의 숱한 외도를 알면서도 가정을 위해 참아온 주인공이 이혼 뒤 옛 애인을 만나 참된 사랑을 찾아간다는 내용.8500원. ●아쉬움에 대하여(유자효 지음,책만드는집 펴냄) 언론인 시인의 8번째 작품집.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한다.그러나 그 정조는 과거로의 퇴영이 아니라 현실의 삶을 긍정하기에 역동적이다.해서 노래한다.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살만하다고.물론 “당신이 떠난 뒤에도”.6500원.
  • 민족문제연구소장에 임헌영 교수

    임헌영(62·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이 24일 민족문제연구소 제3대 소장에 취임했다.지난 1991년 설립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 잔재 청산 등 주로 친일문제와 관련된 연구와 활동을 수행해 왔다.
  • 문학번역상 수상자 4명 선정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진형준)은 24일 제6회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자로 ‘징비록’을 영역한 최병현 호남대교수,‘남녘사람 북녘사람’을 독역한 하이디강(Heidi Kang) 한국외국어대교수,‘한국현대희곡선’을 불역한 임혜경 숙명여대교수,‘무녀도’를 중역한 한메이(韓梅) 중국 산둥대교수 등 4명을 선정했다.
  • 대한매일신보등서 찾은 근대 계몽기 문학적 양식/정선태박사 연구서 ‘심연을‘

    근대, 특히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한 이 근대성을 문학이란 마당에서 천착해온 신진 국문학자 정선태 박사(이화여대)가 두번째 연구서 ‘심연을 탐색하는 고래의 눈’(소명출판 펴냄)을 내놓았다. 저자의 시각은 먼저 ‘근대 계몽기 서사문학의 스펙트럼’으로 향한다.박사학위논문인 ‘개화기 신문논설의 서사 수용 양상’에서처럼 그는 이 시기 문학텍스트에서 근대성의 맹아를 발견하고자 한다.전근대와 근대성이 충돌한 당대를 지배한 시대정신을 ‘계몽’으로 정의한 뒤 그 문학적 양식을 대한매일신보와 제국신문 등의 토론·문답체 ‘논설’과 신채호의 을지문덕전 등 역사전기서사체,그리고 이인직의 ‘혈의 루’ 등 신소설에서 찾는다. 2부에서 저자는 분석 대상을 동아시아로 넓힌다.일본 격변기의 작가 나츠메 소세키(1867∼1916)의 3부작을 통해 일본식 근대에 담긴 불안과 권태속 반근대적 사유를,근대 중국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뚫고 헤쳐온 루신 작품에서는 전통도 근대도 아닌 제3의 삶을 향한 예언자적 정신을 끄집어낸다.지은이는 또 동아시아 근대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작가로 입센의 의미를 강조한다.그의 문제작인 ‘인형의 집’이 불러 일으킨 ‘노라 신드롬’이 중국과 한국에 드리운 그림자를 통해 양국 근대성의 단초를 분석한다. 이런 저자의 지적 탐색은 “한국 근대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한국문학만을 붙들고 있어서는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을 스스로 좁히고마는 결과밖에 낳지 못한다.”라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근대성을 향한 지은이의 항해는 3부에서 ‘번역의 문제’로 닿는다.1,2부에서 시도한 동아시아 담론구성이 근대적 사유의 부정적 측면을 탐색하는 탈근대적 사유의 하나인데,그를 위한 기초작업이 바로 번역이라는 지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번역은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사유의 운동’이 낳은 다시 쓰기”(308쪽)이다. 이종수기자
  •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김영희/ “이혼조정 시작은 섣불리 훈계 안하기”

    ▲43년 7월 광주 출생 ▲61년 광주여고 졸업 ▲65년 숙명여대 국문학과 졸업 ▲78년 미국 워싱턴 한인소수민족센터 총무 ▲96년 국제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 영동클럽 회장 ▲99년 국제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 여성인권 및 지위향상위원장 ▲97년∼현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실.재산분할 소송을 낸 부부가 들어선다.두 사람은 10여년 이상 같은 직장에서 일해온 동료 사이.이혼합의는 끝난 상태다.아내는 재산을 50대50으로 나누길 원하고,남편은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맞섰다.김영희(60) 조정위원은 아내를 내보낸 뒤 남편을 타일렀다.“재산을 60대 40으로 나누지요.다만 남편분이 10%를 그동안 함께 살아온 부인에게 선물해 50대50으로 분할하면 어떨까요.”남편은 김 위원의 설득에 감복했다.선물받은 아내도 고마워했다.솔로몬 판결로 부부는 만족스럽게 조정실을 나섰다. ●상처받은 영혼 보듬어주기 “조정은 상처받은 영혼을 보듬어 주는 일입니다.이혼당사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서로에게 독기를 품고 있지요.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아픔을 다독이는 것,그것이 조정의 시작입니다.” 조정은 양측이 정식재판에 회부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조정전치주의’에 따라 가사사건은 반드시 조정절차를 거쳐야 한다.대법원의 추천으로 선정된 조정위원은 현재 서울가정법원에 76명.대부분 법대교수·변호사·법무사 등 법조계 인사다.김 위원은 97년 당시 윤관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조정위원이 됐다. 90년대초부터 세계여성봉사단체인 국제소롭티미스트(soroptimist)에서 활동한 경력을 인정받았다. 다소 생소한 단체인 국제소롭티미스트는 1921년 결성됐고 113개국 10만여명의 전문직 여성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여성봉사단체.국내에도 800여명의 회원이 있다. 지난해 가사소송사건은 5만 2731건.조정 성공률은 20% 정도.하지만 김 위원의 조정성립률은 70%에 육박한다.비결이 궁금했다.“나이가 많다고,인생을 조금 더 살았다고,섣불리 훈계하지 않습니다.나름대로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견디고 법원을 찾았으니까요.다만 공감하고 진심으로 얘기를 들어주다보면 자연스레 신뢰가 생깁니다.그러면 인생의 선배로서 설득하지요.” ●김위원의 조정성립률은 70% 육박 조정 3∼4일 전에는 골방에 앉아 소장을 탐독한다.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거짓으로 꾸민 경우가 많기에 명상의 시간도 갖는다.실체를 파악하고 상황을 재연해 보기 위해서다.이제 당사자들과 만날 준비가 된 것이다. “기선제압이 중요합니다.일부 사건당사자들은 조정을 형식적인 통과의례라고 생각하지요.조정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지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원·피고에게 조정내용이 기록에 첨부되며,재판장이 면밀히 검토한다고 알려준다.