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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 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

    손광섭 지음 이야기꽃 펴냄 전남 벌교 홍교(虹橋)는 조선 숙종 44년(1705년)에 선암사의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뗏목 벌(筏),다리 교(橋)라는 이름 그대로 뗏목다리가 놓여 있었지만,비만 오면 떠내려갔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월천공덕(越川功德)은 승려가 행해야 할 중요한 보시 가운데 하나였다.그래서 승려 가운데는 다리를 놓는 기술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천년 후,다시 다리를 건너다’(이야기꽃 펴냄)는 우리의 아름다운 옛 다리 이야기이다.3대째 건축·토목사업을 하고 있는 손광섭 청주건설박물관장은 7년 동안 전국의 옛 다리를 직접 찾아다닌 끝에 이 책을 썼다. ‘천년 후…’에는 벌교 홍교말고도 태안사 능파각,강경 미내다리,진천 농다리,주남 돌다리,대천 한내돌다리,청원 미천리석교,청주 남석교 등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27개 다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다리에 대한 역사적 탐구와 건축·토목학적 접근을 시도했는가 하면 때로는 다리를 찾아 나섰을 때의 감회도 담았다. 정과리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대상을 정확하게 떠올리게 하는 정보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제공되고,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자락과 소망의 내력을 연결시켜 나가는 이야기의 공간 속에 독자를 잠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고 이 책을 평했다. 다시 벌교 홍교로 돌아가면,이 다리 위에서는 60년마다 제사를 지낸다.지난 1959년 홍교 6주갑 제사 때는 평생에 한번이나 볼까말까한 이 행사를 보기 위하여 전국에서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다음 제사가 열리는 때는 2019년으로 올해 환갑을 맞은 지은이가 76세가 되는 해다.지은이는 벌교 홍교의 7주갑 행사를 직접 보는 것을 남은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동철기자 dcsuh@
  • ‘準문맹 실태 집중분석’/강의때 멀뚱 멀뚱 ‘까막눈 대학생’ 수두룩

    지난 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한 서울시립대 성기철(66·국문과) 교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학생들의 학습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다.강의 내용은 물론 기본 교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책을 읽고 내는 과제물조차 수준 미달이었다. 그는 “시험 답안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치지는 못하더라도 말도 안되는 문장을 쓰는데는 할 말이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취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되도록 후한 점수를 주려고 하지만 그것도 나름이었다.지난해에는 핵심과목인 ‘국어의미론’을 폐강해야 했다.교재가 어렵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외면을 받았다.그는 “정말 가슴아픈 일은 학생들 스스로 이러한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서울대 지구환경 공학부 홍승수 교수는 지난 학기 ‘천문학개론’을 강의하면서 학생들 가르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H 교수는 “시험에서 자기 생각을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정답만 적으려고 한다.”면서 “고교 때 아무리 논술공부를 한다고 해도 사고력을 키우지는 못했다.”고 답답해했다.논술공부도 공식에 맞춰 했을 뿐 글쓰기의 기본인 논리전개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었다. ●새로운 문맹,준(準)문맹 학계에서는 학생들의 이러한 현상을 ‘준(準)문맹’(Functional Illiteracy)으로 파악한다.준문맹은 글자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문맹과는 달리,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한 집단에 소속돼 일하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글 종류를 빠르고 바르게 읽어 그 결과를 활용하는 데 필요한 독서력을 갖추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예를 들어 대학생이 공부에 필수적인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교재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준문맹 대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준문맹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지난 1962년 소개하면서 국가와 집단마다 읽고 쓰는 능력을 기능화할 것을 권장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낯설다. ●심각한 준문맹 실태 우리나라 학생들의 준문맹 수준은 심각한 수준이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3학년도 대입 수능 언어영역의성적을 분석한 결과,전체 수험생 65만 5384명의 성적 평균은 100점 만점에 56.5점에 불과했다.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상위 50% 학생들의 평균 성적은 69.3점으로 영어 성적 평균인 71.3점보다 낮게 나타났다. 사단법인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박철원 회장은 “대학에서 강의를 이해하고 제대로 공부하려면 70점은 넘어야 한다.”고 밝혔다.대학에서의 수학(修學)능력을 평가한다는 수능시험의 당초 취지로 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본 수학능력도 갖추지 못한 채 대학에 진학하는 셈이다. 포항공대가 지난 98년 인문사회학부 2개반 33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검사 결과도 준문맹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대학에서 요구하는 언어사용능력을 검사하는 이 평가에서 글을 비판적으로 읽는 ‘비판독서’가 가능한 학생들은 24%에 그쳤다.‘토론전개 능력’이나 ‘구심점 표현력’이 가능한 학생들은 각 39.3%,42.4%로 낮게 나타났다.특히 자신의 주장에 대해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이유 밝히기’가 가능한 학생은 겨우 6%에 불과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무방비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준문맹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읽고 말하고 쓰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대학들도 논술과 면접을 대입 전형에 도입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논술은 국어나 작문시간을 활용해 가르치고 있지만 ‘써보라.’는 식의 지도가 대부분이다.대전 A고의 한 교사는 “현재 고교 논술교육은 글을 한두번 써보게 하고 큰 틀만 지도하는 데 불과해 깊이있는 지도가 이뤄지지 못한다.”면서 “교사들조차 논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사실상 논술지도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그는 “일선 학교에 논술과 면접을 가르칠 만한 역량있는 교사들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진주 B고는 최근 수시모집 지원자들을 위해 아예 외부 강사를 초빙해 2시간 동안 논술 특강을 했다.하지만 학생들은 짧은 시간 동안 원론적인 얘기만 들어야 했다. 충남교육청에서는 일선 교사들의 호소가 잇따르자 지난 여름방학을 이용해관심있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수와 교사,논술강사까지 초빙해 60시간짜리 직무연수를 실시했다. 서울 화곡고 이석록(45) 교사는 “학교에서 논술과 독서를 강조하지만 대부분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데다 입시과목으로만 취급해 평소 교육과정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등 교사들의 재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자구책 마련하는 대학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에서는 뒤늦게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끌어올리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서울대는 지난 4월부터 교수학습개발센터에 ‘글쓰기 교실’을 열고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과제물이나 학습계획서,수업 발표문 등에 대해 일대일 상담을 거쳐 글쓰기 능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다.‘서울대 빨간펜 선생님’인 셈이다.이번 학기부터는 82개 핵심교양과목에 전담 조교 1명씩이 배치돼 학생들의 글쓰기를 지도한다. 연세대는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학습기술 워크숍을 개최했다.효과적인 독서기술과 프리젠테이션 기술,학습방법 등 3가지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수백명의학생이 몰려 학생들의 관심을 반영했다.교육개발센터 전명남(38·여) 학습지원부장은 “학생들이 고교 교육과 크게 달라진 대학 수업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이번 행사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가톨릭대와 숙명여대,중앙대,명지대,상명대 등 전국 40여개 대학들도 교수학습개발센터에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허경철(57) 교육과정연구본부장은 “어려서부터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면서 “대학에서 논술과 면접의 비중을 점차 강화하고,일선 학교에서도 수행평가를 내실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만이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천 기자 patrick@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 프리랜서 기자천국 日