그래도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우선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묻습니다.그렇다고 확신하면 100점짜리 인생이 없다고 조언합니다.자유를 얻으면서,재산도 넉넉히 챙기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양쪽 손을 움켜쥐고 고통을 지속하기보단 한 쪽을 포기하더라도 새 인생을 빨리 시작하라고 설득하지요.” ●술 좋아하는 기자 남편…10년간 독수공방 자신의 결혼생활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오히려 남들보다 더 이혼을 생각했던 굴곡진 삶이었다.그렇게 ‘견뎌낸’ 40년 가까운 결혼생활의 경험 덕에 오늘 훌륭한 조정자가 됐는지 모른다.결혼을 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24살 때.남편은 신문기자였다.모 중앙지 간부까지 지내다 지금은 퇴직했다. 60년대 당시의 기자란 ‘술과 풍류를 즐기고 가정은 잘 돌보지 않는 직업’으로 알려지지 않았던가.김 위원 자신도 결혼후 10년간을 ‘뒤돌아보기도 두려운 고통의 나날’이라고 표현했다.“365일 가운데 360일을 이혼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술과 후배를 좋아하던 남편은 한달에 서너번밖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온전한 월급봉투를 받아본 일이 없다고 했다.“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의 호주머니를 만져보면 노란봉투에 동전 몇개만 딸랑거렸습니다.쌀값·분유값 때문에 늘 종종걸음쳐야 했지요.”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할 만큼 힘든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남편에게 어디에서 외박을 했는지,어디에 월급을 탕진했는지 묻지 않았다.“거짓말을 할 텐데 꼬치꼬치 물어보면뭐 하겠어요.남편 거짓말을 그대로 믿으면 어리석은 아내가 되는 것이고,믿지 않고 따지면 싸움만 일어나고….현명한 아내라면 모르는 척하는 거지요.” 김 위원이 사회활동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결혼후 10여년이 지난 1978년 남편이 미국 워싱턴특파원으로 발령나면서부터였다. 워싱턴 한인소수민족센터에 들어가 교포들의 이혼·자녀교육 문제를 상담했고 패션디자인 학교에도 등록했다.사업활동 경험도 쌓았다.뉴욕과 보스턴 지사로 옮겨 다닌 남편의 미국 근무 기간은 길어 13년 동안이나 미국에서 살았다. “결혼생활은 사계절을 갖고 있습니다.달콤하고 따뜻한 봄,이때 대부분 결혼을 하지요.열정적이고 뜨거운 여름이 오면 장마와 태풍을 만납니다.그리고 수확의 계절 가을.하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남지요.마지막으로 추운 겨울입니다.하지만 4계절을 함께한 부부에게만 주어지는 찬란한 ‘눈꽃’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부부들이 여름 장마를 헤쳐나가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한다고 안타까워했다.조금만 눅눅해도 참지 못하고,클릭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픈 디지털 세대의 특징이라며 한숨지었다. ●행복한 결혼생활 비결 ‘혀에 돌 달고 살기'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비법’을 물었다.“혀에 돌을 달고 사세요.혀는 독화살이라 살인도 할 수 있지요.한번 퍼부은 독은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어느 아낙네가 물을 건네주면서 찻잎을 띄워 주는 여유가 바로 결혼생활의 지혜라고 말했다.“물이 체하지 않도록 찻잎을 ‘후후’ 불며 마시는 것,한번만 참고,조금만 돌아가는 것이 비결입니다.” ‘눈꽃’을 기다리는 김 위원에겐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 있다.병든 사람들을 위한 사회사업이다.“지난해부터 수술을 몇번 받았어요.정말 몸이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아이들에게 재산을 물려 줄 생각이 없으니 차곡차곡 정리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계획입니다.” 정은주기자 ejung@
  • “우리 비평계는 작품분석에 갇힌 꼴”‘문명’읽는 비평의 눈 길러야/방민호교수 세번째 비평집 ‘문명의 감각’

    “오늘 한국 비평은 어제에 대한 반정립 또는 타자 부정을 통한 자기 긍정에 머무르는 한계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또 문학사적·역사적 주제를 옆에 밀쳐두고 작품 분석·설명·해석 등에 국한하거나 서구 이론의 현학적 수용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27쪽) 93년 제1회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비평가 방민호(사진) 국민대교수의 세번째 비평집 ‘문명의 감각’(향연 펴냄)은 도전적이다.비록 목소리는 낮지만 작품분석에 갇히거나 비생산적 논쟁에 휘말려 신음하는 한국 비평계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대안은 비평의 시선을 문화에 가두지 말고 ‘문명’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임화·김기림 비평의식 계승 못하고 축소 그는 자신의 논거를 위해 일제시대와 해방공간으로 에둘러 간다.프롤레타리아 문학론의 테두리를 벗어나 조선 문학의 아이덴티티를 고심하며 쓴 ‘신문학사의 방법’에서 “해방 이전 한국비평의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 임화와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라는 비평문에서 ‘문화의 운명’으로나아가며 근대 한국사를 동양이라는 문명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려한 김기림의 앞선 걸음에 주목한다.이 두 사람이 미완으로 남긴 문제의식을 해방 이후 우리 비평계가 계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축소했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세계 문학사의 전개’를 쓴 조동일의 방법론에서 문명사적 시각의 부활을 목도하고 최원식에게서 문명론적 시각의 단초를 확인한다.이어 임화,김윤식 등 비평계 거봉을 등반한 지은이는 문학의 보편성을 향한 여정의 중간에 잠깐,‘불문학 비평가’인 황현산과 박철화의 존재의미를 점검하며 한국 비평의 줄기를 넓힌다. 이같은 작업은 저자가 국문학의 테두리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문학비평,나아가 문명비평의 관점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이를 위해 그는 ‘대상과 거리두기’를 시도한다.“재일교포 문인과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한국 문화,한국 문학의 의미를 상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19쪽)는 지은이의 고백은 “경계인들의 사상에서 많은 것을 더 얻게 되리라.”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백민석·오수연 문명의 새흐름 인지 지은이의 잣대는 2부와 3부에서 현장비평으로 구체화된다.소설가 백민석에게서 “그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이해”(214쪽)를,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하여 불문학을 공부했기에 불어로 사유하고 표현하는 작가 정양에게서는 “이중의 인연·언어·식성을 갖고 두 개의 세계 속을 자유롭에 유영하면서 유목민처럼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230쪽)을,인도 경험을 토대로 ‘부엌’을 쓴 오수연에게서는 “세계를 향해 열린 새로운 주체로 거듭남”(244쪽)을 발견한다.이들은 덜 영글었지만 세계사 흐름을 주시하면서 미래에 걸맞은 새 시민을 싹틔우려는 작가들. 지은이가 이들에 거는 기대는 비평가인 그에게도 오롯이 걸린다.그의 두번째 평론집 제목의 일부처럼 ‘납함(여러 사람이 일제히 고함을 지름)’만이 가득한 시대에 냉철한 현실분석과 생산적이고 미래 지향적 대안을 내놓은 그의 목소리는 그에게 걸린 기대이자 그가 짊어질 과제이기도 하다. 이종수기자 vielee@
  • 김영현·박노해·장정일·김영하…90년대 문학 ‘10년의 성찰’/신수정 첫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

    “90년대 문학을 되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자의 치욕스러움이다.” 흔히 90년대 문학의 특징으로 거대 담론의 실종과 내면세계로의 회피,서사구조의 상실,대중문화의 고고한 진군 앞에 ‘백기 투항’ 등을 거론한다.한마디로 ‘위기’라는 것.그러나 신예비평가 신수정(사진·38)은 이런 견해가 일면적이라고 일축한다.그가 낸 첫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문학동네 펴냄)는 90년대 문학에 대한 10년의 성찰이 담겨 있다. 93년 등단한 뒤 다작은 아니지만 예리한 시각의 글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98년 고석규비평상을 수상한 그의 글모음은 ‘90년대 문학’을 위한 항변으로 읽힌다.그는 섬세한 살핌으로 김영현,박노해와 장정일,그리고 김영하에게서 90년대 문학의 징후를 읽어낸다. 그에게 김영현의 ‘벌레’는 한국문학이 이성에서 욕망으로 이동하는 맹아다.“이상과 당위의 열정으로 충만했던 이성적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육체적 존재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52쪽)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욕망’이 문학사에 떠오르는데,이를 반영한 작가는 박노해와 장정일.둘다 ‘인간=욕망하는 기계’로 규정하되 박노해는 ‘인간의 욕망’에,장정일은 ‘욕망의 인간’에 방점을 찍는다. 시집 ‘참된 시작’에서 박노해는 욕망을 넘어서는 인간의 힘을 강조하는데 견주어 장정일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등 일련의 포르노그래픽 작품에서 인간의 모든 이성적 기획에 도사린 억압성과 무의미함을 포착한다는 것이다.지은이는 박노해와 장정일의 길을 ‘구도자와 유희자’라는 대조적 키워드로 정리한 뒤, 이들이 90년대 한국문학사에 욕망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두가지 가능성이라고 평가한다. 논의는 더 나아간다.지은이는 이질적인 두 작가의 이면에 ‘계몽적 기획’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다.기존 체제와 부딪힌 두 사람은 “현존 체제의 그물을 넘어 또 다른 욕망을 욕망한다”며 그를 ‘아버지 넘어서기 욕망’이라고 진단한다. 신수정이 ‘90년대 문학’이라는 보따리에 담는 마지막 작가는 김영하.그의 작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프로이트의방법론으로 분석하면서,“자기 안의 남성성을 거세한 신인류 탄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진단한다.결론은 “사회정치적 리비도를 내면화한 90년대 문학은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들이 구현하고 있는 쓸쓸한 신성을 통해 문명과 제도의 폭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는 새 인간형에 대한 갈망으로 귀결된다.”는 것. 지은이는 90년대에 매달린 이유에 대해 “문학청년 시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사회·세계를 향해 발언한 시기가 90년대였는데 이 시기 문학 형태가 제 생각과 너무 닮았다.이 우연성을 필연적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었다.” 그의 비평집은 90년대를 반추하는 메타비평에 머물지는 않는다.그는 박완서 등 원로작가는 물론 은희경 성석제 배수아 하성란 등 문제작 작가들과 윤효 김이태 등 숱한 신인작가의 세계에 밀도높은 비평의 거울을 비춘다.그가 말하는 문학의 새로운 출발을 보려는 듯. 이종수기자 vielee@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0)박경리-물질문명 시대, 생명의 가치 회복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무참히 죽어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잡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내리고 있었다.“그렇지,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다.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잡나무를 휘여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소설 ‘불신시대’중에서 혹시라도 선생을 그냥 찾아뵙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아 근방에서 슈퍼마켓을 찾는데 퍽이나 외진 곳이라 그런지 갖추어 놓은 게 없다.선생은 당뇨가 있다고 했던가.단 것을 드시지 못한다니 무과당 음료수 박스를 사들고 결전의 준비라도 마친 양 용감하게 토지 문화관으로 들어섰다. 선생의 집 문턱이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소문이 아닌데 미리 약속을 얻은 탓인지 선생은 무척 친절하게 일행을 받아주신다.감읍할 지경이다. ●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화두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소설을 쓰시다 무리하신 것은 아닌지요.” “내가 ‘현대문학’ 잡지를 참 곤란하게 하고 있어요.‘나비야,청산 가자’ 연재를 시작해서 석 달,3회까지 연재했거든요.한 회 한 회 원고 분량이 많아서 3회까지 하니까 무척 힘들었어요.재작년에 넘어져서 다친 허리가,연재 시작하면서 더 안 좋았어요.절실하게 써보려 했는데.이걸 쓰면서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어요.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결국 쉬고 있어요.