    “여자에게 금단(禁斷)의 세계라 할 수 있는 스모(일본 씨름)를 취재하다 보면 승부에 전력투구하는 ‘남자’를 가까이서 실감할 수 있어 매력을 느낀다.”사토(35·여)는 스모 전문기자이다.신문사나 방송국,잡지사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 라이터’(프리랜서 기자의 일본식 표기)이다.프리 라이터의 길을 택한 것은 9년 전.대학을 졸업한 24살 때 사진 주간지인 ‘프라이데이’에 입사,스모를 맡게 된 것이 “평생의 운명을 결정한” 스모와의 만남이었다.2년 뒤 안정된 월급,이름있는 주간지의 명함을 버리고 사토는 ‘프리 선언’을 했다.“명령받고,쫓기는 생활이 싫었다.”는 것이 이유다.신문·방송의 스모 담당기자를 제외하고 스모계를 취재하는 프리 라이터는 10여명으로 그 가운데 여자는 2명이다.거물 스모선수를 연속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는 그녀는 “주위에서 ‘몸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시샘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그만큼 벽이 높고 보수적인 스모계에서 여성이 10년 가까이 프리 라이터로 ‘생존’하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에는 득실거린다고 할 정도로 유난히 프리 라이터가 많다.숫자를 헤아릴 만큼 희소한 한국과는 딴판이다.어떤 프리 라이터는 “2만명 정도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별다른 자격이 필요없는 것이 프리 라이터인지라 그 숫자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본 다나카 가쿠에이’란 책을 쓴 바 있는 쓰루(59)는 그 이유를 “뭔가 기록하고 남기고 싶어하는 활자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뿐만 아니라 웬만큼 글을 쓰면 글 하나로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 갖춰져 있는 점도 프리 라이터를 다량 배출하는 환경의 하나다.일단 글을 실어줄 매체가 많다. 수천종의 잡지가 쏟아져 나오는 일본은 프리랜서가 활동할 공간이 넓은 편이다.뭔가 쓰고 싶은 사람,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굳이 신문이나 방송사를 택하지 않아도 일정한 실력을 갖추면 프리 라이터가 될 수 있는 셈이다.출판·잡지사는 사원을 고용하는 부담보다는 프리 라이터를 그때그때 활용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다양한 전력의 소유자들프리 라이터의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 뭔가를 쓰고 싶었던 사람들이다.그래서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도 오랜 시간에 걸쳐 꿈을 이루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간노(40·여)는 대학 졸업 후 은행에 들어가 “평범한 OL 생활을 하다,이게 아니다 싶어” 박차고 나와 A신문사 광고국에 계약직 사원으로 재입사했다.“기자로 가는 길에 가깝기 때문”이었다.신문사에 들어갔으나 광고국인 탓에 글을 쓸 수 없었던 그녀는 다시 경제전문 주간지로 옮겨 편집자의 길을 걷는다.결국은 2000년 한국 젊은이들의 반일 감정에 관한 책을 써 프리 라이터의 직함을 갖게 된다.14년 만에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재일교포 2세인 이택수(35·가명)씨는 조총련계 기관지에서 7년간 기자로 일하다 2001년 프리로 독립했다.기관지 기자 생활은 “프리 라이터를 하기 위한 과정”이었다.지난 7월 ‘한국은 드라마틱-엔터테인먼트로 보는 한국 스타일’이라는 책을 쓴 다시로(37·여)는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게이오대 국문과를 나온 그녀는 대졸 여성들이 선망하는 아나운서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 홍콩 유학을 거쳐 4년 전부터 한국 연예계에 관한 기사를 취재하는 프리 라이터의 길에 들어섰다. ●프리여서 좋지만 수입은 불안정 자기가 취재하고 싶은 분야를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매력에 빠져 프리 라이터의 길에 들어섰지만 수입이 적어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시로는 “아나운서 시절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미치는 아슬아슬한 생활”이라고 털어놓는다.세무소에 신고한 2002년도 수입은 월 평균 20만엔을 넘지 않았다.올해는 좀 넉넉한 편이다.한국 드라마 ‘겨울 소나타’가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친 덕분에 한국 연예계에 갖는 일본인들의 관심이 높아져 책이 잘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을 드나드는 취재경비나 집 월세,생활비 등을 빼면 여유로운 생활은 꿈꾸기 힘들다. 이택수씨는 “작년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이후 북한과 조총련 사정에 관한 원고 의뢰가 많이 들어와 올해 700만엔의 수입을 예상하고 있지만 프리로 전업한 첫해에는 월 5만엔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힘겨웠다.”고 말한다.우익계 잡지건 좌익계이건 “거절하지 않고” 원고를 쓰고 있는 그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택수씨의 경우만 해도 행복한 편이다.상당수 프리 라이터는 살인적인 일본의 고물가 속에서 월 20만엔에도 못미치는 불안정한 원고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간다.그래서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는 프리에서 조직의 룰이 지배하는 신문사나 공무원의 세계로 역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생활고로 프리에서 재취업 주간지 기자로 활동하다 이름을 얻어 작년 프리 선언을 했던 마쓰모토(36·가명)는 얼마전 신문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중학생을 포함,세 아이를 둔 가장인 그는 고액의 연봉이 보장되는 신문사 정치부 기자로 변신했다.쓰루는 지방의 조그만 지방자치단체의 촉탁직원으로 일한다.도쿄의 출판사,잡지사의 인맥 관리가 힘든 지방에서 프리로 활동하기가 어려운 만큼 고정적 벌이를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뒤늦게 공무원이 된 것이다. 이씨는 다른 이유에서 전업을 궁리하고 있다.그는 “일본의 지방경제를 취재하고싶지만 프리 라이터의 신분이나 불안정한 수입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몇년간 신문사의 지방 지국에 입사해 취재를 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라고 귀띔했다.이름만으로도 통하는 초일류 프리 라이터가 되지 않는 한 ‘프리 라이터’라는 명함 한 장으로는 취재 장벽이 너무나도 높기 때문이다.간노는 “○○잡지의 기획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 간노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프리 라이터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전한다. ●어둠의 세계 취재하다 봉변 지난 12일 도쿄항 해상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사체가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사체의 신원은 프리 라이터 소메야(38).조직폭력배 취재를 하고 있던 그는 “살해당할지 모르겠다.”고 평소 주변사람들에게 말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그는 옴 진리교의 관련시설에 신자를 가장해 잠입취재를 하는 등 평소 접근이 힘든 조직폭력배,중국인 범죄조직,고리업 세계 등을 취재,기사를 쓰고 책도 펴냈다. 이처럼 프리 라이터 가운데는 신문·방송이 좀처럼 다루지 않는 분야에 목숨을 걸고 취재 활동을 펼치는 사람도 더러 있어,언론의 영역을 넓히는 데 언론사의 기자 못지않은 활약을 하기도 한다. marry01@ ■프리 라이터 스즈키 아키라 |도쿄 황성기특파원|스즈키 아키라(사진·57)는 이색 경력을 지닌 프리 라이터이다.거품경제 시절 일본 증권가인 가부토초에서 ‘시테카부(주가 조작)’로 이름을 떨친 마법의 손이었다. 일본 경제에 거품이 한창이던 1980년대 수천억엔대를 주물렀던 장본인.많았을 때에는 130억엔의 개인수익도 올려봤다는 그는 1990년 거품의 종언을 알리는 일본 정부의 ‘총량규제(總量規制)’ 발표와 함께 가부토초에서 바람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그는 수개월 뒤 프리 라이터로서 재기에 나선다.“마이니치신문사가 발행하는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로부터 주가 조작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행적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4쪽짜리 원고를 15만엔에 써주었던 것이 출발이었다.” 그는 모두 15권의 책을 써냈다.올 3월에는 ‘뒷골목 비즈니스,어둠의 연금술’이라는 경제의 추한 이면에 관한 문고본을 출판했다.지금은 2차대전 패전 직후 일본 지하경제에 관한 문고본 출간을 같은 출판사에서 의뢰받고 자료를 수집 중이다. “국회도서관 같은 큰 도서관과 신문사를 돌며 몇십년 전 자료를 모으는 외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증언해 줄 옛날 사람을 만나는 게 큰 일”이라는 그는 “이 나이에 다리품 팔아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것이 고충이라면 고충”이라고 말한다. 컴퓨터로도 집에서 자료 검색을 할 수 있으나 워낙 검색료가 비싸 엄두를 못낸다.“경기가 좋았을 때 같으면 출판사에서 경비를 다발로 주었을 테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고 한다.그가 작년도 세무소에 신고한 수입총액은 500만엔쯤.“잘 나갈 때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입으로 ‘거지’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는 지금 자료수집 중인 책을 쓰게 되면 150만엔쯤의 인세 수입을 올려 “당분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빙긋 웃는다. “우리처럼 400자 원고지에 글을 써서 1장당 얼마에 팔아 살아가는 프리 라이터를 자학적으로 ‘100엔 라이터’라고 부른다.”는 스즈키는 “이 직업은 50살 넘으면 힘들어서사실상 생명이 끝난다.”고 손을 저었다.
  • 신한·조흥銀 ‘신혼여행’/통합 후유증 딛고 경주서 단합대회

    신한은행과 조흥은행 직원들이 통합에 따른 후유증을 딛고 다음달 경주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23일 신한금융지주회사에 따르면 신한·조흥은행 등의 부서장급 이상 1500명은 다음달 17일 1박2일 일정으로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자회사 단합대회를 갖는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조흥은행을 신한지주의 새 가족으로 받아들인 뒤 처음으로 갖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신한지주는 이번 행사에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로자베스 모스 캔터를 10만달러(1억 2000만원 상당)를 들여 초청했다.또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박사와 박목월 시인의 아들인 서울대 국문과 박동규 교수도 강사로 초빙할 예정이다.이튿날인 18일에는 경주 남산을 등반하면서 친목을 다진다. 신한지주 최영휘 사장은 “신한·조흥은행 직원들이 경주로 내려갈 때는 따로 가더라도 서울로 올라올 때는 같이 어우러져 올 것”이라면서 “매년 이런 단합대회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 요절한 무명작가의 삶과 문학/故윤택수 詩·산문집 나와