독자들에게 제일 죄송해요.” “…….” 나는 선생의 무릎 위에 앉은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선생의 다음 말씀을 기다린다. “몸이 그러니까 의욕이 없어지고,그러면서 내 존재가 뭔가,굉장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새삼스럽게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고.” 선생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연히 새로운 문학지 ‘숨소리’를 편집하고 계신 연세대학교의 최유찬 교수를 만나뵙게 되었다.두 분에게 번갈아 시선을 옮기는 나로 인해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셨는지선생은 ‘숨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문학이라는 것도 인류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생태계 없는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최유찬 선생에게 부탁 드려서 ‘숨소리’라는 책을 내는 까닭도 그런 데 있어요.지금 이 토지 문화관도 다른 분들은 다 문학관으로 오해하고 있어요.내가 문학을 하니까 문학관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나는 처음부터 그건 반대고 문화관으로 하자고 했어요. 생태계,환경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이 되어야 해요.거기에서 문학도 있고 모든 게 있을 수 있는 거죠.작년 초엔가,‘자연과 시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했을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시인 선생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선도가를 불러 달라,그런 의식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고 내가 당부를 드렸어요.예술가들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무슨 정치적인 문제 같은 것은 사람들 임의에 따라서 참여도 하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라는 건 예외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되니까.하다못해벌레 한 마리나 풀 한 포기도 다 관련이 있잖아요.지구의 생명을 받은 것은 다 의무가 있는 거지요.” “예전에 손수 농사를 지으시는 걸 보았습니다.여기로 옮기고 나서도 계속하고 계신지요.” “물론이에요.여기는 농사가 더 많아요.밑에 밭뙈기가 상당히 있고 산 안에도 밭이 있어요.여기로 와서는 농사가 더 절실한 게,작가들 와서 묵는 창작실에 부식을 대야 하니까요.전부 다 댈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야채는 내가 농사지어 대고 있어요.금년에는 부토를 했는데 흙이 잘 안 맞아서 농사가 좀 시원찮게 됐어요.여기 와서도 농약과 화학 비료는 절대 안 쓰고 작으면 작은 대로 땅 힘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기왕이면 작가들도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데서 먹거리도 무공해로 먹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감자와 옥수수를 많이 하는데 올해는 옥수수와 배추를 실패하고.그래서 토마토,고추,상추 이런 것 좀 더 대고 했어요.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줄 수 있을 것 같아요.또 자연적으로 나는 것들이 있거든요.두릅이라든지.산에 도라지도 많이 심어놨어요.더덕,취나물,이름도 모르는 다른 나물들도 많아요.봄에는 냉이나 두릅 등 계속 농사지은 걸 먹죠.” 선생의 말씀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리듬과 흥취가 있었다. 이 글을 쓰려니 며칠 전 멕시코의 칸쿤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심장에 칼을 꽂고 자결하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우리들은 모두 땅의 자식들인데 내가 무관심하던 사이에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인터뷰를 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선생의 말씀과 정신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을 순 없어 “선생님께서 농사를 지으시는 것은 자연과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작가적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그게 우리 삶의 본질 아니겠어요? 땅에서 가꿔서 우리가 존재한다는.농부를 찬양하는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아니고 전부 소비성이거든요.땅을 가꾼다는 것은 규모가 손바닥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생산이 있어요.그건 뭐냐면,생산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땅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에요.지난번에 내가 여기 중·고등학교 캠프에 갔었어요.사실은 내가 어디 나가서 얘기를 잘 못해요.어지러워서.그래도 애들이니까 한마디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가서 이야기를 했어요.첫마디는 예절에 대한 것이었어요.예절이라는 것은 휴머니즘이다,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다,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정제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그리고 또 하나가 이것이에요.옛날 농부들이 말하기로 내 자식 목에 젖 넘어가는 소리하고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그것은 땅도 내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땅을 사랑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기본이고 본질적인 거예요.지금 지구 온난화 현상도 있고 지구가 사막화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앞으로 곡식이 참 귀하게 되면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고 배를 불리겠어요? 한줌의 쌀이 있어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거죠.그런데도 없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옛날 말로 사람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고,많은 분들이 그저 설마 설마하면서 남은 죽어도 나는 살아남겠지,내 당대에는 괜찮을 거야,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데,하지만 우리 자손들이 있잖아요.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고 스위스에서는 만년설이 몇년도에 가면 다 녹는다고 그래요.이거 다 녹으면 노아의 홍수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남의 일 같이 생각들 하신단 말이에요.들으면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단 말이에요.일반 대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도자들부터 인식을 해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끌고 나가야 할 지도자들이 일반 대중들보다 더 못해요.대중들은 절실히 인식하는데 지도자들은 표밭만 생각하니까.사람이 먹고 사는,곡식 나는 밭 생각은 안 하고 표밭만 생각하거든요.그렇게 생존하고 관계 없는 일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존해야 할 일은 뒷전에 밀리고 어떤 때는 그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닌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나는 연방 머리를 끄덕일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시장을 가봅시다.둘러보면 직접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건보다도 없어도 되는 게 더 많아요.없어도 되는 게 더 많다는 것은 말도 못할 낭비예요.낭비하면 쓰레기가 나와요.낭비와 쓰레기 이중적인 문제지요.쓰레기는 뭡니까.숨통을 막는 거예요.새만금이나 시화호,이런 문제는 그렇게 야만적일 수 없는 일이에요.나 혼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요.몇 사람의 이득,화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학살하는 겁니까.그렇게 많은 생명을 학살하고 그것을 영구히 없애버리면 다시 재생을 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야만국인가를 입증하는 것이죠.지금 있는 농지도 농사 안 짓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새만금,그걸 죽여서 농지를 만든다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내가 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또 사람만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에요.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이 다 살아야 해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세상 일을 소상히 알고 계신데요.어떻게 이렇게 먼 곳 원주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듣고 보시는지요?” “서울이 시골보다 더 좁아요.직장이라든지 아파트라든지 하는 공간은 넓어도 좁아요.나는 공간이 없으니까 산 보고 하늘 보고,그러니 알죠.” “옛날에는 물질이 없어서 고통을 겪었다면 요즘에는 오히려 물질이 더 많아져서 고통인 것 같습니다.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명이란 가두지 않고 풀어주는 것 “그렇죠.모든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순환이거든요.순환이라는 것은,먹이사슬도 하나의 순환이지만 우리 한 개인으로 보아도 일을 하고 또 그렇게 해서 먹고 하면 이게 순환이거든요.그럼 일은 뭐냐? 이렇게 물을 수 있는데,증권 주식 한다고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 보고 있는 것,그것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죽어 있는 일이지 살아있는 일이 아니에요.살아 있는 생명을 다스리는 일,그것이 일이에요.예술가도 생명이 주예요,사실은.문장 하나,상황 하나,인물 성격 하나,이게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정치라는 것도 살아있는 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죽음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죠.이 시대엔 전쟁과 핵무기가 있어요.이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에요.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게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어요.모두 다 잘 살려고 한다는데 과연 그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농약 주고 화학비료 주고 해서 질적으로 망가진 음식을 먹는 게 잘 사는 건지……모든 걸 가둬 놓는 것…… 생명이라는 건 가두는 게 아니라 풀어주는 거예요.이런 제도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한다는 게 정상일 수가 없죠. 농촌에도 얼마나 이상한 병들이 많은지 몰라요.농약 때문에 그러는지.지금 이런 상황의 먹거리가 절대 좋은 게 아니거든요.그런데도 잘 산다는 게 이게 전부 양(量)으로 말하는 거죠.사람이 원래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거든요.행복의 축이라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에요.그런데 지금 질은 점점 나빠지고 마치 옛날의 그 질을 옆으로 펴다 보니까 얇아져서 그게 양이 된 거예요.어떤 면에서 보면 더 생겨나는 건 없어요.있는 것에서 얇아지면양이 늘어나는 거고 양이 좁아지면 질이 좋아지는 걸 보여주는 거고.” 나는 사투리 억양이 강한 선생의 말씀을 교정하는 지금의 내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선생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은 앞으로 나갔다 뒤로 가고 중복되거나 건너 뛰면서도 살아 있는 생생한 감동이 있었다. “선생님 옛날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창작집 ‘불신시대’,장편소설 ‘시장과 전장’…… 그런 작품들을 읽다 보면 선생님 작품의 여주인공이 아주 결백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선생님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는 싫어요.결백하다기보다는 자유롭고 싶은 거죠.얽매이기 싫고.” 이하의 내 물음과 선생의 말씀은 생략이다.안타깝게도.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그렇게 많이 서운해하지 않으셔도 된다.내가 여쭈어 본 것은 더 내밀한 선생의 과거며 인생살이 같은 것이었으니까.선생의 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니까.그러나 나는 선생의 사상만큼이나 선생의 인생을사랑하는 것 같다.