    ‘전직(前職) 시인’은 약간은 경멸의 의미가 담긴 말이다.등단만 해놓고 시작을 거의 하지 않는,이 허울뿐인 시인의 대척점에 ‘천생(天生) 시인’이란 말이 있다.본바탕이 시인이란 뜻이다. 그 말이 어울리는 무명 작가 윤택수(1961∼2000)를 기리는 시집 ‘새를 쏘러 숲에 들다’와 산문집 ‘훔친 책 빌린 책 내책’이 아라크네에서 나왔다. 시집과 산문집에 담긴 그의 삶은 그 자체가 시 혹은 문학으로 보인다.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국어교사로 근무하기도 한 그는 엄청난 지적 호기심의 소유자였다.그러다가 안락한 삶을 떨치고 용접공,원양어선 선원 등 다양한 일자리를 전전한다.모두 시인으로서 세상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에서였다는게 그를 아는 이들의 증언. 표제시 등 112편의 시로 이뤄진 시집은 그의 왕성한 책읽기에 힘입어,이국적 풍물과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시인 겸 평론가 양애경 공주정보대 교수는 “미지의 강렬하고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강한 모험심을 보여주는가 하면 세상과의 단절을 드러내는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고 설명한다.산문집은 그의 괴짜 같으면서도 천의무봉한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사적 추억과 글에 대한 욕심 그리고 다양한 독서체험 등을 담은 산문은 그가 글,혹은 시에 대해 갖고 있는 염결성을 대변한다.예컨대 “주어와 서술어가 따뜻하게 마주보고 있는 산문”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나 소설을 쓰려고 직장을 그만 둔 사연을 들려주는 대목은 그 전형.지은이는 곳곳에서 책읽기의 중요성을 설파한다.인문주의자를 지향했던 한 무명작가의 자기와의 대화는 “책을 잘 훔치는 것은 스스로 책을 쓰는 것이다.”(237쪽)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이종수기자
  • “고려때 꽃피웠던 寫經 원형복원이 꿈”/24년 사경작업 외길 김경호씨

    평생을 단 한 가지 목표에 매달려 사는 것은 쉽지 않다.그것이 남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렇게 일궈낸 삶은 훨씬 더 값지다.사경(寫經)연구가 김경호(41)씨는 일찍부터 불모의 영역인 사경에 눈을 떠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 인물이다.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새 장르의 문화재를 복원해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전파해야 하는 필생의 사업이 됐다. “사경은 고려 청자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문화재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 원형 복원 노력과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는 김씨는 “사경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독보적인 우수성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문화재”라고 거듭 강조한다.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불교 경전을 한자 한자 그대로 옮겨 쓰는 사경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고교시절 출가해 1년간 행자생활을 했으나 부모의 만류로 귀가해 어렵사리 고교를 졸업했다.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사경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했지만,기본 자료조차 없는 실정을 개탄해 사라진 문화재의 원형 복원에 고군분투해 왔다.고교 시절부터 치면 24년간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고려사 충렬왕·충선왕·충숙왕조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 원 조정에서 많게는 한 번에 100명씩 고려에 관리를 파견해 사경을 제작해 갔다고 한다.사경 기술은 중국에서 전래됐지만 전성기인 고려시대의 사경은 서예,회화,금은공예 등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월등한 종합예술로 꽃피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그토록 번성했지만 국내엔 옛 사경을 추적할 만한 기초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그에 비해 일본에선 오래 전부터 사경연구가 활발히 전개돼 왔지요.” 그동안 국내 박물관을 샅샅이 뒤졌으나 신통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일본측 자료에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그런 점에서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통일신라기 사경인 국보196호 ‘대방광(大放廣)불화엄경’은 주목할 만한 유물이라고 강조한다.‘대방광불화엄경’은 연대가 분명한 사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먹으로 쓴 것이면서도 표지 그림과 경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를 금은으로 그려 당시 금은 공예가 얼마나 발달했는가를 잘 보여준다.무엇보다 통일신라기인 일본 천평(天平)시대에 전국적으로 흥했던 일본 사경의 모태가 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일본은 우리로부터 사경을 받아 꽃피웠지만 오히려 그것을 건네준 한국에선 그 의미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형편.내로라하는 일본 사경 연구가들의 정통 사경이라는 것에서조차 원전에서 벗어난 오·탈자와,원 형식과는 다른 모순을 적지 않게 발견한다는 김씨.그의 자부심은 그냥 말만 앞세운 게 아니다.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가리지 않고 사경과 그 기록이 있는 곳이면 빼놓지 않고 발품을 팔아 슬라이드로 정리해놓은 것만 해도 3만여점.지난해 10월엔 자신이 직접 작업한 사경을 중심으로 사경의 모든 형태와 해설을 붙인 교본격인 사경집을 내기도 했다. 6차례의 개인전을 포함해 20여회의 전시를 열면서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지난 6월에는 한인미주이민 100주년을 기념해LA로터스갤러리에 초대받기도 했다.내년 봄 미국 현지 교인들이 뉴욕 전시를 추진 중이며 일본측에서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라 우수한 우리의 사경을 원형 그대로 살려내 발전시키는 것에 가장 힘을 기울인다.표지와 발제,경전,변상도로 구성된 양식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다.실제로 그의 사경 작업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경전 선택과 원본의 오·탈자를 확인하는 대교 작업부터 작업의 전체 틀과 맞물릴 변상도 구상,닥종이와 금가루에 아교물을 입히고 푸는 데 이어 선을 긋는 계선과 경문쓰기,변상도 그림과 표지,금을 입힌 글자의 광내기인 연마작업…. 요즘엔 한국사경연구회(02-733-8334) 회원들이 자신의 뜻에 동참하고 있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사경연구회는 동양미술사학과 출신들과 사경에 뜻을 가진 학자,승려들과 함께 지난해 결성했다.서울 연희동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는 부인의 수입이 사경작업의 모든 재원이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일반인 대상의 강의를 맡고 있고 동아문화센터에도 출강하고 있지만,이는 사경을 알리는 절실한 수단에 불과하다.동국대 대학원에서 사경에 관한 석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서예지 등에 사경을 알리기 위한 기사 연재에 매달리느라 쉽지 않다. 사경 작업을 할 때는 며칠 밤낮을 지새우기 일쑤.사경에 몰두하다 보면 1∼2시간 정도만 의자에 앉아 눈을 붙여도 거뜬하지만 작업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아프다는 김씨.그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나에게 맡겨졌다.천직으로 안다.”며 주섬주섬 사경 도구를 챙겼다. 김성호기자 kimus@
  • 오피니언 중계석/문화예술 산업화

    갈수록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문화예술이 급속하게 엔터테인먼트화하고,순수 문화예술의 향유층과 투자층이 줄고있다.‘문학수첩’ 가을호에는 ‘문화예술의 문화산업화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하재봉(시인·인하대 겸임교수)씨의 ‘문화산업의 성장과 방향’이라는 찬성론과 한기(서울시립대 국문과 교수)씨의 ‘개체 단위 비대화의 논리와 공룡화의 위험’이라는 반대론을 게재했다.두 사람의 논지를 요약한다. 문화예술 산업화 찬성론 문화산업을 문화예술의 상업화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소수의 예술 창조자들과 그것을 향유하는 일부 마니아들을 위해서만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문화예술이 특정계층에서만 이루어지는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 아니라면,우리는 마땅히 고급 문화예술이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도록 모색해 보아야 한다.모든 문화산업 논쟁의 핵심은 이것이다. 가령 중세에는 문화예술이 재정적 후원을 해주던 특정 파트롱을 위해 생산되었으나 이제는 광범위한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위해 창작되고 있다.더 많은대중이 인간정신의 가장 고귀한 생산물인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문화의 산업화는 예전에는 출판과 영화 분야가 고작이었지만 이제는 뉴미디어의 발달과 더불어 정보화 사회의 촉진으로 사회 전방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문화예술계에서는 그 위력에 놀라 움츠리고 있는데,그러한 수구적이고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대중문화에 대한 엘리트주의적인 비판의식은 버려야 한다.문화의 민주화,문화의 평등화를 실천할 수 있는 다원주의적 대중문화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물론 이윤 창출과 정신의 창출을 동시에 시도하고 있는 문화산업의 집중화 현상은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물질적 생산품을 생산하는 거대기업이 대중의 무의식을 문화적으로 지배하려는 우울한 음모가 진행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산업의 진행에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는 없다.근본적으로 문화산업의 확산은 대중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다.문화창조자들이해야 할 일은 문화산업의 거시적 현상을 파악하고 대중을 위한 실천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문화예술 산업화 반대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상품화의 운명을 피할 수 없고,오래 전부터 문학과 예술 역시 명백히 상품이었다.문화상품의 경제적 가치는 단순하게 평면적인 매출액으로만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정책 당국자들이 국가 산업을 관장하는 경제 정책의 총괄적 차원에서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파급효과가 계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바야흐로 국제적인 브랜드 경쟁의 시대에 문화 상품이 미칠 수 있는 국가 이미지 창출의 효과는 막대하다. 그러나 문화 상품은 수익 측면만이 아니라 비용 측면까지 함께 고려해 그 가치를 산정해야 한다.상품에는 투입 대 산출이라는 경제의 일반원칙이 철저히 지켜질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문화상품을 둘러싼 이같은 기업적 전략화,곧 문화·예술의 산업화가 가져올 어두운 그늘의 현실 역시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요컨대 가족적이고 유기체적이고 목가적이기조차 했을 문화,예술의 공동사회적 분위기를 깨뜨리고 급속하게 이익사회의 분위기로 옮아가게 만드는 가교의 역할을 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철저히 계산적이고 도구적 이성이 사회를 지배할 공산이 크다. ‘대중 기만으로서의 계몽’을 수행하는 문화산업의 역할이 지나치게 팽배함으로써 문화와 예술의 자족적 기능,혹은 사회 비판적 기능이 위축되고 거세될 뿐 아니라,인류 사회 자체의 자율적이고 자기 갱신적인 가능성과 활력이 도태되는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산업의 총체로서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속화는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 아래 개체 문화 단위의 비대화를 가져와 공룡의 멸망과 같은 인류 사회의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리 이종수기자 vielee@
  • 한라산에서 휴전선까지 산야 누비는 ‘들꽃 아줌마’/ 야생화 전문가 나문심 씨