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듣고 기록하고 싶은 것은 나의 감상벽인지? 탐구벽인지?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각 박경림 ●가혹한 운명 딛고 선 문학사 거봉 박경리는 1920년대가 낳은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작가이자 광복 후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높게 빛나는 설봉(雪峰)이다. 1927년 통영에서 출생,진주고녀를 졸업하고 잠시 후 결혼,황해도 연안에서 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에 ‘계산’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박경리를 오늘의 박경리로 만든 하나는 선생의 작중 인물만큼이나 결벽하고 의지적인 선생의 성품이며 다른 하나는 가혹한 운명이다.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남편을 잃고 이후 아들을 잃고 다시 생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여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가혹한 고통은 선생 문학의 산실이다. 창작집 ‘불신시대’(1963)와 장편소설 ‘표류도’(1959),‘김약국의 딸들’(1962)‘시장과 전장’(1964),‘성녀와 마녀’(1967),‘파시’(1967) 등으로 이어지는 선생의 초기 소설은피폐하고 불순한 현실을 배경으로 결벽성 있고 의지가 강한 여성 주인공의 삶을 그려나가면서 운명과 맞서는 삶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1969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 이르기까지 5부작으로 완성을 본 대하소설 ‘토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선생의 대표작이자 한국소설의 한계를 시험하는 의지의 극점이다.세대를 누적하면서 생을 이어가고 새로운 생을 모색하는 ‘토지’의 인물들은 삶의 만화경이자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한다.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인간은 속수무책의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피안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박경리의 근본적인 사상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근원인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구경적 세계관이다.그것은 종교가 아니되 감히 종교와 ‘맞먹는’ 힘을 갖는다. ●시집에 담긴 또렷한 이미지 박경리 선생 댁은 몇 년 전에 찾아 뵈었을 때는 허허벌판 가운데 있었는데 이번에는 토지문화관 바로 옆에 있어 한결 찾기가 쉬웠다.그때 허허벌판 가운데 약간 둔덕진 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선생의 자택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것이 평생 외로운 삶을 살아온 선생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었다. 보통 사람들은 선생을 소설가로 생각하고 또 인정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이미지가 또렷하다.나는 선생의 시의 애독자여서 몇 권 안 되는 선생의 시집을 새책방,헌책방에서 다 사보았고,그 간결한 어휘,담담한 어조,비약의 미(美),삶의 태도를 절절한 심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었다.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박경리가 아니라 인간 박경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시집을 읽어야 하리라. 몇 년 만에 뵙는 선생은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예전보다 따뜻해 보이는 실내가 나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한다.나는 선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의지적이고 결벽성이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타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가 보다.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9)현기영-남북한 민주주의와 통일의 현단계

    지금이야말로 탈중심의 변방 정신이 필요한 때다.지구를 파괴하고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자본의 무한 질주에 제동을 걸려면 거부와 저항의 변방 정신이 아니고는 안 된다.왜냐하면 자본운동은 질주의 관성만 있고,자신을 멈출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진흥원 원장실에서 만난 선생은 여전히 흰 턱수염이 두덕두덕,면도한 지 이틀은 되었음직한 얼굴이시다.응접 세트며 책상이며 모두 길이 안든 물건이라 그런지 썩 편치 않게 보이는데 실은 그게 선생의 매력이다.어느 공식석상에서도 작가다운 모습. “문예진흥원 일은 어떠세요?힘든 일이 많으시지요?” “글쎄,꼭 내 일인가 고민하다 하게 되었어요.예술 활성화와 사회에 창조적 의욕이 확산될 수 있도록 일한다는 의미가 있으니까.기금 배분의 어려움은 있지만 시민들이 순수문화와 예술을 널리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지방이 문화적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하고 있고.” ●민주주의엔 ‘무제한의 자유' 함정 도사려 “직무를 수행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일이 많으실 텐데요.” “예전에도 열심히 해왔습니다만 진흥원 활동을 조금 더 활기차고 적극적인 쪽으로 바꾸고 싶습니다.무엇보다 예술 자체가 몸을 비틀면서 굉장한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미술·음악 등 고전적 의미의 장르 틀 속에 갇힐 수 없는 것이죠.문학과 미술이 만나기도 하고 미술이 평면에서 입체로 가기도 하고,비디오 영상과 음악·무용이 결합하고 있기도 해요.이러한 변화에 문예진흥원 같은 국민의 기관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계획을 세우려 합니다.” “작가로서 공인에 더 가까워지셨는데요.저는 한국과 북한의 민주주의에 관해 묻고 통일 문제에 관해서도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요즘 한국은 정치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아직도 한국사회는 다양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서로 상충하고 갈등하고 있어요.민주주의라면 우선 자유 아니겠습니까,자유.그전에는 독재정권 파시즘 속에서 개인 자유가 희생되고 억압되었습니다.