    “거창한 명분이나 철학을 갖고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우리 산하에 널브러진 이름모를 들꽃에 관심을 갖다 보니 야생화를 가꾸는 게 생활의 전부가 돼버렸어요.” 야생화 연구가 나문심(羅文心·41·전남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씨는 틈만 나면 전국의 산야를 누빈다.낯선 품종이라도 발견하면 종자를 채취하고 카메라에 정성스레 담는다.철따라 한라산에서 휴전선 부근까지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새로운 들꽃을 찾아 산야를 탐방할 때면 언제나 설렌다.”는 그는 한 때 흑산도 인근 작은 섬에서 ‘노랑 땅나리’를 발견했다.이 꽃은 원래 주황색이지만 노란색을 띤 변이종으로 확인됐다.또 전북의 한 습지에서 본래 자색인 ‘흰 물봉선’을 만나기도 했다. 지방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그가 들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86년.한 잡지사로부터 들꽃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은 게 계기였다.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맘먹었다.식물도감과 관련 서적을 찾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야생화에 푹 빠졌다.사진찍기가 취미인 그는 자연스레 동호인들과 어울리며 이산 저산을 돌며 들꽃을 관찰하고 생태도 연구했다.종자를 채취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화분에 옮겨 정성스레 가꿨다.이렇게 모은 야생화는 모두 400여종에 이른다. 그의 보금자리가 있는 산골마을에 이르면 ‘한백 꽃뜨락’이란 야생화 농장이 한눈에 들어온다.이 마을 산기슭에 꽃뜨락을 이루고 있다.그의 정성과 땀이 밴 농장에 들어서면 어디서 많이 봄직한 꽃들이 수줍은 꽃망울을 터트린다. 원추리·부처꽃·이질풀·동자꽃·비비루·노루오줌 등 여름꽃들이 수줍은 자태로 바람에 살랑인다.한 편에는 새우란·둥굴레·할미꽃·금낭화·붓꽃·꽃창포·수련·매발톱꽃·은방울꽃·며느리밥풀꽃 등이 제철을 기다린다.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꽃들이다.꽃에 얽힌 얘기도 흥미롭다.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올릴 밥을 짓다가 솥뚜껑을 열고 밥알 두 개를 입에 넣었다.그걸 본 시어머니가 먼저 밥을 먹었다고 괘씸하게 여겨 며느리를 때렸다.그 며느리 무덤에 피어난 꽃이 며느리밥풀꽃이다.이 꽃은 영락없이 입술에 밥알 두 개가 묻어 있는 모습이다. 어렵던 시절 슬픈 사연을 간직한 며느리밥풀꽃이나 할미꽃 등에 대한 꽃이름의 유래와 생태,특징을 줄줄이 꿰고 있다.그의 야생화에 대한 애정과 천착이 얼마나 깊은 지를 엿볼 수 있다. 올 봄에는 광주시 북구 ‘문화의 집’에서 열린 ‘이야기와 시(詩)가 있는 우리 꽃 전시회’를 열어 야생화 보급과 일반인의 관심을 끄는 데도 몫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에는 농장 한 편에 공방을 차렸다.그리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야생화 생태 체험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어린이들이 직접 화분을 구워 만들고 그곳에 야생화 한 뿌리를 심어 가져가기도 한다.어릴적 우리꽃을 한번 가꿔본 경험이 정서함양에 도움이 될거란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지금은 대도시 어린이와 학부모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많은 꽃들에 파묻혀 사니까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이를 가꾸고 관리하는 데는 강한 노동이 필요하다.”며 거칠어진 손바닥을 펴 보인다. 그는 “같은 꽃도 나라마다 지역마다 생김새와 이름이 조금씩 다르며 서양 원예종 화훼도 그 나라 고유의 들꽃을 개량한 것들이 많다.”며 우리 들꽃의 ‘산업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자원으로도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다.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고유의 수종을 지켜내고,이를 개량해 사시사철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우리꽃’으로 만들어 가는 게 꿈이란다. 담양 최치봉기자 cbchoi@
  • 이광수 미공개 작품 발굴/시 ‘어린 벗에게’ 논설 ‘살아라’

    춘원 이광수(사진)의 미공개 작품 두편 ‘어린 벗에게’(시)와 ‘살아라’(논설)가 발굴됐다. 문학사상 9월호에 공개되는 두 작품은 지난 2000년 4월 일본 와세다대학의 호테이 도시히로 교수가 미국 워싱턴의 의회도서관에서 찾아낸 동경유학생 기관잡지 ‘학지광’(1916년 발간)8호에 실린 것이다. 1914년 4월2일 창간된 뒤 1930년 4월5일 29호로 종간된 ‘학지광’은 8호,11호가 결호였는데 호테이 교수가 처음 발견해 문학사상에 보내왔다. 서경석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문학사상 9월호에 기고한 작품해설에서 “두 작품은 춘원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17년의 유교비판과 사회 비판의 전초 격인 자아 각성과 개성의 자각,그리고 그 실행을 강조한 글”이라며 “그 중 ‘살아라’는 특히 근대를 이해하는 초창기 지식인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마당] 청년 실업과 대학의 위기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상당 기간 ‘보따리 장사’라고 일컬어지는 시간강사 생활을 하다,올해 초에 모 지방대학에 임용된 후배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그동안 그가 생계를 아내에게 의지하며 반 백수 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나는 그의 취직이 무척 기뻤다.그러나 그는 새로운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그의 푸념을 요약하면,요즘 교수는 세일즈맨과 같다는 것이다. 현재 일부 지방대학에는 학생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학교 재정의 대부분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하다 보니 당연히 대학 당국은 정원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그래서 교수들을 연고지 고등학교에 홍보 사절로 내보내는 등 학생들을 유치하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그 후배의 결정적인 한마디.“어떤 고등학교에 갔더니 교무실 입구에 ‘교수,잡상인 출입금지’라고 씌어 있더라니까요.” 교수가 잡상인 취급받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그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학생수에 비해 대학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2003년의 경우 전문대를 포함해전체 대학수는 355개이며,정원은 약 70만명,2003년 대학 수학능력시험 응시자는 약 66만명이다.당연히 일부 대학은 폐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살아남기 위해 대학도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문제는 이런 상황은 계속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데 있다. 조금 시각을 달리해 보자.우리나라 전체 실업률은 2003년 5월 기준 3.2%,청년 실업률은 7.1%이다.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이 되지 않아 고민하는 청년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취업대란의 시대인 것이다.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수십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땅에서 일하고 있다.노동력은 부족한데 실업률이 높은 모순적 상황의 원인은 상당부분 교육 인플레에 기인한다.지대한 교육열이 한국의 성장에 큰 힘이 되었지만,반대로 그 교육열이 수십만 명의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대학이 필요이상으로 많고,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과 상당수 대학 교수들의 실력이 형편없고,또한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될 사람들마저 분위기에 휩쓸려 너도나도 진학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많은 사람들이 분명 반발할 것이다.그러나필자의 생각은 분명하다. 대학의 개혁 혹은,구조조정 없이 한국의 청년실업률 문제 해결이나 대학 교육의 질적 향상은 불가능하다.경쟁력 없는 대학은 어차피 도태되겠지만,그렇지 않은 대다수 대학들도 공급자 중심의 사고에서 탈피하여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교수의 전공 때문에,또는 ‘철밥통’인식 때문에 학과의 통폐합이나 대학의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상황이 대학 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교수들의 강의 내용이 지나치게 고답적이고 학문적이어서,다른 말로 하면 ‘한물 간’ 것이거나 전혀 실용적이지 못해서 사회에선 전혀 써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그런 교수들은 대개 인격수양,진리탐구,상아탑을 운운한다.그러나 상아탑이 아무리 고상해도 사회 진출의 입구에서 좌절하는 학생들을 구제하지는 못한다. 대학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출판사에서,꽤 알려진 대학의 국문과 출신 신입사원을 앉혀놓고 교정부호와 띄어쓰기,맞춤법,주술 호응을 다시 가르쳐야 하는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대학이 변해야 나라가 산다. /하응백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6)조동일 - 한국의 학문, 탈 식민지화를 위해

    저 옛날 원효는 중국으로 가려다 중도에 돌아왔으되 당대 불교철학의 첨단에 서 있었다.오늘날에도 해외에 유학하지 않고 세계적인 학문을 이룩하는 사람이 있다.그가 바로 국문학자 조동일 선생이다.“유럽 문명권의 독주 때문에 빚어진 불행한 역사를 청산하고 다음 시대를 열기 위해서 일제히 노력하는데 동아시아도 다른 여러 문명권과 함께 적극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고,한국에서도 할 일을 해야 한다.나는 내 나름대로 그 임무의 일단을 수행하면서,주위의 다른 사람,이웃나라 학자,다른 문명권 학계의 분발을 촉구한다.”(조동일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 중에서) 말복을 앞두고 부채질을 해야 할 만큼 뜨겁던 날,선생의 연구실 바깥에서는 매미 소리가 따갑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선생은 역시 변함이 없었다.뭔가 혼자만의 담대한 구상에 빠져 있다 불청객을 맞은 듯했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지 손수 녹차를 타주시는 배려를 보이기까지 했다. 비록 내 자신이 도둑맞은 건 아니었지만,선생과의 인터뷰 테이프를 도둑맞은 나는 뭐라 변명 드릴말씀이 없었다.빨리 본론을 시작하는 수밖에. “다시 선생님의 근황을 여쭈어 보아야겠어요.” “‘지방문학사 연구의 방향과 과제’라는 책을 썼어요.이제 교정을 다 봐서 책이 곧 나올 단계입니다.그리고 ‘국문학통사’도 한 번 더 고쳐서 제4판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이 작업은 오래 걸려서 2005년 초에나 나올 예정입니다.” “오랫동안 한국문학사를 연구해 오셨는데요.우리의 문학은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문학과 어떤 점에서 구별될 수 있을까요?” “한국문학사가 세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점이 뭐가 있느냐.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어요. 첫째,구비서사시의 전통입니다.우리 문학을 보면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사시가 면면히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어느 한 시대에 구비서사시의 풍부한 유산을 가진 나라는 여럿 있지만 이렇게 시대에서 시대로 이어지면서 면면히 새롭게 창조되는 구비서사시를 볼 수 있는 것은 한국문학이 특별한 경우입니다.시대에 따른 역동성이 있다는 것이죠. 둘째,한국은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간에 위치해있습니다.중국이 중심부이고 일본이 주변부라면 한국은 중간부인데 중간부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느냐.중심부가 발전시킨 공동 문어문학과 주변부에서 일찍부터 발전시킨 자국어 민족문학이 비슷한 비중으로 발전하면서 그 양자가 밀접한 관련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한국문학의 이런 특징은 다른 문명권의 중간부에서도 발견됩니다.산스크리스트어 문명권의 타밀,아랍 문명권의 페르시아,유럽 문명권의 프랑스나 독일 등이 그렇지요. 셋째,한국은 식민지 통치를 받으면서 근대문학을 일으켰는데 식민지 경험을 가진 다른 어느 나라의 문학보다 훌륭한 근대민족 문학을 이룩했습니다.그리고 그것은 앞 시대의 축적의 대가입니다.일본 식민지 통치는 언론과 정치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했고 이것이 문학에서는 고도의 암시와 상징,비유를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근대문학은 문학적 창조의 방법을 보이면서도 민족이 요망한 것을 깊이 집약하는 양면성을 갖추었습니다.이것은 우리 문학이 가진 한 특성이면서 제3세계 근대문학이 가진 보편적 특징을 잘집약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대,중세,근대에 걸쳐 한국문학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전통과 가치를 구비하고 있는 셈이군요.문명권을 중심부,중간부,주변부로 보는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경우 중국은 공동 문어문학,즉 한문학의 중심부이고 그 규범을 보인 성과가 높은 반면에 중국의 백화문학은 근대에 들어서야 성립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반면에 일본은 공동 문어문학을 많이 하지 않았고 그 수준도 별로 높지 못한 데 반해 자국어문학은 일찍 성립된 편입니다.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굉장한 것인 양 자랑하고 있는데 이것은 문명권의 주변부가 가지는 일반적 특성일 뿐 민족성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적합하지 못합니다.일찍 자국어문학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보다 유럽 문명권에서 주변부 중의 주변부인 아이슬란드보다 못합니다.중세에는 공동 문어문학을 잘한 중간부,즉 한국이 아주 위세가 높았고,근대에 와서는 주변부였던 탓에 자국어 문학이 일찍 개화한 일본이 조금 나은 형편에 놓여 있는 거지요.그러나 근대를 넘어서서 다음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대와 중세의 유산을 함께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공동 문어문학에 함유된 가치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중간부인 한국의 중요성이 커집니다.유럽처럼 동아시아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중세적 보편성과 일본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을 함께 구비하고 있는 한국이 두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구실을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한국문학 연구를 폭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주체적,독자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리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 오신 것 같은데요.” “학문하는 데 있어 흔히 볼 수 있는 두 가지 조류가 있어요.하나는 서양 학문을 가져와서 우리 것을 만들고 또 그것을 토착화하자는 수입학이죠.그런데 이 수입학은 아무리 잘해도 원산지보다 잘 할 수는 없어요.원산지와의 격차를 줄이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죠.또 수입학으로 대안을 만들 수는 없는 거죠. 다른 하나는 국학,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것을 자립학이라고 했어요.수입학이 범람하는 와중에 자립을 하자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것에 매달리면서 그것의 의의를 많은 경우 감정적으로 설정하고,우리 것이 가지는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편성이 결여돼 일반이론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자립학입니다.이러한 자립학으로도 우리 학문은 학문이 크게 나갈 수는 없어요. 수입학의 폐단과 자립학의 폐쇄성을 함께 넘어가는 바람직한 학문의 방법이 필요한데,나는 이것을 창조학이라고 명명했습니다.창조학이란 뭐냐면,우리 것,우리 민족,우리 유산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의의를 발견하고 그것을 한편으로는 동아시아로 확대하고 제3세계로,세계로 확대하는 것이죠.동아시아로 확대한다는 것은 중세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고 제3세계로 확대한다는 것은 근대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그렇게 해서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유럽문명권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거죠.그렇게 해서 근대를 합리화하는 그들의 한계에서 벗어나,유럽 문명권 중심주의를 세계 전체로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그것의 근본적 결함을 비판하고 대안이 되는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학문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입니다.” “중요한 말씀 같습니다.그런데 학문을 함에 있어 언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예컨대 영어를 잘 알아야 한다든가,말입니다.” “국제비교문학회 같은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보면,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말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겪게 됩니다.우리나라뿐 아니라 제3세계가 다 마찬가집니다.말할 수 있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영문학,혹은 국문학 전공자들이 해외에 나가서 영어는 빠지지 않게 하지만 내용이 없다는 것이죠.할 말도 있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도 있고 그것을 외국어로 표현할 줄도 아는,그러니까 양쪽을 갖춘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영문학자나 국문학자가 그렇게 하기는 매우 어려워요.국문학을 깊이 공부하는 사람이 비교연구의 관점도 다 갖추고 세상에 통용되는 말로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현실이고 제3세계 국가들도 모두 비슷합니다.그런 공통적인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경쟁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견해는 만만치 않은데요.복거일씨가 그런 분 가운데 한 사람이었죠?” “영어는 일종의 교통어입니다.모국어가 다른 사람끼리 통용하기 위한 말인데,교통어로서의 영어가 갖는 효용성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말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할 말은 점점 더 없어져요.할 말이 있고 말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번역을 해서라도 내놓을 수 있는데 말을 할 수 있고 말할 내용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선생은 어조가 한결 높아진다. “지난번에 그런 주장이 횡행하길래 3개월 만에 급한 대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이라는 책을 썼습니다.관심이 있어 자료는 모으고 있었지만 내 분야가 아니었기에 바로 쓸 계획은 없었어요.그러나 문제가 시급하다는 생각,몇 달 만에 책을 썼고 원고 넘기고 한 달여 만에 책이 나왔어요.그 책의핵심 중 하나는,영어 공용어 국가는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였거나,자기 나라 사람끼리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뿐이라는 것이에요.우리나라 사람끼리 말이 통하지 않게 하는 것,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어 한국어를 못 쓰게하는 것은 어떤 정치권력이나 법으로도 불가능해요.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리를 떠드는 것은 사람의 의식을 혼미하게 하는 거예요.영어를 공용화한 나라가 얼마나 많은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 조사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고 정책을 좌우하는 사람들까지 부응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그것은 경쟁력도 못키우고 학문을 발전시키지도 못합니다.” 선생은 외국어를 가장 잘하는 국문학자 가운데 한 분이고 학문을 하려면 5개국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영어 공용어론에 대해서는 여간 강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평생 학문을 학문답게 해온 사람의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닐는지. 나는 선생께,선생님도 생활이라는 개념이 있느냐고 여쭈었더니,그렇단다.매년 8월 아무 날에는 제자들과 속리산에함께 오르신단다.이 글을 정리하느라 선생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매주 일요일 오후 1시5분쯤이면 도봉산역에 도착해 등산을 하신단다.참으로 놀라운 생활이 아니냐.그 규칙성,그 성실함이라니. ■방교수가 본 국문학자 조동일 옛날에 신림 4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큼직한 가방을 멘 사람이 혼자 쑥 들어오더니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호프 500cc를 한 잔 시켜 마시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그가 바로 조동일 선생이었다.그 무렵 나는 그가 늘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마냥 큼직한 커리어백을 끌고 다니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그는 다른 생각 없이 공부만 하고 땅만 보고 다니는 사람 같았다.생각은 하늘에 두고. ●도전과 의지의 삶… 저서 50여권 이번에 조동일 선생과 인터뷰를 치르는 동안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녹취 테이프 푸는 일을 맡은 작가 김신우씨 집에 도둑님이 들어 테이프를 잃어버린 것.생각다 못해 선생에게 다시 인터뷰를 하자고 어렵게 말씀 드렸더니 쾌히 그러자신다.천재지변 같은 일을 어떻게하겠느냐고. 나는 선생 연구실의 낮은 문턱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높고 낮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었다. 1939년 경상북도 영양 사람으로 예천 출생이다.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한 뒤 국문과에 다시 입학,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학문을 익히는 도전과 의지의 삶을 살아왔다.1982년에 간행되기 시작하여 모두 다섯 권으로 낸 ‘한국문학통사’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쓴 저서가 모두 50여권. 그의 관심은 한국문학에서 출발하여 한국문학으로 끝나되 그 단일 주제는 끊임없이 확장,심화되어 왔다. ●평생 한국학의 세계성 탐구 ‘우리 학문의 길’(1993) 등이 보여주듯,그는 한국 지식사회가 주체성과 독자성을 확보하는 길을 고민해 왔으며 나아가 그러면서도 정저지와(井底之蛙)에 머무르지 않는 학문의 창조성을 고창해 왔다.최근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처럼 그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갈무리하는 저서를 내는 한편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민족문화가 경쟁력이다’(2001) 같은 저서로 사회 일각의 천박한 서양 동화주의를 비판하면서 우리언어와 학문의 가치 옹호에 앞장서기도 했다.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문학지성들의 진단과 예언