지금은 정치적인 자유는 많이 확보되었죠.그러나 그 자유를 무제한,무책임의 자유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생겨났어요.무제한의 자유를 갈구하다 보니까 풍속도 문란해지고 개인도 도덕적인 해이를 보이는 면이 있지요.민주주의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죠.무제한의 자유에 자기 몸을 싣다 보면 일탈로 가게 되죠.그리고 일탈은 중독을 낳습니다.인터넷 게임,사이버 섹스,알코올,마약….그러니까 민주주의에는 무제한의 자유라는 함정이 있는 셈입니다.공동체도 개인도,책임과 셀프 거번먼트(self government),자신을 다스리는 자치 말이지요.이게 있어야 합니다.인내가 필요합니다.” 나는 평소에 가깝게 뵌 분께 이렇게 딱딱한 질문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문학인이나 문화인이 나라와 민족의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그것 또한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당면한 과제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사회가 이제까지 성장을 꾀했으니까 지금부터는 부의 재분배를 통해서 소외된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지나친 성장위주는 곤란하다는 거지요.성장을 꾀하면서도 공동체의 삶의 질을 생각해야합니다.성장이라는 게 인간 크기의 성장이어야지 인간을 훨씬 능가해 버리는 성장은 오히려 인간을 잡아먹게 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사회적 갈등의 표현을 맛보고 있습니다.그러다 보니까 파시즘이 새롭게 등장해야 한다는 견해까지 부상하잖아요.기업가도 노동자도 오늘의 상태를 차분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한국사회를 진단해 주시지요.” “이제 외형상 민주주의는 확보된 것 같습니다.이제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심성이 구체적으로 민주화되어야 합니다.정치적 파시즘이 없어졌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확립되는 것은 아니죠.파시즘 정권은 사라졌어요.민중은 많은 자유를 갖고 있어요.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니에요.많은 국민이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하나의 예죠.지역감정에 사로잡혀서 그것에 골몰하면 그 지역감정을 동력으로 삼아 파시즘으로 회귀할 수도 있는 거죠.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면 개인의 내면이 민주화되어야 합니다.지역과 지역이 어떤 표결 없이 바라볼 수 있고 노동자와 자본가가 대결 없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교한 외교로 대등한 한·미관계를 내친 걸음이다.나는 4·3의 작가에게 미국이라는 오늘의 화두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기로 한다. “미국이라는 존재도 한국의 민주주의와 뗄 수 없는 문제 같은데요.” “한반도 문제는 미국에도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내면의 민주화는 외부로부터 지배받지 않는 것,부당한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죠.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세계 민주주의에 어떤 저해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한국은 미국과 대등한 관계로 가야 되는데,방법은 강대국과 약소국 일이기 때문에 정교한 외교로 대처해야지 피맺힌 절규로 해결될 수 있는 일만은 아닙니다.” “미국은 지금 세계경찰 역할을 자임하고 있어 우려되는 점이 많습니다.” “미국이 세계 경찰을 자임한다는 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유일한 강대국이 되었다는 것인데,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사태만 봤을 때 미국이 참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나중에 어떤 사고의 전환이 올지는 모르지만계속 그런 사고와 행동을 밀고 나간다면 미국이 강대국이기 때문에 지구가 파멸까지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테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전쟁이 있고 나면 반드시 테러가 뒤따르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마련입니다.이것이 점점 규모가 커지고 테러나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인류의 재난이 온다고 생각해요.미국의 사고 전환이 중요합니다.미국 시민의 애국주의도 잘못된 편견의 소산입니다.수정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미국 국민들이 사실은 엄청난 두려움에 떨고 있거든요.그 두려움을 방어적·공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지요.문제는 그게 옳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죠.두려움은 공격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다원주의가 굉장히 큰 미덕이죠.남을 이해하고 남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기독교 국가인 미국과 이슬람 국가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경할 수 있는 큰 사고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지금이 중세 십자군 시대하고 뭐가 다릅니까.” 이제 마지막 관문이다.나는 평소에 북한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으로서도 화해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를 겪고 있던 참이다.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이 유효하고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반면 북한체제 문제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대응방법이 요구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뚜렷한 집단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햇볕정책이 유효하고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어떤 포스터를 보고 느낀 건데,아마 중동의 팔레스타인 소년 이야기일 거예요.소년인 형이 아우를 등에 업고 있어요.그래서 ‘무겁지 않으냐,내려놓지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제 아우인데요.’라고 반문했단 말이에요.