    대한매일은 창간 99주년을 맞아 다양한 시리즈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먼저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라는 제목으로 문학 지성인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마련합니다.‘혼돈과 격변의 시대,한반도와 한국인은 어디에 와 있으며 미래는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까.’라는 담론을 놓고,시대정신을 온몸으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해답을 구합니다.문학평론가인 방민호(38·국문과)국민대교수가 주 1회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 줄 것입니다.지면에 등장할 문학 지성인들의 면면과 대화의 주제(가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최인훈> 냉전 해체 후 세계사의 전개와 한반도 ●김윤식 한국문학 100년과 한국문학의 향방 ●현기영 남북한에서의 민주주의와 통일의 현단계 ●조동일 한국의 학문,학문의 탈(脫)식민화를 위하여 ●이청준 문학의 본원적인 기능을 회복하자 ●김지하 새로운 시대,새로운 세대,새로운 시 ●이어령 세계사의 새로운 조류와 한국 지성인의 활로 ●김우창 격변기 지성의 의미와 기능 ●신경림 새로운 국가독점과 민중의 새로운 발견 ●박경리물질문명 시대,생명의 가치 회복 대한매일은 중국 대륙에 휘몰아치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다루는 기획 ‘中國 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시리즈와,‘수평사회를 만들자’캠페인의 제3부인 ‘경찰과 시민’시리즈도 시작합니다.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 최인훈

    최인훈이라는 한 사람의 작가 속에 20세기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이 거울처럼 담겨 있다.젊은 날의 최인훈을 사로잡은 고독이란 식민,분단,전쟁,냉전으로 얼룩진 20세기 한국인의 초상이 아니고 무엇이랴.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장강처럼 펼쳐간 사유의 대기록인 ‘화두’는 비극적인 운명을 초극하려는 노대가(老大家)의 몸부림이 아니었던가.이 시대를 묻기 위해서는,밤길처럼 어둡고 동물원처럼 혼탁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안녕하십니까?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읽고 쓰는 일 외에 별로 분주하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1980년 광주 특집 방송과 탈북자 관련 프로그램을 봤습니다.책보다 생생한 역사와 삶의 현장이 담겨있었는데 남과 북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지금은 한민족이 과거를 딛고 새 시대로 가는 전환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역작 ‘화두’(1994)는 바로 그와 같은 한민족 내지 한반도의 운명과 20세기말의 세계사적 변화에 대해 가장 넓고 깊게 사색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두’는 냉전의 종식,소련 체제의 붕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었죠.20세기에 훌륭한 예술가·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만 불행하게도 20세기 말까지 생존한 분들은 적습니다.저는 20세기를 넘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각을 얻은 행운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들어 세계는 심각한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선생님께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현재의 제 감각으로는,세계는 지금 19세기적인 국제 정치 환경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저는 이것을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결과를 생각해 볼 때 20세기는 상당히 괜찮은 세기였다고 생각합니다.그 시대에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자기 존재에 대해서 높이 존경하고 그 존경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문명사는 인간에게 분수를 알라고 가르치지만 겸손이 지나칠 필요는 없습니다.20세기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존의 우상이나 정해진 틀을 대담하게 넘어서려는 운동을 전지구적으로 전개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바라고 기대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환경,거꾸로 우리가 그런 대로 해결하면서 지나왔다고 생각하는 과거 상황으로 되돌아와 있지 않은가 합니다. 최근 사태를 보면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에도 미국과 아랍 문명권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습니다.이 현상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지요?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은 20세기 내내 성공적으로 자기 이미지를 관리했습니다.물론 많은 비판이 있었고 미국이 뼈아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견해가 방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라 지구상의 소박한 민중들 눈에 비친 미국은 훌륭한 나라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은 그런 이미지를 단번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 항공모함으로서만 살 수 없고 미사일만으로서 세계를 만만하게 요리할 수도 없습니다.내가 아까 19세기 운운했지만 형국이 그렇다는 것이지 지구상에 현존하고 있는 민중들의 정치의식이 19세기로 되돌아간 것은 아닙니다.세계 민중의 의식은 21세기에 와 있습니다.이런 시대에 지금까지 국제 질서의 주역을 맡았던 미국이 이처럼 퇴행적인 행위를 보여준다는 것은 심각히 우려되는 일입니다.당장 우리 반도 남북의 거주자들한테 염려스러운 문제입니다. 북한 핵 문제 등 남북한을 둘러싼 세계사적 상황은 심상치 않습니다.한반도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의 현장이라고 합니다.이 어려운 시대를 한국인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지난 20세기는 우리 반도 거주자들이 한반도에 생활의 터전을 잡은 이래 최악의 세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세기 전반에 국가 전체가 일제에 의해서 강제 납치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우리 역사에 이처럼 완전히 권리를 제약당한 적은 없었습니다.그런가 하면 20세기의 후반기에 우리는 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를 견뎌 왔어요.한 세기가 지났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어느 의미에서는 새로운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평화입니다.평화는 우리 전부의,최대의,인간으로서의 희망 사항이고복지라고 생각합니다.이것이 있어야 이런저런 설계도 할 수 있습니다.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비극으로 되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50년 전,100년 전보다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50년 전,100년 전 사람들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미래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오늘의 동북아시아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습니까? -과거에 문명사적 기대를 한 몸에 안았던 구소련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은 러시아권·슬라브권이 인류사적 의미의 문명의 축적을 이루지 못했던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은 러시아가 갖지 못한 인류사적 문명의 전통이 있습니다.그들은 난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그들이 제공하는 방향은 그들 자신은 물론 우리 같은 이웃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일본은 중국과 다릅니다.일본은 20세기의 문명사에 커다란 오류를 범했습니다.그러면서도 명쾌한 과거반성이 없습니다.이러한 일본의 존재로 인해 동북아시아는 유럽과 상당한 격차를 가질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들 또한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일원입니다.앞으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유럽에 비견될 만한 공동체적인 지역 환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요.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과정을 보면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두드러졌습니다.새롭고 젊은 세대의 구성원들을 위하여 당부의 말씀을 남겨 주시지요. -그들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그들을 견제할 아무런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자제하라느니 자기 검열을 하라느니 하는 말은 노파심의 소산입니다.선거가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가선 안 된다,판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말려야 하는 웃지 못할 시대를 우리는 지나왔습니다.바로 어제까지 그러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야 합니다.소신이 있다면 책임지고 갈 때까지 가라는 이야기지요.갈 때까지 가고 결과는 본인들이 책임지라는 거지요.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하는 것은,험한 역사를 본 세대의 입장에서는 감히 뭔가 앞질러서 다 지혜롭게 꿰뚫어 보고서 충고를할 만한 저축이 없습니다.새로운 세대에게 한 번 기대를 걸어 봅시다. ■방민호가 본 작가 최인훈 ●최인훈 선생 만나는 날 ‘북(北)에는 최인훈이요 남(南)에는 박경리다.’.함경북도 회령은 반도의 북쪽 끝,경상남도 통영은 남쪽 끝이 아니던가.그러니 먼저 최인훈을 찾아 가리라.나는 이 막막한 시대를 헤쳐 나갈 지팡이를 얻기 위한 제일(第一) 행선지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최인훈 선생의 자택으로 정했다. 그를 만나는 길은 멀었다.선생은 여러 겹 문을 가진 성(城)처럼 깊은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처음 본 선생은 셔츠를 맨 위 단추까지 꼭 채워서 입고 있었다.그것이 내게는 선생의 작가적 성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여러 번에 걸쳐 ‘광장’을 고쳐 쓴 선생은 완벽주의자다. ●최인훈의 문학세계 1936년에 국경도시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을 거쳐 전쟁 중에 해군함정을 타고 월남한 가족의 한 사람,최인훈.부산과 목포 등지를 떠돌다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했지만 그는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대형 작가임을 증명해준 ‘광장’(1961)과 ‘회색인’(1964)의 주인공들은 깊은 고독에 빠져 있다.극단적인 냉전의 시대에 남과 북을 모두 상대화시키고 절대적인 고독의 경지를 개척한 그들의 내성(內省)은 바로 최인훈 자신의 것이었으리라. 그의 문학을 새로운 차원에 진입시킨 것은 1973년부터 76년까지 계속된 미국 체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새로운 생각들이었다.그는 한반도와 한국인의 운명은 어떠하며 한국문학의 길은 무엇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희곡과 소설을 시도해 간다. 1994년에 간행된 ‘화두’는 20세기 한국사를 그 자신의 삶 속에 응축시켜 기억과 회상의 형식으로 풀어낸 대작이다. 이를 통해서 그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반도와 한국인의 독특한 존재 의미를 건져내 보여주었다.이는 실로 오랜 세월에 걸친 탐색의 결과였다. ■방민호 교수는 문학 지성과의 인터뷰를 맡은 방민호 국민대 교수는 문단의 주목받는 신진 문학비평가로서 6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다.94년 ‘현실을 바라보는 세개의 논리’로 제1회 창비신인평론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서’,‘납함 아래의 침묵’,산문집 ‘명주’,산문선집 ‘모던 수필’을 펴냈다.
  • 뉴스 플러스 / 駐스웨덴대사 정영조씨

    정부는 9일 주 스웨덴 대사에 정영조(59) 전 방글라데시 대사를 임명했다.정 신임 대사는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외시 7회로 합격한 뒤 주 유고슬라비아·캐나다 공사,문화외교국장 등을 역임했다.
  • 떡국·풀국·布穀·法禁·復國…뻐꾸기 소리 하나에도 큰 의미담았던 선인들 / 정민著 ‘한시 속의 새‘

    새는 늘 인간의 삶 가까이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아침 까치 울음소리에 마음 설고,올빼미가 울면 불길한 예감에 잠을 설쳤다.뻐꾸기 소리를 듣고 씨 뿌릴 때가 됐음을 알았고,편대를 지어 날아오는 기러기 떼를 보며 겨울을 예감했다.마당에 학을 길러 그 고고한 정신을 닮으려 했고,닭의 행동을 관찰하며 인간 삶의 면면들을 곱씹었다.새는 선인들의 삶과 함께하며 신화와 전설,민담을 비롯한 많은 이야기를 낳았고 다양한 이미지로 자리잡아 왔다. ‘한시 속의 새,그림 속의 새’(전2권,효형출판 펴냄)는 새를 소재로 한 한시와 그림 등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문화 속에 자리잡은 새와 관련된 기록을 살핀다.저자는 한문학 속에 담긴 풍부한 콘텐츠를 살아 있는 유용한 정보로 바꾸는 작업에 몰두해온 한양대 국문과 정민(44) 교수.그는 새소리를 빌려 노래하는 금언체(禽言體) 한시를 공부하면서 이 책을 구상하게 됐다.5년 동안 일본과 타이완,중국을 종횡으로 누비며 새와 관련된 책을 구했고,세계의 새 그림 우표도 600장 넘게 모았다.이 책은 그런열정의 산물이다. 새가 지니는 상징성과 의미는 무궁무진하다.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문(文)·무(武)·용(勇)·인(仁)·신(信)의 오덕(五德)을 갖춘 닭,장수를 축원하는 세화(歲畵)의 소재인 학,신의의 상징인 제비,안분지족의 상징인 메추리,부부의 백년해로를 축원하는 의미가 담긴 백두조,태평성대를 알리는 황여새,개 대신 집을 지키는 거위,방정맞은 할미새….그런가하면 고구려 고분 벽화 속의 학이나 봉황,세 발 달린 까마귀는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자로 등장한다.저자는 “새 그림에 담긴 의미들은 철저하게 문학적 상징으로 코드화돼 있다.”고 말한다.새 그림은 영모화(翎毛畵)라고 해 옛 그림의 한 장르를 이뤘다.옛 그림 속의 새는 관념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조류도감을 방불케할 만큼 사실적인 것이 특징이다. 새들은 어떻게 우는가.우리 선인들은 같은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떡국·풀국·박국 등으로 달리 들어 전설로 엮었다.그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상상을 자극해 다양한 의미를 낳았다.‘씨 뿌려라(布穀)’라는 독촉으로,‘법으로 금한다(法禁)’는 외침으로,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나라 찾자(復國)’는 다짐의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며 ‘논어’ 위정편의 한 구절을 그럴싸하게 읊조리는 제비도 있다.‘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것이 아는 것이니라’라는 뜻의 이 구절을 소리대로 빨리 읽으면 마치 지지배배하고 조잘대는 제비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들리기에 하는 말이다.‘장자’의 한 구절로 노래하는 꾀꼬리 또한 이에 못지않다. 180여컷의 새 관련 그림 자료와 170여 수의 한시가 실린 이 책은 문학,회화,조류학 세 분야에 걸쳐 있다.그동안 조류학자들이 쓴 책이나 새 그림에 관한 미술학계의 연구는 많지만 우리 옛 문헌 속의 새 자료와 그림들은 다뤄지지 않았다.이 책은 ‘학제간 연구’의 결실이자 ‘인문학 가로지르기’의 바람직한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1권 2만 2000원,2권 1만 9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화제의 사이트] www.bukmaru.com