북한은,남한인 우리가 형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에요.그러니까 짐스럽게 느끼면 안 되죠.아우가 힘들고 빈사상태에 빠져있는데 업고 있어야지요.” “북한 인민과 체제로서의 김정일 정부는 또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사회주의 정권에서 중국은 많이 변모하고 있습니다.그게 모델이 되어서 북한사회도 그런 쪽으로 변모하면 되리라생각합니다.또 그렇게 수정되지 않으면 안됩니다.그러려면 지금 당면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것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北, 중국 모델 따라가도록 시간 줘야 “김정일 체제에 대해서,체제만 살찌게 하는 건 아니냐 하는 견해가 있지 않습니까?” “예컨대 이슬람 국가들의 증오와 분노와 절망은 강요된 것이지요.북한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봉쇄정책을 쓰면 그것은 북한의 집행부,지배 집단,김정일만이 아니라 북한사회 전체를 압박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절망이 깊숙하게 자리하면 증오에 의해 어떠한 범죄도 일어날 수 있어요.9·11테러는 깊은 절망에서 일어난 거예요.남북이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절망과 분노로 내달리지 않도록 하면서 평화와 미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화해정책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북한사회는 점진적으로 변모해 가고 있으니 중국 모델을 따라가도록,시간을 두고 북돋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통일은 궁극적인 목표죠.1국가 2체제든 1국가 1체제든.1국가 2체제는 먼 이정표일 뿐이고 지금은 화해와 교류가중요합니다.” “‘통일전망대’ 같은 TV 프로에 나오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금강산에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북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좀 낯설지만 그것이 우리 이전 모습이에요.1950년대,60년대의 남한 국민들의 표정과 심성 같은 거지요.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은 순박하고 타락하지 않은 심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얼마 전에 교보문고에 나갔다가 선생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보았습니다.‘느낌표’라는 TV 프로그램 영향도 크겠지만 세상 많이 변했더군요.” “뭐,하도 안 팔려서 베스트셀러는 예술작품이 아니구나 생각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베스트셀러가 되다 보니 내 소설이 예술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나는 내 문학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많은 독자를 만나게 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남북한 관계를 위해서 문화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문화예술에는그 민족의 고유한 형식과 정서가 들어있고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담론보다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문화예술을 공유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 화해나 통일을 생각할 때 문화와 예술의 교류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자 선생은 내방객들을 저녁식사 자리로 데려간다.딱딱한 인터뷰에 무척 지친 듯한데도 그 인자한 눈빛을 바꾸는 법이 없다.나는 그런 선생에게서 인(仁)을 느낀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가 현기영 현기영 선생은 나와 같은 마포 주민이다.선생은 망원동 사람이고 나는 합정동 사람으로 상암동 경기장으로 가는 길이 넓혀지는 바람에 내가 서교동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한두 달에 한번씩은 꼭 합정동 로터리 근처나 망원동 근처에서 합석을 해서는 문학 이야기며 세상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낯선 공간서 만난 낯익은 얼굴 선생은 귀가 크고 길어서 후덕하게도 생기셨지만 무엇보다 미덕은 젊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부족한 점까지 너그럽게 포용하면서 문학과 인생의 길을 함께고민할 줄 아는 소인(素人)의 성품이 있으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선생이 언제까지나 마포구 망원동 주민으로서 나와 같은 문학도나 상대하면서 요즘 같은 세상에는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아웃사이더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시고 잘 안 들리는 귀에 손바닥을 대고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실 줄 알았다. 그런데,이게 웬걸.선생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실에서 만나뵙게 될 줄이야.그런데 원장실에서 만난 선생은 앞으로 몇 년 지나면 어떨지 몰라도 옛날 그 자리에 있던 바로 그분이시다.자리가 달라지면 안색도 따라서 달라지는 소인(小人)이 아니라 언제나 희고 소탈한 소인(素人).그가 바로 현기영 선생이다. ●제주로 빚은 선굵은 문학세계 작가 현기영 선생은 1941년 제주 출생이다.제주가 낳은 많지 않은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선생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주를 무대로,4·3 문제를 화두로,인간과 역사와 자연을 대주제로 삼은 선 굵은 문학세계를 일구어 왔다. 서울대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선생은 작가로서는 드물게 해병대 출신으로 사석에서 부르는 해병대가를 패러디한 노래는 이어도 노래와 함께 단연 일품이다.1975년에서야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이른바 늦깎이인 셈인데,학교 선생도 그만두고 문학에 매진하되 상업성과 허명을 멀리하고 역사와 인간에 대한 물음을 놓치지 않았다. ‘순이삼촌’‘마지막 테우리’‘변방에 우짖는 새’‘바람 타는 섬’,그리고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대변되는 현기영 문학은 한국문학사에서 단연 이채를 발하는 제주의 문학,‘변방’의 문학이자 새로운 탈중심의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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