    올해는 6·25 종전 50년이 되는 해다.긴 세월이 흘렀지만 800여만명에 이르는 실향민과 가족의 그리움은 여전하다.‘북마루’(www.bukmaru.com)는 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면서 아픔을 달래주는 인터넷 사이트.지난 2월 문을 열었다. 북마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코너는 ‘꿈에 본 내고향’.평양,개성,정주 등 북한 지역의 3D 동영상과 묘향산 등 북한 23개 지역의 위성사진을 제공하고 있다.실향민 1세대에게는 향수를 달래주고 2,3세대에게는 가보지 못한 부모님 고향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취지다.단계적으로 북한 전역으로 대상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혼란스러웠던 해방 정국과 전쟁시기에 헤어진 가족이나 친구 등을 찾는 ‘보고싶은 얼굴’ 코너도 눈길을 끈다.찾고 싶은 사람의 이름,사연,고향 등을 올려 만남을 주선하는 곳이다. ‘북한방문기’에서는 유홍준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윤병로 성균관대 국문과 명예교수 등의 방북기를 해당 지역의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다.한명숙 환경부장관,가수 이문세,‘농구황제’ 허재 등 유명한 실향민 1,2세대를 지역별로 소개하는 ‘내고향 사람들’ 역시 흥미를 끄는 코너다. ‘북마루’ 김태원(42) 사장은 “평북 정주에 두고 온 가족을 평생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며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면서 “앞으로 북한 향우회나 동창회 등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북마루를 실향민 전문 커뮤니티 사이트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
  • 팔봉비평문학상에 김인환교수

    문학평론가인 김인환(57) 고려대 국문과교수가 제14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수상작은 평론집 ‘다른 미래를 위하여’(문학과지성사).김 교수는 1972년 ‘현대문학’과 ‘월간문학’에 동시에 추천되면서 평론가로 등단했으며,평론집 ‘문학과 문학사상’‘비평의 원리’ ‘상상력과 원근법’ 등을 펴냈다. 시상식은 새달 10일 오후 3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열린다.
  • [열린세상] 너무 바쁘거나 아프거나

    얼마 전 퇴근 길 운전을 하면서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구절에 무척 공감이 갔다.대략적인 내용은 “바쁘거나 아프거나…직장을 가진 기혼여성은 119 구급대원…오늘도 불을 끄러 간다…친구들 만날 시간도 없고,어떤 친구들은 이미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자세히 듣고 보니 같은 학교 국문과에 계시는 교수님의 작품이었다.나야말로 ‘바쁘거나 아프거나’ 하는 사이에 같은 대학 울타리 안의 교수님이 이렇게 공감이 가는 작품을 쓰신 줄도 몰랐다니….신문에서 ‘여자이야기’라는 김승희 시인과 윤석남 화가의 합작품에 관한 기사는 읽었지만,그 세세한 내용은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늘 바쁘다고 쫓기다가 그 구절을 듣는 순간 지금 ‘아프지 않고 바쁘기만’ 한 것에 우선 감사드리며 잠시나마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직장을 가진 기혼여성들의 삶은 물론이려니와,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야말로 ‘바쁘거나 아프거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학회 은사님들 중 많은 분들의 존경을 받아오셨던두 분을 암과 뇌출혈로 잃었을 때,모두 그 두 분이 너무나 열심히 살아오셨기 때문에 빨리 가신 것이 아닌가 안타까워했었다.그렇다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우리들이 모두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모든 사람이 자기 앞에 바로 낭떠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쉼 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재작년 여름에 뉴질랜드에서 몇 주 머물 기회가 있었다.서울에서 했던 것처럼 뭔가 바쁜 일로 한참을 뛰다 보니,문득 그 거리에서 나 혼자만 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순간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또 한 가지,뉴질랜드에서 아는 한국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로를 가는데,저 앞쪽에 가던 차가 문제가 생겼는지 비틀거렸다.그 순간 우리 눈에 보이던 5∼6대의 차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순식간에 한쪽으로 차선을 바꾸어 모두 정차하더니,일제히 내려 그 차에 다가가 도움을 주려 하였다.우리가 탄 차는 유유히 그 차를 비켜 다른 라인으로 빠져나왔다.그 순간 또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한국에도 이런 경우 문제있는 차를 도와주려고정차하는 차들이 있기는 하지만,대개 1∼2대 정도의 차가 도와주려고 서는 듯하면 다른 사람들은 “괜찮겠거니” 하며 그냥 가곤 한다. 어쩌면 뉴질랜드가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지상낙원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곳이 아닌가 여겨졌다.아이들이 진흙 속에서,바닷가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기회를 주고,약자를 도우려는 마음이 자연스레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혹자는 그런 곳이 너무 따분하다며 “따분한 천국보다는 흥미진진한 지옥을 택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늘 눈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긴장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한번쯤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곳임에 틀림없다.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면 당연히 사회는 이상적인 지상낙원이 되어야 하는데 왜 이리도 세상은 엉망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어떤 사람은 타인을 속이기에 바쁘고,어떤 사람은 편법으로 개인의 실속을 차리느라 바쁘고,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명분을 앞세우되 타인을 헐뜯는 데 바쁘다. 이런 사람들이 바쁘게움직일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아직 때묻지 않은 좋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바쁘게 움직이며 흐려진 물을 조금이라도 맑게 만들어 보려고 ‘바쁘거나 아프거나’의 인생을 살아가지만,물을 흐리게 만들기는 쉬워도 흐려진 물을 다시 맑게 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새삼 ‘피터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모든 사람이 ‘바쁘거나 아프거나’ 하며 계속 위만 보고 올라가다가 결국 사회 전체가 무능력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럽다.모두들 행복하고 여유로운 가운데 진짜 인간다운 사회가 만들어질 날을 기대해본다. 나 은 영 서강대 교수 신문방송학
  • “정지용, 미군機에 피격사망 북한 문학사에서 완전복권”/ 박태상교수 논문서 주장

    사망시기가 불확실하던 ‘향수’의 시인 정지용이 1950년 9월21일 동두천 소요산에서 미군기의 기관총에 피격돼 숨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박태상 한국방송대 국문과 교수가 5월17일 충북 옥천에서 열릴 지용문학제에서 발표할 ‘정지용 문학에 대한 북한문학사에서의 평가’라는 논문에 담긴 것. 박 교수는 일본 조총련계인 김학렬 조선대 교수로부터 입수한 북한의 박산운 시인의 ‘정지용 시인에 대한 회고담’을 국내 처음 공개하면서 정지용의 사망 관련 내용을 소개한다. 회고담은 1993년 4월24일,5월1일과 7일에 북한 ‘통일신보’에 실렸다. 박 교수는 “박산운이 북한의 소설가 석인해의 목격담을 근거로 정지용이 월북하던 중 동두천의 소요산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서술했는데,이는 북한이 정지용 시인의 부활을 기정사실화하려고 그의 죽음을 미화하려는 정치적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갑기념으로 2001년 12월10일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 정지용의 이름이 공식 수록된 점을 들어 “정지용이 완전 복권됐다.”며 “북한이 동구권의 해체 이후 ‘조선 민족제일주의’와 ‘민족공존’기치를 높이 들면서 나타난 노선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한다. 박 교수는 “정지용 복권은 ▲94년 유만의 ‘조선문학사’에서 4쪽에 걸친 작품 소개 ▲김일성대학의 문학교재에 정지용의 작품이 등장한 사실 등에서 조짐을 읽을 수 있다.”면서 “조선대백과사전에 수록된 것은 북한 문학사에서 완전 부활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근 ‘원본 정지용 시집’을 펴낸 이숭원 숭실대 교수는 “정지용 시인에 대한 서술의 변화를 발견했다면 연구 성과”라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
  • “재미와 공익 동시 추구… 프로그램 질 높일터 ”이긍희 MBC신임사장

    “방송계에 30여년간 몸담아오면서 항상 변화를 추구했습니다.저는 절대 수구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MBC 이긍희(李兢熙·사진·57)신임사장이 21일 서울 여의도의 음식점에서 취임 한 달여 만에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이 사장은 그간 일각에서 불거져 나온 ‘보수로의 회귀’라는 우려를 의식한 듯 “한 인물을 보수·진보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방송으로 변화를 보여주겠다.”고 운을 뗐다. MBC가 이 사장 체제로 전환된 뒤 처음 맞부딪친 문제가 ‘미디어비평’폐지 논란이었다.이 사장은 “최근 한 인물정보사이트에서 내 이름이 조회 건수 3위를 기록했는데 아마도 ‘미디어 비평’때문일 것”이라면서 “처음부터 폐지·축소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폐지 논란이 제기된 과정에 대해서는 “확대 개편해 심층 보도의 기능을 첨가하려 했는데,반발이 심해 그대로 존속시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프로그램 품질 평가지수(QI)로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지금까지는 시청률만이 평가의 잣대였지만,이제는 질을 동시에 평가해 재미와 공익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다.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는 ‘!느낌표’를 꼽았다.정부의 새 취재 지침에 대해서는 “장점은 있지만 방법과 운영상의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지난달 4일 선임된 이 사장은 경남 밀양 태생으로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70년 MBC에 입사했다.그 뒤 오락과 교양 프로그램 PD를 거쳐 교양제작국장,정책기획실 이사,MBC 프로덕션 사장,편성실장,전무 등을 지냈다.이 사장은 MBC PD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사장직에 올랐다. 김소연기자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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